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목록 (상단)

2018년 1월 10일 수요일

취성의 가르간티아 ~머나먼 해후의 천지~ 제1장 새로운 장소

 한쪽 면의 별하늘이 있다.

 천상을 수놓는 무수한 빛이 한밤중의 넓은 바다에 거품을 일으키는 파도처럼 드러나고 있다. 파도 소리는 대를 거듭하면서도 끊이지 않고, 규칙적으로 술렁인다.

 그 조화를 깨는 듯한 거친 울림이 일어났다.

 북적거리는 무수한 발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전투 기계의 소리였다.

***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듯 지어진 실내 연습장은, 눈부신 조명이 잔뜩 매달린 매우 넓은 공간이다. 거대한 문으로 된 네 벽 중 한 면이 밖으로 열려있고, 울려 퍼지는 포성과 땅울림을 밤의 바다로 흘려보낸다.

 중앙에 설치된 투기장에, 깊은 푸른 색 바탕에 하얀 라인을 칠한 2기의 기체가 장대한 검을 휘두르며 상대를 쓰러트리려 하고 있다.

 '글래디에이터'라 불리우는 그것은 높이가 약 12m에 달한다. 거대한 몸집 전부가 전투와 승리를 위해 설계된 인간형 전투기계이다.

 가동 중인 글래디에이터는 10기 정도일까. 어떤 기체는 소총을 조준하고 50m 밖의 표적을 조준하고 있고, 다른 기체는 장갑의 일부를 떼어내고 공들여서 내부 조정을 하고 있다. 모두 언젠가 찾아올 결전에 대비하는 것이다.

***

 거인들이 전투 기술을 겨루는 연습장의 한 구석에 올려볼 수 있을 법한 망루가 설치되어있다. 수평으로 고정된 길쭉한 직방체의 한 면에서, 갑자기 굉음과 함께 홍련의 불꽃이 분출되기 시작한다. 연소 가스는 금방 연기가 되어 거대한 문 밖으로 흘러나갔다.

 연소는 매우 짧은 시간으로 끝났다.

 연구자로 보이는 흰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차광 고글을 올리며 기록을 한다. 그 등 뒤에서 연기를 뚫고 들어온 장신의 남성이 말을 건다. 짧게 깎고 잘 다듬은 머리카락과 두꺼운 앞가슴이 역전의 군인다움을 뽐내고 있다.

 "어때"

 "실전에는 충분하겠어요. 아우구스토니아의 혼을 쏙 빼놓겠는걸요"

 "녀석들도 틀림없이 이에 가까운 기술을 준비해 올 거다. 방심은 금물이다"

 "넷"

 남성은 신음소리를 내고는 옆에 무릎꿇고 있는 글래디에이터의 어깻죽지에 가볍게 몸을 치올렸다.

 "투사 제군들"

 연습장의 모든 기체가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남성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별이 순환하고, 또 다시 전쟁의 때를 알리려 하고 있다. 게으름피우지 말라. 지금이야말로 더 노력해야 한다. 다음에 있을 영광의 계절을, 다시 우리들의 자유로운 깃발 아래에! 개가를 울려라! 우리들 리베리스탄의 승리와 약진을. 리베리스탄에 영광 있으리!"

 오오, 하는 승리의 함성을 올리는 부하들을 만족스러운 듯 바라본 남성은, 희미하게 올라오는 아침 햇살을 비추는 옥외로 눈을 돌렸다.

 "'무투의 의'… 이에 승리하고 번영을 손에 넣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

 심도 약 100m. 어둑함으로 채색된 바다속을 다섯개의 그림자가 가로지른다.

 범용 인간형 작업기계 융보로이드──통칭 융보로. 높이 8m정도의 기체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데, 이 5기는 잠수 작업에 특화된, 둥근 면의 윤곽이 특징적이다.

 아침 햇살은 거의 닿지 않지만, 시야는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 멀리서 빛벌레가 내뿜는 푸른 빛의 인광이 대량으로 흘러들어오는 덕분이다.

 "왔다!"

 랏셀은 빛의 띠 상류에 꿈틀대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팔찌를 낀 오른손으로 진한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는 옅푸른 눈동자를 집중시킨다. 잔뜩 긴장한 체구에서 내뻗은 양 손이, 조종간의 감촉을 확인한다.

 인광 안쪽에서 나타난 그림자는 순식간에 그 수를 늘려갔다.

 동료의 소리가 통신 스피커로 흘러들어온다.

 <저녀석들, 나타나셨구만!>

 콕스다. 랏셀보다 한 살 아래인 15살. 거무잡잡한 얼굴에 새하얀 치아를 보이며, 언제나처럼 겁없는 표정을 띄우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테아시, 안전장치 제대로 풀어놔라? 요전번처럼 패닉 일으키지 말라고>

 <알고있어! 너야말로 실수하지 말라구!>

 입에 뭔가 물고 있는 듯한 소년의 대답이 들린다. 아마도 머리끈이겠지. 콕스와 같은 15살. 일하기 전에 긴 머리를 다시 꽉 묶는 게 테아시의 징크스다.

 <랏셀>

 해상의 감시선에서 통신을 듣고 있던 대장이, 중년 여성 특유의 중후함과 무시무시함을 포함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네 랏셀입니다"

 <포메이션은 맡기마>

 "알겠습니다. 모두들, 산개한다. 거친 해류에 조심하도록!"

 랏셀의 목소리에 5기의 기체들이 수평방향으로 산개한다.

 그 사이에도 그림자는 한층 더 짙어졌고, 이윽고 하나하나의 윤곽이 구분될 정도가 되었다.

 고래오징어.

 이 바다에 살고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위협이며, 영악함에 있어서는 비교할 것이 없는 해서생물이다.

 빛벌레의 인광에 에워쌓인 하얗고 거대한 체구. 포식구의 주위에서 자라나, 휘감기듯 꿈틀거리는 10개의 촉수. 좌우 몸의 측면에 나란히 늘어져있는 거대한 눈. 한 번 잡아채면 무서울 정도의 힘으로 상대를 비틀어 뭉개버리는, 그야말로 바다의 왕자이다.

 그 무리가 지금, 눈 앞에 접근하고 있다.

 긴장과 공포가 한번에 몰려올 때, 그를 구현화한 듯이 해류가 거칠어졌다. 잠수 융보로는 밸런스를 잃고 제각각으로 격하게 흔들린다.

 <꺄아악!>

 테아시의 비명을 억누르듯이 지시를 내린다.

 "균형을 잃지 마!"

 수를 더욱 늘려가는 고래오징어가 서로 뒤얽히며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랏셀은 그 움직임을 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약간의 무리가 콕스의 기체를 향하고 있었다.

