연말연시에 일하는 건 가난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부모님은 그렇게 말한다. 형과 누나도 그렇게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한다. 섣달 그믐날이나 정초 3일간 일이 없으니까, 난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한테 의뢰가 온 이상, 일을 해야한다.
이번 일은 귀적계에서 온 의뢰였다. ...솔직히, 그쪽에서 일을 받는 건 마음 내키지 않는다. 귀찮은 일만 많은 주제에 제시하는 금액은 시세의 삼분의 일, 그것도 3달 할부로 입금된다. 지폐의 상황이 나쁘거나, 승급 시험을 대비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런 때를 제외하면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이번 일에 한해서 받아들일 마음이 생겼던 건, 새로 산 예비 스코프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뿐이다. 그런 이유가 없었다면 집에서 실버와 동조를 강하게 하던가, 숙제나 하고 있었겠지
...일따위 받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랬다면, 나는 그 병약신과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 테니까.
사신이라면 그나마 낫다. 나도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은 평등하게 찾아오니까.
하지만 그녀석은 병약신인데다 빈곤신... 아니, 처음에는 돈이 있었으니 빈곤신은 아닌가, 이건 취소하지... 아무튼 녀석 자신이 당치도 않은데다, 고양이까지 딸려온 게 문제였다.
'악령의 눈'이라고 불리우는, 일부 원환 원리주의자 또는 상상초월의 바보가 아니라면, 손에 넣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한니발이 씌인 아르케부스.
전자 뿐이라면 만날 일은 없었다. 후자 뿐이라면 나 스스로 도망친다.
...이 둘이 같은 곳에 존재하고, 게다가 내가 만나버린 일이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얽혀버리고 말았다. 얽힌 것 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될 것이고, 안 되더라도 한 명의 바보가 죽을 뿐이니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니발 풍으로 표현하면, '이건 너와 우리들의 운명이다'라고나 할까.
...농담은, 농담으로만 존재하길 바랬다.
***
히로는 뭔가를 직접 사서 먹어본 적이 없다. 매월 받는 용돈은 고양이 모양의 도자기 저금통에 대부분 넣어버리고, 새뱃돈 비스무리한 녀석들은 우체국 통장에 저축한다. 겉보기에는 훌륭한 지갑에는, 부적 대신 넣어둔 구멍이 안 뚫린 5엔짜리랑 100엔짜리 몇 개 외에 금전적 가치가 있는 물건은 들어있지 않다. 나머지는 제비뽑기에서 나온 꽝, 꽝이었던 마권 등, 그녀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쓸모없는 것들밖에 들어있지 않다. 설령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저녁밥을 먹지 못하게 되므로 사먹지 않겠지만.
그래서 히로는 소년과 함께 들어간 그 패스트푸드점에서 150엔짜리 콘 포타주 수프만 주문했다. 지갑에서 잔돈을 털어내려고 했더니 그가 돈을 내줬다. 내줄 거면 처음부터 말해주면 좋았을걸, 이라며 히로는 생각만 하고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사가 약간 풀리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분별하는 개념은 있는 모양이다.
(...왜 이렇게 됐지...)
눈 앞에 앉은 무뚝뚝한 얼굴의 소년을 보면서 히로는 멍하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생각해봤다.
***
뭘까, 하고 히로는 생각했다. 계단을 올라오는 남자아이가 총을 갖고있고, 그걸 자신에게 겨누고 있다. 세상에는 BB탄으로 총싸움을 하고 노는 사람도 있다던데, 자신은 어느새 그와 놀이를 시작했던 걸까?
(...그렇다는 말은, 나도 총으로 저 애를 겨눠야 하나)
히로는 허리춤의 벨트에 꽂아둔 아스트라M44를 꺼내기 위해, 계단가를 짚고 왼손을 들어올리려 했다.
(안 돼, 히로, 움직이지 마!)
한니발의 목소리, 소년이 쥐고있는 총구로부터 울려오는 청백의 섬광, 화통이 터지는 듯한 건조한 소리. 동시에 일어난 3개지의 소리와 색을 히로가 인식했을 때, 이번엔 왼손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어라"
왼발과 같다. 전혀 아프지 않고, 저리거나 하지도 않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왼쪽 무릎부터 위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버렸다. 히로는 완만한 동작으로 소년에게서 얼굴을 돌려 자기 왼팔을 본다. 잘 보니까 팔꿈치에서 왼발과 같은 투명한 액체가 나오고있다.
"...으응, 아프지 않은데, 움직이지 않아...웃"
관자놀이에 딱딱하고 뜨거운 것이 들이밀어진 감촉이 전해진다. 시선을 내려보니 깊고 튼튼해보이는 신발이 보인다. 누군가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관자놀이에 처박힌 무언가가 더 강하게 침식해와서 사고를 정지시킨다.
삐걱, 하고 뼈가 소리를 낸 느낌이 들었다.
"명찰을 대"
바로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까까지 계단을 올라오던 그 소년이겠지.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남자애 목소리... 였지만, 꽤나 저음이었다. 감기라도 걸린 걸까 생각하면서, 히로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
"명찰...올해 설날에 뽑은 제비라면 지갑 안에 있는데"
관자놀이에서 딱딱한 무언가가 떨어졌다고 생각했더니, 귓가에서 빠앙 하는 소리가 작열해 히로의 고막을 울렸다. 그리고 다시 귀에 딱딱하고, 하지만 아까보다 더 뜨거워진 두꺼운 봉이 들이밀어진다. 귓불의 애기털이 타버리는 듯한 고통에, 히로는 눈썹을 꿈틀거린다.
"...뜨거운걸"
"명찰을 내, 라고 말했다"
뭔가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 든다. 히로는 귀의 아픔을 참으면서 어질어질한 머리를 회전시켜본다. 아무튼, 이 남자애가 '명찰'이라는 물건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명찰, 이라는 게 뭐지. 진지하게 생각해봤지만, 그에 해당하는 물건은 신사에서 뽑은 제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째 그 제비는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명찰이 뭔데?" 하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이에도 역시 귀에 들이밀어진 물건은 그대로라 아프고 뜨겁다. 온도가 적절하게 식어서 '따듯하다아'라고 히로가 생각하게 됐을 무렵 즈음, 드디어 귀에서 떨어져나갔다.
"...아아, 아팠어어..."
귀가 눌려있었기에 오른손으로 문지르러 올려들던 순간, 소년이 발을 움직여 손등을 밟는다. 신발 밑창이 구불구불한 자국을 새긴다.
"...아파아아"
사람 좋은 히로라곤 해도, 괴롭힘당해서 기뻐할만큼 좋지는 않다. 지면과 발에 끼인 자기 손을 쓸쓸하며 바라보면서, 히로는 소년을 올려다본다. 자신과 같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히로가 알고있는 반 남자애들과는 어딘가 분위기가 다른 느낌이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소년의 눈동자는, 잘 잊어먹는 히로조차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만큼 이상한 빛을 내뿜고 있다. 식탁에 올라온 전갱이처럼 흐리멍텅한데, 아무리 먹이를 줘도 길들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시마타로라는 고양이처럼 날카롭고, 수족관에서 본 큰도롱뇽같이 뭘 생각하는지 알기 어려워보인다.
자신을 향한 그 시선을 멍하니 보고있자니, 그는 금방 눈을 돌려버렸다. 이겼다, 라고 히로는 생각했으나, 이걸 이겨봤자 손 위에 있는 발을 치워주지 않으면 상황은 호전되지 않는다.
"...아픈데, 발 치워줄래?"
"그 고양이는 네 파밀리아냐?"
