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소개하지! 이녀석이 오늘, 큰 사고를 막은 일등 공신, 리베리스탄의 랏셀이다!"
허리에 타월 한 장만 걸친 피니언이 벌떡 일어나더니, 득의양양하게 소개한다. 알몸의 남자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낸다. 스팀팔로 호에서 열린 기술 교류가 끝나고, 작업원들이 목욕탕에 모여든 것이다.
"아, 안녕하세요"
랏셀도 달랑 타월 한 장 걸친 채로 일어나며, 뒤통수를 긁으면서 머리를 숙인다. 일등 공신이라니, 과한 칭찬이다.
욕탕에는 같은 융보로 팀 외에도 가르간티아의 사람들까지 함께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은걸"
이라고 물어본 사람은 연결 담당의 조였다.
피니언이 과장된 몸짓을 하며 말했다.
"크레인의 와이어가 뚝 끊어져서, 매달린 채로 흔들거리던 대형 화물…… 당장에라도 배에 충돌, 하려던 찰나! 웬걸 화물로 융보로가 뛰어들더니 눈 깜짤할 사이에 흔들림을 멈춰버린 녀석이, 바로 이 랏셀이라 이 말이지!"
"호오─ 거 굉장한걸!"
"이 정도면, 맞지, 레도?"
피니언은 실제 사고 현장에 없었고, 이 장대한 무용담은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것이다.
레도가 크게 끄덕인다.
"그래. 그런 동작은 벨로즈나 나라도 무리야. 랏셀, 육지의 융보로 조종사는 다들 그런 동작이 가능한가?"
"아, 아니, 그건 무리지"
"그런가. 그럼 역시, 네가 뛰어난 융보로 조종사라는 뜻이구나"
레도에게 미묘한 감정을 품고있던 찰나에 직설적으로 칭찬을 들은 랏셀은 조금 거북해졌다. 게다가 그 움직임은 리브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터라 더욱 복잡한 심정이다.
레도가 뜨거운 물로 얼굴을 씻고, 짧은 은발을 뒤로 쓸어올린다. 18살이라고 했는데, 2살 차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다부진 청년이다. 실습 중, 그는 언제나 작업원의 안전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적확한 지시를 내렸다. 가르간티아에서도 으뜸가는 인양업자라는 사실도, 같은 잠수 융보로 조종사로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카야가 계속 신경쓰던 남자이기도 하다.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어이 랏셀"
"아, 네"
피니언이 엄지손가락으로 세면대를 가리킨다.
"네 활약을 치하하며, 내가 특별히 등을 밀어주마"
"엑"
"뭐야, 불만이냐?"
"아니, 그런 건"
그럼 따라와, 라며 피니언이 탕에서 일어선다.
"잘 부탁드립니다……"
맥없이 따라가는 랏셀의 등을 보며 레도가 쓴웃음을 짓는다.
이 때 베벨이 '레도 씨'라며 말을 걸었다.
에이미의 동생으로, 12살이 된 총명한 소년이다. 베벨은 탕의 가장자리에 걸터앉더니 양 발만 탕에 담갔다. 가슴에 특이한 병이 있어서 심장에 부담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올덤 선생님과 만난 적 있나요?"
"아니. 기술 교류가 시작된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응. 별똥별 이야기"
"아아"
육지로 향하는 긴 항해 도중, 베벨과 올덤의사의 일과는 별을 관찰하는 일이었다. 가끔 레도도 함께 아득히 머나먼 우주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곤 했다.
관측 장소가 바뀌면 별을 보는 방법도 달라진다. 특히 육지와 가까운 해역의 밤하늘은 본 적 없는 별들이 넘쳐흘러서, 지적 호기심의 집약체같은 두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망원경을 보곤 했다. 그 중 다른 항성과는 다른, 신비한 움직임을 보이는 별을 발견한 적이 있다.
올덤은 가르간티아에 전해지는 전설의 취급을 맡는 다섯 현인 중 한 사람이다.
바로 조사에 착수해, 대략 170년마다 밤하늘에 돌아오는 별똥별의 집단이 있다는 전승이 발견된 것이다.
"별똥별은 별 개여섯개가 뭉친 거잖아, 라는 말은 했었지"
"그래"
"사실, 올덤 선생님을 포함한 다섯 현인이 육지 사람들에게 들은 모양인데, 뭉친 별들이 좀 더 큰 다른 별을 끌고 온다, 라는 전설이 있다는 것 같아"
"별을 끌고 온다니…… 대체 무슨 의미지?"
"전승이나 옛날이야기같은 거라서, 그 이상은 확실하지 않대"
"그런가……"
"그리고 또 하나"
"뭐지?"
"선단이 여기로 향하던 도중에 지나쳤던 바다은하. 그 바다은하가 역대 최고로 활성화되었대"
바다은하는, 무수히 많은 빛벌레가 모인 것이다. 대낮에 태양광을 흡수해 전기를 비축하고, 밤이 되면 이를 방출하는 성질을 지닌다. 방전할 때 취색의 빛을 내뿜기 때문에 바다은하라 불리운다.
육지를 에워싼 바다은하는, 남북 7000km에 가까이 8자를 그리며, 보통이 아닌 충방전을 하고 있다. 하늘의 '시간의 기둥'이 쏘는 방대한 전력을 위해서다.
