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러네요. 마왕조차도 깰 수 없는 성결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교회의 규율 정도는 깨야죠. 당연하지 않나요. 그런 머리 굳은 사람들 말 쯤이야"
키요리는 엄지를 아래로 향하면서, 선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실하고 얌전한 엘리트 시스터였던 그녀는,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완전 와일드하게 성장해버렸다. 그리고는 위지 씨의 동료인 트랩 전문가 아저씨와 함께, 교회에 들키면 분명 크게 혼날 법한 수상한 것에 손을 대고 말았다.
아무래도 조금은 걱정이 됐지만, 그녀 또한 이상한 부분에서 완고한 여자라 그런지, 결국 신앙의 힘과 마물 등이 사용하는 야생 마술의 콜라보? 비스무리하다고 할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굉장한 결계를 완성한 모양이다.
이렇게 보여도, 나도 남들한테 풀 썰이 꽤나 많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조만간 키요리한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덕분에 거절하기도 힘들어졌다. 나를 마왕 토벌대에 스카웃하고 싶어하는 위지크래프트 씨가 또 숲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번에는 키요리를 데리고.
왜 이쪽 사람들은 마왕에 필사적일까. 이 세계에서 나쁜 놈은 마왕 단 하나고, 그 사람만 사라지면 평화로워질 거라고 다들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 기분이 업돼서 여기저기 파티열고 이예이 하게 되겠지만, 어차피 그 열기도 금방 식을 테고, 애초에 세계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마왕이 사라져도, 마왕이 되고 싶은 남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마물과 싸우는 최전선인 이 마을 일이니까. 그런 사람이 우글우글댈 것이 뻔하잖아.
그런 생각을, 밥을 얻어먹으면서 위지 씨한테 털어놓았더니 혼나고 말았다.
"어지간히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모르는 녀석이 할 법한 말이구나. 그러니까 창녀 같은 일은 그만두라는 거야"
명백히 귀찮다는 표정으로 내 불만을 일갈한다.
"세상에 쓰레기는 있어. 그렇다고 해서 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거냐. 그렇지는 않잖아?"
그렇지는 않다. 난 푸른 하늘 아래서 같이 깡통차기를 한 동료 소년들을 떠올렸다.
미안해, '사이좋은 홍철팀'. 너희들은 지금도 내 희망이야.
"시시한 일에 신경쓰지 말고, 젊은이다운 곳으로 눈을 돌려봐. 네게는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치않는 꼬드김. 내 눈에 세상이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지를 알고 싶다고. 그리고 이쪽 세상에 대해서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 사람은 믿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날 어른으로 대접해주기는 한다. 의지할 수 있는 친척 오빠라는 느낌. 어마무시하게 꼬셔대기는 하지만.
그치만, 알아줬으면 한다. 난 이쪽에서 어른이 되는 게 무섭다. 상상이 안 되니까 무섭다.
게다가──지금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쪽 세계에서는, 절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제 미래가 보이는데도 나아가라 결정하라 말해도 곤란하다. 마치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도 담임 선생님도 없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 같다.
"애초에, 네가 이쪽으로 불린 이유도 그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잖냐. 자각은 있는 거냐?"
있기는 있지만, 실은 불려온 사람 한 명 더 있다구. 동급생이 하나 있다구.
하지만 그 녀석은 이세계에서 속옷 도둑질을 저지른 녀석이다. 용사가 되어봤자 논란을 일게 만드는 타입. 어쩔 도리가 없으니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뭣 때문에 그렇게 망설이는지 모르겠다만, 넌 이제 이 세계 누구보다 강해. 의욕이 없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라고"
힘으로 결론을 내놓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인생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평화주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안다. 나에게는 아마 책임이 있다. 이런 치트, 혼자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퍼블릭 뭐시기다. 모두를 위해서 사용해야만 하는 그런 거. 구멍이나 쑤시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그런 압박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야기를 끝내는 자가 언젠가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밤, 은발의 아저씨가 그런 말을 했다.
내가 이 세계의 커다란 이야기를 끝낸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무서워도, 갈 수밖에 없다.
"시스터까지 휘말리게 만든 장본인도 너잖아. 각오를 다지라고"
위지 씨가 말한다. 각오 같은 건 간단히 다져지는 게 아닌데. 하지만, 나는 끄덕인다.
숲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가는 루트는 전에 찾아두었다. 위지 씨의 일행도 와서, 마왕성이 보이는 장소까지 간 뒤, 우리가 발걸음을 멈췄던 곳.
그때 없었던 키요리가 지금은 있다. 그녀 덕분에 여기까지 오는 길의 전투가 꽤나 수월해졌다. 우리는 마왕성에 도달한 최초의 모험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위지 씨나 다른 동료도 꼴이 말이 아니다. 지금도 키요리가 창백한 표정으로 혼자 결계를 유지중이다. 밖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그러니 이제 도망칠 수는 없다. 나는 혼자서 어두운 복도를 걷는다. 아니, 복도가 아니라 동굴이려나. 벽도 바닥도 부드럽고 축축하다. 어쩌면 이곳은, 거대한 생물체의 뱃속일지도 모르겠다.
──마왕성.
밤에만 나타난다는 이 던전은, 새빨간 피로 젖어있다.
밖에서도 계속해서 내리는 비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붉은 빛을 띄더니, 안으로 들어오자 색깔도 짙어졌고 쇠 냄새까지 풍긴다. 무겁고 차가운 빗방울이 내 몸까지 빨갛게 물들인다. 진짜 이 말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진홍의 엔드리스레인이라는 느낌이었다.
피는 동굴 여기저기에 있는 상처에서 흘러나와, 고체가 되면서 마물로 변해간다.
이곳은 마왕의 '성'이 아니라 '상흔'이다. 엄청 슬펐던 일을 토해내기 위한 장소. 게다가 이 상처를 만든 것은, 마물 따위가 아니다.
지친다. 엄청 피곤하다. 차례차례 나타나는 마물을 베어넘기면서, 내 마음도 갉아먹히는 느낌이다. 루페쨩 엄청 보고 싶어. 달달한 게 먹고 싶어.
하지만 가지 않으면 그 사람과 만나지 못하니까 갈 수밖에 없지. 상처입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니까. 게다가, 누구보다 그 사람이 이제 그만 끝내고 싶어하니까.
짐승의 숨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발을 내딛는 육중한 소리와, 축축한 바닥을 즈려밟는 소리. 짧게 반복되는 호흡이 괴로워보이는데, 으르렁대는 소리는 저릿저릿할 정도로 낮게 울려퍼진다. 줄곧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저기에 있는데,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암흑 속 저편에서 찔러왔기에.
당신도 이미 알고있으면서. 내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여기서 고개를 숙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저편에 있는 그 사람과, 제대로 마주해야 하니까.
"오랜만이네요. 하루예요"
공기가 진동하며 어둠이 소리친다. 대화조차 허용하지 않는 느낌으로 피의 비를 토해내며 나를 적신다.
하지만 이 이세계라는 곳은 극도의 사디스트라서, 이 정도 취급은 꽤 익숙하다. 난 암흑의 건너편을 향해 웃었다. 야상의 청묘정에서, 은빛 머리칼로, 항상 나를 생무시하던 아저씨의 옆모습을 떠올리자, 이렇게 챙겨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 싶다.
"꽤 먼 곳에 살고 있었네요. 여기까지 오는 길도 꽤나 큰일이었다구요"
물론 오늘도 아저씨는 내 수다에는 흥미 없는 듯하다. 또 노성이 울려서, 나는 살짝 쫄았다. 진짜 무섭다니까. 레알 마왕.
그러고보니 아저씨는 인간을 보기 위해 우리 가게에 왔다고 했지. 난 그 사람들 중에서 어떤 식으로 보였을까. 시끄러운 여자라고 생각하려나. 엉덩이가 이쁘다고 조금은 생각해줬으려나.
난 아저씨가 와준 것만으로도 럭키데이였는데. 비가 내리기만 해도 '왔다─!'라며 소란피워서, 손님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좋냐며 마담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즐거웠지. 이세계에서, 사랑할 수 있어서.
"──아저씨"
심호흡하며 검을 버린다. 어둠이 흔들리며 얼얼하게 찔러댄다. 하지만 역시 당신 앞에서 이런 물건을 쥐고 싶지는 않아. 그게 내 결론이야.
"나도 그 뒤로 생각해봤는데,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은, 그 외에도 많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오겠다면 전력으로 맞이하겠다고 아저씨는 말했지만, 내 본심은, 아쉽게도 당신이 기대하는 방향성과는 다르단 말이지.
듣고 깜짝 놀라주면 좋겠다. 그리고, 질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내 진심이니까.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젖어버린 옷을 벗으며, 맨살을 드러낸다.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흉흉한 물건을 쥐는 것보다, 나는 얼른 알몸이 되고 싶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고, 당신의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아마 아저씨는 용납하지 않겠지. 내 마음 따위 알 바도 아닐 테고, 분명 '변태냐'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그치만, 이게 내 본업이니까. 목숨 걸고 해온 일이니까.
아저씨의 목이 그릉그릉 울음소리를 낸다. 하지만 나 역시 여기서 한 발자국도 물러설 생각은 없다. 진심으로 이 사랑을, 어떻게든 해보일 거야.
미안해, 키요리. 귀찮게 만들어서. 마왕을 쓰러트리지 못해서 진짜 미안.
돌아가면, 루페쨩이랑 셋이서 달콤한 거라도 먹자──
***
──내가 태어난 곳은,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시골이다.
집은 양을 기르는 농가였고,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당연히 큰 도시 같은 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갑자기 '창녀가 되어라'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실감이 안 났다.
하지만, 가장 큰언니는 벌써 결혼했고, 둘째 언니도 이웃 마을로 시집간다고 정해진 상태였다. 남동생은 아직 꼬마다. 작년의 악천후로 생겨난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내가 어딘가로 몸을 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어디론가 사라진 친구들이 많았으니까.
일단, 더 이상 양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니, 목장갑은 실을 풀어서 양말로 만들어볼까. 말썽꾸러기 동생은 금방 지저분해지니까, 아무리 만들어도 모자라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마을을 떠나기 전에 완성할 수 있으려나. 열심히 하면 아마도 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 묵묵하게 방에서 실뜨기를 하고 있었더니, 밖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루페. 같이 낚시하러 가지 않을래?"
오빠다. 양말을 짜던 중이라 망설였지만, 나는 '응'이라 대답한 뒤, 내 낚싯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내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커다란 손. 오빠는 나에게 있어서는 친척인 좋은 집안 사람인데, 오빠네 아버지는 우리 가계가 힘들 때마다 몇 번이나 도와주셨다고 한다.
그런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오빠는 우리 자매랑 자주 놀아줘서 엄청 좋아했다. 언니들한테는 비밀인데, 내가 가장 귀엽다고도 말해줬다.
강에 낚싯대를 내걸고 물고기를 기다린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서, 살짝 곁으로 다가가 '비밀인데'라며 창녀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하지만 오빠는 벌써 알고 있었다는듯이, '무슨 일을 하는지 루페는 아는 거야?'라고 물어봤다.
"잘 모르겠어. 남자랑 자는 일이라던데"
이상한 일이지 라며 웃었더니, 오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가르쳐줄까?'라고 말했다.
나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저쪽으로 가자며 팔을 붙잡혀 끌려갔다.
달려서 집으로 돌아와, 오빠한테 당한 일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우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그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며 검지를 입술에 갖다댔다. 오빠의 아버지가, 나한테 창녀 일을 소개시켜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가 앞으로 해야하는 일을 가르쳐줬을 뿐이야. 앞으로는 매일 같은 일을 하게 될 거란다"
그건 절대 싫다고 했다. 아프고 부끄러워서, 그런 짓을 두 번 다시 하기 싫다.
"여자라면 누구든 하는 일이란다. 참으렴"
어째서 참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며 계속해서 울었다.
엄마는 '괜찮으니 울지 마렴'이라며 혼을 내시고, 매마른 손바닥으로 내 볼을 쓰다듬어주셨다.
"네게는 아무것도 없으니 웃어야 한단다. 웃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어. 인상이라도 좋게 만드는 거야. 네가 살아가기 위한 무기는 그것밖에 없단다"
아무것도 없는데 웃으라니 이상한 말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나한테는 웃으라면서 엄마도 울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 살아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웃었다. 엄마는 '그래'라며, 나를 끌어안아주셨다.
그렇게 나는 '야상의 청묘정'의 창녀가 되었다.
엄마는, 그 뒤로 싫어져서 편지도 쓴 적 없다.
재미없는 이야기라, 아무한테도 말해준 적 없는 이야기.
"하루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그녀가 찾아왔을 때는, 나도 이 일에 익숙해져 있었고, 나름대로 여러 아이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래서 처음 보자마자 생각했다. 오래 가지 않겠구나 라고.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경박한 아이. 별난 아이. 남자랑 자는 것은 괜찮지만, 여자의 세계에서 살아가기에는 붕 떠보이는 아이.
우리 가게의 매상 1위인 아이도 그런 인상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가게에서 태어났으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 뒤늦게 들어온 아이가 이런 성격이면 역시 힘들다.
곧 있으면 잘 풀리지 않아서 몰래 도망치거나, 다른 가게로 옮기게 된다. 노예가 되기도 하고.
그런 아이들이,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것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의 삶보다 멀쩡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무섭기 짝이 없다.
"난 루페라고 해. 모르는 점이 있으면 뭐든지 물어봐"
그러니 적어도, 몰라서 곤란해지지 않게끔, 나는 되도록 신입 아이들에게 뭐든 가르쳐주려고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루페 씨, 어떡하지. 내 팬티, 곰팡이가 폈어……"
이 하루라는 아이는, 내 예상 이상으로 아무것도 몰랐다. 예를 들자면 세탁용인 보르도풀을 곰팡이라고 착각해 안색이 새파래지는 별난 아이였다.
"그게 섬유를 부드럽게 해주거든. 마르면 탁탁 털기만 해도 떨어지고, 뽀송뽀송해질 거야. 자"
"아, 진짜네, 뭐야 이거 샤프란이었구나. 마법 같아. 거짓말, 이세계 쩔어─. 레알 뭐든 풀로 해결해버리는 건 좀 웃기지만"
"있지, 이런 것도 모르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세탁을 해온 거야……?"
하루쨩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나도 그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고마워. 또 지식이 늘었네. 헤헷"
이 아이는 언제나 싱글싱글 웃는다. 다른 아가씨에게 불쾌한 말을 듣더라도, 웃으며 받아치는 장면을 봤다. 그건 창녀 일에 있어서도 꽤 중요한 기술이라, 나는 조금 감탄해버렸다.
미소가 거짓말 같지 않았으니까. 진심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잘 웃는 아이구나.
분명 지금까지도 저 방법으로 여러가지와 싸워온 것 같았다. 나와는 웃는 방식이 다르지만, 아마 그건 생활해온 장소가 다르기 때문이겠지.
닮았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비슷하다고 조금은 생각한다. 살짝 흥미가 생겼다.
"나한테는 씨라는 호칭 붙이지 않아도 돼. 나이도 얼마 차이가 안 나는 것 같고"
내가 먼저 거리를 좁혀봤더니, 역시나 조금은 경계를 하는 모양이다. 조금 갑작스러웠나.
그래도 이런 때 내가 뚫고 나가지 않으면 벽을 허물 수 없다. 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리 와. 다른 빨래가 있으면 가져오고. 빨래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옷은 이거 한 장밖에"
"그렇구나. 알았어. 내가 쓰던 거라도 괜찮으면 한 장 줄게. 귀여운 거 있거든"
조금 아까웠지만, 흔쾌히 좋아했던 속옷을 양보해봤다. 작년부터 매상 상위를 유지하게 돼서, 싼 옷 정도라면 얼마든 살 수 있다. 괜찮아 괜찮아.
"고마워. 루페쨩 상냥해!"
하루쨩이, 손을 꼭 잡아온다. 알기 쉬워라.
하지만 나는 상냥한 사람 같은 게 아니다. 언제나 웃는 모습을 보이려면, 주변 사람도 미소지어주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그러니 가끔씩 베풀어줄 뿐.
게다가 돈을 저금한다 해도, 어차피 여기서 나갈 수 없으니까, 이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써야지.
전부,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야. 친절한 게 아니라.
가게에 오는 손님 중에 몇 명인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때려도 웃으며 참거나, 기뻐해주기를 바라며 여러 이야기를 들어줬더니, 어째서인가 나를 어머니 같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엔 반대로 내가 혼내봤더니 순순히 꾸벅꾸벅 사과도 한다.
그렇게 됐더니 남자도 귀여워보였다. 아무리 위협적인 사람도 어리광쟁이가 되어버린다. 일하기 편해져서 나도 '엄마'라고 부르게 하기로 했다. 오히려 그런 소질을 지닌 사람이 어렴풋이 파악돼서, 내가 먼저 유도하는 경우도 꽤 생겼다.
물론 상냥하게 대해준다고 해도 남자는 남자니 방심할 수는 없다. 선물을 받은 정도로 만족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하게, 태도로 충성을 보이게끔 하고 있다. 그런 관리나 체벌 방법은 양을 돌보면서 배웠기에, 나도 그들의 양치기 개가 된 마음으로 이따금씩 발톱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 하고.
일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상은 작년부터 계속 2위다. 마담은 나를 본받으라고 다른 아가씨들한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언제나 긴장하며 일하고 있다.
웃고 있기는 하지만, 창녀는 무엇을 위해 웃는 건지 잊어선 안 된다고 언제나 생각한다.
"그랬더니 그 손님, '뮤제륜보야아아'라면서 몸을 뒤로 젖히더니!"
그런데 최근에는, 눈물이 날 만큼 진심으로 웃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루쨩은 입담이 좋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아가씨들과도 친해졌다. 심지어 그녀가 '그러고보니'라고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다들 주목한다.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기대하게 되고, 주위 사람들까지 웃게 만든다.
그녀가 가게 앞에 놓아둔 긴 의자는, 이제 완전히 내가 즐겨찾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아직 날이 밝을 때에 잠시 쉬면서 시작한 수다도, 순식간에 가게 오픈 직전까지 이어지게 됐다. 오늘 있었던 안 좋은 일도, 내일 하루쨩에게 말해줘야지 라고 생각하면, 뭐 재밌는 일은 없었나 하며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시크라소 씨가 없어진 뒤로는, 꽤, 많이, 쓸쓸해졌지만.
하지만 키요리쨩이라는 새로운 친구도 생겼다. 창관에서 외출해 씨름부 씨의 식당에서 차를 마시는 모임을 만들고나서는 아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어쩌면, 나도 하루쨩처럼 자유롭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고,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또 잠깐 가게 쉴 거야"
평소처럼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하루쨩이 말한다.
위지 씨라는 유명한 모험자랑 하루쨩이 친해져서, 그 사람들과 아무래도 숲 건너편으로 가는 모양이다.
어째서 시스터도 아닌데 그런 곳을 가는 걸까. 우리들 창녀가 바깥 일을 하다니, 절대 안 된다고 마담도 엄하게 말하잖아, 라고 나도 주의를 줬다.
"미안해, 루페쨩. 꼭 돌아올 테니까 좀 봐줘"
그런데 이유도 가르쳐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살짝 불쾌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했지만, 나라는 사람은 이런 때에 불만을 입에 담지 못한다.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상대는 엄마밖에 없었고, 무슨 말을 해봤자 안 되겠지라며, 혼자 수긍해버린다.
"괜찮아요. 이번엔 저도 같이 가니까요.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루 씨를 지켜낼게요"
키요리쨩은 기합이 들어간 모양인지, 꽤 흥분한 상태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간단히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로 죽는 경우도 많으니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은데. 세상에는 '사망 플래그'라는 것이 있다고, 전에 치바 군이 가르쳐줬다.
키요리쨩은 죽는다구. 하루쨩에게 배신당해서.
라니, 그럴 리 없지만.
그치만, 그렇구나. 키요리쨩은 같이 가는구나.
흐응, 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부글부글 끓는 감정이 넘쳐흘러와, 아랫배에서 끈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역시 평소처럼 웃어주는 것 뿐이라,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라며 속마음과는 상반되게 미소지었다.
그 뒤 '선물로 동정 몬스터(숲에 나타난다고 소문난 자지 형태의 수상한 마물)를 잡아올게'라고 하루쨩이 말하길래, 그건 진심 필요없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거부했다.
"물론 엄마 말대로 재미없고 지루한 수행은 계속하고 있지만, 최근엔 숲에 출현하는 몬스터도 레벨이 올랐다고나 할까, 새로운 종 같은 것도 본 적 있거든. 내 생각인데, 어쩌면 마왕 녀석, 드디어 나의 존재를 눈치챘는지도 모르겠어"
애초에 창녀 일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상식을 하루쨩에게 가르쳐준 사람이 나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점도 있었다. 게다가 그 아이는 거리낌없이 자기 일을 말해주니까, 비밀 같은 건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에 침울해했는데, 그 뒤로 혼자 생각해보고 깨달았다. 내 멋대로 생각했구나라고, 반성했다.
