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언더 테이커란?
괴상한 일에서 '영장 업무 청부인'으로써 다양한 사건에 조우하는 천진난만(바보)한 소녀 에토우 히로의 느긋한ㅡ하지만 조금은 애달픈 이야기. 이번회의 이야기는 그런 히로가 중학생이 되고난 뒤의 에피소드. 이야기의 시간 배경은 1993년 전후의 '근과거'이다
● 에토우 히로
좋게 말하면 천연, 나쁘게 말하면 바보같은 소녀. 독자적인 이론으로 사물을 해결해보이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슈퍼 바보'
● 한니발
영장용 총 '아스트라M44'에 빙의한 새끼고양이 모습의 파밀리아. 주로 하는 행동은 머리를 싸매면서도 조언하며 이끄는 것
● 미시마 소우기
젊으면서도 굉장한 실력의 소울 언더 테이커. 침착 냉정하지만 히로에게는 금방 화내곤 한다
● 에토우 히로코
히로의 어머니. 딸의 성장을 (불안해하면서도) 따듯하게 지켜보는 어머니
● 에토우 후미카
히로의 여동생. 어른다운 성격으로, 어릴적 그대로의 언니에게 항상 딮빡침을 느끼곤 한다
***
밥은 좋아하지만, 식사 내용이 밥밖에 없다면, 그건 굉장히 쓸쓸한 일이다. 에토우 히로가 왼손에 든 밥그릇 속에는 흰 쌀밥이 삼분의 일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찬인 연어토막은 껍질도 남기지않고 다 먹어버렸다. 야채의 꽃이라는 으깬두부무침도, 두텁게 구운 계란말이도, 간을 한 김도, 이미 식탁 위에는 남아있지 않다.
히로에게 남겨진 것은 백반과 건더기를 다 건져먹어 아무것도 안 남아있는 된장국 뿐이었다. 이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히로, 식사는 천천히 하는 법이지만, 좀 서두르지 않으면 또 지각할 거라나다... 후미카는 이미 가버렸어"
이미 식사를 마친 어머니가 밥그릇을 들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 딸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엄마,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는 거랑 밥에 된장국을 붓는 것, 어느쪽이 예의없는 짓일까"
어느쪽도 좋지 않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있다면 빨리 학교에 가도록 하렴. 즉답으로 그렇게 잘라말하는 편이 부모로서의 의무겠지. 하지만 두 아이의 어머니인 히로코 씨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딸에게 하는 말을 상냥하게 선택하고 싶었다. 엄격한 부모는 될 수 없어보인다
"...그렇구나, 어느쪽도 별로 좋진 않지만, 다른사람 집에서나 급식이나 레스토랑같은 곳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라면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
"음ㅡ"
기묘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히로는 어머니의 얼굴과 밥을 번갈아 쳐다본다. 어머니는 딱히 상관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도 되겠지. 하지만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을지, 밥에 된장국을 부을지, 뭘 해야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런것까지 어머니에게 결정해달라고 하는 건 좋지 않다. 무엇이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하는 말만 듣다가는 머리가 굳어버리니까, 적당하게 무시하라고 할머니가 말했었다.
"그럼 할머니 말도 별로 안들어도 돼?" 라고 물어봤더니 "할미가 하는 말은 세월의 풍파를 겪은 인생의 정론이니까, 잘 듣도록 하거라. 하지만 다른 할아범이나 할망구가 하는 말은 안 들어도 된단다" 라고 대답했다. 제멋대로인 할머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건 좋지 않다. 제멋대로라던가, 금방 화낸다던가, 그 주변까지 뭉뜽그려 "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정리해두면 세상이 둥글어지는 기분이다. 실제로 할머니는 나에게 있어서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아무 문제도 없다.
(히로,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지 말고 밥이나 먹는게 어떠니? 이번달에만 지각이 3번째라니, 좋지 않잖아)
목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은, 히로와 그녀의 어머니인 히로코밖에 없는데. 집고양이인 하츠히코와 니케가 방 안을 가로질러다니곤 하지만,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말을 못하므로 숫자에 넣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아ㅡ 그러네, 하루 씨. 빨리 먹어야지"
자신의 어때에 목을 내밀고 뭔가 말하는 딸을 보고도, 어머니는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딸이 보이지않는 무언가와 얘기하고 있어!" 라면서 당황해야 하겠지만, 어머니는 딸이 이런 아이라는 것을 슬플정도로 알고있다.
"히로, 자기 어깨를 향해 말하는 건 엄마도 아빠도 후미카도 깜짝 놀라니까 많이는 하지 마렴"
"아, 죄송해요. 하루 씨도 그만두라고 말하는데, 무심코 하게 되버려서"
하루 씨라니 누구? 라고 히로코는 묻지 않는다. 물어보면 명확한 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건, 어떤 의미로는 무서운 일이었다. 자기 딸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대화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은
"...밥먹고 양치하고 빨리 가야지. 고양이 모래는 봐둘테니까"
"네ㅡ 그럼 밥에 된장국 부을게"
히로코가 곤란하다는듯한 얼굴로 나가는 것과 히로의 어깨 위에서 무언가가 짤막한 한숨을 내뱉는 건 거의 동시였다.
(...그러니까, 나랑 대화하는 건 육식(六識)으로 날리라고 항상 말하잖아. 내 목소리도 모습도, 영수(霊髄)가 흐르지 않는 인간에게는 알 수 없다니까)
히로의 어깨 위. 그곳에는 원래라면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히로의 눈에는 그녀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여동생에게도 보이지 않는 고양이가 올라타있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작디 작은, 새끼 고양이였다. 잿빛 줄무늬를 지닌 고양이는, 배나 발 등의 일부분이 하얗다. 꼬리가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짧고, 오른쪽 수염이 왼쪽의 절반밖에 없으며, 오른쪽 귀의 끝부분이 톱니모양으로 들쭉날쭉하다. 매우 귀여운 고양이다... 라고 히로는 생각하지만, 당사자인 고양이는 극히 부정하고 있다
(아ㅡ 그랬었지. 하지만 역시 이 대화법은 싫은걸. 피부로 대화하고 싶은걸. 역시 말은 목소리로 내고 싶어. 하루 씨는 유령이니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겠지만, 난 목소리가 나오는걸)
(...유령이 아니라, 사역용 영적 물질 고등 결합체(하이파밀리아)라고 예전에 말했던것 같은데)
(그렇게 길면 기억할 수 없다구. 아ㅡ 먹으면서 말할 수 있는 건 편할지도! 하지만 밥먹으면서 떠드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데)
된장국을 부은 밥을 씹으면서, 히로는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새끼고양이와 대화를 한다
(...우선, 빨리 먹으라구. 중학생이 되고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지각이 많아서야 교사나 동급생들의 인상도 나빠질 거라구)
(지각같은 건 이제 관계없이 인상은 나쁘니까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아. 한니발이라는 본명으로 주인에게 불려본 적이 없는 하루 씨는, 고양이 귀를 씰룩씰룩 경련했다
어째서 자신의 마스터는 이렇게나 어리석은 걸까. 어째서 이런 마스터에게 자신과 아르케부스가 도달한 것인가.
