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일이야, 레도 씨"
랏셀이 물어봐도 레도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리브가 관자놀이를 만진 직후부터 눈을 크게 뜬 상태로 경직해있다.
예고도 없이, 리브가 대고있던 손을 떼었다.
레도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낮춘다. 리브도 아무 감정도 없는 모습이다.
자기만 홀로 남겨진 듯한 상황에 초조해진 랏셀이 목소리를 높인다.
"저기, 레도 씨"
"……목소리가"
"응?"
"목소리가 들렸어"
겨우 이 말을 내뱉고, 레도는 경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눈으로 랏셀을 바라본다.
"목소리? 누구의"
레도가 멍한 시선으로 리브를 가르킨다.
"어, 어……? 리브가, 뭔가 말했다고?"
자기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레도가 고개를 끄덕인다.
랏셀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나한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어.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뭔가 잘못 들은 거 아냐? 환청이라던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니, 머릿속에 직접 울리듯이, 확실히 들렸어"
"리브가 뭐라고 말했는데"
"……나에 대해 알고 있다, 라고"
"설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리브에게 몇 번이나 놀람을 금치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 외의 생물체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레도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이런 때에 장난을 치는 사람이 아니다.
"리브. 너, 정말 말을 알아 들어? 말할 수 있다면 나한테도 뭔가 말 좀 해봐"
랏셀을 살짝 쳐다볼 뿐, 리브는 역시 침묵할 뿐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바닷속에서 목숨을 구해준 이후로, 리브와 계속 행동을 함께 했다. 치이치이 하며 작게 울음소리를 낸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말을 하는 모습은 전혀 본 적이 없다.
레도는 알 수 있고 자신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랏셀과 만나기 전에, 둘이 어딘가의 바다에서 만났다던가──아니,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레도가 이렇게까지 놀랄 리가 없다. 레도 역시 리브같은 존재는 처음 봤으리라. 여러 의문이 차례차례 생겨나지만, 하나의 결론으로 나오지가 않는다. 보니 레도도 리브를 바라보는 채로 뭔가 생각에 잠겨있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서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레도 씨. 제안이 있는데"
"뭐지"
"동료가 있어. 리베리스탄의 해상 집락에서부터 계속 함께해왔고, 리브에 대해서도 만났을 때부터 잘 알고 있어. 그녀석에게 이 일을 상담해보지 않을래?"
별난 녀석이지만 박식한 안경 사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인물이라면, 뭔가 알 수 있을 거란 말인가"
"그것도 잘 모르지만, 물어는 봐야지. 지금으로선 하나도 확실한 게 없잖아?"
***
랏셀의 조계 거주지는 폐선이다.
술집 겸 정보상인 후커에게 얻어서 살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지만, 호킨스의 손을 거쳐 더욱 개조되었다. 지금은 외부에 6개의 바퀴를 장착한 수륙양용 보트──'장갑차'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진화를 거듭했다. 랏셀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며, 레도와 리브를 데리고 거처로 향했다.
배에는 호킨스 외에, 빠르게 일을 끝낸 테아시와 콕스도 돌아와 있었다.
그들도 기술 교류 사업의 결단식에서 레도를 보긴 했지만, 담당이 달랐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는 세 사람에게, 랏셀이 지금까지의 경위를 이야기한다. 리브가 말을 했다는 구절에 이르자, 역시나 호킨스가 눈을 반짝이며 뛰어들기 시작했다. 안경을 고쳐쓰자 렌즈가 반짝 빛을 낸다.
"정말이냐 그게?"
"나, 나한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 목소리는 나밖에 듣지 못했어.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느낌이었지. 리브가 촉수 끝으로 여길 댄 직후였어"
레도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르킨다.
"호오오, 과연. 닿은 상대만이 리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라"
설명을 들은 호킨스가 빠르게 무언가의 가능성을 내놓았다.
콕스가 흥분해서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친다.
"굉장하잖아, 리브! 말을 할 수 있다니, 역시 대단해!"
"의미를 모르겠네. 넌 좀 조용히 있어봐!"
"아얏! 으윽"
테아시가 옆구리를 꼬집자 콕스가 쓰러지는 한편, 랏셀은 호킨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킨스라면 뭔가 알 거라고 생각했어. 조사해주지 않겠어?"
"물론, 그럴 생각이야"
후후훗, 하며 수상한 웃음을 흘리는 호킨스는 처진 눈을 더욱 내리깔며 리브를 끌어안았다.
"자아 대체 어떤 시스템일까나? 나에게도 뭔가 말해주지 않을래? 응?"
기분 좋은 듯 중얼거리면서 호킨스가 작업대에 쌓인 잡동사니를 한쪽으로 슥 치워버리고는 정중하게 리브를 재웠다. 지금 보니 흰 가운을 걸친 그의 모습은 마치 무슨 진료소의 젊은 선생같은 모습을 풍기기도 한다.
리브의 진료가 시작되는 한편, 랏셀이 신묘한 표정으로 지어보인다.
"레도, 씨"
"레도면 돼"
"그럼…… 레도. 괜찮다면, 너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을래?"
레도의 표정이 굳었다. 스카야와의 대화를 다시 물어보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에는 아우구스토니아의 기밀이 포함된 정보도 잔뜩 들어있다. 그녀가 죽어버렸다고는 해도, 가볍게 말할 내용은 아니다.
"말했잖아. 난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
"그게 아니라. 너 자신에 대해서 말이야"
"나의?"
"우리들은 아무것도 몰라. 바다 위의 집락에서 태어나, 육지로 다가가는 고래오징어를 몰아내는 일을 했고──그 뿐이야"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랏셀의 모습에, 일행들이 시선을 집중한다.
랏셀이 계속해서 말한다.
"하지만, 넌 다르잖아. 가르간티아에서 지냈고, 터무니없는 긴 여행도 했겠지. 게다가 이 세계에선 아무도 모르는 말도 안 되는 일을──넌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랏셀이 호흡을 가다듬는다.
"넌, 우주에서 왔으니까"
콕스와 테아시가 숨을 죽이고, 호킨스도 리브를 조사하던 손을 멈추고 시선을 이쪽으로 향한다.
레도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깊은 보라색 눈동자를, 랏셀의 푸른 눈동자에 깃든 강한 빛이 똑바로 꿰뚫는다.
"부탁해. 난, 우리들은 너무나도 모르고 있어.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도. 이 세계에 대해서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짧은 말 속에, 무언가 담겨있다고 예감하게 하는 목소리다. 레도는 모여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본 뒤, 마지막으로 누워있는 리브를 바라본다.
"……나도 알고 싶어. 육지에 오고나서 느꼈어. 이 세계의 구조가 무언가를 감추고,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 말도 안 되는 무언가를"
바다은하를 쫓는 2년동안의 항해 끝에, 겨우 도달한 미지의 세계.
