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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7일 월요일

단편 라노벨 번역 : 소울 언더 테이커 제 4화 총은 뜨거울 때 쏘고, 바보는 바보인 채로 쏜다


 수상쩍은 꼬마애. 그게 오치아이 아케미가 미시마 소우기라는 소년을 본 첫인상이었다. 

 한 번 집에 돌아가 입 안을 헹궈내고 에토우네 집으로 찾아온 아케미는, 마니에르의 잔해를 멍하니 바라보며 히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케미는 결코 히로의 집 초인종을 울리지 않는다. 목소리도 내지 않는다. 히로 이외의 에토우 인간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히로의 동생인 후미카는 학교가 같으므로 복도에서 스쳐지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얼굴도 보지 않는다. 시선도 맞추지 않는다. 

 그 일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심경의 변화는 서로 없다고 본다. 적어도 히로의 양친은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후미카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싫어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표출하지 못하는 분노를 히로에게 표출한다.

 아케미의 가족도, 에토우네 인간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건 하나로 오치아이 가문은 빚을 졌다. 6년이나 지난, 은, 6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와 같다. 아케미의 가족 사이에서 에토우 화제가 나오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있다면, 그건 그냥 푸념이다.

 초등학교 6년 간, 한 번도 히로와 같은 반이 되지 않았던 건 누구 덕분일까. 서로의 부모가 학교측에 말한 걸까, 아니면 학교가 멋대로 배치한 걸까. 혹시 같은 반이 됐더라면, 에토우와 오치아이는 50음도 순서대로니 높은 확률로 옆자리가 되버리겠지. 연락망으로 히로가 오치아이네 전화를 한다면, 그날은 하루종일 분위기가 침울하겠지. 

 ㅡ이런 일을 확실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최근에 들어서다. 자신과 히로가 휘말린 환경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은 6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족들은, 자신을 동정과 의무감과 죄악감에 얽매인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상관 없어, 라고 아케미는 생각한다. 자신과 히로의 사이에 있는 것이 우정이 아니라도 좋다, 위선자라고 생각하건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하건 별 상관 없다.

 그 아이가, 에토우 히로가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만이 사실이다. 그조차 거짓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인간이 되버릴 것이다.

 히로의 친구는 자신, 오치아이 아케미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아케미에게 있어서 괴로운 일이지만, 그걸로 됐다.

 비틀린 우월감에 가까운 것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걸 눈치챌만큼, 아케미는 자기 내면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러워진 눈만을 밟으며 돌아온 히로의 뒤를 본 적 없는 소년이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 떠오른 감정을 스스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케미는 자기 마음이 아닌 상대에게 그 답을 도출했다.

 그 답이, '수상쩍은 꼬마애'였다.

***

 아케미가 화내고 있다고 잘 알고있다. 하지만 그 분노가 자신에게 향해지지 않고, 자신의 뒤에 있는 인물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히로는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다. 추운 날에 현관 앞에서 몇 분이나 기다리게 해서 아케미가 화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옷쨩이다ㅡ 미안, 많이 기다렸어? 아, 그리고 기분은 괜찮아졌어?"

 라고 물어봤지만, 아케미는 자기를 보려하지 않고 등 뒤로 턱짓을 한다.

 "누구야?"

 "아, 이 사람은 있지, 미시마 씨야"

 "성 말고 이름은"

 "어어어... 뭐였더라... 아, 그러고보니 물어보질 않았네. 저기 미시마 씨, 이름은 뭐야?"

 "소우기"

 짧게 대답하고 미시마 소우기는 모자를 깊숙히 눌러썼다. 히로가 '옷쨩'이라고 부른 소녀의 선골을 보려고 육식을 펼치는 소우기는, 의도치않게 시야에 들어버려, 무심코 눈을 피했다.

 뒤에서 살펴본 히로의 선골은, 정면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달랐다. 인간 안에 있는 선골 중, 가장 두꺼운 게 등골이다. 그건 히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에 비하면 이상하리만치 두껍고, 에테르 또한 제대로 넘쳐흐르고 있다. 엄청 두껍지만 문제될 건 없다.

 문제삼을 것은, 후두부였다. 히로의 선골에는 결함있는 부분이 확실하게 많지만, 그래도 색은 정상적이고, 에테르는 아무런 문제 없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목의 바로 위, 후두부만은 에테르가 거의 흐르지 않았다. 진홍의 선골이 머리 모양을 따라가던 도중, 그곳만 작고 검은 동혈이 짠 하고 구멍을 넓히고 있다. 도려낸 정도가 아니다. 마치 그 부분만 죽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주 볼 수 없는 아름답다고 할만한 선골과 에테르에, 많이 봐서 익숙해진 검은 동혈이 있다. 그 대비가 굉장히 추악하게 느낀 소우기는, 육식을 닫음과 동시에 시선을 내린다.

 하지만 그 태도가, 아케미의 '수상쩍은 꼬마애'라는 주관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그래서, 그 미시마 소우기 씨는 이 아이랑 어떤 사이신지?"

 히로와 소우기에게 번갈아가며 시선을 보내면서, 아케미는 힐문하는 말투로 말했다.

 "음..."

 평소와는 다른 아케미의 태도에, 히로는 망설이면서도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어떤 사이일까. 철교 위에서 만나, 총을 들이밀어지고, 쏘이고, 손을 밟히고, 콘 폰타주 수프를 사주고, 아르케부스 가게에 데려가주고.

 뭐 그런 사이인데, 그렇게 말한다고 아케미가 알아줄까 자신이 없다.

 (시골에서 온 먼 친척이라던가, 먼 곳에서 온 친구라던가, 적당히 말하는 게 어때?)

 어깨 위에 있는 한니발이 히로의 귓가에 속삭인다.

 "에ㅡ 그건 거짓말이잖아"

 거짓말은 나쁜 일이다. 거짓말을 해도 되는 때는, 거짓말을 해도 될 때 뿐이다. 지금이 거짓말을 해도 되는 때인지 히로에게는 판단을 안 섰다. 판단을 못하겠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부탁이니까, 나한테 말 걸 때는 말을 공기가 아닌 육식에 담아줘. 내 목소리는 영수가 흐르지 않는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으니까, 네가 그냥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구... 봐, 네 친구가 너랑 미시마 씨를 노려보고 있잖아)

 진짜다. 포니테일이 솟구쳐오르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아케미는 무서운 눈으로 자신을ㅡ정확히는 뒤에 있는 소우기를 노려보고 있다. 왠지 포니테일만이 아니라 눈썹까지 곤두서버리지 않을까하는 기분이 들었다.

 "...바보, 일자 드라이버 갖고 있나"

 갑자기 그렇게 말한 건 얼굴을 숙인채로 있던 소우기였다.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좋거나, 바보랑 똑같거나, 바보에게 상냥하게 대해서 착한 사람 기분을 맛보는 인간인가. 이 바보랑 어울릴 수 있는 것은 그정도겠지. 오치아이 아케미가 어떤 이유로 바보랑 어울리던지 소우기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러니까 소우기는 아케미의 존재를 무시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이 히로의 옆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런 일은 소우기가 알 바 아니었다.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의 이유로 이 바보에게 어울리기로 결정했다. 이제와서 물러설 순 없다.

 "일자 드라이버... 우드나 아이언이나 티탄같은 거라면 있을텐데. 아빠 꺼지만"

 "그건 골프 클럽이야. 이녀석이 말하는 건 공구라구"

 언제나처럼 태클을 걸어주는 아케미였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녀석'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수상쩍은 꼬마애 상대로 예의 차릴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예의에 깐깐한 아케미는 자신의 언동을 사과해야하나 하고 소우기를 살펴봤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저 지금까지 숙이고있던 고개를 살짝 올려 이쪽을 볼 뿐이었다.

 처음 본 그의 눈은, 아케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한 눈이었다. 히로가 1학년이었을 때 주워온 목밖에 없는 참새처럼 공허했고, 시골 논밭의 개구리처럼 도전적이고, 102살로 죽은 증조부같이 달관한 눈.

 (...뭐지, 이녀석)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무섭다. 대체 그는 뭘까. 보통이라면 히로의 친구라고 생각하겠지만, 애석하게도 히로는 보통이 아니고 게다가 몇년째나 같이 어울려온 아케미도 어느 의미 보통은 아니다. 아케미는 '히로에게 나 이외의 친구가 생길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건 사실이었다. 방금까지는.

 "드라이버의 정체가 판명됐으니, 난 공구의 일자 드라이버를 찾아야 하는데, 없으면 어떡해?"

 아케미의 갈등도 모르고, 히로는 소우기를 돌아본다.

 "없을 때 생각해. 바보는 하나하나 대처하면 돼"

 그냥 회화다. 그건 알겠다. 하지만 아케미는 화가 치밀어올라 어쩌질 못했다. 그건 엄청나게 불합리한 이유에서 생겨난 감정이지만, 이해하고 표면에 드러낼 만큼, 아케미는 자신의 감정에 불성실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케미는 발치의 눈을 차면서, 히로와 소우기에게서 등을 돌렸다. 생일 선물을 다시 사러 가는 일도 머릿속에서 치워져버렸다.

 "어라, 옷쨩 돌아가? 볼일 있는 거 아니었어? 그리고 몸상태는 정말 괜찮아?"

 대답은 없다. 히로는 발빠르게 가버리는 아케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생각한다. 역시 추운 밖에 오랜 시간 기다리게 했던 것이 잘못된 걸까. 아케미가 금방 화내는 것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고. 그 외에는 화낼만한 이유를 모르겠다.

