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혔어"
빨간 녀석이 야구모자같은 머리를 얼싸안고 있다.
그 옆에서 나는 꿈꾸는 듯한 황홀한 기분에 젖어있었다. 최근에 했던 은발 아저씨와의 격렬했던 섹스를 떠올리며, 헤실헤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격렬했던 건 나 뿐이었지만. 데헷.
"하루, 듣고 있어?"
"아─니"
"세계의 존망이 걸린 사태인데!"
치바는 어째 안색도 안 좋고, 여드름도 평소보다 많았다.
시끄러운 꼬맹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귀를 열기로 했다. 일단은 돈도 받은 테이블 토크니까, 이거.
"왜 그러는데? 또 페넌트 레이스 얘기야?"
"내가 한 번이라도 야구 얘기를 한 적 있었냐고! 그게 아니라, 이 망할 세계에 대한 거야"
테이블을 삐걱거리면서 치바가 흥분해 말한다.
"레벨 캡이 있었어. 신 그놈, 그런 설명은 안 해줬으면서"
"캡? 뭔데 그게"
"레벨 제한이야. 예를 들면 어떤 게임은 레벨을 99까지 밖에 못 올린다던가 하는 그거. 이 세계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그 제한이 정해져있었어. 나는 레벨 91이 한계고, 이 이상 올릴 수 없어. 투기장 B랭크 상위권에 가려면 레벨 100은 필요한데!"
"치트는 어쨌는데, 치트는?"
"그러니까 그 치트가 한계에 도달했다니까. 너무 낮잖아. 그래도 공격마법이랑 상태이상 무효는 있지만, 레벨차가 커지면 답이 없다고. 나한테 오의나 필살마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마디로, 무한히 강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했건만 한계가 있었다는 말이지. 게다가 그것도 개성이라고. 헤─, 그랬구나. 그나저나, 그런 일로 삐진 거야? 이 녀석.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되네 어쩌네 했던 주제에, 멘탈은 여전히 음침했던 고등학생 시절 그대로네.
"뭐 어때. 사람은 자기자신을 알수록 진짜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다구~. 푸풉"
"뭐가 웃겨, 하루? 이대로라면 나는 '그냥저냥 적당히 강한 형씨'로 끝난다구. 강해지지 않으면 너를 지킬 수 없는데!"
"너,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번이라도 나타난 적 있었던가?"
꽤 위험했던 순간이 지금껏 몇 번이나 있었지만, 이 녀석에게 도움을 받은 적은 없는걸.
진짜, 쓸모없는 면에서는 진작에 세계 1위라니까.
"싸우는 걸로 안 된다면 근육 트레이닝이라도 해보면 되잖아?"
"하, 진짜 모르는구나 하루는. 그야 트레이닝하면 다소는 스테이터스도 오르지. 하지만 그건 시간이 걸리도, 꽤 노력이 필요하다구!"
"그게 평범한 거잖아"
"평범이라구, 그러니까 싫단 말이야! 내가 노력이나 특훈을 싫어하는 건 하루도 알잖아"
모르지만 알 만하네. 저질이다 정말.
"아~, 젠장. 마왕을 쓰러트리고 싶었는데─! 레벨 캡을 풀어주면 쓰러트릴 수 있는데─!"
신이 들어줬으면 하는지,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치바가 불평을 들어놓는다.
마왕 따위 건드릴 생각도 없었던 주제에 말은 잘 해요. 저런 면은 진짜 치바라니까. 후─.
"뭐, 힘 내라구 토치기"
"치바라니까!"
"재미있는 반도였나?"
"그건 치바현의 캐치프레이즈고!"
"그보다, 이제 시간 끝났어. 슬슬 작별할 시간이네"
"어, 벌써? 그나저나, 위로해주지 않을 거야?"
"너한테는 키요리가 있잖아"
"그 녀석 말이지…… 아니, 잘 모르겠지만, 최근에 병원이 바쁘다고 만나러 오지 않는다구"
버림받은 결말인가.
뭐, 키요리니까 진짜 바빠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치바와 거리를 두면서 생각해볼 마음이 들었다면 다행이겠다. 그 아이는 성실하니까, 치바랑 함께 있으면 못쓰게 되버릴 것 같고.