이것 또한 운명인 것일까
(...운명 따위, 저주받아버려라)
맛있다는듯이 된장국을 부은 밥을 먹는 히로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면서 한니발은 푸념했다
자기자신이 저주받은 고양이인 주제에 운명을 저주한다던가, 웃기는 이야기다. 한니발은 뒷발로 귀를 긁으면서, 만나고 네달 가까이 지난 자기 마스터의 옆모습을 보았다.
매우 행복하다는듯한 얼굴이었다
***
에토우 히로는 바보라고 불리운다. 어느정도 바보냐면, 본인에게 "너 바보지?"라고 물어보면 "그런 뻔한 사실을 물어보면 곤란한걸, 별로 곤란하지 않지만"이라고 대답해버리는 바보다
입이 거친 사람들은 멍청한 얼굴을 하고있다고 하지만, 호의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언제나 웃고있으므로 애교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먼 곳을 바라보는듯한 눈은 뭔가 거물의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ㅡ 라는 것은 한니발의 대략 긍정적인 바램이었다.
히로는 자랑할만한 점으로 친화력이 좋다는 것과 양손잡이라는 점 정도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녀는 어떤 종류의 재능 비스무리한 것을 확실하게 갖고있다
"하루 씨, 그 알....... 얀코빅 이었던가?"
현관에서 허리를 숙여 신발을 신고있는 히로가, 입고있는 블레이저를 펼치며 그것을 두들겼다
그녀가 두들기며 보인 것은, 홀스터에 수납된 길이 293미리의 대형회전식 권총ㅡ리볼버였다. 지식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스페인의 아스트라 운세타 회사가 제조한 아스트라 모델 44라는 물건과 닮아있다고 식별할 수 있겠지. 세부하게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던간 일본의 한 도시에 살고있는 약간 나사풀린 중학생 일학년 여자애가 태연하게 갖고다녀도 좋을 물건은 아니다.
(...어째서 알 얀코빅이라는 이름은 기억하면서 아르케부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 너는...)
알케부스. 한니발이 그렇게 부른 이 총은, 관상용이 아니라 실용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실용성이란,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건, 혼의 장례에 쓰는 총이다. 방황하는 양(스트레인지 쉽)이 되어 지상을 떠도는 애처로운 혼을, 울부짖는 늑대(하울링 울프)로 변해 생자를 습격하는 흉폭한 혼을 명부로 달로 이끌어주는 영장업무 청부인. 소울 언더 테이커가 지니고서야 처음으로 의미를 얻는 총기. 그것이 아르케부스다.
이 에토우 히로, 일단 주민부 귀적(鬼籍)계에서 정식 수속을 거쳐 제 3종 영장면허를 갖고있기에, 그녀가 이 아스트라M44 아르케부스 커스텀을 지니고있는데에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없지만
"지금와서 좀 그렇지만, 이거 학교에 가져가면 교칙위반이지?"
(정말로 지금와서구만... 어쨌든 얘기하면서도 걷지 않으면 지각해버릴걸. 등교를 시작하지)
"그러네, 그럼 엄마ㅡ 다녀올게요ㅡ!"
다녀오렴, 이라는 목소리를 등으로 들으며 히로는 드디어 등교를 시작한다. 그녀가 다니는 중학교까지 히로의 발걸음이라면 15분정도 걸린다. 이 때, 이미 수업 개시 시간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지각 확정이다
지각 확정이라 하더라도 히로는 서둘러 달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녀의 속도로 그녀 나름대로 걸을 뿐이었다
(...어째서 달리지 않는 거냐)
"지금부터 달려도 그리 변하지 않을 테니까ㅡ 게다가 달리다가 자동차같은 거에 부딪치는 게 위험한걸"
정론, 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나. 납득할듯하게 된 한니발은 머리를 감싸안고 싶어졌다. 물질적인 육체를 가지지 않은 그녀ㅡ이 정신에 이미 자웅은 없지만, 새끼고양이의 몸은 암컷이었기 때문에 히로는 한니발을 여성이라고 인식하고 있다ㅡ에게 머리를 감는다, 귀를긁는다, 털을 정리한다, 머리를 끌어안는다 등의 고양이다운 행동은 필요없다.
그렇지만 한니발은 그 작은 머리를 고양이의 앞발로 끌어안고 싶어졌다.
(근데 왜 이제와서 넌 아르케부스를 갖고 걸어다니는 것을 교칙위반이라고 말하는 건가? 너 초등학생일 때도 가지고 다녔잖아)
"학생 수첩에 써있었던걸, 수업에 관계없는 물건을 가져오면 안됩니다 라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수첩같은 건 없었고"
(그런 이유인가...)
"그런 이유라구?"
뭐가 즐거운지 모르겠으나, 히로는 싱글싱글 웃고있다.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면서도 누그러뜨리게 하는 미소다.
(...또 육식으로 말하고 있지 않구나, 너)
육식이란, 영수를 움직이는 소울 언더 테이커만이 작동할 수 있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을 인식하는 감각이다. 일반적으로는 유령이라 불리우는 스트레인지 쉽을 보고, 듣고, 느끼는 힘이다.
히로의 사역용 영적물질 고등결합체인 한니발은, 그녀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에 의존해 대화할 필요가 없다. 어느정도의 거리가 떨어져있더라도 에테르에 담아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
에테르. 혼의 혈수(血髄). 살아있는 사람은 피가 흐르는 뼈와 육체만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골수 속에 있는 것은 혼의 혈수인 에테르. 에테르를 지키는 건 뼈 안에 있는 선골(仙骨).
그것들이 겹쳐지면서 처음으로 "살아있음"이 성립한다. 보통 인간은 그저 육체와 뼈만을 인식하고 살아있지만 아무 문제 없다. 어째서 심장이 움직이는지를 모르더라도, 심장이 박동하는 것과 같이.
