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대선단 가르간티아가 입항하고, 연락을 시작한지 한 달이 경과했다.
선단이 육지에 들어선 최대 목적은 탑처럼 생긴 크레인 타워를 지닌 주선 가르간티아 호의 수리에 있었다.
가르간티아 호 단 한 척만 해도 길이400m를 가볍게 넘는 거대 선박이다. 부분 수리는 해상에서도 가능하지만, 대규모 수리를 하려면 배 전체를 상륙할 수 있는 수리 도크가 필요하다. 이 배를 수용할 수 있는 도크는 전세계에서 단 하나, 조계가 자랑하는 거대 함선 수리 도크 '마주보는 초승달' 뿐이다.
중량을 가볍게 하기 위해 3주에 걸쳐 의장 부재를 가능한 최대로 빼낸 가르간티아 호는, 조계 반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도크 구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체를 고정하는 데에는 철이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반목'이라 불리우는 지지대가 사용된다. 하나만 있어도 사람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다란 반목이, 구획 해저에 수많이 배치되어 가르간티아 호를 지탱한다. 물론 배 밑부분에 딱 맞도록 계산되어있다.
잠수 융보로의 유도에 따라 터그보트가 선체를 견인하고, 소정의 위치에서 정지하면, 바로 기립식 수밀문이 폐쇄된다.
여러 펌프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1주일 동안 배수를 한다. 거대 함선은 결국 물 밑에 잠겨있던 밑부분을 드러냈다. 가르간티아 호의 전체 모습에, 모여있던 사람들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배의 밑바닥부터 아래로 뻗어진 타워의 방향과 각도를 바꾸기 위한 반원형의 대형 구조물. 이 상식과 동떨어진 특수한 배의 밑바닥 구조가, 점검 작업을 '마주보는 초승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50년만에 가르간티아 호는 바다에서 벗어나, 오래된 몸뚱이의 요양을 시작했다.
동시에 '마주보는 초승달'에서 뻗어나온 무수히 많은 부두에서도, 크고 작은 수백 척에 달하는 배들의 정비가 시작되었다.
***
이번 작업은 가르간티아 선단과 조계의 대등한 계약에 따라 이루어진다. 서로가 독자적인 노하우를 제공하고, 이익을 건네주는 구조이다. 조계에서는 도크의 수리 작업, 가르간티아에서는 해상에서의 선박 정비 기술을 제공하기로 되어있다.
선단에 있어서 바다에 떠있는 배를 수리하는 일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육지에 있어서는 익숙하지 않은 귀중한 기술이다. 생생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리베리스탄, 아우구스토니아, 거기에 공동 조계로부터 인원이 파견되었다.
각각 30명, 총 90명의 기술자나 융보로 조종사들이 부두에 머무르고 있는 주거선 스팀팔로 호의 개방 통로에 모였다. 기술 교류 사업의 결단식을 위해서였다.
무지개빛 천막으로 태양빛을 가린 광장의 중앙에 연설대가 설치되고, 아우구스토니아와 리베리스탄, 조계민 순서대로 열이 만들어진다.
랏셀은 리베리스탄의 열 끝에서, 사람들의 행렬 너머로 보일듯 말듯하는 인물이 신경쓰여 어쩔 줄을 몰랐다.
연설대 근처에 파견대의 대표 세 명이 나란히 서있었다. 아우구스토니아의 인원을 인솔해 왔다고 생각되는 인물──그 사람은, 스카야다.
공동 관리부의 문 앞에서 헤어진 이후로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계속 신경쓰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말을 걸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안절부절 못하며 목을 뻗거나 기울이며 바쁜 랏셀의 옆에서 콕스가 작게 웃는다.
"랏셀"
"왜"
"혹시 그거냐? 저게 그 공주님?"
"시, 시끄러─!"
"캬, 정곡인가보네"
케케케 하며 웃는 콕스에게 얼굴을 붉히자, 이번엔 반대편에서 테아시와 호킨스가 열심히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하아아, 이런 곳에서 만나뵙게 되다니…… 그나저나 엄청 귀엽잖아! 그야 저런 애가 꼬드기면 당연히 탈옥하지"
"젊음이란 좋네"
"으아 정말, 조용히 해!"
팩트로 놀려대니 반박할 수가 없다.
셋에게는 그날 밤의 자초지종을 모두 털어놓았다. 랏셀로선 그럴 생각따윈 전혀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날 일이 스카야와의 하룻밤 로맨스로 비춰진 모양이다.
"저기저기, 있다가 말이라도 걸어봐!"
"이게 그 감동의 재회라는 거 아니냐?"
"좋은 구경거리겠어"
"끄으윽……"
이제 그만하라고 소리치려던 랏셀을, 키잉 하는 하울링이 막아세웠다. 연설대에 올라선 인물이 마이크를 잡아들고 있었다.
"여러분. 저는 가르간티아 선단의 선단장, 리지트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단장이 아직 2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성이라는 사실에 놀랐기 때문이다. 랏셀 일행도 떠들기를 멈추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저희들의 수리 기술을 배우시게 됩니다"
리지트는 여기서 한 번 말을 끊고, 목소리를 약간 낮췄다.
"육지의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에게는, 각각의 입장이 있다는 사실도. 하지만, 이번 기술 교류 사업 중에는, 부디 모두 잊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주거선 스팀팔로 호를 교재로 수리 작업을 이행하게 되는데, 실제 작업을 통해 정비 기술을 배운다는 성질 상, 쓸데없는 반목은 커다란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저희가 제공하는 기술을 잘 습득해주시고, 육지와 선단 양측에게 유익한 사업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익한 사업, 인가──.
랏셀은 요 한달 간──그 파울이라는 사내와 만난 날부터, 사람이 변한 것처럼 온힘을 다해 활동했다. 콕스와 테아시를 데리고 조계에 있는 리베리스탄인과 접촉해서는 억지에 가까운 홍보로 일을 맡았다. 리브의 힘으로 일을 차례차례 성공하고, 어떡해서든 눈에 띄려고 필사적으로 일했다.
랏셀 일행의 열정적인 일처리 솜씨는 작은 소문이 되어, 때마침 생겨난 이 기술 교류 사업에 끼어들어올 수 있었다.