"요즘은 숲에서 자체 하드코어 플레이도 하거든. 아, 하드코어 플레이란 말이지,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몸 일부를 스스로 구속한 채 싸우는 거야. 아니 괜히 이상한 의미처럼 들리겠지만, 한 마디로 나한테 핸디캡을 걸고 싸우는 거라고나 할까. 그래도 진짜 위험한 행위고, 숲 입구 근처에서밖에 안 하니까 안심해"
나도 하루쨩에게 털어놓지 못한 일도 있으니까. 창녀가 되기 전 일이라던가. 그런 이야기 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여자애라면 특히.
털어놓을 수 있는 것과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이다.
"요약하자면 여기 오른팔의 붕대를 풀면, 봉인되어있던 '오니히메'가 해방된다는 게 내 새로운 설정이거든. 멋있지 않아? 게다가 왼손밖에 쓸 수 없는 하드코어 모드로 결투장에 도전하는 나 꽤 성장한 것 같단 말이지. 역시 천재라 그런가. 자랑하는 것 같으니까 다른 녀석들에게는 말하지 않지만"
너무 자신에 대해 떠드는 사람은 신용할 수 없지. 가벼워보인다고 할까, 텅 빈 껍데기 같은 느낌이 난다.
하루쨩이, 키요리쨩에게는 말할 수 있고 나한테는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분명 그건 그녀도 생각한 다음 결정했을 테니, 옳은 일이겠지. 쓸데없이 떠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니 더 이상, 하루쨩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하지 말자. 그녀에게는 그녀의 인생이 있으니까. 나도 힘내야지, 응.
"저기, 엄마. 듣고 있어?"
"아, 응. 그보다 오른팔은 어떻게 된 거야. 붕대, 살짝 풀렸는데. 제대로 감아놔야지"
"그러니까 그게 봉인의…… 뭐, 됐으려나"
엉망이 된 검은 붕대를 다시 고쳐감아준다. 치바 군도 노력하고 있구나. 아무데도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손가락까지 감아두다니, 이래선 밥을 먹기도 힘들지 않을까.
덜렁이라니까.
"밥은 먹을 수 있어? 몸을 쓰는 일 하니까, 배불리 먹지 않으면 안 된다구"
내 그릇에서 고기를 아─앙 해준다. 치바 군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더니, 서둘러 받아먹는다.
어리광쟁이인 주제에, 부끄럼쟁이에 폼잡는 것까지, 동생을 쏙 빼닮았다.
그러고보니 하루쨩이 없으니 식사에 어울려주기도 하지만, 매일 데리러 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해야겠지.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면, 치바 군이 가게 앞에서 강아지처럼 기다린다. 안으로 들어와서 불러주면 좋을 텐데, 영업시간이 아닐 때 들어오기는 긴장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낯가림이 심한 아이다. 친해지면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데. 가게에 오면 우선 나나 하루쨩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 사실은 조금 귀엽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귀엽다고 말하면 화내는 일이 많아서 말하지 않았지만.
"오늘도 내가 살게. 엄마 좋아하는 거 시켜"
나는 '매일 얻어먹으면 미안하잖아, 사주는 건 가끔씩만 해줘도 돼'라며 거절한다. 그랬더니 치바 군은 '괜찮다니까'라며 더 권해온다.
"나도 맨날 밖에서 먹거든. 그러니까 먹는 김에 사는 거지"
먹는 김에, 라는 말투에 악의는 없다. 이 아이는 이런 식으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매일 얻어먹기로 했다. 먹는 김에라니까.
"고마워. 그치만 나 말고 같이 먹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아?"
"어, 있을 리 없잖아, 그런 사람"
치바 군, 왼쪽을 봤어. 거짓말 했구나, 이 녀석.
게다가 요전번 속옷 도둑 사건 때, 눈치챈 점이 있다. 치바 군은 아마, 그 아이랑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입막음을 해두었겠지. 특히 나나 하루쨩한테는.
어떤 관계인지도 상상이 간다. 어쩌면 치바 군에게 못된 불장난을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했다. 그건 오랜 기간 지내오며 생긴 암묵적 룰 같은 거다.
그 아이가 하는 일에, 나는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는다.
"아니, 뭐─, 다른 사람한테도 말을 걸기는 하지만, 내 진심은 엄마라구!"
치바 군은 옛날에 하루쨩에게 끈질기게 자기 집으로 오라고 꼬신 적이 있다고 한다. 키요리쨩이랑 사귀었을 때는 요리나 청소도 시켰다고 들었다. 그 아이에게는 어떠려나 상상해보지만,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집 안을 보여주기 싫은 거겠지. 마구 어질러놓고 살 게 뻔하니까.
그는 하루쨩과 있을 때가 가장 활발하고, 키요리쨩 앞에서는 조금 허세끼가 있고, 나랑 있을 때는 상냥하고 폼잡는다. 치바 군의 가장 특이한 점은, 남자 치고 드물게 여자 상대로도 여러 표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나는 손님으로서 그를 키워왔지만, 사람이란 그리 쉽게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평생 이해하지 못하는 채 남는다. 그의 경우에는, 마음을 터놓고 대한 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점이 많다. 그래도 상상력은 엄청 풍부해서 이야기 자체는 의외로 재미있다.
친구는 적은 것 같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남들과 금방 친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인기 좋은 창남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남에게 별로 흥미가 없다는 느낌이다. 먼저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거리감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 점은 하루쨩과 정반대다. 그녀는 스스로 거리를 좁혀오는 쪽이니까.
이 둘은 동향 출신이라고 하던데, 어떤 마을일까. 어떡하면 이렇게 극과 극인 아이들로 자라는 걸까.
"아무래도 안 들은 모양이니 한 번 더 말하겠는데, 내 진심은 엄마라구!"
"어, 아, 미안. 들었어, 고마워─"
"헤헤"
치바 군은, 내가 밥을 먹는 입가를 자주 본다. 자기는 거짓말하는 주제에, 의심이 많고 독점욕도 강하다.
창녀 선배들에게 배운 남자를 알아보는 법. 치바 군은 재밌을 정도로 딱 들어맞지만, 그래도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라고 특이하게 생각되는 때가 많다.
날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 말고도 많이 있다. 하지만 매일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예의 사건 이후, 가게 밖에서 손님을 만나는 게 금지되었다. 치바 군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손님이 아니면 되잖아?'라며, 점심밥을 같이 먹기만 할 뿐이고 밤에는 찾아오지 않게 됐다.
치바 군은 그런 점이 다른 남자들과 달랐다.
나랑 자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어째서 엄마라는 호칭으로 부를까. 밥을 사주면서도, 어디론가 끌고가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정말 별난 아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있잖아, 엄마. 내일은 잠깐 늦어질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어째서 늦어지는가는 묻지 않는다. 분명 성가신 거짓말을 칠 테니까.
가게가 오픈하자, 바빠져서 쉴 틈도 없다.
최근 마담에게 불려가는 일이 많아졌다. 여러 사람을 소개받게 되었다.
이 가게의, 이른바 큰손들이다. 그들은 나를 안은 다음 거액의 용돈을 줬다. 손님 중 한 명에게는, 조금 더 좋은 옷을 입으라는 말도 들었다. 마담도 같은 말을 했다.
내가 귀여운 옷이나 애 같은 복장을 고르는 이유는, 이게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그런 취향의 단골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른스러운 차림새도 해야만 한다.
변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마담은 나를 후계자로 삼으려 한다.
"루페쨩. 길드장님이 내일부터 지방 순회를 돈다는구나. 이번엔 나도 따라가니까, 그간 가게를 부탁하마"
나는 하루쨩과 다르게, 지방에서 끌려온 아가씨다. 빚이 있다.
이 일을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몸이 망가질 게 뻔하고, 누군가 부자가 빚을 갚아주지 않는 한, 요리가 뛰어나거나 음악에 정평하거나, 다른 특기가 없으면 힘들다.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경영을 하며 월급이라도 받지 않으면, 오래 살 수 없다.
오래 살고 싶다, 는 건 아니지만.
"알았어요. 열심히 해볼게요"
내게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입맛대로 고를 수 있을 만큼 축복받은 인생이 아니다. 어떻게든 바둥대며 살아갈 뿐이다.
"루페쨩, 카운터에 손님이 쓰러지셨어"
"네, 처리할게요"
테이블을 바라보며, 소꿉친구에게 말을 건넨다.
창관에는 여자밖에 없으니까, 곤란한 손님이 생기거나 힘쓸 일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단골 몇명에게 부탁했다.
대부분은 모험자로, 식사나 술, 그리고 약간의 봉사로 부탁하곤 한다. 혹은 근처 가게나, 정말 어쩔 수 없을 때에는 길드장님에게 부탁하거나.
가게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과 잘 지내두는 것도 중요하다.
"자, 형씨. 여기는 자는 곳이 아니라고"
덩치 큰 손님에게, 근처 여관까지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한 명을 정리해도, 차례차례로 자잘한 문제가 일어나, 빨리 해결하고 가게를 굴리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막혀버리고 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바쁘다. 마담은 언제나 가게 안을 우아하게 걸어다니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렇구나. 문제가 되기 전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구나. 말을 걸어서 굴려야 한다.
멈춰서있을 틈도 없다.
하루가 끝나갈 쯤에는, 안면 근육이 미소지은 채 굳어져버렸고, 발도 팅팅 부었다. 엎어져서 쓰러지듯 잠들었더니 어느샌가 아침이 밝았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뜬다.
"누구세요?"
순간, 하루쨩인가 했지만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시끄럽게 문을 두들긴다.
"나"
라고 말하는, 쉰 저음의 목소리. 아아, 너구나.
화나게 해버린 걸까. 근육통이 조금 남은 발로, 어떻게든 일어선다. 몸이 뻣뻣하다.
"안녕, 키즈하쨩. 무슨 일이야?"
살랑살랑 나부끼는 긴 금발.
그것을 둥글게 말아올리고, 넓은 이마 아래로 나를 노려보는 푸른 빛의 커다란 눈동자. '청묘정'이라는 가게의 이름은, 그녀를 위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무슨 일이야, 가 아니잖아"
새하얗고 미끈미끈한 피부가, 풍만한 가슴까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검고 짧은 드레스에서 뻗어나온 손발까지, 누군가의 편의라도 받은 양 가늘고 길어서 부러울 따름이다.
여자인 내가 봐도 소름이 끼칠 정도의 미인.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남자가 부족해. 욱씬거려서 잠을 못 잤어"
굶주린 길고양이가 그르렁거리는 듯한, 그런 느낌.
그녀에게는 조금 독특한 점이 있는데, 그건 창녀라는 일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남자와 자는 것이 진짜 좋은 모양이다. 하룻밤에 셋은 안게 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스로 손님을 잡으러 가게로 내려오지는 않는다.
"나한테 남자를 데려오는 게 네 일이잖아"
그녀가 야상의 청묘정 매상 1위. 내가 왔을 때부터 항상 그랬다.
그렇기에, 가게에서 그녀에게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미안해. 어제는 너무 바빠서 못했어. 알잖아, 마담이 어제부터 안 계셔서"
"관계 없잖아? 내가 하룻밤에 얼마나 벌어준다고 생각하는 거야. 쓸데없이 바쁘게 돌아다닐 정도면, 내 손님이나 찾는 편이 가게에 보탬도 되잖아"
키즈하쨩의 가격대는 높다. 당연히 그녀의 손님은 부자만으로 한정되고, 하룻밤에 그렇게나 많이 오지는 않는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서, 사주는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나 혼자서, 그건 좀 무리였다. 언제나 도와주는 하루쨩도 없다.
"진짜 바빴다구. 키즈하쨩이 아래로 내려와준다면,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잔뜩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왜 내가 그렇게 귀찮은 짓을 해야하는데. 난 그런 거 면제라고. 마담도 상관없다고 말했잖아"
"……응, 그렇긴 하지만"
"뭐야, 루페. 화났어?"
키즈하쨩이 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들춰낸다. 귓가를 스치며 뒤쪽 벽에 손을 짚고는 얼굴을 들이댄다.
"화났어? 그래서 어쩌려고?"
속눈썹이 길어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로 노려보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게다가 그녀는, 또 피 냄새를 풍기는 중이다.
화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오늘밤은 꼭 손님을 데려다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응, 그래. 열심히 해봐"
남 일처럼 말하고, 그녀는 겨우 떨어져나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갑자기 뒤돌아보는 탓에 깜짝 놀랐다.
"부탁 좀 할게, 엄마"
싱긋 웃더니, 이번에야말로 키즈하쨩이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갔다.
긴장된다. 그녀는 엄청난 압력을 뿜어내는 여자다. 게다가 '엄마'라니, 분명 날 바보 취급하는 거다. 짜증나는 말투다.
왜냐면 저 사람, 마담의 친딸이니까.
점심때가 지나도 치바 군이 와주질 않는다. 그러고보니 늦어질지도 모르겠다고 했지. 어쩌면 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가끔씩이면 된다고 하긴 했지만, 내심 기대하고 있었기에 조금 아쉽다.
그럼 밥을 어떻게 할까. 혼자서 가본 적은 없지만, 씨름부 씨의 가게에 도전해볼까.
키요리쨩도 시스터 복장 그대로 차를 마시곤 하니까. 그 모습이 꽤나 멋있다. 여자가 혼자서 가게에 앉아있는 모습이라니, 꽃을 꽂아둔 것처럼 보인다.
뭐, 난 키요리쨩만큼 미인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나, 어제 열심히 일했으니까.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해야하고. 마담도 말했으니까, 조금은 어른스러운 일도 해봐야지. 응.
하지만 쥐꼬리만한 용기가 통할 만큼, 세상은 달달한 케이크가 아니다.
가게 앞 '테라스 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옆에 있는 아저씨가 이쪽을 보는 느낌이라 무서웠다. 씨름부 씨 앞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그곳도 남자 손님으로 가득찬 자리라 부담된다.
"뭐야, 아가씨. 앉을 자리가 없나?"
테라스 자리에 항상 앉아있는 아저씨가 말을 건다.
모험자 같은데, 다리를 다친 모양인지라 언제나 대낮부터 술을 마신다. 빳빳해보이는 수염이 난 아저씨. 깜짝 놀라 뻣뻣하게 굳어버린 나에게, 씨익 웃어보인다.
"여기 앉지 그래?"
제 고간을 가리키며, 이를 드러낸다. 주위 사람들이 웃자 거기에 맞춰서 나도 영업용 미소를 지어준다.
가게에서 종종 듣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농담이다.
"아, 저기, 자리가 없으면 조리대 앞에 한 자리 비었으니까 그쪽으로"
케이크가 잔뜩 얹어진 그릇을 나르며 씨름부 씨가 중재한다.
덕분에 살았다. 씨름부 씨는 몸집이 커서 듬직하다.
"뭐냐, 어이. 네 이거냐? 거 미안하게 됐군"
그렇지만 소심하고 소극적인 사람이다. 수염 아저씨가 새끼 손가락을 세우자, 새빨개져서는 '당치도 않아요'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해요.
"오늘은 됐어요. 또 올게요"
사양하기로 했다. 배도 빵빵해진 것처럼 더부룩하고.
"죄송해요"
사과하는 그에게, '저야말로'라며 같이 사과한다. 장사가 잘 돼서 다행이예요. 서로 힘내죠.
"저, 괜찮다면 가져가세요"
그릇에 담긴 케이크 하나를 받았다. 값을 내려고 했더니, '남는 거예요'라며 씨름부 씨가 면목없다는 듯이 말한다.
하루쨩이 없어서 우리가 가게에 오지 않더라도 이 사람은 항상 케이크를 만든다. 팔리지 않으니까, 손님에게 권유해 영업도 한다.
"먹겠냐, 그런 여자들이나 먹을 법한 거"
수염 아저씨에게도 권유해봤지만 통렬한 거절을 당했다. 씨름부 씨는 굉장히 노력중이다. 서로 힘내자니, 어쩜 거만한 생각이었는지.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가 조금 가엾다. 혼자 먹어도, 쓸쓸한 맛밖에 나지 않는다.
──눈이 돌아갈 것 같다.
저쪽에서 손님이 요리가 늦는다며 화를 낸다. 건너편 손님은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빼앗겨서 화풀이 중이다. 아가씨 한 명은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하고, 다른 아가씨는 손님에게 맞아 얼굴이 부어버렸다.
미소. 미소. 기분이 어떻더라도 손님 앞에서 이상한 표정을 지어선 안 된다. 아가씨들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가끔씩은 '딱 잘라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마담이 말하셨다. 하지만 내가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하루쨩도 아니고.
곳곳마다 얼굴을 비추며 사과한다.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다른 방법을 모른다. 마담에게 일을 맡았던 적을 떠올려봤지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친다. 그런데 매상은 최악. 그래도 미소. 마지막까지.
오늘도 엎어지자마자 잠든다.
엉덩이를 맞아서 눈이 띄인다. 놀라서 일어났더니, 덮쳐졌다.
술 냄새. 키즈하쨩이 내 위에 타있다.
"어제,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란 눈동자가, 굉장히 가까워서, 더욱 강렬하게, 그곳밖에 보이지 않는다. 빨려 들어갈 듯한.
"……미안"
"알면 사과하지 마. 남자를 데리고 오라고. 데려오지 않으면"
널 따먹어버릴 거야 라고, 키즈하쨩이 능글맞게 웃는다.
정말 따먹히는 줄 알았다. 그녀의 숨결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피부를 훑는다. 마치 혀처럼.
"키즈하쨩"
그 숨결에서 살짝 피 냄새가 난다. 하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말해야만 한다.
"또 마셨어? 마담도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시끄럽네. 상관없잖아, 그런 사람은"
바로 말을 끊길래, 그 이상은 말하지 못했다. 팔을 붙잡힌 상태라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그녀는 내 목덜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머리카락에 입을 가져다 댄다.
"넌 항상 좋은 향이 나는구나. 어젯밤은 몇 명한테 안겼어? 날 방치해놓고, 너만 남자를 즐겼구나? 그치?"
안기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이제 곧 나는 정해진 손님 외에는 잘 수 없게 된다. 마담에게 소개받은 사람들이다.
"그래. 루페는 엄마가 될 거니까. 우리들의"
키즈하쨩이 볼을 쓰다듬는다. 귀를 손톱으로 찌른다.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는 나를 보고는, 기쁘다는 듯이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
"엄마. 나를 위해 착실히 일해줘. 그럼 나도 분명 착한 아이가 될 테니까. 약속할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미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도, 장미의 가시처럼 아프다.
키즈하쨩은 창관에서 태어났다.
언제부터 이 일을 했는지 자기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마담도 많은 이야기는 해주지 않는다. 이 모녀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키즈하쨩은 거짓말쟁이니까.
해가 떠있을 때의 그녀는, 언제나 피 냄새를 풍긴다.
'양귀비박쥐의 피'다.
물론, 그런 동물이 있을 리도 없고, 진짜 피도 아니다.
마왕의 숲 동쪽에서 채집된다는 신비한 모습을 한 과일이다. 그 열매를 발효시키면 빨갛게 되면서 피 비스무리한 냄새를 풍긴다.
그 즙은 술보다도 효과적으로, 사람을 망가트린다. 그렇기에 가지고있는 모습이라도 발각된다면 군인 아저씨에게 체포되지만, 얻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한 모양인지라, 창관에서도 마시는 사람이 있다.
심하게 취한 상태가 되면서, 보이지도 않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거나, 갑자기 날뛰기도 한다. 쓰러져서 그대로 병원으로 호송되는 경우도 있다.
잘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취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피를 마시면 엄청 기분이 좋다면서 아가씨에게 권하기도 한다. 마담은 위험하니까 거절하라고 모두에게 말하셨다. 어쩔 수 없이 마셔야하는 상황이라면 도망쳐도 된다고.
키즈하쨩은 잘 마시는 편이다. 아마도 나 말곤 아무도 모르겠지.
"……잊지 말고, 밥도 먹고. 영양이 부족하면 쓰러진다구"
"뭔 소리래? 엄마 같은 말 하는 거야?"
스스로도 흐름에 안 맞는 말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키즈하쨩은 최근들어 점점 더 식사를 하지 않게 됐다. 어쩌면 또 뭔가 주워와서 기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살아있는 생물이면 뭐든 주워와서는, 방에서 몰래 키우곤 했다. 마담의 지시를 받아 열쇠를 채운 사람이 나였다.
그리고, 혹시 그녀가 지금 키우는 것이──내가 아는 남자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중이다.
