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작업을 빠르게 끝내고, 레도는 동쪽 대 부두의 심장부 가까이에 계류된 대형 주거선 아레스 호를 향해 보트를 몰고 있었다. 벨로즈와 함께 짐 운반 작업을 하면서, 서서히 배를 모는 감각을 몸에 붙이고 있었다.
햇빛은 이제 곧 남중하기를 앞두듯 높고 밝게 빛나서, 손바닥으로 태양빛을 가려도 눈부실 정도다.
머리 위 햇살에 한 순간, 그늘이 졌다.
새 치고는 커보여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쾌청한 푸른 하늘에 붉은 날개가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비행하고 있다.
레도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크게 손을 흔든다.
에이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의 흐름에 날개를 걸친 것처럼 날고 있다.
바람의 힘만으로 나는 카이트를 능숙히 조종하며, 에이미가 아레스 호를 가르키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곳으로 가는 거야? 라며 물어보고 있다고 눈치채고, 레도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 뒤 에이미는 손가락으로 하늘에 사각형을 그린 뒤, 검지와 중지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동작을 해보인다. '이륙장에서 만나자'는 사인이다.
엄지를 세우며 대답한 레도에게 싱긋 웃어보이며, 에이미는 상승기류로 갈아탄다. 보트는 그를 쫓듯이 속도를 올린다.
한 번 대 부두에 상륙하고난 뒤 연결교를 건너, 철계단을 올라간다. 난간으로 둘러싸인 카이트용 이착륙장에 도착하자, 에이미는 이미 날개를 접고 레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어, 레도"
"응, 에이미도"
"회의에 가는 거지? 나도 같이 가도 돼?"
"물론이지. 일만 괜찮다면, 에이미도 참가하는 게 좋아"
"어, 괜찮아? 대단하신 분들이 모이는 회의라고 들었는데"
"매일 '마주보는 초승달'을 비행하고 있으니까, 에이미의 이야기도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지금까지 알게 된 사실을 모두에게 전해줘"
메신저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전용 랙에 카이트를 수납하고, 에이미가 미소짓는다.
"응, 알았어"
가르간티아가 이 '마주보는 초승달'에 기항하고 대략 5개월.
그 사이, 선단 주민들이 알아낸 육지의 지식은 상당한 양이 되어있을 터였다. 그것들을 공유하고 싶다는 레도의 신청이 수락되어,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넓직하게 만들어진 개방 통로를 걷는다.
다른 배에 비하면 새것처럼 느껴지는 아레스 호의 외벽을 바라보며, 에이미가 말한다.
"아직 이쁘네, 이 배"
"응"
"레도가 바다 밑에서 발견하고…… 이제 2년 가까이 되었으려나"
"그정도 되었지. 크로노아 호에 인양됐을 때는 걸레짝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되다니, 솔직히 생각도 못했어"
"수리점 분들이나 직인 분들이 열심히 일해줬으니까"
이 아레스 호는 인양업을 막 시작한 레도가 작업중에 발견한 배다. 어려운 작업 끝에 끌어올린 선체에는, 구 문명 최후이자 최고의 기재인 오그멘티드 바디의 상세한 기록이 사장되어 있었으며, 또한 뱃바닥 내장식의 추진 기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군용 신예 운송함으로 추측되었다.
당시 가르간티아의 급선무는 쿠겔 선단의 생존자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농업선 크로노아 호의 갑판에서 대폭적인 수선과 의장이 더해진 결과, 이전 운송함은 아레스 호라 명명되고, 대형 주거선으로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지금은 200명이 넘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거주구역 외에도, 각종 공공 시설이나 비축 창고, 작업장 등까지 완비된 사용하기 좋은 배로서 귀중히 사용되고 있다. 레도의 발안으로 소집된 이번 회의도, 그런 시설 중 한 곳에서 이뤄지게 되었다.
"큰일이었지만, 멋진 배가 되서 다행이야, 레도♪"
그렇지, 라며 레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에이미는 이 배를 끌어올리던 때 레도가 휘말렸던 해난 사고를 말한 것이다.
깊은 바위턱에 가로누운 선체에 와이어를 거는 작업 중, 주위 암벽에 대량으로 함유되어있던 메탄의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기화해, 대 붕괴를 일으킨 것이다. 벗겨져 떨어지는 대량의 돌덩이 밑에 잠수 융보로와 함께 생매장당한 레도는, 이산화탄소 중독과 산소 결핍의 위기에 노출된 상태에서, 동료들의 결사적인 행동으로 인해 다행히 살아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이라 할 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정말, 그땐 어떻게 되나 하고──"
거기까지 말하고, 에이미는 급히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입을 다물었다.
"왜 그래?"
"햐악?!"
목소리가 뒤집힌다.
대 구출극의 끝에 심해에서 생환한 레도를 보고, 타인의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끌어안으며 펑펑 울던 일을 떠올린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신경쓰지 마. 아하하하……"
"그래……?"
의아해하는 레도에게 손사래를 치며 넘긴 에이미가 화제를 바꾼다.
"그, 그렇지. 어제 있지, 웜이 그레이스를 봤대"
"어디서?"
"지금 서쪽 부두에서 수리를 받고 있는 마보르스 호의 브릿지였대"
"호위선이잖아. 어째서 그런 곳에"
"그 왜, 선단이 이어져있던 대에도 호위선만은 외양을 순찰하잖아? 타본 적이 없으니까 분명 신기한 거야. 로제도 같이 있었대"
그레이스는 에이미가 키우는 수컷 날다람쥐다. 파트너 이력은 레도보다 길어서 그런지, 에이미의 설명에도 설득력이 있다. 덧붙여 로제는 쿠겔 선단에서 레도가 데려온 암컷 날다람쥐로, 그레이스와 만나자마자 마음이 잘 맞아 친구가 된듯 했다.
줄곧 레도의 주거선에서 두 마리를 함께 키우고 있었는데, 1년쯤 전부터 모습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대신 선단 여기저기에서 목격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건강해 보인대. 그러니까 걱정은 하지 마"
"그래"
그레이스와 로제를 두 사람이라 말하는 에이미가 조금 귀여워서, 레도는 그녀의 순수한 미소를 보며 미소지었다.
***
널찍하고 밝은 회의실에는, 이미 리지트와 베벨, 거기에 올덤을 중심으로하는 가르간티아의 다섯 현인들이 모여있었다. 방에 들어온 레도는 참가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좀 늦었나?"
"아니, 시간대로야"
"다행이다. 리지트, 에이미도 회의에 참가했음 좋겠는데, 괜찮을까?"
"그럼, 괜찮아"
레도의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미는 에이미에게, 리지트가 말을 건다.
"어서와. 사양말고 의견을 들려줘"
"고마워, 리지트"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입실하한 에이미는 레도의 옆자리에 앉았다. 반대측에는 동생인 베벨이 있다.
"누나"
"베벨 굉장한걸, 다섯 현인들의 회의에 나오다니"
"올덤 선생님이 참석하게 해주셨어"
기쁘다는듯이 말하는 베벨의 목소리는, 최근들어 조금씩 낮아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뜻 바라본 옆얼굴에 늠름함까지 보이게 되서, 이제 막 12살이 된 베벨의 성장에 기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런 장소에 있을 수 있는 동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없다.
ㄷ자 모양을 한 회의용 탁자의 상석에서 리지트가 회의 개최를 선언한다.
"그럼, 시작할까요. 올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리지트의 왼쪽에 앉아있던 올덤이 고개를 끄덕인다. 죽 늘어앉은 다섯 현인들은 차례대로 늙은 천문학자인 웰더, 여성 생물학자인 니브라, 장신의 기계공학자 카르프, 마지막으로 머리를 뒤로 묶은 남성은 데릭이라는 해양학자다. 모두 가르간티아 275년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계승하는 지혜로운 이야기꾼들이다.
다섯 현인을 대표해, 올덤이 회의의 의도를 설명한다.
"레도 군으로부터, 육지에 대해 지금까지 얻은 지식을 한 번 통합해두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네. 우리 다섯 현인은 그에 동의하며, 각자가 연구를 거둡한 각 분야에서, 선단 주민 및 조계민으로부터 청취 조사를 해왔네. 얻은 정보의 공유와, 선단장에게 보고를 겸해, 이 자리를 마련했네"
다섯 현인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리지트가 안경대를 쓸어올리며, 회의를 지휘하듯 입을 연ㄴ다.
"현재 가르간티아가 가진 육지에 관한 지식은, 50년 전에 행해진 지난번 대규모 수리 시의 것과, 2년정도 전에 기항했던 해상 무역 거점 '용궁성'에서 얻은 정보가 대부분입니다. 뭔가 새로운 정보가 있다면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공학자인 카르프가 손을 들어올린다.
"우리 선단 사회와 육지 사회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시간의 기둥'이라는 존재겠지. 그 하늘에서 내려오는 방대한 에너지가 선단을 멀리하고, 육지와 바다의 사회를 구별지어왔지"
니브라가 평온한 목소리로 생물학자로서의 의견을 입에 담는다.
"그 에너지를 좋아하는 고래오징어가, 기둥의 궤도 바로 밑에 모이고, 거대한 바다은하를 형성하고 있죠. 그 역시, 우리에게 있어서 육지로 접근하기 힘들게 하는 요소입니다"
카르프가 동의하며 이어서 말한다.