조종 실력을 키우면서, 공적 사업에 참가한 실적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실적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 글래디에이터에 타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럼, 각 작업의 책임자를 소개하겠습니다"
리지트는 연설대에 세 사람을 불렀다.
"먼저, 선체 정비의 책임자. 피니언입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금발의 리젠트 남성은, 에헴 에헴 하며 헛기침을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 아─. 제군들, 난 피니언이다! 수리 실력은 가르간티아에서 최고지! 지도는 엄격하겠지만, 잘 따라오라구? 농땡이치는 녀석은…… 그렇지, 육지 최고의 미녀 아가씨라도 소개받는 걸로 할테니까──"
피니언이 어디선가 가느다란 빗을 꺼내 리젠트 머리를 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잘 부탁한다구!"
팟 하는 소리가 날법한 윙크로 마무리한 것은 좋았으나, 농담삼아 한 말인지 진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분위기가 싸해졌다.
당사자인 피니언도 '어라……?' 하며 어색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은발 청년이 진지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사람들도 짝짝 소리를 내며 박수를 쳐서, 어떻게 잘 넘길 수 있었다.
리지트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안경테를 고치며 마음을 다잡는다.
"……다음으로, 융보로 작업의 책임자를 소개하겠습니다"
붉은 머리칼을 크게 묶은 젊은 여자가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어…… 벨로즈다. ……잘 부탁해"
미묘한 정적이 흐른다.
그게 끝이야? 라며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는 리지트에게, 벨로즈는 얼굴을 붉히며 뭔가 변명을 한다. 이정도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가 어려운 모양인지, 마이크는 빠르게 마지막 사람에게 건네졌다.
구명조끼를 걸친 은발의 청년은, 선명한 보라빛 눈동자로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난 레도. 벨로즈의 보좌를 맡고 있다. 벨로즈가 지휘 감독, 난 실제 작업의 지도를 담당한다. 융보로의 작업은 여러 기체의 협력이 기본이다.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는가를 봐주면 좋을 거라 생각한다. 잘 부탁한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는 듯, 옆에 있던 벨로즈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빈틈 없는 연설에 이번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며, 리지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일단 해산하겠습니다. 각각의 숙영지에서 다음 지시를 기다려주십시오"
결단식이 끝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진다.
그러나 다른 국가 사람들과 바로 섞여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 했다.
리베리스탄인과 아우구스토니아인은 노골적으로 눈을 맞추려 들지 않는다. 한 단계 아래로 보는 조계인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양 거리를 둔다. 식전부터 감돌던 미묘한 분위기는, 리지트의 연설만으로 풀릴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왠지 꺼림칙한 느낌인데. 이제부터 함께 공부해야하는데"
붸에에하며 작게 혀를 내미는 테아시에게, 호킨스가 쓴웃음을 짓는다.
"녀석들이 으르렁대는 건 항상 있던 일인걸. 최근 몇백년 간 변하지 않아 이제는 관례같은 거지. 어떡할 방법이 없네"
콕스가 질렸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꿈틀댄다.
"뭐, 우리랑은 관계 없잖아. 선단장 누나가 말한대로, 위험한 사고만 일어나지 않으면 뭐. 안그래, 랏셀…… 엉?"
하지만 랏셀은 그들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있는 모양이다. 시선 끝이 연설대 근처인 것을 확인한 일행들은 히죽히죽 웃었다.
랏셀이 바라보는 시선 끝에는, 광장에 남아 다른 대표자들과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스카야의 모습이 있었다. 앞으로의 스케쥴이라도 확인하는 것인지, 손에 든 서류판에 끼워진 자료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조계에서 있었던 일을 사과하려고 타이밍을 재던 랏셀이었으나, 좀전부터 그 이상으로 신경쓰이던 것이 있었다. 선단의 사람들이 연설대에 올라서던 중, 스카야의 시선이 은발 청년에게 꽂혀있던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레도, 라고 했었나.
그가 이름을 말한 순간, 튕겨나가듯이 고개를 들더니, 그 이후로 스카야는 줄곧 레도만 바라보던 것이었다. 이름과 얼굴은 확인했을테니, 이전부터 아는 사이는 아니다. 가르간티아의 레도라는 사람이 그렇게 소문이 자자한 사람인가───.
바로 그때, 이야기가 끝났다. 의무적인 인사를 하고 광장을 떠나려는 스카야에게, 랏셀이 달려간다.
"아, 저기"
목소리가 높아진다.
"스카야──"
"가볍게 부르지 말아주세요"
채찍질하는 듯한 말이 돌아온다.
"아"
짐짓 영리한 눈빛을 보내며, 스카야가 말을 잇는다.
"네, 제가 스카야입니다. 당신은?"
마치 모든것을 잊어버렸다는 양 누구냐고 물어보는 스카야에게, 한순간 눈앞의 소녀가 누구인지 자신이 없어진다. 하지만 잘못봤을 리가 없다. 독방에서 날 꺼내주고, 조계의 밤을 달렸다──.
"나는…… 랏셀이야"
스카야가 서류판의 자료를 확인해보더니, 어느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 리스트의 이름을 확인한 것이리라.
"그래…… 리베리스탄의 정식 파견인원으로서, 이곳에 왔군요"
스카야는 조금 감탄했다는 얼굴로 랏셀을 본다.
"분명───"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말을 끊는다.
한 번 떨어트렸던 시선을 올리자, 스카야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돌아와있었다. 자료를 옆구리에 끼우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저희 아우구스토니아 인원들에게는, 실례를 범하지 않게끔 전해두겠습니다. 리지트 선단장이나 지도 책임자들의 감독 하에 함께 기술 향상을 위해 노력해보죠. 그럼"
스카야가 묵례를 하더니 발길을 돌린다.
이래서야 마치 처음 만나서 하는 인사가 아닌가. 난 아직 그날 밤의 일을 사과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됐는지 계속 걱정했는데. 나때문에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일이 잔뜩 있는데, 조금도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라도.
"잠깐 기다려줘!"
스카야가 발걸음을 멈췄다. 모자 아래 눈동자가 어깨너머로 이쪽을 바라본다.