"자, 85루버 낼게. 2층으로 가자"
잘난 듯이 짤그랑대는 코인의 높이를 눈으로 확인해보고, 나는 씩 웃어줬다.
"부족한걸~"
"뭐?"
"후후─. 언제까지고 예전의 나라고 생각하지 말라구. 어제부터 100루버가 됐으니까!"
"어, 진짜? 바가지잖아"
"바가지 아니거든!"
실례되는 말을 막 하네 쓰레기 오타쿠놈. 염원하던 세 자릿수 금액에 도달했다구. 나도 드디어 거물급 여자란 말씀.
게다가 이번 달은 틀림없이 5위 확정이니까. 나는 신 파이브의 일원이 되는 거야.
3위인 시크라소 씨의 등도 슬슬 보이기 시작했고. 매출 레이스를 가열시켜보겠어!
마왕이나 치바의 치트보다, 눈 앞의 일이 지금의 나에게는 소중하다. 가게에 대한 것도 생각하고 있으니까.
최근에 조금씩이지만 책임감이라는 녀석이 생긴 기분이 든다.
"그렇게 되었으니까, 나도 가게의 간판 중 한 명으로 더 많이 신규 고객를 개척해야지. 치바도 불평불만 늘어놓지 말고 여러 아가씨랑 만나서 남자를 갈고닦으라고. 인생에 필요한 경험치는 배틀 뿐이 아니니까. 루페쨩, 이 남자에게 차분하게 설교 타임 부탁해!"
"어, 잠깐만 하루"
귀찮은 남자지만, 이런 놈이라도 신경써주는 마음씨 착한 아가씨도 있다. 동생이랑 닮았다고 하던데. 치바를 루페쨩에게 떠넘기고, 나는 가게로 영업하러 간다.
"좀 들어주세요, 루페 씨~"
"응, 들을게─"
요즘 이 둘의 조합이, 어째 좋은 예감이 든다.
***
"위문?"
익숙치 않은 단어에, 나와 루페쨩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 군대 병영에서 노래부르거나 술을 따르며 어울려주거나. 전선을 경계하느라 놀러 나올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기운을 차리도록 해준다고나 할까. 거기 와줄 수 있냐고, 비스크 씨가 말해서"
시크라소 씨가, 앞머리를 빙글빙글 손가락 끝으로 돌리며 기쁜 듯이 말한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군인도 꽤 있는 모양이지만, 가끔씩은 여자의 노래도 듣고 싶다고 하니까. 하지만, 잘만 하면 앞으로도 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 나,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노래라면 자신 있고"
"마담은 된다고 했어?"
"응. 열심히 하라시더라. 보수도 있지, 군이 가게랑 나한테 지불하겠대. 내 몫은 2틀 밤에 2000하고도 400루버!"
"굉장하다, 시크라소 씨. 가수같아"
"헤헷, 남자친구 연줄이지만!"
"네네, 남자친구 말이죠─"
"……그래서 있지"
앞머리를 점점 더 빙글빙글 돌리면서, 목소리를 살짝 낮추고 시크라소 씨가 말한다.
"비스크 씨가, 백대장한테도 소개하고 싶대"
"어? 그 무서운 사람에게?"
나라면 절대 소개받고 싶지 않은 계열의 남자인데 말이지─. 비스크 씨도, 그때는 적당히 흘려넘겨줬는데.
하지만, 루페쨩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거 혹시……"
얼굴이 빨개진 루페쨩과, 더 빨개진 시크라소 씨.
어, 이거 혹시 그런 의미?
상사에게 소개한다는 게 그런 의미야?
"결혼~?"
"아, 아니, 아직 정식으로 들은 건 아니고! 이 기회에 소개한다고 했을 뿐이야!"
"꺄~! 축하해!"
"와! 해냈구나, 시크라소 씨!"
"지, 진정해. 아직 모른다니까!"
그런 말을 하면서, 행복해보이는 표정을 짓고 말이야. 얼마 전까지 풀죽어서 울적하게 지냈으면서.
잘 됐잖아─.
"그럼, 냄비 축제는 시크라소 씨가 돌아온 뒤에 성대하게 하도록 할까요!"
"아, 결제는 나한테 맡겨줘. 다들 먹고 싶은 거 전부 사자!"
"아싸─!"