 "콕스, 떨어지지 마!"

 <알고 있어!>

 콕스는 조종간을 아주 살짝 움직여 무리의 중앙을 정조준하고──순간, 트리거를 당겼다.

 기체 상부에 장착되어있던 발사관에서 어뢰가 사출되며 무리를 향해 간다.

 대량의 거품을 내뿜는 어뢰가 무리의 정면에서 작렬했다.

 안에 들어있던 마그네슘이 발화하며, 어둠을 찢어버리듯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무리가 한 순간 주춤하더니, 이쪽을 적으로 인식하고는 사나운 눈초리로 힐끔 노려본다.

 <먹혔다! 부탁한다구, 한 마리라도 빠져나가면 끝장이야!>

 "테아시, 거리 셋트해! 간다!"

 <으, 응!>

 거친 계기류 사이에 파묻힌 다이얼을 돌리고 거리를 입력한다. 발사, 하는 소리에 맞춰 두번째 어뢰가 사출된다.

 총 4개의 어뢰는 입력된 거리에서 화학반응을 개시하고는 강렬한 섬광을 내뿜으며 머리 측면을 파고들었다. 감시하던 콕스가 소리쳤다.

 <예광어뢰, 항주중!>

 "좋아, 됐어!"

 <이대로 빨리 가라!>

 어뢰의 발사음과 빛으로 무리를 유인해 외해로 향하게 한다. 랏셀 일행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이것 뿐이다.

 <전원 대피!>

 갑자기 들려온 대장의 목소리에 랏셀의 등이 서늘해졌다.

 <대피해,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조종석에 나있는 창문을 향해 조건반사처럼 달라붙는다. 멀리 위쪽 해면에 항적을 남기며 돌아다니는 거대한 배의 그림자가 보였다.

 "저건 군함! 아우구스토니아의?!"

 <왜 이런 곳에?!>

 <여긴 비무장 완충수역이잖아!>

 격하게 말하는 테아시와 콕스의 목소리는 패닉 상태에 가까웠다. 랏셀은 망설임 없이 급부상했다.

 <뭘 하려고, 랏셀!>

 "고래오징어 무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빨리 알려야 해!"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저건 적이라구?!>

 "공격당하면 끝장이야!"

 고래오징어가 적으로 인식하고 습격을 가하면, 아우구스토니아의 전투함은 랏셀 일행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응전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랏셀은 조종간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

 "발광신호 수신. 리베리스탄의 고래오징어 몰이꾼인 같습니다"

 통신병이 브릿지에 보고를 올린다.

 "고래오징어 몰이……"

 군함 브릿지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소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은빛의 긴 머리를 땋아 묶었고, 화사한 몸에는 군복을 걸쳐입었다.

 짙은 수염의 살찐 함장이 대답한다.

 "접근해오는 고래오징어 무리를 영해 밖으로 몰아내는 녀석들입니다, 스카야 사령관님"

 어딘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섞여있는 말투였다. 꼬마 계집에게는 일 없다는 듯, 함장은 음파탐지병을 불렀다.

 "음파 신호는"

 "감지, 되지 않습니다. 녀석들이 쏜 어뢰에서 발생한 거품이 아직 걷히지 않은 데다가, 고래오징어가 있는지 없는지는"

 "흥……"

 "하지만, 이렇게 고래오징어 몰이가 경고해온다는 뜻은"

 "그렇게 보이게끔 하는 파괴공작원일지도 모르지. 적국민임에는 변함 없다"

 "하지만"

 정말 고래오징어 무리가 있다면, 전투가 벌어질 경우 아무리 전투함이라 해도 아무런 상처도 없이 끝나지는 않는다. 언쟁을 계속하는 함장과 음파탐지병에게, 눈썹을 찌푸린 스카야가 입을 열었다.

 "함장.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호오?"

 "스키더 비서관님이 승선했습니다"

 스카야가 언뜻 본 브릿지 구석에, 묘령의 여성이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스키더라 불린 여성은, 큰 웨이브를 한 머리카락 사이로 수수께끼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투함의 브릿지에서 벌어진 두 여성의 은밀한 응수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으로"

 날카로운 음성을 남기며, 스카야는 브릿지를 뒤로 했다.

***

 급속 부상을 버텨낸 잠수 융보로가 해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해치에서 몸을 내밀자 펼쳐진 눈앞의 광경에, 랏셀은 소름이 돋아났다. 아우구스토니아 군함의 뱃전이, 도무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압도적인 양감을 내뿜으며 줄지어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멈춰세워야 한다. 고래오징어와 전투를 벌이게 해서는 안 된다.

 랏셀은 거대 전투함의 동력음에 지지 않도록,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이봐─! 배를 멈춰! 어─이!"

 양 손을 크게 뻗으며 경적을 부른다. 예광 어뢰에 신경이 곤두선 고래오징어가 언제 적의를 보일지 모른다. 벽처럼 늘어선 뱃전에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목이 갈라져가던 때에, 갑판에 작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군모. 제복──군인. 역광으로 인해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배를 멈춰줘!"

 매달리는 듯한 절규에, 그림자가 뱃전에서 몸을 내밀었다.

 여자. 소녀.

 약간 늦게 찾아온 인식에 숨이 막혔다.

 군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느다랗고 청초한 얼굴. 영리하고 철저하게 이쪽을 내려다보는, 강한 눈빛을 지닌 눈동자. 검은 제복으로 몸을 감싸고, 바닷바람에 긴 옷자락을 나부낀다.

 사로잡힌듯 옴짝달싹도 못하던 몸을 겨우 가눌 수 있게 된 것은 소녀가 익숙한 동작으로 권총을 뽑았을 때였다.

 "양 손을 머리 뒤로 올려!"

 "읏…"

 들려온 큰 목소리는 틀림없는 소녀의 목소리였다. 권총을 쥔 새하얀 손만이 다른 세계의 것처럼 보였다.

 "양 손을 머리 뒤로 올려! 아군 함선에 접근한 목적은 뭐지?"

 "이 밑에 고래오징어가 있어, 배를 멈춰줘"

 바닷바람과 파도음에 파묻히지 않도록, 랏셀이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친다. 한 편, 소녀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이 울려퍼졌다.

 "적에게 경고라니 꽤 친절하구나. 파괴 공작원이 아닌지 의심된다만"

 "난 그런 게 아니야!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할 뿐이라고!"

 "고래오징어따위, 우리 화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

 "틀려!"

 이 급의 함선이라면 대량의 폭뢰를 싣고 있으리라. 바다 속에서 눈으로 본 무리의 규모라면 대항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랏셀의 생각은 달랐다.

