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목록 (상단)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취성의 가르간티아 ~머나먼 해후의 천지~ 제10장 취성의 진실

 그것은 우주의 칠흑에 떠오른 한 송이 꽃이었다.

 초 고밀도 회전구가 진공에서 추출하는 방대한 에너지가, 진달래빛의 플라즈마 광축이 되어 양극으로부터 발한다. 이를 줄기라 한다면, 광축을 되받아 추진력으로 바꾸는 반구상의 스러스트 리버서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줄기의 주변을 둘러싸며 나란히 줄지어있는, 긴반지름 약 15km정도 되는 잎. 옹기종기 모여있는 거주구에는, 개와 종의 계승을 기대하는 4억 7천만의 시민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존망을 건, 우주의 패권을 겨루는 인류문명 최후의 요새.

 과학의 결정체, 개척 의지의 결정. 돌아가야 할 약속의 땅.

***

 "어째서──어째서야. 어째서냐고!"

 타들어가는듯한 포효도 아득히 넓은 대지에 있어서는 속삭임에 지나지 않는다.

 대략 사람이 설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뇌리에 못박아놓는 듯한 비현실.

 그것이 무엇인지──레도는 무의식보다 깊은 곳으로부터 알고 있었다.

 역겨운 천적 히디어즈를 뿌리뽑기위해 싸우는 인류 은하 동맹.

 겁화 속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데에 망설이지 않는 전사들을 고무하는 계발 영상.

 짧은 잠을 잘 때마다 반복되서 나타나는 인공 꿈 속에, 그 모습이 있었다.

 이상향, 아발론.

 그것을 사수하기 위해 인간은 태어나고, 싸우며, 죽는다고──대뇌의 전두엽에 셀 수 없을 만큼 쑤셔박힌, 인류 은하 동맹 사상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발론이──어째서"

 몸을 지탱하던 힘을 잃고, 레도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무너진다.

 자갈이 무릎에 박히는 고통도, 얼이 빠져나간 탓에 느끼지 못할 정도다.

 고동이 빨라지며, 뇌가 시각을 거부한다.

 혼란과 격정의 파도가 셀 수 없이 몰려든다.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작열감과 얼어붙을 정도의 오한이 동시에 찾아와, 감각 자체를 갉아먹는 것같다.

 매우 길게 느껴진 짧은 순간이 지났다.

 이윽고──.

 레도의 이성이 서서히 돌아온다.

 눈이 핑핑 돌 정도의 혼란스런 사고의 단편이 맞춰지며, 조금씩, 의미를 만들어간다.

 40km정도 앞에 펼쳐진 침엽수림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길'. 폭 수km는 되보이는 그것은, 하루에 한 번, 막대한 에너지 방사가 지나가는 흔적인 것이다.

 밀림의 짙은 녹색을 가로지르는 순백색 한 일(一)자의 기묘한 광경은, 수백년에 걸친 방사가 땅의 겉면을 분해하며 생성된 생석회와, 고열을 버티지 못하고 증발하는 지중의 수분에 농축된 소금의 산물이다.

 그 길다란 면의 3분의 1 정도를 지중에 눌러박아 길게 가로눕힌 타원형의 구조물.

 규모만 무시한다면 활엽수 이파리 한 장으로 보이는 그것은, 다른 어떤 가능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역시 그 아발론의 거주구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음매나 튀어나온 부분 하나 없는 메끄러운 윤곽은, 윗면의 대부분을 투과 칸막이로 감싸고, 세월이 흘러 열화된듯 보이는 질감의 변화만 뺀다면 계발 영상에 있던 그것과 거의 차이도 없다.

 작아졌던 시야가 조금씩 넓어진다.

 좌우로 시선을 돌려보니, '길'의 주변에 똑같은 타원형 물체가 여럿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어느것도 대파되어, 암록색 융단에 파묻혀 무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것은 대지에 꽂힌 채로 심하게 썩어버렸고, 어느것은 원형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분오열되어, 조각난 채로 여기저기에 흩뿌려져있다. 여기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지만, 그 하나하나가 수백m 규모의 물건임은 틀림없었다.

 추락한 아발론 거주구의 무리──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레도는 이렇게 생각했다.

 산맥의 구석진 곳에는 틀림없이, 시간의 기둥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무언가의 시설이 있다. 기둥이 현재 지구 문명의 산물이 아닌 이상, 수전 시설도 역시 구 문명 시대의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눈 앞의 광경은 온갖 예상을 뒤집어버리고 말았다.

 의문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인류 은하 동맹은, 6500광년 저편에서 지금도 히디어즈와의 섬멸전을 펼치고 있을 터이다. 그 본거지인 콜로니 우주선이, 어째서 이 지구에 존재하는가? 대 산맥의 꼭대기에 올라선 이 순간까지 뇌리에 스치지도 않았던 가능성이, 지금 현실이 되어 눈 앞에 있다──.

 거기서, 레도는 이 장소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본다.

 짙게 흩뿌려지는 눈과 구름의 속에서 보였던, 검은 그림자. 거대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양감을 자랑하던 무언가가, 확실히 존재했다.

 등줄기가 오싹하며 식는다.

 어느 예감에 따라, 레도는 천천히 오른손을 휘젓는다.

 끊임없이 불고있던 강풍에, 이미 구름은 흩날려 사라졌다.

 그곳에 펼쳐져있어야 할 원경을 가로막으며, 바로 수km 앞에 치솟아있는──은색의 벽.

 가장자리가 그리는 원만한 곡선은, 역시 그것이 자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산맥 봉우리에 올라앉은 것처럼, 앞쪽 절반을 조계 반도측에 내뻗고 있는 그 물체는, 전체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지금이기에 인식할 수 있었다.

 이것도 역시, 아발론 중 하나다.

 그것은 밀림에 나뒹구는 어느것보다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튕겨나가는듯이 레도가 일어선다.

 은색 벽과의 사이는, 눈이 아찔한 정도로 깊은 골짜기에 의해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빨아당기듯이 두 걸음, 세 걸음 나아가던 걸음걸이는, 금새 뜀발질로 바뀌었다.

 힘껏 디디면 무너지는 자갈을 신경쓰지도 않으며, 레도는 머나먼 환상의 속에서 실체가 되어 나타난 '이상향'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급경사로 몸을 던졌다.

◆◆◆

 양 투사가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사열식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두 국가의 위신을 건 전투를 앞두고, 제 2투기장은 이상한 흥분상태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예외는 있는 법이다.

 "어이…… 어이, 거짓말이지"

 백색과 심홍색의 기체에서 모습을 드러낸 리베리스탄의 투사를 바라보며, 콕스는 넋을 놓고 중얼거린다.

 틀림 없다. 조계의 기술 교류 사업에서 봤던, 그 스카야였다.

 단정하게 묶어올린 빛나는 은발이 삭둑 잘려나가 짧아지긴 했어도, 맑은 보라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모를 잘못볼 리가 없다.

 "어, 어떻게 저 애가 있는 거야?! 저거, 스카야지. 아우구스토니아의 공주님 아니었어? 주──죽었던 게 아니었냐고!"

 폭탄 테러로, 저 아이는. 저 아이를 위해 랏셀은 리베리스탄을 증오하고, 아우구스토니아의 군인따위가 되버려서. 그래서──.

 "랏셀! 어이, 어─이! 살아있다고, 저쪽에 있는 녀석은 스카야라고?!"

 필사적인 외침이, 군중들의 박수와 환성 속에 묻혀 도저히 닿지 않는다. 자신의 기체에서 몸을 내민 채로 굳어져버린 랏셀의 얼굴은,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제길, 뭐냐고 이거! 랏셀이랑 스카야가…… 싸운다고?!"

 흥분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콕스의 옆에서, 테아시는 한 마디도 않고 잠잠히 있다.

 "어이 테아시, 듣고 있어?!"

 시선을 전방에 고정한 채, 넋이 나간 표정 그대로, 테아시가 콕스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콕스…… 저기, 저거"

 "그래, 스카야가 적군 측에"

 "아니. 그 건너편"

 "건너편……?"

 테아시의 눈동자가 달라붙어있는 그 앞은, 이그나이트의 뒤에 보이는 문 근처였다.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아……"

 반대편에서 뚱뚱한 부자 아줌마가 손에 들고 있는 쌍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잠깐 빌려줘, 라며 빼앗아 바라본다. 어멋 하며 소리치는 아줌마를 내버려두고 시야를 더듬어보자, 문 근처에 위엄을 드러내며 늘어선 리베리스탄의 보병들과 함께, 기체 정비를 담당하는 백색과 청색의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앗…… 아, 어엉?!"

 콕스는 테아시가 경악한 의미를 이해했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잘 아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남자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호킨스…… 지, 그치……?"

 콕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아─아. 랏셀도 참, 스카야를 보고 바로 굳어버렸잖아……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그야 깜짝 놀랄 만도 하지…… 아니면, 운명의 재회가 너무 기뻐서 얼어붙어버린 거려나?"

 조용히 중얼거리며, 리베리스탄 군이 고용한 청탁 기술자에게 대여되는 멋없는 작업복과 모자를 착용한 호킨스가 둥근 안경을 고쳐쓰며 실실 웃었다.

 "나같은 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인데. 뭐 어쩔 수 없나"

 이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이그나이트를 바라본다.

 스카야는 지금, 영리한 보라색 눈동자로 정면에서 똑바로 랏셀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호킨스는, 그 소녀가 감추고 있는 고결한 영혼과 각오를 떠올린다.

***

 후커의 술집에서 벌어진 리마와의 생각지도 못했던 재회를 계기로, 호킨스는 리베리스탄으로 향하게 되었다.

 해상 집락에서 상륙한 이후의 본국 입국이다.

 정식 시민권과, 혁명가로서의 지하 활동 사이에 쌓아둔 인맥을 활용해, 호킨스는 기술자 신분으로 스카야에게 접근할 계획을 세웠다.

