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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일 일요일

단편 라노벨 번역 : 소울 언더 테이커 제 6화 봄은 오고 바보는 춤춘다

 따듯하다. 어제는 엄청 추웠는데, 오늘은 굉장히 따듯하다. 오늘 낮 최고기온이 4월 중순 쯤에 오늘의 날씨에서 비슷하게 봤던 기억이 살짝 든다. 엄마가 '그 복장이면 오전이랑 저녁은 괜찮겠지만 점심때쯤엔 좀 더워질걸?'이라고 말했는데, 진짜로 그대로였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더운 열기가 엄습해오고 있다. 하지만 덥다고 해서 이 점퍼를 벗어버리면 짐이 되니까 싫다. 벗어서 허리춤에 묶으면 되겠지만, 스스로 하면 뒤에서 저절로 풀어져버린다. 묶는다던가 잠근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돼지구이를 만들 때에 연줄을 빙글빙글 말 때에도 좀 어렵다고 생각했다. 돼지구이를 만드는 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니까,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서 히로는 돼지구이와 오늘의 더운 날씨를 생각하며, 겨울용의 복실복실한 점퍼를 벗지 않고 벤치에 앉아 멍하게 하늘을 바라봤다.

 (히로)

 "네ㅡ"

 무릎 위에 한니발에게 불려진 히로는, 시선을 떠렁트려 그녀와 눈을 맞춘다. 너덜너덜한 귀를 쫑긋 세우는 그 귀여운 모습에, 히로는 얼빠진 미소를 떠올린다. 

 (히로, 그 덜떨어진 얼굴은 좀 고치는 편이 나아보이는데)

 정말로 바보같다.

 그렇게 말하려고 생각했던 한니발이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정말로 바보인걸'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히로와 함께 살면서 2달하고 약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감정이 기묘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알기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기묘는 한니발이 지금까지 봐온 인간들과 비교하면 어딘가 편중된 경향이 있었다.

 화내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쓸쓸해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문득 생각난듯이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이유를 물어봐도 '으음 그냥 울고 싶었어'라는 불명확한 대답만 돌아온다. 

 그리고, 웃는다.

 긴장감은 전혀 없는, 언뜻 보기에 가식적인 웃음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헤실헤실하며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들며, 때때로 불쾌감까지 주는 미소. 마치 타인을 바보취급하는 미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미움받는다. 바보에게 바보취급 당하는 기분이니까. 히로의 담임선생님인 후루야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히로가 웃으면 바로 출석부로 때린다. 웃지 않아도 때리지만. 무슨짓을 해도, 아무짓도 안해도 때리지만.

 마음이 넓은 사람이 보면, 히로의 미소가 귀엽게 보일지도 모른다. 앞뒤가 없는, 자연스러운 미소. 그렇게 생각하는 한니발이 무의식중에 호의적인 생각을 하고있다는 자각을 하자 무심코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으응ㅡ 그래?"

 히로는 자신의 볼을 양 손으로 잡더니 위아래로 문댄다. 결국 이마나 목 주변을 가볍게 마사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양손을 들더니 쭉 뻗고 등이나 어깨를 돌리기 시작한다. 가끔 동작을 딱 멈추기 위해 어째 이상한 포즈를 취하는 듯한 모습은, 기행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주변에서 명확하게 붕 뜬 모습이다.

 히로를 중심으로 직경 1미터 원 밖에서는, 화려한 음악이 흐르고, 요란한 복장으로 활보하는 다양한 어트랙션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일상과 동떨어진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오늘은 졸업 소풍날이며, 히로네 학교의 6학년 거의 전원이 이 교회에 있는 테마파크에 왔다. 하루종일 자유시간이기에, 모두들 그룹을 짜서 마음껏 즐기고있을 터였다. 

 그 중에서 히로는 혼자, 정문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분수 앞 벤치에 앉아있었다. 강약 조절이나 방향이 계산되어있게 보이는 물의 움직임에, 히로는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다. 멍하니 입을 열고있는 그 모습은, 즐겁게 보인다. 물만이 아니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시선이 홀라당 움직인다. 일단 평일이긴 하지만, 봄방학이 걸쳐있어서 꽤 혼잡했다. 그런 즐거워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히로는 벤치에 들러붙어 움직이려 하지도 않았다.

 (...재밌냐, 너는)

 2시간정도가 지난 뒤, 한니발이 결국 정적을 깨고 히로에게 말을 건다.

 "재밌어ㅡ"

 그렇게 대답하는 히로의 얼굴은, 확실히 즐거운듯이 보였다.

 (뭐가 재밌는지 물어봐도 돼?)

 "색"

 (색?)

 "육식이었나, 그걸로 보면 빨강색이랑 회색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빨강색에도 여러 차이가 있어서 신기해. 그래서, 육식을 그만하고 평범하게 보면, 평범하게 보여. 그렇게 달라지는 게 신기하단 말이지, 왠지모르게. 재밌어ㅡ"

 한니발은 한숨을 쉬고 싶어졌다. 육식의 해방과 수습을 부드럽게 할 수 있도록 된 일은 대단한 진보다. 약 2개월만에 이렇게까지 가능하게 된 건 칭찬해도 좋겠지. 이런 일에 관해서는 정말이지 천재라고 평가해도 될만하다, 라고 한니발은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킨다.

 (여긴 테마파크잖아, 저런 기구에 타서 즐기는 일이 본래의 즐기는 방법 아닐까. 프리패스 받았잖아)

 "메리 고라운드는 타면 떨어지고, 커피컵에 타면 멈췄을 때 머리가 어지러운걸"

 뭐냐 그건, 하는 의미없는 태클은 그만두기로 한다.

 "게다가 탈것에는 좀 약해. 자동차나 버스나 제트코스터나 관람차같은"

 (여기는 전철 타고 왔는데, 그렇게 약해보이지도 않았던걸)

 혼잡한 와중에 창가에 달라붙어 계속 밖의 풍경을 보던 히로는 굉장히 즐거워보였다.

 "전차는 붐비지도 않고 넓으니까 괜찮아"

 그게 무슨 개소리야. 좁은 탈것에 약하다는 말인가. 대체로 히로의 논리는 무서울만큼 논리적이지 않다. 12살 어린이에게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고 효율을 중시한 사고를 요구할 생각따위, 한니발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12살 어린이가 하는 사물의 관점이라는 녀석이 히로에게는 전혀 되어있지 않다. 히로의 생각은 5살난 어린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5살과 비교하면 5살에게 실례가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하던 한니발은 그만두기로 했다.

 히로의 관점은, 그저 단순히 나이를 먹는 이유로는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마 어리숙하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굉장히 가끔 무서울만치 달관한 관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굉장히 가끔이긴 하지만.

 (그 프리패스값을 낸 건 너희 부모님이잖아. 전혀 쓰지 않으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니발의 말에, 히로는 멍한 표정으로 '아ㅡ...'하는 신음소리를 내고, 그녀 치고는 드물게 생각에 잠긴 표정을 했다. 

 "으응... 확실히 아깝긴 아깝네... 공짜가 아니니까"

 응 응 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한 히로에게, 문득 한니발은 어째서 이렇게 열성적으로 그녀를 놀도록 만들게 됐을까 하고 자신을 이상하듯이 느끼게 되었다. 히로가 여기서 멍하니 육식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는 편이, 자신에게 있어서는 유익한 일일텐데.

 (...뭐, 혼자 저렇게 어트랙션을 즐기는 것도 허무하긴 하지. 너랑 동행하는 친구는 없는 모양이고)

 "없는 모양이네"

 (그녀는... 네가 옷쨩이라고 불렀던 그 애랑 같이 다니면 되잖아?)

 "옷쨩 말이지, 내 친구는 옷쨩이랑 미시마 씨밖에 없지만, 옷쨩은 나 말고도 친구가 있는걸. 모처럼 졸업소풍이니까, 나한테 붙어있기보다는 재밌게 놀아줬으면 해"

 (그런 분별은 있구나, 너)

 히로와 오치아이 아케미의 관계가 깊은 건지 옅은 건지 한니발에게 아직도 감이 안잡힌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은 무의식중에 알게됐지만, 거기에 어떤 복잡한 관계가 있는지는 모른다.

 "미시마 씨가 여기 있어도, 그 사람은 놀지 않을거고 뭐. 애초에 이런 곳은 오지도 않을 것 같은걸. 이런 장소는 미시마 씨 아마 싫어할 거야. 미시마 씨, 성격은 섬세한데 사람들이랑 어울리기 귀찮아할 것같고. 이런 곳에서 입장권 살 때 '어린이 한 장'이라고 말하기도 귀찮다ㅡ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구, 아마도. 그러니까, 좋아하는 동물은 털이 나지 않는 녀석"

 미시마 소우기를 평가하는 그 말에는, 한니발도 전면적으로 동의한다. 히로가 제대로된 관찰안을 가진 게 아닐까하는 착각까지 해버릴 뻔했다. 동물 취향은 잘 모르겠지만.

 한니발이 보는 한, 소우기는 기본적으로는 섬세한 사람이다. 적당함으로 똘똘뭉친 히로와 어울리면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겠지. 게다가 소우기는 대인관계를 귀찮다고 생각하는 타입같아서, 필요최저한의 회화밖에 하려하지 않는다. 히로가 소울 언더 테이커와 전혀 관계없는 일
ㅡ예를 들어 시바견과 아키다견, 토사견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라던가, 3색털 고양이의 수컷을 전혀 보지 못하는 건 왜그럴까 하는 일ㅡ에 관해 말을 걸면 무시해버린다. 무시당한 히로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소우기가 '좀 조용히 해'라고 말할 때까지 딱히 상관도 없는 말을 계속 한다.

 섬세한 귀차니스트. 미시마 소우기라는 소년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런 말이 어울린다.

 "미시마 씨 잘지냈음 좋겠네"

 (...너는 미시마 씨를 친구라고 생각하나보군)

 "그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그도 그렇게 생각하리라곤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소우기에게 있어서는 친구따위 어차피 말뿐인 존재다. 지금 둘의 관계는 어차피 스승과 말도 안 될만큼 질나쁜 제자 정도다.

 "그래? 응ㅡ 그래도 친구인걸"

 한니발의 말을 간단히 흘려버리는 히로는 빙글빙글 어깨를 돌리고 있다가, 문득 자신의 오른쪽 겨드랑이에 축 늘어져있는 물건의 존재를 기억해낸다.

 "이거, 짐짝이네. 그리 무겁지 않으니까 어깨가 결리지는 않지만

 점퍼 위를 팡팡 두들긴다.

 그것ㅡ아스트라M44 아르케부스 커스텀은, 점퍼에 감춰져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 걸어둔 홀스터 안에 수납되어있는 그것은, 홀스터째로 은폐영채를 걸어두었기에, 설령 점퍼를 벗더라도 타인에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곤 해도 점퍼의 부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부분까진 속일 수 없지만, 그런것까지 신경써서 히로를 관찰하는 사람은 여기엔 없겠지.

 (이렇게 보니, 너도 꽤나 그럴듯한 소울 언더 테이커로군)

 히로의 벨트에 장착되어있는 주머니 안에는 실린더로 총알을 한 번에 장전하기 위한 기구인 퀵 로더가 2세트 들어있다. 1세트에 6발의 총알이 세트되어 있으며, 현재 아스트라M44의 속에 들어있는 총알까지 합쳐, 총 18발의 총알이 있는 셈이다.

 히로 자신이 더듬거리며 마테리얼라이즈한 이 매그넘 탄이 쏘아지는 날을, 한니발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1월 초순에 날림으로 신청한 제 3종 영장면허는, 2주만에 수리되어 히로는 순조롭게 제 3종 영장 업무 청부인이 됐다.

