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특전 페이퍼 : 첫 크리스마스
"그래서, 그 '크리스마스'라는 게 뭔데?"
평소처럼 둘이서 타올을 개고 있자니, 또 뭔지 모를 소리를 꺼냈다. 뭔지 물어봤더니, 하루쨩은 '으악─'이라며 화내기 시작했다.
"역시 크리스마스 없구나! 진짜 노잼 세계네. 신이 너무 무능하잖아 부처랑 교대하라고!"
하루쨩은, 신이라던가 세계를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불만을 토로한다. 언젠가 천벌을 받는 게 아닐지 걱정된다.
"루페쨩, 들어봐. 크리스마스란 일 년 중에 가장 쩌는 이벤트라구. 뭐랄까 이렇게, 반짝반짝하고, 두근두근해서, 모두 파티피플이 되는 날이라니까. 최고라구"
게다가 설명이 형편없어서 들어봤자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하루쨩이 이렇게 열성일 때에는, 대체적으로 재밌는 일이 시작된다는 전조다. 그 점은 믿을 수 있다.
"그렇구나. 나도 그, 파티피? 가 되고 싶네─"
"그치, 그치? 그렇지, 나도 안다니까. 그럼 개최 결정이네!"
하루쨩은 점점 기분이 좋아져서는, 크리스마스 노래라는 것을 부르기 시작했다. 즐거워보여서 다행이네.
슬슬 일하자.
──나중에, 나는 하루쨩의 제안을 간단히 받아들인 것을 후회했다.
'크리스마스'에 필요하다면서, 설산에 끌려가, 커다란 나무 아래서 '지금부터 이걸 베려고 해'라는 말을 꺼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집이라도 지으려고?"
"설마─. 루페쨩, 재밌는 말 하네─"
양손에 전에 내가 짜준 장갑을 끼고, 손을 풀며 하루쨩이 말한다.
"이걸 말이지, 가게 중앙에 딱 세워두고 장식하는 거야. 꼭대기에는 별도 달고!"
나는 하루쨩이 가지고 가겠다는 나무를 올려다봤다. 정말 별에 닿을 듯한 높이다.
재밌는 건 하루쨩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봐도, 가게에 들여놓을 크기가 아니잖아?"
게다가 우리 둘이 옮길 수도 없다고 말했더니, '그런가─'라며 풀이 죽었다.
"으음, '크리스마스'란 나무를 장식하고 그래?"
"그렇긴 한데, 나무 주변을 이렇게, 반짝반짝하게 만들거든. 귀엽게"
"작은 나무는 안 돼?"
"되긴 하지만, 클수록 흥이 오르지!"
으─음.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걸.
그래도 하루쨩이 기대하는 모양이니, 뭔가 생각을 해봐야지.
"맞아. 우리 손님 중에 연성술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거든. 집에 나무를 엄청 기른다고 했으니까, 빌릴 수 있지 않을까?"
"거짓말, 진짜! 그걸로 가보자!"
산에서 곧장 돌아와, 손님의 집으로 향한다. 내 말은 뭐든 들어주는 사람이라, 가져가고 싶은 만큼 빌려주었다.
수레도 빌려줘서 가게까지 둘이서 옮겼다. 조금 무거웠지만, 하루쨩은 팔팔했다.
즐거운 일을 시작할 때는, 준비 과정도 즐겁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 마을에 오기 직전까지, '문화제'라는 지방 축제 준비를 했다는 듯하다.
하지만 시작하기 전에 이사를 온 모양이다. 그 아쉬움이 남아서 그런지, 언제나 다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한다.
"루페쨩, 괜찮아? 안 무거워?"
뒤에서 수레를 밀며, 괜찮다고 대답한다. 나도 집에 있던 시절에는 아버지 일을 도와, 이렇게 초목을 나르곤 했다. 양 돌보기는 내 담당으로, 칭찬하거나 혼내서 말을 잘 듣게 하는 건 자신 있었다.
빚 때문에 팔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양치기의 아내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언제나 이렇게 어울려줘서 고마워. 루페쨩은 진짜 상냥하다니까─"
네게는 아무것도 없으니 웃어야 한다고, 팔려가던 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는 나에게 웃는 것 외에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다고 알려줬다.
