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 융보로의 조종석은 일반 작업용의 그것과 비교되게, 탑승자에게 차가운 압박감을 준다. 쿠션의 얇은 시트에 앉는 순간, 두꺼운 군복을 입고 있더라도 전해지는 싸늘한 한기가 발밑부터 치밀어오른다.
사용된 소재의 양을 따지면 보통 기체와는 다르겠지. 조종간은 평범한 것보다 두껍고, 각종 계기판이나 스위치류의 조형도 언뜻 보니 꽤 단단해보인다. 두터운 풋 페달은 가볍게 밟는 것만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과민한 조종 설정을 전해준다. 외부 장갑이란 허울뿐인 얇은 철판이 안그래도 나쁜 시야를 더욱 뿌옇게 하며, 무뚝뚝한 회색빛 일색으로 물들여진 내부 장갑과 더불어 기내를 울적하기 짝이없는 공간으로 연출한다.
"해상 집락에선, 죽은 녀석은 바다에 흘러보내며 애도했어. 수장이라는 건데"
기체에 열량을 빼앗긴 것처럼, 랏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
계기 판넬과 시트의 틈새에 딱 맞는 틈새를 발견한 리브는, 그곳에서 얼굴만 살짝 이쪽으로 돌린다.
색이 다르게 분류된 토글 스위치를 꾹꾹 누르며 기동 준비를 마치자, 부웅 하는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기체가 대기상태로 들어간다.
시트에 등을 기대며, 가죽 장갑을 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감촉을 확인한다.
"육지에선, 죽은 사람은 관이라는 것에 넣어서 불태운다는듯 해. 딱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시선을 약간 움직이는 것만으로 모든 곳이 다 보이는 만큼, 조종석은 좁다. 이 좁은 공간이 기체와의 일체감, 나아가서는 만능감을 만들며, 조종사의 잠재능력을 최대화한다는 듯하다.
"스나이더가 거창한 이론을 늘어놓았지만, 요약하자면 이미 관 속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니 쫄지 말란 소리잖아"
가볍게 말할 수 없는 농담에, 리브는 어딘가 슬픈 표정을 하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역시,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구나"
장갑차에서, 레도는 다시 리브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계속 함께 지냈던 랏셀에게는 아직 한 마디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뭐, 됐어. 나랑 함께 있어주기만 한다면"
그 말이야말로 리브를 상처입히는 거라고, 랏셀은 깨닫지 못했다.
방금 전부터 통신 스피커에서 들려오던 모래가 떨어지는 것같은 노이즈가 느닷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명료한 음성으로 변한다.
<제군들. 제 2차 소탕 작전 준비가 끝났다>
외장 틈새를 살짝 엿보니, 주차 장소에 수십대의 군용 융보로가 정렬되어있고, 그 정면에 준비된 연설대에 오른 스나이더가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색소가 옅은 얼굴을 희미하게 상기시킨 작전 사령관이 격문을 띄운다.
<이번, 조계의 불온분자들이 드디어 활동을 활발히 하려하고 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코앞에 닥쳐온 무투의 의에 대한 방해공작, 시위 행동의 일종이다. 우리들은 명심해야만 한다. 다음에 있을 질서와 번영을 가져다줄 신성한 무투를 향한 모독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이 발칙하고 괘씸한 행위를 결코 용서해선 안 된다. 우리들은──>
우리들, 이란 누구 말인가.
열을 올릴 때마다 공허함만 늘어나는 연설에, 랏셀은 다시금 나쁜 탑승감을 느꼈다. 그것은 아직 몸에 익지 않은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의 군복 감촉과 똑 닮았다.
장갑차에 레도를 초대했던 날부터 몇일 뒤의 일──.
은밀히 스나이더와 연락을 취한 랏셀은, 전부터 타진해왔던 아우구스토니아군으로의 초빙을 수락했다. 단, 지난번 소탕작전에서 올린 전과만으로는 정규군에 종군할 자격에 못미쳐, 말단부터 시작해 더욱 실적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뭐, 평시보다 유사시가 군인의 꽃이지. 무훈을 쌓아 출세하는 건 오히려 지금부터라고"
공동 관리부의 한쪽 방에 불려진 랏셀에게, 스나이더는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것이다.
준비되어있던 아우구스토니아의 군복을 받아들고, 랏셀은 이렇게 소탕 작전의 제 2진을 따르게 되었다.
흘려듣던 통신음이 갑자기 의미를 띄었다.
<──단, 배후 관계를 찾아내기 위해, 불온분자의 살상은 가능한 한에서 금지한다>
랏셀은 무심코 입꼬리를 일그러트렸다.
죽이지 마, 라고? 테러리스트를?
스카야를 죽인 놈들을?
'우리들'이란 놈들은 꽤나 물러빠진 짓을 하는 듯하다.
아니, 그녀의 복수전은 지난번으로 끝이며, 테러리스트 사냥의 목적은 무투의 의를 무사히 개최하는 것으로 바뀌었단 말인가. 스카야의 죽음에 대해 너무 박정하지 않은가 하는 것에 화가 치밀어오르는 이상으로, 공리를 우선하는 국책을 향한 혐오감이 올라왔다.
"그만 조잘거리고, 빨리 시작하자고, 스나이더"
입 안의 쓴맛을 토해내는듯한 중얼거림은 들리지 않았으나, 사령관의 연설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우구스토니아에 질서와 번영을. 출격!>
오오, 하는 함성이 울려퍼지는데 함께할 생각은 없다. 랏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조종간을 가볍게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풋 페달을 조용히 밟았다.
기체가 그 자리에서 회전한다.
외부 장갑의 틈새 사이로, 시야를 뒤덮는 조계의 전경을 올려볼 수 있었다.
공동 조계는, 대륙에서 포크처럼 튀어나온 3개의 반도 중 중앙부를 나타낸다.
반도의 끝에 해당하는 이 장소에서 바라보면, 조계가 길고 완만한 비탈길같은 지형을 하고 있다고 알 수 있다. 비탈길을 오를수록, 집의 지붕이 크고 화려해지며, 주민의 수는 줄어간다.
그것은 거의 같은 지형을 점유하고있는 리베리스탄도 아우구스토니아도 똑같다.
해발의 높이와 사회적 계층이 비례하며, 극히 적은 부유층과 유력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냉랭한 고지에 터를 잡고, 타인을 내려다보며 산다.
그 주변의 위쪽 비탈은 급속히 격해지며, 기온은 급격히 떨어진다. 저택이 줄지어있는 모습은 사라지고, 황량한 경사를 오른 끝에는 동쪽과 서쪽을 향해 끝없이 이어진 산맥이 펼쳐져있을 뿐이다.