 "...아아, 맞아맞아. 미시마 씨, 방금 저 애는 옷쨩이라고 오치아이 아케미 씨라고 해. 내 친구야. ...아, 옷쨩, 미시마 씨에게 옷쨩을 소개하지 않아서 화났나봐"

 "글쎄다"

 소우기는 히로가 아닌, 에토우네 집을 보고 있다. 집의 위치를 확실하게 기억해두면서, 외관을 찬찬히 관찰한다. 이 집에 있는 인간을 저격한다고 친다면ㅡ

 (히로, 그러니까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그를 자신과 가까운 인간이라고 설명했어야 됐다구. 그녀는 네가 정체도 모르는 소년을 이 집 앞에 데려왔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거야)

 한니발의 목소리가, 소우기의 귀에 달라붙는다. 영적물질 결합체인 한니발의 목소리는, 영수가 흐르는 인간에게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한니발과 히로는 접촉하고있다. 이 경우, 한니발은 직접 히로에게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히로도 또한 한니발에게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혼의 일부를 공유하는 마스터와 파밀리아끼리라면 거리가 꽤 있더라도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한니발은 자신의 말을 감추려하지 않고, 소우기에게도 들리도록 했다. 한니발은 '자신이 감추려는 사실따윈 없다'라고 소우기에게 생각하게끔 하려나보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지.

 "정체도 모르는... 뭐 나는 미시마 씨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하루 씨는 잘 아는 듯한걸. 나중에 옷쨩이랑 만나면 뭐라고 말하지. 친구면 될까?"

 이야기에서 빠진 소우기는 문기둥 앞에 놓인 더러운 눈덩어리들을 바라봤다. 히로의 굉장히 즐거운 듯한 잔재가 붙어있는 모습을 눈치채고 얼굴을 돌린다. 얼굴을 돌린 곳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히로와 뭔가 꾸미고 있는 한니발이 있었다.

 "그걸로 된다면 맘대로 해"

 "그럼 안된다구. 내가 일방적으로 친구라고 생각해서 친구가 된다면, 아무나 다 친구가 되버리는걸. 미시마 씨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해주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어"

 나는 너랑 친구가 될 생각따윈 없어. 라고 즉답하려 했던 소우기였지만, 그렇게 솔직하게 대답할 필요는 없다고 눈치챘다. 이 바보를 단련시키려면 필연적으로 이녀석과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질 터. 그러기엔 이놈의 가족들과도 아는 사이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그 때 '친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입으로는 뭐라도 말할 수 있다. 히로의 고집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난 너의 친구다'라고 해야 한다. 별 것 아니다. 거짓말 쯤이야 대수롭지 않다.

 그런데도, 소우기는 망설이고 말았다. 이 바보에게 거짓말을 하는 데 주저했다. 그리고.

 "알았어. 너랑 친구가 되지"

 주저는 한순간. 망설임음 금방 사라졌다. 이 입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언제나 있는 일.

 소우기의 허위에 둘러싸인 말에, 히로는 미소로 대답했다. 국어책을 읽는 톤에 가까운 소우기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순수하게 웃는다.

 "와ㅡ 친구다ㅡ 이걸로 두명째야ㅡ 하루 씨, 깜짝 놀랐어ㅡ 아아, 맞다, 하루 씨랑도 친구가 될 수 있지! 니케랑 핫쨩은 내가 친구라고 생각해도 대답을 못하니까 친구가 되지 못했지만, 하루 씨는 대답할 수 있고"

 히로의 어깨 위에 있는 한니발은, 입을 비틀고 웃는다.

 (...나랑 네 관계는, 어디까지나 주종관계에 지나지 않지만... 네가 바란다면 난 네 친구가 되고 싶군)

 "정말? 기쁘다아. 유령인 하루 씨랑도 친구!"

 한니발을 잔뜩 쓰다듬고, 히로는 미소를 띈 얼굴로 소우기를 바라보고 왼손을 내민다.

 "악수 악수ㅡ 친구가 됐으니까 악수ㅡ"

 왜 악수를 해야 하는가. 생각은 했지만, 이걸로 이 바보가 만족한다면 됐다. 

 소우기는 단순한 기분으로 히로가 뻗은 손에 닿는다.



 프로미넨스처럼 돌출해왔다가 돌아가는 심홍의 불꽃. 인두로 지져지는 고통과, 미온수에 잠기는 듯한 안락함. 살아있는 힘이 흘러넘치는 그것은, 청백의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침식해서ㅡ



 갑자기 손을 뿌리쳐진 히로가, 뿌리친 소우기의 얼굴을 본다.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이마에서 대량의 땀이 흘러내린다. 뿌리쳐진 자신의 왼손과, 소우기의 얼굴을 살펴보면서, 히로는 뭘 해야하나 생각했다.

 한겨울에 운동도 하지 않았는데 땀을 잔뜩 흘린다면, 무슨 병이 아닐까. 머리가 나쁜 자신으로선 생각해도 모르니까 일단 땀을 닦아주는 편이 낫겠다. 히로는 주머니에 넣어둔 티슈를 꺼내기 위해 손을 넣는다.

 그 순간, 소우기가 뛰어올라 히로와 거리를 벌린다. 거리를 벌린 그가 가슴팍에서 리졸버를 꺼내드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 분명 심한 병은 아닐 거야, 다행이다 다행이야. 리졸버의 총구가 자신에게 겨눠졌다는 사실에도 상관하지 않고, 히로는 살짝 안심했다.

 "아ㅡ 깜짝놀랐어. 심장이라도 나쁜 건가 생각했다구"

 (조심성 깊음은 좋다만, 조금 더 냉정해지는 편이 좋겠어, 스나이퍼. 아직 수련이 부족하군)

 히로와 한니발의 말을 듣고 3초 후, 소우기는 총을 천천히 집어넣고 고개를 숙인다. 그 숙이는 순간에, 그의 표정이 천천히 무너지는 것을 히로는 보지 못했지만 한니발은 봤다.

 "...고양이, 바보한테 분해랑 조립하는 법을 가르쳐줘. 그건 네가 할 수 있겠지. 필요한 물건은 두고 가겠어. 넣어둬. 내일은 기초를 가르치지"

 땅을 보면서 그것만 빠르게 말하고, 소우기는 갖고있던 상자를 논이 쌓이지 않은 골목에 두고 뒤꿈치를 돌렸다. 등줄기를 뻗고 떠나려는 소우기의 등에, 히로가 말을 건다.

 "저기, 내일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거야?"

 답은 오지 않고, 소우기의 뒷모습은 순식간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히로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몸상태가 안좋아져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나'라며 멋대로 이해하고 소우기가 놓아둔 상자를 집어든다.

 (그도 죄가 많지만, 너도 죄가 많군)

 한니발이 한숨쉬듯 내뱉은 말에, 히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지 잘 모르겠어ㅡ 옷쨩이랑 만나서 사과하고 싶은데, 옷쨩네 집은 가지 못하고 전화도 걸지 못하고. 올해 중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넌 친구 주소나 전화번호도 몰라?)

 "알아. 하지만 가면 안 돼고, 전화도 걸면 안 돼"

 (왜)

 "옷쨩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니까"

 (그건 또 어른답지 못한 이유로군. 네가 뭔가 그녀의 가족들한테 나쁜 일이라도 한 거야?)

 "...아마"

 한니발은, 이 때 처음으로 히로의 슬픈 표정을 보았다. 바보라고 깔보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잃은듯한 이 소녀에게도, 평소엔 감추고 있는 감정이 있다. 그걸 발견한 한니발은 기쁨을 느끼며, 질문했다.

 (너가 대체 뭘 했길래?)

 그 질문을 했을 때, 히로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망양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미움받는 걸까)

 "글쎄?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나봐"

 (어떤?)

 "모르겠어. 아마 몇 년인가 전에 있었던 일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일은 무덤까지 가져가야만 하는 이야기라고 했으니까, 내가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이 되면 가르쳐줄게. 한참 나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와, 카지마쨩이랑 이하라쨩이 벌써 죽었잖아!"

 그 눈사람과 같은 꼴이 될 날은, 의외로 가까울지도 모른다.

 라고, 한니발은 말하지 않았다.

***

 "다녀왔습니다ㅡ"

 거실에서 돌아오는 엄마의 '다녀오렴'이라는 말을 들으며, 마중나온 니케의 볼을 당기며 놀던 히로는, 거실에서 후미카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손을 흔든다.

 "다녀왔어ㅡ 후쨩"

 히로의 손에서 해방되어 당황하며 도망가는 니케를 무시하고, 후미카는 현관 턱에 놓인 상자에 시선을 보낸다.

 "뭐야, 그 상자는"

 "받았어"

 "누구한테"

 "미시마 씨"

 "...누구?"

 "미시마 소우기 씨"

 "어디사는 누군지 묻는 거야. 이름따윈 한 번 들으면 안다구"

 "어디 사는지는 모르지만, 친구야"

 후미카의 미간에 한없이 깊은 주름이 새겨지는 모습을 본 한니발은 꼬리를 살랑 움직이고, 히로는 '후쨩 왜 화내는 걸까'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따.

 "친구, 라고. 언제, 어디서 만난 경위로 친구가 된 거야. 유치원때부터 지금까지 히로랑 같은 반이었던 사람 중에 미시마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같은 학교 사람은 아닐 거 아니야"

 "으음..."

