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는, 고래목 이빨고래아목 참돌고래과에 속한 포유류다. 인간을 제외하면 자연계에 천적은 존재하지 않고, 그 인간조차 바닷속에서는 범고래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식성은 육식이며, 펭귄이나 해조, 곰에 바다표범, 그리고 상어나 고래조차 포식해버릴만큼, 사냥감을 고르는 기준은 없다.
바다의 왕, 살인 청부업자, 마물. 사나운 해양생물의 제왕. 그런 범고래가 말을 건다면, 우선 뭐부터 해야할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게 일어나지 않는 일을, 현재 체험 중인 아키츠시마 하루나가 어떻게 되었냐면.
아무 일도 없었다.
우선, 그녀는 '말하는 범고래'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애초에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냉정하게 대처한다'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성격이다.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바닷물로 젖은 전신도, 엉덩이나 손에 붙은 모래의 차가움도 잊어버리고, 거대한 범고래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엉덩방아를 찧은 하루나의 시선보다도 높은 곳에, 범고래의 눈동자가 있었다. 얼굴 폭만으로도 하루나의 전신보다 큰 주제에, 그 눈동자는 작고 귀엽게 보였다. 시노와, 아니, 아니보다도 사람을 잘 따르게 보이는, 새까만 눈동자.
"저기, 다 놀랐어?"
젊은 남자같은 목소리로, 범고래가 말을 건다. 고개를 갸웃하며 하루나의 상태를 지켜보는 그 범고래로부터, 하루나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슬슬 뒷걸음질친다.
"아, 내가 무서워? 우호적으로 대할 생각이었는데... 겉모습이 무서운가? 너보다 살짝 크고 무겁지만,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데"
그런 게 아니라, 라는 태클은 하루나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혹시 이건 백일몽이 아닐까. 하루나는 손에 달라붙은 모래를 털면서, 자기 볼을 세게 때린다.
(...아파)
볼이 찌릿찌릿하다. 그래도 눈앞의 범고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검은 눈동자로 하루나를 지긋이 보고있다.
(잘 보니까, 범고래 이외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루나는 미간에 힘을 주고, 범고래를 노려본다.
...역시 범고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범고래랑 다른 점은, 이마의 푸른 팔각형 정도겠지. 하루나의 손바닥보다 약간 커다란 정도일까. 그 다면체는, 무서울만큼 반짝이는 거울처럼 아름답고, 옅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뭘까, 이 범고래는. 당연하겠지만, 그런 의문이 일어난다. 일단 위험한 생물체로는 보이지 않는다... 고 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그 거대한 입을 벌려 하루나를 집어삼키는 사태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엉덩방아를 찧은 채였던 하루나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일어서더니 범고래로부터 두세걸음 떨어지... 려고 하다가, 발이 걸려 다시 모래와 대면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도망갈 거야? 도망가도 쫓아가거나 하지 않아"
범고래는, 모래 위에 찰싹 달라붙은 하루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야생동물과 시선을 맞추는 행위는 싸움을 거는 사인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사람과 말할 때는, 직시라고까진 아니지만 나름대로 눈을 맞춰야 한다고 할머니가 말하셨다. 이 범고래는, 어떤 의도로 하루나를 바라보는 걸까.
하루나도 시험삼아, 범고래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얼굴의 크기 치고는 약간 작은, 눈을 감으면 어디에 눈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보인다. 범고래를 보려고 하니 어째선지 등에 있는 거대한 등지느러미가 시선에 들어오지만, 수직으로 서있어야 할 지느러미가 지금은 왼쪽으로 기울어져있는 점이 왠지모르게 신경쓰이는 하루나였다.
도망가도 된다, 라고 범고래는 말한다. 그게 제일 좋은 선택일 것이다. 더 뒷걸음질치려고 발에 힘을 넣던 하루나였으나, 문득 어제의 일을 기억해낸다. 자신은 이 범고래에게 바다에서 건져내졌다.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황을 보고 생각해보면 그게 타당하겠지.
(...고맙다고 말 안했어)
이 범고래가 일으킨 파도 탓에, 하루나는 바다에 빠졌다. 빠진 원인을 불러일으킨 녀석이니, 감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 범고래는 하루나를 바다에 빠트린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죄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나는, 이 범고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 했다.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고맙다고 생각하면 고맙습니다. 그렇게 전하는 게 당연하다. 개인 시노에게도 '미안해'와 '고마워'라고 평소에 말하곤 한다. 몸집도 큰 범고래니까, 바다에 떨어트린 장본인이니까, 라는 이유로 감사를 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루나는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일어난다. 뒷걸음치던 거리를 한걸음 좁히며, 등을 펴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슴을 폈다. 자세를 잡고 가슴을 펴는 건, 하루나의 버릇이었다.
"어제는 고마웠어, 구해줘서"
가슴을 펴고,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천만에"
범고래가 태연히 대답함과 동시에, 왼쪽으로 기울어져있던 등지느러미가 수직으로 섰다. 저건 개의 꼬리같이 감정을 나타내는 걸까. 시노의 별로 펴지지 않은 꼬리를 생각하며, 하루나는 범고래가 아까보다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이 생물체에 대해 호기심도 피어난다.
"...저기, 너, 정체가 뭐야?"
조심조심 물어본다. 기묘한 상태긴 하지만, 위기감과 호기심을 비교해본다면 역시 후자가 승리한다. 범고래의 언동이 이상하게 싹싹하고 스스럼없어서 그런가.
(하지만 이게 개구리였다거나 도마뱀이었다면, 도망쳤을지도... 바다에서 찾아온 말하는 거대 도마뱀... 무서어, 그건 호러잖아! 하지만 프렌드리한 성격의 도마뱀이라면 꽤 먹힐지도 몰라. 아, 큰 바퀴벌레였다면 절대 무리지만. 말하기 이전에 절대 도망쳐버릴거야, 응)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범고래가 하루나의 질문에 이상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범고래잖아? 네가 아까부터 그렇게 말했잖아"
"아니, 하지만 보통 범고래는 말하지 않는걸... 게다가 이마에 푸른 보석같은 뭐시기도 붙어있고..."
"아아, 이거? 으음, 너희들의 언어로 이걸 표현할 단어가 없는걸. 예를 들자면, 눈과 귀와 입과 코와 위와 손과 발과 피부와 지방을 합쳐둔 듯한 걸라나?"
"그거, 전혀 모르겠는데..."
머리를 쥐여매고 싶어진 하루나였으나, 여기서 자신의 전신이 물에 젖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은 떨어진 게 아니라, 바닷물을 뒤집어쓴 것이지만, 이틀 연속으로 이런 꼴이 된다면 또 타카오한테 싫은 소리를 들을 것임에 틀림없다. 엄마랑 할아버지에게도 걱정을 끼치게 되겠지.
시무룩해지면서 몸을 떠는 하루나의 기분도 모르고, 범고래는 순진무구하게 말을 건다.