대 산맥은 거대한 육지처럼, 세 반도와 대륙 안쪽을 칸막이처럼 나누며 우뚝 솟아있다. 지금은 구름과 안개가 자욱히 낀 봉우리에서 보는 경치나, 나아가 건너편의 모습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무투의 의 최종 투기장은, 바로 이 산맥의 정상에 위치해있다.
선택된 인간만이 모이는 약속의 땅. 계속 이긴다면, 그곳에 갈 수 있다.
"……봐주겠어, 내가 이 눈으로.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서, 전부 내려봐주겠어"
그러려면 힘을 인정받아야 한다.
자신을 바꾼다. 운명에 도전한다.
스카야를 죽인 리베리스탄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는 동기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지금은, 출세에 대한 욕망이 랏셀을 움직이고 있었다.
뭐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걸까.
많이 알수록, 그 정체를 숨기려 한다. 숨기는 그 자체가 사회에 실체 없는 우열을 만들어내며, 살기 힘들게 하고, 누군가가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살아가는지를 회고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어버린다. 마치 길들여져 살아가는 인생을 향한 의문이나 분노도 잊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익숙해진 해상 집락의 사람들처럼.
그런 삶은 사양이다.
무지라는 초조함, 무력이라는 답답함을 씻어내려면,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 올라가야만 한다.
야심이라 부르는 의지를 눈동자 속에 들끓이며, 랏셀이 말한다.
"가자. 리브"
리브는 돌아보지 않는 채로, 살짝 머뭇거린 뒤, 콘솔에 손을 넣었다.
어둑어둑한 조종석에 유달리 눈부신 취색빛 가루가, 리브의 팔 끝에 응집하며 빛나기 시작한다.
온갖 미터기의 바늘이 뛰어오르듯 흔들린다. 조종간의 감촉이 매우 가벼워진다. 기관총을 쥔 머니퓰레이터의 손가락 끝까지 감각이 전해진다.
리브의 힘은 절대적이다. 이 힘으로, 난 위를 향해 갈 것이다.
군용 융보로의 무리가 몇몇 부대로 나뉘어, 조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간다.
랏셀도 그 열을 따라, 소정의 장소로 기체를 전진시켰다.
***
테러리스트가 잠복해있다는 의혹이 있는 장소는 10여 곳에 달한다. 그곳은 비탈의 중부 근처로, 즉 조계에서도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저층부에 집중되어있다.
랏셀을 포함한 여섯 기체 소대는, 난잡함으로 칠해진 빈민가의 일각에 침입하고는 주의 깊게 기척을 지우며 적의 거점을 포위하고 있었다.
소탕 대상은 비바람에 더럽혀진, 크기만 컸지 당장에라도 쓰러질 법한 허름한 건물이었다. 창고로서 건설되었지만, 치안 문제로 인해 본래 쓰임새를 다하지 못하고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태양은 중천을 살짝 지났을 뿐인데, 좁은 골목 폭과 별채에서 뻗어나온 처마가 주변을 가리는 탓에 암울할 정도로 어둑어둑하다.
그늘에 자신의 기체를 감추며, 랏셀은 주변을 관찰했다.
창고의 정면에 융보로가 출입할 수 있을 정도의 철문. 측면에 설치된 몇개의 창문은 거의 유리가 깨져있거나 빠져있었지만, 전부 높은 위치에 있어서 안을 볼 수는 없다. 아지트로 쓰기에는 적합한 건축물이다.
이건 당첨일지도, 라고 생각한 순간, 통신 스피커에서 <들어라>라며 치지직거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전원, 소정의 위치에 도착했겠지. 거점 내부를 확인한 결과, 사람은 열 명 정도 있다. 소형 화기를 지니고 있지만, 그리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대상은 가능한 생포하도록>
정규 군인은 대장인 그 뿐이며, 나머지 인원은 랏셀처럼 말단 군속이거나 테러리스트 사냥의 모집에 응한 조계민들이 모인 소대였다. 이녀석들에게 그런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겠냐고, 라며 욕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명령에 따를 뿐이다.
<계획대로 창고 양측부터 발포, 외벽을 돌파하면 위협만 하도록. 내가 투항 권고를 하겠다. 작전 개시──>
쏴랏, 하는 짧은 호령과 함께, 모든 기체가 발포를 개시한다.
총구가 불을 뿜는다.
교묘한 배치로 같은 편을 오인사격하는 위험에서 벗어나, 소대는 창고의 벽에 구멍을 뚫기 시작한다. 전 방위를 포위해서 도망칠 곳은 없었으며,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노성이 순식간에 비명으로 변한다.
무수히 많은 탄흔이 이어지며 외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자마자, 안쪽에서 양 손을 든 적의 모습이 보이는 바람에, 랏셀은 기운이 빠졌다.
"시시하네. 이래선 공을 세울 수 없──"
그 순간이었다.
사격음의 사이로, 높은 모터음이 들려왔다. 본능의 경고등이 순간적으로 깜빡이며, 튕겨나가듯이 통신기에 외친다.
"소대장, 융보로다!"
<뭐라고?!>
"적은 융보로를 갖고 있어. 움직인다!"
<저, 정찰할 때 융보로는>
"있다고, 뭘 본 거야!"
<헛소리를──>
상기된 노성이 지워지는 것과 동시에, 밀려오는듯한 폭발음이 울려퍼진다. 이어서 건물 전체가 기울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의 충격이 전해지며, 겨우 남아있던 유리창이 한 장도 남김없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현재 있는 장소에선 볼 수 없는 뒷편으로부터 새카만 연기가 뿜어지며 하늘을 뒤덮는다.
한 순간의 정적이 흐른 뒤, 대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비명이 통신을 가득 메웠다.
<소, 소대장이 당했다!>
<폭탄이다! 융보로가 수류탄을!>
<어째서 그런 물건을 갖고 있는 거야?!>
랏셀은 혀를 찼다.
융보로에 그치지 않고, 그런 위험한 물건까지 놓쳤을 줄이야. 절대 우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은 소대장의 무능함은 둘째치고, 군용 융보로를 일격에 처리한 수류탄의 위력은 얕볼 수 없다. 지금 던진 수류탄이 아끼고 아끼던 마지막 수류탄이라는 확증도 없고, 다른 융보로를 더 갖고 있을 가능성까지 있다.
상처를 입었다고는 하나, 어떤 이빨을 숨기고 있는지 모르는 사냥감에 대해, 사냥꾼들은 한결같이 낭패했다는 모습이다.
<저, 적당히 발포하라고!>
<생포하라는 명령은>
<죽여버리면 포상금은 어쩌냐고!>
<시끄러, 죽고 싶냐고! 쏴, 쏴!>
소대장을 잃은 조종사들은 새로운 지휘관으로 맞이한 자신들의 생존본능이 명령하는대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건물의 온갖 방향으로부터 총성이 울러펴진다.
동료 기체들이 허둥댈수록, 머리 속이 냉정해진다.
