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목록 (상단)

2019년 9월 5일 목요일

JK 하루는 이세계에서 창녀가 되었다 후일담 봄이여 오라

 근황 보고라고나 할까, 그 뒤로 딱히 변한 일은 없지만 일단.

 우선 아무도 흥미 없을 치바부터 말해보자면, 무사히 루페쨩의 하인 넘버8 정도는 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자주 그녀의 발치에서 무릎꿇고 엎드려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루페쨩은 여전히 가게 매상 2위를 유지하는 중이다. 우리 가게 투탑은 정말 강하구나 라는 느낌?

 마담도 최근 루페쨩에게 가게 일을 가르쳐주는 듯하니, 아마도 차기 마담으로 선택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 본인은 '그렇지 않아~'라며 웃었지만. 나도 루페쨩을 '엄마'라고 부르게 될 날이 가까워진듯한 느낌이다.

 씨름부도 여전히 뚱뚱하다.

 몸도 지갑도 두터워 손님으로서 적잖이 공헌해주고는 있지만, 최근에는 우리들도 씨름부네 가게의 단골이 되버려서, 상업적으로 서로 윈윈 관계가 되었다.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건 지금도 여전하지만, 최근에는 요리에 푹 빠진 모양인지라, 진지한 표정으로 아기자기한 케이크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살짝 멋있게 보이기도 한다. 그는 스킬 '레벨 무제한'으로 요리도 섹스도 배운 만큼 레벨업을 계속해서, 의외의 테크니션이 되어가고 있다. 조금은 자신감도 붙은 것 같다.

 요즘은 '살이 빠지면 의외로 미남이 될 거라고 생각해'라고, 루페쨩도 말하기 시작했고.

 혹시 씨름부가 마르게 되면, 슈퍼주니어처럼 된다던가……?

 아니아니 아니야. 아니라니까! 씨름부는 씨름부야!

 걔는 그거야. 커다란 덩치로 자그마한 케이크를 만드는 모습이 인기가 있으니까, 다이어트 금지로 부탁할게.

 아, 위지 씨도 그 뒤로 자주 오고 있어.

 여전히 나를 꼬시려는지, '같이 살자'라던가 '숲에 데려가줄게'라던가, 섹스하면서 엄청 속삭인다. 그럴 때마다 녹아내릴듯이 황홀해져서 '위험해─'라고 생각되곤 한다. 하지만 그 할배,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아가씨랑도 자고 있으니 똑같은 말을 하고 다닐 것 같아서, 이제 좀 가만히 놔뒀으면 하지만.

 그래도 뭐 멋있고 손도 크고 목소리도 야하고, 한 서른 살, 아니 스무 살 정도만 젊었더라면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만…….

 아니, 안 돼. 어차피 그 사람, 젊었으면 지금 이상으로 여자들 꼬시고 다녔을 게 분명해. 요전에 잠깐 위지 씨가 자주 다니는 술집에 같이 가봤는데, 그 사람 친구들도 별난 사람들 뿐이었고, 여러 여자랑 노닥거리기도 했고.

 아, 그래그래.

 키요리하고도 여전히 차를 마시곤 한다.

 어째 B랭크의 젊은 모험자에게 푹 빠진 모양인데, 이번엔 신중하게 다가가려는 듯 하다. 뭐, 그녀도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미소녀라 상대방은 간단히 그럴 마음이 생겨버린 모양이지만, 키요리로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가고 싶어하는지라 그다지 진전은 없다고 한다.

 키요리가 말하길, '사랑도 모험도 첫 걸음부터 막혀버렸다'면서, '다음은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임하겠다'는 듯하다.

 그렇게 쓸데없이 힘주는 편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지~. 그래도 키요리라면 언젠가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뭣보다 걔는 얼굴이 예쁘니까.

 진짜 변함없는 보고라서 재미가 없네.

 가끔씩은 변화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변한 게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은발 아저씨가 모습을 감추고나서, 내 마음도 줄곧 멈춰버린 채다.

 비가 내리는 밤은 언제나 창문 밖에 신경쓰이게 되었고, 마을 등불 아래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찾곤 한다. 가게에 있으면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 싶다.

 다음은 네가 내 거처까지 오라고,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어디에 사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면서.

 이 마을에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매 같은 날카로운 그 눈동자를, 어딘가 다른 곳에서 느낀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때 그 장소에 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만나러 오라는 말이, 어쩌면 그런 의미였다고 한다면──

 ──그러고보니, 나, 가게 매상 3위가 되었어.

***

 그나저나 최근들어 하루 씨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점을 신경쓰는 건 저 뿐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키요리예요.

 이렇게 차를 마시는 때에도, 문득 대화가 끊겨서 다들 멍─하니 있을 때가 자주 있긴 하지만, 그때마다 언제나 다음 주제를 꺼내주던 하루 씨가, 그대로 어딘가 먼 곳으로 가버리는 것처럼 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어째 살짝, 근심 섞인 옆모습을 보고있다니 어른스럽다고 할까. 물론 창녀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진심을 다하면 저 따위보다 섹시하고 성숙한 것도 당연하지만요. 하지만 하루 씨라면 헛소리를 하면서 깔깔깔 웃고 우걱우걱 먹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어째선지 다른 사람처럼 생각돼요.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좀 쓸쓸해지고는 해요.

 루페 씨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더니, 그녀는 싱긋 웃으며 컵의 윗부분을 매만지고는 귀엽게 손을 들어올렸어요.

 "씨름부 씨. 여기 차 한 잔 더 주세요!"

 "어, 넷"

 씨름부 씨가 커다란 몸뚱이를 출렁이며, 귀여운 티포트를 가져와요. 이거, 그가 꽤나 고생해서 찾았다고 해요. 하루 씨의 취향에 맞춰서. 하루 씨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니까요.

 하루 씨도 바닥이 진동하자 의식을 되찾은 모양이예요. 자기 역할을 떠올렸는지, '이 차 맛있다~'라고 씨름부 씨의 팔을 터치하며 웃어줬어요.

 새빨개진 씨름부 씨는 우물거리며 쑥스럽다는 듯이 웃고는, '이, 이 정도야, 얼마든지 드세요'라며 기세 좋게 차를 공짜로 리필해줬어요.

 "이히힛, 고마워─"

 하루 씨는, 아니, 그런 말은 비겁하겠죠. '저희들'은 약삭빠르게 그의 호의에 편승했어요. 오늘도 공짜 차만 세 잔이네요. 장사하는 사람끼리 돕고 사는 거라고 하루 씨는 말했지만, 매상 면에서 보면 꽤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하루 씨, 무슨 일 있었어요?"

 저는 하루 씨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봤어요.

 한 순간, 그녀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하지만 정말, 진짜 한 순간이었어요.

 "무슨 일? 음─, 아무 일도 없다는 게 재미없어~. 재밌는 일이 있었음 좋겠어 루페쨩~"

 "어, 최근 매상 3위가 됐잖아. 하루쨩이라면 언젠가 여기까지 오리라고 믿고 있었다구~"

 "어─, 고마워─. 루페 선배의 덕분이야~"

 "나를 제치는 것도 시간 문제려나……"

 "싫다─! 나 꼭, 루페쨩이랑 공동 2위 목표로 힘낼래~. 그나저나, 아직도 배 이상 차이가 있는데 무리라구~!"