 조계의 항구에서 글래디에이터 전용 컨테이너를 빠트렸던 사람이 민간업자였듯이, 리베리스탄 군에서도 어느 정도의 업무를 외부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장비 조달이나 정비에 관한 루트를 타고 올라가, 출장 기체용의 정비 기재를 도매하는 업체에 잠입한 것은, 때마침 2명째 투사 선발이 끝난 무렵이었다.

 주위의 예상을 뒤집고 갑자기 투사로 발탁된 소녀.

 그 모습에, 호킨스는 리마의 정보가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와 단 둘이 될 기회가 찾아온 때는, 무투를 향해 출항한 리베리스탄 함대가 조계에 도착하기 직전의 밤이었다.

 운송함의 어둑어둑한 격납고에서 홀로 이그나이트를 바라보며 배회하는 스카야에게, 호킨스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투사 폴라"

 기술자 복장으로 헤실헤실 웃는 남자에게, 스카야는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생하시네요. 뭔가 볼일이라도?"

 "저는 호킨스라고 합니다"

 "호킨스. 여긴 이제 괜찮아요. 상륙을 대비해, 당신도 휴식을"

 "어라, 잊으셨나요? 아차, 뭐 무리도 아닌가, 차림새도 다르고. 나라구요──공주님"

 "──읏!"

 "전에 당신이 죄수에게 유괴되서 큰 소동이 벌어졌을 때, 조계의 공동 관리부 앞에서 만난 적이 있었죠. 그 뒤, 가르간티아와의 기술 교류 사업에서도 만났구요"

 "──……"

 모자와 둥근 안경 너머로 웃는 것처럼 만들어낸 눈동자에, 스카야는 시치미떼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으로 긍정하면서, 경계를 강화한다.

 호킨스는 헤실헤실 웃었다.

 "떠오른 모양이라, 다행이네요"

 "어째서, 이곳에……"

 "난 일단 리베리스탄 시민이니까요. 조계에서 본국으로 돌아와 일에 열중했을 뿐, 전혀 이상할 것 없잖아요. 오히려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지요. 아우구스토니아의 공주님이──지금은 리베리스탄의 투사라니"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이거야, 대담하게도 말하시는군요"

 "저는 지금까지의 신분을 버리고 리베리스탄 시민이 되어, 무투의 투사로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몸. 과거가 어찌됐건, 이제 아무 관계 없어요"

 "과연……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죠"

 "고발할 생각인가요?"

 "설마요"

 확신에 찬 말투에, 호킨스는 눈치챘다.

 투사 폴라──스카야가 아우구스토니아 출신이라는 점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 출신 여하보다, 그녀가 무투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니까. 실력주의인 리베리스탄다운 판단이다.

 "그런 멋없는 짓은 안 해요. 나 역시, 신분이나 국적따위엔 요만큼의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과거는 아무 관계 없다, 는 건 좀 아니죠"

 "무슨 뜻이죠?"

 "당신은 쓰러트릴 수 있나요? ……그 랏셀을"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에, 보라색 눈동자가 번쩍 뜨인다.

 "랏셀을…… 쓰러트려?"

 "그녀석은 아마도 이번 무투에 나올 거예요. 아우구스토니아의 투사로서"

 "뭐라고?"

 스카야의 몸이 경직된다.

 "어째서 그가 아우구스토니아에. 그는 열심히 일해서, 언젠가 조계에서 일어서겠다고……!"

 호킨스가 쓴웃음짓는다.

 "우후훗. 당신 때문이라구요, 공주님"

 "나 때문……?"

 의아해하는 스카야에게, 호킨스가 말을 잇는다.

 "당신은 폭탄 테러에 휘말려 죽었다──라는 것으로 되어있죠. 테러리스트가 리베리스탄 출신의 그룹이었다고 알게된 뒤로, 그녀석은 아우구스토니아 군에 지원했어요. 원수를 갚을 생각이었겠죠. 처음에는"

 "처음에는?"

 "그녀석은…… 변해버렸어요"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미소로, 호킨스는 스카야로부터 눈을 돌렸다.

 "당신을 잃고, 그녀석은 모처럼 품었던 야심의 방향을 잘못 잡고 말았어요"

 "──……"

 "기분은 모르는 것도 아니예요. 나는, 막 당신이 태어나던 무렵, 혁명 운동같은 것을 하던 사람이니까"

 "혁명이라구요?"

 "그래요. 조계에 만연해있는 불온분자 말이죠. 세상을 뒤집어보자고, 여러가지 해봤죠.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별로 흥미 없었지만"

 호킨스는 어디까지나 표연하게 말했다.

 스카야는 탐색하는듯한 눈빛으로 호킨스의 말을 기다린다.

 "불합리함으로 가득한 쓰레기같은 세상은 사양하겠다,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서 모든것을 내려다 봐주마──랏셀은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건 틀렸어. 지금 만들어져있는 구조 속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봤자 흐름은 변하지 않아, 저항할 틈도 없이 집어삼켜질 뿐. 자신은 그럴 리 없다는 말은,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약간 열을 내는 호킨스의 장황한 말을, 스카야가 한 마디로 정리한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

 "에──?"

 간파당한듯한 말로 찬물을 뿌려진 호킨스가 절규했다.

 스카야는 보라색 눈동자를 강하게 빛낸다.

 "구조는, 그것이 굳건하면 굳건할수록, 반드시 외부세력을 만들어내요.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 일정 수 모이면, 거기서 또 독자적인 구조가 만들어지죠. 현 상태를 부정하고, 거절하는 행위에 의의를 두고, 자신만은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맹신한다면──그건 오만이죠"

 "아──"

 "일부 사람들의 이상도 역시, 보다 큰 구조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그래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겠지요"

 이전 혁명 운동과 그 좌절. 그 역시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말인가.

 "하,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은 무투에 나가지? 기존의 틀 속에서 싸우고, 그걸로 뭐가 변한다는 말이야"

 이상하게도, 스카야는 만면에 흘러넘칠 정도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랏셀과 똑같아요"

 "랏셀과……?"

 

 ──나는 육지에, 나를 바꾸려고 왔어.



 "아무리 발버둥치려 해봐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바꿀 수 있는 거라곤, 지금까지의 자기자신 뿐. 하지만"



 ──나는, 우리들은 도전하겠어. 지금까지의 자신에게.



 "그건, 운명을 바꾸는 것과 똑같아요"

***

 호킨스는 소름끼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소녀가 자신의 혼에 깃들인 것은, 혁명사상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다. 쓰잘데없는 인과에 집어삼켜졌던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랏셀이 기존의 틀 안으로 몸을 던졌다면, 그 역시 그의 의지겠죠. 저희는 서로가 선택한 장소에서 자신을 계속해서 바꿀 뿐이예요"

 "그 결과, 랏셀과 싸우게 되더라도? 당신을 생각해서, 그녀석의 운명은 바뀌었는데?"

 그 때, 호킨스는 소녀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이는듯한 착시를 보았다.

 굳은 결의를 스카야가 말로 바꿔낸다.

 "그래요. 그는 그렇게 자신을 바꾸었죠. 그렇다면, 저도 그에 응해야만 해요"

 "그녀석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몰라. 그래도?"

 "저같은 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흔들릴 정도라면, 그의 의지도 거기까지겠죠. 전심전력을 다해 쓰러트릴 뿐입니다"

 "랏셀에게는 리브가 있어. 기계의 성능을 극적으로 올리는 힘이지. 간단하게 이길 수는 없을텐데"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게도 힘은 있어요"

 스카야는 백색과 심홍색으로 칠해진 자신의 기체를 올려다본다.

 "그는, 제가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힘이예요"

 이그나이트를 '그'라고 부른 스카야의 옆모습에, 기계를 대하는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고, 호킨스가 의아스레 눈썹을 꿈틀댄다.

 "이그나이트, 듣고 있었지?"

 <네, 스카야>

 "뭐야?!"

 목소리가 기체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고, 호킨스는 깜짝놀랐다.

 "잠깐, 누군가 안에 타고 있었나, 듣고 있었나?!"

 스카야는 대답하지 않고, 당연하다는듯이 이그나이트에게 묻는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

 <해당 정보를 반영한 전술 책정을 요청>

 상대측에게 리브라는 불확정 요소가 있다면, 지금까지의 시뮬레이션을 변경할 필요가 있겠지.

 "그러네──"

 스카야는 잠시 생각하고 다시 시선을 올린다.

 "땅의 전투는, 오그멘티드 바디 대 글래디에이터였지. 리베리스탄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하지만, 만에 하나 우리편이 진다면…… 그 상대는 틀림없이 랏셀이겠지"

 리브가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기술 교류 사업에서 사고가 났을 때 목격한 적이 있다.

 "그 힘은 결코 얕볼 수 없어"

 <이해했다>

 "또 한 가지. 아우구스토니아에도 오그멘티드 바디가 있어. 해상 연구 시설은 폭파되었지만, 바디 자체는 건재할 거야"

 스카야 자신이 설계한 긴급 배출 기계는 사고 당시 확실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토니아가 바디를 내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바디의 성능은, 연구 책임자였던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있어. 거기에 리브의 힘이 더해진다면, 얼마나 진화할지──나조차도 상상할 수 없어"

 <이해했다. 유익한 조언>

 이그나이트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무릎을 꿇더니, 스스로 머리에 있는 해치를 열었다.

 "하, 아……?"

 호킨스가 입을 떡 벌렸다.

 "잠깐…… 안에, 아무도 없잖아…… 혼자 움직였어"

 조종석에서 암 시트가 기계 밖으로 뻗어나온다.

 <파일럿 슈트 사용을 진언한다>

 그 말과 동시에, 지금까지 좌석을 메우는 쿠션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한 줄기 금이 생겨났다. 좌우로 갈라진 내부로부터 투명한 시트에 감싸진 새하얀 물건이 보인다.

 스카야가 미끄러지듯이 이그나이트의 어깻죽지에 올라서고는, 시트를 들어올린다.

 "이건?"

