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라이스는 여름에 먹는 음식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올해 마지막으로 학교가는 날인 겨울날, 에토우 히로의 아침밥은 카레라이스였다. 왜냐면 어제 저녁밥이 카레라이스였으니까. 어제 저녁이 카레라면 오늘 아침은 카레. 이건 세계상의 일반상식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눈 앞에 여동생이 먹고있는 밥은 식빵이랑 계란후라이, 샐러드였다.
"후쨩, 왜 카레 안 먹어?"
"히로가 카레 먹고있으니까"
무뚝뚝한 후미카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히로의 머리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숟가락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또 지각한다"
"으앙ㅡ"
후미카가 빵을 찢어 입에 넣고, 계란후라이를 절반정도 먹었을 때, 히로는 '아아'라며 소리를 낸다
"내가 카레를 먹고 있으니까 후쨩 몫의 카레가 없구나! 그런가아, 미안한걸. 반 먹을래?"
"필요없어"
쌀쌀맞은 여동생의 말에도 언니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숟가락을 쥔다. 그 때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눈치챈다.
"야채절임이 없어"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후미카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언니를 상대하고 있으면 전교생이 모여 종업식이 행해지는 체육관에서 눈에 띄게 들어가게 되고, 반 친구들에게 바보취급 받으며, 담임 선생님도 질려하고, 통지서의 통신란에 쓸데없는 말이 적혀버린다.
"엄마ㅡ 야채절임 없어?"
그런 후미카의 속마음은 알지도 못한 채, 히로는 스폰을 두고 일어서서 옆의 부엌으로 간다. 그곳에는 엄마가 이미 냉장고 안을 확인하고, 히로가 원하는 야채절임이 든 병을 건네줬다.
"다 먹으면 안 돼. 그리고 시계 잘 보렴. 또 지각한다"
"네ㅡ"
병을 들고 식탁으로 돌아오려는 히로였지만, 그런 그녀에게 큰 시련이 덮쳐온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제 1호 하츠히코(통칭 핫쨩)였다. 히로가 부엌에서 나오려던 때와, 고양이가 부엌으로 들어가려던 때는 거의 동시였다. 히로가 이대로 오른발을 내딛으면, 하츠히코의 약간 늘어난 배를 발로 차버리게 된다.
내딛으려던 발을 당황해서 되돌린다. 되돌린 곳에는 문턱이 있었다. 엄지발가락 끝을 기운차게 문턱에 박아버린 히로는 '이익ㅡ!'하고 소리친다. 그 소리에 놀란 하츠히코가 그녀의 왼발에 몸을 들이밀고, 뒷발톱을 세웠다. '끄악ㅡ!' 안그래도 밸런스 감각이 나쁜 히로는, 정면으로 쓰러져가면서도 손에 쥔 야채절임을 지키려고 했다. 양 손을 힘껏 뻗고 병을 수평으로 유지하려 한다.
빈 손이라면 손바닥부터 떨어져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텐데, 팔꿈치부터 낙하해버렸다.
"으아아악!"
팔꿈치를 강하게 내리친 히로는, 그 자세 그대로 잠시간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이 때 그녀가 생각한 것은 팔꿈치가 아프다는 게 1/3, 바닥이 차갑다는 게 1/3, 야채절임이 무사하다는 게 1/3이었다. 전부 합치면 1이 된다.
"아아, 1/3이 3개라서 1.... 아빠, 엄마, 사람은 팔꿈치를 맞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걸까... 분수의 식이..."
"히로ㅡ 지각한다"
부엌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히로는 왼손에 든 병을 떨어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일어났다. 식탁으로 돌아가 "카레와 야채절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지ㅡ"라면서 엉터리 및 센스가 한 톨도 보이지 않는 자작 노래를 부르면서 병뚜껑을 연다.
열리지 않는다
"......어라"
설마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여는 병인가 하면서 다시 해봤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그냥 단순히 세게 닫혀있을 뿐이었다. '뿐'이라고는 해도 히로에게는 큰 문제였지만.
"...좋ㅡ아"
왼손에 행주를 쥐고 오른손에 병을 꼭 쥐고, 혼신의 힘을 담아 뚜껑을 돌린다. 조금도 열리지 않았다.
"안 열리네..."
"어제 야채절임 병뚜껑 마지막에 닫은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봐"
언니의 행동을 완전히 무시하며 식사를 계속하던 여동생이 한마디 툭 던진다.
"...어제, 어제 말이지"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아빠랑 엄마에 나랑 여동생, 하츠히코랑 니케. 고양이는 야채절임을 먹지 않는다. 엄마도 먹지 않고. 여동생도 먹지 않는다.
"아빠구나. 그러니까 열리지 않는 거였어, 이해된다 이해돼"
혼자서 감탄하며 말하더니 히로는 뚜껑을 숟가락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잘 열린다고 할머니가 말하셨다. 뜨거운 물로 빙을 덥히는 방법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뜨거운 물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없다.
하지만 히로는 병뚜껑을 두들기고 있을 시간도 없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느긋하게 뚜껑을 두들기면서 정면에 앉아있는 후미카의 모습을 본다. 아직 아침밥에 입도 대지 않는 히로에 비해, 벌써 거의 다 먹었다
"저기, 후쨩"
후미카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이름을 불렸을 뿐이라 대답하지 않을 뿐이다. 아빠나 엄마나 다른 사람이라면 제대로 대답해주는데
자신은 그저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무시받는다. 약간 슬프다.
"아빠는 벌써 출근하셨으니까 못만나지만, 돌아오면 말해줄 거고, 엄마는 아침에 인사했을 때 말해주셨는데..."
"그 요령없는 바보같은 말투는 그만둬. 아, 히로는 바보니까 어쩔 수 없나"
"응"
여동생에게 바보라고 불리면서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히로는 '응'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병뚜껑을 두들기는 콩콩콩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바보인 사실은, 뭐 냅두고. 나 오늘 생일인데"
"그래서 어쩌라고. 생일 축하한다고 한마디 듣고 선물이라도 받고 싶다고? 2살 아래 여동생한테?"
"응. 몇 년인가 전에 말해줬고, 선물도 줬잖아. 기억하고 있어. 근데 나 오늘로 12살이"
밥을 다 먹은 후미카가 빵 귀퉁이를 접시에 던지듯이 놓는다. 그리고 일어서더니 아직도 병뚜껑을 두들기는 히로를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본다.
"12살이야, 내년 4월이면 중학생이잖아. 그런데도 동생한테 축하한다던가 선물같은 걸 바라는 거야? 그리고 언제까지 병뚜껑 두들길 생각이야 지금 몇시라고 생각해? 딴짓하면서 느릿느릿하게 카레나 먹고있을 때가 아니라구 알고 있어? 아아 모르겠지, 완전 바보인걸 바보. 바보같은 낯짝 그만하고 빨리 카레 먹고 빨리 학교 가서 엉터리 통지표 받아서 돌아오는 길에 굴러자빠져서 도로에 찌그러지라구 바보히로"
후미카는 굉장히 빠르게 말을 쏟아붓더니 히로쪽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멍한 얼굴로 지켜본 히로는 후미카가 한 말의 내용을 곱씹어보았다
(으음... 아무튼 카레를 빨리 먹으란 말이지)
"히로ㅡ 또 후미카를 화나게 했니?"
"아니, 카레 먹으라는 말을 들었을 뿐인걸ㅡ"
이미 왕창 찌그러진 뚜껑을 돌려보지만, 역시 열리지 않아서 낙담한다. 아까까지는 꽉 닫혀있어서 열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두들긴 탓에 뚜껑이 비틀려서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ㅡ 포기해야지. 안녕 야채절임, 내 벗이여. 이제 올해는 카레 없으니까, 내년까지 작별이구나"
한숨을 쉬면서 카레를 한입 먹는다. 하룻밤 지나니 매운맛이 몽땅 빠져버리고 건더니가 대부분 뭉개져버린 카레를 천천히 맛보면서 먹는다.
(그러고보니 후쨩, 카레 빨리 먹고난 다음에는 뭐라고 했더라)
생각해내려고 하지만, 너무 빠르게 말한데다가 상당히 긴 내용이었기에 여동생이 뭐라고 했는지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다. 아무튼 '바보'라고 부른 건 확실하다
(뭐, 언제나 그랬으니)
맵지 않은 카레를 먹던 히로는 후미카가 남긴 빵 귀퉁이를 바라본다.