 관청 주민부 귀적계에서 행해진 수속은, 꽤나 적당한 녀석이었다. 소우기와 아는 사이인 듯한 공무원은, 아스트라M44를 보고 '리볼버 신청은 오랜만이군'이라고 어딘가 기쁘다는 식으로 히로에게 말을 걸었다. 히로는 그저 멍때릴 뿐이었지만.

 한니발은 공무원들의 수속에서 그의ㅡ'미시마'라는 이름이 나름대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시마의 차남 도련님이 후견인이군. 바보같이 보이지만 분명 대단하겠지, 여러모로'
 '미시마의 인간이 자기네 핏줄 말고 후견인을 서다니, 처음이지 않나?'
 '요새, 미시마 장남이 늑대 사냥을 한 모양이야, 대단하지'

 경외를 담아 말하는 그 소문을 소우기도 들은 모양이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사무적인 수속만 묵묵히 했다. 그 사이 히로는, 소우기에게 '얌전히 있어'라고 엄하게 교육받아서 '우응'하는 소리만 내면서 소파에 앉아서 발을 파닥파닥거렸다.

 이렇게 히로가 굉장한 노력을 하는 도중에 발행된 면허는, 히로의 지갑 속에 들어있다.

 그 이후, 소우기는 히로에게 아스트라M44와 퀵 로더 2세트가 들은 주머니를 항상 휴대하도록 명령했다. '정말로, 어떤 때라도 갖고 있어야해?'라고 히로가 물어봤을 때, 소우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고양이한테 물어봐'라며, 한니발을 가르켰다. 

 다행이다, 라고 한니발은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목욕탕에 들어갈 때나 체육시간까지 히로는 이 총을 손에서 떼지 않겠지.

 이렇게해서, 히로는 꽤나 아스트라M44의 무게와 존재에 익숙해져왔다. 지금도 홀스터를 어떤 순수대로 장착하는가 외우지 못하고, 한니발을 고뇌에 빠트리고 있지만.

 (슬슬, 너도 실탄을 쏠만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공포탄을 쏴도, 딱히 반동으로 쓰러지지 않게 되었고)

 소우기는 공포탄을 물쓰듯 쓰지는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히로의 에테르와 선골은 쐇을 때의 반동에는 견딜 수 있도록 됐다. 처음에 쐈을 때처럼, 에테르가 이완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일은 더이상 없다.

 쏜 반동에 의해 팔이 떠오르는 현상도 꽤 나아졌다. 명중률은 아직 초보자 수준이지만, 그래도 노린 방향으로 날아가게끔 정한 표적에는 맞게 되었다.

 "뭐, 그렇게 무리하게 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느긋하게 대답하는 히로는, 손으로 입을 막지도 않고 크게 하품한다.

 (입 쩍 벌리고 하품하는 거 아니야, 보기 안좋다)

 "으음... 그렇지, 전에 후쨩 앞에서 했더니 주먹으로 입을 맞아서 앞니랑 입술이 아팠었지ㅡ"

 그건 아팠다 하며 히로는 팔짱을 끼고 끄덕거린다.

 "봐, 여기 주먹에 단단한 부분이, 앞니에 살짝 맞아서말야, 정말로 아팠다구ㅡ 그리고, 주먹의 엄지 어딘가가 아랫니에도 닿고말이야"

 말하는 도중에 재채기를 한 번 하자, 콧구멍에서 볼품없이 콧물이 흐른다. 점퍼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는 사이, 히로는 코를 훌쩍하지도 않고 줄줄 흘리는 채였다. 옷에 떨어지지는 않을지 한니발이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히로는 겨우 티슈를 꺼내 코를 풀었다. 코를 의외로 조심스럽게 푸는 건 좋지만, 일부러 티슈를 펼쳐서 자기 콧물을 지긋이 보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콧물이 투명하니까, 코가 아프진 않은가봐,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 코딱지 나왔다"

 아까까지 히로의 옆에 앉아있던 커플이, 오물을 보는 눈을 하더니 자리를 옮기는 모습을 한니발은 보고있었지만 히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주위에서 보기에 혼잣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데다가, 코푼 휴지를 펼쳐서 색을 확인하는 초등학생의 옆에 앉고 싶어하는 인간은 없겠지.

 그러므로 히로가 앉아있는 벤츠는 다른 사람이 앉더라도 금방 이동해버리는, 영업자 측면에서는 상당히 민폐덩어리 공간이 되고 말았다.

 (...하나하나 티슈를 펼쳐서 콧물색을 확인하는 건 그만 둬, 특히 사람들 앞에서는)

 "에ㅡ 하지만 콧물이나 오줌이나 똥의 색이나 모양은 평소에 잘 봐두는 편이 좋다고 할머니가 말했는걸. 니케나 핫쨩도 화장실 갔다온 다음엔 반드시 보고. 콧물이 초록빛이면 뭔가 병이 걸렸으니까 조심하라구 하루 씨"

 (난 이미 병이 의미없는 존재라구... 그리고 적당히, 나랑 대화할 때에는 말을 육식에 띄워줘. 몇 번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육식의 사용법은, 영체를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다. 에테르를 매개로 의사소통을 취하기도 가능하다. 소울 언더 테이커끼리 육식으로 대화하려면 신체 일부가 직접 닿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히로와 한니발은 마스터와 파밀리아의 관계이기에 상관없다.

 몇 번이나, 그야말로 하루에 3회 가깝게 반복하고 있는데도, 히로는 결코 육식으로 말하려 하지 않고, 반드시 입으로 말을 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런 공공장소에서 수상한 시선을 받게 되버린다.

 별 상관없는 일은 금방 외우고, 가르쳐줘도 잊어버리지 않는 aus도 있으니, 학습능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넌 안그래도 바보다 얼간이다 얼빠진 녀석이다 소리를 들으면서, 이 이상 이상한 소문이 생기기 전에 나랑 대화할 때는 말로 하지 말고 육식을 써줬으면 좋겠어, 내 일생의 부탁이니까 제발 그렇게 해줘)

 어차피 또 '으웅ㅡ 하지만, 그런 건 뭔가 싫은걸'하면서 흘려듣겠지. 반쯤 포기한 한니발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히로의 손이 한니발에게 닿을듯 말듯한 위치까지 뻗어왔다고 생각한다.

 (으웅ㅡ 육식으로 하는 대화는 이런 식으로...?)

 히로의 목소리가 아닌 의사가 직접 흘러들어온다. 그 순간, 한니발은 몸을 떨듯한 충동이 자신을 덮쳐오는 느낌을 받았다. 몸을 흔드는 것도 귀나 수염에 달라붙은 것도, 반쯤밖에 없는 꼬리를 좌우로 흔드는 것도, 자신의 의사를 시각적으로 주인에게 알리는 방법이다. 귀나 수염이나 꼬리도, 실체를 갖지 않은 한니발에게는 쓸모없고 무의미할 뿐이지만.

 그런 행동을 무의식중에 할 수 있게끔 된 건, 많은 인간들 사이를 옮겨다니면서 생긴 처세술이다.

 (아ㅡ 하루 씨 털이 곤두서있어. 화났어?)

 이 털을 곤두서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은, 그저 조건반사같은 행동이다. 빨리 가라앉혀야지.

 (...아, 아니, 딱히 화난 건 아니야. 오히려 기쁜걸, 네가 육식으로 말해줘서)

 그렇다, 이건 솔직히 기뻐할 일이다. 그만큼이나 육식에 의한 대화를 싫어했는데, 어째서 갑자기 자신의 부탁을 들어줬는지 약간 신경쓰이지만. 

 (어째선지, 이런건 싫은걸. 대화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곤두섰던 털들을, 히로가 상냥하게 쓰다듬어준다. 그런다고 털이 가라앉지는 않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곤두섰던 털은 히로의 손에 의해 가라앉기 시작한다. 손바닥에서 아주 미약하지만 나오는 히로의 에테르가, 털에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다.

 적절한 신체로다. 한니발은 처음으로 새끼고양이의 모습을 한 자신의 영체에 감탄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 이건... 그렇지, 비밀 이야기를 할 때 편리하지.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지 못할 이야기같은 게 있잖아?)

 (없어)

 너무나도 간단히 즉답해버려서, 한니발은 무심코 히로를 올려다봤다. 웃고있지는 않지만, 뭔가 멍하니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없다고? 너한테도 다른 사람한테 들려주고 싶지 않은 비밀 정도는 있지 않아?)

 "으음ㅡ"

 낑낑대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자, 히로는 왼손으로 약간 빧어있는 앞머리를 의미없이 당겼다. 일단,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다.

 (들려주고 싶지 않은 일은 없어. 말하고 싶지 않은 건 있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건 말하지 않으니까, 말하지 않고. 옷쨩한테 비밀로 해달라면서 들은 건 있지만, 비밀은 어디까지나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말 안했으니까 말하지 않은걸. 아ㅡ 나는 비밀 이야기를 듣지만 비밀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네, 응 응)

 혼자 궁시렁거리는 히로를 째려보고, 한니발은 히로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5초만에 그 생각을 포기하고, 조금 강한 말투로 히로에게 말한다.

 (아무튼, 나랑 대화할 때에는 육식을 통해서 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지금부터 앞으로 만에 하나라도 미시마 씨가 너한테 닿으려고 하면, 그건 십중팔구 육식을 통해 너랑 대화하고 싶어한다는 사인일 거야. 그때는 말이 아니라 육식으로 대화하도록 해)

 "에ㅡ 시러ㅡ"

 이것도 즉답이다. 게다가 아까 '싫다'보다 강한 말투로, 그리고 표정으로 드러난다. 히로가 곤란한 얼굴이나 아픈 얼굴을 보여주는 적은 있었지만, 드물긴 하지만 '싫다'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한니발은 처음 봤다.

 그리고, 이 소녀에게 명확하게 '무엇이 싫다'라는 극히 인간다운 감정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안도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무언가를 싫어하고, 화내고, 증오하고, 미워한다는 감정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한니발은 물어보고 싶어졌다.

 (왜 싫어하는 거야? 아, 이유는 육식을 통해서 설명해주면 기쁘겠어)

 "응ㅡ..."

 히로의 얼굴에서 혐오의 감정이 사라져가는 것을 뭔가 아쉽게 생각하면서, 한니발은 이유를 묻는다.

 (누군가랑 이야기할 때에 말이야, 제대로 입으로 말하는 편이 좋다구. 이 육식이라는 걸로 말하면 전혀 대화하는 기분이 들지 않아)

 (하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하고, 육식을 쓰는 대화라면 거짓말하기가 어려워. 본심으로 대화하는 거니까, 상대방의 거짓말을 간파할 수도 있지)

 육식으로 대화한다는 말은, 딱잘라 말하자면 에테르로 자신의 의사를 건네주는 말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에 거짓을 섞기는 쉽지만, 자신의 혼을 속이기는 어렵다. 익숙해지면 혼으로 거짓부렁을 나불댈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꽤 숙련을 요하며, 완전히 감추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적어도 한니발은, 육식을 사용한 대화에서 거짓말을 듣더라도 간파해낼 자신이 있다.

 (거짓말따위 간파하지 못해도 된다구)

 히로는 한니발의 얼굴을 보며 싱긋 웃는다. 아아, 평소의 미소보다 지금 얼굴이 더 나은걸, 이라고 한니발은 무심결에 생각했다.

