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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31일 금요일

단편 라노벨 번역 : 소울 언더 테이커 제 5화 배우기보다 익숙해지라고 옛 사람은 말했으니까

 뭘까 이 방은. 방이라기보다는 창고라고 하는 편이 옳은 기분이다. 다락방이란 원래 창고로 사용되는 공간이니까 당연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방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이상하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적당'이라고 해야할까.

 타인의 방 구조를 트집잡을 생각은 없지만, 나름 고급처럼 보이는 지구본 옆에 어디다 쓰는지 짐작도 안가는 프로펠러가 놓여있는 점이 의문이다. 환풍기나 선풍기 프로펠라인가 하면 금속으로 되어있고, 대체 이건 뭐란 말인가.

 "자, 앉아ㅡ"

 신슈 사과라고 쓰여진 나무상자 앞에 앞에 놓여진 낡은 좌식의자를 차지한 히로가 3장을 겹친 얇은 방석을 생글생글 웃으며 가르킨다. 1장이면 되는데 왜 3장이나 겹쳐주는지 생각했지만, 아마 이게 그녀 나름대로 환영하는 방법이겠지 하고 멋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이녀석의 의도를 하나하나 물어보면, 아무 설명도 안되는 채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일단 가르킨 방석 위에 정좌한다. 딱히 지시를 따르는 건 아니다.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책상다리를 하지 않는 것이 미시마 가문의 룰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가 멋대로 늘려가는 룰에 강제력도 설득력도 없으나, 가능한 한 룰을 지키버리는 자신은 뭘까 때때로 생각한다.

 자신을 통제하기 위한 규율. 누구나 어느정도는 갖고있겠지만, 소우기는 스스로 그 룰에 속박되기를 좋아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 무언가에 묶여있어야 한다면, 자신이 바라는 룰에 속박당하고 싶다.

 이 세상 어디에도 진정한 자유따윈 없으니까.

 더욱이 그의 경우, 타인이 정한 룰과 자신이나 가족이 정한 룰을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를 우선한다. 자신을 제어하는 건 어디까지나 자기자신이다. 이 생각은 제멋대로라고 생각되는 듯 하지만, 그 생각에 소우기 자신은 아무런 부끄럽 없다.

 ...정좌 한 번 하는데 이러쿵저러쿵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소우기는 자세를 고치고 방석 위에 앉아, 테이블 대신 놓인 다리미판을 끼고 정면에 있는 히로와 그 무릎에 있는 살아있는 고양이와 어깨 위에 있는 죽어있는 고양이를 노려본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가자구, 미시마 씨)

 죽어있는 고양이, 한니발이 맑은 어조로 말한다. 확실히 그렇지만, 이 고양이에게 들으니 화가 난다.

 "어이"

 "넹"

 한니발은 놔두고 히로에게 말을 걸자, 금방 대답이 돌아온다.

 '네'랑 '엥'이 섞인, 발음이 불명확한 그 대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은 아무래도 이 바보가 아주 싫은 모양이다. 이런 세세한 곳에서도 맘에 거슬리니까.

 좋고 싫음을 일에 대입해선 안 된다. 제대로 진지하게 이녀석을 소울 언더 테이커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아르케부스의 사용법일까 생각해봤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다.

 "육식, 이라는 설명은 어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하아"

 검고 커다란 고양이의 등에 손을 놓은 히로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이녀석이 멍때리지 않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어딜 어떻게 봐도 '바보'라는 표현밖에 불가능할 정도로 풀려있는 그 표정에서, 소우기는 무심코 눈을 돌린다.

 "육식이란, 현실이 아닌 세상을 인식하기 위한 감각이야.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영수가 흐르지 않고선 거의 기능을 하지 않아. 이 육식을 제대로 제어하는 게 소울 언더 테이커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지"

 일상생활에서 어느정도 육식을 열어두고 연습할 것. 자신의 의지로 해방하고, 그리고 수습할 수 있도록 되는 것. 우선 이것이 중요하다.

 "지금, 한니발이 보이지?"

 "응, 보여ㅡ 오늘도 하루 씨는 귀여운걸. 아ㅡ 핫쨩도 귀엽지만"

 히로는 오른어깨에 올라타있는 한니발에게 시선을 돌리고, 오른손으로 만지려 하면서 왼손으로 하츠히코의 배를 쓰다듬는다. 털이 빠진 배의 감촉이 슬플만큼 재밌어서, 지방을 만지작만지작거린다. 지방을 들어올렸다가 놓으면, 그게 바닥에 닿아서 자그마한 소리를 울리는 게 재밌다. 이렇게 살쪄버린 원인은 뭘까. 먹이 량은 니케랑 그리 차이가 없었는데.

 "그녀석은 자신의 모습을 일부러 감추려하지 않으니까, 네 어중간한 육식으로도 볼 수 있어. 은폐영채를 두른 녀석이나 막 태어난 양, 육체 안에 있는 살아있는 에테르나 선골을 보려면 조금 더 영수의 회전을 좋게 만들어서 육식을 열어야 해. ...어이, 제대로 듣고 있냐?"

 "듣고있어ㅡ 제대로 이해했냐고 물어보면 자신없지만, 보이는가 보이지않는가 하는 이야기고, 나는 머리 회전이 나쁘니까 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

 거의 맞지만, 이 표현 방법은 어떻게 해줬으면 한다. 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보 나름대로의 이해력으로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앞으로 계속 이런 피곤한 대화를 계속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진절머리가 난다. ...이녀석과 만나고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10년분 정도 질리도록 화난다고 생각해버린다.

 "내 오른쪽 어깨를 봐"

 "응 봤어"

 본인은 진지하지 않더라도 장난치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그 가벼운 말투에 소우기는 눈썹을 치켜뜬다. 아까부터 조용한 한니발의 얼굴을 보았지만, 녀석은 모른척 고개를 돌린다.

 "이 어깨 위에 뭐가 보이지?"

 "벽"

 "...어깨 위에는, 새가 앉아있어"

 "새"

 히로가 눈을 깜빡거리며 소우기의 어깨에 놓인 공간을 응시한다. 히로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이 어깨 위에는 소우기의 파밀리아인 실버가 올라타있다. 파밀리아는, 그걸 만들어낸 주인과 감각을 공유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곳의 정보를 얻는 것을 주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숙련된 소울 언더 테이커는 복수의 파밀리아를 동시에 움직여, 전송되는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뇌내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파밀리아를 만들 때 필요한 물건은 두개, 죽은지 3일 이내의 동물 시체와 살아있는 인간의 에테르다. 시체에 잔류한 영적물질과 혼의 혈수인 에테르를 혼합함으로써 파밀리아가 창조된다. 만들어진 파밀리아의 모습은, 매개가 된 동물과 같다. 시체가 크면 클수록, 필요한 에테르 양도 비례하므로, 파밀리아의 외견은 대부분 조달하기 쉬운 소형 동물로 한정된다.

 소울 언더 테이커 중에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자기 취향의 동물을 물색하고 구입한 뒤, 어느정도 키우고 죽여서 파밀리아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소우기는 그렇게까지 파밀리아에 집착하지 않기에, 길가에 떨어져있던 까마귀 시체로 적당히 만들었다. 그저 새까만 새인데 어째서 이름이 실버인가, 이름지은 본인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히로의 어깨에 올라타있는 한니발도 파밀리아지만, 스스로의 의지를 지니고 움직이는 하이 파밀리아이다. 파밀리아가 진화하면 하이 파밀리아가 되는 모양인데, 어떻게 진화하는지는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추레한 새끼고양이 모습을 한 한니발은 히로의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이동하면서, 눈을 깜빡이는 그녀에게 간단한 어드바이스를 한다.