(저거도 먹어야지)
히로의 식사가 끝났을 때에는 시업종이 치기까지 15분이 남아있을 때였다.
뛰어가도 학교까지 15분 걸린다.
오늘도 지각 확정이었다.
종업식인데도.
***
에토우 히로는 바보라고 불리운다. 그 외에도 멍청이, 얼간이, 덜렁이, 나사풀린놈 등으로 불린다. 할머니한테 '나사풀린놈이 뭐야?'라고 물어봤더니 '머리가 이상한 녀석들은 나사가 풀렸다고 하지 않니'라는 대답을 듣고 '아, 나사풀렸다는 건 바보랑 똑같은 의미구나'라고 생각했다.
생긴 것도 바보같다고 자주 듣는다. 그걸 가장 현저하게 표현하는 것이 언제 어느 때라도 멍하니 어딜 보고있는지 파악할 수 없는 눈이었다. 망양, 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항상 느슨하게 풀려있는 표정과 웃으면 더 헤실해지는 얼굴이 히로를 한없이 바보처럼 보이게 하고있다. 바보처럼 보이는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바보였지만.
어째서 자신이 바보라고 불리는가. 그건 자신이 바보이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바보라도 좋단다, 씩씩하게 자라만 다오' 라고 말했을 정도니, 별로 신경쓰지는 않았다. 히로가 본인들한테 들었던 말이니 틀림없다, 아마.
"다녀오겠습니다ㅡ"
"다녀오렴"
부엌에서 대답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히로는 현관문을 열었다.
눈이 쌓여있다. 현관에서 문에 도달하기까지 짧은 거리에는, 후미카가 만들어둔 발자국과, 그 위를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하얗게 메우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보니 잿빛 하늘에서 많은 눈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오ㅡ 오ㅡ 눈이다ㅡ!"
아침 일기예보에서 도쿄에선 드물 정도의 강설량으로 교통편이 마비되고 있다ㅏ는 방송이 흘러나왔으나, 히로가 그걸 들었을 리 없었으며, 아침에 일어나서 밖을 보지 않았으므로 지금까지 눈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보통 추위탓에 눈치챌지 모르지만, 추위에 둔한 히로는 오늘도 어제도 똑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ㅡ 패리시를 꺼내놔야지"
히로는 서둘러서 부엌으로 돌아가, 엄마가 '지각한다'라는 말에 '응'이라고 대답하고 냉장고를 연다. 거기엔 작년 겨울에 만든 작은 눈사람, 패리시(작명 히로)가 들어있었다.
눈사람을 끌어난고 현관에 돌아와 신발장에서 빨간 장화를 꺼내신고는 밖으로 나간다. 벌써 10센치 정도 쌓여있는 듯하다.
후미카가 걸어간 자국을 밟으며 문까지 도달한 히로는 대문의 문기둥에 패리시를 놓았다.
"일년간 수고하셨어요. 겨울로 돌아가주세요"
손을 모아 도로의 눈을 퍼올렸다. 차가운 눈은 함박눈이었다. 눈사람을 만드는데 딱 좋은 그 손맛에, 히로는 '와아ㅡ'라고 소리치며 즉석에서 작은 눈사람을 10초만에 완성했다.
그걸 패리시 옆에 두고, 히로는 13초 정도 생각했다.
"...이토"
이렇게 눈사람 패리시와 눈사람 이토가 에토우 대문의 문기둥에 나란히 놓였다.
그리고, 드디어 에토우 히로의 등교가 시작됐다
"아, 우산 깜빡했다"
....20초 후, 정말로 등교가 시작됐다
***
자동차와 사람의 발에 의해 검게 되버린 눈 위만 골라서 걸어간다. 예쁜 눈은 예쁜 그대로 두고 싶다. 또는 돌아올 때 눈사람 재료로 쓰고 싶다. 교정에도 눈이 잔뜩 쌓여있겠지만, 사람에게 밟혀 더러워졌을 것이다.
더러운 눈만 밟으며 등교한 히로는, 이미 닫혀버린 교문에게 저지당했다. 교문의 틈새로 보이는 교정의 눈은 검은 눈과 하얀 눈이 확실히 나뉘어있어서 기분이 좋다.
(저 눈 전부 쓴다면 눈 축제를 벌일 수 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히로는 교문을 올려봤다. 히로는 이 철책을 뛰어넘을 순 없다. 보통이라면 교문의 옆에 있는 울타리에 발을 걸어 올라가겠지만, 우산을 들고 눈이 약간 쌓인 울타리를 넘기에는 힘들어보인다.
급하면 돌아가라. 라는 말대로, 히로는 뒷문으로 돌아갔다. 지금쯤 추욱 체육관에서 종업식을 하고 있겠지. 우선 거의 아무것도 들지 않은 가방을 교실에 두고 체육관으로 가야 한다.
뒷붙에서 출입구로 빙 돌아간 히로는 신발장에 장화를 넣고, 우산과 옷에 쌓인 눈을 탈탈 털어낸 뒤 교실로 향했다. 조용한 교내. 아무도 없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복도. 히로는 이런 귀가 아플 정도의 정적을 좋아한다. 실제로 귀가 아프다. 귓불이 가볍게 얼어버렸을지도 모른다.
3층에 있는 6학년 1반. 이게 2반과 3반, 4반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느 교실에 가야 하는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출석번호도 여자 중 1번. 이것도 정말로 다행이다. 앞에 '아', '이', '우'가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몇번인지 금방 잊어버린다. 야,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쓸데없이 크게 울리는 자기 발소리를 들으면서, 히로는 6학년 1반의 문을 연다.
당연하겠지만 아무도 없다.
자기 책상이 복도쪽에서 몇번째 줄에서 몇번째더라... 이런 사실도 곧잘 잊어버리는 히로지만, 5학년과 6학년은 고민할 일 없이 끝났다
담임 선생님인 후류야가 반드시 교탁 정중앙에 앉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리를 바꾸더라도 히로의 자리는 언제나 같다. 알기 쉬워서 굉장히 좋다. 히로의 등은 다른 여자아이에 비하면 아주 약간 크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약간 뒤에 앉아야 하겠지만, 아쉽게도 보통 상황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히로의 책상은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유성 매직으로 크게 '바보'라고 쓰여있다. 금방 히로의 책상이라고 알 수 있기 때문에 편하고 좋다. 후루야가 '지워라' 라는 명령을 받고 일단 열심히 지워봤지만,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후루야 왈 '이렇게 쓰이는 것도 네가 바보라서 그래. 그러니까 넌 졸업할 때까지 책임지고 바보책상을 사용하도록'
이런 이유로, 이 책상과는 인연이 깊다
앞으로 3개월이면 타칭 '에토우의 바보책상'과 이별한다고 생각하니 약간 쓸쓸한 기분이었다. 이걸 다음에 사용할 학생에게는 굉장히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지워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아직 보지도 못한 후배야, 미안해.
가방을 책상 옆에 걸어두고 의자에 걸터앉는다.
이상하다. 어제 많이 잤을텐데, 어째서 이렇게 졸린 걸까. 지금부터 체육관에 가서 늦더라도 종업식에 참가해야 하는데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교장 선생님 말씀은 끝났으려나... 그래서 겨울방학동안의 주의사항을 말하거나...)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는 사이에
히로는 잠들어버렸다.
어찌할 도리 없이 푹 잠들어버렸다.
꿈을 꿨다
꿈 속에서도 바보라고 불렸다
하지만, 평소랑 뭔가가 달랐다
고양이에게 바보라고 불리운 것이다
고양이에게 바보라고 불렸다
말과 사슴에게 바보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몰라
***
"에토우 히로!"
풀네임으로 불렸을 때. 그건 보통 누군가를 화나게 했을 때였다.
뭔가 꿈을 꿨던 것 같은데
갑자기 후두부에 충격이 온다. 꽤 아프다. 출석부로 맞았구나아, 라고 히로는 남일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맞은 충격으로 자신이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깨웠으니까 일어나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얼굴을 들었을 때, 두번째 충격이 왔다. 첫번째보다 아팠던 탓에 히로는 다시 책상에 엎어졌다.
