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되었다.
사부로타와 만난 그날 아침 이후, 루리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개는 산책이 삶의 보람이라니까 꾸준히 해줘야지"
미나토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루리에게 있어서도 개와 하는 산책은 꽤나 기분전환이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편해졌다.
루리는 머리카락이 푸르다.
게다가 피부도 하얗다.
눈동자의 색은 금빛이다.
마을을 걸어다니면 분명히 눈에 띈다.
어린 시절, 루리는 대부분 연구소 시설 내에서 지냈다. 그리고 우주전함 '나데시코'에서의 오퍼레이터로서의 나날──루리의 인생에서 십 년 남짓은 제한된 공간 속에서의 생활이었다. 종전 후, 유리카나 아키토의 집을 전전하긴 했지만, 그때도 루리의 주변에는 항상 '나데시코'의 선원들이 있었다.
기밀이라는 이름의 벽에 둘러싸여 자라며, 동료라는 이름의 완충지대에 둘러싸여 지내온 루리에게 있어서, 오이소라는 마을에서의 나날은 자신을 '드러내는' 첫 체험이기도 했다.
아무튼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인다.
신문이나 주간지에서 루리에 관한 화제는 당연히 사람들도 알게 된다.
사람은, 루리를 본다.
예전 루리였다면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 터였다. 아니, 사람들이 자신을 본다고 하는 그 행위 자체를 무의미한 행동이라 생각했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한다는 행동의 의미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일환일 뿐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다. 그렇기 때문인지, '자기자신' 이외의 것은 존재만 할 뿐이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 달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리는 알아버렸다. 사람과의 관계, 사람의 마음. 자신이라는 존재가 타인과 관계됨에 따라 보다 확실해지는 충실감──아키토와 유리카는, 루리에게 사람으로서의 기쁨과 슬픔을 가르쳐주고, 떠나버렸다. 지금의 루리는 알을 막 깨고 나온 아기새가 둥지에서 떨어지고 만 상황처럼 약하고, 의지할 곳 없는 존재처럼 되어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은 무겁고, 괴롭고, 짜증나는 것이었다.
어딘지 신기한 시선은 그나마 나았다.
반대로 동정의 시선은 싫었다.
섣부른 친절함으로 말을 거는 것도 싫었다.
그런 루리의 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미나토는 루리를 밖으로 끌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루리에게는 그런 미나토의 친절도 부담스러웠다. 어느샌가 루리는 미나토와도 별로 대화하지 않게 되었다.
계기가 없으면 사람은 대화를 할 수 없게 된다. 루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이 되면 우울해지고, 빨리 밤이 오기만을 간절하게 원했다. '나데시코' 시절에 그렇게나 루리를 걱정해주고 감싸줬던 하루카 미나토였지만, 루리는 그녀도 피하게 되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이 다시 루리를 괴롭혔다. 유일하게 루리와 대화가 가능했던 사람은 유키나 뿐이었지만, 그녀의 경우는 루리가 만든 마음의 벽조차 전혀 신경쓰지 않고 들어와버리는, 깨끗하면서도 난폭한 부분이 있었다.
"자 루리, 장 보러 가자!"
"정말이지 너는 말이 없는 애구나. 아무 말이나 좀 해보라구!"
하지만 그것은 유키나의 올곧은 성격에 따른 미덕이었다. 유키나의 무신경함은 어째선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받기까지 하는 루리였다. 강아지를 주워올 때까지 루리와 미나토의 대화는 유키나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두 사람이 직접 말을 건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 오늘은 뭘 먹고 싶니?"
"고기만 먹으면 눈곱이 껴요. 채소도 좀 넣어주세요"
"아~아, 언니한테 혼났잖아. 미안해 멍멍아"
강아지가 하루카네 집으로 오고나서, 루리와 미나토의 대화가 부활했다. 그건 얼굴을 마주한다는 그런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시선 끝에는 같은 강아지가 있었다. 이와 같이,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사람들도 역시, 루리가 데려온 강아지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귀여운 멍멍이구나, 이름이 뭐니?"
"아직 지어주지 않았어요. 주워온 강아지라……"
"어머나, 그래도 이렇게 깨끗해져서 잘됐구나"
개를 기르는 사람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은 루리와 미나토의 경우처럼, 우선 서로의 개를 매개로 삼아 대화가 시작된다. 말을 걸 때에도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데려온 개를 보고, 개를 부르며, 개를 향해 말을 건다. 루리에게 있어서 다행인 점은, 상대의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대화를 해도 거북해질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강아지는 묘하게 사람을 잘 따르고, 말을 걸어주면 신나서 방방 뛰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루리에게는 자신을 향한 기묘한 시선까지, 이 강아지가 받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쩐지 기뻤다.
"이 아이는 반려견이었던 걸지도 모르겠구나"
"반려견, 이요?"
"그래, 반려견. 집 안에서 소중하고 소중하게 기르던 개가 아닐까? 그러니 사람을 좋아하는 게야. 자기랑 같은 동료라고 생각하니까. 욘석아, 맞지?"
여러 사람들이 강아지에게 말을 걸고, 강아지를 통해 루리에게 말을 걸어준다.
'이 아이 덕분에 어째 편한걸……'
오늘 아침도 루리는 해변에 왔다. 강아지를 풀어놓고, 파도치는 곳에서 뛰어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무기둥에 걸터앉았다.
"너는 강하구나"
루리가 뛰노는 강아지를 보고 중얼거린다.
사람의 호기심이나 애정까지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강아지가 그녀는 부러웠다.
'그에 비해, 나는 약해'
앞으로 어떡해야 하는지 루리는 알 수 없었다. 이대로 미나토에게 신세를 지며, 유키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그리고…….
'난 뭐가 하고 싶은 걸까'
이렇게 생각할 때마다 루리는, 머리가 멍해지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던 때에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온다.
'또야……'
루리가 얼굴을 찌푸린다.
발소리는 속도를 늦추더니, 루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여어, 여전히 짜증난다는 얼굴이구나"
"……"
목소리의 주인은 타카스기 사부로타였다. 그날 아침 이후, 루리가 찾아오는 해변을 달리던 사부로타가 말을 건다, 라는 패턴이 어느 시기만 빼고 거의 매일 반복되고 있었다.
바닷바람은 시원하고, 동녘 하늘은 아침햇살로 빛을 발한다.
"……쓸데없는 참견이네요"
루리는 고개를 숙이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쁘면 기쁜 표정을 지으라구. 이런 미남과 매일아침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기회, 너같은 꼬맹이한테는 정말 드문 거라고"
"……"
루리는 고개를 더욱 숙이며 몸을 움츠렸다.
강아지가 사부로타를 알아보고, 기쁜듯이 달려온다.
"이것 봐라, 마음이라는 건 이렇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거야. 하하하 이 녀석,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서 얼굴 핥지 말라고──"
루리는 힘껏 힘을 주며 딱딱한 표정을 유지했다. 마치 표정이 풀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옥죄이듯이,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을 필사적으로 유지했다. 즐거울 때에 웃고, 슬플 때에는 운다, 그것이 사람이라는 생명체다. 그런 사실은 루리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루리에게는 그게 자신에게 있어서 '해선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왜냐면, 나는 '그때' 울지 않았으니까……'
그때…… 그것은 아키토와 유리카가──.
"아───, 또 혼자서 치사하게, 루리──!!"
멀리서 달려오는 인영이 하나 보였다.
시라토리 유키나였다.
여전히 발이 빠르다.