랏셀이 자기 옷깃에 손을 넣더니, 목에 걸린 끈을 끌어당겨보였다.
"이거! 응?!"
끈의 끝에는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가지고 있었어. 너한테 받은 반지야. 팔거나 하진 않았다고. 난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어──.
스카야는 반지와 랏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귓가에 빠져나온 머리칼을 쓸어올리더니, 그대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랏셀도 더 이상 뭐라해야할지 몰라서, 그저 떠나가는 등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 일을 지켜보던 동료들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뭐, 힘내라고, 저녀석만 여자가 아니잖아"
"그래! 뭔가 잘못된 걸지도 모르잖아, 응?!"
위로도 되지 않는 말을 늘어놓는 콕스와 테아시를, 랏셀이 탁한 눈으로 돌아본다. 울상이다. 킁, 하며 코를 훌쩍거리는 랏셀에게, 콕스는 '미안……'이라며 눈을 돌렸다.
"아하핫. 다행이네, 랏셀"
"뭐?! 바보냐 호킨스, 랏셀이 차였다고?! 앗"
킁킁 거리며 훌쩍이는 횟수를 늘려가는 랏셀에게, 호킨스가 어쩔 수 없네 라며 어깨를 두드린다.
"너희들은 주의력이 부족하구나. 그녀, 오른팔에 하고있었다고. 팔찌"
셋이 '엥?!'하며 한 목소리로 외친다.
"머리칼을 쓸어올릴 때, 장갑 밑으로 살짝 보였다구. 해상 주민의 팔찌였어. 틀림없어"
"……눈치채지 못했어"
만약 그렇다면, 스카야도 일단 랏셀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뜻일까.
"다행이잖아, 랏셀!"
"분명 공주님도 뭔가 깊─은 사정이 있었을 거야!"
콕스가 등을 팡팡 두들기자, 랏셀도 조금씩 기운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말이야. 정말 팔찌가 있었는지…… 호킨스밖에 보지 못했잖아"
"그럼 직접 확인해보면 되잖아. 지금부터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 그런가……"
"그럼!"
"그래그래!"
어느새 스카야와의 관계가 로맨스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도 모른 채, 랏셀은 꺾였던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
"거기! 용접기에도 안전벨트 채워!"
피니언이 기세 좋게 외친다.
부두에 정박해서 바다에 떠있는 스팀팔로 호를 교재로 삼은 실습이 시작되었다. 갑판에서는 뱃전에 사람을 매달아서 선체 측면의 강판을 교체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손에 든 용접기와의 벨트를 연결하지 않았던 작업원에게 피니언이 재빠르게 질타를 날리고 있는 것이었다.
"안전 제일! 벨트를 하지 않으면 전원 케이블로만 버티게 된다고. 손이 미끄러져서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쇼트가 일어나. 작업선이라도 있다 하면 다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고!"
"죄송합니다!"
"음. 알면 됐어! 다들, 준비를 계속해"
왠지 가벼워보이는 분위기때문에 곤란하긴 했으나, 해선 안 될 일과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점이 꽤 좋은 지도자로 보였다.
문득, 하늘에서 붉은 날개가 호를 그리기 시작한다.
가볍게 갑판에 내려온 그것은 에이미가 조종하는 카이트였다.
"피니언, 수고하네!"
"오우, 에이미"
"자, 편지. 리지트한테서 온 거야"
"편지? 꽤 두꺼운걸"
"실습의 진행 상태를 여기에 써서 매일매일 제출하래"
"그래도 그렇지 너무 많지 않아……?"
투덜거리며 말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봉투를 열어본 피니언은, 내용물을 확인해보고는 흘겨봤다.
"아─…… 작업원 전원의 분량을 매일, 이란 말이지……"
30명 이상 되는 담당 인원을 하나하나 보고해라, 라는 뜻이다.
"뻗어버릴 것 같아……"
"이히히, 안됐네. ……저기, 피니언"
"응?"
에이미는 준비에 힘쓰는 작업원들을 둘러보더니, 피니언을 조금 떨어진 곳으로 끌고가더니 말소리를 낮추었다.
"저거, 전부 육지 사람들이지?"
"그럼. 리베리스탄인과 아우구스토니아인. 거기에 조계 친구들이지"
"차이점, 알겠어?"
"음─. 아우구스토니아 녀석들은 다들 팔팔해. 예의바르고, 명령을 이행하는 데에 익숙하다는 느낌이야"
"흐음"
"리베리스탄 녀석들은 의외로 싹싹한 녀석들이 많아. 열심히 하면 출세하는 나라답더라. 좋던 나쁘던 개인주의야"
"조계 사람은?"
"이상한 녀석들이야. 양쪽 나라에서 흘러들어온 녀석들이니까, 거칠고 빈티나는 녀석들이지. 그치만 눈치가 빠르고 감도 좋아. 근성이 좋은 녀석들이야"
"한마디로 믿음직스럽다 그말이지. 잘 보고 있네, 피니언"
피니언은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말해준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바로 요전까지만 해도 꼬마애라고 생각했었는데, 진지하게 묻는 에이미의 눈동자가 마치 어른처럼 보여서, 무심코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고 만 것이다. 17살이면 세상 물정에 해박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는 사실을 통감했지만, 당하고만 있을 피니언이 아니었다. 재빠르게 분위기를 바꾼다.
"그치만, 내 팀에 그런 건 관계 없어. 확실하게 가르치고 확실하게 기억하게끔 해서 돌려보낼 거야"
"응, 그게 좋지. ……어, 그러고보니 레도는?"
"벌써 물 속으로 갔지. 잠수 융보로 팀을 지도하는 중이야"
"그런가…… 모처럼 응원해주려고 생각했는데"
"오늘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또 오라구"
"응, 그렇게 할게"
에이미는 한 번 웃어보이더니 카이트를 고쳐메고 훌쩍 뱃전을 뛰어내렸다.
눈 깜짝할 새에 바닷바람을 잡은 붉은 날개가 훌쩍 날아오른다.
"언제나 보지만 굉장하다니까……"
휘유 하며 휫파람을 불고있을 때, 작업원들로부터 '준비 다됐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체크한 뒤 시작한다!"