두 개의 커다란 세력이 서로 맹렬히 싸우는 육지의 사회는, 무수한 선단에 의해 관대하게 묶인 해양 사회와는 모든것이 달랐다. 이는 레도의 지적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관찰 대상으로 싸잡아 묶기는 이젠 불가능하다.
말할 것도 없는, 스카야에게 들은 이그나이트의 비밀.
레도에게 있어서 다시 자신의 근본을 뒤흔드는 사실.
체임버와 스트라이커 이외의 머신 캘리버가 어째서 이 지구에 존재하는가. 구 문명의 유산인 오그멘티드 바디와, 인류 은하 동맹에 의해 만들어졌을 터인 이그나이트는, 함께 육지에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맞물리지 않는 사실이, 지금도 어떤 설명도 할 수가 없다.
──어째서 세계는 이렇게 존재하는가.
그 질문이야말로 지금 레도와 랏셀을 서로 포개어, 동등한 만큼의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넌 대체…… 정체가 뭐야"
레도가 시선을 올린다.
가르간티아에서 눈을 떴을 때, 몇번이나 했던 말. 선단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은 하지 않던 말이었다.
자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제 병사는 아니다. 우주의 끝에서 태어나, 자신의 몸 전부를 섬멸전에 바쳐온 자신 역시 더 이상 없다. 한편, 인류의 발상이 된 별에서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스스로를 재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는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레도는 입을 연다.
"……알겠어. 나에 대해서 말해보지. 단"
"스카야와의 건은 말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것도 있어. 그리고 또 하나"
"뭔데?"
랏셀의 의문에 가득찬 눈동자를, 레도가 똑바로 응시한다.
"이건 너희들 자신의 일이기도 해. 놀라지 말고 듣고──믿어줬으면 좋겠어"
알았다며 수긍을 하고, 장갑차의 주민들은 별의 세계에서 온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
태양의 이상 활동에 의한 기후 변동으로, 지구 전체 동결이라는 위기에 처해졌던 예전의 지구.
이제 우주 공간으로 활로를 뻗을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낸 구 문명의 사람들은, 그 방법을 둘러싸고 두 파벌로 나뉘어 논쟁했다.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며 과학 문명의 힘으로 우주의 심연을 향해 나아가려 한 세력.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지구 외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며 인공적인 진화를 외친 세력.
양 세력은 지구를 버렸으면서도 계속해 대립을 격화했다. '인류 은하 동맹'이라 스스로를 급진화시킨 전자는, 후자를 '히디어즈'라고 부르며 매우 싫어했다. 그리고 긴 세월에 걸친 투쟁──살육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레도는 동맹의 병사이며, 고도의 인공지능과 두려울 정도의 전투 능력을 지닌 인간형 기동 병기 '체임버'의 파일럿이었다.
거의 모든 군을 이끈 건곤일척의 총 공세와 그 실패.
퇴각하던 도중, 초 장거리 이동을 하려던 모함으로 복귀하기를 실패해, 시공의 뒤틀림에 휘말린 레도는 우연히도 이 지구에 표류했다.
인류가 시작한 별의 모습은, 상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눈보라와 얼음에 갇혀있을 터인 지구는, 표면 대부분을 바다로 뒤덮인 물의 혹성, 즉 랏셀 일행이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를 마쳐있었다.
가르간티아 선단에서 인공 동면으로부터 눈을 뜬 레도는, 그들과 항해를 함께하는 새 최강의 해양생물 고래오징어의 정체에 직면한다.
구 문명의 기록이 가져온 정보.
그것은 그들이 환경에 적응하려고 사람의 모습을 버린 인류의 말로였으며, 이윽고 히디어즈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종이라는 사실이었다.
존재 의의를 근원부터 부정당한 경험.
나아가서는 우주에서의 패주 도중 스스로를 희생했을 터인 상관과 그의 기체 스트라이커도 역시 지구에 와있었다.
해적 선단을 규합해 지구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려 했던 의지는, 파일럿을 잃고 파탄에 빠진 인공지능에 의한 것이었다. 신을 참칭하는 스트라이커와의 장렬한 결전 끝에, 레도는 비뚤어진 지배를 후벼파냈다. 그리고 그것은 다수의 사선을 함께해온 자신의 기체 체임버와의 이별이기도 했다──.
***
장갑차의 주민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너무나도 붕 뜬, 등장인물이 마치 책을 펼쳐 등장하는 신화였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가 지금까지도 계속 활약하는, 역할을 계속하는 미완결의 희곡이기도 하다.
"……너무 믿어지지 않는걸, 처음부터 끝까지"
리브의 몸을 조사하면서 귀를 기울이던 호킨스가, 청중들의 감상을 대변한다.
"하지만, 진실이겠지. 그런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할 이유도 없으니까. 무엇보다, 진실인 편이 재미있어"
가볍게 하는 말과는 대조적으로, 표정에는 두려움과 비슷한 무언가가 섞인,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콕스와 테아시는 벙찐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야기를 끝마친 레도를, 랏셀이 지긋이 응시한다.
슬픔도 흥분도 띄우기 않고 어디까지나 태연한 옆 얼굴이, 오히려 그가 짊어진 것의 크기와 무게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레도가 한 말은, 많은 시사와, 그의 배는 되는 충격으로 가득차있었다.
고래오징어는──사람과 같다.
랏셀은 최근까지 목숨을 걸고 그들과 대치하는 인간이었다.
육지의 사람들은 인류 은하 동맹이 히디어즈에게 그러했듯이, 고래오징어를 몹시 싫어하며 생존을 위협하는 천적으로 규정했다. 본국에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던 해상 집락에 있던 랏셀에게 생업을 고를 여지는 없었고, 단지 다가오는 고래오징어 무리를 쫓아내고 사는 것을 강요당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을, 고래오징어를 적으로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딱히 깊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직관같은 것이었다.
빛벌레의 인광을 둘러쓴 하얀 거체를 뒤집으며 넓은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에, 공포와 동시에 경외를 품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온 남자의 말을 믿는다면──가혹한 우주의 진공상태에 도전하기 위해, 구 문명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육체를 바꿀 각오를 하고, 실행에 옮겼다. 고래오징어는 그 실험 도중에 태어난 자들의 후예라는 뜻이 된다.
유백색의 강인한 외피에서 뻗어나오는 두려울 정도의 위력을 감춘 촉수.
보는 자들을 위축시키는, 체측에 늘어진 푸르고 거대한 안구의 열.
사나움에 있어서는 비교할 수 있는 자가 없는 대양의 왕족들.
