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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8일 목요일

취성의 가르간티아 ~머나먼 해후의 천지~ 제4장 어째서

 "……어째선지 너, 점점 커져가는구나"

 콕콕 가볍게 찌를 때마다 리브는 가렵다는듯이 몸을 비틀며 뒹굴뒹굴 굴러가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만났을 땐 양 손에 담고도 남을 정도였던 리브가, 이젠 랏셀이 팔로 끌어안고 들어올려야 할 정도가 되었다. 목 주변에 생긴 촉수도 약간이지만 두껍고 길게 자랐다. 다른 개체를 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순 없지만, 보통 생물체와 비교했을 때 성장속도가 다르다는 건 명백하다.

 "넌 좋겠다아. 금방금방 자라고"

 랏셀이 석방되고 일주일정도 지났다.

 콕스, 테아시, 호킨스 모두 일용직을 찾아 일하고 있는데, 의욕에 비해 정착할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리브를 데리고 다니는 랏셀은 조금씩이지만 성과를 인정받아 잔일을 더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굴러들어온 돌들이 모인 조계 중에서도 최하층부는 빈곤하며, 큰 돈이 될만한 일은 처음부터 별로 없다. 한 건 올리겠다는 마음만이 허공을 멤돌 뿐이었다.

 호킨스와 비밀기지에 남겨진 랏셀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정체불명의 기구를 만지작거리는 호킨스가 고개를 들며 안경 브릿지를 손가락으로 올렸다.

 "그렇네. 매일 봐서 눈치채기 힘들지만, 확실히 엄청 커졌어"

 랏셀로서는 오를듯 말듯 한 자신의 몸값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자 물어본 말이었는데, 호킨스는 다른 부분을 캐치해버렸다.

 "나도 조사해봤는데, 리브의 정체는 정말로 모르겠어. 기계 성능을 올리는 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생물이 기계에 직접 간섭하다니, 신비하다는 말로 끝내고 싶진 않은데"

 "나한테 말해봤자지. 그렇게 따지면 융보로도 어떻게 움직이는지, 완벽히 알지 못하잖아"

 "그건 그래"

 현재,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는 융보로는 전부 구 문명의 유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니퓰레이터나 각부는 현대 기술로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제어하며 협조적인 동작을 가능케하는 코어 유닛이라는 부분은 도저히 만들 수 없다. 입력과 출력의 구조를 알 뿐, 내용물은 완전히 블랙박스인 셈이다.

 "난 기계엔 강하지만, 생물체는 전혀 몰라. 물론 흥미는 있지만. 세상은 넓다고 하잖아. 모르는 게 있는 편이 지루하지 않고 좋지"

 호킨스는 기계를 만지러 돌아갔다.

 "그런건가…… 아"

 눈을 돌리자, 리브가 짧은 촉수 몇개로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다. 마치 양파같이 생겼다. 놀아주지 않아서 삐진 모양이다.

 "야 리브. 리브~"

 쿡쿡 찔러봐도 웅크려버리는 모습이 마치 삐진 아이같다.

 최근 리브의 감정표현──그런게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 전혀 모르지만──이 풍부해진 것처럼 보인다. 눈을 가늘게 뜨는 행동 외에도 찰싹찰싹 뛰어오르거나, 화났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기분의 좋고 나쁨을 표현하는 게 확실하고, 랏셀 일행의 모습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말이지…… 계속 삐져있으면 밥 안 준다"

 이건 최근 랏셀 일행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농담이다. 리브는 밥을 먹지 않는다.

 그러자 리브가 촉수 사이로 슬쩍 훔쳐본다. 가늘게 뜬 눈은 역시 웃고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 기분 좀 나아졌어?"

 치이, 하는 소리가 났다.

 "응? 어? 호킨스?"

 "왜"

 "무슨 말 했어?"

 "아무 말도 안 했어"

 "근데 방금"

 쥐의 울음소리같은 소리──그보다 좀 더 맑고 청명한, 귀여운 소리였다.

 "……기분 탓인가"

 치이 치이하는 소리가 다시 났다.

 "리브?!"

 치이, 하며 리브가 웃었다.

***

 사열식이 한창인 때 이그나이트가 다시 일으킨 폭주는 스카야의 제지에 의해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다행히도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이 제1투기장을 향하고 있었다. 사태를 은밀하게 전달받은 스나이더는 과연 은폐 공작에 들어갔다. 리베리스탄인의 죄수를 감옥에서 탈주시킨 일은 문제삼은 그였으나, 이번 사건까지 스카야의 실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에게도 관리 책임을 물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같이 죽을 수는 없다는 야심가의 본능은, 소심함의 뒷면에 있는 신중함이 발휘된 것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지금까지 이그나이트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스카야에게 내심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연구가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스스로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스나이더는 스카야와 함께 이그나이트의 앞에 섰다.

 "일어서라, 이그나이트"

 이그나이트는 무릎꿇고 있던 상태 그대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마치 미술관에 전시된 조각상처럼.

 "흠……"

 "일어서, 이그나이트"

 <네. 스카야>

 늠름한 목소리의 반향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그나이트는 민첩한 동작으로 일어섰다.

 "……역시, 이그나이트는 스카야 님의 명령밖에 듣질 않는군요"

 "네. 계속 시험해봤지만, 저 외의 음성 커맨드는 받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이그나이트는 저에게도 '네'나 '아니오'라는 말 외에는 전혀 하질 않았어요. 단지──"

 "단지?"

 "처음 기동했을 때는 아니었어요. '지원'이라고 말한 다음, 저를 파일럿으로서 '승인'했다고"

 "어째서? 다른 누구도 아닌, 어째서 당신을"

 "우연일지도 모르죠.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것도 수수께끼, 입니까"

 "네"

 스나이더는 이그나이트를 올려본다.