좋─아. 시크라소 씨가 꿈을 이루러 간 사이, 나도 착실하게 가게를 지켜야지.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루 씨─……"라며, 키요리가 거무칙칙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엄청 기분 다운되니까 그만해. 뭐야, 그 표정은?"
"죄송해요…… 저 스스로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의 표정이예요……"
"아니, 전에도 그런 말 했지만, 이 정도로 재수 옴붙을 표정은 아니었잖아"
만날 때마다 박복함이 늘어나는구나. 아니 근데 얘 시스터 아니었나? 원판이 예쁜 만큼, 반대로 저주받을 것 같은걸…….
가게 앞 벤치에 앉히고, 따듯한 음료를 마시게 한다. 조금 진정됐는지, 키요리도 평소의 기운을 되찾는다.
"어째서인지, 정말로, 저는 무력하구나 싶어서……"
치바가 침울해하는 모양이다. 자기도 바빠서 좀처럼 만나지 못하고, 집도 정리가 안 되고. 그런 와중에 치바는 왜 침울해하는지 말해주지도 않고. 정신 차리자고 격려해도, '네가 내 기분을 알 리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제 한심함을 통감했어요……"
키요리는, 어깨를 푹 늘어트리며 한숨을 쉰다.
정말이지 성실하고 진지한 아이다.
여자친구한테도 말하지 않는 고민 따위, 들어줄 필요도 없는데. 남자는 이유도 없이 어리광을 받아주면 안 된다구.
"있잖아.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해서 치바 걔 좀 열받지 않아? 그런 놈을 진지하게 돌봐주는 거 힘들지 않아? 투기장에서의 그 남자가 멋있게 보였을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사귀어보니까 어때?"
"…………"
"말만 들어도 키요리쨩이 노력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치바는 숲 건너편으로도 데려가주지도 않잖아? 그런데도 '이래라 저래라' 시끄럽지. 키요리쨩, 그런 때에는 침울해하기보다 화내는 편이 나아. 아무 반박도 하지 않으니까, 걔도 폼잡으면서 거만하게 구는 거라고"
쏘아붙이면 금방 쪼그라드는 녀석인데. 이런 얌전하고 순종적인 타입의 여자랑 얽히면, 그야말로 가정폭력남이나 스토커가 되버릴 법해서 무섭다니까.
그런데도 키요리는, 점점 더 축 처진다.
"……즉 제가 나쁜 거네요"
"그러니까, 그런 말이 아니라─. 참지 말라는 말이야"
귀찮네, 진짜.
"치바가 침울해하는 이유는, 그 녀석만의 어찌되든 상관없는 성공 스토리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니까.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스킬이 높은 우리 가게의 루페쨩조차, 걔는 당최 모르겠다고 말하는걸. 하지만, 치바가 하는 말은 사실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라, 한 마디로 노력하기 싫어하는 녀석이 투정부릴 뿐인 이야기라구"
치트네 스킬이네, 이쪽 세계 사람에게 설명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구. 핸드폰이나 게임을 경험해보지 못하면 이해하지도 못하고, 나도 겨우 알아들을까 말까한걸.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치바도 나 밖에 상담할 상대가 없다는 사실은, 좀 불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친구에게 화풀이한다는 극악무도한 짓이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번 헤어져볼래? 그럼 치바도 반성할지 모르고. 키요리쨩도 전선으로 나간다는 목표가 있잖아? 다른 모험자 중에도 아마 상냥하고 괜찮은 남자가 잔뜩 있을걸. 응, 그러는 편이 이대로 치바같은 어정쩡한 녀석이랑 레알로 사귀는 것보다 낫고 개이득일지도 몰라. 키요리쨩, 귀여우니까 그러는 편이 낫다구. 꿈도 남자도 몽땅 쟁취해야지"
강해보이는 사람은 대부분 아저씨지만.
하지만, 노련하고 멋진 아저씨라면 없지도 않고~.
"──저로서는, 그런 생각은 할 수 없어요"
키요리가 툭하고 말한다. 어느샌가 고개를 들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역시 하루 씨랑 치바 씨는, 저희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요. 생각하는 법이나 말하는 내용도 둘만 통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 레알, 이라던가, 개이득, 같은 들은 적 없는 단어도 똑같고. 저희가 모르는 세계를 공유하는 기분이 들어요"
아─, 진짜 귀찮네. 이쪽 세계, 한글리쉬도 대부분 통하는 편리한 언어면서, 물건 이름이나 은어에서 종종 막히잖아. 미묘하게 좀 엇갈리는걸.
