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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4일 수요일

취성의 가르간티아 ~머나먼 해후의 천지~ 제3장 대선단 가르간티아

 직사각형으로 존개된 호위선단의 경호를 받으며, 대선단이 파도를 헤치고 전진한다.

 폭 약 1km, 길이 4km 이상에 달하는 선단은, 마치 하나의 도시를 형성한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태양광을 흡수해 전기로 쏘는 성질을 지닌 미세한 빛벌레가 모은 해류──은하길을 따라, 바다를 떠다니는 마을이 지금 육지로 접근하고 있었다.

 녹이 슨 개방 통로나 외곽 계단의 대부분은 선단 주민들로 가득차있었으며, 긴장과 호기심이 뒤섞인 무수한 시선이, 눈앞에 펼쳐진 안개낀 육지의 능선을 향해있었다.

 선단의 우뚝 솟은 곳에 위치한 사령선 오케아노스 호의 브릿지는 긴장된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육지의 움직임은"

 쌍안경을 내리고, 리지트가 유선 통신으로 연결된 감시 요원을 마이크로 불러냈다.

 <아직 없습니다>

 "양호. 감시를 계속해주세요"

 리지트의 딱딱한 음성에, 대선주 중 하나인 플랜지가 걱정하듯 말한다.

 "선단장, 걱정 말게. 사전교섭은 충분히 했으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통신 전파가 아슬아슬하게 닿을 거리에 정박하고, 일주일에 걸친 교섭을 한 뒤의 기항이다. 어디까지나 대등한 거래의 모습으로 합의를 봤지만, 이쪽은 금기시된 장소에 다가가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틈을 보일 수는 없다.

 "통신. 부호문입니다"

 통신사의 딱딱한 목소리에 모두들 돌아봤다. 통신 내용을 적는 펜 소리가 브릿지의 정적을 한층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계약대로, 그대들을 맞이할 사자를 보내겠다. 가르간티아의 입항을 환영한다'. 이상입니다"

 "……알겠습니다"

 이쪽도 교섭대로. 드디어 육지──정확히는, 두 육지 국가의 완충 지역에 해당하는 '공동 조계'의 인간과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대선단 가르간티아의 향후 50년 간의 명운을 짊어질 중책을 생각하며, 리지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통신 마이크의 버튼을 눌렀다.

 "호위선. 경계를 계속해주세요"

 양호, 라고 대답한 호위선단장 웜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믿음직스럽다.

 "전 함대, 역진 정지!"

 복명복창이 이어지고, 브릿지가 분주함에 휩싸였다.

***

 대륙에서 남쪽으로 뻗어진 세 반도의 중앙을 차지하는 공동 조계. 그 가장 큰 특징은 반도의 끝에 설치된 함선 정비 도크이다.

 도크를 구성하는 장대한 두 개의 부두는, 갑(岬)에서부터 외양으로 쭉 뻗어있으며, 각각 길이 약 12km, 폭 약 200m나 된다. 나뭇가지같은 무수한 자부두를 거느린 거대 구조물이며 계류, 짐의 관리, 보관 등 항만 설비로 상부를 뒤덮고 있다. 컨테이너 야드에 쌓인 직방체가 수놓는 형형색색의 기하학 무늬를 배경으로, 여기저기에서 갠트리 크레인이 버켓을 뻗고 있으며, 발밑은 임항 도로가 이곳저곳 칠해져있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융보로가 마치 작은 알갱이처럼 보인다.

 2개의 거대 부두는 근원인 갑으로부터 바깥쪽으로 활처럼 휘어진 형태이며, 입항구를 향해 다시 오므라지는 형태를 하고 있다. 도크 에리어 전체가 '마주보는 초승달'이라 불리우는 이유이며, 마치 선단을 마중하는 '팔'같기도 하다.

 가르간티아와 맞먹을 규모의 선단은 전세계에 얼마 없다.

 그 모든 배를 받아들이고도 남는 정비 도크는 이곳 외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공동 조계의 커다란 돈줄이기도 하다.

 폭 3km 정도의 입항구 가까이에 가르간티아가 정박한다.

 주민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육지와 도크 에리어의 위용을 바라본다.

***

 해상 인양대를 이끄는 붉은 머리의 여성 융보로 조종사.

 애선 파이스토스 호의 선루로 올라가는 금발의 수리사와 그 제자.

 카이트 이륙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벽을, 메신저 소녀가 필사적으로 헤집고 나간다.

 어린아이들을 갑판에 인솔하는 진료소의 의사와, 그의 곁으로 탁아업을 준비하는 흑발의 소녀.

 오늘만큼은 독서하는 손을 멈추고, 창밖에 펼쳐진 미지의 풍경을 눈에 새기는 소년.

***

 반도는, 도크에 있는 갑에서 대륙 상부의 능선을 향해 완만한 경사를 그리고 있다.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이 위치에서 보는 스케일의 조계는, 마치 천상으로 이어진 외길처럼 보였다.

 동서로 시선을 돌리자, 똑같이 생긴 반도가 안개 속에서 환영처럼 흐릿하게 떠있다.

 긴 세월 대립하고있ㅆ다는 두 개의 국가다.

 그 사이에 몸을 기댈 수밖에 없는 선단의 앞날을 생각하자, 기대와 불안이 함께 생겨났다. 청년과 소녀는 가르간티아에서 가장 높은 크레인 타워의 전망대로 올라갔다.

 "……크네"

 "응"

 17세가 된 소녀──에이미의 중얼거린 말은, 시야를 가득 채운 도크 에리어의 위용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좌우로 멀리까지 계속되는 안개를 뒤집어쓴, 수평선 너머 하늘과 닿은 듯이 보이는 육지의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그녀가 처음 눈에 담는 풍경이다.

 그리고 옆의 청년──레도에게 있어서도.

 "살아있는 동안에 이런 장소를 보게 되다니, 생각도 못했어. 지면은 어떤 느낌일까.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에이미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그 의문은, 굉장히 그리운 감각이 되어 레도의 가슴을 때렸다.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이전 레도가 물었던 질문을, 지금 에이미가 다시금 반복하고 있다는 듯이 생각한 것이다.

 오랜만에 그간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이 살아온 과거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사람형 기동 병기를 타고 종족의 존속과 우주의 패권을 건 섬멸전 와중에, 레도는 시공 이동 사고에 휘말려 변경 혹성에 불시착했다.