"너야말로 지쳤다는 표정이야"
남 일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키즈하쨩이 머리를 쓸어올린다. 오늘은 잘 정돈된 상태다. 지금부터 누군가랑 만날 예정인가보다.
"일이 그렇게 힘들어?"
보통 아가씨였을 때보다 훨씬 더.
하지만,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마 살아갈 수 없겠지. 누구든 변화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적성에 맞지 않아, 루페"
가슴에 싫어하는 것을 찔러넣는 기분.
그런 거, 당연히, 나도 알아. 그러니까 말하지 않아도 될 텐데.
"넌 언제나 웃어넘기려고 하니까. 계속할 수 있을 리 없지. 자기가 즐기지 못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다니 절대 무리야"
나는 즐거워, 라고 키즈하쨩이 웃는다. 엄청 웃는다. 머리에 쿡쿡 울린다.
"루페도 피, 마실래? 즐거워진다구?"
빨간 혀가 그녀의 입술을 적신다. 냄새만으로도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볼이 뜨거워진다. 숨이 가빠져서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
"거짓말이지롱. 너한테는 안 줄 거야"
나를 있는대로 바보 취급하고서, 키즈하쨩은 드디어 내 위에서 내려왔다. 피 냄새가 떨어지면서 동시에, 스쳐지나가듯 꽃 향기도 났다.
치바 군은, 오늘도 오지 않았다.
창관의 주방에서, 홀로 늦은 점심을 받아 먹는다. 그립지만, 원래는 이랬지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이곳에서 다 같이 먹었던 밥도, 별로 즐겁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늘어날 테니까. 다른 아가씨와도 이야기해봐야 하고, 가게의 맛도 확인해봐야 한다. 사이 좋은 아이와 밖에서 먹는 식사의 맛에, 기대서는 안 된다.
게다가──하루쨩은, 이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창녀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였지만, 지금은 나보다 훨씬 할 줄 아는 일이 많다. 요리도, 빨래도, 가게 수리까지도. 매상 순위는 아직 상대도 안 되지만, 노래도 잘 하고 악기도 잘 다룬다. 게다가 엄청나게 귀엽다.
바깥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모양이고, 숲 같은 굉장한 곳에 가기도 할 정도니까. 어쩌면 벌써 가게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분명 말해주지 않겠지. 평생 이곳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아이니까. 말할 수 없겠지.
아마도, 나, 엄청 쓸쓸하지만,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해줄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래도, 가지 말라며 울 거라고 생각하려나. 그럴 일은 없는데. 모두가, 나를 앞질러가는 정도는 알아. 그러니까 괜찮아.
……어째, 재미없는 일만 생각하게 된다.
하루쨩이 있는 때에는, 좀 더 재밌는 이야기 없을까 고민했는데.
물 마시자.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났더니, 무릎에 힘이 풀려버렸다. 쓰러져버리는 줄 알았다. 깜짝 놀랐다.
밤, 비가 내리기 시작해 손님은 적은 상황.
하지만 손님이 적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가게 앞 등불을 강하게 켜고, 가게 외관을 따스하게 만든다. 악단에게는 느릿느릿한 곡을 연주하도록 지시한다. 요리 한 종류의 가격을 살짝 낮췄다고 간판에 적어둔다. 출퇴근 아가씨들에게, '오늘은 조기 퇴근해도 되니까 떠들썩하게 해줘'라고 전달한다.
손님이 적다고 해도, 해야할 일까지 줄일 수는 없다. 하지만 얼굴에는 조바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바짝 긴장한다.
비를 피해 신규 손님이 왔다. 수행인을 거느린, 풍채가 좋고 기름기가 번지르르한 사람. 게다가 창관 이용은 익숙한 모양인지, 자리로 안내해준 아가씨에게도 가벼운 느낌으로 야한 농담을 친다. 익숙한 사람은 좋다. 부자, 라고 생각한다. 꽤나.
마담 대리로서 인사를 올린다. 술도 따라준다. 내 빈약한 가슴을 보더니 미묘한 표정을 짓길래, 오히려 안심했다. 오늘은 가슴 큰 아가씨가 많다.
손님이 술과 요리를 즐기며, 슬슬 아가씨들의 품평을 시작할 즈음에 다시 한 번 말을 건넨다. 귓가에, 손님에게만 이라고.
"오늘이라면, 저희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이의 방이 비어있어요"
키즈하쨩은, 주로 높으신 공무원이나 군 상층부가 고객이라고 소개해둔다. 남자는 아가씨의 가치를 외모보다 '누구의 마음에 들었는가'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돈이나 지위가 있을 법한 손님은. 물론 가슴이 크다는 첨언도 해둔다.
"호오"
가격은 마지막에 말한다. 말 못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익숙한 사람이라면 가게 시세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테고, 이곳은 남성들의 사교장이기도 하다. 다음에 또 올 경우도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좋아, 가볼까"
이 사람은 가격을 묻지 않았다. 큰손 확정이다. 다음에 올 때에는 아가씨들을 세워놓고 환영해야겠다.
다행이다. 뒷일은 맡겨도 되겠지. 키즈하쨩이라면, 어떤 손님도 반드시 만족하게 해준다. 일은 정말 잘 한다. 이틀이나 손님을 맞이하지 못했으니 그녀도 기뻐할 테지.
라고, 살짝 안심해서 긴장을 풀고 있었더니, 금방 방금 손님이 발소리를 울리며 2층에서 내려왔다.
"이봐, 웃기고 있군. 뭐냐 저 여자는!"
내게 삿대질을 하며, 울그락불그락해진 얼굴로 노려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서, 허둥대고 만다.
"저기, 대체 무슨 일이시죠?"
"저 여자는 뭐냐고 했잖나. 저게 이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년이라고? 이따위 무례는 처음 겪는군. 끽해봐야 창녀 주제에 내가 누군 줄 알고"
"저, 죄송합니다, 금방 다른 아가씨 방으로"
"다음은 두 번째 아님 세 번째냐? 이딴 가게의 여자 따위 상대할까보냐. 바보 취급은 적당히 해라. 돌아가겠다!"
정말이지 영문을 모르겠다. 손님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며 배웅해드리고, 서둘러 2층으로 향한다.
복도 끄트머리에 있는 푸른 문. 가게에서 가장 넓은 방. 조금 긴장하며 문을 두드린다. 대답은 없다. 좋아. 멋대로 열어본다.
"키즈하쨩"
꽃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며, 화려하게 칠된 벽과 바닥에 겹겹이 쌓인 융단의 색감이, 눈을 찌르듯 파고들어와 살짝 통증을 느낀다.
남자들에게 받은 옷, 자잘한 물건, 모자. 모두 화려하지만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것처럼 정리되어있다. 색이 너무 많아 불안해지는 배치. 색에 파묻힐 것만 같다.
침대 위에 그녀가 있다.
칠칠맞게 다리를 벌리고 컵으로 피를 마시고 있다. 볼에는 커다란 손자국. 방금 전 손님에게 맞은 자국이리라.
"키즈하쨩──안 되잖아. 넌 얼굴에 상처가 생기면 안 돼"
이 아이는 가게의 간판이다. 우리들 중 넘버 원. 제멋대로라 감당하기 벅차지만, 이 가게를 지탱해주는 사람은 이 아이다.
그녀는 입술 한 쪽을 치켜올리고는, 볼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말한다.
"이 정도 내일이면 사라져. 문제 없어"
문제라구. 오늘 밤, 이제 어떡할 건데. 네가 손님을 데려오라고 말했잖아.
"……손님에게 뭘 한 거야?"
"딱히. 본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당신에게 안기기는 싫네요─라고"
"무슨 소리야. 정말 그런 말 했다고?"
그녀는 그래도 일은 성실하게 했다. 애초에 창녀 일밖에 안 하는 아이였다.
어떤 남자에게도 안긴다. 진심으로 안긴다.
우리도 살짝 상대하기 꺼려지는 남자에게도, 그녀는 침대 위에서는 진심으로 대한다. 헤어질 때에는 눈물까지 보일 정도다. 그런 식으로, 줄줄이 사탕처럼 미모와 사랑으로 손님을 빠뜨려간다. 어떤 남자라도 포로로 만들어왔다. '태어났을 때부터 창녀였다'고, 마담은 말한다.
"어째서 그런 말을……"
"그럴 기분이 아니었거든. 안 돼?"
키즈하쨩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피에 취한 것이다. 엉망진창이다. 아무리 나라도 화가 치밀어오른다.
나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손님을 화나게 만든 거다.
"왜 그래, 루페. 혹시 화났어?"
입술을 깨물며 참는다.
내가 화내면, 진짜 끝장이다.
"부탁이니까 일을 해줘. 오늘 밤은 손님이 적다구. 얼굴, 분칠 좀 할까"
또 손님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돈 많은 손님이 와줄지 어떨지도, 이 날씨와 가게 상태로 봐서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오늘 밤은 키즈하쨩이 벌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정말 곤란하다. 요 며칠간 최악이었다. 마담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 꼴이라면, 나는──.
"싫어. 그럴 기분 아니라고 했잖아. 나, 당분간은 일할 생각 없거든. 알아서 잘 해봐"
뻗은 내 손을 쳐내며, 키즈하쨩이 퉁명스럽게 고개를 돌린다.
화내면 안 돼. 키즈하쨩은 날 놀리고 있을 뿐. 화를 내면 상대가 의도한 대로 하는 꼴이다. 하지만, 나도 한계야.
"그럼 여기서 나가. 남자랑 자지 않는 창녀 따위 이 가게에는 필요 없어. 너도 창녀 일밖에 하지 못하는 주제에, 제멋대로 굴지 말아줘"
키즈하쨩은, 놀란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나도 멋대로 움직여버린 내 입에 동요했지만, 입을 꾹 다물고 키즈하쨩을 마주본다.
"하아?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루페"
"키즈하쨩한테지. 진짜 심하잖아. 오늘만 해도 손님을 찾아줬더니 쫓아내기나 하고. 나, 열심히 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 내가 필요 없다니 무슨 뜻이야? 내가 필요 없다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부글부글 끓는다. 아무래도 좋다니, 네 멋대로 정하지 마. 이 세상에 자기밖에 가치가 없다는 듯이, 우리를 내려보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특별한 방에 틀어박혀 살 수 있는 게, 대체 누구 덕분인줄 아냐고.
"남자랑 자지 않는 창녀에게 가치 따위 없어. 그건 너도 똑같아"
쓴소리를 하고 있다. 키즈하쨩을 상처입히려고, 나한테도 불똥이 튀는 따끔한 말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가슴이 꾹 죄여와 멋대로 눈물이 흐른다. 사과하려고 했는데 입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키즈하쨩이 내 어깨를 밀치며 벽으로 몰아세운다. 난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트렸다.
"너 병신이니? 내가 없어지면 이 가게의 가치도 없어지는데?"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소리를 내며 운다.
난 바보다. 진짜 글렀다.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짜내 '미안해'라고 사과한다.
키즈하쨩은 한숨을 쉬더니, 내 뒤에 있는 벽을 쿵 하고 친다.
"웃어"
낮은 목소리로 협박한다. 무서워서 어깨가 떨린다. 야수처럼 키즈하쨩이 쏘아본다.
"웃으라고. 엄마의 역할이잖아. 웃어넘기라고, 평소처럼"
아래층 주점에서 누군가가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들린다. 손님이 적더라도, 아가씨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도 웃어야만 한다. 하지만, 목이 잠기고 눈물도 멈추지 않는다.
키즈하쨩이 혀를 찬다.
"이제 됐어. 꺼져. 그리고, 당분간 손님 안 받겠다는 건 진짜야. 그것만큼은 기억해둬"
벽에서 끌려나와, 엉덩이를 얻어맞았다. 시끌벅적한 주점으로, 터벅터벅 돌아간다.
다음날, 가게 현관 앞에 치바 군이 앉아있었다.
등을 돌린 채로,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난 그런 그의 등을 무릎으로 툭 친다.
"아얏"
그는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더니, 금방 '안녕'이라며 웃는다.
일어서는 치바 군의 무릎 뒤를, 다시 한 번 무릎으로 친다.
"뭐야뭐야. 왜 그래?"
치바 군은,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하는구나.
화내는 거라구.
그치만 치바 군이 웃어준 덕분에, 나도 웃을 수 있었으니까 용서해줄게.
"아, 일났네. 오랜만에 케이크 먹으니까 엄청 맛있잖아. 남자는 단 거 싫어하는 녀석이 많은데, 난 단 것도 좋아한다고나 할까, 여자의 마음을 엄청나게 이해하는 남자니까 말이야. 맛있네"
여전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치바 군의 이야기. 라기보다는 주장. 평소라면 듣는 사이에 정말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게 돼서 불안해질 텐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안도하게 된다. 어쨌든 케이크가 맛있다는 부분에는 동의해.
그러고 보니, 키요리쨩은 이런 음식의 감상을 잘 했지. 씨름부 씨의 요리에는 언제나 칭찬 일색이었지만.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무사할까.
숲에 간다는 사실, 치바 군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치바 군도 강한 모험자라고 했는데. 얼마 전까지, 그가 숲으로 갈 때 따라갈 목적으로 나한테 조교를 부탁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그 기대도 그만뒀나보다. 치바 군에게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강해지는 것에는 흥미가 있지만, 마왕을 쓰러트리는 것까지는 무리니까 안 하겠다고 했다.
난 그런 방면은 잘 모르니까, 그렇구나 하면서 듣기만 했을 뿐이지만. 조금은 부럽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은.
자신감일까. 아니면 허세라던가, 억지라던가, 별로 좋지 않은 부류려나. 뭐가 됐든 부럽지만. 그런 것들 전부, 자신감이니까.
나는 죽도록 노력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다는 느낌이고. 당장 오늘 밤만 해도, 어떻게 가게를 굴려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모처럼의 케이크도 맛없게 느껴진다. 그건 곤란한데.
"치바 군은 있지"
키즈하쨩과 만나고 있지. 라고, 물어보려다가 멈춘다. 물어볼 수가 없다. 그녀가 화낼 것 같아서 무섭다.
"어, 왜? 나한테 궁금한 점이 있다면 뭐든지 물어봐"
이 둘이 나에 대한 대화를 했다면, 엄청 싫겠다고 생각한다. 야한 짓도 할 테고. 양귀비박쥐의 피 같은 것까지 마셔가면서 문란하게 노는 상상을 했더니 기분이 엄청 나빠졌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둘이 만났다는 건 분명한 듯 싶은데,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 미묘한 조합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적당히 둘러대면서, 미안한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적당히 둘러댈 정도의 가벼운 말실수라고 헤아려주면 좋으련만, 치바 군은 '뭐야뭐야, 괜히 신경쓰이잖아'라며 고개를 들이댄다.
그런 점이겠지. 하루쨩이 화내는 거.
내가 치바 군을 신경쓰는 이유는, 동생과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동생은 이제 막 애기티를 벗어났을 무렵의 모습이고, 치바 군은 하루쨩과 같은 나이로 벌써 어른이다. 얼굴도 완전 다르고. 정말 닮았냐고 물어보면 자신은 없다. 모르겠다.
나랑 자고 싶어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둘이서 만나거나, 어떻게 봐도 꼬시는 것처럼 말하는데 전혀 강압적으로 들이대지 않는다.
목적이 없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행동을, 이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댄다. 심심한 걸까. 그 여유가 역시 부럽다. 불안에 빠지지 일도 없겠지.
치바 군이 입가에 케이크를 묻히고,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그 얼굴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웃어버린다.
아, 그렇구나. 치바 군은 아직 자기가 어린애인 줄 안다. 그래서 그렇게 인생을 취미처럼 사는 거다. 사고방식이 다르다.
알아냈다. 한 마디로 그가 말하는 '엄마'란 진심이라는 소리다. 난 '엄마를 대신해줄 여자'가 아니니까 자지 않는다. 그렇다는 말이다.
뭐─야.
"왜 그래, 진짜?"
"아니. 뭐 하나, 궁금한데. 물어봐도 돼?"
"어, 당연하지. 자, 물어봐 물어봐"
"너는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동생에게 물어보듯이 물어본다. 치바 군이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진짜 아이 같다. 머리가 이상해진다.
어차피 용사가 된다거나 음유시인의 노래가 된다거나,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너무나도 예상 외라,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신을 때릴 거야"
치바 군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난 일단, 주위를 둘러보고 교회 관계자가 있나 없나 확인했다. 다행이다. 숲에서 키요리쨩이 달려오지 않아서.
"나는, 신을 때리는 남자가 되겠어"
어쩔 줄 몰라하는 나는 신경도 안 쓰면서, 치바 군은 두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상상을 해봐도 모르겠다. 그런 말 하는 사람, 처음이었다.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어떤 상황일까. 신님이 어째서 갑자기 치바 군에게 폭행을 당하는 걸까. 어떻게 신님과 만나는 걸까. 창관 손님도 아닌데.
"……때려서 어떡하려고?"
마왕이라도 되고 싶은 걸까. 그런 대답이 나온다면 무섭겠는걸.
치바 군은, '으─음'이라며 살짝 시선을 위로 올렸다. 오른쪽 위로.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불만이 있지는 않지만. 까놓고 말해서 여기 이세계도 좋아하고. 로망과 모험과 판타지. 남자라면 누구라도 좋아할만하지"
그래도 말야. 라며, 치바 군이 과장되게 고개를 기울여보인다.
"요즘엔 좀 다르지 않나 싶어. 이쪽 세계를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만렙이 정해져있다는 시점에서 나도 사기당한 느낌이고. 그래도 난 시스템을 알고 있으니 그나마 나은 편이지. 대부분의 사람은 천장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고, 스킬도 쓸모없는 것만 받고. 치트만 해도 그래. 무한루프 장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래서는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설계가 이상하다고. 누가 클리어 할 수 있겠어, 이딴 게임? 아니면 슬로우라이프 장르인가? 그럼 그건 그것대로 튜토리얼을 제대로 해줬으면 하고"
역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나는 애매한 느낌으로 웃어준다. 평소의 치바 군이구나. 진지하게 들어서 손해봤다.
그런데 내 반응이 옅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치바 군이 '미안'이라고 말했다.
내 표정을 살피다니 처음 있는 일이라 동요해버렸다. 그 치바 군이.
"한 마디로 불행이 너무 많다 이거야. 엄마 같은 사람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냐고. 그거야, 뭐, 인간 사회라던가 그런 하층 시스템을 뜯어고치면 조금은 나아질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난 안다고. 가장 윗대가리 녀석. 거기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근본이 바뀌지 않으니까, 때려줘서 깨닫게 만들고 수정하게끔 만드는 거야. 스킬을 전부 토해내게 만들어서 인류 통째로 바꿔야지. 마왕을 쓰러트릴 방법은 한 명의 용사가 아니라 시스템 개변과 인류의 상향이야. 그리고 그게 용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즉,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걸 하겠어"
난 아직 동요하는 중이고, 치바 군의 이야기도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엄청 두근거렸다. 영문모를 것에 홀렸나보다. 치바 군이,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어떡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려서, 평소처럼 웃어봤지만 실패했다. 힘조절을 잘못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렇지만 치바 군도 웃고 있었다.
"……정말"
"응?"
"정말 때려줄 거야?"
"물론이지. 주먹으로 때려주겠어"
상상했더니 점점 더 웃겼다. 신님, 큰일이네. 다들 치바 군에게 깜짝 놀라겠지.
멋있다.
치바 군이, 맹세하듯 내 손을 포개잡는다. 기뻤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갑자기 변할 리 없다. 오늘 밤도 나는 영업용 미소를 띄우고 점내를 돌아다니며 사과하는 중이다.
단골 손님에게 기대는 일이 늘어나면서, 싫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아져서 교태도 부려야 한다. 오늘은 어째서인지 무리한 주문을 하는 손님이 많다. 낯선 사람들이다.
"이봐─, 내가 주문한 술은 이게 아니라고. 벌써 마셔버렸지만"
"도망치지 말라고, 이년아. 술 정도는 따라줄 수 있잖아. 뭐? 시간값? 그딴 걸 누가 지불하냐 썅년아. 됐으니까 앉아"
아, 어쩌면.
어제 화낸 부자가 보낸 사람일지도. 맞다. 수행인에게 주소를 물어봐 해가 떠있는 사이에 꽃이라도 보내둘 걸 그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말다툼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다. 소동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퍼져간다. 분탕에 익숙한가보다. 멈춰달라고 부탁해봐도, 상대해주지 않는 단골도 있다. 나, 미움받기 시작했구나.
연상의 아가씨한테, 길드장님에게 사람을 보내달라는 의뢰를 부탁한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가게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는다. 이번달 상납금이 말도 안 되는 거액이 될 게 뻔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이, 아가씨. 네가 이 가게 마담이라며?"