 (거짓말은 하면 안 되지만, 거짓말을 해도 되는 때에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구. 거짓말하면 안 되니까 안 할 뿐이잖아? 그럼 거짓말을 들어도 아 그렇구나ㅡ 하고 생각하면 된다구)

 (넌 거짓말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거짓말을 부정하지 않는구나)

 (거짓말도 방편이라고 하고, 자신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일이 정말로 진짜가 아닐 수도 있고, 그러니까 거짓말이 정말로 거짓말인지도 모르고,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은 거짓말인 채로 괜찮지 않을까?)

 히로의 이러한 말투가 하루이틀도 아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 알겠는 사실은, 히로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정도다.

 (넌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때와 장소를 생각하면, 거짓말을 해도 좋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의문형으로 말하지 말라구... 하지만, 너는 그런 이유때문에 육식으로 대화하기를 싫어하는 거야?)

 "응, 아"

 미소를 거두고 다시 뭔가 생각하는 히로였으나, 금방 언제나처럼 망양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말이란 있지, 이 근처에서 나오는 거잖아. 육식으로 하는 말은, 피부로 대화하는 기분이야. 뭐라고할까, 말하는 기분이 안 들어서 싫어)

 이 근처, 라며 히로가 두들긴 곳은 자기 배 근처였다.

 (...너는, 배로 대화하는 거냐)

 (조금 달라, 이야기는 머리에서 나오지만, 말은 배에서 나온다고 느껴. 하루 씨는, 뭐 유령이니까 팔로 말해도 될까ㅡ 하고 생각하지만, 미시마 씨랑 팔로 대화하기는 싫은걸. 모처럼 여기서 말을 꺼낼 수 있는데)

 한니발로서는 아무래도 히로의 감성을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다. 한니발은 한숨을 쉬고 싶어졌다. 한숨쉬어봤자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혹시 자신에게 통각이 있다면 분명 두통으로 고생했으리라.

 우명공동체인 이 주인의 언동은, 한니발에게는 무서울만큼 의미불명하며 이해불가였다

 일단 무언가 화제를 돌리자고 생각한 한니발은, 문득 물어보고 싶었던 생각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어째서 갑자기 나랑 육식으로 대화해준 거야? 지금까지 계속 말해도 전혀 들어주지 않았으면서)

 (하루 씨가 부탁했으니까)

 (.........엉?)

 무심코, 의미를 전혀 모르겠는 한글자짜리 말을 의식의 저편에서 띄워버린 한니발이었다.

 (부탁이니까라니... 지금까지 계속 했는데)

 (아니, 하루 씨 지금까지는 '부탁'이라고만 했잖아. '일생의 부탁'이라고는 오늘까지 한 번도 말하지 않았는걸)

 한니발은, 자신의 말을 떠올려봤다. 최근 2개월동안 자신이 한 말을 전부 기억하진 못하지만, 확실히 '일생'이라는 말을 쓴 적은 없었던 기분이 든다.

 (...그래서, 부탁과 일생의 부탁이라는 대단히 비슷한 말에서, 네가 느끼는 차이점이란 대체 무엇인지...)

 (부탁은 말야, 나한테 부탁해도 소용 없다는 기분인데, 일생이 붙으면 어떻게든 해야할 것만 같잖아)

 (...........................그 뿐이야?)

 (그 뿐이야)

 화내야하나 맥풀려야하나, 아 그렇군요 그런 이유로군요 하며 그러려니 생각해야 하나. 지칠 수 없는 몸인데, 어째선지 굉장한 피로감이 고양이 몸을 질주한다.

 일련의 대화를 소우기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한니발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도 자신이나 히로와 약간이나마 운명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이 표현하기 어려운 피로를 체험해야만 한다는 부조리한 생각을 계속한다.

 (히로, 너는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씩 터무니 없을만큼 잔혹한 행위를 한다구...)

 (그래?)

 이 고양이 눈에서 용처럼 눈물을 흘려보고 싶다. 한니발은 그런 부조리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분발하게끔 분수를 봤다.

 아름다운 분수인데, 어째선지 허무하게 느껴졌다.

***

 "초등학생 프리패스 1장"

 딱 그것만 말하는데, 형용할 수 없는 귀찮음이 느껴지는 자신도 꽤나 뻔뻔한 놈이라고 미시마 소우기는 생각했다. 애초에 말하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까놓고 말하자면 싫다. 말을 한다는 건 자신의 의사를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행위인데, 자신을 타인따위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과 활발하게 대화하는 경우도 결코 없고, 가끔 일가족 전원이 모여도 모두들 필요 최저한의 말만 한다.

 말을 하려는 행위를, 어째서 자신은 싫어하는 걸까. 타인과 대화는 싫어하는 주제에, 매일 밤낮으로 선인장과 미역에게 인사한다는, 자신이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굉장히 서글픈 행위는 전혀 싫지가 않다. 오히려 선인장과 미역은 좋아한다. 식물 전반은 별 상관 없지만, 선인장과 미역만은 좋아한다. 더욱 한정한다면, 자신이 키우는 선인장과 미역만 좋아한다. 다른 사람이 키운 선인장과 미역은 딱히 어찌되든 상관없다.

 아무튼, 소우기는 타인과 대화하기를 싫어한ㄴ다. 최근 2개월 정도, 소울 언더 테이커로서 마음가짐을 가르키기 위해 에토우 히로라는 바보와 나름대로 대화해봤으나, 울화통이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설명하는 동안은 괜찮다. 조용히 있다가 잠시 지나면 히로가 별 상관도 없는 개소리를 나불대는 게 굉장히 괴로웠다.

 삶은계란은 반숙과 완숙 중 뭐가 좋은지, 계란후라이에 뭐를 뿌려 먹는지, 오이는 생으로 먹는지, 낫토에 파랑 겨자랑 간장을 어느정도 섞는지, 카레라이스와 라이스카레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등등

 태반이 먹는 이야기였던 기억이 나는데, 기분탓이겠지, 아마도

 자신이 '조용히 해'라고 말하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나불대는 꼴이 싫었다. 무시해도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나불대는 히로가 짜증나서, 확실히 비난해봐도 그냥 헤실헤실 웃을 뿐이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자신과 히로의 상성은 최악이라고 느낀다. 긱억력이 나쁘고, 사람 말을 잘 듣지 않고, 멍한 얼굴을 하고, 한 번 코를 푼 휴지를 다시 쓰고, 빠진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고. 그 모든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울 언더 테이커로서 후견인을 하기로 결심했다곤 하지만, 히로에게 여러가지를 주입시켜주는 과정에서 꽤나 스트레스가 쌓여버린 모양이다. 히로와 만났던 날은, 피로함이 쌓여 무서우리만치 숙면을 해버린다. 평소에 잠을 옅게 자고, 단속적인 수면밖에 취하지 않던 소우기에게 있어서는 5시간이나 연속해서 자는 일따위 믿어지지도 않는 일이었다. 정말이지 민폐덩어리다.

 음식 이야기만 하니까 평소 식사에 흥미가 일어서, 식물 섭취량도 늘어나버렸다. 요 2달간 체중이 1키로나 늘었다. 운동은 빠지지 않고 하니 지방만 늘어나지는 않았겠지만 걱정은 든다. 자신의 페이스가 저런 바보한테 휘말린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울화통이 터졌다.

 그나저나 언제까지고 감정 컨트롤이 안 된다니, 아직 미숙하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제대로 사전조사를 해야하니, 나름대로 기합을 넣어야 한다. 소우기는 잔돈을 지갑에 넣고, 밝은 색으로 장식된 게이트를 통과해, 표적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건조물의 위치는 지난번 자료에서 본대로였기에 파악해두었지만, 역시 현지에서 자기 눈과 발로 직접 확인하니 꽤나 감회가 새로웠다. 우선 이 토지의 중심지부터 실버를 날려 정찰시킨 뒤에 자기발로 조사하는 편이 낫겠지.

 소우기는 기타케이스를 고쳐메고 걸어가려는 찰나, 올려다봐야 할만치 큰 곰인형이 무언으로 곰 모양을 한 풍선을 내민다. 곰의 얼굴은 웃고있지만, 그 들러붙은 움직이지 않는 웃음이 그 바보를 떠올리게 만들어, 방금까지 잊고 있었던 울화통이 다시 치밀어오른다.

 ...자신은 어린애니까, 어린애다운 행동을 해야한다. 소우기는 밑에서 노려보는 것처럼 곰의 얼굴을 보고, 내밀어진 풍선을 받아들었다. 곰은 나타났을 때와 같이 무언으로 원래 위치에 돌아가, 다음으로 풍선을 건네줄 표적을 찾는 듯이 주위를 둘러본다.

 저 곰은 자기 일에 충실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울화통이 살살 들어갔다. 이 풍선은 솔직히 말하자면 방해되고, 그냥 손을 놔서 하늘로 날려버리면 되겠지만, 곰 앞에서 그런 짓을 하기에는 약간 마음에 걸린다. 저 곰은 별로 신경쓰지 않겠지만, 일을 묵묵히 하는 그의 긍지에 상처를 입히는 기분이라, 소우기는 풍선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메고있던 기타 케이스를 한 번 내리고, 풍선 줄을 묶는다. 다시 고쳐멘 그 모습은, 굉장히 어린애처럼 보였다.

 나이에 걸맞게 보이지 않는다고 가족이나 지인들이 말하기에, 이렇게 하면 조금은 이 공간에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익숙해지지 않더라도, 눈에 띄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의외로 좋은 물건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곳의 중심지인 광장으로 가볼까.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던 소우기였으나, 12살 소년이 곰 풍선을 묶은 기타 케이스를 지고 기분 나쁘다는 듯한 얼굴로 혼자 걸어가는 것 자체가, 이곳에서 붕 떠버린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

 "...설마라고 해야하나, 역시라고 해야하나... 여기 있었구나, 히로"

 슬슬 점심먹을 시간이 되어, 오치아이 아케미는 아침에 히로를 봤던 장소로 돌아왔다.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있었다. 분수 앞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지면을 바라보고 있다. 말을 걸자, 천천히 올려다보는 그 표정에는 평소의 미소가 떠올라있다.

 "아ㅡ 옷쨩이다, 좋은아침"

 생각한 대로의 대답에 아케미는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며, 허리에 손을 걸치고 뭔가 대단하다는 듯이 히로의 얼굴을 내려본다.

 "좋은아침이 아니라구... 집합했을 때 여기있었으니까 설마했는데..."

 크게 한숨쉬고, 긴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히로의 옆에 앉는다

 "너말이지, 모처럼 놀러왔으니까 조금은 움직이라구. 그야 너, 제트코스터계열은 눈돌아가고, 회전목마같은 거 타도 눈돌아가지만... 그보다 너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고 어느정도 빠르게 움직이는 계열 전부 눈돌아가잖아"

 "우응ㅡ 그렇지"

 히로가 이런 장소에 놓인 어트랙션의 태반을 즐기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아케미는 알고 있었다. 풍경을 느긋하게 즐기지 못할만큼의 속도가 나는 탈것에 타면 기분이 나빠진다. 유령의 집같은 계열은 히로가 절대로 놀라지 않으니까 쩐다면 쩔지만, 히로 자신이 멍하니 있을 뿐이라 긴박감이 없어진다. 인형옷을 입은 사람들이 춤추는 연극계열도 잇지만, 어두워지면 잠들어버리는 성질의 히로에게는 의미가 없다.

 "옷쨩은 무슨일이야? 친구들이랑 돌아다니고 있지 않았어?"

 "돌아다녔어, 그래도 네가 신경쓰여서 일로 왔다구"

 "에ㅡ 나는 그냥 냅둬도 괜찮은데"

 냅둘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바보를. 친구랑 함께 있어도, 히로가 뭐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느라 집중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을 친구들은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만, 결코 '그럼 에토우 씨도 같이 가자'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말할 턱이 없다.

