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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5일 수요일

단편 라노벨 번역 : 그라샤치 제 1장 바다의 만남에 로망은 있거나 없거나

 괴롭다, 차갑다.

 그 외에, 하루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사고가 돌아가는지 멈췄는지조차도 수상하다. 갑자기 덮쳐온 바닷물을 입과 코로 들이마셔버린 하루나는, 호흡을 못하는 괴로움과 자신의 몸을 덮치는 파도에게 농락당해 아까부터 혼란중이다.

 몸은 마셔버린 바닷물을 몰아내려고 반응하지만, 그녀 주변에는 몰아낸 자리에 들여와야 할 공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바다 뿐이다.

 헤엄치기도 잊고, 하루나는 아무 생각 없이 손발만 움직인다. 그녀가 수영복이라도 입고 있었다면, 그런 헛된 동작이라도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하루나가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바닷물을 잔뜩 먹어서 무거워진 의복과, 끈을 동여메서 간단히 벗을 수 없는 스니커였다. 

 (오, 올라가야...!)

 겨우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별로 깊지는 않다, 눈을 뜨고 위를 보자 밝은 해면이 보인다. 하지만, 그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헤엄치기란 지금의 하루나에게는 불가능했다.

 떠오르기 위해 물을 헤치는 손은, 혼신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느릿느릿하다. 수면으로 뻗은 자신의 팔이, 검게 일렁인다. 뇌로 가는 산소가 부족해진 탓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잠긴다. 모든것이.

 (...할아버지, 미안...)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처음으로 뇌리를 스쳐간 것은 할아버지였다. 할머니를 교통사고로 잃고나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서도 단번에 늙어버린 엄격한 할아버지.

 '...너희들은, 나보다 오래 살거라'

 그런 말을 떠올리면서, 하루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각오를 굳힌 탓인지, 그녀의 몸은 그저 가라앉기만 할 뿐이다. 의식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 직전, 하루나는 아까까지 각오하고 있던 죽음을 잊었다.

 죽고 싶지 않아.

 손을 뻗는다. 위로, 위로, 손을 뻗는다.

 ...손. 이 손으로 무언가를 잡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아아, 오카리나가, 없어.


 손에 지니고 있던 오카리나. 그 손이 지금 잡고있는 것은, 옅은 물 뿐이다.

 그랬지. 오카리나다...

***

 '오카리나라니, 구려ㅡ!'

 어렸을 적에 들은 말 중, 아키츠시마 하루나가 가장 상처받은 말이었다. 8살이 되었을 때, 근처 공원에서 오카리나 연습을 하고 있던 때에, 지나가던 동급생 남자가 한 말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만은 마음에 남아있지만, 말한 상대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카리나를 선물해 준 할머니에게

 '왜 오카리나같은 걸 준 거야? 더 멋진 악기였으면 좋았을텐데!'

 같은 심한 말을 해버렸다는 사실은 잘 기억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슬픈 듯이 웃으며,

 '오카리나가 싫어졌다면 불지 않아도 된단다'

 라고 대답한 일도 기억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8년, 올해로 16살이 된 아키츠시마 하루나는 오카리나를 그만두지 않았다. 할머니가 남기신 한 권의 낡은 교본만을 보며 적당한 연습을 계속한 하루나의 오카리나는, 어디까지나 자기식이었다. 자신의 연주가 대단한지 서툰지, 하루나는 잘 알지 못했다.

 사실은, 잘 불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사후 어머니가 찾아준 오카리나 교실도 거절하고, 그저 독학을 계속해왔으니까.

 "엄마ㅡ 시노 산책 시키면서 잠깐 불고 올게ㅡ"

 오카리나가 든 케이스를 옆구리에 낀 하루나는, 현관에 앉아서 스니커를 신는다. 끈이 살짝 느슨해진 사실을 깨닫고, 끈을 다시 동여멘다. 최근에 느슨해진 채로 자전거를 타다가 훌러덩 벗겨져버렸기 때문이다.

 "누나, 연습하러가?"

 등뒤에서 갑자기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니, 2살 밑의 남동생인 타카오가 무뚝뚝한 얼굴로 서있었다.

 "타카오, 기척 좀 내. 깜짝놀랐잖아"

 어느샌가 등 뒤에 서있는 동생을, 하루나는 귀염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하루나네 동생 귀엽네ㅡ'라고 자주 듣는다. 귀여운가? 하며 하루나는 무심코 타카오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본다. 눈썹이 살짝 두껍고, 이목구비는 꽤 제대로고, 체격은 약간 가느다랗다고 생각되는데, 이게 세계 표준으로 '귀엽다'고 분류되는가보다. 누나인 자신이 봐도 결코 못난 동생은 아니지만.

 "누나, 뭘 사람 얼굴을 뚫어져라 보냐"

 "네가 귀여운지 안 귀여운지 생각하고 있었어. 백보 양보해도 겉모습은 귀엽다고 해도 좋지만, 귀염성은 절대 없구나, 절대로. 아, 어렸을 때에는 좀 귀여웠는데"

 "누나보다 내가 더 크잖아. 게다가 난 이제부터 더 커지겠지만, 누나는 더 이상 커지지 않을테고"

 "조금 더 커질 거라구... 160은 됐으면 좋겠는걸. 3센치 정도만 더, 지금부터 클 거라구"

 하루나는 벌써 키가 160을 넘은 타카오를 보며, '무ㅡ'라고 살짝 웅얼거린다.

 "뭐 됐어. 귀염성없는 동생이라고 듣는 것보단 귀엽다고 듣는 편이 좋으니까"

 지나가는 말이라곤 해도, 가족이 칭찬받아서 기분 나쁘지는 않다. 그 누나인 자신도 의외로 귀엽잖아, 라고 자부심을 부리게 되버리는 점이 난점이지만. 거기까지 생각하고 '동생 귀엽네ㅡ 하루나도 얌전하고, 안떠들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개구리같은 목소리만 내지 않으면, 아마도 귀여운 편이지ㅡ'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정말이지 실례되는 말 아닌지.

 "어렸을 때는 자주 남매가 꼭 닮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닮지 않았고. ...아, 눈매는 살짝 닮았을지도. 그리고 그렇게 무뚝뚝한 얼굴은, 내가 토라졌을 때 얼굴이랑 닮은 기분도 들고"

 하루나와 타카오의 얼굴에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콧날이 서있고, 선명한 눈썹이나 가느다란 눈매 등은, 확실히 많이 닮았다. 하지만 하루나가 자아내는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타카오에게는 전혀 없었다. 지금도 수상쩍은 표정을 하는 타카오와 하루나를 비교하고, 금방 남매라고 눈치채는 사람은 그리 없겠지.

 "언제부터 우리들, 이렇게 닮지 않게 되버렸을까"

 타카오의 얼굴을 보면서, 하루나는 자기 볼에 손을 댄다. 그런 누나를, 동생은 차갑게 내려본다.

