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낮고 율동적인 음성은, 레도의 마음 속 가장 깊은 부분을 전율케했다.
자신의 전부를 걸고 싸웠던 섬멸전의 와중에도.
지구라는 상상도 못할 환경 하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나날에도.
'그'는 언제나 레도를 지키고, 지탱해주며, 이끌어주고, 희망을 나타내준──잃어버렸을 터인, 반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
"설마──"
끌어당기듯이 두 걸음, 세 걸음 나아가며, 레도는 머리를 스치는 직감을 말로 바꾼다.
"정말 너냐──체임버"
영원이라 생각될 순간이 지나고, 음성이 대다반다.
<긍정한다>
레도는 놀라서 눈을 부릅 뜬다.
"정말인가…… 너, 정말로……"
음성은 어디까지나 율동적으로, 그리고 확고하게 이어졌다.
<구 기체 넘버, K6821. 나는 일찍이, 파일럿 지원 계발 인터페이스 시스템──체임버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존재다>
이성이 이해하기 전에, 본능에 직접 닿는 음성.
눈 앞의 거구에게, 레도는 그 쇳덩어리인 머신 캘리버의 모습을 바라본다.
"살아있었어…… 살아있었구나. 진짜구나……"
이 이상 없을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 벅차오른다.
뜨거운 눈물이 하나하나 넘쳐흘러, 거침없이 레도의 볼을 적신다.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터였던 반쪽과의 재회가, 조여메듯한 환희가 되어 전신을 떨게 한다.
갈라진 목소리로 레도가 말한다.
"체임버…… 너와 다시 만날 수 있다니. 이런, 이런 일이. 체임버……!"
어린 아이처럼 몇번이나 이름을 부른다. 감정이 파도가 되어 몰아친다.
경험한 적 없는 격렬한 감정이 레도의 전신전령을 구석구석 휩쓸며, 그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에 달하는 ㅁ든 기억이 한 순간에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지금은 백색과 심홍색으로 칠해진 모습으로 한쪽 무릎을 꿇은 체임버 또한, 그와 같을지도 모른다. 끌어안는듯한 시선으로 전우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격한 감정 사이로, 레도의 이성 일부가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떻게…… 대체 어떻게, 네가 이그나이트에?"
체임버는 녹색 눈동자를 명멸한다.
<X3752 스트라이커 시스템의 파괴와 동시에, 나 역시 기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기능의 대부분을 잃은 채 해당 해역에 침몰했다. 심해 밑에 가라앉은 나는, 그곳에 미지의 네트워크 시스템의 존재를 감지했다>
"네트워크라고……?"
<범지구적 규모로 확산된 빛벌레에 의해 구성된, 정보 네트워크다. 빛벌레는 온갖 심도에 존재하며, 또한 대기권 밖에도 전파되어있다. 바다 은하는 낙뢰, 승뢰, 오로라 등의 현상에 의해 대기권 밖에 있는 빛벌레와 접속되서, 모든 생명권으로 퍼지고 있다>
명쾌한 대답은 지난날과 변함이 없다. 레도는 서서히, 체임버와의 토론 페이스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모든것은 빛벌레와 이어져있었다는 말인가?"
<긍정한다. 네트워크는 상시 방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어느 종류의 자율사고체를 형성하고 있다>
"자율사고체──"
<해당 네트워크 상으로 지능 회답을 개방하고, 정보 수집을 계속한 결과, 나의 시스템은 비약적인 업데이트를 이루었다. 나는 생명권 창발 지원 네트워크 시스템. 온갖 생명이 보다 많은 가능성을 획득함으로서, 존재 의의를 달성한다>
창발──전체는 하나, 하나는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협조하는, 단순한 인과 규칙에 멈추지 않고 고도한 행동을 보이는 현상이다. 체임버는 지금까지의 인공지능 틀을 뛰어넘어, 지구적 규모에서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생명 창발 현상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지금의 너는, 그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말인가"
<조건 부로 긍정한다. 나는 일부이며, 동시에 전체이다>
하나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 그것은.
레도는 깨닫고, 리브와 체임버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런가…… 리브를 보낸 건 네트워크 그 자체. 이그나이트와 리브가 모였기에 비로소, 네가 내 앞에 나타났어──"
<긍정한다. 빛벌레는 자기복제를 가능케하는 나노머신이다. 그것과 뗄 수 없는 관계인 고래오징어는, 네트워크에 관련된 물리적 신체로서 기능한다. 그 아종──그대들이 리브라 부르는 그 개체는, 빛벌레와 보다 강한 공생 관계에 있다. 같은 기술을 지닌 기기의 동작 및 연산 능력을 최대화하고, 또한 네트워크와의 매개까지 가능하다>
융보로이드, 오그멘티드 바디, 머신 캘리버.
그것들은 전부 빛벌레──구 시대 문명의 나노머신 테크놀로지를 뿌리삼고 있다. 리브는 체내에 바다 은하를 지니고, 말을 다룬다. 사람, 고래오징어, 기계의 사이를 잇는 존재인 것이다.
<네트워크에 보존되어있던 정보를 해석한 결과, 상공의 에너지 방사 장치의 출력에, 기하급수적인 증대가 예상되었다>
"그래, 시간이 없어. 기둥의 에너지로, 저 아발론이>
그 때였다.
8자 형태의 반복 궤도 끄트머리에서 속도를 올린 기둥이, 결국 산맥의 뒷편에 도달했다.
터무니없는 방사가 수뇌 시설에 직접 쏟아진다.
천문학적인 양의 에너지가 전송되어, 정상부에 펼쳐져있던 아발론 전체가 눈부실 정도의 빛에 감싸인다.
"뭐지?!"
"레도, 설마 정말로……!"
랏셀이 오치며, 에이미가 절규한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아발론의 주변부를 둘러싸듯이, 수많고 기묘한 구체가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체임버를 비상하게 만드는 중력 구체와 같은 것이다. 아발론이 기둥의 에너지로 상부에 중력원을 생성하고, 스스로를 띄우려고 하는 중이다.
<아발론의 대질량이 떠오를 경우, 광범위에 걸쳐 예측 불가능한 대변동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유의 제안. 에너지 방사 장치의 무기한 정지 조치 실행을 요청한다>
"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만 해!"
체임버를 깃들인 머신 캘리버라면, 기둥의 기능을 파괴할 수 있을 터이다.
"스카야, 부탁할게. 나에게 이그나이트를 맡겨줘"
"──……"
스카야가 애달픈 표정을 짓는다. 레도는 그 의미를 이해하자, 숨이 차오른다.
이그나이트는 무서운 힘을 발휘하기까지 진화했다. 그렇다면, 그 인공지능 역시 고도의 기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스카야를 파일럿으로 승인했다면, 거기엔 깊은 인연이 생겨있지 않았을까?
레도의 예상을 체임버가 긍정한다.
<본 기체는, 인류 은하 동맹이 아발론에서 개발중인 시작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기에, 동맹 표준의 오퍼레이션 프로그램은 설치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본 기체에 가동중인 이그나이트 시스템은, 지구에서 가동된 뒤 자율 진화한 독자적인 인공지능이라 추측된다>
이그나이트는,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기계다.
<또한, 이그나이트 시스템은 현재, 모든 지능의 자발적 소거를 실행중이다>
"무슨……!"
스카야가 낭패라는듯한 목소리를 낸다.
"어째서. 왜 이그나이트가 스스로를 없애려는 거야?!"