간절한 부탁을 의문으로 되돌려받았다. 일단 히로는 고개를 돌려 한니발을 찾는다.
"하루 씨..."
왼손쪽에 가만히 웅크리고있는 한니발이, 히로의 부름에 응해 살금살금 움직인다. 금빛 눈동자가 빤히 소년을 바라본다.
(...상황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내 주인에게 치료할 시간을 주지 않겠나, 스나이퍼. 이제 곧 멈추겠지만, 불순물이 들어갈 지도 몰라)
소년은 잠시 한니발을 내려나봤다. 그 사이, 역시 히로의 오른손은 밟힌 채였고, 미간에는 총구가 향해져있다. 아아, 귀에 처박혔던 게 저거구나, 하고 히로는 새삼스럽게 쳐다봤다.
총에 대해 잘 모르는 히로에게도, 저게 자기 허리춤에 있는 아스트라M44와는 꽤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스트라M44의 절반정도 되는 전장에, 납빛의 총신과 검고 직선적인 손잡이. 전체적으로 두껍지 않은 그 총에는, 긴 총신이나 회전하는 탄창이 없다.
"...지금부터 오른손을 해방해주지. 천천히 허리의 물건을 꺼내서 지면에 둬라. 트리거에는 손가락을 걸지 말도록"
'스나이퍼'라고 불린 소년의 시선은 한니발에게 향해진 채였기에, 히로는 오른손 위에서 그의 발이 치어질 때까지 그 말이 자신에게 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ㅡ 아팠어..."
오랜만에 본 오른쪽 손등에는 선명하게 신발의 자국이 흙빛으로 달라붙어있다. 더러워진 부분을 닦아내고 싶지만, 손수건으로 닦으면 손수건이 더러워지고 만다. 그럼 어떡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있자니, 소년의 발이 이번엔 왼손을 밟는다. 이번엔 그저 위에서 밟아올 뿐만 아니라, 체중을 실어서 밟아버린다.
"....아파아아...."
"천천히 꺼내라곤 했지만, 그렇게 느리게 하라곤 안 했어"
천천히랑 느리게는 같은 의미가 아닐까. 그 뉘앙스의 차이를 살필 틈도 없는 히로였지만, 그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아프다는 사실만은 깨달았다. 아픈 건 좋아하지 않는다. 아프니까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허리의 물건이라니, 이 모델건 말이야?"
히로의 말에, 소년의 눈이 가늘어진다.
"...모델건?"
"모델건. 무슨 이름이었더라, 아, 아틀라스였나?"
(아스트라M44 아르케부스 커스텀)
한니발이 입을 연다.
"그래그래, 그런 이름이었어"
침묵해버리는 소년을 살짝 보더니, 히로는 천천히 벨트에 꽂혀있던 아스트라M44를 뽑는다. 시킨대로 지면에 놓고 소년을 올려본다. 히로는 이 때, 그의 어깨에 올라가있던 까마귀가 어느샌가 사라진 사실을 눈치챘다.
"까마귀가 없어졌어어..."
소년은 작게 중얼거린 히로를 무시하며 시선을 총구에서 전혀 떼지 않은 채 아스트라M44에 손을 뻗는다.
"........."
하지만 손잡이에 손가락이 닿음과 동시에, 그는 금방 손을 떼버렸다. 그 때 일순간 소년이 눈썹을 찡그린 것처럼 보였지만, 히로가 눈치채기 전에 원래 위치로 돌아가버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지지 않는 편이 좋아, 스나이퍼. 조금 무거운 물건이라)
한니발이 히로의 팔꿈치에 이마를 대며 담담하게 말한다. 혹시 히로가 그 모습을 봤다면 '하루 씨 귀여워'라고 말하며 손을 뻗었겠지만, 히로는 그녀를 보지 못한 채, 팔꿈치에 전해지는 감촉만을 느낄 뿐이었다.
"...너는, 그 한니발인가"
(아마도, 네가 말하는 한니발이겠지)
한니발은 히로의 발치로 이동하더니, 장딴지에 머리를 댄다. 그걸 본 소년의 총구가 드디어 히로에게서 떨어졌다. 총을 코트 속에 넣은 그가 다시 시선을 히로에게 향하자, 그녀는 한니발을 만지려고 악전고투중이었다.
"으음, 어째서 하루 씨는 나를 만질 수 있는데, 나는 하루 씨를 만지지 못하는 걸까. 슬펀걸. ...하지만 이러고 있으니 하루 씨는 정말 귀엽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하루 씨에 대해 아는 것 같은데, 하루 씨의 지인이야?"
(...이제부터 지인이 되겠지)
한니발의 입이 묘한 형태로 뒤틀린다. 이게 이 고양이가 '웃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히로는 눈치채지 못했다.
"네가 본체고, 이 바보가 매개인가"
(아니, 그녀는 틀림없는 내 주인이다. ...내 주인이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하긴 내키지 않지만, 다소 나사가 풀려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
"...멍청한 초짜한테 화약을 쥐어주고 흡족해하다니 취미가 나쁘군, 혼을 먹는 고양이"
(바보나 초짜가 아니라면, 내 주인이 되어주질 않아서 말이야. 너같이 머리 좋은 프로는, 나에게 다가와주지 않고 말이지)
"너랑 네 주인이 어떻게 되던, 내 알 바 아니야. 하지만 무면허로 영역 침범을 하면 바보건 초짜건 놓칠 순 없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스나이퍼. 달로 돌아가지 못한 새끼고양이와 고양이에게 씌인 불쌍한 아이를 불쌍히 여겨주지 않겠나)
"...바보같군"
계속되는 한니발과 소년의 대화를, 히로도 듣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면허랑 바보랑 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듯 한데, 그 사이에 섞여있는 스텔스나 리졸버나 코팅같은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히로는 오른쪽 귀에서 왼쪽 귀로 흘려보낸다.
그런 둘의 회화를 곁에서 듣고있던 히로지만, 더 이상 아빠에게 받은 선물을 땅에 던져두기가 꺼려졌다.
"저기, 이거 주우면 손 밟을 꺼야?"
한니발과 대화하던 소년은, 대답하는 것도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마워"
고맙지도 뭣도 않지만, 아프지 않다는 건 좋은 일이다. 히로는 아스트라M44를 줍더니 약간 더러워진 총신을 손바닥으로 슥슥 털어내고 벨트에 꽂더니 코트로 가렸다.
"총을 손으로 닦지 마. 홀스터는 없나"
그 말은 한니발에게 한 말이라 생각한 히로는, 완전히 더러워진 양손을 어떡할까 생각했다. 손수건으로 닦으면 손수건이 더러워지고, 옷에 문질러 닦으면 옷이 더러워진다. 티슈는 있지만, 이제 3장밖에 남아있지 않다. 긴급 사태가 되면 곤란해지겠지.
그러자, 돌연 '긴급 사태'가 찾아왔다. 계속 차가운 지면에 앉아있던 탓인지, 한기가 발끝부터 히로의 전신을 강타한다.
"헷취"
소꿉친구가 '애기같은 재채기'라고 하는 재채기를 한 번 하더니, 히로는 되도록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 코를 감쌌다. 콧물이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았기에, 한 번 정도 더 쓸 수 있어보이는 티슈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더러워"
소년이 중얼거리는 말을 히로는 똑똑히 들었다.
"옷쨩한테 자주 듣는데. 하지만, 이 주변에 버리긴 싫잖아"
"전용 비닐 봉지라도 들고 다녀"
"머리 좋다. 다음부터 그렇게 할게... 아, 손이랑 발이 움직일 수 있게 됐어. 다행이다 다행이야"
젖은 흔적도 어느샌가 사라졌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대단한 상처는 아닌 모양이다. 팔꿈치나 정강이를 오른손으로 팡팡 두들겨봤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어보인다.