 "왜 얼굴 찌푸리고 있는 거야. 시노 산책 겸 연습할 뿐이야. 산책하는 겸이라구 겸"

 하루나는, 현관에 걸려있는 산책용 끈을 확인했다. 아키츠시마 가문의 애완견 시노의 산책은 하루나와 타카오, 그리고 할아버지의 역할이지만, 엄밀한 당번제는 아니다. 가고 싶어진 사람이 간다는 꽤나 적당한 룰이었다.

 "누나, 오카리나 연습할 때는 항상 카라키하마까지 갔잖아. 시노는 모래도 바다도 싫어하는데, 데려갈 거야?"

 "뭐야, 오늘따라 따져대네... 타카오가 시노 산책 시켜주고 싶어?"

 산책 겸 연습, 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이 동생은. 연습 겸 산책, 이라고 말하면 납득하려나.

 "아니, 굳이 따지자면 누나가 오카리나 연습하러 카라키하마까지 가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근처에서 하라구"

 "뭐야... 애초에 근처에서 하면 부끄럽잖아"

 카라키하마란, 아키츠시마네 집에서 자전거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자근 모래언덕이다. 큰 마른 나무가 물가에 굴러다니고 있으며, 하루나는 어린 시절에 '마른 나무가 있으니까 카레키하마*라고 부르는구나'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카레키하마'가 아닌 '카라키하마'라고 지적한 사람은 다른이 아닌 타카오였다고 떠올리자, 하루나는 무심코 뾰로통한 얼굴이 되버렸다.

* 카레키(枯れ木) = 마른 나무

 "가끔 행방불명되는 사람이 그 근처에 떠오른다는 이야기가 있잖아. 3, 4년 전에도 한 번 있었잖아 기억 안 나?"

 그건 하루나도 기억한다.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그게 카라키하마에 가면 안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지. 자신은 행방불명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될 예정따윈 당연히 없다.

 "그거랑, 내가 카라키하마까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누나가, 바다에 빠져서 행방불명이 되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하루나는 눈을 꿈뻑이면서 동생을 봤다. 여전히 전혀 웃지 않고 무뚝뚝한 얼굴로 하루나를 내려보고있다. 농담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저기있지, 잠깐 걸으면서 주저앉기는 하겠지만, 일부러 이런 계절에 바다에 들어갈 리 없잖아. 애초에 거기는 별로 이쁘지 않으니까, 여름이라도 헤엄칠 마음이 별로 들지도 않는걸"

 "누나는 평소에도 지갑 잃어버리거나 핸드폰 떨어트리거나 양말 반대로 신거나 블라우스 단추도 잘못 잠구거나 상하권으로 되어있는 책을 하권만 두 권 사거나 시노가 집 뒤에서 자고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시노가 없다면서 맨발로 달려나가는 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쉴 틈 없이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말투로 술술 쏟아내는 타카오에게, 하루나는 찍소리도 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 동생이 말하는 것들은, 전부 사실이니까.

 확실히 자신은 약간 당황하기 쉬운 타입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깜빡 잊는 일도 많다. 그렇다고 이런 계절에 바다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럼, 타카오는 나한테 평생 바다에 가지 말라는 거야? 애초에 그러면 자동차 사고가 나니까 외출하지 말라는 결론이 되버리는걸"

 "거기까지 말하지는 않지만, 제발 조심하라구. 누나는 자신이 약간 당황하기 쉽고 약간 덜렁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는 약간이 아니라 엄청 당황하는 데다가 엄청 덜렁이니까. 일본 덜렁이 랭킹 10위 안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구"

 심한 말이다. 바보 취급하는 표정이나 말투로 드렁ㅆ다면, 하루나도 다소 피꺼솟했겠지만, 무표정으로 책읽듯이 말하니 그럴 기분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이래저래 말해도, 타카오가 자신이나 가족을 소중히 생각한다고 하루나도 나름대로 알고는 있다. 말투나 표정이 좀 더 부드러웠다면, 누나를 걱정하는 상냥한 동생이라고 감동했을텐데, 라고 하루나는 한숨쉰다.

 "...걱정할거면, 좀 더 단어 선정에 주의하라구. 애초에 일본 덜렁이 랭킹같은 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그냥 무심결에 생각난 랭킹이야. 1위랑 2위는, 덜렁이 하치베랑 사자에 씨가 언제나 쟁탈전을 벌이고 있지"

 농담이라면 좀 더 농담다운 얼굴로 말하면 좋을텐데, 너무 진지한 얼굴이라 웃기 힘들다.

 "좀 더 웃으라구, 너는. 학교에서는 그렇게 실실 쪼개면서"

 "밖이니까 웃는 거야. 가족끼리 그런거 신경쓰면 지치고, 필요도 없잖아. 그럼 자동차에 치이거나 바다에 빠지지 말고, 오카리나만 불고 시노 산책 까먹지 말고 돌아오라고. 오늘은 바람 강하다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타카오는 거실로 들어가버렸다.

 "뭐ㅡ야, 정말... 귀염성 없더니까..."

 다시 산책끈이랑 오카리나가 든 케이스를 고쳐들고, 하루나는 산책을 나가기 위해 일어선다. 문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때, 거실에서 타카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나, 핸드폰이랑 지갑 챙겼어?"

 "...금방 돌아올 거고, 뭐 살 예정도 없어! 잊은 게 아니라, 두고 가는 거라구! 그럼 다녀올게!"

 "즉, 까먹은 거로군"

 타카오의 그 말은, 하루나가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에 섞여서 그녀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

 (입학식까지 앞으로 1주일이네ㅡ)

 애완견 시노를 자전거 앞바구니에 싣고, 하루나는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카라키하마는 큰길로 가면 20분 정도 걸리지만, 시노를 태우고 있으니 뒷길로 간다.

 3월이 끝나기 직전인 이 날은, 아직 살짝 춥게 느껴진다. 타카오의 말대로 바람이 약간 강하고, 순풍이 어깨에 닿을듯하게 하루나의 머리카락을 훑고 간다. 그래도 익숙한 풍경 속에는, 봄의 방문을 나타내는 표식이 몇가지 있었다. 그 중에 길가에 피어난 유채꽃을 발견하고, 하루나는 무심코 유채꽃 시금치가 먹고 싶어졌다.

 (내일, 엄마한테 부탁해서 반찬으로 해달라고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기분도 밝아질 것만 같다.

 "시노, 미안. 산책은 좀 있다가 하자"

 앞바구니에서 답답하다는 듯이 쑤셔박혀있던 시노는, 이름을 불리우자 하루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시노는, 할아버지가 반년 정도 전에 주워온 잡종 암캐다. 짧은 직모, 빨딱 선 귀 등의 특징으로 약간 큰 시바견이라고 착각받는 일도 있다. 주웠을 때는 신장 70센치 체중 10키로 정도였지만, 지금 보기에는 성장할 기색은 없어보인다. 수의사에 의하면, 생후 2년 정도 된 모양이다. 털색은 전체적으로 하얗지만, 등이나 머리, 귀의 일부는 옅은 갈색이다.