 "저녀석들에게 저녀석들에게, 사람을 죽이게 하고 싶지 않아!"

 "뭐?"

 "고래오징어에게 손대지 마!"

 소녀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동요의 빛이 떠올랐다.

 고래오징어에게, 사람을?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라는 표정이었다. 소녀가 의아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으려 하던 그 때, 피융 하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겹쳐졌다. 갑판에 설치되어있던 폭뢰 투사기가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읏!"

 앗 하는 순간도 없이, 낮은 땅울림과 함께 폭뢰가 사출되었다. 커다란 앙각으로 투사된 폭뢰가 허공을 가로지른다.

 바로 아래의 고래오징어 무리를 감지한 브릿지가,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공격해버린 것이다. 날카로운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 폭뢰는 소정의 심도까지 도달한 뒤 작렬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말문이 막힌 랏셀과 소녀의 발밑에, 무서울 정도의 내압을 내뿜는 구체가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해면과 닿는 순간, 충격파가 거대한 물기둥으로 모습을 바꾸며 높이 치솟았다.

 소녀는 뱃전의 난간을, 랏셀은 융보로의 해치를 붙잡아 몸을 지탱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폭뢰는 계속해 작렬하고, 물보라치는 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랏셀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제발, 우리들이 어떻게든 할테니까! 어서──"

 치솟는 물기둥의 건너편, 갑판에는 이미 소녀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목소리가 닿았을까, 아니면.

 확인할 틈은 없다. 해치를 향해 밀려오는 엄청난 기세의 물에 저항하며, 힘으로 해치를 폐쇄한다. 배수 장치를 기동시키고, 조종간을 움켜쥔다. 해야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

***

 스카야는 브릿지를 향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달려오는 사이에도, 고래오징어 몰이를 하던 잠수 융보로──자신과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으면서도 진지함을 머금은 눈동자의 소년──의 외침이 귓가에 멤돈다. 손대지 마. 죽이게 하고 싶지 않아.

 그 강한 의지가 옮겨붙기라도 한 듯, 스카야가 외쳤다.

 "뇌격 중지! 지금 당장!"

 함장보다 빠르게 스키더가 날카롭게 제지한다.

 "스카야, 판단을 그르치지 마라"

 "저들은 민간인입니다!"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이지?"

 "누님!"

 함장은 불쾌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스키더 비서관은 21살, 스카야 사령관은 16살. 어린 나이에 중앙 정부의 요직에 있는 자매의 대립은, 현직 선원으로서 성가시기만 할 뿐이었다. 특히, 스카야는 어디까지나 본 함대의 특무 사령일 뿐, 실질적인 지휘권은 함장에게 있다.

 부글거리는 속내를 숨기고, 함장은 옆에 있는 포대장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공격을 멈추지 마라. 고래오징어가 우리 영해로 접근하지 못하게 해"

 "적국이라곤 하나 고래오징어 몰이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증거를 남기지 마, 라는 말이야"

 고래오징어 몰이는 미천한 일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적 아군 양쪽 모두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적이라고는 하나 위해를 가할 상대가 아니다. 위해를 가한다면,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된다.

***

 계속해서 작렬하는 격뢰에, 바다는 격해질대로 격해져있었다. 콕스 일행의 잠수 융보로는 폭발하는 압력에 삼켜지듯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미 상하좌우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오줌 세듯 흘러나오는 통신에 동료들의 비명이 들린다.

 고래오징어의 무리도 그와 다를 바 없었다. 기민한 움직임으로 직격은 피했으나, 거대하고 무수한 연체가 여기저기로 도망가는 모습은, 괴물이 몸부림치는 지옥 그 자체였다.

 "아파라……"

 욱씬거리는 통증을 견디면서 필사적으로 기체의 중심을 잡는다. 그 때 동료들의 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빠져나갔어!>

 "뭐라고?!"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이 얼어붙었다.

 <세 마리…… 7시 방향……>

 거기까지 말하고, 동료는 숨이 끊어진듯이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창문에 볼을 바싹 붙이고 확인해보니, 확실히 그림자 셋이 등 뒤로 멀어지고 있었다.

 "젠장! 위험해, 지금부터 쫓아도 따라잡을 수 없어!"

 <그런……!>

 통신기에서 테아시의 신음소리가 들려온 그때였다. 3기의 코앞에 팟 하며 섬광이 터졌다.

 <……랏셀!>

 어뢰를 끌어안은 랏셀의 기체가, 빛과 거품을 내며 바다속을 크게 선회한다. 융보로의 사출관에서 예광 어뢰를 빼서는 탄두를 직접 착화한 것이다.

 "무리로 돌려보내!"

 연소열을 향해 적의를 나타낸 세 마리를 끌고와, 진행 방향을 외양으로 바꾼 무리 본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한다.

 탄두가 내뿜는 빛이 꺼져갈 때, 랏셀의 기체는 무리 근처까지 접근해 있었다. 이탈했던 세 마리는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갈 맘을 먹은 모양이었다. 전진 속도를 늦추는 랏셀의 기체를 넘어서서 무리에 합류하고 있었다.

 "좋아, 그대로……"

 그 때, 등뒤에서 충격파의 벽이 습격해왔다.

 무리를 몰아내는 파상공격의 마지막 일파가 덮쳐와, 기체를 나뭇잎처럼 들쑤셨다. 폭압이 밀려오고, 그로 인해 기체가 날려졌다. 끊기기 직전의 통신기가 콕스와 테아시의 절규를 전했지만, 랏셀은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답신을 할 수 없었따.

 기체는 팔다리가 뜯겨지고, 플로트가 박살나 천천히 바다속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시선 끝에 바닷물이 침수하는 장면이 보인다. 의식이 흐려져간다.

 "으으……, 으……"

 차가운 물의 감촉이 하반신에서 가슴 부근까지 차올랐다. 공기가 빠져나가는 순간, 수압에 짓눌려 죽겠지. 마음 한 켠에서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그것은 뇌가 오랫동안 보여주는 환각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의식은 반대로 살짝 청명해진 기분이 들었다. 둥근 창문에서 부드러운 취색빛이 흘러들어오더니 조종석을 가득채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창문 밖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눈을 의심하게 하는 '그것'은 한 번 더 사뿐히 춤추듯 모습을 보이더니──눈 앞이 캄캄해졌다. 한 순간의 블랙 아웃.

 다음 순간, 기내는 바닷물로 완전히 가득 차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랏셀은 아직 희미하게 의식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특이했던 점은, 바로 눈 앞에 무언가가──'누군가'가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아니다.