대부분의 사람은 흘려듣는데, 감이 좋은 녀석은 그걸 순식간에 캐치해버린다.
"하루 씨. 당신들은 혹시──"
"아─, 슬슬 개점 시간이네! 아무튼 치바한테는 나도 설교해둘 테니까. 그보다도 키요리!"
"아, 네!"
"너도, 자기 마음을 말할 때는 좀 더 목소리를 내. 남자는 기본적으로 귀가 어둡거든. 그리고 덤으로 남존여비라는 놈한테 지지 말라고. 세계는 남자랑 여자가 움직이는 거니까!"
"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이상, 해산!"
억지로 키요리를 돌려보내고, 직장으로 복귀한다. 나는 바쁘다구. 시크라소 씨의 구멍을 남자친구처럼 막아줘야 한단 말이야. 오늘은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그래서 있지─, 루페 씨. 하루도 키요리도 우울한 전개에 들어갔을 때 주인공의 기분에 대해 전혀 모른다니까. 옷도 안 벗고 설교를 한다니까. 그 녀석들 아스퍼거라니까, 아스퍼거"
"그렇구나─. 잘 모르겠지만, 남자랑 여자는 엇갈리는 부분도 있으니까─"
그런데도 이러쿵저러쿵 루페쨩에게 얽혀서 멋대로 주절대는 치바에게, 참을 수 없게 되어서 물을 뿌려버렸다.
"앗 차거. 내 머리는 물고기도 아니고, 컵도 아니라고!"
"시끄러워! 그런 건 됐으니까 이리로 와! 100루버 내고 날 따라오라고!"
"정말이지, 완전 암컷의 표정으로 발정해버려서는…… 미안해, 루페 씨. 또 봐"
"으, 응. 그치만 일단 가르쳐주겠는데, 아마도 하루쨩 화났다고 생각하거든? 그 부분 엄청 중요하니까, 엇갈리면 치명상이다?"
먼저 거침없이 올라가는 나와, 뒤에서 착각에 빠진 치바. 방에 들어간 순간, 나는 치바를 엎어쳐버렸다.
"이래 봬도 초등학생 때 유도 배웠다구!"
"이제와서 그런 설정 추가공개하지 말라고~!"
치바의 몸이 깔끔하게 호를 그리며 침대 위로 떨어진다. 나는 그 위에 올라타 목을 조였다.
"치바 주제에 주위에 민폐 끼치지 말라고─!"
뭐가 우울한 전개냐, 애니 오타쿠놈.
쉽게 강해진 주제에, 그게 좀 막혔다고 이제 끝장이라고? 창녀를 얕보지 말라고. 나는 매일매일이 우울한 전개란 말이야. 사회의 밑바닥층을 얕보지 말란 말이야.
필사적으로 살아보라고, 멍청아.
"그만해, 하루"
하지만 치바는, 손쉽게 내 손을 목에서 떼어내더니, 그대로 뒤집어서 내 위로 포개지듯 덮쳐왔다.
"내가 더 강하다니까. 하루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하루니까 일부러 내던져진 거라고. 라고, 치바가 기분 나쁜 목소리로 속삭인다.
"뒤에서 뿌린 물을 맞아준 것도, 일부러라고. 하루가 아니었다면 팔을 잘라내버렸을 거야"
이노디에이터(였나?)의 생활이 어떤지 몰라도, 치바는 다른 모험자처럼 '마물을 사냥해 생활하는 놈'의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내 힘은, 널 지키기 위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너한테 지켜진 적 따위 한 번도 없다고"
"내가 몬스터로부터 이 마을을 지키는 이유는, 하루가 여기 있기 때문이야"
"그것도 그냥 경험치 벌이일 뿐이잖아"
"운명을 개척하는 거야. 강해지는 게 주인공의 사명이니까"
나와 하루는, 같은 세계에서 건너온 운명공동체. 건방지게 그런 소리를 말하며, 입술을 내 목에 갖다댄다.