 (영리하지만, 상상했던 개랑은 꽤 다르네)

 손이나 앉아, 엎드려는 금방 배웠고, 찾아온 손님에게는 짖지만 격렬하게 짖어제끼지는 않는다. 몸을 씻을 때도 싫어하지 않고, 먹이를 가리지도 않는다. 얌전한 건 좋지만, 너무 얌전하다.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개겠지, 라는 게 아키츠시마 가족들의 총 의견이다. 원래 주인을 찾는 노력도 일단 해봤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시노ㅡ"

 그냥 불러봤는데, 이번엔 이쪽을 보기 않고 있다. 아까 그냥 불렀다는 것을 이해하고, 무시하는 걸까.

 "뭐ㅡ야, 시노도 참. 오늘은 10분 정도만 연습할 거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얌전히 기다려 줄거지?"

 역시 시노는 하루나를 보지 않고, 뒷발을 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불편한 앞바구니 안에서 생각하는대로 되지 않은 모양인지, 발만 올리고 끝났다.

***

 하루나가 태어난 곳은, 태평양에 인접한 한 마을이었다. 시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도심에 사는 친척들이 가끔 놀러올 때마다 '답이 없는 시골이군'이라고 말한다. 편의점이 걸어서 5분 이내에 없으니까, 라는 것이 그 이유인 듯하다. 5분 거리에는 있다, 라고 하루나는 반론하고 싶은 심정이다. 자전거를 전속력으로 달려서, 라는 전제가 붙지만.

 (시골... 그렇게 구석진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하루나가 가진 시골의 이미지란, 끝없이 논이 펼쳐지고 잡초가 무성한 숲 등이다. 이 마을에는, 그런 넓다란 논이나 숲은 없다. 공장이나 단지 쪽이 훨씬 눈에 띈다. 바다에 인접해있다곤 하지만 어업이나 항구가 그렇게 발달한 것도 아니고, 해수욕에 적합한 넓고 아름다운 해안도 없다. 관광지로써 성장할 테마파크나, 신사 불객도 없다. 희귀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마을이다.

 카라키하마는, 그런 마을의 지도에도 실려있지 않은 장소였다. 게재될만큼 크지 않아서 게재되는 의미도 없는, 작은 모래언덕이다. 바닷바람에 쓸려 표면이 엉망진창이 되버린 전장 10미터, 근처 2미터 정도에 마른 나무가 쓸데없이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어린애가 놀기에는 위험하니 철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결국 20년 이상 방치되고 있다. 하루나로서도, 이 마른 나무가 사라진다면 마음 한구석이 쓸쓸할 것이다. 만지면 금방 벗겨져 떨어질 것만같은 마른 표피에, 하루나는 손을 뻗을 듯 하면서도 결국 그만둔다.

 (처음에 왔던 때랑 비교해보면 이 나무도 꽤 작아진 기분인걸... 내가 자란 걸까)

 오늘의 가라키하마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 올 때 누가 있는 확률은, 거의 반반이긴 하지만. 물장난치는 부모와 자식들이거나, 개와 노는 청년들이거나, 하루나처럼 악기를 연주하러 오는 누군가이거나. 한 달에 2번 정도의 빈도로밖에 오지 않으므로, 여기에 오는 모든 사람을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좋ㅡ아, 분다ㅡ"

 목소리를 내서 기합을 넣고, 하루나는 케이스에서 꺼내두었던 오카리나를 쥔다. 도기로 만들어진 하얀 오카리나는, 8년 전과 비교하면 몇몇 상처가 꽤 생겨있었다. 소중히 다뤘는데도, 생각했던만큼 잘 되지 않았다.

 (아, 뎁히는 거 까먹었네)

 차가워진 오카리나에 급하게 따듯한 숨을 불어넣었더니, 온도의 차에 의해 내부에 물방울이 생겨버린다. 특히 추운 시기에는 주의해야한다.

 (정말이지 이렇다니깐, 타카오한테 덜렁이 랭킹에 들어도 화내지 못하네)

 카디건 아래에 오카리나를 넣고, 그대로 옆구리에 끼운다. 따듯하게 데우는 사이, 하루나는 무심코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평소에 비해 파도가 꽤 높아보이지만, 그래도 하루나가 서있는 곳까지 닿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고보니, 그 애는 건강하려나)

 2주일 쯤 전, 여기서 하루나는 어떤 만남을 가졌다.

 우쿨렐레를 지닌 소년과.

***

 "안녕, 오카리나 능숙하네"

 꽤나 친한척하는 애네, 라는 게 하루나가 그에게 느낀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나쁜 인상을 가진 건 아니었다. 별로 그의 미소가 상큼하고, 늘씬한 키랑 체격 치고는 분위기가 굉장히 따듯하고, 입은 옷이 하루나가 4월부터 다닐 고등학교 교복이었다는 점이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그가 품고있는 것이 우쿨렐라였기 때문이다. 일단, 멋있다고 말해도 될 외견의 그가 우쿨렐라를 안고있다는 점이, 굉장히 웃겨서 웃어버릴만큼.

 하지만, 하루나는 웃지 않았다. 지금 뿜어버리면, 그는 아마 '우쿨렐라를 비웃었다'라고 생각하겠지. 그런 경험은, 하루나에게도 있었다. 오카리나를 부는 것 만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놀림받은 경험이.

 그 경험은, 하루나를 조금이지만 상처입혔다. 자신이 같은 짓을 해선 안 된다. 하루나는 등을 제대로 펴고 극히 상냥하게

 "고마워요, 그쪽은 우쿨렐라 치러 오셨나요?"

 라고 되물었다. 그 반응이 너무나도 의외라서, 그는 눈을 꿈뻑이며 몇초간 침묵해버렸다. 그리고 다음에 그가 한 말은, '고마워'라는 하루나에게 있어서는 해석 불가능한 말이었다.

 "왜 고맙다는 말에 고맙다고?"

 무심코 경어를 잊은 하루나였지만, 겉보기에 나이차도 별로 나지 않아 보여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아니, 우쿨렐라를 웃지 않는 사람은 오랜만이라서. 나랑 별로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라"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구나. 하루나는 혼자 납득하고는, 그를 위로해주기 위해 뭔가 좋은 말을 하려했다.

 "어울린다던가 어울리지 않는다던가로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그야 네가 갑자기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좋은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파이프 오르간을 치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웃기 전에 놀랄 거라고 생각해"

 지당한 말이었다.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여버리는 하루나에게 추격타를 가하듯이,

 "재밌는 사람이네"

 라는 말을 한다.

 "...재밌는 사람이라 미안하네요"

 고개를 들고 반론한 하루나는, 소년의 미소를 봤다.

 방금전까지 봤던 모습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눈부시게 보이는 그 미소는, 분명 태양 때문이리라.

