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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7일 토요일

JK 하루는 이세계에서 창녀가 되었다 서점 특전 페이퍼

서점 특전 페이퍼 : 첫 크리스마스

 "그래서, 그 '크리스마스'라는 게 뭔데?"

 평소처럼 둘이서 타올을 개고 있자니, 또 뭔지 모를 소리를 꺼냈다. 뭔지 물어봤더니, 하루쨩은 '으악─'이라며 화내기 시작했다.

 "역시 크리스마스 없구나! 진짜 노잼 세계네. 신이 너무 무능하잖아 부처랑 교대하라고!"

 하루쨩은, 신이라던가 세계를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불만을 토로한다. 언젠가 천벌을 받는 게 아닐지 걱정된다.

 "루페쨩, 들어봐. 크리스마스란 일 년 중에 가장 쩌는 이벤트라구. 뭐랄까 이렇게, 반짝반짝하고, 두근두근해서, 모두 파티피플이 되는 날이라니까. 최고라구"

 게다가 설명이 형편없어서 들어봤자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하루쨩이 이렇게 열성일 때에는, 대체적으로 재밌는 일이 시작된다는 전조다. 그 점은 믿을 수 있다.

 "그렇구나. 나도 그, 파티피? 가 되고 싶네─"

 "그치, 그치? 그렇지, 나도 안다니까. 그럼 개최 결정이네!"

 하루쨩은 점점 기분이 좋아져서는, 크리스마스 노래라는 것을 부르기 시작했다. 즐거워보여서 다행이네.

 슬슬 일하자.



 ──나중에, 나는 하루쨩의 제안을 간단히 받아들인 것을 후회했다.

 '크리스마스'에 필요하다면서, 설산에 끌려가, 커다란 나무 아래서 '지금부터 이걸 베려고 해'라는 말을 꺼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집이라도 지으려고?"

 "설마─. 루페쨩, 재밌는 말 하네─"

 양손에 전에 내가 짜준 장갑을 끼고, 손을 풀며 하루쨩이 말한다.

 "이걸 말이지, 가게 중앙에 딱 세워두고 장식하는 거야. 꼭대기에는 별도 달고!"

 나는 하루쨩이 가지고 가겠다는 나무를 올려다봤다. 정말 별에 닿을 듯한 높이다.

 재밌는 건 하루쨩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봐도, 가게에 들여놓을 크기가 아니잖아?"

 게다가 우리 둘이 옮길 수도 없다고 말했더니, '그런가─'라며 풀이 죽었다.

 "으음, '크리스마스'란 나무를 장식하고 그래?"

 "그렇긴 한데, 나무 주변을 이렇게, 반짝반짝하게 만들거든. 귀엽게"

 "작은 나무는 안 돼?"

 "되긴 하지만, 클수록 흥이 오르지!"

 으─음.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걸.

 그래도 하루쨩이 기대하는 모양이니, 뭔가 생각을 해봐야지.

 "맞아. 우리 손님 중에 연성술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거든. 집에 나무를 엄청 기른다고 했으니까, 빌릴 수 있지 않을까?"

 "거짓말, 진짜! 그걸로 가보자!"

 산에서 곧장 돌아와, 손님의 집으로 향한다. 내 말은 뭐든 들어주는 사람이라, 가져가고 싶은 만큼 빌려주었다.

 수레도 빌려줘서 가게까지 둘이서 옮겼다. 조금 무거웠지만, 하루쨩은 팔팔했다.

 즐거운 일을 시작할 때는, 준비 과정도 즐겁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 마을에 오기 직전까지, '문화제'라는 지방 축제 준비를 했다는 듯하다.

 하지만 시작하기 전에 이사를 온 모양이다. 그 아쉬움이 남아서 그런지, 언제나 다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한다.

 "루페쨩, 괜찮아? 안 무거워?"

 뒤에서 수레를 밀며, 괜찮다고 대답한다. 나도 집에 있던 시절에는 아버지 일을 도와, 이렇게 초목을 나르곤 했다. 양 돌보기는 내 담당으로, 칭찬하거나 혼내서 말을 잘 듣게 하는 건 자신 있었다.

 빚 때문에 팔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양치기의 아내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언제나 이렇게 어울려줘서 고마워. 루페쨩은 진짜 상냥하다니까─"

 네게는 아무것도 없으니 웃어야 한다고, 팔려가던 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는 나에게 웃는 것 외에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다고 알려줬다.

 엄마의 손은 잔뜩 터서, 볼을 쓰다듬어줄 때면 조금 아팠다.

 "그렇지 않아"

 "맞다니까~. 정말, 엄마 같다구!"

 내가 웃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도 웃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혼자서는 절대로 웃을 수 없으니까, 친절한 척 하고있을 뿐.

 난 전혀 상냥하지 않아. 엄마는 지금도 싫어하고. 자기도 우는 주제에, 웃으라고 말하는 엄마라니 난 되고 싶지 않아.

 "아, 그래. 씨름부한테도 가봐야지. 중요한 걸 부탁해놔야 하니까!"

 하루쨩에게도, 그때 일은 말한 적 없다.



 그 이후 하루쨩은 씨름부 씨와 회의라며 나갔지만, 나는 거기까지 갈 체력이 안 되서 사양하기로 했다.

 침대에 발을 뻗고, 꾸벅꾸벅 졸며 생각한다. 결국, 크리스마스란 뭘까? 집 안을 숲으로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가? 이상한 행사네. 하루쨩이 좋아할 법해.

 아, 맞다. 생각나서 침대 밑에서 재봉 도구를 꺼낸다. 빨간 삼각모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었지.

 상자를 열자, 풀어진 목장갑이 나왔다.

 내가 쓰던 낡은 것을, 동생의 양말로 다시 짜주려다가, 도중에 그만뒀던 덩어리. 그때는 내년에도 마을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분명 더 이상, 이 사이즈는 신을 수 없을 정도로 발이 커졌겠지.

 어떤 남자가 되었으려나.



 그 뒤로 며칠정도 지난 휴일, 가게를 빌려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휴일이지만 단골 손님들도 초대하고, 음식도 준비했더니, 생각 이상으로 축제처럼 돼서 깜짝 놀랐다.

 우리끼리 옮겨온 나무도 반짝반짝 장식되었다. 꼭대기에 별까지 있고.

 "그럼 다들, 합창합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루쨩이 머리에 나뭇가지 같은 것을 꽂고, 코에 빨간 열매까지 단 모습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마담은 살짝 난처하다는 표정이다. 아마 요리를 전부 무상으로 제공해주었을 씨름부 씨는, 똑같이 나뭇가지와 열매를 꽂고 있었다. 싫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역시 살짝 지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점점, 하루쨩의 기세에 어울려 모두들 흥이 올랐다.

 마담은 손님과 오랜만에 내놨다는 비장의 식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씨름부 씨는 아가씨들 사이에서 케이크가 호평인지라, 한창 둘러싸여 얼굴을 붉히고 있다.

 하루쨩은 별난 애다.

 다들 아는 상식을 모르기도 하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갑자기 꺼내기도 한다.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

 그런 아이가 이런 일에 어울린다고는 생각도 못해봤다. 나는 어쩌면 그녀가 도중에 도망가더라도 곤란하지 않도록, 이것저것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루쨩은, 수없이 실패해서 침울해하더라도 금방 다시 일어나고, 자기가 먼저 포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근성이 살짝 위험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열심인 걸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루페쨩, 어때?"

 슬금슬금 다가온 하루쨩이, 등에 숨기고 있던 선물 상자를 꺼내들었다.

 열어봤더니, 다양한 털뭉치가, 크리스마스 나무처럼 형형색색으로 들어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날이야"

 "어, 그랬어? 크리스마스란, 그런 것도 하는구나?"

 "오히려 이게 메인이지─"

 "못 들었는데. 아무것도 준비 안 했다구, 나!"

 "이히히. 말하는 거 까먹었어, 미안"

 분명 거짓말이다. 깜짝 놀래켜줄라고 비밀로 했구나, 이 녀석.

 "항상 고마워.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루페쨩 덕분이야!"

 쑥쓰럽다는 듯이 말하는 하루쨩을 보니, 내 볼까지 뜨거워진다. 정말─, 치사하잖아.

 "내년은 선물 교환하자?"

 하루쨩은, '알았어'라며 웃었다.

 꼭이야?

 "자, 물론 다른 모두에게도 선물이 있다구요─. 선물은 물론 그 사람, 미스터 크리스마스, 산타클로……"

 "우와아아아앗!"

 갑자기, 벽난로 안에서 누군가가 떨어지더니, '뜨거워어어엇!'하며 소리지르면서 굴러나왔다.

 평소 이상으로 빨갛게 된 치바 군이었다.

 "잠깐, 치바. 바보 치바야. 선물이 타고 있잖아. 어쩔 거야, 키요리가 필사적으로 구운 쿠키 오백 개!"

 "아니, 그 전에 왜 난로에 불을 붙여뒀냐고. 산타 씨가 타 죽을 거 아니야"

 "겨울이니까 그렇지. 그보다 평범하게 현관으로 오라고. 산타가 진짜 굴뚝에서 들어오는 연출은 실제로 본 적도 없잖아─, 이러니까 크리스마스 파티도 안 해본 남자는!"

 "매, 매년 했다고, 가족끼리 말야. 반에서는 고고하게 지냈으니 참가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잘 모르겠지만, 또 평소의 말싸움이 등장하자마자 시작됐다. 사이 좋네, 이 두 사람.

 치바 군은, 내가 만든 빨간 모자도 태워먹었고, 굴뚝을 타고 내려와서 양말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뭘 하고 싶은 건지, 정말 알 수 없는 애라니까.

 "어, 어라? 엄마, 미안……"

 지긋이 보고 있던 날 보더니 화났다고 생각했는지(딱히 신경쓰지는 않지만) 치바 군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기 시작했다.

 하루쨩이나 키요리쨩에게 부탁받아서 하고는 있지만, 이 애는 살짝, 처벌이 너무 잘 먹히는 면이 있다.

 마치 엄청 혼났을 때의 동생 같아서, 나도 곤란하다니까.

 "이제 됐어. 또 양말 짜줄 테니까, 다음부터는 소중히 다뤄줘"

 "이예─이!"

 "루페쨩, 너무 관대하다니까!"

 우리 '야상의 청묘점'은, 오늘 휴일인데도 평소보다 북적북적하다. 다들 행복해보여서,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이랑 크리스마스를 보냈다고, 엄마한테 편지라도 써볼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점 특전 페이퍼 다른 버전

 남친은 엄청 좋아하지만, 요즘 축구에 푹 빠진 느낌이라, 별로 놀아주지 않는다.

 자꾸 그러면 바람피운다고 말해줬는데, '하지 마'라면서 키스하면서 어물쩡 넘어가버렸다. 저거 치사하잖아.

 나도 학교 축제가 가까워져서 바쁜데.

 스테이지 발표도 해야하고, 미스콘에도 반 대표로 나가고, 둘 다 우승을 노리고 있다.

 다 같이 학교에 남아 준비하는 것도 재밌는데, 축구부는 대회가 가까워졌다고 준비 면제처럼 돼서, 남친은 이 즐거움을 하나도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이거 엄청 중요한 문제인데, 남친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라, 괜히 얄미워진다.

 노트를 펼치고, 녹초가 된 얼굴을 파묻는다.

 "아까부터 뭐해? 뭐 숙제라도 있었어?"

 앞자리에서 핸드폰을 만지던 아야카가, 내 머리카락을 사악 매만진다.

 "미스콘 원고 쓰는 중이었어. 그거 자기소개도 해야 하잖아"

 "너 성실하구나? 그거 지금은 그냥 떡밥콘이잖아. 옆 반은 남자가 나온다고 하던걸"

 "아니, 왜 미스콘인데 남자가 나와?"

 "그냥, 여자애 외모가 어쨌네 저쨌네 한다고, 작년부터 선생님들 사이에서 말이 나왔다더라고. 그래서 올해부터는 외모 뿐만 아니라, 축제를 떠들썩하게 해줄 여학생이나 여장한 남학생을 뽑는다던데"

 "그게 뭐야? 나 추천받았을 때는 그런 얘기 없었는데. 왜 구경거리 콘테스트에 나가야 하냐구"

 미스콘이니까 귀여움으로 승부하란 말이야.

 모르는 사이에 개그 콘서트가 됐다니, 뭐, 그럭저럭 싸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는데, 싸우기 싫어졌어.

 "누구야, 우리 반 축제 위원. 걔 책임 아니야?"

 "나도 모르겠는데, 저기 쟤네들 아니야?"

 아야카는 교실 구석 집단을 가리킨다. 카드 게임 같은 걸로 수수하게 놀고 있는 구역이다.

 저쪽 애들, 몇 번인가 말을 붙여본 적은 있지만, 웃으면서도 눈은 마주치지 않는단 말이지. 나를 피하는 느낌이 든다.

 "무리야, 아야카. 내 대신 말 좀 해줘"

 "뭐야, 너가 해"

 후─. 이제 몰라. 당일에 취소하자.

 모처럼의 축제인데, 재밌는 거 아니면 하고 싶지 않아.

 "하루, 웃기잖아. 뭐냐구 이 '나의 장점 : 근성이 있다'라니. 네 근성이라니, 난 본 적 없는데"

 "시끄러"

 중간까지 적어놨던 자기소개문도 꾸깃꾸깃 구겨버렸다.

 나의 단점 : 감정적이다.

 "그보다, 하루. 나 축제 전까지 남친 만들고 싶어!"

 "어쩌라고. 후딱 만들면 되잖아"

 "가능했음 이 고생 안 하지─"

 연애 활동 중인 아야카는 머리를 그러올리더니, 작위적인 한숨을 쉰다. 그 시선은, 남학생 그룹에 있는 사이토를 보고 있다.

 그는 이쪽을 신경쓰지도 않았지만. 아야카는, 이번엔 진심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이토는 평소엔 눈에 띄지 않는 주제에 의외로 운동 잘 하는 녀석이라, 운동회에서 대활약을 했다. 덕분에 여름 사이에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폭 오른 남자다.

 "진심이야?"

 내가 묻자, 아야카는 미묘한 미소를 띄우며 '사귀고 싶기는 하려나'라고 대답했다. 헤에─. 그렇구나.

 "축제를 함께 즐겨줄 남친이 좋다구~"

 "이해해~. 그보다, 내 남친, 진짜 축제 패스할 것 같단 말이지"

 "헤어져 헤어져. 나랑 남자나 찾자고"

 "아, 저, 미안…… 둘 다, 잠깐 괜찮아?"

 카드 게임하던 남자애 중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내 핸드폰에 카톡음이 울렸다.

 볼까 생각했던 순간, 사이토가 이쪽을 의식하길래 그만뒀다.

 "나 화장실 좀"

 아야카는 도망치지 말라고 말했지만, 네 앞에서는 아마 못 볼 내용이거든.

***

 화장실에서 카톡을 확인한다.

 역시, 사이토한테 왔다.

 '방금 치바가 말했는데, 방과 후에 장 보러 간대. 코야마도 갈 거지?'