 (히로, 그렇게 눈을 크게 뜨고있지 않아도 좋아, 편하게 하라구. 눈으로 보려하지 말고, 후두부에서 목 뒤 근처에 원을 그리듯 이미지를 떠올려봐)

 한니발의 가르치는 방식은, 정공법의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육식을 여는 훈련에서, '후두부에 원을 그려라'라는 것이 가장 평범하다. 너무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는 영수에게 '회전한다'는 이미지를 뇌내에 계속 반복함으로써 자극을 하고, 에테르의 능동적인 순환을 자아낸다. 처음부터 영수가 흐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리 효과가 없지만, 히로의 영수는 이미 평범한 사람보다는 빠르게 흐르고 있다. 조금 트레이닝을 하면 금방 육식도 열리겠지, 라는 것이 한니발의 생각, 이라기보다는 바램이었다.

 조금 더 난폭하지만 빠른 방법도 있다. 후두부에 다른 사람의 에테르를 넣어서, 외부로부터 보다 직접적으로 천천히 영수를 자극하는 방법이다. 이 수법이라면 주입하는 에테르의 정도에 따라서 자극이 너무 강해 주입된 쪽의 에테르 밸런스가 붕괴되기도 하니 맘편히 쓸 수는 없지만.

 한니발은 소우기가 후자의 수법을 사용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표정을 떠본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않고 팔짱을 낀 채로 재밌다는 듯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다. 그런 그의 태도에 한니발은 안심했다는 듯하면서도 안타깝다는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약간 위험하진 하지만 후자의 방법이 그에게 있어서도 시간이 단축되었을텐데. 설마 히로의 몸을 걱정한다고는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일단 한니발은 히로에게 주의를 기울이기로 했다. 히로는 '에엥ㅡ 에엥ㅡ' 하면서 고개를 기웃기웃 하고있다.

 (실제로 머리를 돌릴 필요는 없어, 생각만 하면 돼)

 한니발이 어깨에서 정수리로 이동해버려서, 히로는 당황하며 고개를 기웃거리는 행동을 멈췄다. 그녀는 히로의 육체가 아닌 에테르에 타있으므로, 아무리 흔들려도 떨어지지 않는다. 혹시 떨어지더라도 바닥에 부딪쳐서 아플 일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머리 위에 올라가있으면 히로가 금방 고개를 돌리지 않게 되리라고, 한니발은 히로와 어울린 짧은 시간에 파악했다. 실제로, 히로는 고개를 딱 고정하고 그 의식을 한니발이 타있는 정수리로 집중하고있다.

 한니발이 정수리에서 후두부로 발을 옮기자, 역시 히로는 그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개를 숙인다. 거기에 맞춰서 한니발이 전진해, 히로의 후두부에 도달한다.

 "하루 씨, 안 됀다구, 떨어져버렷"

 (안 떨어져. 그래, 여기서 원을 그린다고 생각해봐. 처음엔 천천히, 점점 빠르게. 그리고, 체내에 피를 상상해보렴. 뭐, 간단히도 좋아. 머리, 심장, 손, 발, 손끝. 그것들에 빨간것이 흐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음ㅡ"

 한니발이 머리 위에 올라타있다. 무게도 뭣도 느껴지지 않지만, 히로는 제대로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돈다 돈다 흐른다 흐른다

 한니발이 말한대로, 원을 빙글빙글 돌려본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다. 그리고, 피를 상상하라고 했다. 피가 체내에 흐른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피, 인가.

 자신의 몸 속의 피. 많이 흘러나간 피.

 가끔 볼 때가 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자신. 내려다보이는 자신은, 대체로 어딘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후두부이기도 하고, 이마이기도 하고, 등이기도 하고. 달리 여러 장소에서 많은 피를 흘리는 자신을, 스스로가 보고있다.

 아니, 자신이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도 보인다.

 정말이지, 히로는 어쩔 수 없다니까. 이런 일은 이제 그만해줬으면 좋겠는걸

 그렇게 말한 그 아이는 누구였지.

 지금의 자신은, 뭘 보고있었더라. 눈 앞을 향하자, 자신의 손바닥이 보인다. 그곳엔 언제나와 같은 자신의 손이 있다ㅡ고 생각했는데, 뭔가 달랐다.

 손이 빨갛다. 피부 건녀편에 투명하게 보이는 새빨간 골격같은 무언가와, 그 뼈에서 역시 빨간 물같은 액체가 유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뭘까, 이건. 자신의 손일텐데.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농후한 선홍색 안에, 검은 선같은 자국이 이따금씩 떠올랐다가 사라져간다.

 문득, 무릎에 있는 하츠히코에게 시선을 돌린다. 검은 고양이일 터인 하츠히코까지 빨갛게 되버렸다. 하지만, 색이 미묘하게 다르다. 빨갛긴 빨갛지만, 히로보다 색이 옅다. 살짝 하츠히코의 머리에 손을 대본다. 이렇게 나란히 비교하니, 미묘한 수준이 아니라 색이 완전 다르다. 빨간 농도가 매우 달랐다.

 (꽤 손쉽게 육식이 열린 모양이군. 의외라고 해야하나 당연하다고 해야하나)

 머리 위에서 한니발이 내려오더니, 하츠히코의 옆에 선다. 한니발의 목소ㅅ리를 내는 그것은, 검고 투명해서 안개같은 형태를 한 새끼고양이처럼 보였다.

 (평소에 네가 보고있던 고양이 모습은, 제대로 육식을 통해 보면 검게 보이지? 그건 내가 살아있지 않은 영적물질 덩어리기 때문이야. 살아있는 자의 혼은 빨갛고, 죽은 자의 혼의 잔해는 검게 보이지. 양의 경우, 이 검은 덩어리 중앙에 있는 빨간색을 아르케부스로 꿰뚫어 무해한 존재로 바꾸는 거지. ...간단하지?)

 "흐으음"

 히로는 오른손으로 하츠히코를, 왼손으로 한니발을 만지면서 시선을 앞으로 되돌린다. 그곳에 있던 소우기도 당연히 빨갛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 색은 하츠히코보다 옆고 약한 빨간색이었다. 마치 지금 당장에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미시마 씨가 옅어졌어"

 "...그건, 은폐영채를 썼기 때문이야. 자신의 에테르 색을 쓸데없이 드러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도 소울 언더 테이커에게 필요한 점이지"

 (하지만, 자신의 몸 전체의 에테르 색을 평소에도 그렇게까지 감출 필요는 없고, 저건 신경을 몹시 갉아먹는 기술이야. ...게다가 미시마 씨가 행하는 건 정확하겐 은폐영채가 아니라 차폐영채다)

 "확실히 그렇지만, 은폐영채의 고도한 응용이 차폐영채니까 일일히 따질 필요도 없잖아"

 (첫걸음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세세한 차이라도 일단은 지적해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어차피 이 바보는 신경쓰지 않을걸"

 세세한 말의 해석 차이를, 소우기와 한니발이 말하는 사이, 히로가 뭘 하고 있냐고 하니

 "새"

 소우기의 오른쪽 어깨에 앉아있던 검은 새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긋이 바라보는 사이에, 어째선지 윤곽이 확실히 보여오기 시작했다. 저 부리 형태는 까마귀일까. 새 치고는 그리 크지 않으니 새끼까마귀일지도 몰라.