 반년동안 인공 동면을 하다가 눈을 떴더니, 그곳은 죽음의 별이 되었을 터인 인류 발상의 별──지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전선에는 돌아가지 못하는 사실도.

 영원의 시간을 지나, 물의 별로 모습을 바꾼 지구.

 가르간티아 선단에 몸을 의탁하고 생존 가능성을 모색하던 나날 중,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는 사실을 몇가지 알아냈다.

 심해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해양 생물 고래오징어가, 천적 히디어스와 같은 뿌리라는 사실. 그 정체가, 모습을 바꾼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던, 반쪽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

 머신 캘리버 K6821, 체임버.

 그와 이별하고, 레도는 이 바다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진한 보라색 눈동자에 육지의 모습을 비추며 생각에 빠진 레도를 에이미가 재빠르게 눈치채더니, 활발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가능하면, 밥이 맛있었음 좋겠는걸!"

 이게 그녀 나름대로 신경써준 것이라고 알아챌 정도로, 둘 사이에 유대가 쌓여있다.

 "또 뭔가 어려운 일 생각하고 있지"

 "나는…… 기뻐, 에이미"

 "어?"

 레도는 허리춤에 걸어둔 체임버의 단말을 무의식적으로 만진다.

 "요 2년 간…… 많은 배나 사람들과 만나서, 확인할 수 있었어. 이 세계의 풍부함. 인간의 강함을"

 평소처럼, 에이미는 미소를 띄우고 듣고 있다.

 "하지만, 아직 본 적 없는 이런 커다란 장소가 있었다니. 분명,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생각이나 삶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기뻐?"

 "응"

 "……너답네, 레도"

 <주민 여러분. 선단장 리지트입니다>

 둘이 시선을 마주함과 동시에, 난간에 매달아둔 라디오가 작동했다. 꼭 들으라고 공지가 나왔던 방송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부터 선단은 주선 가르간티아 호의 대규모 수리 및 연결하는 각 배의 보수 정비를 위해, 도크에 진입합니다>

 조용해야지, 라며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대는 에이미가 좀 이상해서, 레도가 살짝 웃자, 바다에서 천상으로 이어지는 육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

 "저건──뭐지……"

 아침 노을이 뜨는 먼 바다에 떠있는 무언가는, 압도적인 양감을 띄고 있다.

 멍하니 있던 랏셀에게, 스카야가 대답했다.

 "대선단, 가르간티아"

 "가르간티아…… 어, 선단?! 저게?!"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최대급 규모를 자랑하는 선단…… 조계의 도크에 입항한다고 듣긴 했는데"

 그 위용은, 그들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주변에 전개한 수 척의 호위선이 마치 장난감처럼 보인다.

 "저런 곳에 사람들이 타서 움직이고 있다고?! 대단한데……"

 그때였다.

 "우리들은 북쪽, 2반은 남쪽이다!"

 긴박한 목소리가 벽의 저편에서 들려왔다"

 "스카야 님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복수의 사람들이 네 라며 외치고나서,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수색대다.

 "큰일이다!"

 주의 깊게 벽으로 다가가, 낌새를 살펴본다.

 제복은 아우구스토니아 군인의 제복이다. 수색대는 길을 바라보거나, 주민들에게 물어보며 돌아다니고 있는 듯했다.

 스카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말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녀석들에게 들켰다는 뜻이다. 랏셀이 독방을 빠져나온 것과 스카야가 모습을 감춘 것이 어디선가 이어졌나보다.

 "너는 이제 돌아가도록 해. 여기서 헤어지자"

 "안 돼죠, 제가 당신을 데려왔다고 해명해야!"

 "믿어주지 않을테니 소용없을 거야. 도망치는 것에는 자신있으니 걱정 마, 그럼"

 랏셀은 제 할 말만 하고 달려나갔다. 하지만, 순순히 들어줄 스카야가 아니었다.

 "기다려, 랏셀!"

 "혼자 도망칠 수 있다니까!"

 "그럴수는!"

 조계의 새벽에 숨어들듯이 달려가는 저편에, 별동 수색대의 모습이 보였다.

 "큰일이다"

 아무 물건 뒤에 숨어든다.

 "너는 숨을 필요 없잖아!"

 "하지만!"

 무심결에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거기 누구냐!"

 수색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수하를 하자, 둘은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

 같은 시간.

 조계의 공동 관리부와 가까운 술집에서는, 노점주가 가게 문을 닫던 손을 멈추고 불편한 응대를 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토니아의 공주님이, 탈옥수한테 유괴당했다더라고"

 "유우괴애?"

 "지금 병사들이 혈안이 되서 쫓고 있어"

 "탈옥수라니?"

 "요즘 시기니 불경죄로 끌려갔다는 모양이던데. 꼬맹이라더라고"

 마른 손으로 느릿느릿하게 의자를 테이블에 올리는 노점주를 도우려는 기색도 없이, 상대 남자──호킨스는 '아이고'라며 긴장감 없는 목소리를 터트렸다.

 "그거 아마, 내 일행이야"

 "뭐라고?"

 "귀찮게 됐네……"

 의자에 거꾸로 올라타 등받이에 볼을 가져다 대며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을 때, 출입구에 사람의 기척이 났다.

 사람 눈을 피해 온 것처럼 후드를 깊숙히 눌러쓴 장신의 남성이 절박한 목소리로 점주를 부른다.

 "후커, 나다. 부탁이──"

 후드를 벗음과 동시에, 선객과 제대로 눈이 마주친 남성이 절규했다.


 호킨스도, 의외의 만남에 가느다란 눈을 아주 살짝 크게 떴다.

 "이거 놀라운걸"

 "너……!"

 후커의 술집은 합법적으로 주류판매를 하는 한편, 뒤에서는 조계의 각종 정보를 사고 파는 정보상의 기능도 하고 있다. 술과 정보, 매상은 대충 수지가 맞는다. 새벽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원하는 정보가 뭔지는 대강 알고 있다.

 호킨스가 먼저 제정신을 찾고 가볍게 입을 연다.

 "오랜만이네, 스나이더"

 아우구스토니아 중앙 정부의 권력 투쟁에 몸을 던진 옛 친구. 썩은 인연에 곤란하기도 하지만, 처지를 고려해 조심히 행동하고 있었을 상대의 당황한 모습에, 다소의 동정을 표하는 상황이었다.

