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도는 눈을 감는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다.
늑골과 복근이 움직이며, 코부터 가슴까지 차가운 바람이 지나간다. 허파가 부풀어오르고, 다시 쪼그라든다.
다 드러낸 피부를 차가운 공기가 자극한다. 스스로를 끌어안으며, 팔로 가슴과 어깨를 감싼다.
몸 안과 밖을 찬 공기가 둘러싸며, 통증이 육체의 윤곽을 만들어낸다.
그 통증을 양식으로 삼아 천천히 눈을 뜬다.
아무것도 없다. 전혀 아무것도 없다. 허공 위를 떠있을 뿐이다.
또는.
어둠이 그곳에 있었다.
어디까지 계속되는 어둠. 모든것을 집어삼키는 광대한 어둠.
자신은 이곳에 있다, 라며, 필사적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비명처럼 내지른 외침은, 아무 반향도 없이 어둠 속에 삼켜졌다.
자신의 존재는 허공에 비춰진 무한소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별빛도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하얀 빛은 창처럼 날카롭게 눈을 찔러댄다.
문득, 그 별빛에 그늘이 드리운다. 그늘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무언가가, 터무니없이 거대하고 꺼림칙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별들을 뒤덮는, 꺼림칙한 촉수의 무리.
히디어즈!
진공 상태를 견뎌내는 갑각에서 전방위로 팔을 뻗는 그것은, 허약한 사람보다도, 훨씬 더 우주 자체에 적응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것은, 닿는 모든것을 붙잡으며, 잘라내고, 그리고 먹어치운다.
느릿한 그림자는 거대함을 늘려간다. 왜냐하면, 손에 닿기를 거부하는 것들을 먹어치워서 거대해졌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가까이 다가갔으니까.
숨이 막힌다. 심장이 옭매어지는듯한 공포.
허공을 버둥대며,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려고 한다. 별들은 변함없이 빛나며,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림자는 거대해져간다──.
히디어즈의 촉수가 소년에게 뻗어온, 바로 그 순간.
빛과 열이 소년을 농락했다.
뒤돌아보니, 그곳에 반짝이는 빛이 있었다. 빛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강철의 거인.
그것은 백색과 청색으로 빛나며, 밀려오는 어둠에 맞서고 있었다.
아무리 짙은 어둠이 몰아치더라도, 설령 무한소의 점일지라도, 그래도 생명은 이곳에 있노라고, 그것은 외치고 있었다.
사람은 그 힘으로 보다 크고 위대하게 되며, 어둠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그것은 믿고 있었다.
──머신 캘리버!
외침과 함께, 소년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려오더니, 얼음구슬이 되며 흩날렸다.
거인은 어깨에 짊어진 거대한 포탑을 치켜들며 어둠 속을 사격했다.
방대한 에너지──시공조차도 휩쓸며, 파쇄해버릴 것만 같은 에너지가 극히 협소한 공간에 투사되어, 히디어즈의 눈동자를 꿰뚫으며 폭파시킨다.
별들의 빛이 사라진다. 어둠 속에서 더 많은 촉수가 나타난다.
호응하듯 머신 캘리버도 차례차례 날아오더니 대오를 이룬다.
그 수는 수십, 수백, 수천…….
그 작은 점은, 히디어즈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뿜으며, 사라져간다. 그렇게 생겨난 틈새를 다음 점이 채워넣는다. 자그마한 점 하나하나가 생명이며, 꺼져가는 불꽃 하나하나가 죽음을 뜻한다고, 소년은 올바르게 이해했다.
무수한 히디어즈와 무한한 어둠을 비교하면, 빛의 반짝임은 너무나도 작고 덧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것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이라는 불꽃은 어둠 속에서 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그 빛에는 의미가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바랐다.
언젠가, 그 한 명이 되고 싶다고. 강철 거인과 한 몸이 되어, 공포를 뛰어넘어, 어둠 속으로 돌격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나 절망적이며, 자신의 몸이 으스러진다 해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2-
고독과 공포, 그리고 전투의 꿈에서 레도는 눈을 떴다.
가상 현실 공간에 들어갈 때에 언제나 반복해서 봤던 심상. 또는 바탕이 되는 기억, 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하다.