엄마의 손은 잔뜩 터서, 볼을 쓰다듬어줄 때면 조금 아팠다.
"그렇지 않아"
"맞다니까~. 정말, 엄마 같다구!"
내가 웃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도 웃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혼자서는 절대로 웃을 수 없으니까, 친절한 척 하고있을 뿐.
난 전혀 상냥하지 않아. 엄마는 지금도 싫어하고. 자기도 우는 주제에, 웃으라고 말하는 엄마라니 난 되고 싶지 않아.
"아, 그래. 씨름부한테도 가봐야지. 중요한 걸 부탁해놔야 하니까!"
하루쨩에게도, 그때 일은 말한 적 없다.
그 이후 하루쨩은 씨름부 씨와 회의라며 나갔지만, 나는 거기까지 갈 체력이 안 되서 사양하기로 했다.
침대에 발을 뻗고, 꾸벅꾸벅 졸며 생각한다. 결국, 크리스마스란 뭘까? 집 안을 숲으로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가? 이상한 행사네. 하루쨩이 좋아할 법해.
아, 맞다. 생각나서 침대 밑에서 재봉 도구를 꺼낸다. 빨간 삼각모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었지.
상자를 열자, 풀어진 목장갑이 나왔다.
내가 쓰던 낡은 것을, 동생의 양말로 다시 짜주려다가, 도중에 그만뒀던 덩어리. 그때는 내년에도 마을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분명 더 이상, 이 사이즈는 신을 수 없을 정도로 발이 커졌겠지.
어떤 남자가 되었으려나.
그 뒤로 며칠정도 지난 휴일, 가게를 빌려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휴일이지만 단골 손님들도 초대하고, 음식도 준비했더니, 생각 이상으로 축제처럼 돼서 깜짝 놀랐다.
우리끼리 옮겨온 나무도 반짝반짝 장식되었다. 꼭대기에 별까지 있고.
"그럼 다들, 합창합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루쨩이 머리에 나뭇가지 같은 것을 꽂고, 코에 빨간 열매까지 단 모습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마담은 살짝 난처하다는 표정이다. 아마 요리를 전부 무상으로 제공해주었을 씨름부 씨는, 똑같이 나뭇가지와 열매를 꽂고 있었다. 싫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역시 살짝 지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점점, 하루쨩의 기세에 어울려 모두들 흥이 올랐다.
마담은 손님과 오랜만에 내놨다는 비장의 식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씨름부 씨는 아가씨들 사이에서 케이크가 호평인지라, 한창 둘러싸여 얼굴을 붉히고 있다.
하루쨩은 별난 애다.
다들 아는 상식을 모르기도 하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갑자기 꺼내기도 한다.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
그런 아이가 이런 일에 어울린다고는 생각도 못해봤다. 나는 어쩌면 그녀가 도중에 도망가더라도 곤란하지 않도록, 이것저것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루쨩은, 수없이 실패해서 침울해하더라도 금방 다시 일어나고, 자기가 먼저 포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근성이 살짝 위험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열심인 걸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루페쨩, 어때?"
슬금슬금 다가온 하루쨩이, 등에 숨기고 있던 선물 상자를 꺼내들었다.
열어봤더니, 다양한 털뭉치가, 크리스마스 나무처럼 형형색색으로 들어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날이야"
"어, 그랬어? 크리스마스란, 그런 것도 하는구나?"
"오히려 이게 메인이지─"
"못 들었는데. 아무것도 준비 안 했다구, 나!"
"이히히. 말하는 거 까먹었어, 미안"
분명 거짓말이다. 깜짝 놀래켜줄라고 비밀로 했구나, 이 녀석.
"항상 고마워.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루페쨩 덕분이야!"
쑥쓰럽다는 듯이 말하는 하루쨩을 보니, 내 볼까지 뜨거워진다. 정말─, 치사하잖아.
"내년은 선물 교환하자?"
하루쨩은, '알았어'라며 웃었다.
꼭이야?