 전투기계로서의 잠재능력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처음 기동했을 때의 보고를 보면 확실하다. 스카야의 조종밖에 받지 않는다곤 하나, 물리적인 컨트롤은 어느정도 가능하니, 음성 커맨드를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도 불안정하다.

 무투의 의에 내보낸다고 해도, 막상 힘을 발휘해야할 때에 이그나이트가 가진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까? 결정적인 순간에 명령을 무시하거나 잘못된 기동을 하는 건 아닐까. 무투에서는 강한 힘을 과시하기보다 적의 기체를 쓰러트리는 기술이 필요하다.

 "……시간이 맞을지 모르겠군요"

 "네?"

 "전, 이그나이트가 무투에 출전하는 일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무서운 힘을 감추고 있으면서도, 이그나이트는 너무나도 저희 힘에 부칩니다. 전투 도중에 무기의 기능을 완전하게 장악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겠죠. 앞으로 연구가 비약적으로 진척될 가능성은 있습니까?"

 "그──이그나이트가 하기 나름이라고밖에 말을 못하겠네요"

 스나이더의 말투가 다급해진다.

 "스카야 님!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기체는 틀림없이 큰 전력이 될 거라고. 아우구스토니아의──당신 스스로의. 하지만 이 상태로는──"

 "그렇지 않아요"

 단호하게 쏘아진 부정의 말에, 스나이더는 스카야의 생각을 물어보고 싶어졌다.

 "무슨 말입니까?"

 "……저 나름대로 이그나이트의 가능성을 찾아봤어요. 다양한 입력과 반응의 패턴을 수집하면, 그 뒤에 있는 작동 원리를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건 어쩌면 근본적으로 틀릴지 모른다고, 생각되기 시작했어요"

 "어째서? 그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작동 원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바보같은! 이정도로 고도의 무장이나 운동 성능을 가진 기체에 작동 원리가 없다니요?"

 <당신>

 갑자기 울린 합성음에, 스나이더는 말문이 막혔다. 이그나이트는 서있는 상태 그대로 몸만 약간 움직여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눈동자'가 탁한 녹색빛을 띄었다.

 <당신. 무엇. ──누구>

 스카야도 눈을 껌뻑였다. 이그나이트의 어휘가 늘어나, 처음으로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 향하고 있었다.

 스나이더는 마음속의 떨림을 억눌렀다. 거대한 괴수에게 노려보여진다는 떨림을.

 "나, 나?"

 <누구>

 "나는…… 스나이더다. 스카야 님을 모시는 자이다"

 스나이더가 대답했지만, 이그나이트는 반응하지 않는다. 아주 약간 뒤에 눈동자의 빛을 지우더니 다시 조각상처럼 돌아가버렸다.

 이그나이트가 질문을 했다. 스나이더에게 있어서 처음 직접 겪는 반응이었다.

 "스카야 님, 방금 이건 대체"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카야는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읊조렸다.

 "이그나이트는 확고한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체가 아니다. 그는 지금, 원리 자체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뭐라고요?!"

 "저희들이 그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처럼, 그 또한 알아보고 있어요. 그 자신을. 그 주위를. 인간을"

 ──세계를, 이라는 말은 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스카야의 마음 속에서만 울렸다.

***

 <우, 와오!>

 소형 컨테이너를 지정된 위치에 쌓아올리고 기체를 뒤로 돌리려는 순간, 뒤에 늘어서있던 융보로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딘가 걸리기라도 했는지, 털썩 쓰러지려하길래 붙잡아준 것이다.

 <정신 차리라고, 얼빠진 놈아!>

 <죄송합니다!>

 기계 외부에 달린 스피커에서 커다란 목소리의 호통소리가 들려오자, 랏셀은 얼빠진 목소리를 낸다.

 조금 떨어진 곳에 황색의 안전모를 쓴 현장 감독의 노성이 가차없이 잇따른다.

 "됐으니까 다음 물건이나 가지러 가. 일이 밀렸다고!"

 <죄송합니──>

 "됐으니까 움직이라고, 멍청한 놈아!"

 심한 말을 듣긴 했지만 이것도 랏셀 자신의 탓이다. 랏셀은 한숨을 쉴 새도 없이 융보로를 조금 떨어진 컨테이너 야드로 움직였다.

 고생해서 융보로 조종사를 이끄는 사장과 교섭해 겨우 얻은 기간 계약으로 일이다. 조계의 각지로 나서서 주어진 작업을 완수해야 한다.

 반도의 끝에서 살짝 안으로 움푹 패인, 거대한 도크의 전경이 보이는 컨테이너 야드. 항구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화물의 분류가 오늘의 일이다.

 융보로의 조종이라면 익숙하다면서 마음속 어딘가에서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랏셀은 배 위에서 자라 잠수 작업을 생업으로 삼아온 몸이다. 빌린 육상용 융보로는 잠수용 융보로와 달라서 실수만 연발할 뿐이었다.

 쳇, 하며 입을 삐쭉거리는 랏셀을, 콕피트의 틈새에 있던 리브가 올려다본다. 치이치이 하며 위로해주는 목소리를 내며, 콘솔로 옮겨가려는지 몸을 살짝 움직인다.

 "응? 도와주려는 거야?"

 치이, 하며 리브가 운다. 랏셀은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리브. 너한테 도움받으면 이 융보로의 조종술을 익힐 수 없는걸. 조금만 더 하면 익숙해질 것 같아. 오늘은 얌전히 있어도 좋다구"

 리브는 뀨우하고 울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데려올 생각은 없었으나, 리브가 뭘 해줘도 랏셀과 함께 있고 싶어했다. 억지로 떼어놓고 가려고 하면 폭주하며 불만을 표명하니 어쩔 수 없었다. 약간 눈을 내리깐 리브가 쓸쓸해보여서, 랏셀은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역시 너 좀 커졌는걸. 촉수, 라기보단 이젠 평범하게 손처럼 되버렸고. 다리는 어떻게 되어있지?"

