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선은 이윽고 본토──리베리스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흐릿한 안개 너머로 육지의 실루엣이 나타나고, 점점 시야를 가득 채워간다.
경사면에는 소형선이나 거룻배가 무수히 연결되어, 마치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콩알처럼 보이는 작은 것들은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겠지.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 외에도 커다란 콘테이너를 적재한 화물선이 왕래하고 있었으며, 꽤 떨어진 곳의 군사 항구처럼 보이는 장소에는 리베리스탄의 군함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본 풍경에, 랏셀 일행은 압도당했다.
테아시가 확인하듯 중얼거렸다.
"……도착했네"
"응"
콕스가 짧게 대답했다.
랏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깨에 타있는 리브가 볼을 비벼대자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리브. 너도 처음봤지"
올려다보니 바다 위로 우뚝 솟아오른 가파른 벼랑에, 여기저기 잔뜩 퍼져있는 '마을'이 보였다.
집락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견고하게 만들어진 무수한 건물 사이로 길이 펼쳐져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까. 스케일이 너무 커서 추측도 못하겠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벽이다"
그렇게 말하자 리브가 겁먹은 듯 몸을 웅크렸다.
"우리들은 여기서, 우리들을 바꾸는 거야"
"저기, 빨리 올라가보자! 더는 못 기다리겠어!"
테아시가 두근거리며 말하는 순간, 소형선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호킨스가 조타실에서 얼굴을 내밀고 말한다.
"미안미안 ……깜빡하고 있었어"
"엉?"
호킨스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가르키는 곳을 바라보자, 발광신호를 내며 접근하는 배가 보였다.
***
그것은 본토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검문선이었다. 다리가 펼쳐지며 세 명의 검문관이 승선해왔다. 한 명은 짐을 검사하고, 다른 한 명은 랏셀 일행의 신분을 검사한다고 했다.
우선 전원의 오른손목──그곳에 채워진 팔찌를 조사했다. 리베리스탄 소속의 해상 집락 주민임을 증명하는 물건이다. 만약 이게 없다면 그 시점에서 배제 대상이 된다.
계속해서 속옷 한 장만 남기고 다 벗겨져서 심문을 받는다. 이름을 물어보고, 키를 재고, 몸을 만지거나 눈썹을 누르는 등 엄청 공들인 관찰을 당했다. 특징을 기록하고, 역병이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라 한다. 랏셀의 왼쪽 눈 아래에는 오래된 상처가 있다. 그것조차 꼼꼼하게 기록되었다.
조사를 끝낸 일행을 앞에 세우고, 검문관들이 결과를 확인한다.
"입국 목적은 노동. 역병 등의 소견은 없음, 좋아. 적재물은 생활 물자와 융보로 1체인가"
"딱히 문제 없습니다"
"음. 그럼, 리베리스탄 본토 상륙을 허가하지"
상륙 허가가 떨어지자, 랏셀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문관은 새로운 팔찌를 꺼내더니, 모두의 오른팔에 채웠다.
"본토에서는 이게 없으면 강제 퇴거 대상이 된다"
"지금까지 끼고있던 팔찌는?"
"마음대로 해도 좋다. 해상 집락 주민이라는 증거따위, 본토에선 장식으로 쓰지도 못하지"
그 말투에는 명백히 모멸의 의미가 함축되어있었다. 랏셀은 검문관의 등에 붸에에 하며 혀를 내밀었다.
***
검문선에게 이끌려, 드디어 소형선이 항구에 들어간다. 정박해있는 많은 배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테아시가 말한다.
"뭐랄까…… 기운 없네, 여기 사람들"
"이녀석들, 육지의 팔찌를 끼고 있는데 왜 상륙하지 않지?"
콕스가 당연한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사람이 아까 받은 팔찌와 똑같이 생긴 것을 차고 있었다. 이것만 있다면, 육지에서 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리브는 검문 전에 바다에 풀어두었다. 그렇게 검문관의 눈을 피해, 지금도 소형선 뒤를 느긋하게 헤엄치고 있다.
"이런 때엔 편리하네, 너"
뱃전에서 내려다보는 랏셀이 말하자, 리브는 배영을 하듯 몸을 뒤집고는 싱긋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뭐, 그대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라구. 부탁한다"
검문선에서 검문관이 손가락으로 싸인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저 부두에 배를 정박시키라는 뜻 같다.
말한대로 배를 멈추자, 검문선이 떨어져나갔다.
겨우 해방된 기분이 든 랏셀 일행은 앞을 다투어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부두 위를 달린다.
목표는 물론 '상륙'이다.
"내가 먼저야!"
"나야!"
"둘 다 기다려!"
달리는 기세 그대로, 셋은 지면을 힘껏 밟았다.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촉이다. 배의 갑판과는 다르게, 흙의 지면은 딱딱하면서도 희미하게 탄력이 느껴진다.
랏셀은 눈을 초롱초롱 밝혔다.
"……이것이"
콕스와 테아시도 들떠서 말했다.
"쩐다, 쩔어! 지면!"
"움직이지 않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 이상한 느낌이야!"
"뭔가 기분 나쁜데"
랏셀이 돌아봤다.
"본토에 왔어, 우리들…… 육지로!"
들썩이는 세 사람을, 부두에서 온 호킨스가 싱글싱글 웃으며 바라본다. 발 밑의 해면에는 리브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전도양양──할 터였으나, 순조로운 건 여기까지였다.