셀 수 없을 만큼 가까이서 봐온 그들의 모습에서는, 인간의 기척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도의 말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마음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두말할 것도 없이, 눈 앞에 리브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고래오징어 양쪽의 윤곽을 짙게 띄우는 리브가 지금까지 보여준 다양한 행동을 생각해보면, 공상같은 레도의 말을 뒷받침하기 충분했다.
자신의 직관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 고래오징어는 가벼이 죽이거나 상처입혀도 좋은 상대가 아니었다.
랏셀은 무의식 중에, 왼쪽 눈 밑에 생긴 상처를 쓰다듬었다. 이 상처를 입었을 때, 고래오징어 몰이를 하더라도 결코 그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랏셀"
랏셀은 갑자기 돌아보는 레도에게 허를 찔렸다.
"어, 어어"
"넌 고래오징어 몰이를 했지"
"응"
"그렇다면, 그들의 생태에 대해서도 잘 알겠지. 내 말을 듣고, 리브를 어떻게 생각하지?"
"……너랑 같은 생각이야. 틀림없이, 사람과 고래오징어의 중간 정도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알 수 없는 사실이 너무나도 많아. 어째서 우리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지? 어째서 그게 지금이지? 그리고, 널 알고 있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
"네 말대로, 리브가 정말 사람의 말을 한다면,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그래 맞아. 물어보면 되겠지"
모두의 시선이 리브에게 집중된다.
호킨스가 뒤로 물러서자, 리브가 몸을 일으키고 작업용 책상 위에 편하게 앉았다. 다섯 명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너무나도 맑은 색을 띄고 있었지만,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지는 않는다.
"호킨스. 리브에 대해 뭔가 알아냈어?"
"글쎄……"
랏셀의 질문에, 호킨스는 쓰레기장에서 부활시킨 낡은 의자에서 의기양양하게 허리를 폈다. 녹이 슨 프레임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난 기술자잖아. 생물체의 생태에 대해서는 그다지 박식하지 않아. 단, 닿은 상대에게만 소리가 들린다는 현상의 구조는 알 것 같단 말이지"
"정말이야?"
화색이 돌며 상체를 내뻗는 일동들 사이에서, 테아시가 질문한다.
"어떤 구조인데?"
"골전도야"
"골……전도?"
"그게 뭐야?"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귀에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호킨스가 웃는 것같은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어째서인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리브는 촉수 끝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게 진동시키는 모양이야"
"레도, 알겠어? 뭔가 짚이는 구석이라던가"
랏셀이 물어보자 레도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 나름대로 연구해오긴 했지만, 고래오징어에게 그런 생태를 관찰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애초에 그런 방법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가 있나?"
네 명의 얼굴이 당혹감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호킨스가 강의를 계속한다.
"목소리나 소리란 공기의 진동을 고막으로 받아들임으로서 '들린다'고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야. 귀에 가까운 두개에 전해지는 진동도, 사실은 느낄 수 있어. 이게 의외로 얕볼 수 없는 정보량이란 말이지"
하아, 하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리브는 인간으로 따지자면 성대에 해당하는 기관 대신에, 상대에게 닿은 손가락 끝을 진동시키지. 그게 관자놀이의 골을 통해 전달되고, 마치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리는 듯하게 느껴진다, 라는 뜻이지"
에에엑, 하고 콕스가 불만스러운 소리를 낸다.
"그런 제대로 된 구조라고?"
"구조는 정상적이니까 구조라고 한다구"
"뭐랄까 이렇게, 리브의 상상이 머릿속에 뙇! 하고 전달되는, 그런 구조 아니야? 라디오같이 말야"
"그런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아쉽게도. 직접 만지는 상대 외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잖아"
"하앙, 그런가아"
테아시도 맥빠진 얼굴로 뻘쭘해한다.
"뭐야, 살짝 맥 빠지네"
"왜 맥빠진다는 거야"
"그치만, 리브라면 어떤 신비한 현상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잖아"
"그거 말이 모순되어있지 않아?"
콕스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술을 삐죽 내민다.
"낭만이 없네, 낭만이. 손 끝이 달달달달 떨릴 뿐이잖아"
"나한테 말해도 말이지"
불평을 늘어놓는 장갑차의 주민들을 곁눈질하며, 레도는 이끌리듯이 리브의 앞에 섰다. 선단 주민 치고는 피부빛이 희고 단정한 이목구비가, 미묘하게 굽은 남색비 눈동자에 비춰진다.
그러자, 리브가 고개를 올렸다.
랏셀은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쉿'하며 호킨스와 시끌벅적 떠드는 일행들을 조용히 시켰다. 시선이 다시 집중된다.
레도는 진지한 눈으로 묻는다.
"넌, 나에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 오른팔을 뻗는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레도의 관자놀이에 옅고 투명한 촉수가 닿는다. 그만이 들었다는 목소리를, 다시 내려는 것일까.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와중에, 실내의 불빛 아래서도 확연히 보이는 취색 빛의 가루가, 리브의 유백색 피부 안쪽에서 빛나기 시작한다. 무수한 반짝임은 나선을 그리며 섞여들어, 문양이 되어 서로에게 협조하고, 이윽고 물결치는 파도처럼 모습을 바꾼다.
"이게──"
테아시가 멍하게 내뱉은 목소리는, 이 현상을 처음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상기되어있었다.
다시 찾아올 감각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레도의 몸이 굳어진 순간──그의 양 눈커풀이 움찔거리며 아주 작게 경련했다. 눈동자의 초점이 멀어진다. 굳어진 그대로의 자세로 얼어붙고, 미약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으──으, ……"
테아시가 불안하다는듯이 물어본다.
"저, 저기, 괜찮아?"
"괘, 괜찮아……"
괜찮다며 손을 가까스로 올리고, 목소리를 쥐어짜듯이 대답하고, 레도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리브가, 다시 뭔가를 전하려 한다.
자신들과는 다른 의미로, 보다 깊은, 아마 이 물의 혹성에서 가장 고래오징어와──리브와 관계있는, 별의 바다에서 온 남자에게.
숨죽은 듯한 시간이 흐르고, 리브의 촉수로부터 인광의 파도가 사라진다.
오른팔이 슬쩍 떨어지며, 내려간다. 동시에 반쯤 뜬 눈의 레도가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린다.
"레도"
반사적으로 어깨를 잡아준 랏셀의 품에서, 레도가 작게 머리를 흔들며 옅은 숨을 들이쉰다. 맞닿았던 관자놀이를 누르며, 통증을 참는 것처럼 보인다.
"레도. 들렸지, 다시. 리브의 목소리가"
꿈에서 깬 것처럼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레도가 끄덕인다.
"응"
"리브는 뭐라고 말했어? 널 알고 있다니, 대체 무슨 의미야"
랏셀로부터 몸을 떨어트리고, 레도가 경탄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돌아본다.