불려세워졌기에, '대리예요'라며 인사한다. 아까 돈도 내지 않고 아가씨를 앉히려 했던 사람이다. 가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다가온다. 날 벽으로 몰아가듯이 또 한 명이 온다. 반대쪽에서도.
"아, 저기"
깨닫고 보니 둘러싸였다. 질이 안 좋아보이는 손님들 셋. 다른 곳에서도 소동이 커져서 빨리 가봐야만 하는데.
"어떡할 거냐고, 이거. 소스가 다 튀어서 엉망이잖아"
"난 아가씨가 술도 따라주지 않았다고. 가게 책임자잖아, 아가씨. 어떻게 해줄래?"
"성의가 뭔지는 알지? 창녀라면 창녀답게, 이 자리에서 우리한테 사죄와 배상을 해줘야지"
"아, 죄송해요. 저 가봐야 해서. 사죄라면 금방 다른 요리와 술을……"
"발가벗고 춤추는 건 어때? 잘 하잖아, 그런 거"
"하핫, 그거 좋겠네"
"자, 벗어. 빨리"
한발 한발 몰려서, 숨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능글능글 웃는다. 며칠동안 계속된 피로와 공포로, 무릎에 힘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벗으라고 말하잖아!"
어떻게든 웃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전혀 잘 되지 않았나보다.
남자 중 한 명이, '그 낯짝은 뭐야?'라며 주먹을 휘두른다. 다른 사람의 손이 내 옷을 붙잡는다.
강하게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가 퍼지고, 점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맞는 줄 알고 질끈 감았던 눈을 뜬다.
무대 위에 아가씨가 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모으고.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루쨩!
하지만, 거기 있는 여자는 하루쨩이 아니었다.
금빛 머리칼, 푸른 눈동자.
화려한 옷을 입고 파란 꽃을 입에 문 키즈하쨩이, 무대 위에서 점대를 슥 둘러본다.
그리고, 꽃을 떼어 가슴 사이에 꽂는다. 내 옷을 붙잡고 있던 남자가, 꿀꺽 군침을 삼키는 소리를 낸다.
"처음 뵙는 손님분이 많네요. 제 이름은 키즈하. 야상의 청묘정에서 일하는 창녀. 여기 화려한 여자들과는 다르게, 2층에 갇혀있는 볼썽사나운 여자예요. 오늘 밤은 굉장히 떠들썩하길래, 무심코 이끌려서 나와버렸네요. 눈을 더럽히게 만든 점, 부디 용서해주시기를"
굉장히 세련되고 우아한 경례. 펼쳐진 가슴팍에 꽂힌 꽃이 흔들린다. 허벅지가 깊게 파인 옷에서, 그녀의 길고 새하얀 다리가 엿보인다.
소동은 이미 진정됐다. 남자 손님들은, 이미 그녀에게 시선이 박힌 상태다.
"모처럼의 연회를 방해한 사죄를 해야겠네요. 키즈하는, 나으리께 봉사하는 것이 삶의 낙인 창녀. 이 문란한 여자를, 아무쪼록, 여러분의 눈과 귀로 즐겨주시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키즈하쨩이 다시 바닥을 찼다. 악단에게 보내는 신호. 들려오기 시작하는 악곡.
이건, 사랑 노래다. 버림받은 여자가, 사라진 남자를 향한 사랑과 후회와 참회를 소리치는 것처럼 노래한다. 이 노래를 불렀던 유일한 사람이 사라진 지금은, 격한 연주만이 울려퍼진다.
키즈하쨩은 노래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도 처음 보는 모습이지만 그녀는 춤추고 있었다. 옷자락을 들어올리듯 꼭 잡고, 이따금씩 바닥을 강하게 차며, 맨발 대부분을 드러낸다.
아름다웠다. 발동작도, 표정도, 손끝까지 나긋나긋해서 보는 자를 매료시킨다. 악단에게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해 소리가 커진다. 남자들도 싸움을 잊은 채 키즈하쨩에게 집중한다.
나는 이런 춤을 모른다. 야하게 보이는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긴 팔다리도 올곧은 등허리도, 무대에서 춤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멋지다. 그런데 요염함까지 갖춰져서 두근두근거린다. 봐선 안 되는 것을 보는 기분이다.
"나으리들. 키즈하를 더 원하신다면, 부디 이름을 불러주시지요. 분부만 내려주신다면, 키즈하는 얼마든 여러분을 위해 춤을 추겠어요"
남자 일동이 미친 듯이 키즈하쨩의 이름을 외친다.
오늘 밤, 난 처음으로 1층에 내려온 키즈하쨩을 봤다. 그리고 알아낸 점이 있다.
우리는 격이 다르다고.
그녀가 2층에 있어주지 않으면 곤란한 쪽은 우리였다. 야상의 청묘는 그녀다. 슬픈 사랑의 노래를 짓밟듯 그녀가 춤춘다. 그리고 웃는다. 남자들을 광란에 빠트리면서.
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키즈하쨩에게 가치가 없다는 말을 잘도 떠들어댔구나. 나는 창녀로서도 어중간하고, 마담처럼 될 수도 없다. 가치가 없는 건 오히려 나였다.
길드장의 도련님이, 건장한 남성 몇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부하들에게 지시해 문제의 손님을 끌어낸다.
가게 정중앙에서, 대성통곡하는 나를 보고, 키즈하쨩은 기쁜 듯한 표정을 짓는다. 가슴에 꽂아둔 파란 꽃을, 손님들을 향해 겨냥한다.
"이 꽃은 키즈하예요. 오늘 밤 이 꽃을 손에 넣은 분을 제가 모시지요. 부디 저를 마음껏 희롱해주세요"
그리고 던진다. 남자들이 꽃 쟁탈전을 벌이자 순식간에 갈갈이 찢어지고 말았다. 키즈하쨩은 소리내 웃으며, 춤추기를 계속했다.
나는, 귀를 막고 그 자리에 엎드려버렸다. 토할 것 같다. 하지만, 일이다. 나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해요"
길드장의 도련님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러고 보니, 마담과 함께 길드장님도 지방으로 갔다고 했지. 도련님에게 이번달 상납금이 얼마인지 물었다.
그는 엉망이 된 내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작게 혀를 찼다.
"신경쓰지 마라"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되물어보려고 했는데 도련님이 술을 난폭하게 따른다.
"방금 전, 문득 시크라소의 노래가 생각났거든. 그래서 그냥 애들을 데리고 마시러 왔을 뿐이야"
빈 술잔을 두고 일어선다. 일을 끝마친 부하도 모여들었다.
"나도, 이제 곧 아버지 일을 이어받을 거야. 너도 똑부러지게 벌어두라고"
난 고개를 숙이고 우뚝 서있었다. 키즈하쨩의 즐거워보이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손님들의 열광도 계속된다.
방에 돌아가, 침대에 화풀이를 하다보니, 어느샌가 잠들었다.
아…… 얼굴이 말이 아니다.
이래서는, 웃어도 무섭기만 하다. 화장으로 감출 수 있으려나.
그래, 케이크를 먹자. 기왕이면 모두의 몫까지 사서 여기서 먹자. 조금은 기분도 나아질 테지.
라는 생각을 하며, 씨름부 씨의 가게까지 가서, 나는 또 얼어붙었다.
"오─, 루페쨩. 다녀왔어─"
테라스 자리 정중앙에서, 하루쨩이 손을 흔들며 웃는다.
"아니, 곧장 가게로 돌아갈까 했는데 있지. 키요리가 당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다고 해서, 일단 케이크부터 사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야. 그랬더니 루페쨩이랑 기적의 재회라고나 할까~. 일단 앉아 앉아. 내 옆자리. 쌓인 이야기가 엄청 많거든─"
하루쨩의 맞은편에는 키요리쨩이 시체마냥 엎어져있다.
씨름부 씨가 기쁘다는 듯이 케이크를 대접에 얹어 날라온다. 난 그 접시에서 케이크를 하나, 손으로 집었다.
스스로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충동이었을까.
잡아다 집어던진 케이크가, 웃으며 내게 손짓하던 하루쨩의 옆얼굴에, 기적적인 재회를 시작했다.
"……우째서?"
얼굴이 새하얘진 하루쨩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는 과호흡하듯 몇 번이나 숨을 토해내고,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하루쨩 이, 바보야아아아아아아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주위 아저씨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하지만,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하루쨩의 얼굴을 본 순간, 한 순간에 흘러넘쳐버렸다.
"뭐, 뭐가, 다녀왔어야…… 내가, 얼마나, 하루쨩을 만나고 싶었는지. 도와줬으면 했는지. 그런 때에 없었던 주제에, 뭐, 뭐냐구우우!"
또 눈물이 나와버렸다. 내일 또 눈이 빨개지겠다. 그래도 이제 됐어, 그런 거.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된다.
"하루쨩의, 그런 점 싫어. 제멋대로고, 덜렁거리고. 남의 맘은 생각도 안 하잖아. 나도 항상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데. 그런 거, 모르지. 뭐든 용서해주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다고!"
사람이 모여든다. 웃음거리가 된다. 괜히 더 열받고 짜증난다. 지금은 나랑 하루쨩이 얘기하는 중인데.
발을 다친 수염난 모험자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한다.
"오우, 아가씨. 여자면서 싸울 수 있겠어? 뭐, 있는 힘껏 해보라고. 지면 내 물건으로 위로해줄 테니까 말이야"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빨개진다. 나 엄청 화났는데.
하루쨩이, 테이블을 박차며 일어선다.
점점 주위 열기가 뜨거워진다. '붙어라, 붙어'라며 부추긴다. 우리를 둘러싼 남성들의 웃음소리, 격한 숨결. 어젯밤 일이 떠올라 조금 무서워진다.
"씨름부!"
하루쨩이 화났다.
그러자 씨름부 씨가, 케이크를 담은 대접을 한 손으로 든 채 손님들과 하루쨩 사이를 파고 들어와, 한쪽발을 크게 들어올렸다.
올곧게, 하늘을 가르듯이.
그대로 쿵 하며 발을 내리찍자 땅이 울린다. 다른 한쪽발도 똑같은 동작으로 지면을 뒤흔든다. 그리고 몸을 낮게 숙이고 노려보자, 다른 손님도 기가 죽어 입을 다문다.
평소의 그가 아닌 듯하다. 엄청 강해보인다. 이거, 무슨 격투기 자세인가? 가르쳐줘요, 씨름부 씨.
"땡큐, 씨름부…… 그리고 미안한데, 그 케이크도 전부 나한테 팔아줄래? 가게 청소비도 나랑 루페쨩이 변상할 테니까, 지금부터 하는 짓은 용서해줘"
씨름부 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루쨩은 그가 들고 온 케이크를 하나 집었다. 그리고 집어던진다.
"먹어랏!"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는데, 퍽 하는 소리는 내 옆에서 들렸다.
나를 비웃던 모험자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다들 망연해한다. 하지만, 하루쨩은 기분 좋아보인다.
"어때─, 씨름부의 케이크 맛은. 맛있지. 이게 바로 여자의 폭탄이라구!"
그 모험자는, 얼굴에 잔뜩 묻은 리무초 액이 혀에 닿자──'의외로 맛있네'라고 말했다.
"아얏"
방심한 틈에, 다음은 내 얼굴에 케이크가 날라왔다.
"니시시"
하루쨩이 웃는다. 난 화가 나서, 씨름부 씨에게 '여기도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에잇!"
내가 던진 케이크는, 이번엔 완전 빗나가서, 키요리쨩의 얼굴에 퍽 하며 작렬했다.
하지만, 키요리쨩은 미동도 않아서, 진짜 죽은 게 아닌가 걱정됐다.
"……좀 봐주세요…… 이제 싸움은…… 더 이상은……"
아, 살아있네. 움직이지는 못해도 말은 할 수 있구나. 그럼, 다행이다.
"한눈 팔 때가 아니라구"
하루쨩의 케이크가 날아온다. 이번 공격은 잘 피했다. 뒤에 있던 아저씨가 케이크 범벅이 되었다.
나도 케이크를 던진다. 안타깝게 그것도 관계없는 아저씨를 맞춰버렸다. 하지만 알 게 뭐야. 난 화났다구. 다가오는 사람은 모두 케이크로 만들어주겠어. 하루쨩과, 차례차례로 집어던진다.
"나도, 언제나 웃는 건 아니라고. 화나는 일도 있고,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싶을 때도 있어. 하루쨩이랑 똑같다고"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하지만 말하지 않은 건 루페쨩이잖아. 자기 대신에 나한테만 말하게 하잖아. 뭐, 난 말하고 싶으니까 말하는 거지만"
"나도 말하고 싶어. 사실은. 하지만, 그래버리면──
"
"말하라구. 험담이든 불만이든 루페쨩은 루페쨩이잖아. 나도 듣고 싶어. 순수하게 흥미 있다구, 루페쨩이 얼마나 독설을 해댈지. 들려달란 말야"
"그거 말고도 하고 싶은 말 잔뜩 있는걸. 하루쨩이랑 재밌는 이야기 하고 싶어, 웃고 싶어. 그게 더 기운나고, 좋아한다구"
"루페쨩, 그런 점. 사람이 너무 좋다구. 엄마가 돼버렸잖아. 좀 더 세게 나오라구. 조금씩이라도 좋으니까, 어두운 면도 보여줘"
"그럼 말하겠는데, 애초에 마담 이상하잖아. 며칠이나 가게를 비울 거면, 하루 전이 아니라 좀 더 빨리 말해줘야하는 거 아냐?! 가게도 마음도 준비가 필요하다구!"
"좋네, 그 기세. 그런 걸 원했어. 그보다 마담 없어?! 루페쨩, 엄청 고생했겠네?!"
"그렇다구. 가게에서 통곡했다고, 통곡. 길드장네 도련님한테까지 동정받았다고. 최악이였어!"
"우와─, 그 녀석, 루페쨩을 위로하는 자신에게 심취했겠네─"
"그리고 키즈하쨩!"
"나왔다, 아가씨C. 그 녀석한테도 뭔가 당했구나?!"
"왠지 있지, 하나하나 무섭고, 하나하나 야하다구. 일부러 요염한 분위기를 풍기잖아. 몇 번이나 정조의 위기를 느꼈어"
"레알? 이년 가만있음 안 되겠네, 나의 루페쨩에게"
"하지만, 여러모로 져버렸어. 이기지 못하겠다고 느꼈어. 그 사람은 역시 굉장해……"
"응…… 이리와, 루페쨩. 쓰다듬어줄게"
어느샌가 케이크는 매진됐고(제대로 변상도 하고 청소도 할게요, 씨름부 씨) 나는 하루쨩의 품속에 있었다.
껴안겨서, 케이크로 범벅이 된 몸이 끈적하다. 또 울음이 터져버렸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의 눈물과는 다르게, 굉장히 기분 좋았다.
하루쨩의 등을 끌어안고,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말아줘'라고 말했다.
"응, 이제 아무 데도 안 가"
어차피 거짓말이잖아 라고, 심술맞은 말을 하고 만다. 또 금방 나를 두고 이상한 곳으로 가버릴 거잖아. 이 아이는 호기심과 행동력의 덩어리니까. 금방 친구를 만들어버리니까. 어차피 나 따위는.
"안 간다니까. 내 집이랑 세상은 여기야. 제대로 여기 사람이 될게"
엉엉 울며 하루쨩을 끌어안는다. 가슴에 힘을 잔뜩 넣고, 가슴 안에 가둬버린다.
여기에 있어줘. 내 친구야.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버렸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나니까. 나의 어두운 부분을 조금 드러냈을 뿐. 사실은 아직도 멀었다구.
그 뒤로, 하루쨩에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의 이야기.
마지막까지 듣고나서, '루페쨩 혹시 엄마를 닮았나?'라며 하루쨩이 웃었다.
그런가봐 라며, 나도 웃었다.
매일매일이 너무 바쁘게 흘러간다. 일도 열심히 하고, 나도 아주 조금 뻔뻔해졌다.
요전번에 키즈하쨩이랑 싸우고, 완패해서, 결국 할 말 못할 말 다 해버렸다.
최근엔 그녀도 조금 둥글둥글해졌다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그 사건을 계기로, 어째서인지 마담이 나한테 조금은 신경을 써주게 되었다. 이상한 모녀지간이다.
모처럼이니, 내 의견도 적극적으로 내기로 했다. 가게를 바꿔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가씨들의 복지 개선에 대해서.
언제나 도와주는 단골 모험자들 중에, 조건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고용'이라는 형태로 부탁하고 싶다고 전했다. 주점이나 2층에 서있어주면 좋겠다고. 그것만으로도 아가씨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
길드장의 도련님과도,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가씨들이 일하는 방과 개인 방을 나누고 싶다고 말해봤더니, 근처에 물건이 있나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친해지고 보니까 의외로 좋은 사람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냐면서,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보긴 했지만.
그야 지켜야하는 것은 늘려가야만 하니까. 하루쨩이 또 대사건을 일으켜줄 테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매일매일이 바쁘다.
점심은 치바 군과 만나기로 했다. 하루쨩은 '싫어'라고 하길래, 나 혼자서 씨름부 씨의 가게로 향한다.
"오─, 케이크 아가씨. 이번주 신작도 맛있더라. 자, 하나 가져가"
"고마워요"
발을 다친 수염난 모험자는, 다 낫고나서도 이 가게를 다닌다. 케이크를 먹고 싶다면서. 그런데 너무 많이 먹잖아.
그 밖에도 케이크를 먹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여성 손님도 있다.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는 사이에, 받은 케이크를 조금 집어먹고, 뜨개질을 재개한다.
괜찮은 털실이 있어서 다행이다. 밝은 귤색으로 해봤다. 시크라소 씨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이건 무조건 귀엽다. 무조건 어울릴 거다.
그렇게 믿으며, 열심히 뜨개질을 한다. 아직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좀 더 다양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엄마처럼.
"기다렸지~. 이야 오늘도 진홍, 무사히 숲으로 수행을 쌓으러 갔다왔지만, 요즘엔 전혀 마물이 나오질 않아서 말이야. 군대까지 조사하러 온 탓에 우리는 쫓겨나고 말았지 뭐야. 드디어 그 시기인가. 마왕도 나를 두려워하게 된 느낌이려나, 과연 진홍의 엔드리스──어라, 밥 벌써 다 먹었어?"
치바 군이 갑자기 나불나불 떠들어대며 맞은편에 앉더니, 케이크를 보고서는 물어본다. 다른 손님한테 받은 거야, 라고 대답한다.
그랬더니 어째서인지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한테 얻어먹는구나……?"
전에 한 번, 살짝 마음이 약해져 울어버린 이후로 치바 군은 나랑 사귀는 사이라도 된 것처럼, 때때로 이렇게 속박하는 듯한 말을 한다.
"뭐 문제라도 있어?"
"어, 아니, 전혀!"
하지만 조금 노려보면 남자다운 면이 쏙 들어가버려서, 그다지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러는 점이 싫을 뿐이지, 치바 군을 싫어하는 건 아니라서, 딱히 사귀는 것처럼 굴어도 상관없다.
지금은 바쁘니까, 한가한 사람이랑은 사귀어줄 수 없지만. 딱 그 정도라는 느낌이다.
"그래도 밥은 내가 살 거라구!"
"고마워. 언제나 미안해"
정말 알기 쉬워서 웃어버린다. 치바 군은 날 웃게 해준다.
그런 남자애는 귀중하다. 감사하고 있어. 엄청.
"됐어, 그야……"
뜨개질하는 손을 멈추지 않는 나에게, 어째서인지 치바 군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를 위해, 뭔가 엄청난 걸 만드는 모양이고……"
"이거? 아니야. 하루쨩한테 줄 모자야"
"어, 하루한테? 아니, 모자 치고는 작지 않아? 그 녀석 뿔이라도 돋아났어?"
라고,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하길래 오히려 내가 놀랐다.
정말 질린다니까.
하루쨩도 참, 치바 군한테 아직 말하지 않았구나. 친구면서 쌀쌀맞기는.
"이거, 아기용이야. 하루쨩, 아이를 뱃거든. 다들 엄청 난리였다니까"
"흐─응"
치바 군은, 씨름부 씨가 날라온 차의 향을 만끽하며 입에 머금더니, 고개를 돌려 옆자리 아저씨 얼굴에 전부 뿜어버렸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그리고,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지더니, 콰직 소리와 함께 땅에 머리를 박으며 꿈쩍도 안 하게 됐다.
마치 언젠가 있었던 살인사건 같은 현장에 쭈뼛쭈뼛하는 씨름부 씨에게, 육류 요리를 2인분 주문한다.
체력도 붙여놔야지.
하루쨩의 아이라면, 분명 말썽꾸러기일 게 분명하니까.