<이그나이트 시스템은, 스스로의 존재가 인류 전체의 위협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지구 문명에 현존하는 파괴력의 총 합계를 까마득히 뛰어넘는 잠재능력이, 최우선 보호대상인 스카야까지도 제어를 못하게 될 사태를 상정한 것이다>
"그, 런──……"
그것이, '재앙'인가.
지구상에서 최강인 그 힘이, 이윽고 스카야의 손에 부치지 못해, 인류에게 있어 재앙이 되리라는 것을 두려워했단 말인가. 그래서, 풍부해진 지능을 스스로 버린다고.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그나이트가 사라진다니, 그런……"
두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넘친다.
"스카야……"
랏셀조차 그 이상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스카야와 이그나이트의 사이에는 분명,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관계가 쌓여있음이 틀림없다.
그런 때, 체임버가 말한다.
<이그나이트 시스템이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어?!"
스카야가 돌아보자, 체임버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진다.
잠시 뒤, 다시 녹색 빛이 깜빡인다.
<스카, 야>
음성이 변했다. 불안불안하고, 중간중간 끊기면서 눈동자가 명멸한다.
<나, ──나……>
"이그나이트!"
스카야는 백색과 심홍색의 거구에게 달려간다.
"나를 두고 갈 거야? 모처럼 만났는데. 계속 함께 있자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스카야. 만나서. 다행. 행복……했다>
"기다려…… 부탁이야 기다려……"
흐느끼며 우는 스카야에게, 이그나이트가 말한다.
<부디. 자유롭게, 살아. 스스로의 마음. 죽이지 않도, 록──>
용수철처럼 튕기듯이, 스카야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들어올린다.
그 말은. 그 말은 폴라가 했던 말이다.
운다는 행동의 의미를 물으며, 처음으로 '어째서'라고 말하던 때, 이그나이트는 시집에 적혀있던 폴라의 말을 외워두었던 것일까.
<부, 디──……>
두 눈에서 빛이 사라진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그나이트!"
스카야는 절규하며, 그 자리에서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오열하는 입가를 틀어막으며, 이 뒤에 이어질 말을 생각했다.
바라건데 그 한 순간에, 내 영혼의 기댈 곳 되기를
"잊지 않았어. 잊을 리 없잖아. 이그나이트……!"
비탄에 빠진 스카야에게, 에이미가 살짝 다가가 들썩이는 등을 쓸어내린다.
이윽고, 부르르 떨리는 입술로 스카야가 말한다.
"레도 씨…… 이 기체를 맡길게요. 기둥을, 멸망을 막아주세요"
레도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랏셀이 외친다.
"위험해, 융보로 녀석들이 다가온다!"
잠시 멈춰있던 전장의 포성이 다시 울려퍼진다.
아발론이 기능하기 시작하자, 세오드라이트의 선언에 호응한 일부 병사들이 전투를 재개한 것이다. 금세 전선이 펼쳐지고, 군용 융보로 무리가 들이닥친다.
거구의 양 눈에 녹색 빛이 다시 밝혀지며, 체임버가 거대한 손바닥을 내뻗는다.
<탑승해라. 원격 지원을 위해, 리브의 동승을 요청한다>
"그래, 체임버!"
리브도 끄덕이며, 레도와 함께 올라탄다. 둘을 태운 손바닥이 상승하며 조종석으로 옮겨진다.
바디에서 랏셀이 외친다.
"조심해, 리브……!"
당신도, 라고 말하듯이 리브가 눈짓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랏셀은 스카야를 돌아본다.
"스카야, 타! 여긴 곧 전장이 될 거야!"
"에이미, 넌 서프 카이트 준비를!"
소녀들이 힘차게 끄덕인다. 젊은이들이 움직인다. 닥쳐오는 파멸에 저항하기 위해서. 미칠듯이 바라던 진실의 정체를 확인하고, 500년의 기만에 결착을 짓기 위해.
암 시트에 앉아 해치를 닫으며 레도가 명령한다.
"플로터 작동"
새된 구동음이 울리며, 이그나이트의 양 각부에 달린 양자 인테크가 진공 에너지를 추출한다. 머리 위에 3개 층의 에너지 링과,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질량 구체가 출현한 순간──중력의 족쇄에서 해방된 야 다리가 두둥실 떠오르며 대지에서 떨어진다.
웅크린 바디의 위를, 스카야가 슬금슬금 기어오른다. 랏셀이 그 손을 잡고, 조종석으로 끌어당긴다. 가느다란 몸을 잡아당기며 끌어안은 랏셀은, 이그나이트──아니 체임버가 보여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굉장해…… 정말로, 날았어!"
지금도 날아오르는 백색과 심홍색의 기체에, 서프 카이트 프로펠라를 돌리는 에이미의 눈은 못이라도 박은 것처럼 되었다. 그 체임버의 모습과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기체 밖에 달린 스피커에서 레도의 목소리나 들려온다.
<에이미. 나는 기둥의 에너지 방사를 막고, 아발론을 함락시킬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한시라도 빨리 대피하도록 가르간티아에 전해줘>
"알았어!"
부탁할게, 라고 재차 말한 레도는 크게 시야를 둘러본다.
<랏셀. 스카야. 너희들은 저곳으로 가줘>
강한 의사가 담긴 말에, 둘은 시선을 돌려본다.
레도는 산맥의 정상부터 펼쳐진 아발론을 똑바로 가르키고 있다.
"저곳에, 인류 은하 동맹의 망령들이 있어. 동맹의 사상에 동조하던 사람들이지만, 같은 육지의 인간이야. 그들을 막아줘, 너희들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확인하고, 시야에 들어온 빛나는 시간의 기둥을 응시한다.
절대로 막아야 한다. 체임버와 함께.
암 시트의 등에 몸을 기댄 리브가 손가락 끝을 맞대며 말한다.
<레도, 어째서 저 둘을>
감색 눈동자를, 보라빛 눈동자가 바라본다.
"거짓된 전쟁에 닫힌 육지를 바꿀 수 있는 건, 그들 뿐이야. 난 그렇게 믿어"
<……그러네. 저 둘이라면>
온화하게 울려퍼지는 리브의 대답을 신호로, 레도는 두 눈을 부릅 떴다.
"간다, 체임버!"
<알겠다>
그 순간, 휘몰아치는 모래먼지를 궤뚫듯이 베어가르며, 백색과 심홍색의 기체가 천공을 향해 치솟는 번개처럼 비약했다.
거구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줄기 광선이 되며 기둥을 향해 날아간다.
스카야와 랏셀, 그리고 에이미는 다 같이 그 모습을 눈동자에 새겨넣는다. 방대한 에너지의 원천을 목표로 가속하는──희망.
에이미가 결의를 말로 바꾼다.
"랏셀. 스카야. 가자, 우리들도!"
각각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에이미는 바다로, 스카야와 랏셀은 모든것을 내려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향한다.
***
마주보는 초승달의 서쪽 부두, 가장 외곽 바다에 정박해있는 사령선 오케아노스 호의 브릿지는, 매우 분주해하는 선원들의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가득 차있었다.
"어이, 누군가 상황을!"
"아무튼 정보를 모아! 비번인 녀석들도 전부 다 불러, 서둘러!"
그 정중앙에, 리지트는 판단을 재촉당하고 있었다.
갑자기 바다에서 시작된 함포전에 이어, 조계 전역이 순식간에 전투 상태에 들어갔다. 그 뒤로 모든 통신을 제압하며 포고된, '이상향'이라는 것의 출현. 기둥의 방대한 에너지 방사가 산맥 끝에서 반도 전역을 비추기 시작한 모습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선단장으로서 최선의 대처를 해야만 하지만, 상황 파악이 되질 않는다. 통신 마이크에 말을 불어넣는다.