***
피니언 조가 맨몸으로 뱃전을 수리하는 한편, 배가 잠기는 흘수선 밑의 수리는 잠수 융보로로 시행된다.
흠이 생긴 강판은 교체하지만, 그대로 융보로로 떼어낼 수는 없다. 흠이 난 곳 주변의 수밀구획을 봉쇄하고, 그 다음 침수시키게끔 되어있다.
일부라고는 하나 물이 들어오게 되므로, 외각에는 평소와 반대로 안쪽부터 부하가 생긴다. 물을 다 채운 선체를 확인하는 작업에, 레도가 한 발 먼저 잠수해서 들어간다.
바다 위에 띄워진 소형 인양선에서 이를 감독하는 것이 벨로즈의 역할이다.
"레도, 들려?"
<여기는 레도>
통신 케이블로 이어진 레도의 기체로부터 명료한 대답이 들려온다.
"상태는 어때?"
<딱히 찌그러지거나 갈라진 부분은 보이지 않아. 문제 없어 보이는걸. 작업원들을 투입시켜줘>
"좋아. 그대로 대기하고 있어"
<알겠어>
통신을 끊고, 벨로즈는 인양선의 갑판에 늘어선 잠수 융보로들을 바라본다. 육지의 3세력으로부터 운반된 총 15기의 융보로는 각각 외형이 전혀 달라서 꽤나 장관이었다.
리베리스탄의 기체는 청색과 백색, 아우구스토니아의 기체는 적색과 흑색을 바탕으로 쓰며, 장비도 각각의 국가 규격을 기준으로 삼은 모양이다. 잠수 심도를 조절하는 플로트, 각부 핀의 모양이 미묘하게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에 비해 조계 작업원이 가져온 융보로는 색도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며, 왼팔과 오른팔이 마치 다른 기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계에서는 융보로의 손발을 독자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모양이다. 교역을 통해 흘러들어온 파츠를 모아서 색도 입히지 않은 채 사용하는 듯하다.
코어 유닛은 모두 같을텐데, 가르간티아의 잠수 융보로와 닮은 기체는 하나도 없다. 융보로 조종사인 벨로즈의 피가 요동친다. 조만간 지도를 핑계삼아 융보로를 타보면서 비교해보겠다고 마음속으로 정하고, 마이크를 스피커로 바꾼다.
"좋─아, 잘 들리나? 바닷속은 문제 없다는 듯 하다. 우선 흠집난 강판을 와이어로 고정해. 이어서 리벳을 해제한다. 용접부분은 가스 절단기로 아래서부터 조금씩 녹여낸다. 분담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진행 상황을 확인하면서 하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진다. 보고를 빼먹지 않도록!"
본업인 잠수 작업인데다, 평소에도 이정도의 사람을 상대해왔다. 완전히 평소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통신에서 알겠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그 때, 아우구스토니아의 기체 하나가 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보였다.
상반신을 붕쯔붕쯔 흔들거나, 갑판을 다리로 쿵쿵 짓밟는 모습이었다.
"6번 기체, 무슨일이지. 트러블인가?"
<아뇨──>
시원한 여성의 목소리가 돌아온다.
6번 기체는 아우구스토니아 측의 파견 인원을 통솔하는 스카야라는 소녀일 것이다. 기체는 다른 융보로보다 약간 크고, 몸통이 울툭불툭한 것처럼 보인다.
"어떡할래. 기체 재점검을 해볼까?"
<괜찮습니다. 작업을 시작해주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말해야 한다"
<네, 죄송합니다>
무전은 3번 기체 조종석까지 전해졌다.
"괜찮은 건가, 스카야……"
중얼거린 사람은 랏셀이다. 운 좋게 같은 팀이 된 것까진 좋았으나, 아직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못한 채 기술 교류가 시작되고 말았다.
"뭔가 생기면 도와줘야지…… 안 그래, 리브?"
조종석 틈 사이로, 리브가 얌전하게 웅크리고 있다.
요 한달 간, 리브는 더욱 성장했다. 여전히 치이치이하며 작은 목소리로 울 뿐이지만, 표정은 더욱 풍부해졌으며, 등에 약간 딱딱한 껍질같은 무언가가 생겨났다. 촉수와 같이, 지느러미같은 부분이 다리처럼 변하기까지 했으며, 실루엣만 보면 거의 사람과 같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 다리같은 부위를 사용하면 위태위태하긴 하지만 걸을 수 있을 정도까지 왔다. 사람들에게 들키기 않도록 하는 것도 고생인 것이다.
말을 걸어온 랏셀에게, 리브는 어째선지 감색 눈동자의 아랫부분──볼을 뿌우 하며 부풀려보였다.
"왜 또 삐졌어"
어찌된 일인지, 최근 리브는 굉장히 변덕스러워졌다. 특히 기술 교류의 결단식 이후로 굉장히 까칠해졌다.
리브가 볼을 부풀리고 외면하자, 랏셀은 머리를 긁적인다.
"쳇…… 뭐, 됐어. 여긴 나 혼자 힘내볼테니까, 괜찮겠지"
재미없다는 듯 랏셀을 힐끔 보더니, 리브는 짧은 촉수로 머리를 푹 덮어 숨기고는 벽을 향해 돌아선다.
랏셀은 이런이런 하며 한숨을 쉬고, 잠수 신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
한편 스카야는 조종석에서 동요를 억누르느라 필사적이었다. 외관은 평범한 융보로로 보이도록 장갑으로 위장한 기체──이그나이트가 예상 외의 반응만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그나이트, 멋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잖아!"
<왜>
"왜냐니…… 당신에 관한 건 비밀이란 말이야!"
<어째서>
"그건……"
최근 만사가 이런 식이다.
처음으로 '어째서'라고 말한 이후, 이그나이트의 언어 기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스카야는 그날부터 다른 연구원들을 제외하고 혼자서 연구에 몰두했다. 격납고에 틀어박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질문 공세에 하나하나 대답하며, 주위 모두를 정의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스카야. 어째서. 누구.
스카야는 내 이름. 당신의 파일럿. 인간. 여자.
여자. 어째서.
인간에겐 남자와 여자가 있어. 난 여자. 예를 들자면, 스나이더는 남자야.