나도 훨씬훨씬, 바빠질 것 같다.
키요리는 엄지를 아래로 향하면서, 선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실하고 얌전한 엘리트 시스터였던 그녀는,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완전 와일드하게 성장해버렸다. 그리고는 위지 씨의 동료인 트랩 전문가 아저씨와 함께, 교회에 들키면 분명 크게 혼날 법한 수상한 것에 손을 대고 말았다.
아무래도 조금은 걱정이 됐지만, 그녀 또한 이상한 부분에서 완고한 여자라 그런지, 결국 신앙의 힘과 마물 등이 사용하는 야생 마술의 콜라보? 비스무리하다고 할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굉장한 결계를 완성한 모양이다.
이렇게 보여도, 나도 남들한테 풀 썰이 꽤나 많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조만간 키요리한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덕분에 거절하기도 힘들어졌다. 나를 마왕 토벌대에 스카웃하고 싶어하는 위지크래프트 씨가 또 숲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번에는 키요리를 데리고.
왜 이쪽 사람들은 마왕에 필사적일까. 이 세계에서 나쁜 놈은 마왕 단 하나고, 그 사람만 사라지면 평화로워질 거라고 다들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 기분이 업돼서 여기저기 파티열고 이예이 하게 되겠지만, 어차피 그 열기도 금방 식을 테고, 애초에 세계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마왕이 사라져도, 마왕이 되고 싶은 남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마물과 싸우는 최전선인 이 마을 일이니까. 그런 사람이 우글우글댈 것이 뻔하잖아.
그런 생각을, 밥을 얻어먹으면서 위지 씨한테 털어놓았더니 혼나고 말았다.
"어지간히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모르는 녀석이 할 법한 말이구나. 그러니까 창녀 같은 일은 그만두라는 거야"
명백히 귀찮다는 표정으로 내 불만을 일갈한다.
"세상에 쓰레기는 있어. 그렇다고 해서 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거냐. 그렇지는 않잖아?"
그렇지는 않다. 난 푸른 하늘 아래서 같이 깡통차기를 한 동료 소년들을 떠올렸다.
미안해, '사이좋은 홍철팀'. 너희들은 지금도 내 희망이야.
"시시한 일에 신경쓰지 말고, 젊은이다운 곳으로 눈을 돌려봐. 네게는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치않는 꼬드김. 내 눈에 세상이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지를 알고 싶다고. 그리고 이쪽 세상에 대해서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 사람은 믿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날 어른으로 대접해주기는 한다. 의지할 수 있는 친척 오빠라는 느낌. 어마무시하게 꼬셔대기는 하지만.
그치만, 알아줬으면 한다. 난 이쪽에서 어른이 되는 게 무섭다. 상상이 안 되니까 무섭다.
게다가──지금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쪽 세계에서는, 절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제 미래가 보이는데도 나아가라 결정하라 말해도 곤란하다. 마치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도 담임 선생님도 없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 같다.
"애초에, 네가 이쪽으로 불린 이유도 그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잖냐. 자각은 있는 거냐?"
있기는 있지만, 실은 불려온 사람 한 명 더 있다구. 동급생이 하나 있다구.
하지만 그 녀석은 이세계에서 속옷 도둑질을 저지른 녀석이다. 용사가 되어봤자 논란을 일게 만드는 타입. 어쩔 도리가 없으니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뭣 때문에 그렇게 망설이는지 모르겠다만, 넌 이제 이 세계 누구보다 강해. 의욕이 없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라고"
힘으로 결론을 내놓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인생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평화주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안다. 나에게는 아마 책임이 있다. 이런 치트, 혼자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퍼블릭 뭐시기다. 모두를 위해서 사용해야만 하는 그런 거. 구멍이나 쑤시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그런 압박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야기를 끝내는 자가 언젠가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밤, 은발의 아저씨가 그런 말을 했다.
내가 이 세계의 커다란 이야기를 끝낸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무서워도, 갈 수밖에 없다.
"시스터까지 휘말리게 만든 장본인도 너잖아. 각오를 다지라고"
위지 씨가 말한다. 각오 같은 건 간단히 다져지는 게 아닌데. 하지만, 나는 끄덕인다.
숲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가는 루트는 전에 찾아두었다. 위지 씨의 일행도 와서, 마왕성이 보이는 장소까지 간 뒤, 우리가 발걸음을 멈췄던 곳.
그때 없었던 키요리가 지금은 있다. 그녀 덕분에 여기까지 오는 길의 전투가 꽤나 수월해졌다. 우리는 마왕성에 도달한 최초의 모험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위지 씨나 다른 동료도 꼴이 말이 아니다. 지금도 키요리가 창백한 표정으로 혼자 결계를 유지중이다. 밖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그러니 이제 도망칠 수는 없다. 나는 혼자서 어두운 복도를 걷는다. 아니, 복도가 아니라 동굴이려나. 벽도 바닥도 부드럽고 축축하다. 어쩌면 이곳은, 거대한 생물체의 뱃속일지도 모르겠다.
──마왕성.
밤에만 나타난다는 이 던전은, 새빨간 피로 젖어있다.
밖에서도 계속해서 내리는 비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붉은 빛을 띄더니, 안으로 들어오자 색깔도 짙어졌고 쇠 냄새까지 풍긴다. 무겁고 차가운 빗방울이 내 몸까지 빨갛게 물들인다. 진짜 이 말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진홍의 엔드리스레인이라는 느낌이었다.
피는 동굴 여기저기에 있는 상처에서 흘러나와, 고체가 되면서 마물로 변해간다.
이곳은 마왕의 '성'이 아니라 '상흔'이다. 엄청 슬펐던 일을 토해내기 위한 장소. 게다가 이 상처를 만든 것은, 마물 따위가 아니다.
지친다. 엄청 피곤하다. 차례차례 나타나는 마물을 베어넘기면서, 내 마음도 갉아먹히는 느낌이다. 루페쨩 엄청 보고 싶어. 달달한 게 먹고 싶어.
하지만 가지 않으면 그 사람과 만나지 못하니까 갈 수밖에 없지. 상처입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니까. 게다가, 누구보다 그 사람이 이제 그만 끝내고 싶어하니까.
짐승의 숨소리가 들린다. 커다란 발을 내딛는 육중한 소리와, 축축한 바닥을 즈려밟는 소리. 짧게 반복되는 호흡이 괴로워보이는데, 으르렁대는 소리는 저릿저릿할 정도로 낮게 울려퍼진다. 줄곧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저기에 있는데,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암흑 속 저편에서 찔러왔기에.
당신도 이미 알고있으면서. 내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여기서 고개를 숙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저편에 있는 그 사람과, 제대로 마주해야 하니까.
"오랜만이네요. 하루예요"
공기가 진동하며 어둠이 소리친다. 대화조차 허용하지 않는 느낌으로 피의 비를 토해내며 나를 적신다.
하지만 이 이세계라는 곳은 극도의 사디스트라서, 이 정도 취급은 꽤 익숙하다. 난 암흑의 건너편을 향해 웃었다. 야상의 청묘정에서, 은빛 머리칼로, 항상 나를 생무시하던 아저씨의 옆모습을 떠올리자, 이렇게 챙겨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 싶다.
"꽤 먼 곳에 살고 있었네요. 여기까지 오는 길도 꽤나 큰일이었다구요"
물론 오늘도 아저씨는 내 수다에는 흥미 없는 듯하다. 또 노성이 울려서, 나는 살짝 쫄았다. 진짜 무섭다니까. 레알 마왕.
그러고보니 아저씨는 인간을 보기 위해 우리 가게에 왔다고 했지. 난 그 사람들 중에서 어떤 식으로 보였을까. 시끄러운 여자라고 생각하려나. 엉덩이가 이쁘다고 조금은 생각해줬으려나.
난 아저씨가 와준 것만으로도 럭키데이였는데. 비가 내리기만 해도 '왔다─!'라며 소란피워서, 손님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좋냐며 마담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즐거웠지. 이세계에서, 사랑할 수 있어서.
"──아저씨"
심호흡하며 검을 버린다. 어둠이 흔들리며 얼얼하게 찔러댄다. 하지만 역시 당신 앞에서 이런 물건을 쥐고 싶지는 않아. 그게 내 결론이야.
"나도 그 뒤로 생각해봤는데,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은, 그 외에도 많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오겠다면 전력으로 맞이하겠다고 아저씨는 말했지만, 내 본심은, 아쉽게도 당신이 기대하는 방향성과는 다르단 말이지.
듣고 깜짝 놀라주면 좋겠다. 그리고, 질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내 진심이니까.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젖어버린 옷을 벗으며, 맨살을 드러낸다.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흉흉한 물건을 쥐는 것보다, 나는 얼른 알몸이 되고 싶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고, 당신의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아마 아저씨는 용납하지 않겠지. 내 마음 따위 알 바도 아닐 테고, 분명 '변태냐'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그치만, 이게 내 본업이니까. 목숨 걸고 해온 일이니까.
아저씨의 목이 그릉그릉 울음소리를 낸다. 하지만 나 역시 여기서 한 발자국도 물러설 생각은 없다. 진심으로 이 사랑을, 어떻게든 해보일 거야.
미안해, 키요리. 귀찮게 만들어서. 마왕을 쓰러트리지 못해서 진짜 미안.
돌아가면, 루페쨩이랑 셋이서 달콤한 거라도 먹자──
***
──내가 태어난 곳은,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시골이다.
집은 양을 기르는 농가였고,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당연히 큰 도시 같은 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갑자기 '창녀가 되어라'라는 말을 들어도, 전혀 실감이 안 났다.
하지만, 가장 큰언니는 벌써 결혼했고, 둘째 언니도 이웃 마을로 시집간다고 정해진 상태였다. 남동생은 아직 꼬마다. 작년의 악천후로 생겨난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내가 어딘가로 몸을 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어디론가 사라진 친구들이 많았으니까.
일단, 더 이상 양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니, 목장갑은 실을 풀어서 양말로 만들어볼까. 말썽꾸러기 동생은 금방 지저분해지니까, 아무리 만들어도 모자라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마을을 떠나기 전에 완성할 수 있으려나. 열심히 하면 아마도 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 묵묵하게 방에서 실뜨기를 하고 있었더니, 밖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루페. 같이 낚시하러 가지 않을래?"
오빠다. 양말을 짜던 중이라 망설였지만, 나는 '응'이라 대답한 뒤, 내 낚싯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내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커다란 손. 오빠는 나에게 있어서는 친척인 좋은 집안 사람인데, 오빠네 아버지는 우리 가계가 힘들 때마다 몇 번이나 도와주셨다고 한다.
그런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오빠는 우리 자매랑 자주 놀아줘서 엄청 좋아했다. 언니들한테는 비밀인데, 내가 가장 귀엽다고도 말해줬다.
강에 낚싯대를 내걸고 물고기를 기다린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서, 살짝 곁으로 다가가 '비밀인데'라며 창녀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하지만 오빠는 벌써 알고 있었다는듯이, '무슨 일을 하는지 루페는 아는 거야?'라고 물어봤다.
"잘 모르겠어. 남자랑 자는 일이라던데"
이상한 일이지 라며 웃었더니, 오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가르쳐줄까?'라고 말했다.
나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저쪽으로 가자며 팔을 붙잡혀 끌려갔다.
달려서 집으로 돌아와, 오빠한테 당한 일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우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그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며 검지를 입술에 갖다댔다. 오빠의 아버지가, 나한테 창녀 일을 소개시켜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가 앞으로 해야하는 일을 가르쳐줬을 뿐이야. 앞으로는 매일 같은 일을 하게 될 거란다"
그건 절대 싫다고 했다. 아프고 부끄러워서, 그런 짓을 두 번 다시 하기 싫다.
"여자라면 누구든 하는 일이란다. 참으렴"
어째서 참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며 계속해서 울었다.
엄마는 '괜찮으니 울지 마렴'이라며 혼을 내시고, 매마른 손바닥으로 내 볼을 쓰다듬어주셨다.
"네게는 아무것도 없으니 웃어야 한단다. 웃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어. 인상이라도 좋게 만드는 거야. 네가 살아가기 위한 무기는 그것밖에 없단다"
아무것도 없는데 웃으라니 이상한 말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나한테는 웃으라면서 엄마도 울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 살아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웃었다. 엄마는 '그래'라며, 나를 끌어안아주셨다.
그렇게 나는 '야상의 청묘정'의 창녀가 되었다.
엄마는, 그 뒤로 싫어져서 편지도 쓴 적 없다.
재미없는 이야기라, 아무한테도 말해준 적 없는 이야기.
"하루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그녀가 찾아왔을 때는, 나도 이 일에 익숙해져 있었고, 나름대로 여러 아이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래서 처음 보자마자 생각했다. 오래 가지 않겠구나 라고.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경박한 아이. 별난 아이. 남자랑 자는 것은 괜찮지만, 여자의 세계에서 살아가기에는 붕 떠보이는 아이.
우리 가게의 매상 1위인 아이도 그런 인상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가게에서 태어났으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 뒤늦게 들어온 아이가 이런 성격이면 역시 힘들다.
곧 있으면 잘 풀리지 않아서 몰래 도망치거나, 다른 가게로 옮기게 된다. 노예가 되기도 하고.
그런 아이들이,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것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의 삶보다 멀쩡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무섭기 짝이 없다.
"난 루페라고 해. 모르는 점이 있으면 뭐든지 물어봐"
그러니 적어도, 몰라서 곤란해지지 않게끔, 나는 되도록 신입 아이들에게 뭐든 가르쳐주려고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루페 씨, 어떡하지. 내 팬티, 곰팡이가 폈어……"
이 하루라는 아이는, 내 예상 이상으로 아무것도 몰랐다. 예를 들자면 세탁용인 보르도풀을 곰팡이라고 착각해 안색이 새파래지는 별난 아이였다.
"그게 섬유를 부드럽게 해주거든. 마르면 탁탁 털기만 해도 떨어지고, 뽀송뽀송해질 거야. 자"
"아, 진짜네, 뭐야 이거 샤프란이었구나. 마법 같아. 거짓말, 이세계 쩔어─. 레알 뭐든 풀로 해결해버리는 건 좀 웃기지만"
"있지, 이런 것도 모르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세탁을 해온 거야……?"
하루쨩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나도 그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고마워. 또 지식이 늘었네. 헤헷"
이 아이는 언제나 싱글싱글 웃는다. 다른 아가씨에게 불쾌한 말을 듣더라도, 웃으며 받아치는 장면을 봤다. 그건 창녀 일에 있어서도 꽤 중요한 기술이라, 나는 조금 감탄해버렸다.
미소가 거짓말 같지 않았으니까. 진심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잘 웃는 아이구나.
분명 지금까지도 저 방법으로 여러가지와 싸워온 것 같았다. 나와는 웃는 방식이 다르지만, 아마 그건 생활해온 장소가 다르기 때문이겠지.
닮았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비슷하다고 조금은 생각한다. 살짝 흥미가 생겼다.
"나한테는 씨라는 호칭 붙이지 않아도 돼. 나이도 얼마 차이가 안 나는 것 같고"
내가 먼저 거리를 좁혀봤더니, 역시나 조금은 경계를 하는 모양이다. 조금 갑작스러웠나.
그래도 이런 때 내가 뚫고 나가지 않으면 벽을 허물 수 없다. 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리 와. 다른 빨래가 있으면 가져오고. 빨래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옷은 이거 한 장밖에"
"그렇구나. 알았어. 내가 쓰던 거라도 괜찮으면 한 장 줄게. 귀여운 거 있거든"
조금 아까웠지만, 흔쾌히 좋아했던 속옷을 양보해봤다. 작년부터 매상 상위를 유지하게 돼서, 싼 옷 정도라면 얼마든 살 수 있다. 괜찮아 괜찮아.
"고마워. 루페쨩 상냥해!"
하루쨩이, 손을 꼭 잡아온다. 알기 쉬워라.
하지만 나는 상냥한 사람 같은 게 아니다. 언제나 웃는 모습을 보이려면, 주변 사람도 미소지어주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그러니 가끔씩 베풀어줄 뿐.
게다가 돈을 저금한다 해도, 어차피 여기서 나갈 수 없으니까, 이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써야지.
전부,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야. 친절한 게 아니라.
가게에 오는 손님 중에 몇 명인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때려도 웃으며 참거나, 기뻐해주기를 바라며 여러 이야기를 들어줬더니, 어째서인가 나를 어머니 같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엔 반대로 내가 혼내봤더니 순순히 꾸벅꾸벅 사과도 한다.
그렇게 됐더니 남자도 귀여워보였다. 아무리 위협적인 사람도 어리광쟁이가 되어버린다. 일하기 편해져서 나도 '엄마'라고 부르게 하기로 했다. 오히려 그런 소질을 지닌 사람이 어렴풋이 파악돼서, 내가 먼저 유도하는 경우도 꽤 생겼다.
물론 상냥하게 대해준다고 해도 남자는 남자니 방심할 수는 없다. 선물을 받은 정도로 만족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하게, 태도로 충성을 보이게끔 하고 있다. 그런 관리나 체벌 방법은 양을 돌보면서 배웠기에, 나도 그들의 양치기 개가 된 마음으로 이따금씩 발톱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 하고.
일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상은 작년부터 계속 2위다. 마담은 나를 본받으라고 다른 아가씨들한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언제나 긴장하며 일하고 있다.
웃고 있기는 하지만, 창녀는 무엇을 위해 웃는 건지 잊어선 안 된다고 언제나 생각한다.
"그랬더니 그 손님, '뮤제륜보야아아'라면서 몸을 뒤로 젖히더니!"
그런데 최근에는, 눈물이 날 만큼 진심으로 웃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루쨩은 입담이 좋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아가씨들과도 친해졌다. 심지어 그녀가 '그러고보니'라고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다들 주목한다.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기대하게 되고, 주위 사람들까지 웃게 만든다.
그녀가 가게 앞에 놓아둔 긴 의자는, 이제 완전히 내가 즐겨찾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아직 날이 밝을 때에 잠시 쉬면서 시작한 수다도, 순식간에 가게 오픈 직전까지 이어지게 됐다. 오늘 있었던 안 좋은 일도, 내일 하루쨩에게 말해줘야지 라고 생각하면, 뭐 재밌는 일은 없었나 하며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시크라소 씨가 없어진 뒤로는, 꽤, 많이, 쓸쓸해졌지만.
하지만 키요리쨩이라는 새로운 친구도 생겼다. 창관에서 외출해 씨름부 씨의 식당에서 차를 마시는 모임을 만들고나서는 아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어쩌면, 나도 하루쨩처럼 자유롭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고,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또 잠깐 가게 쉴 거야"
평소처럼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하루쨩이 말한다.
위지 씨라는 유명한 모험자랑 하루쨩이 친해져서, 그 사람들과 아무래도 숲 건너편으로 가는 모양이다.
어째서 시스터도 아닌데 그런 곳을 가는 걸까. 우리들 창녀가 바깥 일을 하다니, 절대 안 된다고 마담도 엄하게 말하잖아, 라고 나도 주의를 줬다.
"미안해, 루페쨩. 꼭 돌아올 테니까 좀 봐줘"
그런데 이유도 가르쳐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살짝 불쾌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했지만, 나라는 사람은 이런 때에 불만을 입에 담지 못한다.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상대는 엄마밖에 없었고, 무슨 말을 해봤자 안 되겠지라며, 혼자 수긍해버린다.
"괜찮아요. 이번엔 저도 같이 가니까요.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루 씨를 지켜낼게요"
키요리쨩은 기합이 들어간 모양인지, 꽤 흥분한 상태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간단히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로 죽는 경우도 많으니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은데. 세상에는 '사망 플래그'라는 것이 있다고, 전에 치바 군이 가르쳐줬다.
키요리쨩은 죽는다구. 하루쨩에게 배신당해서.
라니, 그럴 리 없지만.
그치만, 그렇구나. 키요리쨩은 같이 가는구나.
흐응, 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부글부글 끓는 감정이 넘쳐흘러와, 아랫배에서 끈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역시 평소처럼 웃어주는 것 뿐이라,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라며 속마음과는 상반되게 미소지었다.
그 뒤 '선물로 동정 몬스터(숲에 나타난다고 소문난 자지 형태의 수상한 마물)를 잡아올게'라고 하루쨩이 말하길래, 그건 진심 필요없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거부했다.
"물론 엄마 말대로 재미없고 지루한 수행은 계속하고 있지만, 최근엔 숲에 출현하는 몬스터도 레벨이 올랐다고나 할까, 새로운 종 같은 것도 본 적 있거든. 내 생각인데, 어쩌면 마왕 녀석, 드디어 나의 존재를 눈치챘는지도 모르겠어"
애초에 창녀 일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상식을 하루쨩에게 가르쳐준 사람이 나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점도 있었다. 게다가 그 아이는 거리낌없이 자기 일을 말해주니까, 비밀 같은 건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에 침울해했는데, 그 뒤로 혼자 생각해보고 깨달았다. 내 멋대로 생각했구나라고, 반성했다.