 <당신의 생체 정보와 내 관제 정보를 접촉 센서에 의해 교환하는 슈트다>

 "파일럿 슈트……"

 <정보를 총합한 결과, 교전 대상의 전투력은 내 시뮬레이션을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 슈트의 착용에 의해, 그와 나의 전투력 차이를 줄일 수 있다고 추측한다>

 "그래. 혹시 랏셀과 리브가 상대라면…… 너도 진심으로 상대해야 한다, 는 뜻이네"

 <긍정한다>

 스카야가 미소짓는다.

 "고맙게 받을게"

 호킨스는 말을 잃었다.

 스카야와 이그나이트──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관계는, 타인으로선 짐작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인 양 행동하는 기계. 주종관계처럼 보이기도 하고, 파트너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게 인공지능……인가"

 그 레도에게 들었던 인간형 기계 병기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체임버라고 말했던가. 그들의 관계도 이와 비슷했을까.

 둥근 안경의 양쪽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바라보는 한편, 호킨스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나는듯한 흥분에 감싸이기 시작했다.

 "스카야. 당신은, 이 힘으로──"

 순백색 슈트를 손에 든 소녀가, 맑은 보라색 눈동자를 빛내며 호킨스를 흘겨본다.

 "저는 도전할 겁니다. 지금까지의 자신에게. 그리고, 이번 무투의 끝에 나타난다는, 새로운 세상을 지켜보겠어요. 그건 동시에, 랏셀의 바람까지 이루는 일이 되겠죠"

 랏셀의 바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가는 것을 벌이라 정한 녀석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의 동생──리마도 역시, 말했다.

 육지가 존재하는 방식의 정체를 폭로하고 싶다. 이 세계는, 뭔가 이상하다──.

 젊은이들의 바람은 신기할 정도로 일치했다.

 이거야말로 운명이겠지 라고──호킨스는 마음속으로 이해했다.

***

 호킨스의 의식은 긴 회상에서, 제 2투기장을 압도하는 환성에 의해 되돌아왔다.

 스카야와 이그나이트.

 랏셀과 리브.

 무수한 우연이 얽히고 섥혀 필연으로 귀결되고, 그들은 지금 투기장에서 대치하고 있다.

 랏셀의 오그멘티드 바디 뒤로, 오와 열을 맞춘 아우구스토니아의 군인 무리로 시선을 옮기며, 호킨스는 안경테를 고쳐올렸다.

 "우후훗. 잠시 못 본 사이에, 꽤나 그리운 눈빛을 하게 되었구나, 너"

 대열 안에서 한층 강한 눈빛으로 이곳을 바라보는 친구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호킨스가 중얼거렸다.

 "우리들이 이곳에 모이게 된 것도 필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스나이더?"

***

 대치하는 두 기체의 거구 너머로 슬쩍 보이는 불쾌한 시선을, 스나이더가 되받아친다. 그의 마음 속은, 이 웃기는 상황 속에서도 이상할 정도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17살 때, 술잔을 걸치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맹세한 상대와, 무투라는 장소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아우구스토니아 군에서 15년에 걸쳐 쌓아올린 피에 물든 나날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이라면──이 또한 하나의 보상이 아닐까?

 "스나이더!"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는 스나이더의 옆에서, 스키더가 당황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건──스카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어째서 리베리스탄의 투사가 스카야냐고?!"

 "진정하세요, 스키더"

 "뭐──"

 스나이더가 경칭을 하지 않자, 당황한 스키더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스카야 님이 돌아가셨다는 정보는, 세오드라이트 각하의 지시에 따른 기만 정보입니다. 실제 생사는 불명인 채였으니까요. 스카야 님은 아마도 저 기체──이그나이트 안에서 생존해, 리베리스탄으로 넘어간 거겠죠"

 "바보같은── 이, 이런 무투는 인정할 수 없어. 난 각사의 대행으로서, 이번 무투의 동결을"

 "진정하세요, 라고 말했죠"

 "──읏!"

 물밀듯 밀려오는 박력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스키더가, 또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스카야가 바란 일이겠죠"

 적이 되어 나타난 인간에게 경칭따위는 불필요하다. 스나이더는 스카야 역시 경칭을 붙이지 않고, 대범하게 말을 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연구해온 오그멘티드 바디의 힘을 시험할 수 있는 때입니다. 스스로 연마한 이그나이트로"

 "이──이길 수 있겠지, 우리는. 그 랏셀이라는 남자는!"

 헐떡이듯 내뱉는 스키더의 말을, 스나이더가 냉소지으며 잘라냈다.

 "모르죠, 그거야"

 "뭐라고?!"

 "결과가 어떻든, 이번 무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를 겁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꼴을──보지 않겠나, 스키더"

 경외에 가까운 표정으로 침묵하는 스키더를 무시하고, 스나이더가 자문한다.

 그 뒤, 세상을 하나부터 다시 만드는 건 누구지?

◆◆◆

 단번에 뽑아든 고경도 검을 치켜들며, 오그멘티드 바디가 거리를 좁힌다.

 한계까지 끌어올린 속도로 측면을 가로치는 검끝이, 반사적으로 물러선 이그나이트의 가슴팍에 스친다.

 "──읏!"

 스쳤을 뿐이다. 반드시 적중했어야 할 공격이 빗나간 랏셀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올라온다.

 "리브! 아직 느려, 집중해!"

 취색 빛을 전신에서 내뿜는 리브가 살짝 돌아본다.

 <그녀와 싸우는 의미는 없어, 너한테도>

 "저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긴장을 풀면 그냥 지는 것만으로는 안 끝나!"

 <네가 해야할 일은 이런 일이──>

 "집중하라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돌진해오는 이그나이트는 이미 검을 뽑은 상태이다.

 정면으로 겨눈 검을 어떻게 휘두를지 연산하는 방대한 시뮬레이션이 전천구 모니터에 폭포수처럼 브라우즈되어, 스카야에게 나타난다.

 <적 기체의 위협은 사전의 평가를 대폭으로 상회하고 있다>

 이그나이트가 날카롭게 말한 경고를 듣자, 등줄기에 서늘한 감각이 덮쳐온다.

 "놀랐어, 저렇게나 움직일 수 있다니!"

 <디플렉터 빔의 사용을 제안>

 그것은 이그나이트가 첫 기동을 하던 때 시험삼아 발사해본 소출력 레이저포다. 기체 각 부분에 내장되어, 본래는 무중력 공간에서의 관성 제어 및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목적으로 장비되어있다.

 "안 돼, 무투의 규칙에 어긋나. 투기장을 통째로 증발시켜버릴 셈이야?!"

 랏셀이 휘두르는 고경도 검으로는 이그나이트의 외장을 뚫을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닫고 격투전으로 들어간다면 호각으로 싸우게 될 가능성이 있다.

 바디의 잠재능력은 꿰차고 있다.

 하지만, 랏셀은 그 능력을 한참 뛰어넘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투의 규칙을 등에 업고, 기체 자체의 견고함과 힘으로 싸운다면, 결코 방심할 수 없다.

 <회의적 제안. 피아의 전투력 차이는 명백하다. 전투 행동 자체의 의의를 묻는다>

 그래, 아무런 전제도 없다면 이그나이트가 옳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는 그래선 안 된다. 지금 그를 죽여봤자, 그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이그나이트에게 대답 대신, 스카야는 닿지 않을 말을 내던졌다.

 "당신의 전투, 어느 정도인지 보여줘 랏셀!"

 동시에, 모니터 안에서 바디가 다시금 땅을 내달렸다.

 스카야는 무서운 속도로 접근해오는 '적'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기합을 넣었다.

 "오오오오오오옷!"

 고경도 검이 맞부딪치며, 서로의 도신을 긁어내는 불꽃을 튀긴다.

 사열식으로부터 별도의 시간을 두지 않고 바로 시작된 '바람의 전투'는, 긴 세월에 걸친 '무투의 의' 역사 속에서도 미증유의 전개를 보이고 있었다.

 돌진.

 도약.

 반전.

 베기.

 찌르기.

 백색과 심홍색의 이그나이트가 비스듬히 내려치는 검을 흘러보내듯이 막아내고,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의 바디가 관절 가동 범위의 최대치만큼 치켜올린 다리를 상대의 가슴팍에 처박는다. 공중제비를 돌며 밸런스를 무너트린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전 중량을 밀어붙이는 몸통박치기가 반복된다.

 빠르게 공수를 전환하는 검극, 누구도 본 적 없는 속도의 공격과 회피가 무수히 반복되는 사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있던 제 2투기장은 어느샌가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조용한 정적에 빠져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때리고, 걷어차고, 베어넘기는 경질적인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무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긴 시간동안 계속되고, 시작할 때에는 높이 떠있던 태양은 수평선으로 다가가, 광대한 투기장을 귤색으로 물들여간다.

 "으윽, 하앗, 하앗, 하아……!"

 리브가 발하는 취색 인광으로 가득찬 조종석에, 랏셀은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을 듣고 있다.

 이그나이트가 펼쳐내는, 내장을 게워내는듯한 허리 가격의 충격을 어떻게든 견뎌내고 공격 범위의 밖으로 벗어나, 엉망이 되버린 고경도 검을 고쳐든다.


 좌석과 콘솔의 사이에 몸을 웅크린 리브가 손가락 끝으로 관자놀이에 손을 뻗는다.

 <랏셀>

 "괜찮아, 리브. 아직 할 수 있어!"

 <어째서──어째서 싸우는 거야? 이 이상은……>

 "나는 알 수 있어. 스카야는 바라고 있다고. 내가 이렇게 하기를"

 <어?>

 사열식.

 리베리스탄 측의 문에서 나타난 이그나이트, 그 조종석에서 모습을 드러낸 스카야.

 그녀의 죽음이야말로, 랏셀이 이곳에 있게 된 인과의 시작이다.

 바로 그녀가 살아있었으니까.

 살아서 다시 만났으니까.

 지금이야말로, 둘이서──.

 하지만.