남자. 어째서──.
'그것', '저것' 등의 지시어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동작을 배운 뒤로는, 더욱 복잡한 작업이 되버렸다.
저건 뭐지.
저건 문이야. 철로 만들어졌지. 딱딱하고 무거워.
무겁다, 란 뭐지.
어째서, 철은 무겁지?
무서울 정도로 빙 돌아가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설명을 무수히 늘어놓은 끝에, 이그나이트는 그의 세계의 전부였던 격납고 내부를 '이해'한 모양이였다.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능'이라 불러도 손색 없을 이그나이트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를 바깥 세계로 데려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번 기술 교류에 대한 화제가 떠올랐다. 단기간에 보다 많은 정보를 섭취하기 위해서, 리베리스탄이나 조계 뿐 아니라 선단의 인간과도 교류할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수륙양용기 의장을 걸치고 해상 연구 시설로부터 반출하자마자, 이그나이트가 추구하는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가끔 스카야의 명령을 무시하며까지 주위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흙으로 된 지면을 걸으며 감촉을 확인하고, 컨테이너를 보며 문을 여닫는다.
스카야가 멈추지 않으면 문을 떼어내거나, 강도를 확인하기 위해 조각조각 파괴해버릴지도 모른다.
방금 전의 행동도 인양선에서 발견한 미정의 대상──아마도 갈매기인지 무엇인지──의 관찰을 하기 위해, 또한 갑판의 구조나 강도에 흥미를 갖고 밟아버린 것이었다.
<어째서 나에 관한 일은 비밀이지?>
"지능을 가진 기체는, 달리 없으니까"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걸까?
<비밀, 이란 뭐지?>
어깨에 맥이 탁 풀린다. 거기서부터 시작인가.
<비밀이란 뭐지? 뭐지. 무엇이지. 뭐란 말인가>
지금까지 스카야나 연구원들의 언어에 한정되어있던 이그나이트의 어휘력이, 조계에서 들려오는 거친 회화를 하나하나 수집해 엉뚱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이것만큼은 조만간 어떻게든 교정해야만 한다.
"아무한테도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이야!"
화를 내듯 하는 설명에도 일단은 이해한 모양인지, 그 이상 질문은 하지 않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벨로즈로부터의 통신이 들어온다.
<수순에 변경은 없다. 1번 기체부터 잠수한다, 가라!>
호령 하에, 리베리스탄 기체가 차례차례 바다로 들어간다. 랏셀의 기체도 포함해 성대한 물기둥이 다섯번 치솟고, 다음은 아우구스토니아 기체의 차례가 왔다.
"동작은 제가 직접 제어합니다. 당신은 정보 수집에만 집중하도록. 알겠지?"
조종간을 조작한다.
하지만, 반응은 없다.
"이그나이트, 조작 권한을 넘겨줘!"
<환경 평가중. 수분──액체──밀도──농도──압력──굴절률──염분──무기광물>
"이그나이트!"
아까부터 모니터에 무서운 기세로 문자열이 스크롤되며, 고성능 센서가 찍은 무수한 영상이 나타났다가 저장된다.
바다라는 미지의 상황이 내포한 방대한 정보에, 하나하나 정의를 내려보고, 그들이 상호 작용을 해서 무엇을 일으키는가 연산하는 것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는 한, 이그나이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유기물──생명반응──조류──어패류──뭐지이거>
이제 틀렸다.
기체 외부 모니터에 스카야가 잠수하지 않는 모습을 의아해하는 동료들의 기체가 비춰진다. 이 이상 의심을 사선 안 된다.
"이그나이트. 환경 평가를 계속해. 단 움직이지는 마. 말도 하면 안 돼"
<라져>
스카야는 벨로즈와 통신을 연결하고,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벨로즈. 죄송합니다, 역시 기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알겠다. 7번 기체부터 잠수를 시작해. 6번 기체는 대기다>
"알겠습니다"
아우구스토니아에 이어 조계의 잠수 융보로가 차례차례로 바다에 들어간다.
석상처럼 굳은 상태로 한결같이 정보 해석을 계속하는 이그나이트의 속에서 스카야가 생각한다.
역시,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언어를 해석하고, 하늘을 날고, 무서울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인간형 전투기계를 타고 하늘에서 날아왔다는 남자의 소문을, 스카야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바로 발 밑 바다에 있다. 그 힘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지금 바로라도 대답을 들어야만 한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지식을 뛰어넘은 기계를 아는 남자.
가르간티아의 레도에게.
***
회합의 기회는 생각보다 빠른, 그날 밤에 찾아왔다. 레도쪽에서부터 타진해온 것이다.
6번 기체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안 레도는, 벨로즈를 통해 연락을 취해왔다. 스카야로서는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으나,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이그나이트에 대한 사실을 감추면서 '하늘을 나는 융보로'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려 생각했는데, 레도가 회합 장소로 지정한 곳이 실습으로 사용하던 잠수 융보로 격납고였기 때문이다.
작업 책임자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곳에는 다른 기쳋와 함께 이그나이트도 배치되어있다. 결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움직여도 안 된다고 엄명을 놓은 스카야는, 이그나이트의 발 밑에서 레도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타난 레도의 첫마디는 전혀 예상 외의 것이었다.
"스카야. 이 6번 기체는──보통 융보로가 아니군"
아플 정도로 심장이 뛴다.
부정의 말을 내지도 못했다.
어떻게 그 사실을?
가장 감추고 싶었던 핵심을 정확히 찔려서, 스카야는 마음속 동요를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레도는 스카야를 지긋이 바라본다. 이상하게도, 둘의 눈동자는 매우 비슷한 보석같은 보라빛을 띄고 있었다.
"난 알 수 있어. 이건, 머신 캘리버야"
"머신…… 캘리버?"
처음 듣는 말이다.
"……저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고 스스로도 알 수 있다.
레도는 한 번 숨을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가 무투의 의에서 사용하는 기체를 볼 기회가 있었지"
"네. 사열식이라고 합니다"
"그 날, 난 봤어. 항구에 정박해있던 배의 갑판에서 나타난, 이 기체를"
그랬던 것인가.