"저기, 정체가 뭐냐고 물어보면, 보통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너라면 어떻게 대답해?"
자신의 정체가 무언인가. 그런 건 깊이 생각한 적 없는 하루나였다. 이름을 말하는 게 타당하려나. 일단 하루나는 가슴을 펴고, 자신의 이름을 대본다.
"나는, 아키츠시마 하루나야"
"아키츠시마하루나?"
"그런 책읽는 발음으로 읽지 말라구... 아키츠시마가 성이고 하루나가 이름이야"
"아키츠시마랑 하루나의 차이는 뭐야?"
"어... 아키츠시마는, 우리 아빠나 엄마나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동생같은, 가족 전체를 나타내고, 하루나는 나 개인을 나타내... 일까"
잘 설명했는지 어떤지도 자신없다. 그렇다기보다, 자신은 범고래를 상대로 대체 뭔 얘기를 하는 걸까.
"아, 개체를 구별하기 위해 이름이 있는 거구나. 그리고 일족을 구별하기 위해 성이 있고. 응, 이해했어, 고마워"
"아니, 천만에..."
범고래는 그 커다란 가슴지느러미로 모래를 가볍게 털어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뭘까, 이 생물체는. 범고래지만, 범고래는 아니다. 어째 기괴하다. 왠지 기분 나쁘다. 하지만 역시 호기심에 지고 만 하루나는, 그에게 물어본다.
"너, 이름은?"
"이름? 없어"
"어, 없어?"
고개를 약간 갸웃하며 대답하는 범고래를 보며, 하루나도 무심코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면서 다시 물어보기 시작한다.
"이름이 없으면 불편하잖아"
"그래? 지금까지 불편했던 적은 없었는걸"
이 범고래의 이름을 부를 필요성따위, 어디에도 없다. 하루나는 그런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왠지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샤치면 되잖아"*
"...그건, 나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거랑 같으니까 이상해"
*범고래 일본어로 샤치
범고래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가슴지느러미를 가볍게 파닥거린다.
"과연, 나 이외에도 나랑 닮은 모습의 생물체가 있으니까, 그 중에서 네가 나라는 개체를 식별하기 위해서도, 이름이라는 녀석이 필요하구나"
"범고래 주제에 식별같은 어려운 말을 쓰는구나..."
그러고보니, 이 범고래는 영어랑 일본어를 말할 수 있다. 모국어조차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는 하루나에게 있어서는, 다른 언어도 말할 수 있는 범고래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이 범고래가 굉장한 건지, 내가 범고래보다 멍청한 건지...)
전자라고 생각하는 편이 상처도 덜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범고래는 하루나에게 굉장히 곤란한 제안을 했다.
"그럼, 네가 내 이름을 지어줘"
"뭐, 왜 그렇게 되는데!?"
갑자기 이름을 지어달라고 말해도, 곤란하다. 애초에 하루나는 이름을 짓는다는 행위에 익숙하지 않다. 펫을 몇마리나 키우는 건 널리 있는 일이지만, 아키츠시마네 집은 시노 이외의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그 시노라는 이름도 할아버지인 신키츠가 단독으로 정한 이름이다. 세상에는 자기 물건에다가 이름을 붙이고 애착을 갖는 타입의 인간도 있는 모양이지만, 애석하게도 하루나는 그런 인간도 아니었다.
"자기 이름이니까, 스스로 지으라구..."
보통, 이름은 부모에게 받는 것이지만, 좋은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은 하루나의 고통 섞인 저항이었다.
"이름이란 스스로 짓는 거야? 그럼 네 이름도 네가 생각했겠구나"
그런 반격을 받으면, 하루나로서는 말로 이길 수 없다.
"나는 부모님이 지어주셨지만... 하지만, 이름이란 소중한 거라구. 처음 만난 사람한테 갑자기 지어달라고 할만한 건 아니야"
범고래를 상대로 뭘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걸까. 아무튼 하루나는, 이 범고래의 이름을 지어줄 부모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개나 고양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이름을 지어줬겠지만, 범고래다. 어떤 이름을 지어야 좋을지 전혀 모르겠다.
"어제 만났으니까, 처음 만난 건 아니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두 번 만났다고 지어줄만한 게 아니라구"
"그럼 또 만날까"
"왜 그렇게 되는데! 애초에 너랑 만나면 항상 물에 젖어버려서 곤란하다구! 또 타카오는 하아ㅡ라면서 질린 얼굴 할테고, 할아버지는 화내니까 싫단말이야!"
한바탕 화내봤지만, 범고래는 뀽한 얼굴을 할 뿐이다... 라고 하루나는 느꼈다. 그런 점이 귀엽게 보이지만, 어쩐지 분했다.
"아아, 젖으면 싫구나. 어제도 물 속에서 잘 움직이지 못했고, 사람이라는 종족은 물에 약한가보네. 다음부터는 주의할게, 미안"
머리를 약간 숙인 범고래에게, 하루나는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나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제대로 준비하면 나름대로 수영은 할 수 있지만... 아니, 다음부터라니 무슨 소리야!"
하루나가 반론하기 전에, 범고래는 그 거구를 이끌고 바다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내일 또 여기로 올게. 이 섬의 시간 단위는 대충 파악해뒀으니까 괜찮아. 초랑 분은 아직 자신없지만, 시간은 대충 맞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을 들으라구!"
"듣고 있어. 이름, 24시간까지 생각해둬"
범고래는 천천히, 조용하게 바다로 들어갔다. 등지느러미가 조금 보였지만, 그도 금방 사라져버렸다.
"정말, 대체 뭐야... 헷취!"
성대한 재채기를 한 번 하고, 하루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어제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젖어버렸고, 엉덩이나 허벅지에 모래가 대량으로 달라붙어있다. 손으로 모래를 털어내면서, 하루나는 바다를 바라봤다.
조용하다. 아까까지 범고래가 있던 흔적따윈, 전혀 없다. 모래언덕에 범고래가 있었던 자리의 자국은 이미 파도에 쓸려서 사라졌다.
(일단 돌아가자... 뭐라고 변명하지...)
카라키하마에 왔더니 큰 파도가 와서 젖어버렸다, 라고 하면 좋을까, 바다에 떨어진 다음날 다시 바다에 갔다고 혼나겠지. 세워둔 자전거로 향해 뚜방뚜방 걸어가는 하루나였으나,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본다.
평화로운, 평소의 바다였다.
***
(으음... 적절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아...)
가족에게 들키지 않게 돌아온 하루나는, 슬쩍 옷을 갈아입고 젖은 옷을 세탁물에 슬쩍 끼워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날을 보냈다. 지금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자기 방 침대에 누워서 영어사전을 바라보고 있다. 책장에서 사전을 꺼내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루나의 방은, 덜렁이인 본인의 성격 치고는 잘 정돈되어있다. 벽에 걸어둔 보드에는 친구나 가족과 찍은 사진이 열 몇장 정도 걸려있고, 침대 위에는 커다란 봉제 곰인형이 자기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책장 위에는 소라고둥이 장식되어있다는 게, 어느 의미로는 신박하다.