 어디까지나 냉철한 스카야의 두 눈에 일렁이는 것은, 무감정도, 투쟁심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결같이 추구하는, 고집스런 결의의 빛이었다.

 "스카야는 알고 싶어해. 내가 어디까지 맹세를 지킬 수 있는지를.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어디까지 운명에 도전할 수 있는지를"

 <랏셀……>

 기울어가는 태양이 수평선에 닿아, 저녁노을이 육지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기체를 삐걱거리며, 랏셀이 서로의 거리를 잰다. 마주보는 방향을 조금씩 바꾸며, 이그나이트의 거동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킨다.

 "그러니까!"

 사지를 잡아당기는 듯한 조종석에서, 기체의 구석구석까지 감각이 전해진다.

 단련된 조종사로서의 본능이 필중의 순간을 그려낸다.

 양 손 양 다리, 전신을 사용해 바디의 거동을 수행한다.

 "나는, 스카야를 쓰러트릴 거야!"

 대지를 가르는, 오그멘티드 바디가 돌진을 시작한다.

 가장 취약해보이는 이그나이트의 가느다란 요추를 향해, 모든 위력을 담아 신속하게 나아간다.

 스카야의 반응은 아주 조금, 늦었다.

 "랏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삼킨다.

 그 뒤, 귤색에서 어둠으로 잠겨가는 제 2투기장에 파긴하는 파쇄음이 울려퍼졌다.

 백색과 심홍색의 기체 중앙을 고경도 검끝이 관통했다.

 하지만.

 모두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던 검은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아주 약간 자세를 비틀어, 칼날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빗긴 것이다.

 파쇄음은, 격돌을 정면으로 버텨낸 이그나이트가 바디의 오른팔을 끼워 넣어 박힌 검을 부러뜨린 단말마였다.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조종석의 조명이 다운된다. 리브가 발하던 취색 빛도 사라져, 랏셀은 어둠 속에 갇혔다.

 장시간에 걸친 격투전은, 바디의 내부에도 대미지를 주고 있었다. 제어계통이 크래시를 일으켜, 긴급사태와 재기동 시퀀스를 나타내는 붉은 문자가 모니터를 맹렬한 기세로 스크롤한다.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서 움직이지 않지?!"

 컨트롤 칼럼을 흔들어봐도 반응이 없다.

 "나는, 나는 아직 할 수 있어!"

 백열하는 머리가 생각하는대로 절규한다.

 "나는……읏!"

 그 때, 관자놀이에 닿은 감촉이 말했다.

 <랏셀…… 미안해>

 동시에, 투기장 전체를 압도하는 사이렌이 울려퍼지고, 전투의 결착을 알렸다.

 스스로 내뿜는 열에 타들어가는 듯했던 몸이 급속히 식어간다.

 맥이 뛰는 고동과 함께, 땀이 한꺼번에 흘러나온다.

 이그나이트에 꽉 껴안겨있던 바디가 서서히 힘을 잃고, 콘크리트에 양 무릎을 꿇는다.

 궤뚫는듯한 충격에, 랏셀은 겨우 현실을 인식했다.

 "졌……나"

 리브가 감색 눈동자를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붉은 빛으로 감싸지며, 랏셀도 양 눈을 감았다.

 "증명하고 싶었어──나의, 바람을"

 랏셀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잘 봤어. 당신의 마음"

 기체에서 조종사를 끌어당기는 아우구스토니아 군인들을 밀어내며, 같은 나이대로 보이는 소년과 소녀가 랏셀에게 달라붙어 울고 있다. 해상 집락에서 함께 왔다는 그의 동료겠지. 그 리브는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고 있을 것이다.

 스카야는 열린 해치로부터 방금 자신이 쓰러트린 상대의 모습을 내려보고 있다.

 오른팔을 끝까지 꺾여 망신창이가 되버린 오그멘티드 바디가,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않는다. 일찍이 전신전령을 바쳐 연구하던 기체와 싸우게 되었다는 웃긴 상황이, 새삼스레 가슴에 박힌다.

 저녁노을도 사라지고, 주변은 밤의 어둠에 닫혀가고 있었다.

 <스카야. 이겼다>

 스카야에게만 들리듯이, 조종석에서 목소리나 말했다.

 "응. 우리들은 이겼어. 잘 했어"

 <나는. 연산. 연산 종료>

 위태위태한 말투. 스카야가 눈썹을 치켜세운다.

 "무슨 일이야, 이그나이트"

 <전투 중, 나는 위협 평가를 계속했다. 계속해서 변경했다>

 "그렇지. 그는──틀림없이,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 중 가장 강했어"

 <당신의 인식에 오류가 나타났다>

 "무슨 소리야?"

 <평가 대상, 은. 나. 나다>

 "뭐?"

 <나의 잠재 성능은, 이윽고. 넘어선다. 당신의 제어를 넘어선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높은 영역이었을 터인 이그나이트의 지능이, 단어조차 불안정해진 상태다.

 "이그나이트, 대체 무슨 일이야"

 <당신의. 인류의 제어. 넘어선다. 나는, 재액>

 재액──커다란 재난/

 "저기, 무슨 의미야. 이그나이트!"

 무심코 큰 소리를 내는 스카야에게, 이그나이트는 그 이상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통신 음성이 들어온다.

 <투사 폴라. 대승리였다>

 파울의 목소리다.

 <바람의 전투는 우리 리베리스탄의 승리다. 양 군은, 지금부터 제 3투기장으로 향한다. 당장 준비하도록>

 <종료>

 최저한의 대답만 하고, 스카야는 다시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그나이트……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무언가가, 무언가의 변조가 이그나이트에게 일어나고 있다.

 그 실태도 모르는 채 길을 떠나야만 하는가.

 스카야는 어두운 산맥의 정상을 돌아본다.

 그 봉우리로부터──모든것을 내려다보기 위해서.

 지금도 밤하늘에 녹아내릴듯한 산등성이가, 마치 말못할 불안처럼 느껴졌다.

◆◆◆

 바위와 자갈에 뒤덮인 경사면을 내려가며, 똑같은 높이의 경사를 기어오르듯이 나아가, 레도는 겨우 아발론에 도착했다. 해는 떨어지고, 주변은 대부분이 새카맣게 변했다. 다시금 불기 시작한 바람에, 머리카락과 외투가 심하게 펄럭인다.

 생김새는 긴지름이 15km, 짧은지름이 4km정도 되는 타원형에 가까운 구조물이다.

 그것이 산맥 봉우리에 올라타있는 것처럼, 전체 모습의 반 정도를 조계 반도측에 두고 있다.

 30m정도 되는 곳까지 다가와, 손전등으로 사방을 비춰본다.

 가까이서 올려다보는 은빛의 벽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산이며 절벽처럼 보였다.

 현실감이 일절 없어보인다.

 "정말로──아발론인가"

 그 때, 등에 메고 있던 짐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통신기다. 배낭을 내려놓고 마이크를 잡는다.

 "여기는 레도"

 <다행이다, 연결됐어!>

 "에이미"

 <지금 어디야?!>

 "산맥의 정상에 있어"

 <굉장해…… 정말로 올라갔구나>

 그 목소리는 바람소리에 의해 중간중간 잘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해서 물어본다.

 "너는 어딘데, 가르간티아에 있는 거 아니야?"

 <전파가 닿지 않아서, 서프 카이트로 날고 있어! 지금, 조계의 중턱 쯤!>

 "위험하잖아!"

 <중요한 일이야. 기다려봐, 지금 베벨과 통신을 연결할 테니까!>

 "베벨과?"

 베벨이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일까?

 조계의 끝부분에서 직접 전파가 닿지 않는 거리를 에이미가 공중에서 중계하는 형태로, 한 순간 생겨난 노이즈 저편에서 절박한 베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레도 씨!>

 "베벨, 왜 그래"

 <잘 들어요. 계속 관측하던 '커다란 별'이, 곧있으면 기둥과 겹치게 돼>

 "읏! 드디어──"

 기록에 의하면, 둘이 일직선상으로 겹쳐질 때, 육지에는 무언가의 천변지이가 일어날 거라고 했다. 그 때가 눈앞에 닥쳐온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섯 현인들과 함께, 가르간티아 호의 기록을 조사해봤어>

 "그래, 어땠어"

 <그 중에, '커다란 별'에 대해서 쓰여진 부분이 있었어. 커다란 별은 '이계의 문'이래>

 "이계의 문──"

 가르간티아 호에 잠들어있다든 사실은, 에볼버 세력에 의한 기록이다. 동맹의 시초인 콘티넨탈 유니언과, 에볼버는 적대하는 사이다. 이윽고 히디어즈가 되버린 그들이 '이계의 문'이라고 기록한 물건.

 무수한 가능성이 펼쳐진다.

 이계.

 이세계.

 문.

 그를 둘러싸고, 어딘가에──.

 이윽고 사고는 하나로 수렴한다.

 멸망을 앞둔 구 문명에도 존재했고, 그들이 최고 기밀로 취급되었다면, 그것은.



 "웜홀…… 스태빌라이저……"



 이계의 문──차원을 뛰어넘는, 시공간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궁극의 기술.

 빙하기에 들어가는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 콘티넨탈 유니언이 태양계 궤도상에 건조한 초장거리 이송장치가 바로 웜홀 스태빌라이저였다.

 그들이 우주의 저편으로 떠나고, 에볼버도 그를 쫓았다.

 모두가 6500광년의 저편에서 계속 싸우는 한편, 역할을 끝마친 스태빌라이저는 남겨지고, 영원의 공전궤도를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기둥과 겹치면서 무언가가 벌어졌다는 말인가?

 안개의 바다에 남겨진 해저 유적에서 발견한 기록 영상에 따르면, 스태빌라이저는 콘티넨탈 유니언과 에볼버 양측을 머나먼 저편으로 이송시킨 뒤, 자폭으로 기능을 손실했다. 지금 지구 근처로 다가오고있는 것은, 스태빌라이저의 '잔해'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어지기 시작한 사고가 출구를 잃고 말았다.