 "정보상에 얼굴을 내미는 데에도 변장이라니, 벼슬살이도 고생이구나"

 "닥쳐라 호킨스. 너는 육지에, 아니 내 앞에 나타나도 좋을 사람이 아니야. 당장 꺼져"

 "그럴 순 없지. 여기 온 건 공주님 일 때문이지?"

 스나이더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무심코 표정을 일그러트려 정답임을 스스로 고한 꼴이 되버렸다. 예상 외의 만남에, 호킨스가 익히 알고 있는 그의 경솔한 부분이 나와버린 것이리라. 스나이더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침착하지도 영리하지도 않았다. 호킨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로 공격한다.

 "나도 무관계하진 않은 것 같은걸"

 "뭐?"

 "유괴는 아니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실제로 거래에 사용할 손패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뒷세계 정보상에게 부탁하는 정부 관계자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을 거라고 예측한 호킨스는 안경을 고쳐올리며 말을 꺼냈다.

 "일단 여기선, 원만하게 가자고"

***

 <──가르간티아에선 옛부터 육지 사람과 어울릴 때에는 신중을 기하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지요>

 의사 올덤의 진료소에 있는 라디오도, 리지트의 방송에 튜닝을 맞추고 있다.

 사야는 올덤과 함께 들으려고 맡겨둔 아이들──진료소 아래층의 탁아소를 연 지 1년 가까이 된다──을 데리고 올라와 있었다.

 방송 개시에 맞춰 달려온 베벨이 호기심으로 가득차 올덤에게 물어본다.

 "지금까지 현인들이 그렇게 말했어?"

 "그래. 그들은 바다에서 사는 우리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 필요하지 않는 한, 서로 존중하며 멀리해야 하는 사람들이야"

 올덤의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한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다.

 "저기, 놀자, 사야 누나"

 아직 방송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아이가 지루하다는 듯이 사야의 앞치마를 끌어당긴다.

 "조금만 더, 참을 수 있니?"

 눈높이를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만, 남자아이는 뿌우 하며 볼을 부풀리고 금방이라도 땡깡부릴 분위기다.

 올덤을 돕는 소녀가 살짝 다가가 남자아이의 손을 잡아끈다.

 "자, 방해하지 말고, 나랑 놀자?"

 "응!"

 "스피나, 미안해"

 남자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스피나에게 감사의 윙크를 던지고, 사야는 다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요 며칠 간, 우리들이 건너온 수많은 은하길…… 그곳은 하늘에서부터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방대한 전력이 비처럼 쏟아지며, 지나가는 모든것을 불태워버릴 마의 해역이었습니다>

***

 "몇달 전부터 우리 선박에서도 보이기 시작한, 저 먼 하늘에서 늘어진 하얀 실같은 것. 모두들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침착하게 방송을 계속하는 리지트의 목소리에, 브릿지의 선원들도 모두 귀를 기울였다.

 방송기기가 놓인 탁자 앞에는 커다란 지도가 펼쳐져있다. 이전 '용궁성'이라는 별명이 붙은 해상 무역 거점에 기항했을 때 받은 물건 중 하나다. 대륙에서 뻗어나가는 특징적인 3개의 반도를 중심으로, 꽤나 넓은 범위가 표시되어있다.

 거기에 기묘한 곡선이 그어져있다.

 거대한 8자였다.

 적도와 딱 교차하는 지점에서 남북으로 펼쳐지며, 곡선의 윗부분이 육지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약 15km 상공을 이동하는 실처럼 생긴 물체의 궤도를 표시한 것이다. 물체가 남북 7000km 가까운 범위를 왕복하며 움직이는 모습이 표시되어있다.

 "가느다란 실처럼 보여도 높은 하늘에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 상당히 거대한 물체라고 생각됩니다. 정확히 하루에 한 번 출현하는 점에서, 육지에서는 '시간의 기둥'이라고 불립니다. 무서운 속도로 상공을 이동하며, 아래로 떨어지는 열량은 이 가르간티아조차 단숨에 증발시킬 수 있는 정도라고 합니다"

 8자 모양 궤도의 북쪽은 세 반도보다도 더 안쪽 육지를 크게 가로지른다. 즉, 육지의 사람들이 사는 곳 일대는 모두 물체가 그리는 궤도의 안에 포함되어있다는 뜻이다.

 하루에 한 번 찾아오는 전력 방사를 피해야만 배가 육지에 다가갈 수 있다. 더욱이 해상은 전자 에너지를 좋아하는 빛벌레가 응집하는 고농도의 바다은하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래오징어의 무리도 많으며, 접근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위험하다. 마의 해역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육지의 백성들은 그 막대한 전력을 이용하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

 파이스토스 호에서도 수리공들이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들을 이끄는 금발의 청년이 농담섞인 말을 던진다.

 "좋겠네─, 은하길을 쫓지 않아도 된다니 말이야"

 "피니언 시끄러워!"

 제자인 마이타가 나무란다. 아직 15살 소녀이면서, 7살 연상인 스승에게도 맞먹는 관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할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그치만, 우리들이 사용하는 빛벌레의 전력따위랑 비교가 불가능한 정도잖아?"

 "분명 무조건 좋지만 하진 않을 거야.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다고"

 마이타의 예상에 라디오가 바로 호응한다.

 <이 힘에 의해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육지는, 2개 국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 양국은 그 전력의 사용권 및 상대국에게 팔 수 있는 판매권을 두고, 4년에 한 번마다 '무투의 의'라는 의식을 통해 경쟁합니다>

***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뒤숭숭하네"

 20살 여성답지 않게 인양업의 두령을 맡고있는 벨로즈가, 애선 카키너스 호의 브릿지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크게 하나로 묶은 붉은색의 장발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사이좋게 나눠먹으면 좋을텐데"

 잘 태운 피부가 반들반들한 부장 루엘이 맞장구를 친다. 그녀는 얼마전에 막 결혼한 몸이다. 가끔 말에 미묘하게 애정행각을 과시하는듯한 말이 섞여 나온다.

 "뭐, 총격전으로 번지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려나"

 벨로즈는 적당히 대답하고 방송에 집중한다.