랏셀은 건물 정면의 그늘진 곳에 자신의 기체를 숨기고는, 총격을 멈췄다.
고래오징어 몰이를 할 때와 똑같다.
전방위에서 몰아세운 뒤 한 방향만 풀어두면, 적은 그곳으로──.
"──읏!"
펑 하는 금속질의 파쇄음이 귀를 울림과 동시에, 정면 철문이 안쪽에서 파괴되었다.
테러리스트가 이끄는 융보로가 굴러나온다.
재빨리 태세를 정비하며 기관총을 허리에 대고 겨냥하는 모습에서, 조종사의 기량이 엿보인다.
적 기체는 두부, 몸통부, 양 팔 양 다리와 각 파츠의 구조가 제각각이라 통일감이 없다. 요추부에는 머니퓰레이터로 잡을 수 있는 사이즈의 철괴가 여러개 메달려 있다. 아까 폭발한 수류탄이 틀림없다.
파츠의 내력을 지우기 위해, 기체 여기저기에 잔뜩 칠해진 원색 도료의 페인트──그것을 눈으로 본 순간, 랏셀의 뇌리에 무언가 뚝 하며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본 적이 있어──.
망설이면서도 앞날에 희망을 품고 있던, 그 때. 리베리스탄에 막 상륙했을 때, 화물을 분류하던 현장에 나타난 테러리스트들의 융보로도, 이런 색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그 어떤 색도 압도하는, 피와 살점의 붉은 색.
지금 다시, 추레한 융보로가 이쪽을 눈치채며 총구를 올리려 하고 있다. 이미 한쪽 팔은 수류탄을 준비하고 있다.
적의가 노출된다.
랏셀의 눈앞에서 죽어간 이름도 모르는 사내의 모습이 환각으로 나타난다.
노란 헬멧이 붉게 물들며 터지고, 무수한 살점으로 나뉘며 흩어진다.
그것은.
부조리 그 자체인 색.
"오오오오오오오오오!"
절규를 내뿜는 채로 풋 페달을 짓밟는다.
돌진을 개시한 랏셀을 향해, 적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쇄도하는 총알이 외부 장갑에 튕겨나가거나 박살나며 불꽃이 흩날린다.
하지만, 치명적인 피탄은 없다.
리브가 내뿜는 취색 빛이, 지금은 눈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다. 빛의 격류가 뒤얽히며 전자 방사가 되어 제어 계기판으로 흘러들어간다. 모든 행동이 최적화되며, 기체를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 탄알이 도탄되게끔 하는 작용을 만들어낸다.
총격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판단한 적이 수류탄으로 의식을 옮긴 아주 잠깐의 틈새를 놓치지 않고, 랏셀은 한 순간에 거리를 좁힌다. 장갑의 두터운 어깻죽지로 격렬한 몸통박치기를 먹인다.
창고 전체를 뒤흔들며 외벽에 처박힌 적의 기관총을 재빠르게 낚아채며, 포신을 꺾어버린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같은 일련의 움직임을 끝으로, 상대의 허리춤에서 수류탄을 넣어둔 탄띠를 잡아뗀다. 공격력을 잃은 적 기체를 힘으로 일으켜세우고, 랏셀은 기관총의 총구를 조종석에 들이댄다.
트리거에 걸린 손가락에 아주 조금만 힘을 넣으면, 조종자를 짓뭉게서 고기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영거리 사격이 가능한 거리다.
그렇지만, 적 기체는 마지막까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부들부들거리며 마음먹은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로 총구를 밀쳐내려고 몸을 비튼다.
아직도 항복하지 않을 생각인가. 분노로 눈앞이 빨갛게 물든다.
"날 방해하지 마!!"
검지손가락이 트리거를 당기려는, 그 순간이었다.
어두컴컴한 조종석이 새까맣게 변했다.
항상 울리며 의식을 잃지 않던 주 모터의 구동음이 멈추며, 모든 램프의 등이 꺼졌다. 미터기 바늘도 정 반대로 꺾인 채로 꿈쩍하지 않는다.
기체가 완전히 침묵한 것이다.
"뭐야! 왜 움직이지 않는데!"
조종간을 마구잡이로 움직이며, 페달을 밟아봐도 반응이 없다.
"젠장……!"
피가 들끓는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그 관자놀이에, 차가운 촉감이 전해진다.
"──읏!"
콘솔에서 뒤돌아보는 리브의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감색 눈동자로 애처롭게 바라보며 상체를 내밀고, 하얗고 투명한 인광을 띈 팔이 랏셀을 감싸안는다.
"리브, 너야?! 기체를 움직여, 적은 아직──"
관자놀이로 전해지는 감각.
"──!"
뜨겁게 들끓던 전신이 급속히 차갑게 식는다.
잔잔한 파도같은 미지의 자극이 흘러들어오며, 뒤섞이고, 서늘한 목소리가 되어 뇌리에 울린다.
<──랏셀>
눈을 번득 뜨며, 전신이 경직된다.
이것이.
레도가 들었다는 목소리.
리브의 목소리.
<이제 그만해>
"리브, 너…… 냐……"
<이 이상은 안 돼>
반쯤 멍해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랏셀이 목소리를 쥐어짜낸다.
"어째서, 야…… 리브. 나는 이녀석을 쓰러트려야 해. 쓰러트려서, 너랑, 더──"
굳어가는 어깨를 껴안는 리브의 팔에, 힘이 실린다.
<나도 함께 있고 싶어, 너랑. 그러니까>
"──그런, 가……"
굳어지며 떨리던 양 손이 조종간에서 흘러나와 떨어진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낼 기력도 없이,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댄다. 스스로 멈추지 못해서 반복되던 거친 숨이, 몹시 선명하게 귓가를 때린다.
기체 밖을 가득 메우던 발포음이 사라지며, 정적이 일대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랏셀은 겨우 깨달았다.
***
"뭐, 뭐야, 그 차림은!"
그날 밤.
리브와 함께 장갑차의 문을 연 랏셀을 보자마자, 테아시가 소리친다.
콕스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자에서 일어선다.
"어이…… 농담이지, 랏셀!"
작업용 책상에서 드라이버로 기계를 만지작거리던 호킨스는, 말없이 눈을 가늘게 할 뿐이었다.
랏셀은 굳이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으로 칠해진 군복 차림으로 돌아왔다. 세 사람의 제각각인 시선을 강압적인 눈빛으로 일축하며, 군복의 가장 위 단추를 풀며, 언제나 다함께 식사하는 테이블 한쪽에 선다. 리브는 바싹 달라붙어서,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시선을 떨어트리고 있다.
"들어줘, 다들"
"기다려!"
테아시가 막는다.
"말하지 마.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그런 옷은 벗어버려. 넌 군인이 아니잖아!"
콕스도 이어 말한다.