 "후훗. 그럼, 더욱 더 팔아야겠네, 하루쨩?"

 "나왔다, 차기 마담~"

 "아니라니까~"

 하루 씨와 루페 씨는 이런 별것아닌 화제까지 돌려가며 회화의 폭을 넓히는지라, 밤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단함을 느끼게 돼요. 저라면 아무 일도 없을 때에는 '없다'며 회화가 끝났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도 익숙해졌으니까, 이제 그런 수법으로 얼버무릴 수는 없어요.

 제게는, 하루 씨가 말하는 '귀찮은 면'이 있나봐요. 그녀가 귀찮다고 생각하는 때란, 말하기 싫은 부분을 건드렸을 때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는 정말 귀찮은 여자겠다고 스스로도 생각해요. 하지만 알고 싶어요. 알게 되는 것이 무섭긴 하지만.

 "혹시, 슬슬 다른 곳으로 간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나요?"

 전에 살짝 들은 기억이 나요. 매상 3위가 하루 씨의 목표라고.

 그때는 '흐응' 정도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3위라니 뭘까요? 1위도 아니고 루페 씨의 아래면 된다니, 적당적당한 목표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자기 일에 일단락을 짓겠다는.

 "……뭐─야. 다른 곳이라니 어디를? 내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곤 여기밖에 없잖아"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하루 씨가 웃었어요. 루페 씨의 시선이 바깥을 향해서, 화제에서 멀어지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 영역에 들어서려면 혼자서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제가 책임지고.

 테이블 위에서, 저는 주먹을 쥐었어요.

 "어디든지 갈 수 있잖아요, 하루 씨는. 얽매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잖아요. 자유롭고, 강하고, 명랑하고. 어디서든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이곳이 질린 거 아닌가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진 게 아닌가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하루 씨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어요.

 그러고나서 '키요리도 정말 똑부러지게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반쯤 포기했다는 듯이, 반쯤 즐겁다는 듯이 말했어요.

 하루 씨 덕분이예요.

 "위지크래프트 씨라고 있잖아. 전에 소개했던 변태 영감. 그 사람들과 숲에 갔다왔어"

 의외의 대답에, 저와, 루페 씨까지 눈이 똥그래졌어요.

 그녀도 하루 씨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은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설마 마물의 둥지에 마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나봐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보다도, 어째서 저를 데려가주지 않았을까요. 엄청엄청 가고 싶다고 매일매일 주장했는데.

 "어디 멀리 가고 싶은 건 아니야. 하지만, 진짜 신경쓰이는 곳이 있어서. 그걸 확인하러, 잠깐 외출 좀 해볼까 하는 느낌"

 "저도 갈래요"

 "아니, 키요리가 가고 싶어하는 것도 물론 잘 알아.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은 군의 허가를 받은 정규 루트가 아니거든. 나는 시스터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키요리는 데려갈 수 없어. 말 안 해서 미안해"

 "그런 루트가 있다면 저도 그 편이 좋아요. 데려가주세요. 저는 하루 씨랑 가고 싶어요"

 "안 돼. 엄청 위험하다구. 넌 데려갈 수 없어"

 "어쨰서죠? 믿음직스럽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도 교회에서 천사명을 받은 시스터라구요.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회복 마법으로 모두를 돕는 정도는 가능해요. 성결계도──"

 "그게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무리라고 할까. 회복 마법을 쓸 틈도 없이, 맞으면 즉사하는 곳이거든. 완전 서바이벌하니까 추천할 수 없다구"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처음부터 모험 따위에 지원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제 힘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요. 세상에서 가장 숲 깊숙한 곳까지 나아간 팀이 되어서, 세상의 여성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하루 씨랑 둘이서 1위가 돼서, 여자도 하면 할 수 있다고 온세상에 보여주고 싶어요!"

 "키요리, 그렇게 야망가였어……?"

 하루 씨 덕분이예요.

 당신을 보고 있다보니 저도 욕심이 생겼어요.

 용기도 생겼다구요.

 "그래도 있지, 키요리. 숲에는 여자의 영광 따위 없었어. 좀 더 질펀하고 축축해서 기분 나쁜 곳이였어. 뭐랄까…… 그곳은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느낌이 아니고, 이쪽에서 꿈이나 목표를 찾는 편이 빛나는 인생이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해"

 "하지만 하루 씨는 실제로 가고 있잖아요. 저는 보지도 못한 채 포기하는 바보짓은 할 수 없어요"

 "키요리가 생각하는 거랑 다르다는 말이야. 그곳은 마물이 날뛰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이쪽 세계의 룰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야. 알겠어? 군대도 관청도 일반 시민도 없어. 즉"

 남자들의 무법지대야. 라고, 하루 씨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어요.

 저는, 입은 열지 않은 채 그게 뭐 어떠냐는 식으로 노려봤어요.

 "저, 저기. 잠깐 괜찮아? 어째서 하루쨩이 그런 위험한 곳에 가야만 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꽤 이야기가 복잡해져서, 하루 씨의 정체를 모르는 루페 씨 앞에서 이것저것 폭로해버릴 것 같은 상황이었어요.

 하루 씨는, '아─'라며 웃더니 양손을 맞잡았어요.

 "루페쨩, 미안─. 비밀 모험을 하고 있거든. 길어질 것 같으면 제대로 휴가 내고 갈 테니까, 마담한테는 비밀로 해줄래?"

 "하루 씨, 나중에──"

 "자, 이 이야기는 끝─.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했으니까, 키요리도 이 이상 귀찮게 굴지 마"

 루페 씨도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하루 씨는 저희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거리로 시선을 돌렸어요.

 옆얼굴의 벽.

 이세계를 아는 그녀의 눈동자가 먼 곳을 바라보는데, 저희들의 눈으로는 그곳을 쫓을 수 없어요.

 굉장히 쓸쓸해요. 하루 씨는, 저희들의 그런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니까요.

 "……그러고보니 손님한테 들었는데. 숲에는 자지 형태의 몬스터가 나온다더라?"

 "엑, 뭐야 그거. 나 들은 적 없어, 진짜야?"

 "다키마쿠 나무에 달라붙어서 몸을 비비다가, 머리에서 하얀 것을 내뱉는대. 동정 몬스터라구"

 "아하하하하핫. 뭐야 그거 웃기잖아. 발견하면 대딸이라도 쳐줘야지!"

 진짜 별것 아닌 이야기를 좋아한다니까. 저는, 루페 씨 처럼 하루 씨의 박정한 태도를 받아들일 여유도 없어서, 꿀꿀한 기분인데 말이죠.

 하루 씨는, 원래 세계에 대해 물어봐도 가르쳐주지 않고, 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도 알려주지 않으니, 친구라는 저희 사이가, 어째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휘젓는 기분이 들어요.

 그러다가, 언젠가 그녀가 휙 하고 돌아오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런 쓸쓸한 상상까지 해버린다구요.

 이런 마음을 모르는 걸까요. 역시 하루 씨에게 있어서 저희들은.

 "돌아갈게요"

 차값을 올려두고 먼저 가게를 나왔어요.

 케이크를 가져오던 씨름부 씨에게도, 제 몫은 취소해달라고 했어요.

 요즘들어, 부글부글 끓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요.