인류 은하 동맹에서 태어난 자는, 생후 바로 부모로부터 떨어지게 된다. 육체적인 뒷바라지는 육아 시스템에 맡겨지는 한편, 정서면이나 인격적인 성장은 주로 수면 학습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레도에게 있어서 유소년기의 기억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없는 것처럼 애매하다.
하지만, 레도는 그에 대해 딱히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많은 소년들처럼, 그의 눈은 과거보다도 미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꿈의 잔향을 쫓는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은 레도에게 있어서 첫 시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첫 기회다.
이 광활하게 넓은 우주에 있어서, 레도가 하루하루 호흡하는 산소도 소비하는 식량도, 전부 귀중한 에너지를 사용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레도가, 그에 어울리는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살아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레도는 잔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것이 인류 은하 동맹의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존망을 건 전쟁이다. 모든 사람이 진심으로 힘을 모아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전투다. 어리석은 자나 이상한 자에게 줄 자리가 없다는 사실은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아직 앳된 모습의 레도는, 일찍이 지구의 축복받은 국가였다면 '아직 꼬마'라고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은하 동맹에서는 '십 년도 넘는 세월동안 무상으로 국가에게 기생하는 존재'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 그 빚을 변제하기를 레도 자신이 바랐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 순수한, 소년이다.
-3-
레도가 주위를 바라본다.
딱히 특별한 것도 없는, 텅 빈 익숙한 통로.
귀에 들리는 소리는, 익숙한 환풍기의 울림. 발밑에 희미하게 느껴지는 동력부에서 울려퍼지는 진동.
폐쇄 공간인 우주 스테이션에서 환풍기가 정지할 경우, 산소 결핍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동력부가 정지할 경우 일어날 문제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 두 가지를 확인하고, 레도는 희미한 안도감을 느꼈다. 평소와 같은 풍경. 익숙한 스테이션.
하지만 시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오른팔을 바라보자, 레도는 커뮤니케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휴대 단말인 커뮤니케이터는 통신 기능 및 각종 정보 처리 기능이 딸려있는 외에도, 동맹에서의 지시가 상시 송신된다. 그게 없다는 말은.
──스스로 생각하라는 뜻인가.
레도는 그렇게 이해했다.
현재, '현실의' 레도는 시뮬레이터 시트에서 눈을 감은 상태이며, 주변 풍경은 컴퓨터에 의해 구축된 정교한 가상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아무것도 없는 통로'는 대체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시험이 시작되는 것일까.
답은 바로 나왔다.
무거운 타격음. 그 뒤로 금속이 맞부딪치는 금속음이 귓가에 울려퍼졌다.
작은 균열이 강력한 힘에 의해 점점 퍼져가더니, 이윽고 그 틈새로부터 옅은 보라빛의 진흙같은 무언가가 스며 나온다. 진흙은 곧 형태가 되고, 하나의 촉수가 된다. 촉수가 크게 울부짖으며, 문에 커다란 구멍을 뚫으려는 수많은 촉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우유빛의 껍질이 방에 나타났다.
히디어즈.
레도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중얼거렸다.
히디어즈는 생명체의 일종이라 알려져있다. 일종이라는 말은, 그들이 지닌 생명이 하등하며, 인체의 정교한 구조로써의 생명과는 도저히 동일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개체에 따라 부분부분 다른 곳이 있지만(이 역시 히디어즈가 하등 생명이라는 증거이다) 대부분 갑각을 가졌으며, 그 갑각에서 방사 형태의 촉수를 키운다. 히디어즈는 하등생명체이며, 하등하기에 생명력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차피 인류의 지혜에는 적수가 되지 못한다.
레도는 그렇게 배웠으며, 그를 의심할만한 근거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배'에 침입해온 신장 5m 정도의 히디어즈와 단독으로 대치한 레도는, 이런 때에는 '인류의 지혜'가 그리 도움되지 않는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력으로 달리면서, 레도는 시험에 대해 생각했다. 이 히디어즈를 쓰러트려야 하는가, 혹은 도망쳐야 하는가, 그 외에 수단을 모색해야 하는가. 무엇이 가장 고득점일까.
전력으로 달리면서 주위를 관찰한다. 통로의 우주쪽 면에 달린 창문이 칠색으로 발광하고 있다. '배'의 밖에서는 지금도 머신 캘리버 부대가 싸우고 있다.