"그래! 게다가 그거, 아우구스토니아의 군복이잖아. 무슨 생각이야!"
"들어달라고 말하잖아"
낮게 깔린 목소리는, 동료들이 아는 그의 모습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들 조용해지길 기다리고, 랏셀이 입을 연다.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얼마 전부터, 아우구스토니아군에서 초빙을 받았어. 전에 날 감옥에 넣었던, 스나이더라는 녀석한테"
"뭐라고?"
호킨스는 낯빛을 바꾸고, 테아시는 절규했다.
"너, 무슨 말이야……"
"아직 군속의 말단 취급이지만, 언젠가 정식으로 입대하게 될 거야. 오늘도 테러리스트 사냥에 참가했어. 리브 덕분에, 잘 풀렸지"
"헛소리하지 마!"
성큼성큼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 콕스가 멱살을 잡는다.
"잘 풀렸다가 아니잖아! 너, 우리들한테는 아무 말도 않고……!"
"그건 사과할게. 하지만, 난 지금, 이게 가장 좋다고 믿고 있어. 너희들까지 군인이 되라는 말이 아니야. 그저, 내 이런 행동을 인정해줬으면 할 뿐이야"
"적당히 해라. 우리들, 약속했잖아. 함께 육지에서 출세하고, 집락의 모두가 편히 살 수 있도록 하자고!"
"잊지 않았어. 그 마음엔 변함 없어"
"근데 어째서 군인이냐고. 어째서, 하필이면 아우구스토니아냐고!"
"마음에 안 드냐"
"당연하지!"
"적이니까?"
"그런 뜻이 아니야! 우리들도, 이제와서 리베리스탄 녀석들에게 꼬리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우구스토니아의 군대를 고르냐? 폭뢰 맞고 죽을뻔했던 사실을 잊었어? 사람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깔보는 건, 녀석들도 똑같잖아. 우리는 우리들의 힘으로 위로 올라가자고, 그렇게 정하지 않았냐고!"
"──……"
"글래디에이터에 타려던 것도 융보로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지, 병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잖아?!"
격정을 퍼붓는 콕스의 비난에도, 랏셀은 침묵할 뿐이었다.
침묵하는 사이에, 테아시가 저기, 라며 끼어든다.
"그 애…… 스카야 때문이야?"
이제 흥분하지 않는 대신, 조용한 비통함을 품은 말투였다.
"그 아이가, 리베리스탄인이 일으킨 테러로 죽었으니까? 그래서…… 복수하고 싶다는 뜻?"
진지한 시선을 받아내지 못한 채, 랏셀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그래, 맞아"
"너 이새끼!"
멱살을 움켜잡고있던 팔을 내팽개치며, 콕스는 랏셀의 뺨을 때렸다.
밀쳐진 선반에서 접시가 몇 장이나 떨어지며 깨졌다.
하지만, 몸을 일으킬 뿐 반격하지는 않고, 랏셀은 그저 진심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게 콕스의 신경을 건드렸다.
"뭐냐고 그게. 결국 여자냐. 그런 복수따위에, 우리들의 마음은 어찌되도 좋단 뜻이냐, 어?!"
"그쯤 해둬"
호킨스가 타이르듯 입을 연다.
"우리들에게도 마음이 있듯이, 랏셀에게는 랏셀의 마음이 있어. 공주님에게 깊이 빠져있었으니,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잖아"
테아시가 살짝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피한다.
콕스가 난폭하게 의자를 끌어당기며 걸터앉아서 랏셀을 째려본다.
"……쳇"
호킨스는 안경을 고쳐쓰며, '하지만'이라며 목소리를 깔았다.
"나로선 도무지,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는 목적만으로는 들리지 않는데 말이지. 아니야?"
랏셀이 살짝 시선을 돌린다.
"스나이더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석의 말을 따르는 건 그다지 추천하지 못하겠는걸. 나쁜 녀석은 아니지만, 그 뿐이니까. 그보다──"
호킨스가 작업용 책상에서 일어선다.
랏셀도 몸을 일으켜, 대치한다. 이번엔 확실하게 시선을 마주한다.
옅은 푸른색 눈동자에 타오르는 것을, 호킨스가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 눈에는, 약간 야심이 지나쳐보이는데. 아우구스토니아군에 들어가, 승진해, 무투의 의에도 나가려나. 그래서? 넌 뭘 하고 싶지?"
빤히 바라보던 랏셀의 눈초리에서, 문득 힘이 빠진다. 미소와도 닮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제 버티지 못하겠어, 호킨스"
"무슨 뜻이지?"
"요전에, 레도에게 들은 이야기, 기억하지"
"잊을 수 없지"
"그걸로 뼈저리게 느꼈어. 우리들은, 그 전까지 생각했던 이상으로, 눈과 귀를 가린 채 살았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왔다고 생각하곤 있었지만…… 그 때만큼은, 마음속 깊이 그렇게 느꼈어"
어딘가 후련하다는 말투로, 랏셀은 이야기를 계속한다.
"조계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무렵에 말야, 나에게 이런 말을 한 녀석이 있어. '알려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된다'고 말야. 리베리스탄의 군인, 그것도 상당히 대단한 녀석이었어. 아주 불쾌했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
맞은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닦는다. 닦은 엄지손가락의 끝을 바라보며, 랏셀이 말을 잇는다.
"집락에서 고래오징어를 몰던 때는…… 내가 뭘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지. 태어났을 때부터 가난했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고, 하지만 별 수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했지. 미래에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생각했잖아? 이 곳만 빠져나가면, 육지에서라면, 괴롭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아니었어. 지금까지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역시 도망쳤던 거야, 그곳에서"
반론하는 이는 없었다. 육지로 오긴 했으나,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모두들 알면서도 못 본 척을 했다.
"육지로 가기만 하면, 편하게 살 수 있다고──그렇게 생각했지만, 결국 본토에서도, 조계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어. 육지도 가난한 사람 투성이야. 다들 필사적으로 살면서, 목숨걸고 일하고…… 왜 죽는지도 모르면서 죽어가는 녀석도 잔뜩 있었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좀 부조리하지 않아? 어째서 이렇게 되버린 거냐고"
격앙도 비탄도 아니다.
그저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말에, 셋은 숨쉬는 소리도 죽이며 그저 들을 뿐이었다.
"누구라도 좀 더 안심하고 살고 싶지 않겠어? 이렇게 많은, 썩을 만큼 많은 인간이 있는데, 다들 그렇게 바란다면…… 좀 더 제대로 된 세상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잖아. 하지만 현실은 달라. 뭐냐고 이게. 좀 이상하지 않아? 그러니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눈초리에 힘을 싣는다.
"그러니까, 난 알고 싶어. 진심으로. 이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지? 무지를 죄로 단정하고, 살아가는 것을 벌이라 정한 녀석은 누구지? 난 그녀석을 찾아내겠어. 그러지 않으면 우리들, 언제까지나 이용당하며 소모될 뿐이야. 그런 빌어먹을 세상은 이제 사양하고 싶다고!"
