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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31일 일요일

JK 하루는 이세계에서 창녀가 되었다 외전 4화 흙탕물은 아래로 흐르고


 위지크래프트라는 남자와 다니게 된 뒤로, 슬슬 삼십 년 정도 지났으려나.

 마왕을 쓰러트린다는 이 남자의 어처구니 없는 꿈에 어울려주다, 다들 백발이 돼버렸어.

 피부빛도 눈빛도 다르지. 자라난 환경도, 애시당초 언어까지 다른 우리가 같은 머리색이 됐단 말이야. 꽤나 오랜 시간동안 함께 여행했지. 뭐, 잘도 같이 지내왔구만.

 위지는 축제를 좋아하는 멍청한 자식이지만, 숲에만 들어가면 영리하고 신중하며, 누구보다 강해. 그런 녀석이라 나도 함께 지내왔지만, 이젠 틀렸다, 이러다 죽겠다고 생각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마물한테 얻어맞아 나무 위까지 날아가기도 하고. 독사떼에 포위당하기도 하고. 원인 모를 고열로 사흘 밤낮을 끙끙 앓은 적도 있었지.

 죽고 싶지 않다고 울며불며 돌아와놓고서는, 죽으려거든 그곳밖에 없다며 다시 숲으로 되돌아가는 인생이야. 나도 결국은 바보라서, 뭐가 됐든 숲의 공기를 마시고 싶어지나보더라고. 고향 같은 곳이라고 해야하나.

 자 그런데, 이런 바보 놈들이 모이는 주점에, 꽤나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왔단 말이지.

 새하얀 옷에, 새하얀 모자. 피부도 햇빛에 비춰진 적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하얗다. 그런데 머리카락은 검고 풍성하고, 눈도 놀라울 만큼 크고 반짝이고.

 이거 아가씨잖아. 영리하고 고귀한 데다가 부모가 학교도 보내주는, 시스터라는 거드름 피우며 일하는 교회 여자.

 숲 동쪽 변두리에 위치한 소수 민족 출신, 문신으로 가득한 흙색 피부에, 마을에서는 가까이 다가가는 자도 없는 내 앞에 그 녀석이 얌전히 앉아서, 개썅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대.



 "저를 제자로 삼아주실 수 없나요?"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잠시 생각하고, 겨우 바보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이거야 원 별일이네라며 웃었다고.

 크게 웃어제끼고, 아직 한 모금밖에 안 마신 부카렌주를 시스터의 얼굴에 뿌린 다음, 엄지를 땅으로 향해줬지.

 검게 빛나는 오크 이빨로 만든 반지를 보여주면서.

 "네 신이라는 놈한테 가서 말해라. 그놈이라면 제자로 삼아줘도 좋다고"

 주점 놈들이 미친듯이 웃어댄다.

 시스터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다시 올게요'라는 잠꼬대 같은 말을 지껄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지.

 의외로 괜찮은 엉덩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는, 그걸로 또 헛소리를 해서 동료들과 또 웃고.

***

 내가 태어난 곳은, 너도 아는대로 세이가야라는 이름의 지방이야. 이 나라를 크게 가로지르는 마왕의 숲 반대편에 위치했지. 나는 동쪽에서 태어났어.

 단, 도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고. 대부분 숲에서 자랐거든. 이 피부와, 이 문신. 식사도 문화도 다르니까. 그곳에서 우리는 '저주받은 민족'이라고 불렸어.

 물론 저주 따위 받지 않았지만.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안 했다고. 저주받은 건, 늬들 눈과 마음이겠지.

 아무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살지 못하는 인생이었어. 강가에 작은 집락이 있어서, 짐승과 함께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살았다니까.

 숲에 흐르는 강은 흙색을 띄거든. 비가 고여서 흐르는 거라고 들었는데, 그냥 마시면 반드시 배탈을 일으키곤 했지. 게다가, 이곳보다 훨씬 더 더웠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풀숲에서 풍기는 뜨거운 열기와 진흙 냄새야. 벌레가 날개짓하는 소리와, 한밤중에 멀리서 들려오는 마물의 울부짖음도.

 태어났을 때부터 창을 쥐고 살았어. 짧아서 던지는 용도로도 쓸 수 있는 녀석이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나서는 각각 자신만의 끈이나 털을 묶거든. 사냥감을 사로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말이야.

 "이고. 다음은 네 차례다"

 그때 내가 여덟 살이었나 아홉 살이었나. 언덕 위로 올려보내졌는데, 그곳에서 강을 향해 뛰어내리라고 어른들에게 명령을 받았지.

 달인이 될 때까지 해마다 몇 번이나 그렇게 시련을 부여받아. 중간에 죽는 녀석은, 사는 데에 적성이 없는 녀석이야. 어쩔 수 없다는 말이지.

 몸을 움직이는 것도, 담력을 드러내는 것도 내 특기였어. 무섭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해봤으니 말이야.

 빙글 뒤로 돌아, 엄지를 땅으로 향하고, 혀와 눈알을 빙글빙글 돌리며 우스꽝스러운 꼴을 하면서 떨어지기도 했거든. 어른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또래 동료들은 손뼉을 치며 극찬했지.

 난 '용사가 될 사나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어. 용사라고. 멍청한 놈들 뿐이라니까. 그딴 촌동네에서 세상을 발칵 뒤집을 남자가 태어났다며, 마을 놈들은 종교처럼 믿어댔지.

 시련을 뛰어넘을 때마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남자에게는 문신이 새겨졌어. 꼬맹이에게는 상당히 자극적인 고통이었지만, 그게 명예이기도 했지. 축배를 들며, 묵묵히 몸에 색을 넣었어. 그때 이미 내 가슴은 먹으로 한가득이었다니까. 동료 중에서 가장 뛰어났지.

 단,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게 굉장히 가려워지거든. 먹은 마물의 피로 만들어졌는데, 그게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해서 그런 거라고 어른들이 말하더라.

 마물은 두려운 존재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신에 가까운 존재야. 그 마물의 육체와 가까워짐으로써 강해지기 위한 수단이라 믿었지. 꼬맹이인 나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논리였지만 말이야. 그저 심각한 민폐일 뿐이었지. 피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정말이지 가려워서 죽는 줄 알았으니까.

 어느 비오던 날 있었던 일인데. 강가에 가서 몸을 씻으려 했어. 몸이 식으면 조금은 나아졌으니까.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만난 거야.

 마물이라는 놈을.

 건너편 언덕에서 나를 보고 있더라고. 말처럼 네 다리로 선 목이 긴 마물이었어. 그런데 뼈가 없는 것처럼 몸이 흐물흐물했고, 눈알이 얼굴의 반이나 될 정도였다고. 입을 열자 자그마한 이빨이 빽빽히 늘어서있었고, 끈적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지. 그렇게 덜덜 떨며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나를 보고는 혀를 핥짝이더니, 강 속으로 뛰어들어오더라.

 순간 생각했지. '마물은 마물이다'라고. 문신 정도로 사람이 마물과 가까워질 수 있다니 말도 안 된다고. 인간은 그저 먹잇감이야. 잡아먹혀서 죽는 거지. 그런 생각을 했더니, 오줌을 지려버리고 말았지 뭐냐.

 하지만, 그때는 죽지 않고 끝났어. 움직일 수 있게 되었거든.

 시련을 뛰어넘지 못하고, 죽지도 못했던 사내는 '벽'이 돼. 마을 바깥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한 벽이 되는 거지.