"웜, 바다쪽 상태는?"
<현재 양국간의 함포전은 소강상태에 들어갔어요. 양쪽 모두 피해가 나왔고 산발적인 포격이 이어지고 있지만, 방심할 수는 없겠네요>
"알겠습니다. 계속 경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플랜지. 선단 주민들의 피난 상황은?"
<상륙해있던 자들을 포함해 9할은 가장 가까운 배에 수용했어>
"남은 사람들을 서둘러 모아주세요"
<알았어, 선단장>
지시는 실행되고 있지만, 상황은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다. 리지트는 지휘 테이블에 양손을 내리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리지트!"
들려오는 절박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열어둔 채로 두었던 출입문에서 메신저의 모습이 나타났다.
"에이미!"
서프 카이트를 내달리며 오케아노스 호로 직접 날아온 에이미가, 성큼성큼 지휘 테이블을 향해 다가온다.
"리지트, 피난만으론 안 돼. 모든 배를 출항하도록 해줘!"
"무슨 소리야, 너 뭔가 알고 있니?"
"설명할 시간이 없어. 레도가 그렇게 말했어. 당장이라도 도망갈 수 있게 준비해야 해!"
"레도가?"
'마주보는 초승달'의 각 부두에 뿔뿔이 흩어져 정박해있는 가르간티아의 배는, 이미 모든 정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에이미의 지지한 눈빛에 무언가를 느낀 리지트가 결심한다.
"알겠어, 에이미"
끄덕이며, 브릿지 전체에 외친다.
"누군가, 조타수 길드쪽 사람 없어?!"
바로 '예이', '있습니다' 등의 목소리가 돌아온다. 살짝 탄 피부의 남녀, 플라이스와 루엘 부부였다.
"다행이다. 길드 전원에게 지금 당장 출항 준비를 하도록 전해줘"
"알겠습니다, 선단장!"
루엘이 경례를 하는 플라이스의 옆구리를 찌른다.
"거 봐, 역시 직접 상황을 보러 오길 잘했잖아!"
"그려그려, 네가 항상 옳다, 여보야♥"
"아잉♥"
대화에 긴장감은 없었지만, 부부는 서둘러 브릿지를 뒤로했다. 이걸로 우선은 괜찮을까, 라고 생각한 순간, 가장 심각한 사태를 깨닫는다.
"가르간티아 호……!"
가르간티아 호의 대규모 수리 역시 이미 완료되어 있었으나, 도크에서 출항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만에 하나라도 주선에 무슨 일이 새긴다면, 선단을 재연결할 수 없다. 당황해서 통신 마이크를 움켜잡는다.
"가르간티아 호, 응답하라. 아무도 없어?!"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꽤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이예이─ 여기는 가르간티아 호>
"그 목소리…… 피니언!"
<무슨 일이야, 리지트>
"모든 배가 출항을 준비해야 해요. 가르간티아 호 역시 출항할 수 있도록, 도크에 배를 띄워주세요"
<벌써 옛날에 시작했지!>
"어?"
<수리 계획을 세운 건 나라구,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야. 이제 곧있으면 끝나!>
리지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피니언의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섞여온다.
<정말이지, 폼잡지 말라고. 우연히 쇼핑하러 나왔을 뿐이잖아>
<너, 불지 말라고 벨로즈! 빨랑 배 밑바닥 확인이나 하러 가!>
경위야 어찌됐건, 가르간티아 호도 문제 없다.
"고마워, 에이미. 이 틈에 사정을 들려줄래?"
뭘 어디부터 말해야 좋을까. 에이미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
"히익─!"
같은 시각, 가게 밖에서 매마른 총성이 울려퍼질 때마다, 후커는 카운터 안쪽에서 머리를 끌어안고 웅크릴 뿐이었다.
"정말, 후커! 이런 떄야말로 정보망이잖아, 가지들에게 연락을 해!"
"히, 히익─!"
이렇게나 겁먹을 줄이야, 라며 리마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거리가 전장이 되버려, 조금이라도 피해를 막기 위해 정보를 얻으러 왔는데, 이 상태라면 진척이 없겠다. 자력으로 움직여야 하나, 라며 결심을 다지려 할 때, 출입구로부터 경쾌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곤란한 모양이네"
흑발의 롱헤어와 금발의 숏컷, 두 미소녀를 끌고 나타난 사람은, 화려한 의상을 몸에 걸친 아름다운 미녀였다.
"라케지!"
리마가 희색이 돌며 외치자, 후커가 카운터에서 머리를 뺴꼼 내밀다가 다시 쑥 들어간다.
"대, 대 해적 라케지?! 히이익……"
"어머나. 조금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라케지는 만족스럽다는듯이 입가를 다시며, 카운터 한쪽에 한 손에 잡힐 정도의 주머니를 탁 올려놓는다. 내용물은 형형색색의 보석이었다.
"이걸로 의뢰를 하겠어. 시시한 전쟁에 얽히고 시지 않은 자들을 모아, 내 선단에 불러줘. 당신보다 겁쟁이가 아니라면, 내 밑에 들여도 좋아"
리마가 의외라는듯이 묻는다.
"라케지, 협력해줄 거야?"
일찍이 리마를 끌어들이며 살아갈 장소를 제공해준 도량을, 대해적이 다시 보여준다.
"흥. 애초에 육지에 돌아온 이유는 이번 무투의 수상쩍은 느낌이 들어서야.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버렸다면 끝낼 때지. 실업자들을 모아서 소대를 늘릴 기회잖아"
"역시 두목님!"
"좋아!"
곁에 있던 미소녀, 파라엠과 파리누리가 떠본다.
"자, 어떤지?"
보석의 감정을 재빠르게 끝마치고, 후커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정정하게 일어선다.
"후훗. 맡겨만 두게"
"교섭 성립, 이군. 자, 가자!"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옛 써─!"하며 합창했다.
***
제 2투기장의 살짝 위쪽, 군용 융보로가 난전을 펼치는 경사면. 고관용 운송 장갑차의 차내에서, 스나이더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을 맞이했다.
"이런이런, 지휘계통이 엉망진창이군. 아아무도 경호를 하지 않잖아.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거야? 스나이더"
"너──"
스나이더가 살짝 눈을 부라리는 옆에서, 스키더가 당황해한다.
"누, 누구야, 이 남자는!"
둥근 안경을 끼고 실실 웃는 남자는, 적국 리베리스탄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나이더는 평정함을 잃지 않았다.
"두려워할 것 없어. 호킨스라고 하는…… 내, 친구다"
"치, 친구?"
호킨스가 쾌활하게 웃는다.
"기쁜걸. 그런 식으로 생각해 주다니"
"무슨 볼일이냐"
"으응─"
전장에서 마주하는 기묘한 회화에 독기가 빠진 스키더는 난입자를 내쫓을 기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또 너랑 흉계를 짜볼까 해서"
"뭐?"
"실은 요전에, 예의 공주님에게 설교를 당했거든"
"스카야 말인가"
"그래. 세상을 뒤집으려고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지만…… 꺠달아버렸단 말이지, 어차피 혁명 놀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좁은 방탄 유리의 시야로, 호킨스가 전장을 바라본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어. 세상은 내 손바닥 위에 있지 않더라고"
"──……"
그만큼이나 불손했던 남자가, 묘하게 온순하다.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스나이더에게, 호킨스가 말을 잇는다.