그 방위망을 빠져나온 일부가 '배'의 벽면에 달라붙어, '아이'라 불리우는 소형 히디어즈를 낳았다는 시나리오다.
도망 역시 하나의 답이겠지. 살아남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히디어즈의 아이를 내버려두면 피해가 늘어난다. 방치한 탓에 동력로까지 침입을 허용할 경우, '배' 전체가 위험하다.
──싸우자.
레도는 그리 다짐하며, 딱 한 순간 뒤돌아봤다.
옅은 보라색의 점토 덩어리가 통로로 가득 퍼지면서 무수한 촉수를 휘두르며, 하얀 껍데기를 끌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갑자기 지면이 멀어지며, 발밑에 감촉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커다란 덩어리를, 레도가 힘겹게 다시 삼킨다.
전신에 퍼지는 불쾌함이, 공포라 불리우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레도는 슬슬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성은 이곳이 가상 공간의 시나리오일 뿐이니 공포를 느끼기에는 불합리하다며 외치고 있다. 하지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그것을 거부한다.
소리를 내며 거대한 녀석이 뒤에서부터 덮쳐오고, 거기에 악의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레도의 전신은, 공포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싸워야만 한다.
왜냐면, 그것이 레도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싸우지 못하는 인간은 살아갈 자격이 없으니까.
왜냐면, 히디어즈는 무질서이며, 무질서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지고한 가치이니까.
레도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직.
──생각해라.
달리면서 레도는 생각한다. 히디어즈와의 전투에는, 보통 광학 병기를 사용하지만, 물론 소년인 레도에게 그런 장비는 지급되지 않았다.
달리면서 비상용 박스를 잡아 뜯으며 비치된 도끼를 집어든다. 손잡이의 버튼을 누르자 금속부가 가열되기 시작한다.
본래는 긴급시에 칸막이벽이나 창문을 깨기 위한 것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레도는 떨리는 발을 도끼 손잡이로 때려서 억누르며, 히디어즈쪽을 바라본다.
옅은 보라색을 띄는 히디어즈의 촉수가, 지금은 분홍색으로 물들고 있다.
필사적으로 히디어즈에 관한 지식을 떠올린다. 히디어즈의 색상 변화는 개체에 따라 다양하지만, 단시간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때는 경계할 때와…… 포식할 때다.
무수한 촉수가 방사상태로 펼쳐지며, 감춰져있던 입과 이빨이 드러난다.
이렇게 보니, 히디어즈에게도 포식에 사용하는 '손' 또는 '손가락'에 해당하는 촉수와, 이동할 때 사용하는 '다리'에 해당하는 촉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포로 마비되면서도, 레도는 뇌 어딘가에서 냉정하게 관찰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냉정한 뇌가, 지금이라고 속삭이는 순간, 레도는 히디어즈의 목구멍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목표지점에서 희미하게 빗나가, 도끼는 입가의 촉수를 찢어버렸다. 도끼가 닿은 곳에서, 뭉게뭉게 검은 연기가 피어난다.
도끼를 뽑아내는 반동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레도가 신음한다. 코를 찌르는 이상한 자극. 이건 독인가? 아니, 다르다. 독은 아니다. 이건──악취다.
완전하게 제어된 인공 환경에서 사는 레도에게 있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고기가 썩는 냄새는, 머리를 강타하는듯한 자극을 동반했다.
갑자기 도끼가 끌어당겨진다. 그 자극에 레도가 제정신을 되찾았다. 히디어즈의 촉수가 뻗어와 도끼를 휘감고 있었다.
레도는 서둘러 손을 뗐다.
히디어즈의 입으로, 촉수가 도끼를 옮겨간다.
하등생물다운 반사행동이다.
뜨겁게 달궈진 금속을 스스로 입으로 옮긴 히디어즈의 전신이 부르르하며 크게 떨린다.
──지금이다.
레도가 달린다. 등에서 땅울림이 느껴진다. 원시적인 분노에 휩싸인 히디어즈가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통로의 칸막이를 넘어, 칸막이벽 폐쇄 장치를 찾는다. 보호유리를 깨부수고, 레버에 양손을 얹는다.