 그 때, 통신기로부터 귀를 찢는 바람소리와 함께 비명이 흘러나온다.

 <꺄악?!>

 <누나?!>

 "에이미, 무슨 일이야!"

 대답이 없다. 심장을 움켜잡힌 것같은 감각.

 "에이미! 대답해줘, 에이미!"

 설마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스피커에서 '……위험했네'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베벨과 레도는, 조계 반도의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누나!>

 "에이미, 무사하지?!"

 <응, 괜찮아. 잠깐 돌풍을 만났을 뿐이야>

 "그런가. 베벨, 정보는 이게 다지?"

 <응>

 "좋아. 에이미, 고마워. 가르간티아로 돌아가"

 <싫어! 레도야말로 이제 돌아와. 카이트가 버티는 한, 하늘에서 기다릴 테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부탁이야, 그렇게 해줘. 나는 괜찮으니까!>

 입술을 깨물며 순간 생각하고, 레도가 말한다.

 "알겠어. 무리는 하지 마"

 <내가 할 말이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줘, 레도!>

 그 말만을 남기고, 통신이 끊겼다.

 위험에 빠지면서까지, 에이미는 정보를 전해줬다. 그 마음에 보답해야만 한다.

 레도는 다시금, 눈앞에 펼쳐진 수수께끼 덩어리를 바라본다.

 그 순간이었다.

 은빛의 벽면 중 일부가, 희미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뭐지?!"

 병사 시절에 몸에 익힌 반사 동작으로 허리춤의 홀스터에서 레이건을 뽑는다.

 올려다 봐야하는 위치에, 가로 20m, 세로는 그 절반정도의 빛나는 직사각형 모양이 나타났다. 거리는 약 30m 정도. 벽은 미끄러운데다 발디딜 곳도 없어서, 곧바로 도달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경계심을 최대한 높이며 눈을 의심해본다. 직사각형은 주변을 비출 만큼 빛을 늘려간 뒤, 약간 광도를 떨어트렸다. 칸막이 벽이 투과되서 생겨난 거대한 윈도우 스크린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 중앙에 무언가가 보인다.

 사람.

 빛의 중앙에, 망양하는 사람의 그림자가 있다.

 "누구냐!"

 총구를 겨두며 부른 목소리는 은빛 벽에 튕겨져나와, 계곡으로 반향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림자가 서서히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장년, 아니 노경에 다가서고 있는 남자. 양 손으로 가볍게 뒷짐을 지고, 등줄기를 꼿꼿하게 세운 모습이 오만함을 띄는 듯이 보인다. 짙은 백발을 크게 뒤로 넘기고, 똑같이 새하얀 턱수염을 기른 입가에 불손한 웃음을 띄우고 있다.

 "대답해. 넌 누구냐!"

 윤곽이 뚜렷한 눈구멍에서 의지적인 시선이 뻗어온다.

 <네 동지다. 레도 군>

 "──읏!"

 남자의 입이 움직이고 한 박자 느리게, 주변을 압도하는 볼륨 두터운 목소리가 흘러퍼진다. 레도는 무심코 귀를 막아버릴 뻔했다. 어디서 터져나오는지도 모를 커다란 음성은, 대범하면서도 상대를 움츠리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소리가 날 때마다 계곡에 울려퍼져, 잔향을 남긴다.

 <나는 세오드라이트. 아우구스토니아 중앙 정부의 산업 전략성을 맡고있지……만, 네 앞에서는 그런 직함은 무의미하겠군. 이렇게 마주하게 되서, 진실을 전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이라 생각하네>

 정중해보이는 말을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불손한 말투이다.

 "진실──"

 <그렇다. 너는 진실을 알기 위해 여기까지 왔겠지?>

 그렇다.

 세상 그 자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 직감이 이끄는대로 레도는 상륙을 하고, 머나먼 봉우리를 목표로 등산을 해왔다. 하지만, 정상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모든 예상을 뒤엎어버리고도 남을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이 남자가 진실이라 부르는 것은, 아직 레도에게 있어서 수수께끼에 지나지 않는다.

 혼란하는 뇌리로부터 처음으로 넘쳐버린 의문을 말로 바꾸어, 레도는 레이건의 총구로 남자가 있는 장소를 가르킨다.

 "넌 이게 뭔지 알고 있나?!"

 <물론이지>

 세오드라이트는 코웃음치며, 또 애처롭다는 표정으로 레도의 당황해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다.

 <이곳은 '무투의 의' 최후의 땅, 제 3투기장. 인류가 그 과학과 지혜의 정수를 모아 목표로 한 북쪽 끝의 땅. 너의 말로는──아발론, 이라고 부르는 장소지>

 피가 들끓을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레도는 경직되버렸다.

 아발론.

 이 지구에 살아있는 인간이, 그런 말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결단코.

 콜로니 우주선 아발론은 지금도 6500광년 너머에 있으며, 동맹 시민들의 성채같은 모습을 허공에 띄우고 있지 않은가.

 사고하는 이성을 날려버린 틈을 타, 세오드라이트의 말이 날아와 박힌다.

 <레도. 우주에서 찾아온 손님. 이 아발론의 존재가 너에게 있어서 경이롭듯이,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네 출신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지. 넌 틀림없이, 나와 동지야. 왜냐하면>



 <나는, 인류 은하 동맹의 정통 후예니까 말이야>



 "은하, 동맹──……"

 남자의 말이 의식 위로 미끄러져, 녹아내린다.

 "후예…… 라고?"

 드디어 의미가 형태로 변한다──그 순간, 이해치가 한계를 뛰어넘어 과부하에 걸리고, 발밑이 어질어질해지듯 요동치며 평행감각을 잃는다.

 동맹의 후예.

 후예란, 무엇이지.

 인류 은하 동맹은 지금도, 히디어즈와.

 <동맹 전사인 네게 경의를 표하며, 날 정점으로 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는 진실을 전해주지>

 동맹의 후손이라 하는, 아발론 속에서 나타난 남자가 입을 연다.

 듣고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레도의 걱정을 뒤로하고, 비밀의 문을 여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찍이, 이 지구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얼음별이었지. 사람들은 파멸을 피할 바아법을 찾아 전쟁하고, 어떤 자들은 별을 건널 배에 타고, 또 다른 자들은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진공에 적응했어>

 콘티넨탈 유니언.

 에볼버.

 <하지만,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았던 자들도 있었지. 지금은 육지가 되어있는 이 땅에서, 지구에 남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풍혈의 끝자락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어. 깊어지는 빙하에 그들의 목숨이 끊겨갈 무렵, 천공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다──이 희망의 배가>

 세오드라이트는 양손을 크게 펼치며 아발론을 가르켰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의 일이었지──. 새로운 별에 내린 동맹 시민들은, 지혜의 대부분을 잃고서도 기적처럼 과학력을 감추고 있었어. 그 신의 손으로 지상에 남겨져있던 궤도 엘레베이터를 개조하고, 시간의 기둥으로 만들어 하늘에 띄웠지. 돌아온 은총은, 빙하에 갇혀있던 사람들에게 잠깐의 안식을 주었어>

 다섯 현인들의 가설에서 얻은 착상 그대로였다. 누군가가 그 위업을 달성했는지만 빼놓고, 기둥에 관한 레도의 가설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허나, 기둥이 가져다준 은혜는 이윽고 전쟁을 만들어냈지. 무수한 세력이 생겨나고 쇠퇴했으며, 병탄과 멸망을 반복했어. 어리석은 일이지, 지구의 잔존 인류는. 동맹인은 앞날을 걱정해, 그들과 교류하며 육지를 통합하고, 커다란 두개의 나라로 나누었다>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

 <그래. 리베리스탄은 동맹의 지혜를, 아우구스토니아는 동맹의 혈맥을 지금까지 잇고 있지>

 "무엇을 위해서!"

 레도가 격발한다.

 "네 말대로라면, 지구에 살고있던 생명체는 고래오징어야. 히디어즈의 위협이 되지 않지. 같은 모습을 하고있는 사람을 둘로 나누고, 대립시켜서 무슨 의미가 있지!"

 세오드라이트는 흥미 깊은 시선으로 레도를 바라본다.

 <과연. 해이한 선단 사회에서 몸에 익힌 가치관이 그것인가>

 "뭐라고!"

 <동맹 전사인 너라면 알고있을 터. 실질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순순히 받들며 누리는 사회를 상상해보게. 사람은 진취와 개척의 의지를 상실하고, 빛나는 지혜도 태만으로 인해 녹슬겠지. 문명은 퇴폐할 것이고, 원만한 죽음을 맞이할 뿐이야.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어. 인류가 만물의 영장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긴장과 대립 속에 둬야만 해. 동요, 황폐에 대한 공포, 상호 불신만이 사람을 단련시킨다. 멸망을 회피하면서 번영의 길을 모색한다, 유일지고의 방법──그것이 바로 '무투의 의'다>

 그야말로 인류 은하 동맹의 이념을 정리한 연설이었다.

 현기증을 느끼며, 시야가 어두워진다.

 남자의 말을 믿는다면,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가 대립하는 500년의 역사는 동맹에 의한 날조라는 말이 된다. 그 스트라이커처럼, 직접적인 공포에 의한 통제와는 다르다. 두 개의 거대한 세력을 등 뒤에서 조종하며, 적의를 심어두고, 상대를 상회하려는 의지에 의해 문명을 발전시켜──지배를 계속 유지한다.

 하지만.

 레도의 직감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었을 터. 한정적인 육지를 둘로 나눠서까지, 싸울 이유가 어디에 있지!"

 세오드라이트가 냉소를 띄운다.

 <레도 군, 네 말대로야. 한정적인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그게 이유다>

 "뭐라고……"

 <시간은 흐르고, 거대한 은총이 내려오려 하고 있어. 오랜 세월동안 엎드려 살던 시대는 끝나고,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금 별들의 바다로 나아간다>

 별들의 바다. 설마.