"그럼, 애초에 시간의 기둥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에 대해 어느 정도의 내용이 정리되었으니 보고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흥미롭군요"
리지트의 말대로,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떠오르며, 레도는 몸을 더욱 앞으로 내뻗었다.
"그럼 우선, 웰더 선생의 가설을 듣고 싶네"
카르프에게 떠밀려, 늙은 천문학자의 쉰 목소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육지에 기항한 이후 계속 관측해온 결과──나는 아주 높은 상공에, 이 지구 주변을 빼곡히 덮고 있는 것처럼, 빛벌레의 층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의장이 술렁거리는 와중에, 올덤이 질문한다.
"그건 바다은하에 생식하는 빛벌레와 같은 종이라 생각해도 좋은가?"
"아마 그렇겠지. 태양광을 전기로 바꾸어 비축하는 성질을 지녔어. 단, 그 밀도는 바다은하와 비교하자면 극히 낮다고 생각되는구먼. 매우 옅은 빛벌레의 층이, 이 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게야"
굉장해, 라며 작게 중얼거리더니, 베벨이 머뭇머뭇 손을 든다.
"저, 어째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나요? 저는 올덤 선생님과 항상 천체 관측을 하지만, 밤하늘이 바다은하처럼 빛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요"
웰더는 소년의 호기심과 과학적 발상에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듯이 미소지었다.
"아주 좋은 질문이구나. 이건 빛이 아니라, 전파에 의한 관측에 따른 것이란다"
"전파? 무선 통신이나 라디오에 쓰이는 그 전파 말인가요?"
"그렇단다. 빛과 전파는 눈에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 본래는 같은 것이라 생각해도 지장이 없단다. 지구를 둘러싼 빛벌레층은, 빛이 아닌 전파를 내뿜는 성질을 지닌듯 하더구나. '마주보는 초승달'의 여기저기에 안테나를 설치했는데, 24시간 동안 어드 방향에서도 거의 일정하게 관측되는 전파를 잡는 데에 성공했단다"
굉장해, 라며 다시 한 번 눈을 빛내는 베벨에게, 웰더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카르프가 다시 입을 연다.
"저는 이 가설이, 시간의 기둥이라는 시스템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즉, 기둥은 하늘의 빛벌레층이 비축한 전기 에너지를 모아, 바로 밑을 향해 쏘아내리는 시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웰더와 카르프의 가설을 모두가 이해하기까지 기다린 뒤, 올덤이 상대가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레도 군. 이 가설을 어떻게 생각하나?"
계속 생각에 빠져있던 시선을 들어올린 레도가 말한다.
"아마도, 옳다고 생각해. 빛벌레는 구 문명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나노머신──매우 작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기계야. 그들이 에너지 조달을 목적으로 지구 주변에 빛벌레를 뿌렸다고 한다면, 충분히 그럴만 하다고 생각해. 덧붙여 말하면──"
레도가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하며 계속한다.
"이전, 안개의 바다 밑에서 발견한 구 문명의 기록 중에, 지표부터 대기권 밖으로 향해 뻗어있는 구조물의 영상이 있었어. 궤도 엘레베이터라고 불렸던 것이지"
"궤도 엘레베이터……"
"지상과 우주공간을 직접 이어서, 사람이나 물자를 주고받기 위한 승강 장치야. 영상에서는 여러개를 확인할 수 있었지"
베벨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구 문명의 사람들은 그런 것도 만들 수 있었어?"
"그래. 문명의 발달도로 보면, 그정도로 어려운 기술은 아니었을 거야. 엘레베이터는 운송과 함께 일종의 도전선 역할도 하고 있어서, 지상으로 전력을 공급했겠지. 처음엔 지구의 적도 바로 아래에서 지상과 이어져있었을 거야"
무언가를 떠올리듯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웰더가 질문했다.
"적도 위…… 즉, 궤도 엘레베이터라는 물건은, 그 자체가 우주로 날아가려는 원심력과, 별의 중력이 서로 맞물림으로서 안정된다는 말인가?"
"맞아. 지구의 자전과 동기해 지상의 어느 한 곳에서 접해있으려면, 그 밑은 적도 위가 될 수밖에 없어"
"과연 그렇구먼……"
웰더가 감탄했다는듯 몇번이나 고개를 끄덕인다.
리지트가 용궁성에서 얻은 세계지도를 탁자 위에 펼친다. 기둥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거대한 8자가 그려져있다.
"하지만, 시간의 기둥은 지금 적도를 매듭짓듯이 남북으로 주회하고 있어. 어째서지?"
"시간의 기둥은 궤도 엘레베이터를 모방해 만든 거야. 운송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포기하고 지상에서 분리해, 적도로부터 크게 벗어난 이 육지에 에너지를 보낼 수 있도록, 궤도를 바꿨겠지"
막힘없이 대답하는 레도의 옆모습을, 에이미가 멍하니 바라본다. 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화제가 나오면 전혀 따라가질 못하겠다.
잠자코 듣고 있던 올덤이 입을 연다.
"대체──누가, 어떻게, 그만큼 고도의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말문이 막힌다.
"육지 사람들에게 그런 기술이 있었을까?"
그럴 리 없다, 며 카르프가 말한다.
"지금의 육지가 지닌 기술 수준으로, 그정도의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어. 게다가, 기둥은 현재 하나밖에 없지. 그게 궤도 엘레베이터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냐?"
육지의 과학 기술은, 선단 사회와 비교하면 분명 굉장히 뛰어나다. 하지만, 지상과 이어져있던 기둥의 하부를 송전 설비로 바꾸어, 고도 15km의 안정 궤도로 올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또, 다른 엘레베이터의 행방에 대해서는 단서조차 없다.
모두가 침묵한다.
아무래도 답이 나오지 않으리라 판단했는지, 리지트가 말을 한다.
"이 사항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새로운 정보가 있나요?"
올덤이 손을 든다.
"선단장. 가르간티아에는, 별똥별의 무리에 관한 전승이 있는데 말이지"
"별똥별?"
"그래. 그에 대해, 육지에서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어"
"말해주세요"
올덤이 베벨을 바라본다.
"베벨. 모두에게 설명해주겠니?"
"어, 제가요?"
"그래. 지금까지 함께 별을 봤으니, 할 수 있을 게야"
상냥한 말투에 등을 떠밀려, 베벨은 눈에 힘을 주며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베벨이 말하기 시작한다.
"별똥별은 5~6개의 별이 뭉친 무리로, 대략 170년마다 밤하늘에 나타난다, 라고 전해지고 있어요. 지금이 딱 그 시기에 근접해서, 선생님과 저는 선단이 육지에 접근하는 도중에 줄곧 관측을 하고 있었어요"
에이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동생이 말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베벨이 말한다.
"그리고, 육지에는 또 다른 전설이 있었어요. 별똥별의 무리는 더욱 큰 다른 별을 데려온다, 라는 전설이었죠"
레도는 이미 그 내용을 베벨에게 들었다. 큰 별에 대해,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얻었을까.
"별똥별을 관측해온 덕분에, 그 '큰 별'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알아낸 사실이──이제 곧, 시간의 기둥과 큰 별의 궤도가 교차한다, 라는 사실이죠"
베벨, 이라며 레도가 불렀다.
"궤도가 교차한다는 말은, 충돌한다는 뜻인가?"
"아니, 그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육지에서 바라봤을 때, 기둥과 큰 별이 딱 겹쳐지게 보인다는 뜻이야. 실제 거리는 엄청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해"
"흠…… 그렇다면, 그 큰 별의 정체는 알아냈어?"
"어, 그건……"
베벨이 우물거린다.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받은 올덤이 말을 이어받는다.
"유감이지만,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네. 하지만, 큰 별은 나타날 때마다 지구에 무언가의 천변지이를 가져온다고 전해지고 있어. 그리고, 지난번에 나타났다는 약 170년 전에는, 육지에 '커다란 축복'을 가져왔다고 하더군"
"커다란 축복──"
"전설을 믿는 사람들은, 지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라더군"
레도는 생각했다.
뜬구름을 잡는듯한 말이지만,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육지는 다시 큰 변동의 순간을 맞이하려고 한다──.
레도의 마음에, 심해에서 찾아온 사자의 말이 되살아난다.
이 별이──두고 온 미래.
리브에게는 그 변동에 대해 무언가 예감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앞날을 바꾸기 위해 나타났다고.
게다가 또 하나,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일이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그나이트의 존재다.
지구에 존재할 리가 없는 미지의 머신 캘리버. 그 출현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기"
깊이 생각에 빠져있는 옆모습에, 에이미가 살짝 말을 건다.
"나, 어려운 건 잘 모르겠지만──"
돌아본 레도에게, 에이미가 애절한 시선을 보낸다.
"레도 지금, 옛날같은 눈을 하고 있어"
"옛날같은……?"
"많은 일을…… 혼자서 전부 끌어안으려고 해"
에이미의 말은 언제나 레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직접 닿아, 바싹 달라붙는다.
"생각하는 게 있다면, 말해줬으면 해. 우리들 모두──동료니까"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를, 레도가 눈부시게 바라본다.