그리고 레도는 기다렸다.
당장에라도 레버를 당겨 칸막이벽을 닫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히디어즈는 다른 곳을 향할 테고, 다른 동포를 먹어치우겠지.
그러니, 지금은 기다려야만 한다.
시간을 따지자면 고작 2초. 하지만, 그 2초는 레도 생애에서 가장 긴 2초였다.
굴러오는 히디어즈의 땅울림이 최대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레도는 레버를 당겼다.
──무거워!
안전성의 일환인지, 혹은 어린아이가 건드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지, 레버는 지독하게도 무거웠다.
땅울림이 다가오며, 칸막이벽 앞에 히디어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도는, 모든 체중을 담아 레버를 당겼다.
손가락이 부러지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파직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지는 불안한 소리와 함께, 내장이나 촉수가, 뭉게지듯이 깔리기 시작한다. 이쪽으로 뻗어오는 촉수가, 미친듯이 움직이자, 레도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이윽고 그 촉수가 퍽 소리를 내며 땅으로 쓰러지며, 검푸른 체액이 칸막이벽 아래를 물들이기 시작한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악취에, 레도는 코를 틀어막았다.
──살았, 나.
심호흡을 하고, 숨을 고른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몇분정도밖에 되지 않는 운동으로, 저주앉고 싶을 만큼의 피로가 쌓였다.
웅크린 상태로 잠에 빠지고 싶었다. 차갑고 딱딱한 크로뮴으로 구성된 바닥도, 지금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레도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야.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호흡을 가다듬고 걸어나간다.
-4-
통로에는 변함없이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미 피난구역으로 이동을 끝마쳤다, 라는 시나리오겠지.
그렇다면, 우선 그곳을 목표로 하고 합류하는 것이, 비상시의 매뉴얼에 따른 행동이리라.
커뮤니케이터가 없으므로 맵을 켤 수 없지만, 통로의 표식으로 대부분 알 수 있다. 레도는 피난구역을 향해 나아간다.
중간에 있던 비상용 박스에서 도끼와 손전등을 꺼낸다.
몇번이나 모퉁이를 도는 사이,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 그것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다.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한다면, 피난구역으로 멀리 돌아가게 된다.
──어린애는 득점이 높아.
레도는 즉시 그렇게 판단했다.
어린아이의 양육에는 많은 자산이 쏟아지며, 그를 변제하기 전에 사망할 경우, 사회에 있어서 크나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통로 앞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구역 자체가 정전된 것이다.
비상용 박스에서 꺼내온 손전등을 집어든다. 그리고…… 그대로 나아간다.
도끼를 쥐고, 발소리를 죽이며 어둠 속을 헤쳐간다. 다행히도 창문을 통해 전투중에 발생하는 빛이 새어들어와, 통로도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서서히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다.
정전이 발생했다는 뜻은, 히디어즈가 있다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불빛을 비추는 행동은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즉, 손전등은 함정이다.
──있다!
예상대로, 하얀 껍질을 한 히디어즈가 옅은 보라색 문에 찰싹 붙어있다. 시간을 들여 문을 짓누를 생각이겠지.
방금전 녀석과 비교하면 소형으로, 길이도 1m가 살짝 안 되는 정도다.
──살려줘!
소녀의 목소리는, 그 문 안쪽에서 들린다.
레도는 호흡을 가다듬고, 신중하게 도끼를 겨누며 껍질을 피해 히디어즈의 입을 노리고, 단번에 찍어내렸다!
새된 금속음과 팔이 저려오는 반응.
도끼는 히디어즈를 관통하고, 문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피가 튀면서 도끼를 검퍼렇게 물들인다. 히디어즈의 전신이 경련한다.
만약을 대비해, 한 번 더 일격, 그리고 이격.
──누구야? 누구 있어?
금속음을 들은 소녀가 목소리를 낸다.
"그래, 도우러 왔어"
레도가 대답한다.
"문 연다?"
손전등의 스위치를 켜면서, 레도는 방심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히디어즈의 숨통을 끊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갑자기 히디어즈의 몸이 움찔하며 움직였다. 촉수가 몸을 일으키고, 껍질이 솟아오른다.