 융보로를 한 손으로 조종하면서 리브의 상반신을 만져본다.

 "이쪽은 조금…… 물고기같은걸. 야 리브, 너 정말 정체가 뭐냐?"

 간지럽다는듯이 몸을 비트는 리브가, 랏셀의 말에 대답해줄 리도 없다. 그러는 사이에 융보로는 짐으로 가득찬 컨테이너 야드에 도착했다.

 "자 그럼, 다음엔 혼나지 않도록 잘 해봐야지──"

 짐을 옮기는 열에 기체를 세운 그 때였다.

 지면을 흔드는 중저음이 울려퍼졌다. 그러자 곧 굉음이 되어 주위를 압도하고, 단단한 지면에서 전해진 충격파가 조종석을 꿰뚫었다.

 "뭐지?!"

 해상 생활을 해온 랏셀은 처음 경험하는 경질적인 감각. 비명이 겹치고 혼란이 온 천지를 뒤덮는다.

 척수 반사처럼 해치에서 뛰어내린 순간, 누군가의 절규가 귀를 찔렀다.

 "폭탄이다, 모두 도망쳐!"

 폭탄? 이 거리 한복판에서?

 "테러리스트다!"

 다른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총기를 손에 든 건설용 융보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길목에서 4기. 소속을 표시하는 기체 표시에 원색의 페인트가 덧칠해져서 불길함이 한층 두드러지게 보였다.

 "뭘 멍하니 있냐!"

 현장 감독이 외친다.

 "폭탄 테러다! 빨리 도망쳐, 죽고 싶──"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색 안전모가 빨갛게 물들었다.

 다음 순간, 현장 감독은 눈코입에다가 뇌까지 전부 뒤섞인 상태로 선혈을 흩뿌리며 쓰러졌다. 주먹만한 탄환에 머리가 날아가버린 것이다.

 메마른 총성이 겹쳐진다.

 위험을 알리는 이성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랏셀은 눈을 뜬 채로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다.

 "아───, 아, ……"

 들이킨 숨이 내뱉어지지 않는다. 목구멍 안이 막힌 기분이다.

 죽었다. 총에 쏘였다. 폭탄을 터트리는 녀석들이 어딘가에서 쏜 것이다.

 사람의 죽음에는 익숙했다.

 바다를 청소하던 도중에 고래오징어의 촉수에 찢어진 사람. 제어가 안 되서 융보로의 한계 심도를 넘어 조종석 채로 찌부러진 사람. 역병이 만연해 어쩔 수 없이 떼어내진 배에서 죽은 가족도 있었다.

 지금 눈 앞에서 본 죽음은 그 어떤 죽음과도 달랐다.

 이건 작위적이다.

 테러. 파괴. 무엇을 호소하고 있는지, 그런 건 전혀 모르겠다. 아무 잘못도 책임도 없는 사람의 일생을, 단 한 발의 탄환으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끝내는, 그런 폭거였다.

 "뭐야…… 뭐냐고 도대체……"

 입술이 부르르 떨린다. 손가락이 경련하고, 시야가 비뚤어지며 흔들린다.

 더러운 페이트로 칠해진 융보로 네 대가 발포를 계속하며 파괴를 계속하고 있다. 쌓여있던 컨테이너를 무너트리고, 총끝에 장비된 총검으로 곡물이 가득한 자루를 갈라내더니 작업자들이 숨어든 사무소에 총알을 내깔긴다.

 그 중 한 기체가,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멍하니 서있던 랏셀을 돌아본다.

 총구가 이쪽을 향한다.

 총구 속의 어둠이, 좁아진 시야를 가득 메운다.

 공포보다 먼저, 암흑 끝에 껌뻑이는 섬광이 눈에 들어온다. 작약에 점화된 순간, 자신 또한 피투성이가 되어 죽음에 삼켜질 것이 분명하다.

 확신이 본능으로 이어진다.

 심장 고동이 뛴다. 피가 돌기 시작한 랏셀이 달려나간다.

 "여기서……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어!"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조종석으로 들어간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에 기억된 반사신경이 최적의 동작을 산출한다. 풋 페달을 박차와 동시에 테러리스트의 발포가 시작됐다.

 수평으로 연사되는 탄환이 쇄도한다. 총알이 날아드는 곳으로 뛰어들며 기체를 종종걸음으로 조종하며 이동한다. 의표를 찔린 '적'의 사선이 흔들린다. 그 순간을 정확히 노려, 총알이 쏟아지는 곳을 재빨리 빠져나가며, 랏셀은 적 기체로 돌진한다.

 "우오오오오옷!"

 오른팔로 적의 기관총을 쳐내고, 기세를 늦추지 않고 깔아뭉겐다.

 결국 쓰러진 적 기체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조종자가 기절한 것이다.

 몰아치는 격한 감정이 멈추질 않는다. 경험해본 적 없는 순수한 투쟁 본능에 따라 움직여, 적의 기관총을 빼앗는다. 쇳덩어리의 무게가 머니퓰레이터 너머로 전해진다.

 파괴와 살육의 도구.

 이를 겁내는 이성을 어딘가로 던져두고, 쓰러진 적의 다리 부분을 조준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한 다리에 두 발씩. 기동력과 무기를 빼앗긴 융보로는 그저 쇳덩이에 불과하다. 랏셀은 재빨리 기체를 움직였다.

 생각도 못한 반격에 동료를 잃은 적 기체 셋은 이미 사나운 적의를 랏셀에게 집중시키고 있었다. 세 개의 총구가 이쪽을 조준한다.

 피부에 소름이 쫙 돋는다.