***

 그래도 남자 앞에서는 싫은 표정을 보이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고 루페 씨에게 배웠기에, 기분이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 미소짓고 있어요. 키요리예요.

 "당신과 함께 있자면, 뭐든 맛있게 느껴지네요"

 기름기가 잔뜩이고 양도 너무 많은 고기 요리를 상대가 멋대로 주문했지만, 엿같은 아양도 떨 수 있어요.

 막힘없이 회화를 이어가는 건 무리지만, 남자란 중간중간에 이렇게 귀여운 말을 해주면 괜찮다고, 이것도 그 사람들에게 배웠어요.

 쑥쓰럽다는 듯이 미소를 띄우는 그의 이름은 키락크 씨라고 해요. B랭크의 모험자로 다섯 살 연상인 분이셔요.

 아직 남자친구라고 할 정도로 친하지는 않지만, 시합을 응원하거나(토토는 안 해요), 이따금씩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고 있어요.

 요 며칠 동안, 영문모를 이유로 그에게 칭찬을 받거나 위로를 받으면서 얼굴이나 어깨를 터치당하는 일도 늘어났어요.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를 참고로 생각해보자면, 슬슬 본격적으로 육체 관계를 원해오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루페 씨는 몰라도 하루 씨는 '금방 대주지 마'라며 반대했어요. 하고 싶다고 스스로 생각되지 않는다면 안 해도 된다면서.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남자랑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날이 제게도 올까 싶어요. 거꾸로 남성이 거부하는 여자를 상대해준다고 생각되지도 않구요.

 키락크 씨, 용모는 평범하지만 젊은 나이에 B랭크고 복장도 화려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가봐요. 가끔 다른 시스터한테도 파트너 관계를 요청받기도 해요.

 즉 제게도 경쟁 상대가 있다는 말이죠. 품평받고 있다는 말이예요.

 그래서 그에게 숲으로 데려가달라고 하려면, 다른 시스터보다 제게 흥미를 가져줘야만 해요. 원한다면 몸을 허락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루 씨가 숲에 데려다주지 않겠다면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요.

 하루 씨처럼 특별한 힘을 받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겠죠. 저희들은 이런 승부에서 이겨야만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 수 있게 돼요. 여자는 언제나 남자에게 선별되는 입장이라구요.

 하지만 물론 그를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부터 강한 데다가 모험에서도 의지가 되는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투덜댔는걸요. 여기서 물러날 생각은 없어요.

 "있잖아, 날씨가 나빠질 것 같은데 내 방으로 갈래?"

 푸른 하늘 아래에서 그가 우물쭈물거리며 말했어요. 저는 물론 '네'라고 대답했어요.

 필요하니까 할 뿐이예요.

 후회 따위, 하지 않아요.

***

 유두만 엄청 빨아대서 벌써부터 마음이 꺾여버릴 것 같아요. 키요리예요.

 처음에는 기분 좋은 목소리도 내보려고 했는데, 파리처럼 쭈웁쭈웁 빨아대기만 해서 아프기도 하고 화도 나서, '응─'하며 어느정도 저항하는 목소리도 내봤어요. 하지만 어째선지 그것조차 제가 헐떡인다 생각했는지, 더욱 유방을 주무르며 키스자국을 만들지 뭐예요.

 "읏, 싫엇"

 무심코 싫다고 말해버렸어요. 하지만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로 해석해버렸는지, 점점 더 숨을 거칠게 내뿜으며 내 살결을 빨아들이기 시작했어요.

 "가슴만으로 이렇게나 느끼다니. 처음이면서"

 어째서 남자랑 여자란 이렇게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일까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라고 부탁했는데도, 어째선지 키락크 씨는 더 기뻐하며 자기 테크닉 어떠냐고 말하기만 할 뿐이예요.

 "응, 으읏"

 그곳을 만진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들어왔어요. 젖지 않아서 아픈데, 안쪽까지 억지로 쑤셔넣더니, '벌써 젖었잖아'라고 키락크 씨가 말해요.

 저는 그렇게 느끼지 못해서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더니, '괜찮으니까 나한테 맡겨'라며 키락크 씨가 스키네 풀을 꺼내 손가락에 발랐어요.

 "처음엔 아프지만 금방 기분 좋아질 거야"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두 개를 넣었어요. 진짜 아파서 봐달라고 말했더니, '그럼 스키네 없이 할까?'라고 하길래, 그게 더 싫어서 참기로 했어요.

 "여자는 스키네 없이 하는 편이 더 느낀다고 하더라. 뭐, 조만간 해보자"

 그런 말은 절대 거짓말일 테고 싫은데요.

 하지만, 혹시 이 사람이 저를 파트너로 골라준다면, 조만간 진심으로 스키네 없이 하자고 할지도 몰라요. 그것 만큼은 진짜 봐줬으면 하네요.

 그리고 왠지 모르게인데 말이죠, 이런 때에 떠올리는 것도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죽은 생선처럼 누워있기만 해서, 그쪽이 이것저것 준비할 수 있어서 평화로웠다는 생각도 들어요.

 크릭크 씨는, 스스로 여자 몸을 만지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라, 전혀 기분 좋게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빵 반죽이 된 듯한 느낌이예요. 이것도 관계가 계속된다면, 좀 더 상냥하게 만져주도록 기회를 봐서 부탁드려야겠어요.

 하루 씨나 루페 씨는 정말 엄청난 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아, 하아, 키요리쨩도, 금방 내 자지에 푹 빠질 거라고 생각해. 이렇게 변태적인 몸을 하고서 처음이라니…… 내가 상냥하게 가르쳐줄게"

 키락크 씨의 것이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요. 스키네 풀 덕분에 조금은 미끌거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통증은 느껴져요.

 "응, 으읏……"

 "어때? 아파?"

 "아, 아뇨, 괜찮아요……"

 "참지 않아도 돼. 천천히 움직일게"

 움직이는군요. 저는 살짝 가랑이를 열어 키락크 씨가 움직이기 편한 자세를 만들었어요.

 조금씩 안을 꾹꾹 누르듯 그가 허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천천히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팔굽혀펴기를 하듯이, 아무튼 온몸을 써서 제게 못을 박듯 움직였어요.

 "하앗, 하앗"

 그야 지치겠죠. 저도 처음에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의 위에 올라타 허리를 흔들라는 말을 듣고,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 저기, 그렇게 힘들게 안 해도……"

 "됐으니까, 나한테, 맡기면, 아앗, 아파? 아직도 아파?"

 솔직히 말해서, 아프고 무거워요.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아프지 않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이번엔 '기분 좋아?'라고 물어보네요.

 어째서 그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지 모르겠지만, '기분 좋아요'라고 말했어요. 그러는 편이 그가 기뻐해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 진짜 처녀야?"

 그랬더니 키라크 씨가 오히려 불쾌해졌나봐요.

 영문을 몰라서, 저는 '죄송해요'라고 사과했어요.

 "자, 잠깐 기다려봐. 진짜? 남자는 처음 아니었어?"

 아까부터 키락크 씨는 그런 말을 했는데, 저는 '키락크 씨랑은' 처음이라는 의미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부정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걸 왜 확인하는 걸까 생각하긴 했지만요.