내 팔을 침대에 밀착시키면서.
자기 사냥감 다루듯 난폭하게.
"건방떨면 쳐죽인다, 빌어먹을 오타쿠야"
하지만, 나 역시 그런 남자들에게 매일밤 안기고 있다. 쫄 리가 없다.
너 따위에게 보호받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어. 살아왔다고. 나도 이 세계를 달랑 몸 하나로 살아남아왔단 말이야.
남자 쯤은 불알만 걷어차면 언제라도 나뒹굴게 만들 수 있어. 그 아이들과 약속했으니 차지 않을 뿐이야. 떨어야 하는 쪽은 음침한 캐릭터인 너라고.
"……건방떨은 적 없거든"
그런데 치바는, 평소처럼 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한숨을 쉬더니 몸을 일으켜세웠다.
"건방 따위 떤 적 없어. 오히려 네가 그러겠지, 하루! 여긴 이제 학교도 아니고 교실도 아니야. 다시는 나를 오타쿠라고 부르지 말라고!"
나를 깔아뭉개고, 내려다보면서, 치바가 본 적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외친다.
"나나 내 친구들을 전부터 그렇게 불러온 사실은 알고있어. 우리를 떡밥삼아 씹던 것도 알고있었다고. 자기네랑 다른 생물 보듯이 우리를 보던 것도. 그런데 거기, 너희들만의 교실이 아니라고! 우리 교실이기도 했어! 하루는, 언제나 중심에서 히로인 포지션이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시시한 일로 웃고 떠들고, 인기도 많고, 즐거운 듯이 있었지!"
치바가, 처음으로 원래 세계 이야기를 꺼냈다. 교실에서는 이 녀석이랑 말해본 적도 없었다고, 새삼 깨달았다.
"우리들, 전혀 건방떤 적 없었거든! 그럴만한 공간도 없었다고! 아니 딱히 그거야 아무래도 좋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내가 압도적으로 주인공이라고, 주변에는 귀여운 애들 뿐이고, 하루같은 건 이제 서브히로인이라고"
그냥, 이것만은 알아둬. 그렇게 말하더니 치바는,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가리킨다.
"내가, 어째서 죽어서까지 널 지켜줬다고 생각해? 너는, 좀 더 내게 감사해야 한다고. 나…… 나는, 그 시시한 매일이, 너를 히로인으로 하는 학원 러브코메디였으면 좋겠다고, 계속…… 그런데! 어째서, 내가 괴로울 때에 네가 쿡쿡 찌르는 거냐고. 너는, 내가 없으면 안 되잖아아아!"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훌쩍훌쩍 울며 치바가 외친다. 그야말로 폭주하는 반도.
이 남자의 진심을, 나는 처음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건, 역시 내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거시기했다.
"비켜, 치바"
이제 끝이네. 이건 무리야.
알고 지낸 시간이 오래되었으면서도 짧은 듯한, 이상한──친구였다.
"전부터 네가 기분 나빴는데, 지금의 너는 최고로 기분 나빠"
치바는 '헷'이라 말하더니 어깨를 떨며 웃었다.
그리고, 바지를 내렸다.
"아 그래. 그렇겠지. 지금도 너는, 교실 카스트 톱 클래스였던 코야마 하루 씨로 있을 생각이구나. 그래도 아니거든. 그냥 창녀일 뿐이야. 그리고, 나는 손님이지"
잔뜩 발기한 풋내나는 자지. 그것을 나에게 들이밀면서, '빨아'라고 한다.
"네─"
나도 내 할 일을 한다.
그 부분은 비즈니스니까, 제대로 한다.
귀두 끝에 혀를 대자, 민감한 치바가 허리를 떤다.
네 발 자세로 자지를 핥는 나를 보며, 울면서 웃는다.
"헷…… 하루가, 내 자지를 빨고 있어……"
그래, 빨고 있어.
음침한 캐릭터인 네 자지를, 교실 뭐시기에서 톱 클래스였다는 듯한 내가 빨고 있다고.
원하는 만큼 흥분하라고.
"으읏, 아아……"
치바가 셔츠를 걷어올리면서 허리를 흔든다.
나는 그 자지를 입에 물고, 쯉쯉 소리를 내며 빨아준다. 혀도 끈적하게 얽어가며 치바에게 봉사한다.