망설임은 있었다. 지금까지 직면한 사실을, 어디까지 전해야 좋을지. 의미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은 현 상태에, 그들을 말려들게 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지금 육지에 몸을 맡긴 가르간티아 수만명의 목숨을 맡은 리지트와, 온갖 지식에 통달한 현인들에게는, 이야기해야할지도 모른다.
"──알았어, 에이미. 고마워"
에이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끄덕인다.
레도가 회의실에 있는 모두를 바라본다.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 있어. 혹시, 이 모두가 이어져있다면…… 우리들이 이곳에 있는 것도, 무언가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리브. 이그나이트.
지금 마음에 걸리는 두 커다란 존재에 대해, 레도가 말하기 시작했다.
◆◆◆
"축하해, 랏셀 군"
공동 관리부의 집무실에서, 스나이더가 오른손을 내민다.
착 소리를 내며 발뒤꿈치를 맞추어 경례한 뒤, 랏셀이 그 손을 맞잡는다.
"영광입니다"
"이번 소탕 작전에서도, 네가 올린 공적이 가장 눈부셨어. 조계 평화의 상징, 그 이름에 걸맞는 공적이었다"
평화의 상징.
이전, 눈 앞의 남자가 자신을 그렇게 평가했을 때, 랏셀은 그 바보같은 말에 웃어버렸다.
지금은 다르다.
랏셀은 아우구스토니아 정규군에 임관했다.
조계를 좀먹는 테러 세력을 물리치는 소탕 작전이 반복될 때마다, 그 존재감이 커져간다. 지금으로서는 소대를 지휘하며, 주둔 경비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직립 부동의 자세로 돌아온 랏셀에게, 스나이더가 집무실 탁자에서 얇고 검은 서류판을 내밀었다.
"새로운 명령을 전달하지. 지금까지의 실적을 고려해, 귀관을 다음 '무투의 의' 투사로 선임한다"
"넷!"
서류판을 받아든다. 간소한 지령문과, 군사령의 것인듯한 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감동이나 고양감은 없다. 당연한 결과니까. 아우구스토니아의 투사로서, 자신 이상으로 어울리는 인간따윈 없다.
"이번 결정은, 나의 추천에 의한 것도 크지만──산업 전략 대신 세오드라이트 각하가 귀관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야. 말할 것도 없지, 돌아가신 스카야 님의 아버지시다"
그 이름이 울리자, 랏셀은 자신의 가슴이 술렁거리는 것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힘든 일을 강요당하고, 스카야를 살해한 리베리스탄이라는 국가에 대한 증오는 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을 뛰어넘어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자신은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의 군복을 몸에 걸쳤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아우구스토니아의 전통을 감안하면, 이번 선임은 굉장히 이례적이야. 귀관의 역량을 공정히 평가해주신 세오드라이트 각하에게 감사와 충성을 잊지 말도록"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스나이더는 그렇게 말하고는, 짙은 석양빛이 비춰지는 창 너머의 경치를 바라본다.
'마주보는 초승달'의 뿌리부과 가까운, 조계의 빈민가가 겹겹이 세워진 일각에, 제1투기장의 원형 건축물이 홀로 튀어나온 것처럼 붉게 물들어있다.
"귀관은 선봉 투사가 되어, 무투의 제 1전──'땅의 전투'에 출전한다. 탑승 기체는 글래디에이터지"
그 이름에도 이제는 흥분하지 않는다. 글래디에이터의 탑승이 도착점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지금은 그보다 먼 곳을 본고 있다.
"그리고, 리베리스탄의 기체는 오그멘티드 바디다. 스카야 님이 생전에 온힘을 쏟아 연구에 매진하던 기체와 같은 종류지. 그 의미는 알겠지?"
"잠재 성능에 대해, 글래디에이터를 크게 능가하는 기체라 알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야. 하지만, 나는 귀관이라면 그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스나이더가 돌아보며, 잠시 뜸을 들이고 말한다.
"우리는 동지야. 우리는 이 국가, 이 세계의 정점까지 이어진 계단을 올라간다. 패배는 용납할 수 없어"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아까와 똑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상대가 누구든 똑같다.
눈 앞의 적을 쓰러트린다. 계속해서 쓰러트린다.
그 끝에 있는 풍경을 위해서.
리브와 함께 모든것을 내려다볼 꼭대기에서──나는 무엇을 보게 될까?
스나이더가 천천히 집무실 탁자로 돌아온다.
"나가봐도 좋다"
"넷!"
겨드랑이에 끼고있던 군모를 쓴다.
챙의 그늘 속에 잠긴 옅은 푸른색의 눈동자에 차가운 불꽃을 깃들이며, 랏셀이 말한다.
"아우구스토니아에──질서와 번영을"
***
비할 데 없는 기능미를 청색과 백색의 상징색으로 감싸고 있는 오그멘티드 바디의 웅장한 모습이, 지금은 무수한 타격 흔적과 흠집으로 뒤덮혀있다. 동력 전달을 잃어버린 오른팔은 축 늘어져있고, 오른다리로 가는 전력 공급도 끊겨, 기체는 빈사 상태의 병사처럼 무릎을 꿇고 있다.
전천구 모니터에 투시된 그 모습은, 관절이란 관절은 모두 삐걱거리며, 투기장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영상의 각 위치에서 튀어나오듯 펼쳐진 여러개의 서브 윈도우가, 만신창이가 된 참상을 냉정하게 비춰낸다.
<적 기체는 전투를 이어갈 능력을 잃었다고 추정>
"그래. 이제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겠지"
<조종석 부근에 생체반응이 남아있음을 확인. 추가타를 날릴텐가>
<거기까지>
통신음이 끼어든다. 투기장 밖에서 바라보던 파울의 목소리다.
"……그렇다네, 이그나이트. 이걸로 끝, 우리들의 승리야"
<알겠다, 스카야. 그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어>
애기의 말에, 조종사는 온화한 미소로 대답한다.
이어서 들려온 통신 음성도, 이 결과를 당연하게 생각하던 그녀에게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리베리스탄군은 투사 후보 폴라를 선발전 승자로 인정한다──>
엄숙한 선언에, 하지만 환성도 동요도 일지 않는다. 그저 곤혹과 경외의 눈빛만이 어느정도 교차되고, 은밀한 정숙만이 그 장소를 감쌀 뿐이었다.
리베리스탄 군부 내 연습장에서 실시된 투사 선발은, 처음부터 이례적인 전개를 보였다.
군 상층부는, 이전부터 연구를 거듭해온 구 문명의 유물──오그멘티드 바디의 실전 투입을 결정한 상태였다. 이미 가동 상태에 들어간 두 바디와, 대장으로 내정되어있던 파울 대령이 탈 글래디에이터. 이 세 기체의 무투 출전이, 거의 결정 사항으로서 군 내부에서 취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수한 조종사를 모집하기 위해 실시된 투사 선발의 장에서, 예상 외의 사태가 발생했다. 갑자기 나타난 해상 주민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16살의 소녀가, 백색과 심홍색으로 칠해진 본 적 없는 기체를 타고, 놀라운 힘으로 대전자들을 압도한 것이다.
제 1전, 지난 무투에 출전했던 실력자를 손쉽게 격파.
제 2전, 신 개발 로켓 스러스터를 장비한 글래디에이터의 기동력을 아주 쉽게 상회하며 이를 소멸.
그리고 지금, 파울 대령의 의향으로 호랑이 새끼인 오그멘티드 바디와의 직접 대결을 펼치게 된 제 3전에서도 확연한 실력차를 보이며, 압승을 거두었다.
<스카야. 의문이 있다. 전투 개시 전과 실전 개시 후, 적 기체의 전투력 및 위협 평가를 비교한 결과, 큰 차이가 발견되었다>
"그러네. 생각보다 약했어"
<이 원인은 무엇인가?>
이번에 싸운 오그멘티드 바디는, 리베리스탄이 발굴해낸 것이다. 일찍이 자신이 연구해왔던 아우구스토니아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외관이나 기체 각 부위의 특징에 큰 차이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기본 성능에 있어서는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바디의 해명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녀에게, 이그나이트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명확했다.
"조종사의 기량이 낮았기 때문이야"'
<허접, 인가?>
스카야가 살짝 웃는다.
"그러네"
<하수. 허섭스레기. 미숙자. 반푼이. 얼간이. 병ㅅ──>
"그정도만 해둬, 이그나이트. 품성이 떨어지는 말을 마구 사용할 필요는 없어"
<알겠다, 선택 우선도를 하향 수정. 사전을 갱신>
"그 조종사는 아무래도, 기체를 융보로나 글래디에이터의 연장선으로밖에 보지 않았겠지. 무투에 정해진 전투 규칙 범위 내에서 싸웠지만, 잠재능력을 조금도 발현시키지 않았어. 오그멘티드 바디의 힘은 원래 그정도가 아니야"
<알았다. 나의 위협 평가 능력에 이상이 없었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그나이트의 언어 능력은, 이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고도화되었다.
──다행, 인가.
스카야는 언제부터인가, 그의 성장을 기뻐함과 동시에, 걱정되는 감정을 품게 되었다. 이그나이트는 인간조차 판연치 않은 '다행'이라는 말의 정의를, 이미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풍부한 어휘 중에서 고른 단순한 관용구일 뿐일까?
그는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그를 대체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까──?
<폴라. 기체에서 내리도록>
외부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울린다.
전천구 모니터에 이그나이트의 발밑에서 올려다보는 파울의 모습이 보인다.