 키락크 씨는 침대가 삐걱일 정도로 허리를 빠르게 흔들었어요. 마치 저를 책망하는 것 같아서, 어째 괜히 힘드네요.

 "앗, 아앗, 젠장, 뭐냐고, 그게. 난 듣지 못했다고! 으읏, 윽…!"

 그리고 키락크 씨는, 갑자기 제 안에 사정하더니 '어째서냐'라며 화를 냈어요.

 "내가 첫 남자라고 생각해서 안아준 건데. 그보다 시스터면 당연히 처녀여야 하잖아, 보통!"

 그는 화내며 속옷을 입었어요. 어떡하면 좋을지 몰라서, 저도 제 수녀복을 주섬주섬 그러모았어요.

 "저, 저기, 어째서 화를 내는 거죠?"

 "왜 네가 비처녀냐는 말이잖아!"

 왜냐고 물어봐도, 저한테도 제 인생이 있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어요.

 비, 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의 일은 하지 않았는데 말이예요.

 "이렇게 심하게 뒤통수를 맞으면 보통은 화낸다고! 사기잖아, 사기. 지금까지 너한테 얼마나 썼다고 생각하냐고. 젠장. 나가, 걸레년아! 두 번 다시 얼굴도 보기 싫으니까!"

 "어, 저기, 잠시만요, 그런…!"

 옷도 제대로 입지 못했는데,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어요. 급히 구석에 숨어서 옷을 입고, 그대로 잠시 울었어요.

 어째서 이런 심한 대우를 받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또 어딘가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하루 씨가 말하길 '귀찮은 여자'인 저는, 모르는 사이에 남을 화나게 만드는 구석이 있나봐요.

 제가 나쁜 걸지도 모르겠어요.

***

 "……그렇구나. 젊은 남자는 결벽하니까"

 "결벽, 인가요? 방은 꽤 지저분했는데요"

 "그게 아니라, 처녀를 좋아한다는 뜻이야. 전에 남자가 있기라도 했으면, 그것만으로도 몸서리치는 사람도 꽤 많거든"

 루페 씨에게 차인 것 같다고 보고했더니, 금방 원인을 밝혀주셨어요.

 남자는 여자의 첫 상대가 되는 것을 좋아하나봐요. 특히 젊은 남자나 노인들이 많이 그런다고 해요.

 창관에도 어째서인지 처녀가 좋다는 손님이 오는 모양인지라, 동안인 루페 씨도 가끔씩 '처녀인 척 해줘'라는 주문을 받는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직업은 시스터라고 하고요.

 여러 사실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키요리예요.

 "귀여운 정복을 입고, 성실해보이는 데다가, 순진해보이니까 처녀라는 인상이 있나봐"

 "그런가요? 다른 시스터도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이 더 많은데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다들 겉모습은 좋아도 속은 꽤 그렇기도 하고요"

 "그래도 인기가 많지. 복장도 말투도 청순하니까. 잘 팔리는 거야"

 잘 모르겠어요.

 인기가 있다면, 당연히 남자친구가 있는 아이도 많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그러니까 키요리쨩은 전혀 잘못하지 않았어. 상대의 속이 좁았을 뿐이지. 아─아, 내 손님이었으면, 두 번 다시 비처녀 같은 건방진 말을 못하게 될 만큼 돼지로 조교시켜줬을 텐데"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루페 씨에게, 저는 딱딱하게 굳은 미소로 대답했어요. 그녀의 동안과 조교력의 불일치성이, 저는 아직 익숙하지가 않네요.

 하지만, 기뻐요.

 저에게도, 이런 때 함께 불만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는 거니까요.

 한 명 부족하지만요.

 "……하루쨩은, 잠시동안 가게 쉰대"

 루페 씨가 조금 껄끄럽다는 듯이 말하며 웃었어요.

 그 건으로, 전에 안 좋게 자리를 떠버린 것을 사과하면서, 신경쓰였던 점을 그녀에게 물어봤어요.

 "루페 씨는, 하루 씨가 죽으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 안 하나요?"

 저는 생각해버리고 말아요.

 그녀에게 과한 기대를 한다고는 자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를 여러모로 계몽시켜준 존재기도 해서, 존경하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기도 하니까요.

 사라진다면 세상의 존망도 살짝 위험해지리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 이상으로, 저는 쓸쓸해서 죽고 싶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루페 씨는, 아마도 창백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하고 있을 제게 약간 질색하더니, '그러네'라며 미소지었어요.

 "나도 아마 엄청 울 거야. 엉엉 울겠지. 하지만 그 날이 지나면 손님에게 웃으며 안길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손님 앞에서 연기하는 사이에, 슬펐던 기분도 잊게 되겠지. 그런 경험은 몇 번이나 겪어봤으니까 알아. 나는 처음 했던 남자의 얼굴도 떠오르지 못하는걸"

 ……제가 얼마나 바보 같은 소리를 했는지 실감되서 자기혐오가 들었어요.

 저는, '이렇게 되면 슬프다'라던가, '싫다'라던가, 제 감정에 대한 걱정 뿐이었어요.

 시크라소 씨라는 친구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에게, 무신경한 말을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그런 날이 온다면, 키요리쨩이 나 대신 마음껏 슬퍼해주고 울어줬으면 해. 나는 위로해주거나 볼멘소리를 들어주는 역할을 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루페 씨는, 평소처럼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그걸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말해주는 친구, 나한테는 키요리쨩 뿐인걸. 너는 아무데도 가면 안 된다?"

 하루 씨가 이 사람을 한없이 존경한다는 마음이 이해됐어요.

 정말, 루페 씨한테라면 돼지로 조교되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씨름부 씨가 귀여운 케이크를 들고 왔어요.

 봄 신작 케이크라고 해요. 지난번에 모처럼 만든 케이크를 취소해버렸던 사실이 떠올라 사과했어요.

 "아, 아뇨"

 씨름부 씨는, 평소처럼 심약하게 미소짓기만 할 뿐, 화내지는 않았어요.

 하루 씨나 루페 씨한테 그의 무용담을 듣긴 했지만, 무서운 길드장의 아들한테 칼날을 들이댈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아요.

 케이크는 엄청 맛있었지만요.

***

 교회에는 한 주에 한 번, 얼굴을 내밀고 기도를 드려요.

 최근 병원 일도 이것저것 맡게 돼서 바빠지기도 했고, 파트너 찾기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해서, 당분간 못 올지도 몰라 조금 길게 기도를 드렸어요.

 신이시어, 제게 일 방면에서의 운을 주세요.

 라는 등 사적인 기도를 드리는 건 룰 위반이니 하지 않지만요.

 "키요리, 요즘 어때?"

 시스터 동료인 하스퍼 씨가, 친구를 데리고 말을 걸어주셨어요. '그냥 그래요'라고, 적당히 대답했어요.

 하스퍼 씨는 제 대답에 약간 의외라는 표정이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어째서 저한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녀와 그 친구들은, 굳이 말하자면 저를 싫어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해할까봐 첨언할게요. 저는 어째서인지 시스터 동료들 대부분에게 미움을 사버렸기 때문에, 아마도 그녀들이 아니라 제가 잘못했을 거예요. 귀찮은 여자니까요.

 "헤─. 또 주절주절 진지하게 일 얘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좀 변했네. 혹시 남자랑 자서?"