"확실히, 그 해역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게 평소대로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응, 그런가봐"
"큰일인 때에 육지에 오고 말았구나, 우리들"
170년만에 육지의 밤하늘에서 관측된 방문자.
역대 최고로 활성화된 바다은하.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아얏, 아야야야야!"
등을 씻던 랏셀의 비명이다.
"짜식, 꽤 하잖아 너!"
"피피피, 피니언 씨, 아프다니까!"
"함께 사고를 막은 또 한 사람은 여자였냐! 사이 좋냐? 응?"
"아, 아우구스토니아의──"
"아우구스토니아? 늬들 적이잖아?"
"내 적은 아닌…… 아야야야!"
"그래그래, 그 말대로야, 랏셀! 같은 대륙끼리, 등을 돌리고 도망쳐서야 쓰겠냐. 사이 좋게 지내라고"
바다은하를 더듬으며 항해하는 선단은, 평소부터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있다. 연결한 선단과 뜻이 맞지 않으면,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매우 평범한 일이다. 피니언의 말은, 육지가 아무리 역사를 쌓아올려도 도달하지 못했던 지극히 단순한 이상이었다.
"그러니까 아프다니까─!"
랏셀의 비명에 욕탕이 대폭소로 가득차는 와중에, 레도는 새로이 알게 된 육지의 복잡한 실정과, 수수께끼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
"정말, 시끄럽네. 남탕은 대체 무슨 소동인지"
탕에 양 팔을 걸치고 풍만한 가슴을 숨기지 않는 벨로즈였다. 두런두런 흘러들어오는 목소리에, 함께 탕에 들어가있던 멜티는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사야는 쿡쿡 웃었다.
"어차피 원인은 피니언이겠지. 성장이라는 게 없다니까"
"언제나 있는 일이잖아. 저게 장점인걸"
"저녀석도 이제 그럴 나이가……"
벨로즈가 투덜거리려는 찰나, 일을 끝내고 돌아온 에이미가 나타났다.
"다들, 수고했어"
수고했어, 라는 쾌활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겹쳐나온다.
가볍게 땀을 씻어낸 에이미가 탕 속에 들어온다.
"하아아…… 살 것 같아─♪"
벨로즈가 묻는다.
"에이미, 메신저 가업의 상태는 어때?"
"선단이 해체되서, 지금까지 머릿속에 넣어뒀던 배치도가 다 날라갔지만, 이제 겨우 익숙해졌어. 그치, 멜티?"
"정말, 처음엔 어떻게 되는 줄 알았는데. 후배들의 앞에서 허둥댈 수도 없고─. 정말 필사적이었다구"
투덜대면서 어깨까지 탕에 담근다.
"뭐, 배달물은 오히려 늘었으니 기쁜 비명이라도 질러야지"
"멜티가 기쁜 건 만남이 늘었으니까, 잖아"
놀리는 사야에게 멜티는 빙긋 웃어보인다.
"그래♪ 서쪽 부두에 엄청난 미남이 있다구!"
"벌써 말 걸어봤어?"
"아니, 아직. 가끔 보기만 하는데도 눈에 보양이 된다니까"
멜티가 황홀한 눈을 하는 한편, 에이미는 꽤 불만인 듯 했다.
"하지만, 너무 바쁜 것도 좀 그래. 오늘만 해도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는데"
사야가 쓴웃음을 짓는다.
"그이랑 만나지 못하니까 말이지"
"맞아…… 레도도 최근엔 바빴고"
여자들만 있다는 안락함 때문인지, 솔직하게 인정하는 에이미였다.
"폐를 끼쳐 미안한걸, 에이미. 기술 교류는 오늘로 끝났으니까, 레도도 조금은 시간이 생길 거야"
"앗, 그렇구나!"
에이미는 벨로즈의 말에 얼굴이 활짝 펴지고나서야 생각이 난 듯 말한다.
"그러고보니 오늘 무슨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았어?"
"그래.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 마침 저기 공로자가──어─이, 스카야"
벨로즈가 탕의 구석에서 긴 은발을 풀어헤치고 씻고 있는 소녀를 부른다.
"네"
"여기서 같이 씻지 않을래? 낮에 있었던 일을 들려달라구"
스카야는 잠깐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여럿이 함께 목욕을 한다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도 있는데, 다들 스카야보다 약간 연상인듯 했다. 그런 여성들과 실오라기 한 장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이야기를 한다니 몹시 긴장되었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겠지.
스카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벨로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스카야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토니아에서 기술 교류를 위헤 파견왔습니다"
정중한 인사에 에이미 일행은 완전히 호감을 갖게 되었다.
나이 차가 얼마 없는 소녀들이기에, 녹아들기도 빨랐다.
적국의 소년과 힘을 모아 위기를 뛰어넘었다는 에피소드는 대체로 호응이 좋아, 처음엔 표정이 굳어있던 스카야도 나중에는 꽤 친근하게 녹아들었다.
이윽고 화제는 가르간티아의 여러 잡담으로 넘어갔다.
"──그런가요. 에이미 씨는 레도 씨랑 교제를"
"그, 그렇게 콕 집어 말하면 역시 부끄러운걸……"
뜨거운 탕에 오래 있어서 빨개지는 것 이상으로 빨개진 얼굴을 탕 속에 감추며, 에이미는 뽀글뽀글 거품을 내뱉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응. 뭔데?"
"레도 씨는…… 원래 이 지구의 인간이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어──맞아, 알고 있었구나"
"무섭지 않았나요?"