 반에서는 유령의 집을 하기로 했다. 그쪽은 수수한 작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일이라는 느낌이라, 난 쇼핑반인지 뭔지하는 한가해보이는 쪽을 적당히 맡았다.

 그나저나, 무거운 짐을 여자애한테 들게 하지는 않아서, 나설 차례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빠질게 좀 봐줘'

 '미안ㅋ 이거 전원 참가거든!'

 운동회 뒷풀이에서, 여자애들이랑 같이 사이토랑 카톡 친추를 했다. 꽤 빈번하게 카톡 보내길래, 의외로 SNS에서 시끄러운 남자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나한테만 보낸 모양이다.

 최근 반에서 다 같이(일부 제외) 놀러 갔을 때도, 어째 돌아갈 때는 단 둘만 남아서 손을 잡기도 했고.

 "남친 있는데 말이지"

 그때도 난 분명하게 말했다. 사이토는 '나도 알아'라면서,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남친은 축구부 원정중. 시원하고 좋은 느낌의 밤. 왠지 그때의 사이토는 운동회에서 잘나갈 때보다 좋길래, 뭐, 손 정도는 괜찮겠지 해서 역까지 같이 갔다.

 그거 뿐이었는데.

 '짐은 들어줄 테니까 안심하고 ㅋ'

 그래도 역시, 잡지 말걸 반성중이다. 너무 들이대게 되어버렸다.

 '축제, 괜찮으면 나랑 같이 다닐래?'

 가벼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 딱히 상관없지만, 쉬운 여자라고 생각되면 평범하게 열받는다.

 그래도 아야카는 아니지만, 축제는 즐기고 싶다. 남친 부재는 조금 쓸쓸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다.

 '야 남친. 오늘 일정은?'

 사이토를 일단 무시하고, 남친한테 톡을 보낸다.

 즉답으로, 축구공 모양의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

 나랑 아야카랑 사이토, 그리고 별로 교류가 없었던 애들. 의외로 꽤 많이 왔고, 역시 나 없어도 됐잖아.

 "치바 리더. 우선 뭘 살까?"

 "어, 포스터칼라랑 A0사이즈 종이"

 "뭐야 그게. 어디서 파는데?"

 "근처에 자주 가는 화방이 있으니까……"

 사이토는 축제 위원 같은 남자애들이랑 재밌다는 듯이 떠들고 있다 싶었는데, 맨 뒤에서 설렁설렁 걷고 있던 나와 아야카 사이에 끼어들었다.

 "웃기지 않아? 치바, 자주 가는 화방이 있대. 술집 아니냐고"

 "뭐야 그거, 웃기네~"

 웃기기는 커녕, 애초에 화방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야카는 아마 더 모를 테고. 그런데 사이토의 어깨를 치면서 웃고 있다. 나도 일단 맞춰주며 웃었다.

 "뭐, 쟤네들 잘 아는 것 같고, 우리는 중간에 어디서 쉬지 않을래?"

 사이토가 아야카와 나를 슬쩍 꼬셔댄다.

 짐은 나한테 맡기라지 않았나?

 "에~. 하루, 어떡할까……?"

 아야카는 그럴 생각인가보다.

 난 이것저것 다 귀찮아져서, 이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친구, 남친, 인기.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도, 익숙해졌고, 질리기 시작한 점도 있다.

 그 말은 즉, 난 고등학교에서 가장 성공했다는 뜻이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진짜 최악의 상황에 놓였던 걸 생각하면, 꽤나.

 하지만, 이것도 까딱 실수했다가 쉽게 무너져버린다고 알고 있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 '시험해볼까?'라는 심정도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사이토의 손을 잡고 '가자'며 둘이서 사라지면, 아야카는 분명 순식간에 친구들 사이에 소문을 낼 거다.

 남친은 당황해서 와줄 테고, 사이토는 어떡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한테 손댄 것을 후회하게 될 테고. 그래서 축제가 끝날 즈음에는, 어찌저찌해서 난 외톨이가 되어있을 거다.

 그런데도 그게 뭐 어쨌냐는 마음이 피어올라서, 우와─앗 한 심정이 돼서, 이제 됐다고, 다 망가트려도 상관없잖아 학교 따위 고작 삼 년, 내일 일도 모르는데 겁쟁이가 될 필요 없다고 어디 사는 선생님도 말한 것 같고, 망가져도 어딘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인생이란 거친 파도와도 같으니까, 나도 사실은──

 "아─. 그러고 보니, 나도 화방에서 그거 사고 싶었거든. 둘이서 다녀와"

 물론, 그런 멍청한 짓은 안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평범한 매일이 계속된다. 소중히 여긴다구.

 이해가 안 된다는 모습의 사이토를, 아야카한테 붙여주고 배웅까지 해준다. 오늘은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너네들.

 늘어진 앞머리를 쓸어올리고, 카톡을 연다. 사이토를 차단하고, 남친과의 카톡 화면을 열어본다.

 축구공 이모티콘에 살짝 열받았지만, 어차피 공은 친구에서 그친다고. 여친으로서, 확실히 응원해줘야지.

 '연습 힘내(하트)'

 아니 그래도, 하트까지 달아준 건 살짝 과했나, 축제에 대해 제대로 말해야 하려나, 보내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이때 망설인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줄도 모르고.

 "코야마, 위험해! 우오오오오오오옷!"

 주근깨 투성이의 남자애가,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얘, 누구더라?



 그게 나의, 이쪽 세계에서 마지막 말이었다.

2020년 10월 25일 일요일

JK 하루는 이세계에서 창녀가 되었다 외전 라면은 청춘이다! (라면 마루와 & JK하루 콜라보 SS)

 잘 지내셨나요, 키요리예요.

 오늘도 저희는, 씨름부 씨네 식당의 '테라스 자리'(라고 불리운대요. 야외에 있는 자리예요)에서, 차를 마시고 있어요. 이젠 일과처럼 되어버린 모임으로, 마음을 터놓은 친구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요.

 하루 씨는 평소처럼 재밌는 말을 하고 있어요. 루페 씨도 귀여운 목소리로 웃으며, 과격해지려는 하루 씨를 서포트해요. 저는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기에, 하루 씨의 농담도, 오히려 좋은 공부가 돼요. 제 입으로는 아무래도 직접 말할 수 없는 죄스러운 단어만 잔뜩 나오지만요.

 그렇지만 재미없는 말을 해도 제대로 들어주고, 어째서인지 웃어주기도 해서, 저도 무심결에 여기서는 수다쟁이가 되어버리고 말아요. 굉장히 즐거워요.

 오늘의 차는, 향이 강해요. 씨름부 씨가 스스로 블렌드했다고 해요. 깊은 맛이 있는데, 상쾌하기도 해요. 살짝 감귤 향도 나구요. 이건 어쩌면 하루 씨를 이미지해서 만든 차가 아닐까요. 나중에 꼭 끓이는 법을 배워보고 싶어요.

 케이크도 엄청나서, 먹기 아까울 정도예요. 이렇게 섬세한 과자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거예요.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형태일까요. 포크를 찔러넣기에도 아까워서, 망설여져요.

 그래도 용기를 내서 한 입 먹어보니, 순식간에 부드러운 달콤함에 빠져버려요. 폭신한 식감도 굉장히 좋아요. 바닐라 향이나 라즈베리의 산미가, 차례차례 입 안에 나타나더니, 아쉽게 이별하듯 녹아서 사라져요.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먹기 시작했더니 손이 멈추지 않아요. 으응─ 하며 몸에 전율이 일어요. 고급스러운 달콤함에 전신이 기뻐하고 있나봐요. 씨름부 씨는 굉장해요.

 분명 하루 씨가 기뻐해줄 만한 요리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만들었기에 이런 맛이 나는 거겠죠. 그 강하고 상냥한 마음이, 몸 안까지 흘러들어와, 굉장히 따스한 기분이 되네요.

 주빈과 함께 대접을 받다니 저는 행복하네요…… 정말.



 ───갑자기, 그릇과 컵이 격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케이크가 꽂혀있는 포크를 쥔 채, 하루 씨가 양쪽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기 때문이예요.

 저와 루페 씨는, 놀라서 어깨를 움츠려요. 주위 손님들도 이쪽을 주목하고요. 힘찬 발소리를 울리며, 씨름부 씨까지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었어요.

 하루 씨는, 찌푸러진 얼굴을 천천히 올리고는, 말했어요.



 "라면 먹고 싶어…!"



 저희들은, 한데 모여 고개를 갸웃해요.

 '라면'이라니, 무슨 말일까요.

 잘 모르겠지만 불길한 예감밖에 들지 않기에, 내심 하루 씨 대신 신께 사죄의 기도를 올리며 물어봤어요.

 또 평소 말하던 야한 농담인가 하고요.

***

 "아니라구, 그런 거. 그게 아니라, 그냥 음식 이야기야. 후루룩 후루룩하고, 몸이 따스해지는 거야. 이렇게, 엄─청 길고, 국물도 찐해서, 엄청 맛있거든. 알아?"

 하루 씨는 얼굴이 시뻘개지며 화를 내요.

 아무래도 '라면'이라는 음식이 진심으로 먹고 싶은 모양인지라, 뒤죽박죽인 어휘력으로 설명하기 시작해요.

 엄청 맛있다, 후루룩 후루룩, 떼깔이 좋다, 라네요.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떼깔이 좋다'니 대체 무슨 뜻일까요. 씨름부 씨도 짚이는 구석이 없는 모양인지라, 두꺼운 목을 기울인 채 꿈쩍도 않아요. 목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돼요.

 "역시, 여기엔 없나……"

 하루 씨는, 맥이 풀려버리고 말았어요.

 어쩐지 가엾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밖에 모르는 내용이지만, 그녀와 진홍의 치바 씨는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예요. 용사님인 셈이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요.

 처음 보는 세계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전에 살짝 물어봤더니, 하루 씨가 원래 있던 세상과 이곳은 비슷한 부분이 꽤 많았어요. 그래서 사는 것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했죠. 추측컨대, 신께서도 이곳과 비슷한 세계에서 용사를 고른 게 아닐까 해요.

 그렇지만 다른 점도 당연히 있어요. 기술이나 원료, 시스템이 애초부터 없다면, 아무리 갖고 싶어도 손에 들어올 수 없다는 모양이예요.

 예를 들자면, 지금 이 '라면'처럼.

 "그래도, 한 번 먹고 싶어지면, 잊혀지지 않는 게 라면…!"

 하루 씨는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기 시작했어요. 대체 뭘까요, 그 라면이라는 것은. 위험한 식물일까요.

 "그렇게 먹고 싶다면, 하루쨩이 스스로 만들어보는 게 어때?"

 루페 씨가, 온화하지만 날카로운 해답을 내놨어요. 하루 씨는, 이래 봬도 요리를 잘 한다는 듯해요. '야상의 청묘정'에서 내놓는 식사를 만들기도 한다고 하고요.

 "무리야. 나, 만드는 법을 모르는 음식은 만들 수 없으니까. 라면은 어렵거든. 일단은 면이라는 재료를 국물에 넣는 건데"

 하루 씨는, 양 손으로 무언가를 움켜쥐고, 내리치는 듯한 동적을 몇 번인가 반복해요.

 "이런 식이려나?"

 분명 그건,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씨름부 씨는, '어떻게든 해볼게요'라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

 "아마도 말인데─. 면은 스펀지 케이크에 쓰는 반죽에서 설탕을 빼면 되지 않을까 싶단 말이지. 거의 똑같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어"

 가게의 주방을 빌려, 하루 씨의 애매한 기억에 의한, 라면 제작이 시작됐어요.

 우선 '면'이라는 것부터 시작하죠.

 "다 됐으면 그걸, 쭈욱─ 하고 늘려봐"

 씨름부 씨의 커다란 손이, 반죽을 쭉 늘이자, 맥없이 끊어졌어요.

 이거, 늘어나기는 하나요? 일이 늘어나는 게 아니구요?

 저도 쿠키 정도는 잘 만들지만, 이런 식으로 반죽을 늘려본 적은 없거든요.

 "그치만, 늘리는 장면을 본 적 있는걸. 라면의 면은 가늘고 길거든"

 하루 씨는 열심히 설명해보지만, 애초에 옳은 조리법도 모르는데 전해질 리가 없겠죠. 서로 답답하기만 할 뿐이예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면'이라는 것은 가늘고 길며, 구불구불하다고 해요.

 저는 작정하고 그녀에게 물어봤어요.

 혹시, 또 맨날 하는 야한 농담이 아닌가 하고요.

 "키요리는 날 얼마나 변태로 보는 거야. 그게 아니라, 난 진지하게 면을 만들고 싶다구. 아─, 정말 왜 잘 안 되는 거야…… 밀가루로 만든다는 건 분명한데─"

 "밀가루?"

 루페 씨가, 생소한 단어에 반응해요. 하루 씨는 '아─'라며 머리를 긁적이고는, '기무리 가루를 말하려던 거였어'라고 정정했어요.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이쪽 세계에서 가장 비슷한 것으로 변환한 뒤에 설명해야만 한다는 점. 가장 답답한 사람은 하루 씨겠죠. 저희가 제대로 도와줘야겠어요.

 "일단 '면'은 나중에 생각하고, '라'부터 완성해보는 건 어떨까요?"

 스스로 생각해봐도 건설적인 의견을 냈어요. 하지만 '라가 뭔데!'라며 하루 씨가 받아쳤어요.

 그걸 저한테 말해봤자, 알 리가 없는데 말이죠.

 "어…… '라'는 뭐지?"

 하루 씨도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하며 고개를 갸웃거려요. 그걸 모른다면, 저희는 뭘 만드려는 걸까요.

 "그래도, 그렇지. 먼저 국물부터 만들자. 아마도 그게 '라'야"

 라면이란, 국물 안에 '면'이나 다른 건더기를 넣은 음식 같아요. 그렇게 설명해주니, 어렴풋이지만 이미지가 떠오를 것 같아요. '스프'나 '스튜' 같은 메뉴는 하루 씨가 있던 세계에도 있었다는 모양인지라, 그에 가까운 종류가 아닐까 싶어요.

 참고로 스프를 만드는 법이라고 하면, 폰의 뿌리나 가라 열매 등을 끓인 다음 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예요.

 "분명…… 동물의 뼈로 국물을 우려냈을 텐데"

 하루 씨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는, 닭살이 돋았어요.

 그런 음식을 먹는다니, 처음 들어봐요. 루페 씨도 씨름부 씨도, 경악의 표정을 드러냈어요.

 "어, 잠깐. 내가 살던 곳에서는 평범했거든. 진짜 맛있다니까. 거짓말이 아니라!"

 그렇다고는 해도 충격이 너무 강하네요. 고기만 먹는다면 이해가 되지만, 뼈를 쓴다니. 고기를 먹고 남은 뼈는, 업자 분께서 가루로 만들어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저희 세계에서의 상식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하루 씨가 악기를 켤 때에도 동물의 뼈를 사용했다는 모양이예요. 그래서 루페 씨가 새로이 나무로 만들어서 줬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문화의 차이란, 정말 놀랍네요…….

 "……미안. 거짓말이였어. 폰 뿌리면 돼"

 저희가 난처해해서 그랬을까요. 하루 씨가 한 발 물러났어요.