 "키요리의 진지한 척도 이제 졸업인가. 혼자서 엄청 인기 폭발이었으니까, 엄청 좋은 남자랑 했겠지?"

 "걸레처럼 매일 하는 거 아냐~? 아하하, 그 얼굴이랑 가슴이면 남자 쯤이야 한 방이겠지~"

 무슨 말일까요. 엄청 안 좋은 느낌이 들어요.

 그녀들에게 뭔가 저지른 기억도 없는데, 이렇게 대놓고 시비걸며 미워하는 이유라도 알려줬으면 해요. 하지만, 전에 물어봤는데도 '거울한테 물어봐'라는 대답밖에 듣지 못했어요.

 "실례할게요"

 일단 고개를 숙이면 되겠죠. 그러고나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려고 생각했는데, 하스퍼 씨가 다시 불러세웠어요.

 "키요리, 숲에 가고 싶다며?"

 무심코 돌아보고 말았어요.

 하스퍼 씨 일행은, 벌써 파트너라는 이름의 남자친구를 만들어 숲에 가본 경험이 있는 선배들이예요. 그렇다고는 해도, 평화나 탐험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요.

 시스터 동료 친구들과, 남자친구인 모험자들끼리 커플 그룹을 만들어서 놀러 다닐 뿐이예요.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그다지 가까이 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하지만, 하스퍼 씨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말을 했어요.

 "실은, 키락크 씨가 우리 친구거든"

 "그 사람, 다시 한 번 너랑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

 "우리한테 말 좀 전해달래. 키요리를 파트너로 삼아 숲에 데려가도 좋다고. 어떡할래?"

 어떡할래 라고 물어봐도, 솔직히 키락크 씨에 대한 신용도가 상당히 낮은걸요.

 그렇지만 비처녀 시스터가 되어버린 저는, 분명 앞으로 파트너 찾기가 더 힘들어지겠죠.

 무엇보다, 빨리 하지 않으면 하루 씨를 쫓아갈 수도 없게 되버려요. 그건 제게 있어서 정말로 절실한 문제예요.

 "가, 가고 싶어요. 제 친구가 숲에 가있어요!"

 주먹을 꽉 쥐며 절실하게 마음을 호소하는 제게, 하스퍼 씨가 씨익 웃으며 '아─,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여요.

 "걱정하지 마─. 우리도 함께 갈 테니까"

 이 사람들과 함께 간다는 사실에 더더욱 불안해지지만, 드디어 모험을 떠날 수 있으니 긍정적인 기대를 하자고 생각하는, 키요리였어요.

***

 모험자 길드의 등록은 생각보다도 간단히 끝났어요.

 창구 할아버지는 제대로 서류도 보지 않는 느낌이었고, 키락크 씨가 '할아범 빨리 좀 해'라는 등 무례하게 보챘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가증에 인장을 찍고 제게 넘겨줬어요.

 아니,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거였나요?

 하지만 허가증에는 확실히 제 이름이 쓰여 있었어요. 키요리예요.

 원하던 허가증이었지만 감개무량해할 틈도 없이, 그리고 처음으로 모험자 라인 너머를 밟았다는 감동을 맛볼 새도 없이, 손을 붙잡혀 끌려가듯 숲속으로 들어갔어요.

 입구는 횃불이 몇 개나 설치되어있던 덕에 밝았어요. 하지만 안쪽을 보니 끝없는 어둠에 빨려들어갈 것 같은 공포가 느껴져요.

 이게 마물의 숲. 이 앞에 분명 하루 씨가 있어요.

 "아─, 그쪽은 진심인 녀석들이 가는 곳이야"

 "오늘 우리들은 여자 데려왔으니까 이쪽이지"

 하지만 그들은 저를 샛길로 끌고가려고 하네요. 그쪽 길도 나름대로 어두웠지만 어째선지 더 안 좋은 느낌이 들어요.

 "잠시만요. 저는 이쪽으로 가고 싶어요. 괜찮아요, 제대로 신성 도구랑 성수도 챙겨왔고, 정화도 받아 신성력도 잔뜩 채워놨어요"

 "아니 진짜냐. 개웃기네"

 "그런 건 됐잖아, 오늘은 술도 있으니까 즐기자고"

 "아, 안 돼요. 신께 봉사하는 시스터에게 술은 금지되어있다구요"

 "야야 여자들~. 얘, 뭐라고 씨부리는데?"

 "키요리, 분위기 파악 좀 해─. 이제와서 성실한 척 하면 흥이 깨지잖아"

 "즐기자고, 비처녀 키요리!"

 "잠깐 기다려봐요, 즐기자니 무슨 소린가요? 저희들 시스터는 신의 힘으로 모험자와 협력해 위험한 마물을──"

 "네 네, 협력 협력~. 협력해서 합체하자구!"

 좁은 길을 빠져나가자, 꽤 넓은 장소가 나왔어요.

 여기저기에 술병이나 먹다 남은 음식이 굴러다니고, 어째선지 신발이나 옷가지도 널부러져있고, 이상한 냄새도 났어요. 그들은 저를 그곳에 앉히고, 술을 권하기 시작했어요. 하스퍼 씨 일행은 스스로 마시기 시작했구요.

 딱히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는 정도로 저는 화내거나 하지 않아요. 하지만 시스터의 음주는 신앙과 힘을 둔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예요.

 "하지마세요, 하스퍼 씨도 다른 분들도! 저희들은 신께 봉사하는 몸이라구요!"

 큰 소리를 냈더니, 다들 놀란 듯이 조용해졌어요.

 그리고, '하아'라며 성대한 한숨이 되돌아왔어요.

 "짜증나네, 키요리"

 "너 말야 왜…… 금방 그렇게 착한 아이인 척 하고 싶어하는 거야?"

 "조금 이쁘장하게 생겼다고 말야, 건방떨지 말라고"

 "그 얼굴로 정숙하게 성실한 말이나 씨부리고 대단한 정의꾼 납시었네. 윗선도 남자도 좋아하고 귀여워하고 좋겠어"

 "그래놓고 비처녀냐. 할 건 다 하면서 즐기는 주제에 성녀라도 된 양 열받게 굴지 말라고!"

 하스퍼 씨와 그 일행들이 화내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어요. 저는 잘못된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는데. 여자들이 다투는 모습을 보고, 키락크 씨와 모험자 일행들이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어요.

 "야 하스퍼. 슬슬 할래?"

 하스퍼 씨가, 저를 잠시 노려보더니, '해'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남자들이 일어서더니 저를 둘러쌌어요.

 굉장히 위험한 분위기를 느끼고 도망치려 했지만, 순식간에 억눌려 쓰러지고, 제 위에 남자들이 올라탔어요.

 키락크 씨가, 번쩍이는 눈으로 저를 내려다봐요.

 "자업자득이야, 걸레년아. 너한테 속은 놈들의 원한을 우리가 풀어주마"

 술병이 제 입에 강제로 물려졌어요. 목구멍을 태우는 듯한 뜨거운 액체가 흘러들어와, 숨이 막혔어요.

 "야, 마시라고. 시스터, 마셔!"

 그런데, 강제로 얼굴을 잡고는, 술을 들이밀었어요. 호흡이 괴로워져 토하기 시작한 저를 보고 다들 웃었어요. 얼굴에도 머리카락에도 술이 부어졌어요.