 <양국의 관계는 이미 긴장상태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을 포함하는 선단들은 선을 긋고 지내왔습니다>

 가르간티아의 사람들은 그 긴장의 일부분을 몸으로 체험했다.

 대략 1년 반 전, 선단이 리베리스탄 소속의 특무함대와 장렬한 포격전을 나누었다. 그 국가 공작원이 선단에 잠입해 우주에서 온 레도를 끌고가려 했기 때문이다.

 작전은 어느 시점에서 실패라 판단되었으나, 공작원이 최고 기밀인 전투 병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본국에서 함대를 파견해 기밀을 은폐하려는 공격이 가해졌다.

 함대는 병기를 파괴하고 철수했고, 가르간티아는 인적 피해 없이 사태가 수습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선명한 전투의 기억이 남게 되었다.

 리베리스탄이 바라보는 바로앞 조계에 기항하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주선 가르간티아 호의 내구의 한계가 코앞이라 리지트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벨로즈는 가끔 식사를 함께 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만날 때마다 미간에 주름을 잔뜩 만드는 리지트를 몇번이나 북돋아주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이번에도 모두들 따라줄거야───.

 <하지만 이번, 가르간티아는 육지에 기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선단은 한 번 모든 연결을 풀고 항구에 들어가서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은 가르간티아 수만명의 목숨을 맡고 있는 선단장의 위엄이 넘치고 있었다. 리지트의 영단과 각오에, 벨로즈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

 평소엔 어수선하게 중앙 집배소를 달릴 메신저들도, 지금은 손을 멈추고 리지트의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선단이 모든 연결을 푼다는 내용에, 신참 메신저 소녀가 '엑'하는 소리를 냈다.

 "저기저기 선배, 배가 전부 떨어져버리면 배달은 어떡하죠? 휴업?"

 "그럴 리 없잖아"

 선배 메신저인 멜티가 작은 손거울로 입술 화장을 고치면서 건성으로 대답한다. 16살이 된 멜티는 에이미나 사야보다 키가 커져, 땋고 다니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화장을 고치는 모습도 이미 익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어, 설마, 나뉘어진 배에 배달해야 하나요?!"

 "그래"

 멜티는 손거울을 탁 하고 닫고는 후배를 나무란다.

 "오히려 일이 늘어난다구─. 각오해둬"

 "말도 안 돼……"

 풀이 죽는 후배에게, 멜티는 장난기어린 미소를 머금었다.

 "위기는 곧 기회. 새로운 만남이 있을지도♪"

 베테랑 메신저인 멜티는 그렇게 말하고는, 변함없는 그녀의 매력인 고혹적인 눈동자를 반짝였다.

 <지금부터 가르간티아가 기항할 선박 수리 도크는, 공동 조계라 불리는 곳입니다. 두 육지 국가 사이에 끼어있는 중앙 반도이며, 양국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지역입니다>

***

 "불안정한 정치 정세라고 하니, 여러분들께 부디 상륙한 뒤에는 행동에 주의해주시고, 현지인과 알력을 만들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이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상"

 마이크 스위치를 끈 리지트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드디어, 선단이 50년만에 육지 주민들과 교류하게 된다. 새로운 긴장이 가슴을 압박해오듯 느껴졌다.

 "드디어 왔구나, 리지트"

 플랜지가 말을 건다. 백발에 장신인 대선주로, 전 선단장인 페어록이 있던 시절부터 선단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리지트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네"

 같은 대선주 중 하나인 크라운도 입을 연다.

 "지난번에 육지를 방문했던 때를 아는 자는 이제 거의 없지"

 "50년 전…… 난 5살이었지. 희미하게 기억나는 부분이 있군"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하는 플랜지에게 크라운이 '난 3살이었어'라며 대답하자, 리지트는 결국 쿡쿡 하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크라운이 후두부에 남아있는 몇 없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씁쓸한 눈을 했다.

 "……나라고 태어났을 때부터 늙은이였던 건 아니었다구, 리지트"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새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리지트에게, 선원이 말을 걸었다.

 "선단장. 조계에서 소형선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플랜지가 표정을 고쳤다.

 "마중나온 배인가. 숨돌릴 새도 없구나"

 리지트도 발을 바로모았다.

 "자리를 비울테니 잠시 부탁드립니다"

 "알겠다"

 정면의 커다란 창문에 '마주보는 초승달'을 앞두고, 사령선 오케아노스 호는 새로운 긴장감에 휩싸였다.

***

 공동 관리부의 대문이 점점 높이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다.

 "정말…… 입니까"

 문 앞에서 설명을 듣던 스나이더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스카야의 진지한 표정과 무릎꿇은 랏셀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조계의 마을에서 뛰쳐나간 랏셀과 스카야는, 함께 아우구스토니아의 수색대에게 발견되었다. 병사들은 스카야에겐 정중히 동행을 요구했지만, 랏셀은 손을 뒤로 묶고 난폭하게 이곳까지 끌고왔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감옥문은 제가 열었습니다. 소동의 책임은 모두 저에게 있습니다. 탈주도 이 자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부당한 구속까지 포함해 모두 불문에 부쳐주셨으면 합니다"

 소동의 책임을 혼자 지겠다는 스카야에게, 스나이더가 안색을 바꾸며 말한다.

 "그래선 본보기가 되질 않습니다! 군율에 예외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본국에선 그렇겠죠. 하지만 이곳은 공동 조계. 리베리스타인과의 알력은 피해야 합니다"

 "스카야 님!"

 핫핫핫, 하며 맥빠진 웃음소리가 끼어든다. 후커의 술집에서 따라온 호킨스였다.

 "공주님은 얘기가 빠르시네"

 "닥쳐라! 애초에 네놈이 어째서 여기에 있지!"

 "말했잖아, 원만하게 가자고. 신원 확보는 내가 하면 되니, 여기서 서둘러 끝내도록 하자고. 공주님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큭……!"

 "애초에 랏셀은 인질을 잡고 탈주할 깡도 없다구. 바보이긴 하지만"

 "호킨스!"

 랏셀의 항의에도 호킨스는 핫핫핫 하며 웃을 뿐이었다.

 그러자, 스카야가 작게 말했다.

 "스나이더"

 "네──"

 "내 행동으로 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상급 장교인 스카야가 고개를 숙이자, 스나이더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한 번 거친 콧김을 뿜을 뿐이었다.