 땀범벅이 된 양손으로 조종간을 움켜쥔 그 순간.

 "리브"

 콕피트를 눈부신 빛이 가득채운다.

 어느새인지 전신을 인광으로 감싼 리브가 커다란 몸을 빛내고 있었다. 유백색의 몸집 안쪽에 취색을 띄는 무수히 많은 빛의 가루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 빛은 물결이 되어 리브의 체내에서 파도치더니 콘솔에 올려둔 촉수 끝에 응집한다. 모든 계기판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확인할 것도 없다. 그 때와 같다.

 랏셀이 죽을 뻔 하자, 리브가 또다시 모든 능력을 해방한 것이다.

 풋 페달을 찬다. 그에 응한 전동 모터의 여력이 다리에 전해지고, 단단한 대지를 박차며 기체가 맹진을 시작한다.

 승부는 한순간이었다.

 보통은 생각도 못할 기동이 테러리스트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유린한다.

 극히 정확한 총격을 퍼붓는 무기를 튕겨내고, 사지를 찢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아차하는 순간에 등 뒤를 돌아 관절을 박살낸다.

 동료가 쓰러지는 순간에 달라붙어오는 마지막 하나의 기체에는 갑판의 틈새에 총검을 찔러넣는다.

 날뛰고 있던 세 융보로는 랏셀에게 긁힌 상처 하나 내지 못하고 파괴되고 말았다.

 폭풍은 지나가고, 아플 정도의 정적만이 남아있었다.

 도망쳤던 사람들이 슬슬 상황을 살피려 얼굴을 내민다. 폭파 테러에 이어 융보로에 의한 파괴 활동을 홀로 종식시킨 조종사에게, 모두들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거친 호흡만이 조종석을 메우고 있었다. 평소보다 심하게 뛰는 심장의 울림이 멈추질 않는다.

 앞뒤 생각할 여유도 없이,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들을 두들겨팬 격정의 정체는, 과연 죽음의 공포 뿐이었을까.

 모르겠다.

 그저, 아직 떨리는 심장에 명확한 형태로 남겨진 감정이 있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당한 불합리에 대한, 구토가 쏠릴 정도의 혐오감이었다.

 리브가 이쪽을 본다.

 깊은 감색 눈동자에, 흐트러진 마음 그대로인 표정이 비춰진다.

 "무기를 버려라!"

 울려퍼진 노성에, 랏셀은 제정신을 찾았다. 어느샌가 주위를 무장한 보병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조계의 경비를 맡은 군인들이리라. 리베리스탄 군인인가, 아우구스토니아 군인인가.

 "조종사 내려!"

 후끈 달아올라있던 몸이 한순간에 식어버린다.

 테러리스트라는 녀석들을 두들겨 팬 것은 좋으나, 그게 조계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랏셀은 몰랐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같은 파괴 활동일지도 모른다.

 랏셀은 반사적으로 이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상대가 보병 뿐인 이 틈이라면 도망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하는듯한 리브의 시선을 느꼈을 때, 어째선지 그럴 생각이 사라졌다.

 여기까지다.

 첫 번째는 아우구스토니아의 높으신 분들이 탄 차를 들어올렸을 때.

 두 번째는 지하감옥을 탈출해 공주님과 조계의 밤을 탐색했을 때.

 세 번째 실수에 있어서는, 상대가 어느 나라 군인이든 뭐라고 할 게 분명하다.

 아직 신품인 팔찌를 바라본다. 입국 허가증. 이걸 빼앗기면 어떻게 되지? 리베리스탄 본토는 물론이고 조계에도 있을 수 없게 된다. 또 집락으로 돌아가 고래오징어 몰이를... 아니, 해상 주민임을 증명하는 팔찌는 스카야에게 줘버렸다. 이제 갈 곳이 없는 신세다.

 자조섞인 웃음을 띄우며 시트에 등을 기댄다. 이상하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브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랏셀은 한 숨 들이키고 해치를 열었다.

 여러개의 총구가 올려지며 랏셀을 겨냥한다. 등뒤에서는 조계 주민들의 공포 섞인 시선이 더해진다.

 몸을 빼며 랏셀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나는──나는 랏셀이다! 리베리스탄의 해상 집락에서 왔다! 체포하려거든 마음대로 해, 이제 도망가거나 숨지 않을 테니까!"

 정적으로 가득찼던 컨테이너 야드에, 목소리만이 크게 울려퍼진다. 이제 갈 곳이 없다면, 말하고 싶은 말 전부 하고 매듭을 짓겠다.

 "난 바다 위에서 태어났다. 16살인 지금까지 육지를 모른 채 자라왔어. 철 들기 전부터 어른들의 일을 돕고, 10살이 되었을 때 융보로를 몰며 고래오징어 몰이를 했어. 너희들 생선 먹지. 선단 녀석들과 거래도 하잖아. 어부가 바다에 나갈 수 있도록, 항구에 배가 들어올 수 있도록, 우리들이 고래오징어를 몰았다고"

 조계 주민들의 눈에 호기심어른 눈빛이 떠오른다.

 어린애정도 되는 꼬마가 테러리스트들을 물리친 것도 놀라운데, 여기서 뭘 더 말하려는 것일까?

 "집락 녀석들은 가족과 마찬가지야. 대부분이 나랑 똑같아. 육지를 밟아본 녀석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밖에 없어. ──너희들 알고 있냐. 해상 주민의 삶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으면 시체 찾는 것도 힘든 우리들의 삶을! 난 보고 싶었어. 알고 싶었어. 어떤 놈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목숨을 버리고 있는지를!"