스나이더가 잘 함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을, 하필이면 레도가 목격했을 줄이야.
레도는 이그나이트를 올려본다.
"장갑을 뒤덮어 잘 숨겼어. 하지만, 본래 기체의 모습을 보면 일목요연해. 가르쳐줘, 어째서 이게 여기에 있지? 넌 어디서 이것을 손에 넣었지?"
"기다려주세요"
레도가 몰아치듯 말하자, 역으로 스카야가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의 의문에 대답하는 전제를 가장해, 그에게서 정보를 뽑아내면 된다.
"애초에, 당신이 말하는 머신 캘리버는 뭐죠?"
레도도 간단하게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이해한 모양이다.
"내가 예전에 탔던 인간형 전투 기계의 총칭이야. 내가 타던 기체는, 체임버라는 이름이었지"
"체임버…… 그게 '하늘을 나는 융보로'인가요?"
"알고 있나"
"육지에도 소문이 퍼졌어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당신은 '하늘을 나는 융보로'를 타고 나타났다, 우주에서 찾아온 손님이다 라고. 당신은, 이 기체가 체임버라고 생각하나요?"
"그게 아니야. 체임버는…… 바다 깊숙한 곳에, 가라앉았어"
레도는 얼굴을 찌푸렸다. 오래된 상처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까지나 같은 종의 기체라고 생각해. 갑판에서의 기동은, 분명 융보로와 달랐어. 게다가 오그멘티드 바디도"
스카야는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오그멘티드 바디를 알고 계신가요?!"
"그래. 가르간티아는 그것때문에 육지의 함대와 싸운 적이 있었지. 1년 반정도 전 이야기지만"
"설마──"
"사실이야"
아우구스토니아의 바디는 전부 스카야의 관할 하에 있다. 즉, 그것은 리베리스탄의 기체라는 뜻이다. 그들도 역시, 발굴한 기체를 오그멘티드 바디라도 부르고 있다. 그리고 아우구스토니아보다 먼저 실용화에 성공했다.
"오그멘티드 바디는, 지구가 얼어붙기 전 인류가 마지막으로 개발한 인간형 기체라고 생각해. 구 문명인들은 지구를 탈출해, 먼 우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머신 캘리버로 발전시켰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구 문명의 담당자들은 우주로 나갔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더욱 문명을 진화시켰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이 지구에 나와 체임버가 찾아온 것은, 매우 우연한 사고때문이야. 동시에 스트라이커라는 기체도 왔지만…… 체임버가 완전히 파괴했지. 이제 이 별에 머신 캘리버가 존재할 리가 없어. 그렇기 때문에 물어보고 싶었어. 이 기체가 무엇인지"
레도의 의문이 드디어 이해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가 육지의 내실을 알고있다는 사실도.
그렇다면.
"──이야기할 수 있는 한에서 알려드리죠"
레도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부탁해"
조국의 최고 기밀에 속하는 사항이지만, 스카야는 결심했다.
"수백년의 역사 속에서…… 아우구스토니아의 각지로부터, 여러 인간형 전투 기계──오그멘티드 바디가 발굴되고, 사장되어 왔습니다. 코어 유닛으로 가동하는 융보로와는 전혀 다르게, 바디는 사람의 손이 닿는 것을 완고하게 거부해왔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석상과 다를 바 없는 구 문명의 유산. 당신의 이야기에 의하면, 리베리스탄도 역시 똑같이, 바디를 비밀리에 소유하고 있는 거겠죠"
"그게 지금, 어째서"
"모르겠습니다. 단, 바디들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일제히 기동하기 시작했어요"
"3년 전……?"
레도는 무언가 짚이는 구석이 있다는 눈을 했다.
"네. 그리고 바디와 함께, 이 기체──이그나이트도 각성했습니다"
레도가 경악하며 눈을 크게 떴다.
"잠깐 기다려! 이녀석이 바디와 함께 육지에 묻혀있었다는 말이야?!"
"네"
"그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하지만, 사실입니다"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는 레도에게 몰아붙이듯이, 스카야가 계속해서 말한다.
"저는 기술 장교로서 바디의 연구에 종사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조종을 받아들이고, 놀라운 잠재능력의 일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되었죠"
"네가──"
"그렇다고는 하나, 이그나이트만은 달랐습니다. 오그멘티드 바디보다도 훨씬 높은 성능을 감추고 있을 거라 예상은 되지만, 실제로는 융보로보다 떨어지는──"
스카야는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끊었다. 이 이상은 말해선 안 된다.
이그나이트가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려져선 안 된다. 스카야는 화제를 돌렸다.
"레도 씨가 이것을 머신 캘리버라고 하신다면, 그 특징을 알려주세요. 뭔가 부합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좋아. 머신 캘리버에게는, 고도의 인공지능이 갖춰져있어. 주위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해서 제시함으로써, 사람을 전투에 최적화해주지. 파일럿 지원 계발 인터페이스 시스템이라고 해"
"지원──"
이그나이트가 처음 했던 말에 포함되어있던 단어다.
"소문으로는, 말을 한다던가"
"물론이지. 지구의 언어도 단기간에 습득했어. 학습능력이 매우 높아"
역시 그랬나. 이그나이트는 머신 캘리버와 똑같거나, 그것과 닮은 무언가다.
"체임버에 타고 이 지구로 낙하했을 때, 난 의식을 잃고 인공 동면에 들어갔지. 3년 전 일이야"
"3년 전?"
이야기가 맞물린다는 사실을 눈치챈 스카야에게, 레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체임버는 구조요청 신호를 최대 출력으로 발신했지. 오그멘티드 바디도, 이그나이트도, 그 수신을 받아 각성한 것이 분명해"
수수께끼가 한 가지, 풀렸다.
대체 무슨 일인가. 스카야는 기술자로서 연구에 메달리던 나날을 가져다준 장본인과 마주서있는 것이었다.
한 편 레도는, 최대 의문점에 대해 생각에 잠겨있었다. 물론, 이그나이트의 출처이다.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그나이트는 머신 캘리버가 아니야. 대체 어찌된 일이지──"
스카야는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섰다.