침대 위에서 삐딱하게 봉제인형에 발을 올리고, 범고래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보고 있던 하루나는, 한숨을 쉬며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램퍼스... 오르카... 킬러 웨일... 하지만 이래선 샤치라는 이름이랑 별로 다를 바 없네... 개를 도그라고 이름붙이는 느낌이고. 그램퍼스를 줄여서 그램, 이라던가?)
그램은, 약간 귀여울지도 모른다. 갓흥겜 확산성 밀리언아서의 그람이랑 닮았고. 하지만 10미터 가까이 되는 범고래에게 이래선, 너무 귀엽지 않을까.
(멋있는 이름인 편이 역시 좋겠지. 수컷같고... 수컷이니까, 샤치남, 은... 아니 이건 너무 대충이잖아!)
자신의 네이밍 센스에 절망해버린다. 친구에게 전화라도 걸어서 상담해볼까. 중학교 시절에 가장 친했던 친구로, 며칠 뒤에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야마야 치토세의 얼굴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확실히 치토세의 집은 고양이를 많이 기르고 있을 터.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어떤 식으로 지어?'라고 물어보면 대답해주겠지.
핸드폰을 손에 든 하루나였으나, 야마야네 고양이들의 이름을 생각해보고는 생각을 고친다.
(엘리자베스랑 클레망틴이랑 오즈월드였지...)
얼룩고양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멋진 이름이지!'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치토세에게, '에ㅡ'라는 항의를 하고 언쟁했던 일이 중학교 2학년의 겨울이었다.
(치토세의 센스는 약간 빗나간 기분이 든단 말이지...)
친구에게 상담하기를 포기한 하루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상담해보기로 했다. 기세 좋게 일어나, 방을 나가서 바로 옆인 동생의 방에 노크를 한다.
"타카오, 지금 한가해? 들어가도 돼?"
"한가하지는 않지만 바쁘지도 않으니까 들어와"
문을 열자, 타카오가 좌식 의자에 앉아 휴대용 게임기로 놀고있다. 갓흥겜 괴리성 밀리언아서일까.
"무슨 일이야? 긴 이야기라면 방석 가져다가 대충 앉아"
길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방 구석에 있는 방석을 가져와서 정좌한다.
"무슨 게임이야?"
"타이틀 말해도 모를걸.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유럽의 나라들이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던 무렵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야"
"헤에, 뭔가 진지한 게임이네"
"진지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바다에 빠지기는 금지라고 했는데 이틀 연속으로 빠지다니, 얼마나 덜렁대는 거야"
"안 빠졌어, 파도가 덮쳐왔을 뿐이라구... 근데, 어떻게 타카오가 알고있는 거야. 내가 돌아올 때 배란다에서 봤어?"
놀라는 하루나에게, 타카오는 가볍에 어깨를 움츠린다.
"누나, 그런 걸 빠졌다고 한다구. 거짓말 하려면 쓸데없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아"
스스로 타카오의 유도심문에 걸렸다는 사실을 눈치챈 하루나는 볼을 부풀린다.
"타카오는 정말, 이상한 데서 머리가 좋다니까"
"내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누나가 너무 생각을 안 하는 거야. ...그렇게 토라지지 않아도, 엄마한테는 아무 말 안 할게"
"...그 점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고맙다고 해둘게"
"천만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기선을 제압당한 하루나는, 마음을 다시 추스린다.
"어... 이건 만약의 이야기지만, 타카오가 시노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면 무슨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생각해?"
타카오가 어떤 식으로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줄까. 그걸 물어봐서 참고하려는 생각이었다.
"이름?"
"그래, 이름말이야. 되도록이면 멋진 걸로"
"꽤나 갑작스런 화제인데.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지.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솔직히 말하면, '범고래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받았다'라고 말해야 한다. 과연 그런 말을 한다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딱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봐봐, 무심코, 자기자신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봤더니, 자신은 아키츠시마 하루나라는 답이 나왔단 말이야.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 이름이란 어떤 식으로 짓는 걸까ㅡ 시노는 할아버지가 지어줬지만, 그건 할머니의 이름이 시나노니까 그랬고"
이건 타카오를 속이기 위해 생각한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하루나의 생각이었다.
"우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들의 정체는 뭔지, 우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그런거? 누나치고는 꽤나 철학적이네"
"그거, 누구 말이었더라"
들어본 기억은 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하루나에게 타카오는 전혀 웃지 않는 얼굴로 대답한다.
"고갱 그림의 타이틀이야. 그런 테마를 다뤘던 사람은 찾으면 잔뜩 나오긴 하지만"
"헤ㅡ 타카오는 이상한 지식도 있네"
"그리 도움되지 않지만. 그래서, 시노의 멋진 이름? 시노는 암컷이니까 멋있기보다는 귀여운 이름이 낫잖아?"
"아ㅡ 그럼 2개 생각해봐, 멋있는 이름이랑 귀여운 이름. 멋있는 이름은 혹시 시노가 수컷이었다는 가정으로"
타카오는 들고있던 게임기의 전원을 끄고, 턱을 괴면서 생각한다.
"수컷이라면 오르트로스, 암컷이라면 네메아"
굉장히 익숙하지 않는 말을 하는 타카오였다.
"어디서 나온 것들이야, 그 이름"
"오르트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두개 달린 괴물 개. 네메아는 네메아의 사자라고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네메아는 이름이 아니라 네메아에 속한 장소인 모양이지만"
"괴물... 이라고"
동생이지만, 잘도 그런 괴물의 이름을 금방 생각해내는구나. 감탄해야 할지, 질려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 범고래는 괴물이 아니라 해수지만, 괴물이랑 닮았다고 생각하면 괴물에서 이름을 따와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타카오는 그런 괴물 이름같은 거 자세하게 알아?"
"자세히는 몰라.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 이름의 유래를 가볍게 조사하는 사이에 약간 익혔을 뿐이야"
"그럼, 그런 괴물 중에서 타카오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름은 뭐야?"
"...누나, 왜 그런 걸 물어보는데. 평소엔 내가 하는 게임에 전혀 흥미 없었잖아"
"어..."
곤란하다. 원래 거짓말이 약한 하루나에게는, 적절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른다 한들, 묘하게 날카로운 타카오에게 금방 들켜버린다.
"나중에 내가 펫을 키울 때 참고하려고. 내 네이밍 센스 별로인걸. 시노를 봤을 때 처음 생각난 이름이 시로였고. 타카오가 그나마 센스 있으려나 생각해서"
어떻게든 빠져나갔다. 덧붙여 시노를 보고 시로라는 이름을 생각했다는 말은 사실이다.