"무서워? 레도가?"
"네. 상식도 가치관도 전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그렇게까지 친해질 수 있었는지"
"아아. 으응──"
에이미는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그려내는듯 했다. 그와 만났을 때보다 약간 길어진 머리를 귀로 쓸어넘긴다.
"그러네. 처음엔 말도 통하지 않았고, 레도는 우리들에겐 상상도 하지 못할 괴로운 삶을 살던 사람이었고. 하지만, 어째서일까. 난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했어. 이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고"
충동에 이유는 없다. 스카야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물론 조금은 무섭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바보, 라고 소리친 적도 있어. 하지만, 전혀 모르는 곳으로 팽개쳐져서, 그래도 필사적으로 살려고 한 레도에게…… 눈을 돌리는 일따위 할 수 없었어"
평소라면 반드시 들어올 멜티와 친구들의 놀림도, 지금은 조용했다.
에이미는 그 마음처럼 맑은 눈동자로, 스카야의 물음에 답했다.
"그는 어떤 때라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믿을 수 있어"
***
'마주보는 초승달'의 거대한 두 팔에 안긴 선박들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서쪽의 거대 부두를, 이그나이트가 걸어간다.
그 어깨에 걸터앉은 스카야는, 새벽녘의 느릿하게 흐르는 바닷바람에 오랜 목욕으로 덥혀진 몸을 식히고 있었다. 거대 부두의 근원 부근에서 스나이더가 보낸 사람이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거인의 율동적인 발소리를 들으며, 에이미의 말을 뇌리에서 되새겨본다.
레도라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다. 직접 이그나이트──그가 말하는 머신 캘리버에 관해 대화했을 때,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현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된다.
타산도 밀당도 없이, 에이미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레도에게 순수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대체 어느 정도의 사람에게 그런 만남이 찾아올까.
불현득,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실감이 덮쳐온다.
대신할 수 없는 무상의 신뢰와 사랑을, 자신은 이 손으로 영원히 파묻어버린 게 아닐까.
자신은 이미, 누군가를 신뢰하고 누군가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절대로.
──당신을 믿어서 다행이야.
바닷바람의 틈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그나이트가 멈춰선다.
거대 부두의 내부는, 육지와 넓은 바다가 똑같이 보이는 장소였다.
"이쪽이야, 스카야"
밖에 내달린 작은 부두에, 가르간티아의 수리 작업선이 정박해있다. 녹을 방지하는 붉은 도료로 칠해진 연결 암이 갑판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그 끝에, 그가 있었다.
"랏셀"
"이쪽으로 와봐. 경치가 좋아"
어째서인지, 스카야는 망설임 없이 따랐다.
이그나이트에서 내려와 잔교를 건너, 인기척이 없는 수리선의 갑판으로 향한다. 연결 암의 근처에 가자, 아직 어렴풋이 빛이 남아있는 남쪽의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보여?"
시선을 집중하며, 암 위로 나아간다.
수평선에서 하늘로 향해 뻗어있는, 한 줄기의 광선이 보인다.
"시간의 기둥. 이쪽을 향해 오고 있지만, 아직 아랫부분은 수평선 너머에 있어"
"──그러네"
석양색 비슷한 기둥은 오로라의 비단을 두르고, 아득히 높은 곳에서 밤하늘에 녹아들고 있었다.
랏셀의 조금 뒤에서, 스카야가 멈춰선다.
이 장소의 같은 곳에서, 레도와 에이미가 처음 마주봤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말하고 싶은 사실이 두 가지 있어"
랏셀이 입을 연다.
"마지막 실습에서 사고가 났을 때…… 도와줘서 고마워. 네 실력이라면 와이어를 나에게 정확하게 건네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어"
"어째서?"
"그야…… 봤으니까. 실습 기간 중에 계속, 말야"
스카야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랏셀은 쑥쓰러움을 감추려는 듯이 코끝을 긁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계속 사과하고 싶었어. 내가 잘못해서, 너한테 폐를 끼쳤어"
스카야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죠?"
"그야, 탈옥했을 때의 일 말이야.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켜버려서 네가 징계를 받았잖아. 그러니까 공주님인데도 실습따위에"
스카야가 쿡쿡 웃는다.
"뭐, 뭐야.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
"아뇨. 확실히 그 사건이 관계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원래부터 전 융보로를 움직이는 일에 종사하고 있어요. 당신이 마음쓸 일은"
"그럼 내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구! 그…… 미안! 미안해!"
스프링처럼 고개를 숙이는 랏셀에게, 스카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라고 중얼거리며 목소리에 위엄을 담아 말한다.
"리베리스탄의 랏셀. 전 당신을 용서할게요"
생각도 못한 박력에 놀란 랏셀이 시선을 올리자, 스카야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이걸로 이 이야기는 끝내죠. 이제 더 이상 신경쓰면 안 돼요"
랏셀은 겨우 어깨의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 되었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알았어"
"그럼, 랏셀. 저도"
"응?"
"결단식에서…… 당신에게 쌀쌀맞게 굴어서, 미안해요"
이번엔 스카야가 머리를 숙인다.
"아──그랬지"
"정말 실례를 범했다고 생각해요"
"그건 괜찮으니까 고개를 들어줘. 근데, 어째서"
"변명이겠지만, 그 장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잔뜩 있어서요. 입장 상, 리베리스탄인과 친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됐거든요"
"그랬구나……"
"그 때, 말하지 못했던 사실이 있어요"
"응?"
