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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7일 목요일

유적탐험대 팜&이리 1권 제5장 멸망의 지하도시

1

 용의 등마냥 이어지는 산맥이 북풍을 막아준 덕분에 비탈길을 너머선 산 반대편은 해발이 높은 곳 치고는 빽빽한 삼림이 펼쳐져있다. 게다가 신비하게도 지세가 높기에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들에게 보호받는 이 일대는,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아열대 계열의 식물과 습지대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서 생각하자면 한없이 비상식적인 이 환경은, 그야말로 자연 이외의 다른 힘이 작용한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우지직

 빠삭빠삭빠삭

 오랜만에 누군가가 찾아와서 그런지, 지도에 표시된 길은 이미 수풀로 뒤덮여 숲의 일부가 되버렸다.

 그런 길 아닌 길을 갈프와 길, 그리고 이리, 두 사람과 한 마리가 나아간다.

 태양은 이미 머리 꼭대기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지형 탓도 있어서 일대의 기온은 상당히 높다. 게다가 습지대이기 때문에 습도도 꽤 높다. 체력에는 자신있는 이리 역시 땀을 뻘뻘 흘리는지라, 이미 갑옷을 벗어 어깨에 짊어진 상태다.

 "후우…… 진짜 덥네……"

 무리인 줄 알면서도 험한 길을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팜이 한 발 앞서 가고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마을에서 라샤와 미겔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 2인조가 팜을 발견하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

 결과적으로 싸우고 헤어졌다곤 하나, 이리에게 있어서 팜은 소중한 파트너이며 친구이다. 팜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이리는 굳이 강행군을 선택했다.

 그렇다곤 하나, 예상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상황에, 그만 갈프에게 화풀이를 하고 만다.

 "이봐 아저씨! 정말 이 방향이 맞는 거겠지?!"

 폭포처럼 땀을 흘리며 헥헥거리는 갈프가, 손에 든 지도와 자석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는 말한다.

 "무, 물론입죠, 예. 하아, 하아……. 저, 저도 말이죠, 이런 산속에서 나무나 풀의 비료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요. 하아, 하아. 그, 그나저나 누님. 이 근처에서 조금 쉬지 않으시겠습니까요? 소인은 벌써 지쳐서……"

 진심으로 후들후들거리는 갈프와 길은, 구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이리를 바라본다. 그러나,

 "안─돼! 자, 빨랑 가자!"

 단칼에 거절당한 갈프와 길은 짠 것처럼 크게 한숨을 쉬고, 다시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다.



 "푸르르릉"

 라엘과 팜을 태운 말이 투레질을 하더니 걸음을 멈춘다. 조심조심 나아가긴 하지만, 아무래도 길이 너무 험한 탓에 말을 타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이제 이 이상은 갈 수 없대"

 말의 마음을 읽어낸 팜이 라엘에게 전한다.

 "그런가……. 그럼, 여기 묶어두고 걸어가자"

 라엘은 그리 말하고 말에서 내린다.

 "금방 돌아올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줘"

 팜이 말의 코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다. 말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스스로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가로 이동한다.

 "이 바위밭을 내려간 곳에 도시로 통하는 터널이 있을 거야"

 라엘이 말하면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팜은, 골짜기를 흐르는 작은 냇가 끝에 동굴같은 장소를 발견한다.

 "헤에~~~~~! 하지만, 어째서 라엘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거야?"

 "아버지가…… 어린 시절, 내 아버지가 말해줬거든. 루다크 왕의 전설 이야기와 함께"

 그 말을 들은 팜의 눈이 똥그래진다.

 "어?! 그럼 라엘은 세 보물이 있는 곳을 전부 알고있다는 말이야?!"

 노골적이지만 너무나도 솔직한 팜의 질문에, 라엘도 솔직하게 끄덕인다.

 "음, 아마도"

 그 대답을 들은 팜은 꼬리를 세우며 기뻐한다.

 "굉장해~~~! 이리가 알면 분명 기뻐할…… 아……!!"

 이리의 이름을 입에 담은 팜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멋대로 나왔으니, 이리 분명 엄청 화났을 텐데……"

 슬프게 말하는 팜에게, 라엘이 상냥하게 속삭인다.

 "그렇지 않아, 팜. 네 친구는 분명 너를 찾고 있을 거야. 목적지는 같으니까 반드시 사레이엄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 그럴까?"

 불안해하는 팜에게, 라엘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그럼. 그 때는 나에게도 소개시켜줘, 네 멋진 파트너를 말이야"

 "물론이지!"

 팜은 팜대로, 줄곧 이리가 신경쓰였나보다. 속마음을 털어놓아서 조금은 기운을 차린 팜이 다시 수다쟁이가 되버렸다.

 "그치만 말이야, 이리는 툭하면 화내고 쪼잔하니까, 어쩌면 라엘에게 못되게 굴지도 몰라. 그래도 안심해! 그럴 때엔 팜이 지켜줄게!! 이리는 있지, 입은 험하지만 사실은 머리도 좋고 마법도 많이 알고 있어서……"

 지금껏 라엘에게는 이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팜이었지만, 한 번 말을 시작하니 둑이 터진 마냥 차례차례 이리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는다.

 라엘도 그런 팜을 보는 것이 기쁜지, 미소를 띄우고 이야기를 듣는다.

 기운을 차린 팜은 서둘러 길을 재촉하듯 바위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옹지마라는 말은 이런 때를 나타내는 말이구나"

 바위 그늘에서 팜과 라엘의 행동을 쭉 바라보고있던 자가 있었으니. 바로 마을에서 이리에게 호되게 당한 라샤와 미겔이다. 이 두 사람 역시 아무래도 그냥 당하기만 하는 콤비는 아닌 모양이다.

 "저거, 분명 그 쥐새끼의 짝꿍이었지?"

 "그래! 그 아니꼬운 꼬리와 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지"

 "저 남자는 처음보는 녀석인데…… 왜 따로따로 행동하지?"