 그런 친구들을, 아케미는 도저히 책망하지 못한다. 이런 바보랑 어울려도 불쾌감만 느낄 뿐이니까. 그건 아케미 자신도 잘 알고있다. 다른 인간에게까지 불쾌한 느낌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이렇게 자신이 와주지 않아도, 어차피 히로는 혼자서 시간을 떼우며 혼자서 돌아가겠지. 그걸 쓸쓸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즐겁다고 느끼면서. 그래도 자신은 히로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문득 뇌리를, 언젠가 봤던 미시마인지 나발인지하는 수상쩍은 꼬맹이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히로랑 만나서 물어봤더니, 그녀는 그를 친구라고 말했다. 코웃음쳐버리고 말았다. 히로의 친구가 자신 외에 있을 리가 없으니까

 "너, 냅뒀으면 계속 여기 있을 생각이었잖아. 그러면 안 된다구. 네가 탈 수 있을 법한 녀석은 관람차랑... 아ㅡ 저기 배가 있잖아, 뭐시기 호. 배는 확실히 괜찮았었지, 너"

 "바다는 좋지이"

 "바다가 아니라 강이야, 뭐시기 리버 호인지 뭔지하는 녀석"

 "흐음"

 "흐음이 아니라구, 너 좀 더 즐기라구, 모처럼 왔으니까"

 "즐기고 있어ㅡ 옷쨩이야말로 즐기고 있어? 왠지 화나보여"

 "네가 멍하니 있으니까 화내는 거야!"

 "으앙ㅡ 미안해"

 그렇게 사과하는 히로의 표정에는 주눅든 표정은 코빼기도 없었다. 이미 익숙해졌으니 그리 화나지는 않지만, 조금은 자신이 화났다는 사실을 어필하기로 했다.

 "애초에 뭐야 그 더워보이는 점퍼는"

 "그래? 별로 덥지 않은걸"

 "아무튼, 너 배 타고 관란차 타는 정도는 하라구. 알겠어!? 패스값 통째로 날려버리지 말라구, 아깝잖아"

 "으앙ㅡ 하루 씨도 그렇게 말했어"

 하루 씨. 그러고보니 작년 히로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어깨 위에 하루 씨라는 귀여운 고양이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 고양이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이런 개수작을 부리고 있다니

 "너, 그런 말은 다른사람 앞에서 하지 말라고 했잖아"

 "옷쨩이라면 괜찮잖아"

 "...뭐 그렇지... 나라면 상관없지만..."

 "응, 게다가 하루 씨는 나한테만이 아니라 다른"

 거기까지 말한 히로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멍한 얼굴을 향하고 있었는데,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무릎 위에 있는 무언가를 쓰다듬는 동작을 시작한다.

 "뭐야, 갑자기 조용해져선. 배라도 아파? 아니면 무릎에 보이지 않는 고양이라도 있는 거야?"

 "......으음, 응, 고양이, 하루 씨 있어. 음..."

 말투가 이상하다. 히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지만, 말을 더듬으면서 웅얼거리지는 않는다. 웅얼거릴 때는, 말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을 때. 이 히로는 터무니없이 정직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히로는 그런 인간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그녀의 부모님 다음으로 잘 알고 있으니까. 솔직히, 그 난폭한 여동생보다 자기가 히로를 더 잘 알고있다.

 자신의 무릎을 지긋이 보면서 움직이지 않는 히로는, 혹시 의식이 몽롱해질만큼 배가 아픈 걸지도 모른다. 히로는 아플 때 솔직하게 '아파아파'라고 말하지만, 정말로, 죽을만큼 아플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케미는, 히로의 팔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 두꺼운 점퍼에 닿은 순간, 무언가가 손바닥에 퍼지는 느낌이 들어 무의식중에 손을 뗐다. 기분나쁘다. 잘 모르겠지만, 열을 가진 파충류에게 닿아버린 것처럼 기분나빴다. 뒤로 몸을 젖힌 아케미는 당황해서 손바닥을 확인해봤지만, 딱히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았다.

 "으응ㅡ 하루 씨랑 옷쨩이랑 같이 대화하는 건 어려운걸... 아, 옷쨩 무슨일이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케미에게 말을 거는 히로의 얼굴은, 평소랑 똑같았다. 자기만 멋대로 허둥대서 멋대로 당황한 기분이 들어서 갑자기 열이 뻗치는 아케미였다.

 "...너, 아까 불렀는데 대답 안했잖아"

 "으앙, 그건있지, 옷쨩에게 내가 말하려했던 걸 하루 씨가 말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래. 옷쨩만이 아니라, 아무튼 하루 씨를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말하면 안 된다고"

 "...보이지 않는 고양이가, 그렇게 말했다고?"

 "응, 그래서있지, 지금까지 뭘 말하면 안 되는지 듣고 있었어, 꽤 많았다구. 아, 하루 씨랑 얘기할 때는, 왠지 입으로 말하기가 잘 안 되더라. 부르는 건 들리는데 대답을 못했어. 미안해"

 보이지 않는 고양이. 망상이 극에 달했나. 환각이라도 보이는 게 아닐까. 옛날부터, 뇌나 후두부를 가르키며 '이 근처에서 소리가 들려'라고 말하던 히로다. 머리 안에는, 히로와는 다른 의사와 감정은 지닌 난쟁이ㅡ아니, 새끼고양이가 48마리 정도 숨어있어서, 항상 폭주중일지도 모른다.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맛이 가버린 걸까

 "그래서있지, 하루 씨가 정신이상자로 오해받기 전에 적절하게 속여넘기라고... 아, 하루 씨가 몸을 웅크렸어. 뭐 아무튼, 나랑 하루 씨랑 비밀 이야기를 했어. 미안"

 그렇게 말하며 웃는 얼굴을 보니 평소의 히로다. 그 표정을 본 순간, 아케미는 자신만이 허둥대는 꼴이 바보같다고 생각해 한숨을 쉬었다.

 "뭐, 됐어, 네가 고양이랑 대화하다니 평소랑 똑같은걸. 고양이랑 비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응, 응"

 아케미는 기세 좋게 일어나더니, 히로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일으켜세운다. 아까까지 느낀 파충류같은 느낌이 잠시 얼굴을 스쳐지나갔지만, 손가락에서 전해지는 감촉은 점퍼의 두꺼운 솜털 뿐이었다. 분명, 아까 그건 기분탓이겠지

 "자, 배 타러 가자"

 "에ㅡ 밥 먹고 싶은걸. 도시락 시간 하자ㅡ 반찬 뭐가 있을지 기대했는데ㅡ"

 등에 메고있던 가방을 톡톡 치면서 말한다. 수저통이 딸그락딸그락 소리를 내지만, 아케미는 무시하기로 했다.

 "먹은 뒤라면, 너 식사휴식이네 뭐네 말하면서 1시간 정도 쉴 생각이잖아. 그렇게 느긋하게 있다가는 너 집합시간까지 여기 있게 되버린다구. 5시까지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히로는 팔을 끌어당겨져,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날씨 좋다아"

 "...날씨가 좋으면, 멍하니 있지만 말고 빨리빨리 움직이라구"

 "네ㅡ 일단 열심히 해볼게여"

***

 사람이 잔뜩 있는 공간이란, 그만큼 피로해진다. 육식과 실버를 사용해 표적이 어디에 잠복해있는지를 찾는다는 건, 꽤 뼈를 깎는 일이다. 게다가 인간이 많으면, 잡다한 혼을 느끼게 되서 탐색은 점점 곤란해진다. 평일이니까 더 한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머릿수는 뭐란 말인가. 일이나 학교를 쉬면서까지 올 가치가 있는 곳인가, 여기가.

 그런 테마파크의 존재의의를 생각해도 소용없다. 소우기는 적당한 벤치에 앉아, 기타 케이스를 등에서 내리고 지면에 세운다. 아직 내용물을 쓸 때는 아니다. 양팔로 케이스를 끌어안고,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는다.

 어깨 위에 있는 실버와, 의식을 깊이 동조시키기 위해 영수의 움직임을 평소보다 활발하게 만들어 뇌내로 자신의 파밀리아인 검은 까마귀의 모습을 떠올린다. 익숙해져있을텐데, 오늘은 평소보다 10초 정도 시간이 더 걸렸다.

 뇌내에는 풍경이 그려진다. 자기 눈으로 보는 풍경은 아니다. 실버의 눈이, 지금은 소우기의 눈이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눈을 감은 자신의 얼굴을 볼 기회따위 일상에서는 꽤나 보기 드문 광경이지만 소우기는 딱히 자기 얼굴에 흥미를 갖거나 하지 않았다.

 어디부터 어떻게 봐도, 무뚝뚝해보이는 귀염성 없는 얼굴을 한 꼬마애다. 자기 얼굴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다.

 언제까지나 자기 얼굴을 보고 있어도 소용없으니, 소우기는 실버를 상승시켰다. 새 형태의 파밀리아를 가진 최대의 이점은 비행이 가능하다는 일이다. 파밀리아는 원형이 된 동물의 특징을 깊이 받는다. 새는 하늘을 날 수 있지만 지상을 걸어다니지는 않고, 개나 고양이는 날지 못하지만 지상을 정찰하는데 도움된다. 물고기의 시체를 쓰면 수중 전용 파밀리아가 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파밀리아를 만들려는 호기심을 소우기는 갖고있지 않다.

 새 형태 파밀리아는 편리하지만, 그만큼 다루기 어렵다. 의식을 동조시켜서 하늘을 날게 하더라도, 그 정보가 뇌내에 흘러들어오면 멀미 비슷한 증상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동조상태가 갑자기 끊기면, 의식이 무서운 기세로 하강해 블랙아웃해버린다. 소우기도 꽤 익숙해졌지만, 아직 실버를 날게 하기에는 미숙하다.

 상승할 때는 그저 하늘이 보인다. 태양빛이 눈부시지는 않다. 

 푸른 하늘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어느정도 고도를 높였으면, 공중에서 정지시킨다. 새의 특징을 계승했으니까 하늘을 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새에 꼭 들어맞는 모든 물리법칙이 파밀리아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상승기류를 타지 않으면 날지 못하지도 않고, 바람에 의해 진로가 바뀌지도 않으며, 이렇게 호버링하듯이 공중에서 딱 정지할 수도 있다.

 새가 되어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건 매우 기분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는 소울 언더 테이커가 있지만, 소우기는 높은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소공포증은 아니지만,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기보다 땅에서 수평선을 보는 편을 좋아한다. 그뿐이다.

 그래서 소우기는 보통이라면 잠시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할 고도에서의 풍경에는 아무런 감개도 표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 주목해야할 것은, 이 테마파크 어딘가에 '방황하는 양'이 잠복해있는지다.

 양이 있는 전조로써 가장 많은 현상이 폴터가이스트다. 우선 물체에 달라붙은 에테르가 달캉달캉 소리를 내고, 이윽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지금은 아직 폴터가이스트가 일어날 뿐 별다른 피해는 없어보이지만, 잠재적으로는 이미 피해자가 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토악질이나 현기증은 너무 심하지 않으면 구급실에 가지 않고 끝내는 인간도 있는 모양이고, 여기를 나가면 양의 영향은 없어진다. 조금 더 방치해두면 눈에 보이는 피해가 나오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소우기의 일이다.

 의뢰는 테마파크의 의뢰자가 직접 했지만, 최대한 비밀 및 은폐하도록 부탁받았기에 강력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 영장 업부 청부인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파크 내에 한 명도 없다. 양을 발견하고 그걸 막상 쏘는 단계로 가더라도, 장소에 의해서는 귀찮은 일이 되버릴 것이다. 하지만 의뢰인 측의 협력을 얻지 못하는 이상, 보수는 배로 받았다.