"저 그 때, 당신이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어요. 육지의 시민이 되고나서 그렇게 짧은 기간에 기술 교류의 인원으로 선발되다니. 분명 많은 노력 끝에 자신의 힘을 인정받은 거겠죠"
"그건……"
랏셀의 안색이 나빠진다.
그건 오해야.
확실히 힘을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그건, 랏셀만의 힘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
"아니야, 스카야. 내 말을 들어줘"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고, 그녀의 눈동자로부터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랏셀은 온몸에 힘을 실었다.
"내 힘에는…… 비밀이 있어"
"무슨, 말이죠……?"
수평선의 잔불이 사라지고, 주변 배의 불빛만이 잔잔히 떠있을 뿐이었다.
뜻을 굳히고, 랏셀은 발 아래 펼쳐진 어둠속에 큰 소리로 외쳤다.
"리브!"
스카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밤바다에, 대체 누가──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두운 수면에 취색 인광이 빛나기 시작했다.
"뭐──뭐야?!"
빛은 이윽고 정체불명의 새하얀 인영으로 바뀌었다.
아니, 사람처럼 보인 것은 한 순간이었고, 그림자는 커다란 지느러미같은 팔다리로 헤엄치는 이상한 생명체가 되어 나타났다.
"저건…… 고래오징어?"
"스카야에게도 그렇게 보이나"
"에?"
"처음엔 좀 더 작았어. 그런데 엄청난 속도로 저렇게 거대해져서, 조금씩…… 고래오징어와 인간이 섞인 듯한 모습이 되었어"
유백색 피부나 수많은 촉수, 몸에 늘어진 푸른 눈동자같은 기관은, 고래오징어를 꼭 닮았다. 하지만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실루엣은, 어린 인간 소녀처럼 보였다.
리브라고 불린 생명체는, 감색의 커다란 눈동자로 암 위에 있는 스카야를 지긋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믿지 못하겠지만…… 리브에게는 기체의 성능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끌어올리는 신비한 힘이 있어"
"뭐라구요?"
"어떤 구조인지, 그건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그 바다에서 죽을 뻔했을 때 리브가 구해줬어. 그 이후로 리브의 힘으로 융보로를 조종해서 공을 세웠지. 실습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너랑 사고를 막았을 때도 그랬어"
거짓말이나 헛소리를 하는 눈은 아니었다. 하지만.
"설마,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는 뒷말은 하지 못했다. 그것은, 스카야 자신에게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리라.
"난 너에게 굉장하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어"
"그래──그랬군요"
"경멸했지?"
스카야는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아뇨"
자신을 바꾸려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다.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이더라도, 스카야의 운명을 움직여준 것을 틀림없는 랏셀의 강한 의지였다.
부정의 말을 하는 대신, 스카야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바꾸는 커다란 힘을 손에 넣은 건──저도 마찬가지예요"
"뭐라고?"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스카야는 30m정도 떨어져있던 부두의 암벽을 바라본다.
"이그나이트!"
어둠에 녹아든 거대한 석상같았던 스카야의 기체가, 기이잉 하며 녹색 빛을 발한다. 흉부 아래에 커다랗게 하나, 두부에 둘.
그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헉──?!"
경악하는 랏셀을 뒤로, 스카야는 한 번 더 날카롭게 명령한다.
"이쪽으로 와! 당장!"
<네. 스카야>
그렇게 말하자마자, 거대한 석상이 도약했다.
올려다봐야할 정도로 커다란 호를 그리며, 하늘을 날아오른다.
혼란스러워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거대한 석상은 스카야의 배후, 수리선의 갑판에 착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저만한 거대 석상의 중량을 각부로 흡수했다고? 말도 안 돼!
경악하며 랏셀이 크게 소리친다.
"저 기체는 뭐야! 누가 조종하고 있지?!"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럴 리 없잖아! 누구야, 나와서 얼굴을 보여!"
<얼굴을 보여, 란 무엇인가. 뭐지. 뭐냐. 뭐라는겨>
"바보취급하냐─!"
"아뇨"
스카야가 마지막 말을 부정한다.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아요. 그는 말을 하며, 생각을 하고, 스스로 창조하는 기체──이그나이트예요"
"이그, 나이트…… 이게, 너의 힘ㅇㄴ가"
<당신. 은. 랏셀>
"헉"
율동적이지만 더듬거리는 소리로 이름을 불리자, 랏셀은 살짝 쫄았다.
"그, 그래! 난 랏셀이다!"
<당신은 랏셀>
확인하는 것처럼 반복하고, 이그나이트는 녹색의 두 눈으로 랏셀을 바라본다.
"이그나이트는 이렇게 온갖 것을 기록하고, 해석하고, 저장해요. 그리고 계속 생각하겠죠. 저와 함께"
스카야의 가슴에는, 랏셀과 조계를 달리던 아침의 사건이 떠오르고 있었다.
랏셀은 맑고 푸른 눈동자에 강한 빛을 머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육지에, 나를 바꾸려고 왔어.
스카야는, 그 날 이후, 계속 가슴에 싹터오던 말을 입에 담았다.
"저는 이그나이트와 함께, 자신을 바꾸겠어요"
랏셀은 눈을 크게 뜬다.
스카야의 안에, 자신과 같은 생각이 깃들어 있었다. 그 사실이, 랏셀의 가슴을 뜨겁게 뛰게 만들었다.