"……리브는 확실히, 나에 대해서 알고 있어. 방금 너희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이상의 일을 알고 있었어. 놀랄 정도로 많은 일을…… 지구가 거쳐온 역사도, 내가 여기 있는 이유도"
"하아?! 어째서 리브가 그런 일을 알고 있는 거야!"
"리브는…… 하나가 아니야"
"뭐라고?"
레도의 두 눈이 급속히 이성을 회복한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사고가 불꽃처럼 퍼지고, 짦은 단어의 단편이 되어 입으로 옮겨간다.
"리브는 하나가 아니야. 하지만, 하나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져서. 사람을 떠나고. 이 별의 온갖 인과를 구전해왔어──"
랏셀이 목소리를 높인다.
"하나도 모르겠다고! 대체 무슨 뜻이야, 레도!"
레도는 이성과 지혜로 가득찬 눈빛을 되찾고, 무기적인 표정을 띄우며 리브를 바라본다.
"리브는…… 심해에서 찾아온, 사자야"
"사자──"
"랏셀. 네 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에도, 의미가 있어"
"뭐라고? 리브가 너에게 그 일을?"
"그 의미는──네가 스스로 확인하는 편이 좋을 거야. 그리고"
레도는 눈초리에 힘을 담는다.
"나에게도, 해야할 일이 있는 것 같아"
"어?"
"많은 일을 알고 있는 리브에게도 모르는 일이 있어. 나에게 그것을 확인해보라더군"
"확인한다니……?"
레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은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리브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확인해줬으면 해.
──이 별이, 두고 온 미래를.
◆◆◆
<위협도, 8% 증가>
상대가 슥 뽑아든 기다란 물건을 감지하고, 모니터 일부가 명멸하며 콘솔이 발한다.
<비교적 고경도의 평평하고 매끈한 금속판. 긴 변의 양 측면이 예리하게 연마되어있다>
"검이라는 물건이야, 저건. 무기의 일종이지"
<검. 기억했다>
"단, 당신에게는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는 물건이야. 그러니까 문제 없어. 그렇지?"
<아아, 문제 없어. 스카야>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어슴푸레한 조종석 안에서만으로 한정된지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다.
스카야라는 이름은 지금까지의 자신과 함께 버렸다.
이 이국의 땅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상황 이상으로,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죄에 스스로가 내리는 작은 벌이기도 했다. 얼마나 깊고 끔찍하게 새겨진 상처라도, 시간은 제멋대로 그것을 낫게 하거나 또는 잊게 하기 위해 조금씩 쌓여간다.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니까 스스로 죄에 해당하는 이름을 댔다.
──폴라.
누군가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욱씬거리는듯한, 또는 후벼파는듯한 통증이 마음을 짓누르고, 거짓된 안식을 흘려보낸다.
이거면 됐다. 잠시라도 잊지 않을 수 있다.
컨트롤 칼럼에 끼워넣은 양 손의 감촉을 확인한다.
"다음 동작으로 결판을 내겠어. 알겠지, 이그나이트"
<알겠다>
이그나이트의 기능은 정보 수집과 최저한의 지원으로 그치며, 전투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힘으로. 그것이 새로운 생존 방식에 몸을 던지는 자신에게 채운 족쇄였다.
온갖 국면에서 이그나이트는 이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변화──진화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극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이해하고, 사태를 처리한다. 지금의 그에게 지율 가동을 허락한다면, 기동력과 공격력에 있어서 명백히 어떤 적이라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승리가 무슨 도움이 될까.
그렇기에. 적어도, 이 손으로. 그렇게 정했다.
리베리스탄군의 실내 연습장, 투사 선발의 제 2전이다.
스카야는 이그나이트를 몰고 광대한 투기장의 중앙에서 전투용 융보로인 글래디에이터와 대치하고 있다.
투기장은 바닥이 견고한 콘크리트로 다져진 직경 약 150m의 원형으로 되어있다. 기밀 보안을 위해서겠지만, 도심부에서 떨어진 벽지에 설치된 이 장소에서, 글래디에이터들이 전투력을 겨루고 있다.
스카야와 이그나이트는 이미 제 1전에서 승리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상대 조종사는 4년 전에 개최된 지난 무투에 출전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그나이트 본래의 힘을 봉인했음에도, 그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지금 전투를 포함해, 앞으로 두 번.
이기면, 자신의 힘으로──무투의 의에 출전하는 투사가 된다.
선발은 기본적으로 무투의 의와 똑같이 승자가 남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단, 지금 투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호기심이 많은 공동 조계의 관객들이 아닌, 리베리스탄의ㅣ 정부 문관과 군부 고관들의 차가운 눈동자이다. 모두 합쳐도 20명이 채 되질 않는다. 입회한 사람 수가 적은 것도 기밀 유지의 일환이리라.
선발 출전자는 사용하는 기체를 군으로부터 빌리거나, 스스로 준비해도 상관 없다. 요구되는 것은 기체 성능과 조종 능력으로 상대를 웃도는 것 뿐이며, 일 대 일의 승부에 이기기만 한다면 그걸로 좋다. 단순한 실력주의에 입각한 이 방식은, 정말이지 리베리스탄답다고 할만했다.
아우구스토니아에서는 '질서와 번영'의 국시를 기반으로, 혈통이나 친족만으로 투사가 정해진다. 선발 방법이 재검토되었다는 경우는 기록을 보는 한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큰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단순히 긴 세월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일 뿐이었다. 바보같고 시대착오적이다. 리베리스탄의 합리성, 효율성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중앙 정부 상층부만이 번영을 구가하며, 낡은 옛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고수한다. 그것이 아우구스토니아의 질서였다. 지난번 무투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결과에도 수긍이 간다──.
쓰러트려야 할 적을 앞에 둔 한 순간에 생각한 사고의 틈새로 느닷없이, 내버리고 왔을 터인 과거가 한 사람의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
윤곽이 뚜렷한 용모에 희고 풍성한 턱수염을 기른, 연령을 짐작할 수 없게 하는 장건함과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가득한 위정자의 화신과 같은 남자.
산업 전략성, 세오드라이트.
어리석은 악습을 철폐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정치력을 휘두른──아버지.
적어도, 그는 보수를 싫어하며 조국에 진보를 가져오려고 했다.
그 올바름을, 마음이 반사적으로 거절한다.
스카야는 겨우 눈을 감은 뒤, 샘솟는 적의를 모니터 너머에 대치하는 적의 그림자에 씌웠다. 거리는 약 90m. 고경도 합금으로 만들어진 장대한 검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는, 청색과 백색의 기체. 어떠한 전술을 감추고 있을까──.
그때였다.
<위협 평가 수정, 27% 증가>
이그나이트가 날카롭게 말한다.