"으랴아아아아───!!"
유키나는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도약하더니 사부로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하, 무르구나"
뻔히 보이는 공격이다, 라고 생각하며 사부로타는 몸을 살짝 비틀어 피했다.
"타앗!"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이엊는 유키나의 펀치, 그리고 왼쪽으로 미들킥. 하지만 이 공격 역시 사부로타는 가볍게 피한다. 그 사이에도 그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었다.
"자, 가라 댕댕아!"
사부로타가 불시에 안고 있던 강아지를 유키나의 코끝에 들이민다.
"꺅!"
강아지는 기쁘다는 듯이 유키나의 코를 핥으며 앞발로 버둥버둥거리자, 유키나는 당황해하며 피하려고 뒷걸음친다.
"얍! 얍!"
흡사 쿵푸 영화의 한 장면같은 목소리와 함께 유키나의 움직임을 읽어내 사부로타(와 강아지)가 추격한다.
"자 어떠냐, 댕댕펀치의 맛은?"
실제로 맛보는 건 핥짝핥짝 핥아대는 강아지 쪽이었다.
"아──앙, 이제 항복이야──"
맥없이 풀썩 주저앉는 유키나를 향해, 이때다 싶어서 강아지가 뛰어든다.
"아하하하, 항복이라고 말했잖아, 욘석, 너 정말──!"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한 강아지가 유키나의 얼굴을 핥아댄다. 유키나도 환성을 지르며 이에 응한다.
"아무래도 오늘도 나의 대승리인 모양이군"
"나 가 아니잖아, '우리들'이겠지"
"그렇다곤 해도, 약속은 약속이지. 자자, 그럼"
"어쩔 수 없네, 자 가자"
루리는 사부로타와 유키나의 공방을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잘도 질리지 않고 매일……'
이제 슬슬, 하늘도 푸른색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
그것은 2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침에 만나는 금발의 남자에게 유키나가 심상치 않은 관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루리가 봐도 명확했다.
매일아침 묘하게 들뜬 상태로 루리를 두들겨 깨우고, 강아지를 끌고 서둘러 모래사장으로 향한다. 남자가 나타나지 않는 아침이 며칠동안 이어지더니,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딱 보기에는 걸레짝같은 모습이었지만 기운이 넘쳐흘렀던 그는, 두 사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을 걸어왔다.
"잠깐 하와이에서 빅웨이브에 도전했는데 말이지, 볼품없게도 이 꼬락서니가 되어버렸지 뭐냐"
사부로타는 쑥쓰럽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루리는 말이 없었다. 사부로타의 허물없는 태도에 반발하기라도 하듯이 시선을 돌리고, 바다를 바라봤다.
유키나는, 어째 오랜만에 만난 남자 앞에서,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날씨, 좋네"
라든가,
"나, 시라토리 유키나, 라고 해"
라는 등, 마치 중학생 영어의 기본 구문을 직역한 듯한, 영문 모를 말을 하더니 얼굴이 새빨개졌다. 사부로타도 그런 유키나가 재밌었는지, 이것저것 놀려댔지만, 루리는 일말의 불안을 느꼈다.
'유키나 씨, 또 이상한 짓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예감은 적중했다. 생각에 잠겨있던 유키나가 결국 폭거를 일으킨 것이다.
"타아앗──!"
무슨 생각인지, 유키나는 떠나려는 사부로타의 등에 달려들었다.
목련인인 유키나는 감정표현에 털털한 만큼, 영문을 모르게 되었을 때의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가 없다. 처음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러 갔을 때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옆옆마을까지 달려가버렸고, 예전에 미나토가 약혼자인 시라토리 츠쿠모를 잃었을 때에 했던 위로의 말도 이러했다.
"나, 미나토 씨의 신부가 될래!!"
유키나는 우수한 육상 선수다. 뜀틀에서 곧추뛰기를 하면 90cm를 넘고, 제자리 멀리뛰기도 3m를 넘는다. 모래사장 위라고는 하나, 순간적으로 허를 찌르는 듯이 빠르고 부드러운 기습(?)이었다.
들뜬 유키나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라고 생각하던 루리였지만, 걷어차리라고는 예상도 못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루리는 더욱 놀랐다.
'어?'
사부로타는 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이를 피하고는 돌아본 것이다. 그 모습에 허세나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훌륭한 남자의 몸동작에, 유키나는 잠시 멍해졌지만, 곧 고개를 푹 숙였다.
"졌습니다!!"
"어? 나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제, 제…… 제자로 삼아주세요, 선생님!!"
'어??'
어째서 이 상황에 이런 대사가 나오는가? 지켜보던 루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사부로타가 한 다음 말까지 루리의 이해력을 초월해 있었다.
"………흐──음, 그렇다면 수업료를 받아야겠는걸"
"수업, 료?"
"매일아침 실전 연습, 나를 한 번도 때리지 못한다면, 그렇지……"
사부로타는 멍하니 보고있던 루리의 얼굴을 보며 싱긋 웃었다. 루리는 당황해서 시선을 돌린다.
"아침밥, 얻어먹는 걸로…… 미나토 선생님이랬나? 맛있었지, 그 밥"
이리하여 사부로타는 유키나를 제자로 삼은 것이다.
***
일동이 정원에서 툇마루로 오자, 미나토가 상을 차리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아무래도 생선을 굽고 있는 모양인지,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
"오오, 여전히 맛있어 보이는걸…… 죄송합니다, 잘 먹을게요"
"네, 네. 뭐야, 또 졌어?"
"왜. 것보다 뭐냐고 말하면서 4인분 차려놨잖아"
확실히 밥그릇과 접시가 각각 4개씩, 정성스레 젓가락받침까지 갖춰져 있었다.
"하하, 보험이야 보험. 1인분 정도는 별것, 아니니까"
싱글싱글 웃으면서 미나토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정말, 날 못믿겠다는 거냐고……"
볼을 부풀리는 유키나였으나 어째선지 기뻐보인다.
'유키나 씨, 즐거워보여……'
식사 준비를 하면서 루리는 사부로타에게 달라붙는 유키나를 바라봤다. 달라붙는다고는 해도 손을 뻗어 관절기를 넣으려고 하거나, 등을 두들기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꽤 아파보이는 식으로 달라붙는다. 하지만 사부로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것을 받아넘겼다. 게다가 나중에는 관자놀이를 손가락 관절로 꾹꾹 누르며, 조금이지만 반격까지 했다.
"아하하하, 아파, 아프다구 사부쨩!"
"단련이 안 됐구만"
"흥, 오빠랑 비교하면 당신의 '단련'따윈 별거 아니라니까"
"후후, 그럴지도 모르지"
"?"
가라테의 준비동작을 취하는 유키나를, 냄비를 들고 나타난 미나토가 제압한다.
"자자, 먼지나잖아 유키나. 너도 내년이면 고등학생이니까, 언니답게 행동하렴"
"언니 아닌걸. 여동생도 남동생도 없는걸"
"멍멍이가 있잖니. 훌륭한 동생이지"
"너무해───!"
아침밥은 즐겁고 활기찼다. 사부로타가 태클을 걸고, 유키나가 신나하고, 미나토가 웃는다. 툇마루의 강아지도 기쁜지 꼬리를 흔들며 이따금씩 노래하듯 울음소리를 낸다.
루리는 여전히 담담하게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미묘하게 풀려있는 모습을 미나토는 놓치지 않았다.