"요즘은 숲에서 자체 하드코어 플레이도 하거든. 아, 하드코어 플레이란 말이지,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몸 일부를 스스로 구속한 채 싸우는 거야. 아니 괜히 이상한 의미처럼 들리겠지만, 한 마디로 나한테 핸디캡을 걸고 싸우는 거라고나 할까. 그래도 진짜 위험한 행위고, 숲 입구 근처에서밖에 안 하니까 안심해"
나도 하루쨩에게 털어놓지 못한 일도 있으니까. 창녀가 되기 전 일이라던가. 그런 이야기 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여자애라면 특히.
털어놓을 수 있는 것과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이다.
"요약하자면 여기 오른팔의 붕대를 풀면, 봉인되어있던 '오니히메'가 해방된다는 게 내 새로운 설정이거든. 멋있지 않아? 게다가 왼손밖에 쓸 수 없는 하드코어 모드로 결투장에 도전하는 나 꽤 성장한 것 같단 말이지. 역시 천재라 그런가. 자랑하는 것 같으니까 다른 녀석들에게는 말하지 않지만"
너무 자신에 대해 떠드는 사람은 신용할 수 없지. 가벼워보인다고 할까, 텅 빈 껍데기 같은 느낌이 난다.
하루쨩이, 키요리쨩에게는 말할 수 있고 나한테는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분명 그건 그녀도 생각한 다음 결정했을 테니, 옳은 일이겠지. 쓸데없이 떠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니 더 이상, 하루쨩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하지 말자. 그녀에게는 그녀의 인생이 있으니까. 나도 힘내야지, 응.
"저기, 엄마. 듣고 있어?"
"아, 응. 그보다 오른팔은 어떻게 된 거야. 붕대, 살짝 풀렸는데. 제대로 감아놔야지"
"그러니까 그게 봉인의…… 뭐, 됐으려나"
엉망이 된 검은 붕대를 다시 고쳐감아준다. 치바 군도 노력하고 있구나. 아무데도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손가락까지 감아두다니, 이래선 밥을 먹기도 힘들지 않을까.
덜렁이라니까.
"밥은 먹을 수 있어? 몸을 쓰는 일 하니까, 배불리 먹지 않으면 안 된다구"
내 그릇에서 고기를 아─앙 해준다. 치바 군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더니, 서둘러 받아먹는다.
어리광쟁이인 주제에, 부끄럼쟁이에 폼잡는 것까지, 동생을 쏙 빼닮았다.
그러고보니 하루쨩이 없으니 식사에 어울려주기도 하지만, 매일 데리러 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해야겠지.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면, 치바 군이 가게 앞에서 강아지처럼 기다린다. 안으로 들어와서 불러주면 좋을 텐데, 영업시간이 아닐 때 들어오기는 긴장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낯가림이 심한 아이다. 친해지면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데. 가게에 오면 우선 나나 하루쨩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 사실은 조금 귀엽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귀엽다고 말하면 화내는 일이 많아서 말하지 않았지만.
"오늘도 내가 살게. 엄마 좋아하는 거 시켜"
나는 '매일 얻어먹으면 미안하잖아, 사주는 건 가끔씩만 해줘도 돼'라며 거절한다. 그랬더니 치바 군은 '괜찮다니까'라며 더 권해온다.
"나도 맨날 밖에서 먹거든. 그러니까 먹는 김에 사는 거지"
먹는 김에, 라는 말투에 악의는 없다. 이 아이는 이런 식으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매일 얻어먹기로 했다. 먹는 김에라니까.
"고마워. 그치만 나 말고 같이 먹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아?"
"어, 있을 리 없잖아, 그런 사람"
치바 군, 왼쪽을 봤어. 거짓말 했구나, 이 녀석.
게다가 요전번 속옷 도둑 사건 때, 눈치챈 점이 있다. 치바 군은 아마, 그 아이랑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입막음을 해두었겠지. 특히 나나 하루쨩한테는.
어떤 관계인지도 상상이 간다. 어쩌면 치바 군에게 못된 불장난을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했다. 그건 오랜 기간 지내오며 생긴 암묵적 룰 같은 거다.
그 아이가 하는 일에, 나는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는다.
"아니, 뭐─, 다른 사람한테도 말을 걸기는 하지만, 내 진심은 엄마라구!"
치바 군은 옛날에 하루쨩에게 끈질기게 자기 집으로 오라고 꼬신 적이 있다고 한다. 키요리쨩이랑 사귀었을 때는 요리나 청소도 시켰다고 들었다. 그 아이에게는 어떠려나 상상해보지만,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집 안을 보여주기 싫은 거겠지. 마구 어질러놓고 살 게 뻔하니까.
그는 하루쨩과 있을 때가 가장 활발하고, 키요리쨩 앞에서는 조금 허세끼가 있고, 나랑 있을 때는 상냥하고 폼잡는다. 치바 군의 가장 특이한 점은, 남자 치고 드물게 여자 상대로도 여러 표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나는 손님으로서 그를 키워왔지만, 사람이란 그리 쉽게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평생 이해하지 못하는 채 남는다. 그의 경우에는, 마음을 터놓고 대한 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점이 많다. 그래도 상상력은 엄청 풍부해서 이야기 자체는 의외로 재미있다.
친구는 적은 것 같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남들과 금방 친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인기 좋은 창남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남에게 별로 흥미가 없다는 느낌이다. 먼저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거리감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 점은 하루쨩과 정반대다. 그녀는 스스로 거리를 좁혀오는 쪽이니까.
이 둘은 동향 출신이라고 하던데, 어떤 마을일까. 어떡하면 이렇게 극과 극인 아이들로 자라는 걸까.
"아무래도 안 들은 모양이니 한 번 더 말하겠는데, 내 진심은 엄마라구!"
"어, 아, 미안. 들었어, 고마워─"
"헤헤"
치바 군은, 내가 밥을 먹는 입가를 자주 본다. 자기는 거짓말하는 주제에, 의심이 많고 독점욕도 강하다.
창녀 선배들에게 배운 남자를 알아보는 법. 치바 군은 재밌을 정도로 딱 들어맞지만, 그래도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라고 특이하게 생각되는 때가 많다.
날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 말고도 많이 있다. 하지만 매일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예의 사건 이후, 가게 밖에서 손님을 만나는 게 금지되었다. 치바 군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손님이 아니면 되잖아?'라며, 점심밥을 같이 먹기만 할 뿐이고 밤에는 찾아오지 않게 됐다.
치바 군은 그런 점이 다른 남자들과 달랐다.
나랑 자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어째서 엄마라는 호칭으로 부를까. 밥을 사주면서도, 어디론가 끌고가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정말 별난 아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있잖아, 엄마. 내일은 잠깐 늦어질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어째서 늦어지는가는 묻지 않는다. 분명 성가신 거짓말을 칠 테니까.
가게가 오픈하자, 바빠져서 쉴 틈도 없다.
최근 마담에게 불려가는 일이 많아졌다. 여러 사람을 소개받게 되었다.
이 가게의, 이른바 큰손들이다. 그들은 나를 안은 다음 거액의 용돈을 줬다. 손님 중 한 명에게는, 조금 더 좋은 옷을 입으라는 말도 들었다. 마담도 같은 말을 했다.
내가 귀여운 옷이나 애 같은 복장을 고르는 이유는, 이게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그런 취향의 단골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른스러운 차림새도 해야만 한다.
변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마담은 나를 후계자로 삼으려 한다.
"루페쨩. 길드장님이 내일부터 지방 순회를 돈다는구나. 이번엔 나도 따라가니까, 그간 가게를 부탁하마"
나는 하루쨩과 다르게, 지방에서 끌려온 아가씨다. 빚이 있다.
이 일을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몸이 망가질 게 뻔하고, 누군가 부자가 빚을 갚아주지 않는 한, 요리가 뛰어나거나 음악에 정평하거나, 다른 특기가 없으면 힘들다.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경영을 하며 월급이라도 받지 않으면, 오래 살 수 없다.
오래 살고 싶다, 는 건 아니지만.
"알았어요. 열심히 해볼게요"
내게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입맛대로 고를 수 있을 만큼 축복받은 인생이 아니다. 어떻게든 바둥대며 살아갈 뿐이다.
"루페쨩, 카운터에 손님이 쓰러지셨어"
"네, 처리할게요"
테이블을 바라보며, 소꿉친구에게 말을 건넨다.
창관에는 여자밖에 없으니까, 곤란한 손님이 생기거나 힘쓸 일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단골 몇명에게 부탁했다.
대부분은 모험자로, 식사나 술, 그리고 약간의 봉사로 부탁하곤 한다. 혹은 근처 가게나, 정말 어쩔 수 없을 때에는 길드장님에게 부탁하거나.
가게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과 잘 지내두는 것도 중요하다.
"자, 형씨. 여기는 자는 곳이 아니라고"
덩치 큰 손님에게, 근처 여관까지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한 명을 정리해도, 차례차례로 자잘한 문제가 일어나, 빨리 해결하고 가게를 굴리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막혀버리고 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바쁘다. 마담은 언제나 가게 안을 우아하게 걸어다니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렇구나. 문제가 되기 전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구나. 말을 걸어서 굴려야 한다.
멈춰서있을 틈도 없다.
하루가 끝나갈 쯤에는, 안면 근육이 미소지은 채 굳어져버렸고, 발도 팅팅 부었다. 엎어져서 쓰러지듯 잠들었더니 어느샌가 아침이 밝았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뜬다.
"누구세요?"
순간, 하루쨩인가 했지만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시끄럽게 문을 두들긴다.
"나"
라고 말하는, 쉰 저음의 목소리. 아아, 너구나.
화나게 해버린 걸까. 근육통이 조금 남은 발로, 어떻게든 일어선다. 몸이 뻣뻣하다.
"안녕, 키즈하쨩. 무슨 일이야?"
살랑살랑 나부끼는 긴 금발.
그것을 둥글게 말아올리고, 넓은 이마 아래로 나를 노려보는 푸른 빛의 커다란 눈동자. '청묘정'이라는 가게의 이름은, 그녀를 위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무슨 일이야, 가 아니잖아"
새하얗고 미끈미끈한 피부가, 풍만한 가슴까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검고 짧은 드레스에서 뻗어나온 손발까지, 누군가의 편의라도 받은 양 가늘고 길어서 부러울 따름이다.
여자인 내가 봐도 소름이 끼칠 정도의 미인.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남자가 부족해. 욱씬거려서 잠을 못 잤어"
굶주린 길고양이가 그르렁거리는 듯한, 그런 느낌.
그녀에게는 조금 독특한 점이 있는데, 그건 창녀라는 일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남자와 자는 것이 진짜 좋은 모양이다. 하룻밤에 셋은 안게 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스로 손님을 잡으러 가게로 내려오지는 않는다.
"나한테 남자를 데려오는 게 네 일이잖아"
그녀가 야상의 청묘정 매상 1위. 내가 왔을 때부터 항상 그랬다.
그렇기에, 가게에서 그녀에게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미안해. 어제는 너무 바빠서 못했어. 알잖아, 마담이 어제부터 안 계셔서"
"관계 없잖아? 내가 하룻밤에 얼마나 벌어준다고 생각하는 거야. 쓸데없이 바쁘게 돌아다닐 정도면, 내 손님이나 찾는 편이 가게에 보탬도 되잖아"
키즈하쨩의 가격대는 높다. 당연히 그녀의 손님은 부자만으로 한정되고, 하룻밤에 그렇게나 많이 오지는 않는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서, 사주는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나 혼자서, 그건 좀 무리였다. 언제나 도와주는 하루쨩도 없다.
"진짜 바빴다구. 키즈하쨩이 아래로 내려와준다면,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잔뜩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왜 내가 그렇게 귀찮은 짓을 해야하는데. 난 그런 거 면제라고. 마담도 상관없다고 말했잖아"
"……응, 그렇긴 하지만"
"뭐야, 루페. 화났어?"
키즈하쨩이 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들춰낸다. 귓가를 스치며 뒤쪽 벽에 손을 짚고는 얼굴을 들이댄다.
"화났어? 그래서 어쩌려고?"
속눈썹이 길어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로 노려보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게다가 그녀는, 또 피 냄새를 풍기는 중이다.
화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오늘밤은 꼭 손님을 데려다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응, 그래. 열심히 해봐"
남 일처럼 말하고, 그녀는 겨우 떨어져나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갑자기 뒤돌아보는 탓에 깜짝 놀랐다.
"부탁 좀 할게, 엄마"
싱긋 웃더니, 이번에야말로 키즈하쨩이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갔다.
긴장된다. 그녀는 엄청난 압력을 뿜어내는 여자다. 게다가 '엄마'라니, 분명 날 바보 취급하는 거다. 짜증나는 말투다.
왜냐면 저 사람, 마담의 친딸이니까.
점심때가 지나도 치바 군이 와주질 않는다. 그러고보니 늦어질지도 모르겠다고 했지. 어쩌면 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가끔씩이면 된다고 하긴 했지만, 내심 기대하고 있었기에 조금 아쉽다.
그럼 밥을 어떻게 할까. 혼자서 가본 적은 없지만, 씨름부 씨의 가게에 도전해볼까.
키요리쨩도 시스터 복장 그대로 차를 마시곤 하니까. 그 모습이 꽤나 멋있다. 여자가 혼자서 가게에 앉아있는 모습이라니, 꽃을 꽂아둔 것처럼 보인다.
뭐, 난 키요리쨩만큼 미인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나, 어제 열심히 일했으니까.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해야하고. 마담도 말했으니까, 조금은 어른스러운 일도 해봐야지. 응.
하지만 쥐꼬리만한 용기가 통할 만큼, 세상은 달달한 케이크가 아니다.
가게 앞 '테라스 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옆에 있는 아저씨가 이쪽을 보는 느낌이라 무서웠다. 씨름부 씨 앞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그곳도 남자 손님으로 가득찬 자리라 부담된다.
"뭐야, 아가씨. 앉을 자리가 없나?"
테라스 자리에 항상 앉아있는 아저씨가 말을 건다.
모험자 같은데, 다리를 다친 모양인지라 언제나 대낮부터 술을 마신다. 빳빳해보이는 수염이 난 아저씨. 깜짝 놀라 뻣뻣하게 굳어버린 나에게, 씨익 웃어보인다.
"여기 앉지 그래?"
제 고간을 가리키며, 이를 드러낸다. 주위 사람들이 웃자 거기에 맞춰서 나도 영업용 미소를 지어준다.
가게에서 종종 듣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농담이다.
"아, 저기, 자리가 없으면 조리대 앞에 한 자리 비었으니까 그쪽으로"
케이크가 잔뜩 얹어진 그릇을 나르며 씨름부 씨가 중재한다.
덕분에 살았다. 씨름부 씨는 몸집이 커서 듬직하다.
"뭐냐, 어이. 네 이거냐? 거 미안하게 됐군"
그렇지만 소심하고 소극적인 사람이다. 수염 아저씨가 새끼 손가락을 세우자, 새빨개져서는 '당치도 않아요'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해요.
"오늘은 됐어요. 또 올게요"
사양하기로 했다. 배도 빵빵해진 것처럼 더부룩하고.
"죄송해요"
사과하는 그에게, '저야말로'라며 같이 사과한다. 장사가 잘 돼서 다행이예요. 서로 힘내죠.
"저, 괜찮다면 가져가세요"
그릇에 담긴 케이크 하나를 받았다. 값을 내려고 했더니, '남는 거예요'라며 씨름부 씨가 면목없다는 듯이 말한다.
하루쨩이 없어서 우리가 가게에 오지 않더라도 이 사람은 항상 케이크를 만든다. 팔리지 않으니까, 손님에게 권유해 영업도 한다.
"먹겠냐, 그런 여자들이나 먹을 법한 거"
수염 아저씨에게도 권유해봤지만 통렬한 거절을 당했다. 씨름부 씨는 굉장히 노력중이다. 서로 힘내자니, 어쩜 거만한 생각이었는지.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가 조금 가엾다. 혼자 먹어도, 쓸쓸한 맛밖에 나지 않는다.
──눈이 돌아갈 것 같다.
저쪽에서 손님이 요리가 늦는다며 화를 낸다. 건너편 손님은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빼앗겨서 화풀이 중이다. 아가씨 한 명은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하고, 다른 아가씨는 손님에게 맞아 얼굴이 부어버렸다.
미소. 미소. 기분이 어떻더라도 손님 앞에서 이상한 표정을 지어선 안 된다. 아가씨들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가끔씩은 '딱 잘라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마담이 말하셨다. 하지만 내가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하루쨩도 아니고.
곳곳마다 얼굴을 비추며 사과한다.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다른 방법을 모른다. 마담에게 일을 맡았던 적을 떠올려봤지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친다. 그런데 매상은 최악. 그래도 미소. 마지막까지.
오늘도 엎어지자마자 잠든다.
엉덩이를 맞아서 눈이 띄인다. 놀라서 일어났더니, 덮쳐졌다.
술 냄새. 키즈하쨩이 내 위에 타있다.
"어제,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란 눈동자가, 굉장히 가까워서, 더욱 강렬하게, 그곳밖에 보이지 않는다. 빨려 들어갈 듯한.
"……미안"
"알면 사과하지 마. 남자를 데리고 오라고. 데려오지 않으면"
널 따먹어버릴 거야 라고, 키즈하쨩이 능글맞게 웃는다.
정말 따먹히는 줄 알았다. 그녀의 숨결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피부를 훑는다. 마치 혀처럼.
"키즈하쨩"
그 숨결에서 살짝 피 냄새가 난다. 하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말해야만 한다.
"또 마셨어? 마담도 그것만큼은 안 된다고──"
"시끄럽네. 상관없잖아, 그런 사람은"
바로 말을 끊길래, 그 이상은 말하지 못했다. 팔을 붙잡힌 상태라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그녀는 내 목덜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머리카락에 입을 가져다 댄다.
"넌 항상 좋은 향이 나는구나. 어젯밤은 몇 명한테 안겼어? 날 방치해놓고, 너만 남자를 즐겼구나? 그치?"
안기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이제 곧 나는 정해진 손님 외에는 잘 수 없게 된다. 마담에게 소개받은 사람들이다.
"그래. 루페는 엄마가 될 거니까. 우리들의"
키즈하쨩이 볼을 쓰다듬는다. 귀를 손톱으로 찌른다.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는 나를 보고는, 기쁘다는 듯이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
"엄마. 나를 위해 착실히 일해줘. 그럼 나도 분명 착한 아이가 될 테니까. 약속할게"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미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도, 장미의 가시처럼 아프다.
키즈하쨩은 창관에서 태어났다.
언제부터 이 일을 했는지 자기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마담도 많은 이야기는 해주지 않는다. 이 모녀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키즈하쨩은 거짓말쟁이니까.
해가 떠있을 때의 그녀는, 언제나 피 냄새를 풍긴다.
'양귀비박쥐의 피'다.
물론, 그런 동물이 있을 리도 없고, 진짜 피도 아니다.
마왕의 숲 동쪽에서 채집된다는 신비한 모습을 한 과일이다. 그 열매를 발효시키면 빨갛게 되면서 피 비스무리한 냄새를 풍긴다.
그 즙은 술보다도 효과적으로, 사람을 망가트린다. 그렇기에 가지고있는 모습이라도 발각된다면 군인 아저씨에게 체포되지만, 얻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한 모양인지라, 창관에서도 마시는 사람이 있다.
심하게 취한 상태가 되면서, 보이지도 않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거나, 갑자기 날뛰기도 한다. 쓰러져서 그대로 병원으로 호송되는 경우도 있다.
잘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취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피를 마시면 엄청 기분이 좋다면서 아가씨에게 권하기도 한다. 마담은 위험하니까 거절하라고 모두에게 말하셨다. 어쩔 수 없이 마셔야하는 상황이라면 도망쳐도 된다고.
키즈하쨩은 잘 마시는 편이다. 아마도 나 말곤 아무도 모르겠지.
"……잊지 말고, 밥도 먹고. 영양이 부족하면 쓰러진다구"
"뭔 소리래? 엄마 같은 말 하는 거야?"
스스로도 흐름에 안 맞는 말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키즈하쨩은 최근들어 점점 더 식사를 하지 않게 됐다. 어쩌면 또 뭔가 주워와서 기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살아있는 생물이면 뭐든 주워와서는, 방에서 몰래 키우곤 했다. 마담의 지시를 받아 열쇠를 채운 사람이 나였다.
그리고, 혹시 그녀가 지금 키우는 것이──내가 아는 남자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중이다.