"그래도 말야. 애초에 난 무너트리는 파, 너는 질서라는 녀석을 새로이 만들려는 파였잖아? 내 바람은 이루어졌단 말씀. 세상이 엉망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
호킨스는 웃는 것처럼 꾸며낸 눈에서 웃음기를 없애고, 스나이더를 바라본다.
"여기서 상담이야. 네 도움이 필요해"
"도움이라고?"
"육지는 앞으로 큰일을 맞이하게 될 거야. 너도 나도, 내일 숨이 붙어있을지 몰라. 하지만, 조금만 더 꿈을 꾸고 싶어. 이 상황을 헤쳐나갔을 때를 위해서, 이 바보같은 전쟁을 멈추고 피해를 줄이고 싶어. 잘 된다면, 뒷일은 네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면 돼. 어때?"
──이 무슨 녀석인가.
전언 철회다. 이녀석은 역시나 불손하기 짝이 없다. 썩은 인연의 남자가 말하는 바보같은 부탁에, 해줄 대답은 하나 뿐이다.
"웃기지 마라"
검지손가락을 호킨스의 가슴팍에 찌른다.
"네가 나를 돕는 거야"
웃는 듯하게 꾸며낸 눈동자에, 히죽하는 웃음기가 돌아왔다.
"그렇게 나와야지"
"뭐──"
스키더가 절규했다. 이런 모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스나이더, 당신 제정신이야?!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건가"
"스키더"
낮은 음성으로 말을 잘라낸다.
"난 현장 지휘관으로서, 전투 상황의 수속에 들어간다. 넌 본국으로 달려가 정전 조정의 개시를 상소해. 세오드라이트 각하의 이름을 빌리면, 들어는 주겠지"
"뭐라고…… 다, 당신에게 그런 명령을 받을 의무는!"
"아버지에게 들었잖아. 판단하기 곤란한 사태가 발생하면 나를 의지하라, 고"
"큭──……"
스키더의 눈에, 두 사람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특히 태연하게 세상과 맞선다며 말을 꺼내는 스나이더는 발칙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스나이더에게 새로이 깃든 거만하다고 해도 좋을 야심의 불씨가, 어느 정도의 불길로 성장하는지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 새로운 세상이라는 녀석에서──나에게도 좋은 자리 하나 준비해줄 수 있겠지?"
***
지금은 백색과 심홍색으로 칠해진 머신 캘리버──체임버가 비약한다.
상공 15km에서 쏘아진 방대한 에너지의 해일을 좌우로 헤치듯이, 지그재그 궤도로 조금씩 접근해간다.
"체임버, 현재 고도는!"
<해발 약 10km>
"좀 더 속도를!"
<경고. 에너지 방사가 안정되지 않고 강력한 전자장이 무작위로 발생하고 있다>
"직격으로 맞으면 끝장인가……!"
보이지 않는 벽이 랜덤으로 육박해온다. 그것을 재빠르게 빠져나가며 날기 위해, 예상 외의 시간이 걸리고 있다. 힘든 상황에 입술을 깨물던 때, 시트의 뒤에서 녹색의 섬광이 샘솟는다.
"리브!"
리브가 능력을 해방하며 손가락을 댄다.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에너지파의 발생 예측을 연산할게>
리브가 눈을 감자, 취색 광선이 증폭된다.
체임버가 말한다.
<처리속도 향상을 확인>
"좋아! 부탁한다……"
레도는 예측 못할 사태에 대비하며 상황을 확인한다.
조계 반도는 눈 아래서 점점 멀어지며, 내려다보는 시야에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지형이 떠오른다. 동서의 대륙에서 뻗어나온 두 개의 반도.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 계속해서 전쟁을 이어온 두 개의 국가.
대 산맥의 저편으로 달리는 흰색의 '길'.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수전 시설. 반파된 아발론 거주구를 다시 만들어, 윗쪽의 투과 칸막이로 기둥이 쏘는 마이크로파를 전력으로 변환하고 있다.
그리고──그 더욱 건너편에 펼쳐진 대륙은, 이 고도에서도 지평선 저편을 바라보기가 불가능하다. 그만큼이나 광대하다는 뜻이다. 지구에 남겨진 육지 중, 사람이 살만한 장소는 매우 적으리라.
그 모두를 끌어안은, 광대무변의 거울같은──바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형태가 큰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곳에 살아 숨쉬는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는 야망따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 때, 체임버의 경고음이 울린다.
<한계 거리까지 접근>
"지금이야! 한정 해제 명령, 맥시마이즈! 모조리 태워버려도 돼!"
비약하는 기체가 연녹색으로 불타오른다. 기동 한계가 풀린다. 오버로드한 양자 에너지를 두른 채, 체임버는 극한을 뛰어넘어서 더더욱 가속한다.
***
"다들 진정해. 여기 있으면 괜찮으니까"
올덤과 사야가 운영하는 탁아소에는, 혼란통에 부모가 맞으러 오지 못한 아이들이 아직 세 명 남아있었다.
"울지마, 응?"
"엄마, 잠깐 미아가 되버렸을 뿐이니까!"
사야와 멜티가 아이들을 달래는 옆에서, 베벨은 서광판을 끼운 망원경으로 대산맥 정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에게 무선으로 살짝 들었다. 저것은 레도가 있던 인류 은하 동맹의 우주선, 아발론. 어째서 그런 물건이 있는지는 모른다. 알아낸 사실은, 저것이 지금 날아오르려 한다는 것이다. 체임버가 날 때 머릿속에 나타난, 담백한 구체와 같은 것이 아발론의 주위에도 무수히 많이 떠있다. 그렇게나 커다란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앗!"
올덤이 돌아본다.
"왜 그러냐, 베벨"
"아발론이──떠오르기 시작했어!"
"뭐라고!"
경악으로 일그러진 올덤의 목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들끓는듯한 격렬한 지진이 발생했다.
"꺄아아악?!"
"뭐야뭐야뭐야─!"
사야와 멜티가 비명을 지르자, 아이들이 울기 시작한다.
"다, 다들 뭐든 붙잡아! 책상 밑으로!"
서있지 못할 정도의 충격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아, 저──저거!"
창가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은 베벨은, 바깥에 나타난 광경에 경악했다. 스팀팔로 호가 정박해있는 '마주보는 초승달'의 주변에도, 무수히 많은 질량 구체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
쏘아지는 에너지량이 임계점을 지나, 긴지름 15km의 거대 우주선 대질량을 상회했다.
아발론의 부활.
500년에 걸쳐 구속하던 봉우리의 자갈과 바윗덩어리를 벗겨내듯이, 한발짝 한발짝,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상승하기 시작한다. 직접 목격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모두 현실감을 잃어가며 넋을 놓고 마는, 미증유의 광경이 나타났다.
가르간티아 선단의 모든 배를 습격해온 격한 지진 또한, 그와 매우 똑같은 사태였다.
마주보는 초승달은 다른 아발론의 일부였다. 머나먼 과거, 추락할 때 윗면의 투과 칸막이를 잃고 조계 반도의 윗면을 크게 긁으며 추락하면서 반도 끝에 가라앉은 것이었다. 기울어진 채로 반쯤 잠겨있던 아발론이 바다 위로 살짝 떠올라있던 부분이, 동쪽과 서쪽의 두 거대 부두, '마주보는 초승달'. 이곳에도, 수전 시설로부터의 도전 회로가 접속되어 있었다.
투과 칸막이는 없어졌지만, 하부는 해면 아래에서 건재하게 살아있었다. 양쪽 부두 내부에 계류되어있던 모든 배를 괴물의 스푼처럼 건져올리며, 파동을 사방팔방으로 퍼트리는 두 번째 아발론이 부상하기 시작한다.