 이쪽 세계의 방식으로 국물을 만들어요. 솔직히 말해서, 다들 안심했어요. 폰을 충분히 끓이면, 굉장히 맛있는 스프가 만들어져요. 너무 많이 끓이면 기름이 나와버리므로 주의가 필요하지만, 정말 멋진 스프가 되죠.

 라, 라는 것은 결국 모르는 채로 끝났지만, 하루 씨가 좋아하는 소이 소스로 간을 맞춰서 만들기로 했어요.

 "면은 굽는 게 아니라, 삶아야 해"

 케이크 반죽을 삶는다, 라니 처음 들어봐요. 씨름부 씨가 아까 면을 펼쳐서 가늘게 썰고, 끓는 물에 넣었어요.

 냄비 안에서, 반죽이 찢어졌다 달라붙었다 난리가 나서, 이상한 모양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그 과정을 지켜보던 저희 표정도, 상당히 이상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 삶아졌다고 생각한 '면'을, 국물 안에 넣어요. 이걸로 일단, 완성이라는 듯 하네요. 사실은 좀 더 다양한 건더기를 추가한다고 하지만, 그 부분에 관해서는 '너무 자유로워서 잘 모르겠어'라고 해요. 자유란 무엇일까요.

 우선 평소 앉는 '테라스 자리'로 돌아가, 드디어 시식 단계에 들어가요.

 팽팽하게 긴장되는 분위기에, 한 입 먹어보고, 하루 씨가 '우웩'이라고 말했어요.

 "하핫, 뭐야 이거. 역시 무리였나봐. 라면은 무리려나"

 하루 씨가 웃기에 저희도 웃었어요. 맛보기는 사양했어요.

 이상한 음식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네요.

 그렇게 말하고, 다 같이 웃으며──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하루 씨를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이제, 두 번 다시 먹을 수 없구나"

 포크 사이로 '면'이 빠져나와, 국물 안으로 떨어져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하루 씨가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라면 먹고 싶어어"

 하루 씨의 우는 모습을, 저희는 종종 봐왔어요. 그녀는 이런 식으로, 갑자기 우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어요.

 시크라소 씨를 보내준 뒤부터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분명 이쪽 세계에서 이것저것 참던 것을 그만둔 게 아닐까 하고, 상상했어요.

 그래도, 아는 거라고는 그 정도예요.

 그녀가 떠올리며 우는 것은, 저희 상상력으로는 닿지 않는 머나먼 세계의 일이기에.

 "하루쨩, 슬슬 가게로 돌아가자. 응?"

 루페 씨의 등에 기대서, 하루 씨가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미안해'와 '고마워'라고, 저희에게 말하면서.

 씨름부씨와 저는, 남겨진 '라면'의 그릇 앞에 덩그러니 서있을 뿐이였죠.

 힐끔 그를 바라보자, 시뻘개진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어요.

 "아, 잠깐만요"

 씨름부 씨가 바닥을 쿵쿵 울리며 주방으로 돌아가요. 안 좋은 예감이 들어서 저는 '실례할게요'라며 안쪽까지 따라가봤어요.

 보글보글 끓는 커다란 냄비 앞에서, 씨름부 씨가 새의 뼈를 쥐고 있었어요.

 "안 돼요!"

 뼈는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 새나 짐승에게서는 생명과 고기만 받고, 나머지는 태초의 신께 돌려보내야만 해요.

 식물의 양분으로 삼는 것이죠. 그게 저희가 모시는 신의 가르침이예요.

 식재료로 쓰다니, 시스터로서 간과할 수 없는 행위예요.

 "하루 씨는,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온 사람이예요. 저희가 흉내내서는 안 된다구요"

 씨름부 씨는, 뼈를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놨어요. 하지만 커다란 몸은 떨고 있어요.

 저는, 살짝 등을 어루만져줬어요. 치유를 위해서도 아닌데 남성과 접촉한다니, 상스럽다고는 생각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희로서는, '라면'을 만들 수 없어요. 포기해요"

 씨름부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저도 어째서인지 이 곳을 떠나기가 망설여져서, 폐점할 때까지 주방 구석에서 씨름부 씨와 함께 앉아있었어요. 점주 아버님도 신경을 써주셨는지, 저희를 가만히 내버려두셨어요.

 조용해지는 점내에서, 다른 세계에 대해 생각해봐요.

 하루 씨와 진홍 씨가 살았던 곳은, 분명 이곳보다 힘든 세계였을 테죠. 몬스터나 짐승도 많고, 먹을 것은 적어서, 뼈까지도 먹어야 할 정도로 가혹한 세계.

 라면, 이라는 음식도 하루 씨가 살던 세계에서는 분명 맛있었을 거예요.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나날 중에, 따듯한 국물이 가장 맛있었을 그녀의 생활을 떠올려보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문득, 씨름부 씨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올려봤어요.

 "맛은……떼깔이 좋고……먹고 싶어지면 잊혀지지 않는 맛?"

 씨름부 씨가 벌떡 일어서더니, '떼깔이 좋아?'라고 다시 한 번 말했어요.

 하루 씨의 설명에서, 저희가 이해하지 못했던 단어예요. 어쩌면 야한 뜻일지도 모르니까, 그다지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는 단어예요.

 "하루 씨는 담백한 맛을 좋아해서, 그 방향으로 만들었는데"

 씨름부 씨는, 불씨로 쓰인 코로나 열매에 에네오 다발을 던졌어요. 큰 냄비에서 물이 끓기 시작해요.

 "먹고 싶어지면 잊혀지지 않는 맛, 이라는 뜻은, 그만큼 인상이 강하고 진한 맛, 일지도 몰라요. 떼깔이 좋다는 말 뜻도, 진한 맛을 가리키는지도. 제 요리 맛과는 다른……"

 순간, 또 뼈를 넣는 줄 알고 당황했지만, 씨름부 씨가 넣은 재료는 폰 뿌리와 가라 열매, 그 외 이것저것 스프를 끓일 때 넣는 재료였어요.

 보통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잔뜩 넣더니, 불을 더 강하게 붙였어요.

 "아침까지 국물을 우려낼게요. 기름도 맛도 강하게 나올 테니까, 분명 진한 맛이 될 거예요"

 그리고 다음으로, 기무리 가루에 소금과 물을 넣고 반죽하기 시작했어요.

 "기무리 가루는, 반죽하면 할수록 탄력이 붙어서, 쿠키나 케이크도 딱딱해져요. '면'도 분명, 엄청 단단한 반죽이어야겠죠. 기무리만 쓰면 얼마나 늘어날지, 시험해볼게요"

 큰 손으로 기무리를 뭉쳤다가, 몇 번이고 뭉개버려요.

 냄비 끓는 소리와, 씨름부 씨의 무거운 몸이 반죽을 주무르는 소리.

 저한테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씨름부 씨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혼잣말이 되어버렸어요.

 "국물도, 연구할 필요가 있겠어. 진하고 기름기만 있어서는, 아직 모자라. 하루 씨가 좋아하는 맛에다가, 진한 상태로 조리해야……"

 저는 이제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예요. 뭉쳤다가, 뭉갰다가, 중얼중얼 국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요.

 용기를 내어, 뒤에서 말을 걸어봤어요. '아직 포기하지 않았나요?'라고.

 씨름부 씨는 '네'라고 대답해줬어요.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려고요"

 같은 작업을 계속하면서, 줄곧 그는 '라면'에 대해 생각하네요.

 하루 씨를 정말 좋아하나봐요. 그 사람을 위해, 언제나 진지하게 요리를 하니까요.

 굉장히 커다란 등인데, 어째서인지 조금 멀게 보여요. 왜 그런지, 갑자기 쓸쓸한 기분이 들어요.

 스스로도 잘 모르는 채로, 저는 또 쓸데없는 말을 입에 담고 말았어요.

 "씨름부 씨는, 하루 씨를 위해서라면 엄청 열심이시네요"

 어째서 이런, 심술궂은 말을 해버리고 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어요.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려요.

 그런데도, 등을 돌리고 있는 씨름부 씨는 제가 부끄러워하는 것도 모르는 채, 되려 부끄럽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네요.

 "손님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내놓지 못해서, 분할 뿐임다"

 그 말 중, 얼만큼이 진심이고 얼만큼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함인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애초에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는 결점을 가진 시스터라구요. 이따금씩 스스로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인걸요. 특히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분하다'는 말은, 제 마음을 푹 찌르고 들어왔어요.

 그래요. 저도 '분하다'고 생각해요. '라'인지 '면'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씨를 울리다니 너무하잖아요.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예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봐야죠, 그렇죠!

 "비켜주세요. 교대할게요"

 "네?"

 "이래 봬도 쿠키 정도는 만들거든요. 반죽 정도는 제가 할 테니까, 씨름부 씨는 최고의 국물을 생각해주세요"

 "최, 최고의, 인가요……"

 그래요, 최고의, 예요.

 상상을 뛰어넘는 세계에서 싸워온 사람들이, 진심으로 안심할 수 있는 농후한 치유의 한 잔을요.

 어중간한 맛으로는 안 된다구요.

 "……포타 뿌리를 으깨서, 간을 더해본다던가……"

 "좋네요. 상냥하고 '떼깔 좋은' 느낌이예요. 그런데, 너무 진한 거 아닌가요?"

 "떼깔이 좋다, 거기다가 먹기 편하도록, 건조한 토메 열매로 살짝 산미와 간을 더하죠"

 아니, 라며 씨름부 씨가 천장을 우러러보더니, '향도 필요해'라며 눈을 감았어요.

 "……토메 열매는 차로 만들어서, 향을 내죠"

 "괜찮네요. 씨름부 씨의 차, 저도 좋아해요!"

 "네?"

 씨름부 씨가, 놀란 표정으로 절 바라봐요.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요?

 "좋아한다니까요?"

 다시 한 번 말했어요. 씨름부 씨는 어째서인지 얼굴을 붉히더니, '고마워요'라고 웅얼웅얼 말했어요. 그리고는 휘청거리며 빈 그릇을 휙휙 뒤집어댔어요. 뭐 하는 걸까요?

 "자, 씨름부 씨는 빨리 '라'를 만들어주세요. '면'은 제가 맡을 테니까요"

 "아, 네"

 어째 즐거워졌어요. 씨름부 씨의 첫 요리를, 제가 가장 가까이서 보며, 돕고 있잖아요.

 반드시, 하루 씨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어요. 씨름부 씨의 '라면'으로!

 "세계를 뛰어넘는 거예요, 씨름부 씨!"

 "세계…… 네?"

 "뛰어넘자구요!"

 "아, 네!"

 그리하여 해가 뜰 즈음이 됐을 때, 드디어 최초의 한 그릇이 완성되었어요. 하얀 국물에 빨간색과 녹색이 비춰지는, 굉장히 귀여운 요리예요.

 씨름부 씨는, 제가 시식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어요. 긴장되네요. 게다가, 냄새도 엄청 좋고, 사실 하룻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제 배가 아까부터 울어대고 있었어요.

 가느다란 형태를 유지하며 국물 속에 잠겨있는 '면'을, 포크로 빙글빙글 돌려 입으로 옮겨봐요.

 "으읏"

 생각보다 강렬한 짠맛과 냄새가 나요. 그래도 '면'과 함께 먹었더니 포타 열매의 순한 맛이 입 안에 퍼지며, 기무리 본연의 맛까지 감돌기 시작했어요. 토메 열매의 향기도, 으깬 기네 잎의 냄새도, '면'이 빠짐없이 옮겨다주는 듯한 느낌이예요.

 왜 이럴까요, 이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겠어요.

 분명한 것은, 처음 체험해보는 음식이라는 점으로, 이 맛과 식감이, 제가 지금껏 먹어왔던 음식들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야한다는 거예요.

 "……맛있어요. 엄청 이상한 맛이지만요"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씨름부 씨가, 주먹을 꽉 쥐며, 위로 치켜들었어요. 그대로 가슴을 위아래로 들썩이더니, 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덩달아 저까지 웃어버리고 말았어요.

 맛있다는, 단 한 마디로 이렇게나 기뻐해주다니. 남자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씨름부 씨의 표정이 또 어두워져요.

 이건 '라면'이 아니니까, 하루 씨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어요, 라고.

 이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나 맛있고 귀여운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인데도.

 "이래도 안 된다면, 다음엔 저걸 넣어버리죠"

 저는, 새의 뼈를 넣어둔 용기를 가리켰어요. 씨름부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대로 굳어버렸어요.

 "이제 저거밖에 없잖아요. 그때는"

 그렇지만 이 '라면'으로 충분히 맛있는데 말이죠.

 저는 처음으로 먹는 맛을 즐겨봐요. 씨름부 씨는, 아직도 긴장된 표정으로 제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새 뼈를 쓰게 됐을 때는 제가 별도로 신께 참회의 기도를 1개월 풀코스로 올려드릴게요. 그러면 되죠 뭐.

 하루 씨를 따라잡기 위해, 저희가 뛰어넘어야 하는 벽은 얼마든지 있다구요. 그러니까 당신도 각오하세요, 씨름부 씨.

***

 물론, 그건 기우였어요.

 평소처럼 '테라스 자리'에서 씨름부 씨가 만든 '라면'을 눈앞에 두고, 하루 씨는 실로 복잡한 표정으로 한 입 먹어보더니───실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뭐야 이거!'라고 외쳤어요.

 "아니, 그래도, 분명…… 라면이잖아. 이건 이것대로 라면이라구. 이세계의 라면이야, 이거!"

 후루룩후루룩 성대한 소리를 대며 '면'을 먹고, 벌컥벌컥 '라'를 마시더니(뜨겁지 않았을까요), 하루 씨가 '푸하─'라며 달아올른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요.

 "으으…… 맛있어. 맛있다구우. 고마워. 라면, 기뻐!"

 저는, 옆에 있는 씨름부 씨에게 손바닥을 내밀었어요. 씨름부 씨의 두터운 손이, 사양하듯이 살짝 닿더니 떨어져요.

 뭔가요 그건. 제 쪽에서 힘껏 짝 소리를 내며 손바닥을 마주쳐줬어요.

 "후후"

 루페 씨가, 저희 쪽을 바라보며 미소지어요. 눈이 마주치자 피하듯 시선을 돌리고, 그러더니 또 한 번 이쪽을 보고 머뭇머뭇거리는 거예요.

 "왜 그러나요?"

 "아무것도 아니야~. 후훗. 하루쨩, 나도 한 입 먹고 싶은걸"

 "그래. 기다려봐, 미니 라면을 만들어줄게. 씨름부, 숟가락 좀 가져와줘. 가능한 크고 깊은 녀석으로!"

 "아, 네!"

 하루 씨는, 씨름부 씨가 가져온 숟가락으로 국물을 뜨고는, 그 안에 한 입 사이즈의 '면'을 둥글게 말아올렸어요. 솜씨 좋게 다른 건더기도 올리구요.

 "자"

 작은 접시 같아요. 뭐예요, 그거. 귀엽잖아요. 저도 그걸로 먹어보고 싶어요.