 오늘은 사전조사지만,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어보이면 그 바보ㅡ히로를 데려와서 시켜봐도 좋을지 모르겠다. 피해가 크지 않은 것을 보아하면, 그렇게 강한 양도 아닌 모양이다. 슬슬 실전을 쌓아둬야 한다고, 한니발이 시끄럽다. 그것도 평온한 곳에 놓아두면 의미가 없는 고양이다. 수상쩍은 곳에 데리고 다니는 편이 좋겠지. 그때까지, 조금 더 그 바보에게 경험을 쌓도록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런 느긋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아닌 현상이 슬금슬금 진행되고, 소우기는 그 현상을 27초 뒤에 실버의 눈을 통해 알게 된다.

***

 이 테마파크는 광장에 있는 메르헨틱한 유럽풍의 성을 중심으로, 동쪽은 건축물계열 어트랙션, 서쪽은 야외계열 어트랙션이 있다. 서쪽에는 산악 모형을 꾸민 제트코스터 밑으로 꽤나 큰 인공하천이 있으며, 배를 사용한 어트랙션이 몇몇개 준비되어있다.

 히로와 아케미가 온 곳은, 증기선을 모형으로 만든 배에서 적당히 강을 건너가는 굉장히 편한 어트랙션이다. 꽤 큰 배에서 최대수용 인수는 480명을 넘는다고 하지만, 타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나하나 세지 않아서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100명 정도 되려나

 "배다ㅡ 배ㅡ"

 "뭘 당연한 말을 하는 거야, 배가 당연하잖아"

 "그렇지ㅡ 배네ㅡ"

 출항을 기다리는 사이, 히로와 아케미는 갑판에서 그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강기슭에는 숲이 만들어져있으며, 배를 띄울 수 있도록 수면에는 잔잔한 바람이 불어서 흔들흔들 흔들리고있다. 선내에는 느긋한 음악이 흐르고, 느긋한 공간이 연출되고있다.

 "이 강 말이야, 물고기는 뭐 없을까?"

 손짓하며 수면을 바라보던 히로의 등에, 아케미는 적당하게 말을 던진다.

 "만들어진 강에 물고기를 풀어둘까?"

 "공원 연못에는 올챙이가 잔뜩 있잖아. 그리고 잉어같은 애들도"

 "그건, 딱히 이런 배를 띄우기 위해 만든 연못이 아니잖아. 이렇게 놀기 위해 만들어진 강이니까, 아무것도 없지 않겠어?"

 "시시해ㅡ"

 "하지만, 나도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지 확인해보지 않았으니까, 뭔가 있을지도 모르지"

 "있으면 좋겠다ㅡ"

 뱃고동이 울리며, 배가 천천히 속도를 내며 수면을 나아가기 시작한다. 증기선 시간은 10분, 그동안 그저 느긋하게 풍경을 보거나, 새하얀 수영복을 입고있는 안내자 선원의 설명을 듣거나 한다.

 "나는 좀있다가 갑판쪽에 가볼건데, 히로도 갈래?"

 "으앙ㅡ 좀 더 이쪽 볼래ㅡ 배 앞부분에 거품이 일어서 재밌어"

 "떨어지면 안 된다"

 "그래ㅡ"

 멀어져가는 아케미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고, 히로는 다시 수면을 바라본다. 배가 쳐내는 물이 새하얀 파도를 만들고, 파도는 거품이 되어 사라져간다. 이게 너무나도 재밌어서 주체를 못하겠다.

 (히로)

 "네ㅡ"

 어깨 위에 타있는 한니발이 말을 걸자 히로는 평소처럼 대답했지만, 문득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육식으로 대답하기로 했다

 (응, 왜?)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우선 육식으로 강을 봐줘)

 (네ㅡ)

 육식으로 보는 세계의 색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빨강과 검정과 회색이다. 하지만 빨강은 인간이나 동물에 따라 색이 꽤나 달라진다. 같은 빨강색인데도, 어째서 이렇게 다른 걸까. 하늘은 언제나 저녁노을처럼 옅은 빨간색. 지면은 노오란 빨간색. 산은 녹색같은 빨간색. 한니발이 말하기는, 서모그래피라는 기구가 보여주는 거랑 비슷하다고 한다.

 이 강은, 옅은 청록색같은 빨간색, 이려나.

 (이상한 색이네)

 히로는 한니발에게 동의를 구하려 했으나, 그녀가 하는 대답은 다른 대답이었다.

 (히로, 점퍼 앞을 열어)

 (? 그래ㅡ)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지퍼를 내리고 앞을 연다. 그 사이에도 히로는 육식으로 강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회색으로 보이는 배에 까만 무언가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의식을 향했다. 미역이나 다시마같은 종류일까. 이런 곳이라도 해초가 자라고 있구나 하며 감탄한다. 여기는 강이니까 해초라는 시점에서 이미 틀렸지만, 히로가 입을 열어 말하지 않으니 태클이 걸리는 일은 영원히 없었다.

 어두운 색을 하고있다곤 하지만 일단 빨간 강과 회색의 배 사이에 끼어, 검은색이 한층 더 눈에 띈다. 히로가 계속 주목하자, 앤지모르게 점점 크게 보였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건 공기를 통해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피부다. 피부에 달라붙어, 깊이 스며들듯이 전해지는 소리.


 떨어져
 떨어져
 같이 떨어져


 검고 홀쭉한 무언가가 배를 타고 슬슬 자신에게 향해 올라오는 것을, 왠지 히로는 남일처럼 멍하니 보고있었다.

 (손을 떼고 떨어져!)

 머리 옆에서 한니발이 굉장히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쳐서, 히로는 당황하며 4걸음 물러섰다. 지금까지 히로가 쥐고있던 손잡이에, 뭔가 묘한 무언가가 달라붙어있었다. 눈을ㅡ아니, 눈이 아닌 육식을 열고 본다. 콜 타르같이 새까만 액체. 하지만 그건 액체가 아니었다. 손잡이에서 소리도 없이 갑판 바닥으로 흐르듯이 떨어진 그것은, 꿈틀꿈틀거리며 한곳으로 모이는 것처럼 보이더니, 80센치 정도의 높이를 가진 작은 산처럼 되었다. 그 표면은 몽실몽실 흔들리고, 검고 거대한 젤리처럼 보인다. 먹으면 꽤나 맛없을 것같다.

 "우아ㅡ..."

 멍한 얼굴로 그 검은 젤리를 본다. 명백하게 이상한 생물체의 출현에도, 주위 반응은 전혀 없다. 히로와 한니발 이외에는, 이 검은 젤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바퀴벌레의 등짝과 닮은, 번들번들한 광택을 내뿜는 그 그로테스크한 물체를 보고도, 히로는 별로 생리적인 혐오감을 느끼지 못했다. 전혀 미지의 생물체지만, 놀라거나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그저, 눈앞에 이런 녀석이 있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일 뿐이다.

 (어라, 뭘까 저거...)

 그래도, 저게 대체 뭔가 하는 의문 정도는 머릿속에 떠오른다.

 ('방황하는 양'이 되기 시작했어. 이제부터, 이 근처에 있는 잡다한 영적물질이나 잔재를 갉아먹으며 거대해질 거야)

 양. 이게 양이구나

 이 세계에 살려고 집착해, 달이라는 명계로 여행을 떠나지 못한 슬픈 혼이구나. 느릿느릿 기묘한 움직임을 하는 검은 젤리가

 (...처음에는, 저런 원시적인 모습을 하는 경우가 많아. 조금 더 영적물질을 흡수하면 생전의 모습... 대체로는 인간이지, 그런 외견을 띄게 되는 경우가 많아. 그 때가 되면 에테르에 대한 명확한 집착행동을 취하게 되버리지. 처음부터 에테르에 달라붙는 양도 드물지는 않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슬라임은 얌전한 타입인 모양이야. 지금은 해롭지 않아 보이는군)

 (흐음... 아, 젤리랑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저런걸 슬라임이라고 부르는구나)

 검은 젤리, 아니 검은 슬라임은 장소를 옮기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있다. 표면이 몰캉몰캉 파도치기만 할 뿐 어딘가로 이동하려지는 않았다.

 (하지만, 왜 갑자기 강에서 튀어나온 걸까, 이 아이)

 (이런 기묘한 외견을 아이라고 부르다니, 역시 너라고 해야하나)

 어째서 이 양이 날아온 걸까, 한니발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답은 매우 단순하다.

 한니발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악령의 눈'. 한니발이라는 새끼고양이는, 그렇게 불리운다. 주변의 에테르나 영적물질을 끌어당겨, 양이 발생하는 토양을 만들어내는 고양이. 원래대로라면 양이 생길 리 없었던 장소에 양이 생기고, 양이 원래부터 있던 곳에서는 양을 불러오고, 이윽고 양을 늑대로 변하게 만드는 저주받은 고양이

 한니발이, 이 세계에서 사라질 때까지 짊어진 죄 중 하나.

 (저 아이, 가만 놔두면 어떻게 되?)

 (아까 말했잖아, 살아있는 인간의 에테르에 달라붙게 되버려. 작년, 너의 친구가 철교 위에서 했듯이 토악질을 하거나 두통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오지. 게다가 여기는 테마파크니까, 꽤 많은 인간이 휘말리게 될 거야. 양의 성질에 따라서는 죽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고)

 (그런가ㅡ 그건 큰일이네...)

 히로는 지긋이 검은 슬라임을 바라본다. 눈을 보면 대체적으로 동물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지만, 이녀석에게는 눈은 커녕 얼굴도 손발도 달려있지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아까까지는 무언가 소리가 들렸던 기분이 드는데.

 떨어져, 라는 이미지가. 어딘가 괴로운 듯한 목소리.

 (쏘지 않을 건가?)

 (우응?)

 한니발은 히로의 어깨 위에서 검은 슬라임을 내려보면서, 그녀 쪽으로 얼굴을 향하지 않은 채로 말을 건다.

 (저걸 쏘는 것이 소울 언더 테이커의 역할이야. 미시마 씨가 말했던 사실을 잊은 거야, 너)

 (아웅, 하지만 미시마 씨는, 미시마 씨가 보지 않는 곳에서 쏘면 절대 안 된다고 말했던 기억이 드는걸)

 역시 기억하고 있었군. 보통은 그냥 잊는 주제에, 이런데서 기억력을 발휘하는 점이 히로의 단점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하고, 아무래도 좋은 일은 잊어주면 좋을텐데

 (하지만, 저녀석을 방치하면 나중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나온다구. 그렇게 되면 뒷일이 더욱 귀찮아질 거야)

 한니발이 열심히 역설하려고 했다. 양이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할만큼, 자신은 타인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튼 주인이 코팅한 총으로, 마테리얼라이즈한 총알로, 진짜 양을 쏘게 해보고 싶을 뿐이었다.

 (이 거리라면, 네 실력으로도 빗나가는 일은 없겠지. 해보는 편이 저 슬라임과 여기에 놀러온 사람들을 위한 일이야)

 "으웅ㅡ"

 무심코, 소리가 나왔다. 히로와 검은 슬라임의 거리는 3미터도 되지 않는다. 고개를 가볍게 돌리고, 히로는 검은 슬라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니발은, 이걸 쏘라고 말했다. 소우기는, 자기가 없는 곳에서 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어느 한쪽을 골라야하는 모양이다.