 "그 녀석들이니 뻔하지, 또 변변찮은 꿍꿍이라도 꾸미는 게 분명해"

 그런 라샤의 말에, 미겔이 슬쩍 째려본다.

 "남 말할 처지가 아니지 않나?"

 빠직

 "시끄러워! 아무튼 뒤를 밟자고!"

 "예이 예이"

 머리를 긁적이며 미겔은 라샤와 함께 둘의 뒤를 좇는다.

 이리하여 이리와 갈프, 팜과 라엘, 그리고 라샤와 미겔이라는, 꽤나 변칙적인 세 팀이 모두 같은 곳을 향해, 사레이엄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깊은 계곡 바닥을 실처럼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른다. 험준한 암벽을 겨우 내려온 팜과 라엘은, 징검다리처럼 늘어선 돌을 따라 계곡을 건넌다.

 강변에서 바위밭을 거쳐 자그마한 숲속으로 들어가자, 돌연 나무그늘에서 우두커니 버티고 있는 커다란 뱀이 얼굴을 내밀었다. 길이가 5~60m는 되보이는 거대한 범의 출현에, 라엘도 깜짝놀란 모양인지, 엉거주춤 방어태세를 취한다.

 그러나 팜은 뱀에게 적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안녕! 우리들 사레이엄이라는 곳으로 가고 싶은데, 이쪽 방향 맞아?"

 라며 길 안내를 부탁하려 든다.

 그런 팜을 본 라엘도 안심이 되었나보다. 검을 쥐려던 손을 떼고는 팜에게 다가간다.

 "길은 맞는데, 발밑이 미끄러우니 조심해, 래"

 "고마워"

 라엘도 팜과 같이 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안으로 나아간다.

 그 뒤를 들키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라샤와 미겔이 따라온다. 나무그늘에서 엿보듯이 몸을 앞으로 뻗는 순간, 라샤의 눈앞을 작은 동물이 달려간다.

 "?! 힉…… 읍"

 눈을 땡그랗게 뜨고 소리지르려던 라샤의 입을, 미겔이 당황하며 막는다.

 "놀라지 마. 다람쥐라고"

 풀썩 힘이 풀려 쓰러지는 라샤를 보고, 미겔은 질렸다는 표정이다.

 "……나 참. 옛날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미겔이 아니더라도, 라샤가 쥐를 혐오하는 이유를 듣고 싶은 참이었지만, 지금의 라샤에게는 대답할 여유도 없는 모양이다.

 "이거 참"

 크게 한숨을 쉰 미겔은 라샤를 끌고 걷기 시작한다.



 팜과 라엘, 그리고 그 둘을 뒤쫓는 라샤와 미겔 네 사람이 사레이엄을 감싸듯이 우뚝 치솟은 산을 빙 돌아서 서쪽으로 들어간다. 그에 비해 이리와 갈프는 직접 남쪽에서 산을 넘는 코스를 선택했다.

 "히엑…… 하아…… 히엑…… 하아…… 대체,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지?"

 비틀거리면서 기어가듯 바위산을 오르는 갈프는, 등에 두 사람 분량의 짐과 이미 뻗어버린 길을 짊어지고 있다. 게다가 허리에는 생명줄 대신 오랏줄에 묶여있고, 뒤따라오는 이리를 끌어주기까지 해야하니 지치는 것도 당연하다. 공기가 희박한 정상에 다가갈수록, 육지 위로 올라온 생선마냥 뻐끔뻐끔 입을 열게 된다.

 "우왓?!"

 데굴데굴데굴……

 발을 헛디딘 갈프가 디딘 곳의 바위가 무너지더니, 낙석이 되어 이리를 습격한다.

 "위험하잖아! 제대로 앞을 보고 가란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인과응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당한다면 갈프의 죄도 청산된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꼴을 당할 정도라면, 손을 씻고 목사라도 되는 편이 낫겠구만"

 흐리멍텅한 눈으로 비틀거리면서도일단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갈프였다.


2

 그것은 마치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만들어진 거대한 크레이터같았다. 원래는 화산지대였으리라. 거대한 칼데라 주위를 기나긴 외륜산이 지키고 있다.

 그 일각의 정상에 도달한 이리와 갈프의 눈에 비친 모습은, 지금껏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 광대하게 움푹 패인 땅에는, 호수 대신 거대한 밀림이 펼쳐져있다. 옛날엔 분화구였다고 생각되는 중앙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있다.

 게다가 멀리서 보고 판단하기에, 그 구멍을 중심으로 밀림이 하얗게 시든 것처럼 보인다. 자연적인 장난에 의한 현상이라고 해도, 달리 본 적 없는 예술적인 풍경이다.

 "이거 굉장한데! 이런 곳에 이렇게 큰 숲이 있을 줄이야!!"

 갈프가 피로도 잊은 채 중얼거린다.

 "이래선 사레이엄이 전설의 도시라 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로군요"

 갈프의 말에 이리가 되묻는다.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이야?"

 "아뇨, 저도 들은 이야기인뎁쇼, 지금껏 사레이엄을 들어간 사람도, 사레이엄에서 온 사람도 거의 없다는 말입죠"

 "즉, 교류가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습죠. 몇년 전에 멸망했다는 말도 소문 뿐이지, 그 누구도 확인해본 자는 없습니다요"

 "그 소문이라는 건?"

 "예, 어째 밤인데도 이 일대가 대낮처럼 밝아져서, 한밤 내내 빛의 기둥이 솟아오른다는 이야기입니다요"

 그 말을 들은 이리는 다시 눈 아래 펼쳐진 풍경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런 것 치고는 불에 탄 흔적은 없는데……. 무슨 마법인가? 아저씨, 아무튼 아래 내려가서 확인해보자고! 자, 출발!!"

 "에──?! 조, 조금만 쉬다 갑시다, 누님!"

 갈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리는 사레이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칫! 이러니까 꼬맹이는…… 우왓!!"