 그날은 구름낀 날이었으니까, 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

 그로부터, 그와 여러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악기에 대해, 잘하는 곡에 대해, 그리고 그와 같은 나이로, 4월부터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된 것도.

 '같은 반이면 좋겠네'

 그렇게 말하고 헤어진 그의 이름을 묻는 것도 까먹었고, 자신도 이름을 대기 까먹어서, 과연 덜렁이구나 라고 하루나도 생각했다. 하지만 덜렁이는 이름도 대지 않은 그도 샘샘이라고 치기로 했다.

 오늘 우연히도 만난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까지 운이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조금만 불고 금방 돌아가야지. 시노도 지루한 모양이고)

 현재 시노는, 둑 위에 세워둔 자전거의 안장에 메어둔 상태다. 얌전히 있지만, 애완견에게 눈을 떼는 일은 주인으로서 해선 안 되는 일이다. 그래도 하루나는 '시노라면 괜찮아, 저렇게 영리하고 얌전한걸'이라며 과신하고 있다.

 그 과신 아래, 순조롭게 끝난 오카리나를 넣으려던 때.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왕왕 거리는 귀여운 소리가 아닌, 그야말로 울부짖음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연속으로 격렬하게 포효하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놀라서 둑을 바라보자, 시노가 일어서 하루나를 향해 짖고 있었다. 미친듯이 울부짖는 시노의 기세에, 자전거가 굴러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쓰러지는 소리보다 훨씬 큰 울음소리를 계속 내는 시노 곁으로, 하루나는 서둘러 돌아가려 했다. 저렇게 짖어대는 시노는 처음 봤다. 무슨 큰일이 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서 하루나는 금방 돌아가지 못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바다 저편에서 살짝, 하지만 확실히 들려온 기묘한 소리가, 해명이 확실하게 울려버져 하루나의 귀에 닿았기 때문이다.

 (바람 소리 치고는 이상하네...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데, 이런 소리를 내는 짐승이 있었던가)

 그 소리가 신경쓰인 하루나는, 바다를 돌아봤다. 시노가 이상하게 짖어대는데도, 그런 '신경쓰이니까'라는 시시한 이유로, 돌아보고 말았다.

 그리고 돌아본 하루나는, 기묘한 광경에 발을 멈추고 말았다.

 파도 이외에 움직이는 것이 있을 리 없는 바다. 그 멀리 떨어진 해면에,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착시? 아니면 상어, 라던가? 이 주변에 상어가 있었나...)

 그 잠시동안의 망설임이, 치명적이었다.

 멀리서 보였을 터인 '검은 무언가'는, 단 몇초만에 하루나가 있는 곳까지 도달해버리고 말았다.

 하루나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파도와 함께.

 "..................어?"

 무언가 검고 커다란 것이 보였다. 그렇게 인식한 순간, 하루나는 전신이 바닷물에 떠밀려, 그 강렬한 기세에 쓰러지고 말았다. 모래언덕에 굴러가는 하루나가, 파도에 삼켜져가는 모습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였다.



 의식을 잃기 직전, 하루나는 무언가를 생각했다.

 가족, 개, 그리고 오카리나.

 (가까운 것들만 생각나네)

 하지만 의식이 표층에 떠오르는 과정에서, 그때까지 떠올린 것들은 금방 사라져갔다.



 개가 코를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시노일까. 그게 시노의 울음소리인가 판별하기 전에, 가슴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가 하루나의 목을 자극한다.

 "켈록 켈록!"

 목이 기묘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하루나를 각성시킨다. 어렴풋이 눈을 뜨니, 시노의 앞발이 보인다. 시노에게 닿으려고 뻗은 손가락 끝이, 젖은 모래를 움켜쥔다.

 (...아, 살아있어...)

 체내에서 올라오는 토악질에 뒤따라, 하루나는 바닷물을 토해낸다. 아무래도 자신은 모래언덕에 쓰러져있던 모양이다. 토해낸 바닷물이 코나 입에 남아있는 것 같아서 기분나쁘지만, 하루나는 그것들을 무시하며 상반신만 일으켜 앉아있는 시노의 몸을 끌어안는다.

 젖은 옷과 몸에는, 시노의 온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나는 시노의 목덜기에 볼을 맞댄다. 개 특유의 털가죽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기분 좋다.

 냄새가 난다. 숨이 쉬어진다. 자신은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어, 시노, 나 살아있어..."

 하루나의 몸이 자신을 차갑게 하는데도, 시노는 얌전히 껴안겨있다. 하지만 잠시 지나자, 싫다는 듯이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아, 미안, 젖어서 차갑지..."

 금방 몸을 떨어트린 하루나였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아 유 올라잇?"

 (..........................여, 영어?)

 영어, 였다. 젊은 남성으로 보이는 목소리에, 하루나는 금방 돌아볼 수가 없었따. 왜냐면, 하루나는 영어에 굉장히 취약하니까. 아까까지 자신에게 생명의 위험이 닥쳐왔었다는 사실도 잊고, 하루나의 뇌리에는 배운 영어단어들이 둥둥 떠오를 듯하면서도 떠오르지 않는, 안개가 낀 듯 사라져간다.

 (어, 어떡하지...)

 잘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 자력으로 모래언덕까지 돌아왔을 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도와준 사람일지도 모른다. 시노가 격렬하게 짖어대서, 누군가가 와줬던 걸지도 모른다. 감사하다고 말해야한다.

 하지만, 영어다. 감사를 말한다면 '땡큐'로 되겠으나, 지금 그는 영어로 하루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우선 그 의미를 이해해야만 한다. 하지만 하루나에게 있어서 영어는 거대한 취약과목이다. 다른 교과는 나름대로 성적을 내고 있지만, 영어 성적만은 항상 밑바닥이었다. 읽기 쓰기도 제대로 못하는데, 회화따위 가능할 리가 없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하루나는 등 뒤에 있는 '그'의 말을 이해하려 했다.

 (어어... 아 유 올라잇... 유는 나고, 올라잇은... 전부 오른쪽? 아니지 아니지. 그거야, 이 경우에서 올라잇은 결과 올라잇 같은 사용법이니까 괜찮다라는 뜻이고...)

 즉, 그는 하루나에게 '괜찮아요?'라고 물어보는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그렇다면, '괜찮아요'라고 대답한 뒤에 구해준 감사를 하는 편이 맞는 말이겠지.

 (괜찮아요는 뭐라고 하더라... 화, 화인 땡큐? 그래도 이건 '잘지내요'라는 의미였던 기억이 나는데...)

 그러고보니 '영어는 어렵다'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와 회화에서 쓰는 영어는 다르단다, 단어를 적당히 늘어놓으면 의사소통따윈 적절하게 되니 말이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단어만 기억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라고 몇몇 단어를 가르쳐주셨다.

 (어, 그 때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훡뀨 애쓰홀



 (아니야! 그건 나쁜 말이라고 할아버지!)

 끌어안고 있던 시노가 '끼잉'하는 콧소리를 내며 몸을 비트는 것이 전해져서, 하루나는 생각을 현실로 끌어낸다.