 "이 건은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분은 각오해 두십시오"

 스카야의 무언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스나이더는 병사에게 명령했다.

 "……석방해라"

 손목을 감고있던 구속구가 난폭하게 풀어진다. 랏셀은 아픈 손목을 어루만지며 스카야를 바라봤다.

 "괜찮겠어, 처분이라니"

 스카야는 대답하지 않고, 내리깔은 눈을 올리지도 않았다.

 공동 관리부의 대문이 흔들리듯이 부르르 떨리며 묵직하게 열린다.

 병사들에 이어 시설 내로 발걸음을 돌리는 스나이더를, 스카야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라간다.

 "스카야!"

 랏셀의 외침은 삐걱거리며 닫히는 문의 소리에 뒤덮혀 사라졌다.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랏셀을 데리고 나갔을까.

 아마도, 그녀 자신조차 잘 말할 수 없으리라.

 그저──서로의 손을 잡고 달리던 밤의 조계와, 아침햇살을 비추는 바다에서 홀연히 나타난 대선단의 모습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풍경'이었다.

 선명하고 강렬한 하룻밤의 인상을, 지금은 굳게 닫힌 철문의 표면에 겹쳐본다.

 움직이지 않는 랏셀의 어깨를 호킨스가 가볍게 두드렸다.

***

 선단의 주민들보다 한발 앞서 육지에 상륙한 리지트는, 감개무량한 기분을 느낄 틈도 없이 항만 사무소로 안내받았다. 기다리고있던 공동 조계의 대표와 바로 면회를 한다. 양자가 새로이 계약서의 문면에 눈을 돌리고, 사전교섭의 결과와 일치함을 확인한다.

 공동 조계의 대표자는 뚱뚱하게 살찐 몸집 큰 남성이었다. 화려한 오렌지색 로브를 입고, 소세지같은 두꺼운 손가락으로 종잇조각에 조그맣게 싸인을 한다.

 리지트도 싸인을 하고, 계약서를 두꺼운 서류 케이스에 넣는다.

 "……그럼 이걸로. 수리가 끝날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이야말로. 공동 조계를 대표해, 이번 일에 최선을 다하리라 약속드리죠"

 수상쩍고 밀당에 능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조계 대표는 묘하게 새된 목소리에 성실하고 정직한 사내였다.

 "체류 중에 교역까지 허락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금지 물품 외에는 마음껏 거래해주시죠. 바다 주민의 생산물이 잔뜩 들어오면 저희도 기쁩니다. 조계의 이익은 아니지만, 물건과 돈이 회전해서 나쁠 일은 없죠"

 함선 수리 도크는 조계가 공적으로 운영하는 시설이다. 따라서 발생한 이익은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 양국에게 나뉘는 형식이다.

 또한 가르간티아 측에서 가져온 물건을 팔고, 주민들은 육지에서 식사를 하거나 생활물자를 조달하는 일도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세세한 가치는 조계의 목을 적시기에 충분하다.

 계약서의 교환이 끝나고 대표가 악수를 청해왔다.

 "아무 사고가 안 나기를 바랍니다. 이런 때에 바다의 주민들은 뭐라고 말하죠?"

 어디까지나 대등한 위치를 지키는 것이 주민들의 안전으로 이어진다. 다시 한 번 책임의 무게를 통감하며, 리지트가 내뻗어진 손을 잡는다.

 "취색 파도의 은혜가 있기를"

 "그거 좋군요"

 대표는 얼굴에 가득 함박웃음을 보였다.

 계약이 맺어진 사실은 금방 가르간티아로 전해졌다.

 각 선박이 다시 스크루를 돌리고, 대선단이 천천히 '마주보는 초승달' 중앙으로 진입한다.

 "모두들, 스케쥴은 건네준 대로다. 모두 총출동하는 중요한 일이다, 단 하나의 사고도 내지 않아야 한다! 알겠나!"

 배를 연결하는 일을 하는 연결꾼 죠가 동료나 부하들을 앞에 두고 굵은 목소리로 말하자, 오우 하는 기합이 가득찬 대답이 들려온다. 배의 연결과 해제를 생업으로 하는 그들에게는, 지금부터 가르간티아 수백척을 순서대로 해제하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한편, 주민들 대다수가 바빠지는 건 이 이후다.

 광장처럼 되어있는 주거선 스팀팔로 호의 개방 통로에서는 자그마한 파티가 열렸다. 테이블에는 음료나 가벼운 음식이 펼쳐져있고, 1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가르간티아를 내려다보며 잠시동안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 이 경치도 잠시 작별이구나"

 "선단이 완전히 해체된다니, 아무도 본 적 없겠지. 그건 그거대로 진귀한 광경이겠는걸?"

 "맞아. 너 돌아오는 길 까먹지 마라?"

 "바보같은 소리 하네!"

 처음 맞이하는 경험에 대한 고양감을 갖는 파티의 한구석에서, 신혼인 루엘에게 멜티가 다가선다.

 "잠깐잠깐, 남편은? 왜 안 왔어어"

 "우리 남편은 조타수잖아. 배를 해체하고 부두에 들어갈 때까진 빠지지 못해"

 "루엘도 조타수잖아!"

 "인양선은 해제가 쉬우니까─ 후배한테 맡겼지"

 "시시해─! 신혼생활 좀 들으려고 했건만"

 "멜티, 억지 부리지 마"

 사야는 처형이 곤란해하지 않도록 멜티를 나무랐다. 루엘의 결혼 상대는 사야의 오빠인 프라이스였다. 안그래도 형제가 많은 사야에게, 또 언니가 늘어나버린 셈이다.

 "사야도 흥미 있잖아! 오빠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건, 뭐…… 가끔 집에 돌아와도 신혼생활 이야기는 쑥쓰러워해서"

 "거봐! 저기저기 루엘, 둘이서 살아보니까 어때?"

 흥미진진한 눈동자를 반짝이는 멜티를 보고 루엘은 난처한 표정이다.

 "으응? 별 다를 바 없다구?"

 "또 그런다"

 팔꿈치를 쿡쿡 찌르는 멜티에게, 결국 사야도 합세한다.

 "뭐 있었지?"

 "으음─ 일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대로 같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신선하다고 하면 신선, 할까……"

 "좋겠다~~!"