"으응, 아까 움직이지 못했는데 기분탓인가? ...아, 그치만 왼발은 아직도 이상한 느낌이야"
바짓자락을 걷어올려 장딴지를 매만지는 ㅣㅎ로를 내려보면서, 소년은 내뱉든 중얼거린다.
"...네 주인은 상당한 바보로군"
소년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지만, 목소리에 약간 깔보는 투가 섞였다.
(무지할 뿐이야. ...어느 의미론 죄가 많을 뿐이지. 하지만, 너한테 들러붙은 잔재도 꽤나 죄가 많아보이는걸. ...죄에 재판도 용서도 필요 없다곤 생각하지만, 네 마음에 조금이라도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나한테, 뭘 기대하나"
한니발도 히로도 안 보며, 소년은 시타 케이스를 고쳐멘다.
"어떤 호사가의 손을 건너왔는지 모르겠지만, 너의 악운도 여기서 끝이야. 이 바보도 영수를 끊고 끝이다. 그 뿐이야"
(아니지, 소년)
고양이의 눈동자가 미묘한 광채를 내뿜는다.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가느다란 초승달같은 눈동자가 가득 차올라 만월같은 원을 만든다.
(너는 보다 많은 혼을 달에 돌려보내기 위해, '울부짖는 늑대(하울링 울프)'에게조차 도전하려는 인간일텐데. 네 눈 앞에 있는 '악령의 눈'과 한 명의 바보는, 꽤나 이용하기 편하리라 생각한다만)
***
...바로 그렇군, 이라고 미시마 소우기는 생각했다. 이 혼을 먹는 고양이는 명백히 자신에게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 경험이 뒷받침하는 자신감, 고양이 따위에게 질까보냐하는 기개, 바보에 대한 멸시에서 생겨난 타산, 자신의 에테르가 줄어들지 않으리라는 안심감. 소우기의 마음속 움직임을, 이 교활한 고양이는 놓치지 않았다.
무서운 고양이다. 무심코 한 번 집어넣었던 리졸버M380에 손을 뻗을 뻔했다. 그리 하지 않았던 건, 소우기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우기의 특기는 라이플에 의한 중거리 또는 원거리 저격이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표적이 틈을 보일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리고, 한 발, 또는 두 발로 처리한다. 그게 '방황하는 양(스트레인지 쉽)'을 달로 돌려보내온 제 2종 영장 면허 소지자, 미시마 소우기의 스타일이다.
권총을 다루는 것도 나름대로 익숙해져 있지만, 숙련되기엔 아직 멀었다. 총을 뽑고 조준하는 사이, 고양이는 주인의 그림자로 숨어버리겠지. 이 고양이 빈틈이 없다. 언제든 주인을 방패로 삼고, 총구가 직접 자신에게 향해지지 않도록 한다. 설령 맞는다 하더라도, 9mmⅩ17 감장탄 아홉 발로는 이 고양이의 혼을 확산시키지 못한다. 그정도로 달에 돌려보낼 수 있었다면, 먼 옛날에 벌써 저승으로 갔겠지.
무사안일주의 녀석들, 원환 원리주의자,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호사가, 명성과 힘을 손쉽게 손에 넣으려 했던 동업자. 소우기는 많은 인간의 손을 거쳐왔던 이 고양이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 가게에 한니발이 존재한다고 소문으로 알고 있었지만, 만지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게 무슨 인과가 되어 이런 일이 되버렸을까.
"으앙ㅡ"
바보가 의미없이 목소리를 내며 왼발의 상태를 확인한다. 고양이가 표피를 치료해 에테르의 유출은 멈춰있었지만, 선골이 약간 부러져버린 모양이다. 후유증은 없겠지만, 원래대로 돌아가기까지 일주일은 걸리겠지. 그 사이 잡다한 사념이 선골에 끼면 귀찮아지겠지만, 가해자 입장인 소우기는 피해자인 이 바보에 대해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으응, 역시 이상한 느낌인걸"
바보가 맹렬하게 소우기가 쐈던 곳을 문지른다. 이 바보에게는 자신의 상ㅇ처가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조금 더 영수의 흐름이 좋고 육식(六識)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녀의 눈에는 선홍색을 한 자신의 선골 표면이 1.5밀리정도 갈라진 모습이 보였겠지.
아름다운 선골이었다. 선명한 그 붉은 뼈의 포면에는 옛날에 난 상처같은 것들이 몇갠가 있다. 그런 자국은 대체로 검게 변색되기 마련인데, 바보의 상처자국은 그조차 건강하다는 듯이 빨갛게 빛나고 있다. 선골 속을 달리는 혼의 혈수(에테르)가, 때때로 표면에서 스며나올만큼 흘러넘치고 있으며, 그 손가락 끝에 넘실거리고 있다.
소우기는 한 번 눈을 감고, 해방시켰던 육식을 수습했다. 너무 끔찍한 선골은 보지 못하겠지만, 그 반대도 많은 사람과 '양'을 봐왔던 소우기에게는 괴로운 것이었다.
그저 영수가 흐르는 것만으로, 그녀가 자신과 동류일 리 없다. 뼈 안에 있는 골수, 골수 안을 흐르는 혼의 혈수, 그 에테르의 피막인 선골. 골수와 선골을 비교해보면, 보통 사람은 골수가 두껍다. 보편적으로는 골수 안에 선골이 있다.
하지만, 이 바보는 선골이 더 두껍다. 44마그넘을 한 손으로 쏘는 무식한 짓을 했던 주제에, 팔에 반동이 거의 없었다. 살짝 뒤로 물러났을 뿐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던 걸 보아선, 팔에 반동도 그리 아프다고 생각하진 않은가보다. 선골이 말도 안될만큼 튼튼하다.
그리고, 선골 속에 흐르는 에테르의 밀도가 꽤나 높다. 이 바보는 군데군데 에테르가 새어나오고 있지만, 그걸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응축된 밀도를 갖고있다. 흘러나간 에테르가 공기중에 확산되지 않고, 육체나 뼈에 달라붙어있는 점이 그 증거다. 에테르가 옅은 사람은, 선골이 조금 상처입은 것만으로 물처럼 혼이 빠져나가 죽어버리고 만다.
영수의 흐름, 선골의 투터움, 에테르의 밀도.
이 바보는, 소질만큼은 두려울 정도로 넘치고있다.
혼을 먹는 고양이에게 아무리 먹혀도 줄어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만큼
게다가, 아스트라M44 아르케부스 커스텀과의 상성도 꽤나 좋아보인다. 바보가 트리거를 당겼을 때의 머즐플래시는, 이 구경의 총탄 치고는 꽤나 작았다. 총알 자체와의 동조률은 낮다. 다른 사람이 마테리얼라이즈한 총알이라면 당연하다. 아무리 당사자의 에테르가 훌륭하더라도, 총알이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해머가 총알에 올바른 힘을 전달해주지 않는다. 잘못하면 총알이 1미터도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바보다 쏘았던 총알은 충분한 속도로 날아가, 핵을 관통하고 '양'을 확산시켰다. 다소 동조률이 낮더라도, 이 바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조준도 하지 않고 처음으로 쏜 탄이, 핵을 뚫을 확률은 한없이 0에 가깝다. 말도 안 되는 강운의 소유자다
지금까지 몇 명의 동업자를 봐왔으나, 그 중에도 이만큼 뛰어난 인재는 없었다. 확실히 고양이가 말하는대로, 잘 이용하면 꽤 이익을 챙길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하지만 이 바보에게는 부족한 점도 많다. 영수의 흐름이 충분하지 않기에, 육식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 아르케부스가 무엇을 위해 이 세계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걸 사용하는 자의 마음가짐을 전혀 모른다는 점. 아르케부스의 취급 전반에 관한 기술과 지식이 없다는 점. 부속품을 살 재력이 없어보인다는 점.