"아직도 안 일어나냐, 이 바보야"
"일어났어요, 선생님. 그냥 좀 아파서"
"아프게 하도록 만드는 네가 나쁜 거야"
그렇겠지, 라고 히로는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얼굴을 든다. 교탁 위에는 담임선생님인 후류야가 내려보고 있었다
화난 얼굴은 아니다. 무시하는 얼굴이다.
슬슬 40이 되어가는 후루야는, 이미 40대처럼 보인다. 어깨 위치가 언제나 다르므로 어깨가 뭉친 거라고 생각한다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정적이 흐르는 교실. 하지만, 지금은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담임선생님인 후류야와, 서른 몇명의 반 친구들이 있다. 정확한 인수와 얼굴과 이름은 모른다. 그렇다기보다 기억하지 못한다. 대화도 제대로 해본 적 없으니까, 기억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히로가 모두를 기억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히로를 알고 있으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다. 잘 된 일이다
"너 또 지각이니. 이유가 뭐야"
뭘까, 일어난 시각은 똑같았던 기억이 난다.
일어나서, 옷갈아입고 세수하고 화장실갔다가 손도 씻고. 하츠히코랑 니케한테 아침인사도 하고, 엄마랑 동생한테도 아침인사, 고양이들의 화장실 청소
그 다음에 뭐했더라
"어차피 고양이한테 붙어있었다던가 길을 잃었다던가 강가에 물고기 구경했다던가 까마귀가 전선 위에 있었다던가 개미 행렬을 봤다던가 그런 쓰잘데없는 이야기겠지"
이유를 생각하는 사이에 선생님이 단정지어버린다.
"너같은 녀석이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회에 나가도 다른사람들에게 폐를 줄 뿐이야. 내가 몇번이나 주의를 줬건만 네 머리통은 그것도 이해하지 못할만큼 멍청한 모양이구나.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긴 하니?"
"아마, 나름대로 들어있지 않을까요. 일단 피는 들어있어요"
옛날에 후두부가 깨졌을 때, 꽤 피가 나왔던 모양이다. 지금도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머리가 아플 때가 있지만, 그건 머릿속의 피가 너무 많이 나왔던 탓이 아닐까
"그딴거 아무도 묻지 않았어!"
아까보다 강하게, 이번엔 정수리를 출석부로 맞았다.
그럼 뭘 물어본 걸까.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긴 하니?'라고 물어봤으니까 열심히 대답했는데. 뼈랑 근육이랑 피랑, 그리고 뭐가 있지. 아, 분명 마음도 들어있을 거야.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몸 어디에 들어있는 걸까. 머리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심장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장기니까
"심"
"널 위해서 매번마다 귀중한 시간을 쪼개서 주의를 주고 있건만, 반성하려는 생각은 안 하니? 모두 이제 질렸다구"
그렇겠구나, 라고 히로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실소정도는 나왔는데, 지금은 모두들 완전히 익숙해져버려서 매우 조용하다. 간혹 소곤소곤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오늘 점심밥은 뭘까 하는 이야기겠지. 히로도 생각하고 있다. 카레를 남김없이 전부 먹어버렸으니까, 분명 카레는 아니다.
아아, 하지만 눈사람을 만들어야 하니까, 점심도 간식도 먹을 틈은 없다. 안타깝다. 오늘은 엄청나게 큰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에토우 히로, 통지서다. 제대로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제대로 혼나도록"
코앞에 들이밀어진 얇은 종이를 양손으로 받아든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해야 하나, 생각하는 사이에
"그럼, 모두 설날 잘 보내고, 내년에 보자"
아무래도 히로 이외의 통지서는 모두 전해진 모양이다. 기립하고 경례한다. 히로는 일어나지 못하고 인사도 제대로 못했으나,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소란스런 반 친구들이 나가던 중, 히로는 세 대나 맞은 머리를 문지르며 가방을 들고 책상 속에 손을 넣었다. 가져가는 걸 깜빡했던 프린트랑 교과서, 노트가 들어있다. 전부 가방에 집어넣고 느긋하게 일어선다.
왠지 혼나면서 통지서를 받기 위해 학교에 온 기분이 든다. 실제로 그대로였지만.
"읏챠"
의자를 달그락거리면서, 아직 남아 이야기하고있는 몇몇 반 친구들의 목소리를 등뒤로 하고 교실을 나선다. 이 반에는 히로랑 일상회화를 하는 친구는 없다.
애초에 히로가 가슴을 펴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바보히로! 너 또 지각했지!"
나오자마자 갑자기 노성이 들린다
"아, 옷쨩, 좋은아침"
히로는 유치원부터 함께 지낸 소꿉친구를 본다.
이 소꿉친구, 오치아이 아케미는 언제나 화내는 듯하다. 그래, 지금도 화내고 있다. 화내면서 포니테일이 위로 솟구치면 재밌을텐데, 라며 매번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아쉽지만 아케미의 포니테일은 솟구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좋은아침, 이 아니라구... 너 지각 안하는 날이 드물 정도인데 어쩌려고 그래? 역개근상이라도 탈 생각이야?"
"굉장하네"
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 히로에게는 굉장한 일이다
"굉장하지 않아! ...입구에 서있으면 방해되니까, 빨리 돌아가자"
어깨를 떠밀며 걸어가는 아케미의 뒤를 따라간다. 흔들거리는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싶지만, 그러면 문명히 아케미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짓이니 그만두기로 했다. 히로 치고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옷쨩, 그렇게 화내지 마. 옷쨩은 웃는 편이 귀여우니까"
히로는 아케미를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귀엽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길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머리카락은 언제나 손질했는지 삐져나오는 적이 없다. 넓은 이마는 길조라는 증거이며, 눈은 언제나 강하게 빛나고있고, 눈썹은 길게 뻗어있다.
"너한테 그런 말 들어도 기쁘지 않아. 애초에 날 화나게 하는 게 누구라고 생각해?"
"나"
"...알고 있으면 반성하라구"
"하고 있어"
"하기만 할 뿐이잖아"
"응"
지치는 대화다. 이럴 경우에 지쳐버리는 건 아케미 뿐으로, 히로는 매우 기운차다.
"후루야한테 맞지는 않았겠지"
"맞았어, 세 번"
아케미의 눈썹이 살짝 흔들린다
"머리... 겠지... 정말, 후루야 그 문어대가리년, 졸업하기 전에 찔러줄까보다"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네가 더 이상 바보가 되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문어대가리는 네가 이 이상 바보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넌 지금보다 바보가 될 거라구! 조심하지 않으면 수박이랑 멜론도 구별하지 못할만큼 바보가 되버릴걸!"
"그건 바보 이전에 눈이 나쁜 게 아닐까, 괜찮아, 나 시력은 굉장히 좋으니까"
"시력만은 좋지... 네가 안경이나 콘텍트같은 걸 쓸 수 있다곤 생각되지 않으니까"
"후쨩이 좀 걱정인걸, 매일 공부하고있으니까"
"아 그래"
아무래도 아케미는 후미카 이야기를 하면 넌덜머리가 나는 모양이다. 후미카도 아케미 이야기를 꺼내면 기분나빠하니 샘샘이지만.
"그래그래, 옷쨩. 오늘 있지, 나 12살이 됐어"
"알고 있어... 축하해, 일본 제일의 바보같은 12살아"
"고마워"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히로는 기뻤다. 선물같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축하해'와 '고마워'라는 말을 주고받고 싶었던 뿐이다
(후쨩은 새해에도 축하한다고 말 안해줬지...)
그런 사실을 멍하니 떠올리는 사이에 교문에 도착했다.
"있지 옷쨩, 우리집에서 눈사람 만들래?"
"싫어ㅡ 이 추위에 왜 울비러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드는 건데"
"왜냐면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건 드물잖아"
"내 고향이 후쿠시마라고 말했었지. 이정도 내리는 건 별것도 아니야"
후쿠시마. 후쿠시마는 남쪽에 있었던가
"...너, 후쿠시마랑 후쿠오카 구별할 수 없어?"
"...응, 어느쪽이 북쪽이었지?"
"후쿠시마야... 그러고보니 히로, 미야기랑 미야사키도 구별할 수 없었지"
"응, 몰라"
아케미는 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다.
"내년에 중학생이 될텐데, 이래서 괜찮을지..."
"괜찮지 않을까?"
악연인 소꿉친구를 보면서, 오치아이 아케미는 한숨을 내쉰다.