 내 앞에 선 자는, 더럽고 긴 머리를 한 사내였어. 마을에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 그 녀석은 사람의 말이 아닌 무언가를 외치면서, 마물을 향해 강물을 뿌려댔어. 그랬더니 마물은 물러나더라고. 어슬렁어슬렁대면서. 스스로 물에 들어왔던 마물이, 사내에게 닿은 물은 싫어하며 달아났단 말이지.

 다음으로 사내는, 자신의 팔을 묶었어. 가느다란 실로 팔꿈치 끝을 꽁꽁 동여매고는, 입 안을 깨물어서 팔에 피를 뿌리더군. 팔뚝 위에 피거품이 일더니, 계란이 썩는 듯한 냄새를 내기 시작했어. 그걸 마물에게 들이대며 '보우, 보우'라는 말 울음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더라.

 마물도 같이 소리치더니, 사내의 팔을 물어뜯었지. 뿜어져나오는 피를 핥아먹고. 나는 뭐, 벌벌 떨면서 울고 있었지. 하지만 마물은 얼마간 그러고 있다가, 곧 입을 떼고는, 얌전히 돌아가버렸어.

 사내의 팔은 당연하게도 넝마짝이 됐지. 강가에서 무릎을 꿇고 신음하는 사내에게, 나는 다가가 '괜찮아?'라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사내는, '저건 배를 주린 녀석이 아니었어. 운이 좋았지'라고, 비지땀을 흘리며 웃더라.

 "대가는 피만으로 끝났군. 오늘은 좋은 날이야"

 사내의 한쪽 발은 자세히 보니 나무로 되어있었어. 난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지. 하지만 사내는 그 사실을 좋게 생각하지 않더라고. 문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

 "나랑 만났다는 사실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돌아가"

 말붙일 틈도 주지 않았기에, 난 사내를 걱정하면서도 집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벽이 된 녀석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끈질기게 물어봤더니 말해주더군.

 전사가 되지 못한 남자는 버려지게 돼. 공동사회의 바깥에서, 말처럼 탈것 취급을 당한다고.

 우리 마을에는, '마술'이라는 마법 비스무리한 것이 존재하거든. 마법과의 차이점은, 정령의 힘이 아닌, 마물과 같은 계통이라는 점이지.

 즉, 그 탓에 우리는 저주받은 민족이라 불리우며 박해받는 거야. 문신을 넣는 기술도 그래. 외지인의 입장에는, 우리 몸에 마물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박해받은 탓에, 더욱 더 살아남기 위해 마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이해할 수 없겠지만, 미움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두렵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유일한 무기인 마술을 버릴 수는 없지. 격리당한다 하더라도, 박해당한다 하더라도, 무시당한다 하더라도. 살기 위해서 마술을 쓰고, 계속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어.

 그런 빌어먹을 환경 속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을 담당하는 자가 바로 약자들이야. 더욱 밑바닥으로 떠내려간다고, 그런 것들은.

 벽이 된 사내는, 먼저 벽이 되어있던 남자들에게 특히나 쓰라린 마술을 배우게 돼. 그리고 마을 바깥에서, 마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내가, 가장 힘든 일을 강요받는다니까.

 도망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야. 하지만, 그때의 나도 그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어. 마을을 위해 일하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그 좁은 마을 근처가 우리 세상의 전부였고, 도망칠 곳이 있으리라는 상상도 할 수 없었거든. 그 누구도.

 아무튼 나는, 마을 남자와 함께 벽이 된 녀석들을 경멸하기만 하면 됐어. 일단 나는 '용사가 될 사나이'니까.

 하지만, 죽을 뻔한 곳에서 도움을 받았단 말이지. 사나이는 은혜를 잊지 않는 법. 다시 한 번, 그 벽 사내를 만나고 싶었어.

 게다가 나는, 어깨너머로 슬쩍 본 '마술'이라는 것에 흥미도 있었거든. 그 마물을 물리친 힘이잖아. 금지됐네 혐오스럽네 해도 그 힘은 강했어.

 굉장하다고 생각했지.

 벽 사내는, 처음에는 나를 피해다녔어. 하지만 끈덕지게 따라다녔더니, 조금씩 이야기를 트게 되었지.

 '너한테는 문신이 있으니 마술은 필요없어'라며, 정작 중요한 점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내가 어떤 시련을 해왔는지, 혹은 마을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가끔씩 물어보는 정도였고.

 그 외에는 묵묵히 다리를 끌며, 주변 풀을 먹거나, 빙글빙글 마을 주변을 걸어다닐 뿐이었어.

 나로서는 그 모습이 용사처럼 보였다니까. 그야 그렇잖아. 그는 싸우고 있었으니까.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데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벽 사내가 하루종일 어떻게 지내는지 지켜본 적도 있어.

 대부분은 걸어다니기만 하더라고. 다른 벽 사내와 스쳐지나가는데 눈도 마주치지 않더군. 힘이 다 빠질 때까지 걷고, 가끔씩 앉았다가, 금방 다시 걷기 시작해.

 솔직히 말해서, 재미없어서 금방 질렸어. 하지만 해질녘이 되자 상황이 변했지.

 숲에서 마물이 나타났기 때문이야.

 그는 마치 자신도 마물이 된 양 몸을 낮게 움츠리고, 땅을 기어다녔어. 그리고 마물에게 다가갔지.

 거리는 멀었지만 내게도 보였어. 털뭉치가 떠다니는 모습이. 크기는 어린애가 몸을 웅크린 정도. 둥실둥실 떠다니듯 마을로 향하더군.

 벽 사내는, 가슴팍에서 나무조각 몇 개를 꺼내들었어. 키리 나무를 베어낸 것이었지. 그리고 무언가를 중얼중얼 읊으며, 가죽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액체를 입에 머금었어.

 나중에 안 건데, 그건 '양귀비박쥐의 피'라더라. 그래. 미량을 마시기만 해도 공포심이 사라지게 되는 금지된 물건. 너무 많이 마시면 정신이 날아가게 되지. 격리된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도시와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은 그것 뿐이었어. 잘도 찾아냈단 말이지.

 그걸 마시더니, 벽 사내가 몸을 떨지 않게 됐어. 그리고 외쳤지. 짐승 같은 목소리로, 짐승의 언어로. 그리고는 키리 나무조각을 지면에 찔러넣더군. 공격해오던 마물은, 그 나무조각에 밀려나듯 뒤로 물러서고. 한 번 마물을 튕겨낸 나무조각은 발화하더니 금방 엉망이 됐지. 하지만 벽 사내는 몇 번이나 도발하면서 나무조각을 꽂아댔어.

 결계야.

 손과 발을 사용해 풀숲을 뛰어다니며, 마물이 다가오면 결계로 밀어낸다. 어느샌가 다른 벽 사내들도 모여들더군. 그 외침은 동료를 부르는 소리였던 셈이지. 모두 같은 행동을 하며 마물을 조금씩 몰아내더라.

 벽 사내는 마물을 죽이지 않았어. 우리에게 있어서는 신 같은 존재니까.

 정중하게, 예의바르게, 봐달라고 호소할 뿐이었지. 마을에 들어간다면, 마을 사람들이 싸우게 되겠지만, 물론 그건 벽이 전멸당했을 경우고.