 "소원은 다 이뤘나"

 낮게 울리면서 커다란 목소리였다. 긴 연설을 단칼에 끊어놓는 박력에 압도되버린 랏셀은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구경꾼들의 인파를 헤치며,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승만한 덩치의 커다란 사내였다. 군인이라는 사실은 보자마자 알았으나, 보병들과는 전혀 다른 의복을 입고 있었으며, 넓은 어깨에 둘러진 망토의 틈새로부터 엷은 먹색의 훈장이 보였다.

 우람한 가슴팍이 울리는 것처럼, 사내가 말한다.

 "우리 육지 인간은 고래오징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분투하는 너희 해상 주민의 존재를 의식한 적이 없다. 그게 당연하다는 일상을 보내고, 감사따위 하지 않으며 일생을 마치지"

 랏셀의 머리에 흉폭한 열이 들끓었다.

 "네, 놈──"

 "난 파울. 리베리스탄의군의 대령이다"

 "으──"

 군인. 이름을 대는 것 만으로도 상대를 위압시키는 목소리. 움푹 패인 눈구멍에서 찌르는듯한 안광이 랏셀을 궤뚫는다.

 "들어보도록 하지. 왜 육지에 왔나"

 "말했잖아! 너같은 놈들 낯짝 보러 왔다고!"

 파울은 입가에 이해할 수 없는 미소를 머금는다.

 "내 얼굴이 보이잖아. 여기있는 병사들, 조계의 인간들. 네가 말하는 육지의 인간이다. 네놈이 보고 싶어했던 얼굴이지. 해상 주민과 뭐 다른 점이라도 있나?"

 "그래, 달라! 어느놈들이건 얼빠진 얼굴이야! 자신들이 누군가의 희생 덕분에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멍청한 놈들이야!"

 "희생, 이라. 그럼 그 융보로의 발밑에 얼굴이 날아가버린 남자는 어떤가. 어떤 얼굴이었지? 멍청한 남자였나"

 "그건──"

 반문을 할 수 없다.

 그 남자는, 보이지 않는 짐승들에게 얼굴을 먹힌 것처럼 죽었다. 어떤 예고도 준비도 없이, 그저 목숨이 끊어졌다. 이보다 더한 불합리가 없으리라.

 그렇다, 라며 파울이 말을 잇는다.

 "난 보고 있었지. 대체 그는 무슨 책임을 지고, 누구의 희생이 되어, 조계에 둥지를 튼 불온분자 놈들에게 살해당했는가. 모르는 건 네놈이야. 이 육지 역시 무수한 부조리, 불합리가 넘치고 있으니 말이다"

 랏셀은 숨이 막혔다. 불합리라는 말을, 이 사내도 사용했다.

 "아마 육지에서 한 몫 챙기려고 왔겠지. 엄격한 바다에서의 삶에 싫증이 나, 육지에서라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아니야! 난, 난 동료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육지 역시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할 일 없는 곳이지. 언젠가 죽음과 마주할 거라면, 가족같은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바다에서의 삶이 어느 정도 위안되는 편이다──죄가 무겁겠지만"

 마지막 말에 위화감을 느낀 랏셀이 무심결에 되묻는다.

 "죄가 무겁다니……?"

 "그래. 모른다는 것, 알려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된다. 누구도 자신에 대해, 눈 앞의 일, 대부분은 양 손에 닿는 곳밖에 알려 하지 않지"

 파울은 검지손가락으로 랏셀을 가르킨다.

 "네놈도, 그 죄로부터 한 발짜국도 벗어나지 못했어"

 "모른다는, 것……"

 "허나 지금, 네놈은 목숨을 걸고 지켜온 육지 인간을 봤지. 약속된 안식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썩어빠진 멍청한 놈들보다 한발짝 앞으로 나아갔지. 네놈에게는 책임이 있어"

 "책임, 이라고……?"

 "그 힘이다"

 "……!"

 "네놈이 싸우는 모습 역시 봤다. 연도 낮은 불온분자라곤 해도 넷이나 되는 적을 상대로 승리했지"

 리브의 힘을 들킨 줄 알고 식겁했으나,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면 저기 머리에 벌집이 나서 나뒹구는 꼴이 되었을 거다"

 오싹하며 등줄기가 식었다. 그렇다. 그 때, 테러리스트의 총구가 자신을 향했더라도 이상할 것 없었따. 내던져진 돌멩이가 어딜 향해 튈 것인가, 그 정도의 차이가 생사를 갈라놓았다.

 "죽었다 살아난 목숨이다. 그 힘을 펼쳐봐라. 그리고 국가에 종사해라"

 의미가 형태가 되기도 전에, 마음속을 꿰뚫는듯한 격한 단어.

 "불온분자 제압의 공을 인정해, 소동의 책임은 불문에 부친다"

 파울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발길을 돌렸다. 두려움에 떨며 갈라지는 인파의 사이로, 리베리스탄의 고위 군인 전용차가 순백의 차체를 드러냈다. 주인을 맞아들이는 문이 열린다.

 "기다려!"

 차에 올라타는 등에 랏셀이 소리친다. 리베리스탄의 군인. 항구에서 본 글래디에이터. 나에게 힘이 있다면, 그 기체에──.

 마음속을 궤뚫어본듯이, 뒷좌석에 몸을 기댄 파울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한다.

 "이름은 기억해두지. 어딘가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네놈이 계속 알려고 한다면 말이야"

 문이 닫히고, 차는 소리도 내지 않고 미끄러지듯이 출발한다. 병사들도 파도가 빠지듯이 모습을 감추고, 구경꾼들도 흩어졌다.

 높이 떠올랐던 태양이 기울기 시작하며, 땅거미가 드리우는 한가운데, 랏셀은 자기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무지라고 하는 죄. 난 아무것도 몰랐다. 육지가 해상 주민을 전혀 의식도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뭘 알아야 하지? 무엇이 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고 있지? 우리들이 당하는 불합리의 정체는 뭐지?

 치이, 하며 가느다란 목소리가 났다.