 루페 씨는, '면'을 포크로 찍어서, 신중하게 입으로 옮기고는───

 "켈록"

 뜨거워서 목에 걸렸나봐요. 저희 모두 같이 웃음이 터져버렸어요.

 "재밌네. 다 같이 먹는 라면은 맛있어. 청춘이야, 청춘의 맛!"

 하루 씨는 계속 싱글싱글 웃으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다 마셔버렸어요. 루페 씨도 '라면'에 빠져서, 추가로 한 그릇 더 주문해서 먹어버렸구요.

 한차례 '라면' 이야기로 신나서 얘기하는데, 하루 씨가 갑자기 '아─'라며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음─, 딱히, 필요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또 한 명, 이걸 먹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괜찮을까? 아마도, 맛있다고 절대 말하지 않을 거고, 짜증나는 말밖에 안 할 테지만. 내 걱정과 불안을 전부 적중해버리는 녀석이긴 한데. 괜찮을까?"

 누구를 말하는 건지, 다들 단박에 알아버렸어요.

***

 "핫, 이게 라면이라고? 라면을 얕보는 거야?"

 씨름부 씨의 '라면'을 한 입 먹고는, 진홍의 치바 씨가 저희 걱정과 불안을 확실하게 적중하며 말해요.

 루페 씨는, '후─'라고 한숨을 쉬어요.

 "아니아니, 뭐냐고 이거. 라면도를 얕보고 있잖아? 말해두겠는데, 난 라면 가게에 한 번 들어가면, 두 시간 정도는 그 자리에서 미식가 만화를 정독하는 라면의 화신이라고. 공부한 양이 다르다니까. 아, 참고로 라면의 라는 '손으로 길게 잡아당긴다'는 뜻이야. 길게 늘린 면이 라면이라 이거지. 난 다 안다고!"

 그런데, 이 사람 입에서 의문에 대한 해답이 나와버렸어요.

 하루 씨는 어금니를 가는 소리를 내네요.

 "게다가 면에 요령이 부족해. 글루텐이라고 글루텐. 이쪽 세계에는 강력분이 없나? 우선 그것부터 연성해야겠는걸─, 면을 생각한다면 말이야. 그리고 국물에 펀치가 모자라. 예를 들어 여기에 고추가루를 부왘─하고───"

 "야 토치키"

 "치바인데 왜 그래?"

 "그렇게나 원래 세계 라면이 그리우면, 멧돼지 형태의 몬스터한테 찢어발겨져 뒈져서 돌아가는 게 어때? 너 혼자"

 하루 씨가 한계에 도달했나봐요. 참고로 저희 중에서, 가장 끓는 점이 낮은 사람이 그녀예요.

 진홍의 토치키 씨도, '아앙?'이라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응수해요. 그도 이상하리만치 끓는 점이 낮아요. 수수께끼나 전쟁이 많은 세계에서 와서 그런 거겠죠, 이해해요.

 "사람이 모처럼 친절하게 라면을 알려줬는데, 뭐냐고 그 말투는"

 "아무도 알려달라고 안 했거든. 이쪽 세계에서는 이게 라면이야. 그걸 너한테도 먹여주려고 친절하게 불러준 거라고. 쫑알쫑알 재미 드럽게 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처먹었으면 사이타마로 꺼져"

 평소처럼 싸움이 시작됐어요.

 그래도, 치바 씨도 불만을 토로하면서, 계속 씨름부 씨의 '라면'을 후루룩후루룩 먹고 있어요. 바쁘게.

 "돌아갈 사람은 하루지. 이 이세계를 Re:크리에이트할 무적의 이노디에이터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얼터 님을, 이쪽 세계가 놔둘 리 없잖아"

 "시끄럽네 렙업도 못하는 게. 그런 말은 내 전력을 보고나서 말하라고. 레벨 바인드──해제"

 "뭐야 그게, 중2병이야?"

 "너어어어어어어어한테 듣고 싶지는 않다고오오오오!"

 하루 씨는, 울그락불그락하며 발을 동동 굴러요.

 씨름부 씨는 덜덜덜 떨고 있지만, 루페 씨는 살짝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어요.

 그녀는 이 둘을 보며 항상 '사이가 좋네'라며 말하곤 하죠. 저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말이예요…….

 싸움이 길어질 것 같아서, 식어버리기 전에 저는 먼저 '라면'을 먹기로 했어요. 물론 숟가락으로 미니 라면을 만들어서요.

 아, 역시 강렬한 맛이예요. 그래도 몸 안에 스며드는 느낌이 들어요. 따끈따끈해져요.

 그러고 보니, 하루 씨는 다 같이 먹을 때 '청춘의 맛'이라고 했죠.

 '청춘'이라니, 무슨 말일까요? 저희랑 뭔가 관계있는 말일까요? 나중에 물어봐야겠어요.

 어차피 또, 평소 말하는 야한 농담이겠지만요.









이번 외전은 라면 마루와라는 일본의 라면 가게와 콜라보로 나온 외전이라고 한다

왜 했는지는 모르겠음

2020년 10월 13일 화요일

JK 하루는 이세계에서 창녀가 되었다 외전 6화 언젠가 히어로처럼 널 구하고 싶었어 속편

 어, 위험한데…… 이거, 대마초 아니야?



 숲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다.

 코미케에서 산 한여름의 미소녀가 표지로 장식된 책처럼, 멋진 예감이 넘쳐나는 섬머. 하지만 나는, 눈앞의 범죄성 식물에 시선과 야망이 못박히고 말았다.

 습도와 풀내음과 벌레의 울음소리. 다른 사람의 모습은 없다. 난 주변을 신중히 둘러보고나서, 금단의 식물에 손을 뻗었다.

 틀림없어, 진짜다.

 일확천금. 아니,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찬스 도래. 이 세상에 마약 문화가 있을 리 없잖아. 혹시 처음이라면, 오늘부터 내가 톱이 될 수 있다. 마약으로 벼락부자가 된 영 갱이다.

 서브 웨폰인 숏 소드를 써서, 캘 수 있을만큼 수확한다. 위험한 웃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위험한 비트가 심장에 새겨진다.

 타락, 쾌락, 약에 절은 인생, 시작하려는 나, 암속성. 소년의 여름을 끝내고, 잔인한 죄를 맛보고, 살아가겠다고 리얼, 살아간다고 리얼충. 오늘부터 너희들 전원 루저. 왜냐면 나 홀로 용자니까. 진홍의 엔드리스레인이 날뛰는 필드, 결정타를 날리는 위드. 마리화나의 주변에서 피어나는 부처. 롸큰롤을 돌려. 웰컴 투 언더그라운드 인 어나더 월드. 치바 이즈 갓. 미안하고 고맙다.

 진홍의 엔드리스레인이 날뛰는(이하 후렴 반복)



 "아, 보르도풀이네. 팬티 마음껏 빨 수 있겠는걸. 살았다"



 창관 뒤뜰에서 빨래를 하던 하루에게,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캐온 대마를 자랑해줬더니, 이상한 소리를 한다.

 팬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녀석?

 "봐, 이 세제 봉투에도 이파리 그림이 그려져 있잖아. 업자 아저씨한테 가져가면 세제로 가공해주거든. 사는 것보다 싸고"

 "잠깐, 거짓말이지. 진짜 그냥 세제라고? 그렇게 더운 곳에서, 필사적으로 수확해왔는데? 어둠의 테마송까지 작사작곡했는데?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런 건 모르겠고. 그보다 이거, 받아도 되지? 다 같이 나눠서 쓸게. 진짜 고마워. 러브 폭발"

 망할 열받는 얼굴로, 하루는 내게서 대마인 줄 알았던 보르도풀을 가져간다.

 말도 안 돼─. 이 무슨 몰상식한 이세계란 말인가. 왜 대마를 팬티 세탁 같은 곳에 쓰는 거냐고. 공항 세관이냐.

 하─아. 진짜,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이세계구만. 대체 왜 존재하는 건지.

 돌아가서 그거하고 잠이나 잘까──라고, 생각했던 차에, 기척을 느끼고, 발을 멈췄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을까.

 수수께끼의 생명체가, 떨어트린 보르도풀의 이파리를 입처럼 생긴 부위로 먹고 잇었다. 무의식 중에 전투 태세를 갖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은 보르도풀에 쏠려있는 듯, 한결같이 지면에 몸을 웅크리고 먹어댈 뿐이었다.

 생물이라 부르기에는 기괴했지만, 마물이라고 하기에는 또 이형이다. 역전의 모험자인 나도 긴장해버릴 정도로 이해를 초월했으며, 게다가 '친숙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검을 뽑아 챙챙 소리를 내본다. 벌레같은 가느다란 목소리를 내더니, 버둥버둥 지면을 뒹군다.

 크기는 강아지 사이즈라 공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감이나 애정과도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형상.

 동정 몬스터다.

 루페 엄마한테 들은 적 있다. 숲 안쪽에 서식한다는 전설의 생물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이야기로 들었던 것 이상으로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완전히 다 드러낸 상태라는 느낌이다.

 어쩌면 보르도풀의 냄새를 맡고 왔을까? 내가 데려와버린 건가?

 그건 곤란하다. 살아있는 몬스터를 마을로 가져오는 행위는 범죄다. 일단은.

 금지되어있긴 하지만, 암암리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들은 적 있다.

 즉, 이 또한 일확천금 찬스 도래인 줄 알았다. 이 재밌는 생물을 팔면 되잖아.

 그렇담 일단, 이곳은 위험해. 하루가 돌아오니까. 난 그 생물을 살짝 안아올렸다. 뜨끈하고 부드럽다. 위험할 정도로 리얼하고.

 고간에 갖다놔봤더니 개웃겼다. 아하하, 바보같잖아─.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헛간 벽에서 갑자기 얼굴을 빼꼼 내민 소녀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자지 개커!"



 그것이, 나와 그녀의 첫만남이었다.



 동정 몬스터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그녀는 꽤나 놓아주지를 않았다. 아무튼 들키면 곤란하다고 말했더니, '그럼 숨을까?'라며 허름한 헛간 안으로 안내해줬다.

 "나도 좀 감추고 싶은 게 있어서, 자주 들락날락하거든. 동물을 좋아하는데 방에서 기르면 안 된다고 하니까, 예전에는 여기서 기른 적도 있어. 술 같은 것도 있긴 한데, 안쪽은 안 쓰는 물건밖에 없어서 뭐든 숨길 수 있지"

 평소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으니까, 벽을 뚫고 출입구 대신 쓰고 있다며 그녀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건 알겠는데, 먼저 들어갈 때 팬티가 보였다. 고마워라.

 "자지도 있잖아, 갈 곳이 없다면 여기서 키우자. 내가 돌봐줄게"

 얼굴을 반짝이며 동정 몬스터를 쓰다듬는다. 동물을 좋아한다는 말은 진짜인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이건 내 사냥감이다. 남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다고.

 "아니, 우리 집에서 기를 거니까 됐어. 사람이 없을 때에 데리고 갈게"

 "하아?"

 속눈썹이 바스스 소리를 내며 커다란 눈동자로 노려본다. 어라, 자세히 보니 꽤 미소녀잖아? 그런데 말투도 성격도 날카로워 보이는 것이 내 취향은 아니다. 게다가 하루랑 겹치기도 하고.

 "그보다 그거, 숲에서 사는 생물이지? 살아있는 채로 데려오면 안 되는 거 아니었나. 통보해도 괜찮겠어?"

 "어, 아니, 그치만 암거래라는 것도 있으니까……"

 "너, 여기 손님이지. 게다가 딱 보니까 그거네. 루페의 손님 맞지. '마마'라고 말할 것 같아. 틀렸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런 걸 보기만 해서 알 수 있나? 무슨 공통점이 있다고?

 그녀는 싱긋 웃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갑자기 거리감이 좁혀져 당황한 나는 몸을 뒤로 빼고 말았다.

 "루페한테도 알려줄까나. 걔, 이런 거 엄청 싫어하니까 말이야─"

 정말로, 이세계라는 놈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뭐 됐어. 나도 귀여운 생물은 싫어하지 않고. 이 녀석이 귀여운지 아닌지는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남자라면 남처럼 생각할 수 없는 모양이기도 하고.

 "내 이름은 진홍의 엔드리스레인. 우리 둘의 공유 재산으로써 이 녀석을 지켜보자고"

 "난 키즈하. 여기 창녀야. 잘 부탁해"

 이 녀석, 분명 매상 낮겠지.

 성격 나쁘고. 여자답지 않고. 루페 엄마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

 "자지도 잘 부탁해─"

 "아니 잠깐만. 아까부터 멋대로 부르는데, 그 녀석 아직 이름은 안 지어줬거든. 그나저나 여자애가 그런 말 하는 거, 난 별로 안 좋아해"

 "그치만 자지잖아?"

 "아니아니, 겉모습은 완전 그거 맞지만, 독립된 생물이잖아. 이 녀석의 아이덴티티는 절대 그쪽이 아니야. 모처럼 부르는 거라면, 그렇지, 예를 들면 '진홍의 러스티네일'이 멋있다고……"

 "자지가 좋지 않아?"

 "자지 자지 시끄럽네 진짜!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키즈하의 경박하고 뻔뻔한 느낌이 하루처럼 느껴져서, 첫만남인데도 불구하고 가볍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내가 큰 소리로 말했더니, 깜짝 놀라 몸을 떨며 눈을 꾹 감았다.

 맞는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런 손님이 창관에 많으니까.

 "……아니, 자지라도 상관은 없지만"

 여자애한테는 상냥하게 대하라고, 루페 엄마가 종종 말했다. 키요리가 왜 나랑 잠시 거리를 두게 되었는지(그 녀석이 아직 나한테 마음이 있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생각해보라며 숙제를 내준 적도 있다.

 한 마디로, 이쪽 세계의 여자는 나이브하다는 거겠지. 남자는 폭력 머신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전혀 그렇지 않은데.

 "응. 자지가 좋아. 어딜 봐도 자지잖아!"

 "그렇지!"

 그래도 뭐, 이런 여자라도 상냥하게 해주면 어느새 플래그가 세워져서 이벤트가 발생할지도 모르고. 전혀 기쁘지 않지만.



 플래그는 세워졌다. 번잡스런 루트로. 게다가 수정 불가능한 강제력도 있다.

 "너 말야, 자지한테 뭔가 했어? 축 늘어졌잖아. 아무리 쓰다듬어줘도 건강해지지 않는데"

 "아니, 맨날 보르도풀 세제면 질리지 않을까 해서, 찻잎을 줘봤는데……"

 "마음대로 먹이를 바꿨어? 자지가 싫어하는 걸 주면 어떡해. 이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거 먹어야 쌩쌩해진다구. 불쌍한 우리 자지. 쪽 쪽 해줄게"

 "있잖아, 역시 자지라는 이름은 좀 그렇지 않아? 네 과보호가 절묘해서 거북한데"

 "아직도 그런 말을 하네. 자지는 자지잖아. 우리 애한테 이상한 불평하지 말아줘"

 "하아아아? 자지는 내 자지인데요? 남의 것에 멋대로 입맞추지 말라고. 제대로 물고 빨아달라고 말하라고!"