 육식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즉 이런 거겠지. 방에는 아무 변화도 없는데, 눈에 보이는 풍경이 달라졌다. 색이, 회색과 빨간색과 검은색밖에 없는 풍경. 벽, 바닥, 지구본, 프로펠러, 모형, 나무상자 등은 전부 같은 회색이다.

 "으웅ㅡ"

 왠지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는 것만으로, 언제나와 다른 풍경이 되버린다. 재밌다고 하면 재밌다. 하지만, 색이 세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이 꽤나 쓸쓸하다. 이 상태로는 밥을 먹어도 그다지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거라는 기분이 든다.

 "아ㅡ......."

 "원의 이미지를 역회전해서, 점점 그 속도를 천천히 하면 육식을 닫을 수 있어. 시험해봐"

 "눼에"

 라고 대답하면서, 히로는 방금까지 자신이 우회전과 좌회전 중 어느 방향으로 원을 이미지했는지 까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왼쪽 검지로 원을 공중에 그려본다.

 "아ㅡ 좌회전인가ㅡ 그럼 역방향은 우회전이겠지, 음음"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 히로에게 눈을 떼고, 소우기는 그녀의 무릎 가까이에 있는 고양이를 본다.

 "...육식은 이만큼 해두면 괜찮겠지"

 (그래, 내가 매일 육식을 개폐하는 연습을 시키지. 솔직히 육식은 별로 걱정되지 않았어. 아마도 에테르를 다루는 일에 관해서는 금방 익숙해지지 않을까. 그녀는 머리회전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추상적인 사상에는 강한 모양이야. 그러니까 가장 문제되는 점은)

 한니발은, 나ㅏ무상자 위에 놓인 한 박스로 시선을 돌린다.

 "우와ㅡ 우와ㅡ"

 히로에게는 소우기의 손가락이 마치 마술처럼 보였다. 드라이버와 손가락이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아스트라M44가 순식간에 분해되버렸다.

 "...아르케부스의 청소는, 이렇게 분해한 부품 하나하나에 자신의 에테르를 조금씩 주입하는 게 가장 중요해. 프레임, 그립, 트리거, 실린더, 해머..."

 부품의 명칭을 입에 담으며, 손가락으로 부품을 하나하나 가르킨다. 히로에게는 가장 큰 녀석이 프레임이라는 사실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소우기의 설명은 계속된다.

 "기본적으론 이녀석들만으로 상관없지만, 가끔 부품 하나하나에 에테르를 넣어주도록 해. 이렇게 손가락끝으로 집중해서, 가볍게 에테르를 뽑는 이미지를 떠올려. 육식을 열고 집중해. 상처구멍에 연고를 바르듯이. 하지만, 에테르를 너무 많이 흘려버리면 뒷처리가 큰일이니까, 정말 신중하게 해야만 해. 총알을 마테리얼 라이즈할 떄나 아르케부스에 은폐영채를 걸 때도, 이 에테르를 손가락이나 손바닥에서 뽑아내는 행위가 필요해. 그 행위를 코팅이라고 칭하지... 이해했어?"

 "아니"

 자신으로서는 꽤 쉬운 말로 설명했는데. 하지만, 소울 언더 테이커라는 건 원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평범과는 동떨어진 취급을 받는 인간이다. 입으로 설명해서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세삼스럽게 소우기는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입으로 설명같은 건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주위 인간들의 행동을 보고 모방해왔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미시마 씨, 코팅은 아마 괜찮을 거야. 지금, 내가 그녀에게 가르쳐줬으면 하는 건 그게 아니라... 분해랑 조립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디가. 일정 순서대로 핀을 뽑기만 하면 되는데. 라이플이나 오토매틱보단 훨씬 간단하다고 생각한다만"

 (그 일정 순서를, 그녀가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ㅡ 잘 모르겠지만, 기억하는 건 굉장히 어려워. 구구단도 자신없는걸"

 "외워"

 "에ㅡ"

 "방금 내 손을 꽤 진지하게 보고 있었잖아"

 "아ㅡ 그건 굉장하다고 생각해서 봤을 뿐인걸"

 "...다시 조립할테니까, 잘 봐"

 소우기로서는 꽤나 느릿느릿한 손동작으로 조립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히로에게 있어서 비디오를 빨리감는 것처럼 보였다.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진 움직임이었다.

 "외웠어?"

 "무리"

 "...일단 분해해봐"

 히로에게 드라이버와 아스트라M44를 억지로 떠넘긴다.

 "......으음ㅡ"

 정해진 순서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히로가 잘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기보다는 무언가를 기억하는 그 자체가, 어찌할 도리 없이 힘들다. 카레를 만들기에도 반드시 처음에 감자 껍질을 벗기고 시작해야 하는가, 고기는 반드시 카레용 쇠고기를 사용해야 하는가, 그런 비스무리한 느낌이다. 당근부터 자르던가 돼지고기를 작게 썰어서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히로는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총을 해체하는 작업은, 어디부터 시작해도 좋지는 않은가보다. 반복해서 해보는 사이에 외우게 될까. 카레 만드는 법은 어떻게든 외웠지만, 구구단은 역시 자신없다.

 멍하니 드라이버와 아스트라M44를 본다. 우선은 이 트리거 위에 있는 핀을 뽑았던가. 그러고보니, 어제 한니발에게 배운 기억이 난다. 뭐 적당히 해도 곤란하지 않겠지. 카레가루의 분량을 틀려서 물같은 카레가 되버려도 그리 곤란하지 않고, 카레 맛에 고집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되고.

 그러므로, 해봤다. 애초에 깊게 생각하지 않는 히로다. 첫번째 핀을 뽑아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기에, 계속하기로 했다. 다음은 어느 핀을 뽑아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실린더가 갑자기 떨어지더니 떽떼굴 구른다. 소우기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아무 말도 않고 히로의 손을 보고만 있다.

 아무 말도 안하지만, 분명 화났을 거야. 히로는, 갑자기 이 상황을 풀어줄 말을 해야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 소우기라는 사람은 계속 무뚝뚝한 얼굴이라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뭔가 말하자. 뭔가 말하자.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던 히로의 무릎에, 하츠히코가 귀를 쫑끗 세우고 있다.

 이거다.

 "고양이 고양된다"



 그 이후, 소우기가 말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표정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왠지, 미시마 씨 화난 것 같아, 고양이가 고양되는 건 재밌지 않았나?"

 (거기서 그런 말을 하는 너한테 질렸나본데... 나도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는다고 할까...)

 그 뒤, 소우기는 히로의 노트를 멋대로 펼치더니, 무언가 진지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건 총의 분해와 조립의 순서를 자세히 그린 것으로, 단기간에 완성됐다기에는 놀랄만큼 훌륭하고 알기 쉽게 그려진 그림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신년 5일에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제대로 외워놔'라는 문구가 있다.

 소우기가 돌아간 뒤, 히로는 그 노트를 보면서 위험한 손동작으로 진지하게 아스트라M44의 분해와 조립을 반복했다. 몇 번인가 반복해도 손동작이 안정되지 않고, 드라이버의 움직임이 조잡해서 총신에 미세한 상처가 세겨지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니발의 예상대로, 코팅을 할 때 히로의 손끗은 초보자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었다. 손끝에서 매우 소량의 에테르를 짜내고, 아르케부스에 주입하는 것. 이렇게 함으로써 총의 주인과 총의 동조률을 높이고, 효과적으로 트리거를 당길 수 있게끔 되는 트리거 세이프티 락도 된다.