 조종석 틈에 있던 리브가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힘. 나의 힘. 나는 육지에, 나를 바꾸러 왔을 터였다.

 "리브, 난 알고 싶어. 날 좀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줘"

 랏셀의 눈동자에 깃든 새로운 빛이, 감색 눈동자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

 4년에 한 번 행해지는 무투의 결과 여부에 따라 둘 중 한 국가가 '시간의 기둥'이 가져오는 막대한 에너지의 시한부 사용권을 얻게 된다. 양 국가는 무투의 개최 직전까지 우위를 점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구사하고, 무투의 때가 오면 이번엔 무력과 과학력을 겨루는 한정적인 군사행동을 발휘한다. 무투는 육지의 패권을 둘러싼 총력전이다.

 해상에 비해 육지가 사람이 생존하는데 보다 유리하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후나 날씨의 변화에 강하며, 곡물 재배나 목축을 통해 식량 조달도 쉽다. 광물 자원을 얻기도 쉽고, 공업 제품의 정밀 가공 및 양산에 불가결한 안정된 작업 환경도 얻을 수 있다. 흔들림 없는 대지는 해상 생활을 하는 자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무수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점은, 육지엔 실질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현재 지구에 있어서 유일무이하며 최고도의 생존 환경을 자랑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육상을 거처로 삼는 사람들은 수백년의 시간을 지내면서도 스스로의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했다.

 원시부터 무수히 존재하는 세력들이 생존권을 놓고 겨루었다. 팽창, 쇠퇴, 병탄, 멸망을 반복하는 역사를 거쳐, 사람들은 두 개의 거대한 국가까지 통합되었다.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

 결코 섞일 수 없는 두 세력이 무한한 에너지를 놓고 경쟁한다──무언가 브레이크가 없었다면, 양 국가는 시시때때로 무한정한 섬멸전을 펼쳤을 것이다.

 하지만 선조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정도에 맞먹을만큼 생존과 번영을 추구했다. 그들의 무수한 시행착오의 결과, 무투라는 제도가 고안되었다.

 비슷한 실력의 천적과 등을 돌리면서, 멸망을 회피하는 동시에 번영을 추구한다는 현재 육지의 생존 형태. 이는 오랜 옛날 두꺼운 얼음과 눈보라에 닫혀있던 지구가 물의 혹성으로 숨쉬기 시작한 이래로, 인류라는 종족이 쟁취한 틀림없는 지혜 중 하나였다──.

 무투의 의가 갖는 의의를 스카야 나름대로 정리해보자면, 대충 이렇다.

 물론,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은 아우구스토니아의 현 체제에 기초해있으며, 여기까지 객관성을 갖지도 않는다. 스카야를 포함해 다수의 사람들이 자국을 포함하는 실제 파워 밸런스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역시 조계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리라.

 국경을 접하는 것을 '국가적 무의식에 의해서' 꺼려한 양 국가가 완충 지역을 바란 결과 이곳, 공동 조계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건의 교류에는 제한이 걸려있어도, 오고가는 정보──사람의 입에는 자물쇠를 걸 수 없다.

 양 국민이 섞여사는 조계에서는, 한쪽에 의한 정보 통제가 다른 한쪽으로의 내정 간섭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따라서, 관리하는 말단 군인들은 자국의 입장을 주장할 뿐 상대를 부정할 수는 없다. 정부가 쓸데없는 충돌을 꺼려하는 한, 조계는 국가의 강력한 통제 하에 있으면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다. 일종의 정치적 공백 지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동 관리부의 회의실 한구석에 할 일 없이 시간을 떼우면서, 스카야는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근신 처분 중임에도 불구하고 사전 절충의 참석을 명령받은 것은, 지난번 보여버린 추태의 탓이리라. 체면을 중시하는 언니는 스카야를 깎아내리는 행동이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얼굴을 내비치는 것 이상은 요구하지 않는 증거로, 출석자들에 관해서는 신상 정보 외에 다른 자세한 자료는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사전 절충은 요약하자면 탐색전이다.

 긴 역사 속에, 무투의 양식 자체는 이미 정착되어있다. 양국의 현안은, 4년 사이에 상대가 어느정도의 기술력과 연도를 비축했느냐에 맞춰져있다.

 적의 전투용 융보로──글래디에이터가, 자국엔 없는 성능을 갖추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치도 못했던 새로운 전술을 짜오진 않았을까? 개최를 위해 사무 수속을 하면서, 양국의 대표는 그런 사항을 색출하기 위해 철면피 밑에서 기를 쓰고 있다.

 절충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토니아 측의 대표단은, 지난번과 같은 세오드라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셋. 아버지는 태연히 자료에 눈을 맞추고 있으나, 비서관인 스키더는 열받는다는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 리베리스탄 측의 공석을 노려보고 있다. 대표단 중 한 명이 군인과 교대했다고 했으나, 그 교대자의 도착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투의 의를 절충하는데 무관이 입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있는 일이었다.

 사전 절충은 문관이, 실시 이후엔 무관이 일을 맡는 것이 지금까지 무투의 관례였기에 보기 드문 일이었고, 게다가 그것이 이 뭔가 감추는 분위기의 원인인가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회의실의 두터운 문이 희미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늦어서 실례했소"

 정장 차림의 장신이 나타났다.

 사죄의 말은 했지만 당당한 목소리에 죄송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무거웠던 분위기를 한 마디로 없애며 입실한 남성은 자기 자리의 옆에 섰다. 리베리스탄, 이어서 아우구스토니아 대표단이 일어서, 테이블을 가운데 끼고 대치한다.

 "리베리스탄 군 대령, 파울입니다. 도착이 늦어서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 여기 오던 도중 불온분자들에 의한 파괴 활동과 조우하는 바람에 사태 수습을 하고 오느라 늦어졌습니다"

 파괴 활동이라는 말에 술렁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파울이 말을 잇는다.