하지만 "죽음"이 성립한 뒤에는 그 혼의 잔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후두부에 있는 영적을 돌릴 수 있는 자만이 그들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히로는 소울 언더 테이커로써는 아직 미숙하지만, 그 윤택한 에테르와 육식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우수하다고 한니발은 평가한다. 그런데도 히로는 그것들을 유효하게 활용해주지를 않는다
"그치만, 지금은 주변에 별로 사람도 없고... 아ㅡ"
갑자기 멈춰선 히로가 담장 위를 바라본다. 한니발도 같이 그쪽을 봤더니, 그곳에는 뚱뚱하게 살찐 눈매 나쁜 흰 고양이가 불쾌하다는듯이 히로와 어깨 위에 있는 한니발을 보고 있다
"고양이ㅡ 고양이ㅡ"
기쁘다는듯이 흰 고양이에게 접근하는 히로를 곁눈질하며 한니발은 한숨을 쉬고 싶어졌다
(집에서 두마리나 기르고 있고 나도 고양이 모습을 하고있건만 대체 뭐가 신기하다고...)
역시 지각 확정이었다
***
"안녕하세요, 지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실 문을 열거 기운차게 인사한 히로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실소조차 없는 침묵이었다.
"...에토우 씨, 지각했는데 그렇게나 당당하게 들어오는 사람은 없어요. 보통이라면 뒷문으로 살짝 들어온 겁니다"
찌푸린 얼굴로 말한 사람은 영어를 담당하는 초로의 여성 교사였다. 얼굴은 기억했지만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한 히로였다.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히로는 문을 닫고 교실 뒤쪽에 있는 문까지 이동한 뒤, 살금살금 들키지 않게 문을 열었다.
"다시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빨리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으세요"
"아, 그럴까요"
평범하게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선 히로는, 그대로 근처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 한니발은 히로의 어깨 위에서 귀를 잡고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히로에게 말을걸면 분명히 목소리를 내서 대답할테니까 귀찮아진다.
가방에서 교과서나 노트를 꺼낸 히로를 무시하면서 수업은 진행된다.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질렸다는듯이 무언가 중얼거리는 기분이 들지만, 히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에토우 히로는 어쩔 수 없는 바보이다. 그건 신학기가 시작하고 1개월이 지나가는 지금, 이 반의 공통 인식이었다.
***
아무 문제 없이 오늘도 하루 수업이 끝났다. 지각을 했다던가 수업중에 졸았다던가 급식에서 남은 우유를 3개나 마셨다던가 "느과아ㅡ"하면서 기묘한 소리를 낸 이유가 "니케랑 핫쨩한테 다녀온다고 하는 걸 까먹었다" 라던가, 그런 일은 이제 아무런 문제도 안 된다.
(...아무 일 없이 귀가 시간이 됐다는 걸 누군가에게 감사해야하는 걸까, 나는)
"무슨 일이야, 하루 씨. 기운이 없네? 배고파?"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면서, 히로는 자기 어깨 위에서 맥이 빠진 한니발에게 물어봤다.
(난 영적물질의 집합체랑 같으니까, 배가 고프던가 졸리지 않다고 몇번이나 말했던 것 같은데)
"미안, 잊어버렸어"
(정말이지...)
"히로!"
한니발은 말을 이으려 했으나, 히로에게 말을 걸어오는 인물의 목소리가 났기에 말을 끊었다.
"아, 옷쨩이다. 좋은 아침"
오치아이 아케미. 통칭 옷쨩. 히로에게 얼마 없는 친구이다. 포니테일과 이마가 히로는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M자 이마는 길조라고 해"*라고 말했더니 굉장히 안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이지, 옷쨩은 화를 잘 낸다
* M자 이마 일본어로 후지이마라고 부르는데, 머리털이 난 가장자리 부분이 후지산 모양이라고 길조라 한다캄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를 할 시간은 아닌걸"
지금도 약간 기분이 안좋은지, 눈을 치켜뜨고 뾰로통한 얼굴을 한 아케미를 앞에 두고, 히로는 싱글싱글 웃으며 인사를 고친다
"그러네. 좋은 낮이야 옷쨩"
"안 바꿔도 돼, 정말이지... 너 또 지각했지?"
"어라, 어떻게 알았어?"
"너 엄청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지각했습니다' 라고 소리지르면 3칸 너머 교실에까지 다 들린다구"
"그렇게 컸나ㅡ"
"컸다구... 뭐, 한 달에 3번 지각이면, 너치고는 아직 적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주일에 3번은 여유롭게 지각했는걸. 중학생이 되서 조금은 성장했네?"
그 이야기에는 나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다고. 라고 말하고 싶어진 한니발이지만, 조용히 있기로 했다. 침묵은 금이다.
이러저러 이야기를 하면서 신발을 갈아신고 나가려는 둘이었지만
"...아, 히로. 먼저 갈래? 숙제 프린트를 책상에 두고 왔어"
"숙제 있구나. 큰일인걸ㅡ"
"남일처럼 말하지 말라구... 넌 걸음이 느리니까, 느긋하게 걸어가도 금방 따라잡는다구. 잠깐만 가방좀 맡아줘"
그렇게 말하더니 아케미는 히로에게 가방을 건네주고 돌아가바렸다. 그 자리에 머엉하니 서있었더니 다른 학생들이 하교하는데 방해가 되버린 히로의 어깨 위에 있던 한니발이 슬쩍 말을 걸었다
(거기서 멍때리는 건 별로 좋지 않은걸)
"그러네ㅡ"
변함없이 목소리를 내서 대답하는 히로에게 맥이 빠진 한니발이지만, 신발장으로 돌아가 다시 갈아신는 히로를 제지한다
(오치아이 씨는 너한테 먼저 가라고 말했는데)
"아ㅡ 무심코"
(야레야레...)
귀를 긁는 한니발이었지만, 바로 히로의 '무심코'를 평가하게 되버린다
***
히로와 아케미가 다니는 중학교는 5층 건물이며, 1학년 교실은 4층에 있다. 2학년은 3층, 3학년은 1층이라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계단을 오르는 수고가 적어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아ㅡ 귀찮아...)
가방을 맡았다고는 하나, 계단을 다시 오르는 것은 피곤하다. 그래도 아케미는 히로가 멍하니 기다리는 것을 상상하고, 계단을 두 칸씩 빠르게 올라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히로가 자기를 두고 먼저 돌아갈 리 없다는 것을 아케미는 알고있다. 멍하니 서서 기다리거나, 돌아오는 게 늦어지면 따라올지도 모른다.
(그 애는 둔하지만, 꽤 터프하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 반에 돌아온 아케미는 바로 자기 책상에서 프린트를 꺼내든다. 멀리서 학생들의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교실에는 아케미 외에 아무도 없다.