 붉은 색을 두른 우윳빛 표면이, 빛벌레의 그것과 많이 닮은 취색 인광에 둘러쌓여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뭐……지……"

 라며, 그것은 타원형에 가까운 두개의 '눈'을 떴다. 눈동자가 없는, 짙은 남색의 눈. 공포를 느낄 기운조차 없던 랏셀은, 어째선지 두 눈동자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희고 커다란 촉수처럼 생긴 팔을 뻗어 랏셀을 끌어올린다. 이미 감각이 마비되어있을 터인 피부에 온기가 전해진 그 때, 시야가 완전히 어둠에 파묻혔다.

***

 "……눈을 떠! 랏셀! 야!"

 테아시는 벌써 5분이나 심폐 소생술을 계속하고 있었다. 늑골이 부러졌는지 가슴을 누를 때마다 입에서 물이 꿀럭꿀럭 나오진 하지만, 랏셀은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의 거처──모선을 중심으로 수십 척의 소형선을 연결한 해상집락이다.

 필사의 구조작업을 지켜보는 콕스, 대장, 집락의 동료들 모두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다. 융보로에서 끌어낸 랏셀은, 심박도 호흡도 정지해있었다.

 손바닥으로 가슴판을 리드미컬하게 압박한다. 10회 정도 반복하고, 입술을 맞춰 숨을 불어넣는다. 가슴은 위아래로 움직이지만 자발적으로 호흡을 되찾을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들것으로 옮겨지는 남성도 있다. 무리에서 떨어진 고래오징어의 존재를 보고한 융보로의 조종사였다. 안전벨트가 풀어지고, 격한 해류가 온몸을 타격한 것이다.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다. 벌써 반 년 가까이 바다를 청소하는 작업에서 목숨을 잃는 자는 없었는데──

 집락민들은 목소리를 떨구며 불운을 저주했다.

 "본국에는 보고했나?"

 "그정도의 피해는 현장에서 처리해라, 라던데"

 "……우리들은 버리는 말이란 뜻인가"

 "항상 그랬잖아. 우린 놈들에게 빌붙어있는 몸이니까"

 "그렇다고해서!"

 "동료에게 소리치지 마라. 이 계약 덕분에,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

 외양에서 은하길의 흐름을 감시하며, 다가오는 고래오징어 무리를 목숨 걸고 배제한다. 대가로서 이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식량이나 생활물자가 본국에서 공급된다. 변경의 해상집락에서 살아갈 수단은 이것밖에 없다.

 쿨럭, 하며 랏셀이 물을 토해냈다.

 "랏셀!"

 눈을 가늘게 뜨고, 괴로운 듯 신음한다.

 "으윽……"

 "랏셀, 나야, 알아보겠어?!"

 "……테아, 시…"

 구조 현장에 안도하는 분위기가 흘렀다.

 "다행이야……"

 테아시가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돌리며 쓴웃음을 띄우고, 구조된 랏셀의 융보로를 올려다봤다. 어느정도의 폭압에 휘말린 것인지, 양쪽의 머니퓰레이터와 양 팔이 사라졌으며, 외곽은 크게 찌부러졌다. 이런 꼴로 용캐 살아돌아온 것이다.

 테아시와 콕스에게 부축받는 랏셀이 상체를 일으킨다. 그 순간 날카로운 두통이 머리를 헤집었다.

 "앗, 아파라……"

 "가만히 있어"

 "방으로 옮길 테니까!"

 "아윽…… 고마워"

 엉망이 된 자신의 기체가 눈에 들어왔다. 둥글게 구겨버린 종이조각처럼 되버린 기체에서, 살아돌아왔단 말인가.

 그 심도와 수온, 원래대로라면 절대 살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그렇다, 그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 죽음을 향하던 육체를 감싸준 이상한 감촉.

 그것은, 환각같은 게 아니었다.

***

 고래오징어와 조우한 해역을 벗어나, 함선은 소정의 위치에 정박했다.

 뱃전과 가까운 갑판에, 눈가리개를 씌우고 재갈을 물린 5명의 남녀가 바다를 등진 상태로 기둥에 묶여있었다. 정면에는 같은 수의 병사가 소총을 들고 서있었다.

 스카야의 등으로 부가된 명령의 무게와, 약간 뒤에 서있는 스키더, 그리고 갸름한 얼굴을 한 장신 청년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표정은 평온한 상태였다.

 신음소리를 내는 죄수들의 줄을 천천히 살펴본다.

 그러자, 그 중 한 명의 소녀──폴라가 이쪽을 바라본다. 눈가리개를 쓰고 있기에 볼 수 없을 터인데, 그 안의 눈동자는 확실하게 스카야를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감정을 겉에 드러내선 안된다. 철면피를 유지하는 스카야가 선언한다.

 "아우구스토니아의 질서와 번영에 먹칠한 역적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라"

 "조준!"

 총살대가 외쳤다. 총구가 오르자, 죄수들은 발악하며 울부짖었다. 실금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폴라만은 눈을 가린 채 똑바로 스카야를 바라보더니,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뭔가 말한다. 딱 한 마디.

 하지만, 소녀의 마지막 말은 넓은 바다에 몰아치는 강풍에 휩싸여,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한 것일까. 물어볼 기회는 없다. 영원히.

 스카야는 도망칠 수 없는 운명에 따랐다.

 "──발포"

 "발포!"

 총살대장의 복명복창과 동시에 총성이, 울려퍼지는 비명소리를 차단하듯이 맑은 하늘 아래의 바다로 울려퍼졌다.

 바닷바람과 함께, 총탄을 맞은 죄수들의 목숨이 흩날렸다.

 잠금이 풀리고, 다섯개의 시신이 기둥채로 바다속에 투기된다.

 피에 물든 폴라의 전신도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약간의 물소리만 남기며, 결국 파도소리밖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장신의 청년이 말했다.

 "좋아. 통상 임무로 복귀하라"

 청년은 역적 처형을 끝낸 총살대를 모아 선루로 돌아갔다.

 스키더도 발끝을 돌렸다. 엇갈리듯 지나가면서 스카야에게 속삭인다.

 "잘했다"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그녀는 그 자리를 떠났다.

 스카야가 가면 맡에 억눌러둔 진짜 표정은, 함내에 특별히 마련된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야 흘러넘쳐, 굵은 눈물로 변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폴라……! 미안해. 아팠지. 괴로웠지. 나에겐 너밖에 없었어. 언제나 너랑 함께였어. 그런데!"

 중후한 원탁에 엎드린 스카야는 액자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은 이것 한 장 뿐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거야, 폴라"

 그녀는 죽기 직전, 분명 뭔가 말하려 했다.

 "나를 원망하는 말이었겠지. 그래도 괜찮아. 난 그 말조차 들을 수 없었어!"