"고마워"
부엌에서 뒷정리를 하면서, 옆에서 그릇을 닦는 사부로타에게 미나토가 말했다. 유키나는 부활동 연습을 가고, 루리는 정원에 물을 주고 있다.
"아뇨아뇨, 매일 아침밥을 얻어먹고 있으니 제가 죄송하죠. 이 정도는……"
"아니, 그게 아니라. 루리랑 유키나 말이야"
"아, 딱히 나쁜 의도는 없으니까요"
"그래보여"
미나토가 쿡쿡 웃는다. 따듯하고 상냥한 미소다, 라고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시라토리 츠쿠모가 이 사람에게 반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만큼 미나토에게는 매력이 있었다.
"당신 참 이상한 사람이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차를 담아둔 통의 뚜껑을 열면서 미나토가 말했다.
"뭐랄까, 뭔가 뚫려있다고 할까…… 유키나가 말했어. '사부쨩은 목련사람같아'라고"
"목련, 이요?"
사부로타는 내심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설거지를 끝낸 뒤 행주로 물기를 닦기 시작한다.
"당신, 설마 목련에서 왔어?"
"그럴 리가요"
"뭐, 됐어"
주전자에 물을 올리면서 미나토는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다.
"뭐가 됐든, 둘을 잘 부탁할게. 보디가드 씨"
***
'들켰나?'
하숙집에서 드러누우며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반 정도 열린 창문에서, 해가 저무며 비추는 태양빛이 스며든다. 미풍을 타고 들어온 바닷바람의 냄새가 희미하게 코끝을 간지럽힌다. 사부로타는 해안가도 좋아하지만, 바다에서 살짝 떨어진 고서점의 2층에 있는 이 하숙집에서 뒹굴대는 시간 역시 좋아했다. 빈둥대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다고.
'뭐, 들킨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미나토 선생님에게는 진실을 말해도 될지 모르겠군'
고트 홀리는 '비밀리에'라고 말했지만, 언젠가 들키고 말 일이다. 오히려 빨리 말해두는 편이 좋겠지, 라고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되도록 루리쨩 주위 사람들에게는 협력을 받아야 해. 정말 그 사람이 말한 그대로의 인간들이 이 거리에 찾아온다면──'
사부로타는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츠키오미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넌 죽어. 지금 이 실력대로라면"
그날 하코네에서의 집회에서, 사부로타는 츠키오미에게 무참히 패배했다.
얻어처맞고, 주먹에 발에 차이고, 몇번이나 꼼짝 못하는 상태가 되버렸다.
츠키오미의 기술은 사부로타가 알고 있던, 어떤 목련의 격투기도 아니었다.
"이건 도리에 어긋난 기술이야"
옴싹달싹 못하게 된 사부로타를 내려보며, 츠키오미가 말했다.
"목련의 어두운 역사에 암살권이라는 게 있지"
"암살……권?"
사부로타의 얼굴은 부어올랐고, 입 끝에서는 피가 번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츠키오미는, 옷이 약간 더러워졌을 뿐 아무런 대미지도 입지 않았다.
"네 적은 암살권을 사용해"
"누구, 죠?"
"쿠사카베의 '그림자'야"
여기까지 듣고 사부로타는 기절했다. 눈을 뜬 곳은 병원 침대 위였다. 츠키오미가 적당히 봐줬는지, 내장이나 관절에 치명적인 대미지는 없었다. 그렇다곤 하나, 타박이나 염좌는 수십 곳에 달했고, 과연 며칠간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쿠사카베 중장의 밑에, 목련류 무도 연구소라는 곳이 있었다죠──"
입원하고 3일째, 겨우 상반신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을 무렵,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문안을 온 사람은 아오이 준이었다.
"그래. 하지만 자세히는 잘 모르겠군. 쿠사카베 각하의 집은 대대로 목련류 격투술 도장이었어. 그곳이 각하의 중장 진급 이후, 공공기관인 연구소가 되었다, 라는 사실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어"
사부로타의 뇌리에는, 목련의 TV방송에서 기왓장을 격파하는 무도 연구소 사범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청소년 육성, 혹은 고대 무술의 연구…… 별로 실전적이지 않은 것들만 했었지"
"그건 표면적인 거죠. 실제로는 쿠사카베의, 그림자 실행부대였다는 모양이예요"
아오이는 사과를 깎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대로 과도까지 준비한 것을 보아하니, 꽤나 섬세한 성격이다.
"그림자?"
"당신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아키야마 대령도 꼬리를 잡은 시점이 쿠데타 직전이라고 말했으니……"
아오이의 말에 따르면, 아키야마와 츠키오미의 쿠데타가 급하게 진행된 이유는 두 가지라는 듯하다. 첫 번째로는 지구 연합과의 평화를 위해서였지만, 두 번째 이유는 '그림자' 부대가 움직이기 전에 쿠사카베까지 뭉뚱그려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림자'는 첩보와 암살을 위해 만들어진, 이른바 은밀닌자의 일종이었다. 과거에 있었던 목련의 위정자나 군인의 설명할 수 없는 사망의 뒤에는 반드시 그들의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라고.
"증거도 없고, 어디까지나 자료를 조합해서 도출한 추측, 이라고 하지만요"
아오이는 토끼귀 모양으로 껍질을 깎은 사과를 접시에 담으며, 사부로타의 머리맡에 두었다.
"맛있다구요, 제철 과일은 아니지만, 아오모리산이예요"
"감사합니다"
호감가는 말투에, 무심코 말투까지 정중해지고 말았다. 그렇다곤 해도 군인으로 두기에는 굉장히 아까운 손재주라고,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토끼모양 사과는 그만큼 귀여웠다. 아오이도 이에 응해 싱긋 미소지었지만, 그것에는 약간 자조가 섞여있었다.
"괜찮아요, 억지로 존댓말을 쓰지 않아도. 어차피 저는 여학생한테도 '아오이쨩'이라고 불리는 볼품없는 남자니까요"
"쨩?"
"당신도 아는 여자애예요…… 아, 그렇지. 고트 씨로부터 전언이 있었어요"
아오이는 성실하게 셔츠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고는 페이지를 팔락이기 시작했다. 수첩은 곰 캐릭터가 그려진 귀여운 물건으로, 도저히 청년 사관의 물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아오이쨩'이라고 부른다는 여학생이 준 선물일 것이라고 사부로타는 이해했다. 선물받은 수첩을 사용하는 성실함과, 전언을 기록해둔 성실함──점점 더 아오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부로타였다.
"어──, '앞으로 찾아올 외부자를 조심해라', 라네요"
"외부자?"
"지금까지 루리 군에게 대려는 녀석들은 오이소에 들어오기 전 물가에서 네르갈의 공안부──고트 씨나 츠키오미 씨가 해치웠거든요. 이른바 당신은 최종 절대 방어선이란 뜻이죠"
"중령님은 '그림자'와 싸우고 있었나?"
"아뇨, 지금까지는 그런 거물이 온 적은 없었대요. 산업스파이라든가, 지구 어떤 나라의 첩보부라든가…… 평범한 인간 상대였다고 하던데요. 하지만 이번에 그 두 사람은 지구에 없으니까, 죄송하지만"
"없다니, 어디로 간 거야!"
사부로타는 무심코 일어서고 말았다. 온몸에 고통이 전해졌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극비작전이예요. 지금은 이 말밖에 못드려요. 아, 츠키오미 중령에게서도 전언이 있어요. '목숨을 거는 각오의 의미를 알아라'…… 이거, 무슨 오의인가요?"