 내가 아는 벽 사내가, 자신의 목제 다리에서 가지를 하나 뽑고는, 긁어내서 불을 붙였어. 팔 없는 사내가 몸으로 지면에 문양을 그리더니, 마술로 자신을 날려보내 몸통박치기를 하더라.

 밤이 될 때까지 계속됐지. 이윽고 마물이 높이 점프하더니, 그대로 밤에 녹아들듯 사라졌어.

 사내들은 잠시동안 꿈쩍도 못하더라. 이윽고 하나하나 줄줄이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지만. 승리의 환희도 의식도 없이, 그들은 벽이라는 역할로 돌아갔어.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울어버렸다고.

 마을 꼬맹이들이 '마물의 울음소리'라며 떨던 것은, 벽 사내들이 외치는 소리였어. 저 녀석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허락되는 때는, 마물과 대치할 때 뿐이었다고.

 난 전사가 되기로 했어. 뭣하면 용사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지.

 눈앞의 좁은 세상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을 확 뒤집어보이겠다고 맹세했어.

 뭐, 그 뒤로 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지.

 마을이 멸망해버렸어.

***

 "지난번에는 갑작스럽게 실례했어요. 다시 소개할게요, 저는 시스터인 키요리라고 해요. 위지크래프트 씨로부터, 여기 오면 이고 씨와 만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장소에 걸맞지 않는 시스터복을 입은 이 여자가 또 주점에 찾아왔다.

 위지 그놈, 하필이면 나한테 시스터를 보내다니. 여전히 성격 참 이상한 놈이라니까.

 "하루 씨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해요. 전 그녀의 친구예요. 그 연으로 당신을 알게 되었죠. 엄청 강한 마술사라 들었어요"

 아, 그 위지의 새 여자인가.

 지난번 숲에 갔을 때, 창녀를 데리고 왔길래, 드디어 여자 밝힘증이 뇌까지 맛탱이 가게 만들었나 했다. 그런데, 설마 창녀를 전투원으로 쓰길래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맛탱이가 갔다고 할 정도로 강한 여자였다. 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버리길래, 녀석의 딸인가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놈은 아니라고 말했다.

 '아직 꼬시는 중이야. 아무래도 나 말고 반한 남자가 있나봐. 반드시 빼앗아주겠지만'

 난 그 하루인가 뭔가하는 여자가 싫다.

 얼굴은 다소 볼만한 편이지만, 무엇보다 머리가 나쁘고, 입도 거칠다. 그런 주제에 자기는 모든 남자에게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나본지, 염치도 없이 참견을 해온다.

 내 문신에 대해서도 '나이스 타투─' 라는 둥 무슨 의미도 모를 소리를 지껄이며 만져댔다. 그런 여자는 처음이었다. 뭐냐고 그 녀석은.

 "이고 씨는, 강력한 결계도 사용한다고 하루 씨가 말했어요. 실은 저도 시스터로서 성결계를 배웠거든요. 아무쪼록 이고 씨의 기술을 가르쳐주실 수 없을까요?"

 그 여자의 친구였다는, 이 녀석도 대체 뭐냐.

 애초에 시스터가 '마술' 따위에 흥미를 가질 리가 없다. 가짜거나, 아니면 날 속이려고 수작부리는 거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스스로 구웠다는 쿠키까지 가져왔다.

 난 술을 들이키고는, 시스터를 손짓해서 부른다.

 다가온 아름다운 얼굴에 대고, 입 안에 머금었던 술을 한껏 내뿜어줬다.

 "지금 이게 서리 결계다. 알았으면 꺼져"

 시스터가, 젖은 속눈썹을 껌뻑인다.

 그리고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엉덩이를 노려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쿠키라는 놈을 발로 차서 날렸다.

 "어이, 놓고 간 물건이다. 꼬맹이 간식"

 또 고개를 숙이더니, 시스터는 엉망이 된 바닥을 정리하고 돌아갔다. 가까운 자리에 있던 생판 모르는 아저씨가, 피식피식 쪼개길래, 마술로 술을 펄펄 끓게 만들어줬다.

***

 내가 용사라는 놈을 목표로 진지하게 시련에 임하던 때, 세간은 진짜 '용사'가 등장했다고 떠들썩하더라.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 이세계에서 초대했다는 전승대로의 남자였다.

 그 녀석은 아직 꼬맹이인 주제에 엄청나게 강하다고 했지. 아무래도 '레벨300'이라던가, 그런 이름을 자칭하는 모양이더라. 검으로 그 녀석을 이길 수 있는 놈이 없다기도 하고.

 게다가 이런저런 다양한 것을 안다더군. 맛있는 밥을 만드는 방법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도, 전쟁이나 정치를 하는 방법까지.

 도시 놈들이 심취하게 된 부분도, 용사의 힘보다는 지식 쪽이더군.

 내용물이 꼬맹이라는 사실도 잊고,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니까.



 마을을 멸망시킨 것은 마물이 아니라 사람이었어. 우리를 향한 박해가 공격으로 변한 것도, 용사 꼬맹이가 말을 꺼낸 정책 때문이었지.

 통일과 단결. '마왕 타도'를 모두가 함께하자고.

 간단히 말해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한 백성 하나하나 모두 자기한테 힘을 빌려달라는 말이야. 그 과정에서 권력과 군사력 모두가 한 곳에 집중됐어. 반대하는 자는 배척하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만 권력을 나누어주었지.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더군. 난 정치 따위 잘 모르지만, 용사 한 명만 이득보는 그런 방식이 통할 정도라니, 도시 놈들의 아량은 어지간히도 넓으신가봐.

 우리는 세이가야 끝자락의 힘없는 민족이야. 수도 적고 마술을 쓰지. 그리고 숲속에서 사람이 간신히 살 수 있는 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장소를 구축했어. 마왕 공략에 발목을 붙잡기 딱 좋으며, 게다가 눈에 거슬리는 이분자로 분류하기도 편하지.

 그날은 비가 내렸어. 군대가 찾아왔나 싶더니, 순식간에 마을이 제압당했지. 놈들은 군사 훈련이라고 말했지만. 용사도 물론 그 안에 있었어.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건방져보이는 꼬맹이였지.

 "숲의 민족이라길래 요정 같은 귀여운 아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뭐야, 이 못생긴 것들은"

 어째서 비웃음을 당하는지 몰랐어. 그저, 이제부터 마을은 군의 주둔지로 사용할 테니, 도시로 이주하라는 말만 들었지.

 당연히 어른들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고. 도시에 가면 박해당할 테니까, 살아갈 수단도 없다고.

 그랬더니 놈들은 주둔지에 살게 해주겠다고 말했어. 앞으로는 마을을 빼앗은 군대를 위해 일하라는 말이었지. 그러면 지금까지처럼 생활할 수 있다고. 놈들에게 세금과 봉사를 바친다면.

 어른들 중 몇몇은 저항하다 살해당했어. 남은 남자들 중, 젊은 녀석들도 같이 살해당했지. 수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우리들 꼬맹이는 목숨을 부지했다. '여자와 아이는 죽일 수 없다'고, 용사가 폼잡으며 말하더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제 욕망을 채우고자 사용할 수 있으니 그랬겠지. 남자들을 죽인 것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건진 녀석은 우리 말고도 있었어. 벽 사내였지. 녀석들은 원래부터 다친 사람이었고, 싸우지도 못한다고 생각했나봐.