부두 건너편에 있던 낡은 건물은, 입국 심사를 받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서류의 산에 파묻힌 심사관이, 랏셀 일행의 입국 희망을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어엉?! 여여여기, 이거이거!"
필사적으로 팔찌를 내보였으나, 심사관은 아예 이쪽을 보지도 않는다.
"그건 어디까지나 허가증일 뿐이야. 너희들, 딱히 범죄 이력은 없었으니까. 남은 건 보증금인데"
"보, 보증금……"
호킨스으으, 하며 볼품없는 목소리로 돌아본다.
"모두가 가진 돈 전부를 모아봤는데…… 모자라"
기죽지도 않고 혀라고 낼름 내밀어댈 것 같은 얼굴이다.
"그런……"
심사관이 벌레를 쫓아내는 듯한 몸짓을 하며 말한다.
"뭐, 항구에서 열심히 벌어야지. 오늘은 입항이 많아서 바쁘거든, 얼른 나가라 나가"
"아니 잠깐 기다려봐!"
***
무수하게 정박해있는 배를 바라보면서, 랏셀 일행은 망연자실했다. 저기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입국을 위한 보증금을 버는 녀석들이었다.
"이봐, 알고 있었으면 가르쳐 줬어야지!"
"나도 값이 배로 올랐을 줄은 몰랐지"
호킨스는 원래 육지에서 해상 집락으로 들어온 사내다. 도움이 될 터였으나, 첫걸음부터 이모양 이꼬라지다.
"하아……"
랏셀이 한숨을 쉰다.
입국 심사소의 양쪽에 길고 높은 벽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져있다. 바다에 닿는 부분과 내지를 완벽히 갈라둔 것이다.
바로 그 때, 근처 해안에서 파직 하는 큰 소리가 났다.
"우와아악?!"
계속해서 중년 남성의 비명.
살펴보니 컨테이너 3개를 감싸고 있던 수송선의 크레인의 관절부가 끊어지며, 적재해둔 짐이 무너지고 있었다.
제일 먼저 반응한 건 호킨스였다.
"융보로를 기동시켜. 리브도 함께"
"어?"
"나머지 둘은 배에서 대기!"
"뭐?"
"잠깐!"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호킨스는 크레인의 옆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짐의 주인에게 달려갔다.
"대체 뭐야 젠장!"
영문도 모르는 채로, 셋은 일제히 움직였다.
소형선에 싣고 온 잠수 융보로를 기동하고, 바다에 집어넣은 뒤 랏셀이 해치에서 몸을 내밀었다.
"리브!"
부름에 응답하듯 바다에서 튀어올라 외장에 찰싹 달라붙는 리브를 안으로 데려오고, 주인과 교섭이라도 하는 듯한 호킨스를 바라본다.
"그, 그런 불합리한!"
무슨 말을 했는지 짐짝 주인이 비명을 지르자, 거의 동시에 크레인이 크게 기울었다.
컨테이너가 차례차례 낙하하더니 성대한 물보라를 만들어냈다.
"으아앗, 내 물건이──!"
"어떡할래?"
"알았어, 낼게! 낼테니 어떻게든 해봐!"
호킨스가 싱긋 웃었다. 교섭 성립.
"랏셀, 가라!"
"그런 뜻이었냐"
혹시 짐이 바다에 떨어지면, 잠수 융보로로 주워오게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의 모습을 보아하니 꽤나 바가지를 당한 게 틀림없다.
"콕스! 테아시! 와이어 훅 좀 줘!"
소형선 위의 둘에게 소리친다.
"읏챠!"
"사람 다루는 게 험하네, 정말"
힘을 모아 갑판에서 두 줄의 와이어 훅을 바다 속으로 던지고, 둘은 소형선에 장비된 소형 크레인 조종석으로 달려갔다.
랏셀의 기체는 훅을 낚아채서 바로 잠수해 가라앉는 컨테이너 3개를 쫓는다.
"리브!"
콘솔에 달라붙은 리브가 능력을 발휘한다. 조종석이 인광에 휩싸이고, 기체의 거동이 몰라볼 정도로 변한다. 와이어 끝에 달린 훅을, 잠겨가는 컨테이너에 차례차례 연결한다. 이건 콕스와 테아시가 조종하는 크레인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컨테이너는 더욱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기체가 한계 성능을 끌어올려, 가속한다.
"늦지 말아라아아아……!"
한 편 바다 위에서는 짐의 주인인 중년 남성이 허둥대고 있었다.
"저게 가라앉으면 난 주, 주주, 죽는닷"
"무섭구만"
두 개의 컨테이너는 무사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랏셀의 기체가 아직 바다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무리였나……?"
"랏셀……!"
지상의 일행이 기도하듯 말하던 그때였다.
푸슛,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다 위로 와이어가 튀어나오더니 소형선 크레인에 얽혔다. 잠수 융보로가 장비하고 있던 권양기다.
와이어가 둘둘 말리기 시작하더니, 랏셀의 기체가 바다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랏셀! 컨테이너는?!"
와이어가 더 감기자, 랏셀의 기체가 단단히 움켜잡고 있는 컨테이너의 모습이 나타났다.
"좋아, 잘했어!"
"해냈다!"
콕스와 테아시만이 아니라,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함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우오오오오, 살았다아아!"
울부짖는 짐 주인의 어깨를 호킨스가 두드린다.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엄지와 검지를 문지른다. 성공 보수를 달라는 소리였다.