 숙청의 대상이 된 죄수들의 처형.

 스카야가 그 지휘를 맡은 것은, 틀림없이, 죄수 중 폴라가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 내에서 스카야의 입장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옭아매기 위한 교활한 역학이 움직인 결과였다.

 노크소리가 울린다.

 뒤이어 "접니다" 하는 목소리에, 눈물을 닦고, 부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들어오세요"라고 대답한다.

 문이 열리고 스나이더의 홀쭉한 장신이 나타났다. 처형에 입회했던 때와는 다른, 애처로움이 넘쳐흐르는 표정이었다.

 스카야에게 다가와,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인다.

 "훌륭했습니다, 스카야 님. 그들은 단죄받아 마땅한 반역자들. 당신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말투는 지금의 스카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반역자?! 아니, 그녀는…… 폴라는 고발자입니다. 관료의 부패를 폭로하고, 바로잡으려 했어요!"

 "스카야 님"

 나무라는 스나이더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는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명의…… 저의 친구였다구요!"

 같은 16살인 폴라는, 정부 고관의 딸로 태어난 스카야가 유일하게, 입장을 신경쓰지 않고 말할 수 있던 상대였다. 세습을 부정하는 중앙 정부의 방침은 먼 옛날에 유명무실해졌으며, 1년 전부터는 서로 역직을 차지하게 되버렸다. 폴라는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스카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형을 선고받고, 그리고──.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이 손으로 처형하기 전에"

 다시 넘쳐난 눈물을 숨기지도 않고, 스카야는 낮게 읊조렸다. 그 눈동자에 깃든 어두운 감정에 값싼 위로의 말따위 소용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나이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평소 사용하는 물건으로 가득한 넓은 방을 바라본다. 벽에는 고가의 그림이 걸려있고, 희미하게 조명의 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스나이더의 시선이 무엇보다 눈에 띄는 곳에 걸린 아우구스토니아 국기에 닿자,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아우구스토니아는 이제 드디어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고, 리베리스탄의 위협에 거국적으로 일어설 때"

 억누른 목소리가 후벼파듯 들려온다.

 "그래서 숙청에도 이유가 있다고? 당신은 상관없겠지. 아버님이 쌓고있는 권력도 언젠가는 당신의 것이 될테니까"

 "그렇게 말해선 안 됩니다. 세오드라이트 각하의 강병정책이야말로, 우리 국가의 생명줄. 당신도 이렇게 그 주축 중 하나를 맡고 계시지 않습니까"

 스카야의 얼굴이 자조로 일그러졌다.

 "전투함에 틀어박혀서, 인형 놀음에 빠져있는게 말입니까"

 "저는 믿고 있습니다──'오그멘티드 바디(augmented body)'의 연구는 언젠가 결실을 맺으리라고"

 격려의 말을 하는 스나이더였지만, 그 말은 어디까지나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저만은, 당신의 편입니다"

***

 "먹을 수 있으면 먹어야해?"

 "느긋하게 쉬고 있으라고"

 사이드 테이블에 식사 준비를 하면서, 콕스와 테아시가 걱정하는 말을 남기며 나갔다.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그들을 배웅하고, 랏셀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밤바다가 펼쳐져있다.

 파도는 잔잔하다. 수면에 약한 별빛이 반사된다.

 오늘 일어난 일은 틀림없이 고래오징어 몰이를 하는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위기였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다.

 어떻게 살아났지?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무언가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유는 없다. 직감인가. 본능인가. 죽기 직전에 본, 온몸으로 느낀 그 체험은, 대체 뭐였을까.

 안개가 낀 기억의 초점을 맞춰보려 눈을 가느다랗게 뜨자, 갑자기, 시야를 가리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파도치는 물결에 밝혀지는, 취색 인광.

 "──읏! 고래오징어?!"

 어둠에 눈을 익숙해지게끔, 서둘러 침대 옆에 있는 램프를 껐다. 인광은 홍색을 두르고, 깜빡거릴 때마다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니야"

 랏셀은 절뚝거리는 몸상태도 잊고 튀어오르듯 일어나, 맨발로 방을 뛰쳐나갔다.

 작게 흔들리는 선루를 돌아, 서둘러 난간으로 올라선다.

 인광은 사라지고 없었다.

 잘못 봤나 싶어 몸을 돌림과 동시에, 머리를 쑤시는 통증이 올라왔다.

 "아파라……"

 철썩, 하는 물소리.

 묶어둔 잠수 융보로의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표류물이 부딪친 것일까. 아니면.

 개방 통로의 벽에 걸린 손도끼와 램프를 들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다가가서, 슬쩍 훔쳐본다.

 램프를 비추자 나타난 것은, 본 적 없는 생물체였다.

 "뭣?! 뭐지……?!"

 흰 우윳빛을 한 그것은, 아마도 양 손보다 살짝 작은 정도의 자그마한 생물체였다. 융보로의 외곽에 찰싹 달라붙은 평평한 촉수처럼 생긴 2개의 무언가가 교차하며 달라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기어오르려는 듯이 보였으나, 오르려 할 때마다 미끄러졌다.

 "해파리…… 는 아닌데"

 타고난 호기심이 치솟아, 머리처럼 보이는 둥근 부분을 손도끼로 살짝 건드려본다. 몰캉몰캉한 감촉이 전해질 뿐 전혀 반응하지 않고, 꼬물꼬물거리며 촉수를 뻗기만 할 뿐이었으나 이내 미끄러진다.

 "응…… 으응……?"

 좀 더 찔러보려고 팔을 잔뜩 뻗자,

 "아, 으왁!"

 발이 미끄러지며 첨벙 소리와 함께 바다로 떨어졌다. 호흡을 잡을 겨를도 없이. 허둥대는 랏셀의 눈앞에, 생물체가 나타났다.

 홍색빛을 두른 하얀 몸뚱이에, 취색 인광이 빛난다.

 "……!"

 생물체가 눈꺼풀을 열었다. 남색의 타원형 2개가 가느다랗게 보였는데, 마치 웃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때.

 죽음을 앞둔 순간에 본 광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크기만 다를 뿐 그 때 랏셀을 감싼 '누군가'와 쏙 빼닮았다.

 그 순간 숨막힘을 견디지 못하고, 랏셀은 허둥대며 해면에 얼굴을 내밀었다. 생물체도 역시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네가…… 날 구해준 거야?"

 슬쩍 손을 뻗자, 생물체는 한 순간에 랏셀에게 착 달라붙었다.

 "아, 잠깐…… 어이, 아하하…… 너 정말 뭐냐, 아하하……"

 통증도 잊은 채, 첨벙첨벙 물장구치며 장난치고나서, 랏셀은 융보로에 기어올랐다. 생물체를 양 손에 태우고, 별빛과 배에서 반사되는 빛을 받으며 멀뚱멀뚱 응시해본다.