이 이유들은 시간과 근성과 돈을 들이면 어떻게든 될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지 못하는 점이 두가지 있다.
첫 번째는, 이 한니발의 존재가 항상 들러붙어 있는다는 점. 한니발 자체가 악의 덩어리는 결코 아니다. 민폐같은 주장을 소리높여 외치는 원환 원리주의자도 아니거니와, 사람의 혼을 갉아먹고 어지럽히는 '울부짖는 사나운 늑대'도 아니다.
그저 주인의 혼에 기생해, 주인을 쇠약사시킬 뿐이다. 웬만큼의 에테르를 가지지 못한 자는 금방 죽어버린다. 이렇게 한니발이 육식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실체를 갖고 활동하는 건, 바보의 에테르에 현재진행형으로 기생하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니발이 지겨울만큼 아직도 갈망받는 원인이기도 한 '악령의 눈'. 소우기 자신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므로, 어찌되던 상관 없다. 난처한 건, 이 바보 뿐이다.
뭐 이 바보가 올바르게 그 힘을 사용하면, 한니발조차도 문제되지 않는 강인한 혼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기저기, 하루 씨. 홀스터가 말이었더라 소였더라"
(...네가 말하는 건 홀스타인 아닐까? 홀스터는 총을 휴대하는 케이스야. 어깨나 허리에 걸치는 게 일반적이지. 너처럼 벨트에 꽂아 휴대하는 건 좀 다르지)
"흐으음... 하지만 벨트에 꽂는 방법 이외에는 어떻게 할 수 없는걸. 손에 계속 들고있으면 무겁고말야, 이웃 주민들이 '또 에토우네 큰딸이 이상한 짓을 한다'라고 말해서 후쨩이 화낼거고"
바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아스트라M44를 뽑았다. 손의 크기는 나이에 걸맞아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손에 꽉 찰 터인 손잡이는 제대로 쥐고 있다.
"그치만, 하루 씨. 이거 모델건 아니야? 무슨 소리가 나던데, 공기총? 그런데 공기총은 공기를 쏘는 총이던가?"
(모델건도 아니고, 공기총도 아니야. 물론 진짜 총도 아니지. 어떤 의미로는 진짜 총 이상의 살상력을 가진 총, 아르케부스다)
"아르케부스... 데신세이만큼 이상한 이름이네"
바보다. 노답 바보다. 눈앞의 현실에 대처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놀라고 당황하며 사정을 알법한 사람에게 설명을 원할 터이다. 하지만, 이 바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한니발이 말한 대로 총을 쏘고, 지인에게 일어난 괴이현상을 시원하게 받아들이고, 본적없는 타인에게 쏘이고, 그저 태연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 굉장히 다루기 쉬운 녀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시마 소우기는 결심했다.
악령을 끌어들이고 사람의 혼을 먹는 한니발과, 그 한니발에게 씌인 최상급 인재에게 '투자'를 하자고.
선의도 동정도 아니다. 이 바보가 한니발을 능가하는 혼백을 가졌다면 죽을 일도 없고, 죽더라도 소우기에게는 상관 없다. 돈과 근성을 투자해 면허를 따게 한 다음 어떻게든 되겠지.
고양이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냥 바보로 살아갔을텐데.
그 때. 그 가게를 모델건 가게라고 착각한 그 남자가 아스트라를 사지 않았더라면. 점주가 아스트라를 팔지 않았더라면.
...혹시, 자신이 계속 그곳에 남아있었다면, 점주는 분명 아스트라를 팔지 않았겠지. 초짜에게 아르케부스를 파는 게 중죄는 아니지만 일단 법률에 걸린다.
자신이 '혹시'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에, 소우기는 내심 웃고말았다. 혹시 이랬더라면. 그 때 그랬더라면. 그런 일을 일일이 후회한다면, 에테르가 아무리 있어도 부족할 것이다.
"고양이"
말을 거니, 한니발은 입을 크게 비틀며 웃었다. 그 웃는 고양이를, 바보가 쓰다듬으려고 헛된 노력을 계속하고있다.
"어이 바보"
"네에, 바보입니다. ...하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 바보라고 불리다니 슬픈걸. 에토우 히로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가능하면 그걸로 불러줘. 덧붙여 아빠나 엄마나 옷쨩은 히로라고 불러. 그런데, 네 이름은?"
전혀 슬프다는 얼굴을 하지 않고, 헤실헤실 웃는 얼굴의 그 바보같은 낯짝에 울화통이 치밀어오르면서도, 소우기는 조용히 이름을 댄다.
"미시마"
"그럼 밋쨩이네"
"미시마라고 불러"
"시시해애..."
소우기는 리졸버를 뽑아 다시 히로의 미간에 겨눈다.
"시덥잖은 호칭으로 부르면 영수를 끊어버리겠어"
"그건 아파?"
정말로 시험해볼까. 입술을 물어뜯는 소우기였으나, 한니발에게 향해진 시선을 받고,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아있는 사람한테 열받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
***
소우기는 자신의 역량이 어느정도인지 올바르게 이해하고있다. 업계에서는 중견보다 살짝 상위랭크에 위치해있고, 동년배 동업자 중 탑클래스라에 있다는 자신이 있다. 뭐 일본에는 동년배 동업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 그리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이제 다른 사람에게 배울 필요는 없다, 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것만 가르치고, 다음엔 '남쪽' 어딘가에 밀어넣어 알아서 크라고 한다. 나머지는 그 경험을 일에 살려 현장에서 성장한다. 그게 미시마 가문의 룰이다.
그렇게 단련됐기에 미시마 일가는 신참이지만 신뢰와 고명을 쟁취했다. 하지만, 미시마의 룰을 이 에토우 히로라는 바보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돈과 시간이 들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리스크가 너무 높다. 경험을 쌓기 전에 죽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모처럼 투자하려고 결심했으니, 적어도 투자금액을 회수하기까지 죽어선 곤란하다.
우선 첫걸음의 첫걸음부터 설명해야한다. 그렇게 생각한 소우기였으나, 무엇부터 말해야 좋을지 잠시 망설였다. 가르치는 내용은 제대로 몸에 새겨져있지만, 가르치는 방법까지는 기억하고있지 않다.
약간 망설이며, 소우기가 히로에게 건넨 말은.
***
"너,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어?"
나름 장사가 되는 패스트푸드점 구석에서 앞에 놓인 커피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소우기가 히로에게 말한다. 히로는 테이블의 안쪽에 앉아있는 한니발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왼손은 수프 그릇을 잡고 있다.
"명계"
히로는 한마디로 대답한다. 이 사람은 뭘 묻고있는 걸까. 명계 이외에 어디에, 죽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있다는 말인가.
할아버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죽음으로 화장한 할머니의 얼굴은 무서울만큼 새하얗고, 입술만 빨갰다. 장례를 치르던 날, 아빠가 '이제 자렴'이라고 하는 말도 듣지 않고 계속 할머니 옆에 앉아 향이 끊기지 않게끔 했다. 히로의 뇌리에 깊숙히 새겨진 오래된 기억.