"너야말로 지쳤다는 표정이야"
남 일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키즈하쨩이 머리를 쓸어올린다. 오늘은 잘 정돈된 상태다. 지금부터 누군가랑 만날 예정인가보다.
"일이 그렇게 힘들어?"
보통 아가씨였을 때보다 훨씬 더.
하지만,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마 살아갈 수 없겠지. 누구든 변화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적성에 맞지 않아, 루페"
가슴에 싫어하는 것을 찔러넣는 기분.
그런 거, 당연히, 나도 알아. 그러니까 말하지 않아도 될 텐데.
"넌 언제나 웃어넘기려고 하니까. 계속할 수 있을 리 없지. 자기가 즐기지 못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다니 절대 무리야"
나는 즐거워, 라고 키즈하쨩이 웃는다. 엄청 웃는다. 머리에 쿡쿡 울린다.
"루페도 피, 마실래? 즐거워진다구?"
빨간 혀가 그녀의 입술을 적신다. 냄새만으로도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볼이 뜨거워진다. 숨이 가빠져서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
"거짓말이지롱. 너한테는 안 줄 거야"
나를 있는대로 바보 취급하고서, 키즈하쨩은 드디어 내 위에서 내려왔다. 피 냄새가 떨어지면서 동시에, 스쳐지나가듯 꽃 향기도 났다.
치바 군은, 오늘도 오지 않았다.
창관의 주방에서, 홀로 늦은 점심을 받아 먹는다. 그립지만, 원래는 이랬지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이곳에서 다 같이 먹었던 밥도, 별로 즐겁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늘어날 테니까. 다른 아가씨와도 이야기해봐야 하고, 가게의 맛도 확인해봐야 한다. 사이 좋은 아이와 밖에서 먹는 식사의 맛에, 기대서는 안 된다.
게다가──하루쨩은, 이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창녀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였지만, 지금은 나보다 훨씬 할 줄 아는 일이 많다. 요리도, 빨래도, 가게 수리까지도. 매상 순위는 아직 상대도 안 되지만, 노래도 잘 하고 악기도 잘 다룬다. 게다가 엄청나게 귀엽다.
바깥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모양이고, 숲 같은 굉장한 곳에 가기도 할 정도니까. 어쩌면 벌써 가게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분명 말해주지 않겠지. 평생 이곳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아이니까. 말할 수 없겠지.
아마도, 나, 엄청 쓸쓸하지만,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해줄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래도, 가지 말라며 울 거라고 생각하려나. 그럴 일은 없는데. 모두가, 나를 앞질러가는 정도는 알아. 그러니까 괜찮아.
……어째, 재미없는 일만 생각하게 된다.
하루쨩이 있는 때에는, 좀 더 재밌는 이야기 없을까 고민했는데.
물 마시자.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났더니, 무릎에 힘이 풀려버렸다. 쓰러져버리는 줄 알았다. 깜짝 놀랐다.
밤, 비가 내리기 시작해 손님은 적은 상황.
하지만 손님이 적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가게 앞 등불을 강하게 켜고, 가게 외관을 따스하게 만든다. 악단에게는 느릿느릿한 곡을 연주하도록 지시한다. 요리 한 종류의 가격을 살짝 낮췄다고 간판에 적어둔다. 출퇴근 아가씨들에게, '오늘은 조기 퇴근해도 되니까 떠들썩하게 해줘'라고 전달한다.
손님이 적다고 해도, 해야할 일까지 줄일 수는 없다. 하지만 얼굴에는 조바심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바짝 긴장한다.
비를 피해 신규 손님이 왔다. 수행인을 거느린, 풍채가 좋고 기름기가 번지르르한 사람. 게다가 창관 이용은 익숙한 모양인지, 자리로 안내해준 아가씨에게도 가벼운 느낌으로 야한 농담을 친다. 익숙한 사람은 좋다. 부자, 라고 생각한다. 꽤나.
마담 대리로서 인사를 올린다. 술도 따라준다. 내 빈약한 가슴을 보더니 미묘한 표정을 짓길래, 오히려 안심했다. 오늘은 가슴 큰 아가씨가 많다.
손님이 술과 요리를 즐기며, 슬슬 아가씨들의 품평을 시작할 즈음에 다시 한 번 말을 건넨다. 귓가에, 손님에게만 이라고.
"오늘이라면, 저희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이의 방이 비어있어요"
키즈하쨩은, 주로 높으신 공무원이나 군 상층부가 고객이라고 소개해둔다. 남자는 아가씨의 가치를 외모보다 '누구의 마음에 들었는가'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돈이나 지위가 있을 법한 손님은. 물론 가슴이 크다는 첨언도 해둔다.
"호오"
가격은 마지막에 말한다. 말 못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익숙한 사람이라면 가게 시세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테고, 이곳은 남성들의 사교장이기도 하다. 다음에 또 올 경우도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좋아, 가볼까"
이 사람은 가격을 묻지 않았다. 큰손 확정이다. 다음에 올 때에는 아가씨들을 세워놓고 환영해야겠다.
다행이다. 뒷일은 맡겨도 되겠지. 키즈하쨩이라면, 어떤 손님도 반드시 만족하게 해준다. 일은 정말 잘 한다. 이틀이나 손님을 맞이하지 못했으니 그녀도 기뻐할 테지.
라고, 살짝 안심해서 긴장을 풀고 있었더니, 금방 방금 손님이 발소리를 울리며 2층에서 내려왔다.
"이봐, 웃기고 있군. 뭐냐 저 여자는!"
내게 삿대질을 하며, 울그락불그락해진 얼굴로 노려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서, 허둥대고 만다.
"저기, 대체 무슨 일이시죠?"
"저 여자는 뭐냐고 했잖나. 저게 이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년이라고? 이따위 무례는 처음 겪는군. 끽해봐야 창녀 주제에 내가 누군 줄 알고"
"저, 죄송합니다, 금방 다른 아가씨 방으로"
"다음은 두 번째 아님 세 번째냐? 이딴 가게의 여자 따위 상대할까보냐. 바보 취급은 적당히 해라. 돌아가겠다!"
정말이지 영문을 모르겠다. 손님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며 배웅해드리고, 서둘러 2층으로 향한다.
복도 끄트머리에 있는 푸른 문. 가게에서 가장 넓은 방. 조금 긴장하며 문을 두드린다. 대답은 없다. 좋아. 멋대로 열어본다.
"키즈하쨩"
꽃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며, 화려하게 칠된 벽과 바닥에 겹겹이 쌓인 융단의 색감이, 눈을 찌르듯 파고들어와 살짝 통증을 느낀다.
남자들에게 받은 옷, 자잘한 물건, 모자. 모두 화려하지만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것처럼 정리되어있다. 색이 너무 많아 불안해지는 배치. 색에 파묻힐 것만 같다.
침대 위에 그녀가 있다.
칠칠맞게 다리를 벌리고 컵으로 피를 마시고 있다. 볼에는 커다란 손자국. 방금 전 손님에게 맞은 자국이리라.
"키즈하쨩──안 되잖아. 넌 얼굴에 상처가 생기면 안 돼"
이 아이는 가게의 간판이다. 우리들 중 넘버 원. 제멋대로라 감당하기 벅차지만, 이 가게를 지탱해주는 사람은 이 아이다.
그녀는 입술 한 쪽을 치켜올리고는, 볼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말한다.
"이 정도 내일이면 사라져. 문제 없어"
문제라구. 오늘 밤, 이제 어떡할 건데. 네가 손님을 데려오라고 말했잖아.
"……손님에게 뭘 한 거야?"
"딱히. 본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당신에게 안기기는 싫네요─라고"
"무슨 소리야. 정말 그런 말 했다고?"
그녀는 그래도 일은 성실하게 했다. 애초에 창녀 일밖에 안 하는 아이였다.
어떤 남자에게도 안긴다. 진심으로 안긴다.
우리도 살짝 상대하기 꺼려지는 남자에게도, 그녀는 침대 위에서는 진심으로 대한다. 헤어질 때에는 눈물까지 보일 정도다. 그런 식으로, 줄줄이 사탕처럼 미모와 사랑으로 손님을 빠뜨려간다. 어떤 남자라도 포로로 만들어왔다. '태어났을 때부터 창녀였다'고, 마담은 말한다.
"어째서 그런 말을……"
"그럴 기분이 아니었거든. 안 돼?"
키즈하쨩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피에 취한 것이다. 엉망진창이다. 아무리 나라도 화가 치밀어오른다.
나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손님을 화나게 만든 거다.
"왜 그래, 루페. 혹시 화났어?"
입술을 깨물며 참는다.
내가 화내면, 진짜 끝장이다.
"부탁이니까 일을 해줘. 오늘 밤은 손님이 적다구. 얼굴, 분칠 좀 할까"
또 손님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돈 많은 손님이 와줄지 어떨지도, 이 날씨와 가게 상태로 봐서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오늘 밤은 키즈하쨩이 벌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정말 곤란하다. 요 며칠간 최악이었다. 마담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 꼴이라면, 나는──.
"싫어. 그럴 기분 아니라고 했잖아. 나, 당분간은 일할 생각 없거든. 알아서 잘 해봐"
뻗은 내 손을 쳐내며, 키즈하쨩이 퉁명스럽게 고개를 돌린다.
화내면 안 돼. 키즈하쨩은 날 놀리고 있을 뿐. 화를 내면 상대가 의도한 대로 하는 꼴이다. 하지만, 나도 한계야.
"그럼 여기서 나가. 남자랑 자지 않는 창녀 따위 이 가게에는 필요 없어. 너도 창녀 일밖에 하지 못하는 주제에, 제멋대로 굴지 말아줘"
키즈하쨩은, 놀란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나도 멋대로 움직여버린 내 입에 동요했지만, 입을 꾹 다물고 키즈하쨩을 마주본다.
"하아?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루페"
"키즈하쨩한테지. 진짜 심하잖아. 오늘만 해도 손님을 찾아줬더니 쫓아내기나 하고. 나, 열심히 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 내가 필요 없다니 무슨 뜻이야? 내가 필요 없다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부글부글 끓는다. 아무래도 좋다니, 네 멋대로 정하지 마. 이 세상에 자기밖에 가치가 없다는 듯이, 우리를 내려보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특별한 방에 틀어박혀 살 수 있는 게, 대체 누구 덕분인줄 아냐고.
"남자랑 자지 않는 창녀에게 가치 따위 없어. 그건 너도 똑같아"
쓴소리를 하고 있다. 키즈하쨩을 상처입히려고, 나한테도 불똥이 튀는 따끔한 말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가슴이 꾹 죄여와 멋대로 눈물이 흐른다. 사과하려고 했는데 입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키즈하쨩이 내 어깨를 밀치며 벽으로 몰아세운다. 난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트렸다.
"너 병신이니? 내가 없어지면 이 가게의 가치도 없어지는데?"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소리를 내며 운다.
난 바보다. 진짜 글렀다.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짜내 '미안해'라고 사과한다.
키즈하쨩은 한숨을 쉬더니, 내 뒤에 있는 벽을 쿵 하고 친다.
"웃어"
낮은 목소리로 협박한다. 무서워서 어깨가 떨린다. 야수처럼 키즈하쨩이 쏘아본다.
"웃으라고. 엄마의 역할이잖아. 웃어넘기라고, 평소처럼"
아래층 주점에서 누군가가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들린다. 손님이 적더라도, 아가씨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도 웃어야만 한다. 하지만, 목이 잠기고 눈물도 멈추지 않는다.
키즈하쨩이 혀를 찬다.
"이제 됐어. 꺼져. 그리고, 당분간 손님 안 받겠다는 건 진짜야. 그것만큼은 기억해둬"
벽에서 끌려나와, 엉덩이를 얻어맞았다. 시끌벅적한 주점으로, 터벅터벅 돌아간다.
다음날, 가게 현관 앞에 치바 군이 앉아있었다.
등을 돌린 채로,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난 그런 그의 등을 무릎으로 툭 친다.
"아얏"
그는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더니, 금방 '안녕'이라며 웃는다.
일어서는 치바 군의 무릎 뒤를, 다시 한 번 무릎으로 친다.
"뭐야뭐야. 왜 그래?"
치바 군은,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하는구나.
화내는 거라구.
그치만 치바 군이 웃어준 덕분에, 나도 웃을 수 있었으니까 용서해줄게.
"아, 일났네. 오랜만에 케이크 먹으니까 엄청 맛있잖아. 남자는 단 거 싫어하는 녀석이 많은데, 난 단 것도 좋아한다고나 할까, 여자의 마음을 엄청나게 이해하는 남자니까 말이야. 맛있네"
여전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치바 군의 이야기. 라기보다는 주장. 평소라면 듣는 사이에 정말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게 돼서 불안해질 텐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안도하게 된다. 어쨌든 케이크가 맛있다는 부분에는 동의해.
그러고 보니, 키요리쨩은 이런 음식의 감상을 잘 했지. 씨름부 씨의 요리에는 언제나 칭찬 일색이었지만.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무사할까.
숲에 간다는 사실, 치바 군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치바 군도 강한 모험자라고 했는데. 얼마 전까지, 그가 숲으로 갈 때 따라갈 목적으로 나한테 조교를 부탁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그 기대도 그만뒀나보다. 치바 군에게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강해지는 것에는 흥미가 있지만, 마왕을 쓰러트리는 것까지는 무리니까 안 하겠다고 했다.
난 그런 방면은 잘 모르니까, 그렇구나 하면서 듣기만 했을 뿐이지만. 조금은 부럽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은.
자신감일까. 아니면 허세라던가, 억지라던가, 별로 좋지 않은 부류려나. 뭐가 됐든 부럽지만. 그런 것들 전부, 자신감이니까.
나는 죽도록 노력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다는 느낌이고. 당장 오늘 밤만 해도, 어떻게 가게를 굴려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모처럼의 케이크도 맛없게 느껴진다. 그건 곤란한데.
"치바 군은 있지"
키즈하쨩과 만나고 있지. 라고, 물어보려다가 멈춘다. 물어볼 수가 없다. 그녀가 화낼 것 같아서 무섭다.
"어, 왜? 나한테 궁금한 점이 있다면 뭐든지 물어봐"
이 둘이 나에 대한 대화를 했다면, 엄청 싫겠다고 생각한다. 야한 짓도 할 테고. 양귀비박쥐의 피 같은 것까지 마셔가면서 문란하게 노는 상상을 했더니 기분이 엄청 나빠졌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둘이 만났다는 건 분명한 듯 싶은데,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 미묘한 조합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적당히 둘러대면서, 미안한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적당히 둘러댈 정도의 가벼운 말실수라고 헤아려주면 좋으련만, 치바 군은 '뭐야뭐야, 괜히 신경쓰이잖아'라며 고개를 들이댄다.
그런 점이겠지. 하루쨩이 화내는 거.
내가 치바 군을 신경쓰는 이유는, 동생과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동생은 이제 막 애기티를 벗어났을 무렵의 모습이고, 치바 군은 하루쨩과 같은 나이로 벌써 어른이다. 얼굴도 완전 다르고. 정말 닮았냐고 물어보면 자신은 없다. 모르겠다.
나랑 자고 싶어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둘이서 만나거나, 어떻게 봐도 꼬시는 것처럼 말하는데 전혀 강압적으로 들이대지 않는다.
목적이 없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행동을, 이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댄다. 심심한 걸까. 그 여유가 역시 부럽다. 불안에 빠지지 일도 없겠지.
치바 군이 입가에 케이크를 묻히고,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그 얼굴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웃어버린다.
아, 그렇구나. 치바 군은 아직 자기가 어린애인 줄 안다. 그래서 그렇게 인생을 취미처럼 사는 거다. 사고방식이 다르다.
알아냈다. 한 마디로 그가 말하는 '엄마'란 진심이라는 소리다. 난 '엄마를 대신해줄 여자'가 아니니까 자지 않는다. 그렇다는 말이다.
뭐─야.
"왜 그래, 진짜?"
"아니. 뭐 하나, 궁금한데. 물어봐도 돼?"
"어, 당연하지. 자, 물어봐 물어봐"
"너는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동생에게 물어보듯이 물어본다. 치바 군이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진짜 아이 같다. 머리가 이상해진다.
어차피 용사가 된다거나 음유시인의 노래가 된다거나,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너무나도 예상 외라,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신을 때릴 거야"
치바 군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난 일단, 주위를 둘러보고 교회 관계자가 있나 없나 확인했다. 다행이다. 숲에서 키요리쨩이 달려오지 않아서.
"나는, 신을 때리는 남자가 되겠어"
어쩔 줄 몰라하는 나는 신경도 안 쓰면서, 치바 군은 두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상상을 해봐도 모르겠다. 그런 말 하는 사람, 처음이었다.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어떤 상황일까. 신님이 어째서 갑자기 치바 군에게 폭행을 당하는 걸까. 어떻게 신님과 만나는 걸까. 창관 손님도 아닌데.
"……때려서 어떡하려고?"
마왕이라도 되고 싶은 걸까. 그런 대답이 나온다면 무섭겠는걸.
치바 군은, '으─음'이라며 살짝 시선을 위로 올렸다. 오른쪽 위로.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불만이 있지는 않지만. 까놓고 말해서 여기 이세계도 좋아하고. 로망과 모험과 판타지. 남자라면 누구라도 좋아할만하지"
그래도 말야. 라며, 치바 군이 과장되게 고개를 기울여보인다.
"요즘엔 좀 다르지 않나 싶어. 이쪽 세계를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만렙이 정해져있다는 시점에서 나도 사기당한 느낌이고. 그래도 난 시스템을 알고 있으니 그나마 나은 편이지. 대부분의 사람은 천장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고, 스킬도 쓸모없는 것만 받고. 치트만 해도 그래. 무한루프 장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래서는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설계가 이상하다고. 누가 클리어 할 수 있겠어, 이딴 게임? 아니면 슬로우라이프 장르인가? 그럼 그건 그것대로 튜토리얼을 제대로 해줬으면 하고"
역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나는 애매한 느낌으로 웃어준다. 평소의 치바 군이구나. 진지하게 들어서 손해봤다.
그런데 내 반응이 옅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치바 군이 '미안'이라고 말했다.
내 표정을 살피다니 처음 있는 일이라 동요해버렸다. 그 치바 군이.
"한 마디로 불행이 너무 많다 이거야. 엄마 같은 사람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냐고. 그거야, 뭐, 인간 사회라던가 그런 하층 시스템을 뜯어고치면 조금은 나아질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난 안다고. 가장 윗대가리 녀석. 거기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근본이 바뀌지 않으니까, 때려줘서 깨닫게 만들고 수정하게끔 만드는 거야. 스킬을 전부 토해내게 만들어서 인류 통째로 바꿔야지. 마왕을 쓰러트릴 방법은 한 명의 용사가 아니라 시스템 개변과 인류의 상향이야. 그리고 그게 용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즉,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걸 하겠어"
난 아직 동요하는 중이고, 치바 군의 이야기도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엄청 두근거렸다. 영문모를 것에 홀렸나보다. 치바 군이,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어떡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려서, 평소처럼 웃어봤지만 실패했다. 힘조절을 잘못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렇지만 치바 군도 웃고 있었다.
"……정말"
"응?"
"정말 때려줄 거야?"
"물론이지. 주먹으로 때려주겠어"
상상했더니 점점 더 웃겼다. 신님, 큰일이네. 다들 치바 군에게 깜짝 놀라겠지.
멋있다.
치바 군이, 맹세하듯 내 손을 포개잡는다. 기뻤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갑자기 변할 리 없다. 오늘 밤도 나는 영업용 미소를 띄우고 점내를 돌아다니며 사과하는 중이다.
단골 손님에게 기대는 일이 늘어나면서, 싫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아져서 교태도 부려야 한다. 오늘은 어째서인지 무리한 주문을 하는 손님이 많다. 낯선 사람들이다.
"이봐─, 내가 주문한 술은 이게 아니라고. 벌써 마셔버렸지만"
"도망치지 말라고, 이년아. 술 정도는 따라줄 수 있잖아. 뭐? 시간값? 그딴 걸 누가 지불하냐 썅년아. 됐으니까 앉아"
아, 어쩌면.
어제 화낸 부자가 보낸 사람일지도. 맞다. 수행인에게 주소를 물어봐 해가 떠있는 사이에 꽃이라도 보내둘 걸 그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말다툼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다. 소동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퍼져간다. 분탕에 익숙한가보다. 멈춰달라고 부탁해봐도, 상대해주지 않는 단골도 있다. 나, 미움받기 시작했구나.
연상의 아가씨한테, 길드장님에게 사람을 보내달라는 의뢰를 부탁한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가게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는다. 이번달 상납금이 말도 안 되는 거액이 될 게 뻔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이, 아가씨. 네가 이 가게 마담이라며?"