 (아, 생각났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미소지으며 대답하면 의사는 통한댔지, 아마도!)

 하루나는 이마에 달라붙은 젖은 앞머리를 훑었다. 지금 자신이 심한 상태임을 드디어 깨닫는다. 바닷물을 머금은 차가운 옷이 몸에 달라붙어 있고, 양말이나 속옷까지 잔뜩 젖어서 기분나쁘다.

 일단 간단하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돌아가서 갈아입고 다시 인사하도록 하자.

 그렇게 결심하고, 하루나는 미소지으며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노 프러브럼!"



 "불라불라"

 돌아본 곳에 서있는 '그것'은, 일단 컸다. 얼굴, 같은 것의 가로폭이 2미터는 되보였다. 정말로 얼굴인지는, 그리 자신이 없다. 얼굴의 크기 치고는 작고 검은 눈동자가 두개랑, 이마와의 경계가 잘 모르겠는 코와 그 아래 입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으니 얼굴이겠지. 입 틈새에서 보이는, 톱같은 치아가 규칙적으로 늘어서있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지만.

 그리고, 검다. 번들번들한 광택을 내뿐는 그 표피는, 닿으면 미끌미끌할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검기만 하지도 않다. 눈의 뒷부분에 타원형의 하얀 모양이 좌우로 하나씩, 그리고 입 밑부분부터는 하얗다. 훌륭한 스톤컬러다. 

 흑과 백으로 구성된 그의 얼굴 가운데, 한 층 더 눈에 띄는 것이 이마ㅡ이마와 두부의 경계도 잘 모르겠지만, 하루나는 이마라고 판단했다ㅡ의 중앙에 있는 팔각형의 부분이다. 다른 곳은, 일단 하루나가 알고있는 '생물체'다운 모습이었으나, 그곳만은 명백히 평범한 생물체와 달랐다.

 그 이마에 있는 파란 팔각형은, 완벽한 정팔각형이 아니었다. 셀 수 없을만큼 작은 면이 규칙성없이 늘어져있으며, 기묘한 다면체를 형성하고 있다. 파랗고,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는 그것은, 거대한 사파이어처럼 보였다.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던 하루나는, 눈앞에 있는 생물체가 자신이 알고 있는 해양생물체와 굉장히 닮았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 실물을 보는 게 처음이었지만, TV 방송 등에서 본 기억은 있다.

 입에서 두부에 걸쳐 원추형의 형태, 눈가의 모양, 흑과 백의 색채. 이마에는 묘한 물건이 달려있지만, 이 외견적 특징은 '바다의 캥'으로 유명한 그ㅡ

 "범고래ㅡ!?"*

* 범고래 = 샤치

 "왓?"

 범고래가 말했다. 말했다, 라고 해도 입은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통 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어, 어쩌지, 범고래가 말하다니... 게다가 영어...)

 이렇든 저렇든, 있을 턱이 없는데. 이런 이상항 상황에서 해야할 일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재촉하듯이, 시노가 모래언덕에 주저앉은 채로 하루나의 스커트를 물고 잡아당긴다.

 "아, 시노..."


 하루나는 시노의 개목걸이에 달린 목줄을 잡았다. 이걸 잡고 일어나, 기묘한 범고래로부터 멀어진다. 그게 간단하고, 가장 좋은 선택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해도 좋다. 망설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캐나이숚썸씽?"

 범고래가, 하루나를 지긋이 바라보면서 말을 건다. 하얀 부분이 전혀 없는 그 검은 눈동자는, 귀엽다고 하면 귀엽게 보인다.

 "자, 잠깐 기다려봐... 아ㅡ 그러니까, 긔돠류어?"

 "왓?"

 "아 진짜, 지금 생각중이니까 얌전히 있어!"

 이상하게 바라보는 범고래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하루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으음, 캔, 아이, 애스크, 겠지... 할 수 있다, 나, 묻는다... 썸씽... 썸씽이 뭐더라!?)

 굉장히 어중간하게 알고있는 영어로 말을 걸어왔기에, 하루나의 사고는 '범고래가 말을 한다'가 아니라 '이 범고래가 말하는 영어를 이해하자'라는 방향으로 향해버렸다.

 시노가 자꾸 하루나의 스커트를 잡아당기는 것에도 신경쓰지 않고, 하루나는 이 범고래가 한 말을 이해하려고 했다.

 (잘 모르겠지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같은 뉘앙스이려나...)

 하지만 너무 어려운 질문을 받아도, 영어에 약한 하루나가 제대로 들을 수나 있을까. 여기선 우선, 상대가 일본어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편이 나아보인다.

 "아 유 재패니즈?"

 "재패니즈?"

 "예스, 재패니즈!"

 라고, 말하고 하루나는 자신의 영어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유 재패니즈라니, 당신은 일본인입니까라는 의미잖아! 아무리 봐도 일본인이 아닌데ㅡ!"

 생각하고 있던 사실을, 무심코 입으로 말하며 소리지른다. 애초에 눈앞에 있는 녀석은 일본인 이전에 인간으로 보이지 않지만, 하루나는 그것조차 잊어버렸다.

 "쏘리, 아이디든캐치왓유세이"

 왠지 사과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그와 영어로 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하루나는 겨우 알아챘다. 하루나는 어떻게든 기억하는 단어를 끌어내, 더듬거리며 말한다.

 "아이 캔 낫 스픽 잉글리시. 아임 재패니즈 온리"

 "재패니즈?"

 "재패니즈"

 범고래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양이었으나, 고개를 끄덕이듯이 그 큰 머리를 움직였다. 아무래도 통한 모양이다.

 "오케이. 땡큐, 나이스 밋츄"

 커다란 얼굴이 천천히 옆을 향한다. 그가 바다로 돌아가려고 하고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루나는 범고래의 크기에 눈을 크게 떠버렸다.

 2미터는 되보이는 거대한 등짝도 그렇지만, 전체 길이가 10미터는 되지 않을까. 유선형의 커다랗고 듬직한 체구는, 바다의 왕이라기보다는 제왕같은 풍격을 내뿜고 있다.

 크게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범고래는 천천히 바다로 들어갔다. 그 거대한 몸집도, 바다에 들어가니 금방 보이지 않게 되어, 도중까지 보이던 등짝도 이윽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뭐였을까... 저거"

 지금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하루나였지만.

 "엣취!"

 자신이 젖은 생쥐 꼴이라는 사실을 겨우 떠올린다. 옆에 있는 시노가 질렸다는 듯이 하품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하루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미안, 시노... 일단, 돌아가자... 산책은 타카오에게 부탁해야지"

목줄을 잡고 일어선 하루나였지만, 여기서 오카리나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눈치챈다. 

 (아...)

 당황해서 주위를 살펴보지만, 오카리나 비슷한 물건이 떨어져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나는, 쥐고있던 목줄을 놓고 파도치는 파도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를 저지하는 생물체가 있었다. 시노가 재빨리 하루나의 정면을 막아서고, 뒷다리만 들더니 하루나의 몸에 몸통박치기를 사용한다. 효과는 뛰어났다.