"흐음"
타카오는 평소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표정에 변화도 없다. 하지만 대충 말했다는 사실은 알아챘다고 하루나는 느꼈다.
"뭐, 됐어. 멋지다고 느끼는지 어떤지는 개인마다 다르니까, 내 취향에 불만 갖지 말라구"
"불만 없어"
"...멋있다고 생각한 건 바하무트지. 뭐 이름보다 겉모습이 멋있다는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그건 무슨 괴물이야?"
"바하무트는 베히모스라는 괴물을 아라비아어로 읽은 건데, 동일시 된다는 느낌은 거의 없어. 진짜 베히모스는 하마같은 느낌이니까"
"베이비모스에 하마라니, 별로 멋있어보이지 않는데"
"베이비가 아니라 베히모스야. 뭐 게임의 영향으로 바하무트라고 하면 드래곤을 상상하게 되지만. 강하고 멋진 드래곤이야"
"으음, 바하무트..."
이름의 울림은 나쁘지 않지만, 그 범고래 이름에 어울리냐고 한다면, 2% 부족한 느낌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말해봐. 나중에 펫을 기르고 싶다고 말했지만, 어떤 종류인지도 모르고, 털모양이나 색이나 크기도 고려해봐야하고. 어떤 종류를 기르고 싶은지 말이야. 그러고난 다음에 이름을 생각해야지"
"어..."
10미터 정도 되는 크기에, 머리에 파란 돌이 박혀있고 2개 국어를 말하는 수컷 범고래.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고생은 하지 않았겠지.
"...크고, 길고... 아, 그자로 시작하면 좋겠어!"
"그?"
그램퍼스의 그, 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네, 음, 맨 처음 생각했던 이름이 그램쨩이었는데, 너무 이미지랑 맞질 않는다고 할까, 뭐라고 해야되나..."
"그라샤 라볼라스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멋있는지 어떤지는 누나가 판단해봐"
"그... 그라보라샤라스?"
"그라샤 라볼라스"
"그라샤라볼라스...라"
입으로 말해보니, 멋있다기보다는 강해보인다고 해야할까 꺼림칙하다고 할까, 그런 인상이다. 하지만 그 기묘한 울림을 가진 이름은, 그 기묘한 범고래가 이름으로 쓰기에 어울리지 않을까
"그치만 너무 긴데... 아"
줄여서 그라볼라스. 더 줄여서 그라. 이거라면 멋과 귀여움을 양립한 좋은 이름이 아닐까. 그 범고래가 어떤 이름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은 이름이다. 하루나는 혼자 수긍하더니, 기세 좋게 일어섰다.
"타카오, 고마워. 해결됐어, 응"
"...누나, 가슴을 펴고 고맙다고 하는 건 그만둬"
"뭐야ㅡ 타카오니까 소박하게 했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제대로 고개 숙이고 한다구"
"거만하게 보이니까 그만두라고 하는 게 아니야. 애초에 가슴 펴고 몸을 뒤로 젖히는데, 누나 전혀 거만해보이지도 않고"
"내 인품 덕분이지"
다시 한 번 가슴을 펴는 하루나였지만
"칭찬하는 거 아니야, 그냥 위엄이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야. 거만의 반대말은 겸허지만, 누나에게는 겸허도 부족하고"
동생의 신랄한 말에, 쫙 펴고있던 가슴을 원위치로 되돌린다.
"정말, 하나하나 따진다니까. 아무튼 고마워, 잘자!"
"...어, 맞다. 아직 말 안했는데, 그라샤 라볼라스라는 건..."
끝까지 듣지 않고 방을 나가는 누나를 보면서, 타카오는 손에 들고있던 게임기 전원을 다시 켠다. 그라샤 라볼라스라는 이름의 유래를 아직 설명하지 않았지만, 하루나가 이해했다면 괜찮겠지.
(솔로몬의 72 악마 중에 알려져있는, 머리는 좋지만 인간에게 지식을 주는 대신 목숨을 가져가는 그라샤 라볼라스. ...그런 악마의 이름을 지어줘도, 기뻐할 생물체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게임을 다시 재개하려던 타카오였으나, 갑자기 '아아'라며 작게 소리를 낸다.
"어차피 누나니까, 제대로된 생물체가 아닐거고, 제대로된 이름이 아니라도 생관없겠지"
다음날.
"저기 시노. 산책 갈래?"
오후 2시를 넘어갈 무렵, 하루나는 목줄을 들고 개집 앞에 앉았다. 시노는 어제랑 똑같은 반응이었다. '산책 가기 싫다'는 오오라를 전신에서 내뿜고 있다.
"...시노, 내가 카라키하마에 가려고 하니까, 같이 산책 가기 싫은 거야?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싫어하지는 않을텐데"
앞발에 턱을 괸 채로, 시노가 눈을 뜨고 하루나를 본다. 굉장히 '그렇다'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다.
"나도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닌데... 으음, 뭐라고 할까, 할머니의 오카리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그 범고래라구, 시노. 영어만이 아니라 일본어까지 말하는 2개 국어 범고래"
시노가 귀를 쫑끗쫑끗 새우면서, 하루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구, 나도. 계속 카라키하마에 가지 않고 무시하면, 그 범고래는 꿈이었다고 하고 끝낼 수 있고, 그러는 편이 귀찮지 않아서 좋다고. 하지만, 신경쓰이잖아, 그치?"
얌전히 듣고있던 시노가, 느릿느릿 개집에서 기어나왔다. 산책하러 갈 마음이 됐나보다 하며 하루나가 목줄을 채우려는데, 몸서리치면서 저항한다. 그 대신 시노는 하루나의 신발끝을 입으로 물더니 가볍게 당겼다. 마치 '나가지 마'라는 경고처럼.
"시노. 그 범고래가 아니라, 네가 말할 수 있다면 재밌었을텐데.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범고래 의외로 귀엽고, 무섭지도 않은걸?"
느슨해진 끈을 다시 묶고, 어제처럼 '잠깐 나갔다 올게ㅡ'라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하루나를, 시노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
(...어떡하지...)
오늘의 카라키하마에는, 사람이 있다. 약간 배가 나온 중년 남성이, 큰 개와 파도를 맞으며 놀고 있다. 카라키하마 주변은 원래부터 사람이 적은 장소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잡목림과 울타리에 둘러싸인 넓은 사유지로, 통행인도 차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렇기에 범고래와 대화를 하더라도 별다른 일 없으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으리라 생각한 하루나였지만, 이렇게 카라키하마에 놀러오는 사람도 있다. 이런 때에 그 커다란 몸집을 가진 범고래가 '안능하제옇!'이라고 외치며 날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없네...)
그 범고래가 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띈다면, 어떻게 될까. 뉴스에서 나왔던 돌아가지 못하는 고래처럼, 매일 이 카라키하마에 구경꾼이 찾아오게 될까. 아니면 굉장한 직위를 지닌 학자들이 그를 연구하려고 사로잡으러 올까.