 "처음 보는데…… 대체 뭐지?"

 생물체는 멍하니 시선을 던질 뿐, 발버둥치지는 않는다.

 "어이, 거기 누구 있나?"

 "큰일이다!"

 램프를 든 대장이다. 생물체를 품에 안고, 서둘러 융보로 해치로 숨어든다. 숨을 죽이고 있자, 대장이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떠나갔다. 둥근 창을 통해 지켜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휴우, 위험했네─. 대장에게 들켰으면 혼났을 거야. 고마워, 너, 헉……"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무심코 말문이 막혔다. 융보로 콘솔 옆에서, 생물체가 홍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 으아……!"

 생물체가 쏘는 빛에 응하듯, 깜빡깜빡하며 콘솔의 램프가 명멸하기 시작하고, 이윽고 융보로가 혼자서 기동했다. 계류 록을 해제한 기체가 바닷속으로 춤추듯 내려간다.

 "우와와, 뭐지?!"

 눈부시게 빛나면서, 생물체는 마치 랏셀을 부르듯이 촉수를 움직였다.

 "앉아라, 는 뜻인가……?"

 시키는대로 앉아서 조종간을 잡은 순간, 모든 계기판 침이 돌기 시작했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랏셀에게, 생물체가 고개를 끄덕인다. 스러스터 레버를 가동한 순간, 랏셀은 쿵 하며 등받이에 밀쳐졌다.

 이 기체의 성능으론 상상도 못할 스피드.

 조종간을 당기자──팽개쳐지듯이 선회한다.

 더욱 가속한다.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 뒤, 급감속한다.

 "굉장해…… 굉장해, 굉장하잖아! 이런 게 가능하다니!"

 바닷속에 아침햇살이 비춰지기 시작한다.

 작은 햇살이 여럿 모인 광선으로 짜인 커튼 사이를, 융보로가 자유자재로 헤엄친다.

 콘솔에 두개의 촉수를 대고 있는 작은 생물체가, 랏셀에게 한 번 더 미소지어 보였다. 랏셀도 같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너 대체 뭐냐?! 아하하하……"

 약 한 시간 정도 그렇게 놀았을까.

 이른 아침의 해면에, 융보로를 부상시켰다. 해치를 열고 몸을 내뻗자, 떠오르기 시작하는 태양이 보였다.

 이상한 일이 또다시 일어났다. 잠수 융보로로 이런 기동을 할 수 있다니. 정말이지, 그제와 어제와 오늘이 너무나도 달라서 머리로 쫓아갈 수가 없다──.

 "여어, 좋은 아침"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소형선의 뱃전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부스스한 머리의 남성이, 셔츠 한 장을 걸친 차림으로 아침해를 맞으며 체조를 하고 있었다.

 "호킨스"

 호킨스가 약간 삐뚤어진 원형 안경의 뒤로, 날때부터 지닌 웃는 듯한 눈으로 랏셀을 바라봤다.

 "묘한 녀석을 데리고 왔구나"

 "에? ……앗!"

 해치 가장자리에서 어느샌가 생물체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킨스를 멀뚱멀뚱 응시한다.

 "이, 이건, 그……"

 호킨스는 체조를 계속하며 말했다.

 "그거, 뭐냐?"

***

 작업대 위에서, 생물체는 질리지도 않다는 듯이 기계 부품을 가지고 놀고 있다.

 테아시와 콕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둘은 입을 쩍 벌린 채로, 돌아보더니 합창하듯이 말했다.

 "……이거 뭐야"

 해상집락에서 호킨스가 운영하는 공방선의 일각. 어딜 봐도 정체불명의 기계나 부품이 굴러다니고, 방 자체가 복잡하게 얽힌 하나의 공구처럼 보인다.

 넓게 자리잡은 구석 작업장에는, 엉망이 된 채로 옮겨진 랏셀의 기체가 놓여있었다. 의뢰받은 수리 도중인지, 완전히 신품인 팔이 한 짝만 달려 있었다.

 생물체는 너트가 끼워진 긴 볼트를 가지고 놀고 있다. 너트를 촉수로 찰싹찰싹 튕기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 재밌는 모양이다. 미끌미끌하고 새하얀 몸의 표면만 빼면, 모습과 행동은 어린 아이에 가깝다.

 "으음……"

 거북한 표정을 한 랏셀이 머리를 긁적이고, 호킨스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대체 뭔지 모르겠네"

 랏셀에게 호출된 테아시와 콕스는, 오자마자 묘한 생물체를 보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호킨스도 모르겠어?"

 "응"

 "뭐랑 비슷한지도 모르겠어……"

 "굳이 말하자면…… 고래오징어?"

 "이런 고래오징어가 어딨냐!"

 질감은 비슷하지만, 모습은 전혀 닮지 않았다.

 호킨스가 근처에 있는 매직 핸드를 잡더니 생물체를 서슴없이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기믹에 흥미를 느꼈는지, 생물체가 재롱부리듯이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호킨스는 유쾌하다는듯 말했다.

 "이녀석은 말이야. 좀 특이한 게 아닌걸"

 "무슨 소리야?"

 "보여줄게"

 호킨스는 생물체의 등으로 보이는 부분을 양손으로 훌쩍 들어올린다. 물렁하게 늘어진 생물체는 싫어하는 기색도 않고 얌전하다. 호킨스가 작업장에 있는 외팔의 융보로에 다가가더니, 생물체를 해치 안에 넣어버렸다.

 조종석에는 이미 랏셀이 있었다. 생물체를 받고는 창문 밖의 콕스 일행에게 손을 살짝 흔든다. 장난끼 가득한 표정이다.

 "대체 뭘 하려고?"

 "뭐 잠시 기다려 보라구, 손님들"

 호킨스가 안달하는 테아시를 놀려먹던 그때였다.

 융보로의 창문에서 취색 빛이 흘러넘치기 시작하더니, 점점 강하게 빛났다.

 "어, 오오?"


 주춤하는 콕스에게, 호킨스가 짖궂은 표정을 지었다.

 "손이라도 흔들어주라구"

 "어, 으응"

 영문모르고 손을 흔들자, 한쪽밖에 없는 머니퓰레이터가 답하듯 흔들린다.

 "랏셀이 조종하는 거겠지. 이게 뭐 어쨌다고... 헉?!"

 콕스가 취한 세세한 행동까지도, 머니퓰레이터가 완벽한 동작으로 따라하고 있었다.

 "우와아?!"

 테아시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잠깐, 대체 뭐야?!"