해치에서 나온 랏셀은 주위를 바라봤다. 갑작스런 일이었으나, 어떻게든 잘 매듭지어진 모양이다. 탑승구로 얼굴을 빼꼼 내미는 리브를 쓰다듬는다. 리브는 갑지럽다는 듯이 몸을 비틀었다.
컨테이너 세개를 바로 옆의 거룻배에 인양하고, 내용물 확인에 들어갔다. 단순히 흥미가 생겨 가봤던 랏셀은, 거기서 깜짝 놀라게 된다.
"글래디에이터다……"
운송하기 쉽게 분해되어있었지만, 그것은 작업용 융보로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전투기계로서의 박력을 풍기고 있었다.
"이게?"
"아마도. 그냥 융보로가 아니야"
"뭔가 이렇게, 꺼림칙하게 생겼네. 적을 해치우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잖아"
옆에서 바라보던 테아시의 감상에 이론은 없다. 랏셀은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흥미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글래디에이터를 탄다는 일은 융보로 조종사의 동경이며, 하나의 도착점이었다. 자신의 실력이 어디까지 통할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랏셀은 고향을 등지고 온 것이다.
호킨스가 두터운 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정부에 바치는 물건이야. 저 아저씨, 거금을 들이는 일이 있더라도 이걸 잃어선 안됐단 말이지. 이야 좋은 돈벌이었어"
실실 웃으면서 호킨스가 글래디에이터에 매료되어있는 랏셀의 옆 얼굴을 향해,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하게 말한다.
"이녀석의 힘이 국가의 힘이야"
랏셀이 대답한다.
"그래. 언젠가는 타주겠어!"
***
심사관이 익숙한 손동작으로 지폐다발을 센다.
"……네 명 분, 확실하군. 팔 내봐"
랏셀 일행은 득의양양하게 오른팔을 내민다. 입국 허가를 나타내는 팔찌에, 보증금 납부를 나타내는 팔찌가 겹쳐지더니, 찰칵 소리를 내며 고정된다.
"리브리스탄 시민으로서 환영하지"
기쁨을 주체 못하고 얼굴이 풀어진 일행은, 심사소에서 내지 쪽으로 향했다. 여기를 빠져나가면, 고대하던 리베리스탄 본토이다.
지나가는 통로 벽에 붙어있던 육지의 지도를 보고, 랏셀은 문득 발을 멈췄다.
육지라고는 해도, 사람이 살고있는 지역은 한정되어있다. 그 주변을 위에서 바라본 지도였다.
대륙의 남쪽 끝에서, 딱 포크 모양으로 둥글게 튀어나온 3개의 반도가 돌출되어 있다. 리베리스탄은 동쪽 반도를 지배하는 국가이다.
중앙 반도를 경계로, 서쪽의 반도가 아우구스토니아. 번영을 추구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전쟁을 계속해오는 적국──으로 되어있다.
해상 집락에서 사는데 익숙한 랏셀에게 있어서, 솔직히 전쟁은 남일처럼 느껴진다. 바다에도 완충 수역이 있지만, 죽은 동료도 있었기에, 아우구스토니아는 위험한 이웃이라는 인식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 조종사를 목표로 하는 한, 깊이 연관될 수밖에 없다.
문득 리브와 만난 바다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고래오징어 무리를 앞에 두고, 같이 죽을 수 없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던 그 때──적 함대에 있던 아우구스토니아의 소녀.
고래오징어에게 사람을 죽이게 하고 싶지 않아, 자기가 그렇게 소리쳤을 터였다. 거짓 없는 진심이다. 고래오징어는 결코 인간의 천적이 아니다. 두려워하고, 멀리하면 된다.
그렇게 느끼는 건, 태어났을 때부터 고래오징어를 가까이서 느껴왔기 때문이고, 전쟁이 본분인 군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총을 겨누긴 했으나 당아쇠를 당기지는 않았다.
자신의 말이 닿았다는 뜻일 까.
조금,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내지의 건물은 모두 견고하다.
주된 건축 자재는 모래나 자갈에 시멘트를 발라 굳힌 콘크리트다. 집이나 공장의 외벽은 모두 바닷바람을 맞아 담갈색으로 변했다. 도로도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사람이나 융보로, 전동차가 지나다닌다.
본토는 번영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토니아와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고는 하나, 오늘날은 서로의 국토를 유린하는 전쟁이 아니다. 랏셀 일행같은 사람들을 바다 바깥으로 내보내 고래오징어의 방패로 쓰는 한편, 육지는 이렇게나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겨우 인파의 박력에 익숙해졌을 무렵, 랏셀 일행은 현실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일이다. 보증금을 지불했지만 아직 자금의 여유는 있다. 하지만, 바닥을 드러내기 전에 생활의 거점을 얻어야만 한다. 이것이 랏셀 일행은 눈을 부릅 뜨고 마을 외곽의 구인 광고판에 달라붙어있는 이유였다.
호킨스는 집락에서 타고 온 소형선을 항구에 맡기는 수속을 하고 있다. 그가 돌아오기 전에 좋은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유감이게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여─. 기다렸지"
돌아온 융보로의 해치에서 호킨스가 말을 건넸다.잠수 융보로의 다리에서 끌어온 동룍으로 새로 장착한 네 개의 바퀴로 굴러가도록 개조가 되어있다.
"오, 굉장해!"
"진짜 대단한걸, 이런걸 만들어내다니"
콕스와 테아시의 감탄에, 호킨스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잘 보니 둥근 창에서 리브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에서 온 것 치고는 물에 들어가있지 않아도 딱히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단, 이걸로 이제 진짜 빈털터리야. 어때, 좋은 일은 있어?"