"알겠습니다"
이그나이트가 먼저 빈틈없는 동작으로 무릎을 꿇는다. 동시에 두부 윗쪽의 해치가 좌우로 열린다. 암 시트로부터 몸을 일으킨다.
조종석의 가장자리에서 가볍게 빠져나와, 이그나이트의 장갑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땅에 디딘 발끝에 콘크리트의 차가운 감촉을 확인하며, 스카야는 파울의 곁에 선다.
실내 연습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투사 선발에 관련된 정부 문관과 군부 고관들──을 모아, 파울이 확고한 어조로 질문한다.
"제군들. 방금 결과는, 모든 이의 눈에 명확히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오그멘티드 바디는 우리 군의 현 보유 전력 중 최강의 기체를 목표로 해왔다. 그것을 압도하는 조종사와 기체의 출현은, 리베리스탄의 커다란 승리를 가져다 주리라고,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나는 투사 폴라와 기체 이그나이트를 이번 무투의 의, 부장으로 임명한다. 이의가 있는 자는 앞으로 나오라"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다.
"──좋아"
파울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얼굴을 들어, 광대한 연습장에 크게 외친다.
"이미 사열을 마친 오그멘티드 바디 선봉기는, 공동 조계 제 1투기장에서 전투 대기 중에 있다. 부장 폴라와 함께, 우리들은 지금부터 조계로 향한다!"
예! 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파울이 스카야를 본다.
"폴라. 한 마디 하도록"
"네!"
깊은 보라색 눈동자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양 발을 약간 벌리며 등을 곧게 편다. 스카야가 늘어선 남성들이 함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힘을 담는다.
"리베리스탄에, 승리와 약진을!"
◆◆◆
"오호─ 장관이구만 이거!"
피니언이 위세 좋은 목소리를 올린다.
조계 반도의 돌파부, '마주보는 초승달'의 뿌리부분에 해당하는 이 장소는, 세계 최대급의 양륙함 도크이다.
도크를 방문한 일행의 눈 앞에, 완전히 육지로 올라온 선단의 주선, 가르간티아 호의 위용 넘치는 모습이 나타난다. 무수한 반목으로 지탱되며 흘수선 밑을 바깥으로 노출하며, 수1000m는 될 법한 크레인 타워가 수평 가까이까지 쓰러져있다. 주위에는 발판이 잔뜩 깔려있고, 용접으로 인한 불꽃을 흩뿌리는 작업원들이 마치 콩알처럼 펼쳐져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다.
"어떠냐, 오길 잘했지. 다음 이 모습을 눈에 담으려면, 또 50년 정도는 지나야 된다구"
주최자인 피니언이 득의양양하게 말한다.
'마주보는 초승달'에 입항한 이후, 멋대로 변한 작업에 악전고투하는 나날이 계속되었으나, 겨우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서 휴일이 겹친 동료들끼리 조계를 둘러보자는 취지의, 이른바 피크닉이었다.
햐아, 하며 넋이 나간듯한 목소리를 낸 것은 멜티였다.
"50년 뒤?! 새, 생각하고 싶지 않아……"
"멜티는 66살이겠네"
"으엑! 생각하기 싫다고 말했잖아!"
평소처럼 사야가 놀리며, 레도나 에이미, 벨로즈는 크게 웃는다. 그 회의 이후, 다섯 현인들과 전부 터놓고 이야기한 베벨은, 그들의 연구 성과를 공부하는 데에 푹 빠져 이번엔 참가하지 않았다.
"저기 레도, 저건 뭐야?"
에이미가 쓰러진 크레인 타워의 뿌리 부분에 보이는 거대한 반원형의 구조물을 가르킨다.
"저건 '추'야"
"추?"
"크레인 타워는 다약실포라고 해서, 그 자체가 거대한 대포라고 할 수 있어…… 알고 있지?"
"응. 가르간티아 포잖아"
에이미 자신이 그 탄착 관측원을 맡은 적도 있기에,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크레인 지주는 그 포신이기도 하니까, 굉장히 튼튼하고 무겁게 만들어졌어. 각도를 쉽게 바꿀 수 있도록, 힌지를 끼운 반대측이 추가 되는 거야"
"앗, 이렇~게 밸런스를 맞춘다는 뜻이야?"
에이미가 양 손을 옆으로 뻗으며 몸을 좌우로 기울이자, 레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끄덕인다.
피니언이 잘 안다는 표정으로 으스댄다.
"꽤 좋은 설명이었어, 레도. 타워가 솟아있을 때 추는 바다 속에 들어가서 절대 보이지 않으니까, 이것도 귀중한 광경이란 말이지"
벨로즈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너는 가르간티아 호의 수리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으스대는 거야"
"바, 바보같은 소리! 수리 계획을 세우는 데에 내가 얼마나 공헌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흐으응……?"
어디까지나 깔보는 말투로, 벨로즈는 피니언을 삐딱하게 바라본다.
"나정도 되면 부하들이 얼마든지 일해준다구"
실제로 피니언은 팀의 운영을 마이타에게 맡기고 있다. 50년에 한 번 있을 귀중한 현장을 제자에게 경험시켜주겠다는, 그 나름대로의 친절한 마음이다.
멜티가 묘하게 눈을 빛낸다.
"저기저기 피니언, 이 수리는 조계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 거지?"
"오우"
"그럼, 좀 더 가까이 가서 보자!"
사야가 쿡쿡 웃는다.
"눈의 보양?"
"그럼♪"
일동이 이런이런 하며 질려하던 와중, 레도는 문득 타워를 따라 시선을 미끄러트린다.
크레인 타워는 끝부분이 가르간티아 호의 선루 부근에 닿을 만큼 옆으로 스러져 있었다. 선루의 중앙부를 궤뚫는 폭 넓은 통로의 모퉁이, 지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어느 장소에, 죽은 듯이 놓여있는 물건을 떠올린다.
이전 자신의 애기, 체임버의 두부 포드이다. 일단 조계 주민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시트로 덮어두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사람도 신경 쓸 사람도 없다.
바라보는 레도의 옆에서, 에이미가 시선을 겹친다.
"……조계에 오고나서, 만나러 가질 못하네. 체임버"
"응"
"저기, 나중에 같이 가볼까?"
그 배려에 미소를 띄우며, 레도가 말한다.
"……아니, 괜찮아"
"정말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며, 레도가 선루로 시선을 돌린다.
"가르간티아의 수리가 끝나고 선단이 출항하면, 다시 매일 만나는 곳이 될 거야"
평온해보이는 그 옆모습에, 에이미는 생각한다.
그의 마음 속에서, 한 가지 정리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먼 우주에서 경험한 가혹한 전쟁에서도, 지구로 떨어지고나서 단서를 찾던 나날에서도, 체임버는 둘도 없는 소중한 파트너였다.
그를 잃고, 선단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뒤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겹겹이 쌓인 세월과, 사람의 마음이 지닌 자연적인 작용에 따라, 레도는 조금씩 자기자신과의 타협을 맺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는 한편, 지난날 회의에서 레도가 말했던 충격적인 사실도 있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고래오징어. 지구에 있을 리 없는 머신 캘리버. 레도를 가만 놔두지 않는 만남이, 육지에 있었다.
그는 그것과 마주보려 한다. 자신의 힘으로. 이번엔, 혼자서.
불현듯 가슴에 드리우는 쓸쓸함을 떨쳐보내듯, 에이미가 미소짓는다.
"그러네. 매일, 만날 수 있는걸!"
레도는 잠시 에이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는, 미소지으며 끄덕인다.
그 때, '이봐─!'하는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빨리이! 다들 여기 아래 들렀다 갈 거니까!"
"두고 간다─!"
다들 이미 걸어가기 시작했고, 멜티와 사야가 손짓을 한다. 아무래도, 가르간티아 호의 배 밑바닥을 걸어보려는 듯 하다.
"그래!"
"지금 갈게─!"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광경에 호기심을 끌어안으며, 두 사람은 달려가기 시작했다.
***
도크의 광경에 만족한 일행은, 바로 근처에 있다는 투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의외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투의 의 첫 전투가 펼쳐진다는 제 1투기장의 주변이, 조계와 어울리지 않게 떠들썩했기 때문이다.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가 4년에 한 번 자웅을 겨루는 전투를 앞두고, 일종의 고양감이 펼쳐지고 있는듯했다.
에이미가 눈빛을 빛낸다.
"와앗, 가게가 잔뜩 열려있어!"
대조적으로 멜티는 사야에게 불안한 말을 한다.
"미아가 되는 거 아닐까, 사람 엄청 많은걸?"
"끈이라도 살래?"
"그걸로 뭘 어쩌려고"
"떨어지지 않도록 모두 붙잡아서……"
"사야, 과잉보호야!"
모든 통로마다 노점이 열려있고, 그 사이를 메우듯이 걸어다니는 인파를 보면 그리 나쁜 생각도 아니지만, 과연 성인 여섯이서 할만한 모양새는 아니다. 주의하면서 여기저기에 펼쳐진 안내판을 따라 제 1투기장으로 향한다.
늘어선 노점 길가 여기저기에 위세 좋게 호객행위를 하는 목소리가 교차한다.