 질질질질!

 작은 목소리로 불평하던 갈프의 허리춤에 달려있던 오랏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갈프의 몸이 경사면을 미끄러지듯이 끌려간다.

 "와악──!! 진짜! 걷는다구요, 걸으면 되잖습니까!!"

 갈프의 절규가 광대한 칼데라 지대에 울려퍼진다.



 그 무렵, 팜과 라엘은 이미 도시로 통하는 터널 안에 들어온 상태였다.

 아마도 멸망하기 전에도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모양이다. 군데군데 초소같은 장소가 설치되어있다. 사레이엄의 주민은 어떠한 이유에서 의식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제지하는 사람도 없어진 통로를 나아가던 팜은, 이상한 고양감으로 가득했다.

 그런 팜의 모습이, 라엘에게 호감을 줬나보다.

 "즐거워보이네, 팜?"

 물어보는 라엘에게, 팜은 기운차게 대답한다.

 "응! 그치만, 어째서일까? 왠지, 사레이엄에 다가갈수록 들뜨는 기분이야"

 "분명 파트너인 이리 씨가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 그러려나"

 속내를 들킨 느낌이라, 팜은 살짝 부끄럽다는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팜이 부러운걸. 그런 멋진 동행이 있어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라엘의 말에 고개를 들어 라엘을 바라보는 팜이 진지하게 말한다.

 "그, 그치만, 앞으로 셋이서 여행할 수 있을 거야. 이리도 분명 라엘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열심히 격려하려는 팜에게, 라엘은 미소지으며 대답한다.

 "하하하, 고마워, 팜. 정말 즐거운 여행이 되겠는걸"

 "응!"

 라엘의 대답에 기뻐진 팜은 크게 끄덕였다. 그 순간,

 쑥!!

 완벽하게 방심한 상태가 된 팜의 다리가, 무언가를 밟아버리고 말았다.

 "뭐, 뭐야?"

 깜짝 놀라 발치를 바라보는 팜과 라엘 주변에서, 땅울림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구

 "크, 큰일이야! 함정이 아직 작동하고 있었어"

 라엘의 말대로, 외부에서 오는 침입자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터널 안에 다양한 함정이 둘러져있다. 그 중 하나에 팜이 걸려버린 것이다.

 "어, 어떡하지, 라엘?"

 "팜, 진정해. 내가 어떻게든……"

 라고 말하며 라엘이 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덜컹!!

 발밑의 바닥이 좌우로 열리더니, 두 사람의 몸이 깊은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꺄~~~~~~!!"

 "우와앗~~~~~~!!"

 비명소리만을 남기며, 두 사람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일났네…… 어떡할래, 라샤?"

 팜과 라엘이 떨어진 구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그들의 뒤를 밟아온 라샤와 미겔이었다. 난처한 표정으로 구멍을 내려보는 미겔과는 대조적으로, 다람쥐를 보고 쇼크를 일으켰다가 완전히 회복한 라샤는 다시금 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길안내도 필요 없지. 그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걸로 보물은 우리들의 것, 이 되겠지. 후후후후후후……"

 그런 라샤에게 맞춰주듯이 미겔도 고개를 들더니 싱긋 웃는다.

 "헤헤…… 보면 볼수록 악당이라니까, 라샤"

 짝─!!

 "아야!! 무슨 짓이야!!"

 미겔의 뺨을 힘껏 내리친 라샤가 소리친다.

 "너랑 똑같이 취급하지 말라고!!"

 라샤는 그렇게 쏘아붙이더니, 성큼성큼 안쪽을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왜지?"

 뺨을 문지르면서 중얼거리는 미겔이었다.



 도너츠 모양으로 펼쳐진 광대한 밀림을 빠져나가니, 산 정상에서 보였던 시든 나무들의 묘지가 이어진다. 전부 순식간에 일어난 것처럼 나무들이 선 채로 말라죽은 상태였으며, 마치 뼈처럼 새하얗게 건조되어 있었다.

 그런 기분 나쁜 '백골수림' 앞에서, 이리와 갈프, 그리고 길은 더욱 놀라 자빠질 광경을 목격하고 만다.

 "까악, 까악, 까악"

 날아다니는 매가 마치 날개짓하는 벌레처럼 보일 만큼 커다란 그 구멍은, 직경만 족히 10km는 넘어 보인다. 그것만 해도 충분한데, 경이롭게도 그 깊고 커다란 구멍에서 거대한 나무가 뿜어져 나온 것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이, 이게, 사레이엄……?"

 입을 떡 벌린 채로 겨우겨우 중얼거리는 갈프의 눈앞에, 틀림없이 사레이엄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지상에 펼쳐진 마을이 아니라…….

 그것은 거대한 산을 도려낸 듯한 커다란 구멍 속에, 층층이 겹쳐 쌓아 번영한 거대한 지하도시였다.

 아마도 멸망하기 전에는 중앙의 커다란 구멍도 나무에 뒤덮여, 외부에서는 결코 마을의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거목과 주변 밀림이 말라 잎을 잃은 덕분에, 지상에서도 아래 펼쳐진 마을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기이한 광경을 갈프와 길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지만, 이리는 그 풍경에서 마을이 멸망한 힌트를 찾아내려 한다.

 "이상한걸. 주변 나뭇가지가 아래를 향해 뻗어있어…… 그렇다는 건, 이 아래 태양보다 커다란 힘이 있었다, 라는 말이 되는데……"

 '세계수'의 전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거대한 나무는, 이미 다른 나무와 같이 선 채로 말라버린 듯하다.

 게다가 이리의 말대로, 그 거목은 구멍 주변 나무가 결집해서 하나의 나무를 형성한 것 같은 상태로, 아래를 향해 뻗어있었다. 자연의 섭리로는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으──음, 아무리 봐도, 이 큰 나무가 무언가의 계기로 갑자기 성장해 마을을 파괴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걸. 이거 어쩌면……"

 "어쩌면, 뭔가요?"