(그런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하는 범고래가 있다니,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 평소에는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꼭꼭 숨어 지내고, 아주 가끔 모습을 나타낸다던가. 그 범고래는 그런 생물체고, 어쩌다가 내가 만나버렸다던가. 하루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아저씨가 개랑 다 놀고 간 다음에 온다던가, 그런 세세한 생각은 할까, 그 범고래)
범고래의 이름을 그라볼라스라고 결정했지만, 범고래에게 승락받지 않은 이상 하루나의 머릿속에서 범고래는 범고래일 뿐이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후보를 좀 더 생각해두는 편이 좋을까
우선 둑에서 해안으로 내려가려는 하루나였지만.
"나나, 그렇게 잡아당기면 안 돼... 아, 죄송합니다"
아래에서 애완견에게 끌리듯이 중년 남성이 올라온다. 좁은 계단이라 길을 얄보한 하루나에게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려는 개를 필사적으로 잡아끌면서 달려가버렸다.
(...저 개, 무슨 일일까...)
범고래가 다가오는 기척에 깜짝 놀라서, 당황하며 도망가는 걸까. 계단을 내려가면서 바다를 바라봤지만, 조용하기만 하다. 아무것도 없다.
(벌써 오후 2시 지났으니까 어제부터 24시간 지났지... 범고래니까 시계도 배꼽시계일테고, 시간에 차이가 났을지도 몰라)
"안녕, 하루나"
파도치는 곳으로 걸어가는 하루나의 귀에, 들어본 기억이 있는 목소리가 울린다.
"안녕... 어어?"
범고래의 소리는 들렸는데, 모습이 없다. 멀리서부터 외친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서 들렸는데
"역시 효과 있었다. 사람이라는 종족은 눈이 주된 지각기관같지만, 굉장히 잘 보이는 건 아니구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눈앞에 범고래의 거구가 나타났다. 깜짝 놀란 하루나는 모래에 발이 걸리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까, 깜짝 놀랐잖아, 정말!"
"그렇게 놀랐어?"
오늘도 변함없이,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는 범고래에게 하루나는 앉은 채로 한숨을 쉰다.
"놀랐다구...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아까부터 있었어. 빛을 좀 반사시켜서 주변 풍경과 내 몸이 똑같이 보이도록 했지. 호흡이나 체온을 억제하거나 해서. 하루나가 왔을 때 잠깐 움직였더니, 털뭉치 생물체한테 들킨 모양이지만"
"털뭉치라니, 그건 개라고 해. 그렇다곤 해도, 카멜레온의 굉장한 버전같은 기술이 가능하구나"
하루나의 지식으로는, 스텔스네 광학미채네 하는 단어는 도저히 나올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숨어있었다는 말은, 역시 인간을 경계한 거야? 그렇다면 왜 엊그제 나한테 말을 걸었는지가 의문인데..."
경계할만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던 걸까. 이런 기묘한 생물체조차도 '덜렁이같다'고 생각할만큼, 자신이 덜렁력이 굉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약간 풀이 죽는다.
"말을 걸었더니, 네가 도망치지 않고 대답해줬으니까"
"...그게 이유야?"
"그래. 아직 너 이외의 사람에겐 잘 말해볼 자신이 없으니까, 평소엔 아까처럼 모습을 감추고 있어"
그렇다는 말은 하루나가 처음 만났을 때 바로 도망쳤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는 뜻이다.
그날 도망쳤다면, 좋았을까. 아니면
"그래서, 내 이름은 생각해봤어?"
"어, 아, 맞아. 제대로 생각해서 귀여운 이름을 생각해왔다구"
하루나는 당황해서 일어서면서 파닥파닥 모래를 털고나서, 가슴을 펴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선언한다.
"네 이름은 그라볼라스! 줄여서 그라야. 어때? 그라볼라스는 멋있고, 그라는 귀엽지!"
마술서 레메게톤, 제 1권 게티아. 그곳에는 기원전의 옛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봉인한, 72 악마를 사역하는 방법이 서술되어있다고 한다.
그 서열 25번에 위치한 그라샤 라볼라스.
바다에서 나타난 기묘한 해수가 짊어지게 된 악마의 이름.
이름을 지어준 소녀는, 그 유래를 모른다.
이름이 붙은 해수는, 그 의미를 모른다.
그래도 지금 여기, 그라볼라스라는 이름의 생물체가 탄생했다.
"그라볼라스"
"그래. 그라볼라스. 기니까, 그라라고 부르지만"
"...그라볼라스"
조용히 반복하는 범고래ㅡ그라볼라스를 보며, 하루나는 불안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다른 후보는 제대로 생각해두지 않았다. 타카오가 말했던 바하무트나 베히모스나, 차라리 심플하게 색이 검으니까 쿠로라는 방법도 있다.
"마음에 안들어?"
"글쎄?"
"너말이지..."
타카오의 지혜를 빌려 생각해낸 이름인데, 그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이름은 처음이니까, 뭐가 좋고 나쁜지,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걸"
"그럼, 내가 어떤 이름을 지어주더라도, 너는 불만갖지 않았을 거야?"
"불만을 가질만큼 지식이 없는걸"
그렇다면 타마라던가 포치라도 좋았잖아. 차라리 처음에 생각했던 그램퍼스도 아무 문제 없었지 않았을까. 진지하게 생각해온 자신이 바보같아진다.
"왜 풀이죽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부터 그라볼라스라는 이름을 쓸게. 고마워"
가슴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그라볼라스가 머리를 숙인다. 그 동작이 꽤나 귀여워서, 하루나는 웃고 말았다.
"아니, 천만에... 범고래도 머리를 숙이는 습관이 있구나"
"없어. 사람 흉내를 내봤을 뿐이야"
"사람, 이라"
그라볼라스의 겉모습은 범고래다. 이마에 묘한 물건이 박혀있지만, 그 외에는 아무리 봐도 범고래다. 하루나는 범고래의 생태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눈 뒤에 있는 하얀 모양은, 확실히 범고래 특유의 것이라고 동물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저기, 그라..."
처음으로 자신이 지어준 이름으로, 그를 불러본다. 이렇게 불러보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왜?"
"저기... 그라는, 어디에서 왔고, 무슨 생물체고, 어디로 갈 거야?"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뭘 물어봐야 좋을까. 생각은 해봤지만, 어제 타카오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들의 정체는 뭔지, 우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하루나 자신이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라면 시원스럽게 대답해줄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왔고, 범고래고, 고향인 섬으로 갈 거야"
정말로 시원하게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라볼라스는 대답했다.
"내가 말하기엔 뭐하지만, 굉장히 구체적인 대답이네"
바다에서 온 범고래가, 고향으로 돌아간다.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대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나에게는 약간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저기, 그라의 고향이란, 바다 어디에 있어? 그리고, 거기에 그라같은 말하는 범고래가 잔뜩 있어?"