번영의 기초가 되는 시간의 기둥 에너지를 직접 겨루는 리베리스탄과 아우구스토니아는 다르게, 양국의 공동 관리를 받는 조계에 있어서, 승패가 어찌되건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리라. 대리 전쟁이라기보다는 4년에 한 번 열리는 커다란 축제같은 측면이 커, 사람들이 고양되는 분위기를 이용해 크게 벌어보려는 상인들의 혼이 표출되는 것이다.
가게를 열고 상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조계에서도 중류층 이상의 인간인듯 하다. 길목 한구석에 세워진 구인 광고판 앞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상점주보다 행색이 가난한 빈민층 사람들이다. 다들 눈을 번뜩이며 모집 광고를 보고 있다. 무투 개최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일자리가, 그들의 수익원이겠지. 그 발밑을, 아이들이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돌아다닌다. 글래티에이터가 된 양 무투의 의 놀이를 하고있는 것이다.
길목에 북적거리는 것은 물건을 파는 매장 뿐 아니라, 무투의 승패를 예측해 돈을 거는 무투토토도 있었다. 토토판의 주인으로 보이는 벌건 코의 덩치 큰 사내가 사람을 불러모으려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자아, 걸어라! 추측으로는 리베리스탄이 유리하지, 지난 무투에서 아우구스토니아에게 한 번도 승리를 내어주지 않은 3연승을 했으니까! 하지만 역전의 기미도 조금씩 보이고 있어. 4년에 한 번 있는 대박 도박, 이 큰 파도를 탈 수밖에 없지 않겠어! 자 걸어라, 걸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묘하게 요염한 여성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궁상맞은 가게에 나도 나도 하며 사람들이 밀려온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보아하니, 바람잡이임에 틀림없다.
"굉장한 박력이네, 레도!"
"응. 이런 무투의 일면도 있군"
피니언이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으며 양 손을 매만진다.
"헤헷, 나도 한 번 해볼까"
"이봐, 그럴 돈이 있으면 먼저 우리 외상이나 갚으라고"
벨로즈에게 혼나자, 피니언은 으윽, 하며 입을 다문다.
그러던 와중, 군중들 사이에서 '왔다!' 하며 흥분한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크게 술렁이며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다로 향한다.
그곳에는, 수평선 저편에 살짝 보이는 동쪽 반도를 배경으로, 흰 물결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대형 함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투사의 배다!"
라고 다른 목소리가 소리친다. 줄지어 다가오는 군함의 중앙에, 리베리스탄의 부장과 대장을 태운 군용 운송선이 있다. 그것이 20척이나 되는 전투함을 따라, 결전의 땅인 조계를 향해 나타난 것이다.
압도적인 위용에, 모두가 숨을 삼킨다.
"저것은──"
인파의 사이에서 목격한 레도가 절규했다. 가르간티아 일행에게 있어서, 리베리스탄 함대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선단은 바로 저 함대와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대 함대를 건조해 운용하는 국력과 기술력은, 선단 주민들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 결정체인 전투 기계가 맞붙는 무투를 앞두고, 조계의 긴장감과 고양감은 최고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운송함의 갑판에서, 파울의 시선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조계 반도의 능선을 향해있다.
"저 조계에, 분명 있다고 했지. 우주에서 온 손님이"
"네"
스카야가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을 쓸어올린다. 지금 이곳에는 둘 뿐이다.
"저는 레도라는 사내와 직접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
파울이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오그멘티드 바디가 각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두려울 정도의 전투력을 지녔다는 인간형 기계──하늘을 나는 융보로의 정보가, 우리 군에 들어왔지. 그 힘은 해적들을 눈 깜빡할 사이에 규합하고,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만들었다고 하더군"
레도가 말했던, 스트라이커라는 머신 캘리버의 이야기리라.
"나는 하늘을 나는 융보로의 정보가 바디 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 가장 우수한 공작원을 해적 선단으로 파견했다. 당시 그녀만이 다룰 수 있었던 귀중한 바디와 함께"
"리마, 라는 소녀군요"
파울이 끄덕인다.
"하지만, 너무 늦었어. 하늘을 나는 융보로가 한 대 더 나타나 전투가 시작되고, 동귀어진으로 양 기체가 모두 파괴되버리고 말았지. 나와 조종사만이라도 복귀하도록 작전이 변경되었지만, 리마가 명령을 따르지 않아 작전이 파기되었어. 그 때, 레도라는 사내를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면…… 이번 무투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
"폴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그나이트는, 하늘을 나는 융보로와 같은 종류라고. 아닌가?"
"──읏!"
스카야가 튀어나오듯이 파울을 바라본다.
어째서, 그것을. 이 남자는 어디까지 알고 있지?
"아우구스토니아의 땅에 잠들어있었을 터인 이그나이트가 지금, 내 손아귀에 있어. 웃기는 일이지. 하지만, 이 또한 필연 중 하나일지도 몰라"
"대령, 당신은──"
"스카야"
"아──"
파울이 굳이 그 이름으로 부른다.
"이 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을 극복해야만 하지. 요람이 필요하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곳에 멈춰있을 수는 없어. 그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 남자는,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파울이 스카야를 바라본다.
"너야말로, 이그나이트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 사람이다. 힘을 손에 넣은 자에게는, 책임이 따르고, 사명이 따르지. 그것을 완수해라"
모르겠다. 스카야가 헐떡이듯 묻는다.
"사명, 이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해라, 스카야. 그리고 국가에──인류에 종사해라"
파울은 그렇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잠깐──"
하지만, 갑판에서 멀어지는 거구의 등에서, 그 이상의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선루에서 사라져가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카야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 수수께끼마냥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한편, 핵심 그 자체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말한 사명은, 스카야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그것과 딱 맞았다. 자신의 몸을 여기까지 끌고왔고, 지금도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말.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막아서도, 꺾이지 않기를"
입 안에서 중얼거린 말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것처럼, 바닷바람이 스카야의 곁을 스쳐지나간다.
문득, 옅은 푸른색의 눈동자를 지닌 소년의 발랄한 미소가 가슴에 스친다.
서로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서로 했던 맹세가, 미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
"리지트, 어째서?!"
찾아올 거라고 예견하기라도 한듯이, 리지트는 지휘 탁자에서 일어섰다. 오케아노스 호의 브릿지로 달려온 에이미가 필사적인 목소리로 묻는다.
"어째서 혼자 가게 한 거야?!"
"에이미. 조계로부터의 정식적인 요청이야"
"그렇다고 해서!"
도크나 제 1투기장을 둘러본 다음날, 레도는 기다리던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걱정이 되어 여기저기 물어본 결과, 밤이 되서야 그가 조계로부터 출두 요청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리지트는 탁자 위에 남아있던 의뢰서──실질적으로는 명령서인 종이조각을 언뜻 바라본다.
"나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 어떻게 된 일인지, 무선으로 조계 대표에게 직접 물어봤지. 그랬더니…… 요청한 곳은 조계가 아니라, 아무래도 더 상층부인 듯했어"
"상층부? 그건"
"조계를 지배하는 국가 중, 하나겠지. 대표에게는 거절할 권한이 없어. 우리들이 거부하면, 큰 알력을 낳게 되겠지"
"그런!"
"게다가…… 혼자 가도 괜찮다고 스스로 말했어. 그가"
에이미가 숨이 넘어가듯 사고회로를 돌린다.
"레도가……?"
***
그 무렵, 레도는 홀로 조계의 공동 관리부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밤공기가 차가운데도 마을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그치지를 않는다. 다가오는 무투를 앞두고 조계 전체가 열기를 내는 듯했다. 인파로 가득한 투기장 근처를 헤엄치듯 빠져나와, 양국의 군인이 보초를 서는 대료변을 거쳐, 관리부의 커다란 문 앞에 선다.
지시대로 그 곳에서 기다리자, 옆에 있는 보초들의 대기소에서 제복을 입은 소년병이 나타났다. 빼빼마르고 과묵한 젊은이는, 말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레도를 어둑한 통용문으로 이끌었다.
관리부의 건물은, 내부를 좌우 대칭으로 나누어, 육지의 양 국가가 서로 나누어 사용하는 듯했다. 레도가 안내받는 곳은 건물을 바라보고 오른쪽, 리베리스탄이 관할하는 구역의 철문 앞이었다.
"어째서 이런 곳으로? 누가 나를 불렀는지, 듣지 못했나"
대답은 없다. 철문을 여는 둔탁한 소리만을 남기고, 소년병은 온 길을 따라 되돌아가버렸다.
자신을 지명 호출한 사람은 리베리스탄에 소속된 사람인가보다. 온화하지 않은 출두 요청에 군말없이 따른 것은, 선단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육지의 내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리브조차 잘 모른다는, 육지가 끌어안고 있는 비밀. 눈앞의 철문 저편에 그 단서가 있다면, 확인해봐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위험을 동반할 수도 있는 만큼, 에이미에게 알리지는 못했다.
레도는 마음을 다잡고, 차가운 문의 감촉을 느끼며 문을 연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 장소가 얼마나 넓은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천장의 높고 광대한 공간에, 커다란 그림자 두 개가 내뻗듯이 서있었다. 격납고인가, 라고 생각한 순간, 눈부신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격납고의 조명이 켜지고, 그림자의 정체가 밝혀졌다. 덮개로 덮여진 융보로였다. 어째서 이런 곳에, 라고 생각할 때였다.