좀 어두워지고 조용해지면, 약간 무섭게 느껴질까. 지금은 아직 밝으니까 무서울 건 아무것도 없다.
있을 리가 없다.
...있을 리가 없었지만.
(...뭔가, 싫은 느낌인걸...)
뭘까. 이런, 머리 위에 무언가가 있는듯한.
있을 리 없어. 천장이 있을 뿐 무언가가 있을 리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거미나 도마뱀이나 도롱뇽같은 거겠지. 그런 건 보고 싶지 않다. 벌레나 파충류나 양서류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도, 아케미는 위를 올려다보려 한다.
(보고 싶지 않은데... 보고 싶다는 생각따윈 안하는데...!)
아케미는, 고개를 살짝씩 위로 향한다.
천장에, 크고 검게 물든 것이 보인다
더럽다던가, 그런 게 아니다
왜냐면, 움직이고 있는걸
움직이면서, 지금 당장에라도 떨어질듯이ㅡ
"옷쨩ㅡ!"
"우와앗!"
아케미는 말 그대로 펄쩍 뛰어올라 목소리가 나는 쪽을 봤다. 교실 입구에는 히로가 언제나처럼 긴장감없는 얼굴로 멍하니 서있었다. 아케미와 자기 가방을 들고있는 히로는, 교실을 주욱 둘러보고는, 그리고ㅡ 천장을 올려봤다
"으와앙ㅡ"
얼빠진 소리를 내며 천장을 보고있는 히로. 그 시선 앞에 뭐가 있는 걸까. 아케미는 히로의 변함없는 표정을 본다. ...아케미는 히로가 놀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해봤자 '우와아, 깜짝놀랐네' 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것을 봤을 정도다
ㅡ혹시나, 히로는 무서운 것을 보고있는 걸지도 몰라. 그렇다 해도 놀라울 광경은 아닐지 모른다
히로가 뭘 보고 있는가. 한 번 질끈 눈을 감은 아케미는, 기세 좋게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자신의 머리 위를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그냥 천장이 있을 뿐이다. 깨끗하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검게 물들 정도로 더럽지도 않다.
꿈틀거리는 검은 물체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옷쨩, 프린트 찾았어ㅡ?"
히로는 천장을 보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아케미를 보고 있다.
"아, 어... 찾았어. 정말, 먼저 가라고 말했는데 왜 온 거야, 가방도 두개나 들고... 4층까지 오는 거 귀찮잖아"
"으ㅡ응, 귀찮지 않아"
입으로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아케미는 히로에게 달려간다. 혹시 히로가 먼저 가버렸더라면ㅡ그런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버린다.
그건, 그냥 착각이야. 딱히 히로가 오지 않았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 그저 조금, 내일 수업이 기분 나쁘겠다, 라고 생각할 정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옷쨩, 교실 문은 닫아야지ㅡ"
느릿느릿하면서 쓸데없이 예의바르게 문을 닫는 히로에게 반쯤 부들부들대면서도, 아케미는 히로보다 먼저 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직 학교에 사람이 있는데도, 멀리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도, 어째선지 자신이 굉장히 고독하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히로랑 떨어진다면,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질 듯한ㅡ
"옷쨩, 옷쨩"
...순수하게 자신을 부르는 히로를 보고있자니, 흠칫했던 자신이 바보같아졌다.
"...두 번이나 부르지 않아도 된다구... 그냥 불러도 옷쨩이라는 별명은 부끄러우니까..."
"에, 부끄러워? 그럼 바꿀까? 오치아이쨩이나 앗쨩은 어때?"
"뭘 해도 '쨩'은 붙는구나... 그냥 됐어, 옷쨩으로"
히로와 나란히 걸어가며 아케미는, 그녀가 계속 자기 후두부에 손을 얹거나 어깨를 보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
"미시마 씨, 미시마 씨! 양이 나왔어!"
"...소리 커. 좀 거 작게 말해"
미시마 소우기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어내고 불쾌하다는듯이 대답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마음편하게 선인장을 관상하는 게 삶의 낙이거늘, 한 통의 전화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그래서, 양이 어디에서 나왔는데"
양. 소울 언더 테이커가 양이라고 하면, "방황하는 양(스트레인지 쉽)"ㅡ현세를 방황하는 애처로운 혼을 말한다. 아르케부스로 영장을 해줘야하는 존재다.
"우리 학교. 옷쨩네 교실 위쪽?"
"의문형으로 말하지 마..."
소우기는 머리를 감싸고 싶어지는 마음을 참아가며 한숨을 쉰다. 그 또한 히로와 같은 소울 언더 테이커다. 하지만 그녀와 다른 점이라고 하면, 히로가 제 3종 영장 면허인 것에 비해 그는 제 2종 영장 면허를 가진 자라는 점이다.
제 3종 영장 업무 청부인은, 후견인이 없는 한 영장 업무나 아르케부스의 사용도 섣불리 할 수 없다. 히로의 후견인이, 바로 이 미시마 소우기다. 히로와 같은 나이지만, 그녀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쌓은 소울 언더 테이커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뭐가 있었나 말해봐"
어차피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니겠지만. 소우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물어본다. 한니발에게 설명하게 시키는 편이 낫겠지만, 영적 물질인 그녀는 에테르를 매개로밖에 대화하지 못한다. 전화로는 에테르를 사용해 의사 전달을 할 수 없다. 지금도 분명 히로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끔 안달복달하고있겠지
"으으음, 구체적?"
전화 너머에서 히로가 무언가 생각하고있나보다. 참을성있게 기다리자고 생각한 소우기였지만.
"딱히 아무것도 아닌데? 옷쨩 위에 교실에 무언가 양같은 기척이 보였던 기분이 들었을 뿐인데"
"....................."
전화를 끊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자신은 히로한테 쉽게 빡치는 모양이라 곤란하다. 라이플 사격을 특기로 하는 자신은, 몇시간 가까이 움직이지 않고 저격 체제를 취할 수 있을만큼 참을성이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녀를 상대할 때에는 사소한 것에도 금방 욱한다.
(분명 이녀석이 개노답 빠가라서 그런 거야)
내심 납득하면서 소우기는 다시 히로에게 물어본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째서 전화를 걸었지?"
"그치만 양을 아르....... 아르자지라 뭐시기로 일해야 하잖아"
"어디서 알자지라같은 단어를 주워들은 거냐. 아르케부스고, 소울 언더 테이커다"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소우기는 타이르듯 말한다.