 "미안, 시노. 오카리나가 없어. 찾고 싶어. 지금이라면 아직, 이 근처에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시노의 앞발을 잡고 내리려하는 하루나였으나, 시노도 물러서지 않았다. 옷 소매를 물고, 바다쪽에서 떨어지도록 질질 잡아끈다. 한 명과 한 마리는 잠시동안 그런 공방을 펼쳤으나, 진 쪽은 하루나였다.

 "정말, 알았다구... 내일 할 테니까..."

 하루나는 한숨을 쉬더니, 목줄을 쥐어 잡고 뚜방뚜방 걸어가기 시작했다. 시노는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듯이, 그녀의 2, 3발자국 앞서간다.

 둑을 올라 쓰러진 자전거에 도착했을 때, 바다에서 물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바다의 저편에서 검고 거대한 것이 해면에 그 몸을 튕기는 모습이 보였다.

 "시노... 저 범고래 영어로 말했는데, 보통 범고래가 말하지는... 않지? 뭐였을까..."

 당연하지만 시노는 범고래처럼 말하거나 하지 않고, 그저 하루나를 올려볼 뿐이었다. 그 올려본 얼굴이 어딘가 질렸다고 느껴지는 것은, 분명 하루나의 기분 탓이겠지.

***

 아키츠시마의 가계는 현재 네 명과 한 마리로 이루어져있다. 하루나와 타카오 남매, 둘은 어머니인 이즈미, 친가 할아버지인 신키치, 그리고 개 시노. 가장인 아버지, 하루오는 동남아시아의 어떤 나라에 단신부임중으로, 1년에 몇번인가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아키츠시마 일가에는, 몇가지 정해놓은 규칙이 있다. 규칙이라곤 해도 대단한 일은 아니다. '저녁밥은 가능한 한 가족 전원이서 먹는다', '식사중에는 신문을 읽지 않는다', '시노의 산책은 제대로 시켜준다', '욕실 청소는 하루나와 타카오가 번갈아가며 한다' 등등

 그리고 오늘은, 규칙 중 하나인 '한 달에 두 번은 히레까쓰를 먹는 날'이었다. 칠순을 넘어도 튀김이나 육류를 먹고 싶어하는 신키츠와, 그 건강을 생각해 눈썹을 치켜뜨는 이즈미와 수차례 말싸움을 거친 결과 나온 타협안이었다.

 히레까쓰를 좋아하는 신키츠의 기분은, 이 날 최고조에 달할 터였다. 하지만 넷 전원이 식탁에 앉아서 입을 모아 '잘먹겠습니다'라고 한 뒤, 신키츠는 금방이라도 눈 앞에 있는 히레까쓰에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이건 설교 타임 직전이며, 그 대상은 틀림없이 자신이다. 하루나는 그렇게 확신하며, 옆에 앉은 엄마와 정면에 앉은 동생에게 시선을 향한다. 엄마는 잠자코 양베추에 소스를 뿌리고, 동생은 히레까쓰에 소금을 치고 있다. 둘 다 나와는 관계 없다는 얼굴이다.

 "하루나, 식사중이지만 내 말을 들어보거라. 먹으면서 들어도 되니까"

 "...네"

 역시 시작되었다. 먹으면서 들어도 된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먹으면서 듣기는 꺼려진다. 일단 하루나는, 식탈 한가운데 놓인 소스를 히레까쓰에 뿌려두기로 했다.

 "누나, 그거 간장"

 소스 색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루나가 한 것과, 타카오의 지적은 거의 동시였다.

 "...히레까쓰에 간장 뿌려먹는 게 최근 유행이야"

 하루나 치고는 꽤나 굉장한 변명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머 처음 듣는걸"

 "흐음. 뭐 간장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도 그건 너무 많아. 간장 맛밖에 안 날걸"

 가족의 반응은 대체로 차가웠다.

 "정말이지, 하루나는 덜렁이라니까"

 비스듬히 앉아있는 신키츠는, 떨떠름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머리카락은 없고, 눈썹도 거의 없는 그 얼굴에는, 연령을 겹친 탓에 주름이 셀 수 없을만큼 나있다. 손자인 하루나가 봐도, 무서운 얼굴의 완고한 할아버지다.

 "다소 덜렁하다면 모에요소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걸로 다치거나, 혹은 목숨을 잃게 되면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그렇게 간단하게 죽지 않는다구.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간단하게 죽은 인간이 가까이에 존재하는 이상 하루나는 조용히 신키츠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아무튼 진정하고 행동하기를,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하도록 해라. 한겨울이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바다에 빠지는 바보같은 일은, 더 이상 없도록 해라. ...자, 먹어라 먹어. 모처럼의 히레까쓰가 다 식겠구나"

 이제 설교는 끝난 모양이다.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히레까쓰 한 덩이를 잘라내 천천히 먹기 시작하는 신키츠를 곁눈질하며, 하루나도 간장을 잔뜩 뿌린 히레까쓰를 밥 위에 얹는다. 과연 간장을 너무 많이 뿌렸던 사실이 신경쓰여, 밥이 간장을 흡수하도록 해본다.

 히레까쓰를 바라보면서, 하루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바다에 빠졌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젖은 생쥐 꼴이 되서 돌아온 하루나를 제일 먼저 마중나온 것은 현관 청소를 하던 타카오였다. 동생은 '...역시 빠졌네'라며 얄미운 제 1타를 가한 뒤 아무 말도 않고 타올을 가져다 주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저녁 만들기를 도우러 거실에 갔더니, 엄마는 '너, 바다에 빠지다니 왜 그렇게 덜렁대니. 할아버지가 나중에 혼나야겠구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할아버지한테 가벼운 설교를 받았다.

 가족에게 걱정받는다는 일은, 기쁘다. 기쁘지만.

 (...어째서 아무도, 왜 떨어졌는지 물어보지 않는 거야!)

 셋이 입을 모아 '덜렁거리는 하루나가 덜렁거리며 바다에 빠져버렸다'라는 전제로 말한다. 덜렁거려서가 아니라, 큰 파도에 휩쓸렸다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데도.

 하지만 하루나는 '덜렁거리다가 떨어진 게 아니야, 큰 파도한테 휩쓸렸다구'라고 말하지 못했다.

 파도와 함께 온, 영어를 말하는 범고래. 그 기묘한 생물체에 대해 말하지 않고 바다 이야기를 할 자신이, 하루나에게는 없었다. 거짓말을 하기도, 사실을 곡해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루나는 둘 다 잘 못한다. 

 범고래는, 말하는 생물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루나는 범고래와 말을 주고받았고, 꿈을 꾼 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있었던 일을 말해도, 믿어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기보다 믿어준다 하더라도, 그건 그 나름대로 곤란하다.