"여기서 맹세하자, 스카야"
"네. 랏셀"
어렴풋한 불빛 속에서 깊게 반짝이는 스카야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본다.
"나는, 우리들은 도전하겠어. 지금까지의 자신에게. 운명에게"
스카야가 이어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막아서도, 꺾이지 않기를"
그것은 젊은이들이 세계를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려는 다짐의 시작이었다.
***
"뭐, 세계를 바꾼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지만 말이지"
같은 밤.
알콜을 사이에 둔 두 청년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술 교류 사업이 거의 무사히 종료되고, 스카야의 마중을 부하에게 맡긴 스나이더가 후커의 술집을 방문한 것은 아주 작은 변덕에 가까웠다.
스카야가 죄수와 함께 잠시 행방불명이 되었던 사건이 있었던 때, 후커에게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하고 싶었던 일은 변명인가 입막음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굳이 필요 불필요를 따지자면,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스나이더는 욕심을 부렸다. 당연히 당당히 할 수는 없었기에, 이전처럼 신분을 숨기고 방문한 것이 최악의 수였다.
술집이니 나름대로 시끌벅적하던 가게 안에서 일반 시민 코스프레를 하려던 것이, 군인으로서의 방심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점주와 밀담할 기회를 찾으며 혼자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살짝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눈 앞에는 이제 두 번 다시, 한평생, 죽을 정도로, 죽어도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남자인 호킨스가, 만들어낸 것처럼 웃고 있는 모습으로 잔을 핥으며 웃고있는 것이었다.
"……닥쳐"
숙취로 인해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벌써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셀 수도 없다.
"그나저나 너도 참 변하지 않네, 스나이더. 공주님의 보호가 꽤나 답답한 모양이지?"
"닥치라고 했지"
"그래도 꽤 대단해졌는걸. 전에 본 군복, 꽤 잘 어울렸다구. 그 작업복도 좋은 느낌이지만. 그거 혹시 변장?"
반박할 기력도 나지 않는다. 한 번 들러붙은 썩은 인연은 꽤나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옛날부터 말하고 싶은 것은 다 말해버리는 녀석이었다.
이미 간판을 내린 후커 노인이, 카운터 안에서 잔을 닦으며 끼어든다.
"호킨스"
"엉"
"스나이더가 저꼴이니 내가 묻겠는데. 너, 왜 돌아온 게냐"
"으음─ 응"
얼버무린다.
"난 잘 기억하고 있지. 뭐, 딱 15년 전 일인데.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나는군"
호킨스와 스나이더는, 이 술집 뒤에 위치한 고아원에서 자랐다. 애주가였던 원장이 죽고, 건물은 이미 예전에 사라졌다.
같은 나이였던 둘은 같은 세월을 그곳에서 지내고, 17살이 되던 때 이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선언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은 이제 질렸어.
──우리들이 박살내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주겠어.
그러나 두 사람이 고른 방법은 달랐다.
스나이더는 공부에 매진해, 아우구스토니아에서 가끔 방문하는 군정학의 권위있는 교수에게 자작 논문을 건네주었다. 특출함을 인정한 교수는 그에게 시민권을 주도록 본국에 보고했다. 조계의 저층민은 손에 넣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시민의 지위를 얻은 스나이더는, 망설임 없이 군에 지원했다. 말단 군인부터 시작해 착실히 공을 세우고 출세를 거듭했다.
산업 전략 대신 세오드라이트가 중앙에서 권력을 잡기 시작한 것이 행운이었다. 아우구스토니아에서는 드문 실력주의자 밑에서 더욱 계급장을 화려하게 장식한 스나이더는, 그의 친딸인 스카야의 보호자라는 일을 맡게 되었다. 권력의 계단을 올라, 현 체제를 근본부터 바꾸는 위령을 만들 작정이다.
한편, 호킨스는 단순한 방법을 택했다.
복잡한 사회 구조를 단순한 계급 투쟁으로 바꿔, 그 사상으로 사람들을 물들여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즉, 혁명의 성취였다.
물론 모든것은 비합법적인 활동이었다. 단, 조계의 치안 유지는 양 국가가 공동으로 담당하고 있었기에, 손발이 맞는 일이 없었다. 그 틈을 파고든 호킨스의 선동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은 적당히 하고, 어디까지나 지하 활동으로 지지자를 늘려간 뒤, 건곤일척의 혁명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기가 무르익기 전에 일부 과격 분자가 격발하고 말았다. 큰 움직임은 외부로 유출되었고, 모인 멤버와 아지트는 일망타진되고 말았다.
꿈이 무너지자 속세를 등진 사람인 양 고래오징어 몰이를 하는 집락으로 몸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곳밖에 도망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대한 내부 분열로 조직은 재기불능이 되버렸지. 해상 집락같은 곳에서 이전같은 기세를 되찾을 리도 없었을 테고.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네가 이곳으로 돌아왔지?"
아하핫, 하며 호킨스가 웃는다.
"바람이 불다니, 좋은 표현이야 할아범. 그 설마하는, 바람이 불었다구"
"무슨 뜻이냐"
"오"
마지막 기력을 쥐어짠 스나이더가 신음하듯 말했다.
"호킨스…… 너, 뭘 하려는 거지"
"너랑 똑같아, 덜렁이 스나이더"
이 빌어먹을 세상을 박살내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주겠어.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고, 후커에게 술값을 낸다.