"아니……"
"그게 말이야, 애초에 우리들 힘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곤란하네"
약간 떨어진 게시판 앞에서 랏셀이 소리쳤다.
"저기, 이건?"
모두들 들여다본다. 융보로 조종사의 모집이었다.
"……오오, 수입도 괜찮은데!"
"우리들의 특기라고 하면, 일단 이거잖아"
콕스와 테아시는 바로 할 생각이었으나, 랏셀은 아직 신경쓰이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꽤 멀단 말이지. 이 작업장. 호킨스, 어때?"
"……흠. 뭐, 괜찮지 않아?"
모집 내용을 한 번 읽어본 호킨스가 가볍게 말했다.
"이렇게 다리도 생겼겠다. 나도 아는 곳이야"
"좋아, 그럼 결정이다!"
***
육지로 올라온 잠수 융보로를 몰다가 멈추고 충전기를 만 하루정도 반복했다.
랏셀 일행은 '공동 조계'를 향해 계속 달려갔다.
"국경 사이의, 이른바 완충 지역이라는 거네.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 양 국가의 반푼이들이 흘러들어와서, 뭐 뒤죽박죽 섞여있단 말이지"
호킨스가 설명했다. 지도로 말하자면, 포크의 한가운데 부분의 반도 전부가 공동 조계에 해당한다.
콕스가 물었다.
"저기, 아우구스토니아 좀 이상한 국가잖아. 대단한 녀석들이 권력을 독차지하고,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은 심한 취급을 당한다던데"
"상부에 거역하면 바로 총살이라던가. 감시가 심해서 자유가 전혀 없다던가"
이어서 말하는 테아시에게, 호킨스가 안그래도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자유라…… 뭐, 없겠지"
랏셀이 끼어든다.
"우리들도 별 차이 없잖아"
"그렇지. 사람을 다스린다는 게 뭘까? 이걸까, 이걸까?"
호킨스가 엄지와 검지를 교차시키듯 모으고, 이어서 총을 쏘는 시늉을 낸다.
돈이냐, 총이냐.
그 동작은 간단하게 육지의 현 상태를 말하고 있었다. 좋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졌다.
***
세갈래 포크 중 서쪽 반도.
아우구스토니아 군사 항구에, 군함과 그에 끌려가는 해상 연구 시설이 함께 들어왔다.
시설 내 연습장에서, 스카야가 스나이더 한 명을 상대로 이그나이트의 시연을 하게 되었다. 신뢰할 수 있는 조종사를 상대로 하는, 글래디에이터와의 일기토였다.
이그나이트는 이전과 완전 다른 고속 기동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대검이나 창같은 무기를 완벽하게 다뤄보였다. 베기, 찌르기를 쏜살같은 속도로 반복하자, 상대는 순식간에 무릎꿇고 말았다. 동작은 완전히 최적화되어, 빈틈이 하나도 없었다.
보고를 받긴 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인 스나이더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글래디에이터를 간단하게 격파한 이그나이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지했다. 두부의 해치가 열리고 스카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그나이트, 나를 내려줘"
<네. 스카야>
딱딱한 음성. 이어서, 이그나이트라 불린 하얀 기체가 손바닥을 가져다대고 스카야가 옮겨탔다. 그대로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체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서포트한다.
스나이더는 대략 멍해졌다. 거대한 기체가 말을 하고, 스카야의 명령을 순종적으로 따른다.
"스카야 님…… 대단한 성과입니다, 이 기체에 이정도의 성능이 숨어있을 줄이야! 대체 어떻게?!"
"갑자기, 라고밖에 할 말이 없네요"
스카야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기본동작조차 제대로 못했던 기체가, 운동성능이 극적으로 향상되고, 음성 커맨드에도 반응하게 되다니"
"언어의 의미를 이해한다……?"
"입력에 대해 보다 풍부한 출력을 할 수 있도록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의미'나 '이해'의 정의까지는 모르겠네요"
"흠…… 어쨌든, 이 굉장한 힘, 어떻게든 컨트롤해서 전력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물론이죠. 우선 아버님께 직접 보고를"
"기다려주십시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네?"
의외의 말이었다. 스나이더가 냉철한 시선을 보낸다.
"이전 사건에 대해서도 함구령이 내려졌습니다"
이그나이트가 기동했을 때, 연구 시설의 갑판으로 날아오른 순간을 목격한 자들에 대해서겠지.
"세오드라이트 각하에게는 아직 공개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죠?"
"당신을 위해서 입니다. 당신이 설 곳을 만들고,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의아해하는 스카야에게, 스나이더가 말을 잇는다.
"이 기체…… 이그나이트가 운용 가능해지면, 다음 무투의 의에서 우리가 승리하겠죠. 당신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만 합니다"
확실히, 이그나이트의 존재는 아우구스토니아에 압도적 우위를 가져오리라. 그 성과를, 정치에 빼앗기는 일이 생겨나선 안 된다. 스나이더가 속삭였다.
"이 힘은 당신 것입니다"
***
세 개의 반도 중 한가운데 부분, 동서 양 국가의 반푼이들이 흘러들어오는 곳──공동 조계는 독특한 분위기를 띈 곳이었다.