 "네놈──설마 이 아발론을……!"

 만족한듯 입꼬리를 올리고, 세오드라이트가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선언한다.

 <지금이야말로, 숙원을 이룰 때다. 아발론은 우리들과 함께 이 땅을 떠나, 만물의 정점에 선다. 심해를 좀먹는 고래오징어──사람의 모습을 버린,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괴수놈들을 일소하고, 우주의 패권을 건 여행길을 떠난다. 지성도 정조도 없이, 본능이 이끄는대로 번식만 해대는 하등생물 히디어즈를 뿌리뽑고, 온 우주에서 다시금 번영의 세상을 손에 넣는다. 동맹 전사 레도,, 인류의 동포여. 우리 곁으로 참전하라!>

 머리 심지가 분노로 백열하고, 들끓는듯한 노성이 목구멍을 태운다.

 "웃기지 마! 그런 바보같은 짓을. 지구도, 우주도, 인간만의 물건이 아니야! 몇백년이나 육지 사람들을 능멸하고──뭐가 숙원이란 말이냐!"

 세오드라이트가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유감이군. 네가 동맹 전사의 혼을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우리들과 함께 패도를 걸어갔을 텐데. 계속 거부하겠다니, 이제 늦었다. 마지막 준비가 시작된 참이니>

 "뭐라고!"

 <아우구스토니아는 방금, 리베리스탄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읏!"

***

 첫 포성은 바다위에서 울려퍼졌다.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 양 군은, 무투의 의에 관련된 시위 행위를 위해, 조계 반도로부터 정남향으로 뻗은 폭 약 15km의 완충 수역을 끼고 전투 함대를 펼치고 있었다. 전함, 순양함, 구축함 등 20척을 넘는 아우구스토니아 함대가, 군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함포를 내밀었고, 포구에서 끊이지 않고 불을 뿜었다. 깊은 밤의 어두운 시야에 익숙해져있던 수군들의 눈을 아찔하게 하며, 선명한 불꽃이 번쩍인다. 포는 거의 같은 수의 리베리스탄 함대 주변에 차례차례 착탄해 물기둥이 치솟는다. 본국과 연락을 취한 함대 사령관은 개전을 확인하고, 곧바로 반격 명령을 내렸다. 합계 40척에 달하는 양측 함대 사이에 막대한 파괴력과 질량이 교착하고, 복부에 울리는 포성과 충격이 굉음치며 바다 위를 흔들었다.

 갑자기 시작된 교전 상황은, 곧바로 조계에도 전해졌다.

 하층민의 구역에서 경계를 하고있던 양 군의 보병부대에게도 공격 명령이 떨어졌으며, 실탄 사용이 허가되었다. '땅의 전투'를 끝마치고, 상점가나 야시장이 줄지어있던 제 1투기장 주변의 거리는 기관총의 잇따른 발포음에 휩싸이며, 시가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일반 조계민들은 단순한 장해물로밖에 취급되지 않았기에, 여기저기서 불뿜는 화기에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조계 반도를 거슬러 올라가듯 전쟁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반도의 중앙부, 제 2투기장 주변도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다른 점은 군용 융보로의 전개 유무이다. 무투 기간 중, 조계 반도에는 양국의 육지전 병력 대부분이 투입되어있다. 무투의 진행에 맞춰 반도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바람의 전투'를 끝마친 직후의 제 2투기장에 다수의 군용 융보로가 존재하고있던 것이었다. 융보로용 기관총의 위력은 보병의 화기를 크게 상회하며, 많은 중산층이 살고있는 거리를 유린했다. 일반 주택의 지붕이나 건물은 포화를 겨루는 전투 기계의 엄폐물이 되었고, 무수한 탄환에 의해 순식간에 폐기물로 변해갔다. 파괴와 살육이 온갖 장소에서 반복되는 '전장'이 나타났다.

 가장 격렬한 전투에 돌입한 곳은 제 3투기장으로 향하는 양 군의 정예부대였다.

 개전 보고가 들어온 때, 무투의 의에 출전하는 투사와 출전 기체를 경호하면서 경사면을 등반하던 양 군은 제 2투기장과 제 3투기장의 거의 중간 위치를 가고 있었다. 애초에 일반 조계민은 '하늘의 전투'를 관전하지 못하며, 해당 구역에 있는 것이라곤 정규부대 뿐이다. 각각 50대가 넘는 군용 융보로와 함께한 행진은, 돌연 적을 눈앞에 둔 전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리베리스탄 군 정예부대를 이끄는 파울이 자신의 기체를 가동시켰다.

 4년 전 무투에서 전승을 거둔, 반쯤은 전설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글래디에이터이다. 짙은 청색에 백색 라인을 그려넣은 갑주와도 같은 실루엣. 머리와 어깨, 거기에 허벅지에서 튀어나온 두텁고 예리한 돌각이 힘과 위압을 나타내며, 대장기다운 기운을 뽐내는 기체이다.

 파울이 무선을 통해, 부하 기동부대에게 전달했다.

 <전 기체, 기관총을 장비하고 임전태세를 갖춰라. 우리 국가는 아우구스토니아와 단교하고, 교전상태에 돌입했다. 이미 전군에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적의 세력을 배제하고, 조계 전역을 점거, 제압하라! 리베리스탄에 승리와 약진을!>

 오오, 하는 환성이 스피커를 뚫어버릴듯 울려퍼진 직후, 어느쪽인지 모를 무수한 총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아우구스토니아 정예부대도 전투태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광원체가 거의 없는 바위와 자갈뿐인 경사면에 포화가 번쩍이며, 순간적으로 '적'의 모습이 드러난다. 거구의 전투 기계가 포구를 겨누거나, 또는 궤뚫으며, 주위는 점점 아수라장과도 같은 혼전이 펼쳐졌다.

 이그나이트의 기내에 있는 스카야에게, 파울의 무선이 들어온다.

 <투사 폴라, 이그나이트로 참전하라. 나도 글래디에이터로 출전한다>

 "대령, 하지만──"

 파울이 지금까지 없던 엄숙한 말투로 말한다.

 <이건 명령이다. 이 일전을 다음 무투인 '하늘의 전투'로 생각해라. 네놈이 할 일을 해야할 시간이다. 망설이지 마라. 정상을 향해──스카야>

 뚝 하며 무선이 끊긴다.

 "대령!"

 어떡해야 하지.

 리베리스탄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르면 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본능같은 무언가가 의문을 외치고 있다. 파울의 말은, 단순한 참전 명령과는 다르다. 이그나이트를 다루는 스카야만에게 향한 무언가가 포함되어있다──.

 "이그나이트, 제 3투기장으로 향하자"

 <알겠다>

 몇걸음 나아가자, 스카야는 이변을 깨달았다.

 움직임이 둔하다. 바람의 전투에서 보인 민첩함은 사라지고, 마치 막 눈을 떴을 때와 같은 답답한 움직임이다.

 "어떻게 된 거야, 이그나이트!"

 <나. 는──재앙. 인류. 너무나도 큰 힘>

 말도 부자연스럽게 되버렸다. 랏셀과 전투 직후부터 일어난 변조가 진행되고 있다.

 "무슨 뜻이야, 제대로 가려츠줘, 당신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스카, 야──이제, 바로──>

 그 때, 등 뒤에서 쿵 하는 충격이 전해졌다. 앞으로 구르듯 자빠지며, 덜커덕거리며 현기증이 일 정도로 조종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으앗, 큭! ……설마!"

 그럴 리 없다. 배후에서 아우구스토니아 기체의 몸통박치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런 공격에 이그나이트가 쓰러질 리 없다.

 모니터에 불길이 치솟는다. 아우구스토니아 기체의 기관총 사격. 기체에 손상을 입을 리는 없지만, 컨트롤 칼럼을 아무리 조작해도 반응이 둔하다.

 "이그나이트, 일어서!"

 <알겠, 다──>

 불안불안한 움직임으로 양 팔로 땅을 짚으며, 이그나이트가 몸을 일으킨다.

 전천구 모니터에, 급경사면을 올라오는 파울의 글래디에이터가 멀찍이 보인다. 어느 기체보다 먼저, 마치 양 군의 진두에 서서 이끄는 듯한 모습에, 스카야의 마음속은 더욱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

 글래디에이터 기내에서, 파울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 일전이야말로 이번 무투의 핵심 전투다. 그 말에 거짓은 없다. 인류 은하 동맹 사람들이 육지에 만들어둔, 500년의 이치.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한 결과, 그 진실에 도달했다. 새로운 세상에 참가할 자격을 얻은 것이다.

 지금은 세오드라이트를 필두로, 동맹의 숙원을 전파하려는 수괴들. 그들이 지닌 야망의 결말이 어찌될지 지켜볼 수 있다. 스스로는 숙명에 순응하면서, 파울은 뒤를 따르는 전투 기계 무리를 향해 포효를 지른다.

 "자, 나를 쓰러트려봐라! 정점을 노려라!"

 강한 자만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

 밤의 어둠에 잠긴 조계 반도 여기저기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함포전의 포성이 멀리서 울려퍼지는 천둥소리처럼 울려퍼진다.

 불타오르는 벌판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확대된 전화에, 레도는 그저 멍할 뿐이었다.

 "전쟁이……"

 아연실색하는 레도를 윈도우 스크린에서 여유롭게 내려다보며, 세오드라이트가 말한다.

 <500년에 걸쳐 인내하며, 양국은 기술과 사람을 발전시켜왔다. 두드러진 재능, 갈고 닦인 능력을 지닌 자만이 무투에서 이기고, 진실과 마주할 수 있지. 보도록 해라>

 세오드라이트의 등 뒤에, 정렬된 수십명의 남녀가 드러낸다. 하나하나의 얼굴을 다 알아볼 순 없지만, 꼿꼿하게 서있는 모습에서 고도로 통제되는 낌새가 보인다.