***
결국 떠오르기 시작한 봉우리의 아발론을 눈앞에 두고, 오른팔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오그멘티드 바디가 급경사를 돌진한다.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의 기내에서 랏셀과 스카야가 함께 귀신같은 표정으로 과감하고 용감한 의지를 기체에 전하고 있다.
"랏셀, 서둘러!"
"알고 있어!"
한계까지 두 다리를 회전시키며 급경사의 중력을 비틀듯이 올라간다.
아발론의 하부는 완전히 봉우리의 지면에서 떨어져, 20m정도 되는 고도에 떠있다. 노출된 하부에, 빛이 스며들어가 비어있는 입구 부분이 살짝 보였다.
"스카야, 저건?!"
"안으로 이어져있어! 외부 해치야!"
내부에 계단을 갖추고 있는 해치가 서서히 닫히기 시작한다.
"젠장! 늦지 마라──"
"긴장 풀지 마! 좀 더, 랏셀!"
더욱 심해지는 경사를 질주하며, 바디는 드디어 꼭대기에 도달했다.
"날아올라, 랏셀!"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바디가 땅을 달린다.
무서운 가속도로 달리는 거구가 공중에 내던져진다──직후, 바디의 왼팔이 해치의 끝자락을 붙잡았다. 위력을 집중하고 한쪽 팔로 매달린 상태에서 올라탄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틀며 삐걱거리는 어깨 관절의 소리를 울리며, 크게 휘두르듯이 몸을 휘두른다.
직후, 옆으로 쓰러지는 충격이 조종석에 전해진다.
"크윽!"
"꺄악!"
종이 한 장 차이로 내부에 들어서자, 눈 앞에서 해치가 폐쇄된다.
"……괜찮아, 스카야?"
"……네"
어질어질한 머리를 흔들며, 둘은 모니터로 기체 외부의 시야를 바라본다.
광원이 전혀 없는데도 주변이 엄청 밝다. 기하학적인 직선의 교차와, 약간의 곡선으로 구성되어있는 기묘한 공간에, 바디가 도착했다.
"여기가……"
"맞아. ──아발론이야"
달성감은 한 순간 뿐, 바로 경계하는 시선을 최대로 올린 두 사람은, 전방에 몇십명의 남녀가 가지런히 줄지어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모두 기관총을 장비하고, 무표정한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녀석들인가, 은하 동맹에 동조했다는 놈들은. 어떤 녀석이건, 맘에 들지 않는 낯짝이군"
그들은 원래 육지의 인간들이다. 하지만, 방해하겠다면 해치울 뿐이다.
"──읏!"
스카야가 숨을 삼킨다.
대열의 뒤에서 벽면이 예고도 없이 열리며, 세 대의 거구가 나타났다.
"바디……!"
자신의 기체와 똑같은,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의 오그멘티드 바디. 스카야가 휘말렸던 폭탄 테러의 현장에서 함선 외부로 배출된 기체가, 은밀히 옮겨졌던 것이다. 심혈을 기울여 연구를 거듭한 대상과의, 해학적인 대치였다.
그들은 조계 반도를 타고 올라온 우수한 병사를, 동지로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랏셀"
"그래. 이녀석들은 어찌되든 상관없어, 대장을 잡아야만 하겠지. 하지만, 괜찮겠어? 세오드라이트…… 네 친아버지잖아"
"괜찮아. 적어도…… 직접 바로잡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아"
"그럼──간다, 스카야!"
"그래!"
한 순간 피를 들끓듯 하며, 두 사람은 다시 귀신이 된다.
""비켜어어어어어어어어─!!""
***
상공 15km──성층권에 가까운 고도에 광대한 8자 궤도를 그리며 이동하는, 긴지름 약 300m, 짧은지름 150m의, 어딘가 배의 모습과도 닮은 비행 물체.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상부는 우주 공간을 향한 길이 10만km에 미치는 장대한 원통형 구조물과 매끄럽게 이어져있다.
시간의 기둥──지구에 남겨진 구 시대의 궤도 엘레베이터를, 동맹인이 에너지 송출 장치로써 개조한 부분. 그것이, 체임버가 도달한 장소였다. 지구 근방 궤도에 있는 웜홀 스태빌라이저와 직렬로 연결해, 약 170년에 한 번 방대한 에너지 방사가 바로 발밑에서 쏘아지고 있다. 직격한다면 원자로 환원될 전자기의 폭풍에 비교하면, 기둥의 진행 방향에서 불어오는 빙점 아래의 폭풍따위, 체임버──백색과 심홍색의 머신 캘리버──에 있어서 위협적인 대상은 전혀 되지 못한다.
리브와 함께 암 시트의 시야를 바라보던 레도는, 여기가 기둥 내부로 진입하기 위한 일종의 비행 갑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류 은하 동맹의 고도한 과학력의 산물이라고 확신했다. 머리 위를 올려보자, 위쪽을 향해 뚫려있는 거대한 구멍이 두둥실 떠서 입을 벌리고 있다. 궤도 엘레베이터 내부를 궤뚫는 정비 반송로인가. 이게 10만km 저편까지 이어져있다는 말인가.
"체임버, 어때"
<정보 수집중──스캔 종료. 시설 중추라고 확인>
"좋아, 간다!"
체임버는 머리 위에 질량 구체를 출현시키며, 다시금 비약했다.
머신 캘리버가 간단히 통과할 수 있는 통로는 이음매가 적고, 최고도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유려한 디자인으로 구성되어있다. 동맹 전사로서 타고있던 항우주함을 방불케하는 한편, 어딜 봐도 녹이 슬어있던 선단의 배에 익숙해진 눈에는 오히려 기이하게 비쳐진다.
"어디지…… 서둘러, 체임버!"
송전 시설을 철저히 수색한다. 그러자, 전천구 모니터에 붉은 경고 표시가 나타난다. 체임버가 말한다.
<시설 중추 해치를 발견. 컨트롤 구역이라 추정. 본 시설은 동맹 표준에 준거한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다. 침입로는 봉쇄되었다>
"긴급 해제 신호를! 침입하자마자 인공지능에 접속, 제압해!"
<알겠다>
리브의 힘을 끌어와 크래킹한다. 해치를 개방, 내부로 발을 옮긴다.
광대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다양한 연산처리 장치를 스캔한다.
<악셀 단말을 발견>
체임버가 접속 단자를 겸한 오른쪽 손바닥을 단말에 올린다.
<인공지능과 접속>
"제압 개시. 리브, 부탁해"
<네!>
리브의 몸이 취색 광선을 내뿜은 순간, 모니터에 무수히 많은 윈도우가 펼쳐진다. 체임버의 연산 능력을 리브가 배로 늘려주며, 중추로의 액세스를 거부하는 자기 보호 프로그램을 차례차례 해제해간다. 벽이 무너지듯이 사라져간다.
"서둘러…… 서둘러!"
윈도우가 생겨남과 사라지는 속도가 거의 같다. 무한이라 생각되는 데이터량이 지나간다.
천천히 시간이 흘러가는 와중, 체임버가 말한다.
<레도. 해체가 끝난 데이터 내부에 본 시설 건조 전후에서 현재까지의 기록 문서를 발견했다>
"뭐라고?!"
건조되던 때의 기록. 그것에는, 이 지구에 아발론이 존재했다는 최대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들어있을 터이다.
"체임버, 해석을!"