 이 코팅은 보통 사람을 대할 때 은폐영채도 된다. 표면에 도포된 에테르가, 평범한 사람의 물질적인 시력에서 총을 보이지 않게 한다. 소울 언더 테이커에게는 아무 효과도 없지만, 보통 사람 상대라면 효과는 충분하다.

 오랜만에 정상적인 상태가 된 아스트라M44를 기쁘게 생각하면서도, 한니발은 아까부터ㅡ아니, 어제부터 계속 신경쓰이던 의문을 입에 담기로 했다.

 (히로, 정말 괜찮아?)

 "뭐가아?"

 꼬물꼬물하는 손동작으로 아스트라M44를 만지작대던 히로의 손과 얼굴을, 한니발은 차례차례 바라본다. 그 표정은 망양하는 듯 보인다. 괴롭게도 슬프게도 보이지 않지만, 즐겁게도 기쁘게도 보이지 않는다.

 (왜 너는, 소울 언더 테이커가 되려고 생각한 거야?)

 되어달라고 원한 건 자신이며 미시마 소우기였다. 거기서 히로 자신의 의사를 느끼기는 한니발로선 불가능했다. 히로에게 거절당해도 곤란하지만, 그녀가 자발적으로 소울 언더 테이커가 되려고 생각하지 않아도 곤란하다.

 "미시마 씨한테 들었으니까"

 그 대답에, 한니발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는, 너에게 있어서 어제 막 만났을 뿐인 인간이잖아. 어째서 그런 인간이 말하는 대로 따르지? 극단적인 예지만, 넌 스쳐지나가는 인간에게 죽으라는 말을 들으면 죽을 건가?)

 "우앙ㅡ"

 진득히 30초 정도 지나고, 히로가 대답한다. 그 사이에도 손은 쉬지 않고 아스트라M44의 조립을 계속했다. 지금은 실린더를 끼우고 있는 중이었다. 이게 끝나면, 히로는 처음으로 아스트라M44의 분해와 조립을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이다.

 "죽으라는 말을 들어도 죽진 않아.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도 있는걸. 하지만, 가능한 일이라면 할 수 있잖아. 그리고, 미시마 씨는 소질이 있다고 말했고"

 (말했지)

 "아마도"

 마지막 핀을 조이고 원래대로 돌아간 아스트라M44를 무릎 위에 올려놓더니, 히로는 자신의 손을 봤다. 금속 냄새가 나는 그것을 코에 대본다.

 "기뻤던 게 아닐까?"

 그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듯한 어조로 한니발에게 들렸다.

 "막 만난 사람에게 무언가 잘 모르겠지만 소질이 있다고 들어면 말이야"

 (칭찬받아서, 기쁘니까. 또 칭찬받고 싶으니까, 소울 언더 테이커가 되겠다는 거야? 자신을 부정받으며 살아왔으니까, 자신을 긍정해주는 존재가 되라고 말하면 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바보는 바보라도 꽤나 어리광부리는 바보다.

 "그것만이 아니야ㅡ"

 본의가 아니지만 실망하는 한니발의 의식을, 히로의 목소리가 되돌린다.

 "아빠한테 이거 받았던 일이나, 하루 씨한테 만났던 일이나, 옷쨩이 토했을 때나, 죽은 사람이 달로 가거나, 양이 곤란하다던가, 할머니가 생각날 때나, 뭔가 있지, 그런 것들을 뭉뚱그려보면"

 히로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

 "미시마 씨가, 너는 소울 언더 테이커가 되야 해, 라고 말했을 때, 이 근처에 뭔가 온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가슴을 탕탕 치던 그 손을 머리에 놓는다.

 "미시마 씨가, 넌 소울 언더 테이커가 될 거야? 라고 물어봤을 때, 이 근처에 뭔가 왔어"

  논리정연하지 못한 말투가 하루이틀도 아니지만, 히로의 이 언동 어딘가에서 미치광이의 무언가를 한니발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12살 소녀는, 바보가 아니라, 바보와 종이 한 장 차이인 천재도 아닌, 그냥 단순히 미친 게 아닐까. 일상생활을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사고는 가지고 있다, 온화한 광기를 감추고 있는게 아닐까.

 무섭다.

 노출된 칼날같은 광기보다, 감춰진 채로 칼을 가는지도 모르는 광기가 더 무섭다. 언젠가, 그 칼집에서 해방되는 광기가 과연 어디로 향할까? 자기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녀가 바보건 미치광이건 상관없는데도, 한니발은 그걸 잊고 에토우 히로라는 바보를 본다.

 "그리고말이야"

 히로의 어조는 매우 느릿하다. 그 목소리는 어딘지 느슨해서 김빠지는 어조였지만, 어딘가 깨달음을 얻은 무언가가 들어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그녀는 어찌할 도리없이 추레한 성자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아는 자일지도 모른다.

 "이건 누구한테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내가 가끔 '아ㅡ 어떡하지'라고 생각할 때, 여기 근처에서"

 목 뒤를 가볍데 쓰다듬으며 말한다.

 "굉장히 가끔이지만, 들린다구. 이렇게... 내 안에 있는 나같으면서 내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해주는 기분이 들어. '되면 된다'라고. 그러니까 될 거야. 제대로 된 녀석은 못 될지도 모르지만, 뭐 그때는 그때 웃으면서 얼버무려야지"

 길게 살면서, 사람을 보는 안목은 나름대로 가졌다고 생각한다. 첫인상과 그 다음 인상이 크게 차이나는 경우는 없다. 한니발리 본 에토우 히로라는 인간은.

 바보.

 그 외에는 없다. 그리고, 그 첫인상은 확실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빨갛고, 추잡하고 까맣고, 넘치는 생과, 희미한 죽음을 내포한, 바보.

 바보다. 혹시 천재가 될 수도 있는 바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어리석은 게 아니고, 광기에 침식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마음의 그릇 자체가 부숴진 것도 아니라고는,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무 일 없이, 새해가 밝았다. 한니발이 본 히로의 일상생활은, 평온한지 아닌지 잘 모르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동생에게 매도당하고, 숙제를 하고, 육식을 해방했다가 수습하고, 아르케부스를 분해했다가 조립한다.

 그 순서는 변함없이 위태위태해서, 소우기의 그림이 없다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성장은 하고있다고 한니발은 느꼈다. 머리가 나쁜지 뭔지, 이렇게 매일 반복하면 할 수 있으니 바보는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총알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지"

 1월 5일, 앞으로 3일이면 겨울방학이 끝나는 날에 다시 에토우네 집을 찾아온 소우기는, 전과 같이 준비된 3장을 겹친 방석 위에 정좌하고, 입을 열자마자 제일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녜이"

 망가진 의자에 앉아서 역시 언제나처럼 멍한 얼굴을 한 히로는, 아무 생각 없이 육식을 열어 소우기를 봤다. 육식을 여닫는데, 이전처럼 고생도 당황도 하지 않게 되었다. 천천히 한 번 눈을 깜빡이면, 자신의 시계에 보이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 그게 얼마나 눈부신 성장인지, 히로에게는 물론 알지 못했다.