 가슴과 목이 뜨거워서, 죽을 듯이 괴로웠어요. 그런데, 머리가 멍해지고, 혀도 꼬이고, 도움을 요청하려 해도 입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살려…… 가, 가슴이……"

 "엉? 가슴 주물러달라고?"

 "역시, 진짜 변태라니까, 이 년. 벗기자 벗겨"

 시스터의 성스러운 의복이, 남자들에게 난폭하게 벗겨졌어요.

 머리가 몽롱해져, 앞으로 제가 당할 일을 알면서도 저항할 힘이 나지 않아요. 팬티가 벗겨지고 다리가 벌려졌어요. 그들이 재차 웃으며 그곳에 술을 부어 적셨어요.

 "살려줘…… 하스퍼 씨이이……"

 그녀들은 등을 돌리고, 여자들끼리 제 악담을 하고 있었어요. '이건 천벌'이라던가, '쟤가 나쁜 거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등, 그런 말을 계속했어요.

 제가 대체 그녀들에게 뭘 했을까요? 이런 짓을 당할 만한 일을 정말 제가 저지른 걸까요?

 누군가의 손이 제 가슴을 주무르고, 누군가의 얼굴이 제 이곳저곳에 다가와요. 살려줘, 라고 저는 목소리를 쥐어짜 말했어요. 하지만, 술로 꼬여버린 탓인지 생각하는대로 말이 나오지 않아요.

 적어도 스키네 풀을 넣어달라고 울며 애원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그 말에도 웃기만 해요.

 "벌써 그럴 생각이 들었냐, 웃기는구만"

 "과연 창녀 키요리야!"

 "미안─. 스키네 풀 가져오는 거 까먹었네. 오늘은 생으로 하자, 괜찮지?"

 "잔뜩 싸줄 테니까, 키요리쨩도 즐기자고─"

 절망으로 눈앞이 새카매졌어요.

 이곳은 마물의 숲이예요.

 무서운 몬스터 밖에 살지 않는 장소예요.

 하루 씨. 살려주세요, 하루 씨.



 "어, 어라. 이런. 혹시 리얼충님들의 파티회장? 나, 방해해버렸나?"

 그때,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다들 깜짝 놀랐지만, 그 이상으로 나타난 사람이 쫄아버렸다고 할까, 엄청 어리둥절한 눈치예요.

 맞아요,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예요.

 부른 적 없는데, 생각도 못했던 사람이 와줬어요.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저를 보고, '헉, 게다가 섹스파티잖아'라며 당황해 뒷걸음질치고는, 땅에 손을 대고──엄청나게 훌륭한 도게자를 선보였어요. 나타나서 5초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예요.

 이런 상황에서, 이런 감상을 품을 여유도 없을 텐데, 무심결에 감탄이 나와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게자였어요.

 일상을 보내며 얼마나 자신의 도게자를 어필할 수 있을까 연구를 계속했기에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런 미학.

 가능하다면 이대로 교과서에 실어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도게자를 피로한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는, '섹스파티를 방해해서 죄송했습니다'라며 사과했어요.

 "지……진홍, 씨…… 그런 것보다……"

 "……어, 설마 키요리?"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는, 이제서야 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어요. '진짜냐, 소문의 네토라레 비디오 편지 촬영이라도 하던 거냐고'라며 영문모를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니 잠깐만. 나한테는 그런 속성도 없고, 너무 갑작스러워서 진짜 민폐거든. 하지만, 어라, 잠깐 기다려봐, 그건 그거고, 어라, 뭔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어, 뭐야 이거. 나, 정말 어떻게 되버린 거지……?"

 "사, 살려주세요, 살려……"

 "어? 잠깐, 살려줬으면 하는 건 내 쪽인데?"

 이 사람, 진짜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사람 말도 안 듣고 진짜 열받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 거울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이런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어버려 마음이 아팠어요. 엄청.

 "뭐야 이 녀석, 웃기는구만. 도게자나 하고 말야"

 "아, 나 알아. C랭크에 있는 진홍의 엔드리스레인이란 녀석이야. 처음 등장했을 땐 기세 좋았는데, 요즘은 좀 뜸했지"

 "가끔 있잖아. 재능은 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하지 않아 실력이 늘지 않는 녀석"

 "검투의 세계를 얕보니까 막히는 거라고. 꺼져. 너 같은 조무래기한테는 볼일 없어"

 "여기에 있는 건 B랭크인 그 키락크 씨라고. 당연히 알고 있겠지? 알겠으면 꺼져라. 짜증나니까"

 남자들도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를 비웃기 시작했어요.

 저는 분해서 눈물이 나왔어요.

 이제 됐으니까, 당신 만이라도 도망쳐요.

 "하?"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는, 맥이 빠진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어요. 일어서며 다리를 털고, '뭐─야'라며 웃어요.

 "B랭크 찌끄래기들이었냐. 리얼충이라고 생각해 도게자했는데 손해봤구만, 진짜. 그래서, 뭐냐. 이 굉염의 레전드 이노디에이터 진홍의 더 엔드리스레인@사우전드 치바P 씨의 전 여자친구한테 무슨 짓을 하는 중이지, 너희들?"

 갑자기 태도가 변했다 싶더니, 굉염 뭐시기 씨가 칼을 뽑고 무미건조한 태도로 그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 다양한 분들의 시합을 관전했지만, 실전으로 싸우는 모습은 처음 봐요. 봐주지 않는 세계, 목숨을 건 싸움이예요.

 저는 투기장에서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를 보며, 초심자지만 C랭크 치고는 강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계속 쫓아다녔어요.

 하지만, 전력으로 싸우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전투는 금방 결착이 났어요.

 그런데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들은 이미 검을 쥘 힘도 전의도 잃었는데, 계속해서 공격당하는 중이예요.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는 굉장히 음험한 사람이었어요. 투기장에서 간단히 이겨버리고 대전 상대에게 악수하며 보여주는 모습은 영업용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굉장히 음습하며 잔혹한 수법으로 고통을 주고 있어요. 근처를 기어다니던 다리가 많은 벌레를 먹으라고 명령했어요.

 아쉽게도 그들에게 동정심이 샘솟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보고 싶은 광경은 아니예요.

 저는,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의 명령을 받아 알몸으로 도게자하는 그들의 망토를 빌려 걸치고, 구석에서 벌벌 떨고있는 하스퍼 씨 일행에게 다가갔어요.

 "히익"

 그녀들은, 제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어요.

 어째서 고개를 돌리냐고, 저는 그녀들에게 물어봤어요.

 "이건 제게 내려진 천벌이잖아요? 여러분은 그걸 보고 싶었던 거 아니었나요?"

 하스퍼 씨는, 이를 달달 부딪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저, 저 녀석들이 무슨 짓을 써서라도 하고 싶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저는, 시스터로서 정말 부끄러운 행위라 생각했지만, 발을 힘껏 들어올려──그녀의 안면을 걷어찼어요.

 "다음은 당신들에게 천벌이 내릴 차례예요! 각오하고 기다리세요!"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에게, 이제 돌아가자고 말했어요.

 넝마짝이 된 남자들을 발로 차며, 어떠냐는 표정을 짓고 있어요.