어스푸름한 방 안에서, 마물을 끌어안고 죽은 자와 하룻밤을 지낸 기억.
고양이는 마물이다, 라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고양이가 죽은 사람을 넘나들면 시체가 일어난다. 고양이가 뛰다니지 못하게 하며, 그리고 명계로 가는 여정에 고난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죽은 사람 위에는 단도를 둘 것. '우리집엔 단도가 없으니까 식칼을 대신 놓아야 하나'라고 히로는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제대로 단도를 가지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준비해준 모양이다.
어째서 단도를 두면 고양이가 넘어다니지 못하는가, 할머니가 살아있었을 때 물어보았지만 이해가 되는 답을 듣지는 못했던 기억이 든다.
모르겠기에, 시험해보고 싶었다.
이 단도를 치우고, 고양이를 건너게 해보면, 할머니가 살아 돌아올까.
짧아진 향에서 시선을 할머니에게 돌려다본 히로는, 곁에 있던 고양이를 안아올렸다.
'히로, 만약 내가 죽더라도 고양이가 관을 넘게 해선 안 된단다. 죽은 사람을 깨워선 안 돼. 잠든채로 두려무나. 그런 짓을 하면 화낼테니까'
...그 말이 없었더라면, 분명 강제로 고양이가 관을 넘게 했겠지. 할머니는 평소엔 온화하지만 한 번 화내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광폭했다. 대처할 때 아빠나 엄마는 애먹었지만, 히로는 태연했다. 그래도 화내지 않도록 노력했던 건 '화내면 수명이 줄어든다'라는 말버릇 때문이었다.
화를 내게 하지 않았다면, 할머니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는데.
(...너 왜 울고 그래?)
갑자기 한니발이 말을 걸어, 히로는 자기 생각에서 돌아왔다.
"에, 안 우는데..."
그렇게 대답하다가, 자신의 볼에 따듯한 무언가가 흐른다고 깨달았다. 시계는 어렴풋이 흐릿하고, 코끝이 뜨겁다.
"아, 진짜다. 왜 울고 있지"
눈물을 닦으려고 손을 올렸을 때, 그저 쌀쌀한 표정으로 보고있던 소년이 소리를 낸다.
"얼굴은 몰라도, 눈은 닦지 마. 시력 떨어진다"
현실을 지각하는 오감과, 영적인 세계를 지각하는 육식. 양쪽에 밀접한 관계는 없다는 반면, '오감이 둔하면 육식도 둔하다'고 말하는 자도 많다. 어느쪽이 옳은지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소우기는 후자의 신봉자였다.
"그렇구나. 그건 큰일인걸"
시력이 높다는 건 히로가 내세울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점이었다. 그 장점이 줄어드는 건 살짝 슬프다. 그래서 그녀는 순순히 눈을 닦는 걸 그만두고 볼만 테이블 위에 있는 냅킨으로 닦았다.
"명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눈을 계속 깜빡이던 히로에게 한 번 눈을 돌리더니, 소우기는 벽에 걸쳐둔 기타케이스를 만진다.
"글쎄, 어딜까? 지면 아래나 하늘 위 중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히로가 읽은 동화나 신화에서는 대부분 그 둘 중 하나였다. 히로는 천국과 지옥을 별로 믿고 싶지는 않다. 천국은 그나마 낫지만, 지옥은 싫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은 한 세트같으니까, 천국이 있다면 지옥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명계'라는 말로 묶으면 되지 않을까.
"육체는 땅으로, 혼은 달로 돌아가"
"흐으음. 그렇구나. 몰랐어"
컵에 들어있는 수프를 홀짝거리던 히로가 흔쾌히 대답하자, 소우기는 울화통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부정도 하지 않고 의문도 품지 않고, 그저 받아들인다. 이녀석에게 '화성에는 토끼가 살고 있는에 매일 밤마다 모노리스를 중심으로 포크댄스를 춘다'고 말해도, '그렇구나, 몰랐어'라고 대답할 것만같다.
나이 치고는 침착하다는 자신이 있지만, 아무래도 아니었나보다. 마음속에서 자신을 비웃고 있자니, 한니발이 왠지 자신에게 동정하는 눈을 보내고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루기 어렵나?)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이 바보를 이해시켜봐"
추레한 새끼고양이는, 히로에게 쓰담쓰담당하면서 목을 갸웃한다.
(안타깝지만, 난 이 나라를 잘 몰라. 그렇다기보다 북반구로 돌아온 게 오랜만이지. 여긴 여러가지로 법제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군)
...어째 이 고양이도 여러가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보다. 곤란한 녀석들과 얽혀버리고 말았다. 이미 타버린 배는, 지금이라도 가라앉을 것같은 배였던 모양이다. 재료가 진흙이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무튼 히로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한니발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고있다.
이렇게 된다면 이해하건 못하건, 일방적으로 설명해주지. 자신이 반쯤 빡돌은 상태라는 것을 소우기는 자각했지만, 이젠 '될대로 대라'는 심정이었다.
"...혼은 달로 돌아가. 하지만, 개중엔 달로 돌아가지 못한 혼도 있어"
"유령?"
"그렇게 불러도 좋겠지. 육체가 죽으면 선골이 녹아 에테르가 유출되. 육체에서 떨어져나온 에테르는, 이미 혼이라 부를 수 없어. 에테르의 잔해를 영적물질이라고 부르지. 보통은 그대로 놓아두면 되. 자연히 달로 돌아가거든. 하지만, 그 영적물질 중에 혼의 혈수가 남아있는데다가 이 세상에 집착이 있을 경우, 곤란해지지. 그 에테르를 핵으로써 영적물질은 그 존재를 키워가. 이게 일반적으로 유령이라 불리우지. 우리들은 방황하는 양ㅡ스트레인지 쉽이라고 불러. 양의 풍토병과 같은 이름이지만, 딱히 관계는 없어"
단번에 여기까지 말하고, 소우기는 한 번 말을 끊고 히로의 반응을 본다. ...변함없이 머엉하니 있다고밖엔 보이지 않는데, 약간은 이해하려고 하는 걸까. 시간이 꽤 걸렸기에 소우기는 지금까지 손도 대지 않던 커피를 천천히 잡고 한 모금 마신다.
"아"
뭔가 묻고 싶은 것이라도 생긴 걸까. 그렇게 생각해서 소우기는 커피에서 입을 뗐으나, 히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가 기대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설탕이나 밀크를 넣지 않은 커피를 잘 마시는구나. 어린데도"
그게 뭐 어쨌다고.
"너는, 내가 지금 한 말이 어떤 말인지 알겠어?"
히로는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한니발을 본다. 테이블 위에 웅크린 고양이는 한 번 주인의 시선을 바라보더니, 금방 얼굴을 돌려버린다.
(사람이 하는 말은 제대로 듣는 게 좋아.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스스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바보일 뿐이라구?)
"뭐 바보는 죽어도 낫지 않는다는 말고 있잖아. 하지만 바보도 바보 나름대로 노력하라고 후쨩이 언제나 말하니까, 일단 노력은 한다구. ...어음, 미시마 씨가 하고 싶은 말은, 유령을 양이라고 부르는 걸라나?"
자신의 의도가 절반도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소우기는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굳이 표정에 드러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심정을 읽히게 하지 않는다. 그건 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바보는 둘째치고 고양이는 소우기가 화났다는 걸 눈치챈 듯하다.