호킨스는 둥근 안경 뒤로 눈을 크게 떴다.
언젠가, 술집에서 맹새했던 말.
이녀석은, 언젠가의 자신과.
자신들과──.
랏셀이 말을 잇는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보지 않으면, 모든것을 알 수 없어. 난 리브와, 그곳으로 가겠어"
랏셀은 눈을 한 번 감고, 다시 동료들을 바라본다.
"따라와줄 거지?"
침묵이 흐른다.
테아시와 콕스는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집락에서 태어나 자란 둘에게 있어서, 랏셀의 생각은 자신들의 생각과 똑같았다.
사방팔방이 다 막힌 현실을 돌파하려고 나름대로 마음을 정하고, 육지로 올라왔다. 모험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앞길을 가로막는 자들을 쓰러트리고, 소원을 현실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조계에서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하던 나날은, 확실히 충실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것이 당연해지고, 일정 시간이 되면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듯한 똑같은 일상이 되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바꿀 수 없다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망설임을 잘라내듯이, 테아시가 입을 연다.
"……알겠어. 난 따라가겠어"
랏셀을 똑바로 바라본다.
"네 말대로야. 언젠가 출세해서, 언젠가 부자가 되서, 언젠가 집락의 사람들을…… 하지만 그래선 안 되겠지. '언젠가'라고 말하는 건, 도망치는 거나 다름없어"
"테아시"
"네가 군인이 되는 건 반대하지 않을게. 그 대신, 네가 보려는 풍경…… 나에게도 보여줘"
"그래. 약속할게"
랏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콕스를 바라본다.
"넌 어때"
테아시의 의연한 모습에 눈을 빼앗기던 콕스가, 다시금 물어보는 목소리에 돌아본다.
"난…… 난, 군인은 되지 않겠어"
"그래"
"하지만 솔직히,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그렇다면"
"그러니까, 난 널 지켜보겠어"
"지켜봐?"
"네가 군인이라고 우리같은 녀석들에게 잘난 척을 하거나, 윗대가리들한테 꼬리 흔드는 시시한 놈으로 전락한다면…… 다시 널 두들겨 패주겠어. 다음엔 한 대로 끝나지 않을 거다.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패줄 테니까!"
"……알았어, 콕스. 그거면 됐어. 고마워"
흥 하며 콧방귀를 뀐 콕스는 과장된 모습으로 팔짱을 낀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직 아무 입장을 밝히지 않은 호킨스에게 향해졌다. 안경 뒤에 비치는 가느다란 눈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두들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입을 연 그의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따라가지 못하겠어"
랏셀이 눈을 부릅뜬다.
"호킨스"
테아시와 콕스가 말한다.
"어째서. 랏셀이 스스로 정한 일이니까, 응원해 주자구"
"그래, 여기까지 와서!"
그에 대답하지 않고, 호킨스는 평소와 다르게 영리한 눈빛을 비쳐보였다.
"이봐, 랏셀. 넌 언제부터 그런 교활한 녀석이 되었지?"
"──……"
"여러 말을 했지만 말이야. 요는 빨리 출세하고 싶다, 그러려면 조계의 구석에서 일하는 것보다, 군대에 들어가 공을 세우는 편이 빠르다는 말이잖아? 리브도 있겠다, 뭐 잘 풀리겠지…… 라고 생각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걸. 공주님의 원수를 갚는다고 말하는 편이 너답고 좋았을텐데"
지금까지의 그답지 않은 말투에는, 어딘가 뼈저리는 울림과 동시에 굳은 심지같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모두가 그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 호킨스는 흥 하며 숨을 한 번 내뱉었다.
"뭐, 좋아, 랏셀이 그렇게 정했다면. 나도 정했어. 여기를 나가지. 지금까지 즐거웠어"
갑작스런 선언에, 셋은 앗 하며 소리를 모았다.
해상 집락으로 흘러들어온 이후로, 호킨스는 우수한 기술자였으며, 누구보다 좋은 상담 상대였다. 그가 등을 밀어준 덕분에 육지에 올라올 수 있었다. 믿을 수 있는 동료였을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테아시의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런, 갑자기…… 나간다니, 그런 말 하지 말아줘! 우리들, 계속 함께였잖아. 함께 육지로 가자고 맹세했잖아! 호킨스가 없어지면, 우리들……"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테아시의 항변에도, 호킨스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책장에서 주머니를 꺼내더니 공구나 잡동사니를 잡히는대로 집어넣기 시작한다.
"괜찮아. 너희들은 이미 스스로 충분히 해낼 수 있으니까. 빈말이 아니야.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하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순식간에 짐을 정리한 주머니를 짊어진 호킨스가 안경을 고쳐쓴다.
"다들, 잘 지내라고.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자"
"호킨스!"
"기다려!"
말리는 말도 듣지 않고, 호킨스는 철문을 열었다.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밤공기가, 장갑차 주민들의 발밑을 식히며 지나간다.
얇은 코트를 걸친 등을 향해 랏셀이 외친다.
"호킨스. 네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뭔데?"
부스스한 고개를 돌리며, 웃는 것처럼 꾸며낸 눈웃음친다.
"비밀이야"
코트자락이 휘날리며, 미끄러지듯이 방을 뒤로한다.
닫히려는 문의 틈새로부터 얼굴을 휙 드러내며, 호킨스가 말한다.
"역시 랏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그 군복"
그럼, 하며 경쾌하게 흔드는 손을 마지막으로, 호킨스는 동료들의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뒤를 쫓지도, 입을 열지도 못했다.
뒤섞인 인간들의 마음을, 리브의 감색 눈동자가 그저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
"……라아아아아아고 폼자밧는데 마랴─! 그럿케 말할 수바께 업섯따고 나로서는─!"
취객이 주정을 부리고 있다.
닥치는대로 마셔서 취해버린 그의 술주정에 사람들이 자리를 뜨더니, 순식간에 손님은 그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노점주로서는 불만을 말하고 싶을 정도지만, 아직 그에게 빚이 남아있는 몸이다. 가끔 추가로 술을 내오는 정도 외에는 그저 묵묵히 그릇을 닦을 수밖에 없어, 불만이 쌓일 뿐이다.
"소리지르지 마라 주정뱅이 놈아. 영업 방해는 봐줄테니, 적어도 조용히 마실 수 없겠냐"
"시끄러 할배! 젠자앙, 좀 더 조은 술을 내오라구. 엇짜피 그리 대다난 물건도 업자나"
"아앙? 실례구만, 기다려봐라"
안쪽의 선반에서 비장의 검은 병을 꺼내오더니 망설임 없이 마개를 따더니, 갈색의 투명한 액체를 작은 잔에 졸졸졸 따른다.