 <지금까지의 무투에서의 승자, 자랑스러운 동포들이지. 그들이야말로 가장 우수한 인류, 별의 바다에 노를 젓는 것이 허용된 선택된 백성들이지. 이 전쟁은,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별'이다>

 눈초리에 분노를 띄우며 레도가 되묻는다.

 "선별이라고?"

 <양 군 모두, 조계 전역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받았지. 즉, 이 전쟁통에서 살아남는 자가, 아발론의 우수한 병사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그런 것 때문에, 조계를 전쟁터로 만들었나…… 네놈!"

 인간의 선별. 아발론의 부활.

 고래오징어를 멸망시키고, 우주의 패권을 손에 넣는다고?

 눈꼽만큼도, 받아들일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춰, 세오드라이트!"

 레도는 자신을 흘겨보는 남자에게 레이건을 겨누고, 위협하듯이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청백색 광선은 스크린 위에서 덧없이 사라져버릴 뿐이었다.

 <말했잖나. 이미 늦었다고>

 그 때, 통신기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레도, 들려!>

 "에이미!"

 잠깐 노이즈가 섞이더니, 베벨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레도 씨, '커다란 별'이──기둥과 겹쳤어!>

 "뭐, 라고……!"

 레도가 절규함과 동시에, 서쪽 하늘에서 무시무시한 빛이 번쩍였다.

 수만개는 되보이는 뇌광이 동시에 쏟아져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육지에 육박한 기둥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방대한 전자 에너지를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가 흔들리며, 해일처럼 밀려와 기분나쁜 중저음을 울린다. 동시에 대기는 전기 해리된 플라즈마가 되며, 조계의 연안에서 시작해 반도 전역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었다.

 세오드라이트가 흡족하듯이 웃으며 말한다.

 <이거야말로 위대한 은총! 기둥이 수전 시설에 도달했을 때, 아발론은 대지를 뜬다. 우주에서 찾아온 손님이여, 인류의 비약을 괄목하라. 인류 은하 동맹에 영광 있으리!>

 세오드라이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윈도우 스크린이 은빛 칸막이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레도는 입술을 깨물며,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아발론의, 인류 은하 동맹의 부활을 막아야만 한다. 하지만, 인류의 지식을 까마득하게 뛰어넘는 기둥의 에너지에 대항하려면, 대체 어떡해야──.

 "인류의 지식을 뛰어넘은──?"

 스스로의 생각에 촉발하며, 레도는 깨닫는다.

 "이그나이트……!"

 아발론이 지구에 있었다면, 머신 캘리버 역시 존재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것 역시 인류 은하 동맹의 산물. 같은 아우구스토니아의 땅에서 발굴되었다고 해도, 오그멘티드 바디와는 경위에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게 분명하다.

 그 힘으로.

 레도가 튕겨나가듯이 뛰쳐나간다.

 강하게 불기 시작한 바닷바람에 외투 소매를 나부끼며, 기둥의 빛으로 밝혀진 경사면을 내달리며, 통신기로 에이미를 부른다.

 "에이미, 들려! 에이미!"

 전자장의 영향인지, 아까보다 노이즈가 심하다.

 <……도. 레도! 들려!>

 연결됐다. 어떻게든 대화가 가능하다.

 "에이미, 지금 어느쪽을 날고 있지"

 <아까랑 같은 곳이야, 조계의 정중앙 부근. 저기, 기둥이 엄청 빛나고 있어. 저건 뭐야?>

 "설명은 나중에 할게. 지금 산맥을 내려가고 있어. 나를 서프 카이트로 끌어올려줘"

 <알았어! 하지만, 경사면이 너무 넓어서……>

 기둥의 빛이 있다곤 하지만, 광대한 경사면에서 사람 하나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겠지. 레도가 찾아보려고 하늘을 올려다봐도, 시야에 카이트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디있는지를 알려야 한다. 쓰러질 것같은 다리로 어떻게든 버텨서, 자갈로 뒤덮힌 경사면을 전력으로 내려가며 레도가 묘안을 생각해낸다.

 "──그렇지! 에이미, 지금 레이건을 쏴"

 <그렇구나, 빛을 찾으면 되겠네. 알았어!>

 레도는 한 번 발을 멈추고, 레이건을 쏘았다. 손잡이를 쥐고, 가늠쇠 끝에 기둥의 모습을 맞춘다. 지금은 닿지 않아도 상관 없다. 온몸에서 끌어모은 분노를 쏘아내듯이, 레도가 방아쇠를 당겼다.

 기둥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증발한 바닷물을 머금어 습기가 차있다. 수증기에 난반사된 레이건이, 청백색 빛이 되어 허공을 궤뚫는다.

 <……찾았다!>

 "좋아! 올 수 있겠어?"

 <걱정마, 바로 갈게!>

 "부탁해!"

 그렇게 시선을 하늘로 옮기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저거다!

 프로펠러를 돌리며, 서프 카이트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에서 나타났다. 에이미는 추위를 대비해 레도와 같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레도!"

 "에이미!"

 "타! 프레임을 붙잡아!"

 점점 접근해오는 카이트에 자세를 갖추고 준비한다. 스쳐지나갈 때, 열심히 뻗은 왼손이 카이트의 프레임을 잡았다. 몸을 매달자마자, 에이미가 숨을 들이쉬며 어깻죽지를 붙잡고 끌어올려준다.

 두 사람 분의 중량을 실은 카이트가 비틀거리며 살짝 흔들렸지만, 레도는 무사히 에이미의 뒤에 탈 수 잇었다.

 "고마워, 잘 와줬어!"

 "어떡할까, 가르간티아로 돌아갈까?"

 "아니. 조계 위를 날아줘. 이그나이트를 찾아야 해"

 "이그나이트…… 회의에서 말했던, 체임버랑 비슷하다는 그거?"

 "그래. 하얀색과 붉은색의 기체야, 전장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하고, 레도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전쟁을 멈추게 하려면 그 힘이 필요해. 나를 이그나이트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

 "……알았어!"

 에이미가 세차게 끄덕인 그 순간. 조계 반도의 복잡한 지형에 해풍이 회오리바람을 형성하고, 예상 외의 돌풍이 카이트를 덮친다.

 "꺄악?!"

 "으악!"

 순식간에 카이트는 밸런스를 잃었다. 까마득히 먼 아래 해수면에 깎아지듯이 우뚝 솟아있는 조계 반도를 벗어나며, 크게 선회함과 동시에 추락해간다.

 "그으으읏……!"

 가슴팍이 꽉 막혀올 정도의 가속도를 필사적으로 견뎌내며, 카이트가 중심을 잡기를 기다린다.

 "정신차려!"

 다시 바람을 잡으려는 에이미에게 말하며, 갸름한 허리에 걸친 팔에 힘을 싣는다.

 "미안해, 이 이상은 위험해. 역시 가르간티아로 돌아──"

 "괜찮아,, 레도"

 어딘가 평온해보이는 목소리다.

 레도는 숨을 멈췄다.

 에이미가 속삭인다. 불어닥치는 바람 속에서도, 그 말은 거침없이 레도의 귓가를 때린다.

 "좀 더 꽉 잡아줘. 바람은 내 편이니까. 널 반드시 보내줄게"

 늠름하고 맑은 눈빛으로 상공을 바라보며, 삐걱거리는 카이트로 강풍과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소녀가 외친다.

 "난 알고 있어. 역풍이 강할수록──높이 날 수 있어!"

 양 날개가 바람을 가른다.

 순간──카이트가 하늘 높이 치솟는다.

 카이트를 정밀히 조종하는 에이미의 체온을 느끼며, 레도는 생각한다.

 에이미는 하늘을 달리는 '날개'다.

 나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곳도.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둘이서라면──이 사람과라면.

 어느 때라도 곁에 있어주며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존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다.

 처음 만난 이후, 에이미는 실로 많은 말과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지금 이 가슴에 뜨겁게 차오르는 멈추지 않는 감정의 의미도 가르쳐줄 수 있을까? 너에게도 혹시 같은 감정이 깃들어있다면, 둘이서 그것을 나눠가질 수 있을까?

 "──저기, 저걸 봐!"

 내뻗는 에이미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린다.

 제 2투기장에서 아발론으로 향하는 경사면 중앙부에, 양국의 군용 융보로에 의한 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탄환이 교차하며, 온갖 장소에서 거인들이 서로 싸우는 전장.

 그곳에서 살짝 떨어진 바위틈에, 전복된 백색과 적색의 기체가 몸을 숨기고 있다.

 "저거다, 에이미! 이그나이트야!"

 "간다, 레도!"

 날개를 펼친 카이트가, 똑바로 이그나이트를 향해 낙하한다.

***

 "내 말이 들려? 이그나이트!"

 조종석은 어두컴컴한 어둠에 잠겨있다. 항상 막대한 정보를 표기해주던 전천구 모니터가, 지금은 약간의 문자열만을 띄울 뿐이다. 투사된 기체 밖 시야도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다.

 "부탁이야, 대답해줘. 당신이 없어지면, 나는──……"

 눈물섞인 절규에도 반응이 없다.

 전장 한복판에서 자연언어능력을 잃고, 급속히 조작감을 잃어가는 이그나이트를 질타하며, 스카야는 어찌저찌 이 전장까지 도달했다. 포화는 간신히 피하고 있지만, 언제 적 기체가 습격해올지 알 수 없다.

 기체 자체에 대미지는 거의 없지만, 이그나이트의 지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퇴보한 뒤, 침묵했다.

 "어째서야──"

 아무것도 모르겠다.

 차례차례 기능을 상실하며, 이그나이트는 재앙이라는 단어만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그 의미도 모르겠다.

 기둥이 미증유의 에너지를 쏘아대며, 서서히 높은 산맥의 저편으로 향해간다. 이게 파울이 말했던 새로운 세상의 전조인가. 그 진실을 알고 싶다는 바람은, 이 전장 한구석에서 사라지고 마는가.

 "이그나이트……"

 절망과도 같은 흐느낌이 눈물이 되어, 하얀 파일럿 슈트의 가슴부근에 뚝뚝 떨어진다.