 "뭐래 이 동정 새끼가. 자지는 내 자지거든요~! 너 같은 녀석이 손대게 두지 않을 테니까. 내가 관리할 거야"

 "야 야, 관리라고 했냐, 너. 내 자지를 관리해주겠다고 한 거지. 농담하지 말라고, 아니, 진짜 해주겠다면, 뭐, 아니, 농담하지 말라고 임마. 자지를 돌려줘!"

 "까득"

 "아파아아아아앗!"

 내 것을 물어버렸잖아 이 년이. 아니, 손이지만. 자지를 돌려받으려는 내 손에, 상처 자국이 남을 정도로 있는 힘껏 이를 박아버렸다.

 "내 자지에 손대지 말라고 했지"

 이 년, 진짜 돌았네.

 빡침 게이지가 오르락 내리락. 돌아버리겠다.

 흥분해서 거친 숨을 내쉬는 그녀와, 거리를 두고 앉는다.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대화가 되질 않는다.

 이런 녀석 꼭 있다니까. 자기 감정을 컨트롤 못 하는 녀석.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빡치고. 자기 생각만 하면서 남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는다. 있지 있어. 누구였더라?

 진짜, 이상한 년이랑 얽혀버렸다. 성가신 플래그를 세워버리고 말았다. 뭐, 여자의 잇자국 정도는 레벨 90의 육체를 지닌 나로서는 금방 치유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이건 화내도 되는 상황이라 생각되는데.

 "하아, 후우……"

 이 녀석을 흥분하게 만들면 안 되겠지 라며, 배려해주고 만다.

 처음에 상냥하게 대해준 게 잘못이었다. 아니 얽혀버린 자체가 실수였다. 설마, 이렇게 난폭한 여자였을 줄이야. 도깨비다. 도깨비 공주 같은 느낌.

 "……너도 마실래?"

 잠시 침묵해서 침착해졌는지, 키즈하가 나한테 다가온다. 아까 화냈던 것도, 나를 물어뜯은 것도, 언제 그랬냐는 듯한 표정으로.

 헛간 안에서, 자지와 함께 숨겨둔 작은 병을 하나 꺼내더니, 키즈하가 한 모금 마신다.

 "이걸 마시면, 마음이 붕 떠올라. 편안해져. 난 이게 없으면 이제 안 될 것 같아"

 입가에 피 같은 액체가 번진다.

 붉은 와인 같은 것을, 그녀는 종종 마시곤 했다.

 알콜 중독인가? 나는 그런 거 마시고 싶지 않다. 부모의 취한 모습이 보이니까.

 "후후훗"

 키즈하가 갑자기 쾌활하게 굴더니, 자지를 끌어안은 채 나한테 기댄다. 묘한 냄새가 난다.

 "몰라? 양귀비박쥐의 피. 최고로 기분 좋아질 수 있다고. 까딱 잘못하면 큰일이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양귀비박쥐의 피라니. 그거 사람이 마셔도 괜찮을 리 없잖아. 뭐, 어차피 상품명이겠지만.

 "이걸 마시고 하면, 엄청 기분이 좋아. 몰랐지?"

 단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할까, 범상치 않은 느낌이라는 사실은 둔감 주인공인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거.

 "들키면 체포되니까, 여기 숨겨뒀는데"

 역시 있었구나, 마약!

 내 꿍꿍이를 미묘하게 깨버리는구나, 이세계라는 놈은. 항상 나를 앞서가는 느낌이 든다. 아니면 내가 신이랑 사고방식이 비슷한가.

 "어때, 마셔볼래?"

 "어, 아니, 그래도, 좀 무서운걸……"

 "그냥 조금씩 하면 괜찮다구. 사람에게 맞는 양이 있으니까, 거기부터 해보면 된다니까. 뭐, 하다보면 자연스레 늘어나지만"

 "으─음. 아니, 관둘래. 그런 건 역시 좋지 않아. 한 번은 마약왕을 꿈꿨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넘고 싶지 않은 선이라고나 할까. 너도 관두지 그래?"

 키즈하는 몽롱한 눈으로 미소짓더니, 한 모금 머금고 얼굴을 들이댄다.

 야 야, 키스라도 할 셈이냐, 라고 생각한 순간 혀를 빼앗기고 액체가 흘러들어왔다.

 처음 겪어보는 약 체험에 처음 겪어보는 드러그. 이거 확실하게 훅 가버렸다.

 피 냄새. 쇠 맛.

 언젠가의 기억이 플래시백하더니, 그대로 의식도 끊어졌다.



***



 《이세계 전송까지 5초》



 "───코야마!"

 갑작스런 고성에 깜짝놀라 고개를 들었다.

 냄새가 변했다. 소리가 변했다. 색감이 변했다.

 세계가, 완전히 변해버렸다.

 하아?

 거짓말이지.

 우두커니 멈춰서버린 나를, 뒤에서 누군가가 밀쳐냈다.



 《이세계 전송까지 4초》



 중심을 잃어서, 아스팔트 바닥이 보였다. 운동화도. 교복 바지도. 무거운 가방도.

 그러니까, 거짓말 하지 말라고.

 눈앞에서 야구 엑스트라와 세키구치가 충돌한다. 구른다. 아스팔트에 펼쳐지는 검은 액체가 보글보글 거품을 일으킨다. 개노맛이었던 콜라. 미지근한 탄산.

 순식간에 부풀어오르는 수많은 기억에, 뇌세포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라고 명령한다.

 뒤에서, 폭주 트럭이 오고 있을 터.



 《이세계 전송까지 3초》



 야구 엑스트라를 밟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방향은 당연히 정해놨다.

 마치 그때와 똑같다. 위험한 약을 먹으면 이상한 꿈이나 환각이 보인다고 하던데, 설마 이런 꿈과 마주하게 될 줄이야.

 달린다. 달린다. 아직 '코야마'라는 이름을 지녔던 때의, 머리가 길었던 하루를 향해.



 《이세계 전송까지 2초》



 "코야마아아!"

 닭살이 돋았다. 기억이 통째로 재현되고 있었다.

 아니, 이건 꿈이다. 키즈하와 이상한 약 때문이다. 하필이면, 이 순간을 떠올리다니 최악이다.

 땀이 쏟아진다. 이 다음에, 우리는 이세계로 날아간다. 그건 괜찮다. 이세계로 가고 싶었으니까.

 그저, 그 순간이 진짜 최악이었을 뿐이다.

 이제 곧 하루가 돌아본다. 난 세계에 절망한다.



 《이세계 전송까지 1초》



 '얘 누구더라?'

 하루가 그런 표정으로 날 본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코야마 하루가 날 인식한 순간.

 언제나 같은 교실에 있었잖아. 난 너를 안다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 일 년하고 조금 더, 몇 번이나 널 멀리서 봐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도, 넌 이 다음에 나랑 잔다. 네가 먼저 유혹한다고.

 우리가 지금부터 가는 곳은, 그런 세계니까. 꼴 좋다!



***



 "──일어나!"

 누군가가 있는 힘껏 뺨을 후려친다. 눈을 떠보니, 키즈하가 내 위에 있었다.

 넋이 나간 표정이었는데, 정말이지, 키즈하는 얼굴만큼은 개쩐다 싶었다. 그리고 가슴이랑 엉덩이도.

 "아─,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쓰러지더니 심장도 멈춰버려서. 죽어버린 줄 알았다구"

 "헐, 진짜? 그렇게나 맛탱이 갔었어?"

 몸은 아무렇지도 않다. 정신도 또렷하다. 잠깐 잠을 잤을 뿐이라는 느낌이다. 가사 상태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딱히 변했다는 구석은 없다.

 그저.

 "어땠어? 기분 좋은 느낌이었어?"

 "아니, 평범하게 기분 나빠. 보고 싶지 않았던 걸 봤어. 아니, 짜증나는 자신과 만났다고 해야되나……"

 생각해 보면 그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악의 하루였다. 얼마 뒤에 이세계 투어가 기다리고 있다 해도, 그걸로 퉁칠 수 없는 기억이다.

 이제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세계다.

 "흐─응…… 아직 부족한가. 좀 더 해볼래?"

 "아니, 됐다니까. 진짜로 이제 안 해"

 애초에, 이 액체는 뭐냐고. 맛도 냄새도 피랑 비슷하다.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난 이 맛을 안다. 세계를 뛰어넘었을 때의 맛이다. 너무 기분 나쁘잖아.

 게다가 키즈하의 말이 사실이라면, 환각을 보는 동안, 죽은 것처럼 되었다고 하고.

 그런 걸 몇 번이나 마실 수 있겠냐고. 난 노래방에서 나오는 복불복 타코야키조차 절대 손대지 않는 사나이라고. 먹을 거에 리스크를 짊어지는 게임 감각, 하나도 이해가 안 된다.

 "음─"

 미지근한 혀가 내게 겹쳐진다.

 그러니까 안 마신다고 했잖아!



***



 《이세계 전송까지 5초》



 "──코야ㅁ"

 "키즈하아아아아아아!"

 세키구치의 큰 목소리에 지지 않을 정도로 절규를 외쳤다.

 트럭이, 직진 차선을 비스듬하게 타고 내려오며 타이어 소리를 울린다.

 뒤에서 밀쳐낸 탓에 나는 발을 헛딛고 말았다. 너도 적당히 좀 해라, 야구 엑스트라.



 《이세계 전송까지 4초》



 웃긴 동영상을 재생하듯, 이번에도 호쾌하게 구르며 나자빠지는 야구 엑스트라와 세키구치가 웃기다.

 그래도, 혹시 이 녀석들이, 조금 더 침착하게 주변을 살펴봤다면, 나나 하루가 이세계로 가지 않았을지도?

 그렇게 생각해보니 웃음이 싹 가신다. 어쩔 수 없지, 달려볼까.



 《이세계 전송까지 3초》



 야구 엑스트라와 세키구치를 하나, 둘 즈려밟고 하루를 향해 달린다. 세 번째라 그런지 경쾌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여기서 내가 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하루는 휘말리는 일 없이, 이쪽 세계에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저쪽으로 가지 못했다던가.

 그런 생각을 해버린다.



 《이세계 전송까지 2초》



 여기서 하루의 이름은 부르지 않는다.

 말해봤자 의미가 없다. 걔는 나 따위 모르니까.

 과거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건 이세계의 약이 보여주는 이세계의 꿈. 그러니까 달리기만 할 뿐.



 《이세계 전송까지 1초》



 이제 곧 하루가 돌아본다. 그러고 보니 이 무렵 하루의 얼굴, 지금보다 살짝 통통하고, 어리게 보인다.

 이거 어느 정도 전 일이었더라? 우리들, 이세계로 간지 이제 일 년은 됐나?

 혹시 거울이 있다면 지금의 내 얼굴과 다르다고 생각하려나.



 '얘 누구더라?'



 혹시, 나도 내 얼굴을 보면 그런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



 "──아, 일어났네"

 죽음의 심연에서 꾸는 꿈에서 깨어나, 원래 세계로 돌아온다.

 키즈하는, 자지를 쓰다듬으며 피를 마시는 중이다.

 나의 무언가가 먹혀버린 기분. 아니,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너, 웃기지 말라고. 두 번 다시 마시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에─, 그치만 그건 나랑 키스하고 싶어서, 싫은 척 튕겨본 거 아니야?"

 "아니라고!"

 깔깔 웃는 키즈하의 목소리에, 난 살짝 기분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그 소녀와 자지와 약으로 절여진 헛간에서의 밀회는, 이 이후로도 계속됐다. 루페엄마한테는 말할 수 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름이었다.

 이상하리만치 편안한 마음과 켕기는 마음이, 에어컨 없는 세계에서 일말의 청량감을 안겨줬다. 이런 나쁜 짓을 함께할 친구라니, 예전 세계에서는 있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여름이라고 생각했다.



 "자지 커졌네"

 또 내 고간이랑 착각해 똑같은 리액션 원툴은 여전했지만, 키즈하와 자지와 창관의 뒷뜰에서 지내는 시간은 이미 내 몸에 배어버리고 말았다.

 자지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강아지에서 개가 되었다는 느낌. 슬슬 모자이크 처리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최근, 식욕이 개쩔더라"

 세탁용 세제인 보르도풀을 펫 사료 대신 주고 있는데, 한 번에 한 봉지 정도는 먹어치우게 되었다. 자지의 적정 체중 따위는 우리도 모르기에, 일단 먹고 싶어하면 먹이고 있는데.

 "그보다 말야, 슬슬 숨기고 기르는 것도 한계 아니야? 우리 집으로 데려가자고"

 "하아? 싫거든. 여기서 기를래. 자지의 부모는 나인걸"

 "이런 좁은 곳에 갇혀 지내는 건 자지도 싫어할걸. 넌 모르겠지만, 땀에 절은 자지가 얼마나 짜증나냐면 팬티 안에 삶은 개구리를 넣은 정도의──"

 "그런 말이 더 짜증나"

 "아파아앗!"

 또 손을 물렸다. 도깨비년 같으니.

 "그럼 말야, 한 번 밖으로 데리고 나가볼래?"

 내 오른손에 남은 잇자국을 할짝 핥으며, 키즈하가 난데없는 말을 꺼낸다.

 "그건 무리지. 들키면 어쩌려고?"

 "그냥 자지라고 말하면 되잖아. 네 자지라고. 좋아 결정. 내일, 엄청 빨리 일어나서 집합하자"

 "하아아? 너, 진짜 사람 말 좀──"

 "결정, 결정이라구!"

 키즈하가 밀어붙인 제안으로, 호수까지 가게 됐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있었지만, 낚시꾼이나 빨래하러 오는 근처 주민이 있는 정도겠지. 조금 떨어져서 다니면 애완동물을 데리고 나온 커플 정도로만 보일 터. 그러니 키즈하와 자지와, 셋이서 호수 근처에서 놀았다.

 자지는 오랜만의 집 밖으로 외출이라 태양을 쬐느라 열심이다. 그 모습을 키즈하가 넋을 잃고 바라본다.

 굉장히 기뻐하는 자지를 쓰다듬으며, 키즈하가 말한다.

 "……너 말야, 좀 별나네"

 "뭐, 별나다고 해야하나, 괴짜라는 말은 자주 들었지. 난 당연한 말만 했을 뿐인데 말이야"

 "남자면서 동물 같은 거 귀여워하고. 그리고, 나한테 손찌검도 않고"

 "아니, 그건 의외로 평범하지 않나? 여자를 때리다니 쓰레기잖아. 여자랑 아이, 그리고 귀여운 동물은 때리지 않지"

 "이상해. 그럼 남자한테도 손찌검하면 안 되잖아"

 "앗, 그걸 말하자면 내 일이라 해야하나, 멋진 부분이 사라지니까……"

 "아이를 때리지 않는 건, 아이가 좋으니까?"

 "좋아……하려나. 뭐, 귀여운 애는 귀엽지. 말을 잘 듣는다면 좋아하지"

 친척 꼬맹이는 놀아준 적도 있고, 게임도 같이 했다.

 그런 건 싫어하지 않는다. 이쪽 세계라면, 재능이 보이는 꼬마의 검술 스승 같은 것도 좋겠는걸. 어차피 레벨도 한계점에 이르렀으니, 오히려 용사를 육성하는 입장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해피엔딩이지.