 아까 철교 위에서 만났고, 잘 모르는 사이에 친구가 되었다. 자신으로선 이런 설명밖에 할 수 없는데, 이걸론 분명 후미카가 납득하지 않겠지. 그렇다고 해서 이 이외에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러니까, 예전에 같은 반이었다가 가정 사정으로 전학가버린 친구라던가, 멀리서 사귄 친구가 이쪽으로 왔다던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떨까)

 상자 귀퉁이에 있던 한니발이 현관에 걸터앉아있는 히로의 무릎가로 오더니, 속삭이듯이 말한다.

 "그건 들킨다구, 후쨩은 우리 반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니까, 멀리 다니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있고"

 "뭘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그래서, 그 미시마라는 건 뭐하는 놈이고, 그 상자 내용물은 뭐야"

 한니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후미카에게는, 히로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원래부터 의미모를 혼잣말이 많았던 언니의 언동이 약간은 수상했지만, 후미카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가 신경을 쏟아부은 곳은, 갑자기 생겨난 친구와 그 친구에게 받ㅇ은 살풍경한 선물이었다.

 "미시마 씨는..."

 이 때, 어째선지 히로는 소우기가 갖고있던 기타 케이스와 어깨에 올라타있던 까마귀를 떠올렸다.

 "기타를 가진 철새, 라고 해야하나"

 어딘가 풀어져있으면서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하는 히로의 등에, 후미카가 말없이 발뒤꿈치를 떨어트린다.

 "........."

 간의 뒤쪽을 걷어차인 탓인지 한순간 호흡을 못한 히로는, 언제나처럼 얼빠진 못소리로 '우왕, 아파아'라고 말하지 못했다. 앞으로 고꾸라져, 현관 문턱에 손을 대고 웅크린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 동생의 폭거에, 한니발도 뭔가 수단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언니는 어쩔 수 없는 바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까지 폭력적인 수단을 써야할 상대는 아니다. 어리석음이 죄일지 모르지만, 고통으로 제재를 가해도 좋을 리 없다.

 몹쓸 동생이다. 항의하려고 후미카쪽을 향한 한니발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수염을 떨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이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슬프다는 듯이 언니를 내려보는 후미카는, 언니를 때리거나 차거나 하는 폭력적인 동생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니발이 거실에서 봤던 때의 이상할 정도의 긴박감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서, 정말로 그때 그녀와 지금의 그녀가 동일인물인지 의심될 정도로. 코끝에 셀 수 없을 만큼 주름을 만들고 울먹이는 후미카에게, 한니발은 그녀가 울 것만 같다는 착각까지 했다.

 하지만 한니발이 멍하니 후미카를 올려다보는 사이에, 히로가 '우왕, 아파아...'하고 작게, 하지만 긴장감이 전혀 없는 목소리를 쥐어짜낸 순간, 그 표정은 싹 사라졌다. 대신에 나타난 건 어린아이 주제에 굉장히 차가운 분위기를 둘러싼 그 얼굴.

 질나쁜 연극을 보는 것같다ㅡ그렇게 느낀 한니발의 눈앞에, 다시 후미카의 발이 움직이더니 이번엔 상자를 걷어찬다. 탈캉, 하는 큰 소리를 내는 상자를, 웅크리고 있던 히로가 손을 뻗어 끌어안는다.

 "친구한테 받은 물건을, 발로 차면 안 돼. 조금 슬프니까"

 "멋대로 슬퍼하라구, 바보. 어디 말뼈따귀같은 놈한테 정체모를 물건을 받고 한다는 말이 철새네 뭐네 스스로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야 웃기려고 하는 이야기면 미안한데 전혀 안 웃기거든 바보 생산 폐기물이라도 받아서 고마워하고 더 바보가 되라고 바보"

 서슬퍼런 얼굴로 그 말만 조용히 내뱉고, 후미카는 계단에 숨어서 내다보는 니케를 한 번 째려보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 도중에 현관이 시끄럽다는 사실을 눈치챈 엄마가 동생의 등을 향해 말을 건넨다.

 "후미카, 또 언니랑 싸웠니?"

 "아ㅡ 엄마, 싸운 게 아니야. 후쨩이 약간 화냈을 뿐인걸"

 이 자매가 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부모인 자신도 잘 알고있다. 언니인 히로는 후미카에게 절대로 화내지 않는다. 매우 드물게 슬픈 얼굴을 하는 적도 있지만, 그래도 '분노'라는 감정은 전혀 결여되어있다는 듯이 느껴진다.

 싸움이 아닌, 그저 일방적으로 후미카가 화를 낼 뿐이다. 그건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해서 후미카에게 '후미카, 또 언니한테 화내고 있니?'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언니한테 화낸 사실을 빙 둘러서 혼낸다'는 듯한 말은.

 후미카가 하고 있는 일은, 긍정해선 안된다. 하지만,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다. 후미카는, '부모님의 관심이 히로에게 쏠려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민감하다. 히로는 손이 가는 자식이고, 후미카는 손이 가지 않는 자식. 자신도 남편도, 어떡하더라도 히로를 신경쓰게되는 일이 많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렸을 무렵부터 어딘가 어른스러웠던 후미카는, '글러먹은 언니'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버려둬도 괜찮으니까, 언니를 신경써줘'라고 자주 말했을 정도였다.

 그 때부터, 후미카는 이렇게나 언니를 싫어하게 되었다.

 "...히로, 후미카를 화나게 할만한 일을 했니?"

 자신의 생각에서 빠져나온 어머니는, 느릿느릿하게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딸을 내려본다.

 "내가 바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상자를 현관 문턱에 둔 뒤, 히로는 신발을 벗고 겨우 집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다시 상자를 들어올려, 엄마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생긋 웃는다.

 언제나와 같이, 태평한 미소.

 이 아이는 왜 웃는 걸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웃음으로 전부 덮어버리려는 걸까. 정말로, 진심으로 웃고 싶어서 웃는 걸까.

 이 악의 없는 미소의 뒷편에도, 같은 표정인 걸까ㅡ

 "왜그래, 엄마? 피곤해?"

 "응... 아니란다. 좀 생각할 게 있어서"

 히로코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자기 자식을 내려보고, 외출할 때는 없었던 상자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겨우 눈치챈다.

 "...그 상자, 어디서 났니?"

 "받았어, 미시마 씨한테"

 들어본 적 없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한다.

 "어디 사는 미시마 씨?"

 "글쎄, 어디 사는지는 모르겠어. 내일 만날지도 모르니까, 그때 물어볼게"

 모르는 사람에게 물건을 받으면 안 된다.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 항상 하는 말이다. 아무리 이 아이가 얼빠졌더라도 이것까지 잊어버리면 곤란하다.

 "히로... 모르는 사람에게 물건을 받으면 안 된다고 말했잖니"

 "모르는 사람 아니야, 친구인걸"

 친구.

 히로가 오치아이네 아이 외의 '친구'가 있다고 하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히로가 누군가와 이야기했을 때는 반드시 '얼굴이랑 이름만 아는 사람', '같은 반 애', '학교 선생님' 중 하나였다. 히로는, 오치아이네 아이 외에 누군가를 '친구'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히로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기뻐해야 하는 걸까.

 "...히로, 그 미시마 씨는 어떤 사람이니?"

 "음, 시마타로같은 사람. 모자 쓰고 까마귀 데리고 다니고 기타가방을 메고 있었어. 아마 나랑 비슷한 나이정도의 남자애야. 수프 사줬어"

 "시마타로..."

 변덕이 심하고 붙임성 없고 전혀 따르지 않던, 그런 주제에 태도는 거만했던 고양이를 생각해내는 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즉, 그런 소년인 거겠지. 히로에게 이 이상의 설명을 구하는 건 잔혹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히로코는 질문을 상자로 바꾼다.

 "그래서, 그 미시마 씨가 준 상자 안에는 뭐가 들어있니?"

 "글쎄, 뭘까. 아직 안 열어봤어"

 현관에 앉아서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히로는, 뚜껑을 닫고 있던 잠금쇠를 풀기 시작했다. 몇십초 뒤에 열린 그 상자의 내용물을 보고, 히로코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당황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총을 허리에 달기 위한 물건. 영어같은 글자가 나열된 작은 스프레이.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끝에 브러시가 달린 그리 길지 않은 금속 봉. 아주아주 평범한 푸른 천조각. 벨트에 끼울 수 있고 작은 주머니 네개로 나뉘어진 포치. 손가락 끝에 끼우는 검은 고무. 

 이해하기 힘들다. 언뜻 보기에 쓸 수 있는지 잘 모르겠는 물건의 가치를 잡아내는 건 남편의 특기였지만, 자신의 딸은 그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용도 불명의 물건을 받아버리는 숙명인가보다.

 "...이게 뭐니?"

 "글쎄, 뭐지? 아, 그래도 이건 알아, 홀스터라고 한대. ...하지만 그 외에는 잘 모르겠어. 내일 미시마 씨랑 만나면 물어봐야지"

 "그게 좋게구나... 히로, 혹시 미시마 씨가 오면 엄마한테도 알려주렴. 제대로 인사하고 싶으니까"

 이런 잡동사니에 가까운 물건을 주는 아이가, 어떤 인물인가 알아봐야겠다. 게다가 히로가 '친구'라고 부르는 인물을 만나보고 싶다.

 오치아이의 아이 이외의 친구ㅡ그건 자신도 남편도 긴 세월동안 기다려온 존재이다. 만나는 건 두렵지만, 만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니까.

 "응, 그럴게. 아, 손이랑 얼굴 씻고 올게"

 뚜껑을 덮고 히로는 화장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간다. 바닥에 놓인 상자를 내려보면서, 두 자식의 어머니는 생각한다.

 지금부터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 히로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자그마한, 하지만 큰 변화.

 혹시 이게 굉장히 좋은 일로 이어질 지도 몰라. 이 이상 나쁘게 굴러가지 않을 터. 