***
다음날, 사부로타는 퇴원하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평소대로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츠키오미와의 만남을 거쳐, 언제나 이 생각이 머릿속을 멤돌게 되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째서 나는 그 아이를 지키려고 했던 걸까?'
처음에는 아키야마의 말을 듣고 지구로 왔다.
'나데시코', 라는 이름에 이끌려 지구로 왔다.
호시노 루리라는 소녀는 그저 아무래도 좋았다. 분명 인간 컴퓨터는 귀중한 존재겠지. 하지만 오히려, 지켜야 하는 사람은 시라토리 유키나가 아닌가? 그녀는 바로 그 시라토리 츠쿠모의 동생이다.
"네 생각도 일리는 있다──"
전에 고트에게 그런 말을 하자, 그는 강압적인 포커페이스로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지금 시라토리의 동생을 납치해봤자 뭐가 되지?"
확실히 그렇다. 목련의 카리스마라고 하면 아키야마 겐파치로고, 그런 그도 사실상 목련에서 쫓겨나 머나먼 지구에서 교섭대사를 하고 있다. 옛 왕정이었다면 후계자를 둘러싸고 후보생끼리 내분이 일어나겠지만, 유키나는 여왕 후보도 뭣도 아니다.
"너를 추천한 건 아키야마 대령이다. 내가 목련의 실력자가 없는지 상담했더니, 네가 지구로 왔다"
고트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수긍이 간다.
'고트나 아키야마 대령님, 그리고 츠키오미 중령님은 이번 일을 예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우인부대 소속의 사관은 정말 강하다. 파일럿 기술은 물론이거니와, 각각이 목련류 발도술이나 유술에 정통하며, 개중에도 사부로타는 유술이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도였다. 지구에도 격투 기술이 뛰어난 자가 수없이 많겠지만, 우인부대의 경우는 유전자 레벨의 인체 개조까지 더해졌다. 모두 우주공간에서의 전투와 '보손 점프'라고 불리우는 새 항행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서였지만, 반사신경이나 근력, 지구력의 경이적인 발달도 이루어졌고, 거기에 우인부대 특유의 엄격한 훈련이 그들을 문자 그대로 슈퍼맨으로 만들어냈다.
'목련인에게는 목련인을 붙이는 게 상책이지'
스스로의 실력이라면 대부분의 상대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사부로타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츠키오미에 의해 그 자신감이 가루가 되버렸다.
'암살권을 이길 수 있을까, 나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흥미도 일었다.
'과연 암살권을 사용하는 놈은 어떤 녀석일까?'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째선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보통 자신감을 상실한 단계에서 전의까지 잃어야 했겠지만, 사부로타는 달랐다. 오히려 이것저것 전투법을 생각하는 게 즐거워서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츠키오미 중령님의 힘은 엄청났어. 그 사람과 같은 힘을 지닌 자는 태양계에도 얼마 없겠지'
'그림자' 실력은 자신보다 약간 위거나, 혹은 거의 동급──사부로타는 그렇게 추측했다.
'스스로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명을 재촉하는 일이지만, 과소평가 역시 마찬가지지'
그렇지 않았으면 아키야마가 자신을 골랐을 리가 없다.
'함장은 이기지 못할 승부는 절대 하지 않아. 질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길 수 있게끔 만드는 게 그 사람의 방식이야'
아키야마의 외견은 중량급 유도선수처럼 땅딸막하며, 어딘가 애교가 있다. 그 온화한 이목구비는 사람 좋은 분위기를 풍겨, 목련에서도 어린아이나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대전쟁 전에는,
'아키야마는 실내 전문이구나'
상층부에서도 이런 말을 듣고, 그는 군 홍보방송의 퍼스널리티같은 일도 했으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시작하자 그가 이끄는 부대는 잇따라 승리하고, 주위 사람들은 그 냉정한 분석과 전략에 혀를 내둘렀다.
'내가 호시노 루리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다는 뜻은, 적어도 그 사람에게 있어서 쓸모없지는 않다, 라는 뜻이겠지'
사부로타는 아키야마를 위해서라면 버리는 말이 되어도 좋다, 라고 대 전쟁 와중에 언제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야. 내가 그 아이를 지키려는 이유는'
또 뭐가 있을까?
연민.
자애.
자신은 그런 훌륭한 인간이 아니다.
연모.
'보통 이게 맞는 말이겠지'
확실히 사부로타가 호시노 루리에게 흥미를 가졌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박복한 미소녀를 지키는 보디가드,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를 뛰어넘은 사랑이 생겨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있을 법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무상의 사랑, 이라기에는 그 아이에게는 애교가 없단 말이지'
루리는 생김새가 가련하긴 했지만, 고집이 있었다.
유키나 외에는 입도 열지 않는다. 대화를 한다고 해도 무뚝뚝하며 쌀쌀맞아 말붙일 염두도 나지 않는다.
껄끄러운 무언가가 그녀를 감싸고 있다. 옆에 있는 사람이 활기차고 밝은 유키나라서 더욱 눈에 띄고 만다. 듣자하니 루리는 '나데시코' 시절에 그 쿨한 성격 덕분에 함내 아이돌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부로타에게는 어째서 그런 어두운 아이가 인기를 누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부로타 역시 매일아침 루리에게 말을 걸고, 임무의 필요성 이상으로 접촉하는 중이다.
'역시 반해버렸나? 그런 꼬마애한테'
하코네에서 미스마루 일행을 앞에 두고 날카롭게 쏘아붙인 일을 떠올리며, 사부로타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야말로 꼬마애군'
'뭐, 됐어. 스스로도 모르는 만큼 알 수 없는 거겠지'
사부로타는 일단 루리가 '좋으니까 지킨다'라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묘하게 그녀에게 집착하는 것도 수긍이 된다. 망설임은 그가 싫어하는 요소였다. 망설임은 전투에 있어서 즉시 죽음으로 이어진다. 사부로타는 반사신경적으로 스스로의 망설임을 정리하고, 다음 행동을 취함으로써 다양한 전황이나 대결을 뛰어넘어 왔다. 일상에 있어서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자, 끝났어. 사부쨩은 루리쨩을 좋아해'
마음의 정리가 끝나자 시간을 재기라도 한 것처럼 문이 열리며 집주인인 후루카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좀 괜찮을까요?"
"아, 네"
사부로타는 일어나서 방석을 권했다.
"아뇨, 잠깐 서서 얘기하죠. 방해는 하지 않겠습니다"
입구에 선 채로 후루카와가 이어서 말했다.
"지난날,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온 여행객들이 있었는데요. 화성에서 달까지는 전함으로, 달에서 신 도쿄공항까지 셔틀로 일직선. 뭐, 당신이 온 루트랑 똑같은데 말이죠"
"예에"
"여행이라는 건, 화성으로 연수를 갔던 그 크림슨사의 사원들인데……"
"크림슨?"
"네르갈의 라이벌 회사로, 최근 위세가 좋더라구요, 이거 참. 덕분에 네르갈은 하락세네 뭐네 입방아에 오르고. 뭐, 저는 이번엔 관계 없지만, 옛날에 있던 회사가 이러네저러네 하는 소리를 듣고있다면 좋은 기분은 아니라서 말이죠"
크림슨사란 네르갈 중공과 나란히 세상에 얼마 없는 거대 기업이다. 네르갈제 기동병기나 전함이 우주군의 주력이었던 탓도 있어서, 지난 전쟁까지는 뒤처지고 있었다. 하지만 종전 뒤 통합군 설립과 함께, 지금은 군수산업의 탑 클래스로 상승했다.