<백그라운드에서 해석중. 해석 종료>
극한까지 높아진 연산능력이 즉시 해석을 마친다.
"좋아──"
눈을 부릅뜬다. 후들후들 떨리는 경련이 몸을 엄습한다. 체임버는 이미, 육지가 어째서 이러한 형태를 하고있는지 이해하고 있다.
"체임버, 질문에 대답해줘"
<알겠다>
최대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순간이 도래했다. 레도는 정면으로 핵심과 부딪친다.
"아발론이 지금, 이 지구에 존재하는 경위를 설명해줘"
<알겠다. ──아발론 거주구의 지구 도달로부터 현재까지, 지구 시간으로 약 454만 6000년이 경과했다>
"……519년!"
육지 국가 500년의 역사. 역시, 세오드라이트의 말에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말인가.
<당시, 지구는 여전히 빙하기였다. 지구 근처에 스윙 아웃한 9대의 아발론 거주구는, 그 과반수가 추락에 의해 파괴되었다. 생존한 동맹 시민은 약 4000만 명이다>
"4000만──"
레도가 아는 동맹 시민의 수는 4억 7000만. 1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이 때, 아발론의 대질량이 소혹성 궤도로부터 다수의 얼음덩어리를 견인해, 함께 지구상에 낙하했다. 이 대량의 얼음덩어리가, 훗날 해면 상승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추측된다. 생존한 동맹 시민은 당시 적도 위에 잔존해있던 궤도 엘레베이터를 송전 시설로, 반파된 아발론 1대를 수전 시설로 개조하여, 에너지원으로서 활용하는 현재 상황으로 이행했다>
레도의 이해를 기다리며, 체임버가 말을 계속한다.
<이후, 궤도 엘레베이터는 두 번에 걸쳐 통상 규모를 까마득히 상회하는 대출력을 방출했다>
"커다란 은총, 인가──"
170년마다 웜홀 스태빌라이저가 나타날 때마다, 그것이 발생했다는 말이다.
"대체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지. 스태빌라이저는 기능을 잃은 평범한 잔해에 불과할 텐데"
<웜홀을 유지하는 본래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그 대질량이 발생시키는 강력한 자기장은, 궤도 엘레베이터와의 사이에 전자 유도를 일으키고, 그 결과, 대규모 초전자가 들떠버린 여기상태가 된다. 이 에너지가 지구의 빙하기를 끝내고, 또 '커다란 은총'의 전승을 만들어냈다고 추측된다>
"그리고 3번째인 지금, 동맹의 후손이 아발론을 띄우려 하고 있다──"
<긍정한다>
수많은 의문이 눈녹듯 해소된다. 하지만, 레도는 아직 최대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노여움을 참으며, 레도가 마지막 질문을 한다.
"체임버. 지금까지의 사실엔 이치가 맞지만, 아발론이 500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했다는 설명은 되지 않아. 텔레머시 스윙의 시공 소용돌이에 휘말려, 나와 쿠겔 중령은 우연히 이 지구에 표착했어. 하지만, 그보다 까마득히 먼 이전부터, 아발론이 지구에 있었다는 말이 되잖아. 이 모순은 어떻게 설명하지"
<상황에 모순은 없다. 텔레머시 스윙 이후의 전황 추이를 보면 명확하다>
"뭐라고──"
<레도 네가 참가했던 블로섬 세일 공략 작전이 실패로 끝난 직후, 히디어즈는 대규모 추격을 개시했다. 웜홀을 통과하려는 블로섬 세일에 대해, 동맹은 아발론 거주구를 견인할 초전자 쉴드의 추진력으로 이를 되받아치는 작전을 결행했다. 그 때, 거주구는 중대한 피해를 입고 태반을 손실했으며, 잔존한 9대가 우발적으로 지구 근방에 스윙 아웃했다>
"역시 파탄되어있어, 체임버. 그렇다면 아발론이 지구에 떨어진 시기는 우리가 지구에 온 직후가 되어야 해. 500년보다 훨씬 전에 존재했을 이유가──"
거기서, 레도는 스스로 다른 가능성을 깨달았다.
텔레머시 스윙.
시공간 도약 항법.
"아니──설마…… 우리들이 이동한 건 공간 뿐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은 불가결이다. 공간 이동에 실패했다면, 시간도 역시──.
<나와 스트라이커 X3752는, 동맹 표준 시간으로 약 454만 6000시간 뒤의 '미래'에, 통상 공간으로 동조했다고 추측한다>
드디어 레도는 모든것을 이해했다.
"이 지구는…… 500년 뒤의 세계인가──"
체임버가 단호하게 말한다.
<네 인식에, 파탄은 없다>
드디어.
드디어 모든것이 이어졌다.
레도의 생각에 따르면, 인류 은하 동맹은 500년 이상 전에 패망했다.
인생의 태반을 차지하던 전사로서의 나날과 현재의 사이에는, 무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벽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레도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체임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야"
<조건부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고독감이나 절망감은 들지 않는다.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너와 다시 만났어. 그러니까, 괜찮아"
레도의 눈동자에 다시 의지에 불타는 빛이 살아난다.
"게다가, 나에게는 지금 위기에 빠져있는 수많은 동료,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힘을 빌려줘, 마지막까지"
<전면적으로 동의한다>
리브도 힘차게 끄덕인다.
아발론의 부활을 멈춘다. 어떻게 해서든!
"──서두르자. 리브, 체임버!"
***
조금 전 바디에서 내린 랏셀과 스카야는, 이끌리듯이 길 끝에 있는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마지막 문이 소리도 내지 않고 좌우로 열린다.
그곳은 광대하며 새하얀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제어는 인공지능이 하고 있기에, 컨트롤 시설이라고 해도 콘솔류는 보이지 않는다.
벽도 천장도 담담하게 빛나는 하얀색 천지다. 바닥면의 정보량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면적의 절반정도가 투과 칸막이로 되어있으며, 아득히 밑으로 펼쳐진 경치가 한눈에 펼쳐진다.
방울져 흐르듯한 녹색빛을 내뿜는 식물의 무리지어 자라며, 그것을 누비며 나아가듯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
그것은 산맥 꼭대기에서 500년에 걸쳐 보존되온 인공 환경──아발론의 내부 공간이었다.
이 정도로 풍부하고 아름다운 초목이나 맑은 공기를, 두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마, 말도 안돼, 이런거"
"믿을 수 없어…… 아발론이, 이런 곳이었다니"
너무나도 상정 외의 광경에 사고회로가 멈추며, 그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 끝없이 넓은 환경 전부를 내포하는 아발론은 지금 대산맥보다 수십m 상공을 부유하며 조계 반도를 흘겨보고 있다.
"초대에 응해주어 고마울 따름이군"
갑자기,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두 사람이 놀라며 몸을 돌린다.
어느샌가 열린 새하얀 벽의 일부에서, 구름을 뚫고 장신의 사내가 나타났다. 군복을 입긴 했지만, 리베리스탄도 아우구스토니아도 아닌, 회색빛의 짙고 연한 색으로 칠해진 의복이다.
"대령──"
무심코 부른 계급도, 이미 의미는 없었따. 파울은 대범한 발걸음으로 공간 중앙을 가로질러온다.
"잘 와주었어. 너희들은 전화를 뚫고, 이 아발론에 도착했다. 누구보다도 강한 자들이야"
"읏──……"
압도적인 위압감 앞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스카야, 넌 정말 우수했어. 천부적인 재능과, 고귀한 영혼을 갖춘 젊은이. 그리고 랏셀. 언젠가 네가 말했던대로 되었군. 넌 계속해서 알려고 했고, 지금 이곳에 있다. 잠시 못본 사이에 늠르만 젊은이가 되었어. 너희들 외에 이곳에 도착한 자는 없었어"
파울은 두 사람을 각각 바라본다.