 "10명 정도 사망자가 나온 듯 합니다만, 실행범은 저희 군이 확보했습니다.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는 앞으로 조사해보죠. 변함없이 조계는 재밌는 곳이더군요"

 사망자가 나온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고하며 유쾌해하다니. 불만의 말을 내뱉으려던 문관들이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버렸다.

 세오드라이트가 '그거 고생 많았구려'라며 대범한 대꾸를 하자, 파울이 묵례로 답했다. 이로 인해 지각을 책망하던 분위기는 사그라들었다.

 "……파울 대령도 왔으니, 본 회의가 성립됨을 알리겠습니다. 그럼 제 16차 사전 절충을 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단장 비서관의 본분을 되찾은 스키더가 선언하자, 양 대표단이 착석한다.

 스카야가 조금 거리가 있는 말석에 앉았을 때, 테이블 너머로 흥미로운 눈빛을 건네는 파울의 시선을 느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께름칙함을 느꼈다.

***

 "과연, 기술 장교셨는가. 그럼 어째서 절충 회의때 아무 발언도 하지 않았지"

 회의가 끝난 뒤, 관리부 내의 한 방에 차려진 입식 파티. 샹들리에가 빛을 흩뿌리고, 온갖 사치스러운 요리와 술이 펼쳐진 연회는, 종주국 요인을 조계 대표들이 대접한다는 명목의 파티였다.

 식의 순서도 없는 이러한 장소야말로 정보전의 주된 전장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참석자들의 하잘것없는 대화 하나하나에도 꼬투리를 잡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화려함 뒤에 있는 그림자들의 보이지 않는 긴장의 끈이 팽팽히 펼쳐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리베리스탄의 군인이 말을 걸어오자, 스카야는 일단 무난히 넘어갈 수 있는 답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전 옵저버로 참석했습니다. 의견을 낼 입장은 아닙니다"

 어린 스카야가 노려질 거라는 사실은 상정 내였다. 요령있게 흘려보내면 그걸로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스카야의 말투에 내포되어있던 희미한 가시를, 파울이 민감하게 낚아챈 모양이다.

 "이런, 기분을 상하게 했군. 보수적인 아우구스토니아의 중앙 정부 치고는 대담한 인선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무례함과 솔직함이,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게 느껴지는 사내였다.

 파울은 스카야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측에게 있어서는 위협적이군"

 "위협?"

 "그렇소. 난 아우구스토니아는 겁낼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전혀 발전하지 않는 그대들의 국가는, 지난번 무투에서 고배를 마셨지"

 사실이다. 4년 전 무투에서, 아우구스토니아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는 대패를 겪었다.

 "게다가 이번 무투에서, 난 이 손으로 다시 그대들을 부수고, 내 조국의 우위를 결정지으려는 기합이 가득했소. 아, 깜빡하고 말하지 않았는데, 나도 무투에 출전하는 투사 중 하나요"

 "투사──당신이?"

 이건 예상 외였다. 절충 회의와 무투 양쪽 모두 이름을 올리는 자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단지…… 그대들의 구가가 그대와 같은 인물을 중용하기 시작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내 인식을 달리해야 할지도 모르겠소"

 "죄송합니다만, 파울 대령. 당신이 저에 대해 뭘 알고 계신 거죠?"

 혹시 너무 건방진 말투였을까 걱정하는 스카야에게, 파울이 기죽지 않고 대답한다.

 "젊음이지"

 "네?"

 "싱싱함. 부드러움. 이렇게 말해도 좋겠지──미숙함"

 "뭐라구요?"

 "아, 오해하지 마시오. 난 그것들을 얕잡아보지 않소, 오히려 반대지. 그래……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 힘을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분별 없이 젊음 하나만으로 세상을 건너려 발버둥치는 것처럼. 여기 도착하기 전에 그런 사내를 보고, 그리 생각했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 분과는 다릅니다. 저는 저 자신의 미숙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러한 자의 만용에 무언가 기대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도발적으로 말하는 스카야에게, 파울은 태평하게 웃어보였다.

 "당신은 총명한 사람이다, 스카야 님. 하지만 나에겐 알 수 있지. 당신도 그런 젊은이 중 하나야"

 "그러니까──"

 부정하려했으나,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문득, 그 말이 마음속 깊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커다란 힘. 그 힘을 다루는 법. 미숙한 자의 만용.

 파울이 말을 잇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 통달한 자이지만, 그 이치를 뒤집기는 도저히 불가능하지. 그 젊은이는, 빛바랜 이 세상의 인과에 삼켜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당신도"

 자신의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물었던 스카야였지만, 아무래도 간파된 모양이다. 감추는 것 없는 올곧은 시선에, 눈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파울의 말에는 어딘가 따듯한 구석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료엔 42살이라고 적혀있었다.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연령이지만, 젊음을 마냥 부러워하기만 하는 무능한 사람도 아니었다. 역시 놀리는 것일까. 그게 아니면.

 의문에 대답을 얻으려고 시선을 되돌리자, 파울은 이미 다른 사람들 무리 속에 들어가 있었다.

 홀로 내던져진 기분과, 확인하지 못하게 되버린 마음만이 남아, 스카야는 또다시 연회의 떠들썩함에 몸을 담구었다.

***

 얼마나 노려지고, 괴롭힘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조계에서 연구 시설로 돌아온 스카야에게, 아우구스토니아 본국으로부터 작은 소포가 도착했다. 보낸이는 기억에 없는 사람이다.

 안에는 한 권의 낡은 시집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가죽 표지에 박음질되어있는 시인의 이름을 본 순간, 피부에 소름이 쫙 돋았다. 백 년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시 중 대부분은, 어느 한 사람의 여성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세지라고, 스카야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나와 같은 이름이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읽으니, 그의 시는 전부 낯간지러워)

 그렇게 말하며 부끄러워하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드리워진다.