"하루……"
또 기어오르면서 내 머리를 만지려는 손을 뿌리친다.
치바는 그대로 허리를 밀어붙여와서, 내 목구멍을 자지로 쑤셔박는 게 짜증났지만,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었다.
싸기 직전에 입에서 자지를 빼더니.
내 얼굴에, 정액을 문질러 바르듯 싸면서 움찔댄다.
잔뜩 나온 정액이 앞머리와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치바는 그런 내 얼굴을 보며 '헷'하고 웃더니, 곧장 자지를 집어넣고 돌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치바"
나는 타올로 얼굴을 닦으며, 등을 돌린 채 말한다.
"두 번 다시 오지 마"
흥 하며 코웃음을 치더니, 치바도 말한다.
"누가 올까보냐"
***
뭐, 그런 놈은 아무래도 좋으니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있지─, 시크라소 씨가 바빠져서, 아직 냄비 축제는 하지 못했거든. 하게 되면 씨름부네 가게에서 내놓는 고기를 사고 싶은데, 이런 거 부탁해도 돼?"
"아, 네. 괜찮아요. 다른 재료도 저희 가게에서 사는 편이 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데, 맡겨주시겠어요?"
"정말? 그럼 좋지─"
씨름부는 좋은 녀석이다. 어디 사는 재미있는 반도랑은 차원이 다르다.
손을 꼭 잡아줬더니 금방 얼굴이 빨개진다. 여전히 여자에게 약하구나.
"맞다. 가끔은 다른 누나랑 연습해볼래?"
"아, 아뇨. 저는 그런 건, 됐어요"
"너 보고 귀엽다는 아가씨도 잔뜩 있는데─"
"그, 그럴 리, 없다구요, 네"
있다구. 예의 길드장네 도련님 사건 이후, 의외로 진지하게 씨름부는 우리 가게의 아이돌이 되었다. 그 필사적인 모습이 꽤 많은 아가씨의 하트를 움켜쥐고 말았다.
나도 최근들어, 씨름부를 조금 귀엽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남이고 활발한 캐릭터가 아니면 남자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세상에는 여러 타입의 남자가 있고, 여러 타입의 사랑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내 타입은, 구수하고 멋있는 아저씨지만.
"그럼, 나랑 2층 갈까?"
"……네"
씨름부는 좋아한다. 그는 좀 더 좋은 남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은, 뒤로 하는 것도 익숙해졌고.
하면 할 수 있는 애라니까.
매상을 순조롭게 올리고, 순위표에 어젯밤 매상액을 기록하는 일이 즐거워졌다.
내 가격이 높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압박감도 조금 생겼다. 먹칠할 만한 일은 할 수 없지.
가게 준비도, 스테이지에 흥을 돋구기도 빼먹지 않는다.
성실하게 일하면, 날 눈에 들이고 사주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애교도 잔뜩 부리면서, 재미없는 일도 열심히 했더니, 이제는 슬슬 손님들도 내게 빠지기 시작했다. 사람으로서 좋아하게 되어서야, 처음으로 고정객이 된다.
예전의 나는 일이 엉망이었지. 불만도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별로라고 생각하는 점은 말해야 하겠지만, 손님 앞에서는 가능한 웃는 얼굴로 있어야지.
꿈을 판다는 등 호들갑떨며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기뻐해주는 게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가장 기뻐해준 사람이 여기에서 1위라 할 수 있지.
좋아, 흥이 오르기 시작했어. 창녀 하루쨩, 출동 준비 완료.
오늘도 열심히 일하자!
"──하루쨩"
마담이 기둥 뒤에서 날 부르듯 손짓한다.
"왜요?"
마담이 다른 사람 없는 곳에서 이야기한다니 별일인걸. 어슬렁대며 다가오는 내 팔을 붙잡고는, 목소리를 한 층 더 낮추며 심각하게 말한다.
"시크라소쨩이, 군에 일을 간 뒤로 돌아오지 않고 있어. 어제 돌아왔어야 했는데…… 뭔가 들은 거 없니?"
이 일을 하고 있자면, 낮과 밤처럼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교차하며 찾아온다.
그리고 조금씩, 어째서인가 나쁜 일만이 점점 더 커져간다.
잘 보고가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