"어서와라. 여기가 바로 이상향, 아발론이다"
허세를 피울 용기가 먼저 돌아온 사람은 랏셀이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의 동지라는 녀석들은 모두 해치웠어! 녀석들, 그저 겁먹고 도망칠 뿐이었지. 됐으니까 이 아발론이라는 녀석, 빨랑 아래로 내려!"
파울이 쿡쿡 웃는다.
두 사람이 조종하는 오그멘티드 바디는 같은 형태의 기체 셋을 상대로 분투하고, 그들 모두를 무력화했다. 파울은 경의를 표하며, 그들 앞의 통로나 엘레베이터 문을 차례차례 열며 이 컨트롤 시설로 인도했다. 아발론의 윗면을 지탱하는, 거대한 아치 구조의 마디마디가 연결되는 곳이다.
"아득히 높은 곳에서, 이 청정한 이상향을 바라본다. 이런 대접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나"
"시끄럽다고 아저씨!"
격렬하게 반발하는 랏셀 옆에서, 스카야는 진지한 눈빛으로 파울을 바라본다.
"파울 대령. 저는 도저히 당신이 은하 동맹의 사상따위를 맹신하는 순교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당신이 말하는 세상이란, 500년도 전에 대한 집착인가요?"
"──……"
파울이 눈을 감고,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띄운다.
스카야의 따지는 물음에 대답한 것은, 다른 쪽에서 들려온 큰 웃음소리였다.
"그 집착에, 사람은 간단히 휘둘리지. 너희들 자신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나, 투사 폴라"
새하얀 의자에 앉아, 새하얀 벽에 스며들어있던 세오드라이트가, 의자를 돌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파울과 같은 옷을 몸에 걸치고 있다.
"크, 윽……!"
무례하기 짝이없는 빈정거림이지만, 부정할 수 없다. 두 사람은 무투 뒤에 있는 진실을 추구하며 싸워왔으니까.
"모르는 것, 알려하지 않는 것은 행복이야. 개미가 몇천만 마리나 모여봤자 사자에게 이렇다할 무언가를 할 수는 없지. 누군가가 만들어둔 인식표를 따라 춤추는 것이 어울려"
"뭐라고 이자식이!"
랏셀을 자극해 움직이게끔 했던 파울의 말을 거꾸로 뒤집자, 랏셀이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낸다.
"성격 나쁜 꼰대새끼! 요는 몇백년동안이나 사람들을 속이고 바보취급했다는 말이잖아! 너는 한 번 스카야를 저버렸지. 그런 쓰레기같은 짓을 해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놈이, 대단하다는 듯이 떠들지 말라고!"
세오드라이트가 코웃음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불굴의 정신을 지닌 자만이, 선도자가 될 수 있지. 개미가 생각을 할 필요는 없어. 사회라는 생명체에 뇌수가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거든"
──이제 닥쳐.
이보다 낮을 수 없으리라 생각될만큼 무시무시한 음성. 그것이 스카야의 것이라 이해한 랏셀은 오싹했다.
혐오감으로 눈썹을 꿈틀이며, 보라빛 눈동자가 분노로 불타오른다.
"우주에서 찾아온 손님이, 지금 천공을 향하고 있어. 기둥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말이지. 그 사람이 말한 대로야, 당신들은 망령이야. 스스로가 죽어있다는 사실을 500년동안이나 깨닫지 못한 망령.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을 위해 죽는지. 그것도 모르는 채 뭐가 행복이야. 그런것도 모르는 녀석이게──"
스카야가 포효한다.
"그런 녀석을 위해서, 목숨을 이용당하고 참을까보냐!"
"거기까지다"
입을 다물고 있던 파울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세오드라이트. 보다 많은 것을 알려는 자가, 지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한다면…… 우리들 역시 심판을 기다리는 몸이다. 개미의 겸허함으로"
파울의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있다.
들이밀어진 총구의 어둠을, 세오드라이트가 담담히 바라본다.
"무슨 뜻이지?"
"가짜 전쟁에 소비된 500년이, 인류를 향한 복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죄가 될 것인가, 라고 말한 파울을 세오드라이트가 비웃는다.
"죄? 죄라 할 수 있겠나. 우리들은 태어나면서 이 지구를 다스리도록 선택된 종족이야.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거느리며, 인류는 다시금 우주로 나아가, 문자 그대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겠지. 지금이야말로 그 시작이다. 봐라! 아발론은 이미 중력을 극복하며 땅에서 떨어졌다. 무궁한 거리와 속도의 세상에 세워질 성채가 된다!"
은하 동맹의 망령들──두 남자의 영혼은, 스카야와 랏셀을 그저 엄하게 훈계한다.
가늠쇠를 미동도 않으며, 파울은 또 하나의 망령을 바라본다.
"그들의 말대로, 심판의 대답은 지금 천공에 있다. 복음이라면 그것도 좋지. 하지만──"
갑자기, 통주저음처럼 주변을 뒤덮는 중력 제어 시스템의 가동음이 환영처럼 소멸하며, 정적에 감싸인다.
"죄라면──벌이 내려진다"
그 때, 아발론을 격하게 뒤흔드는 흔들림이 습격해왔다.
***
기둥의 인공지능을, 체임버가 장악했다. 에너지 방사의 즉시 정지가 명령된다.
쏘아지던 플라즈마광이 깜빡이기 시작하며, 조계 전체가 낮과 밤을 짧게 반복하듯 밝아졌다 어두워진다.
에너지 공급에 부족이 발생하자, 아발론을 부유케하던 질량 구체가 빗살이 빠지듯 사라져간다.
중력에서 해방된 기적을 일으키며 대산맥 꼭대기에 떠있던 긴지름 15km의 타원형은, 급속히 안정감을 잃으며 전후좌우로 미세한 진동을 시작했다.
이윽고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며, 아발론은 조계 상공에 거대한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미끄러지듯이 낙하해간다.
"꺄아아아악!"
"으, 으아아아아!"
스카야와 랏셀의 비명이 울린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반복해서 기울어지며, 아발론이 고도를 낮춰간다. 서있을 수 없을 정도의 진동 속에서, 파울은 성채같은 체구로 전혀 흔들림 없이, 젊은이들에게 대담한 웃음을 보인다.
"가라. 이곳에 너희들이 추구하는 것은 없다. 육지의 진실이란, 가짜 그 자체였으니"
"대령!"
"아저씨!"
"가라"
반복하는 말에 굳은 각오를 느끼고, 스카야와 랏셀은 컨트롤 구역을 뛰쳐나간다. 아치 구조를 미끄러지듯 낙하하는 모노레일 포드가 중간에 멈출 공포를 어떻게든 참아내며, 입구에 대기시켜둔 오그멘티드 바디에 재빠르게 탑승한다.
"스카야, 간다!"
"그래, 랏셀!"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의 바디가 마지막 위력을 총동원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은하 동맹의 전 동지들이 앞다투어 도망친 것으로 보이는 열린 상태의 해치에서, 바로 아래를 향해 급속하게 흐르는 조계의 경사면이 보인다.
달리는 다리를 멈추지 않으며, 두 사람이 외친다.
""간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내던져지는듯한 부유감 속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몸을 끌어안으며, 랏셀과 스카야는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착지의 충격에 대비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
최초의 격렬한 흔들림으로 전신을 강하게 부딪친 세오드라이트가 겨우 몸을 일으킨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에, 파울이 장신을 구부리며 웅크려앉는다.