"어서오게, 레도 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며,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내뻗은 손이 허공을 멤돈다. 무기 휴대는 당연히 금지되어있었기에, 헛손질을 하게 되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구름도 뚫을 것같은 장신을 국방색 전투복에 감싼 장년의 사내였다. 선이 뚜렷한 눈두덩이로, 사양않고 흥미롭다는 눈빛을 내며 관찰하고 있다.
"리베리스탄 군 대령, 파울이다. 자네를 환영하네"
레도는 전신의 털을 곤두세우며, 신경을 최대한으로 긴장시켰다.
"가르간티아의 레도다. 용건이 뭐지"
"그렇게 흥분하지 말라고.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네"
"나랑?"
"벌써 2년 정도 지났나. 우리 국가로 너를 초빙했던 사람이 바로 나다"
"──읏!"
"우리 군이 연구중이었던 오그멘티드 바디의 연구에, 네 지식이 크게 도움되리라 생각한 결과였지. 유감스럽게도 그 때에는 이루지 못했다만…… 지금 이렇게 보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리베리스탄 함대와의 전투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한 순간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네가──!"
"하지만, 너를 초빙하려했던 그 때와는, 상황이 바뀌었지. 모든게 말이야"
"무슨 뜻이지!"
파울은 대답하지 않은 채, 대신 서있는 2개의 기체 곁으로 다가간다. 묶여있던 로프를 풀어헤치자, 덮여있던 덮개가 흘러내려온다.
본 적 있는 두 기체의 모습에, 레도는 경악했다.
"이건……!"
청색과 백색으로 칠해진, 약간 직선적인 의장의 기체──오그멘티드 바디.
백색과 진홍색으로 칠해진, 유려한 곡면으로 구성된 기체──이그나이트.
"우리 리베리스탄은, 이 기체들을 이번 무투에 투입하기로 했다"
"──!"
가까이서 본 바디는 역시, 그 리마가 탔던 머즐과 같은 형태의 기체로 보인다. 리베리스탄의 국토에 사장되어있던 것으로, 사열식 때에 쌍안경으로 확인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아우구스토니아의 스카야가 보여준 이그나이트──머신 캘리버와 지극히 가까운 수수께끼의 존재. 그러나, 이그나이트는 폭탄 테러에 의해 바다 속 깊은 곳에 잠기지 않았던가. 그것이 어째서 리베리스탄의 격납고에 있지.
레도의 의문을 예측하기라도 한듯, 파울이 말한다.
"스카야는 살아있다"
"뭐라고?! 그녀는 아우구스토니아의──"
"테러에서 살아남아, 조국을 버렸지. 그녀는 우리 군 최강의 투사로서, 이그나이트와 함께 이번 무투에 출진한다"
"말도 안 되는! 이 기체는 융보로따위와는 달라, 무투에 사용할만한 물건이"
"이게 너와 함께 나타난 하늘을 나는 융보로──머신 캘리버라면, 확실히 그렇지"
"읏……"
어째서 그 이름을. 스카야가 말했나?
"넌 머신 캘리버를 타고 우주에서 싸우던 군인이었지. 네 동료는 지금쯤 어쩌고 있으려나?"
"너랑은 상관 없어"
"그런가? 이그나이트가 지금 눈 앞에 있는데"
"뭐라고?"
인류 은하 동맹에서 이그나이트같은 기체를 본 적은 없다. 그렇더라도, 그 모습은 확실히 어딘가 체임버와 겹치는 구석이 있다. 전쟁의 기억을 억지로 생각나게 만드는, 궁극의 전투 기계──.
"네가 우주에서 전쟁을 하던 군인의 혼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어떤지, 나는 그것에 흥미가 있다. 혹시, 선단 사회의 얼빠진 생활에 몸을 담을 뿐인 남자가 되버렸다면…… 네게는 아무 자격도 없었을 테지"
"자격…… 이란 뭐지"
"진실을 알 자격이다"
파울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우주에서 온 손님, 레도. 네게 있어서 이 지구의 모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겠지. 구 시대와 비교해 인류의 문명은 놀라울 만큼 쇠퇴했고, 원시적인 생활에 몸을 불사르고 있지.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난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개척한다. 본래 존재해야하는 미래를 볼 의지가 있는가?"
그것은 리브의 말과 신기할 정도로 비슷했다.
──당신이 확인해줬으면 해.
──이 별이, 두고 온 미래를.
"──두말할 것도 없지. 나는 그러기 위해 이곳에 온 거야"
"좋아"
파울의 손에, 어느샌가 마법처럼 총이 쥐어져 있었다.
"세 반도와 그 오지를 막고 있는 산맥의 정상──제 3투기장에서, 진실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 말이 회합의 끝을 고하는 신호였다.
총구에 떠밀린 레도는, 파울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으며 철문 밖으로 쫓겨났다.
쿵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자, 파울은 권총을 홀더 안으로 집어넣었다.
가슴에 만족감이 피어오른다.
레도라는 남자는, 단순한 군인 이상의 남자였다. 성숙한 이성을 지닌 한편, 만족할 줄 모르는 탐구심과 사명감을 감추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는 강인함을 지니고 이ㅣㅆ다.
조작 판넬에 다가가, 격납고의 조명을 끈다.
주위에 어둠이 내려온다.
"좀 더 빨리 만나고 싶었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혼잣말에, 낮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기분을 모르지는 않지만, 조금 별나군"
한쪽 구석에 쌓아올린 컨테이너의 그림자 속에, 목소리의 주인이 실루엣을 띄우고 있었다. 어둠 속에 녹아들어 분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그 남자는 그가 천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오만함이 섞인 미소를 띄우고 있을 것이다.
파울이 남자를 돌아본다.
"당신이야말로 대단하군. 이곳은 리베리스탄의 격납고인데 말이야"
"그런 구별은 이제 의미도 없지. 아닌가?"
그 말대로다. 하나밖에 없는 육지에 두 국가가 경쟁하는 세상의 진실을 알아챈 그 날부터, 파울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 그러기 위해 우리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만족스럽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보다말이야, 라며 남자가 말을 잇는다.
"레도라는 사내를 그만큼이나 부추겨서 어쩔 셈이지? 불확정 요소가 될 거라면 배제하는 데에 망설일 이유는 없지 않나?"
파울은 다시금 이 남자의 마음 속에 새겨진 깊은 야심을 깨닫는다.
"솔직히 대답하지. 4년 전──나는 두 국가의 존재 의의를 알게 되었네. 그것을 아는 위치까지 자신을 높이고, 이윽고 개척될 새로운 세상의 일원이 되는 것이, 내 숙명이라고 느꼈지"
"숙명, 인가"
남자는 감흥을 돋우듯 말했다.
파울이 끄덕인다.
"그러는 한편, 나는 보고 싶기도 하단 말이지.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의 이치를 뒤엎는 모습을"
"흘려 듣지 못하겠군. 숙명을 등질 생각인가?"
"내가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네. 숙명에는 기쁘게 목숨을 바칠 거야. 하지만, 커다란 이상적 현실에, 개인의 자그마한 호기심을 곁들이는 정도의 자유는 있어도 좋잖나. 그건 당신도 같을 텐데. 언제였나, 당신은 육지 국가 500년의 숙원을 '재밌다'고 하지 않았나"
흥, 하며 남자가 콧방귀를 뀐다.
"사람을 움직이고, 기술 문명을 갈고 닦아, 인류가 어느 정도의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이 손으로 시험한다. 이 이상 재밌는 일이 어딨나"
"불순하구만"
"그럴리가, 겸손한 거야. 나는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하늘에 감사하고 있어. 그렇기에 내 모든것을 걸고, 숙원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왔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장애물은 배제해야 해"
파울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장애물이 아니네. 이건 시련이야"
"시련?"
"당신이 인류를 시험하려는 것처럼, 나 또한 시험하는 거야. 우주에서 온 손님에게. 그 한 사람에게 사라질 거라면, 500년의 숙원 역시 그 뿐이지"
"──……"
남자는 파울을 탐색하듯 쏘아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군. 우주에서 온 손님이, 진실과 접촉하고 무엇을 생각할지──나도 알고 싶어졌어"
대치하는 두 사람의 그림자는 이윽고 어둠 속으로 녹아들며, 그들이 각각 내거는 말을 남기며 사라졌다.
"승리와 약진을"
"질서와 번영을"
◆◆◆
수만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시선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어있다.
온갖 길목과 건물에 뚫린 창문 너머로 가득 메워진 군중은, 그 중심에 떡하니 자리잡은 빈 콘크리트 원형 위에서 펼쳐지는 일거수 일투족에 떠들썩하게 반응하거나, 또는 땅을 울릴 정도의 환성을 내지른다.
'무투의 의' 제 1전──'땅의 전투'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양 다리를 크게 뻗으며 달려와, 장검을 팔상으로 겨누며 천천히 거리를 재고있는 기체가 리베리스탄의 선봉, 오그멘티드 바디.
그 정면에 대치하는 기체는 아우구스토니아의 선봉──검은 기체에 연지 라인을 곳곳에 붙인 글래디에이터이다. 약간 거리를 두고, 완곡한 장도를 아래로 겨누며 허리를 낮게 숙인다.