조계 반도의 양 끝은 바다에서부터 가파르게 경사져있어, 본래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닌 산맥 지형이었다. 하지만 봉우리 부분이 마치 파인 듯한 평지로 되어있는 덕분에, 끝 부분에 길고 가느다란 거주 구역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해발의 차이가 고스란히 빈부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도 육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리라.
저층구에 줄지어있는 빈곤층의 마을이, 짙은 저녁노을에 물들어간다. 노점이 줄지어있는 가건물 시장 바로 옆에, 대가족이 들어선 공동 주택 구역이 북적거리고 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의 복장은 예의상으로도 좋다고는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질서가 없고, 살벌한 분위기가 가득찬 난잡한 풍경이다.
하지만, 어딘가 예의를 차리는 리베리스탄의 거리와는 다르게, 거의 알몸인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거리를 뛰노는 모습은 생동감 넘친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랏셀 일행은 천천히밖에 가지 못하는 융보로 위에서 그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길 알겠어?"
"헉!"
기내에 있는 호킨스의 질문에, 랏셀이 제정신을 찾았다. 아까부터 길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음, 그……"
"제대로 지도 봐야지─"
"그런 말 해도,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응?"
전방이 소란스럽다.
노점상이 나란히 늘어서있는 한 구석에, 소총을 지닌 리베리스탄 군인들에 의해 상품이 던져지고, 길이 막히게 됐다. 군인은 그 와중에 점주들을 가차없이 포박하고, 무슨 심기를 건드렸는지 진열대를 걷어차는 자도 있었다.
"무슨일이지?"
"어째 살벌한데"
호킨스가 소란이 일어난 곳 바로 앞에서 융보로를 멈췄을 때였다.
"거기 융보로!"
이쪽을 수상히 여긴 군인이 갈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뺨에는 화려한 상처자국이 있다.
"탑승자 전원 내려!"
"우, 우리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데"
"그래, 막 조계에 도착했을 뿐이라구!"
"지나갈 수 없잖아, 비켜줘! 자, 우리들 리베리스탄인! 아군이라구!"
"잔말 말고 내려!"
랏셀이 팔찌를 보여줘도, 도리가 없었다. 상처의 사내가 소총을 꺼내들려 하자, 4명은 허둥대며 융보로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많은 수의 전동 2륜차가 도착했다.
똑같이 소형 화기를 지닌, 아우구스토니아의 군인들이었다.
공동 조계는, 긴장 상태의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 두 국가가 궁경을 맞대지 않도록 책정된 완충 지역이다. 어느쪽의 영토도 아닌 대신, 관리는 양 국가의 출선 기관이 공동으로 행한다. 치안 유지 명목으로 파견된 양국의 군인이 이렇게 맞닥드리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양국 군인이 대치하자, 분위기는 단숨에 바싹 긴장하기 시작했다.
도화선에 불을 지핀 것은, 눈꼬리가 치켜올라간 아우구스토니아 군의 남자였다.
"우리 국가의 공용차가 여기를 통과한다. 길을 열어줬으면 한다"
상처의 사내가 건방지게 대답한다.
"아우구스토니아는 테러리스트 대책이라는 상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군. 어느 높으신 분이 통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리라고 해"
"뭐라!"
아우구스토니아 군의 젊은이가 소리쳤다. 조계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얽혀서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끝내주지 않으려나. 날이 저물어버리는데……"
불만있다는 듯이 중얼대는 랏셀이, 검은 차가 근처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옆으로 폭이 넓고, 화려한 차였다.
눈꼬리가 올라간 사내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비키라고 하잖나!"
"이 구역의 검사는 사전에 통지했다만, 공용차의 통행 예정은 듣지 못했는데. 귀관들이 보고를 게을리한 것 아닌가?"
"그런 의무는 없다!"
"아─정말!"
짜증이 정점을 찍은 랏셀이 결국 끼어들었다.
"우리들도 여기를 지나가고 싶어! 테러 대책인지 뭔지 방해하지 않고 지나가면 되잖아?!"
어이없다는 듯한 양 군인을 남겨두고, 랏셀은 껑충껑충 뛰며 융보로에 올라탔다.
"어, 어이 랏셀?!"
"뭘 하려고?!"
콕스와 테아시가 당황하고, 군인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을 곁눈질하고는, 랏셀의 기체가 순식간에 공용차로 접근하더니, 차체 밑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실례>
기체 밖에 달린 스피커에서 한마디 내뱉고는, 융보로가 공용차를 높이 치켜들었다. 조계의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태였으며, 양 군인들은 더욱 당황해하며 허둥댔다. 리베리스탄의 군인이 저도모르게 소총을 겨두었으며, 상처난 사내가 허겁지겁 이를 저지했다. 누군가가 탔는지 모르는 아우구스토니아의 공용차에 총을 들이대면, 외교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
모두들 팔짱끼며 지켜보는 사이를, 랏셀의 기체가 가볍게 통과했다.
<네 잠시 실례할게요~>
길 위에 흩어져있는 물건들을 능숙하게 피하며, 공용차를 상점 거리 끝까지 옮긴다. 융보로에게 들려져서 크게 흔들리는 차 내부에서는, 유달리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재밌는 녀석이네! 조계는 이래야지!"
아우구스토니아의 산업전략대신, 세오드라이트였다. 노경에 접어든 55세의 나이에 비해, 아직 건장함을 지닌 사내였다.
세오드라이트가 대담함을 보여주는 한편, 같이 타고있던 남녀는 허둥대고 있었다. 그의 비서관이며 친딸인 스키더와, 경비주임인 스나이더였다.
"각하!"