 생각에 잠긴 이리에게, 갈프가 불안하다는 눈치로 묻는다.

 "여기엔 두 보물은 커녕, 더 어처구니 없는 물건이 잠들어있는 걸지도 몰라"

 "예?! 정말입니까요?"

 돈이 될 법한 떡밥 냄새는 누구보다 잘 맡는 갈프의 눈이 반짝인다.

 "그게 아니라면 지옥의 입구일지도"

 이리가 놀리는 것처럼 씩 웃자, 갈프는 몸을 떨며 뒷걸음질을 친다.

 "으힉!! 협박은 그만두십쇼!"

 "후후후…… 하여튼, 내려가서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겠어"

 그렇게 말한 이리는 하얗게 석화된 나무줄기로 뛰어들고는, 발밑을 확인하면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이런 곳을 내려간단 말씀이십니까?!"

 겁에 질려 떠는 갈프에게 이리가,

 "달리 방법이 없잖아?! 싫으면 따라오지 않아도 돼!"

 라며 혼자 성큼성큼 나아간다. 갈프 역시 본심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리가 말하는 '어처구니 없는 물건'이 신경쓰였나보다.

 "가, 가야죠! 가면 되잖습니까, 가면…… 으, 으…… 으앗!"

 위험천만하게 가지로 뛰어든 갈프가 이리의 뒤를 따라 나아간다.



 사레이엄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불필요한 부분이 전혀 없이 지어진 이상적인 도시였다. 지하수맥과, 본래 화산이었기에 지열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또한 태고의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기혈이 자연의 공조설비로써 존재했다.

 단, 그런 것들의 환경적인 가치도, 그것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능도 없다면 그저 쓸모없는 장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 환경을 정비하고 도시로써 쌓아올린 사레이엄의 창조자는, 상당한 지식인이었다 할 수 있으리라.

 우리들의 세계에서 예를 들자면, 아파트와 대형 마트를 합쳐서 지하에 건설했다고 볼 수 있는 이 도시도 이미 그 활력을 잃고, 지금은 그저 죽은 듯이 뼈대만 남아있을 뿐이다.

 덜그럭~~~~!!

 조용한 침묵 속에 갑자기 장난감 상자를 뒤집어 재끼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뭐야, 여긴?! 생활용품만 잔뜩 있고 돈이 될만한 물건은 코빼기도 안 비치네…… 이 마을 혹시, 땡중이나 목사놈들의 둥지였던 거 아냐?"

 이런 험한 말을 내뱉는 사람은, 잡동사니의 산에 파묻힌 미겔이었다. 그가 말한대로, 이 도시의 사람들은 장식품이나 귀금속 등의 물건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민족이었나보다.

 "이런 곳에 진짜 보물같은 게 있냐고, 라샤!"

 벽 일부가 무너져서 바람이 통하는 부분으로 예의 거목이 보인다. 이 둘은 터널을 통해 사레이엄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리처럼 마을의 윗부분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라샤는 아무래도 거목이 이상하게 자랐다는 점을 눈치챈 것 같았다.

 "이봐, 라샤?"

 한편 미겔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는지, 진절머리가 났다는 말투다.

 라샤는 그런 미겔을 훽하니 째려보며 말한다.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 거야! 이런 커다란 나무가 자라난 마을, 지금껏 본 적 있어?!"

 라샤에게 그런 말을 들어도, 아직 미겔은 짐작도 못하는 모양이다. 그저 멍하니 고개를 좌우로 돌릴 뿐이었다.

 "허어음"

 "목표는 이 나무의 뿌리! 분명 엄청난 만남이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라샤는, 내심 만족한 듯이 요염한 웃음을 띄웠다.


3

 그 무렵, 팜은 꿈을 꾸고 있었다. 부드러운 빛과 선선한 바람이 팜의 몸을 감싸며,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어라? 왜 그래? 어?! 나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 ……뭘까……"

 아무래도 팜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정령들의 빛인가보다. 팜도 그걸 알아챘는지, 별달리 떨지도 않고 정령들과 대화를 나눈다.

 짐작컨데, 정령들은 팜에게 뭔가 전하고 싶은 눈치다.

 "알았어, 들려줘"

 팜은 그대로 정령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팜…… 팜?!"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응?"

 죽은 듯이 퍼져있던 팜의 귀가 쫑긋 세워지더니, 닫혀있던 양 눈꺼풀이 살짝 열린다.

 "팜!!"

 기절해있던 팜을 필사적으로 부른 사람은, 함께 함정에 빠진 라엘이었다.

 "어라? 나……"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는 팜의 옆에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라엘이 있었다.

 "다행이다!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아서 걱정했어"

 "……정령이랑, 이야기를 했어……"

 아직 꿈에서 덜 깬 것인지, 팜은 초점이 맞지 않는 눈초리를 한 채 휘청휘청 일어서더니,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팜?"

 라엘은 제정신인지 확인하는 것처럼 질문을 반복해봤지만, 팜의 마음은 아직 다른 곳에 가있는 모양이다.

 두 사람이 떨어진 곳은, 식량창고를 겸한 일종의 감옥처럼 보이는 장소였다.

 함정이 중간부터 비스듬한 경사면으로 바뀌더니, 두 사람의 몸은 부드러운 풀밭을 쿠션삼아 떨어졌다. 사레이엄의 함정은 목숨을 빼앗는 목적이 아닌, 침입자를 포획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나보다.

 그렇다고는 하나, 함정을 설치하거나 감시초소를 설치하는 등, 외부와의 교류에 대해 이정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사레이엄에는 외부에 알려지길 극도로 꺼려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팜이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곳은 이미 감옥의 모습을 갖추기는 커녕, 방의 내부가 불타거나 무너지고 약탈당한 비참한 경위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처참하게 나타나있었다.

 "너무해…… 그렇게 아름다웠던 도시가, 이렇게?!"