레도가 '열지 마!'라고 외치던 때에는 이미 늦었다.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문의 틈새로, 히디어즈가 재빠르게 몸을 내던졌다.
당황하던 레도의 손에서 도끼가 떨어진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 우연이 레도를 구했다. 도끼를 휘둘러도, 히디어즈의 촉수를 두세개 떨어트리기가 고작으로, 소녀를 구하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레도는 양손을 뻗어 히디어즈의 촉수를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산성 점액이 잔뜩 덮여있는 촉수는 끈적끈적하며 미끌거렸지만, 생리적 혐오감을 억누르며 히디어즈를 잡아당겨서 내던진다!
통로 벽에 찰싹 달라붙은 히디어즈가 촉수를 뻗어 일어나려던 때, 레도가 도끼를 다시 줍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분명하게, 껍질을 깨부수고 히디어즈의 숨통을 끊는다.
"고맙습니다"
등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레도가 돌아본다.
금발의 소녀가 완벽하게 인사를 해보인다. 아이 치고는 너무 완벽하다는 부분은, 가상현실의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라고 레도는 생각했다.
"히디어즈가 더 있니?"
"이거 말고는 보지 못했어요"
"그런가"
"저를, 피난 구역으로 데려다 주실 수 있나요?"
"그러도록 하지. 따라와"
미리 준비해둔 메세지를 읽는듯한 기계적인 회화에, 레도는 오히려 안도했다. 어린아이답게 울어버린다면 곤란했을 뻔했다.
-5-
피난 구역까지 가는 사이, 소녀는 한 마디도 않고, 레도도 말을 걸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말을 걸어 안심시켜주는 편이 득점이 높으리라 생각했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적어도 손이라도 잡자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으나, 레도의 손은 히디어즈의 피와 점액으로 더러워진 상태다.
피난 구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잔뜩 잠긴 목소리. 노인의 목소리다.
어린 소녀가 레도를 올려다본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슬픔과 공포. 그 표정의 뒤에 시험관의 의도를 찾아내려던 레도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졌다.
레도는 소녀에게 필사적으로 미소를 지어보낸다.
"저 통로만 지나면 피난 구역인데, 혼자서 갈 수 있겠니?"
끄덕, 하며 소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뛰어가서 문을 열어달라고 해, 문이 열리면 바로 들어가야 한다"
소녀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꾸벅 숙이며 인사한 뒤 통로를 달려갔다.
정말 완벽한 인사구나, 라고 레도는 생각했다.
-6-
통로를 달리며 레도는 고민한다. 노인은 득점이 낮다. 사회 공헌도가 낮으니 당연하다. 그렇기에 노인이 젊은이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은 있어도, 그 반대 상황은 있어선 안된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레도는 달린다.
득점이 낮더라도 제로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죽지만 않으면 된다.
금속을 긁어대는듯한 소리에, 레도가 발을 멈추고 모퉁이를 신중하게 엿본다.
상황은 방금전 소녀와 닮았다.
3m정도 되는 히디어즈가 노인이 있는 문을 옭아매고 있다.
레도는 잠시 생각하고, 결론을 낸다.
──노인은, 함정이다.
몸집이 크니 이전 방의 히디어즈처럼 정면에서 맞서기는 어렵다.
근처 칸막이벽은 튼튼하지만 천천히 내려오는 타입이라, 깔아뭉게기도 무리다.
즉, 가만 내버려두면 된다.
칸막이벽을 내려서 격리하면, 피난 구역으로 이어지는 동력로에도 다가갈 수 없다.
레도가 돌아가려고 등을 돌리지만…… 결국, 다시 한 번 돌아봤다.
우주를 달리는 강철 거인들. 온갖 공포를 초월하며 히디어즈와 싸우는 인류의 수호자들.
지금 등을 돌린다면, 두 번 다시 그들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레도는 떨리는 손으로 도끼를 고쳐잡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내던지듯이 뛰쳐나갔다.
-7-
밖에서 비춰지는 빛에, 레도는 자신이 눈을 감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뮬레이터 해치는 이미 열려있었다.
수면 모드가 종료되며, 착석 모드로 전환된다.
시트가 부드럽게 변형하며 올라가고, 레도의 등을 천천히 세운다.
레도가 크게 몸을 움직이며 혈액 순환을 유도한다.