"술이 깨면 전해줘. 세상이 바뀔 때까지 넌 술 마시지 말라고"
완전히 의식을 잃은 스나이더를 돌아보지도 않고, 호킨스는 술집을 뒤로 했다.
◆◆◆
기술 교류 사업을 끝낸 랏셀이 조계로 돌아오고나서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그 날의 파견 일을 끝낸 랏셀, 콕스, 테아시는 점심무렵부터 밖에 나간 채 돌아오지 않는 호킨스때문에 속을 태우고 있었다.
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테아시였다.
"정말, 모처럼 육지에서 보기 힘든 음식을 가져왔는데"
"뭔데?"
"소시지라고 한대. 가축의 장 속에 저민 고기를 채워서 만들었다더라"
"육지 녀석들은 그런 걸 먹냐. 으웨엑"
"그런가? 꽤 맛있어 보이는데"
토하는 시늉을 내는 콕스에게, 랏셀은 시원한 얼굴을 보인다. 노동 뒤의 적당한 피로감에 싸여 저녁밥을 기다리는 느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최근 일주일 동안, 랏셀의 일은 매우 순조로웠다.
지금까지의 자신에게 도전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도록. 스카야와 맹세한 말 그대로, 자신감과 결의가 넘쳐흐르는 모습이 주변 인상을 좋게 만든 모양이었다. 언젠가 글래디에이터에도 탈 수 있는 일류 조종사가 되리라. 지금 눈 앞에 놓은 일이 그런 미래로 이어지리라는 확실한 손맛이 느껴진다.
"아─ 정말, 더 이상 못 기다려! 준비할 거야!"
테아시의 선언대로, 일동은 먼저 저녁밥을 먹기 위해 마루에 자리했다.
호킨스가 돌아온 시간은 한밤중이 된 뒤였다.
뭘 하고 왔는지, 옷 여기저기가 더러워진 흉한 꼴에, 셋은 불평하려던 말을 집어삼켰다. 호킨스는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말투로 랏셀에게 말했다.
"진정하고 들어라"
"뭐, 뭔데……"
"폭탄 테러로…… 아우구스토니아의 공주님이 죽었다"
***
"각하! 그 명령은 각하께서 내린 것입니까"
"그래. 내가 명령했다"
"들은 적 없습니다!"
따지는 스나이더에게, 세오드라이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군령부를 통할 필요가 있나. 예항하는 전함이라면 모를까, 해상 연구 시설은 우리 산업 전략성의 관할이야"
"그게 아니라…… 따님의 안위가 확인되지 않았단 말입니다!"
스카야가 사령을 맡고 있는 해상 연구 시설이, 조계를 떠나 아우구스토니아 본국에 귀항하던 도중, 불온분자가 조종하는 잠수 융보로에 의해 배 밑에 설치된 폭탄이 작열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침수가 시작된 시설로부터, 오그멘티드 바디의 격납 구획은 재빠르게 분리되었다. 긴급시를 대비한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폭파로부터 2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스카야와 이그나이트의 상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시설을 가라앉힌다는 명령은……!"
"무슨 말을 하는 게냐. 그건 실습용 바디 연구 거점일 뿐. 바디 본체만 무사하다면 시설은 가라앉히고 기밀을 지켜야 한다. 생존자 탐색따윈 쓸모없는 일이야"
"하지만! 만에 하나, 시설에 스카야 님이 갇혀있다면"
"닥쳐라, 스나이더!"
한층 더 낮은 목소리에, 스나이더는 몸을 움츠린다.
세오드라이트는 조금 생각하더니,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스카야가 불온분자의 테러에 의해 죽었다고 공표해라"
스나이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기밀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감추도록. 범인이 어느 국가 인간인지를 불확정하게 해. 이 기회를 노려 조계를 좀먹는 테러리스트 놈들을 일소해야 한다. 리베리스탄쪽을 견제하기에도 좋겠지. 작전 지휘는 네가 맡아라, 스나이더"
스나이더는 전율했다.
일전에 스카야에게, 세오드라이트는 사람을 버림패로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인줄 알았던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말았다.
세오드라이트는 친딸의 목숨을 이용해 정략적인 우위를 점하려는 것인가.
잠시 대답도 못하는 채 우두커니 서있는 스나이더에게, 세오드라이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알겠나. 인민에게는 언제나 동요, 긴장, 상호불신을 심어두는 게 좋아. 그리고 한 번 사회불안이 조성되면, 이는 통제의 호기가 된다. 기억해두도록"
"예──"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낸 스나이더에게 명령이 내려진다.
"가라"
***
포고가 내려졌다.
아우구스토니아 대신의 딸을 노린 폭파 사건은, 무투를 기다리던 조계에 커다란 불안을 가져왔다. 테러리스트를 위험시하는 기세가 드높아졌으며, 동시에 범인 색출의 주도권을 아우구스토니아 측이 쥐게 되었다.
출신이 확실하며 공로가 있는 자가 조계 전역에서 모집되어 테러리스트 사냥에 동원되었다.
경비 활동 등에 사용되던 군용 융보로가 아우구스토니아로부터 대여 가능하게 되었으며, 잠복 장소로 의심되는 지점을 제압하기 위한 공격 부대가 편성되었다.
그곳에는 랏셀의 모습도 있었다.