 팜의 발언에 깜짝 놀란 라엘이 묻는다.

 "팜, '그렇게'라니 무슨 뜻이야?"

 "정령들이 가르쳐줬어"

 "정령들?"

 팜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은 듯, 다시 질문하려던 라엘의 입술이 멈춘다.

 "!!"

 잘 보니 팜 주변을, 마치 반딧불이들이 춤추는 것처럼 정령들의 빛이 일렁임을 봤기 때문이다.

 "라엘은 나쁜 마음이 없으니까 안심이라고 말하고 있어"

 팜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그럼, 그 정령들이 네게 뭔가 보여준 거니?"

 팜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없이 끄덕인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전쟁이 있었어…… 이 사레이엄이 세워지고나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전쟁이……"

 팜의 말을 듣고, 그 참극을 상상하며 몸을 떨듯이, 정령들의 빛이 강해진다.

 "여긴 원래 루다크 왕국에서 중요한 물건을 맡은 마도사가 살고있던 곳이었나봐. 그 마도사는 마음씨가 상냥하고 박식하고,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했어…….

 처음엔 정령들과 몰래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대지진이 일어나, 산기슭에 살던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어. 그리고 마도사는 그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금기를 어겨가면서까지 그 '힘'을 사용해 마을을 건설했어. 그게 바로 이 사레이엄이야"

 팜의 이야기를 들은 라엘은, 서서히 사정을 이해한 듯하다.

 "그럼, 멸망의 원인은 그 '힘' 때문이구나?"

 "……맞아"

 팜이 슬프게 대답한다.

 "그 마도사가 나이를 먹고 하늘나라로 간 뒤에도, 구원받은 사람의 자손들이 대대로 그 '힘'의 은혜에 감사하며 지켜왔지만, 십 년 정도 전에 홀연히 나타난 외부인 남성이, 당시 영주를 부추겨서……"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구나……"

 "'힘'을 폭주시켜버린 결과가 이거야"

 광대한 공간에 양손을 펼쳐보이는 팜의 눈동자가 촉촉한 물기를 띈다.

 모든 사실을 이해한 라엘 역시 비통하게 고개를 속이고는, 중얼거린다.

 "잃어버리고 만 것이 너무나도 커…… 아니 그렇다기보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처음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 그때까지는, 그 중요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슬픔과 분함이 반씩 섞인 고뇌의 표정.

 "덕분에 지금은 정령들이 사는 집이 되었대"

 고개를 든 라엘에게, 팜은 복잡한 미소를 보인다.

 "……팜"

 라엘도 팜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운차게 일어선다.

 "네 친구를 찾자! 그리고 화해하는 거야. 더 늦기 전에 말이지"

 "응"

 슬쩍 뻗은 라엘의 손을 잡는 순간, 팜의 주변 정령들이 소란스럽게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뭐지?! 왜 그래?!"

 "팜! 무슨 일이야?!"

 얼굴이 굳어지며 물어보는 라엘에게, 팜이 무언가 기척을 느낀 모양이다.

 "……무서워…… 뭔가가 있어!!"

 "읏"

 긴장을 되찾은 라엘이 반사적으로 검에 손을 댄다.

 술렁술렁술렁술렁……

 사박사박사박……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두 사람은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완전하게 포위되고 만 뒤였다.

 "……라엘"

 불안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팜의 어깨를 감싸며, 라엘은,

 "걱정하지마! 반드시 너를 네 친구 곁으로 데려다 줄테니까!!"

 라며, 무언가를 떨쳐내는 것처럼 강하게 외쳤다.



 "에─취! 으~~~ 호달달달"

 우렁찬 재채기를 한 뒤, 갈프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파트너인 길 역시, 그 검고 커다란 코에서 콧물을 흘리는 탓에 주변 냄새를 맡지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모, 몸이 찹니다요, 누님"

 "그러네. 과연 지하 20층까지 내려오면 추워지는구나"

 와들와들 떠는 둘과 같이 어깨를 움크리고 망토 양 끝을 가운데로 모아 추위를 견뎌내려 해본다.

 팜이 정령들로부터 들은 '힘'의 은혜를 잃어버렸기에, 현재 지하의 기온은 마치 냉장고와 같았다.

 "저기, 누님"

 "왜"

 "뭔가 이렇게, 화───악 따듯해지는 마법같은 건 없으려나요?"

 "왜, 왜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보냐?"

 "정말, 시치미 떼지 마십쇼. 쓸 수 있지 않습니까요, 마법?"

 다 안다는 것처럼 힐끗 올려다보는 갈프에게, 이리는 망설이면서 대답한다.

 "아, 안 돼! 안돼안돼, 마법은 못 써!!"

 "또 그러신다!"

 매달리는 갈프에게, 이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역시, 팜이 없으면……"

 "에취!"

 다시 우렁차게 재채기를 한 갈프가, 별 반응 없는 이리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크흐흑.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꼴을 당해야만 하는가아"

 라고 옹알거리는 갈프에게, 이리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다.

 "평소의 행실이야!"

 그 말을 들은 갈프가 당황하며 부정한다.

 "말도 안 됩니다요! 저는 그날 이후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말입니다!! 사람을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요!!"

 발끈하는 갈프의 말도, 이리에게는 전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글쎄 어떠려나……"

 "정말이라니까요!"

 라고 말하는 순간,

 딸칵!!

 이야기에 열중해있던 갈프의 발이, 바닥에 있던 함정 스위치를 밟아버리고 말았다.

 "아!! 병신아!"

 이리가 소리치는 순간,

 덜컹덜컹덜컹덜컹!!

 발 밑 바닥이 무너지더니, 둘의 몸을 자갈과 함께 나락 끝으로 떨어트리고 만다.

 "어, 어째서~~~~~~!"

 비통한 외마디비명을 지르는 갈프의 운 역시, 문자 그대로 바닥 끝까지 떨어진 모양이다.