기능적으로 세련되고 단정한 오그멘티드 바디에 비해, 글래디에이터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군용 융보로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으며, 둔중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전투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겉모습으로 한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리베리스탄이 유리할 거라는 평가를 뒤집으며, 전투는 개시 직후 발검한 두 기체가 맞닥들이자마자, 교착상태에 들어가고 말았다. 아우구스토니아의 글래디에이터──투사 랏셀이 조종하는 기체가, 적 기체에 지지 않을 정도의 민첩함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별로 움직이지 않게 되버렸군. 서로 노려볼 뿐인가"
"분명 깜짝 놀랐겠지, 평범한 놈이 아니라고"
투기장을 둘러싼 사람들의 맨 앞줄에서, 콕스와 테아시가 랏셀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계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제 1투기장에는, 조잡하지만 객석이 설치되어있다. 하지만, 의자도 방호벽도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50m라는 투기장 직경은, 바로 눈앞에서 관전하기엔 너무나도 위험하다. 전투로 인해 날아오는 파편으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조계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실제로 관전 장소가 되는 곳은, 객석마저 둘러싸고 있는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의 지형이 투기장을 중심으로하는 절구 모양으로 되어있어, 거리는 멀지만 어디서든 구경할 수 있다.
인구 밀도가 높은 것은, 마을 곳곳에 배치된 군용 융보로의 탓도 있다. 치안 유지의 명목으로 양 국가에서 파견된 것인데, 실제로는 현재 보유중인 육군 전력의 대부분이며, 상대에게 국력을 과시하며 시위하는 성격이 강하다.
양 군이 정예부대를 이끌고 어마어마한 개전 의식을 거쳐, 육지의 패권을 다투는 무투의 의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길목을 가득 메운 인파 너머로 전투를 지켜보던 레도와 에이미 역시, 오랫동안 계속되는 신경전을 쭈욱 바라보고 있었다.
"레도, 저 아우구스토니아의 투사는"
"맞아, 기술 교류에서 나랑 함께했던 랏셀이야. 회의에서 말했던, 사람의 말을 하는 생물체를 데리고 있겠지"
"리브, 라고 했었나?"
"그래. 리브에게는 기체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나봐.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확실히 오그멘티드 바디에 지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런 일이──"
에이미가 감탄하려는 때,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바디가 땅을 박차며 정면에서 달려들었다. 베기는 한 번 뿐, 두 번째 공격을 최저한의 움직임으로 흘려보낸 글래디에이터가, 검 끝을 두드리며 상대의 자세를 무너트리고자 뛰어올랐다. 초조함 섞인 커다란 황ㅅ성과 함께, 다시금 전투가 시작된다.
맨 앞줄에서 콕스가 혀를 찬다.
"뭐야 랏셀, 좀 더 할 수 있었는데!"
테아시는 양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로 마음을 졸일 뿐이었다.
"부탁이니까, 무리하지 마……"
한 편, 칼부림으로도 몸싸움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 레도는 뇌를 풀가동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노리고 있어"
"응?"
"랏셀은 기체의 한계를 잘 알고 있어"
의아한 표정의 에이미에게 레도가 말한다.
"오그멘티드 바디와 글래디에이터는, 애초에 내구성이 달라. 움직임에 관해서는 손색이 없을지라도, 힘싸움으로 들어가면 바디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알고 있으니까, 계속해서 거리를 두는 거야"
"그럼 어떻게 싸울 생각일까?"
"만약, 나라면──"
전투 기계를 타던 파일럿 시절의 본능이, 뇌리에 어느 전술을 그려낸다. 거의 동시에 재개된 전투는, 정확히 그 생각처럼 흘러갔다.
상대가 기다리다 지쳤는지, 다시 검을 휘두르며 덤벼온다. 글래디에이터는 불꽃을 뿜으며 그 검끝을 튕겨내며, 자신의 검을 상대의 도신에 미끄러지듯이 맞대어 올린다. 순간, 바디의 손끝에서 장도가 사라지더니, 하늘로 날아오른다. 둔중한 겉모습에서는 상상도 못할 유려한 몸놀림에, 군중들이 갈채를 보낸다.
먹잇감을 빼앗은 유리한 상황에 힘입어, 단숨에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다. 그 순간, 글래디에이터가 스스로 검을 던지더니, 우뚝 선 채로 바디에 강렬한 몸통박치기를 먹였다.
"엑, 어째서 검을 버렸지?"
놀라는 에이미의 옆에서, 레도가 눈치를 챈다.
역시.
현재 육지의 기술로 만들어진 검으로는, 오그멘티드 바디에게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난투를 벌여도 위력의 차이는 확실하다. 근본적인 성능의 불리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공중제비를 돌며 땅에 쓰러진 바디의 오른다리에, 글래디에이터가 올라탄다. 양 팔과 양 다리를 복잡하게 묶어놓더니, 상대는 온힘을 다 써도 풀지 못하며 모터음만 울려퍼질 뿐이다.
"어이, 제대로 싸우라고─!"
"왜 검을 버린 거야!"
"꼴불견이다!"
엉망으로 싸우는 꼴에 살기를 세우며 노성을 지르는 군중들 속에서, 레도가 내심 중얼거린다.
이 방법밖에 벗어.
무투는 전통적인 규칙에 따라 행해지며, 원거리 무기의 사용은 금지되어있다. 오그멘티드 바디가 강력한 전자 병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애초에 그 기술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성능 면에서 호각인 기체와 싸울 때만 유효한 격투전을 버리고, 적의 기동력을 빼앗기에 주력한다──레도가 예상한 전술을, 랏셀이 실행에 옮긴 것이다. 코어 유닛이 만들어내는 토크의 대부분을 적의 오른쪽 관절에 집중시킨다.
서서히 글래디에이터의 의도를 깨달은 군중이 승부의 결착을 향한 초세기를 하듯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땅이 울리듯이 투기장 전체가 흔들린다. 흥분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던 바디의 관절부가 비명을 지르는듯한 소리를 내며 파괴되었다.
글래디에이터는 뿌리부분부터 휘어진 오른다리를 들어올리며 잠시 바라보더니, 내던지듯이 던저버렸다. 한 번 손에서 떨어졌던 검을 주워, 그대로 바디에 다가간다.
몸을 일으키려고 이리저리 비틀다가 무너져버리는 적 기체의 옆에 서자, 글래디에이터는 거꾸로 쥔 검을 혼신의 힘으로 경추부에 찔러넣는다. 청백색 스파크가 튀며, 오그멘티드 바디가 단말마의 경련만을 남기며 침묵한다.
조용해진 투기장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진다.
승패가 결정났다.
"……랏셀이"
"……이겼어"
콕스와 테아시의 멍한 중얼거림이, 수많은 환성이 덮어버린다.
아우구스토니아에 내려진, 지지난번 무투 이후로 8년만의 승리였다.
글래디에이터 해치가 열리며, 기체와 똑같은 색의 군복을 입은 투사──랏셀이 모습을 드러낸다. 큰 소리를 울리며 외치는 환호의 목소리에 둘러싸이면서도, 표정이 고양되지는 않았다.
"리브. 수고했어"
조종석 한 구석에 몸을 웅크린 리브는, 그 말에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감색 눈동자를 감은 그대로다. 다음에도 이긴다, 라는 말만 남기며, 랏셀이 시선을 되돌린다.
투기장 주변을 가득 채운 수많은 군중을 천천히 바라본 뒤, 조계 반도의 전경을 우러러본다. 지금은 아직 먼 안개낀 산봉우리를 옅은 푸른색 눈동자로 바라보고, 랏셀은 눈꺼풀을 가늘게 떴다.
***
"아버지──아니, 각하. 우리 승리입니다"
대신 비서관인 스키더가 마음속 흥분을 잠재우며 말한다.
투기장의 바깥쪽 가장자리에 설치된 견고한 귀빈실에서, 산업 전략 대신 세오드라이트가 대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쓰러진 적 기체와, 훌륭하게 서있는 글래디에이터. 그 너머에, 리베리스탄 측의 귀빈실이 보인다. 저 안에도 무투의 진짜 의미를 모르는 자가 대부분이다. 예상 외의 패전에 당황해 허둥거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은 세오드라이트가 옆에 있는 스나이더를 부른다.
"네 판단은 옳았던 모양이군"
"감사합니다"
"다음 '바람의 전투'에서, 투사 랏셀에게 오그멘티드 바디의 사용을 허가해라"
"넷!"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지금의 랏셀이라면, 바디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으리라.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시절이 끝나고 있음을 느끼며, 스나이더는 오랫동안 봉인해두었던 야심의 불꽃을 눈동자에 번뜩인다.
"성과를 내보도록"
엄숙히 명령하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난 세오드라이트가 시종에게 망토를 받아 몸에 걸친다.
"스키더"
"넷"
"너는 나를 대신해 제 2전을 감독해라. 판단하기 곤란한 사태가 발생하면 스나이더를 의지하도록"
목례하는 스나이더에게 겁내는 모습은 없다.
스키더는 째진 눈에 의문을 띄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각하께선 무투에 입회하시지 않으시는지요?"
대답하지 않은 채, 위풍을 떨치듯한 걸음걸이로 귀빈실을 나가는 세오드라이트를, 스키더가 의아하게 생각한다. 생산 전략 대신은 무투의 행방에 대한 중책을 짊어지고 있다. 아버지는 그 성과를 직접 보지 않을 생각일까?