"연수라고 해봤자 요는 사원여행이겠죠. 영업 실적이 좋은 사람들에게 이른바 포상과 축의금까지. 이야─ 굉장하네! 그릇이 커! 과연 넘버원 기업은 다르네요"
후루카와는 평소엔 단답형인데, 이따금씩 기세 좋게 떠들어댄다.
'네르갈에서 일하던 때에는 뭘 했을까, 이 사람?'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는 사부로타.
"포상으로 관광을 갔다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아무 일도 없겠지만…… 머릿수가 늘었단 말이죠, 이게"
"엥?"
"화성으로 갈 때에는 20명, 돌아온 사람은 23명"
"셋…… 많아졌네요?"
"화성 지사의 스태프를 데리고 돌아간다, 라는 명목인 듯 한데……"
"그 스태프들이 신경쓰인다, 그 말이죠"
"딩동댕, 정답♪"
그렇게 말한 후루카와가 세 장의 사진을 꺼내 사부로타에게 건냈다.
"헤에, 과연. 스태프란 어떤 스태프죠?"
"기동병기의 개발 관련…… 목련 출신 기술자라고 되어있어요"
"기술자라……"
"목련과의 기술 공여는 지구 연합의 중요한 일이니까요. 무인병기나 중력제어, 지구측보다 뛰어난 기술이 목련에는 넘쳐흐르죠. 그리고, 그런 부분을 주로 다루는 곳이 크림슨사라는 말이죠"
"크림슨이라는 곳은 지구 연합과도, 목련과도 엮여있다는 뜻인가"
"그래요, 게다가 반 우주군, 반 아키야마 겐파치로같은 사람들과도 사이가 좋다고 하네요. 뭐, 이건 그냥 소문일 뿐이고 확증은 없지만──"
"확증, 이라……"
그렇게 말한 뒤, 사부로타는 다시금 사진을 봤다.
세 장 모두 평범한 증명사진이긴 하다. 하지만, 모두 하나같이 음험한 표정이다.
"거 참 기술자라고는 보이지 않네요"
"목련 출신인 당신도 그렇게 생각되나요"
"네, 그야 뭐"
"한 마디로, 수상한 인상이란 말이죠"
"그렇죠"
그저 우락부락한 얼굴이 아닌 무언가──그런 것이 느껴진다.
'세 명의 '그림자'가 일본으로 왔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
사부로타는 살짝 전율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떡하실래요?"
질문하는 후루카와에게, 가볍게 미소지어보이며 사부로타가 말했다.
"지금부터는 산책 시간을 배로 늘리죠"
"산책?"
"공안부 분들은 지금까지처럼 하죠. 모쪼록 무모한 짓은 하지 않도록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전하죠"
후루카와도 가볍게 미소지으며 문을 닫았다.
***
네르갈의 공안부는 호시노 루리를 지키기 위해 2중 3중으로 경비를 두르고 있었다. 주변으로 거수자가 들락날락거리는지 상시 체크하고, 평소와 같다면 부하가 대응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고트 홀리나 츠키오미 겐이치로가 맡아 처리한다. 어디까지나 비밀리에, 결코 루리나 미나토 가족, 주변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트러블을 배제해 왔다. 그러나, 이번엔 고트도 츠키오미도 없다. 하코네에서 고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츠키오미도 두 사람의 종적을 쫓겠다"
두 사람의 종적…… 사고로 죽었을 터인 텐카와 아키토와 미스마루 유리카가, 사실은 살아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고트와 츠키오미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네르갈이 적의 정보를 탐색하며 경계하는 것처럼, 적도 역시 네르갈을 조사하며 호시노 루리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한다면──.
'고트 나리와 츠키오미 중령님이 사라졌다는 말은, 녀석들도 알고 있다 봐도 좋겠지……'
다시금 드러누운 사부로타가 천장을 바라본다.
알고 있었기에, 세 명을 보냈다.
세 명은 아마도 목련의 '그림자'겠지.
'혹시, 중령님은 일부러 정보를 흘린 걸지도 몰라'
일부러 일본을 떠난다는 정보를 흘려, 루리의 경호에 틈이 생긴 것처럼 보이게 한다.
'중령님이라면 할 법 하군'
사부로타는 쓴웃음을 지었다.
적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굳이 '그림자'를 꾀어낸다.
목련류 무도 연구소
암살권
수수께끼의 사내들이 실제로 지구의, 이 일본에 왔다. 이제 곧 사부로타는 그들 셋과 싸우게 된다.
'호시노 루리를 노리는 '그림자'를 파견한 적은, 아키토와 유리카와 사건의 흑막이겠지, 분명'
사부로타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 루리를 노리지?
어째서, 아키토와 유리카를 납치했지?
적이란 대체, 어떤 존재지?
'뭐, 됐어'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난 지키기 위해 불렸온 거야'
당면한 사부로타의 사명은, 호시노 루리의 경호. 그게 나아가서는 츠키오미 일행의 극비작전에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낮잠이라도 잘까"
혼자 중얼거리고, 사부로타는 눈을 감았다.
***
"미나토 씨, 불꽃놀이야 불꽃놀이!"
저녁 준비를 하던 미나토에게 유키나가 말한다.
"뭐어? 불꽃놀이가 어쨌다고?"
"31일에! 히라츠카에서 불꽃놀이 대회!"
"아, 옆마을의"
"다같이 가자! 나, 불꽃놀이 해본 적 없어"
"음, 그러네. 아, 루리루리는?"
"정원. 멍멍이한테 밥 주고 있어"
"그래"
"루리도 간대"
"헤에─……"
흘려듣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는 있었지만, 미나토의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뭐, 내 덕분이라 생각하면 돼"
"아하하하"
부엌에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퍼진다.
***
"저쪽은 시끌벅적하네"
정원에서는 강아지가 물을 핥짝핥짝 소리를 내며 핥아먹고 있다. 놓여진 그릇은 두 개. 하나는 마시는 물그릇이고, 나머지 하나는 닭가슴살과 양배추를 삶은 먹이가 한가득 쌓인 밥그릇. 물을 한차례 마신 강아지는, 이어서 먹기가 잔뜩 든 그릇에 코를 파묻는다.
"네 덕분이려나…… 다들 즐거워하는 건"
강아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루리가 중얼거린다.
"나 때문에, 미나토 씨도 유키나 씨도 웃지 않게 되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유키나는 언제나 혼자 웃고, 외치고, 소란스럽지만, 미나토네 식구 모두 함께 부드러운 분위기를 띄는 일은 루리가 이 마을에 오고나서 거의 없었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최근에는 변했다.
"그리고…… 그 사람……"
그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나고나서다, 라고 루리는 생각했다.
'타카스기 사부로타…… 씨'
홀연히 이 마을에 나타나, 지금은 고서점 2층에서 하숙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한 사람이야'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샌가 자기 곁에 서있다. 온화한 미소와 함께.
'뻔뻔해……'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뻔뻔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마음에도 틈새같은 것이 있다면, 사부로타는 루리의 틈새를 너무나도 손쉽게 비집고 들어온다. 결코 조잡하지 않고, 하물며 무신경한 느낌도 아니다. 그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행위였다. 그 아무렇지도 않다는 모습을 애써 감추는 듯이, 사부로타는 쾌활하게 말을 걸며, 오버스러울 정도의 제스쳐를 취하고, 그리고 웃는다.
'그게 그 사람의, 그 사람 나름대로의 상냥함일까?'