불려세워졌기에, '대리예요'라며 인사한다. 아까 돈도 내지 않고 아가씨를 앉히려 했던 사람이다. 가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다가온다. 날 벽으로 몰아가듯이 또 한 명이 온다. 반대쪽에서도.
"아, 저기"
깨닫고 보니 둘러싸였다. 질이 안 좋아보이는 손님들 셋. 다른 곳에서도 소동이 커져서 빨리 가봐야만 하는데.
"어떡할 거냐고, 이거. 소스가 다 튀어서 엉망이잖아"
"난 아가씨가 술도 따라주지 않았다고. 가게 책임자잖아, 아가씨. 어떻게 해줄래?"
"성의가 뭔지는 알지? 창녀라면 창녀답게, 이 자리에서 우리한테 사죄와 배상을 해줘야지"
"아, 죄송해요. 저 가봐야 해서. 사죄라면 금방 다른 요리와 술을……"
"발가벗고 춤추는 건 어때? 잘 하잖아, 그런 거"
"하핫, 그거 좋겠네"
"자, 벗어. 빨리"
한발 한발 몰려서, 숨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능글능글 웃는다. 며칠동안 계속된 피로와 공포로, 무릎에 힘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벗으라고 말하잖아!"
어떻게든 웃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전혀 잘 되지 않았나보다.
남자 중 한 명이, '그 낯짝은 뭐야?'라며 주먹을 휘두른다. 다른 사람의 손이 내 옷을 붙잡는다.
강하게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가 퍼지고, 점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맞는 줄 알고 질끈 감았던 눈을 뜬다.
무대 위에 아가씨가 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모으고.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루쨩!
하지만, 거기 있는 여자는 하루쨩이 아니었다.
금빛 머리칼, 푸른 눈동자.
화려한 옷을 입고 파란 꽃을 입에 문 키즈하쨩이, 무대 위에서 점대를 슥 둘러본다.
그리고, 꽃을 떼어 가슴 사이에 꽂는다. 내 옷을 붙잡고 있던 남자가, 꿀꺽 군침을 삼키는 소리를 낸다.
"처음 뵙는 손님분이 많네요. 제 이름은 키즈하. 야상의 청묘정에서 일하는 창녀. 여기 화려한 여자들과는 다르게, 2층에 갇혀있는 볼썽사나운 여자예요. 오늘 밤은 굉장히 떠들썩하길래, 무심코 이끌려서 나와버렸네요. 눈을 더럽히게 만든 점, 부디 용서해주시기를"
굉장히 세련되고 우아한 경례. 펼쳐진 가슴팍에 꽂힌 꽃이 흔들린다. 허벅지가 깊게 파인 옷에서, 그녀의 길고 새하얀 다리가 엿보인다.
소동은 이미 진정됐다. 남자 손님들은, 이미 그녀에게 시선이 박힌 상태다.
"모처럼의 연회를 방해한 사죄를 해야겠네요. 키즈하는, 나으리께 봉사하는 것이 삶의 낙인 창녀. 이 문란한 여자를, 아무쪼록, 여러분의 눈과 귀로 즐겨주시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키즈하쨩이 다시 바닥을 찼다. 악단에게 보내는 신호. 들려오기 시작하는 악곡.
이건, 사랑 노래다. 버림받은 여자가, 사라진 남자를 향한 사랑과 후회와 참회를 소리치는 것처럼 노래한다. 이 노래를 불렀던 유일한 사람이 사라진 지금은, 격한 연주만이 울려퍼진다.
키즈하쨩은 노래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도 처음 보는 모습이지만 그녀는 춤추고 있었다. 옷자락을 들어올리듯 꼭 잡고, 이따금씩 바닥을 강하게 차며, 맨발 대부분을 드러낸다.
아름다웠다. 발동작도, 표정도, 손끝까지 나긋나긋해서 보는 자를 매료시킨다. 악단에게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해 소리가 커진다. 남자들도 싸움을 잊은 채 키즈하쨩에게 집중한다.
나는 이런 춤을 모른다. 야하게 보이는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긴 팔다리도 올곧은 등허리도, 무대에서 춤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멋지다. 그런데 요염함까지 갖춰져서 두근두근거린다. 봐선 안 되는 것을 보는 기분이다.
"나으리들. 키즈하를 더 원하신다면, 부디 이름을 불러주시지요. 분부만 내려주신다면, 키즈하는 얼마든 여러분을 위해 춤을 추겠어요"
남자 일동이 미친 듯이 키즈하쨩의 이름을 외친다.
오늘 밤, 난 처음으로 1층에 내려온 키즈하쨩을 봤다. 그리고 알아낸 점이 있다.
우리는 격이 다르다고.
그녀가 2층에 있어주지 않으면 곤란한 쪽은 우리였다. 야상의 청묘는 그녀다. 슬픈 사랑의 노래를 짓밟듯 그녀가 춤춘다. 그리고 웃는다. 남자들을 광란에 빠트리면서.
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키즈하쨩에게 가치가 없다는 말을 잘도 떠들어댔구나. 나는 창녀로서도 어중간하고, 마담처럼 될 수도 없다. 가치가 없는 건 오히려 나였다.
길드장의 도련님이, 건장한 남성 몇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부하들에게 지시해 문제의 손님을 끌어낸다.
가게 정중앙에서, 대성통곡하는 나를 보고, 키즈하쨩은 기쁜 듯한 표정을 짓는다. 가슴에 꽂아둔 파란 꽃을, 손님들을 향해 겨냥한다.
"이 꽃은 키즈하예요. 오늘 밤 이 꽃을 손에 넣은 분을 제가 모시지요. 부디 저를 마음껏 희롱해주세요"
그리고 던진다. 남자들이 꽃 쟁탈전을 벌이자 순식간에 갈갈이 찢어지고 말았다. 키즈하쨩은 소리내 웃으며, 춤추기를 계속했다.
나는, 귀를 막고 그 자리에 엎드려버렸다. 토할 것 같다. 하지만, 일이다. 나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해요"
길드장의 도련님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러고 보니, 마담과 함께 길드장님도 지방으로 갔다고 했지. 도련님에게 이번달 상납금이 얼마인지 물었다.
그는 엉망이 된 내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작게 혀를 찼다.
"신경쓰지 마라"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되물어보려고 했는데 도련님이 술을 난폭하게 따른다.
"방금 전, 문득 시크라소의 노래가 생각났거든. 그래서 그냥 애들을 데리고 마시러 왔을 뿐이야"
빈 술잔을 두고 일어선다. 일을 끝마친 부하도 모여들었다.
"나도, 이제 곧 아버지 일을 이어받을 거야. 너도 똑부러지게 벌어두라고"
난 고개를 숙이고 우뚝 서있었다. 키즈하쨩의 즐거워보이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손님들의 열광도 계속된다.
방에 돌아가, 침대에 화풀이를 하다보니, 어느샌가 잠들었다.
아…… 얼굴이 말이 아니다.
이래서는, 웃어도 무섭기만 하다. 화장으로 감출 수 있으려나.
그래, 케이크를 먹자. 기왕이면 모두의 몫까지 사서 여기서 먹자. 조금은 기분도 나아질 테지.
라는 생각을 하며, 씨름부 씨의 가게까지 가서, 나는 또 얼어붙었다.
"오─, 루페쨩. 다녀왔어─"
테라스 자리 정중앙에서, 하루쨩이 손을 흔들며 웃는다.
"아니, 곧장 가게로 돌아갈까 했는데 있지. 키요리가 당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다고 해서, 일단 케이크부터 사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야. 그랬더니 루페쨩이랑 기적의 재회라고나 할까~. 일단 앉아 앉아. 내 옆자리. 쌓인 이야기가 엄청 많거든─"
하루쨩의 맞은편에는 키요리쨩이 시체마냥 엎어져있다.
씨름부 씨가 기쁘다는 듯이 케이크를 대접에 얹어 날라온다. 난 그 접시에서 케이크를 하나, 손으로 집었다.
스스로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충동이었을까.
잡아다 집어던진 케이크가, 웃으며 내게 손짓하던 하루쨩의 옆얼굴에, 기적적인 재회를 시작했다.
"……우째서?"
얼굴이 새하얘진 하루쨩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는 과호흡하듯 몇 번이나 숨을 토해내고,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하루쨩 이, 바보야아아아아아아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주위 아저씨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하지만,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하루쨩의 얼굴을 본 순간, 한 순간에 흘러넘쳐버렸다.
"뭐, 뭐가, 다녀왔어야…… 내가, 얼마나, 하루쨩을 만나고 싶었는지. 도와줬으면 했는지. 그런 때에 없었던 주제에, 뭐, 뭐냐구우우!"
또 눈물이 나와버렸다. 내일 또 눈이 빨개지겠다. 그래도 이제 됐어, 그런 거.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된다.
"하루쨩의, 그런 점 싫어. 제멋대로고, 덜렁거리고. 남의 맘은 생각도 안 하잖아. 나도 항상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데. 그런 거, 모르지. 뭐든 용서해주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다고!"
사람이 모여든다. 웃음거리가 된다. 괜히 더 열받고 짜증난다. 지금은 나랑 하루쨩이 얘기하는 중인데.
발을 다친 수염난 모험자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한다.
"오우, 아가씨. 여자면서 싸울 수 있겠어? 뭐, 있는 힘껏 해보라고. 지면 내 물건으로 위로해줄 테니까 말이야"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빨개진다. 나 엄청 화났는데.
하루쨩이, 테이블을 박차며 일어선다.
점점 주위 열기가 뜨거워진다. '붙어라, 붙어'라며 부추긴다. 우리를 둘러싼 남성들의 웃음소리, 격한 숨결. 어젯밤 일이 떠올라 조금 무서워진다.
"씨름부!"
하루쨩이 화났다.
그러자 씨름부 씨가, 케이크를 담은 대접을 한 손으로 든 채 손님들과 하루쨩 사이를 파고 들어와, 한쪽발을 크게 들어올렸다.
올곧게, 하늘을 가르듯이.
그대로 쿵 하며 발을 내리찍자 땅이 울린다. 다른 한쪽발도 똑같은 동작으로 지면을 뒤흔든다. 그리고 몸을 낮게 숙이고 노려보자, 다른 손님도 기가 죽어 입을 다문다.
평소의 그가 아닌 듯하다. 엄청 강해보인다. 이거, 무슨 격투기 자세인가? 가르쳐줘요, 씨름부 씨.
"땡큐, 씨름부…… 그리고 미안한데, 그 케이크도 전부 나한테 팔아줄래? 가게 청소비도 나랑 루페쨩이 변상할 테니까, 지금부터 하는 짓은 용서해줘"
씨름부 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루쨩은 그가 들고 온 케이크를 하나 집었다. 그리고 집어던진다.
"먹어랏!"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는데, 퍽 하는 소리는 내 옆에서 들렸다.
나를 비웃던 모험자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다들 망연해한다. 하지만, 하루쨩은 기분 좋아보인다.
"어때─, 씨름부의 케이크 맛은. 맛있지. 이게 바로 여자의 폭탄이라구!"
그 모험자는, 얼굴에 잔뜩 묻은 리무초 액이 혀에 닿자──'의외로 맛있네'라고 말했다.
"아얏"
방심한 틈에, 다음은 내 얼굴에 케이크가 날라왔다.
"니시시"
하루쨩이 웃는다. 난 화가 나서, 씨름부 씨에게 '여기도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에잇!"
내가 던진 케이크는, 이번엔 완전 빗나가서, 키요리쨩의 얼굴에 퍽 하며 작렬했다.
하지만, 키요리쨩은 미동도 않아서, 진짜 죽은 게 아닌가 걱정됐다.
"……좀 봐주세요…… 이제 싸움은…… 더 이상은……"
아, 살아있네. 움직이지는 못해도 말은 할 수 있구나. 그럼, 다행이다.
"한눈 팔 때가 아니라구"
하루쨩의 케이크가 날아온다. 이번 공격은 잘 피했다. 뒤에 있던 아저씨가 케이크 범벅이 되었다.
나도 케이크를 던진다. 안타깝게 그것도 관계없는 아저씨를 맞춰버렸다. 하지만 알 게 뭐야. 난 화났다구. 다가오는 사람은 모두 케이크로 만들어주겠어. 하루쨩과, 차례차례로 집어던진다.
"나도, 언제나 웃는 건 아니라고. 화나는 일도 있고,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싶을 때도 있어. 하루쨩이랑 똑같다고"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하지만 말하지 않은 건 루페쨩이잖아. 자기 대신에 나한테만 말하게 하잖아. 뭐, 난 말하고 싶으니까 말하는 거지만"
"나도 말하고 싶어. 사실은. 하지만, 그래버리면──
"
"말하라구. 험담이든 불만이든 루페쨩은 루페쨩이잖아. 나도 듣고 싶어. 순수하게 흥미 있다구, 루페쨩이 얼마나 독설을 해댈지. 들려달란 말야"
"그거 말고도 하고 싶은 말 잔뜩 있는걸. 하루쨩이랑 재밌는 이야기 하고 싶어, 웃고 싶어. 그게 더 기운나고, 좋아한다구"
"루페쨩, 그런 점. 사람이 너무 좋다구. 엄마가 돼버렸잖아. 좀 더 세게 나오라구. 조금씩이라도 좋으니까, 어두운 면도 보여줘"
"그럼 말하겠는데, 애초에 마담 이상하잖아. 며칠이나 가게를 비울 거면, 하루 전이 아니라 좀 더 빨리 말해줘야하는 거 아냐?! 가게도 마음도 준비가 필요하다구!"
"좋네, 그 기세. 그런 걸 원했어. 그보다 마담 없어?! 루페쨩, 엄청 고생했겠네?!"
"그렇다구. 가게에서 통곡했다고, 통곡. 길드장네 도련님한테까지 동정받았다고. 최악이였어!"
"우와─, 그 녀석, 루페쨩을 위로하는 자신에게 심취했겠네─"
"그리고 키즈하쨩!"
"나왔다, 아가씨C. 그 녀석한테도 뭔가 당했구나?!"
"왠지 있지, 하나하나 무섭고, 하나하나 야하다구. 일부러 요염한 분위기를 풍기잖아. 몇 번이나 정조의 위기를 느꼈어"
"레알? 이년 가만있음 안 되겠네, 나의 루페쨩에게"
"하지만, 여러모로 져버렸어. 이기지 못하겠다고 느꼈어. 그 사람은 역시 굉장해……"
"응…… 이리와, 루페쨩. 쓰다듬어줄게"
어느샌가 케이크는 매진됐고(제대로 변상도 하고 청소도 할게요, 씨름부 씨) 나는 하루쨩의 품속에 있었다.
껴안겨서, 케이크로 범벅이 된 몸이 끈적하다. 또 울음이 터져버렸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의 눈물과는 다르게, 굉장히 기분 좋았다.
하루쨩의 등을 끌어안고,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말아줘'라고 말했다.
"응, 이제 아무 데도 안 가"
어차피 거짓말이잖아 라고, 심술맞은 말을 하고 만다. 또 금방 나를 두고 이상한 곳으로 가버릴 거잖아. 이 아이는 호기심과 행동력의 덩어리니까. 금방 친구를 만들어버리니까. 어차피 나 따위는.
"안 간다니까. 내 집이랑 세상은 여기야. 제대로 여기 사람이 될게"
엉엉 울며 하루쨩을 끌어안는다. 가슴에 힘을 잔뜩 넣고, 가슴 안에 가둬버린다.
여기에 있어줘. 내 친구야.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버렸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나니까. 나의 어두운 부분을 조금 드러냈을 뿐. 사실은 아직도 멀었다구.
그 뒤로, 하루쨩에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의 이야기.
마지막까지 듣고나서, '루페쨩 혹시 엄마를 닮았나?'라며 하루쨩이 웃었다.
그런가봐 라며, 나도 웃었다.
매일매일이 너무 바쁘게 흘러간다. 일도 열심히 하고, 나도 아주 조금 뻔뻔해졌다.
요전번에 키즈하쨩이랑 싸우고, 완패해서, 결국 할 말 못할 말 다 해버렸다.
최근엔 그녀도 조금 둥글둥글해졌다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그 사건을 계기로, 어째서인지 마담이 나한테 조금은 신경을 써주게 되었다. 이상한 모녀지간이다.
모처럼이니, 내 의견도 적극적으로 내기로 했다. 가게를 바꿔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가씨들의 복지 개선에 대해서.
언제나 도와주는 단골 모험자들 중에, 조건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고용'이라는 형태로 부탁하고 싶다고 전했다. 주점이나 2층에 서있어주면 좋겠다고. 그것만으로도 아가씨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
길드장의 도련님과도,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가씨들이 일하는 방과 개인 방을 나누고 싶다고 말해봤더니, 근처에 물건이 있나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친해지고 보니까 의외로 좋은 사람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냐면서,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보긴 했지만.
그야 지켜야하는 것은 늘려가야만 하니까. 하루쨩이 또 대사건을 일으켜줄 테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매일매일이 바쁘다.
점심은 치바 군과 만나기로 했다. 하루쨩은 '싫어'라고 하길래, 나 혼자서 씨름부 씨의 가게로 향한다.
"오─, 케이크 아가씨. 이번주 신작도 맛있더라. 자, 하나 가져가"
"고마워요"
발을 다친 수염난 모험자는, 다 낫고나서도 이 가게를 다닌다. 케이크를 먹고 싶다면서. 그런데 너무 많이 먹잖아.
그 밖에도 케이크를 먹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여성 손님도 있다.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는 사이에, 받은 케이크를 조금 집어먹고, 뜨개질을 재개한다.
괜찮은 털실이 있어서 다행이다. 밝은 귤색으로 해봤다. 시크라소 씨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이건 무조건 귀엽다. 무조건 어울릴 거다.
그렇게 믿으며, 열심히 뜨개질을 한다. 아직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좀 더 다양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엄마처럼.
"기다렸지~. 이야 오늘도 진홍, 무사히 숲으로 수행을 쌓으러 갔다왔지만, 요즘엔 전혀 마물이 나오질 않아서 말이야. 군대까지 조사하러 온 탓에 우리는 쫓겨나고 말았지 뭐야. 드디어 그 시기인가. 마왕도 나를 두려워하게 된 느낌이려나, 과연 진홍의 엔드리스──어라, 밥 벌써 다 먹었어?"
치바 군이 갑자기 나불나불 떠들어대며 맞은편에 앉더니, 케이크를 보고서는 물어본다. 다른 손님한테 받은 거야, 라고 대답한다.
그랬더니 어째서인지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한테 얻어먹는구나……?"
전에 한 번, 살짝 마음이 약해져 울어버린 이후로 치바 군은 나랑 사귀는 사이라도 된 것처럼, 때때로 이렇게 속박하는 듯한 말을 한다.
"뭐 문제라도 있어?"
"어, 아니, 전혀!"
하지만 조금 노려보면 남자다운 면이 쏙 들어가버려서, 그다지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러는 점이 싫을 뿐이지, 치바 군을 싫어하는 건 아니라서, 딱히 사귀는 것처럼 굴어도 상관없다.
지금은 바쁘니까, 한가한 사람이랑은 사귀어줄 수 없지만. 딱 그 정도라는 느낌이다.
"그래도 밥은 내가 살 거라구!"
"고마워. 언제나 미안해"
정말 알기 쉬워서 웃어버린다. 치바 군은 날 웃게 해준다.
그런 남자애는 귀중하다. 감사하고 있어. 엄청.
"됐어, 그야……"
뜨개질하는 손을 멈추지 않는 나에게, 어째서인지 치바 군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를 위해, 뭔가 엄청난 걸 만드는 모양이고……"
"이거? 아니야. 하루쨩한테 줄 모자야"
"어, 하루한테? 아니, 모자 치고는 작지 않아? 그 녀석 뿔이라도 돋아났어?"
라고,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하길래 오히려 내가 놀랐다.
정말 질린다니까.
하루쨩도 참, 치바 군한테 아직 말하지 않았구나. 친구면서 쌀쌀맞기는.
"이거, 아기용이야. 하루쨩, 아이를 뱃거든. 다들 엄청 난리였다니까"
"흐─응"
치바 군은, 씨름부 씨가 날라온 차의 향을 만끽하며 입에 머금더니, 고개를 돌려 옆자리 아저씨 얼굴에 전부 뿜어버렸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그리고,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지더니, 콰직 소리와 함께 땅에 머리를 박으며 꿈쩍도 안 하게 됐다.
마치 언젠가 있었던 살인사건 같은 현장에 쭈뼛쭈뼛하는 씨름부 씨에게, 육류 요리를 2인분 주문한다.
체력도 붙여놔야지.
하루쨩의 아이라면, 분명 말썽꾸러기일 게 분명하니까.
나도 훨씬훨씬, 바빠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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