"...중학교 3년간, 좀 더 제대로 되면 다행이겠는데..."
"글쎄, 어떨까나"
"너 말이야..."
"아"
"조금은 반성했어?"
"눈싸움 하고있어. 재밌겠다 재밌겠어ㅡ"
저학년 아이들이 교정에서 놀고있는 모습이 보인다. 꽤 부럽다는듯이 지켜보는 히로를 보며 한숨을 쉰다.
"...너, 눈덩어리에 돌 넣은 거 맞아서 이마 깨졌던 거 잊었어?"
"그런 일이 있었나?"
"있었다구... 네가 2학년이었을 때. 피가 기분나쁘다던가 말하면서 울던 녀석도 있었고, 누가 했느냐 하면서 소란스러웠지... 흉터가 남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응, 다행이다 다행이야... 눈싸움 하고 싶다..."
여기서 농담이라도 '끼워달라고 하면?' 이라고 말하면 '응'이라면서 달려가 후배들에게 미움받을 것이 틀림없다. 그걸 알고있는 아케미는 조용히 장갑을 끼지 않은 히로의 손을 잡아끈다.
차가운 손이다
"...너, 왜 이렇게 추운데 장갑도 안 꼈어"
"그치만, 눈에 닿으면 장갑이 젖어버리잖아"
"설마, 장갑이 젖는 게 싫어서 장갑을 안 낀 거야? 그게 이유야?"
"그게 이유지"
부럽다는듯이 교정을 보는 히로의 양손을, 아케미가 자기 장갑으로 감싸듯이 잡는다
아직 눈은 그치지 않았다
***
***
"으핫!"
사람과 자동차에게 밟혀서 무너진 눈. 거기에 발을 디디는 히로는, 있는 힘껏 미끄러졌다.
굴렀다. 발뒤꿈치가 한순간 공중에 뜨더니, 엉덩이를 도로에 기운차게 들이박았다. 들고있던 우산이 길가에 굴러떨어졌다.
"우왓, 아파..."
"너, 조심해서 걸으라구"
앞에서 걷고있던 아케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돌아본다. 일으켜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히로는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멍하니 하늘을 보고있다
"저기 있잖아 옷쨩, 하늘이 되게 이뻐"
"뭐어?"
...이 소꿉친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케미는 친구를 내려보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발소에서 칠순이 넘어 가위를 쥐는 것도 위험한 할아버지에게 '적당히 잘라주세요'라면서 자른 머리라 항상 짧다. 히로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기분 좋다고 말하지만, '최근엔 바리깡으로 밀 때 살짝 아파'라고도 말한다.
'바리깡을 다루는 할아버지 손이 떨리니까 위험하지 않아?'라고 아케미가 태클을 걸었지만, 변함없이 히로는 그 이발소를 다닌다. 언제였는지, 목 피부가 빨갛게 붓고 피도 났던 주제에. 바리깡이 목을 그어버리지 않으면 다행일텐데
"언제까지 하늘만 보고 있을 거야"
"으아ㅡ 하지만 이쁜걸, 하늘"
"그 늘어지는 대답은 바보같으니까 하지마. 뭐가 '하지만'이야, 이야기가 맞물리지 않잖아..."
대답하면서 아케미도 우산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본다. 아직 그치지 않는 눈. 두터운 구름으로 둘러싸인 하늘. 어디가 어떻게 예쁘다는 말인지.
"이 하늘의 어디가 이쁘다는 거야"
바보같은 대답이 돌아올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케미는 물어본다.
"하얀 하늘에서 하얀 눈이 계ㅡ속 내리는 게 이쁘잖아"
"아 그래, 그건 됐으니까 빨리 일어나. 엉덩이 더러워진다구"
"그러네, 꽤 차가워"
"그러니까 일어나서 말하라구!"
결국 노성을 낸 아케미가 히로의 손목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세운다.
"아, 읏챠"
"...왜 일으켜세워지는 네가 효과음 내는 거야"
"옷쨩 대신에. 고마워"
발이랑 엉덩이에 달라붙은 눈을 탈탈 털어내자, 아케미는 눈을 흘기며 히로를 본다.
"아, 화났다"
"화났어, 바보야..."
그대로 어깨를 치켜세우고 걸어가기 시작한 아케미지만, 발을 크게 내딛은 순간 쑥 미끄러졌다.
앞으로 굴러떨어진 아케미의 가방을, 히로가 반사적으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힘이 헛돌아버린 모양이라, 앞으로 고꾸라질 터였던 아케미는 히로랑 같이 엉덩방아를 찧는 꼴이 되었다.
"아아, 아프겠다 옷쨩"
아케미가 뭔가 말하기 전에 히로가 아케미의 몸을 끌어당기면서 눈을 가볍게 털고는
"빨리 돌아가자, 눈사람 만들어야하니까"
라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방을 끌어당긴 걸 화내야 하는지, 손을 빌려준 사실을 고마워해야 하는지. 약간 망설인 아케미는 그 둘 모두 해야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니까, 너는)
유치원 때부터 긴 시절을 어울렸지만, 아직까지도 이 '바보'라 불리우는 소꿉친구가 무엇을 사고의 중심으로 삼으며 사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언제나 자신의 뒤를 걷는 히로가, 지금 이렇게 자기 눈앞을 걸어간다는 사실에 부아가 치밀었다.
발걸음 빠르게 히로를 따라잡고, 앞에서 걷는다. 히로는 추월당했다는 사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여전히 하늘을 올려보고 있다.
"저기저기, 옷쨩. 하늘에서 염소가 내리는 게 언제였지?"
"......뭐?"
또 뜬금없는 소리를 하네... 산수 시간에 갑자기 '선생님, 간장공장 공장장이라고 말하는데, 공장장은 간장공장 주인이야?'라고 말해서 선생님을 화나게 했던 일을 벌써 잊을 걸까?
뭐, '선생님,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요, 그래서, 그 사람이 문제의 답을 가르쳐줬어요'라고 말했던 것보다는 나은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케미는 히로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 염소라곤 해도, 사람 이름이 아니야. 산에 사는 소 있잖아, 동물이고 털이 복실복실한 녀석이야"
"...산양은 산이랑 양이지... 그래서, 그 산양이 어디서 떨어지고 있는데?"
"어라, 옛날에 누가 말했지 않았나? 하늘에서 앙고라가 내린다고"
오치아이 아케미는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에토우 히로의 모든것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가족만큼 그 사고 패턴을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케미조차 지금 이 히로의 말을 어떻게 태클걸어야하는지 망설였다.
망설였다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이게 아케미 이외의 사람이었다면 '바보가 의미불명한 소리를 하고있네'라고 생각하고 끝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여기있는 건 오치아이 아케미였다.
그리고 결론을 낸다.
"...히로"
"왜ㅡ?"
"앙고라 염소도 있고, 앙고라 토끼도 있는데... 앙고라는 그녀석들의 털을 사용한 직물이잖아... 직물은 떨어지지 않아"
"아ㅡ 그렇구나. 왠ㅡ지 들어본 기억이 있는걸, 언젠가 여름 하늘에서 앙고라가 내린다고. 기분탓인가?"
"...기분탓이 아니라, 네가 착각한 거지... 뭐 좋아, 덧붙여 언젠가라는 건 아마 1999년이야"
"흐응, 아직 먼 나중의 이야기네. 하지만 9가 늘어져있다니 굉장한 해네"
"어디가. 게다가 굉장한 건 네 머리 쪽이야"
"고마워"
"...고맙다고 하지마, 바보취급하는 중이니까"
"굉장하다는 건 좋은 일인걸, 게다가 난 바보 맞고"
"너말이지, 자기가 바보라고 인정하지 말라구! 정말 바보가 되버린다니까!"
"하지만 바보인걸"
더 화내줄까 생각했지만, 점점 피곤해져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화제를 바꾸려 한다. 히로가 꺼내는 화제에 이렇게 받아주면 머리가 아파진다.
"생일 선물, 뭐가 좋아?"
"에, 줄 거야!?"
흐리멍텅했던 눈동자가 반짝 빛나며, 얼굴 전체에 미소가 퍼지는 히로를 보며 아케미는 '...단순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네 취향은 일단 반영해줄테니까 말해봐"
"그럼, 서"
"선풍기라고 말하면 밀어버린다"
"아"
"뭐야"
"먼 옛날에 비슷한 일이 있었던 기억이 나는걸..."