세계의 70%는 바다라고 한다. 그 어딘가에 그라볼라스의 고향이 있겠지. 역시 인간이 별로 없는 남극 근처라던가
"무슨 단어로 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약간 멀긴 한데"
"흐음. 거리 단위는 알아? 미터같은거. 그라의 코끝에서 배지느러미 끝까지가 9~10미터 정도 되는데"
"그건 알지만, 내 신장이 몇개여야 고향까지 닿을까. 내 수영 속도랑 헤엄친 시간을 더하면 되겠지만, 그런 숫자 개념은 이 섬에 와서 의식하기 시작한 거라 역시 잘 모르겠어"
속도X거리를 이해하거나, 개념이라는 말을 사용하다니, 역시 그라볼라스는 머리가 좋은 범고래다. 하루나는 감탄하면서, 그의 입을 바라본다. 딱 닫혀있는 그 입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신경쓰이는 점이 있는데, 어떻게 말하는 거야? 입은 계속 닫혀있잖아"
"입 안에 발성기관은 없어. 그렇다기보다 성대에 해당하는 기관이 없지. 좀 보기 싫지만, 머리 위에 작은 구멍이 있지. 거기서 공기를 내보내는 연구를 해서, 너희들의 말을 할 수 있도록 된 거야"
하루나가 등을 뻗고 그라볼라스가 머리를 숙인다. 이마의 돌 뒤에, 확실히 직경 3센치 정도의 작은 구멍이 있다. 하지만, 하루나가 바라본 그곳은 갑자기 넓어지며 직경 30센치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꺄악!"
놀란 하루나는 뒷걸음질치며 다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구멍을 넓히는 것도 가능해... 근데 잘 놀라네, 하루나는"
"그라가 깜짝 놀래키는 거잖아..."
정말이지 요 3일간, 일년 분은 놀란 기분이다. 모래를 털면서 일어나는 하루나에게, 그라볼라스가 말을 건다.
"저기,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
"어? 응, 그래. 내가 그라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잔뜩 있으니까, 그라도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겠지... 내가 알고있는 거라면 대답하겠지만, 너무 어려운 질문은 하지 말아줘"
"그렇게 말하면 곤란한걸.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특히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2미터 가까이 되는 그라볼라스의 등지느러미가 살랑살랑 흔들리며 작은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며, 하루나를 지긋이 보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들을 죽이는 천적을, 흔접도 없이 죽이는 방법 알아?"
"....죽여?"
"그래, 죽여.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죽일 방법"
죽인다.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그라볼라스가 야생동물인 이상은, 다른 야생동물을 포식하고 목숨을 빼앗는 등, 일상다반사일 뿐이다. 하지만 하루나는, 귀엽다고 생각해온 이 그라볼라스의 입에서 '죽인다'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이 왠지 쇼크였다.
"아, 하루나는 죽여본 적 별로 없어? 그렇다면 뭔가 힌트라던가, 죽이는 방법을 알 법한 사람이라던가, 혹시 몰라?"
멍하니 자신을 보고있는 하루나에게, 그라볼라스는 변함없는 말투로 말을 건다.
"어... 으음... 아니, 그라를 죽일 수 있을만한 생물체가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인데. ...설마, 그거 사람... 이야?"
겁내면서 질문하는 하루나를, 그라볼라스가 지긋이 바라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천천히 바라보더니, 그는 고개를 갸웃한다.
"하루나는 나를 죽일 수 있을만큼 강해?"
"그럴 리 없잖아"
"그렇지. 이 섬의 사람들은 여러 도구를 사용해서 약점을 보완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래도 나를 죽일 것같은 도구는 그리 없어보이는걸. 평범한 생물체라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죽일 방법을 알고는 있지만"
"아 그래..."
평범한 생물체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죽이는 방법.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봤다간 후회하겠지. 그런데도, 하루나는 물어보고 만다.
"덧붙여서, 어떻게?"
그라볼라스가 천천히 그 커다란 입을 열기 시작한다. 검은 위턱과 검은 아래턱 사이로 드러난 것은, 눈으로도 선명하게 보이는 핑크빛의 거대한 혀와 규칙적으로 늘어선 하얗고 날카로운 수십개의 이빨이었다. 거대하게 벌려진 그 입은, 하루나따윈 한 입에 집어삼킬 듯이 보인다.
"깨물어부수고, 위장으로 밀어넣지"
이똥하나 없는 상하의 이빨을 한 번 깔짝 소리를 내더니, 곧 입을 닫아버린다.
"먹힌다, 고 생각했어?"
"야, 약간..."
몇 걸음인가 뒷걸음질친 하루나에게, 그라볼라스는 등지느러미를 크게 팔랑이며 파도를 일으킨다.
"나는 너랑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고, 먹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까지 먹이아 부족할 만큼 굶주렸다고 생각했어? 이래뵈도 동료들 중에서는 소식으로 유명한데"
"아, 미안... 입이 굉장해서 약간 무서웠어..."
자기 마음을 솔직히 말하면서도, 하루나는 그라볼라스에게 미안한 짓을 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멋대로 선입관ㅡ오카리나가 구리다던가, 우쿨렐라 들고 다니면 이상하다던가, 그렇게 멋대로 사물을 판단하고 대충 말하면, 듣는 입장에서는 상처받는다. 직접 경험해서 알고있었는데,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자기보다 10배나 큰 몸에, 본 적도 없는 생물체가 눈 앞에서 입을 벌리면, 나도 조금은 먹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거야"
"미안..."
"그렇게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구. 그래서, 어때? 죽이는 방법에 짚이는 구석은 없어?"
"으음... 그건 어떤 생물체야? 겉모습이라던가 크기라던가. 그라가, 그... 삼키지 못할 정도로, 딱딱하다던가?"
그라볼라스처럼 대단한 범고래들이 이기지 못하는 생물체라니,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일단 물어본다.
"크기는 나랑 비슷한 정도야. 겉모습은... 뭐라고 할까 이렇게, 투명하고 흐늘흐늘하고 다리같은 이상한게 여러개 있어. 씹었을 때 굉장히 물어뜯기 힘들어. 조각조각내도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버리고 통째로 삼켜도 꽤 긴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소화되지 않아. 소화하기까지 엄청 발악하니까 위가 아프고, 그래서 죽어버린 동료도 있어. 게다가 굉장히 맛없으니까 먹고 싶지도 않고"
굉장히 맛없다는 뜻은, 그는 그 천적이라는 녀석을 먹어본 적이 있다는 뜻일까
"...뭔가, 듣고보니 엄청난 괴물같은데... 흐물거리고 다리가 많다면, 거대오징어라던가 문어려나. 그런 것들이 바닷속에 있나보구나... 지구에는 아직도 미지의 생물이 있는걸"
꽤 무서운 이야기다. 그런 심해의 괴물을 어떻게 할 방법을 찾아, 그라볼라스는 먼 바다에서 찾아왔다는 말이다. 육지 세계에 동경해서 찾아온 범고래의 왕자님이었다면 옛날이야기가 될지도 몰랐는데, 라고 하루나는 약간 다른 감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괴물을 퇴치하는 방법따윈, 1학년일 뿐인 하루나에게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모르겠는걸... 미안"
"그렇게 간단하게 알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아. 알 법한 사람이 짚히는 구석은 없어?"