"육지에서는 만들지 못하지, 해적선단을 통해 흘러들어온 위험한 걸작이지. 음미하며 마시라고"
"설명은 돼써"
잔을 잡아올려서 단숨에 원샷을 한다. 목이 확 타오르는 듯하다.
"크하아─, 엄청 쎈데!"
그러나, 알콜의 강한 자극을 목구멍으로 넘기자, 꽃이 피는듯한 그윽한 향이 입 안에 퍼졌다. 맛 좋은 술의 잔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확실히, 지금까지 마신 싸구려 술과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몽롱한 머리에 뭉쳐있던 것들이 단숨에 씻겨지는 기분이다.
"……어, 뭐야 이거. 맛있네"
"정신이 좀 드냐"
"응, 이거 좋네. 한 잔 더"
"켁. 염치없긴……"
후커로서는, 비싼 술을 계속 마셔주면 빚을 줄일 수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빚을 없애기 위해 잔에 화주를 채워주자, 취객은 바로 표정을 풀더니, 이번엔 핥짝핥짝 핥듯이 맛보기 시작한다.
"으음. 음음. 음─. 이거 좋다"
"기분이 풀린 모양이군, 호킨스"
"뭔데"
"뭔데, 가 아니지. 대체 무슨일이 있었단 말이야, 아까부터"
"무슨일은 무슨일"
"네가 그렇게까지 취해서 주정부릴 정도라니,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었다고"
"응─. 음. 조금 있지"
방금 전까지 술에 취해 혀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말투를 순식간에 바꾸고는 모르는 체 하며, 호킨스는 손에 든 잔을 돌리며 장난을 친다.
랏셀 일행과 이런 식으로 이별하는 날이 올 줄이야.
9할 쯤의 진심과 1할 쯤의 고집으로 장갑차와 이별한 것까진 좋았으나, 조계에서 자신이 아는 곳이라봐야 얼마 없다. 결국 마음 편한 후커의 술집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불만과 노성과 한숨을 반복할 뿐인 어엿한 주정뱅이가 되버린 것이다.
"요전에 왔을 땐 잔뜩 취한 스나이더를 놀리면서 꽤 기세 좋게 말하지 않았나"
"할아범이랑은 관계 없잖아. 그리고, 지금 그녀석 이름은 꺼내지 말아줄래?"
잔의 테두리를 핥으며 시치미떼는 호킨스에게, 노점주는 접시를 닦던 손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스나이더한테 뭐라도 당했나"
푸웁, 하며 뿜어낸 입가를 당황하며 닦는다.
"맛은 있는데 쎄네, 역시"
"얼렁뚱땅 넘기지 말라고. 정곡이지?"
"……쳇, 할아범에겐 당해내지 못하겠는걸"
후커가 유리그릇에 볶은 콩을 담으며 카운터로 내민다.
"무슨 일이 있었나"
콩을 한 알 집어들어 입에 던져넣고 씹고는, 화주를 들이켜 흘려보낸다. 잔의 수면이 살짝 흔들리며, 램프의 불빛을 희미하게 반사한다.
강한 알콜에 얼굴을 찌푸리며, 호킨스가 입을 연다.
"……이번에야말로,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의 혁명놀이 말이냐"
"놀이는 빼 줘"
"그래서"
"이전에 길을 잘못디뎌서, 해상 집락에서 머리를 식히는 사이에 말야. 나한테 바람이 불었어. 불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전에도 그런 말을 했었지"
"그게 말이야, 집락 동료 중에, 터무니없는 힘이 깃들었다는 말이었어"
"터무니없는 힘?"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힘은 아니지만, 뭐 비슷한 상황이지. 온갖 기계의 성능을 한계까지, 아니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려서, 생각한대로 조종하는 힘을…… 그는 그 힘을 손에 넣었어"
"잘 모르겠지만, 편리해 보이는군. 고래오징어 몰이에 딱 좋겠어"
호킨스가 돌연 어이가 없다는듯 고개를 숙였다.
"뭘 모르는구만. 모르겠냐구, 할아범. 이 굉장함이"
"아앙?"
"있지, 기계라고 하면 기껏해야 잠수 융보로 정도밖에 없는 해상 집락에선, 그런 힘이 있어봤자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구. 좀 더 잠재 성능이 높은, 쓸만한 기계가 본토에 잔뜩 굴러다니잖아. 응?"
"흠"
"예를 들면 글래디에이터라던가 말이야. 무투의 의같은 미적지근한 곳에 엮일 필요없다구. 물건만 손에 넣으면, 어떤 곤란한 활동이라도 해낼 수 있어. 그 웅장한 모습은 언젠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단결의 초석이 되며, 이윽고 권력을 무너트릴 거대한 파도로 변할 거라고!"
"그러기 위해 돌아왔단 말이냐"
"바로 그 말이지!"
묘한 억양과 함께 주먹을 들어올리며, 고개를 흔들고는 하늘을 올려본다.
"유일무이한 그 힘으로, 난 다시 한 번 세계를──"
"그게 허사가 됐단 말이군"
와아앙, 하며 호킨스가 카운터에 고개를 처박으며 쓰러진다. 킁킁거리며 코를 훔친다.
"……아니, 괜찮다고? 그가 야심을 가지는 자체는. 그래, 내가 예전에 여기서 선언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그도 말했다고. 이런 빌어먹을 세상은 사양이라고"
"그럼, 좋은 일이잖아. 손을 빌리던 이용하던, 너라면 어떻게든 구워삶을 수 있을텐데"
"그치만 그러기 위해서 그가 군인이 되겠다고 말했다고?"
"군인?"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넘버 원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태클을 넣으면서도, 후커는 대충 눈치챘다. 짧은 인연도 아니다. 호킨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요령이 좋지도, 주도적이지도 않았다.
"흥, 거기서 스나이더인가. 그 동료라는 녀석을 손아귀에 넣고 꿈을 계속 꾸려 했는데, 녀석에게 당해서 아우구스토니아에 빼앗겨버렸다…… 그렇게 된 일이군"
"으……"
"그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스나이더와 화해하면 되잖아. 네가 군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뒤집어보자는 목적은 똑같잖아"
"으으으……"
호킨스는 볶은 콩과 잔에 남은 술을 함께 입에 넣으며 씹어넘기고는, 울부짖었다.
"이제와서 그녀석에게 숙이고 들어간다니 죽어도 싫다고 나는"
랏셀의 야심은, 스나이더에게 부추겨져, 기존의 권력 구조의 범위 내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반 체제의 사상을 철저히 신봉하는 호킨스에게 있어서, 그런 선택지는 있을 수 없었다.