 흡사 초고층 빌딩 계단을 내려가는 것처럼 묵묵히 최하층을 향해 가는 라샤와 미겔은, 그 깊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거 참, 잘도 이런 땅 밑바닥에 마을을 건설할 생각을 했구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미쳤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는 미겔에 반해, 라샤는 아주 진지한 표정이다.

 "그만큼 중요한 물건이 있다는 뜻이지"

 "헤에~~~ 그런가?"

 "그래"

 대충 납득한 미겔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렇게 단숨에 밑으로 내려가는 편리한 도구같은 게 없으려나"

 그런 불평이 하늘에 닿았는지, 갑자기 머리 위에서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절규가 날아왔다.

 "우와아아아!!"

 "응?"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는 두 눈에 비친 모습은, 무너지는 자갈 무더기와 함께 떨어지는 이리와 갈프, 길의 모습이었다.

 "으힉?!"

 눈을 부라리는 라샤와 미겔에게, 또다른 불행이 닥쳤으니.

 쿠와아앙!

 덜컹덜컹덜컹!!

 갈프가 걸린 함정은 연쇄식 함정인 모양이다. 두 사람이 서있던 곳의 발밑이 무너지더니, 미겔의 바람대로, 이리 일행과 함께 단숨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정말, 미겔 바보야! 네가 그딴 소리를 하니까!!"

 "이게 내 탓이야?!"

 서로 헐뜯으며, 라샤와 미겔은 어찌할 도리 없이, 그저 떨어질 뿐이었다.



 덜컹덜컹덜컹……

 "후우~~~~……"

 마른풀 쿠션을 좌우로 밀치며 몸을 일으킨 이리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이리에게 있어서는 처음 보는 장소였지만, 모든 함정의 출구는 한 곳으로 집약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살았나보네…… 아야야야야"

 엉덩이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키려던 이리가 깜짝 놀란다.

 "응?"

 슬쩍 내려다보니 이리의 다리 밑에, 분노로 가득찬 라샤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라라……"

 벙쪄서 눈알이 똥그래진 이리를 밀쳐내며, 라샤가 덮쳐든다.

 "이 쥐새끼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방금 그건 불가항력이었잖아!!"

 당황하며 물러서는 이리가 그 순간, 살기를 느끼고 멈칫한다.

 "읏!"

 붕!!

 희미한 소리가 울린다. 그것은, 미겔이 이리를 향해 휘두른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챙~~~!!

 간발의 차이. 이리가 반사적으로 허리에서 빼든 검으로 받아친다.

 "히익~~~~~~?!"

 기겁하는 갈프와 길은 허리가 빠진 채 풀 위에서 허둥댄다.

 "호오…… 좋은 반사신경이군"

 필사적으로 검을 막아내는 이리에 비해, 미겔은 여유로운 미소까지 띄우며 말한다.

 "검은 어디서 배웠지?"

 그런 미겔의 질문에, 이리는 땀을 흘리며 신음하듯 대답한다.

 "독학이다! 됐냐?!"

 "하하…… 뭐야"

 완벽하게 바보취급하는 것처럼 웃은 뒤, 미겔이 표정을 확 바꾸며,

 "여자가 검술 흉내를 내지 말라고!"

 더욱 도발하듯이, 이리를 향해 다가오며 말한다.

 "베이면, 아플걸!"

 "시끄러워!!"

 미겔의 말에 발끈한 이리는 혼신의 힘을 담아 미겔의 검을 튕겨낸다.

 붕!! 붕!!

 그대로 반격하는 이리였지만, 실력의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헤헤. 그래, 그 기세야!!"

 미겔이 씨익 웃으며 여유롭게 공격을 흘려보낸다.

 "젠장~~~!!"

 분해하면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리의 뒤에서는, 오랏줄에 묶인 갈프와 길이 허둥대고 있다.

 "히익~~~~!! 모, 목숨만은~~~~~!!"

 "시끄러워! 움직이지 마!!"

 형세는 이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큭…… 이런 때에 팜이 있었더라면……"

 역시 이리와 팜은 둘이 있어야 비로소 각각의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이제와서지만 통감하는 이리였다.

 "미겔! 언제까지 노닥거리고 있을 셈이야?! 그런 왈가닥 계집 하나 정도는 빨리 조용히 만들라고!!"

 기다리다 지친 라샤가 소리친다.

 그 말을 들은 미겔이 눈으로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날아들더니 검을 휘두른다.

 "놀이는…… 끝이다!!"

 "큭!!"

 균형을 잃은 이리를 향한 미겔의 검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붕!!

 미겔이 이리를 향해 검을 내려치려던 그 순간,

 "키킷────!!"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몇몇 그림자가 일동을 애워싼다.

 "뭐, 뭐지?!"

 슉!!

 "키킷─────!!"

 놀라면서도 순식간에 검의 궤도를 바꿔 습격해오는 정체불명의 그림자를 벤다.

 슉!! 팟!!

 자세를 바로잡은 이리 역시 이어서 그림자 둘을 쓰러트린다.

 털썩!

 샤아아악……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이상한 손맛을 느낀 미겔과 이리는, 쓰러진 그림자를 바라보고 깜짝 놀란다.

 "뭐, 뭐야 이것들?! 인간이 아니잖아!!"

 미겔의 말대로, 검을 쥐고 사람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인간은 아니다. 그 증거로, 얼굴에 있어야할 눈과 코가 없고, 그저 밋밋한 얼굴만이 있을 뿐이다. 대신, 중앙에 보석같은 무언가가 박혀있었다.

 "머펫이야!"

 소리친 사람은 라샤였다.

 그 목소리에, 다들 일제히 라샤를 바라본다.

 "마도사 중에는 흙이나 나무로 만든 인형에 보석을 심어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고도의 기술, 나도 처음 보는 거야"

 경악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라샤의 말을 뒷받침하는 듯이, 일동의 눈앞에서 쓰러진 머펫이 흙으로 돌아갔다.

 "대체, 어떤 구조로 만들어진 거지?!"