"자, 물론 다른 모두에게도 선물이 있다구요─. 선물은 물론 그 사람, 미스터 크리스마스, 산타클로……"
"우와아아아앗!"
갑자기, 벽난로 안에서 누군가가 떨어지더니, '뜨거워어어엇!'하며 소리지르면서 굴러나왔다.
평소 이상으로 빨갛게 된 치바 군이었다.
"잠깐, 치바. 바보 치바야. 선물이 타고 있잖아. 어쩔 거야, 키요리가 필사적으로 구운 쿠키 오백 개!"
"아니, 그 전에 왜 난로에 불을 붙여뒀냐고. 산타 씨가 타 죽을 거 아니야"
"겨울이니까 그렇지. 그보다 평범하게 현관으로 오라고. 산타가 진짜 굴뚝에서 들어오는 연출은 실제로 본 적도 없잖아─, 이러니까 크리스마스 파티도 안 해본 남자는!"
"매, 매년 했다고, 가족끼리 말야. 반에서는 고고하게 지냈으니 참가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잘 모르겠지만, 또 평소의 말싸움이 등장하자마자 시작됐다. 사이 좋네, 이 두 사람.
치바 군은, 내가 만든 빨간 모자도 태워먹었고, 굴뚝을 타고 내려와서 양말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뭘 하고 싶은 건지, 정말 알 수 없는 애라니까.
"어, 어라? 엄마, 미안……"
지긋이 보고 있던 날 보더니 화났다고 생각했는지(딱히 신경쓰지는 않지만) 치바 군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기 시작했다.
하루쨩이나 키요리쨩에게 부탁받아서 하고는 있지만, 이 애는 살짝, 처벌이 너무 잘 먹히는 면이 있다.
마치 엄청 혼났을 때의 동생 같아서, 나도 곤란하다니까.
"이제 됐어. 또 양말 짜줄 테니까, 다음부터는 소중히 다뤄줘"
"이예─이!"
"루페쨩, 너무 관대하다니까!"
우리 '야상의 청묘점'은, 오늘 휴일인데도 평소보다 북적북적하다. 다들 행복해보여서,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이랑 크리스마스를 보냈다고, 엄마한테 편지라도 써볼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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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은 엄청 좋아하지만, 요즘 축구에 푹 빠진 느낌이라, 별로 놀아주지 않는다.
자꾸 그러면 바람피운다고 말해줬는데, '하지 마'라면서 키스하면서 어물쩡 넘어가버렸다. 저거 치사하잖아.
나도 학교 축제가 가까워져서 바쁜데.
스테이지 발표도 해야하고, 미스콘에도 반 대표로 나가고, 둘 다 우승을 노리고 있다.
다 같이 학교에 남아 준비하는 것도 재밌는데, 축구부는 대회가 가까워졌다고 준비 면제처럼 돼서, 남친은 이 즐거움을 하나도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이거 엄청 중요한 문제인데, 남친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라, 괜히 얄미워진다.
노트를 펼치고, 녹초가 된 얼굴을 파묻는다.
"아까부터 뭐해? 뭐 숙제라도 있었어?"
앞자리에서 핸드폰을 만지던 아야카가, 내 머리카락을 사악 매만진다.
"미스콘 원고 쓰는 중이었어. 그거 자기소개도 해야 하잖아"
"너 성실하구나? 그거 지금은 그냥 떡밥콘이잖아. 옆 반은 남자가 나온다고 하던걸"
"아니, 왜 미스콘인데 남자가 나와?"
"그냥, 여자애 외모가 어쨌네 저쨌네 한다고, 작년부터 선생님들 사이에서 말이 나왔다더라고. 그래서 올해부터는 외모 뿐만 아니라, 축제를 떠들썩하게 해줄 여학생이나 여장한 남학생을 뽑는다던데"
"그게 뭐야? 나 추천받았을 때는 그런 얘기 없었는데. 왜 구경거리 콘테스트에 나가야 하냐구"
미스콘이니까 귀여움으로 승부하란 말이야.
모르는 사이에 개그 콘서트가 됐다니, 뭐, 그럭저럭 싸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는데, 싸우기 싫어졌어.