"고개를 숙여!"
둘 다 몸을 낮추고 세오드라이트를 지키려 했으나, 예상 외의 사태에 당황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또 다른 승객, 스카야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내키지 않는 공무로 공동 조계를 방문했으나, 평소엔 점잖떨던 스키더나 스나이더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다니. 조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듣긴 했지만, 과연 아버지 말씀대로, 재밌는 곳일지도 모른다.
이런 바보같은 짓을 벌인 녀석의 얼굴을 보려고 창문을 바라보자, 융보로의 창문에 비춰진 얼굴과 눈이 맞았다.
앗 하며 숨을 삼킨 것은 랏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융보로를 멈추고, 해치를 빠져나가, 머니퓰레이터를 통해 차창으로 달려갔다.
"당신…… 그때의!"
역시 맞았다. 완충 수역의 아우구스토니아 군함에 타고 있던 소녀.
"뭐! 뭐! 당신!"
나라구 나, 라며 자신을 가르키며 창문을 두들기자, 소녀는 무심결에 몸을 뒤로 뺐다.
랏셀은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보였다.
"이거, 여기로 가고 싶어! 어딘지 몰라?!"
창문이 자동으로 아래로 열렸다.
철석같이 알려줄거라 믿고 활짝 웃는 랏셀의 뺨에, 옆에서 차가운 감촉이 꾹 하며 달라붙어왔다. 소녀의 옆에 앉아있던 홀쭉한 남성이 뽑은 권총이었다.
"너를 구속한다"
스카야는 아연했다. 그 바다에서 만난, 고래오징어 몰이꾼. 틀림없다. 그게 지금은, 멀리 떨어진 공동 조계에서 스나이더에게 총으로 위협받아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 남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
몇시간 뒤──랏셀은 조계를 통치하는 공동 관리부에 마련된 감옥에 넣어졌다. 정중하게도 독방이었다.
아우구스토니아 사람인 듯한 초로의 간수가 쇠창살에 열쇠를 걸었다.
"나 참…… 애먹게 하는구만"
"왜 이런곳에 들어와야 하냐고! 길을 물어봤을 뿐이잖아!"
"대신이 탄 차에 말이냐? 그자리에서 총살당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해"
"그러니까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니까!"
간수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얌전히 있어라 망할놈아. 아무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어, 그래?"
의표를 찔렸는지, 랏셀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테러리스트가 그렇게 멍청하겠냐"
"뭣……"
"너, 조계에 사는 인간이 아니지?"
"어? 그래. 리베리스탄의 고래오징어 몰이꾼이었어. 육지에서 새로 시작하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호오. 그렇지만, 쓸데없는 호기심은 키우지 않는 게 좋아. 조계에선 분쟁의 씨앗이 되면 곤란해지니까. 각하의 온정에 감사하며 하룻밤 머리를 식히고, 이제 이곳에 다가오지 않는 편이 좋아. 뭣하면 바다로 돌아가도 좋고"
"안 돌아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간수는 떠나버렸다.
"…………쳇!"
랏셀은 제자리에 드러누웠다. 이렇게 되버렸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어처구니 없어하며 돌아갔을 콕스 일행의 표정이 떠올랐다.
***
같은 공동 조계부의 최상층에는, 양국에서 파견나온 대표단에 의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리베리스탄의 대표는 세 명. 아우구스토니아 측에서는 세오드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세 명 외에, 비서관인 스키더. 거기에 옵저버로서 동행을 명령받은 스카야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지막 의제를 끝으로, 스키더가 선서한다.
"그럼, 사열식은 6주 뒤. 양국 모두, 현재 출전이 확정되어있는 기체만으로 진행합니다.
리베리스탄 측의 대표단장이 '좋습니다'라며 대답했다.
"이상으로, 무투의 의, 제 15차 사전 회의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
다른 남자가 제지했다.
"무슨 일이죠?"
"4년만의 무투의 의를 앞두고, 조계에서 날파리들이 난리인 모양이다. 우리 리베리스탄은 거대 선단의 입항도 피해가며 이미 경비 강화를 하고 있다만. 귀국은 어떤지?"
저녁 무렵, 공용차로 일반 시민의 접근을 허용하고 만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은근히 빈정대는 말에, 세오드라이트는 태연스럽게 대답한다.
"테러리스트의 움직임에는 우리 또한 당연히,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걱정은 하지 말았으면 하네"
"그쪽 아가씨는 어떤지?"
갑자기 질문의 표적이 된 스카야는 말문이 막혔다. 리베리스탄 대표는 반응을 즐기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젊은 나이인데 이러한 곳에 출석했으니, 꽤나 우수하겠지"
세오드라이트가 끼어들었다.
"스카야는 우리 군의 기술장교네. 본 회의에 물론 참석해야지"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옵저버에 불과합니다. 의견이라면 저희들이 판단해야죠"
스키더까지 나서자, 리베리스탄 대표들의 희미하게 조소를 머금었다.
"장교라……"
"인재복이 많군요"
"그건 세습이지. 낡은 아우구스토니아 그 자체네"
이미 비웃음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대표단들에게, 세오드라이트와 스키더가 이번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스카야는 모욕을 참을 뿐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투숙용 방으로 돌아가는 사이에도, 세오드라이트와 스키더의 대화에서 스카야는 배제된 그대로였다.