호킨스로부터 스카야의 부고를 전해들은 날 밤부터, 랏셀은 혼이 빠진 인간처럼 되고 말았다. 갈팡질팡하며 난리치는 콕스와 테아시에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무릎을 꿇고 망연자실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테러리스트 사냥을 위한 인원 모집 포고가 내려졌다.
이를 본 랏셀은 되살아났다.
너무나도 준비가 좋은 아우구스토니아군의 움직임을 의심해보지도 않고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반대하는 테아시와 콕스의 말에는 일절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의 내 힘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야"
"그걸로 공주님이 기뻐할까?"
호킨스가 물어봐도, 랏셀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출발 준비를 했다.
군용 융보로에 탄 랏셀은, 작전 중, 동료의 눈을 피해 리브를 태우고는 귀신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범인이 잠복해있다고 의심되는 장소에는 가차없는 공격을 가했다. 한 명이라도 많은 용의자를 색출하고, 거점을 파괴하고, 소탕했다.
이것은 구제다.
조계라는 쓰레기장에 꼬인 벌레들을 뭉게버리는 작업.
평온하게 가라앉은 듯한 무감정으로, 최대 출력으로 발휘하는 리브의 능력을 사용해 온갖 대상을 유린한다.
토벌 작전은 사흘 밤낮으로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범인은 리베리스탄 출신의 반 정부 그룹이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미쳐 날뛰는 격정에 덮쳐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리베리스탄인이라고 의식한 적은 거의 없었다. 어디까지나 바다에 사는 사람으로서, 증오와 포기의 중간에 끼어 왔다갔다하면서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대상. 그게 리베리스탄이라는 국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리베리스탄은 스카야를 죽인 나라.
그 피가 자신에게도 흐르고, 앞으로도 그 나라의 인간으로 취급받을 것이다.
질색이다.
해상 집락에서 살며 느꼈던 그 어떤 부조리보다도 더 깊고, 더 어둡게, 랏셀의 심장에 와닿는다.
스나이더로부터 은밀한 접선을 받은 것은,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었다.
***
"랏셀 군. 날 기억하고 있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불러낸 폐공장에서, 스나이더는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랏셀을 평가하듯 훑어본다.
"아…… 당신이었나"
랏셀이 기죽지 않고 말한다.
"스나이더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들었지만. 물론 기억하고 있지, 날 독방에 처넣은 군인 아저씨. 아니면 스카야에게 대들지 못하는 불쌍한 아저씨, 였나"
랏셀이 도발해보지만 스나이더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뭐라고 말해도 상관 없어, 랏셀 군. 내가 제안을 하나 하는데, 들어주기만 해도 좋아"
"제안?"
"넌 이전 테러리스트 토벌 작전에서 우수한 전과를 올렸지. 너의 큰 활약으로 불온분자를 뿌리뽑고 조계는 크게 안전해졌어. 그래서──너를 우리 아우구스토니아의 군으로 초청하고 싶다"
"……뭐라고?"
머릿속에서 말을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내가, 군인. 그것도 아우구스토니아의.
"네가 죽은 스카야 님에게 무언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넌 스카야 님의, 이른바 복수전에서 공을 세웠어. 조계 평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지"
이번엔, 말을 이해한 순간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충동을 느꼈다.
"내…… 내가…… 평화? 상징? 아하하핫……"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소란스러운 웃음소리.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무슨 말이냐고. 뭐가 평화냐고. 크흐흐……"
순간 감정이 뒤집어졌다.
"무슨 평화! 스카야는 이미 없어!"
폐공장에 쩌렁쩌렁 울리는 절규와 함께, 랏셀은 근처 기둥을 주먹을 내려쳤다.
잔향이 사라질 무렵, 스나이더는 내리깐 시선을 들어올렸다.
"스카야 님은, 우리 군의 기술 장교셨다"
"그런가. 높으신 분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스카야 님이 혼신을 기울여 연구하셨던 '오그멘티드 바디'의 조종사로서, 널 맞아들일 용의가 있다"
랏셀의 볼이 움찔한다.
스나이더가 군화 소리를 울리며 천천히 다가와, 속삭인다.
"글래디에이터 따위는 발뒤꿈치에도 못 미치는, 무서울 정도의 성능을 갖고 있지. 스카야 님의 혼이 담긴 기체에 타볼 생각은 없나?"
***
신청서를 내기 전에, 랏셀에게는 확인해둬야 할 사실이 있었다.
스카야가 계속 신경쓰던 사내. 가르간티아의 레도.
기술 교류 기간동안 어느 정도 주워들은 것은 있다. 그가 우주에서 찾아온 다른 문명의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지식을 뛰어넘은 '하늘을 나는 융보로'의 조종사라는 사실.
나중에 스카야에게 이그나이트의 비밀을 듣고 이해했다.
그녀는 이해 범주를 벗어난 초 고성능의 인간형 기계에 대해 알고 있는 레도로부터, 정보를 얻으려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보트를 조달해 그가 사는 배를 찾아갔다.
실습에서 제자였던 랏셀을, 레도는 의심 없이 환영했다.
"랏셀. 잘 왔어"
"……아뇨"
방문 의도는 전하지 않았다.
랏셀은 바로 핵심을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스카야랑 무슨 말을 했지?"
"실습에 관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거짓말"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난 들었어. 이그나이트의 비밀을. 스카야가 너한테 흥미를 갖지 않을 리가 없지"
레도는 순간 시선을 피하고, 다시 눈을 맞췄다.