 미겔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라샤에게 묻는다.

 "보석이야. 보석을 통해 마력을 부여하는 거지"

 "헤에~~"

 미겔이 감탄하며 라샤로부터 흙이 된 머펫으로 눈을 돌리자, 쭈뼛쭈뼛 보석에 손을 뻗는 갈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딱콩!!

 "어딜 슬쩍 손을 뻗고 있어!!"

 "에헤헤헤헤……"

 미겔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웃으며 얼버무리려는 갈프였다.


4

 쿠과과과광!!

 "키킷────!!"

 이리 일행을 습격한 머펫 셋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이번엔 집단으로 습격하기 시작했다.

 "큭! 이번엔 단체로 왔네!!"

 "응?!"

 자세를 고치는 이리가, 그 집단 중앙에 있는 팜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팜?!"

 무심결에 소리치는 이리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팜이었지만, 대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정체불명의 머펫 군단은 그 사이에도 용서없이 팜과 라엘을 공격하고 있었다.

 "키킷~~~~!!"

 "꺅!!"

 챙!!

 종이 한 장 차이로, 팜을 습격하던 머펫의 검을 라엘이 막아낸다.

 "팜, 괜찮니?!"

 "으, 응!"

 팜을 지키면서 싸우는 라엘이었지만, 아무래도 혼자로는 역부족인지 방어하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잠깐 상황파악이 되지 않던 이리 일행도, 머펫들의 창끝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무의식중에 난투를 벌이게 되었다.

 키킷─────!!

 휙!!

 무표정하게,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이리 일행을 노리고 공격하는 머펫 무리.

 "히익~~~~!! 사, 살려만 주십셔~~~~!!"

 오랏줄에 묶인 채로 방치된 갈프와 길은, 창백한 얼굴로 바둥바둥대고 있다.

 "아~~~! 진짜, 움직이지 마!!"

 갈프와 길이 날뛰는 덕에 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던 이리에게, 머펫이 달려든다.

 붕……

 "이런!!"

 옴싹달싹 못하는 이리의 앞에 날아온 것은, 의외로 적이었을 터인 미겔이었다.

 서겅! 챙!!

 순식간에 머펫 둘을 양단한 미겔은,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인 듯했다. 오랜만에 대판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지, 이리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다는 분위기다.

 "이 망할 인형이!! 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외치는 사이에도, 미겔은 재빠르게 머펫을 제압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미겔이 쓰러트린 머펫들이 머리에 박혀있던 보석만을 남기고 차례차례 사라져간다.


 의기양양한 표정의 미겔. 간격을 두는 것처럼 서서히 포위해오는 머펫들에게, 준비자세를 취하며 크게 소리친다.

 "난 말이야, 이래뵈도 혼자 백 명이나 되는 기마단을 상대한 남자라고!!"

 그러나, 머펫들이 그런 대사를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응을 한 건 이리 쪽이였다. 이리는 눈을 땡그랗게 뜨고, 갈프에게 귓속말한다.

 "……요전번에 분명 오십 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 말을 들은 갈프는 고개를 끄덕인다.

 "시, 시끄러! 그닥 차이도 없잖아!!"

 얼굴을 뻘겋게 물들이며 화내는 미겔에게, 갈프가 냉정하게 대답한다.

 "두 배 차이나네요"

 "앆~~~~~!!"

 그런 얼빠진 대화를 하고있는 사이, 머펫들은 라샤를 습격하려들고 있었다. 허를 찔린 라샤는 주문을 영창할 시간조차 없었다.

 슈욱────!

 "히익……"

 새파랗게 질린 라샤는, 마차 앞에 튀어나온 고양이처럼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위험해!"

 탁……

 "꺅!"

 서걱!!

 라샤를 밀쳐내며 머펫을 쓰러트린 것은, 라엘이었다.

 "……"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바라보는 라샤에게, 라엘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소리친다.

 "난폭한 짓을 해서 미안합니다. 괜찮으신가요?"

 "……아, 네……"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라샤는, 라엘의 말끔한 옆모습에 푹 빠진 모양이다.

 "저, 저기…… 이름……"

 새빨개져서, 마치 소녀처럼 우물쭈물하는 라샤의 반응을 민감하게 눈치챘는지, 두 사람 사이를 가르며 팜이 끼어든다.

 "그런 말 하고있을 때가 아니잖아?!"

 발끈하는 라샤 옆에서, 팜은 차례차례 습격해오는 머펫을 향해 마법을 쏘았다.

 "내 힘을 따르는 정령들이여! 내 방패가 되어 어떠한 힘도 막아내라!!"

 부웅!!

 팜의 주문에 호응해, 일동 앞에 배리어같은 빛의 장벽이 펼쳐진다.

 "키킷───!!"

 팅팅팅……

 벽을 신경쓰지도 않으며 계속해서 공격해오는 머펫들이, 배리어에 튕겨 흙으로 돌아간다.

 "헤헤~~"

 웬일인지 마법이 잘 들어가 기가 살은 팜이었다. 하지만,

 "잠깐, 비켜!"

 탁!

 "흐갹!"

 불쑥 튀어나온 라샤가 팜을 엉덩이로 밀쳐내더니 마법을 쏜다.

 "대기에 퍼져있는 정령이여! 내 앞에 허공이 있을지니! 그대 사지로 그 업을 이루어라!!"

 주문을 들은 이리가 놀란다.

 "?! 그 마법은……?"

 "왜, 왜 저렇게 의욕적인 거야? 라샤 녀석?!"

 미겔의 말대로, 라샤가 쏜 마법은 라샤가 아는 마법 중 가장 레벨이 높은 마법이었다.

 스스스스슥……

 쿠와아아아아앙!!

 후드드드득!

 라샤가 펼쳐보인 양 손바닥에서 발사된 정령의 빛은 팔방으로 뿌려지더니, 굉음과 땅울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벽이나 돌바닥이 머펫들을 찌부러트리듯이 둘러싼다.