 주먹을 쥐거나 펼치거나, 손가락을 복잡한 모양으로 만들거나, 그 어떤 동작을 취해도 융보로의 팔로 똑같이 재현했다.

 "이제 됐어, 랏셀"

 호킨스가 말하자, 머니퓰레이터가 자연스럽게 종료, 라는 사인을 보냈다.

 "저 생물체는 말이지. 기계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케하는 힘을 갖고 있어"

 "뭐라구?!"

 "설마, 전신이 이런 레벨로 움직인다는 말이야?!"

 "그래. 나는 봤거든"

 "우오옷, 굉장해! 그럼 고래오징어 몰이따위 껌이잖아!"

 호킨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정도가 아니야, 이 힘은"

 해치가 열리고, 랏셀이 얼굴을 내민다.

 "호킨스랑 말해봤어. 혹시 어쩌면…… 이곳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여기를 나가……? 랏셀, 너 대체……"

 본 적 없는 강한 눈빛을 한 랏셀이 말을 잘랐다.

 "바다에선, 지금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없어"

 "너……!"

 "설마……?!"

 숨을 삼킨 테아시와 콕스에게, 랏셀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본토로 갈 거야"

***

 랏셀 일행의 신청에, 대장이나 집락의 주민들이 따끔한 눈총을 보냈다. 당연하지. 융보로 조종사 셋과 수리장이 사라지면, 고래오징어 몰이 작업에 크나큰 지장이 생긴다.

 그래도, 넷의 결의는 굳건했다. 진지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건 도박이야. 난 랏셀에게 걸었어"

 대담하게 말하는 콕스에게, 집락 주민들이 불평을 토해낸다.

 "융보로 조종사가 셋이나 빠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진 않겠지?"

 "너희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은혜도 모르냐!"

 "그래! 늬들이 내팽개친 작업은 우리가 맡아야 하는데, 너무 제멋대로잖아!"

 호킨스가 심기 불편하다는 듯이 뺨을 긁적인다.

 "본토에서 자리를 잡고, 고향의 은혜를 갚겠다는 건데요"

 "유입종자는 닥치고있어!"

 랏셀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고, 나지막히 말했다.

 "난, 글래디에이터 조종사가 될 거야"

 집락 주민들이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그라……?"

 누군가가 반문하려다 말을 삼킨 그 때, 박장대소가 터졌다.

 "이녀석 또 헛소리하는군!"

 "하필이면, 글래디에이터 조종사라니……"

 "조금은 분수를 아는 편이 좋다구, 랏셀!"

 그럼 너희들은, 하고 소리친 랏셀에게,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모두 평생, 여기서 고래오징어 몰이나 하면서 살 생각이야?! 여기에 맨땅을 밟아본 녀석이 얼마나 있지?! 본 적도 없는 놈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내주고…… 우리들, 대체 뭘 위해 사는 건데?!"

 누구 하나, 반론하는 자는 없었다.

 그건 모두 마음 속에 숨겨둔 의문 그 자체였다. 답을 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죽어가면서 스스로 무언가 할 수도 없다. 무력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살아온 그들에게, 반론할 말같은 건 없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디 보여줘봐. 너에게 그럴 힘이 있는지를"

 랏셀이 대장을 바라본다. 눈에 깃든 결의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를 확인하고, 대장은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내가 상대다. 이기면 좋을대로 해. 박살난 융보로도 주마"

 주민 모두 술렁이기 시작한다. 콕스와 테아시도 과연 불안했는지 마주보고 시선을 교차한다. 대장의 실력은 충분할 정도로 알고 있다. 호킨스는 즐겁다는 듯이 턱을 긁고 있었다.

 랏셀은 똑바로 대장을 응시했다.

 "좋아. ……대장, 고마워"

 대장은 싱긋 웃었다.

 바로 대결 준비가 시작됐다. 잠수 융보로가 2기 준비되어, 제비를 뽑아 오를 기체를 정한다.

 자신의 기체 해치에 들어가려는 순간, 랏셀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생물체를 끌어안았다.

 "부탁한다. 네 힘이 있으면, 대장도 이길 수 있어"

 남색의 커다란 눈동자가 웃고있는 것처럼 가느다란 것을 확인하고, 랏셀은 해치를 닫았다.

***

 전투함이 예항하는 해상 연구 시설──아우구스토니아가 막대한 군비를 들여 건조했으며, 스카야가 사령을 맡고 있는 거대함이다. 그 존재는 극비로, 정부 상층부조차 자세한 내막을 아는 자가 별로 없을 정도이다.

 그 연구 대상인 오그멘티드 바디는, 아우구스토니아의 각지에서 발견되어, 몇기나 사장된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전력으로 구동하는 높이 10m의 인형 기계이며, 구조의 복잡함과 잠재능력에 있어서는 융보로를 까마득하게 초월한다.

 아우구스토니아와 리베리스탄이 함께 주전력으로 쓰고 있는 글래디에이터는, 전투용으로 특화된 융보로에 지나지 않는다. 오그멘티드 바디의 운용이 확립된다면, 리베리스탄에게 결정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직 실전 투입까지 이르지 못한 오그멘티드 바디는 쓸모없는 장물, 군비 낭비라며 소리치는 정부 내의 의견도 있다. 산업 전략 대신인 아버지, 세오드라이트의 명을 받은 스카야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달려있다.

 전투함에서 연구시설로 이동한 스카야는, '어떤 기체'에 올라탔다.

 글래디에이터는 아니다.

 오그멘티드 바디도, 아니다──아마도.

 아마도, 라는 것은, 이게 완전히 수수께끼에 쌓인 기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국내에서 발견된 것임은 확실하지만, 다른 바디와는 모든것이 달랐다.

 흰 바탕을 한 기체에, 가슴부터 양 어깻죽지를 뒤덮는 붉은 갑옷처럼 생긴 외장. 높이 9m에 조금 작고 둥글게 둘러진 윤곽은, 울퉁불퉁한 오그멘티드 바디와는 전혀 달랐다. 설계할 때 생각한 것을 그대로 물건으로 만들어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기체였다.

 시설 내 연습장에서 글래디에이터와 모의전에 도전한 스카야였으나,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움직임은 둔하고 무거우며 위력은 떨어지고,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선 마치 석상과 다를 바 없었다.

 글래디에이터의 몸통박치기를 제대로 맞고, 버텨보지도 못한다.

 "큭……!"

 기체는 허망하게 쓰러졌다.

 "괜찮으십니까, 스카야 님!"

 상대 조종사가 글래디에이터에서 내리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스카야도 기체에서 내렸지만, 한쪽 손을 올려서 대답하는 게 고작이었다.