 하지만 난 알고 있었고, 계획도 세워뒀어. 녀석들은 마술을, 단순한 눈속임이나 문신 정도로 생각했거든. 우리에게는 긍지도 분노도 없다고 깔보면서.

 내가 마을로 가서 용사를 죽이겠다고, 벽 사내들을 모아 선언했어. 그러니까 마술을 가르쳐달라고.

 녀석들은 찬동해주더라. 내 목숨을 구해준, 그 사내를 제외하고.

 그 뒤로 몇 년이나 걸려서 마술을 배웠어. 가끔 군대가 찾아왔을 때는, 슬쩍 숲에 숨어서 지냈지.

 숲속에서 홀로 몇 달이나 지내본 적도 있다니까. 강해질 필요가 있었거든. 완력도 길렀지만, 무엇보다 마술이 필요했어. 놈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

 그렇게 결행할 날이 찾아왔어. 마을로 나가서 용사를 죽일 날이. 벽 사내들은 동행하겠다 말해줬지. 위험한 여행이 될 거라고.

 ……헷.

 아니, 웃기지 않냐. 지금의 난 마을에서 살며 위험한 숲을 향하는 모험자인데. 뭐지, 이거. 웃기네.

 전부 넷이었어. 그 벽 사내는 와주지 않았고.

 내가 여행을 떠나는 날에 그는 이렇게 말했어. '널 구해주지 말걸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그랬으면 숲에서 죽을 수 있었으니까'라고.

 그와는 그걸로 끝이야. 아무래도 조금, 뭐, 그렇지. 슬프지는 않았어. 그만둘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숲을 빠져나와서 걸었어. 이윽고 마을이 보였기에, 한밤중에 슬쩍 들어가, 어리고 몸이 가벼운 내가 식량을 훔쳐, 다음 마을로 서둘러 도망치고. 그런 식이었어. 도중에 뭐가 나와도 무섭지 않았지만, 마을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우리를 힘들게 했지.

 눈에 띄는 행동은 피하며 여행을 계속했어. 하지만 용사가 사는 가장 큰 마을에 들어갔더니, 아무래도 안에서 잠복할 장소가 필요해졌지. 눈에 띄지 않고, 우리를 알아보기 어려운 어둠이라는 곳이. 마을 외곽의 빈민가에 교회가 있더군. 그곳을 거점으로 삼고 숨어지내기로 했지.

 그래서, 중요한 용사가 사는 곳인데.

 그 땅의 영주였던 귀족인가 뭔가하는 부자의 저택을 제 집으로 삼고, 영주의 딸이나 마을의 미인들을 불러들여서는 남성 출입을 금한 집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

 아주 좋은 상황이지. 외부 경비만 제압하면, 안에는 여자밖에 없으니까. 곧장 언제 결행할지 회의했지.

 맑은 날이 계속되다 강풍이 부는 밤이 찾아왔어. 벽 사내들과 함께 경비가 마시는 물에 '양귀비박쥐의 피'를 섞었지. 그 정도의 색과 향은 없앨 수 있거든. 흙탕물을 정수해내는 마술이니까.

 다음으로 저택 주변을 결계로 감싸 불을 질렀어. 불에 타기 쉽게끔 마술로 덩굴을 만들어내 건물을 뒤덮었지. 물론 그 정도로 용사를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게다가 그 녀석은 내 손으로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나는 단창을 쥐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불과 매연은 결계로 내 몸을 감싸 막았지만, 대신 공기가 부족하기에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지. 신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었어.

 일은 잘 풀렸어. 그때까지는 말이야. 그래서 나는 용사를 살해하는데 '신속히 정리한다'는 얼빠진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어.

 불에 타 허물어지는 2층 침실에서, 놈이 검을 휘두르며 나타나더군. 놈은 나를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다음 순간에는 결계와 함께 나를 날려버렸어. 검을 이렇게, 간단히 가로로 베었을 뿐인데.

 창은 부러졌고, 결계도 산산조각이 났지. 나는 불에 탄 벽을 박살내며 밖으로 내동댕이쳐졌어. 왼팔과 늑골이 부러졌지만, 결계가 없었다면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겠지. 놈은 나를 두동강낼 생각으로 베었을 테니까.

 무리라고 알고는 있었어. 한 방에 눈이 띄였지. 놈과 나는…… 우리는, 결정적으로 무언가가 달랐어. 차원이 달랐지.

 하지만 도망치지도 못했어. 허벅지에 검이 쑤셔박혔거든. 채집당한 벌레처럼 날뛰는 내게, 놈이 '특이한 마물이네'라고 말하더라.

 "그 정도로 인간으로 둔갑한 줄 아냐. 콜록, 피부색이 이상하잖아, 너"

 난 모욕을 당했다 생각해서, 공포심도 잊은 채 노성을 질렀어. 마을을 빼앗은 것을. 동료를 살해한 것을. 그리고, 꼬마라고 봐줬던 것까지.

 그랬더니, 놈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너 같은 녀석은 모르지만, 내가 목숨을 건지게 해줬다면, 왜 감사하지 않는 거냐'라더라.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듯이 말이야.

 말이 통하지 않더라. 놈에게는 우리가 기르는 개 정도로 보이나봐. 동료를 죽이던 영역을 박살내던, 먹이만 주면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

 그런 놈에게 목숨을 구걸하거나 원망을 쏟아내봤자 소용없다고 깨달았지. 얼른 죽이라고 말했어. 놈은 내 허벅지를 관통하고 있던 칼을 뽑더군. 그대로 심장을 꿰뚫을 생각이었나본데, 내 허리춤에 매달린 수통에 시선이 박히더라. 매연으로 목이 아픈 것 같더라고. 놈은 수통을 꺼내들더니, 벌컥벌컥 들이켰지.

 그리고──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어. 목을 마구 긁어대고, 벌버둥쳤지.

 "이 새끼, 이거…… 독, 이냐……"

 독은 아니였어. 경비 놈들에게 마시게 한, 양귀비박쥐의 피를 섞은 물이지. 마술로 무미무취 상태로 해두었지만, 의식이 혼탁해지는 정도는 되게끔 섞어뒀거든.

 하지만, 용사가 괴로워하는 저 모습은 보통이 아니었어. 가끔 체질에 맞지 않는 녀석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로 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경련하며 고꾸라졌을 정도니까.

 설마해서, 심박을 확인해봤는데, 그 설마였어.

 죽었다. 용사는, 양귀비박쥐릐 피로 죽은 거야.

 어쩌면 이것도 이세계에서 온 인간과 우리의 차이점일지도 모르겠어. 조금 위험한 놀이를 위한 금지된 약이, 놈에게 있어서는 맹독이었나봐.

 하지만 이제는 확인해볼 방법도 없고,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나는 만약을 위해, 그리고 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알리기 위해, 부러진 단창을 놈의 심장에 내리박았어.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승리했다는 말이야.

 아니, 왜 그래?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그야 그렇겠지. 용사가 저주받은 민족의 꼬마한테 살해당했다는 말을 누가 믿어주겠냐.

 우리가 마을로부터 도망친 뒤, 놈들은 자신의 얼빠진 추태를 눈치채고 이야기를 각색했어. 자신을 용사라 칭한 꼬맹이는 사기꾼이었다고. 전부 꾸며낸 이야기라고.

 가짜 용사를 처리한 것도, 당연히 자신들의 공이라고 말야. '시민을 감쪽같이 속여 재산과 아녀자를 빼앗은 죄인을 참수했다'라는 이유라더군. 게다가 '죄인은 변경 민족의 마술을 사용해 사람들을 속였다'라는 허풍까지 섞어서. 전부 우리 탓으로 돌렸다고.