"그래, 일이다. 영장을 행하기 위해 필요한 건 양이 아니야. 의뢰자지. 특히 학교는 공공시설이니까 귀적계의 의뢰가 없으면 안 돼."
"에ㅡ"
"에ㅡ 라고 하지 마"
"오ㅡ"
"......너 바보냐"
"싫은걸ㅡ 미시마 씨도 참. 내가 바보라는 사실은 알고 있잖아. 세삼스럽게 말해도 곤란한걸. 별로 곤란하지 않지만"
뭐라는 거야! 라는 태클은 안 걸도록 했다. 어차피 히로의 어깨 위에서 한니발이 태클을 걸어줄테니까.
"...아무튼. 실질적 피해가 났다던가, 학교측에서 움직임이 있다던가, 그런 일이 없으면 안 돼."
"왜?"
"그게 규칙이니까"
...라고는 해도, 소우기 자신은 그다지 규칙을 중요시하지는 않지만. 그가 중요시하는 것은 소우기 자신의 룰이다.
"이거, 그거야 그거. 공무원 나부랭이던가"
"그래, 실제로 공무원이니까"
양의 초기 단계는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심각한 사태가 될 때까지, 영장 업무가 행해지지 않는 편이 많다. 왜냐면 보통 사람에게 양은 보이지 않으니까. 영수가 돌고있는 소울 언더 테이커라면 금방 눈치채겠지만, 의뢰가 없는 영장을 해주는 청부인은 없다.
영장은 무료로 할 수 없으니까. 돈도 안되는데 쓸데없이 총알을 쏘고 싶어하는 미친놈은 소울 언더 테이커에 없다. ...없을 터였으나, 히로는 아무래도 예외인듯 하다.
그야 그렇겠지. 그녀는 바보에다 얼간이니까.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이 있다. 가능한 일이라도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있다.
할 수 있으며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하면 된다. 단지 그 이유로 에토우 히로는 움직일 수 있다.
"...너랑 얘기하면 끝이 안보여. 고양이랑 얘기하는 편이 빠르겠군"
"아, 그럼 바꿀게"
"아니,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라고 말하려는데, 히로는 이미 듣고있지 않다.
"하루 씨, 하루 씨. 미시마 씨가 말하고 싶다고... 엥, 전화는 못해? 왜? ......흐음, 유령 씨는 전화를 못하는구나. 아, 그럼 혹시 사진도 안 돼?"
에테르가 떠들 수 있다면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을텐데. 소우기는 잠시동안 히로가 한니발에게 말하는 것을 듣는 꼴이 되고 말았다.
"미시마 씨, 하루 씨가 전화는 못받는대"
"그런 건 알고 있어... 아무튼, 내일 너네 집으로 간다"
"에ㅡ"
"...뭐가 불만인데"
"우리 학교로 직접 와. 그래서, 그 양을 빨리 돌려보내주자"
돌아가고 싶은데 가지 못하는 건 괴로운걸
이전에 히로가 했던 말이다. '넌 소울 언더 테이커가 될 거야?' 라고 소우기가 물었던 말에 했던 대답이었다.
단순명쾌하다. 하지만 히로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은 단순명쾌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째서 나한테 연락한 거야. 내가 반대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잖아"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소우기가 막은 영장을, 히로는 자기 의지와 실력으로 해냈다.
"그랬었나? 까먹었어"
그런일이 있었나 하는듯이 대답하는 히로에게, 소우기는 마음속 깊이 기막혔지만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미시마 씨가 허락해주거나 같이 해주지 않으면 이 아르케부스를 양에게 쏘면 안된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는걸. 그러니까 부탁하려고 전화한 건데, 전화걸면 안 돼?"
안 돼는 건 아니지만
"나한테 말 안하고 하려고는 생각 안했어?"
그렇게 되면 더 위험해지지만, 그래도 소우기는 물어본다.
"그러면 미시마 씨한테 거짓말을 하게 되잖아. 그러면 안 돼지. 거짓말을 해도 되는 때는 거짓말을 해도 될 때 뿐이야"
"너에게 있어서 거짓말을 해도 좋은 때는 언젠데?"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소우기였지만
"음 그러니까, 거짓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할 때"
"...그게 언제냐고 묻는 건데"
"몰라!"
기운차게 대답하는 히로와 정반대로, 소우기는 지쳐간다.
"이제 됐어... 내일이 토요일인가. 둘째주 토요일은 아니었지"
"둘째주 토요일에 무슨 일 있었나?"
"둘째주 토요일은 놀토인데"
1990년대 초기에 공립 학교의 절반이 둘째주 토요일을 휴일로 정한 뒤로 이미 몇년이나 지났던가
"아ㅡ 그러고보니 그런 느낌이 들어. 까먹고 있었어"
내년이나 내후년부터 넷째주 토요일도 휴일이 된다던데, 이녀석은 이런 정신머리로 괜찮은 걸까. 또다시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소우기가 말한다
"...아무튼 휴일이 아니니까 오후 4시 쯤에 너네 학교로 가도록 하지"
"밥 먹자마자 해도 괜찮은데"
"너무 빠른 시간이면 학생들이 많다고. 다른 학교 학생이 섞이면 이상하잖아"
"그러고보니 그러네. 어떡하지?"
"너한테 뭔가 해달라고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안심해... 넌 아스트라만 잊지 말고 가져오고, 총알 준비 확실히 해둬. 난 절대로 쏘지 않을 거니까"
정확하게는 쏘지 않는 게 아니라 쏘지 못하는 거지만. 그의 주 무기는 갈릴 스나이퍼 라이플을 원형으로 한 아르케부스다. 숄더 스톡을 접은 상태라도 전장 845밀리가 된다. 아무리 좋게 봐도 실내에서 휘두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일단, 리졸버M380이라는 세미오토매틱 피스톨도 있지만, 라이플만큼 숙련되어있지 않고 무엇보다 화력이 부족하다. 아직 히로의 아스트라가 훨씬 낫다.
무엇보다 히로는 확실하게 답이 없는 바보지만, 소울 언더 테이커라는 일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나도 윤택한 에테르. 뼈보다도 두꺼운 선골. 육식의 예민함. 그 어떤 것도 우수한 소울 언더 테이커인 소우기를 까마득히 상회하고 있으니까
"아, 맞다. 미시마 씨, 미시마 씨"
"여러번 부르지 마. 그래, 뭔데"
"고마워"
그건 너무나도 의외였기에 소우기는 대답이 늦어졌다
"...감사받을만큼의 일은 한 적 없는데"
"으음ㅡ 미츠이 씨, 성격이 까다롭지만, 이런 건 귀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까. 그래서 좋아하는 동물은 털이 나지 않는 녀석이고, 방에는 물고기가 없는 수조만 두고, 소바랑 우동을 비교하면 소바를 좋아한다는 느낌? 그래서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거니까 고맙다고 한 거야. 그뿐입니당"
정말이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화가 난다. 그리고 더 화나는 이유는 히로가 말하는 것 대부분이 맞는 말이라는 점이다. 털이 나지 않는 동물을 좋아하냐는 건 어쨌든, 언젠가 수초를 넣은 수조를 방에 두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소바랑 우동을 비교하면 확실히 소바를 고른다.