"이런이런…… 썩은 인연이 꼬이더니 귀찮게 됐구만"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후커의 입장에서 봐도, 호킨스는 확실히 타인을 능숙하게 자기편으로 만들어내는 천재였다. 많은 동지를 모아 목적을 공유하고, 위험한 지하 활동을 꺼리지 않으며 조직을 만들어냈다.
그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혁명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추적자의 눈을 피해 해상 집락으로 피신한 사이, 스나이더는 아우구스토니아에서 직업 군인으로 착실하게 입지를 다졌을 것이다. 호킨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약아빠진 놈일지도 모르지만, 스나이더 역시 뱃속에 꿍꿍이를 품고 있는 야심가이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나이다. 수재가 천재에게 기습을 먹인 것으로, 세간에서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뭐, 이번엔 상대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게지. 너답지 않군…… 아니, 너답다고 하면 너답지만. 오랜 동료의 일이라면 시야가 좁아지는군"
"뭐든지 사실대로 말하면 좋을 게 아니라구, 할아범"
호킨스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갑자기 다시 앉더니, 카운터에 흘린 물방울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아.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뭐야, 갑자기 맥빠지는 소리나 내고"
"허세를 부리며 나오긴 했는데, 고래오징어 집락으로 돌아갈 수 있을 리 없잖아"
"조계에 있으면 되잖아"
"싫어, 옛 동료들과 마주칠지도 모르고. 고발당하기라도 하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거야"
"그럼, 리베리스탄이냐"
"그렇지 뭐. 본토 시민권은 있으니까, 이거만 믿고 조용히 재시작할까……"
호킨스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어디선가, 술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냉랭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부탁이 있는데"
"엥?"
소리를 내며 대답한다.
가게 구석의 어두운 곳에, 가느다란 실루엣이 드리워진다. 기장이 짧은 외투를 입어서 그런지, 깊숙히 눌러쓴 후드 속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저런 곳에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누, 누구야. 언제부터 거기에──"
당황해하는 호킨스에게, 후커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한다.
"괜찮아. 내가 사용하는 '가지'의 일원이야"
"가지?"
"조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아오지"
"아. 그렇군"
이 술집은 조계의 다양한 정보를 사고 파는 장소이기도 하다. 후커는 이러한 정보상을 여러명 키우고 있겠지.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다.
램프의 불빛에 비춰진 몸집은 부러질 정도로 가냘펐다. 키도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
여자라기보다──소녀다.
"후커. 지난번의 보수를 받으러 왔는데"
"준비해놨지"
"다행이다"
"뭔가 마시고 가련?"
"응"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녀는 선객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호킨스"
어딘가 장난기어린 목소리.
"어? 으음, 어디선가 만났었, 나, 요…… 어?!"
소녀가 외투 끈을 푸른다. 후드를 벗자 나타난 모습에, 호킨스는 경악하며 일어서고는, 소리를 질렀다.
등까지 닿는 윤기나는 풍성한 금발.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둔 헤어핀과, 같은 장식인 헤어밴드. 옅은 푸른색의 눈동자는, 술집의 어두컴컴한 곳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듯이 맑고 투명하다. 산뜻한 몸매는 기억에 있는 것보다 훨씬 성장했지만, 호킨스는 분명 눈앞의 소녀를 알고 있었다.
설마.
"너…… 리마야?!"
쿡쿡 웃으며, 금발벽안의 소녀──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 아……"
말문이 막힌다.
어느정도의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호킨스였지만, 과연 이런 일에는 동요를 금할 길이 없었다. 잠시 멍하니 있은 뒤, 뇌리에 떠오르는 단 한 마디를 그대로 중얼거린다.
"……놀랐어"
"나도야"
후커가 빠르게 만들어낸 잔을 카운터에 내놓는다.
"뭐야, 아는 사이냐. 세상 참 좁구만"
"그러네"
리마는 가까이 있는 의자를 끌어당기며 앉고서는 다리를 꼬고선 잔을 기울인다.
"응. 맛있어"
한편 호킨스는 아직 벙 찐 상태이다. 허탈함과도 비슷한 감각을 떠올리며, 허리가 빠진 듯이 의자에 주저앉는다.
"지난번에, 네 일행인 꼬맹이가 탈옥해서 아우구스토니아의 공주님을 유괴했다는 사건이 있었지"
후커가 덧붙이듯이 호킨스의 잔에 화주를 채워준다.
"그 소식을 가장 먼저 가져온 녀석이, 바로 이 애야"
"헤, 헤에, ……뭐?!"
"뭐냐, 그렇게 놀랄 일이냐?"
"그, 그치만──"
꿈뻑꿈뻑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호킨스를 곁눈질하며, 리마는 자못 이상하다는 듯이 웃었다.
"저기, 후커. 재밌는 정보를 하나 알려줄까?"
"점잖빼지 말라구"
"우후후. 그 탈옥수 있지…… 나의, 오빠야"
"뭐야. 그런 정보, 내다 팔만한 게──"
아무렇지도 않듯 대답하려다, 후커가 '어엉?'하며 눈썹을 치켜세운다.
"오빠?"
"그래. 그때는 거기까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진짜냐, 호킨스"
"……응"
"그리고 아까 말했던, 터무니없는 힘을 손에 넣었다는 집락의 동료. 그것도 오빠지?"
리마의 질문에, 호킨스는 겨우 언어 기능을 되찾는다.
"어…… 맞아. 랏셀이지"
핫, 하며 후커가 감탄한다.
"묘한 인연이군"
자랑하듯 미소짓는 리마를, 호킨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리마는 랏셀의 친동생이다.
한 살 차이의 남매니, 아직 15살 정도일 터였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침착함을 지니고 술집의 카운터에 앉아있다. 바싹 마른 입을 술로 적신 호킨스가 몸을 내민다.
"리마. 넌 집락에서 본토로…… 리베리스탄의 군대에 징병됐었잖아"
"응. 11살 때였지"
해상 집락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당연히 잠수 융보로를 탈 수 있게 된 리마는, 곧바로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그 ㅡ높은 조종 기능은 고래오징어 몰이꾼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고, 머지않아 리베리스탄 군사 정보망까지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리마는 징병되었다.
"그거야말로 유괴에 가까웠지. 육지로 올라오자마자 캠프에 처박혀서 영재교육과 군사교련을 잔뜩 배웠어"
"그랬…… 구나"
호킨스는 당시 일을 떠올린다. 본토에 끌려온 리마는, 반쯤 시샘이었지만, 해상 집락에선 영웅 취급을 받았다.
육지의 땅을 밟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으로, 재능을 인정받아 선발된 것이니 육지에서 사는 편이 리마에게 행복할 것이다──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며, 동생과의 이별을 강요받으며 이해하던 랏셀의 모습을, 호킨스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런 네가, 어째서 조계의 정보상이 된 거야? 이제 군인은 그만 뒀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리마는 쓴웃음을 지으며, 희고 가느다란 손을 뻗으며 말을 막았다.