(...너도 의외로 인내심이 부족하군. 이정도로 질려버릴 정도라면, 저격수로써 크지 못한다)
"내 인내심 부족보다는, 이 바보의 사고능력 부족을 탓해"
(그녀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너에게 기대하는 편이 그나마 희망이 있다구)
"그래ㅡ 나에게 뭔가를 기대할 정도라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고양이 손은 의외로 도움된다니까. 하루 씨 손은 투명해서 약간 아쉽지만"
"...양은, 민폐덩어리야. 살아있는 인간의 에테르에 달라붙으려 하니까"
이대로라면 끝이 없다. 소우기는 일단 당초의 예정대로, 설명을 계속하기로 한다.
"양이 달라붙으면 육체의 에테르 밸런스 붕괴로 이어지고, 신체에 악영향을 끼치지. 가벼운 경우엔 두통이나 복통, 보통은 토악질, 심하면 죽음에 이르지. 이게 곤란한 일이라는 사실은 너라도 알겠지"
자신이 어려운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소우기는 생각한다. 어려울 리 없다, 라고 생각한다. 그저 육체만 있는 인간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겠지만.
사람은 육체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지만, 육체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혼은 그저 그곳에서 흐르기만 해도 된다.
보통 사람에게 에테르의 구성을 설명하면, 대체로 '개구라네'라고 부정한다. 보이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에 대해 소우기는 이해를 원하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아, 양이랑 사람은 상성이 좋지 않구나. 괴담같은 데서 나오잖아? 원령의 살인이라던가... 아아!"
(왜그래, 갑자기 큰 소리로)
"원령의 살인이랑 트리콜로르*랑 비슷하구나 해서. 근데 트리콜로르가 뭐더라? 무슨 원양어선이었던가"
* 원문은 토리코로사레루랑 토리코로ㅡ루 의역해볼랬는데 포기함ㅎ
(...그건 트롤링*이야)
* 롤에서 하는 트롤링이 아니라 트롤선을 사용한 어업 일종이라고 함ㅎ
그녀는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영수가 흐른다고는 하나 육식이 닫혀있는 지금, 그녀는 양을 볼 수도 에테르의 존재를 느낄 수도 없다. 소질은 있으나, 아직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소우기가 하는 말에 의문도 품지 않고 수용한다.
에토우 히로라는 인간은, 정말로 이대로 괜찮을까.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을, 소우기는 금방 떨쳐낸다. 그녀가 어리석어서 어떻게 되건 자신과는 상관이 없으니까.
"양이 있으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곤란하다는 사실은 알겠어?"
"응, 아마도. 하지만 왜 유령을 양이라고 부르는데?"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이지"
소우기는 바로 대답하고 이야기를 계속하려 했으나, 히로는 컵을 물면서 의문을 제기한다.
"개미나 벌은 안 돼?"
의문을 갖는 건 상관없지만, 이야기에 관계 없는 의문을 가져도 곤란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잖아"
자신이 선택했다곤 하지만, 정말 어이없는 녀석에게 엮인 모양이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고양이와 아스트라는 봉인하고, 바보는 영수를 처치. 가게의 영감탱이한테는 당분간 영업 정지. 그걸 관청에 전달하면 자신은 아무 일 없이 언제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네가 여러모로 싫다는 건 잘 알겠어. 나도 다소 곤란하니까)
소우기의 마음속을 읽은 것인지, 한니발이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남일처럼 말하지 마"
(남일이 아니지. 나와 그녀는 이미 운명공동체니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차피 다음에 기생할 사람을 찾을 주제에.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말로는 하지 않는다. 혹시 바보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고양이만 살아남으면, 그 때는 즉시 고양이를 처분해야한다. 피해가 이 이상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느 의미, 에토우 히로는 이미 한니발의 피해자지만, 소우기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 바보에게는 동정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상대가 어떤 인간이라도 동정하지 않지만.
한니발과 소우기의 사고가 교차하던 중, 테이블에 엎어지면서 수프를 마시던 히로가 '으앙ㅡ'라며 소리를 낸다.
"양, 양... 유령은 양... 으음...?"
몇 번인가 얼굴을 굴리더니, 히로는 몸을 일으켜 소우기를 본다.
"저기저기 미시마 씨"
"...왜"
또 쓸데없는 질문인가. 그렇게 생각한 소우기였지만.
"아까 철교 위에 양이 있었던 걸까"
드디어. 드디어 이 바보치고는 꽤나 제대로 된 질문이 나왔다. 후우, 하고 크게 한숨을 쉰 소우기는, 자신이 꽤나 초조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바보 상대로 자신은 뭘 긴장한 걸까.
"응, 있었어. 8월달에 전차가 통과할 때 몸을 던진 녀석이 있지. 그게 죽어서, 양이 되었지"
"8월달에 죽었는데 왜 이제와서 나타난 걸까"
"죽은 직후에 바로 양이 되진 않아. 영적물질이 결합해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반대로, 사후 바로 양이 되는 혼도 있지만"
"양도 여러모로 큰일이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이 훨씬 큰일이야"
드디어, 본제로 다가갔다. 이제부터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더욱 중요한 이야기다. 얼마나 손해보지 않고 회수해서 이 바보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소우기는 한니발을 힐끔 보고는 히로를 본다.
...변함없이 수프 컵을 만지작거리면서 망양하는 표정으로 소우기를 보고있다. 가끔 한니발을 보고 만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만지려 하면서 놀고있는 이 바보에게, 확실하게 가르쳐줘야만 한다.
"양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아"
"응"
"하지만, 보이는 인간도 있어. 난 볼 수 있지. 넌 아직 잘 보지 못하는 듯하지만, 곧 볼 수 있게 될거야"
"그래?"
"그래. 양은 가만히 놔두면 사람에게 해를 끼쳐. 그렇게 되기 전에, 달로 돌려보내줘야만 하지"
"성불시켜준다는 거구나"
"그런 표현도 좋지. 하지만, 보통 방법으로는 성불하지 못해"
"스님을 부르거나 하면 안 될까?"
"그건 육체를 땅으로 돌려보내는 의식의 일환일 뿐이야. 보통은 그거면 되지만, 양에게는 양의 장례를 해야할 필요가 있어"
"양 전용 장례?"
"그래. 그걸 할 수 있는 건 소울 언더 테이커ㅡ혼의 장의사 뿐이야"
***
또 어려운 말이 나왔다. 히로는, 소우기가 말하는 이야기를 나름대로 정리하기 위해 수프의 컵을 물었다. 내용물은 벌써 다 먹어서 비어있는 종이컵에는, 히로의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물어뜯지 마, 보기 안 좋아"
"으앙ㅡ"
"그래서, 내가 한 말은 얼마나 이해했지?"
마치 후루야 선생님처럼 말한다. 잔뜩잔뜩 설교한 다음, 자주 '선생님이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 말해봐라'던가 '선생님이 한 말을 이해했으면, 그걸 정리해서 설명해봐'라고 한다.
그리고 히로가 생각하는 사이에 '너는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듣지 않는구나'라고 하면서 출석부로 때린다. 교과서도 있고 프린트도 있고 사전도 있지만, 후루야 선생님은 결코 맨손으로 때리진 않는다. 그 이유를 히로는 손으로 때리면 손이 아프니까 그렇구나 하고 생각한다.
사람이 아프다고 생각할 만큼 세게 때리면, 때린 사람도 아프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맞고 다니는 히로는, 셀 수 있을 정도의 타인을 때리고, 차고, 박치기한 적이 있다. 그때는 손의 피부가 벗겨지고, 자기 머리통이 깨졌다. 상대방 머리통도 깨졌지만.
그때는 아팠다
(...히로,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어?)
한니발의 목소리에 히로는 아픈 기억을 그만뒀다.