적당히 말하는 것 치고는 너무나도 정확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냐"
"그냥"
그럴 거라 생각했다. 생각하면서도 물어본 자신이 바보같다고 느끼면서 소우기는 "그럼 내일 보자"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
(...긴 전화였군)
전화를 받지 못하고 묵묵히 듣고 있던 한니발이, 전화통화가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는듯했다.
"그래? 뭐 니케랑 핫쨩이 잠들어버릴 정도니까 확실히 오래 걸리긴 했네"
복도에 앉아서 전화를 하던 히로의 무릎에는, 흑백이 섞인 얼룩고양이 니케와, 약간 포동포동한 흑색의 하츠히코가 몸을 둥글게 말고 있다. 좁은 무릎 위에 낑겨있다보니 꽤나 답답해보이지만, 두마리 모두 내려갈 생각은 없어보인다.
하츠히코는 금방 한니발의 존재에 익숙해졌지만, 니케는 별로 다가가려하지 않는다. 그래도 최근엔 익숙해진 모양인지 이렇게 가까이서 잘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양은 아직 정말로 해로워보이지는 않았어. 오히려 양치고는 약간 이상했지)
그 때.
오치아이 아케미가 올려다본 것은, 확실히 "스트레인지 쉽"처럼 보였다. 육식으로 검게 보였으니까, 영적물질 덩어리임에는 틀림없다. 그 양의 모습을 아케미도 인식하고 있던 모양이지만, 영감이 강한 사람에게는 드물게 양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상한 것은, 그 양이 아케미의 에테르에 달라붙으려 하지 않았던 점이다.
양은 아케미를 그저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양 말이야"
히로는 무릎 위의 니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전의 양이랑은 좀 달랐던 느낌이 들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가... 하지만 말이야)
귀를 맡기고있던 니케가 갑자기 히로의 무릎에서 뛰어내리더니 달려갔다.
"왜 복도 한가운데 앉아서 고양이 데리고 놀고있는 거야, 히로"
그렇게 말하면서 히로를 내려본 것은 그녀의 여동생인 후미카였다. 멍한 히로와는 대조적으로 엄한 얼굴을 하고있다. 그 엄한 얼굴에 더욱 엄한 표정이다.
"잠깐 전화 좀 했더니"
"누구랑"
"미시마 씨"
"...또 나왔네, 미시마인가 뭔가하는 녀석. 같은 학교도 아니고 동급생도 아니잖아, 대체 어떤 녀석이야"
"시마타로같은 사람"
굉장히 까탈스럽고 익숙하고, 덩치와 태도만 이상하게 컸던, 지금은 죽은 고양이의 이름을 언급하는 히로에게 후미카는 더욱 열을 낸다.
"시마타로건 모코스케건 렌타로건 상관 없어. 내가 묻고 싶은 건 어떤 경위로 알게 됐고 어떻게 친구가 됐냐는 거야"
"경위같은 어려운 말을 후쨩은 잘 알고있네"
싱글싱글 웃으면서 대답하는 언니의 허벅지를 발끝으로 가볍게 때리더니 후미카는 무언으로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여전히, 네 여동생은 언니로서 생각하지 않는군)
말하면 더 귀찮아진다는 사실을 알고있던 한니발은, 가버리는 후미카의 등을 배웅하며 말했다.
"그래? 후쨩, 핫쨩이 무릎에 앉아있으니까 조절해서 차던걸. 상냥한 아이야, 후쨩"
(정말로 상냥한 아이는 언니를 걷어차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의미불명인 말을 하면서 히로는 무릎 위에서 자고있는 하츠히코를 쓰다듬는다. 도망가버린 니케가 돌아와서 무릎에 얼굴을 비벼대며 '뀨웅'하고 운다
"니케ㅡ 뀨뀨"
웃으면서 고양이 얼굴을 쓰다듬는 히로를, 한니발은 어깨 위에서 지켜본다
그녀는 정말로 바보일까
광기의 천재일까
아니면ㅡ
한니발은 히로와 알게되고부터 몇번이나 생각했던 사실을 다시 생각한다.
생각해도 소용없는데
히로가 20세기 최대의 바보건, 세기말에 나타난 광기의 슈퍼 천재건.
그녀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결정했으니까
***
"하루 씨, 지금 생각해봤는데"
다음날 오후 3시 반. 수업이 끝나고 일단 집에 돌아간 히로는 점심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어머니께는 "실내화랑 운동화 가져오는 거 까먹었어. 빨고 싶으니까 가져올게" 라는 변명을 댔다. 변명이기는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실내화랑 운동화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을 까먹었으니까
(뭔데)
"미시마 씨랑 어디서 만나기로 했더라"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명확한 집합 장소는 정하지 않았는데, 너희들. 미시마 씨는 '오후 4시 쯤에 너네 학교로 가도록 하지' 라고 말했을 뿐인걸)
"그러고보니 그랬던가? 그래도 뭐, 정문이면 되겠지"
"...계획성 없음을 지적할 생각은 아니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하라구"
"에ㅡ 나 계획성같은 건 잘 모르니까, 그런 쪽은 미시마 씨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리광부리지마"
"그건 또 그러네. 아하하... 아, 미시마 씨가 있네, 깜짝놀랐어"
"좀 더 빨리 눈치채라"
어느샌가, 히로의 옆을 미시마 소우기가 따라 걷고 있다. 그가 다니는 학교 교복같은 옷을 어깨에 걸치고, 그 위에는 그의 사역용 영적 물질 집합체인 새 모양의 실버가 앉아있다. 왼쪽 어깨에는 언제나처럼 갈릴 스나이퍼 라이플이 들어있는 기타 케이스를 짊어지고 있다.
와이셔츠에 바지 모습의 그는, 언제나처럼 불쾌하다는듯한 무뚝뚝한 표정으로, 역시나 시마타로랑 꼭 닮았다.