하지만──루리는 생각을 고친다.
'그 사람은,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니까 상냥한 게 아닐까?'
호시노 루리, 인간 컴퓨터. 원맨 오퍼레이션 시스템의 유일한 피험자. 일찍이 그런 루리의 능력을 이용하려고 접근해온 인간은 수없이 많았다. 표면상으로는 상냥하게 접촉해 오지만, 그 뒤에 숨겨진 속셈을 눈치채지 못할 루리가 아니었다. 이 마을에는 그런 인간이 없었지만, 친절하기에 드러나는 무신경함에는 이따금씩, 입을 다물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구나──'
문득, 루리는 유키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상냥함은…… 유키나 씨랑 닮았어'
언뜻 보기에는 퉁명스럽고 난폭해보이는 유키나의 언동이나 행동은, 루리에게 있어서 오히려 딱히 신경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배려해주는 것보다 편했다. 그런 유키나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타카스기 사부로타라는 사람…….
'그 사람은…… 어쩌면……'
그럴 리 없다, 라고 루리는 혼자 고개를 휘저었다.
'어째서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 이런 곳에 올 리가 없어'
"여어, 뭘 그렇게 생각해?"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소리가 난 방향을 보니, 이제는 익숙해진 그 미소가 있었다.
"여전히 언짢아보이는 표정이네. 걱정거리라도 있어?"
"카이를 보고 있었을 뿐이예요"
"오, 드디어 이름을 지어줬구나"
"바다(海:かい)를 따서 카이예요. 조개(貝:かい)가 아니라, 바다의 한자를 음독으로 한 카이예요"
"아──, 사부쨩, 치사해!"
갑자기 장지문이 열리며, 유키나가 툇마루로 튀어나왔다.
"오, 그쪽은 여전히 좋아보이는 얼굴인걸"
"뭐야 그거, 칭찬이야? 그냥 빈말? 나는 낚이지 않는다구"
유키나에 이어서 미나토도 얼굴을 내민다.
"사부쨩, 마침 잘됐다. 저녁밥을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는데, 먹고 갈래?"
"오, 럭키─♪"
"혹시, 다 알고 온 거 아냐?"
"반은 정답이지"
사부로타가 웃었다. 유키나도 웃는다. 미나토도 웃는다.
'웃는 모습이, 즐거워……'
모두의 웃음소리가 포근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은은하게 흘러온다.
저녁노을이, 그곳까지 와있었다.
***
남자는, 초조했다.
남자는 목련에서 왔다. 옛 소속은 목련류 무도 연구소. 표면상으로는 고대 무술의 보존 연구를 위한 시설이었지만, 실제로는 쿠사카베 중장의 그림자 실행부대였다. 전쟁 전과 전쟁이 한창일 때, 쿠사카베의 방침에 반대하는 요인들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사실 뒤에는 그들의 암약이 있었다. 종전 후, 연구소는 해산했지만, 소속해있던 멤버의 대부분은 화성 부근 콜로니로 본거지를 옮겼다. 그리고, 변함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살인부터 납치, 유괴까지…… 남자와 그 동료들은, 명령대로 실행하고, 그 임무를 완수해왔다. 그리고 이번──.
"이번 임무는, 한 소녀의 납치다"
사진에 비친 소녀는 가냘프고, 머리카락이 은빛이었다. 소녀 자체는 연약한 존재이며, 납치 쯤이야 별것 아니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임무에 있어서 남자 외에도 두 사람…… 총 셋이서 임무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듣자하니 소녀의 주위에는 우수한 경비팀이 상시 배치되어있으며, 그 중에는 목련의 우인부대 출신도 있다고 한다.
'우인이라. 확실히 성가시겠군. 하지만……'
다행히도, 전 우인부대 출신 남자는 현재 다른 임무로 인해 지구에 없다는 일이었다. 남자는, 임무 달성이 손쉬워졌음에는 안도했으나, 그 결과 손맛이 좋은 상대가 없어졌다는 사실에는 실망했다.
'우인이라고 하면 표(表:겉)의 기술이야. 표와 리(裏:뒤)의 승부, 기대되서 미치겠는걸'
크림슨사의 화성지사 스태프, 라고 선전하며 남자와 동료 둘은 지구로 왔다. 화성에 연수여행으로 와있던 본사 스태프와 동행해서…… 라는 건 어디까지나 위장이다. 크림슨사는 남자들이 속한 조직의 유력한 스폰서였으며, 이번 임무의 의뢰자이기도 했다.
"여기부터는 당신들이 독자적으로 행동해주십시오"
미국 우주항에 도착하자마자, 크림슨사의 스태프가 말했다. 그는 연수여행의 담당자였고, 남자들의 신분 위장을 도와준 인간이기도 했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는, 크림슨사는 전혀 관계 없는 일이니까"
"알았소──"
남자들은 일본으로 건너와, 표적인 소녀가 사는 마을을 목표로 했다. 셋이 함께 몰려다니는 행동은 삼가며, 각각 이동 경로를 나누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오이소에서 집합하도록 정했다.
'명백히…… 그들은 우리들의 정체를 알고 있어'
남자는 확신했다. 자신은 굳이 헤엄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가는 곳곳마다 감시하는 기척이 느껴졌고, 이따금씩 살기 비슷한 느낌까지 받았다. 그러나, 전혀 손을 뻗어오지는 않는다.
'우리들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내일이 오면 다른 둘도 도착하겠지. 어떡할까?'
합류한 뒤 셋이서 행동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부터 바로 혼자서 가야할까. 남자는 방파제에 걸터앉아, 낚시꾼으로 위장하고 생각중이었다. 하늘은 쾌청하고, 바다도 잔잔했지만, 남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기다려야 할지, 아닌지……'
오이소에 들어오고나서는, 감시하는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남자에게는 그 의미가 파악되지 않았다.
'자신있다는 건가? 방심하기라도 했나? 아니면 함정인가?'
"잘 낚이나?"
갑자기 등 뒤에서 소리가 났다.
'어느새?'
모르는 사이에 배후를 잡혀, 남자는 내심 동요했다. 하지만 표정은 어디까지나 평정을 가장했다.
"아뇨. 전혀"
남자는 짧게 대답했다.
"헤에─, 그쪽 주변은 잘 낚이는 곳인데"
목소리의 주인은, 앉아있는 남자 옆에 놓인 빈 바구니를 쳐다보고 있다. 머리카락은 금색으로 물들이고, 반팔 셔츠를 대충 입은 장신의 남자였다.
'뭐하는 놈이지, 이 녀석?'
어떡해야 하나 망설이던 남자는 신경쓰지도 않고, 금발의 남자가 씩 웃었다.
"역시, 목련에서 자랐으니 낚시는 잘 못하나?"
'?!'
처음으로 남자는 표정을 바꾸고는, 금발의 남자를 바라봤다.
"네놈, 네르갈인가?"
"아닌데. 나는 프로 서퍼를 목표로 하는, 알로하가 참 잘 어울리는 사부쨩이야"
"사부쨩?"
"루리쨩의 친구인 사부쨩, 이기도 하지"
'루리? 호시노 루리 말인가? 그렇다면, 녀석은……'
"네놈, 호위하는 인간인가?"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으려나"
사람을 바보취급하는 듯한 말투가 일일이 신경을 건드린다. 남자는 그만, 낚싯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서라, 아서. 이런 대낮부터 소동을 일으키면 그쪽한테 있어서도 아무런 득도 없잖아"
확실히 그렇다. 주위에는 다른 낚싯꾼들이 여럿 있다.