 오늘의 소우기는 변함없이 차폐영채라는 것을 쓴 모양인지, 전에 봤을 때와 같이 에테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오른쪽 어깨에는 역시 검고 작은 까마귀가 앉아있어서, '새 만져봐도 되?'라고 물어봤지만 단칼에 '안 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히로가 육식을ㄹ 여닫는 사이, 소우기는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다리미판 위에 늘어놓는다. 아무래도 외국어가 적힌 캔과, 직경 1센치 정도, 길이 5센치 정도의 작은 금색 통이다. 그 금색의 통을 손가락으로 가리치더니, 히로에게 잘 보이게끔 놓는다.

 "이게 총알의 원형이야. 카트리지라고도 하지. 이 안에 파우더와 에테르를 넣음으로써, 대 스트레인지 쉽용 총알을 만들 수 있어. 지금부터 만들어서 보여줄 건데, 한 번밖에 보여주지 않을테니 잘 봐"

 "녜이"

 소우기는 카트리지의 끝을 닫고있는 앞부분이 돌출된 탄두를 뺐다. 그리고 캔의 뚜껑을 열고, 작은 숟가락을 손에 잡고 카트리지 안에 캔의 내용물을 넣는다. 하얗고, 가루같은 분말이다.

 "파우더와 에테르의 비율에 의해, 탄의 위력이 결정된다. 파우더가 많으면 많을수록 카트리지 안의 에테르 농도가 내려가고 탄의 위력도 낮아져. 거꾸로 하면 위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파우더를 적게 넣으면, 그만큼 에테르를 많이 넣어야 해. 에테르의 량은 무한하지 않다. 아껴서 써야만 하지. 이렇게 자신이 총알을 만드는 일을 핸드로딩이라고 해. 이걸 못하는 녀석은 소울 언더 테이커로써 오래 살 수 없지. 잘 기억해. 팩토리 카트리지도 있지만, 그건 연습용이나 예비탄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양을 쏠 때는 역시 핸드로드 카트리지가 필요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소우기는 카트리지에 탄두를 다시 닫고 오른손으로 쥔다.

 "이렇게 쥐고, 손바닥에서 에테르를 카트리지 안에 넣어. 코팅과 같지만, 탄을 만들 때는 이걸 마테리얼라이즈라고 불러"

 한 번 강하게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소우기는 금방 손을 폈다. 그리고 아까 닫은 탄두를 다시 한 번 빼낸다. 아까까지 텅 비어있던 카트리지 끝에는, 검붉게 뭉친 탄두가 보였다.

 "이렇게 총알을 완성하는 거야. ...알겠어?"

 "으음... 뭐라고 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는 방법은 대충 알겠어, 아마도"

 굉장히 애매한 대답을 하는 히로를 한 번 보고, 소우기는 지참해온 작은 상자와 가느다란 항목이 구별된 수십 페이지 분의 소책자를 3권, 다리미대 위에 올려둔다.

 "카트리지를 두고 갈테니, 내가 돌아가면 6발만 만들어봐. 그리고 이건 면허 신청서, 이건 아르케부스 소지 허가 신청서, 이건 아르케부스 등록 신청서다. 전부 제대로 읽어둬, 내일모레 관청에 제출하러 갈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소우기는 언제나 갖고다니는 기타 케이스를 짊어지고 일어선다. 벌써 돌아가나ㅡ 라고 멍하니 그 모습을 올려다보던 히로가

 "가볍게 사격 연습을 하지. 아르케부스를 갖고 외출할 준비를 해"

 라고, 갑자기 제안을 받자 무심코 '우앙ㅡ'하는 소리는 낸다.

 "갑작스럽네"

 "...겨울방학 안에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둬야지, 안 그러면 곤란하잖아. 신학기가 시작되면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아ㅡ... 그러고보니 미시마 씨는 어디 학교 다녀? 혹시 같은?"

 "물어봐서 어쩌려고"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럼 묻지 마"

 "녜이"

 그런 둘의 회화를, 한니발은 히로의 어깨 위에서 묵묵히 듣고 있었다.

***

 "어머, 벌써 돌아가시나요?"

 현관에서 신발끈을 묶고있는 소우기에게, 거실에서 나온 히로코가 말을 건다.

 "네... 잠깐 히로 씨랑 외출하려고요"

 무례하게 보이지 않도록 정중하게 대답할 생각이었지만, 소우기를 대하는 히로코의 반응도 꽤나 정중했다. 온화한 미소가, 한 순간 얼어붙고, 눈과 입이 벌어진다. 그렇게 놀라도 곤란한데. 설마 자신이 저 바보랑 데이트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일은 만에 하나라도 있을 리가 없다.

 저런거랑 지내는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그런 점에서 이 가족들에게는 다소 동정한다. 저 바보와 평생 함께 살아야 하니까. 피가 이어졌다는 사실이 때때로 따듯한 것만은 아니라, 슬프고 잔혹한 것일짇오 모른다.

 혈연, 죽어도 끊을 수 없는 연이라는 이름의 족쇄. 피와 혼으로 이어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아무리 떼어내려해도 사라지지 않는 실같은 족쇄.

 자신의 가족을 떠올려본다. 부모, 형, 누나. 싫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사랑하냐고 물어보면 긍정하기 힘든 사람들. 그건, 소우기만이 아니라 부모도 형도 누나도 아마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가족으로서의 인연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걸 짓밟고 타인이 되려는 자신들은, 대체 뭘까 하며 때때로 생각한다. 

 아니, 자신과 그 외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가족도 틀림없이 타인에 포함된다. 하지만, 그래도 가족과 타인은 동일하지 않다.

 그런 것을 짧은 시간에 이래저래 생각하고 있자니, 히로코가 소우기에게 말을 건다.

 "히로를 잘 부탁합니다. 저 아이가 저런 애라고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저 애는"

 "아, 엄마, 잠깐 미시마 씨랑 나갔다 올게ㅡ"

 히로코의 말은, 계단을 뚜방뚜방하며 내려온 히로에게 막히고 말았다.

 "그래, 다녀오렴.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네ㅡ"

 어머니와 딸의 짧은 대화다. 하지만, 소우기는 그 안에서 이 어머니가 바보같은 딸에게 쏟는 슬픔에 가득찬 애정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히로코가 히로에게 보내는 시선에는, 소우기에게 보내는 것과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따듯하고 상냥하며, 그러면서 비애가 넘치고 있었다. 웃고 있는데, 어딘가 울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탓일까 아닐까. 

 바보라는 사실이 슬픈 걸까.
 하지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이녀석은 개노답 바보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는 바보니까.

***

 "그래서"

 이마가키는, 영업시간을 지나서 찾아온 한 소년과 한 소녀와 실체가 없는 고양이와 까마귀의 방문을 전혀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험악한 얼굴로 맞이했다. 새해를 넘어 심기일전, 그 일은 싹 잊고 다시 시작하려고 생각했는데. 대체로, 홀스터나 글로브를 발주하느라 생긴 지출의 원한은 아직 잊지 않았다. 연말에 급한 발주따위, 발주받은 쪽은 굉장히 짜증난다. 그런 일을, 이 소년은... 알고 있으면서 말한 거겠지, 분명히.

 대충 그럭저럭 벌이가 되니까, 쩨쩨한 말 않고 전부 소우기가 대금을 대주면 좋으련만. 면허 신청을 할 때에는 후견인이 필요하니, 그 후견인은 소우기가 할테고, 그 책임으로 당연히 그가 돈을 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이제 돈은 됐다. 실은 좋지도 않지만 좋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하지만. 하지만, 지금부터 그들이 하려는 일은 우리집을 아홉번은 탈탈 털어버리는 정도라고 생각하곤 한다.