 그 때, 모니터가 잠깐 반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읏!"

 눈 깜짝할 사이에 몇개의 윈도우가 펼쳐지며, 문자열이 폭포처럼 스크롤을 만들어낸다.

 "이그나이트, 돌아온 거야?!"

 대답은 없다. 대신 새로운 윈도우가 열리며, 상공 시야를 줌업한다. 그곳에 비친 것은, 기둥의 빛에 한쪽 면만 밝혀진 채로, 빠르게 이쪽을 향해오는 카이트였다. 저건, 선단 주민이 사용하던──.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뜬다.

 "에이미 씨…… 레도, 씨?!"

 두 사람을 태운 서프 카이트가 더욱 낙하하기 시작한다.

***

 그 카이트에서, 레도도 역시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이건──!"

 허리 벨트에 걸친 검은 단말──커뮤니케이터가 녹색 빛을 깜빡인다. 일찍이 리마가 다루던 오그멘티드 바디와 링크했던 것처럼, 바로 아래에 있는 이그나이트에 반응한다는 말인가.

 "에이미. 최대한 접근한 뒤에 뛰어내릴게. 너는 가르간티아로 돌아가"

 에이미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싫어, 나도 내릴래!"

 "무슨 소리야!"

 "두고 갈 수 있을 리 없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데리고 갈 테니까!"

 진지한 눈빛에, 레도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 대신,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응!"

 눈앞에 접근한 이그나이트의 주변을 한 바퀴 선회하고, 서프 카이트는 황량한 경사면에 착륙했다.

***

 이그나이트가 순식간에 기는의 일부를 회복한다. 기체 제어는 아직 되지 않지만, 말하는 능력은 초기 단계까지 도달했다.

 <접근. 반응. 생체 반응>

 "어떻게 이런 곳에!"

 달려온 레도와 에이미에게, 스카야가 해치를 열며 말한다.

 "레도 씨, 에이미 씨!"

 "스카야!"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낙뢰같은 기둥의 빛을, 레도와 스카야의 눈동자가 반사한다. 선명한 보라빛이 역시 비슷하다.

 "스카야, 부탁이 있어"

 "네?"

 "그 기둥을 멈추지 않으면 큰 일이 벌어져. 너와, 이그나이트──머신 캘리버의 힘이 필요해"

 스카야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금, 이그나이트는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예요"

 "뭐라고……"

 "아──위험해!"

 에이미가 날카롭게 소리친다.

 근처에 나타난 군용 융보로가, 기관총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토니아의 기체. 이그나이트를 발견하고, 전과를 올리려는 것이다.

 맨몸을 드러내고있는 세 사람에게는 몸을 지킬 수단이 없다.

 여기까지인가 생각하며 무심코 눈을 질끈 감는다.

 직후, 총성 대신 귀를 찢는 격렬한 파쇄음이 울려퍼진다.

 "──랏셀!"

 오른팔이 없는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의 오그멘티드 바디가, 아우구스토니아 기체를 향해 혼신의 몸통박치기를 박은 것이다. 튕겨나간 융보로는 맥없이 쓰러져 침묵한다.

 스카야가 외친대로, 바디의 외부 스피커에서 랏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괜찮아?!>

 "네, 하지만 어떻게!"

 이그나이트의 결전에 패배한 바디였지만, 파괴되지는 않았다. 망가진 제어계가 자가수복 기능에 의해 재기동하고, 전투력 회복으로 도달한 것이다.

 <네가 산을 오른 뒤, 전쟁이 터졌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고!>

 지난날의 거친 말투가 되살아남을 느낀 스카야의 심장이 어째선지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랏셀……"

 <너야말로, 왜 이런 곳에 있는데. 이그나이트는 어떻게 됐어, 움직이지 못하는 거야?>

 "네"

 <그럼, 얼른 두고 도망가. 너희들은 내가 지킬게>

 파괴된 아우구스토니아 기체의 기관총을 빼앗으려고 바디가 무릎을 굽힐 때였다.

 배기음을 내뿜으며, 해치가 열렸다.

 "왜 그래, 리브"

 사뿐한 동작으로 일어선 리브가 경사면으로 미끄러지듯이 내려온다. 황량한 전장 한복판에서 담담한 취색 인광을 내뿜는 소녀같은 모습은 현실감이 부족했으며, 또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말로만 들었던 에이미가 무심코 뒷걸음질친다.

 "레도…… 이 아이가"

 "그래, 리브야"

 리브는 레도의 앞에 서서, 볼을 감싸듯이 오른손가락을 내뻗는다..

 <레도, 말해줘. 당신은 저 산맥 저편에서 뭘 봤어?>

 레도의 뇌리에만 울려퍼지는, 파도치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리 말한다. 심해에서 찾아온 사자는, 레도에게 그 정체를 밝혀달라고 부탁했었다.

 "──알겠어"

 레도는 끄덕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육지 국가를 지탱해온 에너지의 정체.

 날조된 양 대국의 대립과 그 시시한 목적.

 인류 은하 동맹 500년의 야망──아발론의 부활.



 어느 하나도 믿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레도에게 있어서 그렇듯이, 랏셀과 스카야에게 있어서도 역시, 이 세상의 진실은 자신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포성이 의식에서 멀어지며, 모두가 멍하니 시선을 떨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그 때였다.

 군용 무선, 일반 통신, 라디오 등등 조계 전역에 퍼지는 전파의 온갖 주파수에, 똑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전국민에게 알린다──>

 강력한 출력으로 모든 교신을 막아서며, 목소리가 울린다. 만인을 압도하는 박력 넘치는 오만한 포고에, 그렇게 진동하던 포성이 급속히 사그러진다.

 랏셀의 오그멘티드 바디 역시 그를 수신하고 있었다.

 <때가 왔다. 지금이야말로 낙원이 펼쳐진다. 사람들이여, 모두 보도록 하라. 산맥의 꼭대기를>

 기둥이 내려치는 에너지 광선을 배경으로, 봉우리로부터 펼쳐진 타원형 실루엣이 명확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발론이 알리는 신탁같이,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진다.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손에 넣은 궁극의 힘, 과학 문명이 만들어낸 지식의 결정체. 노고와 빈곤은 사라지고, 승리와 번영, 질서와 약진만이 약속된 이상향이다. 하지만 그 문은 좁지. 만물의 영장에 어울리는 미래를 원하는 자여, 싸워라. 모여라. 강한 자들이 개척해갈 새로운 세상으로──>

 "세오드라이트……!"

 레도는 증오를 담아 목소리 주인의 이름을 부른다.

 이 무슨 기만인가. 거짓된 대립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낙원이라니!

 격분과 반발심이 치닫는 와중에, 스카야는 한층 더 눈을 부릅뜨고, 거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버지──……!"

 "뭐라고?"

 레도가 놀란다. 세오드라이트는 스카야의 아버지인가.

 바디 대신, 이번엔 이그나이트가 목소리를 낸다. 포고와는 다른, 동맹의 기기만이 수신할 수 있는 특수한 통신파 교신.

 <스카야. 내 딸아>

 "아, ──……"

 세오드라이트. 아버지라고는 이제 부르고 싶지 않겠지, 스카야는 말을 끊는다.

 <이그나이트의 부활은 멋진 성과였다. 내 아발론으로 오도록 해라. 나는 네가 살아있을 거라 믿고 있었어>

 "웃기지 마…… 웃기지 마!"

 스카야가 폭발했다.

 "당신은 전부 알고 있었지. 알고 있으면서 숨겼어. 처음부터, 전부 다!"

 <다 지나간 일이다. 아우구스토니아는 본래, 인류 은하 동맹의 혈맥을 지탱하기 위해 설계된 국가. 수 세대마다 짙게 나타나는 동맹인의 피를 이으며, 네가 태어났다>

 동맹인의 피. 은빛 머리카락. 보라빛 눈동자.

 그렇기에, 이그나이트는.

 <머신 캘리버를 다뤄보인 너에게는, 이상향의 주민이 될 자격이 있어. 자!>

 뭐가 자격이냐.

 랏셀이나 조계의 사람들. 리베리스탄인, 아우구스토니아인.

 그리고──폴라.

 무수한 사람들이, 커다란 기만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분노에 온몸을 떨며, 스카야가 단호하게 말한다.

 "거절하겠어.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통신은 끊겼다.

 이번에야말로, 세오드라이트는 딸을 잘라낸 것이다.

 "──……"

 늠름한 보라빛 눈동자에 결의를 가지고, 스카야가 레도를 돌아본다.

 "레도 씨, 무엇이든 분부를 내려주세요. 저 남자의 야망을 깨부수기 위해서라면, 저와 이그나이트에게 못할 일은 없어요"

 "스카야──"

 올곧은 시선을 보내는 같은 빛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레도가 끄덕인다.

 리브가 앞으로 나아간다.

 그 기척에 돌아본 일동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보며, 리브는 레도의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댄다.

 <나는,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그 순간.

 리브의 전신이 번쩍이는 취색 빛에 감싸였다.

 등에 살짝살짝 보이던 외피같은 것이 면적을 크게 넓혀간다.

 "리브! 뭘 하려는 거야?!"

 레도의 외침에도, 리브는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기도하듯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두 눈을 감는다.

 찰나, 리브의 몸에서 빛의 격류가 내뿜어지며, 빛의 구슬이 되어 작렬했다.

 "우왓?!"

 모두가 눈을 감는다.

 빛의 구슬은 이그나이트의 전신을 감싸며, 이윽고 잔물결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리브는 그 발밑에 다가가, 거구를 우러러본다.

 머리에 뚫린 눈동자가 반짝임과 동시에, 이그나이트에게서 자연스러운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불안정함은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의 말과는 다른, 스카야와 랏셀에게는 미지의 음색.

 하지만.

 에이미와 레도에게 있어서, 그것은 오래된 기억으로부터 눈을 뜬 것처럼 부르는 목소리였다.



 <나는──생명권 창발 지원 네트워크 시스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