 히로코는, 평소보다 밝은 얼굴로 남편을 맞이할 수 있을 것같았다.

***

 1분 정도 양치를 하고, 비누로 1분 정도 얼굴을 씻고, 또 1분 정도 손을 씻는다. 얼굴과 손을 싹싹 닦은 뒤에 방으로 돌아가려 한 히로는, 엄마한테 상자를 두고 간다는 주의를 받고 당황해서 현관으로 돌아왔다.

 "모처럼 받은 거니까 소중하게 하렴"

 "응"

 하고 상자를 받아올려 계단으로 향하려던 히로였지만, 발치의 한니발에게 닿은 느낌이 들어 시선을 내린다.

 "왜, 하루 씨?"

 발치에서 살짝 히로의 다리에 닿아있던 한니발이, 입을 작게 열더니 한숨 비슷한 것을 내쉰다.

 (그러니까, 목소리를 내지 않고 말해도 된다고 했잖아... 네 방에 일자 드라이버는 있나?)

 "글쎄, 어떨까... 아마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디다 쓰려고?"

 (네가 쓰지 않으면 곤란할 건데... 엄마한테 있냐고 물어봐봐)

 "응... 엄마, 일자 드라이버 우리집에 있어?"

 현관문을 잠그고 체인을 걸던 히로코는, 히로의 평소와같은 혼잣말을 별 신경 안쓰고 있었지만, 무슨 맥락에서인지 나온 일자 드라이버라는 단어에 살짝 망설였다.

 "아빠가 회사에서 가져온 공구 세트 안에 있을텐데... 어디다 쓰려고?"

 "...어디에 쓰는 걸까?"

 (그렇게 날 내다보지 말아줬음 좋겠어. 네 어머니가 '딸이 바닥에 말을 걸게 되버렸다'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된다구)

 그건 큰일이다. 실제로 바닥과 이야기하는 건 어쨌든, 걱정되는 건 굉장히 지친다는 일이니까.

 (라디오 뚜껑을 열고 싶다고 말하는 건 어때)

 "아, 그건 열어보고 싶은걸. 라디오 뚜껑 열고 안에 뭐 있는지 보고 싶어"

 히로의 언동이 수상한 건 하루이틀 일도 아니다. 히로코는 그 말에 선뜻 납득했다.

 "열어도 되지만, 고장내면 안 된단다. 듣지 못하게 되면 설날이 지날 때까지 고치지 못하니까"

 그렇게 말하고 신발장 안에서 회색 공구함을 꺼내고는, 3개 있는 크기가 서로 다른 일자 드라이버 중 가장 작은 드라이버를 히로에게 건낸다.

 "끝이 불툭 튀어나와 있으니까 조심하렴. 잘못해서 찔리거나 하면 엄청 아프니까"

 "응, 조심할게. 고마워 엄마"

 드라이버를 쥔 상태로 상자를 끌어안고 올라가는 히로의 뒷모습을 니케가 쫓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히로코는 공구함을 있던 곳에 되돌려놓는다.

***

 사람의 육체에 닿고, 그걸 육체라고 느끼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육체에 닿는 것만으로, 그 인간의 혼을 느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때, 에토우 히로의 손에 닿았을 때, 그녀의 혼을 느낀 걸까. 심지어 육식도 닫아놓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그 바보의 혼을 싫다고 할만큼 느끼고 말았다. 뜨겁고, 아름답고, 그 반면, 거대한 파도처럼 자신의 혼을 덮치려고 한다.

 무서웠다.

 '남쪽'에서 많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과 만나고, 그 어느쪽도 매장해온 자신은, 공포라는 감정에 내성이 생겼다. 그러니까 이 나라로 돌아와서 무언가를 두려워해본 적은 없다.

 그 바보에 대해서 자신은 화나고, 초조하고, 그리고 두려웠다.

 이 변함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는 있다. 냉정하게 생각한 다음, 그 모두를 부정할 만큼 투정이 심한 꼬마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은 그 바보에게 화나고, 초조하고, 두려워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현실인데.

 에토우 히로가, 자신보다 뛰어난 혼의 혈수를 지녔고, 소울 언더 테이커로써 소질이 넘친다는 현실을.

 어째서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미시마 소우기는 고뇌한다.
 그리고, 그 고뇌의 원흉인 에토우 히로.

***

 (우선, 실린더에서 탄을 빼두도록 하자. 네가 한 발 쐈으니 5발은 아직 실탄이야. 뭐 별 일 없는 한 위험하진 않지만...)

 "흐음"

 (...그, 너무나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 편이 좋아)

 "하지만 잘 모르겠는걸"

 펼칠만한 물건이 없어서 신문지 위에 펼쳐둔 아스트라M44를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한니발은 히로가 과연 얼마만큼 아르케부스를 만질 수 있을지 생각했다. 정확한 일수는 모르지만, 자신이 씌인 이 총은 꽤나 긴 세월동안 제대로된 클리닝도 하지 못했다. 기름칠 정도는 하고 있지만, 여러 잔해가 끼어있다. 이래서야 이 총의 본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주인에게 청소를 시켜서, 제대로 에테르 코팅을 입히고 싶지만, 그러려면 이 총을 분해해야 한다.

 익숙해지면 20분도 걸리지 않지만, 히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리고 이해도가 굉장히 떨어지는 초짜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들지, 한니발로선 예상도 하지 못할 지경이다.

 (우선 조절나사를... 해머 아래 있는 그놈을 앞으로 눌러)

 방석에 정좌한 히로는 한니발의 말을 들으며 고무를 끼운 손가락으로 아스트라를 쥐고 여러 각도에서 관찰한다.

 "그래서, 해머는 뭔데?"

 ...일반상식은 아니지만, 해머, 그립, 트리거, 실린더 정도는 보통 사람이라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소녀는 '일반상식'이 매우 편중되어있다.

 그 사실을 눈치챈 한니발은 내일까지 기다릴까 생각했다. 그 소년ㅡ미시마 소우기와 함께 하는 편이, 고통도 노력도 반감되겠지.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이제부터 그 소년은 싫어할 정도로 노력을 해줘야 하니까.

 게다가,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그저 도구겠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는 주인이며 운명공동체다. 이정도의 일로 꺾인다면 앞으로 해쳐나갈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그걸 바닥에 돌려둬봐. 왼쪽 면을 위로 해서)

 "네ㅡ엥..."

 히로가 총을 둘 때, 아주 조금 주저한 모습을 보고 한니발은 약간 불안해졌다.

 (너 지금, 어디가 오른쪽이고 어디가 왼쪽인지 헷갈렸지)

 "어ㅡ 아무리 나라도 오른쪽 왼쪽은 금방 안다구. 오른쪽은 오른손이 있는 방향이고 왼쪽은 왼손이 있는 방향이지"

 묘한 표현이지만, 아무래도 알고는 있나보다

 (그럼 왜 망설였지?)

 "그야 손잡이를 쥐고있을 땐 이쪽... 이 튀어나온 부분이 왼쪽이지만"

 (그 튀어나온 게 조절나사야)

 "조절이가 왼쪽이지만, 이 봉이 달린 쪽을 쥐고있으면"

 (...적어도 통이라고 말해줘. 그 통은 바렐이야)

 "...하루 씨"

 (왜)

 "뭐든지 어려운 말을 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일부러 난해한 말을 쓰는 게 아니야. 그런 호칭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거지)

 "....끄으응...."

 난처한 얼굴을 하고 소리를 내는 히로를 무시하며, 한니발은 바닥에 놓인 아스트라에게 다가간다. 작은 앞발로 해머 아래를 가르킨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튀어나온 부분이 조절나사야. 이걸 앞으로, 바렐 쪽으로 누르면 실린더의 락이 해제되고, 스윙아웃... 실린더를 밖으로 꺼낼 수 있지. 그리고 탄을 빼. 뺀다고는 해도 총을 기울이면 멋대로 떨어지지만. ...알겠어?)

 "...모르겠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드라이버를 준비했지만, 그걸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선은 탄을 빼자. 내가 말한대로 해봐)

 히로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을 하며 다시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왼손 엄지로 조절나사를 앞으로 누른다.

 "눌렀는데... 이제 어떡하더라?"

 (실린더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눌러)

 "실린더가 이 연근같은 둥근거?"

 (그래)

 왼손의 나머지 손가락을 뻗어 가볍게 실린더 측면을 누르자, 한니발이 말한대로 실린더가 튀어나온다.

 "헤에, 총은 이런 식으로 되어있구나"

 (...조절나사에서 손가락을 떼는 게 어때? 그리고, 그렇게 힘을 주지 않더라도 괜찮아)

 "아, 힘 주지 않아도 되는구나"

 히로는 비어있는 왼손으로, 방금 굴러나온 실린더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한다.

 "우와ㅡ 잘 도네"

 즐거운듯이 돌리는 히로의 무릎 위에 올라타, 한니발은 짧은 앞발을 뻗어 총을 가르킨다.

 (이제, 저 안에 있는 탄을 뽑아야 해. 기울이면 떨어지니까, 제대로 손으로 잡아)

 "눼에ㅡ"

 총구를 살짝 위로 향하자, 길고 가느다란 금속 덩어리 여섯개가 왼손으로 떨어진다. 날카로운 황금색의 차가운 덩어리를, 히로는 신기한듯이 내려본다.

 "하아, 이게 총알이라는 거구나. 맞으면 아파?"

 (아까 쏘였을 때, 아팠어?)

 "어, 내가 쏘였던가?"