 곧바로, 아무에게도 알려져선 안 된다고 깨달았다. 스카야는 튕겨나가듯이 자신만의 장소──이그나이트의 곁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격납고에 달려가, 명령하는 것도 초조하다는듯이 해치를 열었다.

 콕피트에 몸을 기대어, 옅은 콘솔의 불빛에 의지해 오들오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짧은 시의 여백에, 휘갈겨쓴 글씨가 적혀있다.

 셀 수 없이 주고받은 편지에서 자주 봐온 글씨체.

 그것은 죽은 자가 보낸 편지였다.



 부디

 부디 자유롭게 살아줘. 스스로의 마음을 죽이지 않도록

 부디

 바라건데 그 한 순간에, 내 영혼의 기댈 곳 되기를



 이것 뿐이었다.

 이것만을 전하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고생했을까.

 주소도 이름도 자필이 아니고, 시에 촉발된 단어의 단편만이 있을 뿐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그녀의 정신이 기도한 것을 전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본국에 있는 그녀의 동지──중앙 정부의 방식에 반대하는 소수 세력의 누군가에게 맡겨져, 검열의 눈을 피해 전해진 물건이리라. 이 시집에 대해 말했던 추억을 매개로, 스카야라면 분명 의지를 이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테지. 사라져간 목숨들을 자세히 알고 있으면서, 친구에게 살기를 바란, 그것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쓴 필적이었다.

 "아아! 폴라!"

 스카야가 울며 쓰러졌다.

 내가 죽였어요. 폴라. 당신을. 이 손으로.

 운명에 저항하지도 못하고, 그저 공포에 굴복했다. 그런데도.

 넌 그 영혼을 내 마음에 기대겠다고 말하는 건가요.

 <어째서>

 갑자기 이그나이트가 말을 했다.

 스카야는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을 풀었다. 어째서 우는가, 라고 물어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그나이트가 어째서, 라고 물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뇌리에 형태를 갖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스카야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는 지금까지와는 뿌리가 다른 질문이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단순한 명령에 따르는 일, 그리고 정체 불명의 대상에 대해 '무엇', '누구' 등의 정의를 요구하는 일 뿐이었다.

 '어째서'는 다르다.

 '이유'의 이해에는, 그 배후에 막대한 경험과 지식을 요구한다. 아니 그 이전에 스스로와 타인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절대 조건이 필요하다.

 타인과의 관계성 사이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복잡하게 뒤얽힌 문맥, 인과, 결구의 링크를 거슬러올라, 윤리관이나 호불호 등의 비논리적 영역까지 사고 대상으로 봐야만 한다.

 그렇다,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이그나이트가 세계를 탐색하려는 행위가, 벌써 여기까지 도달했단  말인가.

 아니, 그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는, 인간이 보여주는 자극과 반응의 대응관계를 샘플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데이터 중에 스카야가 보인 격한 감정을 발견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마치 어린아이가 더듬거리며 질문하는 것처럼. 저기, 어째서 울고있는 거야──.

 어찌됐던, 이그나이트는 손에 넣었다.

 보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보다 세계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어째서. 울지>

 스카야의 생각을 뒷받침하듯이, 이그나이트가 질문을 계속한다.

 스카야가 고개를 든다.

 나는 그에게 대답해야만 해. 어째서, 자신이 지금 울고 있는지.

 그리고, 스스로에게 대답해야 한다. 어째서, 이젠 울지 않는지.

 "나는, 가장 좋아했던 사람을, 죽이고 말았어"

 입술이 떨리고 목소리는 갈라진다. 어두운 강철의 고치가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 참회를 하는데 걸맞는다.

 "죽였어. 내 목숨을 바치더라도 속죄하지 못할 죄를 범했어. 그런데도 폴라는……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나에게 살라는 유언을 남겼어! 이제 돌이킬 수 없는데, 그래서 울었어, 저기, 이해해? 이그나이트!"

 오열하는 스카야의 절규는, 극히 짧은 잔향을 남기며 사라졌다.

 이그나이트는 콘솔의 녹색 빛을 깜빡이며 침묵했다. 그는 지금 생각중임에 틀림없다. 죽음에 대해. 죄에 대해. 운명에 대해. 그것은 터무니없이 멀리 돌아가는 방식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주인과 함께 생각을 계속한다.

 고해를 끝낸 스카야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폴라는 그 영혼을 내 마음에 기대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따르자. 고통을 꺼려해선 안 된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하며, 씻어낼 수 없는 죄를 밝혀나가자.

 맹세를 가슴에 새기며, 어두운 목소리로 명령한다.

 "이그나이트. 해치를 열어줘"

 <네. 스카야>

 밀폐되어있던 고치가 풀리며, 스카야는 현세로 돌아왔다. 완전히 닫지 못한 철문에서 희미한 빛이 비추어지며, 함내에 새벽 여명이 드리워진다.

 빛줄기가 발밑으로 뻗어진다. 옅고 어슴푸레하지만 올곧은 길이 되어, 스카야는 그 빛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

 한 달 뒤, 스카야는 새로운 명령을 받게 되었다.

 조계의 함선 수리 도크에 입항 중인 선단 가르간티아에서 행해지는 기술 교류 사업에, 담당 장교로서 참가하라는 명이었다.

 공동 관리 구역에 놓인 성과 분배의 관점에서 보아, 인원은 아우구스토니아와 리베리스탄 양국에서 파견된다고 한다. 자국의 참가 예정자 리스트를 확인하고, 이어서 리베리스탄 측의 리스트를 살펴보던 눈동자가 한 곳에서 멈춘다.

 그곳에는 랏셀의 이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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