"누구야, 우리 반 축제 위원. 걔 책임 아니야?"
"나도 모르겠는데, 저기 쟤네들 아니야?"
아야카는 교실 구석 집단을 가리킨다. 카드 게임 같은 걸로 수수하게 놀고 있는 구역이다.
저쪽 애들, 몇 번인가 말을 붙여본 적은 있지만, 웃으면서도 눈은 마주치지 않는단 말이지. 나를 피하는 느낌이 든다.
"무리야, 아야카. 내 대신 말 좀 해줘"
"뭐야, 너가 해"
후─. 이제 몰라. 당일에 취소하자.
모처럼의 축제인데, 재밌는 거 아니면 하고 싶지 않아.
"하루, 웃기잖아. 뭐냐구 이 '나의 장점 : 근성이 있다'라니. 네 근성이라니, 난 본 적 없는데"
"시끄러"
중간까지 적어놨던 자기소개문도 꾸깃꾸깃 구겨버렸다.
나의 단점 : 감정적이다.
"그보다, 하루. 나 축제 전까지 남친 만들고 싶어!"
"어쩌라고. 후딱 만들면 되잖아"
"가능했음 이 고생 안 하지─"
연애 활동 중인 아야카는 머리를 그러올리더니, 작위적인 한숨을 쉰다. 그 시선은, 남학생 그룹에 있는 사이토를 보고 있다.
그는 이쪽을 신경쓰지도 않았지만. 아야카는, 이번엔 진심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이토는 평소엔 눈에 띄지 않는 주제에 의외로 운동 잘 하는 녀석이라, 운동회에서 대활약을 했다. 덕분에 여름 사이에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폭 오른 남자다.
"진심이야?"
내가 묻자, 아야카는 미묘한 미소를 띄우며 '사귀고 싶기는 하려나'라고 대답했다. 헤에─. 그렇구나.
"축제를 함께 즐겨줄 남친이 좋다구~"
"이해해~. 그보다, 내 남친, 진짜 축제 패스할 것 같단 말이지"
"헤어져 헤어져. 나랑 남자나 찾자고"
"아, 저, 미안…… 둘 다, 잠깐 괜찮아?"
카드 게임하던 남자애 중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내 핸드폰에 카톡음이 울렸다.
볼까 생각했던 순간, 사이토가 이쪽을 의식하길래 그만뒀다.
"나 화장실 좀"
아야카는 도망치지 말라고 말했지만, 네 앞에서는 아마 못 볼 내용이거든.
***
화장실에서 카톡을 확인한다.
역시, 사이토한테 왔다.
'방금 치바가 말했는데, 방과 후에 장 보러 간대. 코야마도 갈 거지?'
반에서는 유령의 집을 하기로 했다. 그쪽은 수수한 작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일이라는 느낌이라, 난 쇼핑반인지 뭔지하는 한가해보이는 쪽을 적당히 맡았다.
그나저나, 무거운 짐을 여자애한테 들게 하지는 않아서, 나설 차례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빠질게 좀 봐줘'
'미안ㅋ 이거 전원 참가거든!'
운동회 뒷풀이에서, 여자애들이랑 같이 사이토랑 카톡 친추를 했다. 꽤 빈번하게 카톡 보내길래, 의외로 SNS에서 시끄러운 남자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나한테만 보낸 모양이다.
최근 반에서 다 같이(일부 제외) 놀러 갔을 때도, 어째 돌아갈 때는 단 둘만 남아서 손을 잡기도 했고.
"남친 있는데 말이지"
그때도 난 분명하게 말했다. 사이토는 '나도 알아'라면서,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남친은 축구부 원정중. 시원하고 좋은 느낌의 밤. 왠지 그때의 사이토는 운동회에서 잘나갈 때보다 좋길래, 뭐, 손 정도는 괜찮겠지 해서 역까지 같이 갔다.
그거 뿐이었는데.
'짐은 들어줄 테니까 안심하고 ㅋ'
그래도 역시, 잡지 말걸 반성중이다. 너무 들이대게 되어버렸다.