"그렇다면, 나로부터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어. 그녀와 그렇게 약속했어"
"알고 있잖아! 스카야는 죽었다고!"
레도는 이번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이야. 너에게 말해도 좋지만, 그녀에게 확인할 방법은 더 이상 없어"
성실한 사내다. 상대가 죽었기에 신의에 어긋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알겠어. 네가 어떤 녀석인지, 나 나름대로 알겠어. 이제 더 묻지 않을게"
레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신, 하나 더 물어볼──아니, 봐줬으면 하는 게 있어"
"뭐지?"
"이리 와 줘"
랏셀은 레도를 보트로 데려갔다.
레도는 지금 인양업에 종사함과 동시에 고래오징어의 생태를 조사하는 연구자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문명이 발전된 곳에서 왔다면, 어쩌면──.
"뭐가 있다는 말이지?"
랏셀은 대답하지 않고 주변에 인기척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리브!"
물 밑에서 감청색에서 비취색의 그라데이션을 그리며, 리브가 살포시 물가로 떠올랐다.
유백색 피부와 구불구불한 실루엣에 레도가 무심코 뒤로 물러선다.
"읏! 고래오징어?! 아니──"
스카야와 닮은 반응이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참으며, 랏셀이 말을 계속했다.
"리브. 이리로 올라와"
바다에서 촉수를 꺼내든 리브가 감색 눈동자로 한 번 끄덕이고는 비단같은 팔을 배에 걸치고 몸을 들어올린다.
"이, 것은── 대체!"
과연 레도도 리브의 모습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랏셀의 키에서 딱 절반정도까지 자란 리브는, 커다란 지느러미같은 부분을 다리로, 큰 촉수를 팔로 보면 실루엣만큼은 어엿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이녀석은 리브야. 이름은 내가 지어줬어. 너라면 리브의 정체가 무엇인지──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레도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모르겠군…… 알 리가 없잖아! 고래오징어의 아종, 권속…… 아니, 이런 모습은──"
갑자기 레도가 절규했다. 딱 하나 마음에 짚이는 것이 있었다.
히디어즈 라바──고래오징어의 유생.
레도가 일전에 체임버와 함께 사력을 다해 싸우던 히디어즈라는 우주생명체는, 고래오징어와 같은 근본이었으며, 그 정체는 유전자 조작에 의해 극한 환경에서 적응한 인류였다. 그 비밀이 밝혀진 깊은 바다 밑에서, 레도는 한없이 어린아이에 가까운 모습을 한 유생체를 마주했다.
눈 앞의 생명체는 어딘가 그것과 비슷하게 보였다.
하지만, 히디어즈도 고래오징어도, 성장에 따라 사람의 모습과는 크게 동떨어진 모습이 된다. 레도는 이렇게나 인간의 윤곽을 띄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다.
끝없는 의문이 흘러넘쳐, 사고가 혼란으로 치닫는다.
리브가 사푼히 오른쪽 팔을 내뻗는다.
레도는 무의식적으로 표정이 굳어졌다. 랏셀도 리브의 의도를 알지 못해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리브는 팔로 레도의 관자놀이부터 볼까지 쓰다듬고, 스윽 눌러본다. 상대의 체온을 확인해보는 듯한, 상냥하고 부드러운 동작이다.
그때였다.
리브의 오른팔 표면이 투명해지더니 취색의 미세한 가루가 응집하기 시작했다. 무수한 입자가 광선이 되고, 물결치는 듯한 복잡한 파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강한 긴장감에 둘러싸이면서도, 레도는 굳어진 상태로 움직이지 않는다.
"뭐지, 이…… 리브는 뭘 하려는 거야"
랏셀에게도 한 적 없는, 처음 보는 행동이다.
"나도 몰라. 하지만"
괜찮아. 그것만은 말할 수 있다. 리브는 이렇게, 무언가를──.
그 순간이었다.
랏셀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다.
촉수로 된 팔 끝에 닿아있던 레도의 머릿 속에서만, 그것이 울렸다.
부드러운 파도가 겹겹이 얽힌 실타래가, 시원한 음색을 내는 듯했다.
<당신을 알고 있어>
***
그로부터 잠시 뒤의 일이다.
리베리스탄군은 국내 전토로부터 인재를 모집, 두 번째 투사 선발을 개최한다.
무투와 같은 규칙에서 싸워 이기는 전투. 4년 전 무투에도 선발된, 재선을 바라는 성원도 높았던 투사가 첫 참전한 상대에게 대패를 겪는다는 큰 사건이 발생했다.
무서운 실력을 지닌 그 참전자는, 연달아 몰아치는 글래디에이터의 베기와 찌르기를 질풍처럼 피하더니, 번개같은 일격으로 이를 격퇴한 것이다.
하얀색을 기본바탕으로 하며 진한 붉은색의 아머로 가슴과 양 어깨를 무장한 굳건한 기체에는, 잔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조종석에서 모습을 드러낸 소녀가, 기체 어깻죽지에서 쓰러진 상대를 내려다본다.
16세. 깊은 보라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고, 승리의 감개도 없다.
입술을 작게 깨물게, 거칠게 잘라 짧아진 은발을 흔들어 턴다.
"이그나이트. 다음번엔 지금의 두배 속도로 이겨야만 해"
기체가 두부에 반짝이는 눈동자로 명멸시킨다.
해상 주민의 신분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출세한 그 소녀는, 폴라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었다.
하 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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