"오늘 미시마 씨는 중학생처럼 보이는걸"
"중학생이니까 당연하지... 넌 교복을 입고 있어도 중학생처럼 보이지 않는군"
그러네, 라고 대답하는 히로였지만, 아무래도 위화감이 있었다. 옆에 소우기가 있는데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시마 씨, 미시마 씨"
"그러니까 여러번 부르지 말라고"
"응ㅡ 뭔가 미시마 씨가 없는 기분이라"
"차폐 영채를 쓰고 있으니까"
차폐 영채. 뭐였나 전에 설명들은 기억이 든다.
(에테르를 타인에게 보이지 않도록 억누르는 기술이야. 이건 육식이 열려있는 사람만이 아닌, 보통 사람이라도 통하지. 이른바 존재감이 옅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술이지. 보려고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별로 없지만)
생각에 잠긴 히로에게 한니발이 설명해준다. 그러고보니 그런 말을 들었지. 히로가 들고있는 아스트라M44 아르케부스 커스텀에 씌워둔 은폐 영채.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게 되는 은폐 영채의 고도의 응용이 차폐 영채, 였던 기억이 들기도 한다.
"잘 모르겠지만, 좋네"
"좋지는 않지만, 또 다음번에 알려주지"
"네ㅡ"
언제나처럼 히로는 싱글싱글 긴장감없는 미소를 띄우고 있다.
"...너, 지금부터 뭘 할지 알고 있지?"
"응, 양을 돌려보내야지"
"양을 돌려보내는 건, 혼을 없애는 일이야"
"응"
"혼을 없애면, 수명이 줄어들어"
"응"
"수명이 줄어든다는 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뜻이야"
"응"
"...죽음이 무섭지 않아?"
"싫은걸ㅡ 미시마 씨, 죽음이 무섭지 않은 사람은 없어. 당연히 무섭지"
히로는 마치 무서운 건 없다는듯한 얼굴을 하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무서운데도 할 거야?"
"응,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너, 죽을 때까지 소울 언더 테이커를 할 셈이야?"
"죽기 직전이면 그만두지 않을까? 지금은 막 된 참인데 그만둘 생각을 하다니, 미시마 씨는 성미가 급하네"
...보통 소울 언더 테이커는, 그만 둘 때를 생각하면서 된다. 조금이라고는 해도 수명이 닳게 되니까. 그러니까 대가를 원하게 된다. 금전이나 명예라는 알기 쉬운 것들을.
그런데도 이 바보는 아무 생각도 없다.
"일단, 귀적계에 교섭은 해봤으니까 약간의 보수가 나올 거야. 조정하는데 3달정도 걸리지만"
"그ㅡ렇구나. 미시마 씨가 받아줘"
정말이지, 넌 뭘 위해 소울 언더 테이커를 하는 거냐. 그렇게 말하려던 소우기였지만, 한니발과 눈이 마주치자 그만뒀다.
***
이 광기의 천재이며, 추레한 성인같은 사고방식은, 언제나 이해범위를 벗어난다
기린아라고 불리우는 자신따위야 결국엔 그녀의 발뒤꿈치에도 닿지 못한다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이 바보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
애초에 학교 학생인 히로는 아무 문제도 없이, 다른 학교 학생인 소우기 또한 아무 제재 없이 학교 입구에 도착했다. 이 시간은 아직 부활동을 하고있는 학생들이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미시마 씨, 실내화 빌려줄게. 내꺼는 운동화면 되니까. 교칙 위반이긴 하지만"
"신경쓰지마"
소우기는 신발이랑 양말을 벗더니 맨발 그대로 교내에 올라선다.
"미시마 씨, 깔끔한 성격이면서 이런 면에서는 설렁하네"
"냅둬... 그래서, 양이 나온 곳은 어디지"
"옷쨩네 교실 위"
"...그건 들었어. 그 옷쨩의 교실 위는 어딘데"
"아ㅡ 그렇지. 이쪽이야"
실내화로 갈아신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앞장서는 히로를 보며 한숨쉬면서 소우기도 뒤따른다
"고양이"
(양은 있어.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에테르에 달라붙으려 하지 않아. 평범한 인간에겐 아직 해를 끼치지 않았고. 지금으로써는 큰 소동도 없고. 양임에는 틀림없지만, 꽤나 온순한 양이야. 뭐 어디까지나 지금은, 이라는 접두어가 붙지만. 얌전한 양일수록 금방 외로워져서 사람의 혼에 다가가게 되기 마련이지)
"...학교에서 얌전하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조사해봤지만, 최근 10년동안 이 학교 안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어. 재학중에 죽었던 건 나름 있었지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죽었다니"
소우기와 한니발의 대화를 듣고있던 히로가 대화에 끼어든다
"슬픈 일이야"
슬프다는듯한 얼굴도 않고, 그저 멍한 얼굴로 히로가 말한다
(...그렇지, 슬픈 일이지)
한니발은 맞장구를 쳤지만, 소우기는 그저 말없이 있었다. 그대로 아무 말도 없이, 그들은 5층의 특별 교실이 늘어져있는 층까지 도착했다. 취주악부가 연주연습을 하고있는지, 관악기나 타악기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만, 둘 주위에 살아있는 생물의 기척은 없다.
...살아있는 생물은, 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외의 기척이 있다
길고 긴 복도. 늘어서있는 교실 문. 어디에나 있을법한 학교 풍경.
하지만 둘의 시선은, 바로 앞에 있는 시청각실 문을 향해있다
"...이 안인가"
히로가 육식을 펼치면서 읊는다. 지금 그녀에게 보이고있는 풍경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과 무기물을 색으로 분간하는 세계. 살아있는 것은 빨간색, 움직이지 않는 것은 회색, 그리고 죽은 것은 검은색. 회색의 문 너머에, 회색의 책상과 의자가 늘어져있는 가운데.
검은 혼이, 보였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공중을 떠돌아다니는 검은 물체가.
"아ㅡ 있다 있어. 이 안에, 양이 있어"
"...보인 건가"
"보였어ㅡ 뭔가 떠있어"
육식을 열고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옅다곤 하지만 장해물 너머에 있는 혼백을 "본다"는 건 간단하지 않다. 그걸 태연하게 해내는 자신의 재능이 경탄할만한 것이란 사실을 히로는 몰랐다.
"이 문 열쇠 있... 을 리는 없겠군"
감각이 물리적 장벽을 무시할 수 있더라도, 아르케부스까지 그렇지는 않다. 히로의 아스트라M44는 관통력이 우수해서 문 너머까지 유효할지도 모르지만, 장해물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
"그야 갖고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의외로 문 잠그는 걸 잊었을지도 몰라"
히로는 문에 다가가더니 문손잡이에 손을 건다.