"정말 죄송하지만, 레도 씨.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기다려, 스카야"
"그리고, 이그나이트에게 이 이상 관여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뭐라고?"
"말씀드린 것은 모두, 제 국가의 기밀 사항입니다. 당신의 목숨에도 영향을 미칠 거예요"
정적이 흐른 뒤, 레도가 말한다.
"나에 관한 건 됐어. 네가 걸리겠군"
전 병사로서, 기밀을 흘린 죄의 무게가 충분히 이해된다.
"내가 이그나이트의 비밀을 풀려고 하면, 네 목숨이 위험해진다. 그렇지"
서로 알고 싶은 것에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진흙구덩이에 빠져갈 뿐이다.
스카야는 무언을 고수한다.
"잘 말해줬어"
스카야가 깊이 고개를 숙이고, 회합은 끝났다.
레도는 최대의 수수께끼──선 상태로 멈춰있는 이그나이트를 올려다본다.
거대한 석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
그 날 이후, 레도와 스카야는 지도자와 작업원의 입장을 관찰했다.
첫날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이그나이트도, 다음날부터는 평범한 융보로 정도로는 작업할 수 있게 되었고, 레도도 스카야를 수많은 실습생과 동일하게 취급했다.
수중에서의 선체 수리는 물론, 고속 항해 중인 선상에서 실시하는 각종 작업의 습득, 선단이 특기로 하는 인양 작업의 노하우 전수 등, 여러 복잡한 실습이 진행되었다.
상호 간에 간섭하지 않는 상태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다.
그 사이 랏셀은, 스카야에게 말을 걸 타이밍을 놓치고 콕스와 테아시에게 위로받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벨로즈와 레도가 지도하는 15기의 기체는, 기술 교류 사업의 총 마무리를 단계로 들어갔다.
실습의 무대가 되었던 스팀팔로 호가 지닌 가장 큰 크레인으로부터, 노후화된 돛 아래의 활대를 떼어내는 대작업이다.
'마주보는 초승달'의 부두에 아슬아슬할 정도까지 선체를 기댄 스팀팔로 호의 뱃전 갑판에서, 팀을 앞세운 벨로즈가 일의 진행 순서를 설명한다.
"알겠나. 홀수 기체와 짝수 기체, 두 팀으로 나눠서 작업한다. 홀수 기체는 이쪽 갑판을, 짝수 기체는 부두측으로 이동. 상대는 이녀석이다"
벨로즈가 갑판에 인접한 대형 크레인을 가르킨다.
갑판에서 똑바로 서있는 돛대의 뿌리쪽에, 활대가 핀으로 결합된 단순한 구조이다. 데릭 기중기라고 불리우는, 선박에서 화물을 내리는 장치로, 활대 선단에 걸쳐진 제어 와이어를 이용해 붐의 각도를 조절한다.
그 크기는 굉장히 커서, 활대만 해도 길이가 대략 20m는 된다. 이 강철 구조물을 떼어내 부두로 옮겨야 한다.
"우선, 홀수 기체. 활대를 쓰러트리고, 갑판에 수평으로 놓도록. 제어 와이어는 도중에 잘라서 회수한다. 그리고나서 고정되어있는 핀을 해제한 뒤, 들어올린다. 여기까지 작업이 끝나면 활대는 그저 길다란 철제 기둥일 뿐이야. 저걸 봐라"
벨로즈가 부두를 가르킨다. 똑같은 모양의, 더욱 거대한 데릭 기중기가 설치되어 있다.
"저 활대를 여기 내려놓고, 와이어로 고정한다. 여기까지가 갑판 측의 일이야. 전부, 융보로로 진행한다. 알겠나?"
랏셀을 포함한 8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은 부두측, 짝수 기체"
스카야를 포함한 7명이 긴장한다.
"부두의 크레인으로 올려낸 짐을, 이동식 발판에 내려놓는다. 일곱 기체가 합을 맞춰 균형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레도, 넌 이녀석들을 맡아. 난 갑판의 홀수 기체를 감독할게"
"알았어"
좋아 시작한다, 라는 외침에 전원 오우! 하며 목소리를 맞추었다.
작업이 시작되었다.
벨로즈와 레도는 최대한 그들에게 작업을 맡길 생각이었다. 굳이 짝수 홀수로 팀을 나눈 것은, 육지 3세력의 혼성 팀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 3주에 걸친 실습 중, 그들은 훌륭하게 연계를 보이는 정도가 되어있었다.
<7번 기체, 와이어 회수 완료, 확인!>
<13번 기체, 록 해제!>
<3번 기체, 11번 기체와 함께 핀을 뽑는 작업에 들어간다>
랏셀이 그렇게 ㅁ말하고, 조계에서 파견된 11번 기체와 협력해 돛대의 뿌리부분에 박혀있는 금속제 극태 핀을 있는 힘껏 뽑아낸다.
"다른 모든 기체는 활대를 지탱해!"
갑판 측의 융보로가 힘을 모아 활대를 떼어내는 작업은 무사히 끝났다.
"좋─아, 잘 했어!"
벨로즈는 만족스럽게 말하고는, 짝수 기체 7대를 인솔해 부두로 이동한 레도를 무선으로 호출한다.
"레도, 갑판측은 일단 오케이야. 그쪽은 어때?"
<발판 준비는 끝났어. 지금부터 크레인을 돌릴게>
"좋아"
벨로즈가 무전을 한 직후, 부두측의 크레인이 버켓을 올리고 천천히 선회하기 시작한다.
활대가 갑판 바로 위에 도달하고, 끝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 와이어 훅이 내려온다. 벨로즈가 명령한다.
"5번, 9번! 화물의 2개 장소에 훅을 고정해. 금속 고리 부분이 있을 거야"
딱딱한 금속음이 울리고, 화물이 와이어에 고정된다.
와이어 접속 확인, 이라는 목소리를 듣고, 벨로즈가 레도에게 연락을 넣는다.
"레도, 이동 개시"
<오케이>
부두측 크레인이 권양기로 와이어를 감아올리기 시작한다. 와이어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소리내더니, 수십톤은 되는 화물이 천천히 갑판에서 붕 떠오른다.
조금씩 조금씩 각도를 늘려 높이를 확보한 뒤, 크레인이 선회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화물은 부두측으로 다가간다.