 숲속에서 도망쳤어. 마을은 전소됐고. 싸울 수 있는 자도 없었고, 벽 사내들도 차례차례로 살해당했지. 옛날에 날 구해준 벽 사내. 그는 마을을 지키려다 가장 먼저 죽었어.

 나도 거기서 죽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어째서 죽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더군. 아주 오래 전 어렸을 무렵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되새겨봐도, 어째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어.

 점점 더 아래로 흘러가. 난 그곳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말이지.

 숲에 숨어서 계속 생각했어. 원한밖에 없었지. 창을 갈며 숨을 죽이고, 세상 전부를 저주했어.

 거기서 또 만났지. 꼬맹이 시절에, 처음으로 만났던 마물. 뼈가 없는 말이야.

 나는 두렵지 않았어. 마물보다 무서운 경험을 잔뜩 했으니까. 결계를 치고 풀을 엮어 손쉽게 잡았지. 그리고 죽였어. 창을 정수리에 꽂아넣고, 후벼파서,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전신을 도려냈다.

 그때까지 마물은 두려운 존재이자 신이었어. 하지만 나는 용사도 신도 죽여버렸잖아. 나는 대체 무엇일까 생각했지. 그래. 마왕이야. 난 마왕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니까.

 비가 내렸어. 지금도 똑똑히 기억나. 차가운 비가, 마왕이 된 내 위로 끊임없이 쏟아졌어.

 추격하는 군대도 몰살했지. 숲에서 만난 마물도 짐승도 전부 죽이고, 그것들을 먹으며 연명했어.

 피로 문신을 새겼어. 날이면 날마다 마물과 가까워진다는 실감이 들었지. 이윽고 아무도 나를 쫓지 않게 됐어. 그래도 나는 숲속에서 살며, 가끔씩 나타나는 모험자 놈들을 골려주고, 군인이면 죽이기도 했지.

 놈들이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이나, 죽인 마물의 신체 일부를 장식품으로 삼아, 나는 내 옷도 마왕처럼 장식했어. 사람도 마물도 아닌 생물체가 될 생각이었지.

 그런 짓을 십 년 정도 했으려나. 겉모습은 완전히 마물처럼 보였을 거야. 말도 글자도 버리고, 그날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까.

 나에 대한 소문은 상당히 멀리까지 퍼진 모양이더군. 소문의 괴물을 쓰러트리고 명성을 드높이겠다는 모험자가 꽤 많이 찾아왔으니. 모두 되려 당했지만.

 그런데 그 중에, 나를 동료로 삼고 싶다는 놈도 있었어.

 당연히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는 놈도 때려죽이기로 마음먹었지. 하지만 그 녀석은 그리 간단히 어떻게 될 사내가 아니었어. 그 용사였던 꼬맹이랑은 또 다른, 짜증나는 노련함과 신중함과 영리함이 있었거든. 인간다운 강함을 지닌 사내였지.

 그게 바로 저 위지크래프트 바보자식이지만.

***

 시스터가 세 번째로 나타났을 때는, 아무리 나라도 조금 이야기를 들어줄까하는 마음이 생겼다.

 "성결계는 성수나 성목, 혹은 성인을 그린 그림이나 정화를 받은 자기 머리카락 등을 매개로 삼아, 미리 깔아두었던 마법을 해방하는 식으로 발동해요. 위지크래프트 씨는 '법과 술에 차이는 있어도 결계에 관한 원리는 같다'고 하셨어요"

 시스터는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설마하니, 내가 그런 것도 모르는 줄 아나. 또 얼굴에 술을 끼얹어주면 조금은 재밌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재능에 따라 쓸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된 마법과 달리, 마술은 연마를 통해 익힐 수 있다고 들었어요. 저도 배울 수 있다면, 성마법과 마술을 합쳐서 보다 강력한 결계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녀석 꽤나 재밌는 소리를 한다. 교회의 빌어먹을 마법과 우리 마술을 합친다니.

 어떤 쓰레기가 만들어질까, 그거.

 "임마, 바보 취급도 적당히 해라"

 술도 아깝다. 이년이 먹고 싶은 건, 아마도 주먹이 아닐까.

 그러나 내가 손을 올리는 것보다 빠르게, 술에 취한 아재가 얽혀왔다.

 "오우, 이고. 또 그 언니랑 같이 있냐. 오늘은 내가 대접하게 해달라고"

 매번 내가 하듯이, 시스터의 얼굴에 뭔 술을 끼얹는다.

 하지만 평소랑 다른 점은, 술이 그녀의 얼굴에 닿기 전에 튕겨나갔다는 점이다. 끼얹는 힘을 그대로 되돌려, 오히려 아재가 홀딱 젖어버렸다.

 테이블 위에, 어느샌가 떨어졌는지 머리카락 한 올이 올려져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이 자리를 뜬 뒤에는 언제나 머리카락이 떨어져있었다. 언제든 결계를 만들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고. 제 실력을 언젠가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망할 건방지긴.

 "이 새끼, 뭘 한 거야"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취객한테, 이번엔 내가 술을 끼얹어줬다.

 술을 매개로 한 결계다. 벽까지 날아가버린 그 녀석을 향해 엄지를 아래로 치켜주고 한 번 노려봐줬더니 슬금슬금 달아나버렸다.

 나 역시 마음만 먹으면 너를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사과할 기회를 줬을 뿐이다. 교회 따위가 쓰는 행실 바른 결계 같은 건 시시하기 짝이없다.

 시스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숙였다.

 "멋진 기술이예요. 제발 저를 제자로 삼아주세요!"

 진심이냐. 이 녀석은 시스터인 주제에 진심으로 내 마술을 원하고 있단 말인가.

 왜 그러지. 시스터는 시스터답게, 남자나 치료해주면 되잖아.

 "이 사실을 교회가 얼면 어떻게 되지"

 "아마도 파문이겠죠"

 "그래서 너한테는 무슨 득이 되는데"

 "강해지고 싶어요. 그뿐이예요"

 "그럼 나한테는 무슨 득이 있는데"

 시스터는 잠깐 경직하더니, '무슨 일이라도 할게요'라고 조그맣게 대답했다.

 얼굴은 예쁘다.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몸. 그걸 어떻게 써먹을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 한 번 시험해보고 결정해야겠군"

 "네"

 자는 용도로 쓰는 싸구려 숙소의 주소를 알려줬다. 내일 거기로 오라고. 머리카락 정도는 넘어가주겠지만, 결계로 쓸 수 있을만한 물건은 절대 가져오지 말라고 못박아뒀다.

 시스터는 '네'라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돌아갔다.

 솔직히 올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안기고 싶어하는 여자 따위, 있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성실하기 짝이없는 시스터는, 이제 막 해가 떴을 뿐인데, 굳이 차를 탈 도구까지 챙겨서 진짜로 찾아왔다.

 "친구한테 차 타는 법을 배웠거든요"

 그것도 세이가야 류의 흑차다.

 볶은 콩에 끓는 물을 따르고, 사과꽃을 띄운다. 이윽고 꽃잎이 펴질 즈음에 내 앞으로 가져온다.

 그리운 향이다. 하지만, 내가 알던 차는 아니다.