"먼 옛날이 아니라, 작년 네 생일때였어! 애초에 왜 너는 매년마다 선풍기를 갖고 싶어 하는 건데! 차라리 스토브를 사달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못 사주지만"
"그치만, 여름엔 더운걸. 내 방은 다락방이니까, 냉방도 안되고, 여름에 더운걸. 겨울에 추운 건 전혀 상관없지만, 여름에 더운 건 참을 수 없어"
"지금은 겨울이야!"
"하지만 여름도 온다구"
"됐어, 아무거나 적당히 실용적인 걸로 사다줄게"
"응, 고마워. 기뻐"
크게 한숨을 쉬면서 아케미는 뒤에서 따라오는 히로를 돌아봤다. 기쁘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고있는 얼굴을 보자니, 질리긴 하지만 화나진 않는다
이러쿵저러쿵 말하더라도, 이 바보를 버릴 수 없다
(...아니야)
버릴 수 없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게 무서울 뿐이다
혹시 자신이 히로를 버리더라도, 히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테니까
그걸 알고 있더라도. 알고있으니까 버리는 게 무섭다
"아아!"
갑자기 히로가 내는 큰 소리에 아케미는 생각을 멈췄다
"무슨일이야?"
"패리시랑 이토가 죽었어ㅡ!"
어느샌가 에토우네 문앞까지 와버린 듯하다. 아케미도 오랫동안 어울렸기 때문에 패리시랑 이토라는 녀석들이 눈사람이라는 건 안다. 죽었다, 라는 말은 누군가가 부쉈다는 뜻이겠지. 덧붙여 평범하게 녹아내렸을 경우, 히로는 '겨울로 돌아갔다'라고 표현한다.
"아ㅡ 그래그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줄게... 죽었다기보단 살해당했다, 라는 표현이 올바른 느낌이 들지만"
대충 손을 합장하고, 아케미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계속 여기 있을 이유도 없었고, 계속 있다간 눈사람을 만들게 되버릴 게 분명하다
"...그럼, 내일 선물 주러 올테니까. 눈사람 만들다가 동상걸리지 말고"
"괜찮아, 아마 발가락은 약간 얼어버린 모양이니까"
이미 괜찮지 않잖아. 라는 말은 하지 않고, 오치아이 아케미는 에토우 히로와 헤어졌다.
***
"다녀왔습니다!"
현관 앞에서 눈을 털어낸 뒤 문을 열고 큰 소리로 외치자, 어딘가 먼 곳에서 "왔니ㅡ"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니케도 안녕ㅡ!"
거실로 이어지는 문 틈새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있는 흑백이 섞인 얼룩고양이 니케에게 말을 건다
"뀨우"
고양이는 야옹이나 냐옹이나 먀아하고 울던데 (적어도 히로의 인식에서는 그렇다) 니케는 '뀨우' 하고 운다. 가끔 '무우'라기도 한다. 아케미에게 그렇게 주장해봤지만 그녀는 믿어주지 않는다. 니케는 히로 이외의 사람을 따르지 않아서, 아케미가 다가오면 금방 도망가버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케미는 니케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니케는 뀨우하고 운다구' 라는 주장은, 니케가 뀨우라고 우는 한 계속할 거라고 생각하는 히로였다.
"니케ㅡ 밖은 춥단다. 눈천지야. 눈사람 만들어야지ㅡ"
가방을 내려놓고, 니케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던 히로였으나, 자기 손이 차갑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칫했다. 차가운 손으로 만지면, 니케의 몸이 차가워져버린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에도, 니케는 현관 매트 위에 배를 내밀고 떼굴떼굴 구르고있다. 이건 '쓰담쓰담해줘ㅡ'라는 자기주장이다, 라고 히로는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배에 나있는 짧은 털을 보면서, 히로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다.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 히로 치고는 굉장히 고민했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니케의 행동에 의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갑자기 일어서더니 계단으로 도망가버렸기 때문이다
"니케, 왜그래ㅡ?"
장갑을 끼고 쓰다듬으면 니케도 차가워하지 않을지 몰라. 겨우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데 가버린 니케를 보며 히로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히로"
화난듯한 후미카의 목소리가 거실쪽에서 들렸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화난 표정의 후미카가 현관으로 나왔다.
"아, 후쨩. 다녀왔어"
현관에 쭈그려앉아있는 히로를, 후미카가 내려본다. 추위로 빨갛게 된 얼굴과 손을 보고, 눈이랑 진흙으로 약간 더러워진 바지를 보고, 바닥에 놓인 종업식이었으면서 이상하게 가득한 가방을 본다.
"...통신서 보여줘"
"가방 안에 있어"
"스스로 꺼내서 달라구! 빨리! 지금! 당장!"
"1학기때랑 별로 다르지 않은걸?"
여동생의 서슬퍼런 얼굴에도 히로는 딱히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끄앙, 아파아...."
후미카가 슬리퍼 신은 발로 배를 걷어차니까 움직인다. 배를 부둥켜안는 히로를 보면서도 후미카의 태도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고 빨리 내놓으라구! 몸뚱아리만큼은 쓸데없이 바보처럼 건강하니까 아프지도 않잖아! 아니 바보처럼이 아니라 바보 맞지만! 바보히로는 바보히로답게 얌전히 내 말대로 하기만 하라구 다음은 주먹펀치로 때려줄테니까!"
주먹펀치는 아프다. 아주아주 아프다. 옷을 많이 입고 있으니까 충격이 조금은 약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후미카, 왜 그렇게 소리지르는 거니..."
자매들이 너무 소란스럽자, 그렇다기보단 일방적으로 동생이 화낼 뿐이지만, 그걸 듣고서 두 사람의 어머니인 히로코 씨가 왔다. 옛날부터 약간 살쪘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딸 둘 중 언니쪽은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빠지는 듯해서 신경쓰인다.
그건 엄마가 마르는 게 아니라, 히로가 자라기 때문이지만.
"아, 엄마. 후미카가 내 통시서 보고 싶다길래. 매년마다 변하지도 않는걸"
"그렇네, 약간이라도 올라서 통신란에 보내는 말씀이 조금 덜 적히면 엄마도 기쁘겠지만"
"아, 그건 무리"
"...그렇지, 무리지. 바보인걸"
엄마는, 자매 둘 중 누구에게 먼저 주의를 줘야하나 고민했지만, 우선은 언니부터 주의를 주기로 했다.
"히로, 그렇게 간단하게 무리라고 하면 안 됀단다. 노력해보고 말해야지? 히로는 히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있다고 알고는 있지만..."
"바보는 죽어도 낫지 않는다구"
"그렇지, 하하"
"웃지 마"
험악한 자매사이... 라고 해야하나, 히로는 너무나도 온화하지만, 지금도 화내는 후미카의 표정에 히로코는 한숨을 쉰다
"후미카... 언니한테 그런 말투는 못써"
"얼빠진 착한아이랑, 제대로 된 나쁜아이, 둘 다 멀쩡하지 않은걸"
히로는 중얼거리는 동생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엄마한테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히로코를 밀치듯 계단을 올라가는 후미카를, 엄마는 슬프게, 언니는ㅡ멍한 눈으로 보고있었다
"...난처한 아이네"
"후쨩은 착한 아이야. 화내면 조금 무섭지만"
"히로"
"왜애, 엄마?"
...순진무구하게 대답하는 오늘로써 12살이 막 된 자식을 볼 때, 엄마는 여러 생각을 한다. 이 아이는, 정말로 이걸로 괜찮은 걸까, 하고
키우는 법이 틀린 걸까,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불행한 사고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 아이가 "이렇게" 되버린 건,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갖고있는 성질일 뿐이며, '그것'은 관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은 행복해 보인다. 바보취급 받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고,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아이는, 어떤 의미로는 강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생에게 아무리 매도당하더라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좋은 아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 아이는, 어떤 의미로는 상냥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강함이나 상냥함의 근원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 점심은..."
"아, 괜찮아.. 이제부터 눈사람 만들 거니까"
"눈사람 괜찮지... 하지만 눈사람 만들려고 밥을 거르는 건 별로 좋지 않구나"
"하지만 점심밥은 내일도 먹을 수 있지만, 눈사람은 오늘밖에 만들 수 없는걸?"