"기다려봐, 간단히 설명할 수가 없어. 그래…… 나는 전 군인이고, 기술자고, 조종사고, 공작원이야. 지금 도크에 들어와있는 가르간티아에서 메신저 일을 한 적도 있고…… 해적 일도 했었지"
"해, 해적?!"
"육지에 접근하지 않도록 피하고 있었지만, 그렇게도 못하게 되버려서. 지금은 여기서 신세지고 있어…… 아, 당신이 마시는 그 술, 내가 인사 대신 가져온 술이네"
당사자인 노점주는 수상쩍은 냄새를 맡았는지, 어느샌가 카운터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하지만, 이곳이 호킨스와 연이 있는 가게였다니. 후커는 아니지만, 정말 세상은 참 좁네"
"마, 말도 안 돼……"
호킨스는 머리를 싸맸다. 리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내용은, 이해 범주를 뛰어넘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의 나이보다 절반도 안 된 15살 소녀가 겪은 일이라니? 너무나도 가혹하고, 복잡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탈옥수가 오빠라는 사실을 알고, 나도 놀랐어. 집락에 있어야할 오빠가 어째서 조계에 있나, 하고. 그러니까 계속 정보를 수집했지"
"우리들의?"
"맞아"
"랏셀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컨테이너 야드에서 테러에 휘말렸던 일. 가르간티아와의 기술 교류에도 나갔지. 그리고…… 아우구스토니아의 함선 폭파 사건을 계기로, 테러리스트 사냥에서 활약했고"
"……대단한걸. 과연 전 공작원이야"
호킨스는 아까까지 마셔댄 술이 전부 깸과 동시에, 등줄기를 흐르는 서늘함에 사로잡혔다. 뭔가 아무 말이라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기분이었다.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서…… 랏셀과 만나지 않는 거야?"
리마는 살짝 시선을 떨구며, 쓸쓸하게 웃었다.
"설마"
"어째서"
"당신과 같아"
"무슨 뜻이야"
"나는 이미, 양지에서 살 수 없는 인간이니까"
"말 한 번 잘 하네"
"실제로 그런걸"
"뭐 그렇지"
"하지만, 지켜보고 싶어. 오빠인걸"
"……과연"
흘러다니는 자와 어중간한 자가 모이는 조계의 더욱 깊숙한 뒷세계에서밖에 살 수 없는 리마는, 오빠와 접촉하는 일 자체가 그의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호킨스. 오빠가 있는 곳으로는, 이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야?"
"그래. 너도 만나지 않겠다면 그걸로 됐지만, 각오는 하는 편이 좋아. 랏셀은 변했어"
"그래…… 보여"
후커와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는 전해졌으리라.
집락에서의 나날과는 이미, 모든것이 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변해가리라. 누군가의 바램은 항상, 다른 누군가의 바램과 엇갈린다. 그리고 언젠가, 누구도 돌이키지 못하게 된다.
"조계를 떠날 거면, 부탁이 있어"
"응?"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담히 들이댄 탓에, 호킨스는 방금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도 고생을 했다.
"……아아. 처음에 그렇게 말했었지. 무슨 부탁인데?"
"내 대신에, 리베리스탄에 가줬으면 해. 그리고, 확인해줬으면 해"
"뭐를"
"아직 확실하지 않은 정보인데"
리마는 거기서 말을 끊고, 호킨스를 바라봤다.
"폭탄 테러로 죽었다고 발표된, 아우구스토니아의 공주님 있지"
"스카야"
"그녀가──리베리스탄에서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어"
"뭐라고?"
"게다가, 이번 무투의 의에 출전할 투사로 유력하다는 말도 있어"
"그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호킨스는 이번에야말로 현기증을 느꼈다.
이 아가씨는 대체 얼마나 자신을 놀라게 할 셈인가. 혼란스러운 머리를 풀가동하며, 하나의 의문으로 정리한다.
"가령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해도…… 어떻게 하란 말이야. 그 아가씨가 살아있다면"
리마는 시선을 올려 하늘을 바라본다. 처절했던 지난날을 돌이키는 듯했다.
"……난 있지, 호킨스. 해적 선단에 몸에 둬보니까, 여태껏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변해가는 느낌을 받았어. 처음으로 내가 있던 육지의 모습을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
"──……"
"그래서, 다시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는, 벌써 몇백년이나 무투의 의로 시간의 기둥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차지하려 들지. 하지만…… 애초에,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응?"
허를 찔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다.
"어째서냐니, 그야…… 가능하니까 해왔겠지, 라고밖에……"
"정말 그럴까? 이 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다의 세계에서, 셀 수 없을 만큼의 선단이 바다은하를 쫓아 항해하고 있어. 선단 사람들은 귀중한 식량이나 물자를 나눠갖거나, 또는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죽일 각오로 빼앗아, 어떻게서든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어. 그 엄격함을 알아버리면──이 육지가 존재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신사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유, 육지도 기둥의 전력을 얻기 위해 무투를 벌이잖아. 죽는 사람도 나오고"
"몇백년이나 시간이 있었잖아? 그렇게 긴 역사를 거쳐서 두 나라는 한 번도 상대를 멸망시키려고도, 전쟁을 그만두려고도 하지 않았어. 어째서지?"
"그건──"
그건 확실히 그렇다.
실제로 무투의 승자는 실질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얻게 되며, 매전권까지 얻게 된다. 그런 가치 교환이 가능하다면, 정체를 통일하는 것도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을 텐데, 오히려 결사의 각오로 상대를 공격해서 멸망시킨다는 선택지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국가는 고작 4년만에 잃을지도 모르는 한정적인 번영을 나눠가져왔다──.
"이런 치밀한 밸런스를, 몇백년이나 지켜올 수 있었을까?"
"그래서…… 신사적, 이란 말인가"
리마가 끄덕인다.
"이게 육지 사람이 만들어낸 지혜라면, 그걸로 좋아. 하지만 혹시──그렇지 않다면?"
그 말에, 호킨스는 어째선지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리마가 목소리를 더욱 낮춘다.
"스카야가 탄 기체는, 상식을 벗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다고 해. 그 힘이 있다면──무투의, 아니, 육지가 존재하는 방식의 정체를 폭로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젠 말문이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우연인 듯 하면서.
이것은 분명 필연인 것이다.
눈앞에 있는 소녀의 바램은, 막 결별한 소년이 품고있던 바램과 훌륭히 일치했다.
너희들은 확실히 남매야. 둘 다, 나같은 것보다 더욱 큰 그림을 보려고 한다.
오빠와 똑같은 옅은 푸른색의 눈동자에 강한 빛을 담으며, 리마가 말한다.
"이 세계는──뭔가 이상해"
호킨스는 빙긋 웃으며, 안경을 고쳐썼다.
이걸로 적어도, 지루함과는 연이 끊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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