 그저 잊어버린 걸까, 아니면 '쏘였다'라는 인식을 하지 않은 걸까. 너무나도 둔한 주인의 무릎 위에서, 한니발은 고개를 숙였다.

 (미시마 씨한테 쏘여서 다리랑 팔이 한순간 움직이지 않았잖아)

 "헤ㅡ 그렇구나"

 (말해두지만, 별 일 없는 한 살아있는 인간에게 쏘면 안 돼. 이건 소울 언더 테이커의 상식이야... 미시마 씨는 상식을 모르는 듯했지만)

 "흐음... 그래도 뭐, 쏘여도 아프지 않고, 괜찮잖아?"

 (에토우 히로)

 어딘가 진지한 모습으로, 한니발이 무릎 위에서 내려와 히로를 바라본다.

 (아프지 않은 건 너의 선골의 두께와, 그의 조준이 절묘했기 때문이야. 혹시 네가 살아있는 인간을 쏴서 탄이 맞으면, 틀림없이 그 사람은 에테르가 유출해서 죽어버려. 결코 쏴선 안 돼)

 "응, 안 쏠게ㅡ"

 선뜻 대답하는 히로는 손에 쥔 탄을 신문지 위에 나열하기 시작한다. 정말로 이해한 건지, 불안해지는 한니발이었다.

 "...어라, 이것만 뭔가 이상해. 앞쪽에 꼬다리가 없고 안이 텅 비었네"

 (탄을 쏘면 그렇게 되는 거야. 빈 약협이라는 녀석이지. 안타는 쓰레기로 분리수거하도록 해)

 "에, 버려? 아깝게..."

 (이놈한테 무슨 사용법을 찾아내려는 거야)

 "으음, 하지만 어딘가에 쓸 수 있을거같은걸"

 (...어디에)

 "어딘가에"

 (...탄도 뽑았으니 다시 펼쳐볼까)

 그녀가 마이페이스를 광철한다면 자신도 마이페이스로 상대한다. 그렇게 결심한 한니발은 약협을 잊기로 했다.

 (실린더를 빼고 바렐을 빼서... 사이드 플레이트를 떼는 건 역시 무서우니 그만두지. 일단 실린더야. 총의 오른쪽, 실린더 아래쪽 핀을 풀어봐)

 "핀이 뭐야?"

 (...나사 말이야)

 "그럼 나사라고 말해주면 좋을텐데"

 (나는 핀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져있어서)

 "하루 씨는 고양이인데 어려운 말만 쓰는 생활을 했구나... 인텔리네"

 히로는 어머니에게 받은 일자 드라이버를 들고 실린더 아래쪽에 있는 핀에 맞췄다. 그리고 히로의 움직임이 멈춰버린 모습을 봤지만, 한니발은 일단 침묵했다.

 하지만.

 "으음, 꽉 조여진 나사인걸..."

 (...히로)

 "왜애?"

 (너 지금 핀을 조이고 있어. 그래선 언제까지고 핀을 뽑을 수 없어)

 "아아, 반대였구나! 너무 조여져 있다고 생각했어. 그럼 다시..."

 (...히로)

 "왜애?"

 (네가 묘한 방향으로 힘을 넣어서 핀이 상했어)

 "그래? 괜찮잖아, 잘 보니까 이 총 군데군데 기스나있는걸. 한두개 정도 늘어난대도 상관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줘...)

 "일단 노력할게"

 한니발은 그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에 공포를 느꼈다. 자신은 물건에 닿을 수 없으니, 입은 나불대도 손을 낼 수는 없다. 혹시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분해시킨다면, 시간도 걸리고 나사나 스프링을 어딘가로 날려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실린더를 뺀 시점에서 한니발은 히로의 위험하기 짝이없는 손을 멈추게 했다.

 (이 고양이 손이 조금 더 도움되면 좋겠는데...)

 "에ㅡ 고양이 손도 도움이 된다구ㅡ 그치 니케?"

 다락방 입구에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민 니케에게 웃어보이는 히로를 보고는, 한니발은 이 바보같은 주인과 자신에게 얽혀버린 미시마 소우기에 대해 동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히로에게 친구가 생긴다. 그건 대단히 기쁜 일이다, 라고 에토우 에이지는 생각한다. 딸의 친구라고 하면, 그 아이 한 명 뿐이다. 그 아이는 결코 나쁜 아이가 아니다. 그건 알고 있다.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체로 그 아이를 원망하는 일은 번지수를 잘못 짚는 것이다. 우리들 부부가 원망하고, 증오해야할 인간은 따로 있다. 단, 그 인물이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혹시 그 아이가 그 때 다른 행동을 취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라는 감정이, 아직까지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있다.

 그 아이 또한 피해자인데.

 하지만, 그래도 생각하고 만다. 지금 히로의 성격은, 6년 전 그 사건을 기점으로 변해버린게 아닐까 하고.

 어린이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본인이 태어나며 가진 선천적 성질, 부모의 영향, 주변 환경, 그런 것들일까. 히로의 경우에는 할머니, 자신에게 있어서 어머니에 해당하는 존재가 인격에 큰 영향을 줬다고 에이지는 생각한다.

 꽤 치우친 사고회로에, 자식을 너무나도 귀여워하고, 손녀 둘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금방 화를 내지만 금방 진정하고, 이상한 곳에서 사려깊고, 묘한 곳에서 비정상적일만큼 뻔뻔한,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아마도 히로가 받았을 것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한다. 이건 절대로 어머니의 영향이다. 인간, 못할 일은 없지만 신이 아니므로 불가능한 일도 있다. 히로가 가끔 하는 말은, 어머니의 말이기도 하다. 그건 딱히 나쁘지 않다.

 그 아이의 문제점은, 다른 곳에 있다.

 ...사실은, 문제점따위 말하고 싶지 않다.

 히로는 착한 아이다. 다소 자식사랑이 지나친 점은인정한다. 하지만, 착한 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라고 생각하고 싶다. 세간에서도 아마도 이건 인정해주지 않을까. '에토우네 큰딸, 그 좀 그렇지'라는 말 뒤에 꼭 '나쁜 아이는 아닌데'라는 말이 붙는 모양이다.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뜻은 즉 착한 아이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일단 이어보고 만다.

 학교 성적이 나쁜 건, 뭐 딱히 문제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머리가 나쁘다는 말은 듣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저 공부라는 사항에 대해 이상할만큼 기억력이 낮고, 잘 웃고, 그리 화내지 않고, 앞일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고, 타인의 화롤 돋구어도 왜 화내는지 잘 모르고, 그렇기에 반성하지 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잘 생각해보면, 꽤나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지, 에이지에게는 알 수 없었다. 일단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오르지 않고 있다.

 해를 거듭하면 자연히 달라질까. 그런 일도 부인과 둘이서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그 일이 원인으로, 히로가 계속 저상태 그대로라면.

 역시, 자신과 아내는, 그 아이를 원망해버리겠지. 그 아이에게 아무런 죄가 없더라도.

 하지만, 그 아이 이외에 히로의 친구는 없다. 과정은 어찌됐건, 이게 현실이다. 그 히로에게 저 아이 외의 친구가 생긴다.

 기뻐해야할 일이다. 아내에게 들은 말로는 소년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지만, 뭐 신경쓰지 않도록 하자. 대체로 딸에게 남자사람친구가 생긴 정도로 이래저래 걱정하는 마음이 샘솟는 딸바보가 되고 싶진 않다. 그야 딸이 그런 나이대라면 당연히 신경쓰이겠지만, 이제 막 12살이 된 아이다. 대체 뭘 신경쓰란 말인가.

 …자신과 아내의 연애 관계가 시작된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교 시절이 되버리긴 하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니까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일전의 기타케이스를 멘 소년이라는 사실은,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

 "...안녕하세요"

 미시마 소우기는, 에토우네 집 문기둥에 기대어 신문을 읽으며 담배를 피고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해보면 이 남자가 그날 그때 그곳에서 한니발이 씌인 아르케부스를 사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에토우 히로와 만나지 않았을테고, 이 집에 올 일도 없었을텐데.

 인연이다, 라고도 운명이라고도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이 그 바보를 나름대로의 소울 언더 테이커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분위기에 흘려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자신의 의사다. 한니발에게 강요당한 건 절대로 아니다.

 그러니까 이 집에 온 것도 자신의 의사다. 그러므로 인터폰에 가까이 있는 에토우 히로의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중년 남자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뭔가 이상한 거라도 있나. 그렇게 수상하게 보이지는 않을텐데. 대체로 이 남자는 영수가 흐르지 않는다. 자신의 어깨 위에 있는 실버도 보이지 않을 터다.

 어깨 위에 까마귀를, 그것도 목에 하얀 털이 나있는 새를 태우고있는 소년, 그건 확실히 수상하다고 경계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남자는 실버를 인식할 수 없고, 더욱이 지금은 은폐영채를 씌워두었다. 이거라면 일반인은 물론, 아직 영수의 회전이 빠르지 않은 바보도 실버를 지각하지 못할 터다.

 자신의 겉모습 중 이상한 부분, 굳이 말하자면 이 기타케이스 모양을 한 라이플 케이스가 아닐까. 이 속에는 갈릴 스나이퍼 라이플이 수납되어있다. 조금 더 겉모습이 어렸을 때는 무겁고 커서 어찌할 수 없었던 이 라이플도, 지금은 꽤 가볍게 느껴진다. 크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대신 자신이 약간 성장했다. 아직 이 라이플을 작다고 느끼지는 못하지만, 쏘기에 전혀 지장이 없다.

 이 내용물이 보인다면 수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보일 턱이 없으니 수상하게 여겨질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가. 모자인가, 복장인가, 아니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안녕............"