 "이런 건 내 고향에 없어. 직화로 껍질을 구운 콩을 미지근한 물로 우려낼 뿐이지. 이건 도시 놈들이 마을에서 마시기 위해 잔뜩 생색을 낸 방식으로 변형된 놈이야"

 마을이 군에 접수되었을 때, 거기서 여자들이 병사 놈들에게 내준 차를, '맛없다'면서 다시 타도록 시키는 장면을 봤다.

 흙탕물을 정수하는 데에도 꽤나 손이 간다. 양도 한정되어있다. 놈들이 버린 차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정말 귀중한 것이었다.

 "그, 그랬군요. 죄송해요"

 증오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든 여자를, 두들겨 패줄까 싶었다.

 하지만, 그리운 기억도 떠올랐다. 내가 시련을 뛰어넘을 때마다, '축배'라며 대접받은 차다. 문신과 함께 하사받는 명예였다.

 감상이라는 놈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나보다. 이 나를 수다쟁이로 만든다.

 진흙이 섞인 강의 냄새. 풀숲에서 올라오는 열기. 말린 콩이 불 속에서 튀는 소리.

 마물과 처음으로 만났던 때도, 벽 사내에 대한 일도, 마을을 잃은 것도, 용사라 불리우는 남자와 대면했던 시절도.

 위지크래프트와 한바탕 했던 그 나날도, 난 이 시스터 앞에서 고백이라도 하듯 처량하게 떠들고 있었다.

 전부, 이 망할 차 때문이다.

***

 그 시절의 위지는 당연하겠지만 지금보다 젊었고, 딱 봐도 도시 남자 스타일에 콧날이 선 미남이었어. 숲의 입구 근처에서 조무래기 마물이나 사냥하며 폼잡는 놈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막상 까보니 자식이 실력도 뛰어나서 함정에도 호락호락 걸려주질 않더군. 체력도 말도 안 되게 높았고. 검을 양손으로 쥐고 있을 때면 접근 자체를 못하더라.

 그런 놈이, 나하네 동료가 되어달라고 사정하잖냐. 처음엔 진지하게 죽여버릴 생각이었는데, 그 실력과 끈질김을 알게 되니 바로 질려버려서 도망치기로 했지. 그런데 그놈이 어디까지고 쫓아오더라고. 몇 날 며칠이라도 숲속을 따라오더군. 피부결도 고운 도시놈 주제에.

 "나랑 같이 마왕을 쓰러트리자고"

 자칭 마왕에게 하필이면 '마왕을 쓰러트리자'며 지껄이대.

 마왕은 나라고 놈한테 말했지. 그랬더니 위지가 엄청 웃더라고. '그런 이름을 대려면 진짜를 쓰러트린 다음에 해라'라면서.

 참 나, 개열받더라. 네가 나에 대해 뭘 알겠냐. 이 원통함을 알 리가 없지. 인간을 증오하고 증오해서 마왕이 된 거라고. 난 이미 마왕이라고.

 그런데 위지한테는 이기지를 못했어. 그놈이야말로 괴물이었지. 내가 물어봤어. 너 다른 세상에서 온 놈이냐고.

 "그럴 리 없잖아. 서쪽 태생이야. 마물 부류에 좀 원한이 있거든. 대체적으로 다 박살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용사의 전승이 진짜라면, 그놈도 동료로 삼으면 되지"

 난 용사를 안다. 괴물처럼 강한 놈이었지만, 마왕은 쓰러트리지 못했고, 나 같은 놈도 죽일 수 있는 놈이었다. 진짜 마왕이라니 쓰러트릴 수 없지. 거기 따라가줄 놈도 있을 리 없다고.

 "그 소문은 나도 들었어. 가짜 용사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네가 죽였을 줄이야. 점점 더 좋아졌는걸. 용사를 죽일 수 있다면, 마왕이라도 해치울 수 있을 거 아니냐"

 엄청난 놈한테 찍혀버렸지 뭐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를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단순명쾌, 마왕을 죽이는 것밖에 머릿속에 없는 놈이더라.

 그러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놈이지. 어떤 가능성이라도 사용하고. 너도 아마 스스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위지한테 떠밀려서 왔을 뿐이라고.

 안다고? 그럼 됐지만, 실수로라도 반하지 마라, 그놈한테 말이야.

 뭐, 그 뒤로 몇 번이나 겨뤄봤는데, 내가 가진 수는 다 밝혀져서 하면 할수록 지기만 하더라. 그래도 동료가 되는 것만은 거절했지. 난 더 이상 아무하고도 함께할 생각이 없는 데다가, 믿고 싶지도 않거든. 그렇게 위지를 거부했어. 그런데도 놈은 포기를 모르더군. 미쳐 돌아버리겠더라.

 함정과 결계를 걸어두고 숲의 암흑 속에 틀어박혀도, 마물 무리를 몰아서 붙여줘도, 놈은 전부 쓸어버렸어. 그러는 사이에 같이 거물을 쓰러트리거나, 아침까지 밤새 마시는 사이가 됐지. 그 뒤에도 투닥거리다가, 서로의 실력이나 생애도 알게 되고, 그리고 또 투닥거리고.

 어느 날은, 평소처럼 놈이 이기고나서, 나를 풀숲에 깔아눕히고 말하더군.

 ……아니, 뭐라고 말했는지는 뭐 됐다.

 아무튼 나는, 놈과 함께하기로 했어. 고집부리는 것도 지쳤거든.

 그로부터 삼십 년이 지났군. 동료가 몇 늘었다가 줄었다가 하면서, 겨우 마왕성 발치까지 왔지. 이제 곧있으면 위지의 꿈도 이루어진다.

 사실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잖아.

 우리만큼 나이를 먹으면, 원한도 흐릿하게 풍화되거든. 마왕도 도시 인간도, 딱히 안 죽여도 된다면 죽일 생각은 없어. 그냥 명줄을 갉아먹으며 살아왔다는 증거를새겨놓고 죽고 싶을 뿐이야.

 우리는 마왕성에 도달한 최초의 인간이 된다. 마왕한테 한 방 먹여준 최초의 사내가.

 위지 그 멍청이를 거기 세워줄 수 있다면, 난 그거면 충분해.

 알았냐, 시스터 아가씨.

 내가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기며 살아온 증거를, 그냥 낼름 받아먹겠다는 뻔뻔한 이야기를 태연히 늘어놓을 생각은 마라.

 너도 지옥을 맛봐줘야겠다. 거기서 살아남고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때는 이야기를 들어주지.

***

 꽤 긴 이야기가 되었는데, 다 말했을 때는 차도 완전 식어있었다.

 그 이상으로, 시스터가 측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원래부터 하얫던 낯빛이, 색이 사라진 것처럼.

 "이제 이야기는 충분하지. 얼른 벗어"

 내가 명령하자, 시스터는 일어서서 하얀 옷을 벗기 시작한다.

 생각했던대로, 남자를 기쁘게 만드는 몸이다. 지금까지도 남자한테 이 먹이를 뿌려대면서 이득을 많이 봤겠지.

 조금은 수치스럽기도 한지, 얼굴이 점점 빨개진다. 아니면 이제 곧 내가 할 짓을 상상하고 반응하는 건가.

 뭐가 됐든, 시시하다. 이딴 것을 무기로 삼아 살아남은 인생이라니.

 "조금, 제 이야기를 해봐도 될까요"

 시스터가 갑자기 뻔뻔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마 맨살을 드러냈기 때문이겠지. 발가벗으면 남자가 친절하게 대해줄 거라고 생각하나보다.