"스키더. 투사 선발의 진척은 어떻지"
"포고하고 한 달 간, 신분 제한 없이 투사를 모집하고, 우수한 자들을 발굴했습니다. 전례 없는 일에 어느 정도 애먹은 부분도 있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
"이번 방침, 아직 반대 의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무투의 의에 출전하는 투사는 명문가의 혈족에서 선발하는 것이 아우구스토니아의 전통이었다. 세오드라이트는 정치력으로 그 흐름을 끊으려 하고 있었다.
"지도부는 아무래도 변화를 싫어하지. 전통에서 악습으로 변질되는 모습은, 내부에서 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이야. 무투의 의는 국가의 번영을 좌지우지하지. 그 투사는 지금까지 유력자의 자제에서 뽑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긴 세월 간 굴욕을 당했을 뿐이야. 어리석기 짝이 없지"
스키더가 얌전하게 수긍했다.
"아버님…… 아니 각하의 결단이야말로, 아우구스토니아에 질서와 번영을 가져다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갑자기 세오드라이트가 멈춰섰다.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따라오던 스카야에게 말을 건다.
"스카야"
"……네"
"오그멘티드 바디의 연구는 순조롭나"
"……진행중에 있습니다"
스키더가 가시돋친 소리로 말했다.
"각하는 성과를 묻는 중이시다"
스카야는 입을 다물고, 스나이더의 충고를 되새겼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 설 곳을 만들고, 입지를 굳히기 위해──. 이그나이트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조종 기능을 갈고닦아, 기체 성능을 끌어올린다. 전황에 따라 그 힘의 존재를 과시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 상황에서 보고사항은 없습니다"
스카야는 스나이더의 조언에 따랐다. 역시나, 세오드라이트는 엄격한 눈으로 스카야를 바라봤다.
"기술자로서의 자질은, 네가 더 우수하다. 비범함을 보여봐라"
"네. 죄송합니다"
정략가로서의 피를 이은 언니 스키더에게 있어서, 동생은 그야말로 무능함 그 자체였다. 모멸감을 감추려 하지도 않고, 흥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아버지에게 힐책당하고, 언니에게 비웃음당해도, 스카야의 속마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스카야는 전자 제어, 기계 공학 등의 분야에서 뛰어났으며, 그 지식과 기술로 천재라 불리우며 칭송받았다. 산업 전략에 종사하는 세오드라이트도 본래는 기술자였으나, 무투의 의가 국가의 앞날에 직결되는 만큼, 공학 분야에서 정치로 전향하는 예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스카야가 오그멘티드 바디의 연구 책임자로 임명된 것은 세오드라이트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연구 개발의 자질에 있어서 딸은 아버지를 뛰어넘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온갖 압력을 느끼면서도, 스카야에게는 아무런 수단도 없었다. 출신에 얽메여, 신분에 묶여, 친구를 스스로 처형하는 일조차 거절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앞으로는 그렇지 않다.
스카야에게는, 자신의 앞날에 큰 변화가 찾아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자신의 혼을 가두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두 개의 열쇠. 하나는 이그나이트다. 수수께끼는 많지만, 저것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스카야 뿐이다. 그 힘으로 '현재'를 굴복시켜, 바꿔보이리라.
그리고, 또 하나는──.
***
랏셀은 독방 높은 곳에 달려있는 창문에서 비치는 별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해상 집락에 있던 자기 방에서도 별을 비춰주는 창문이 있어서, 침대에서 자주 올려다보곤 했다. 지금과 큰 차이점이 있다면, 기대어있는 등 뒤의 감촉이 돌로 된 차가운 감촉이라는 점과, 그게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주 짧은 사이에 여러 일이 일어났다. 전부 그 바다에서 시작된 일이다.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발버둥치고, 또 그 결과에 흘러가면서, 지금 이곳에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무언가가 일어날까? 생각도 할 수 없지만, 결정적인 무언가가.
그 답은, 숨죽인 발소리와 함께 찾아왔다.
쇠창살 밖으로 사람의 기척이 느껴져서 몸을 일으켰다.
"누구야"
대답은 없었다.
"또 취조야? 이제 적당히──"
말을 삼킨다. 그늘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별빛이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다.
"너──……"
그 바다에서 만났던, 이 공동 조계에서 기묘한 재회를 했던, 소녀였다.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에, 랏셀이 무심코 뒷걸음친다.
"뭐, 뭐야. 누구야? 나한테 볼 일 있어?"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옅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나고 있는 듯한 소녀의 눈동자에 랏셀은 눈길을 빼았겼다. 그때문에 한 순간, 소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를"
"어?"
소녀가 쏘아보듯이 시선을 향한다.
"나를 여기서 꺼내줘"
여기서, 꺼내줘?
갇혀있는 건 나인데.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
"……어, 응? 저기, 그게 무슨"
물어보려던 말은, 짤랑거리며 꺼내든 열쇠꾸러미에 의해 끊겨버렸다. 정막함을 깨며, 감옥의 문이 열렸다.
***
소년과 소녀는, 조계의 밤을 달려나갔다.
소년은 바다에서 태어난 천민이었다.
소녀는 육지에서 태어난 귀족이었다.
인생의 절반을 '제한받으며' 살아온 둘에게 있어서, 이 거리는 처음 보는 풍경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너저분한 거리를 달려나가, 계단을 뛰어올라, 구멍이 열려있는 정체불명의 푹 패인 땅을 당황해서 뛰어넘는다. 수상한 사람들이 잔뜩 모인 술집을 살펴보다가 쫓겨나고, 서로 쿡쿡 웃었다. 그리고 많은 말을 나누었다.