 (정말, 뭐였지, 그 범고래... 굉장히 진화한 범고래, 라던가?)

 "TV 켤게. 그리고 누나, 히레까쓰 밥에 얹어놓고 언제까지 멍때릴 거야"

 "멍때리는 게 아니라, 잠깐 생각을 좀 했더니..."

 반격하려던 하루나였으나, 타카오가 켠 TV에 비춰진 내용에 눈을 돌린다.

 '...에 고래가 길을 잘못 들어 1주일동안, 지역 주민에 의해 만 외로 보내기 위한 활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성과는 오르지 않고...'

 TV에는 15미터 가까이 되는 검은 고래가 동동 떠있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고래"

 무심코 말해버렸다. 고대도 범고래도 돌고래도 상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하던 하루나였지만, 이렇게 보니 고래와 범고래는 꽤나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래네, 왜 나가지 않는 걸까"

 "고래로군. 베이컨이 먹고 싶구나"

 "고라잖아. 저건 향유고래니까, 베이컨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해 할아버지"

 가족들이 다양한 반응을 나타내는 와중, 하루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고래는, 오늘 본 범고래처럼 말하지 못하는가보네... 의사소통이 된다면, 벌써 나갔을 거고... 세상일은 참 어렵다니까)

 이대로는 고래가 쇠약사할 가능성을 나타내는 뉴스를 들으며, 역시 하루나의 사고는 범고래에게 향한다.

 (범고래가 말한다는 사실이 이상한 이야기지만... 밥 먹으면서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걸, 응. 신경써도 소용없네!)

 혼자 이해하더니, 하루나는 히레까쓰를 입에 넣는다.

 "...간장, 의외로 맛있네. 너무 많이 뿌렸지만"

 "스스로 뿌린 주제에, 이제와서 뭘 그런 말을"

 타카오의 태클은 일단 무시하고, 하루나는 두부와 미역된장국을 한모금 마신다. 배가 가득 차는 느낌만으로 행복한 기분이 되는 자신은, 단순한 걸까. 양배추에 드래싱을 뿌리고, 적당히 섞어서 입에 넣는다. 평소엔 양배추의 맛따위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굉장히 맛있다고 느껴졌다.

 고래 뉴스는 이미 끝났고, 아키츠시마네 TV화면에 흘러가는 광고에는 흥미를 가지지 않고 식사를 계속한다.

 평화로운 식탁이다.

***

 "핼로ㅡ"

 범고래가 말한다. 이건 꿈이다. 애초에, 범고래가 말하다니, 게다가 영어라니 이상한 이야기지, 응.

 "핼로ㅡ 그치만 너, 일본어로 말하라구. 여기가 영국이나 미국이라면 영어로도 괜찮지만, 여긴 일본이니까. 로마에 오면 로마법에 따르라는 말도 있잖아"

 "왓?"

 "귀엽게 고개를 갸웃해도 안 된다구. 애시당초 바다의 왕인 주제에 왜 그렇게 귀엽냐구. 목소리도 의외로 부드러운 오빠같고"

 아직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일본어 배우라구, 열심히. 내가 영어를 배우기보다, 네가 일본어를 배우는 편이 훨씬 빠를 테니까..."

 범고래가 크게 입을 벌리고, 내 말을 차단한다.

 그 입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빨도, 혀도, 없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고, 딱 하나 보였다.

 한밤처럼, 새까만 어둠이.

 그야 나, 어두운 곳이 아니면 잠자지 못하지만, 이 어둠은 보통이 아니야.

 입 안에 이런 어둠이...

 어둠이...

***

 "...아파"

 침대에서 떨어져 눈을 뜨기는, 반년만이라는 기분이 든 하루나였다. '그냥 이불 깔고 자면 될텐데'라는 타카오의 말에, 고집부리며 침대에서 자기 계속해서 거의 3년. 드디어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긴장을 풀었더니, 이모양 이꼴이다. 마룻바닥이 차가워서 하루나는 몸을 떨었다.

 창문에서 내뿜어진 빛은 아직 살짝 어두웠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닌 모양이다. 느릿느릿 침대에 기어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쓴다. 뭔가 무서운 꿈을 꾼 듯한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범고래가 나왔던 기분인데... 응, 범고래가 말했던 건 역시 꿈이었어. 꿈이라고 납득하지 못하겠지만, 분명 그럴거야)

 영어를 말하는 범고래따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일도 있지만, 그게 가장 편한 생각일 터이다. '편한 쪽으로 가는 건 상관없지만, 편한 쪽으로 도망가지는 말거라'라고 말하던 할머니의 말이 왠지모르게 떠오르지만, 하루나는 무시하고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범고래의 존재나 할머니의 말을 억지로 무시할 수는 있어도, 할머니가 주신 오카리나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바다에 떨어졌을 때 잃어버렸을 오카리나. 오카리나를 잃어버린 일은, 아직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째선지, 말하지 못했다.

 오늘은 카라키하마까지 찾으러 가자.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면 달리 있지만, 하루나에게 있어서는 역시 그 오카리나가 제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다.

 (운 좋게, 파도에 떠밀려 온다면 좋겠는데...)

 끙끙대면서, 하루나는 오카리나를 생각했다.

 자신은 '할머니가 남겨주신 추억의 오카리나'가 소중할 뿐인 걸까. 이대로 오카리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제 두 번 다신 오카리나를 불지 않게 되는 걸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할머니와의 연결고리를 오카리나에서 찾을 뿐이고, 자신은 정말로 오카리나라는 악기는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뭔지 모르겠지만, 슬퍼...)

 이해하지 못할 슬픔 속에, 하루나는 다시 잠들기 시작했다.

***

 "시노, 산책하러 가자ㅡ"

 그 날 오후, 목줄과 목걸이를 가지고 개집으로 다가간 하루나를 시노는 귀찮다는 듯이 올려다본다. 평소라면 일어나서 개집 밖으로 나올텐데, 오늘은 목을 내리고 다시 눈을 감는다.

 "뭐야ㅡ 가기 싫어? 개는 산택이랑 밥이랑 놀기가 인생의 전부라던데, 별난 개네ㅡ 시노는"

 몸상태가 나쁜 걸지도 모른다. 코끝을 만져보지만, 평소처럼 촉촉하다. 귀 뒷부분을 뒤집어보거나, 입을 벌리고 이빨 모양을 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다. 그저 단순히 산책하러 가기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누나, 뭘 시노 가지고 노는 거야"

 머리 위에서 타카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올려다보니 2층 베란다에 있던 타카오가 방석을 말리고있다.

 "시노가 산책하러 가기 싫대"

 "아직 1시 조금 넘었을 뿐이니까, 빠르다구. 평소에는 3시 이후에 가잖아"

 "그렇지만, 개니까 산책 많이 해도 되잖아"

 "시노는 그런 개라구... 그렇게 산책 가기 싫어하면, 누나 혼자 가면 되잖아. 바다에 빠지는 건 금지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호이호이 빠지지 않는다구!"