 꽤나 긴 침묵 뒤, 겨우 남자한테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어째선지 약간 떨리고, 그 직후 담배를 잘못 피웠는지 격하게 재채기를 하며 담배를 떨어트렸다. 뭘 동요하고 있는 걸까, 이 남자는.

 뭐 됐다. 아무튼 대답을 받았으니까. 서둘러 바보를 만나볼까. 다른 사람 집에 들어가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그 바보를 자기 집으로 부르기는 더 싫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자신이 찾아왔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 이 집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은 이 남자, 아마도 에토우네 주인인 이 사람에게 인사를 해야만 했다.

 라고 생각한 뒤, 소우기는 그에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했을 뿐이지,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그 가게에서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딱히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우선 이 만남을 첫대면이라고 하고, '처음뵙겠습니다'라는 인사부터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소우기는,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뵙겠습니다, 미시마 소우기라고 합니다. 히로 씨의 친구입니다.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이상한 말, 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법적으로 묘한 곳은 없었겠지. 아니면, 어린애답지 않은 말을 썼으려나…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일반적인 말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표정을 더욱 굳히고, 들고있던 신문을 꽉 움켜쥔다. 뭐가 이상했나. 그는, 자신에게 무언가 불만을 갖고있는 걸까.

 "......어...... 우, 우리 딸애한테 무슨 볼일이신지..."

 어째선지 어린애한테 정중한 말을 쓰는지. 딱히 쓰지 말라고 하진 않지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게다가 무슨 볼일이냐고 물어봐도 곤란하다. 아르케부스의 분해와 청소 방법, 총알 제작 방법 정도까지는 가르쳐두려고 생각했지만, 훨씬 기초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ㅡ그런 생각을 이 남자에게 설명할 마음은 없다.

 애초에 소울 언더 테이커라는 일을 일반인에게 인지시키는 일은 어렵다. '혼'이라는 녀석을 볼 수 없으니까 당연하다. 소울 언더 테이커는 장의회사나 시장의 주민부 등 밀접한 관계를 지녔으나, '혼의 장례식'이라는 일이 행해지는 사실을 아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영장업무 청부인. 소울 언더 테이커의 정식 명칭이지만, 어감이 나쁜 탓인지 이 호칭이 쓰이는 건 공식 문서 정도다. 하지만, 공식적인 혼의 장례는 그다지 행해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 많은 집착을 갖지 않는 혼은, 자연스럽게 천천히 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혼도 있다. 이 세상에 무슨일이 있더라도 남고 싶어하며, 살아있는 육체와 혼에 달라붙기도 한다. 그런 방황하는 혼을 달로 돌려보내기 위한 장례식을 감행하는 것이 소울 언더 테이커의 일이다.

 혼을 달로 돌려보내는 수단. 그건 혼을 공중분해시키는 것. '양'을 아르케부스로 파쇄하고, 그 파편을 아르케부스로 달을 향해 쏜다. 이 세상에 필요없는 소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일이지만, 더러운 직업이기도 하다.

 더럽혀진 혼과 관계되는 일을 계속하는 사이에, 혼이 조금씩 닳아버리고 더러워지는 자도 많다. 

 이 남자에게 그런 설명을 해서, 설령 이해해준다 하더라도 자신의 딸이 그런 직업을 갖는 일을 좋아하진 않겠지. 자신이 소울 언더 테이커라는 사실을 혈연자에게 알리지 않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 미시마 가문처럼 일가 전원이 이 직업에 관련되어있는 곳은 정말 드물다. 

 소우기는 여러 이유를 대가며 히로를 만나는 진짜 이유를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귀찮으니까'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소우기는 거기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소우기는 여기를 방문한 진짜 이유를 대지 않고 대답했다.

 "놀러왔어요"

 놀다. 자신과는 인연이 없는 말이다. 논다는 행위를 했던 기억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신들 또래가 하는 놀이는 대체 뭘까. 실내라면 TV게임일까. 야외라면 놀이터의 놀이기구를 가지고 노는 걸까.

 함께 공부하러 왔다, 라고 하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바보랑 공부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애초에 이 남자도 자기 딸이 공부해봤자 소용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테고.

 하지만 '도서관에 간다' 정도는 말해두는 편이 좋았을까. 그 편이 말은 좋다. ...라고 이제와서 이래저래 생각해보지만.

 "......아, 놀러온 겁니까......"

 뭐지, 이 남자는.

 이 남자의 동요가 점점 심해져간다. 그쳤긴 하지만 아직 눈이 남아있는 이 추운 하늘 아래, 넓은 이마에 땀까지 흘리며, 커다란 안구를 불안하다는듯이 두리번두리번거린다. 

 빤히 그의 얼굴을 본 소우기는, 그 바보랑 공통점을 찾아내려하고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이 남자와 바보는 닮은 걸까, 닮지 않은 걸까.

 남자는 어머니를, 여자는 아버지를 닮는다. 그런 말을 한 건 자기 형이었던가. 그렇게 말한 형은, 확실히 어머니를 닮았던 기억이 나지만, '너는 아버지를 닮았네'라고 누나가 말했다.

 이 눈 앞에 있는 남자는, 바보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이 남자는 영수가 흐르지도 않고, 에테르의 밀도나 선골의 두터움도 평범한 사람이다. 에테르 밀도가 유전된다고는 판명되지 않았지만, 미시마 가문에서는 부모의 에테르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부모님도 형이나 누나들은, 전원 두터운 선골과 높은 에테르 밀도를 갖고있다.

 하지만, 자신들보다 까마득하게 두터운 선골과 아름다운 에테르를 대량으로 체내에 지닌 에토우 히로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머니가 대단한 걸까, 아니면 개천에서 용난 걸까. 

 ...그 바보는, 용은 아니지만.

 소우기는 금방 생각을 고친다. 저건 용이 아니다. 추한 오리새끼는 백조였다고 하지만, 저건 오리새끼조차 아니다. 아직 알 상태다. 그 안에서 뭐가 나올지는, 자신과 한니발에게 걸려있지만. 부디 괴물이나 뱀이 나오지 않도록 잘 보살펴주지 않으면 큰일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언제까지 멍하니 서있을 셈일까. 연말이 닥쳐오는 현재, 이 남자도 한가하지는 않을 터다. 담뱃재를 자기 집 앞에 떨어트리고 신문을 쥔 채로 멍하니 서있는 사이에, 집 안에 들어가 바보를 만나면 된다.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쫓아내고 싶다면, 화를 내며 쫓아내면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돌아가지만, 실버를 통해 바보와 연락하면 될까. 그거랑 의사소통을 취하는 건 힘드니까, 한니발과 대화하는 편이 낫겠다. 그리고 바보를 불러서... 그러고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자기 집에 저거를 끌고가야 하나. 

 짜증이 날 것 같은 소우기였지만, 여기서 겨우 바보의 아버지가 움직였다. 문기둥에 놓인 재털이에 꽁초를 비벼끄고, 꾸깃꾸깃 접힌 신문지를 가능한 깨끗하게 접는다.

 "........어, 즉, 넌 우리 히로의 친구고, 오늘 이 날 우리집에 놀러왔다, 는 뜻이고......."

 그러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있잖아.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소우기는 어떻게든 참아냈다. 그 바보의 바보력의 일부는 이 남자에게 유전된 것일까. 요령이 나쁜 이 남자에게, 소우기는 점점 화가 났다. 자신을 나이 치고는 침착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제부터 아무래도 그렇지는 않은 일만 눈앞에 나타난다. 딱히 자신이 침착한 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화를 돋구는 인간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 그렇게 내심 생각하며, 소우기는 남자의 얼굴을 본다.

 "네, 그 말씀대로입니다, 히로의 아버님"

***

 아버님.

 처음보는 소년에게 갑자기 아버님이라고 불려버렸다. 아무리 위에 '히로의'라는 말이 붙었다곤 해도, 어째 쇼크를 받고 말았다. 술집 여주인이나 택시 운전수에게 '아버님'이라고 불려도 신경쓰이지 않지만, 지금, 이 소년의 입에서 '아버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에이지는 격하게 동요했다.

 아버님.

 그야, 확실히 자신은 아버님이다. 그건 틀림없다. 자각하고 있다. 아내 또한 어머님이다. 딸 둘 앞에서는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둘만 있을 때는 '여보', '당신'이기도 하다. 이웃 사람들에게는 '에토우 부인', 에토우 남편'이기도 하다. 왠지, 이름으로 불린 기억이 없는 듯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아버님' 이외에 뭔가 좋은 호칭이 있지 않을까. 이 소년에게 '나는 에토우 에이지다, 에이지라고 부르도록'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럼 '아저씨'가 좋을까. 하지만 '아저씨'라고 불리우는 모습을 상상하니, 꽤 저항감이 생긴다. 아버님이라는 편이 낫다는 건 아니다. '형'이라고 불릴 나오는 더욱이 아니라고 자각은 하지만, 안다 하더라도 모르는 꼬마한테 '아저씨'라고 불리우면 쇼크다. 

 그러고보면, 아내도 슈퍼에서 '아줌마'라고 불리면 약간 상처받는다고 한다. 그런 푸념을 들었을 때, '괜찮잖아, 다른 사람한테 뭐라고 들리던간에. 애초에 언니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잖아'라고 대답하니까 싫어했다. 그 때는 히로에게 '아빠가 엄마를 화나게 했어, 못쓰겠네에 아빠 몹쓸 사람이야'라고 들었다. 후미카의 반응은 언제나처럼 똑같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히로는 자신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고, 후미카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째서 이렇게 다를까.