 "살짝 이해되네. 자지를 보고 있자면, 나도 아이가 갖고 싶다고 생각하거든"

 "아니, 넌 관둬라. 애 키우기 절대 무리니까"

 "루페한테 키워달라고 하면 되지. 난 귀여워해주기 담당"

 "절대 해선 안 되는 놈이잖아……"

 "낳아줄까?"

 "뭘?"

 "당연히 아이지. 너의"

 내가 굳어버리는 모습을 보더니, 키즈하가 웃는다.

 "농담이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바보야"

 웃으려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당연하게도 목이 메였다.

 아니아니 동요 따위 하지 않았거든. 할 리가 없지. 재미도 없는 개그. 얼굴도 전혀 뜨겁지 않고, 심장도 쿵쾅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하고.

 "응"

 "으으응?!"

 갑자기 입술을 빼앗겼다. 당했다, 또 양귀비박쥐의 피냐.

 가사 체험을 각오하고, 쓰러졌을 때 후두부가 깨지지 않도록 팔로 감싼다. 그런데, 쓰러지지 않았다.

 그건 평범한, 키스였다.

 "……슬슬 돌아가자"

 휙 떨어지더니, 자지를 안고 키즈하가 먼저 간다.

 후두부에서 입술로 팔을 옮겼다가, 역시 닦지 않기로 한다.

 키스를 당해서 동요하지 않았다고. 그게 왜 그런지는, 스스로도 모르겠다.



 그저, 우리가 그런 싸구려 연애 드라마 같은 짓을 하는 사이에 가장 즐겼던 녀석은 자지인 모양인지, 그 이후로도 밖으로 나가고 싶다며 빈번하게 요구해오게 됐다.

 "어쩔 수 없으니 뒷뜰에서 놀게 해준다니까. 아침 일찍에"

 "아니, 들키면 큰일이라고 말했잖아"

 "안 들키게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이 년이 괜찮다고 한다면 당연히, 괜찮을 리 없었다.

 자지의 식욕과 성장도 멈출 줄 모르고, 아침 저녁 두 번의 식사로도 부족해, 키즈하가 뒷뜰에서 놀아줄 때 다른 종업원들이 널어놓은 팬티에 손을 대게 됐다.

 보르도풀은, 세탁 후 남겨두었다가 빨래를 건조시킨 다음 마지막에 털어서 떼어낸다. 자지에게는 절호의 간식인 셈이다.

 내가 그 사실을 알아챈 건 사건이 일어난 뒤였지만, 키즈하 그 년, 한두 장 정도면 괜찮겠지 라는 식으로 전부터 자지 좋을대로 놔둔 모양이다.

 자지의 타액은 하얗고 끈적끈적하다. 그런 게 묻은 속옷은 적당히 버렸다고 한다. 키우는 주인이 책임감을 내다버린 결과, 역시 큰일이 나버렸다.

 "어떡하지.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이 녀석, 모든 속옷에 싸버렸어"

 "싸버렸다고 말하지 마. 그리고, 왜 그렇게 될 때까지 방치해뒀냐고. 훈육은 기르는 주인이 할 일이잖아!"

 대량의 속옷은 얼버무릴 방도가 없었기에, 세탁하라고 했다. 하지만 키즈하는 폐급이라 빨래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루페엄마한테 부탁해보겠다는 말까지 꺼내는 지경이다.

 가능하겠냐, 그딴 거.

 어쩔 수 없으니 내가 빨아주기로 했다. 일단 전부 우리 집으로 옮기고, 한 장 씩 빨면서, 와, 이거 졸라 야하네 라고 생각한다던가, 루페 엄마나 하루가 입은 모습 따위를 겸사겸사 상상했더니 시간이 꽤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건조대 근처에 두려고 했는데, 거기 파인 구덩이라는 고전적인 함정에 걸려버렸다는 말씀.

 "너였냐, 걸어다니는 성범죄자"

 너였냐, 고전적인 폭력 히로인. 부탁이니까 최신 만화나 라노벨 좀 읽어달라고. 히로인 속성 업데이트 좀 하란 말이야.

 게다가 날 속옷 도둑 취급하다니 당황스럽다. 그딴 짓을 할 리가 없잖아. 팬티 같은 거에 흥미 전혀 없고. 그냥 최고의 천일 뿐이잖아.

 하지만 소란스러운 소리에 모여든 종업원들 사이에 키즈하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포기했다. 젠장, 여긴 맡기라고. 넌 자지를 어디론가 숨겨. 소동 탓에 흥분해서 날뛸지도 모르니까.

 아이 컨택트가 설마 통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키즈하가 끄덕이더니 슬쩍 빠져나간다. 하루가 생각도 못했던 긴박 기술로 귀갑묶기를 해버릴 때는 놀랐지만. 난 그대로 자지와 교대하듯 헛간으로 내던져졌다. 다행이잖아, 자지를 옮길 수 있어서.

 남은 건 이 로프를 풀어서…… 어라?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데?

 절묘하게 묶어놨다. 꽉 조이지는 않는데 중요한 포인트는 확실하게 봉해놨다. 관절을 움직일 수도 없고, 빼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진짜 그 녀석, 너무 잘 묶는데? 창녀란 이런 일도 배우나? 주문에 대응해주기 위해서? 그럼, 앞으로는 제대로 오더를 짜고 방문해야겠는걸.

 안쪽 벽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빛이 들어온다. 드디어 와줬구나, 파트너. 늦었잖아. 그래도 살았다고.

 "…………"

 키즈하는, 지금껏 본 적 없을 정도로 불쾌한 표정이었다.

 "너 말야. 루페랑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건방진 년이랑도 잤어?"

 "어, 하루 말이야? 아, 뭐, 옛날에 좀"

 뭐, 잤다기보다 까놓고 말해 아다 떼준 상대였지. 그러고 보니, 전에 무슨 말다툼 비스무리한 걸 하고나서 한 적 없네. 내가 엄마랑 그린라이트 각이라 그렇겠지만.

 "믿어지지가 않네. 나, 걔 엄청 싫어. 걔랑 자는 남자도 싫어"

 키즈하는 점점 화를 내더니, 내 목덜미를 콱 붙잡는다. 아니, 그보다 얼른 로프 좀 풀어줘. 늬들 교우관계 따위는 관계 없으니까.

 "걔는 항상 루페랑 사이 좋게 지내지. 루페의 사람 좋은 점을 파고들어 독점하려 들다니. 루페는 내 마마가 될 여자인데. 걘 우리들로부터 루페를 훔쳐가려 한다고, 비겁하다고!"

 나로서는 평소의 그녀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모른다. 그저, 루페 엄마랑 키즈하는 사이가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 엄마는 상냥하고 활기차고 겉모습은 로리인데 모성 본능이 두텁다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귀중한 존재다. 하지만 꽤 엄격하게 지적이나 훈계를 하고, 상대를 관찰하고, 아무에게나 상냥하지 않다는 점 정도는 나도 안다.

 처음에 난 키즈하가 하루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다르다는 것도 지금이라면 안다.

 루페 엄마는, 아마 키즈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녀석, 신 캐릭 주제에 인상이 너무 강력하다. 드퀘5 리메이크냐고.

 "너도 걔 짜증난다고 생각하잖아. 이제 그만, 그 년을 쫓아내려고 생각중이거든. 신입 주제에 '저는 여기 중심인물이예요'라는 태도도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그래도, 키즈하도 남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해석하고 싶을 뿐. 있다니까. 그런 녀석 있지. 있었다고.

 아아, 어째, 키즈하를 여자로 보지 못하는 이유를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지만.

 "그렇지, 하루는 분명 짜증나.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주는데, 내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는다니까. 지금도 오타쿠라는 편견에 치우친 눈으로 보고 있을걸. 나도 이쪽에 와서 변했는데 말이야. 성장했다고"

 "응 응, 이해해"

 "그 녀석 요령만큼은 좋으니까, 자기 혼자서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한다고. 내가 얼마나 그 평화로운 생활에 공헌하는지도 모르고. 애초에 처음 창녀 레벨이 낮았을 때 키워준 것도 나잖아. 그 녀석은 그런 것도 모른다니까. 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이 험한 이세계에서 살아가겠냐고"

 "응. ……응?"

 "그래도, 그럴 수도 있다고 요즘 생각하게 됐어. 하루도 이쪽에 오고나서 변했거든. 매일 교실에서 봐온 내가 하는 말이니까 틀림없어. 강도를 올렸다고 해야하나, 어쩌면 지금이 진짜 하루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도 질 생각은 없지만, 그 녀석을 보고 있자면, 내 생각만큼 성장했는지 가끔 의문이 들어. 어째…… 그 녀석이 더 이쪽 세상에서 반짝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서"

 "저기, 너 무슨 말 하는 거야?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말해줄래"

 "한 마디로, 나한테 그 녀석 험담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거야. 내가 그 녀석을 가장 잘 아니까. 친구거든, 코야마 하루는"

 키즈하의 눈이 가늘어진다. 감정이 이렇게 얼굴에 다 드러나서 창녀 일을 해먹을 수 있겠어?

 그러니까 안 팔리는 거라고.

 "……그 년 편을 들겠다고?"

 "편을 들어주네 마네가 아니야. 그냥 반 친구 이상 소울 메이트 미만이거든. 게다가 너도 마찬가지고"

 "하아?"

 "누군가가 네 험담을 하면, 아마 난 기분이 나쁠 거야. 똑같다고. 듣기 싫으니까, 그렇게 말했을 뿐이야"

 키즈하는, 한숨을 쉬고는 내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양귀비박쥐의 피가 든 병을 집어들더니 한 모금 머금는다.

 "하아……"

 관능적인 한숨. 그건 뭐 좋다고 치고, 슬슬 풀어주지 않을래?

 "너 진짜 별나구나. 험담은 그만두라니. 하, 애냐"

 "시끄럽네. 부끄러워지잖아"

 "절대 험담하지 않는 여자는 루페 정도야. 그렇게 강해질 수 있을 리도 없고. 무리겠네"

 루페 엄마는 천사니까 당연히 그럴 테고, 평범한 여자는 그만큼 순수한 영혼을 가질 수 없다. 확실히 무리네.

 그래도 키즈하는, '알았어'라고 했다. 고개를 든 나의 코앞까지 다가와서.

 "네가 싫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으니 관둘게. 그 대신, 너도 내 앞에서 그 여자 얘기는 하지 마. 내 이야기만 해"

 양귀비박쥐의 피를 입에 머금고, 키즈하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붙인다.

 "으응……"

 혀까지 들어와서,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귀갑묶기를 당한 채로.



***



 《이세계 전송까지 5초》



 "───코야마!"

 꿈속에서 오랜만이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러고 보니 얼마동안 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리운 원래 세계의 풍경. 하루한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녀석에게는 알려줄 수 없는 비밀이다. 가사라는 위험한 도박까지 뛰어넘어야 하니까. 뭐, 나도 강제로 참가된 처지지만.

 뒤에서 달려오는 야구 엑스트라를 피한다. 벌써 몇 번째냐고. 이제 그만 좀 해.



 《이세계 전송까지 4초》



 그래서, 이 다음 세키구치와 야구 엑스트라가 충돌하지. 여기까지는 좋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이 다음의 if 결말이다.

 혹시 내가 하루를 구하지 않았을 경우, 트럭은 나와 하루 중 누군가를 이세계로 데려가줄까.

 꿈이라고는 해도 확신을 가지고 싶다. 난 이세계의 부름을 받은 거라고. 이세계에서 용사가 되는 것도 꿈이 아니라고.

 아스팔트에 퍼지는 콜라. 진짜 꿈 맞나. 냄새까지 리얼하다.

 무서워진다. 혹시 이게 현실이라면, 현실은 언제나 내 기대를 배신했으니까.



 《이세계 전송까지 3초》



 트럭 타이어가 끼이익 소리를 울리며,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뒤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나는 달리지 않는다. 트럭의 진로가, 우리 중 어느쪽인지 정해질 때까지.

 꿈속에서도 떠오르는 풍경은 그 이세계의 광경. 여기가 빌어먹을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꼭 자신감을 가지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다. 선택받은 자는 나라고.

 그런데, 씨발!

 난 달리기 시작했다. 놓친 때를 되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선택받은 자는 하루다.

 소리를 울리는 타이어가, 차체를 기울이며 확실하게 그녀가 있는 방향을 노린다.

 교실 카스트 톱 클래스이자 미스콘 대표이자 다른 학교 학생한테도 인기가 많고 잘생긴 남친도 있는 코야마 하루를.

 그녀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이세계로, 그녀 단 한 명을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이세계 전송까지 2초》



 "씨바아아아아아아알!"

 알고 싶지 않았다. 시험해보지 말 걸 그랬다. 난 선택받은 인간이 아니었다. 단순한 사고다.

 신이시어, 나한테 치트를 줬으면서. 용사 후보라고 말했으면서. 하루한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잖아. 아니면, 내가 약해서냐고. 아무런 장점이 없으니까 동정이라도 한 거냐고.

 이건 잘못됐어. 이세계는 날 골라야 하고, 하루는 두고 가야 해. 여자에게는 가혹한 세상이잖아. 그 녀석, 그쪽에서 뭐하고 사는지 아냐고. 귀갑묶기라고.

 가지 마. 안 돼. 그만둬.

 데려가줘. 나도 이세계로 데려가줘. 부탁이니까….



 《이세계 전송까지 1초》



 ──'얘 누구더라?'



 세계는 잿빛이고, 쇠 맛이 난다.

 그 맛에, 나는 비참한 안도감을 하고 말았다.



***



 기분 더러운 채 눈을 뜨자, 먼지가 쌓인 더러운 바닥이었다.

 이곳은 이세계, 전에 살던 세계는 꿈. 처음 도착했을 때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세계 최고라고 소리쳤다. 나는 인생의 승리자라고.

 그런데, 이제, 두 번 다시 그렇게 눈 뜨는 날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좀 무서운데……"

 뭔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린다.

 몰랐는데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다. 위를 올려다봤더니 팬티가 보였다.

 이세계, 최고.

 이상한 꿈 탓에 우울했던 기분도 금방 맑아지고, 현 상황을 떠올린다. 저 팬티와 엉덩이는 틀림없는 루페 엄마다. 여긴 헛간 안이고.

 키즈하의 비밀 통로가 발각난 모양이다. 엄마가 지금, 그 통로에서 밖으로 나갔다.

 어, 가사 상태였던 모습 들켰나? 혹시, 양귀비박쥐의 피를 먹은 사실도 들켰을까? 그렇다면 키즈하나 자지에 관해서도 줄줄이 사탕처럼 들통났을지도…… 그건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이다.

 벌레 소리 비슷한 자지의 울음소리가 난다. 고개만 빼꼼 내밀어 밖을 살펴보자, 방금 내가 걸렸던 구덩이에서, 자지 끝과 키즈하의 손이 손짓한다.

 다행히도 하반신은 자유롭다. 난 서둘러 헛간을 빠져나와, 구덩이 안으로 다이브한다. 숨기 좋은 곳이다.