거의 동시에, 적 기체의 양 각부로부터 갑자기 홍련의 불꽃과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갑자기 주변 대기가 가열되며, 아지랑이가 생겨난다.
스카야가 눈썹을 조금 찡그리며 중얼거린다.
"기동 지원 장비──아마, 로켓 스러스터"
병기 개발을 맡았으며 그 분야에서 천재라고 칭송받던 스카야는, 처음 보는 병기의 정체를 단번에 간파했다.
내장 탱크에 가득찬 폭발성 액체 연료에 불이 붙고, 연소 가스의 배출 방향을 한정함으로서 생겨나는 반작용을 추진력으로 삼는 화학 로켓. 어림잡아 예상되는 적 기체의 중량에 비해, 큰 소리와 폭염을 토해내는 노즐이 꽤 커다랗게 보인다. 그 방대한 가속력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일격필살의 대검을 꽂으려는 것이겠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스카야도 일전에 같은 장비를 고안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토니아에서는 기초 연구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상층부가 예산 청구를 거절한 이유는 분명 '그런 전투 방식은 비열하다'였다.
지난번 무투에서 리베리스탄이 이 종류의 장비를 사용한 기록은 없다. 즉, 그들은 요 4년 사이에 개발에 성공해 실전 투입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솔직히, 이 나라가 정말 부러워"
스카야는 이해하지 못할 미소를 띄웠다.
"지금, 당신을 타지 못했다면, 난 질투와 분함으로 가득했을 거야"
<무슨 의미지?>
"나중에 설명해줄게"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적 기체가 내뿜는 폭염이 편향 노즐에 의해 가늘게 내뿜어지면서 투명도를 높이고 있었다. 수증기를 가득 메우며 소용돌이치던 연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연료와 탄소의 혼합 비율이 최적화된 증거이다.
노즐이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섬세하게 움직인다. 로켓 모터의 새된 분사음이 보다 날카로워지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스러스터가 그 실력을 드러낼 징조였으나, 스카야는 동요하는 기척도 없다.
"온다"
<모드, 경계로부터 임전으로. 전투상황, 개시>
그 순간, 지면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퍼지고, 주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로켓 내부의 연소 반응이 최대에 달해, 연직 상향으로 제어된 추진력이 기체 중량을 웃돌았다. 중력과 마찰의 고삐로부터 자유로워진 글래디에이터가, 추진력을 수평 벡터로 돌렸다──그 순간, 청색과 백색의 거구는 마치 보이지 않는 괴물이 내뿜는 화염처럼 맹진을 시작했다.
고도는 거의 없다.
자세를 낮게 잡고, 장대한 검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투기장 바닥에 딱 달라붙은 것처럼 돌진해 온다. 화염을 내뿜는 각부가 작게 움직이며, 자세 제어를 하고 있는듯 했다. 빈틈없이 사냥감을 노리며 이쪽을 측면에서 공격하려는 속셈인가.
이만큼이나 되는 일을 스카야는 한 순간에 인식했다.
그리고 그 훨씬 전부터, 이그나이트는 모든 연산을 끝마치고 있었다.
회피.
반격.
선제.
응전.
모든 행동 옵션이 예측되며, 최적화된 기동 시퀀스가 도출되어 있었다. 이그나이트의 지원은 여기까지이며, 실제 기동은 조종자의 입력, 즉 반응 속도에 달렸다.
스카야는 그에 제대로 응했다.
양 손가락을 끼워넣은 컨트롤 칼럼에서 의사를 전달한다. 이그나이트는 그 자그마한 움직임을 적확하게 파악하고, 실현한다.
모니터의 적 그림자가 순식간에 거대해진다.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는 기동력으로 측면에 참격을 가하며 몸을 움직이자, 이그나이트는 공중에서 기체를 뒤집으며 투기장 지면을 뒤덮은 콘크리트 판넬에 오른쪽 발가락을 힘껏 때려박는다.
부숴진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깊숙히 박힌 오른발에 위력을 집중.
글래디에이터의 등 뒤를 돌파.
로켓 스러스터가 내뿜는 열파와 압력이 밀려왔지만, 이그나이트를 뒤덮은 외곽에는 손톱만큼의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순식간에 육박해온 글래디에이터도 역시 가까스로 기체를 뒤집긴 했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공격을 정면을 얻어맞고, 고경도 검을 쥔 양 매니퓰레이터가 일격에 분쇄시켜버린다.
튀어 날아간 검을 공중에서 잡아채며, 이그나이트는 반동으로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참격을 선보인다.
각기 다른 각도로 넣는 내려베기 두 번.
글래디에이터의 양 다리로부터 두 개의 스러스터가 비정상적인 모양으로 잘리며 떨어진다. 내뿜던 연료가 주위의 탄소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며 퓨우웃 하는 소리를 내더니, 혼합기에 인화했다.
3000도에 달하는 복사열선을 머금은 고온도압의 화염구가 부풀어오르더니 대기를 찢는 충격파와 함께 폭파했다. 이그나이트도 말려들었으나, 모니터가 아주 잠깐 화이트 아웃했을 뿐, 조종석의 스카야에게는 조금도 피해가 전해지지 않았다.
이미 양 팔 양 다리를 잡아뜯기고, 전투 기능을 상실한 청색과 백색의 기체는 화염구 속에 짓이겨, 무수한 금속판이 되어 투기장 주변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연료탱크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의 파편이 폭염의 잔재에 그을려 새카만 연기를 토해내고, 타버린 도료와 불완전연소하는 추진제의 악취가 뒤섞여 연기가 자욱이 꼈다.
조종사가 죽음을 실감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물론이고 전투를 지켜보던 리베리스탄 군인들의 눈에도, 모든것은 한 순간의 일이었다. 이전까지 보이지 않다가 투사 선발전에 갑자기 나타난 백색과 심홍색의 기체가, 제 1전에 이어 또다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게다가, 신 개발 로켓 스러스터를 장비한 정예 기체를 상대로.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들 멍하니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마치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이그나이트는 팔랑팔랑 불타며 흔들리는 불길을 되비치며, 윤곽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쇄해버린 적 기체의 잔해를 흘겨볼 뿐이었다.
고경도 검을 뽑아 던진다.
검은 지면에 튕기며, 타다 남은 쇠부스러기에 닿고는 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 곳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음색이 진혼하듯 울리며, 사라졌다.
그것이 신호가 된 것처럼, 이그나이트의 두부에 뚫려있던 녹색 발광부──눈처럼 보이는 것이 아주 희미하게 명멸했다고 생각한 순간, 해치가 소리도 없이 열렸다.
아직 16살의 소녀.
모습을 드러낸 조종사는 모여드는 경외의 시선을 깊게 빛나는 보라색 눈동자로 마주보더니 지상으로 내려와, 두꺼운 가죽주머니를 떼어서 뒷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희고 가는 오른손으로 은발을 쓸어올린다.