"고래오징어 몰이…… 태어나서부터, 계속?"
"그래. 너도 봤지. 그렇게 육지로 접근하는 무리를 몰아내는 거야. 바다 위에서 태어나, 쭉 그렇게 살아왔어. 동료는 모두 가족같았지"
"왜 육지로 왔어?"
"……글쎄. 육지를 한 번도 밟지 못한 채로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보고 싶었어"
"뭐를?"
"우리들에게 고래오징어를 몰게 하는, 육지의 국가라는 녀석을. 우리들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육지 놈들을. 어떤 낯짝으로, 우리 목숨을 사용하는지 말이야"
"목숨, 을……"
"너는? 아우구스토니아의 공주님이라며"
"그렇지 않아"
"하지만"
"아니야"
"좋은 생활을 한 느낌인데"
"그건…… 그래. 필요한 건 뭐든 있었어. 방도. 따듯한 식사도. 교육도. 감기에 걸리면 금방 치료해주러 의사도 달려왔지"
"흐응"
"하지만 입장이라는 게 있어. 해야할 일이 잔뜩 있지. 재촉받는 성과도. 해야할 의무도. 전부 다 짊어질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인가"
"응?"
동쪽 소늘이 밝은 빛에 조금씩 물들어가기 시작할 때, 두 사람은 전망이 좋은 곳에 걸터앉아,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그래서, 변덕으로 감옥 문을 열어줬지"
"……그럴지도 몰라. 해보고 싶었어. 아무도 시키지 않았던 일, 나 자신이 바래서 하는 일…… 하나 정도는"
"너무 무대포야"
"당신이랑 말해보고 싶었어"
"엉?"
"그 바다에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신은 고래오징어에게 사람을 죽이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
"……"
"어제…… 언제 총에 쏘여도 이상하지 않은 그 때에, 당신은 웃고 있었어. 두 국가가 지키고 있던 균형을, 당신이 가볍게 깨버렸지. 이런 사람이, 또 있었구나 싶어서"
"이런?"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사는 사람"
"나, 나는 그런 어려운 일은 생각 안 해. 그런 녀석이 있었구나?"
소녀의 뇌리에, 스스로의 손으로 처형한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말할 수 없다. 말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영원히.
"뭐, 상관 없지만"
소년도 눈치챈 모양이다.
"단, 나는 그녀석이 아니야"
"응?"
"나는 육지에, 나를 바꾸려고 왔어. 그 바다에서, 너랑 만났던 바다에서, 나는 그 힘을 손에 넣었어"
이브.
"바꾸는, 힘"
이그나이트.
"나도 힘이 있다면──내 목숨을 사용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누군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당신처럼, 자유롭게"
그 때, 어렴풋이 둥그렇게 보이는 수평선을 가르며, 서광이 비춰졌다. 눈이 부셔 움추렸던 눈이 익숙해지자, 하늘에서 바다로 드리워진 가느다란 '실'이 구름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햇살에 반사되어, 실이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빨려들어가듯이, 두 사람은 일어섰다.
"……우리들의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저게 은총"
"너랑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이유이기도 하지"
실은 하루에 한 번 하늘에서 나타나, 육지가 사람이 사는 곳임을 알려주고는, 다시 사라졌다. 저 실이 가져다주는 것 없이는 번영도 없다.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생각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소년과 소녀는 나란히 서서 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너무나도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이 소녀를 봤다.
"이거, 줄게"
"응?"
오른 손목에서 팔찌를 하나 빼서 넘겨준다.
"해상 집락 주민이라는 증거야"
"받을 수 없어. 소중한 물건일텐데, 내가 받을 수는"
"이제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야. 육지에서 살기 위한 팔찌를 얻었으니까"
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더니 팔찌를 쥐어줬다.
"이게 있으면, 적어도 리베리스탄의 바다에서는 자유야"
리베리스탄 바다에서의 자유.
그런 것을 받아도, 아무 도움도 되지 않겠지. 그렇지만 새로운 자유의 가능성이 형태가 되서, 무게가 되서, 손바닥에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소녀도 말했다.
"나도"
화사한 중지에서 반지를 빼 건넨다.
"이걸 받아주세요"
"어, 소중한 거잖아"
소녀는 짖궂은 얼굴을 했다.
"아뇨, 전혀. 팔면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어요. 당신에게는 필요하고, 나한테는 필요 없죠"
"아…… 쳇, 역시 공주님이잖아"
뾰로퉁해진 소년의 손을 잡고는, 반지를 쥐어준다. 그리고 웃기다는 듯이, 둘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스카야"
"나는 랏셀"
서로의 이름을 마음에 새긴 그 때, 남쪽에서 바닷바람이 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돌아본다.
마치 마법같았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수평선에 거대한──너무나도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저게──"
랏셀은 말문이 막히고, 스카야는 숨을 멈췄다.
***
크고 작은 수백척의 배를 연결해서 만든, 중앙 주선에 우뚝 솟아오른 탑이 상징인──그것은 선단이었다.
그곳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있다고 한다.
그 중 한 쌍의 남녀가, 탑 위에서 처음 보는 육지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발의 청년과, 바다색을 빼다박은 듯한 눈동자의 소녀였다.
소녀는 아주 조금, 겁먹은 듯이 몸을 움직였다.
청년은 말로 다독이는 대신 그녀의 어깨를 살짝 끌어안았다.
그의 반쪽이라 할 존재와 이별한 그날부터, 대략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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