 곤란하다. 어딘가 한쪽 편을 들면, 다른 한쪽의 의사에 반대하는 일이 된다. 한니발과 소우기, 둘 다 우선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라는 수단도 생각해봤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소우기의 말을 우선하게 되는 것이다.

 (고민되는걸...)

 (고민하지 말고, 쏴 줘. 저 지상을 헤메는 일밖에 못하는 검은 슬라임을, 달로 돌려보내 줘. 아스트라M44 아르케부스 커스텀으로. 그 총의 진짜 위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줘. 나와 이 자그마한 세계에)

 평소의 침착한 말투에서 약간 벗어난 어딘가 열정적으로 펼치는 말에, 히로는 한니발을 우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소우기의 말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하고 생각한 결과, 히로는 '아아'라고 한마디 중얼거리더니 퐁 하고 손을 친다.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저 아이가 달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면 쏘도록 할게, 응, 그렇게 하자 그렇게)

 (...뭐라고?)

 한니발이 책망하기 전에, 히로는 이미 슬라임에게 한발자국 다가갔다

 (기다)

 려, 라고 한니발이 멈추게 하려는 동시에, 검은 슬라임의 정점 부분이 3센치 정도 사라지며 날아올랐다. 날아가며 흩어진 검고 가느다란 파편들은, 공중에서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눈처럼 사라져, 본체쪽은 손잡이에서 스르륵 녹아내리듯이 강으로 떨어졌다.

 "아, 가버렸다"

 느긋한 말투로 히로는 방금까지 검은 슬라임이 있던 장소에 서서, 손잡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떨어져
 떨어져
 같이 떨어져

 가고 싶어
 살려줘!


 "아파아..."

 이마 부분이, 갑자기 저려온다. 머리 속을 새까만 파도가 몰아친다. 안구가 아프다. 눈을 꾹 감고, 빙글빙글 구르는 의식을 억눌러본다. 안 된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이번엔 갑자기 배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왼손으로 입을 막는다. 위액과, 아침밥 일부가 입안으로 몰려오는 기분이다.

 여기서 토하면 안 된다. 강에 토하면 강이 더러워지고, 바닥에 토하면 바닥이 더러워진다. 그렇다고 다시 마시기도 뭣하다. 필사적으로 억눌러보지만, 위액이 입으로 조금씩 흘러들어온다. 옷을 더럽힐 수도 없다. 오른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티슈로 위액을 닦는다.

 천천히 눈을 연다. 육식이 보여주는 세계가 아닌, 컬러풀한 세꼐.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굉장히 정겹게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이 입 속의 내용물을 안심하고 토할 수 있는 장소로 가야만 한다.

 "...히로?"

 아케미의 목소리가 등뒤로 들려와, 히로는 입을 막은 채로 돌아본다. 그것만으로 아케미는 눈치채줬다. 히로에게 달려오더니,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위액을 깔끔하게 닦아준다.

 "직원한테 말할까? 아니면 배를 내려갈 때까지 참을래? 직원한테 말하려면 엄지, 참으려면 검지를 잡아"

 히로의 오른손에서 티슈를 받아내며 더러워진 손수건으로 감싸며 아케미는 손을 내민다. 히로는 망설임없이 검지를 잡는다. 여기서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이제 조금 남았으니까"

 아케미가 천천히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그런 둘을, 한니발은 아무 말도 없이 히로의 어깨 위에서 보고 있었다. 머리를 천천히 움직여 하늘을 올려본다.

 강기슭 건너편 하늘에, 풍선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

 배에서 내리고 가까운 화장실로 달려간다. 칸막이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비어있는 세면대 일각을 점거하고 지금까지 참고있던 녀석들을 토해낸다. 밥에 뭔가가 섞여있다. 오늘 반찬이 뭐였더라.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한 순간도 없었다. 입 안이 비어간다, 라고 생각했더니 2차 러쉬가 들어온다. 웩웩하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새로운 위액과 아침밥이 떨어진다.

 등을 두들기는 아케미의 손이, 뒤에서 뻗어와 수도꼭지를 돌린다. 토사물이 물에 흘러 사라져간다. 순서를 기다리던 부인이 '거기 아가씨 괜찮아?'하며 말을 걸어서, 아케미가 '멀미를 좀 했나봐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하게 대응하는 말이 멍하니 들려온다.

 토악질이 멎으며, 머릿속도 꽤나 진정되어간다. 히로는 수도꼭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입에 물을 머금는다. 위액과 쌀의 감촉이 남아있는 입을 헹구고 뱉는다. 3회 정도 반복한 뒤, 아글아글 다시 3회 반복한다. 손을 씻고, 내친김에 얼굴도 씻는다. 얼굴을 올려 거울을 보니, 약간 지친 얼굴을 한 자신과, 그런 자신을 지켜보는 아케미의 얼굴이 보인다.

 "진정된 모양이네"

 "으응... 진정했어, 고마워, 옷쨩. 손수건 더럽혀버렸네"

 "그건 됐어, 빨면 되니까... 진정됐으면 잠깐 밖에 벤치에라도 앉아있어, 여기는 복잡하니까. 나 손수건 대충 빨고 갈게"

 "응, 그럴게ㅡ"

 히로는 왼쪽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손을 닦으며 밖으로 나간다. 조금 떨어진 곳에 비어있는 벤치를 발견하곤 그쪽에 앉는다.

 ".........후ㅡ"

 (진정됐어?)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어깨 위에 타고있던 한니발이 말한ㄴ다.

 (진정했어... 라고 해야하나... 굉장히 지쳤어ㅡ... 게다가 괴로웠어)

 (그 양은, 공격을 받고 두려워하고 있었어. 그런데 네가 갑자기 다가오니까 너를 향한 공격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 거야. 너는 아직 영수 방어를 하지 못하니까, 제대로 한 방 먹었지. 에테르를 갉아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행 중 다행이군. 저게 조금 더 큰 양이었다면 곤란했을 거야)

 "영수 방어의 기초는, 아직 가르치지 않았지. 아직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빨리 필요하게 되버렸군"

 "으웅..."

 미시마 소우기가 눈앞에 있다. 평소와 같이 무표정하며, 기타 케이스를 짊어지고, 어깨에는 까마귀를 태우고 있다.

 "어째서 네가 여기있는 거야"

 "졸업 소풍이야"

 "그렇군"

 소우기는 짧게 대답하며 침묵에 들어갔다. 다음은 무슨 말을 할까 히로가 멍하니 생각에 빠지자, 한니발이 히로의 어깨 위에서 벤치로 내려왔다.

 (미시마 씨, 어째서 그 양을 쐈지. 그것도 일부러 빗맞춰서. 몇미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핵은 보이지 않더라도 좀 더 아래쪽을 조준하는 것도 너라면 가능했을 터인데. 네가 어중간한 공격을 하니까 양이 도망치고 히로의 에테르가 흔들렸다구. 이건 무슨 작위적인 행동인가?)

 여느때와 다르게 한니발의 말투가 강하다. 화났다는 듯이 들리는 그 목소리가, 사실은 정말로 화난 거겠지. 하지만, 소우기는 그런 분노를 신경쓰지 않았다.

 확실히, 그때 양을 쏜 건 소우기다. 실버의 눈으로 배 위에 대치한 히로와 양을 확인한 소우기는, 일단 동조를 끊고 바로 달려나갔다. 실버와 동조를 유지한 채로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는 않지만, 신경이 소모되서 그리 많이 하지는 않는다. 다행히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배가 떠있는 강은 대부분 만들어진 인공삼림에 둘러싸여있으며, 제대로 된 사격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힘들다고 느꼈다.

 하지만 다소 물리적 장해가 있더라도, 표적을 어떤 방법으로든 볼 수만 있다면 저격할 수 있다. 강기슭에 도달한 소우기는, 철창 저편에 있는 나무들의 틈새로 배가 겨우 보이는 장소에 진을 쳤다.

 기타 케이스의 뚜껑을 빠르게 열고 내용물을 꺼내든다. 그건 기타 케이스가 아니라, 전장84센치의 저격용 라이플이다. 접어뒀던 숄더스톡을 되돌리자, 1.12미터가 된다. 소우기가 6살일 무렵부터 항상 지니고 다녔으며, 총기수입과 코팅을 거르지 않고, 아르케부스로써 정성을 다해 정비해온 총이다. 원형은 갈릴 스나이퍼 라이플. 취급하기 쉽고 신뢰성이 높은 라이플이라고 정평이 나있다.

 은폐영채를 제대로 펼쳐두었기에, 이게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일은 없다. 스쳐지나가는 인간들이 바로 옆에서 보더라도, 이걸 장전하고 쏴봤자 이상한 포즈를 취하듯이 보일 뿐이다. 소우기가 라이플을 꺼내 스코프와 카트리지를 세트했을 때는, 이미 배가 나무 건너편 백미터 정도 간격을 벌리고 눈앞을 지나가려 하고있다. 

 이런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사격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상황에 불만을 토로할 경우가 아니었다. 제빠르게 겨누고 스코프를 보면서 육식을 해방, 빨강색도 회색도 모두 무시하고 양의 검정색만 노리기로 정하고, 핵을 완전히 확인하지 않고 표면만을 확인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고막을 울리는 소리, 손가락과 팔에 전달되는 반동의 여운에 빠지지도 않고, 맞았는지 어떤지 확인하지도 않고, 서둘러 라이플을 정리하고 케이스에 담은 뒤, 약협을 회수한다. 어느샌가 곰 풍선이 사라졌지만,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까놓고 말하자면 안좋은 일을 한 기분이라 미안했지만, 아무튼 그 바보랑 한니발에게 한마디 하려고, 소우기는 지금 이렇게 한 명과 한 마리 앞에 서있다.

 "그래, 작위적이지"

 그대로 놔두면, 히로는 그 양을 틀림없이 달로 돌려보냈겠지. 만들어진 양은, 그다지 움직이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 히로의 실력과 아스트라M44로 충분할만큼. 확실히 여기 양을 히로에게 쏘도록 생각은 해봤지만, 그 양으로는 안 된다.

 "그 양은, 좀 더 방치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야"

 "어째서?"

 한니발이 반문하기 전에, 히로가 말을 꺼낸다. 소우기는 자신을 올려보는 히로의 얼굴을 다시 보며, 아주 약간 동요했다.

 "어째서, 양을 방치하는 거야?"

 망양하는 표정. 히로를 표현하는데 가장 어울리는 말이, 지금은 해당되지 않았다. 소우기를 향해 묻는 히로의 얼굴은, 평소의 머엉한 얼굴이다. 하지만 그 눈 속에는, 어딘가 쓸쓸한 빛을 띄고 있었다.

 이 바보에게도, 쓸쓸함이라는 감정이 있는 걸까. 그런 당연한 생각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할만큼, 히로가 보여주는 감정의 색은 극단적이었다. 이른바 부정적인 감정이 결여되어있는 히로에게, 이런 얼굴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이구나, 라고 당연한 일을 소우기는 느꼈다. 소우기에게 있어서 히로는 끝없는 바보이며, 인간이라기보다 동물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세삼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인간다운 얼굴을 한다는 점에서 놀랐다.

 "...이 테마파크에는, 꽤 많은 잔재가 흩뿌려져있어. 잔재의 설명은 아직 안했던가. 잔재란 사람의 감정이 발산됐을 때 남는 덩어리야.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뿌려져있지. 에테르도 영적물질도 없는 이건 기본적으로는 무해해. 잔재가 너무 많으면 잔재들끼리 뭉쳐버리지. 잔재끼리 뭉치기만 한다면 상관없지만, 잔재에 에테르가 달라붙으면 큰일이 되버려"

 히로는 묵묵히 듣는다. 정말로 알기는 하나? 하는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히로의 얼굴이 평소와 달리 진지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분탓이겠지만. 이 바보가 무언가에 대해 진지해질 때가 있을까 생각한다.