"어이 바보"
(히로!)
그 너무나도 조심성없는 모습에 한 명과 한 마리가 소리를 냈을 때, 부실 건너편에 있던 검은 아지랑이가 움직였다
히로의 강한 혼에 끌리도록 문 틈에서 스며나온 그것은 손잡이를 붙잡은 히로의 오른손에 휘감긴다.
화염보다도, 피보다도 붉은 그녀의 혼이 사라지며, 팟 하며 튕기듯 흩어지는 것을 소우기와 한니발은 봤다
"뽑아!"
히로는 양손잡이지만, 총을 다루는 손은 왼손이다. 왼손으로 뽑을 수 있도록 홀스터를 장비하고있으니까 아무 문제 없이 뽑을 수 있었다. 대구경 리볼버의 한손발사따위 보통이라면 제정신으로 할 짓은 아니지만, 히로의 두터운 선골과 에테르가 이걸 가능하게 하는 스펙을 갖고있다.
이만큼이나 정근거리인데다 그녀의 에테르로 코팅된 아스트라의 대구경에서 그녀의 에테르로 마테리얼라이즈된 탄알을 쏘아, 얼어붙은 양의 영적물질을 미동도 못하게 만드는 건 눈을 감고도 가능할 터였다
(쏴!)
달라붙기 시작한 양이 히로의 에테르를 갉아먹는다. 살아있는 혼에 달라붙어서, 죽었음에도 살아있는 흉내를 내려하는 애처로운 양.
그 양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한니발은 히로의 어깨에서 머리로 올라탄다. 그리고 그녀의 혼에 직접 전한다
(뽑아서, 쏴!)
***
하지만, 히로는, 그저 자신의 오른손을 볼 뿐이다.
보고, 듣고, 느낀다.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아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아
여기 있고 싶어
여기 있고 싶어
계속 여기 있고 싶어
계속 여기 있고 싶어
부탁이야
부탁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이 혼을 조금만 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너의 혼을 조금만 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부탁이니까, 돌려보내지 마
부탁이니까, 돌려보내지 마!
***
"그렇구나"
히로는 자그맣게 말한다
자기 뒤에서 소우기가 기타 케이스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머리 위에서 한니발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건 잘 알겠어"
부탁이니까
부탁이니까, 죽이지 말아줘!
"미안해"
히로는 교복의 홀스터에서 그녀의 주무기를 꺼내든다
전장 283밀리, 총 신장 152밀리. 아스트라M44 아르케부스 커스텀.
저주받은 혼을 먹은 고양이 한니발과 함께 있는 대형회전식 권총
그 해머를, 히로는 엄지손가락으로 올린다
찰칵 하는 소리를 내며 실린더가 회전한다
"돌아가고 싶지 않겠지만, 여기 있으면 안 돼는 양이네, 너는"
여기 있게 해줘
여기서 지켜보고 싶을 뿐이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좋아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역시"
히로는 검지손가락을 트리거로 뻗는다
죽이지 말아줘
죽이지 말아줘!
"죽은 사람은, 죽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히로는 온정 하나 없이 자신의 팔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은 검은 양을 바라본다.
혼을 갉아먹으려는 양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아무것도, 나쁜일은, 하지 않는데
어째서, 돌아가야만 하는 거야?
"그러네... 좀 너무하지"
죽이지 말아줘!
미안해, 안녕
***
히로의 검지손가락에 힘이 실린다
그것만으로, 트리거는 너무나도 간단히 당겨진다
총구에서 쏘아진 것은, 히로의 혼이 담긴 탄환. 그 머즐플래시와 총성은, 인간의 눈에도 귀에도 닿지 않는다
하지만 소우기도 한니발도, 그리고 물론 히로도 보고 들었다
검은 양에 착탄한 탄환은, 조용한 폭발력으로 혼을 산산히 부숴간다
부숴져버린 혼의 조각은, 달이라는 이름의 명부로 돌아간다
이것이 소울 언더 테이커의 일.
방황하는, 매달리는, 돌아가고 싶더라도 돌아갈 수 없는, 그리고 돌아가기 싫어서 돌아가지 않는 양들을 돌려보내는 일.
육신과 함께 죽지 못했던 혼을, 다시 죽이는 일.
***
"그 양은 말이야ㅡ"
학교에서 돌아가는 길. 히로와 소우기는 돌아가려고 하고있었다. 애초에 소우기와 히로의 집은 반대방향이므로, 함께 걸어갈 이유는 없다. 그래도 소우기는 히로와 함께 천천히 걸어간다.
"학교에 가지 못했으니까, 지켜보고 싶었다더라"
"그런가"
"슬픈 일이네"
그렇게 말하는 히로의 표정은, 소우기에게도 한니발에게도, 뭘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어이"
"넹"
"잘... 쐈어"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 없는 건 괴롭다고, 히로는 말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돌려보내지는 양은, 괴롭지 않은 걸까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소우기는, 일일히 괴롭다는둥 괴롭지 않다는둥의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거기에 양이 있으니까 돌려보낸다. 그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치만말야"
그런 히로의 얼굴은, 웃고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 안 된다구. 밤이 되면 집에 돌아가서 밥먹고 씻고 양치하고 자야한다구"
혼에게 갉아먹힌 오른팔을 붕붕 휘두른다.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도, 돌아가야 하는 곳에 돌아가야지"
".......그런가"
이건, 어린아이의 생떼같은 억지일까
이건, 바보의 이론일까
미시마 소우기는 생각하고, 한가지 답을 내기로 했다
이건, 에토우 히로의 규칙이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그녀만의 규칙
***
"그럼 이만"
히로의 집 바로 앞에서, 소우기는 멈춰선다
"응, 또 봐"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드는 히로에게 등을 돌리고, 소우기도 돌아간다. 그의 돌아가야할 집으로
"하루 씨, 오늘 밥은 뭘까ㅡ!"
(히로)
지금까지 침묵하던 한니발이, 히로가 문고리에 손을 대려는 찰나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응, 왜그래?"
(이런 귀환법을 계속 쓴다면, 오래 살지 못한다)
소우기가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한니발이 말한다. 아스트라 모델44와 함께 계속 살아가는 한니발. 주인이 죽으면 다음 기생주를 찾을 뿐인 한니발
"오래 살지 못할 때의 일같은 건, 오래 살지 못했을 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늦을텐데. 그런 바보같은 삶을 살면 안 되는데.
그래도 히로는, 그렇게 말했다
맑게 웃었다
잠겨가는 저녁날과 똑같을만큼 눈부신 미소로
그저, 웃었다
-끝-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