 과장된 반응에 일동 쿡쿡 웃는다. 전혀 신경쓰지 않던 멜티가 갑자기 창끝을 바꾼다.


 "너희들, 잘 들으라구─?"

 "엥?"

 대상은 같은 테이블에서 싱글싱글 웃으며 대화하던 에이미와 레도였다. 뒤집힌 목소리를 내는 에이미에게, 사야가 아줌마같은 말투로 밀어붙인다.

 "신선함이야, 신선함! 둘 다 오래됐으니 조심해야지!"

 "정말, 무슨 소리야 사야까지!"

 이렇게 몇번이나 놀림받아도, 에이미는 꼭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다. 모두 크게 웃는 것까지 포함해, 이미 가르간티아의 풍물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풍경이었다.

***

 조금 뒤, 레도와 에이미는 떠들썩한 곳을 떠나 카이트 이륙장에서 육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뭔 일 있으면 바로 놀린다니까, 다들……"

 입을 삐쭉대는 에이미에게 대답하지 않고, 레도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띄웠다.

 "신선함……"

 "잠깐, 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응?"

 얼빠진 문답 도중에 밝은 목소리가 끼어든다.

 "여─ 즐기고 있나?"

 "벨로즈. 아, 우리 배, 벨로즈의 배랑 잠시 떨어지게 되버렸네"

 "그렇지. 뭐, 에이미는 어차피 배달하느라 날아다닐테니까,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응. 일이 있으면 잘 부탁할게"

 "물론이지"

 에이미와 멜티는 같이 메신저 일을 하고 있지만, 사야는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올덤 의사의 협력으로 진료소 밑에 차린 탁아소는 일하는 부모들에게 아주 평판이 좋은 모양이다. 큰오빠 프라이스가 결혼하고 집을 나가고, 형제자매들도 커서 그다지 손이 안가게 됐기 때문에 장래를 보고 결정한 일이라고 한다.

 이렇게 조금 대화하는데도 영업 말투가 나오는 걸 보아하니 자신은 아직 메신저 일을 계속 할 수 있겠다고 에이미가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 벨로즈가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레도, 좀 괜찮을까?"

 "응"

 뭔가 복잡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 에이미가 '그럼 난 이만……'하며 떠나려고 하자 벨로즈가 멈춰세운다.

 "에이미도 같이 들어줘"

 "어? 응"

 "저기 레도. 너, 본격적으로 배의 조종을 배워볼 생각은 없어?"

 "배의"

 "그래. 해상 인양대라고 해도 융보로의 실력만 필요한 게 아냐. 보물 탐색이나 의뢰인과 교섭을 하거나, 실력 좋은 동료를 발견하는 등 여러 중요한 기량이 필요해"

 "그렇군"

 "그래서, 너에겐 우선 배를 모는 기술을 알려주고 싶어. 지금까지도 소형선 정도는 몰았지만, 나로선 주변 조타수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레벨이 되어줬으면 해"

 "어째서 지금, 나에게?"

 레도가 벨로즈의 밑에서 해상 인양업을 하게 된지 2년 이상이 지났다. 지금까지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텐데.

 "흠. 우선, 루엘이 시집갔으니까. 팀의 조타수가 부족해졌어"

 "루엘이 결혼한다고 왜 그렇게 되지?"

 벨로즈는 노골적으로 질렸다는 표정을 했다.

 "너, 여전히 그런 면에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결혼했으니까, 조만간 아이가 생기잖아. 애를 키우게 되면 지금처럼 일할 수 없게 되버려. 그걸 커버할 누군가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지"

 "……과연"

 "또 한 가지. 우리들은 잠시동안 일이 없어. 해상 인양은 항해를 하면서 보물을 발견하는 게 최고야. 항구에 들어가있는 동안에는 백수나 다름없지"

 "밥만 축내는 벌레"

 "이상한 말 배우지 않는 편이 좋다고, 전 우주인. 뭐, 그 말이 맞지만. 짐 운반이나 수리도 부탁받으면 뭐든 해야만 해. 배에서 자재를 옮기는 부업도 시작하려고 해"

 "그런가"

 "부업을 하면서 배 모는 법을 배웠으면 해. 왜 너냐고 물어보면 답은 간단해. 제일 장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넌 계속 내 밑에서 있을 녀석이 아니야. 할 수 있을 때 기술 폭을 넓혀두면, 구 문명의 연구도 진척될테고. 언젠가는 독립할 수도 있잖아?"

 "독립……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럼 지금부터 생각해봐"

 레도는 어째선지 약간 눈을 떨구고 말했다.

 "……그렇군"

 명백히 마음이 내키지 않아보였기 때문에, 벨로즈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뭐, 그런 뜻이야. 대답은 바로 하지 않아도 좋아"

 벨로즈가 떠나려고 하면서 돌아봤다.

 "레도, 이번 머리모양은 꽤나 어울리는걸. 짧고 시원해보여. 에이미, 실력이 늘었네. 사랑의 힘은 위대한걸"

 언제부터인가 에이미가 레도의 머리를 깎아주게 되었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최근들어 겨우 제대로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불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얼굴이 새빨개진 에이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벨로즈는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또 놀림당했어…… 하지만 실력이 늘었대. 기쁜걸♪"

 기분이 좋아진 에이미였으나, 생각에 빠져서 조용해진 레도를 보고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들여다본다.

 "왜그래 레도? 별로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왜 그런 얼굴을 하는 거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응"

 "이렇게 육지까지 와서, 뭐라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은 사실이야. 지금까지도 바다에서 수많은 역사를 끌어올렸지"

 "응. 고고학에서 옛날 일을 알 수 있다면 모두들 행복하게 된다고…… 미래로 이어진다고 했지"

 "그래. 그렇게 믿고 있었어. 그렇기에 난,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레도에게, 에이미는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말하지 못하겠지만──"

 "……?"
 "……레도는, 나같은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보고, 상상도 안되는 커다란 무언가를 알려는 것 같아. 그러니까 해상 인양 작업에서 독립한다는 한발짝 앞의 미래가, 그보다 더 큰 미래로 제대로 이어지는지 아닌지…… 조금, 불안한 게 아닐까?"

 레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말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커다란 이상과 일상이라는 현실을, 마음속에서 잘 맞물리지 못하고 있었다. 형태가 없는 불안에 윤곽이 조금 생긴 기분이 들었다.