 "잔재는 어디에도 흘러다녀. 에테르와 융합한 잔재는 영적물질이 되며, 양은 그것들을 흡수하며 점점 커지지. 너무 커진 양은 이미 양이 아닌 늑대가 된다....만, 과연 늑대까지 기다리면 의뢰에 어긋나지. 그러니까, 해가 되지 않는 정도의 크기가 될 때까지 양을 방치할 거야. 너무 많은 잔재는 이런 때 정리하는 편이 좋아. 잔재 자체는 아르케부스가 통하지 않으니까. 해가 없다고 방치하면 나중에 큰일이거든"

 왜일까. 평소보다 입이 잘 돈다. 설명하고있기 때문인가. 지금까지 이 바보를 가르치기 위해 설명을 해왔지만, 오늘만큼 물흐르듯 부드럽게, 그리고 빠르지는 않았다.

 "즉"

 이해했나, 라고 소우기가 말하기 전에 히로가 말을 꺼냈다.

 "벼룩이 잔뜩 있는 방에, 벼룩을 한마리씩 죽이는 게 아니라, 방에 고양이를 넣어서, 고양이한테 벼룩이 달라붙게 하고 고양이째로 죽이는 거랑 비슷한 거구나"

 굉장히 극단적인 예시에, 소우기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 에토우 히로라는 바보의 입에서 '죽인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사실에, 어째선지 충격을 받았다. 히로가 생생한 단어를 입에 남는 건 최근 2개월 사이에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는데.

 "...다르다고 하면 다르지만, 그런 해석도 문제 없어"

 "응, 미시마 씨가 말하고 싶은 건 대충 알겠어, 고마워"

 아까까지의 표정과 다르게, 미소를 보내는 히로에게 소우기는 멈칫했다. 평소의 헤실헤실한 미소와는 살짝 다른, 상쾌함이 넘치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래서, 미시마 씨가 있으니까 이거 쏴도 되지?"

 "......뭐라고?"

 점퍼 위쪽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퐁퐁 두들기며 히로는 아까의 미소 그대로 소우기에게 말한다.


 "그 검은 양, 쏘고 올게"


 잠깐 산책좀 하고 올게. 그런 가벼운 말투로 내뱉는 말에, 소우기는 순간 멍해진 자신을 볼품없다고 생각했다.

 "안 돼"

 당연하다. 모처럼 이 테마파크의 잔재를 대량으로 청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갑자기 없애버린다니 말도 안 된다. 잔재를 정리하는 행위는 의뢰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잔재를 방치하면 또 양이 발생했을 때의 좋은 먹이가 된다. 뿌리를 뽑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정리해둬야만 한다.

 그런데도, 이 바보는 듣지를 않는다.

 "안 된다고 해도 갈 거야"

 양 사냥에 극단적으로 되주는 모습은 좋다. 하지만, 자신이 하려는 일을 방해받는다면 슈퍼 민폐다. 그러니 소우기는 무언으로 리졸버를 뽑아 히로의 발을 겨두고 위협 사격으로 한 발 쐈다. 아르케부스의 발포음은, 영수가 흐르지 않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으니 문제없다.

 히로는, 자신의 발에 시선을 내리고 육식을 연다.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맞추려고 한다면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을 히로는 무의식중에 이해했다.

 (정말이지, 미시마 씨는 꽤 난폭하군. 그렇게 다혈질이면 저격수로서 대성하지 못한다고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내 기분탓인가?)

 한니발이 벤치에서 내려와 히로의 발치에 선다. 아무래도 이 바보 앞에서는 화를 내기 쉬워지는 경우가 많다. 감정을 좀 더 억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 낫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이 바보를 어떻게 할 필요가 있다.

 "발등을 쏘겠어. 걷기 힘들어질걸"

 총구를 말대로 히로의 발로 옮긴다. 하지만, 과연 이 말은 실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소우기도 알고 있었다. 인간에게 아르케부스 총알을 박아넣는 일 따위. 총알을 일부러 스치게 해서 에테르를 뽑아내는 일도, 개념있는 소울 언더 테이커라면 결코 하지 않는다. 자신은 상식에서 살짝 떨어져있기 때문에 별 상관 없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인간에게 직격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건 싫은걸"

 아아, 또 이 얼굴로 웃는다, 이녀석. 대체 이녀석은, 자신이 이용하기 위해 여러가지 가르쳤는데, 갑자기 이러다니. 바보라고 생각해서 꽤 얕봤다고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일단 다른 방향에서 괴수를 시험해보도록 할까.

 "어째서, 너는 양을 쏘러 가려는 거지"

 "도와달라고, 그 양이 말했어. 그리고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보이니까"

 강을 바라볼 때, 히로의 에테르에 직접 전해진 목소리. 도와줘, 라는 굉장히 괴로워보이는 목소리. 아, 저 괴로움을 자신은 아마도 알고있다. 어째선지는 모르지만, 분명 알고있다.

 "......이유는 그뿐인가?"

 "그뿐이야"

 왠지 최근, 이런 질답을 했던 기억이 든다. 빵긋 웃으며 가늘게 늘어지는 히로의 눈과, 소우기의 시선이 맞는다. 히로는 언제나 소우기가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건지 몰랐다. 그저 시마타로랑 닮은 눈을 가진 그는, 역시 시마타로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무뚝뚝해보이고, 자기 이외의 존재를 모두 부정하는 듯한, 그런 주제에 주위의 움직임에 민감해서 신경질적이고, 얼굴을 씻기도 귀찮아하는 고양이.

 "너는, 도움을 요청받으면, 누구라도 도와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그건 무리야.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이 있고, 가능한 일 중에서도 하고 싶은 일이랑 하기 싫은 일이 있지. 그래서, 나는 양을 도와줄 수 있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아무 문제도 없잖아?"

 "내 의견을 무시하지 마. 그냥 가만히 놔두라는 게 아니야, 달로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거야"

 소우기는 자기 말투가 살짝 강해졌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생각해보면 이건 이녀석이랑 나눈 첫 대화다. 지금까지는 그냥 이 바보를 추궁하거나, 일방적으로 설명하거나, 이녀석이 물어보는 질문들에 대답할 뿐이었다. 그저 일방적인 관계.

 그리고, 가족들조차 사무적인 대화밖에 하지 않는 소우기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오랜만에 제대로된 회화였다.

 "그치만, 양이 괴로워했다구. 괴로운 건 아프고 고통스러워. 어차피 달로 돌려보낸다면 빠른 편이 좋다구. 죽어서까지 괴로워하는 건 싫잖아. 괴롭거나 아프거나 하는 것들은 살아있을 때로 충분하지 않을까"

 바보 주제에

 이녀석은 바보 주제에,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미시마 씨가 하고 싶어하는 일도 알겠어. 여름방학 숙제라던가, 8월 31일에 몰아서 하버리잖아. 하지만, 사실은 매일 하는 편이 좋다구? 그야 여기 매일 오지는 못하겠지만, 가끔이라면 분명 올 수 있으니까, 지금은 양을 달로 돌려보내도 된다고 생각해. 안 좋더라도 하겠지만"

 "그런가"

 쌍방의 의견은 제시되어있다. 그리고 그 두가지가 양립할 수는 없다. 소우기가 얼마나 말을 늘어놓더라도, 히로는 결코 물러나지 않겠지. 발등을 쏘아서 움직이지 못하게라도 하지 않는 한은.

 (여기는 우선, 네가 양보해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 둘을 조용히 지켜보단 한니발이, 소우기의 발치에 다가와 그를 올려본다.

 (네가 하는 말도 틀리진 않았어. 이렇게 사람이 많은 장고는 잔재가 많이 쌓이지. 양이 태어나지만 않으면 잔재는 무해하지만, 한 번 양이 태어나면 해로운 녀석으로 변해버려. 조금은 정리해두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뭐 여기는 나를 봐서라도 한 번만 양보해주면 좋겠어)

 거기까지 말하고, 한니발은 소우기의 발 위에 자신의 오른쪽 앞발을 올려둔다.

 (히로가 양과 대치하면, 영적물질이나 잔재를 끌어들이지. 평범하게 달로 돌려보내기보다는 청소가 될테니까, 지금은 그녀에게 하도록 해줘)

 한니발이 육식으로 직접 말하는 그 내용에, 소우기는 무표정으로 반응했다. '악령의 눈'의 힘은, 그녀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항상 조용히 발동되고 있다. 하지만 한니발이 바래서 그 힘을 쓴다면, 작은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더욱 큰 소용돌이가 되어, 에테르도 영적물질도 잔재도, 그녀에게 끌어당겨진다. 설탕에 달라붙는 개미떼처럼.

 보다 많은 양과, 양의 토양이 되는 영적물질이나 잔재를 정리하기가 소우기의 바램이다. 그러니 한니발이 그 힘을 발휘해주겠다고 말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영적물질이나 잔재를 한 장소에 모아서 양과 동일화한다면, 양은 보다 커지고, 보다 공격적으로 급성장하겠지. 막 태어난 양을 쏘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다. 아직 실전 경험이 없는 히로에게 시키기에는 위험하다. 토악질 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괜찮겠지, 해봐, 죽지 않는 선에서)

 소우기는 그것만 말하고, 한니발이 앞발을 올려둔 발을 뺐다.

 "나는 이제 모르니까, 적당히 하라고"

 "응, 열심히 할게. 고마워. 미안해, 미시마 씨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방해해서"

 히로는 기세 좋게 일어서서, 소우기에게 고개를 푹 숙인다.

 "잠깐 배 한 번 더 타서 양이랑 만나고 올테니까... 아, 그 전에 옷쨩한테 말해둬야지. 그럼, 미시마 씨 다음에 봐!"

 그렇게 말하고 웃는 히로의 얼굴은, 소우기가 잘 아는 얼빠진 미소였다. 소우기에게 손을 과장되게 흔드는 그 어깨 위로 한니발이 뛰어오른다. 그 모습을 보며, 소우기는 방금까지 히로가 앉아있던 벤치에 앉는다.

 움직이기 전에, 준비가 필요했다.

***

 한 번 더 배타고 올게. 손수건을 빨고, 혼잡한 화장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겨우 끝났나 했더니 히로가 또 멍청한 말을 한다. 바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녀석은. 내심 여러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크게 한숨만 쉰다.

 "아까 토했으니까 배고파졌을 거 아니야. 밥 먹고 하자"

 "아웅ㅡ 어쩐지 배가 고프더니... 하지만, 그, 지금 당장 타고 싶다구. 아까 제대로 못봤으니까. 옷쨩은 요 근처에서 기다려줘. 기다리지 못하면 먼저 도시락 먹구"

 그렇게 말하며 싱글싱글 웃는 히로의 볼을, 아케미는 오른손으로 쭈욱 잡아당긴다. 부드러운 그 볼을 만지작만지작거려도, 히로는 웃은채로 대답한다

 "오향 아하아"

 "...뭐 됏어. 빨리 갔다 오라구, 나는 여기 근처에 앉아있을 테니까"

 잡고있던 볼을 놓아주자 히로는 가볍게 그 부분을 문지르고, 아케미에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가버렸다.