시험은 끝났다.
그 의미가, 서서히 몸으로 흘러들어온다.
양손으로 몸을 더듬는다. 무사하다. 늑골도 부러지지 않았고, 내장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 때, 노인의 방 앞에 있던 히디어즈는 레도의 접근을 눈치채고 재빠르게 촉수를 뻗어 레도를 움켜쥐었다. 레도가 도끼를 휘두르는 것보다 빠르게, 몸을 감고있던 촉수가 무서운 힘으로 레도를 짓뭉게버렸다.
가상현실 속이라곤 하나, 늑골과 척수가 눌리며 내장이 짓뭉게지는 감각은 리얼해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레도는 얼굴을 찌푸렸다.
제대로 된 전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애초에 싸우기를 선택한 시점에서 틀렸다는 뜻이겠지. 레도의 생각대로, 노인은 함정이었다는 말이다.
왼팔의 커뮤니케이터를 만지며 메뉴를 불러낸다. 익숙한 정보 윈도우가 홀로그램이 되어 시야 끝에 떠오른다.
현 상황에서 아직 성적은 '채점중'이었지만, 명백히 어리석은 행동을 취해 죽었으니 그다지 기대는 할 수 없다.
레도가 작게 한숨쉰다.
지금 이 순간은, 시험에서 점수를 잃은 것보다도, 얼굴도 본 적 없던 노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순수한, 소년이기에.
-8-
이렇듯 시험이 가상 현실에서 실행되는 이유는, 다양한 상황을 준비할 수 있으며, 측정 가능한 데이터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시험중 온갖 시점에 있어서 피험자의 신체 데이터…… 맥박수, 땀, 체온, 뇌파, 근육의 움직임이 전부 기록되고 분석된다.
그 방대한 데이터는 마더 컴퓨터에 의해 처리되며, 분석 결과는 인사부로 전송된다. 인사부는 그 결과에 따라 각 사람의 진로를 결정한다.
원래는 인간의 판단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마더 컴퓨터였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는 온갖 의사 결정 기관에 도입되었다. 어느 의미에서는 마더 컴퓨터의 분석을 인간이 승인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마더 컴퓨터에 사람과 같은 마음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그것은 인간 심리를 보다 깊이 파악하기 위해 항상 자기개량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시스템은 이미 만들어낸 인간조차 이해할 수 없는 물건이 되버렸다. 거기서 태어난 복잡한 시스템은, 일종의 '마음'이나 '의사'라 부를 수도 있으리라.
지금, 그 '의사'가, 레도의 데이터를 수많은 수험자의 데이터와 함께 분석하고 있다.
해당 개체의 현실 인식은 양호. 자신의 오감을 신뢰하고 있다. 시험이 가상 현실이라 알고는 있어도, 완전히 게임이라고 구분지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히디어즈에 대해 강한 공포를 느낀다는 점은 건전한 자기애의 결과이며, 삶에 대한 집착이 있다는 뒷받침이 된다.
한편, 그 강한 공포 속에서도 전투라는 수단을 고르는 용기가 있다.
소녀와의 해후에 있어, 레도는 전투를 치르는 데에 주저가 없었다.
이는 레도의 용기가 전투 자체의 고양감이 아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강하게 발휘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노인과의 해후에 있어서는, 그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또다시 노인을 지키려는 마음이, 시험이라 딱 잘라 구분하는 마음을 능가했다.
이상의 데이터로 유추되는 결론.
레도라는 소년은 '방패'타입이다. 죽고 싶어 환장하지는 않았지만, 목숨을 버려가며 누군가를 지키려는 용기가 있다.
전장에 있어서도 누군가를 지키게 함으로써,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의사'는──무수한 수치와 방정식의 참조 결과를 굳이 인간의 언어로 나타내자면──이와 같이 레도의 적성을 판단한다.
물론, 이는 현 시점에서의 적성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의 성장에 따라 그 인격은 다양하게 변화할 것이다.
마더 컴퓨터는 그 변화의 계기가 될만한 것들──그와 같은 시간을 지내는 자들을 선발한다.
이윽고 여섯 명이 선발된다.
그 자질은 각각,
'방패', '곤봉', '지배자', '노예', '정열', 그리고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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