하루나는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눈앞에서 이렇게 말을 나누는 그라볼라스와, 본 적도 없는 거대 연체동물를 비교해보면, 전자의 힘이 되고 싶다.
"으음... 해양생물의 학자라던가... 하지만 바다의ㅡ 생물을 죽이는 방법이라면 어부? 아, 하지만 그라랑 같은 크기라는 말은 10미터 정도 될테고, 굉장히 강하겠지... 해상자위대라던가?"
생각나는대로 던져봤지만, 이도저도 '말하는 범고래가 거대한 연체동물같은 녀석들에게 당하고 있어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고 갑자기 부탁한들, 문전박대 당할 것이 뻔하다.
"뭐야, 의외로 후보가 있잖아"
"하지만, 그 이상한 오징어같은 생물체를 해치울 수 있을지 확신은 전혀 없는걸? 사정을 말한다고 해도 분명 믿어주지 않을 테고..."
"서두르고 있지는 않으니까 천천히 하자"
"서두르지 않다니... 그치만 이렇게 있는 사이에도 그라의 동료들이 죽어가고 있잖아?"
"모두가 전멸하기 전에 발견하기만 하면 돼. 튼튼하니까 아직 괜찮아"
대화하는 내용은 기괴한데, 아무 위기감도 없는 범고래다. 하지만 그라볼로스에게는 시간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루나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봄방학이니까 아직 괜찮지만, 곧 있으면 입학식이다. 그라볼로스와 만나고 학교에 관한 일을 깜빡 잊고 있었다. 새로운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버리면, 이렇게 매일 카라키하마에 올 수 없게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그라볼로스의 천적을 퇴치하는 방법의 실마리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럼 알 법한 사람을 만나러 갈테니,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
"에엥!?"
만나러 간다고 간단히 말하지만, 육지에 올라온다니 어떻게 생각해도 무리잖은가. 그라볼라스가 아스팔트 도로를 휘적휘적 헤엄치며 이동하는 모습을 상상했더니 웃음이 나올 듯 하지만, 그의 피부에 상처가 생기겠지. 그렇게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큰 소동이 벌어질 테고, 사로잡혀서 보건소로 이송될지도 모른다. 야생고양이도 아니고 야생범고래가 보건소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불명이지만.
"그라는 땅 위를 걸을 수 있어?"
"못 걸어. 헤엄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땅을 헤엄친다는 표현이 그렇게 와닿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크기의 범고래가 지상에 있다면 큰일이다.
"헤엄친다니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그라같은 커다란 범고래가 이 근처에 널부러져 있다면 엄청 놀랄 거야"
"헤에, 나는 사람의 감각으로 치면 큰가보구나"
"그야 당연히 크지. 10미터의 범고래인걸... 좀 더 작았다면... 적어도 2미터 정도였다면, 커다라나 봉제인형이라고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루나는 자신의 발언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았다. '2미터 정도의 봉제인형'이라고 무심코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라볼라스는 그렇지 않았따
"2미터라면, 지금 내 5분의 1정도 크기?"
"응? 어 그렇지. 나보다 40센치 더 큰 정도려나"
"으음... 좀 힘들겠지만, 힘내볼게. 내일까지는 어떻게 될테니까, 내일 또 봐"
좀 힘들다니. 대체 뭐가 힘들다는 걸까. 하루나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그라볼라스는 다시 바다로 들어가버렸다.
(...정말, 멋대로라니까. 내일까지 어떻게 해본다니 무슨 소리지)
그 답을, 하루나는 정확히 24시간 후에 알게 된다.
***
"열심히 해봤지만, 역시 이 이상은 무리였어. 하지만 24시간만에 이정도라면 꽤 대단하지 않아?"
다음날, 평소처럼 카라키하마에 간 하루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10미터 가까운 크기였던 크라볼라스의 거구. 하지만 자신의 착각이 아니라면, 지금 그는 3미터 정도의 크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미터 가까웠던 등지느러미는 1미터로, 얼굴 크기도 절반 이하로 되버렸다.
"왜... 왜 이렇게 작아진 거야?"
"네가 크면 깜짝 놀란다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이래도 아직 커?"
오히려 작아져서 깜짝놀랐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컸던 몸이 이렇게 작아진 거야? 이상하잖아"
"아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냐고? 몸의 수분을 빼고, 뺀 부분을 꾹 압축해서 피부와 지방의 두껍고 단단한 부분을 까냈어. 깎는데 고생했다구. 너무 아프지 않도록 그 부분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쓸데없는 피가 나오지 않도록 굳히면서 까냈다구. 까낸 부분은 모아서 묻어뒀지. 돌아갈 때 다시 붙일 거야"
하루나는 진지하게 그라볼라스를 살펴본다. 지금까지는 서있어도 그를 올려다볼 필요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의 머리가 아래에 있다. 보기 흉했던 푸른 팔각형의 돌이나 그 뒤에 있던 분기공도 잘 보인다.
굉장해, 라기보다는 거의 깨름칙한 영역이다. 작아져서 귀염도는 어제보다 늘어났다. 하지만, 하루나는 처음으로 이 범고래에게 '공포'를 느꼈다.
경악과 호기심. 대화하면서 생겨난 친근함. '말한다'라는 것만으로 이상한데, 하루나는 그걸 잊고ㅡ잊은 척을 하고 이 범고래와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이 범고래는, 제정신이 아닌 생물체다. 하루나는 그걸 새삼 다시 봤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때? 이 크기로 지상에 올라가면 역시 사람들을 놀래키게 될까?"
"어... 그야 놀라지. 애초에 범고래... 는 아니겠지만, 범고래처럼 생긴 생물체는 바다에서밖에 없으니까..."
크기 외에, 아무 변화도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떨리는 자기 마음을 추스린다. 애초에 '좀 더 작았다면'이라고 말한 사람은 하루나 자신이었을 터다. 그 말 때문에 그라볼라스는 작아졌다. 그는 말그대로 '열심히' 노력했겠지. 그런데 작아진 그를 무서워하다니, 이상한 말이 아닌가.
이미 자기자신이 이상해진 게 아닐까. 머리 한쪽에 떠오른 그런 생각을, 하루나는 무시했다.
"겉모습인가ㅡ 지상에 가장 많은 생물체는 역시 사람이야?"