"세오드라이트. 심판이 내려진 모양이군"
"크……, 은하 동맹의 숙원, 이…… 이, 있어선 안된다, 이런 일은!"
"뭐. 낙원이라기에 아발론은 너무나도 좁지. 패자가 되기에 우주가 너무 넓을 뿐이야"
더욱 격렬해지는 진동에 저항하며, 세오드라이트는 악물고있던 입에서 쥐어짜듯이 말한다.
"이제…… 아무것도 없어. 남아있지 않아…… 아발론이 추락한다면, 육지 역시 멸망할 뿐이다"
파울이 수수께끼의 미소를 띄운다.
"무슨 소리. 그 두 젊은이는, 망령들보다 목숨을 사용하는 법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그들이 태어난 것 역시 500년의 결말 중 하나. 스카야는 당신의 친딸이잖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파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오드라이트에게 박혀들며, 이윽고 미련없이 깨끗한 웃음으로 변한다.
"숙원은 무너지고, 딸을 자랑스러워하라니. ──재밌군"
빠른 속도로 고도를 내리며, 아발론이 조계 상공을 활공해간다.
***
거대한, 너무나도 거대한 그림자가 떨어진다.
정상까지 닿는 급경사에서 정전을 꾀하며 분전하는 스나이더와 호킨스, 스키더의 위로.
제 2투기장 주변의 전장에서 좌초된 군용 융보로를 갈취해 열심히 도망치는 발을 놀리는 콕스와 테아시의 위로.
제 1투기장을 감싸는 마을에서 피난 유도를 하는 김에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눈을 반짝이는 라케지 일행과 리마의 위로.
만들어진 자연을 품에 삼킨 산꼭대기의 아발론이, 조계 반도 해역에서 그 부피의 배에 달하는 바닷물을 끌어올리며, 흩날리는 폭포 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
바다의 아발론도 역시 동력을 잃고, 스스로를 하늘에 띄우지 못했다.
100척이 넘는 배와 그 100배에 달하는 사람을 태우고, 괴물의 스푼은 똑바로 낙하했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무중력에 견디는 사이, 바다의 아발론은 다시 '마주보는 초승달' 그대로의 위치로 잠수했다. 막대한 양의 바닷물이 밀려오고, 거대한 파도가 되어 주변으로 퍼진다. 크고 작은 배들이 똑같이 나뭇잎처럼 흩날린다.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사령선 오케아노스 호의 브릿지에서, 리지트가 꼭 붙잡은 채 놓지 않았던 통신기의 마이크 버튼을 누른다.
"이쪽은 선단장 리지트입니다. 주민 전원에게 전달합니다. 당장 배의 안전을 확인하고, 부상자 구조를 서둘러주세요. 구조 대상은 선단 주민, 조계민을 따지지 않겠습니다. 반복합니다──"
통신은 육지와 바다 전역으로 퍼지고, 조계는 대규모 수리를 웃도는 규모의 공동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구조 활동은 새벽녘의 어둠 속에서 진행에서 진행되었기에 난항을 겪으리라 예상되던 그 때, 조계의 난바다 쪽에서 기묘한 현상이 관측되었다.
마치 전세계의 빛벌레와 고래오징어가 모인듯이, 바다가 취색 빛의 기름진 평야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순환 은하가 형성되며, 다시 은하길의 소용돌이를 만들어간다. 미세한 빛벌레의 전력이 억조 단위로 묶이고, 얽히며, 청공까지 도달하는 '승뢰'를 일으켰다.
승뢰는 차례차례 수를 늘려, 이윽고 2중의 나선을 그리며 우주를 관통한다. 그것은 흡사 쏘아지는 방대한 에너지를 하늘로 되돌리며 조화를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은하길과 승뢰가 내뿜는 광선이 밤의 어둠을 날려버리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탰다.
***
그 모두를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지켜보는 거구가 있었다.
눈 아래 육지와 바다에는 아직 태양빛이 닿지 않았지만, 건너편 하늘에서는 커다랗고 둥근 구체가 수평선에서 밝은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시간의 기둥의 비행 갑판에 체임버가 백색과 심홍색 기체를 향해 서광을 반사시키며 서있었다.
암 시트의 레도는, 리브와 함께 평온한 표정을 띄우고 있다.
"체임버. 리브. 잘 해줬어"
<문제 없다>
<고마워, 레도>
"자, 돌아가자. 가르간티아로"
하지만, 리브도 체임버도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쿵 하는 부드러운 충격이 전해진다.
레도는 한숨을 쉬는듯한 미소를 띄웠다.
"……그런가"
<레도. 이그나이트 시스템이 도달한 결론에, 나도 동의한다. 머신 캘리버는, 현재 지구 문명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본 기체를 상공에 남겨 둠으로써, 위협 수준을 소거할 수 있다고 추측한다>
충격은, 머리쪽 포드가 끊길 때 발생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말끔한 표정으로, 레도가 끄덕인다.
"그래. 인간이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게 된다면──분명 잘 어울릴 수 있겠지"
포드가 두둥실 떠오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시야가 넓어지며, 광대한 풍경이 주변에 피어난다. 어디까지나 넓고 풍부한 미지의 지평이 펼쳐지고, 그 100배에 달하는 큰 바다가 있으며, 셀 수 없을 만큼의 생명이 숨쉬고 있다.
비행 갑판의 녹음에 멈춰서서, 체임버가 두 눈을 깜빡인다.
<나는 생명권 창발 지원 네트워크 시스템. 온갖 생명이 보다 많은 가능성을 획득함으로써, 존재 의의를 달성한다>
더욱 밝아지는 동녘 창공과, 아직은 어두운 대륙이 동시에 보인다.
<이 하늘과 땅의 모든것에, 당신은 가능성을 가져오겠지.
생존하라. 탐구하라. 그 생명에, 최대의 성과를 기대한다>
"고마워, 체임버──다시 만나자"
해후의 때는 끝나고, 반쪽의 모습은 조금씩, 이윽고 급속하게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
조계의 바다로 피난해있던 수리 작업선의 갑판에 포드를 가로눕히고, 레도는 뱃전에서 튀어나온 붉은 연결 암 위에서 아침해를 맞이했다. 은발이 바다의 미풍에 흩날린다.
그 발밑에서 잔잔한 파도를 맞으며, 리브가 미소를 띄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본다.
"에이미"
그녀에 이어, 가르간티아 동료들이 달려온다.
멜티. 사야. 베벨. 피니언. 벨로즈. 리지트. 올덤 선생.
모두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주었다.
하늘색 눈동자에 마음속 깊이 안도감을 띄우며, 에이미가 연결 암을 건너온다.
레도도 조금씩 걸음을 옮기며, 처음으로 그녀와 마주했던 곳에서 시선을 교차한다.
에이미가 조금 어깨를 들썩이며, 활짝 웃었다.
"어서와, 레도"
"다녀왔어, 에이미"
레도는 샘솟는 자연스러운 감정에 따라, 에이미를 살짝 끌어안는다.
"앗, ……레도?"
망설이면서도, 몸을 맡겨준다.
이렇게 서로의 곁을 허락해주는 상대가 있다니, 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
"……다녀왔어"
"응♪ 어서와"
"내일도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응?"
"모레도. 그 다음날도"
"레도──"
"언제나 옆에 있어줘. 나랑, 결혼하자"
"네"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바라보며, 리브는 취색 파도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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