 무력하다.

 오그멘티드 바디의 연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이 기체는 아예 해명을 거부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하지 못하겠다.

***

 모의전이 끝난 뒤에도, 스카야는 혼자 시설에 남아 무릎꿇은 거인의 조종석에 틀어박혔다.

 대체 이건 뭘까.

 융보로도 아니고. 오그멘티드 바디와도 다르다. 외견만 보면 높은 기술력이 느껴지는데, 성능은 매우 뒤처진다. 글래디에이터조차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오그멘티드 바디의 연구 시설에 있어서, 이 기체는 전혀 기대받지 못하고 있다. 자신만이 고집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나랑 비슷하네"

 차가운 콘솔을 쓰다듬는다.

 "제지당하고, 누구와도 섞이지 못한 채, 돌아봐주는 사람도 없어"

 제어를 못하고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혼잣말은 오열로 변했다.

 "……친구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저항하지도 못했어. 무력하고, 자유도 없고…… 나는 당신이랑 비슷해"

 그때였다.

 손끝에 닿은 검은 판넬이 갑자기 빛을 발했다. 녹색의 뭔지 모를 문자가 맹렬한 기세로 나열되더니, 스카야를 태운 조종석의 의자부분 전체가 빛에 휩싸였다.

 "이건……?!"

 지금껏 본 적 없는 반응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리고──어디서인지,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나. 나. 지원. 당, 신>

 "뭐……?!"

 사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목소리──언어는 기체에서 들려왔다. 분명히 스카야를 향해서.

 당신, 이라고.

 쿵 하는 충격이 왔다.

 "읏!"

 기체가 혼자서 일어선 것이다.

 <지원. 기동──정상>

 기동. 즉──지금까지 이건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말을 잃은 채, 스카야는 홀린 듯 조종간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의자의 빛이 정보 표시로 변했다. 방대한 데이터가 차례대로 떠올랐다. 그 중, 스카야는 인체의 모식 이미지를 발견했다.

 "이건──"

 명백하게 스카야 자신의 모습이었다. 기체가 생체 데이터를 읽고 추출한 것이다.

 <당, 신. 파일럿. ──승인>

 기체의 '눈'이 녹색으로 빛났다.

***

 실력 대결은, 서로의 융보로 등부분에 난 케이블을 뽑는 것으로 정해졌다.

 2기의 잠수 융보로는, 얕은 바다에서 어떻게든 상대방의 뒤를 노리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크…… 말 한 만큼의 실력은 있군!"

 랏셀의 기체는 무서울 정도의 기동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게 그 '생물체'의 작용이라는 점을, 대장이 알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뱃전에서 내려다보는 주민들도 같았다. 대장을 압도하는 랏셀의 움직임에, 그 누구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이어이……!"

 "말도 안 되잖아!"

 테아시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물체의 덕분에 매끄러워진 융보로의 움직임을 보긴 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옆에 있는 콕스는 이미 승리를 확신했는지,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있었다.

 랏셀도 우위를 인식하고 있었다.

 생물체가 쏘는 취색 빛은, 융보로의 반응을 극적으로 향상시켰다.

 "대장…… 미안해!"

 호응하듯 생물체가 빛을 강하게 낸 순간, 랏셀은 대장의 등으로 파고들었다. 케이블을 쥐고, 잡아당긴다.

 바다 위에서 커다란 술렁임이 생겨났다.

 "정말로 이겨버렸어……"

 테아시가 중얼거렸다.

 "도박은 내 승리군"

 콕스도 만족한 모양이다.

 "대단하군"

 호킨스가 평소의 미소를 띄웠다.

 이윽고, 2기의 융보로가 부상했다. 함께 해치를 열고 고개를 내민다.

 대장은 랏셀을 바라본 뒤, 활짝 웃었다. 항복이다. 인정해주지.

 "대장──!"

 랏셀은 끓어오르는 기쁨에 이를 악물었다.

***

 스카야가 암 시트에 놓인 다리를 살짝 움직인 순간, 기체가 맹렬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앗, 자, 잠깐!"

 시설의 구석에 놓여있던 글래디에이터가 순식간에 눈앞까지 보였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비명을 지른다.

 다음 순간, 글래디에이터는 조각조각 분쇄되버렸다. 하지만, 생각한 것만큼 충격은 없었다. 역시, 재료나 구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듯 했다.

 "이, 이건……!"

 <모듈레이션. 진행. 병장. 암>

 모니터에 무기 일람이 표시되었다. 함께 나온 문자열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나, 스카야는 점점 사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음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조종간을 조작한다.

 기체는 갑자기, 연습장 구석에 놓인 사격 표적을 향했다.

 쏜다.

 그렇게 상상한 순간, 청백색 섬광이 질주하며 표적을 증발시켰다. 기체의 어디서 발사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건──"

 멍하니 눈을 껌뻑이던 스카야였으나, 어느새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위를 바라본다. 기체도 따라한다.

 "뛰어올라!"

 연습장 천장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고, 기체는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한바퀴 회전하고, 갑판에 착지한다. 발밑으로 승무원과 기술자들이 당황해서 허둥대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당신의 진정한 힘……!"

 <당신. 힘. 나. 인터페이스. ……이그나이트>

 익숙하지 않는 울림.

 스카야는 생각했다.

 "……나는 스카야, 당신은?"

 <이그나이트>

 그래, 그게 이 기체의 이름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소를 띄우고, 스카야가 이름을 불렀다.

 "……이그나이트!"

***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소형선에는, 대장에게 받은 융보로가 적재되어있다. 앞으로 어딘가에 도움이 되겠지. 

 갑판에서 랏셀은 질리지도 않는지 생물체와 놀고 있다.

 테아시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한다.

 "있지 랏셀. 그 애, 이름은 지어줬어?"

 "헷헤…… 실은 이미 정해뒀지. 호킨스한테 옛 언어를 배웠거든. 그치?"

 콕스가 생물체를 바라본다.

 "뭔데?"

 랏셀은 양손으로 생물체를 들어올리고 말했다.

 "리브! 살아간다는 의미! 넌 리브야!"

 생물체──리브는 기뻐하는 것처럼 남색의 눈을 가늘게 떴다.

 "응, 귀엽네!"

 테아시가 동의한다.

 "이상한데. 뭐, 상관 없지"

 콕스도 웃었다.

 "보인다!"

 호킨스의 말에, 튕겨나갈 기세로 행선지를 바라본다.

 저 멀리, 수평선에 떠오르는 그림자.

 "왔다…… 리베리스탄!"

 "저게── '육지'구나, 랏셀! 정말로 와버렸어, 우리들!"

 "……그래. 우리들의, 새로운 집이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