 자지를 안고 있던 키즈하가, 눈을 치켜뜨고 있다. 감정적으로 되면 금방 피를 먹이는 이 녀석에게 불평을 해야하나 고민했지만, 일단 이 장소를 알려준 감사 인사만 해뒀다.

 "고마워"

 "응"

 키즈하는, 자지를 꼭 안으며 얼굴을 파묻는다. 자지가 움찔한다. 내 자지가.

 그보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거야. 설마 피나 자지가 들통나지는 않았겠지?



 "어어어어어어어?!"



 헛간에서 두 사람의 비명이 들린다. 어, 무슨 일 있나?

 고개를 내밀려는 나를, 키즈하가 잡아당긴다.

 "들키면 어쩌려고! 좀 더 숨어있어"

 "아니, 무슨 상황인데. 이대로 숨어있어도 돼?"

 "시간이 없으니 설명은 나중에 할게. 일단, 양귀비박쥐의 피랑 자지는 안 들켰어. 그래도 다음에는 방을 볼 수도 있으니까, 자지는 헛간에 돌려놔줘. 난 바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마 위험하거든"

 "아, 어어. 그 전에 이 귀갑묶기 좀 풀어줘. 하루 녀석, 변태처럼 잘 묶는다니까"

 겨우 여고생이 묶은 귀갑으로부터 해방되어(뭐지, 자유와 교환하면서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 드는데) 한숨 돌렸다.

 자유 최고. 그리고, 이세계 최고.

 "나랑 자지를 위해, 이렇게까지 되다니…… 배고프지"

 "어?"

 "이거, 먹어"

 키즈하가 케이크 같은 걸 들고 있다.

 뭐지. 이런 말은 좀 실례일지 모르겠는데, 그냥 독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져온 거 아냐. 루페가 나눠주더라.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어쩌다 한 조각 남아서 가져왔을 뿐이거든"

 "그렇구나. 미안해, 잘 먹을게"

 음, 달다. 뭐, 배는 고팠으니까 먹겠지만, 단 음식은 좀 뭐랄까. 여자애들이 좋아하지 않나.

 키즈하가 어째서인지 내 얼굴을 지긋이 바라본다. '바로 돌아가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더니, 당황해하며 '이제 갈게'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그 전에 내 볼에 키스를 해줬다.

 "힘내자. 둘이서 자지를 지켜야지"

 엄마와 하루가 복도 쪽으로 간 사이에, 키즈하는 창관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 즉 엉덩이를 바라보며, 최근들어 의문이었던 점을 생각한다.

 저 녀석, 요즘들어 점점 키스마가 되는걸. 손님을 너무 못 받아서 영업 방법을 바꾸기라도 했나?

 내가 그런 노골적인 기술에 걸려들 리 없는데. 내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루페 엄마의 타산 없는 진심이 유일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헛간에 숨어 케이크를 핥아먹고 있었는데, 하루한테 들켜서 또 귀갑묶기를 당했다. 뭐냐고, 저 녀석. 맨날 뒷북만 치면서 화낸다니까.



 호수로 놀러가자고 키즈하가 권유를 해왔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요즘 하루가 키요리랑 여행을 간 모양이라, 루페 엄마랑 단 둘이서 점심을 먹을 기회도 생겼겠다, 좀 귀찮다고 했더니 또 손이 잇자국이 생겼다.

 짜증나는 여자라니까. 뭐, 좋아. 엄마한테는 내일 늦을지 모른다고 말해두면 되겠지.

 호수에서, 키즈나와 자지와 논다. 뭐라고 해야하나, 이상한 느낌? 평화롭다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여러 사건이 있었던 탓인지, 키즈하랑도 꽤 사이 좋아진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해가 중천까지 떴는데도, 어째선지 우리는 질리지도 않고 놀다보니, 낚시꾼도 이웃 주민들도 돌아가고, 호수 근처에 아무도 없는 상태까지.

 키스를 했다.

 자빠트리고 가슴을 만졌는데도, 키즈하는 싫어하기는 커녕 기쁜 듯이 소리를 낸다.

 거기서 놀라 손을 뗀다.

 심장이 쿵쾅쿵쾅댄다. 나, 뭐하는 거지?

 "……왜 그래?"

 키즈하가 말한다.

 "왜 그래가 아니지"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고, 루페 엄마한테도 미안하니까.

 그렇게 대답했더니, '루페도 다른 남자랑 자잖아'라며 키즈하가 끈질기게 달라붙어온다.

 루페 엄마도 하루도 창녀가 직업이다.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뭐, 100% 괜찮지는 않지. 신경 쓰인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엄마랑은 안 하기로 했다.

 "그야 창녀니까 그게 일이잖아. 하지만 남자랑 여자에게는 자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그쪽을 고르겠다는 것 뿐이야"

 그래. 그녀들은 창녀니까 하고 싶다면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공략 루트적으로 보면 플래그도 호감도도 안 쌓이는 소모성 이벤트가 아닐까라고 최근 깨달았다. 연애 감정에 효과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상태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인상을 줄 뿐이다.

 그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점심 데이트 이벤트 쪽이 안전하고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다른 남자랑 차별화할 수도 있고.

 그래서 그걸 실천하는 중이다. 루페 엄마는 근시일 내에 공략할 수 있을 거다.

 "흐─응.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넌 참, 진짜 별나다니까"

 키즈하는 그렇게 말하더니 옷매무새를 고쳤다. 아아, 나도 참 말하면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야 여자애를 진짜로 공략해본 적은 없으니까.

 "저기, 별꼴리스레인"

 "영원히 멎지 않는 비를 의미하는 엔드리스레인이라구"

 "그럼, 혹시 내가 창녀를 그만두면, 안아줄래?"

 "어, 그만두려고?"

 "혹시라고 했잖아"

 어, 그치만, 창녀를 그만뒀는데 안아버리면, 그 말은 우리…….

 "돌아가자"

 키즈하가 등을 돌리며 걸어가기 시작한다.

 아, 또 평소의 그건가. 잔뜩 바람넣어놓고 중요한 시점에서 잘라먹는 그 패턴. 나 참, 난 속지 않는다고.

 또 호수에 오자는 약속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슬슬 여름도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자지가 사라졌다.

 아니, 우리 자지가 사라졌다.

 키즈하가 뒷뜰에서 놀아주다 아주 잠깐 눈을 돌린 틈에, 자지를 놓쳤다고 한다.

 그렇게 소중한 걸 잃어버리냐고. 이러니까 여자한테 자지 관리는 시키면 안 된다니까.

 "어딘가 보르도풀이 자라있는 곳 아니야? 다른 창녀의 방이라던가"

 "찾아봤어. 그런데 없었다구. 자지, 어디로 가버린 거야─!"

 "짜증내고 싶은 건 나라고…… 기르는 사람이니까, 제대로 보란 말이야"

 "뭐야, 나한테만 돌보게 하고, 잘났다는 듯이. 처음에 둘이서 자지를 지키자고 말한 건 너였잖아. 얼른 찾아내라고!"

 "이봐, 누가 잘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때 보고있던 사람이 너였다는 말이잖아. 어디에 있을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화내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난 키즈하를 혼내며 헛간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단서 하나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해서.

 들어간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숲에서 레벨 노가다를 하다 마물의 기척을 느꼈을 때와 똑같다.

 돌아본다. 입구 위에 뭔가가 달라붙어있다. 자지다. 마치 사슴이나 버팔로 머리처럼 자지가 장식되어있다. 괜찮은데, 저거.

 "아, 자지!"

 키즈하가 기뻐하며 떼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녀의 손을 당기며 말렸다. 분명 자지는 자지지만 자지가 아니다. 단순한 자지가 아니다. 다가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내 자지가 바싹 오그라들었다.

 그때, 마른 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리를 내며, 자지 껍질에 금이 나기 시작했다.

 "아야"

 무심결에 내 고간을 부둥켜잡는다. 그런데, 금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렇게 말랑말랑하고 따듯해서 기분 좋았던 몸통이 단단해지더니, 반으로 갈라진다.

 걱정스러워하며 다가가려는 키즈하를 막으며, 껍질에 손을 대본다.

 "뭘 하려고 그래!"

 그녀의 절규와 동시에, 자지 안에서 검은 무언가가 덮치며 날아온다. 장수도룡뇽을 떠올리게 만드는 미끈미끈한 몸통.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팔다리. 그리고, 유리구슬처럼 커다랗고 둥근 감정이 없는 눈.

 그 녀석은 내 오른팔을 물어뜯었다. 이빨은 가늘고 날카롭게 자라있다. 격통이 뼛속까지 울린다. 불타는 듯한 고통. 왼팔로 숏소드를 뽑아, 그 마물을 향해 휘두른다.

 "안 돼, 우리 자지라구. 죽이지 마!"

 키즈하가 내 팔에 매달린다. 하지만 저 자지였던 생물체는, 더욱 이빨을 박아온다. 까만 눈에 내 얼굴이 비춰진다. 감정도 의지도 없는 눈동자. 비춰진 인간을 습격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마물의 기관. 우리 애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트로이의 목마였나.

 우리가 돌봐주며 키워준 얼빠지고 애교있던 모습은, 본체의 성장을 감추기 위한 목마였던 셈인가.

 그렇다면 대처법은 매우 심플하다. 이대로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

 키즈하가 내 팔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외친다.

 "너 손대지 않겠다고 했잖아! 저건 우리 자지야. 귀여운 자지잖아. 왜 죽이려는 거야, 거짓말쟁이!"

 물린 곳에서 스멀스멀 녹색 액체가 퍼져간다. 독이다. 보르도풀을 독으로 연성했구나.

 내가 '상태이상 무효' 스킬이 없었더라면 즉사했겠지. 이 녀석은 흉악하다.

 눈을 보면 안다. 사람과는 절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지성을 지녔다. 그게 마물이다.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고, 키즈하가 만지게 할 수도 없다. 여기서, 내가 처리해야만───

 "둘이서 지키자고 약속했잖아. 같이 호수에도 놀러갔잖아. 죽이지 마!"

 검을 고쳐쥐며 검끝을 겨눈다. 목표는 눈과 눈의 사이. 하려면 일격에 해치운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자지를 죽이면, 널 죽일 거야. 진심이라구. 그만둬, 제발!"

 마물의 검은 눈이, 독이 통하지 않는 날 관심 밖으로 던지더니, 키즈하 쪽을 향한다.

 난 숏소드를 내리쳤다.



 헛간 안에 웅크리고 있는 키즈하에게, 숲에서 꺾어온 꽃을 한 송이 내민다. 그녀의 눈동자와 같은 색을 한 푸른 꽃이다.

 "이 꽃이 피어있던 곳에 묻어줬어. 네 색 같구나 해서"

 키즈하는 대답도 안 하고, 내게 병을 내민다. 빨간 액체가 어느 정도 들어있다.

 "말했지, 죽이겠다고. 이거, 전부 마셔.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마셔줘"

 네 얼굴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라고, 키즈하가 토해내듯 말한다. 입가를 피로 물들이고.

 병을 받아들고는, '입으로 옮겨주지 않는 거야?'라며, 소소한 농담을 쳐봤더니 혀를 찰 뿐이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사 상태에 빠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큰일인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모르겠지만, 마시기 전에 선언해둬야겠다.

 "마셔도 좋지만, 난 안 죽어. 널 지키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자지한테"

 설령 마시고 죽지 않더라도, 가사 상태일 때 심장이라고 관통당하면 당연히 죽는다. 키즈하가 진심이라면 난 끝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자지는 마지막까지 널 걱정했어. 나한테 잘 부탁한다고 말했거든. 키즈하는 굉장히 정서불안하고, 생활력도 없으니 자기가 없으면 큰일일 거라더라"

 피 냄새. 이거, 왜 이렇게 죽음을 떠올리게 만들까. 이쪽 인간에게 있어서는 마약이고, 나한테 있어서는 죽음과 이세계 전이의 맛이다.

 분명 이건 버그 아이템이다. 실수로 들어온 물건이겠지. 신의 실수라던가 뭔가로.

 "자지한테서 유언을 들었거든. 키즈하땅, 언제나 맛있고 위험한 풀가루를 먹여줘서 고마워. 함께 있어서 행복했어. 몸 조심하고 앞으로도──"

 "시끄럽네. 빨리 마시라고!"

 키즈하는 병을 뺏아들더니, 날 넘어트리고, 자기 입에 머금더니 입을 맞춰온다. 흘러들어오는 피. 입을 떼더니 또 피를 머금고 키스. '죽어'라고 그녀가 속삭인다. '너 같은 거 죽어버려'라고.

 둘이서 함께 새빨개지면서, 난 일찍이 없었을 정도로 대량의 양귀비박쥐의 피를 마셔버렸다.

 세계의 맛이 난다. 비극의 맛이 난다. 키즈하의 뺨으로 뻗었던 내 손을, 키즈하가 뿌리친다.



***



 《트럭 폭주 사고까지 6시간 45분》



 버스 정거장에서 한 손에 콜라를 들고 서있다.

 구름 낀 하늘에 기름 냄새가 난다. 이세계의 맑개 개인 여름이 확 뒤집힌 것만 같은 감각이다. 피 맛을 알기 전의 내가, 버스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어, 진짜? 여기까지 돌아왔어?

 가방 안을 열어본다. 그리운 교과서와 노트. 라이트 노벨. 필통. 핸드폰. 괜스레 애니송이 듣고 싶어져서 음악 어플을 키다가 떠올랐다. 헤드폰이 박살났었지.

 조금 냉정함을 되찾았다.

 꽤 많이 날아왔구나. 그날의 아침 시점까지 돌아오다니. 분명 이번 꿈은 굉장히 길다. 이것도 파노라마 기억이라는 놈인가?

 미끄러지듯 다가온 버스에 타, 주위를 둘러본다. 누군가 아는 사람을 찾아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신경이 쓰여서 매일 아침 그런 행동을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손톱만큼 자그마한 가능성을 기대했다. 이때의 나는.

 라노벨이라도 읽을까 했지만 그만뒀다. 창문 너머로 흘러가는 풍경으로 눈을 돌린다.

 도쿄.

 나는, 이런 커다란 곳에서 살았구나.

 정보가 너무 많아서 지친다. 시골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 탓이다. 바위와 숲과 돌로 만든 길거리.

 떠올렸더니, 이번엔 그쪽 세계가 그리워진다. 전쟁이나 사건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마왕과의 최전선. 설마 그런 체험을 진짜로 내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게, 내가 줄곧 동경해왔던 땅이었지.



 "아─, 그거 알 것 같은데. 미나미 고등학교 축구부지. 나 친구인데, 아마도"



 다음 버스 정거장에서 하루가 탄다. 은은하게 그리운 향기가 났다. 그쪽 세계에서 있을 때와는 다른 향기다. 인공적이고 자극이 강해서, 끈덕지게 코에 남아 냄새를 풍긴다.

 길고 둥글게 파마한 머리. 살짝 흐트러진 교복.

 그래, 이게 코야마 하루다.

 뭐라고 해야하나, 2.5차원의 배우를 현실에서 만났다는 느낌. 이세계에서의 그녀와, 내가 멀리서 보는 그녀가, 처음으로 겹쳐지며 진짜 하루가 되었다. 그게 보고 싶었던 듯한, 보고 싶지 않았던 듯한 이상한 감각. 하지만 코야마 하루도 역시 여기 살고 있었구나 라며 이상하게 이해해버리고 만다.