 "어라? 큰일이네, 나 빡치면 기억에도 없는데 날뛰어버리는 버릇이 있어서 말이야~. 혹시, 또 뭔가 저질러버렸나요~?"

 그런 점은 진짜로 됐으니까 돌아가자고 설득하고 함께 돌아가기로 했어요.

 키락크 씨와 하스퍼 씨의 친구들은 슬쩍 봤어요. 어쩌면 재기불능까지 될 만큼 큰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술 같은 것을 마시지 않고 성실하게 신성력을 갈고닦은 시스터가 회복 마법을 걸어주면 괜찮겠죠. 시스터가 여자친구라 다행이네요.

 하스퍼 씨와 그 일행들이 열심히 저를 부르지만, 들리지 않는 척을 하기로 했어요.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는, 빨갛고 단단하게 굳혀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올라가지 않았지만) 미소를 띄웠어요.

 "오랜만에 제대로 열받았네. 뭐, 널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전력을 다하는 내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다시 반하는 건 봐달라구?"

 전력이라기보다 본성을 드러냈다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당신이 제일 멋있었던 때는 도게자였다는 느낌도 들지만, 고개를 숙이고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죠.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는,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웃었어요.

 처음으로 그가 쑥쓰러워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나이에 걸맞는 남자애의 표정이었어요.

 "전력을 다하면 그렇게나 강했군요. 어째서 투기장을 그만두셨나요?"

 "엉? 아니, 그만뒀다기보다. 한계가 보여버려서 말야"

 "한계? 아직 젋으니까, 좀 더 강해질 수 있잖아요?"

 "어, 그치만 강해지려면 노력을 해야만 하잖아?"

 "그렇다면 노력을 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치트를 가졌는데 거기다 노력까지 해야만 하냐고. 그런 묘사는 필요 없지. 즐겁고 섹스한 일상과 무쌍 이벤트만 있으면 충분하잖아?"

 여전히 그가 하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연인으로서는 역시 꽝일지라도, 모험 파트너로서, 그리고 하루 씨를 따라잡을 가장 가까운 길로서,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실감했어요.

 "……내일, 루페 씨한테 부탁해봐야겠어요"

 "어, 뭐라고 했어? 나, 난청계 주인공이니까 크게 말해주라"

 "아무것도 아니예요"

 "우와, 분명 고백일 거야. 틀림없어. 진짜 안 들렸으니까 다시 한 번 부탁할게"

 당신을 전사계 남자로 조교해달라고 상담하려는 계획이, 무심코 입으로 새어나오고 말았네요.

 신경쓰지 마세요.

***

 약 2주 뒤, 하루 씨가 씨름부 씨의 가게로 돌아왔어요.

 저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노려봐줬어요.

 "뭐야, 아직도 화났어? 그나저나 말했잖아. 난 나대로 숲에 가겠지만, 키요리는 안 데려가는 건 딱히 심술이 아니라──"

 "알아요. 저로서는 방해만 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그런 거죠. 잘 알았어요. 그곳은 여러 의미에서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은"

 "어, 무슨 일 있었어?"

 "신경쓰지 마세요. 하지만, 저는 저대로 반드시 하루 씨를 따라갈 테니까, 방심하지 마세요"

 "뭐야 그 와일드한 느낌. 내가 알던 키요리랑 미묘하게 다른걸. 너 누구야?"

 "키요리예요"

 일단, 저한테도 여러 일이 있긴 했죠. 하지만 하루 씨랑은 상관없는 일이예요.

 "무슨 일 있었지. 가르쳐줘 가르쳐줘. 뭐랄까, 모르는 사이에 키요리가 듬직해졌지 않나, 치바는 루페쨩이 탄 차를 코걸이 찬 상태로 끌고있지 않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다구"

 그쪽은 그쪽대로 저까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예요'라고 대답해두기로 했어요.

 다음에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씨랑 만나게 되면, 체형과 코의 형태가 바뀌어있을 것 같네요.

 "──키요리는 강하구나"

 하루 씨가, 불쑥 그런 말을 했어요.

 제가 약하다고 내쳤던 게 누군데요. 모순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추궁했더니, 하루 씨는 '아니야'라고 말했어요.

 "약하니까, 라고 말한 적 없어. 키요리는 강해. 까놓고 말하자면, 예전의 넌 음침 캐릭터였지 성실하지 정론만 말하면서 사람 기분은 생각도 안 하지, 거기다가 얼굴은 귀엽고 가슴도 커서 인기 많으니까, 좀 별로였거든"

 "그렇게까지 분명하게 말해준 사람은 하루 씨 뿐이예요……"

 화가 나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기분이지만요.

 하지만, 지금까지 인간 관계로 고민하던 원인을 알게 되서 후련해요. 앞으로는 나름대로 대처를 해야겠어요.

 "하지만 키요리는, 딱딱해보이지만 의외로 유연하다고나 할까, 유연한 주제에 역시 딱딱하다고 할까. 언제나 내 상상을 뒤접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보고 있으면 재밌고"

 "별로 칭찬 같지는 않지만, 아직 참고 듣는 편이 좋은가요?"

 "어, 방금 그거 칭찬 아니었어?"

 "아니예요. 저를 애완동물 쯤으로 생각하고 구경한다는 얘기였어요"

 "그런가"

 니시시, 하고 하루 씨가 웃으며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생각해볼게'라고 말했어요.

 딱히 칭찬해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말이예요. 하루 씨가 저 같은 사람의 어디를 강하다고 생각했는지, 언젠가 가르쳐줬으면 해요.

 "저는, 하루 씨 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어째서? 라고, 하루 씨가 고개를 갸웃거려요.

 그야 강하니까요 라고, 저는 조금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혼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지금의 제게는 엄청 눈부시거든요.

 그런데, 하루 씨는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어요.

 "……나는 좀, 우물쭈물하면서 멈춰서는 타입이야"

 그리고, 숲속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줬어요.

 마물과의 전투는 무섭지 않았다. 위지크래프트 씨나 그 동료들은 굉장히 노련했고, 신중했고, 다들 강했다. 그들도 처음 발을 들이는 영역을 넘어서도, 결코 초조해하지 않으며 마왕성까지 분명히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하루 씨가 발을 멈췄다. 그 이상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마왕이 보이는 장소까지 와서, 무서워졌다는 듯 하다.

 "그야 당연히 무섭죠. 하루 씨 탓이 아니예요. 마왕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사악한, 인류와 신의 적이고, 냉혹한 악마──"

 "그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고, 그 사람은"

 "그 사람?"

 "미안. 이 이상은 말할 수 없어. 진짜로 말할 수 없어. 무섭거든. 진실을 알게 되는 게"

 하루 씨는, '비가 내리고 있었으니까'라고 말하고, 눈물을 흘렸어요.

 "차가운 비야. 엄청. 분명 몇백 년도 전부터 한 번도 그친 적이 없을 비. 그건, 분명 그 사람의──"

 그 이상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괴로운 듯이 목을 움츠리며 하루 씨는 울었어요.

 어떡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녀를 안아줬어요. 그 연약한 등에 닿았을 때, 제가 한 말에 후회가 밀려와 저도 울었어요.

 이곳이 질린 거 아닌가요, 라니, 어째서 그런 무신경한 말을 했던 걸까요.

 이렇게나 열심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인데.