"좋아, 그대로……"
마른침을 삼키며 바라보는 스카야가 중얼거린, 그 순간이었다.
파킨─하는 귀에 거슬리는 금속음의 소리가 주변을 압도했다.
그 곳에 있던 전원이 심장을 움켜잡고 생각했다.
소리의 정체는 명백하다. 짐을 묶은 두 개의 훅 중 하나가 금속 고리에서 빠진 것이다. 잘 집중해서 살펴보니, 고정용 금속 고리 자체가 파손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부식되어있던 것이리라.
"이런 빌어먹을! 모두 피난해, 거리를 벌려!"
벨로즈가 외친다.
화물은 지금 크레인에서 와이어 한 가닥에 묶여있는 형태다. 게다가 한 쪽은 풀려나간 충격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며 복잡한 진자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벨로즈, 어떡하지!>
"지금 당장은 아무 방법도 없어,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레도에게 그렇게 대답하던 때, 6번 기체──스카야의 외침이 끼어들었다.
<곤란해, 흔들리는 방향이 변하고 있어요!>
"뭐라고?!"
확실히, 메달린 화물이 왕복하는 방향이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큰일이야!>
<이대로라면 어딘가에 부딪힌다!>
비명이 섞인 절규가 통신을 가득 채운다.
<여기는 갑판측 3번 기체!>
그 때, 유달리 낮게 억누른 목소리가 혼란을 잠재웠다.
<부두측 6번 기체, 들리나!>
랏셀이 스카야에게 통신을 한다.
<들립니다!>
<크레인의 돛대 밑동에, 근처에 있는 와이어를 주워다 감아!>
<어쩔 생각이야?!>
<됐으니까! 서둘러!>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는 와중에, 스카야는 튕겨나가듯이 행동을 개시했다.
"이그나이트, 서둘러!"
발판의 견인용으로 준비해둔 와이어 묶음을 움켜쥐고, 돛대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고정한다.
<감았어!>
<다른 한 쪽을 잡고 암벽으로!>
<네!>
레도가 끼어든다.
<3번 기체, 뭘 할 생각이지! 이제 한계야, 금방이라도 부딪칠 거야!>
<조용히 보고 있으라고, 색남!>
연수 기간 내내, 스카야의 흥미가 레도를 향해 있던 것은 랏셀의 눈으로 봐도 명백했다. 이런 때에 질투하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크게 흔들리는 철덩어리가 갑판의 코앞을 스쳐지나간다. 다음 반동을 할 때면 격돌을 피할 수 없다.
통신에 들리지 않도록, 랏셀이 동승해있던 리브에게 속삭인다.
"리브, 부탁해!"
치이, 하며 울음소리를 낸 리브가 전신을 취색으로 빛낸다.
리브의 힘이 융보로를 가득 채워간다.
<6번 기체, 이제부터 내가 화물로 뛰어든다! 그쪽으로 흔들리는 순간, 와이어를 넘겨!>
<뭣──>
절규하는 목소리의 주인은 벨로즈였다.
<바보같은 소릴, 융보로의 무게가 더해지면 화물째로 떨어질 거야!>
<묶여있는 와이어를 붙잡으면 돼!>
<그런 일이 가능할까보냐!>
<할 수 있어! 맡겨봐! 6번 기체, 준비는!>
<됐어요!>
그게 신호였다.
각부의 타이어를 삐걱거리며, 랏셀의 3번 기체는 흔들리는 반동으로 되돌아오는 방대한 질량을 향해, 리브와 함께 돌진했다.
"가라아앗!"
도약하는 순간, 융보로의 거동이 완벽히 컨트롤되었다.
중심 이동, 각부의 도약력, 공중에서의 자세 제어. 끌어당기는 시간 동안, 조종간을 통해 전해진 랏셀의 사고를 읽어들인 리브가 온갖 동작을 최적화한다.
다음 순간, 3번 기체의 머니퓰레이터가 가느다란 표적을 실수 없이 움켜쥐었다.
화물로 가는 부하는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융보로 한 대 분량의 중량이 더해진 와이어가 성대하게 삐걱댄다.
흔들림이 부두측으로 크게 기울기 시작한다.
"스카야!"
"랏셀!"
이그나이트도 역시 모든 연산을 끝마쳤다.
3번 기체가 다가온다. 그 궤도 위에, 이그나이트──스카야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이어를 정확하게 투척했다.
한쪽 팔로 기체를 움켜쥔 랏셀이, 비어있는 다른 손으로 공중의 와이어를 낚아챈다.
흔들림이 최고로 달한 지점에서 두 개의 와이어를 묶고, 매니퓰레이터의 손목을 고속회전시켜 비틀어 올린다. 한계를 넘어선 모터가 비명과 불꽃을 내뿜는다.
다음 순간──.
무언가가 작렬하는 것같은 굉음이 울려퍼졌다.
거대한 강철의 운동 에너지를, 극히 한 순간에 받아들인 와이어가, 그 장력으로 대기를 찢어버리는 소리였다.
대형 크레인의 활대였던 것은, 배와 부두의 사이에서 정지했다.
간간히 들려오는 부두측 크레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해냈잖아>
멍하니 중얼거린 벨로즈의 혼잣말이 무선을 통해 흘러나갔다.
순간, 그 장소에 있던 전원의 환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넘쳤다.
<해냈다, 애송이가 해냈어!>
<저 제정신이냐?! 제정신 아니지?!>
<3번 기체도 6번 기체도 굉장해─!>
매달린 채 환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랏셀은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라져있던 리브도, 지금은 치이치이 하며 기쁜 울음소리를 냈다.
이그나이트의 콕피트에서도, 갑작스런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휩싸인 스카야가 미소를 짓는다.
<스카야, 어째서 웃고 있지?>
그 대답은 간단하다.
"기쁘니까야, 이그나이트"
해치를 열자, 건너편 강가에서 랏셀도 기체 밖으로 몸을 빼고 있었다.
입가에 양 손을 대고 외친다.
"랏셀──"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갑자기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자, 건너편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스카야──"
주변의 환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쳤지만, 역시 그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랏셀도 똑같은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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