 "어째서! 사격장도 뭣도 없는 우리 가게에서 시험 사격을 한다던가 말하는 거냐구!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밖에서 하라구 밖에서! 아가씨의 아르케부스는 코팅되어있으니까 저기 어디 공원에서 하더라도 아무도 못보고 괜찮잖아아"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손으로 총을 들고 있는 모습만 봐도 충분히 수상하잖아. 나는 이런거랑 같이 수상한 인간이 되고 싶진 않아"

 "아ㅡ 그러고보니 새해복 많이받으세요라고 미시마 씨한테도 여기 아저씨한테도 말 안했던 것같아. 미시마 씨 새해복ㅡ 아저씨도 새해복 많이 받아요ㅡ 미시마 씨 까마귀도 새해복ㅡ 하루 씨도 새해복ㅡ은 새해 때 말했지만 한 번 더 많이받아ㅡ"

 (새해 복 많이 받아라, 히로. 하지만, 어째서 여기지, 미시마 씨. 이쪽 주인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사람이 그리 오지 않는 옥외에서 하면 되지 않을까? 확실히 보통 사격은 날씨를 신경써야 하는데 오늘은 약간 바람이 강하지, 그래도 아르케부스 사격에 날씨가 주는 영향은 보통 사격보다 적으니 정설이 아닐까)

 "탄도에 주는 영향이 결코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자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할 수도 있지. 하지만 사격수의 컨디션에 주는 영향을 생각하면 역시 날씨는 중요해"

 "아니, 날씨도 좋은데 왜 여기서 하냐는 말이야"

 "확실히, 여기보다 적당한 장소가 있지"

 "그럼 글루 가"

 "멀어"

 "그런 이유였냐!"

 "어차피 그냥 6발 쏠 뿐이야, 거리는 5미터 정도면 충분하고. 공기포니까 물리적인 피해도 안 나오니까, 여기면 됐어"

 "장소를 빌리는데 '여기면 됐어'는 뭐야 '여기면 됐어'는! 적어도 '여기가 좋아' 정도는 말하라고"

 "여기가 좋아"

 "우왓, 정말로 말했잖아, 너 그런 성격이였냐"

 이마가키가 소우기에게 불만을 말하는 사이, 히로는 바닥에 앉아서 실린더를 빠르게 스윙아웃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조절나사를 누르고 왼쪽으로 꺼낸다, 조절나사를 누르고 왼쪽으로 꺼낸다, 조절나사를 누르고 왼쪽으로..."

 중얼중얼 반복하며 실린더를 꺼냈다 넣기를 반복하는 히로의 손을 보면서, 한니발이 말을 건다.

 (하기 힘들어 보이는군)

 "조절나사를 누르고 왼쪽으로 꺼낸다, 조절나사를 누르고 왼쪽으로 꺼낸다... 힘들다니 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릴 생각이었는데, 제대로 대답이 와서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한니발이 말을 계속한다. 

 (지금 너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왼손으로 조절나사를 눌러서 트리거 아래쪽에 손가락을 뻗어 실린더를 왼쪽으로 밀고 있지)

 "어움..."

 히로는 자신의 손을 보면서, 한니발의 말을 되새긴다. 부분부분의 정확한 명칭은 아직 자신없지만, 한니발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왼손으로 총알을 넣는 작업을 하겠지)

 히로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으며, 실린더는 왼쪽으로 뽑는다. 이 상태에서 실린더에 총알을 넣는 작업을 오른손으로 하려면, 한 번 왼손으로 손잡이를 바꿔잡고 오른손을 왼손에 씌운 모양으로 교차시켜야만 닿는다. 그래선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게 된다.

 "잘 모르겠지만, 하루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넌 왼손으로 총알을 넣고 왼손으로 사격하지. 그 때 손잡이를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고쳐잡게 되잖아)

 "응"

 (타임로스로 이어지지)

 "...6발을 쏘는 상황이 되기 전에 정리하면 되"

 벽에 장식된 30센치의 사각형 전시용 표적을 떼어내면서, 소우기가 내뱉듯이 말한다.

 (미시마 씨, 그건 역시 무리가 아닐까? 확실하게 핵을 정확히 쏘지 못하더라도, 이 구경의 탄이 6발 전부 명중하면 평범한 양이라면 이미 원형도 남지 못할 거야. 하지만 그건 6발이 전부 명중했을 때의 이야기지. 네가 언제 그녀에게 진짜 양을 쏘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훈련을 쌓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군"

 선뜻 긍정해버려서, 한니발은 아주 잠시 주춤했다. 무언가 획기적인 의견이라도 말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무너졌다. 소우기는 떼어낸 표적을 가게 입구쪽의 문에 어떻게 설치할지 생각하는 듯해서, 한니발이나 히로 쪽을 보지 않고 있다.

 (사격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고 알고있는데, 하지만)

 "서툰 총질로 맞출 수 있을만큼, 총알의 여유가 없어. 기초를 나름대로 기억하게 해두고 면허만 따면 진짜 표적을 쏘러 간다"

 (그건...)

 "어이어이어이어이"

 한니발과, 그리고 이마가키가 동시에 소리를 낸다. 당사자인 히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실린더를 빙글빙글 돌리며 놀고있다.

 "아니, 역시 그건 조금 그런데, 미시마. 그야 이 아가씨의 에테르는 꽤 물건이지만, 제대로 쏘게 하지도 않고 양 사냥에 나서기엔 무모하다고. 적어도 10야드 거리에서 10발 중 7발은 맞출 실력이 되어야 좋지 않을까?"

 "훈련으로 이녀석이 거기까지 숙련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총알이 들 거라고 생각해?"

 (진지하게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확실히 나름대로 많이 들겠군.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실전은 위험하지 않겠나)

 "그래그래, 대략 확실하게 맞출 수 있도록 되야지, 양에게 에테르를 먹일 수 있다구... 안그래도"

 바닥에 앉아있는 히로의 후두부를, 이마가키는 육식으로 확인한다. 에테르가 도려지는 일은 드물지도 않지만, 이 후두부는 약간 이상하다.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에테르가 없다. 이 이상 깎이면 위험하지 않을까, 라고 이마가키는 남일이지만 걱정한다.

 "미시마 룰이야"

 이게 12살 소년인가. 소우기가 내뱉은 말은, 굉장히 냉담한 울림으로 점내에 퍼져간다. 그 와중에, 히로가 실린더를 스윙아웃하는 소리만이 의미없이 불규칙하게 섞여있었다.

 미시마 룰.

 그 말이 담고있는 의미를 헤아리는 동안, 한니발은 아주 잠시간의 시간을 요구했다. 과연, 그는 그저 단순히 시간과 탄약을 낭비하려는 건 아닌 모양이다. 아니, 그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최대 이유는 아니다, 하는 게 아닐까, 적어도 한니발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소우기에게 달라붙어있는 잔재는, 이 나이 치고는 너무한 부분이 있다. 훈련보다도 실전을 우선하며, 많은 양과 늑대들을 달로 돌려보내온 거겠지. 실전에서 쌓아온 경험은 훈련을 이긴다. 그러나 첫 실전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제일 큰 문제다. 즉 그건가, 사자가 자기 새끼를 절벽으로 떨어트린다는 그건가. 기어올라오면 그걸로 좋다. 올라오지 못하면ㅡ

 그는, 그녀가 기어올라왔을 때를 상정하고 있는 건가? 그걸 듣고 좋은 일인지 아닌지 한니발이 망설이는 사이, 표적을 설치한 소우기가 앉아있는 히로의 코앞에 6발의 총알을 내민다.