 "에이미……"

 무심결에 약한 소리를 내는 레도에게, 에이미는 평소처럼 미소를 지어준다.

 "괜찮아. 벨로즈가 말한대로, 대답은 바로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해. 함께 천천히 생각해보자. 나는 언제나 너랑 같은 것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

 무수히 많은 공동 관리부 내부 방 중, 아우구스토니아인이 사용하는 한 방에 칩거를 명령받은 스카야에게 스나이더가 찾아왔다.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해상 연구 시설에서의 근신.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바디의 연구에 전념하라십니다"

 "사열식에는"

 "참석할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대리는 제가 배명받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버려서 죄송합니다"

 "……정말 그 말대로입니다"

 낮은 목소리로 말한 뒤, 스나이더는 말투를 엄하게 바꾸었다.

 "이런 처분으로 끝난 것이 오히려 행운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무언가 성과를 내고, 입지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모든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숙청 대상이 될 수도 있죠. 세오드라이트 각하는 망설이실 분이 아닙니다. 잘 알고 계시겠죠"

 그 말 그대로다. 아버지가 원하는 건 기술자로서의 자질 뿐. 귀찮은 일만 벌인다면, 친딸이라 해도 가차없이 버릴 것이다.

 "부디 자중해주십시오. 지금은 오그멘티드 바디와 이그나이트의 연구에 집중해주시길 바랍니다"

 스나이더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 등을 보고, 스카야는 제자리에 선 채로 제복의 소매를 꼭 쥐었다.

 연구에 집중하고, 어떠한 성과를 낸다. 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행 상태는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그나이트는 지금도 스카야가 말하는 단순한 음성 커맨드 이외엔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른 연구원이 말하길, 이래선 바위덩어리와 별반 차이 없다고 한다. 분석해보려 해도 너무나 견고해 전혀 건드릴 수 없고, 작동 원리는 커녕 에너지원이 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오그멘티드 바디는 융보로와 비교되지 않는 월등한 성능을 발휘하는 한편, 외부에서의 전원 공급이나 정기적인 점검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개입 없이 운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론 '도구'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존재이다.

 같은 구 문명의 유산이라 생각되지만, 오그멘티드 바디와 이그나이트는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인 것이다.

 그럼 이그나이트는 무언인가, 라고 연구원의 질문을 받은 스카야는 이렇게 대답했다.

 ──단순한 도구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고, 기체가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인증된 조종사를 거부하지 않고, 사람을 받아들이고나서야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서 완성됩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정확히 말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힘은 지금 저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친아버지에게조차 언제 버림받을지 모르는 자신.

 그 자신을 유일하게 필요로하는 이그나이트.

 얄궂고 기묘한 한쌍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들끼리, 사이좋게 격납고에 처박혀있는 것도 좋을 지 모르겠다.

 그렇게 자조하며, 스카야는 함선 수리 도크에 일시 정박중인 해상 연구 시설로 이동하기 위해 느릿느릿 준비하기 시작했다.

***

 낡은 배의 문 틈으로 안쪽을 엿보는 순간, 랏셀 일행은 입을 쩍 벌리게 되버렸다. 어깨 위에 올라타있던 리브도 남색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어때, 편해보이지"

 호킨스가 득의양양하게 말한다.

 폐기처분이 결정되서 육지로 끄집어내진 소형선이지만, 여기저기 보수된 흔적이 보인다. 선실 내부는 이미 잡동사니로 넘쳐나서, 호킨스의 취향인 내부 장식처럼 되어있다.

 "이거…… 뭐야?"

 "계속 여관에서 묵을 수는 없잖아. 옛날에 알던 사람한테 빚을 만들어둔 게 있어서 준비해달라고 했지"

 물론 술집 점주 겸 정보상인 후커가 인맥을 통해 조달한 것이다. 함선 수리 도크와 가까운 곳까지 옮겨다줄만큼 호킨스에게 진 '빚'이 큰 모양이다.

 "호킨스, 뭐하는 사람이야……"

 테아시가 질려했지만, 콕스는 이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즉, 우리들이 여기서 살 수 있단 말이지?!"

 "그래. 아직 좀 더 손보고 싶은 곳이 남아있지만. 이른바 비밀기지라는 녀석이지"

 미혹적인 말에, 모두들 얼굴이 빛나기 시작한다.

 "랏셀도 이렇게 돌아왔고, 이제 시작이구나!"

 "열심히 일하고 본국에서는 더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될테니까!"

 침울해있던 랏셀도 역시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아! 되자고 되자고…… 되자고─!"

 오오! 하며 주먹을 치켜올리는 일행에 따라 리브도 짧은 촉수를 흔들며 함께했다.

***

 조계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급의 수리 도크는, '마주보는 초승달'의 근원에 해당하는 구역에 위치해있다. 현재는 가르간티아 선단의 주선 가르간티아 호를 받기 위해 마지막 조정이 진행되는 중이다.

 제1투기장은 그 내륙측에 매우 근접한 곳에 위치해있다.

 직경 약 150m의 원형에 견고한 콘크리트로 발판을 굳힌 평면과, 주위에는 여러개의 관전용 귀빈실만이 있다. 일반 시민도 무투를 볼 수 있고, 변변치는 않지만 객석도 준비되어있다. 하지만, 관전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귀빈실과는 다르게 울타리나 방호벽따위는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다. 거대 전투기기가 사력을 다해 싸우는 현장에서, 파편이나 기체에 깔려 죽은 자는 셀 수 없이 많다.

 실제 무투에 사용되는 이 장소에서, 지금 막 사열식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 양 국가가 무투에 투입할 예정인 기체를 옮기고, 사전에 정한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가를 확인한다.

 사열식은 전혀 위험하지 않기에 구경하기 좋아하는 조계 주민들이 객석에 잔뜩 모여들었다.

 환호성이 회장을 가득 메웠다.

 투기장의 양쪽 끝에서 덮개에 가려진 2개의 대형 캐리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토니아 측의 귀빈실에는 세오드라이트, 스키더, 그리고 스카야를 대신해 참석한 스나이더가 사열에 임하고 있다.