'축제, 괜찮으면 나랑 같이 다닐래?'
가벼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 딱히 상관없지만, 쉬운 여자라고 생각되면 평범하게 열받는다.
그래도 아야카는 아니지만, 축제는 즐기고 싶다. 남친 부재는 조금 쓸쓸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다.
'야 남친. 오늘 일정은?'
사이토를 일단 무시하고, 남친한테 톡을 보낸다.
즉답으로, 축구공 모양의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
나랑 아야카랑 사이토, 그리고 별로 교류가 없었던 애들. 의외로 꽤 많이 왔고, 역시 나 없어도 됐잖아.
"치바 리더. 우선 뭘 살까?"
"어, 포스터칼라랑 A0사이즈 종이"
"뭐야 그게. 어디서 파는데?"
"근처에 자주 가는 화방이 있으니까……"
사이토는 축제 위원 같은 남자애들이랑 재밌다는 듯이 떠들고 있다 싶었는데, 맨 뒤에서 설렁설렁 걷고 있던 나와 아야카 사이에 끼어들었다.
"웃기지 않아? 치바, 자주 가는 화방이 있대. 술집 아니냐고"
"뭐야 그거, 웃기네~"
웃기기는 커녕, 애초에 화방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야카는 아마 더 모를 테고. 그런데 사이토의 어깨를 치면서 웃고 있다. 나도 일단 맞춰주며 웃었다.
"뭐, 쟤네들 잘 아는 것 같고, 우리는 중간에 어디서 쉬지 않을래?"
사이토가 아야카와 나를 슬쩍 꼬셔댄다.
짐은 나한테 맡기라지 않았나?
"에~. 하루, 어떡할까……?"
아야카는 그럴 생각인가보다.
난 이것저것 다 귀찮아져서, 이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친구, 남친, 인기.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도, 익숙해졌고, 질리기 시작한 점도 있다.
그 말은 즉, 난 고등학교에서 가장 성공했다는 뜻이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진짜 최악의 상황에 놓였던 걸 생각하면, 꽤나.
하지만, 이것도 까딱 실수했다가 쉽게 무너져버린다고 알고 있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 '시험해볼까?'라는 심정도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사이토의 손을 잡고 '가자'며 둘이서 사라지면, 아야카는 분명 순식간에 친구들 사이에 소문을 낼 거다.
남친은 당황해서 와줄 테고, 사이토는 어떡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한테 손댄 것을 후회하게 될 테고. 그래서 축제가 끝날 즈음에는, 어찌저찌해서 난 외톨이가 되어있을 거다.
그런데도 그게 뭐 어쨌냐는 마음이 피어올라서, 우와─앗 한 심정이 돼서, 이제 됐다고, 다 망가트려도 상관없잖아 학교 따위 고작 삼 년, 내일 일도 모르는데 겁쟁이가 될 필요 없다고 어디 사는 선생님도 말한 것 같고, 망가져도 어딘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인생이란 거친 파도와도 같으니까, 나도 사실은──
"아─. 그러고 보니, 나도 화방에서 그거 사고 싶었거든. 둘이서 다녀와"
물론, 그런 멍청한 짓은 안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평범한 매일이 계속된다. 소중히 여긴다구.
이해가 안 된다는 모습의 사이토를, 아야카한테 붙여주고 배웅까지 해준다. 오늘은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너네들.
늘어진 앞머리를 쓸어올리고, 카톡을 연다. 사이토를 차단하고, 남친과의 카톡 화면을 열어본다.
축구공 이모티콘에 살짝 열받았지만, 어차피 공은 친구에서 그친다고. 여친으로서, 확실히 응원해줘야지.
'연습 힘내(하트)'
아니 그래도, 하트까지 달아준 건 살짝 과했나, 축제에 대해 제대로 말해야 하려나, 보내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이때 망설인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줄도 모르고.
"코야마, 위험해! 우오오오오오오옷!"
주근깨 투성이의 남자애가,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얘, 누구더라?
그게 나의, 이쪽 세계에서 마지막 말이었다.
잘봤습니다. 흡입력이 좋네요 여운이 남는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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