손목에 끼워진 팔찌가 탁하게 빛나며, 그녀가 분명 바다의 주민이 맞다며 주장하고 있었다.
***
"좋은 기체군"
위엄 넘치는 굵은 목소리가 투기장을 바라보며 서있는 이그나이트를 아주 짧게 평가한다.
연습장 구석에 설치된 글래디에이터의 주차 공간이다.
정비용 발판의 높이를 지탱해주는 철기둥에 등을 기대고 지급된 전투식량과 수통의 물을 뱃속에 집어넣는 의무적 작업을 하던 스카야는,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를 느끼며 돌아보았다.
역시.
맛없는 식량을 허겁지겁 물로 넘기고는, 얼굴에 드러나는 동요를 억누른다.
다부진 경례와 함께 사내가 말한다.
"리베리스탄 군 대령, 파울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이 거구의 사내는 번쩍이는 훈장으로 장식된 예복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화려함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기능미가 넘쳐흐르는 국방색의 전투복이다. 단련되어 힘이 넘치는 근육질 몸이, 두꺼운 옷감 너머로도 분명히 보일 정도다. 검은 가죽장갑이나 투박한 구두는 매우 오래 사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잘 손질되어서, 그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 모습이야말로 파울의 본질이리라. 장교란 이름뿐이었던 자신따위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역시, 군인이다.
짤그락거리며 발뒤꿈치를 맞춰 답례한다.
"파울 대령. 전 폴라라고 합니다"
"폴라, 인가. 나이는"
"16세입니다"
파울은 쓴웃음짓듯이 흐응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젊군"
속내가 보이지 않는 태도의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스카야가 살며시 찾아내려 한다.
눈치챘을까?
그와는 조계의 공동 관리부에서 행해진 무투의 사전 절충 회의와, 이어진 파티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파울은 리베리스탄 대표단의 일원 및 무투의 의에 출전이 결정된 투사로서.
스카야는 아우구스토니아의 기술 장교이지만, 아무 기대도 받지 않는 말석을 차지할 뿐인 옵저버로서.
그런 자신이 리베리스탄의 인간으로서 무투의 의에 나가려는 자체가, 너무나도 무모한 폭거였다. 만에 하나라도 질 일은 없을 거라 하지만, 이기면 이긴대로 투사인 파울과 어딘가에서 반드시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정체가 탄로나 구속된다면 다행이고, 이 장소에서 사살당해도 할 말이 없는 정도다. 올 때가 왔구나 하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기체의 호칭은"
"이그나이트"
짧게 대답한다. 여기선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봐야 할 때다.
파울은 이그나이트를 올려본다.
"다음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넌 투사로서 이번 무투의 의에 출전하게 된다. 우리 리베리스탄의 다음 번영을 맡아, 아우구스토니아를 박살내는 중임을 맡게 된다는 뜻이지. 각오는 되있겠지"
"물론입니다, 대령님"
즉답한다. 당연하다. 아우구스토니아에는 이미 일말의 아쉬움도 없다. 리베리스탄이야말로 활로이며, 살아가야 할 새로운 장소는 이곳 외에는 없다.
"……좋아. 지금까지 했던 두 번의 전투는 잘 봤다. 이 이그나이트가, 국가의 행방을 좌우할 커다란 힘이 되리라는 사실엔 의심할 여지가 없어"
파울은 탐색하는듯한, 동시에 어딘가 즐거운듯한 눈치다.
"넌 당연히 이 기체가 아닌 다른 기체로 싸울 생각은 없겠지"
"네. 이그나이트를 조종할 수 있는 건 저 뿐입니다"
"그런가"
파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충분히 시험해보도록 해라. 손에 넣은 힘을. 미숙하기에 휘두를 수 있는 만용이, 길을 열어줄 것이다"
"──!"
숨이 멎으며, 소스라친다.
이는 파티 자리에서 섞었던 말이다. 역시, 파울은 눈 앞의 인물이 아우구스토니아의 스카야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몸이 움츠러져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지만, 파울에게 봐달라고 할 생각은 없다.
"따라와라, 폴라"
굳이 그 이름으로 부르는구나. 하지만, 비꼬는 듯한 느낌은 없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폴라라는 이름의 투사 후보로서 취급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파울을 따라 투기장을 반 바퀴 돌자, 이그나이트를 두고 왔던 곳과 똑같은 주차 공간이 나왔다. 한쪽 구석에 셔터가 내려간 격납고가 설치되어있다.
"보도록"
파울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조작하자, 서서히 열리는 셔터의 안쪽에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아까 격파했던 기체와 똑같은, 청색과 백색으로 칠해진 인간형 병기가 한쪽 무릎을 굽힌 자세로 주차되어 있었다.
하지만──스카야는 위화감을 느꼈다.
다르다. 글래디에이터가 아니다.
양쪽으로 크게 벌어진 어깨, 감추고 있는 힘을 느끼게 하는 흉부와 양 팔에 비해, 화사하다고도 생각되는 요추 부위.
끝에 붙어있는 부분이 크고 두터운 각부에는, 여러개의 노즐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아까 싸운 기체가 장비한 로켓 스러스터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원리부터 다른 별개의 추진기구이리라.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디자인으로 구성된, 기존 기술 레벨을 훨씬 뛰어넘는 공작 기술과 기능미 넘치는 이 기체를, 스카야는 알고 있었다.
"이것, 은──"
"오그멘티드 바디"
"──읏!"
리베리스탄이 앞선 사열식에서 바디를 투입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아우구스토니아에서 연구하던 그것과는 각각 부위의 특징마다 큰 차이가 있었지만, 기본 구조는 같다고 느껴진다.
레도가 말했었다.
바디는 구 문명 인류가 마지막으로 개발한 인간형 전투 기계이며, 그가 탔던 하늘을 나는 융보로──머신 캘리버의 조상뻘인 기체. 즉 이그나이트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리베리스탄의"
"너의 다음 상대다"
"읏!"
스카야의 경악을 못 본 체하며, 파울이 말을 잇는다.
"선봉전──땅의 전투에는 이것과 같은 기체를 투입한다고 결정되었다"
무투의 의는 양 국가가 선봉, 부장, 대장 총 3대의 기체를 각각 준비하며 땅, 바람, 하늘의 전투를 겨루는 방식이다.
"현재, 전투력에 있어서 본 기체를 상회하는 기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가 이그나이트로 이 기체에게 승리해서 그 우위성을 증명한다면…… 너는 부장으로 임명되겠지"
놀라며 돌아보는 스카야에게, 파울은 약간 웃음기 섞인 시선을 건넨다.