 "흥미 없어. 다 벗었으면 입 다물어"

 건방진 입을 닫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스터는 어째서인지 웃었다.

 자조하는 듯한, 혹은 날 비웃는 듯해서, 입술이 떨렸다.

 "……그런 식으로, 점점 아래로 흘러가는 거군요"

 "뭐?"

 "알아요. 저희도, 언제나 그곳에 있으니까요"

 시스터는 긴 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그럼 당신이 해준 이야기의 감상은 어떤가요?'라고 중얼댄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엄청 무서운 이야기였어요. 정말로. 정말로, 당신에게는 보이지 않았나요? 아니면, 안 보이는 척을 한 건가요?"

 종교 문답이라고 시작했는지, 종잡을 수 없는 질문을 던져놓고, 시스터는 말끝을 흐렸다.

 "당신의 이야기에는, 여성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난 말문이 막혔다.

 "이고 씨에게도 어머니가 있으시죠. 당신이 시련을 뛰어넘어서 기뻐해주셨을 어머니가 있으실 거예요. 그런데 당신의 이야기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어요"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모르거든. 가족을 만들지 않는 마을이었어. 남자와 여자는 일정 나이가 되면 따로 떨어져서 살거든. 남자는 전사라고 말했지"

 "그럼 여성의 역할은 뭔가요?"

 "꼬맹이 돌보기랑 밥 짓기가 일이지.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잖아"

 도시나 마을이나 여자의 역할은 똑같다. 집에서 소유하는가, 모두가 공유하는가의 차이밖에 없다.

 "이고 씨의 마을이 군에 접수된 다음,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군의 소유물이 됐지. 여자는 살해당하지 않아서 좋겠더라. 써먹을 곳이 있으니까"

 "당신의 어머니도 그 안에 있었겠네요"

 "그렇겠지"

 시스터는, 콧김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몹시 강한 눈빛이다.

 "당신이 용사에게 복수하러 갈 때"

 교회를 거점으로 삼았다고 했죠, 라며 시스터가 날 바라본다.

 그래, 라고 대답한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러냐고.

 "그곳에도 시스터가 있었을 텐데요. 빈민가의 교회라면, 아마 그 지구에서도 숙련자들이"

 "그래, 있었지. 할멈이 둘. 난 흥미 없었지만, 벽 사내들이 좋아했지"

 일단은 여자였으니까.

 죽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해줬더니, 시스터의 오른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저택을 태울 때 있던 여성들에 대해서도,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시죠?"

 그러고는 다시, '아래로 흘러가는 거군요'라고 말한다.

 난감해졌다고, 나도 생각했다.

 "당신은 스스로 차별당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품고 있으셨나본데, 그런 당신에게 차별당하며 살아온 자들도 있어요. 태어난 곳도 피부색도 관계없어요. 여자로 태어났다는, 단지 그것만으로"

 "역할이 있잖아. 신체에 차이가 있으니까. 그런 거라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포기했었죠. 아니, 포기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가르쳐준 사람이 있어요. 역할이 다르더라도, 신체가 다르더라도 좋다고. 그런 이유로 차별당하면서 참는 건 잘못됐다고"

 "야, 아까부터 뭔 소리야. 네 이야기 따위 흥미 없다고 아까 말했잖아"

 "그렇게 말을 막는 것도, 이제 못 참아요!"

 시스터는, 커다란 가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발가벗지 않으면, 무엇 하나 손에 넣을 수 없다. 이야기조차 들어주지 않는다. 당신은 이성에게 '벗어'라고 명령당해 전라가 된 적이 있나요? 사람 앞에서 외설스런 말을 들은 적은요? 온종일 끈적한 시선으로 품평을 당하는데, 그게 저희 잘못이라는 듯이 멸시받는다구요.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멋진 남성도 있다구요. 그런데 매일같이 상처입을 말만 큰소리로 외치면서, 다치기만 하고!"

 "그럼 어쩌라고. 넌 남자가 나쁘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나한테 해서──"

 "저희에게 마왕을 쓰러트리게 해주세요!"

 갑자기 얼빠진 말을 하길래, 난 얼이 빠져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맛이 간 시스터도, 역시 부끄럽기는 한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마왕을 쓰러트리고 싶어요. 저와 하루 씨가. 여자의 손으로. 여자도 할 수 있다고 온세상 여성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남성들이 다시 보게끔 만들고 싶어요. 저도 천박하고 유치한 꿈이라는 것쯤은 알아요. 그래도, 그 정도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세상을 바꾼다.

 그건 그야말로 용사의 일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꿈꿔왔던 풍경이다. 그렇지만 그걸, 여자가 한다고?

 바보같은 소리다. 잘도 그런 터무니없는 공상을.

 "강해지고 싶어요. 마왕을 쓰러트리고 세상을 바꿀 정도로요. 그게 무리라도, 다음 세대 여성들이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지금은 조금이라도 힘이 필요해요. 목소리를 내서 불리우는 인간이 되고 싶어요. 자신이 없는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요"

 시스터는, 큰 소리를 치고는 호흡이 흐트러졌는지, 어깨를 들썩인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실례되는 말을 해서 죄송해요. 이제 아무 말도 안 할게요. 당신 말에 따를게요. 뭐든 할 테니, 부디, 저를 제자로 삼아주세요. 부탁드려요"

 나는 한숨을 쉬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맸다.

 웃기지 말라고. 어떻게 할 거냐, 이 분위기. 이렇게 만들어놓고 '자 마음대로 해라'라니, 이년 진짜 분위기 파악 못하는 여자구만.

 천장을 우러러보고,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더니 되려 웃음이 나왔다. 뭐냐고, 이거. 설마하니, 이 내가 여자 따위한테 감탄해버렸나.

 세상을 바꾼다. 숲속에서 홀로 이를 갈던 내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이 여자도, 내게 있어서 위지와 같은 존재와 만난 것이다. 그 하루라는 여자. 그래, 분명 그놈의 딸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고, 젠장.

 시시하구만, 진짜로.

 세상이란 말이야.

 "그래, 그럼 시작해볼까"

 일어나서 옷을 벗는다. 시스터는 '읏'이라며 작은 목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전부 벗은 다음 속옷까지 벗어던지고, 긴장한 시스터의 어깨를 잡아 고개를 들어올린다.

 커다란 눈동자의 주변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얼굴이다. 내 몸은 문신 투성이다. 마물이 되기 위한 모양. 인간을 버린 남자의 증표. 시스터 같은 일을 하는 인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혐오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제대로 봐. 구석구석까지 빠짐없이"

 이를 앙물고 눈을 치켜떠서는, 말한대로 전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라본다. 고간 근처를 빠르게 통과해, 그대로 자기 발치로 시선이 가버린다. 부끄러웠는지 가슴까지 빨개졌다.

 난 만족하고 그녀로부터 떨어졌다.

 "좋아, 봤지. 이걸로 쌤쌤이다. 널 발가벗게 만든 몫은 됐겠지"

 "네?"

 "그리고 부족한 몫은, 네가 원하던 것으로 돌려주마. 일단 결계를 배우고 싶댔던가? 그래, 좋아. 가르쳐주지"

 시스터는, 아니, 키요리라고 했던가.

 키요리는,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동자를 크게 떴다.

 "왜 그래? 그게 목적 아니었어?"