 먼저 아우구스토니아 캐리어의 덮개가 벗겨졌다. 국가의 상징색인 검정과 빨강으로 칠해진 글래디에이터가 모습을 나타내자, 회장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리베리스탄 측의 덮개가 벗겨졌을 때, 더 큰 떠들썩함이 회장을 뒤덮었다.

 하양과 파랑으로 칠해진 직선적인 의장으로 구성된 기체를 눈으로 본 순간, 세오드라이트는 낮게 읊조렸다.

 "역시, 로군"

 스키더는 놓치지 않고 물어보는 눈빛을 했다.

 "각하"

 "봐라, 스키더. 역시 이번 무투의 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다"

 "그건 대체 무슨"

 "저건 글래디에이터가 아니야. 오그멘티드 바디다"

 "바디?! 리베리스탄이, 어떻게?!"

 당황한 목소리의 스키더에 비해, 반대측에 앉아있던 스나이더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스카야 님의 예측대로입니다"

 "무슨 말이지?"

 "스카야 님은 갑자기 기능을 회복한 오그멘티드 바디의 연구를 거듭해 이번 무투에 투입하고자 했습니다. 이 건은 이제 앞으로 한발자국 남아있는 상황까지 진척되었죠. 하지만 저게 구 문명의 유산인 이상, 리베리스탄의 국토에도 똑같은 물건이 있을 가능성이 높죠. 혹시 그렇다면, 기술 수준으로 봤을 때 그들도 이번 전투에 맞춰 나올 것이다, 라고 예측하셨습니다"

 사열에 글래디에이터──전투 특화형 융보로──를 가져온 아우구스토니아에 비해, 리베리스탄은 비장의 수라고도 할 수 있는 오그멘티드 바디를 선보인 것이다.

 사열은 기체 성능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들어갔다.

 지시에 맞춰 두 기체가 찌르기, 발차기 등 규정 동작을 취하기 시작했다.

 능력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리베리스탄의 기체가 동작 하나를 수행할 때마다 커다란 환성이 터졌다. 기민하며 자유도가 높고, 정면 투영 면적이 작다. 무투에서는 상정되지 않았지만, 만약 총격전이 된다면 유리하게 움직일 것이 확실했다.

***

 두 기체의 모습을 레도와 베벨도 쌍안경을 통해 보고 있었다.

 전날 파티를 한 스팀팔로 호의 개방 통로였다. 꽤 먼 거리였지만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저게 육지의 융보로?! 저 기록 미디어의 설계도랑 똑같아! 가르간티아 것이랑은 전혀 다른걸"

 선천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베벨이 좋아하며 외치는데 반해, 레도는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오그멘티드 바디!"

 "뭔지 알아?"

 "그럼. 전에 한 번 뿐이지만…… 가르간티아가 포격전에 휘말렸을 때"

 "어?! 그럼, 그 리마 씨의──"

 "그래. 그녀가 머즐이라고 불렀던 기체랑 같은 기종이 틀림없어"

 오그멘티드 바디의 연구로 한발 앞선 리베리스탄은, 결정적인 전투력 차를 내기 위해 하늘을 나는 융보로의 파일럿이었던 레도를 포섭하기 위한 계획을 짠 적이 있다. 그 공작원이 바로 리만이라고 하는 소녀였다.

 가르간티아와 특무 함대의 포격전이 펼쳐진 결과, 머즐은 바다에 잠겼고 리만은 보다 가혹한 운명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레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쌍안경의 시선 끝에 작고 날렵한 움직임을 보이는 그림자가 나타났다.

***

 그것은 아주 갑작스레 일어났다.

 투기장에서 수km나 떨어진 곳에서 정박 중인 해상 연구 시설에서, 스카야의 조사를 받고있던 이그나이트가 갑자기, 맹렬한 연산을 시작한 것이다.

 "이그나이트! 뭐하는 거야?!"

 혼란해하는 스카야를 방치한 채, 콕피트의 모니터에 방대한 정보량이 브라우즈되며 스크롤을 만들어간다. 다양한 정보는 이윽고 시설의 벽을 투과하듯이 감지한 라이브 영상으로 수축됐다.

 그것은 그야말로 한순간, 제1투기장의 캐리어에서 모습을 드러낸 오그멘티드 바디의 영상이였다.

 "이건? ───꺄악?!"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그나이트가 스카야를 인식했을 때와 같이 스스로 행동을 시작했다.

 격납고의 천장을 서치하고, 강도 평가를 내린 찰나, 이그나이트가 도약했다.

***

 병사로서의 직감이, 레도의 눈에 비친 그림자의 정체를 쫓기 시작했다.

 투기장과는 멀리 떨어진 거대 선박. 그 갑판에 춤추듯 날아오른 무언가.

 쌍안경으로 봤기 때문에 잠깐 놓친 스케일감을 다시 찾았을 때, 그것이 높이 10m정도 되는 사람 형태의 기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저건 분명히 배의 갑판을 뚫고 나타났다.

 그리고, 레도는 갑자기 끓어오르는 자신의 확신에 전율했다.

 "설마──그런……"

 흰 바탕의 기체.

 가슴에서 양 어깨를 덮는 빨간 갑옷에서 뻗어나온 다수의 핀.

 융보로도 오그멘티드 바디도 아닌, 독특한 곡선의 실루엣.

 인체의 이상적인 모양을 지닌 궁극의 조형──아니, 멀어져가는 기억 어디에도, 저같은 기체는 본 적이 없다. 레도는 이 기체 자체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확신에 흔들림은 없었다.

***

 "이그나이트! 멈춰, 멈춰!"

 갑판 위를 돌진하는 이그나이트의 속에서 스카야가 비명을 질렀다. 이정도로 급격하게 가열된 반응은 처음이었다.

 "멈춰!"

 반쯤 공포에 질려 절규하는 찰나, 기체가 급정지했다.

 스카야가 거칠게 호흡하는 순간에도, 이그나이트는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수km 앞의 투기장을 노려보듯이 우뚝 선 거구. 그 중앙, 흉부 바로 아래에 있는 반구의 부위가 녹색빛을 내뿜고 있었다.

***

 쌍안경을 지탱하던 손에서 힘이 빠진다.

 급격하게 옅어진 현실감을 필사적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레도는 스스로 확신을 언어화했다.

 "머신…… 캘리버……"

 그것은 이 장소, 이 순간에 절대로 존재할 리 없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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