"대장은 불초, 바로 이 몸이다. 단, 내가 탈 기체는 글래디에이터지만 말이지"
"어째서죠. 대장이라면 대령은 오그멘티드 바디에 탑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단, 내가 대장을 맡은 데에는, 지난 무투에 선봉으로 출전해 아우구스토니아에게 전승을 거둔 무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스카야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뜬다.
"그 3연승을 일궈냈던 사람이…… 대령이었군요"
"당시엔 소령이었지만 말이지"
긴 무투의 역사 속에서 거의 유례 없는, 지난번 무투에서 벌어진 리베리스탄의 3연승. 그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 자가, 바로 눈 앞에 있는 이 사내였다.
"그리고 내가 오그멘티드 바디에 타지 않는 이유는,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기도 하지"
"시간 낭비?"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잃어버린 기술을 되찾고, 구 문명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이 세계를 다시 부흥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 사람이라도 많은 젊은이가 경험을 쌓고, 새로운 장소로 내딛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지. 이러한 때에 늙은 내가 바디를 익숙하게 다뤄서 어디에 쓰겠나"
사전 절충 회의에서 본 자료에 따르면, 분명 42살이라고 적혀있었다. 자기 처지를 잊은 스카야가 무심코 말을 꺼낸다.
"실례지만…… 아직 남은 인생을 헤아리기엔 너무 이르지 않은가요"
파울이 웃는다.
"자백하지. 이 오그멘티드 바디를 처음으로 움직인 것은, 너처럼 젊은 여자…… 아니, 소녀였다. 리마라는 그 아가씨는, 해상 집락에서 태어나며 자라난 융보로 조종사였지. 육지까지 소문난 실력을 높이 사, 내가 징병했다. 그녀는 틀림없이,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지"
해상 집락의 융보로 조종사.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를 떠오르게 하는 출신.
스카야의 속내를 알 리도 없이, 파울이 말을 계속한다.
"그녀의 재능을 직접 보고 깨달았다. 난, 이 세상에 너무 빨리 태어나도 말았다고"
"──……"
"이번 무투는, 아직 아무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게 될 거야. 그 주역으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유감이지만…… 나에게도 해야 할 일은 있지"
새로운 세계──그건 대체 뭘 가르키는 거지?
확신에 찬 말투의 뒤에 감춰진 의도를, 스카야는 꿰뚫어보지 못했다.
"대령은 무슨 말을 하시는──"
"남은 시간은 얼마 없어"
파울이 말을 끊더니, 경례를 건넨다.
"리베리스탄에게 승리와 약진을. 국가를 위해 노력하도록"
답례를 기다리지도 않고, 파울은 발길을 돌렸다.
멀엉지는 등에 경례를 보내며, 스카야도 이그나이트의 곁으로 돌아간다.
국가를 위해 노력하도록.
그 말은, 일찍이 적국에 몸을 담고 있던 지금의 스카야에게 있어서 해학 이상으로 신랄한 운명의 변전 그 자체였다.
이리저리 생각하며, 다시 투기장 주위를 걸어나간다.
문득, 오른팔 끝이 뭔가 무거워진 것같은 느낌이 든다.
실내 연습장의 천장에서 무수히 뿜어지는 조명의 빛에 해상 주민의 팔찌를 비추어 본다.
체온에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일말의 한기를 계기로, 스카야라는 인간을 죽이며,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작열음이 뇌리에 울려퍼진다.
***
그 때──.
조계에서의 기술 교류 사업을 끝낸 스카야를 맞으며, 다시금 바다로 출항한 해상 연구 시설에, 쿵 하며 배를 울리는 듯한 진동과 그에 이어 고막을 압도하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스카야는 이그나이트의 기내에 있었다.
"뭐지?!"
<고열. 고압력. 방출. 다수>
이그나이트가 응답하는 사이에도, 소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한 비상 경보 사이로 산발적인 폭발음이 전해진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정보 수집중>
함내 방송이 울려퍼진다.
<총원, 긴급 배치! 함외 여러곳에서 폭발이 보고되었다. 반복한다, 총원──>
테러리스트의 짓인가.
함외라면, 잠수 융보로로 배의 밑바닥에 접근해 시한폭탄을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갑자기 기우뚱 하며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균형 감각을 잃는다.
"……배가 기울기 시작했어!"
상황을 파악한 스카야는 길이 200m에 달하는 해상 시설의 배치도를 뇌리에 그린다. 지금 있는 곳은 광대한 시설 내를 앞뒤로 꿰뚫는 반송용 통로. 함내 연습장에서의 평가 시험을 끝마치고, 스카야의 방에 가까운 이그나이트 전용 격납고로 이동하는 도중이었다.
<판독. 침수음>
"너무 빨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오그멘티드 바디를 취급하는 해상 연구 시설은, 겉모습 이상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졌으며, 존재 자체도 엄중하게 은닉되어있다. 이 시설의 중요성을 이해했으니 표적으로 삼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파괴한 것을 보아하니, 꽤나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파괴 공작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그나이트, 통신 회선을 연결해줘"
<라져>
이그나이트의 언어 인식이나 상황 판단 능력을 늘리기 위해 고심하는 한편, 스카야는 최소한의 음성 커맨드를 학습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차할 때 스카야의 판단으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콘솔이 명멸하며, 바로 노이즈 섞인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침수 장소 확인을 서둘러!>
<연구원은 대피하라, 반복한다>
<각 과, 발령소에 상황을 전해>
<난 헤엄치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바디 격납 구획, 차단 확인>
마지막 내용에, 스카야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그멘티드 바디의 격납 구획은 독립한 구조로 되어있으며, 비상시에는 차단해서 빠르게 함외로 사출하도록 되어있다.
직원들이 매뉴얼대로 대응하기 시작한듯 해서 안도하려는 순간, 희미한 금속음이 이어서 네 번, 튀었다. 록이 풀리며 연구중인 바디들을 수용하고 있던 격납고가 배출된 것이리라.
"일단은 안심이네"
혼란의 소용돌이 속이지만, 희미하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심혈을 기울여 살피던 연구 대상이, 난폭한 테러로 잃게 할 순 없다.
스카야는 스스로 설계한 긴급 배출 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꼈다. 바디 본체만 무사하면, 연구 성과는 머릿속에 들어있다. 그리고 자기자신은 이 이그나이트가 지켜줄 것이다.
사태가 수습되면 격납 구획을 회수하면──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한 층 높은, 매우 소란스러운 경보음이 울려퍼졌다.
시설의 것이 아니다. 울리는 것은 이그나이트였다.
스카야를 둘러싼 모든 모니터에 무수히 많은 윈도우가 펼쳐진다. 그 모두가 격하게 명멸하며, 경종을 울리는 고동같은 경보와 동조해 주위를 새빨갛게 물들인다.
"무슨 일이야, 이그나이트?!"