 예전에는, 이라고 할 정도로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후미카도 자신들을 아빠, 엄마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어느샌가 후미카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게 된 걸까. 의식하고 호칭을 바꾼 듯하다, 우리 차녀는.

 바보같은 언니와 똑똑한 동생. 세간에서는 우리 두 딸을 그렇게 부른다. 확실히 후미카는 똑똑하다, 라고 해도 좋다. 학교 성적이 나쁘긴 커녕 매우 좋다. 친구도 많고, 통지서에 적힌 통신란도 히로에 비해 훨씬 적고, 그리고 칭찬의 말이 많다.

 하지만, 그것만이 후미카의 모든것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히로를 대하는 후미카의 태도는, 전혀 칭찬할 수가 없다. 큰 소리로 호통치는 것만이 아니라, 히로에게 손찌검을 하는 모양이다. 

 모양이다, 라는 말은, 후미카가 히로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자신도 아내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그 장소에 있었다면, 자신들은 후미카를 혼내겠지만, 후미카가 히로에게 손찌검하는 때는 단 둘일 때만 그러는 모양이고, 히로는 결코 '후미카에게 맞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매가 이렇게나 사이가 나빠진 이유. 그런 일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날까지, 우리들 가족은ㅡ

***

 대체 뭘까, 이 남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되버린 에이지를 보고, 소우기는 기타 케이스를 고쳐메면서 내심 질려버렸다. 이 남자는 자신을 집에 들여보내줄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대답을 확실하게 해주지 않으면 답이 없다. 

 "...저, 죄송합니다. 밖은 추운데, 히로 씨를 만나러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추위를 견디지 못하지는 않지만, 이래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우기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에이지가 총이라도 맞은듯이 움직인다. 들고있던 재털이가 흔들리고, 옆구리에 끼고있던 신문이 눈 위에 떨어지고, 당황해서 들어올리려다가 그 박자에 맞춰서 재털이가 떨어져 집 앞 현관에 재를 뒤엎어버리고는 '아아아아아...'라는 볼품없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젖은 신문과 텅 비어버린 재털이를 줍는다.

 ".......이런, 미안하군, 너...... 그렇지, 여기는 춥지.......... 뭐 나는 추운 걸 좋아하니까... 아니, 밖에서 담배피고 있었던 건 말이지, 가족들이 싫어하니까 그런 거고... 넌 피우지 않으니까 모르겠지만.......... 뭐, 커튼이나 천장이 노랗게 되는 일도 좋을지 모르지만, 딸들이 좀 천식에 걸린 적이 있어서...... 그러니까 담배필 때는 이렇게 밖에서 피우게 되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자신은. 신문이랑 재털이를 들고, 묘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면서, 뭘 처음보는 소년에게 변명하는 걸까.

 즉, 자신은 이렇게 그에게 변명하는 것으로, 가능한 한 히로와 소년을 만나게 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꽤나 담이 작은 남자다. 이렇게 볼품없어서야 어떻게 할 것인가, 딸에게 남자사람친구가 방문해온 것만으로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럼, 물론이지, 에토우 에이지.

 라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도, 에이지는 등줄기를 확실히 펴고 눈앞에 있는 미시마 소우기 소년을 내려본다.

 내려다보이는 측인 소우기로서는, 내려다보인 이상 올려다 볼 수밖에 없다. 허리를 굽히고 일부러 시선을 맞추는 것보단 낫지만, 아까전까지의 묘한 태도를 취하던 남자가 이런 도전적인 태도를 취하다니 뭔가 열받았다.

 그렇기에 소우기도 또한, 조용히 에이지를 올려다봤다.

 그 소우기의 얼굴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본 에이지는, 어떻게도 싫은 기억을 회상해버렸다. 그의 얼굴은 무언가를 생각해내게 한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기억하기 싫은 무언가가.

 그 기억하기 싫은 무언가를, 에이지는 어째선지 생각해내지 못했다.

***

 일단 숙제라도 할까, 하고 히로는 생각했다. 겨울방학이다. 독서감상문으로 원고지 2장을 쓰기 시작한다. 그것뿐이다. 그것뿐이라고 말해버리면 그것뿐이지만, 이게 큰일이다. 우선 독서감상문. 감상문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책을 읽어야한다. 그리고 이 책을 선택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선천적으로 히로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위에 익숙하지 않다. 적당히 골라서 된다면, 금방이라도 결정해버린다. 하지만 선생님이 '과제독서는 잘 생각하고 골라라'라고 말했기에 히로응 꽤나 고민하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10권 정도의 과제독서 중, 히로는 나츠메 소우세키의 '도련님'을 골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엔짜리 지폐에 그려져있는 사람이니까.

 (...너 그런 이유로 책을 고르나?)

 "그래ㅡ 안 돼?"

 방석 위에서 하품하면서 책을 책상 위에 펼쳐두고 딱 독서하려는 히로의 옆에, 한니발이 있다.

 (안 돼, 라고 말하진 않지만... 네가 읽고 싶은 책은 없나? 책을 안 읽지는 않은것같은데... 아무리 봐도 이상한 책꽂이야)

 그리 크지 않은 그 책장에는 교과서와 사전을 제외하면, 꽤 어린이용으로 보이는 구약성서, 신약성서, 고사기, 옛날 전래동화 등이 늘어져있다.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어울리지 않군, 하고 한니발은 생각했다. 만화라도 읽는가 생각해봤지만, 그런 책은 한 권도 없다.

 (이것들은 전부 다 읽었어?)

 "읽었어"

 (호오, 언제적에?)

 이외의 대답에, 한니발은 무심코 눈을 크게 떴다. 그저 부모가 사둔 책장일 뿐이라고 마음 한켠에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글쎄? 잘 기억나지 않는걸, 언제였더라. 저기 핫쨩?"

 그렇게 말을 거는 히로의 책상다리 위에는, 하츠히코가 몸을 둥글게 하고있다. 히로가 그 등을 쓰다듬어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책상다리는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래? 정좌하면 핫쨩이 싫어하는걸. 뭔가 앉기 불편한 모양이야. 하지만 뭐, 해볼까... 읏챠"

 히로는 굉장히 무거워보이는 하츠히코의 몸을 양 팔로 끌어안고, 한 번 일어섰다. 그리고 정좌를 해서 새로 하츠히코를 무릎 위에 놓는다. 그 사이, 하츠히코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그저 귀를 쫑끗쫑끗 세울 뿐이었다.

 "으음, 곤란한걸. 핫쨩에게 손을 떼면, 미끄러 떨어져. 한손이면 지치고, 양손이면 책을 읽을 수 없고. 곤란한걸"

 정좌한 히로의 무릎에 올려두기에는, 하츠히코의 몸이 너무나도 컸다. 히로가 손으로 지탱해주지 않으면, 하츠히코의 몸이 히로의 무릎에서 떨어지고 만다.

 (...그나저나 정말 큰 고양이군, 이거)

 암컷 새끼고양이 모습을 한 한니발과, 다 큰 수컷 고양이. 그것도 꽤 덩치가 큰 부류에 속한 하츠히코는 크기가 급이 달랐다. 한니발과 하츠히코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고, 히로는 굉장히 즐거운 듯한 얼굴을 했다.

 "으음, 역시 핫쨩은 남자아이구나, 금방 하루 씨랑 사이가 좋아졌어"

 (나랑 얘가 어딜봐서 사이가 좋다는 거야)

 "그치만 핫쨩 도망가지도 않고, 후ㅡ후ㅡ하지도 않는걸, 하루 씨가 곁에 있는데. 이건 사이가 좋아졌다는 증거야. 니케는 아직도 도망다니는걸, 하루 씨한테서"

 히로가 말한대로, 니케는 아직도 다락방으로 오는 계단 밑에 있다. 때때로 계단을 올라와 방 안을 염탐하고는, 한니발의 모습을 보면 도망가버린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고양이를 받치고 있을 셈이야? 지치지 않나)

 "지쳐ㅡ 그러니까 곤란한걸"

 (고양이를 내려두면 되잖아)

 "안 돼, 자는 걸 깨우면, 슬픈걸"

 (...그도 내려두면 금방 눈을 뜰 거야. 그리고 자신에게 상응하는 장소로 가겠지. 그러니까 내려두는 게 좋지 않을까? 애초에 그래선 언제까지고 책을 읽을 수 없다고)

 한니발의 말에 히로는 '으으응'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뭐,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치만 핫쨩 모처럼 잠들었는데 불쌍하잖아. 자고있을 때는 자는 게 제일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하츠히코의 등에 나있는 털을, 히로가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털이 나있는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손가락을 움진인다. 그 동작이 쓰다듬는 모습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아서, 한니발은,

 (...너 뭐하는 거냐)

 라고 물었다.

 "벼룩 떼고있어"

 (...벼룩? 이 고양이 벼룩이 있어? 게다가 이 고양이가 하고있는 목걸이 벼룩방지 목걸이 아니야?)

 "벼룩방지 목걸이 맞아ㅡ 벼룩잡이 빗으로 떼야하고, 겨울이니까 적긴 하지만, 절대 없지는 않거든"

 (넌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만 벼룩을 찾아내는 건가?)

 "그래ㅡ 오, 있다 있어, 별로 없으니까 찾아내기 힘들지만, 추워서 빌빌대니까 잡기 쉬워"

 그렇게 말하더니, 히로는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딱 잡고 천천히 하츠히코의 등에서 손을 뗀다. 그 손가락 끝에는 몇개의 털이 얽혀있었다.