"오늘 점심밥은 오늘밖에 먹을 수 없잖니?"
아ㅡ 하고 이해했다는듯한 히로가 입을 연다
"그러네, 엄마 머리 좋은걸! 하지만 오늘밖에 먹을 수 없는 점심바봅다는 내일 만들지 못할지도 모르는 눈사람을 우선하고 싶은데... 안 돼?"
드물게 논리다운 말을 들이미는 히로에게, 히로코는 쓴웃음을 짓는다. ...착한 아이, 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아이는 이대로 괜찮다, 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3년이 지나도 이렇다면ㅡ부모로서 타개책을 고려해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렴. 자동차나... 이런 날에는 다니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자전거는 조심하고. 그리고 더러워지거나 젖어도 괜찮으니까 제대로 장갑 끼고... 약속할 수 있지?"
"...장갑..."
약간 불만이라는듯이 눈썹을 찡그리며 엄마를 올려다보는 히로지만, '어쩔 수 없지ㅡ' 하면서 장갑을 챙긴다.
"이제 됐어?"
"응"
"그럼, 큰 눈사람 만들게! 완성되면 보여줄게!"
"...그 전에, 통신서 보여줄래?"
"아, 응"
장갑을 낀 채로 가방을 열고, 가장 위의 꺼내기 쉬운 곳에 들어있던 얇은 통신서를 양손으로 건낸다.
"그대로일걸, 분명"
"안 봤니?"
"그치만 분명 그대로일텐데... 미안, 내가 바보가 아니었다면, 엄마도 후쨩도 기뻤을텐데"
그건 히로가 그리 보여주지 않는, 쓸쓸한 표정이었다. 웃거나 울거나 곤란해하거나. 그런 표정은 언제나 보던 히로코지만, 히로가 슬퍼하거나 쓸쓸해하거나 화내는 건 많이 보지 못했다.
"히로..."
그렇지, 기쁘구나, 라고 그 말을 긍정해야 할까
너는 지금 이대로 괜찮단다, 라며 그 말을 부정해야 할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 어느쪽도 하지 못한 채, 히로는 눈의 세계로 떠나버렸다. 자신의 반응이 느린 것이 조금 싫어진 히로코지만, 마음을 다잡고 통신서를 본다.
...역시 1학기 때와 똑같았다. 이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성적이지만, 담임교사로부터의 통신란에는 1학기와는 다른 말이 적혀있었다.
빈틈없이 빽빽하게 '에토우 히로의 개선해야할 점'이 항목별로 적혀있다. 항목별로 적혀있는 점이 왠지모르게 히로코는 싫었지만, 그래도 다시 마음을 잡고 읽기 시작한다.
향상심이 없다. 협조성이 없다. 사교성이 없다. 집중력이 없다. 근성이 없다. 반성하지 않는다.
없다 없다 없다 않는다의 연속.
(...히로의 장점도 봐주세요... 라는 건 너무 억지려나...)
반송란에 뭐라고 적어여 하나, 빠르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어머니였다.
그런 엄마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토우 히로는, 우선 창고에서 삽을 꺼냈다. 현관에서 문까지, 나름대로 쌓인 눈을 나누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다.
"대문에 눈사람 만들어둬야지"
깪스한 눈을 모아 작은 눈사람을 만들고, 패리시랑 이토의 뒤를 잇게 놓는다. 생각하는 시간 40초
"...리랑 레온"
이렇게 눈사람 리와 눈사람 레온이 에토네 집 대문에 늘어섰다.
"좋아ㅡ 한다ㅡ"
기합을 넣기 위해 삽을 휘두른 히로가 눈을 쓸기 시작한다. 히로에게 있어서 눈쓸기는 눈사람을 만들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작업이다. 작은 눈사람을 만들고 그걸 굴린다... 그런 제작법을 하기에는 도쿄의 적설량이 부족한 환경이라 좋지 않다.
에토네 집은 도로를 향해있지는 않지만, 가끔씩 자동차도 지나다니고 사람도 지나다닌다. 깨끗한 눈은 그리 풍부하지 않다.
그러니까 히로는 쓸어담은 눈을 한곳에 모으고, 공들여서 손과 삽으로 원형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면 결국엔 진흙으로 더러워진 히로보다 약간 키가 작은 정도의 눈사람이 완성된다. 그 위를 주차장에 정차되어있는 차에 쌓인 눈이나, 아직 아무도 밟지 않는 눈으로 장식한다.
그렇게 하면 겉보기에는 새하얗고 예쁜 눈사람이 완성된다. 나머지는 취향대로 구멍을 뚫어 못쓰는 양동이를 씌우던가, 연말 선물로 받은 물건의 포장지에 달린 리본을 감아서 장식하면 꽤 그럴싸한 눈사람이 완성된다
눈이 내릴 때마다 눈사람을 만들어온 히로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거듭하고 거듭하면서 찾아낸 방법이다. 보통 학습능력은 전혀 없는 히로지만, 이런 일에 관해서는 정열을 쏟아낸다.
결점으로는 히로의 완력과 체력으로는 이 모든 공정을 끝내는데 약 5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히로는 눈사람을 만든다.
왜?
물어보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눈이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히로는 눈사람을 만드는 작업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이 동네에선 눈오는 날에 밖에서 놀려는 아이는 히로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도 없다. 라이벌이 없다는 건 괜찮지만, '어째서 요즘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지 않는걸까' 라고 히로는 생각한다.
"후쨩도 만들면 좋을텐데"
두살 아래의 동생과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이, 머릿속에 아련하게 있는듯, 없는듯
"...뭐, 상관없나"
머리를 눈이 묻은 장갑으로 어루만진다. 장갑을 끼고있으면 손가락의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루만지는 박자에 맞춰서 눈이 히로의 목으로 떨어진다
차갑다, 라고 생각하기 전에, 히로는 아프다고 생각했다
겨울을 정말 좋아하고, 눈을 정말 좋아하는데
가끔씩, 아프다
어째서일까
눈은, 아직도 내리고있다
하지만, 조금씩 그 기세가 약해져간다
"...누, 눈사람, 마니에르!"
히로가 소리친다. 석간 신문을 배달하던 청년이 우체통 바로앞에 만들어진 눈의 건조물을 방해된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그 옆에서 삽을 높이 치켜세우고 있는 히로를 무시하고, 에토우네 집 우체통에 신문을 넣는다
"수고하십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계속하는 (이 주변의 눈은 대부분 히로가 도로 끝으로 밀어두던가, 눈사람의 재료로 써버려서 오토바이를 타도 괜찮다) 청년에게 말을 걸면서, 히로는 다시 눈 앞의 눈사람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눈사람 중, 이건 최고의 걸작일지도 모른다. 아직 장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크기도 그렇고 예쁘게 깎인 원형도 그렇고, 표면의 새하얌도 그렇고, 완전 쩐다
"으ㅡ음, 굉장한걸, 마니에르!"
혼자서 납득한 히로지만, 보다 좋은 눈사람을 위해 일단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럼, 어떤 장식을 붙일까. 리본은 목에 감을까 머리에 감을까. 눈이나 입의 재료는 뭘로 할까. 봉을 꽂아서 그 끝에 구멍이 뚫려 못쓰게 된 군용 장갑을 씌워볼까. 아아, 눈사람의 발에 자그마한 눈덩어리를 만들어두면 발처럼 보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현관문을 연다. 온방이 된 방과 비교하면 춥겠지만, 그래도 밖의 기온과 비교해보면 따듯한 방이다.
"히로ㅡ 오늘은 이제 그만하렴. 슬슬 저녁밥 먹을 시간이야"
"에에ㅡ"
부엌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말에, 히로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이제 조금이면 마니에르가 더 굉장한 마니에르로 변할텐데
"벌써 6시 반이 지났단다. 아침부터 카레밖에 먹지 않았잖니"
그러고보니 확실히 배가 고프다.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적받으니 배고파서 배가 웅웅거린다.
"오늘은 히로가 제일 좋아하는 참치밥이란다"
"응, 금방 갈아입을게!"