<긴급. 사태. 고 에너지를 감지>
"고 에너지?"
<지근. 배 중앙부, 밑바닥>
지금 있는 곳의 바로 밑이다.
두근 하며 소름이 돋는다.
그곳은, 큰 전기를 필요로하는 바디의 연구 시설에 불가결한, 고성능 축전지가 수납되어있는 거대 구획이다.
"설마…… 축전지가 제어 불능 상태로?!"
바다은하에서 떨어져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축전지는 최대 4기의 바디를 동시에 가동시킬 수 있는 용량을 저장하고 있다.
<해당 구획, 온도 상승중>
강한 부식성의 전해액이 격납 용기를 녹이며, 노출된 수소 가스가 구획에 가득찬다면.
"이그나이트,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
외치는 순간, 통신 음성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들려왔던 비통함과는 다른, 낮고 영리하며 날카로운 음성.
<축전 구획의 가스 농도, 최대치. 배관을 개방하라>
"뭐라고?!"
귀를 의심케 한다.
그런 짓을 저지르면 수소와 외부 공기가 섞이며 전기 계통의 스파크 하나로──.
<점화>
그것만 말하며 뚝 하고 통신이 끊긴다. 그와 동시에 스카야 자신의 의식을 날려버리는 폭압과 충격파가 발밑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서울만치 빠른 속도로 확산된 열파가 아직 도망치지 못한 승무원들의 육체를 증산시키고, 용골을 꺾으며, 해상 연구 시설을 두동강내고 말았다.
선체를 구성하던 방대한 양의 금속이 파편이 되어 날아가고, 바다에 떨어지며 수많은 물기둥을 만들어낸다. 한편, 파괴된 곳으로 유입된 바닷물이 화학용액과 섞이며 발생한 유독가스가 주변을 메우기 시작한다.
테러는 계획한 자들의 상정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파손을 불러왔으며, 사태는 최악의 수속을 밟고 있었다.
수소 폭발 바로 위에 있던 이그나이트의 위기 회피 기능은 아직 발전도상이었으며, 기능을 충분히 발휘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의식을 잃은 조종사의 최소한의 생체 기능을 확보하고, 기체는 무수한 파편에 섞이듯이 바닷속 깊이 빠져가기 시작했다──.
***
걸음을 옮기며, 스카야는 오른손을 앞가슴에 끌어당긴다.
자신을 이 투사 선발장에 세워준 팔찌가, 번쩍이는 실내 연습장의 조명을 반사한다.
──뇌파 계측. 기초 율동, 이상 없음. 소생 성공.
물 밑에서 잠들었던 무의식의 심연으로부터 스카야를 끌어올린 것은, 그의 그런 말이었던가.
가파른 낭떠러지의 물가, 몰아치는 파도에 의해 생겨난 바위턱의 그늘 속에, 이그나이트는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눈을 뜨고, 모니터에 펼쳐진 광경을 줌업하며, 스카야는 자신도 모르게 얄궂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곳은 리베리스탄의 항구와 매우 가까운 장소였기 때문이다.
빛벌레가 떠도는 바다은하의 흐름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이그나이트가 폭파를 일으킨 조계 주변 해역을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생존 가능성을 모색해 사람이 많은 이 장소를 탐지해 접근했을까.
상황을 파악하려고 아우구스토니아의 비밀 통신에 튜닝을 맞춘 스카야는, 돌아갈 장소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은 죽은 것이다.
그 테러의 여파로, 폭발에 휘말려 죽은 것으로 되어있었다.
누구의 의도로?
그 함내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통신 음성은, 명백히 아우구스토니아 인간의 것이었다.
테로는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태를 틈타 연구 시설을 의도적으로 가라앉게 만든 자가 있다. 바디의 안전은 확보하며, 스카야가 죽었다고 포고해서 득을 보는 자는 누군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우구스토니아에서 그런 대범한 모략을 구사할 인물따위 한 사람밖에 없다.
산업 전략 대신, 세오드라이트.
아버지는 자신을 포기한 것이다.
악질 테러로 사랑하는 딸을 빼앗겼다고 격하게 말하며, 인심을 규합하는 발판으로 삼았겠지. 더할 나위 없이 그 남자다운 수법이다. 자신의 정략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친딸의 목숨까지 이용한다.
목숨을──이용당했다.
그런 말이 떠올랐을 때, 오른쪽 팔목을 감싸는 감촉이 스카야를 붙잡았다.
──어떤 낯짝으로, 우리 목숨을 사용하는지 말이야.
그래. 그렇게 말한 사람은, 그 랏셀이다.
해상 주민들은 육지의 번영을 위해 희생이 되는 운명을 살고 있다.
그가 말한 의미가, 지금 선명한 형태를 이루었음을 느꼈다.
자신을 포기한 조국으로 돌아갈 의미가 있을까?
──이게 있으면, 적어도 리베리스탄의 바다에서는 자유야.
그에게 받은 팔찌로 해상 주민의 신분으로 위장해, 스카야는 이그나이트와 함께 리베리스탄으로 상륙했다.
아마도 랏셀도 맛봤을 고난을 참고 견디며 입국 허가를 얻어내자마자, 망설임 없이 투사 선발에 참가했다.
이름을 버리고, 지금까지의 자신을 버리고, 지금, 이곳에 있다.
앞으로 한 걸음.
그 리베리스탄의 오그멘티드 바디를 격파하면, 새로운 장소에 설 수 있다.
같은 곳이라면, 보다 높은 장소를.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자신을 모함하며, 속박하지 못하도록.
"이그나이트"
투기장을 반 바퀴 돌아 주차 공간으로 돌아오자,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있는 백색과 심홍색의 거구를 올려다보며, 스카야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다음 상대는 지금까지와는 달라"
<달라? 무슨 말이지, 스카야>
리베리스탄에 상륙한 뒤로, 이그나이트의 지능은 더욱 높아졌다. 자연스러운 언어를 습득하고, 보다 섬세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내가 연구하고있던 것과 같아. 오그멘티드 바디"
<오그멘티드 바디>
"방심해선 안 돼.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나는 바디의 성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리고, 당신에 대해서도. 패배따위, 있을 수 없어"
<물론이지, 스카야. 몇명이 오더라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어>
◆◆◆
공동 조계에 다시 포고가 떨어졌다.
무투의 의를 코앞에 두고 마련된, 테러리스트 토벌의 제 2진이었다.
아우구스토니아군이 준비한 수십기의 군용 융보로가, '마주보는 초승달' 근처의 주차장에 모여, 스나이더의 지령을 기다리고 있다.
조종석 한 구석에, 리브가 몸을 기대고 있다.
남색 눈동자에 비춰지는 랏셀은,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으로 채색된 아우구스토니아의 군복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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