 정말이지, 무례한 동생이다. 항의의 의미를 담아 째려봤지만, 타카오는 눈썹을 움츠리더니 베란다에서 나가버렸다.

 "정말, 나도 그정도로 덜렁거리지는 않는다구... 시노는 알지, 내가 떨어진 진짜 이유... 거대한 파도가 덮쳐왔을 뿐이라구, 말하는 범고래따위, 어디에도 없었다구, 응"

 개집 앞에서 서있던 하루나였지만, 그 와중 시노가 개집에서 나와 몸을 발에 비벼대기 시작했다.

 "뭐ㅡ야, 역시 산책 갈래?"

 하지만 하루나가 목줄에 손을 대려고 하자, 시노는 싫다는 듯이 개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정말, 무슨 일이냐구. 시노"

 개집 안에서, 시노가 얼굴만 빼꼼 내밀고 하루나를 올려본다. 그 갈색 눈동자는, 하루나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이 느껴졌다.

 "...시노. 혹시, 내가 나가지 말았으면 해?"

 왠지모르게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시노는 하루나의 말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올려다볼 뿐이다.

 "하지만 있지, 시노. 바다에 떨어진 일이던가, 영어로 말하는 범고래라던가도, 억지로 전부 없었던 일로 생각해봤자, 오카리나가 없어진 사실만은,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다구. 내 손 안에 오카리나가 없으니까"

 다시 한 번 웅크리고, 시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다. 싫어하지도 않고, 역시 시노는 하루나를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시노는 자주 사람 말을 알아듣는 듯한 반응을 나타내는 때가 있다. 그렇기에, 하루나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아키츠시마 사람들은 시노에게 말을 거는 일이 많다.

 "찾지 못하면 금방 돌아올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목걸이랑 목줄을 개집 위에 놓고, 하루나는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잠깐 나갔다 올게ㅡ"

 누군가가 들었겠지라며 멋대로 해석하고, 하루나는 자전거를 타더니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시노, 누나가 귀찮게 했지"

 하루나가 나가고 1분 뒤, 현관에서 나온 타카오가 개집 위에 놓인 목줄과 목걸이를 정리한다. 시노는 타카오의 말을 무시하며, 개집 안에서 나오려지도 않는다.

 "정말로, 넌 사람을 가리는 개라니까. 싫지는 않지만"

 타카오는 전혀 웃지 않으면서 개집 안에 손을 뻗고는, 시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시노는 아무 반응도 않고 그저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

 오늘도 카라키하마는 아무도 없었다. 없는 편이 찾기 편하니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 불안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범고래는 없고 파도도 안 오지. 응,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목소리를 내서 자신을 격려하고, 하루나는 어제처럼 자전거를 세우고 해안으로 내려갔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좁은 모래언덕이다. 마른 거목도 아무 변화 없이 굴러다니고 있다. 파도치는 곳을 걸어도 편하도록 바지랑 샌들 차림으로 왔지만, 과연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발견하지 못한다면, 두 번 다시 오카리나를 불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꿨던 꿈과 함께, 전에 여기서 만났던 우쿨렐라를 가진 소년을 생각한다.

 (운 좋게, 또 만나지 못하려나...)

 그에게라면, 범고래에 대해서도 오카리나를 잃어버린 일도, 말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왠지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이상했다. 우쿨렐라가 그렇게 인상 깊었던 걸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세상은 그렇게 잘 돌아가지 않고, 하루나가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디디며 눈으로 아무리 훑어봐도 오카리나는 보이지 않고, 심지어 그 소년이 오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오지 않아도 될 것은, 언제나 부르지 않더라도 찾아온다.


 (역시 없어...)

 파도에게 납치당해, 더욱 멀리 흘러가버린 걸까. 그렇다면, 이제 발견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제로에 가까울 뿐이지 제로는 아니다. 그 가능성을 믿으며 지금부터도 계속 찾을지, 포기해야 할지ㅡ

 "포기하고 싶지 않은걸..."

 자신의 생각을 입으로 내서 확인하지만, 현재 시간은 오후 2시 반 정도다. 돌아갈 시간이라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또 타카오가 시끄러울 것같다. 어차피 동생에게는 말로 이길 자신이 없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바다에 등을 돌린 때였다.


 ......뀨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들어본 적 있는 소리가 난다. 이건, 어제도 들었던 그거다. 이 기묘한 소리에 돌아봤다가, 오카리나는 잃어버렸지 바다에 빠졌지 이상한 범고래랑 만나는 영문 모를 일에 당하게 되버렸다.

 돌아볼 필요따윈 있을 리 없다. 이 소리에 돌아보면, 분명 어제처럼ㅡ


 "안능하재옇ㅎㅎㅎㅎㅎㅎㅎㅎ!"

 큰 소리와 함께, 하루나는 등 뒤에서 대량의 바닷물에 전신을 짓눌려 앞으로 쓰러진다. 파도에 삼켜지지 않도록 순식간에 모래를 움켜쥐는 것이 하루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파도는 어제처럼 강력하지 않아서, 하루나는 전신을 바닷물과 모래뿐인 바다에 납치당하진 않았다.

 그래도 쓰러지는 박자에 맞춰 입 속으로 모래와 바닷물이 들어가버렸다. 웅크린 채로 켈록켈럭거리며 고통스럽게 토하는 하루나였지만


 "안녕, 괜찮아?"

 ...어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어제는 영어로 말을 걸어와서, 뭐라 대답해야할지 필사적으로 생각해서, 돌아봤더니...

 (오늘은 다르겠지! 일본어인걸! 노 프러브럼이 아니라, 괜찮아요라고 대답해도 되니까, 분명 평범한 사람일 거야!)

 하루나는 한 번 크게 고개를 돌려, 기세 좋게 돌아본다.

 "괜찮아요!"

 "그거 다행이네"



 범고래가 있다.

 어제와 같은, 범고래가 있었다.



 "역시 범고래가 있잖아ㅡ!?"

 "범고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범고래입니다. 안녕"

 "범고래가 일본어로 말하고 있어ㅡ!?"

 "아아, 역시 이게 일본어구나 다행이야. 내가 뭐라고 하는지 알겠어?"

 "알겠지만, 어째서 범고래가 말하는 거야!?"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닌데..."

 "아니 놀라지, 놀란다구!"

 "그럼 다 놀랄 때까지 기다릴게"


 그렇게 말하더니, 범고래는 땡글땡글한 눈동자로 하루나를 본다.

***

 어느 날, 아키츠시마 하루나는 영어로 말하는 범고래를 만났다.

 다음날, 그녀는 일본어로 말하는 범고래를 만났다.

 만난 것 뿐이라면, 어쩌면 만나기만 하고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나와 범고래는 말을 주고받았다.

 이 퍼스트 컨텍트가, 인류 역사에 남을 커다란 한 획이ㅡ될지 어떨지, 지금의 하루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하루나는 애교덩어리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거대한 범고래를, 멍하니 올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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