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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8일 화요일

단편 라노벨 번역 : 그라샤치 종장 절천의 저편

 맑게 갠 하늘이 기분 좋다

 "시노ㅡ 털 빗어줄게 나와ㅡ"

 개집 안에서 자고 있던 시노가 느릿느릿 나온다. 스스로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는 시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루나는 웅크려앉아서 빗질을 시작한다.

 "결국, 집 안에서 살지는 못하게 되버렸네"

 그라볼라스가 사라지고 며칠 뒤. 동물들이 이상하게 죽는 이야기는 전혀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위험이 없다고 판단된 시노는 다시 개집생활로 돌아가게 되었다.

 "...시노에게만 가르쳐주겠지만, 그라가 범인을 해치웠어. 해치웠다고 할까... 설명하기 좀 힘들지만"

 짧은 털이라고는 하지만 털이 잘 빠진다. 빠진 털이 바람에 날려서 흩뿌려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하루나는 시노에게 말을 계속했다.

 "그라, 가버렸네... 사이토 군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그라도 너무하지, 그런 얼굴을 하는 사이토 군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하라니"

 주절주절 말하면서 하루나는 시노의 등을 쓰다듬는다. 따듯한 털의 감촉이다. 그라볼라스의 매끈한 피부와 너무나도 달라서, 하루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누나, 빗질 하면서 뭘 그렇게 웃는 거야"

 현관에서 나온 타카오가 하루나의 옆에 앉으며 시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뭐야, 상관 없잖아. 어디 나갈 거면 빨리 갔다가 빨리 돌아오라구"

 팔랑팔랑 흔들리는 누나의 손을 바라보며, 동생은 바로 일어서지 않고 가볍게 개의 등을 두들겼다.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는데"

 "뭔데"

 "그라샤 라볼라스라는 이름의 유래"

 들고있던 빗을 잠시 내려놓는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빗을 헹구고, 하루나는 '이제와서 말해도'라면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대답을 했다.

 "처음에 누나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어떤 동물에게 붙여줄 이름일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말해두고 싶어서"

 "알았어, 들을게... 그래서, 유래가 뭔데"

 "악마의 이름이야, 그라샤 라볼라스는"

 "악마..."

 "옛날 솔로몬이라는 왕이 사역했다는 전설이 있는 72악마 중 하나야. 날개달린 개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해줌과 동시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특기인 악마라고 해"

 "꽤 끔찍한 악마잖아..."

 "악마니까 당연하지... 이 이름, 진짜 쓸 거라면 잘 생각하고 쓰도록 해"

 이미 늦었어... 라는 속마음을 타카오에게 들려줄 수는 없었다.

 "흐음, 뭐 알겠으니까, 나갈 거면 빨리 돌아와야 해. 날씨는 좋지만 언제 흐려질지 모르니까"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하루나가 말하자, 타카오는 조용히 일어서서 자기 자전거를 정원에서 끌고 나갔다.

 "다녀올게"

 "다녀와"

 타카오가 가자, 하루나는 한숨을 쉬며 시노의 발을 매만졌다.

 "...그라에게 나쁜 짓을 한 기분이야... 그라샤 라볼라스라니 확실히 이상한 이름이었지만, 악마였을 줄이야..."

 시노에게 말을 해봤자 대답은 없다. 그래도 하루나는 태연히 귀를 내리깔고 있는 시노를 향해 자기 심정을 토로했다.

 "그램퍼스의 그라라고 하는 건 어떨까"

 자신은 그를 언제나 그라볼라스가 아니라 그라라고 줄여서 부르곤 했다. 그램퍼스나 그라볼라스나 별다른 차이는 없다... 고 생각하고 싶지만

 "...안돼겠지, 시노. 역시 그라는 그라볼라스겠지..."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것

 그라볼라스의 이름을 걸고



 "이제는 유래가 악마다 뭐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걸 전부 포함해서 그라는 그라볼라스가 되버렸으니까..."

 퐁퐁 시노의 머리를 두들겨본다.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시노에게 '미안'이라고 웃으며 하루나는 다시 빗질을 시작한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의 이름에 대한 유래를 알려주자

 그는 뭐라고 말할까?



 나쁜 이름이라며 화낼까

 신경쓰지 않는다며 웃을까

 아무래도 좋다고 말하며,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얼굴을 할까



 어떤 반응이라도 좋다

 다시 한 번, 이 별ㅡ그의 말투로 치자면, 이 섬에 와준다면, 기쁘겠다.



 "그래그래, 시노. 그라는 범고래가 아니라 우주범고래였어. 깜짝놀랐다니까"

 빗질을 끝내고 훌훌 몸을 터는 시노에게 말을 한다. 당연하지만 시노는 꿈쩍도 하지 않고 크게 하품을 하며 개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정말, 귀염성 없다니깐 시노는... 아참, 카라키하마에 오카리나 연습하러 갈 건데, 시노도 산책하러 갈래?"

 완전 무시하며 개집으로 들어가 몸을 둥글게 말아버리는 시노를 보며 쓴웃음을 짓고, 하루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안녕, 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 보자, 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고마워, 라고 범고래와 소녀는 말했다.

 리별의 말이 아닌, 재회의 약속도 아닌, 감사의 말을 하며 둘은 헤어졌다.

 모든것이 다른 둘이 동시에 입을 열고 말한, 공통 의사.



 "고마워, 그라볼라스"

 아무도 없는 현관에서, 아키츠시마 하루나는 공중을 바라보며 가슴을 펴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라볼라스의 바다. 하늘의 끝. 그 건너편.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루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좋았다. 저 바다 어딘가에, 그라볼라스가 헤엄치고 있다면.

 그리고, 그의 바다 구석에 있는 이 섬에, 지금 자신이 서있다.



 지금은 그거면 됐다.

 하루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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