참치밥은 눈사람을 이긴다
히로가 좋아하는 참치밥. 그건 밥에 참치캔과 간장을 넣고 비벼서 만들 뿐인 간단한 음식이다. 히로는 그 위에 가쓰오부시를 뿌린다. 에토우네 집에는 고양이용의 값싼 생선캔과, 인간용의 비싼 생선캔이 존재하지만, 후자를 뿌리면 맛이 두배다
그냥 참치밥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참치를 적절하게 섞지 않으면 어우러지지 않고 '밥 속에 참치 덩어리가 군데군데 들어있는' 상태가 되버린다. 간장을 넣을 때도, 실수해서 손이 미끄러지면 밥 안에 확 들어가버려서 간장밥이 먹는 꼴이 되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적게 넣으면 맛이 싱거워져서 재미없다. 히로는 몇번이나 그런 실패를 했기 때문에, 지금은 히로코가 만들어주는 참치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
딱히 고급품도 아닌 참치밥이 식탁에 잘 올라오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후미카가 이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불명이지만
'맛있는데' 라면서 히로는 주장하지만, 어떻게도 후미카는 이 밥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후쨩은 먹지도 않고 싫어한다니까... 낫토도 싫어하고, 젓갈도 싫어하고, 메뚜기조림도 싫어하고, 녹미채도 싫어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히로는 장화를 벗고 현관으로 들어간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양치를 하고, 양말이랑 장갑을 세탁기 옆에 놓여있는 바구니에 넣는다.
"후쨩, 다녀왔어ㅡ"
소파에 앉아서 뉴스를 보고있는 후미카에게 말을 걸지만, 무시당했다. 손을 데우기 위해 스토브 앞으로 가, 그 앞을 점령하고있는 하츠히코의 따듯한 배를 만진다
"핫쨩 다녀왔어ㅡ 배 뜨거운데? 조금 식혀야지"
지방을 덥썩덥썩 만져도, 하츠히코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런 하츠히코를 가지고 놀면서 히로는 후미코에게 말을 건다
"저기, 후쨩, 밖에 있지, 마니에르가 완성됐어. 꽤 괜찮게 만들어졌단 말이지ㅡ 나중에 볼래?
하지만 후미카의 입에서 나온 건 눈사람이랑은 아무 관계 없는 말이었다
"...석간 신문은?"
"응?"
"석간, 왔잖아. 안 가져왔어?"
"아ㅡ 석간! 그렇지, 왔더라. 나중에 가지러 가야지"
"...돌아올 때 가져왔으면 또 밖에 나갈 필요도 없잖아"
"으앙ㅡ 그러네"
하츠히코의 배를 만지던 히로였지만, 거실 입구에서 니케가 쓸쓸한 얼굴로 엿보고있는 모습을 눈치챘다.
'니케는 표정이 없는 고양이지' 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할머니의 말은 거의 다 맞다고 믿는 히로였지만, 그것만큼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니케한테도 표정이 제대로 있다. 저건 놀아달라는 표정이다.
"니케ㅡ 따듯하단다ㅡ 이리온ㅡ 뀨우뀨우ㅡ"
마지막의 뀨는 히로 나름대로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낸 것이다.
"뀨뀨ㅡ"
라고 몇번이나 해봤지만, 니케는 움직이지 않고 복도에서 엿보고만 있을 뿐이다. 역시 후미카가 있는 방에는 들어오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고양이는 뜨듯한 곳을 좋아할텐데, 니케는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히로는 일어선다.
"히로"
"왜, 후쨩?"
드물게 화나지 않은 후미카의 목소리에, 히로는 기쁘게 대답한다. 후미카가 있는 쪽을 보지만, 동생은 언니쪽이 아니라 여전히 TV를 응시하고 있다.
"...히로, 올해도 아빠한테 선풍기 사달라고 했어?"
"했어ㅡ 싫다니까, 그럼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어"
"...그래서, 매년마다 그런 쓸데없는 물건을 받아서 뭐가 기쁘다는 건데?"
"쓸데없지 않은걸, 아빠는 언제나 굉장한 걸 준다구"
히로는 굳이 말하자면, 후미카야말로 언제나 쓸데없는 물건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생일 선물로 뭐가 갖고 싶냐고 물어보면, 반드시 '현금'이라고 대답하니까. 아빠나 엄마는 현금이 아닌 도서권을 주는 모양이지만
그러고보니 자기 자신은 매년 동생에게 무엇을,
"작년에 뭐 받았는지 기억해?"
줬는지 기억하기 전에, 히로는 작년의 기억을 떠올려야만 했다
"어어... 아, 뭐시기하는 가타카나의 항공모함 모형"
"그건 아빠가 조립해버린 뒤로 모형의 즐거움이 없었는걸... 그리고 그건 2학년 때야"
그랬던가. 히로는 다시 기억 저편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거야. 야구선수의 사인"
"주니치 선수 사인같은 걸 받아서 기쁘겠어?"
"나름대로 기쁜걸... 아, 그리고 드래프트에 입단했을 땐 주니치였지만, 그 사인을 받았을 때는 세이부였다고 아빠가 말했어"
지금은 은퇴했지만 꽤 유명한 선수이며, 수위 타자 경쟁의 최종전에서 모든 타석에게 경원되어 최종타석으로 돌려진 것에 항의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기억이 있다
이름을 생각해내려기 전에,
"그 선물은 재작년"
이라는 후미카의 말에, 히로는 머리를 끌어안고 싶어졌다.
"...으으음, 작년엔 뭐였었지..."
꽤나 떠올리지 못하는 히로에게, 결국 후미카의 매우 짧은 인내심이 끊어졌다.
"...기억하지 못 할 정도로 쓸데없는 거였다구! ...작년은 보트 프로펠러였잖아!"
"아, 그거!"
처음 봤을 때는, 선풍기 프로펠라인가 생각했던 물건이다. 듣고나서 겨우 떠올린 히로였다
"그래그래! 하지만, 그냥 프로펠라가 아니라구, 어딘가 무슨 기념으로 우승한 선수의 사인이 들어간 프로펠라! 굉장하잖아, G1라구!"
"그딴 거, SG라도 전혀 기쁘지 않아!"
참고로 그녀들이 말하는 것은 모터보트 이야기다. 모터보트는 '그레이드 제'라는 레이스 체계, 이며, 상위 레이스가 될수록 상금이 높아진다. 위에서부터 SG, G1, G2, G3, 일반 경주로 나뉜다.
초등학생 치고는 전혀 쓸모없는 지식이다. 부모의 취미 탓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자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모터보트 가 아닌, 선물에 관한 것이다
"...애초에 받아서 대체 어디다 쓰라는 건데!"
히로는 '으앙ㅡ' 하면서 입을 열고 5초 정도 생각한다
"장식, 하던가?"
약간 자신없는 목소리다
"장식도 안 하잖아... 지금 상태론 그냥 놓여있을 뿐이지"
"그래? 그럼 언젠가 천장에 날려보자"
후미카가 또 뭔가 말하려던 때, 거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히로, 다 갈아입었니? 10분 있으면 밥 다 된단다"
"응, 아직ㅡ 후쨩, 나중에 얘기할게"
후미카는 거실문을 열고 허둥지둥 뛰어가는 언니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 틈새에서 얼굴을 내밀고있는 니케랑 눈이 맞았다
고양이의 표정 따윈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후미카지만, 지금은 니케의 시선이 괜히 차갑다고 느껴진다. 보통 니케는 후미카의 얼굴따윈 보지도 않는 주제에, 오늘만은 빤히 응시하고 있다
스스로 눈을 돌리는 건, 왠지 졌다는 느낌이라 싫었다. 그래서 후미카도 니케도 서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어두운 복소에서 지켜보는 그 눈동자가 동글고 검다. 그걸 계속 바라보고 있던 후미카가 생각한 것, 그것은.
"니케ㅡ 이리온ㅡ 안아줄게ㅡ 뀨ㅡ"
그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니케는 후미카의 시선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기분나쁜 고양이"
소리를 내서 그렇게 말하고, 후미카는 스토브 앞에서 떼굴떼굴 구르는 하츠히코를 본다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자기가 잠자는 이불을 툭툭 치고있다.
그게 그 나름대로의 의사 표명이며, 그 의미를 후미카는 히로에게 들어서 알고있을 터였다.