"밤이 되면 서쪽 해변으로 와. 거기라면 사람들도 없으니. 상대해줄게"
그 말만 남기고, 금발의 남자는 떠났다.
'흐흥, 재밌겠군'
홀로 남겨진 남자는, 웃음지었다.
'지루한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이거. 사부쨩이라는 녀석, 즐겁게 해달라고'
바보같은 녀석이다,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아마도 사부쨩이라는 남자가 호시노 루리의 비장의 패라고 보면 되겠지. 그 만큼 녀석에게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지구의 인간들은 목련류 암살술을 모를 것이다. 목련의 인간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알지 못한다. 아무리 무술이 뛰어난 인간이라도──
'──녀석에게 승기는 없어'
나머지 둘을 기다릴 필요도 없겠군, 이라고 남자는 확신했다.
'이런 재밌는 건 나 혼자서 충분해. ……자 그럼, 밤까지 뭐하지?'
낚싯대를 정리하고, 남자는 일어섰다.
***
"맞아맞아, 폰즈를 사와야지, 폰즈"
부엌에서 갑자기 미나토가 말을 꺼냈다.
"폰?"
유키나가 노랫가락의 후렴구를 넣듯이 물어본다.
"그래, 냄비 요리에는 폰즈. 게다가 그거여야 해. 그─, 시만토의 유자폰즈"
루리까지 중얼거린다.
"시만토……강?"
"딩동댕~, 정답이야!"
두 사람에 루리까지 포함한 셋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제는 냄비 요리인 듯 했고, 미나토는 어묵을 만들며 루리와 유키나는 야채를 씻거나 자르고 있었다.
"아, 그럼 내가 사 올게요!"
툇마루에서 강아지 먹이를 주고 있던 사부로타가 말했다.
"잠깐 하다 만 일이 있으니까, 얼른 뛰어가서 하숙집 좀 들렀다가 갔다 와도 괜찮을까요?"
"문제 없어. 유키나쨩의 식칼 솜씨를 보고 있자니…… 아마 저녁 식사는 8시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으니까"
"에─ 너무해! 다치면 아프잖아. 그러니까 나는 신중하게……"
"시원시원하게 해야지, 좀 더 이렇게──"
"처음부터 시원시원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없거든!!"
어색한 손놀림이긴 했지만 결코 식칼을 양보하지 않는 유키나였다. 한편 루리는 담담하게 다시마를 물에 헹군다.
"아─ 잠깐 루리루리, 국물 우리는 다시마는 그렇게 씻으면 안─돼! 가볍게 하면 돼, 가볍게!"
"……미끈미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참, 말했는데! 뭐, 괜찮아. 다시마 한 장 더 추가하자. 그건 푹 씻으면 안 돼! 설탕이나 이물질을 씻겨낼 정도면 충분해"
"네"
'북적북적하고 좋구만'
사부로타는 툇마루에서 부엌의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럼, 잠깐 다녀올게요. 8시까지는 올게요!"
"좀 더 빨리 와도 괜찮으니까!!"
문을 나서는 사부로타에게, 유키나가 소리친다.
'나도 가능하면 빨리 돌아오고 싶은데……'
그 남자 하기 나름이군, 이라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하늘에 노을이 진다. 곧 태양도 서쪽으로 그 모습을 감출 것 같다.
***
남자는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7시 반을 막 지났을 참이려나. 결국, 날이 저물 때까지, 남자는 해안가에서 낚시를 했다. 주변에는 과연, 인기척이 없다. 오이소에는 항구를 끼는 모양으로 동쪽 해안과 서쪽 해안이 있다. 해수욕을 위한 숙박시설이 있어서 나름대로 북적북적대는 동쪽에 비해 서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수영금지', '집회금지'라는 팻말이 세워져있을 뿐이었고, 굉장히 조용했다.
'왔구나──'
바람막이숲에서 모래 경사면을 내려오는 인영이 하나. 밤이라고는 하나, 해안선을 달리는 국도의 불빛이 해안 부근까지 밝게 비추고 있다. 금발에, 알로하 셔츠──.
'그 녀석이다……'
낚시용 아이스박스에 걸터앉아 있던 남자는 낚싯대를 쥐고 일어섰다.
'한 방에 끝낼까, 아니면 좀 가지고 놀아볼까……'
바닷바람이 기분 좋다. 파도치는 소리가, 상냥하게 밀려왔다가 물러나고, 다시 밀려왔다 물러난다.
두 남자가 마주본다. 그리고──.
(글씨 크게)승부는, 한 방에 결정됐다.
"바보같은 녀석이군"
하늘을 바라보며 쓰러진 시체를 두 남자가 내려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백발이 섞인 짧은 머리카락, 또 한 사람은 긴 머리를 뒤로 모아 말총처럼 묶어두었다.
"셋이서 임무에 착수한다……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이군"
짧은 머리 남자가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첫 수에…… 이 사람을 해치우다니, 꽤나 강적이네요"
말총머리 남자는 시체의 상처를 확인하면서 감탄했다는 것처럼 말했다.
"기쁘냐?"
"그러네요"
두 사람은 조용히, 웃었다.
달은 푸르르고, 여전히 파도는 조용히 밀려오고 있었다.
***
"잠깐 괜찮을까요?"
심야, 사부로타가 하숙집에서 잠자리에 들려던 차에 문 건너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집주인인 후루카와였다.
"예"
드러누운 채로, 사부로타가 대답했다.
"일단은, 한 명이네요"
"그렇죠"
"도움을, 드렸습니다"
"엥?"
"바보같은 사람들이었죠. 시체를 둘러싸고 수다떨고 있길래…… 습격했죠"
"습격했다니…… 에엥?!"
사부로타는 깜짝놀라며,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후루카와의 말투는 변함없다.
"뒷산쪽이었는데요…… 2km 정도 떨어져 있으니까요. 한 명은 처리했는데, 다른 한 명은 도망쳤어요. 과연 목련의 군인이네요"
"……그래서, 사망 확인은 했나요?"
평정을 가장하며 사부로타가 물었다.
"네, 그건 시크릿 서비스 분들이 재빨리 처리했죠. 두 명의 시체를 확보했어요. 딱히 이렇다할 물건은 지니고 있지 않더군요"
"……"
"아마 상대방도 실패를 예측하고 다른 책략을 생각하고 있겠죠. 그러니 이 건으로 세간이 이러쿵저러쿵 소란피울 일은 없을 테고, 하지도 않겠죠. 그리고 이 실패를 공표해봤자, 오히려 우리 정보가 이것저것 세나갈 뿐이예요. 뭐, 나머지는 당신이……"
"제가?"
"당신이 마지막 한 명을 쓰러트리기만 한다면, 깔끔하게 쌤쌤이 되죠"
"하하……"
"그럼, 쉬세요"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사부로타는 후우, 하며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후루카와의 말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내가 쓰러트린 남자의 시체를 미끼로, 보기 좋게 한 명을 습격해 죽였단 말인가'
후루카와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네르갈의 관계자일 뿐이지, 어디까지나 전쟁과는 관계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다소 방심할 수 없긴 하지만, 그건 첩보와 관련된 일을 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사부로타 멋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방심할 수도 없는 데다가, 얕볼 수도 없는 아저씨구만, 저거……'
평범한 아저씨가 장거리 사격으로 목련의 군인을, 그것도 무도 연구소 소속이었던 인간을 사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뭐 어쨌든…… 나머지 한 사람. 승부는 아마도──'
사부로타는 일단 자기로 했다.