 끼릭끼릭끼릭……

 엄청난 압력이 생겨나더니, 자갈이 머펫을 둘러싼 채 점점 수축된다. 그러더니 마침내 주먹만한 크기까지 압축되고 말았다.

 "괴, 굉장해!"

 무심코 외치는 팜에게, 이번엔 라샤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흐흥. 마법이라는 건 이런 걸 말한단다, 꼬마 아가씨!"

 "누가 꼬마야?!"

 발악하며 언쟁을 펼치려던 팜의 뒤에서, 미겔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멍청아!! 마지막까지 처리하지 않으면……!"

 "어?!"

 미겔의 걱정이 적중하고 말았다. 한 순간의 방심이, 압축되어있던 바위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게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슈우욱~~~~~!!

 압축되어 작아졌다고는 하나, 질량까지 줄어든 건 아닌가보다. 마치 대지진처럼, 지하도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흐악~~~~~!!"

 모두 당황하며 벽에 달라붙는다.

 "라샤!! 때와 장소를 좀 생각해라!!"

 흔들림이 잦아들자, 미겔이 벽에 넙죽 달라붙은 채로 소리친다. 하지만 라샤는 미겔을 완전 무시한 채 쏜살같이 달려가 라엘의 품에 달라붙는다.

 "앙~~~, 무서웠어요!!"

 급변한 라샤의 태도에, 모두들 입을 떡 벌린 채 꿀먹은 벙어리가 되버렸다.

 "방금전에는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녹아내리는 듯한 표정으로 갑자기 얌전해진 라샤는, 이미 라엘에게 아무런 맥도 못 추게 된 듯하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조사해보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로, 라엘의 마음을 끌어보려 한다.

 "제 이름은 라샤예요. 당신은?"

 "라…… 라엘입니다"

 라엘도 대응하기 곤란한 듯하다. 하지만, 라샤는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다.

 "언뜻 보아하니, 어디 기사님이신가 보군요. 그런 분이 이런 곳까지 오시다니, 뭔가 사연이 있나보죠?"

 "네? ……아……"

 곁눈질로 바라보는 라샤가, 라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이어 말한다.

 "아니요!!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저, 앞으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이런 꼬랑지 달린 계집으로는 걱정이 많으실 테니, 제가……"

 라샤의 뻔뻔함에, 팜이 화내며 소리친다.

 "멋대로 말하지 마! 라엘은 팜이랑 같이 여행하기로 했단 말이야!!"

 순간적으로 본성이 돌아온 라샤가 팜을 째려보며 맞대응한다.

 "닥쳐!! 너는 저기있는 쥐새끼년이 어울린다!"

 "누가 쥐새끼……!!"

 라며, 화를 내려던 차에, 팜은 말을 멈추고 이리를 힐끔 바라본다.

 "……"

 이리는 약간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리"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살짝 웃으며, 이리가 말한다.

 "미안했어, 팜……. 너무 심한 말 했지……. 화해하자, 응?"

 그런 이리의 말에, 팜은 활짝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이걸로 결정났네! 자, 라엘 님은 저랑 함께……"

 이제 아예 라엘에게 찰싹 달라붙는 라샤를 당황한 팜이 떼어낸다.

 "안 돼!! 라엘은 나랑 갈 거야!!"

 "시끄럽네! 모처럼 화해했으니까 얌전하게 이 쥐새끼년이랑 같이 가란 말이야!!"

 "셋이서 갈 거야!!"

 "무슨 소리야 이게?! 라엘 님은 나랑……"

 "안 돼!!"

 급 낮은 언쟁을 벌이던 라샤와 팜 사이에서 곤혹을 표하던 라엘이 입을 연다.

 "둘 다 진정하세요. 다 같이 가면 될 일 아닌가요?"

 "에~~~~~?!"

 "말도 안 돼!!"

 그런 라엘의 제안에, 있는 힘껏 불만을 표출한 사람은 다름아닌 이리와 미겔이었다.

 "이녀석들이랑 같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짓는다.

 "형씨,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

 미겔의 말을 끊은 건, 의외로 라샤의 말이었다.

 "라엘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런 라샤에게, 미겔이 소리친다.

 "야, 이봐 라샤, 무슨 소리야?! 꼬맹이 둘도 방해되는데, 이런 정체모를 남자까지 데리고 가겠단 말이야?!"

 라엘을 대하던 태도와는 정반대로 악을 쓰며 미겔을 노려보는 라샤가 말한다.

 "시끄러워! 미남 중에 나쁜 사람은 없어!!"

 "뭐어?!"

 말문이 막힌 미겔이었다.

 이리하여, 세삼 싸울 기운도 사라져버린 두 개의 파티는, 라엘이라는 매개를 통해 일시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됐지?"

 흐리멍텅한 눈으로 중얼거리는 이리.

 "진짜 미치겠네, 나 참!"

 미겔도 이리와 같은 의견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 소란통에 묵묵히 쓰러진 머펫에 박혀있던 보석을 모으던 갈프였다.

 "헤헤헤. 이건 꽤나……"

 핑!!

 "우왁!!"

 기쁨을 누리던 순간, 오랏줄이 잡아당겨져서 손에 쥐고있던 보석을 다 흩뿌리고 만 갈프가 질질 끌려간다.

 "아아!! 자, 잠깐!!"

 비통한 외침도 화가 잔뜩 난 이리에게는 효과가 없다.

 "쪼잔한 짓 하지 말라고, 진짜!!"

 "얼타면 두들겨 패버린다, 이 새끼!!"

 화를 내는 이리와 미겔 앞에서, 갈프는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었다.

 "같이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임마!! 적어도 짐 정도는 들어!!"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고 휘청휘청 걷는 갈프에게, 반론할 권리는 없었다.

 "어흐흑…… 오늘은 재수 옴붙었네"

 "시시시시시"

 파트너 길조차 코웃음치고 마는 불행한 갈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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