"어ㅡ 머리가 깨졌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
소우기의 언짢은 표정에서 눈썹이 꿈틀거린다. 화내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고, 이 경우 자신이 화내게 한 걸까 라고 눈치챘다. 화내게 하고 싶은 건 아닌데, 아무래도 자신은 사람을 화내게 하나보다.
(바보라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 내가 바보인채로 계ㅡ속 바보인 사실이 안 되는 걸까나)
원인은 알고있다.. 하지만, 자신이 바보가 아니게 되는 방법을 모르겠다. 바보는 죽어도 낫지 않는다고 하지만, 바보는 죽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고도 한다. 대체 어느게 맞는 말일까.
죽으면 바보는 낫는 걸까, 아니면 죽어도 바보인 채일까.
"...내가 너에게 한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말해봐"
"음........"
뭐어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은 확정이니까, 지금은 이 사람의 물음에 열심히 대답하보자. 소우기가 한 이야기는 어려운 단어가 잔뜩 나왔지만, 나름대로 해석해도 괜찮은가보다. 히로는 후두부를 긁적이며 생각했던 말을 시작한다.
"...어... 명계는 달에 있고, 죽으면 그리로 가야하는데, 가끔 길잃은 유령이 양이고, 그 양을 놔두면 명계의 나쁜 사람이 나오니까, 양 전용 장례식을 해야하고, 그 장의사가 소... 소울..."
"소울 언더 테이커다... 에테르나 선골에 대한 말이 빠졌지만, 뭐 바보치고는 이해한 모양이군"
화내지 않았다.
자신이 열심히 해도 대체로 결과가 안 좋았던 적이 많다. 화내지 않는 건 부모님과 아케미 뿐이었다. 딱히 상관 없지만.
하지만 만나고 얼마 되지 않은 이 사람은 히로를 바보라고 부르고 아프게 했지만, 열심히 했더니 화내지 않고 조금은 인정해주었다.
그건, 히로에게 있어서 굉장히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히로가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치채기 전에, 소우기는 그녀를 혼란시키는 말을 했다.
"너는 소울 언더 테이커가 되야 해"
"...............오잉?"
빙글빙글 돌리던 컵을 멈추고, 히로는 소우기를 바라본다.
소울 언더 테이커. 혼의 장의사. 현세를 떠도는 혼백을 명계로 돌려보내는 자.
그런 사람이 되라, 라고 소우기는 말한 듯 하다. 히로가 그걸 이해하는데는 13초가 필요했다.
"...왜?"
"이유는 몇가지 있어. 네가 아르케부스를 가졌다는 것. 영수가 흐른다는 것. 그리고 소질이 있는 것이지"
전부 사실이다. 단, 전하지 않은 말이 몇 있다. 그걸 소우기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으으응... 아르케부스라는 건 내가 아빠한테 받은 이 모델건이지"
"모델건이 아니야, 아르케부스다. 총에 에테르 코팅을 한 대 영적물질 전용 총기의 총칭이지"
"하아... 즉, 양을 명계로 보내기 위한 총... 이려나?"
바보치고는 흡입력이 빠르다. 무심코 그렇게 말하고 싶어진 소우기였으나, 생각해보니 딱히 칭찬할 정도는 아니군, 이라며 정정한다. 지금까지가 이모양이었으므로 세세한 일에도 감탄해버리게 됐나보다. 그렇게 자신을 이해시키고, 소우기는 다시 남아있는 식은 커피를 마신다.
"그렇게 생각하면 돼. 아까 네가 쏜 게 양이야"
"...그래?"
(그래, 네가 총구를 향한 곳에 양이 있었지. 네가 쏜 총알에 의해 무해한 영적물질로 변했어. 그걸로 그는 달에 돌아갈 수 있었지)
허리에 꽂아둔 아스트라를 매만지던 히로의 무릎 위에 한니발이 뛰어든다.
"그건 잘한 일일까?"
(그래, 달에 돌아가지 못한 혼은 굉장히 괴롭고 슬퍼해. 현세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방황하는 양들에게도 소울 언더 테이커라는 사람이 필요해)
금빛 눈동자로 히로를 올려보면서, 한니발은 살짝 그녀의 오른손에 작은 앞발을 내민다.
(너에게는 재능이 있어. 네가 올바르게 재능을 펼치면, 많은 방황하는 양을 달로 돌려보낼 수 있어. 그건 굉장히 좋은 일이지)
"좋은 일이구나... 좋은 일은 좋은 일이야"
왠지 즐겁다는 듯이 한니발에게 대답하는 히로를, 소우기는 약간 불쌍하게 느꼈다. 좋은 일. 확실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좋은 일을 성립하기 위해, 소울 언더 테이커는 자신의 목숨을 깎아야 한다. 그뿐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양을 돌려보내기 전에 스스로 양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에토우 히로는 한니발에 씌여있다. 그냥 있어도 한니발이라는 악령에게 혼을 갉아먹히는데, 거기다 에테르를 깎아내야만 하는 소울 언더 테이커의 일을 시키는 짓은, 구멍뚫린 보트를 바다에 떠밀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정말로 약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 소울 언더 테이커란, 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거야?"
내려다보며 말하는 히로를, 한니발은 고개를 기울이며 올려본다.
(...글쎄, 어떨까. 남반구에서는 아르케부스만 갖고있으면 됐지만, 이쪽은 잘 모르겠군. 저기 미시마 씨가 더 자세히 알고있지 않을까)
"호옹이, 그래?"
얼굴을 올려 긴장감없이 웃는 얼굴을 향해오는 히로에게, 소우기는 아까까지 느꼈던 마음의 아픔을 잊고 말았다. 걱정 없이 웃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살아있기만 하는 그녀에게. 자신이 평생직업으로 결정했던 혼의 장의사를 단순한 생각으로 되려하는 에토우 히로에게.
어째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소우기는 봐를 억누르듯이, 기타 케이스를 쥐고 일어선다.
"넌, 소울 언더 테이커가 될 거야?"
무표정이었던 소우기의 얼굴에, 처음으로 히로는 감정다운 감정을 발견했다. 화내고, 초조해하고, 그래도 그저 자신을 꾸짖으며 깔보는 사람과는 약간 다르다.
약간 옷쨩이랑 닮은 것같다. 하지만 히로가 그렇게 생각하려 한 순간, 소우기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버렸다. 그래서 히로는 그와 소꿉친구가 닮았다는 생각을 금방 잊어버렸다.
"되라고 한 건 미시마 씨라고 기억하는데"
"내 말이나 고양이의 말은 상관없어. 네가 될지 말지 묻고있는 거야"
그 물음에 히로는 간단히 대답한다.
"응, 될게.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 없는 건 괴로운걸"
길을 잃고 잃어서, 자신이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면, 괴롭다.
좋은 일이 가능하다면 좋은 일을 하고 싶다.
히로의 대답은, 너무나도 단순한 생각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그건 '선의'에 가깝다.
그 사실에 소우기는 굉장히 화가 났다.
굉장히 부럽다고 생각했다.
***
나쁜 일을 하려했던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자기 나름대로는 좋은 일을 했을 뿐이다. 딸의 생일 선물에 곤란해하는 아버지에게, 싼값으로 귀찮은 녀석을 들려보낸다. 아버지는 기뻐하고 자신은 약간의 수입과 위험물 처리까지 가능했다.