 뭐, 히로의 행동이란 저런 거니까. 모처럼 프리패스를 받았으니 좋아하는 기구를 좋을만큼 타면 된다. 같이 어울리는 편이 좋았겠지만, 역시 배가 고파질 테니까 별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히로가 돌아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적당한 벤치를 발견한 아케미였지만, 거기 앉아있는 소년을 보고 눈썹을 치켜떴다. 잊을 수 없다, 작년 히로의 집앞에서 만난 수상쩍은 녀석이다. 확실히 그때도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었는데, 지금도 한쪽옆에 놓여있다. 이녀석의 학교도 졸업 소풍으로 온 걸지도 모른다. 혼자인 모습을 보아하니 친구가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은 짧았으나, 수상쩍은 녀석은 금방 일어나서 걷기 시작한다. 굉장히 느린 걸음걸이다. 몸이라도 안 좋은 걸까, 정말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옮긴다.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약간 뿐이다. 히로랑 아는 사이일지도 모르지만, 그런건 알 바 아니었다.

 소년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기다리고, 아케미는 그가 방금까지 앉아있던 벤치에 앉는다.

 빨리 히로가 돌아오면 좋겠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자, 오늘도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

 히로는 비교적 사람이 없는 후부갑판에 선다.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이미 뽑아둔 아스트라M44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고, 손을 배 앞에 둔다. 소우기에게 여러번이나 배운 자세다. 그 어깨 위에는 한니발이 올라타있다.

 (히로, 정말 괜찮겠어?)

 여기까지 히로를 데려온 당사자인데, 뭘 이제와서 걱정하는 걸까. 자신은 히로의 실력이라도 간단히 되돌릴 수 있는 양을 일부러 강하고 위험한 존재로 만들어 히로의 앞에 출현시켜야 한다. 그런 사실을 히로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니발은 물어본다.

 그런 이유로

 도와달라고 들었다고, 그리고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어처구니 없을만큼 단순하고, 시시한 이유다.

 (위험하다구, 아까는 토악질로 끝났지만,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네가)

 혹시, 히로는 자기자신에게 위험이 미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괴롭더라도 어차피 토악질의 연장일 뿐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엄청난 문제다.

 (응)

 그런 한니발에게 히로가 웃어보인다.

 (잘못하면 죽지만, 잘못하지 않으면 죽지 않잖아? 괜찮아 괜찮아. 아마 분명 괜찮아)

 (자신있어?)

 (없어)

 (...너는, 죽는 게 무섭지 않아?)

 (무서워)

 (네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을 그만두면, 죽지 않아)

 (그렇지, 하지만 그만두면 양을 구할 수 없잖아)

 (양을 구해서, 너에게 무슨 이득이 있지?)

 (양을 도울 수 있어)

 (단지 그것뿐, 단지 그런 자기만족을 위해, 너는 죽을 위험을 범하겠다고?)

 (괜찮아ㅡ)

 (어째서 괜찮다고 말할 수 있지, 그 근거는 대체 뭐야)

 (그냥)

 어째서 한니발이나 소우기가 이렇게 신경쓰는 걸까. 위험하니까, 죽을지도 모르니까. 둘 다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다. 기쁘다. 부모님과 아케미 이외에게 걱정받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후미카는 최근 전혀 걱정해주지 않아서 쓸쓸하다.

 죽으면 아플 것 같으니까, 죽기 싫고 죽는 건 무섭다. 그래도 히로는, 그 검은 양을 놔둘 수가 없었다.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가지 못하는 건 괴로우니까.

 그런 이유만으로 뭐가 부족하다는 걸까. 인간에게는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이 있다. 가능한 일이고, 자신이 하고 싶어한다면, 하면 된다. 그러니 자신은 바보인 거겠지, 라고 히로는 생각한다. 불가능한 일이고, 자신이 하기 싫어한다면, 자신은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각오는 됐지?)

 (호들갑스러운걸, 괜찮아ㅡ)

 (그렇지, 각오를 해야하는 건 내 쪽인가)

 돌아가지 못하는 혼을 해방하는 길로의 첫걸음이 될지도 모르니까.

 (지금부터 약 30초 후, 네가 쏴야하는 양이 나타날 거야. 준비해놔)

 (녜이)

 히로가 해머를 조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한니발은 히로의 어깨에서 내려와 벌린 다리 사이에 앉았다.

 (달이여, 울부짖는 혼에게 안식을. 애처로운 혼에게 인도를)

 조용한 한니발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히로는 육식을 열고, 멍하니 주변을 느낀다. 가족끼리 왔다던가 친구들끼리 혹은 커플, 그런 인간들의 빨간색이 보이고, 배의 회색이 보이고.

 어딘가 평화로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지만, 갑자기 피부에 닿는 분위기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피부가 아닌, 혼의 혈수 표면을 슬금슬금 훑고가는 듯한, 어딘가 기분나쁜 분위기.

 하늘을 올려보자, 그곳에는 빨간색도 파란색도 아닌, 그저 검은색 뿐이었다. 검은 운하처럼 사방팔방에서 모이려 들고있다. 자신들이 있는, 이곳으로.

 (온다, 다른 인간들의 에테르가 섞이기 시작했어)

 육식을 열어둔 채로 주변 사람들의 에테르 색을 본다. 아까 봤던 때보다 빨간색이 옅어지고, '머리아파...', '토할것같아...' 등등의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히로도 조금 괴롭다. 토악질은 없지만, 팔이 아프다. 찌릿찌릿 저려오는 통각이, 계속해서 덮쳐온다.

 (왔다)

 난간 건너편, 강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확실히 아까와 같은 검은 슬라임이었다. 하지만 크기가 매우 달랐다. 흐물흐물한 움직임으로 갑판에 올라온 그것은, 지금은 2미터 가까이 거대해져있었다. 그 성장은 아직 끝나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은 운하가 검은 슬라임에게 빨려들어갈 때마다 점점 크기가 커져간다. 몸을 불리는 그것은 높이 3미트에 가까운 작은 산이 되어, 히로와는 4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육식으로 본 그것은, 그야말로 칠흑이었다. 확실히 이 안에 단 하나의 빨간색이 있으며, 그걸 쏘면 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까까지 바퀴벌레의 등딱지같이 보였는데, 지금은 흑요석처럼 어딘가 아름답게 보이는 구석도 있다. 하지만 흐물흐물하게 파도치는 표면을 보니, 바퀴벌레도 흑요석도 아닌, 역시 검은 젤리를 연상케한다. 아까보다 훨씬 맛없어보이지만.

 (히로, 이제 쏴도 좋아, 이 거리에서 저 크기라면, 너라도 충분히 맞출 수 있어)

 한니발의 어딘가 절박한 목소리에, 히로는 아스트라M44를 천천히 들어올려 조준한다. 하지만 한니발의 기대에 반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히로!)

 (들리지 않아, 하루 씨. 아까는 들렸던, 저 검은 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 이상 없을만큼 육식을 펼쳐서 저 양을 느끼고 있는데, 아까는 들렸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도와달라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 말이 들렸기에, 자신은 지금 여기에 있는건데

 (저건 아까까지의 양과 닮았지만 달라! 저만큼 커지면 원형이었던 에테르의 의사는 이제 없어! 저게 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런건 집어삼)

 한니발의 목소리는 도중에 끊겼다. 그 거대한 몸체가 한층 더 커졌다고 생각했더니, 조용하게, 하지만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전진하기 시작해, 그 검은 몸의 일부로 히로가 똑바로 쥐고있던 팔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히로, 라는 한니발의 비통한 목소리와 동시에, 느껴진 것이 있었다. 팔을 감싸는 이 검은 녀석. 이 검은 녀석은, 살아있는 자신이 싫고 싫고 너무나도 싫어서, 자신의 혼을 고통스럽게 만들려는 사실이.

 아아, 아프다. 너무나도 아프다. 빨래판으로 팔을 절단하려는 것만큼 아프다. 새빨간 자신의 혼이, 잘려나가는 가쓰오부시처럼 팟 하며 흩날려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느껴진 것은, 아까 배에 탔을 때 틀림없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목소리.



 떨어져
 떨어져
 같이 떨어져

 떨어져 주지 않겠다면
 데려다줘

 떨어져 주지 않겠다면
 떨어트리지 말아줘

 도와줘
 도와줘!



 아아, 그랬구나
 그건 굉장히 슬프지



 들리는 총성은 5발. 그 뿐이었다. 귀가 너무 아파서 무심결에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엎드린 한니발이었지만, 지금 그런 고양이 흉내를 낼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떠올리고 얼굴을 들어올린다.

 물이 떨어지듯 팔을 내린 히로가 서있는 것만으로, 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핵에 맞지 않았다면 이렇게 깔끔하게 양이 사라지지는 않으므로, 히로가 제대로 막아줬구나 하고 생각했다. 일반 손님에게 영향이 그리 크게 미치지 않고 끝나서 다행이다.

 (히로)

 "우오앙ㅡ..."

 이름을 불린 히로는, 한니발을 돌아본다. 웃고 있지 않았다. 멍한 얼굴도 아니었다. 그저 무표정이었다. 그 무표정 안에, 단 하나의 감정이 드러나있었다.

 (왜, 울고 있는 거야, 히로)

 그렁그렁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히로는, 오른손으로 자기 얼굴을 만져보더니 처음으로 자신이 울고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같다

 (아아, 울고있네, 나)

 떨리는 왼손을 올려서, 히로는 아스트라M44를 천천히 홀스터에 돌려놓는다. 양손부터 팔꿈치까지의 에테르가, 옅지만 살짝 패여있다. 에테르의 유출은 금방 멎었으니, 중상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으로 예를 들자면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이다.

 (아프니까, 우는 건가)

 한니발은 히로의 어깨에 올라가, 그 얼굴을 지긋이 본다. 히로는 눈물을 점퍼 소매로 마구 닦아내고 무표정도 지워낸다.

 멍한 얼굴로 미소짓는다

 (분명, 슬펐으니까 운 거야)

 (뭐가 슬펐는지 물어봐도 될까?)

 (저 양 있지, 아기였어. 이 강에 떨어져서 죽은)

 (그런가)

 (근데있지, 떨어진 게 아니야. 떨어트려진 거야. 게다가 떨어트린 사람이)

 (히로)

 한니발은 히로가 마지막까지 말하지 못하게 막았다.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고, 히로에게 말하게 할 필요도 없었다

 (여러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너는 방황하는 양을 달로 돌려보냈어. 이건 칭찬해도 좋다구)

 (그런걸까...)

 히로는 눈가에 약간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바라본다.

 "예쁜 하늘이다아"

***

 라이플을 기타 케이스에 넣고, 소우기는 정문을 향해 걸어간다. 양이 히로를 집어삼키려 했을 때는, 트리거에 걸어둔 손가락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히로는 확실히 양을 달로 돌려보냈다. 솔직히, 방법은 서툴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쏴야할 때는 쏘지 않고, 스스로의 에테르를 깎고나서야 영거리 사격을 쏘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모처럼 사격을 연습시켰는데, 전혀 의미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안도하는 자신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 말도 가르쳐야하는 것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안그래도 많았는데, 오늘로써 더욱 늘어났다.

 그렇지만 지금은, 놔두도록 하자. 다음번에 또, 여러 말을 해두자. 이번 보수는 조금정도 저녀석에게 떼어주자.

 기타 케이스를 메고 걸어가는 소우기였지만,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히로가 있었다. 어깨 위에는 한니발이 있고, 그 옆에는 언젠가 히로네 집앞에서 만났던 소녀가 있고, 굉장히 재미없다는 듯이 자신을 보고있다. 히로가 크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지만, 무시하고 다시 걸어간다.

 문득, 풍선을 잃어버린 사실을 이제와서지만 떠올리고, 하늘을 바라본다. 물론 풍선이 날아다니는 일은 없었지만, 올려다본 하늘이 평소보다 아름답게 보여서, 소우기는 왠지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이렇게나.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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