"사람보다 많은 생물체는 달리 있다고 생각하는데, 평범하게 걸어다니면서도 돌라지 않는다면 개나 고양이나 인간 정도 아닐까..."
그렇다면 열심히, 개나 고양이나 인간이 되볼게ㅡ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하루나는 대답하면서도 후회했지만, 역시 그도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고양이는 본 적 없지만, 개는 처음만났을 때 하루나가 데려왔던 생물체지? 작고 4족보행에 털이 잔뜩 나있던 녀석"
"시노는 저래보여도 털이 짧으니까, 잔뜩은 아니지만..."
"그리고, 인간이라는 건 하루나같이 보이는 생물체고"
그라볼라스가 평소대로의 검은 눈동자로 올려본다.
"하루나는 암컷이지?"
이제와서지만, 하루나도 그라볼라스의 성별을 멋대로 수컷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실을 눈치챘다.
"무슨 질문이야... 뭐, 확실히 암컷이라면 암컷이겠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여자아이라고 해"
"아, 미안.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자웅동체인가 생각되서. 말하는 방법도 여러가지 있어서 언어란 어렵구나. 그렇다는 건, 나는 남자아이겠지. 으음"
뭔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하루나는 시험삼아 물어봤다
"...저기, 열심히 노력하면 그라도 인간이 될 수 있어?"
"그건 역시 어렵지 않을까"
열심히 노력하면 가능해. 그럼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하루나는 살짝 안심했다. 하지만 다음에 그가 내뱉은 말이 하루나를 깜짝 놀라게했다.
"내 나름대로 육지를 걸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봤어. 24시간 이상은 걸리겠지만, 잘 된다면 다시 올게"
또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가려는 그라볼라스의 등을 향해 하루나가 소리쳤다.
"잠깐, 그라볼라스!"
거의 잊을 뻔했던 정식 명칭으로 그를 부른다. 무시당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는 돌아보더니 "왜?"라고 대답했다.
"그라가 다시 여기 오는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슬슬 학교가 시작되니까 여기로 자주 올 수 없어!"
"아아, 그렇구나"
그라볼라스의 대답은 무서울 정도로 담백했다.
"학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하루나도 해야하는 일이 있구나. 열심히 해. 나도 잔뜩 힘낼테니까. 또 봐"
이제 이곳으로 오지 못한다는 의도가 전혀 전해지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 하루나는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라! 사람 말을 제대로 들으라구!"
이미 바닷속으로 들어가버린 그라볼라스에게, 그 말이 닿는 일은 없었다. 그저 3미터의 몸이 해면 높이 떠올라 커다란 물보라를 내는 것만은 하루나의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등지느러미도 벌써 보이지 않게 되었고, 아무도 없게 된 카라키하마는 무서우리만치 조용했다.
다음날, 카라키하마에 그라볼라스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라볼라스의 모습을 보지 못한 3일을 마지막으로, 하루나는 카라키하마에 가기를 그만두었다.
하루나의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기 전날의 일이었다.
(자 이제 심기일전 해야지!)
맑은 날의 입학식 날.
새 블레이저를 몸에 걸치고, 하루나는 자전거를 교내 자전거 주차장에 댔다. 걸어둘 때에 옆 자전거에 손을 놓고 열 몇대의 자전거를 줄줄이 쓰러트려버렸다. 자전거를 세워두려고 온 학생들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면서 필사적으로 자전거를 원상태로 되돌린다. 다행히도 가까이 있던 몇몇 학생들이 도와줘서 하루나는 고맙다고 한 뒤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이제부터 3년간 다니게 될 학교는, 집에서 자전거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였다. 버스로 다닐 수도 있었지만, 하루나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거장이 꽤 멀어서, 시간을 계산한 결과 자전거가 빠르다는 결론이 났다.
(엄마, 길 안 잃고 잘 왔으려나)
하루나와 타카오의 엄마인 이즈미는, 덜렁거리진 않지만, 어째 길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입학식에 참가하기 위해 내교하는 엄마가 버스로 온다고 말은 했다. 버스 통학인 치토세나 그 부모와 딱 마주친다면 하루나가 걱정할 필요도 없을텐데.
(어제 치토세한테 전화해둘걸 그랬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입학식까지 15분 정도 남았다. 확실히 입구 근처 게시판에 어느 반이 될지 붙어있었을 터. 하루나는 물건도 제대로 들어있지 않은 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입구를 향한다. 하지만 도중에 자신의 자전거에 열쇠 거는 일을 잊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돌아가는 꼴이 되었다.
(...입학식날 첫 시작이 좋지 않은걸...)
겨우 게시판에 도달한 하루나 주변에는, 이제부터 동급생이 될지도 모르는 신입생들이 이미 수십명 정도 모여있었다. 개중에는 중학교 시절에 알던 사이인지, 친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중에 치토세가 없다고 확인한 뒤, 하루나는 자기 반을 찾기 시작했다. 아키츠시마라는 성은 꽤 높은 확률로 여자 출석번호 1번이다. 위쪽 부분만 보면 되니 편하다.
(C반의 여자 1번이네...)
자기 이름을 확인한 하루나는 같은 반 이름을 바라본다. 치토세나, 달리 기억이 있는 이름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해 중단되었다.
"안녕, 하루나"
누구지. 남자 목소린데, 아는 사람 중에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남자는 없다. 사람을 잘못 본 걸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 번 돌아봤다가, 하루나는 놀라고 말았다.
"아, 우쿨렐라...!"
딱 한 번, 카라키하마에서 만났던 우쿨렐라를 가진 소년. 친근하고 상냥해보이며 우쿨렐라가 전혀 어울리지 않은 그가, 싱글싱글 웃으며 하루나 뒤에 서있었다.
기쁘다. 솔직하게 하루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또 만나고 싶었던 그에게, 이렇게 쉬운 재회를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또 만났네. ...근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어?"
"네가 알려줬잖아. 잊었어?"
그랬던가. 그에게 이름을 댄 기억은 없는데
"그랬나?"
"그래"
덜렁대다가 까먹었나. 하지만 백보 양보해서 이름을 댔던 사실을 잊었다고 해도, 그의 이름은 절대 들은 적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저기, 이름은? 어느 반이야? 혹시 같은 반?"
하루나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그를 올려봤다.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키가 커진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내 이름, 하루나 알고있잖아"
"에, 들은 적 없어"
"너무하네. 자기가 지어준 이름은 잊지 말라구"
"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는
"내 이름, 알고 있잖아? 아니면 너무 힘내버린 탓에 알아보기 힘든가"
그는 이마에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더니, 이마를 손가락으로 긁었다. 피부가 손쉽게 긁혀나가며, 그 밑에 푸르게 빛나는 물건이 보였다.
"그라볼라스"
웃는 소년ㅡ그라볼라스를, 하루나는 멍하니 올려봤따.
일주일 전에 알게 된 거대한 범고래가, 3주일 전에 만났던 소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하루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이미 혼돈의 카오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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