"...헤에,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었다니 몰랐어. 겉보기에는 낡았는데 안쪽은 이렇게 깨끗하다니"
(히로, 유리에 달라붙어서 만지면 안 돼. 지문이 남는다구. 청소하는 사람을 생각해야지)
"그렇구나... 아, 장갑을 끼면 되지 않을까"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즐겁다는 듯이 유리 케이스를 구경하는 여자아이의 어깨 위에는, 약간 지저분한 새끼고양이가 올라타있었다. 저게 바로 '혼을 갉아먹는 고양이' 한니발. 겉모습은 그냥 하이 파밀리아지만, 주인에게 죽음을 불러오는 '악령의 눈'.
"...정말로 보게 될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스스로 뿌린 씨앗이야"
아르케부스 전문점으로써 여기서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해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마가키 코우에이 58세, 분해도 이렇게 분할 수가 없다. 이마가키는, 무서운 눈초리로 앞에 서있는 분노의 표정을 한 소년을 본다. 그는 좋은 수입원이지만, 그만큼 여러가지로 귀찮은 주문을 한다. 이 미시마 소년이 '바로 가게를 닫아라'라고 전화했을 때는 무슨 개소린가 했는데, 그가 데려온 여자아이를 보고 대략 사정을 알았다.
...이해는 하겠지만.
"그런 물건을 팔아버린 게 나빠. 집에 처박아놓고 장식이라도 해두던가, 협회에 보내는 편이 나았어"
"...하지만 협회는 처치비를 받잖은가. 비싸다구. 여기 두면 흉조가 들 것 같고"
"그럼 처음부터 인수하지 말던가"
"...아니, 그치만, 셔터 열고 갑자기 떠밀었던걸... 두고 간 녀석, 금방 도망쳐버렸고..."
볼품없긴. 어째서 자기 자식보다 연하의 꼬맹이한테 '그치만'이나 '던걸'하는 말을 구사하며 변명해야 하는가.
"아무튼, 책임을 져야겠어. 저놈의 홀스터, 글로브, 매그넘 카트리지랑 핸드 로딩 세트 내놔"
"...그렇게나... 좀 봐달라구"
"사실은 클리닝 세트랑 퀵로더, 예비 탄알에 면허 신청 비용도 뜯을 생각이었어. 영업정지보단 낫잖아"
너도 이 가게에 한니발이 씌인 아르케부스가 있다고 알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주제에.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소우기는 새로운 한니발의 주인ㅡ에토우 히로에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신에게 기도라도 해야하나)
그녀의 행운을. 얼핏 보기에 소재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최상급 에테르를 가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단련만 한다면 훌륭한 장의사로 이름을 날릴지도 모른다.
단련이 끝나기까지 살아있다면 말이지만.
그런 식으로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히로는 이리저리 가게에 장식된 총기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고있다.
"와아, 모델건이 한가득이네... 아차, 모델건이 아니었지, 어... 아르... 아르카토라?"
(아르케부스야... 뭔 단어냐 그건...)
한니발은 히로 어깨에서 내려와 케이스 위에 기댄다.
"좋겠다아, 하루 씨. 나는 유리 케이스에 닿으면 안 된다고 했으면서, 자기는 닿을 수 있다니"
(나한텐 지장이 없고 만져도 더러워지지 않는걸)
"발바닥살은 있잖아"
(그런 문제가...)
"바보, 오른손잡이냐?"
히로와 한니발의 대화에, 카운터 앞에 있던 소우기가 끼어든다.
"양손잡이야ㅡ 내가 자랑할 수 있는 장점 중 하나지"
처음엔 그냥 왼손잡이였지만, 엄마가 오른손잡이로 교정해주었다. 세상이 오른손잡이 천지인 이상, 그게 이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부모님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쪽은 모처럼 왼손자바이니까, 라는 단순한 이유로 히로에게 왼손도 쓰라고 했다.
그런 부모의 가르침을 공평하게 지킨 결과, 젓가락질은 물론 글자쓰기도 양손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적은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자랑스럽게 양손을 펼쳐올린 히로에게, 소우기는 감명을 받았다는 표정도 않고 벽에 걸린 시계를 가르켰다.
"저 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르켜봐"
"응"
딱히 의문도 갖지 않고, 히로는 왼손으로 가르킨다.
"왼눈을 감아봐. 네 손가락이 시계를 가르키고 있나?"
"응, 그렇게 보여ㅡ"
"다음은, 왼눈을 뜨고 오른눈을 감아봐. 시계를 가르키고 있나?"
"...으으음, 안 보여"
"네가 주로 쓰는 손은 왼손이지만, 눈은 오른눈인 모양이군. 고양이, 넌 어떻게 생각하지?"
케이스 위에 뒹굴던 한니발은, 히로의 손과 얼굴을 비교해보고 소우기에게 고개를 돌린다. 소우기 뒤에 있는 이마가키가, 당황해서 카운터 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귀를 살랑거리며 생각한다.
(나로선 눈에 집착하지 않고 왼손용을 준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원래 왼손잡이였던 모양이고, 다소 손목에 무리가 있더라도 왼쪽이 약간 선골이 두꺼운 듯해. 조준은 찬찬히 익숙해지면 되지)
"네 의견에 찬성하지. 홀스터 위치는?"
(어깨가 좋겠군. 팔의 길이와 총의 크기를 고려하면, 허리는 밸런스가 좋지 않아. 그나저나 홀스터는 가죽으로 해주지 않겠나?)
"나일롱으로 해야지. 가죽은 손이 많이 가고 비싸"
"...그 비교적 싼 나일롱 값을 내는 건 누군데"
이마가키가 카운터 안에서 중얼거리는 말을 소우기는 무시했다.
"저 사이즈에 맞는 홀스터를 만들어줘. 새해까지면 돼"
"당연하지, 올해 중이라고 말하면 온화함으로 유명한 나도 화낸다구... 아가씨, 손 좀 줘봐. 치수를 재야되니까"
"네에ㅡ 아ㅡ 지친다..."
언제까지고 시계를 가르키던 히로는, 이마가키의 말에 안심했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팔랑팔랑 손을 턴다.
(육체도 조금 단련하는 편이 낫겠군...)
한니발의 혼잣말을 히로는 듣지 않고 카운터를 향해 손을 턴다. 거기에 오른쪽 앞발을 들고 응답하는 한니발 곁에, 갈아타듯 소우기가 다가온다.
(여러모로 미안하군. 너한테 신세졌다)
"그렇게 생각하면 투자금액을 회수할 수 있도록 빌어줘"
(긍정적으로 대처하지... 그나저나, 이 나라에서는 소울 언더테이커라는 직업이 돈이 되나?)
"나름대로는. 협회나 관청을 통해 송환해도 돈은 나오지만, 중개를 해주는 일도 벌이가 좋아. 남쪽과는 비교할 수 없지. 에테르가 고갈될 때까지 얼만큼 벌어서 전직하거나, 둘 중 하나로 평생이 결정돼"
(그런가.... 분명 그녀에게 있어서 천직이겠군)
한니발은 어딘가 지쳤다는 표정을 한 이마가키와 싱글싱글 이야기하는 히로를 보며 말했다.
그 한니발의 금빛 눈동자와 그리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할 털빛을, 소우기는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이 고양이는 비겁자다. 그리고 나도 비겁자다. 비열함은 미덕 중 하나. 그러니 내 마음은 아프지도 않고, 이 고양이를 탓할 마음도 없다.
하지만, 난 무엇에 화내던 걸까. 이 때는, 바보에게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을만큼 단순하고 아무 생각도 없는 이 바보에게.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재능이 넘치는 이 바보에게.
확실히, 난 바보에게 화를 내고, 초조해하고, 깔보고, 질려했다.
그리고, 나에겐 결코 불가능한 삶의 방식이, 아주 조금 질투났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는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이 때.
ㅡ이 때,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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