***
다음날 아침.
루리와 유키나가 산책 준비를 하고 있노라니, 웬일인지 사부로타가 찾아왔다.
"선수필승. 마중나왔어"
담장 너머에서 사부로타가 밝게 웃는다.
"마중을 나와주는 이유를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기쁘잖아!"
유키나가 바로 끼어든다.
"기쁜 건 유키나 씨잖아요"
"엑?! 자, 자아 가자, 카이!"
강아지 목줄을 쥐고 유키나가 외친다.
"하하하, 그런가? 그럼 나도 온 보람이 있는걸"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는 루리였지만, 결코 싫다는 표정은 하지 않았다.
***
하늘은 흐렸다. 파도가 조용히 밀려오고, 강아지 카이를 이끌고 온 루리와 유키나, 그리고 사부로타가 물가를 걷는다. 유키나가 가볍게 말하고, 사부로타가 받아친다. 평소와 같은 이른 아침의 풍경.
'언제부터, 평소와 같은 일이 되버린 걸까?'
루리가 문득 생각했다. 사부로타가 온 것은 7월. 그 뒤로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상하네……'
그런 루리의 앞을 경쾌하게 카이가 걸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그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니?"
유키나가 카이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가만히 앞을 바라보는 채 카이는 미동도 않았다.
"루리쨩, 카이의 목줄, 절대 놓으면 안 돼"
사부로타가 그렇게 말하고는, 둘을 두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무심코 뒤를 쫓으려는 유키나에게, 짧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오지 마"
"에?"
그건 평소 상냥한 사부로타가 아니었다. 큼지막히 걸어가는 그 움직임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저것은──.
"……목련류, 유술이야"
"목련?"
이때, 루리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
사부로타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수십 미터 앞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아니, 사진으로 본 적은 있다.
세 숙련자 중 하나. 마지막 한 사람.
키는 180정도, 목과 어깨가 튼실하긴 하지만, 지난날에 싸웠던 남자에 비교하면 스마트한 체형이다. 머리카락은 짧고, 백발이 섞여 있다. 40대 후반 정도일까.
"어제는 실수했어"
낮게, 잘 울리는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그런가 보군"
사부로타도 대답한다.
쿡쿡, 하며 남자가 낮게 웃었다. 그리고 묻는다.
"가까이선 아니더군. 어디서 저격했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사부로타는 멀리 떨어진 산을 가리켰다.
"여기서 약 2000m 이상은 되겠네. 거기서 탕"
"네르갈이, 이렇게까지 철저할 줄은 몰랐군"
"그래, 나도 감탄했어"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부로타와 남자는 거리를 재며 유리한 위치를 찾고 있었다.
***
'사부쨩, 목련인이었구나……'
유키나는 남자와 대치하는 사부로타의 등을 바라봤다. 옆에 있는 루리도, 꼼짝 않고 서있었다.
"저 사람은……"
갑자기 루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여러 사람에게 보호받고 있네. 사부로타 씨, 미나토 씨……"
유키나는 루리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
루리도 약하게나마 손을 마주잡는다. 차가운 손이야, 라고 유키나는 생각했다.
두 사람의 발 아래서, 카이도 우두커니 남자들을 바라본다.
***
구름이 낀 하늘 너머에서 아침햇살이 고개를 내민다.
두 남자들의 거리는, 겨우 몇 미터까지 접근해 있었다.
"저 아이, 그만큼 중요하단 말이군"
"그것도 모르면서 지구까지 왔나?"
"개요는 들었어. 하지만, 말이야"
"아, 그거. 나도 이해하지──"
거의 동시에 두 남자가 모래바닥을 걷어차고 달렸다.
사부로타가 왼발을 축으로 삼아 크게 도약한다.
'왔나!'
남자는 옆으로 피한다. 사부로타의 앞차기가 허공을 가른다. 그러나 이어 오른발을 축으로 왼발이 날아왔다. 남자는 반보 물러서며 상체를 피한다.
'발차기가…… 늘어나나?!'
종이 한 장 차이로 발차기를 피한 남자는, 중심을 낮게 잡으며 사부로타의 허리를 노리며 태클을 건다. 그러나 사부로타는 뒤로 물러나더니, 남자의 턱을 노리며 무릎을 뻗어올렸다.
'읏!!'
양손으로 무릎차기를 막으며, 발차기의 기세를 이용해 뒤로 피한다.
남자와 사부로타는,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 시간은, 고작 2초를 넘기지 않았고──.
'굉장해……'
유키나는 눈을 크게 뜨고 둘의 전투를 보고 있었다.
옛날, 목련에 있던 시절──오빠인 시라토리 츠쿠모가 살아있던 시절. 유키나는 우인부대의 유술 연습을 견학한 적이 있었다. 지구의 유도나 가라테가 그 원류다, 라고 사전에 츠쿠모에게 듣긴 했지만, 자기 몸을 유전자 레벨부터 단련(이라고 설명했다)한 우인부대 군인들이 펼치는 기술은 날카롭고 힘이 넘쳤다.
"굉장하다, 오빠!"
견학 후, 유키나는 츠쿠모에게 뛰어들며 떠들었다.
"그러니. 하지만, 아키야마 부대에는 더 굉장한 녀석이 있어"
"아키야마라니?"
"아키야마 겐파치로. 겐이치로처럼, 사관학교 시절부터 친구였지"
"흐─응"
'이 두 사람, 그때 연습보다도 굉장해'
유키나가 생각하는 사이에도, 사부로타와 남자는 몇번이고 주먹을 교환하고, 도약하며, 달렸다. 그리고 다시 거리를 벌렸다.
'꽤 하는군……'
남자는 사부로타의 행동을 기다렸다. 왼발을 내리고, 허리를 약간 아래로 내리더니, 오른손을 앞으로 내뻗는다. 교과서 그대로의 목련류 준비자세다. 그에 비해 남자의 자세는 이른바 레슬링 스타일이다. 태클을 걸기 위해 허리를 낮게 낮춘 자세다. 두 사람은 슬금슬금 반원을 그리듯 빙빙 돈다. 그 사이에 남자는 생각했다. 이 녀석은 대체 뭐하는 놈인가 하고.
'목련류…… 우인부대의 인간이 하나 더 네르갈에 있었나? 아니면 그 정보가 거짓이었나?'
'아니, 지금 그건 됐어'
'지금은 눈앞의 금발 남자를 쓰러트린다. 그리고……'
동료를 둘이나 잃은 지금, 표적인 은발 소녀를 데리고 도망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 표적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
루리를 죽인다. 이게 이 남자의 임무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부로타를 쓰러트려야만 한다.
'우인, 이건 모르겠지'
남자의 자세가, 바뀌었다.
***
'오는구나'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남자는 처음에는 레슬링 스타일의 자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양손을 가볍게 얼굴 앞으로 끌어올리고 팔꿈치를 굽힌다. 오른발을 반보 물리더니, 왼발로 박자를 맞추듯 가볍게 스텝을 밟는다.
'그 동작이다……'
이전, 하코네에서 츠키오미와 마주했던 때. 츠키오미는 갑자기 눈앞의 남자처럼 자세를 취했고, 사부로타는 무참히 당해버렸다. 그 뒤로 츠키오미와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츠키오미가 가르치고 싶어했던 게 뭔지 이해했다, 라고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목숨을 거는 각오, 그건──'
사부로타도, 자세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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