 "공포탄이야. 일단 장전해놔"

 "자앙저언?"

 "실린더 안에 이걸 넣으라는 뜻이야"

 "아ㅡ 이 빈 공간 말이지, 알았어"

 내밀어진 히로의 왼손 위에, 소우기는 조심스럽게 6발의 총알을 놓는다. 그 조심스러운 손동작에 영향을 받았는지, 히로도 그녀치고는 신중하게 하나씩 탄을 넣는다. 공포탄이라고는 하나, 제대로된 사격은 오랜만이다. 한니발은 자신이 어딘가 고양되어있다고 느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다. 지금까지의 주인들이 처음 사격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제대로 맞출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 뭐 저 30센치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 나름대로 좋다고 치자. 작년의 그건, 그저 럭키샷에 지나지 않으니까.

 "넣었어ㅡ"

 "실린더를 되돌려... 공포탄이라도 총알은 총알이야. 일단 말해두겠지만, 그 상태에서 타인이나 자신에게 총구를 돌리지 마, 위험하니까"

 (네가 그런 말을 하기냐)

 히로에게 총을 겨누고, 귀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밀고, 위협 목적이라곤 하나 쏜 것은 다른이도 아닌 소우기가 아니었는가. 그런 의미를 담아 한니발이 말했지만.

 "난 할 거야. 하지만 이녀석은 하면 안 돼. 그런 거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모양이네ㅡ"

 잘 모르겠으면, 무의미한 맞장구는 치지 말라고. 한니발은 귀를 세우고, 히로가 결코 눈치채지 못하도록 무언의 항의를 한다.

 (네가 말하는 미시마 룰이란 꽤나 제멋대로군...)

 "아ㅡ 이녀석 진짜 제멋대로라구, 정말이지. 애초에 이녀석 일가 전원이 그렇지만.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녀석들이라구. 금방 미시마 룰이네 뭐네 하면서말이야"

 이마가키가 아군을 얻었다는 얼굴로 호소한다.

 "현금 일시불 결제는 좋지만, 입하 대기 상품이 언제 들어오냐고 빈번히 전화걸어서 독촉하고 말이야. 입하하면 연락해줄텐데..."

 "일어나, 그리고 여기에 서. 그립을 양손으로 쥐고, 배 앞에 총구를 정면으로 향하게 겨눠. 아직 트리거에 손가락을 걸지 마"

 이마가키가 중얼중얼 읊는 푸념을 무시하고, 소우기는 아직 앉은 채로 있는 히로의 무릎을 발끝으로 가볍게 친다.

 "으잇챠ㅡ"

 아스트라M44를 쥐지 않은 쪽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자, 히로는 소우기가 가르킨 위치에서 말한대로 선다.

 "그립이라는 게 손잡이고 이걸 이렇게 배 앞에... 그리고, 뭐였지"

 "다리를 어깨간격으로 벌려. 그대로 잠시 대기"

 "녜이, 기다리면 되는 거지"

 소우기는 히로에게서 약간 떨어진 장소에 서더니, 히로의 서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몸 전체에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있지는 않다. 모두 릴렉스하고있다. ...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녀석이 긴장했던 적이 지금까지 있었던가.

 "해머를 세워"

 "...해머라는 건 이거 말하는거지, 이걸 당기란 말이지"

 엄지로 신중하게 해머를 세우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실린더가 회전한다.

 "우와ㅡ우와ㅡ 뭔지 모르겠지만 돌아갔어, 미시마 씨"

 "하나하나 놀라지 마... 그대로 자세를 유지한 채로, 팔을 앞으로 뻗어. 그 표적 중앙과 리어사이트, 프론트사이트, 그것들이 되도록 동일선상에 놓이도록 노려봐. 되도록이니까, 진짜 동일선상에 모두 놓는 건 무리야. 인간의 눈은 그렇게 되어있으니까"

 한니발과 이마가키가 지켜보는 사이, 히로는 아스트라M44를 내려본다.

 "아ㅡ..."

 라는 언제나처럼의 얼빠진 소리를 낸다. 그것만으로, 소우기는 그녀가 뭔가 곤란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히로의 옆으로 걸어가, 해머의 상단부를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여기가 리어사이트, 총의 앞, 이쪽에 있는게 프론트사이트야. 조준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오른눈을 감고 왼눈으로 조준해. 표적은 약간 희미하게 보여도 괜찮으니까, 프론트사이트를 기본으로 하고 맞춰"

 "으응ㅡ 미시마 씨, 내가 리어사이트가 뭔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네, 굉장해 굉장해"

 "빨리 하기나 해"

 굉장할 리가 없다. 이 단순한 바보가 자신에게 무언가 듣고 얼빠진 소리를 할 때는, 대체로 말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을 때다. 히로가 리어사이트나 프론트사이트가 뭔지 모른다고 말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총의 부위 명칭을 하나하나 설명해준 기억이 없으니까.

 초심자에게 상냥하지 않다, 라고 생각한다. 상냥하게 대해줄 생각따윈 처음부터 없었으니 별로 상관 없지만. 애초에 사람에게 친절하고 정중하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을만한 인품이 아니다. 가르쳐줄 녀석이 이 바보녀석이기도 하고. 처음에 적당하게 용어 설명을 하고, 몸으로 익숙해지면 그걸로 좋다.

 자신이 히로에게 어울려주면서 소비한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다. 이 단기간에 잘도 여기까지 끌고왔다. 약간 자화자찬해본다. 하지만 어차피 엉성하게 끌고오기만 했을 뿐이다. 한니발이나 이마가키의 말대로, 이 사격을 마지막으로 진짜 양 사냥을 시키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만하면 됐다고 소우기는 느낀다. 생각한다, 가 아니라 느낀다. 갑자기 남쪽에 처박아버릴만큼 엄한 수행은 아마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겠지만, 보통 양 사냥이라면 해내겠지. 어째서, 자신은 이런 일을 느끼는 걸까. 이유를 여러가지 생각해보았지만, 도달한 답은 결국,

 [이녀석이 그렇게 느끼게 해버릴 정도의 그릇을 가진 죽지않는 바보]

 라는 결론이었다.

 과연, 갑자기 혼자 하기엔 여러모로 곤란할테니, 처음은 본의아니게 자신이 서포트해야 한다. 어차피 제 3종 영장 면허의 신청을 할 거니까.

 제 3종 영장 면허는,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고, 필요 서류를 제출해서 신체검사와 간단한 육식시험을 본다. 나름대로 실적이 있는 후견인이 있으면, 꽤 간단하게 딸 수 있다. 단, 제 3종 면허는 몇몇 제한이 부여된다. 후견인이 동석하지 않은 장소에서 발포하면 안 된다, 영장을 청부받고 대가를 받아선 안 된다, 받을 경우에는 후견인을 거쳐서 받아야만 한다, 소지 가능한 아르케부스는 1정으로 한정한다 등등.