 "어, 어어, 그렇긴 한데요, 괜찮으신가요?"

 "말했잖아. 가르쳐줄게"

 "그 조건은……"

 아, 그거 말인가. 키요리의 커다란 가슴을 슬쩍 보고나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네 말대로, 난 여자 따위 평생토록 흥미를 가져본 적 없거든. 처음부터 너한테 손댈 생각도 없었고. 성격에 안 맞거든"

 "네?"

 뭐, 놀라도 무리는 아니지. 위지한테도 말한 적 없는 내 비밀이다.

 남성 사회에서 자라고, 그 벽 사내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고, 그리고 운명의 파트너와 만나기까지, 내 마음이 여자에게 가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내 영혼은 그 사내만의 것이다.

 즉, 네 알몸에는 일절 흥미 없단 말씀.

 "난 남자한테밖에 반하지 않아. 여자를 안고 싶다고도 생각 안 하고. 오히려 여자의 알몸 따위, 뭔가 말캉말캉해서 기분 나빠. 그래서, 사실은 너도 발가벗겨서 밖으로 쫓아내줄 생각이었거든. 앞으로는 그렇게 쉽게 남 앞에서 벗어던지지 말라고"

 "…………"

 호오.

 키요리의 표정이, 점점 얼빠진 모양새로 변한다.

 이 녀석은 이 정도로 힘을 풀어두는 편이 남자한테 잘 먹힐지 모르겠다. 그리고 화장도 내가 조금 고쳐주면. 미적 감각이 부족한 꼬맹이인 모양이니까.

 얼른 교회에서 파문당해주면, 옷도 내가 손봐줄 텐데.

 "자, 잠깐만요. 그럼 어째서, 당신까지 벗은 건데요?!"

 "사죄의 전라지. 너만 벗게 해버리면 확실히 공평하지 않잖아. 그 정도는 배려는 해줄 수 있다고. 네 마음에 경의를 표한 셈이라고나 할까"

 "그런 배려를 해줄 수 있다면, 일단 옷부터 입게 해달라구요. 그 덜렁덜렁거리는 것도 가리구요!"

 키요리는 양손으로 몸을 가리더니 그 자리에서 웅크렸다. 진짜 가슴 크네. 기분 나빠라. 난 흥미 없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뭐, 다른 남자가 보면 꽤나 매력적인 여자겠지. 위지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더니 질투나지만.

 "자, 그럼 먼저 매개를 다루는 법부터 설명해주지. 잘 들어라 키요리. 마술은 마법에 비하면 매개가 주는 영향이 강해. 이건 중요한 기본이라 생각하고──"

 "그러니까 옷을 입은 다음에 하라구요, 스승님!"

***

 그럴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역시 도박이었다.

 위지가 딴 몫으로 한 잔 사게하고, 잔뜩 불만을 토로해줬다.

 "헤에, 의외로 잘 되는 모양이구만. 삐뚤어진 이고 할배 치고는 별일이잖아"

 "웃기는 소리. 말도 안 되게 성실해 빠져서 매일같이 멋대로 수업해달라고 떼쓸 뿐이라고. 잘도 그런 성가신 여자를 떠넘겼겠다"

 "최근 술을 줄인 이유도, 그 계집한테 설교당해서 그렇다며. 시스터는 남의 건강까지 꼬치꼬치 참견하는 게 일이니까 뭐"

 "그럴 리 있겠냐. 이 내가 고작 제자의 불평에 따를 리 없잖아. 그냥, 하나하나 시끄러워서 좀 줄였을 뿐이야"

 위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얼굴 근육을 잔뜩 써가며 웃었다.

 주름투성이가 되어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진심으로 웃는 거다.

 "설마, 그 이고가 말야.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난 엄지를 아래로 향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전부 네놈 탓이잖아. 그런 꼬마 계집까지 휘말리게 만들고.

 "자 그럼, 장기말도 모였겠다. 전에는 하루가 쫄아버려서 가지 못했지만, 다음에야말로 마왕성까지 처들어가자고. 기합 넣고 기다려라, 이고"

 즐거운 듯이 떠들기는.

 넌 좋겠다, 흔들림이 없어서. 날 사로잡았던 그날로부터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 반짝이는 눈으로 오직 꿈만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이 말려드는 데에는 신경도 안 쓰지.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결국 이런 늙은이가 될 때까지 어울려주고 말았다. 그래도 너와 여행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괜찮겠냐, 위지 할아범"

 "아앙?"

 "우리가 지금껏 몇십 년이나 걸려서 개척해온 길을, 저 아가씨들한테 통째로 물려주는 셈이잖아. 게다가 저 녀석들, 마왕은 고작 통과의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사회적 약자의 지위 상향이네 뭐네, 어째 복잡한 일에 이용하려는 것 뿐이란 말이지"

 "헤에, 듬직하잖아. 젊은이가 그 정도는 해야지"

 늙은이가 그리는 미래는 미래가 아니라며, 위지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까지면 됐다고.

 "마왕을 쓰러트리는 건, 내가 아니라 하루야. 거기까지 보내줄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헛짓거리가 아니었다고 납득할 수 있다면, 이 목숨이 다하더라도 만족이야"

 아아, 그러냐.

 그 하루인지 뭔지하는 꼬마한테 그렇게까지 진심이었구나, 너.

 "기대되는구만, 이고"

 위지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본다. 제대로 된 녀석이라면 발도 안 붙일 숲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리운 고향이다. 죽으려거든 그곳이 좋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바보가 아니라면 이 녀석과 함께 지내지 못한다. 나도 지금껏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니, 우리도 살아서 돌아오자고"

 위지 치고는 놀란 표정이다. 뭐, 그렇겠지. 나도 의외다. 마왕을 쓰러트린 뒤에도, 할 일이 생겨버리다니.

 "마왕을 쓰러트리는 건 네 여자일지 모르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내 여자야. 그걸 지켜봐줘야 하거든. 일단, 스승이기도 하니까"

 위지가 한쪽 어깨를 들썩이며 휘파람을 분다. 나는 평소처럼 엄지를 아래로 향하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뭐, 그 성실하기 그지없고 요령도 안 좋은 제자니까, 어차피 내 수명으로도 충분하겠지. 멋대로 기대 좀 해보마.

 "이고"

 술잔을 기울이며, 물장구를 치고 놀면서 위지가 말한다.

 "내가 널 꼬드겼을 때 했던 말 기억해?"

 ……잊을 리가 없다.

 영혼을 떠맡겠다고 이놈은 말했다. 세상을 원망하고, 마왕을 칭하던 내 저주를, 네 검으로 베어주겠다고.

 그딴 것, 벌써 옛날옛적에 사라져버렸다고. 덕분에 말이야.

 "기억할 리가 있겠냐"

 "것도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니까"

 "삼십 년이야"

 "마왕이 사라지면, 우리도 한가해지겠어"

 "그렇겠지"

 "그런데 말야, 마왕이 사라졌다고 해도,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마왕이 되고 싶어하는 놈이 바글바글 튀어나오겠지. 어차피 우리한테 얌전히 은거하기란 불가능해. 자잘한 일은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그놈들을 때려눕히는 것을 우리 생업으로 삼는 건 어떠냐?"

 "헷"

 멋대로 해라, 위지.

 넌 죽을 때까지 내 용사니까.

댓글 1개:

  1. 반전 ㅎㄷㄷ 게이라서 여자에 관심이 없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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