 히로는 엄지와 검지가 겹쳐있는 부분을 정중히 빼내더니, 손톱끼리 마물린다. 뽀각, 하는 작은 소리를 낸 뒤, 히로는 가까이 있던 쓰레기통 위에 양손을 털어버린다.

 (벼룩을 눌러 죽인 건가?)

 "응, 사실은 죽이면 안 되지만, 이건 수컷이니까 죽이고 말았아"

 (암컷은 죽이지 않는 건가)

 "암컷은 알을 베고 있으니까, 배 안에 알이 있으면 터지면서 알이 나와버리잖아? 벼룩알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까, 나오면 처리할 수 없는걸. 벼룩이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지"

 (흠)

 변함없이 쓸데없는 것만 알고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만 기억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한 한니발이었지만, 문득 자신의 주인에게 질문하고 싶어졌다.

 (너는 벼룩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벼룩을 죽여서, 핫쨩이 가려워하지 않게 되"

 (그것만을 위해서, 넌 벼룩을 대량학살 하는 거야?)

 "음, 얼마나 죽이는지 셀 수 없는걸. 한 번, 아주머니가 벼룩 한 마리 잡을 때마다 1엔 준다고 했을 때 세어봤어. 2583마리였나? 꽤 굉장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지. 피곤했어"

 (즉 너는, 네가 기르는 고양이에게 있어 그 존재가 불결하니까, 라는 이유만으로 벼룩을 죽이는 거군?)

 "또 하루 씨 어려운 말 쓰네. 맞아, 핫쨩이나 니케를 위해 벼룩을 잔뜩 죽였어"

 둔하군, 하고 한니발은 생각했다. 의미가 함축된 발언을 했을 생각인 모양이지만, 이 얼빠진 주인은 전혀 눈치채주지 못한다. 평소라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라고 반문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그녀는 태연하게 자신의 말에 솔직하게, 정직하게, 기죽지도 않고, 그저 생각하는대로 응답한다.

 그녀가 소울 언더 테이커라는 죽음과 밀접하게 얽힌, 어느 의미로 더러워진, 그리고 신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면, 그녀는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식으로 느낄까. 한니발은 그런 생각을 품은 자신에게, 살짝 놀랐다.

 그래서, 한니발은 계속해서 질문한다.

 (넌, 네 가족이, 네가 너무나도 어리석음에 탄식하고, 불쾌하게 생각해서, 널 안 보려하고 멀리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할 거지?)

 혹시 이 아이는, 자신을 죽이는 일도 주저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루 씨는, 어려운 말을 쓰지만, 질문은 꽤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 뿐이구나



 "그건 간단해"

 "히로!"

 아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히로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떨어져버린 하츠히코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아아아아미안해 하츠히코, 아팠지, 미안해 미안해'라고 말하면서 하츠히코의 등을 쓰다듬고, 당황해서 계단을 내려가려고 발을 떼고, 계단 밑에 있던 니케가 '뀨ㅡ!'하고 울면서 도망치고, 우당탕,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아파아아아아, 끄우아아아아,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지만 괜찮아아아아아아"

 라고 외치는 소리에 섞여, 부모의 걱정하는 소리와 동생의 매도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이런)

 떨어진 채로 움직이지 않는 하츠히코가,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한니발은,

 (그녀를 단련하기 위해 이 고양이 손을 빌릴 수 있을까)

 라고, 꽤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

***

 "아, 미시마 씨다, 안녕"

 소우기는 말그대로 구르듯이 2층에서 내려온 히로가, 마지막 계단을 잘못 디뎌 발을 모서리에 부딪치고 '아파아'라고 중얼거린 몇 초 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서서 얼빠진 웃음을 지어보이는 히로를 무표정으로 바라본다.

 "...안녕"

 일단 무난한 인사를 한 뒤, 현관에 발을 디디려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꼈다.

 (....뭐지?)

 계단의 옆에는, 아까까지 허둥대는 표정만 띄우던 바보의 아버지와, 아까까지 굉장히 일반적인 인사를 나눈 어머니가 있다. 계단의 끝에 있는 방에서는, 아까부터 자신을 향한 비틀린 악의같은 무언가가 떠있다. 계단 위에는, 한니발과는 다른 살아있는 고양이의 귀가 보일듯 말듯 숨어있다.

 딱히 이상할 부분은 아무것도 없었다. 평범하게 보이는 일반적인 가정... 그래, 이건 일반적인 가정일 터이다.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형제자매가 있고, 펫이 있다. 혼을 지우는 일 없이, 평화롭게 지내며 살고, 그리고 죽는 사라마들. 죽은 뒤에는 텅 빈 허물만 남은 육체의 덩어리를 태우는 의식을 할 뿐인 사람들.

 그게 평범하다. 그리고, 평범함이 좋다.

 그 평범한 집 안에, 살아있는 혼과 죽어있는 혼의 잔재가 떠다니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 이 집이 지어진지 몇년째인가 모르지만, 사람과 동물이 살고 죽어갔다면, 벽이나 천장에 그들의 조각이 달라붙어있는 것쯤이야 전혀 이상할 일 없다. 이 집은, 지극히 정상적인 집이다. 

 하지만, 히로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순간, 이 집은 확실하게 변했다. 부모의 에테르 색이 처음 봤을 때보다 진해지고, 그리고 선골 속을 흐르는 속도도 높아졌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비틀린 기척은, 더욱 강해져서 현관에 두둥실 떠밀려온다. 그저 조용하게 공중을 방황하던 무해한 잔재들이, 희미하게 움직임을 가속한다.

 "친구가 우리집에 오는 건 처음이야ㅡ 기쁜걸. 들어와 들어와. 아, 내 방은 스토브가 없지만, 거실엔 있어. 미시마 씨 추위 많이 타? 스토브 있는 편이 좋을까?"

 "...네 방이면 돼"

 히로의 말에 그렇게 대답한 소우기였으나, 그의 의식은 이미 자신의 육식이 보여주는 광경에 빼앗겨있었다.

 어제 본, 에토우 히로의 에테르. 아름답고, 강력하고, 그리고 현저하게 결여된 혼의 피와 뼈.

 그건, 어제 봤을 때와 전혀 변함없이, 그리고 변해있었다.

 후두부, 그 검은 동혈에서 에테르의 유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 빨갛고 아름다운 에테르가 아닌, 파랗게 변한 질척질척한 것이었다. 그건 그녀의 육체에 달라붙어, 그저 잔재가 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죽음을 거부하고, 무슨일이 있더라도 살려는 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흘러나오는 그 혼의 양은, 평범한 인간의 경우 가만히 놔두면 틀림없이 죽음에 도달한다.

 그 상처를 막지 않으면.

 반사적으로 소우기는 생각했다. 뇌에서 에테르를 내뿜으며 죽어가는 인간들을 몇 번이나 봤지만, 그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왜냐면, 죽을 거라고 알고있고, 도와줄 수단도 도와줄 마음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소우기는 히로의 상처를 막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유로 이 바보가 에테르를 흘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멍청한 낯짝으로 헤실헤실 웃는 어제 막 알게 된 자신과 동년대의 바보같은 여자애를, 이대로 죽게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우기의 마음은 금방 무의미한 것으로 변했다.

 한 번 흐르기 시작한, 어딘지 사향을 풍기는 검푸른 에테르는, 공중에 떠다니지 않고 느릿하게 히로의 신체 위로 뻗어나가, 그리고 왼쪽 손목의 자그마한 검은 상처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그리고 몇초 사이에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로 에테르의 유출은 멈추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히로의 혼은 그저 그 육체를 멤돈다.

 한 번 육체에서 벗어난 혼은, 그저 공중을 배회하며, 이윽고 달로 돌아간다. 또는 억지로 돌려보낸다. 그것이야말로 소울 언더 테이커의 일이다.

 뼈 속에서 나온 혼이, 다시 뼈 속으로 돌아가는 일.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다. 모든 생물은 혼을 체내에서 잃으면 죽음에 이른다. 그 혼을, 체내로 되돌리는 방법. 일부 소울 언더 테이커가 혈안이 되어 찾고있으며, 원환 원리주의자가 전력으로 부정하는 기술.

 그걸, 이 바보가 하고 있다.



 미시마 소우기는 알고야 말았다.

 자신과, 그리고 한니발이 얽히고 만 녀석은 단순한 바보도 유별난 혼백의 소유자도 아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믿어왔던 혼의 모양을 뿌리채로 뒤집는, 살아있는 힘으로 가득찬, 이미 죽은 뼈와 피를 지닌, 기묘한 새끼양(스트레인지 쉽). 



 이건, 정말 운명인 걸까.

 이렇게 된 이상 도중에 방치하는 일은 자신에게도, '악령의 눈'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한니발은, 한니발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은, 자신과 미시마 가문과 달로 돌아가지 못하는 혼과, 그리고.

 이 바보가 살고, 그리고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어찌할 방법이 없는 바보의 집합체를, 일류 소울 언더 테이커로 변하게 할 긴 단련의 길을,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벗어나면, 대체 어떻게 될까.

 미시마 소우기는, 공포를 느끼는 자신을 새삼 자각했다.

 ...하지만 이정도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 바보나 한니발과 어울릴 수는 없다.

 자신은 미시마 소우기다. 곤란을 겪고있는 '울부짖는 늑대'의 송환을 꾀하는, 미시마라는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순혈의 소울 언더 테이커.

 그런 자신이, 이 에토우 히로를 영장 면허 보유자로 단련시켜주겠다고 결심한 이상, 그걸 이루지 못하면, 미시마의 수치로도 이어진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보이겠다.


 그것이, 이 미시마 소우기의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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