 이게 제 2종이 되면, 갑자기 허들이 높아진다. 선골의 밀도나 에테르의 량을 정확하게 재고, 그게 일정 이상 도달하지 못하면 시험을 칠 수도 없다. 거기에 영장에 관한 법률 등의 필기시험, 사격시험, 탄약 취급 시험 등 시험천지다. 솔직히, 제 2종 면허를 히로에게 따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소우기는 생각한다. 이미 필기시험이나 일반 교양이 히로에게는 무거운 짐이다. 실기 관련은 지금부터 어떻게든 되겠지만, 필기는 절망적이다. 절대, 라는 말은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굳이 쓴다

 에토우 히로에게, 지금 단계에서 제 2종 영장 면허를 따는 것은 절대로 무리다.

 제 3종 면허로 우선 경험과 실기를 쌓고, 제 2종을 딸지 말지 생각하면 된다. ...평생 따지 못할 것같은 느낌이 들지만.

 "홀드... 움직이지 마, 그대로 조금씩 조준을 조정해"

 일단 대강 조준은 된 것같은 히로의 손끝을 지긋이 본다. 역시 손은 보통 이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건 긴장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다. 살아있는 인간인 이상, 육체와 뼈를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걸 어디까지 억누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너무 힘을 넣지 마"

 "녜이"

 순식간에 그립을 쥔 손의 힘이 빠진다. 단순한 녀석이다. 하지만 아까보다 훨씬 나아졌다.

 "조준이 정확히 되었다고 생각하면, 트리거를 당겨. 가능한 한 똑바로 뒤로 당겨, 왼손 검지 이외에는 움직이지 않도록 확실하게 고정하도록 마음속으로 생각해"

 "으응...."

 히로는 진지하게 앞을 보고, 표적의 중앙과 프론트사이트와 리어사이트를 적당하게 일직선상에 놓도록 했다. 왠지 팔이 지쳐온다. 이대로 쏘지 않고 내려버리면 미시마 씨가 화낼 거라고 생각하니 주눅이 든다.

 그래서 히로는, 일단 트리거를 당기기로 했다.

 전에 말한 한니발의 '있는 힘껏 당기면 돼'라는 말을 떠올리며, 당긴다.

 한순간, 호흡이 멈췄다. 요전번보다더 큰, 구와아아앙, 하는 느낌의 소리가 난듯한 기분이 든다. 움직이지 않도록 버틸 생각이었지만, 팔이 위로 올라가버린다. 어째선지 뒤로 5걸음 정도 물러나서, 무심코 엉덩방아를 찧는다. 뒤에 아무것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30초 정도의 정적이 흐른 뒤, 소우기는 '.........이정도인가'라고 한마디 중얼거리더니 육식을 펼쳐 표적을 확인한다. 물리적 영향이 없는 탄환이기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맞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역시라고 해야하나 당연하다고 해야하나, 맞지는 않았다. 천천히 시선을 올리자, 천장에 검은 탄흔이 새겨져있다. 그래도 제대로 전방에 탄이 날아갔으니, 좋다고 쳐도 되겠지.

 방아쇠를 당긴 순간에 몸이 크게 움직여버렸으니 적중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요전번에 제대로 코팅도 하지 않은 아르케부스를 쐈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총알은 아무튼 총과 히로 자신의 동조율은 그때와 비교하지 못할만큼 상승했으니까.

 그래도 소우기는, 히로의 두터운 선골과 에테르가 반동을 꽤 억누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전에 쐈던 때보다도 강한 반동을 받아버렸다. 육식으로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히로의 에테르를 보자, 아직 표면이 조금씩 흔들리고있다. 가벼운 이완상태에 빠져있는 모양이다. 잠시동안은 일어서지 못하겠지.

 (...뭐라고 해야될까 그, 어떤 반응을 해야될지 모르겠군, 기념해야할 초탄이었지)

 이마가키의 옆에서 관찰하던 한니발은 굳어버린 그를 놔두고, 주저앉아있는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타곤 그 얼굴을 올려본다. 표정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눈을 크게 깜빡이고 가끔씩 강하게 감는다.

 (괜찮냐, 히로... 설 수 있겠어?)

 "깜짝놀랐어어..."

 그렇게 대답한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은 느긋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히로의 몸은 주저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뭔가, 몸에 힘이 안들어가..."

 "아ㅡ 아가씨, 억지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에테르가 아직 진정되지 않았어. 표면이 따끔따끔할 거라구. 조금 앉아있어"

 등뒤에서 말하는 이마가키쪽을 보려고 했으나, 어째 목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그럴게요ㅡ'라고 대답하는 히로였다.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 히로를 잠시 올려본 한니발은, 가볍게 무릎에서 뛰어내려와 천장을 유심히 바라보는 소우기의 발치에 선다.

 (어때, 감상은)

 "...지금으로써 연사는 무리겠군. 공포탄으로 저렇게 되는데, 본인이 마테리얼라이즈한 실탄이라면 더 힘들겠지"

 (하지만, 반복해서 쏜다면 견뎌내지 못할 정도는 아닐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너는)

 "그렇지"

 아르케부스를 쏠 때의 반동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에테르와 선골에 영향을 미친다. 반동에 익숙해지지 않았기에 히로의 에테르와 선골이 과잉반응을 일어켰다고 소우기와 한니발은 판단했다.

 "...조금만 더, 공포탄을 쏠 준비를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해, 하지만"

 (하지만, 뭐지, 미시마 씨)

 소우기는 자신을 올려보는 추레한 하이 파밀리아의 새끼고양이에게, 날카로운 안광을 향한다.

 "그 아스트라, 네가 씌여있는 이상 보통의 리볼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이상한 물건인 모양이야"

 (그건 그렇지)

 주눅들지 않고 대답하는 한니발에게, 소우기는 쭈그려앉아서 얼굴을 가까이 한다.

 "저 천장의 자국, 아주 조금이지만 음푹 패였어. ...에테르가 물리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리는 없지. 네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던 상관없지만, 이것만은 알려줘. 저 아르케부스에 뭘 감춰뒀지"

 (감추고 있지 않아, 미시마 씨)

 한니발은 소우기의 오른발 위에 앞발을 올리고 속삭이듯이 말한다. 

 (그저, 저건 나와 동등할만큼 깊은 죄를 지고있을 뿐이야)

 소우기가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을, 한니발은 봤다. 어리고 미숙한 점도 많은 주제에, 정말 무서운 안광을 내뿜고 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고의로 저 아이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거야)

 "네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멋대로 해가 끼쳐질 거야"

 (그게 네가 바라는 일 아니야?)

 "맞아, 하지만"

 "후ㅡ 읏챠"

 미묘하게 얼빠진 소리와 함께, 히로가 올라선다. 아스트라M44를 쥔 채로, 손을 파닥파닥거리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벌써 회복한 모양이다. 생각한 것보다 빠른 회복에, 소우기는 어째선지 안심했다. '안심했다'라는 것은, 그 이전 단계에 '걱정'했다는 사실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소우기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역시 맞추지 못했어?"

 "천장이야, 일단 조금 더 쏜다. 괜찮겠지?"

 "완전 괜찮아여ㅡ"

 "그럼, 아까랑 똑같이 해봐"

 표적에서 떨어지고, 소우기는 한니발과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 발치를 본다. 거기에 있던 고양이는 이미 자리를 뜨고, 뚜방뚜방 자신의 주인에게 다가가고 했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소우기는 한니발이 암컷 새끼고양이의 시체에서 만들어진 하이 파밀리아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자신에게 응딩이를 보이고 걸어가는 고양이에게 영문모를 울화를 느끼는 자신이, 볼품없어서 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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