***

 "이거 참, 미안해"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웃으며, 하루 씨는 떠났어요.

 저도 사과했지만, '키요리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라며 하루 씨가 손을 맞잡아줬어요. 서로 계속 사과만 하다가 지쳐버려서, 그대로 바이바이 해버렸어요.

 하지만, 교회에 갈 기력도 없어서(아, 하스퍼 씨와 그 일행은 파문당했어요. 안타깝네요), 카운터로 가 씨름부 씨에게 차를 부탁했어요.

 하루 씨가 없어서 유료 차지만요. 최근에는 혼자서 차를 마셔도 아무렇지도 않게 된 덕분에, 이따금씩 혼자 느긋하게 차를 마시기도 해요.

 이 자리에서는, 아담한 요리를 연구하는 씨름부 씨도 엄청 가까이서 보여요.

 "언제나 열심이네요"

 새로운 케이크를 생각하던 그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손이 멈췄을 때 말을 걸었어요.

 씨름부 씨는, 수줍은 듯이 웃으며, '일이니까요'라고 말하고는 다시 작업을 재개했어요.

 전에는 가업을 싫어해 돕지도 않았다고 해요. 하루 씨가 오게 된 뒤로 주방에 서게 되었고, 그녀가 이것저것 까다로운 손님이었기에 자연스레 열심히 하게끔 되었다는 사실은, 이 가게 마스터이자 씨름부의 아버지부터 단골 손님까지 다 아는 이야기죠.

 그런 그도, 방금 전 하루 씨의 눈물을 봤을 터예요.

 아마도, 저희가 모르는 다른 남자를 위해 울었을 그녀를.

 "……그 케이크도, 하루 씨가 먹어줬으면 해서 만드는 건가요?"

 저는 또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는 질문을 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알고 싶은 건 확실히 알고 싶어서 씨름부 씨에게 물어봤어요.

 "그, 그렇죠"

 일을 방해하는 제게, 우물우물하며,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씨름부 씨가 대답해줬어요.

 "하지만, 하루 씨가 맛있다고 말해주는 건, 다른 손님도 좋아하는 맛이거든요. 여자라도 즐길 수 있는 요리란 분명 아무도 만들지 않았을 테니까, 제가, 으뜸 요리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 하루 씨가 말해줘서……"

 말하는 사이에 쑥쓰러워졌는지, 마지막 부분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어요.

 저는, 곧잘 말해버리고 말아요. 쓸데없는 말을.

 "하루 씨의 으뜸은 되지 못해도 괜찮아요?"

 씨름부 씨는, 고개를 들었어요.

 제 무례한 질문에 그는 화내지 않고, 아무런 말도 않고, 그저 난처하다는 듯이 웃었어요.

 새하얀 손가락으로, 볼에 가루를 묻히더니, 조용히,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업으로 돌아갔어요.

 저도 차를 받으며,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봐요.

 큼직큼직한 손이 섬세한 케이크 장식을 만드는 모습을. 그릇 위에 소스로 모형을 만드는 모습을.

 문득, 이 손가락이 하루 씨를 안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서──허리 근처가, 욱씬거렸어요.

***

 뭐, 이 정도가 최근 내 주변 근황이야.

 이따금씩 울적해지기도 하지만, 매일 야한 짓 하고 있어─.

 야한 짓이라고 하니까, 어째 최근 키요리가 혼자서 씨름부의 식당에 다니고 있더라. 게다가 씨름부를 보는 눈이 미묘하게 야하지 않나 싶어서, 루페쨩이랑 둘이서 감시하기도 해. 이거 재밌는 일이 생길지도.

 숲에는 그 뒤로 가지 않았다.

 위지 씨가 가끔 가자고 하는데, 뭐, 좀 그래.

 언젠가는 갈 테지만, 위지 씨 일행과는 목적이 다를지도 모르니까, 다른 멤버를 모아서 가게 될 지도 모른다. 내 등을 맡기고 싶은 파트너 모집중이야.

 초조해하지는 않는다. 마왕과 만나기에는 아직 레벨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안다. 내가 아직 애라는 사실도.

 아, 그리고, 오랜만에 신이 왔다.

 내 가격이 올랐다는 사실에 불평하면서도 안아주고, 끝나니까 금방 돌아가려고 하길래 줘패줬다.

 시크라소 씨는 뭐하고 있을까. 네가 책임지고 100% 행복한 내세와 내내세와 내내내세는 준비해뒀겠지 라며, 목을 조르며 물어봤다.

 "내내세까지는 모르겠지만, 시크라소는 벌써 자기가 전생할 때의 엄마는 골라놨다고"

 그렇구나.

 그럼 그 녀석은 부자인지 상냥한지 미인인지 어머니로서 최대급의 도덕성과 교양과 책임감은 있는지 계속 추궁했더니, '아니이이'라며 바보 취급하듯 웃었다.

 "아마도 평생 가난할 거고, 도덕성이나 교양 면에서는 특히 위험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그래도 그녀는 행복해질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야"

 에─. 그거 괜찮은 거야?

 시크라소 씨는 그런 중요한 점도 적당히 골라버리는 사람이라서 걱정이 된다.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 진짜.

 그렇다면 신이 앞으로도 책임감을 가지고 시크라소 씨와 그 바보 엄마를 지켜봐달라고 명령했다. 신은 '으웩'하며 지저분한 한숨을 쉬더니, '그려 그려'라고 또 바보 취급하듯 웃으며 돌아갔다.

 "그럼, 중간중간에 또 살펴보러 올게"

 오지 마 바보야. 죽어라 신.

 고기를 먹고 남은 뼈를 던져서 신을 쫓아낸 뒤, 나는 별님께 그녀의 내세가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덧붙여 이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도 행복해지도록. 원래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도 행복하기를.

 그리고, 이 기도가 신 외에 의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에게도 닿기를.

 이상, 이세계에서 하루였습니다!

댓글 5개:

  1. 후일담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저도 이 작품을 번역하려고 한 적이 있어서, 얼마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지 알기에 번역하신 분께 숙연해지더군요. 기회가 되면 밥이라도 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소설의 내용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존여비 사회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힘들어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하루와 루페, 그리고 키요리를 따라 울고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후반부에서 밝혀진 주인공의 정체는 좀 황당했지만, 전반적으로 참 좋은 작품입니다. 이렇게 남성들을 신랄하게 까는 소설의 작가가 남자라면 믿기 힘들 것 같아요.

    답글삭제
  2. 이세계 미성년 창부라는 다소위험하고 음험한 소재임에도 불구 흡입력 인물묘사 전개 분량 거의모든면에서 별다섯개주고싶은 글이었다. 아마 3년동안 본 매체중에서 부끄럽게도 3손가락안에들정도. 캐릭터 하나하나 허투루쓰는법이없이 모두가 인상적이고 극중에 살아있는듯한 인상준다. 이게 양지로나올만한 소재는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세간에 알려진다면 충분히 재평가받을만한 이야기일것이다.
    번역은 편하게읽을수있게 배려한 줄간격에 감사하지만 트와이스, 철한참지난 슈퍼주니어 등으로 나름용써서 로컬라이징한부분은 좀 깨서 아쉬웠다.
    덕분에 잘보고갑니다 ㅎㅎ

    답글삭제
  3. 그 엄마가 주인공인가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