 난 심호흡하고, 결의를 다지고는, 다시 한 번 숨을 들이쉰다.

 "안녕"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하루에게 들릴 목소리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인사한다.

 주위에 있는 그녀의 친구A와 B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코야마 하루는 가벼운 말투로 미소지으며.

 "안녕"

 평범하게 친구처럼 대답했다.

 그대로 다른 학교 남학생 잡담으로 돌아간다. 나에 대해서는 금방 잊고서.

 그래도 이거면 됐다. 하루는 말을 걸면 누구에게나 가볍게 대답해준다. 그러니 쉬운 일이었다. 맥이 빠질 정도로.

 난 오늘, 처음으로 코야마 하루와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는 마물이 아니다. 말도 시선도 통한다.



 《트럭 폭주 사고까지 6시간 32분》



 교실에 들어선 순간, 뭔가 날아오는 기척이 느껴져 바로 손을 뻗는다.

 퍽 소리를 내며, 내 손에 야구공이 잡힌다.

 "우와, 미안. 괜찮냐?"

 야구 엑스트라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아, 그런가. 이런 일도 있었지.

 "괜찮아. 자"

 던져줄 때 무겁다고 느꼈다. 방금 전까지 엄청나게 큰 소드를 등에 짊어지거나 휘두르던 내가.

 현실은 무겁다.

 "오, 왔네"

 가방을 내려두자, 옆자리 남자애가 친근하게 말을 건다.

 세키구치. 그러고 보니 옆자리였지. '봤냐?'라며 물어보는데, 뭘 말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하늘던이라는 제목을 듣고, 어렴풋이 당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래 그래, 그 장면은 킹갓이었지.

 "유후밍이 '만지고 싶으세요?'라면서 가슴 들이밀던 장면 말이지"

 "너, 너는 야한 것만 밝히는구나!"

 안경을 고쳐쓰며 항의하는 세키구치에게, 난 '완전 평범한데'라며 웃는다. 너도 사실은 좋아하잖아, 그런 거.

 "그보다 나, 실은 방금 전까지 이세계에 다녀왔거든. 우리 반 코야마 하루랑 같이. 검도 마법도 치트도 있는데, 마왕 같은 놈도 있고. 레벨 상한이 금방 막혀서 슬로우라이프 장르의 이세계라는 느낌이었지만 말야. 아, 물론 나한테 집적대는 여자는 미소녀밖에 없었고, 거의 전원이랑 뭔가 했고"

 벙 찐 표정으로 듣고 있던 세키구치가, 잠시 뒤에 '아아'라며 애매하게 표정을 무너트린다. '그러냐'라고 대답하더니 눈을 돌린다. 동급생이 중2병을 앓을 때의 올바른 대처법이다.

 교실 정중앙에서는, 코야마 하루가 모두와 함께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다. 야구 엑스트라랑도 어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쪽에까지 어울리러 갈 용기는 없었지만.

 "나, 코야마랑도 했거든"

 세키구치는 또 난감해하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이야기를 잘라내며 교과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믿을 리 없겠지.

 사실인데도 말이야.



 《트럭 폭주 사고까지 4시간 7분》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기지개를 편다.

 재미없는 수업이다. 현대 사회 따위 배워봤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난 이제부터 이세계로 갈 테니까.

 하루 쪽을 바라본다. 턱을 괴고 노트에 뭔가 적고 있다. 추측이지만 수업이랑은 관계없는 것. 지금 이 교실에서 나와 하루만큼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시험도 수험도 없다.

 이세계를 떠올려본다. 숲속에서의 전투. 생명을 베어낼 때의 감촉. 전부 리얼한 기억인데, 마지막에 내가 베었던 마물을 떠올리자 눈이 아파온다.

 이 책상도 교실도 리얼한 기억이었다.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은 두 개의 세계. 재미없는 수업.

 난 갑자기 위기감을 떠올리고, 교과서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정치, 경제, 법률. 이 지식이 쓸모있을지 없을지는,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나도 전부 아는 건 아니니까. 그건 어디 사는 누구나 똑같다.

 시간이 없다. 가져갈 수 있는 건 전부 가져가지 않으면 아깝다.

 이제 두 번 다시 이곳으로는 돌아올 수 없으니까.



 《트럭 폭주 사고까지 2시간 12분》



 그래, 이제 곧 세계가 끝난다.

 "세키구치랑 치바가 오늘의 장보기 담당이네. 나도 같이 갈 테니 부탁할게"

 야구 엑스트라에게 '알았어'라고 대답한다. 시간은 곧장 흘러간다.

 "그리고 여자 쪽은 하마자와랑, 아이리랑 모카, 방과후 부탁 좀 할게"

 "에~"

 아이리와 모카라는 여자가, 반쯤 웃으며 '힘들어'라는 말을 꺼낸다.

 난 식후의 돼지처럼 한숨을 쉰다.

 너희들한테 말해두겠는데, 이제 곧 '힘들어'라고 말할 수 없는 충격적인 광경을 보게 된다고. 속는 셈 치고 가기나 해.

 "아, 잠깐. 나도 갈래!"

 하루가 손을 들고, 다들 벙 찐 표정을 짓는다.

 그 사고까지 앞으로 2시간.

 어째서인지, 위가 아파온다.



 《트럭 폭주 사고까지 20분》



 긴장된다.

 이제 곧 이세계 전이가 시작된다.

 드디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과, 또 가야만 하냐는 기분.

 생각해봤는데, 그쪽 세계가 진짜 그렇게나 좋았을까? 이쪽 세계에서 아직 못했던 일이 남아있지는 않나? 오늘이 그렇게 최악의 하루였나?

 하루는, 버스에서 '안녕'이라고 대답해줬다.

 난 그쪽 세계의 하루도 알고, 오늘이 끝난다는 사실도 아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해본 거지만, 그걸 다 모르는 상태로 도전해봤어도 결과는 아마 같았을 거다.

 매일 아침 같이 타는 버스에서, 아주 잠깐 나누는 한 마디 쯤이야, 그 녀석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줄 여자다.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따위야 알 수 없지만, 같은 반 친구한테 그 정도는 해주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도 시험삼아 해볼 걸 그랬다. 어제 버스에서라도. 뭣하면, 일 년 전에라도.



 "고마워, 세키구치. 덕분에 살았어~"



 거 봐, 맞지.

 저 녀석은 기분 나쁜 오타쿠한테도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여자라고. 아주 약았다니까. 그러니까 나도 거기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제대로 평범하게 이벤트를 밟아나갔더라면.

 그리고, 이세계에서의 코야마 하루를 모르는 채, 알고 지내는 사이 정도는 될 수 있는 루트도 아마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무서워졌다.

 아직 못했던 일이 잔뜩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실수했던 일도, 지금이라면 다시 고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깝다고 생각했다.

 아니, 틀려. 나한테는 이세계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더 이상 이곳의 인간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이제는.

 "그러고보니 물건 사러 가야지"

 가야만 한다.



 《트럭 폭주 사고까지 5분》



 학교를 나온 순간부터 두 그룹으로 나뉘어, 나와 세키구치는 뒤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고 난처해하는 하마자와라는 여자애랑은, 분명 한 번 카드인지 뭔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난 그때, 엄청나게 건방진 시선으로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시라도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걸면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가능성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하게 된다. 손 쓸 방도 없이 늦어버린 이 상태에서.

 앞으로 5분 정도면 전부 끝난다. 코야마 하루는 카스트 꼭대기층에서 전락해 이세계의 창녀가 된다. 밑바닥에 있던 나는 한때 평판 좋은 모험가가 되지만, 금방 만렙에 도달해 막혀버린다.

 그 다음은 뭐, 재미없는 노력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세계. 기적도 단 한 번의 치트로 끝이다.

 진짜 갈 셈이냐. 난 그저 곁다리잖아. 그러면 여기서 살아가길 골라야 할까. 하루가 없는 세계에서.



 《트럭 폭주 사고까지 2분》



 그렇구나. 이 시점에서 난 막혀있었구나. 하루를 포기하나 따라가나 변하지 않는다. 세계가 변해봤자, 내가 변하지는 않으니까.

 역으로 말하자면, 여기서 내가 변한다고 해서 딱히 상관은 없었다. 오늘도 간단했지 않은가.

 하루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맞는 여자가 있을지 모른다. 이런 나라도 지켜주고 싶은 애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있지, 쇼핑 끝나면 어디서 좀 쉬지 않을래?"



 야구 엑스트라가, 여자애들한테 제안한다.

 세키구치가, 그리고 하마자와도 고개를 들며 뒤를 바라보다, 눈이 맞았다.

 난 곧장 하루 쪽을 봤다.



 《트럭 폭주 사고까지 1분》



 "아, 남친이다~"

 카톡 알람음이 울려 화면을 보더니, 하루가 환하게 웃었다.

 이야기는 중단. 앞서 가던 멤버를 먼저 보내고, 하루는 멈춰서서 통화를 시작한다.

 한 톤 올라간 하루의 음색은, 창관에서도 들은 적 있다. 머리를 매만지는 버릇이 있던 그녀도, 그 머리를 이세계에서 짧게 잘라버리게 된다는 사실도 나밖에 모른다.

 코야마 하루라는 여자가, 실은 꽤 넉살 좋게 행동하거나 짜증나는 말을 한다던지, 정이 많다는 점이라던지, 금방 화내고 변태였다는 사실도, 난 이세계에서 알게 된다.

 알기 전의 나는, 아마 코야마 하루에게 사랑을 품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외모다. 미소녀니까.

 그래서 아다를 떼줬을 때 솔직히 기뻤다.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고.

 하지만 지금은 진심이 아니다. 너 역시, 날 한 번도 진심으로 좋아해준 적은 없었을 테고.

 역시 섹스는 하지 말 걸 그랬다. 시간을 들였더라면, 어쩌면 평범한 친구가 되어줬을지도 모르고, 오늘도 널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난 분명, 몇 번이라도 널 구하고 싶어서 달리게 되겠지. 이세계에 가고 싶고, 하루가 멋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고, 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다.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껴있던 하늘이, 아주 조금 맑아진 틈새로부터 햇살이 그녀를 비추었다.

 그야말로 교실의 정점. 오타쿠에게는 높은 언덕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다.

 역시 너, 엄청 귀여웠구나.

 난 하루의 핸드폰을 빼앗아, 멋대로 전화를 꺼버렸다.



 《트럭 폭주 사고까지 30초》



 "……하아?"

 하루가 눈썹을 치켜뜬다. '얘 누구더라?'라는 느낌으로.

 네가 날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그러니까 오늘부터 알려줄게.

 "나는, 널 구할 남자야"

 하루는 더욱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거짓말이 아니다. 내가 먼저다. 트럭한테 치이는 건 아주 근소하게나마 내가 더 빠르다.

 즉, 난 이 찰나의 순간에 먼저 이세계로 갔다. 널 지켰다.

 "너 뿐만이 아니야. 엄마도 키요리도 키즈하도 내가 반드시 구하겠어. 그러기 위해 이세계로 갈 거야. 다시 하는 게 아니라, 시작할 거라고"

 "아니,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뭐야, 너? 좀 무서운데?"

 "진짜 무서운 건 지금부터 시작될 일이지. 그래도 걱정하지 마. 운명은 변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죽어"

 "진짜 무섭거든?!"

 멀리서 무언가를 찢어버리는 듯한, 타이어 미끄러지는 소리가 울린다.




 《 사 고 개 시 》



 "아, 뭐야 저 트럭은?"

 먼저 가던 그룹이 폭주를 깨닫는다.

 여기서 남은 시간은 대략 5초 정도.

 그리고 추측이지만, 내가 여기 오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세계 전송까지 5초》



 "───코야마!"

 세키구치 크게 소리친다.

 하지만 녀석은 늦는다. 야구 엑스트라도 안 된다. 몇 번이나 해봤자 결과는 똑같다.

 그렇기에 나는, 하루에게 등을 돌리고 차도로 나아갔따.



 《이세계 전송까지 4초→3초》



 바로 지금, 기록 갱신중. 코야마 하루보다 얼마나 빨리 이세계로 갈 수 있을까. 혹은 지금이라면, 트럭 쯤이야 한 손으로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야구 엑스트라와 세키구치도 부딪치며 구르는 중이다. 하마자와는 비명을 지르고, 다른 여자애들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슬로우모션으로 흘러가는 내 주위에서, 시간이 느리게 느리게 흘러간다.



 《이세계 전송까지 3초→1초》



 잘 있어라, 세상아.

 너 엄청 싫었다고. 그래도 다음에는 잘 할 테니까 응원해줘. 배운 것도 잊지 않을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시간도 없으니 마지막으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을 해두자면, 뭐 '신세졌다'라고나 할까.

 하루 쪽을 돌아본다. 역시 '얘 누구더라?'라는 표정이라 웃겼다.

 네가 날 아는 건 이제부터야. 나도 진짜 너를 모르니까.

 혹시라도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이세계에 가 처음으로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된다는 점이겠지. 이쪽 세상에서 난 너무 삐딱했고, 넌 너무 유연했으니까.

 다들 잘 들어. 내가 누군지 알려주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야. 그리고 얼른 잊어버려라.

 목청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소리지른다.




 "난 진홍의 엔드리스레인이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루페 엄마는, 오늘도 기운이 없는 모양이다.

 난 평소처럼 신나서 떠든다.

 아마 그녀는 지쳤을 테지. 일 내용도 내용이니, 난 되도록 물어보지 않으려 한다.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묻지 않는다. 즐거운 이야기만 한다.

 호감도는 떡상중이다. 나중에 결혼하고 싶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너는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끈기있게 잡담을 계속했더니, 좋은 질문이 들어왔다.

 장래에 대한 이야기라면 자신있다.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신을 때릴 거야"

 보다 나은 세상을 재구축. 나에게는 그러기 위한 효율적인 계획이 다 있다.

 까놓고 말해서, 마왕을 때려눕히기란 앞으로 몇백 년이 걸려도 무리다. 하지만 그 무책임한 신 정도라면 때릴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수행을 한다면.

 그리고 세상의 시스템을 바꾸겠다. 스킬의 분배를 고치겠다. 그때는 성별에 의한 차별도 없애는 편이 좋겠다. 인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거다. 그럼 마왕도 궁지에 몰리겠지. 엄마도 행복해질 테고.

 그걸 신에게 시킨다. 아니 그보다, 처음부터 그 녀석 책임이잖아. 두들겨 패서 눈을 뜨게 만들어줘야겠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루페 엄마는 동요했는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큰일이네.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진짜로 할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이건 아마 크리티컬 히트다. 엄마는 분명 내게 반했을 테지.

 그래도 시간이 필요하다. 꿈 같은 말을 한다는 자각도 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진지하게 수행만 하지는 않을 테고, 수없이 좌절할 자신도 있다.

 그런데도, 혹시나 기다려준다면. 응원해준다면.

 "……정말 때려줄 거야?"

 작은 손을 포개잡는다.

 언젠가, 히어로처럼 이세계(너)를 구해보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