기억해내지 못한다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까. 후미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히로가 좋아하는 음식이 많이 차려진 저녁밥을 먹은 다음 엄청 좋아하는 레몬 메렝게 파이라는 굉장히 행복한 시간 뒤엔, 부엌 정리를 도와주고, 욕탕에 들어가는 평소의 생활 패턴이다. 그 다음은 잠을 잘 뿐. 공부를 한다던가 TV를 본다던가 책을 읽는다던가 취미생활을 한다던가, 히로는 그런 매우 평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굳이 하는 일을 꼽아보라면, 자기 방에서 니케랑 뒹굴거리는 일 뿐이다
히로의 방은 넓지만, 천장은 낮다. 다락방이기 때문이다. 히로가 4학년이 됐을 때까지 후미카랑 함께 방을 썼지만, 이 당시부터 동생의 언니혐오증이 점점 심해져서 방을 나눴다
2층 복도 끝, 후미카의 방 앞에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접이식 계단이 있다. 창고로 쓰이던 때는 언제나 접혀있었지만, 지금은 접혀있는 날이 드물다.
그 외의 방이 없지는 않지만, 히로가 '다락방에서 자고 싶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히로의 방은 다락방이다. 여름에 덥다는 점만 빼면 히로는 이 방을 굉장히 좋아한다.
히로의 신장보다 약간 높은 정도의 이 방에서는 가구의 크기가 제한되지만, 히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책상은 나무로 된 사과박스, 그 앞에 놓인 건 망가진 좌식 의자랑 쿠션, 옆에 놓인 책장에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지금까지의 교과서나 사전이 들어있는 것 외에는 부모님에게 받았거나 폐관한 도서관에서 받은 책이 적당히 꽂혀있다. 작은 옷장의 옆에는 히로가 응원하는 야구단의 작은 깃발이 꽃혀있다.
그리고 방의 틈새에는 히로가 말하는 '굉장한 것', 후미카가 말하는 '쓸데없는 것'들이 전시되어있다. 모형이거나 프로펠라거나 지구본이거나 한다
히로는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로 이불 위에 누워서 니케랑 뒹굴거린다. 히로 이외의 사람은 전혀 따르지 않는 니케지만, 히로랑 둘이 되면 굉장히 어리광쟁이가 되서 다가온다. 하루종일 고롱고롱거리면서 코나 귀를 히로의 손에 갖다대고, 자고있는 그녀의 위로 올라탄다
"니케ㅡ 뀨뀨ㅡ"
그렇게 말하면서 니케의 몸을 쓰다듬고, 이불 안에 들어있는 전기장판으로 발을 따듯하게 데우면서, 생일선물 중 꽤 실용적인 물건 1호, 라디오를 듣는다. 이게 히로가 밤을 지내는 방법이다
라디오국의 채널을 모르므로, 히로는 언제나 적당히 튜닝하고 듣는다. 지금 흘러나오는 것은 듣기만 해도 잠이 쏟아지는 피아노 음색이다
실용적인 물건 2호인 자명종 시계를 보니, 슬슬 오후 10시가 되어간다. 이제 잘 시간이다. 히로는 일어나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당연하다는 듯이 니케도 함께 들어간다.
어둠 안에 손을 더듬어 라디오 전원을 한시간 뒤에 꺼지게끔 세팅하고 자명종시계릐 스위치를 끈다. 내일부터 겨울방학이니까, 조금은 늦잠자고 싶다. 아아, 하지만 마니에르를 완성해야 하는데. 내일 갑자기 따듯해지면, 마니에르가 겨울로 돌아가버린다. 그렇다면 괜찮겠지만, 혹시나 또 죽을지도 모른다.
피아노의 소리를 들으면서, 마니에르를 만드느라 지친 히로는 금방 깊은 잠에 빠졌다
***
꿈을 꿨다
아빠가 '아빠는 있지, 야구랑 모터보트랑 배랑 맥주랑 담배랑 네가 가장 좋단다!'라고 소리지르면서 처음보는 고양이를 보여줬다
귀여운 고양이였다
새끼고양이같아서 아빠의 큰 손바닥에 딱 맞는 사이즈였다. 새끼고양이 특유의 털 감촉이 귀여움을 한층 끌어올려준다
등이나 머리는 회색 줄무늬가 나있지만, 그 이외 부위, 배나 얼굴의 절반은 새하얗다
잘려 없어진듯한 어중간한 꼬리
바짝 서있는 수염은 오른쪽이 왼쪽의 절반정도 길이밖에 안 된다.
이름을 붙일 때 무심코 '미미'라고 붙이고 싶어지는 큰 양쪽 귀는, 오른쪽 귀의 절반이 잘린듯이 너덜너덜하다
너덜귀 고양이
귀여운 고양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
"뀨뀨ㅡ"
니케가 울음소리를 낸다. 아, 밥을 달라고 재촉하는구나. 하츠히코는 어쨌든, 니케는 내가 주지 않으면 먹질 않는다
크게 하품하면서 일어난 히로지만, 아무래도 위화감이 든다. 니케가 자신을 깨우러 오는 건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그럴 때에는 대부분 배 위에 올라타있거나, 볼을 앞발로 누르거나, 그런 수단을 취할 터였다
"...니케"
"뀨우"
대답은 있었지만, 왠지 떨어진 곳에서 들린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락방 입구인 계단에서 니케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다
"니케, 왜 그런 곳에 있어? 이리온"
"뀨우우"
니케는 대답을 할 뿐이지 결코 이쪽으로 오려 하지 않는다. 그럼 내가 가야하나. 일어서려고 배게에 뻗은 손이, 무언가 상자에 닿았다
"아"
아무 포장도 되지 않은 종이로 된 커다란 상자가 있었다. 이건 분명 12살의 생일선물이다, 아마도
"올해 선물은 뭘까나ㅡ 아, 니케, 잠깐만 기다려, 이것만 보고 바로 밥 줄게"
히로는 이불 위에 정좌하면서 다시 한 번 상자를 본다. 내용물을 암시하는 글자도 그림도 없어서, 일단 들어본다.
"...으음, 니케보다 가벼운걸?"
여는 곳이 손으로 잡기 쉽다. 적당히 붙인 셀로판테이프를 히로 주관적으로는 정중히 풀면서 뚜껑을 연다.
"아, 모델건이다"
안에 들어있던 물건은 일반적으로 '피스톨'이라 불리는 형태를 한 것이었다. 히로에게 그 이상의 인식은 불가능했다.
전장 약 30센치, 검은 총신은 그 절반정도. 연근 비슷한 실린더를 가진 회전식 권총, 리볼버다. 그 중에서도 이건 44매그넘탄을 발사하는 대형 리볼버다.
갈색의 그립에는 작은 엠블럼이 있고, 가운에에 알파벳이 새겨져있다. 무슨 의미인지, 당연히 히로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모델건인가... 왠지, 플라스틱 총알같은 걸 쏠 수 있게 되있으려나?"
아니면 관상용일까. 총에 관한 지식은 전혀 들어있지 않은 히로는 전혀 모르겠다. 우선 들어봤다.
"뀨우우ㅡ!"
왼손으로 그립을 잡은 순간, 니케가 죽는다는듯이 울면서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도 절박해보여서 히로는 니케의 뒤를 따라가려 했다
(냐아)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건 하츠히코의 울음소리가 아니다. 니케의 울음소리도 아니다. 게다가, 무릎 근처에서 들리는 기분이 든다.
시선을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린다. 허벅지 근처에, 총이 들어있던 상자가 있다.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그 옆에, 고양이가 있다. 작은 고양이다. 회색의 줄무늬 고양이로, 배랑 다리나 얼굴 아랫부분은 하얗다. 꼬리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짧고, 오른쪽 수염이 절반밖에 없고, 오른쪽 귀가 너덜너덜하다.
"와아, 귀여운 고양이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그런데
(...당신 눈은 어떻게 되먹은 거냐)
굉장히 차가운 대답이 돌아온다
"에ㅡ 그런가, 귀여운데"
그렇게 말한 시점에서 히로는 어라, 하고 생각했다.
"어라, 나 어떻게 고양이랑 대화하고 있는 거지"
으응, 하면서 손을 괴고 생각한다.
(당신은 바보다)
고양이에게 바보라고 불렸다
말과 사슴에게 바보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몰라
이것이
혼을 먹는 한니발과의 만남
에토우 히로의 전설이 시작
...일 지도 몰라, 라고 한니발이 생각하게 되는 건 꽤나 시간이 지나고난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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