"스나이더"
"네"
"무슨 일일까. 뭔가 들은 거 없어?"
"아뇨. 깊은 생각이 있으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건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시죠. 바람의 전투에서도, 틀림없이 저희가 승리할 테니"
단정적인 말투가 어째선지 신경에 거슬린다. 애초에 곤란한 때에는 이 남자를 의지하라니, 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스키더는 분노 섞인 눈초리로 스나이더를 쏘아보려다, 숨을 집어삼켰다.
"당신──"
"왜 그러시죠?"
이런 눈을 하는 남자였나.
무능한 여동생을 지키는 것이 고작이었던 낙하산 출세의 귀염성은 있었을 지언정, 의지할 수 있을만한 패기따윈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성과를 내고,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평상시보다 유사시라는, 이것이 군인의 본모습인가──아니면.
동지 이상의 남자로 평가를 고치고, 스키더가 정숙하게 미소짓는다.
"아뇨. 좋은 조언을 기대할게요, 스나이더"
◆◆◆
아우구스토니아의 서전 승리를 통해, 무투의 무대는 바로 제 2투기장으로 옮겨갔다.
남북으로 가늘고 긴 조계 반도의 중앙을 궤뚫는 경사면의 큰 길을, 양 국가의 장대한 행군이 엄숙하게 이어진다. 테러를 경계하는 수많은 군용 융보로가 호위하는 중심에 있는 것은, 장막으로 적재함을 감싼 두 개의 캐리어이다. 내용물은 두말할 것 없이 바람의 전투에 도전하는 투사가 타는 기체다. 도착 후, 바로 사열이 진행될 것이다.
장엄한 행진에, 제 2전을 관전하려 모여드는 인파가 그 뒤를 잇는다.
땅의 전투를 관전할 때에는 돈을 낼 필요가 없지만, 바람의 전투는 그렇지 않다. 조계의 하층민 대부분은 가난하며, 지금 경사면을 오르는 자들은 대가를 치를 중산층 사람들이다.
그 인파 속에, 레도도 있었다.
리지트와 다섯 현인들에게 잠시 선단을 벗어나, 무투의 행방을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직 도크에 몸을 맡기고 있는 가르간티아에 있어서, 육지의 사태를 바르게 파악하기란 매우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그 바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레도는 감사하며 하나 더, 부탁을 했다. 그것은 점검이 끝난 가르간티아 호의 깊숙한 곳에 잠들어있는 기록을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육지에서 사장되었던 오그멘티드 바디는, 인류 은하 동맹의 뿌리가 되는 구 시대의 세력──콘티넬탈 유니언이 만들어낸 물건이다. 즉, 육지는 유니언의 세력 하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에 비해 가르간티아 호는 유니언과 대립했던 에볼버가 건조한 배이다. 지금까지 육지로부터 직접 정보를 모으려 했지만, 적대 세력인 에볼버 측의 기록에도 무언가 단서가 있지 않을까──. 레도가 생각해낸 지적에, 리지트와 다섯 현인은 가능성을 인정하고, 승인해주었다.
마지막까지 동행하기를 원하던 에이미를 어찌저찌 설득하고, 레도는 지금 무투 제 2전──바람의 전투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제 2투기장은 낮은 경사면으로 이루어진 조계 반도 중앙부에 위치해있다.
주위는 중산 계급 이상의 사람들이 사는 저택이 나란히 세워져있고, 저층민들이 사는 조잡한 건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호화스러운 건물들이었다.
투기장 건물 역시 화사했다.
전투의 무대가 되는 직경 150m의 콘크리트제 원형 구조물. 그 바로 바깥쪽에 폭, 깊이 모두 30m정도 되는 호가 펼쳐져있다. 그리고 호 바깥으로는 계단처럼 생긴 객석이 둘러싸고있는 구조물이다. 전투의 피해로부터 관객을 지키기 위한 배려인 셈이다.
레도가 입장할 때, 객석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숫자만 따지면 5000명 정도 될까. 기체의 등장을 얌전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열기가 회장을 감싸고 있었다.
***
랏셀이 편의를 봐준 덕에, 콕스와 테아시에게는 맨 앞쪽 특등석이 준비되었다. 좋은 옷을 입은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둘은 기대감과 불안감으로 눈을 마주봤다.
"드디어네…… 어떤 상대가 나올까"
"랏셀 녀석, 안에서 잔뜩 쫄아있는 거 아냐?"
그 때, 객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투기장 양쪽 끝에 마주보듯이 설치된 문 중 한 곳에서, 거대한 사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와, 왔다! 랏셀!"
"어라, 전에 탔던 기체랑 다른데……?"
콕스의 의문을 뒤쫓듯 회장이 술렁거린다. 무리도 아니다. 호에 설치된 다리를 밟으며 천천히 나타난 기체는, 검은색과 어두운 붉은색으로 칠해진 오그멘티드 바디였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토니아의 바디는 그 누구도 처음 보는 기체였다.
땅의 전투에서 등장했던 리베리스탄의 기체와 달리, 마디마디가 둥글게 되어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글래디에이터보다 약간 작지만, 강인함이 넘쳐흐르는 왕성한 실루엣이다.
"저건 뭐지, 랏셀 녀석 출세했잖아?!"
"정말, 재밌게 해주잖아!"
또 다른 문에서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관객들의 눈이 일제히 반대편으로 향한다.
리베리스탄의 부장 기체.
높이는 아우구스토니아 기체보다 약간 낮고, 전체적인 인상은 대조적인 하얀색이다.
심홍색 아머로 감싼 상반신과, 민첩함을 느끼게 해주는 튼튼한 하반신. 복잡하게 짜여진 유려한 곡면의 안쪽에 힘을 품고있는 모습 역시,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예외는 레도 뿐이었다.
파울이 밝힌 것처럼, 리베리스탄은 진짜로 이그나이트를 투입했다.
아우구스토니아의 투사는 랏셀이며, 당연히 리브를 데리고 있을 터. 바디와 리브의 힘이 합쳐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확인해보고 싶다고 샘솟는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레도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경직해버린 랏셀의 기체를 눈에 담았다.
***
"설마──"
오그멘티드 바디의 기내에서, 랏셀은 경악했다.
잘못봤을 리가 없어, 저것은 이그나이트──말을 하며, 생각을 하고, 스스로를 창조하는 기체라고──그녀가 말했다.
조종석의 랏셀을 오른쪽 뒤에서 끌어안듯이 서있던 리브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맞댄다.
<랏셀, 저건>
"아, 아……"
믿을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말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눈에 펼쳐진 광경에 일말의 진실미도 느끼지 못하고, 랏셀은 그저 머리 속의 심지가 하얗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때였다.
정면에 위치한 이그나이트의 해치가 소리도 없이 열렸다.
"──!"
전투 전에 투사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해야한다. 랏셀은 튀어나가듯 해치를 열고 서서, 몸을 내뻗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급상승한 체온을 빼앗으며, 전신에 오싹하게 식어감을 느낀다──.
이그나이트의 조종석에 선 리베리스탄의 투사는, 몸에 딱 맞는 순백색 전투복을 입은 소녀였다.
철저하게 청초함을 풍기며, 하얗고 단정한 모습이다.
단 하나 기억과 다른, 짧은 은빛 머리칼이 미풍에 흩날린다.
깊은 보라빛 눈동자가, 처음으로 시선을 마주했을 때보다도 영리한 빛을 띄우고 있었다.
<저기, 랏셀!>
"그래"
저것은.
──스카야.
◆◆◆
거친 바람에 외투 소매가 나부낀다.
구두창이 고개를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급준함이 더해지며 경사짐이 전해져온다.
스카야는 살아있었다.
사열장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고, 레도는 제 2투기장을 뒤로 했다.
전투가 어떻게 될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사실에 다가가고 싶다는 욕구가 그 마음을 상회했다.
무투의 의, 제 3투기장──'하늘의 전투'의 무대가 되는 장소를 목표로, 레도는 혼자 묵묵히 발을 움직였다.
아직 먼 정상은 두터운 구름으로 가득차, 전체 모습을 바라볼 수 없다. 가끔씩 예고고 없이 불어치는 차가운 바람은, 주위 건물이 없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조계 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제 2투기장으로부터 조금 윗부분까지가, 계층이 높은 사람들이 사는 중산층 지역이라고 했다. 확실히 그 주변까지는 냉량한 기온이었고 햇빛도 부드러워 살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된다. 바다에서 뜨겁고 끈적한 바닷바람도 닿지 않는다. 늘어선 건물의 부지는 모두 넓직했으며, 건축물은 화사했고, 담장도 높았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적지만 도로는 곳곳까지 말끔하게 정비되어있다. 저층부의 마을에 익숙해진 눈에는, 그것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해발의 차이가 빈부의 차이에 비례한다는 육지의 특징을, 레도는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대를 지나면 경치는 다시 일변한다.
따듯했던 몸이 서서히 식어감을 느끼게 되었을 무렵, 마치 거인의 나이프에 잘린 것처럼, 중산층의 마을이 뚝 끊겨버린 것이다. 다듬어진 길도 끝나고, 바위와 자갈만이 남은 황량한 경사면으로 변했다.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고, 체온을 가차없이 빼앗아간다.
외투 앞섬을 여미며, 아플 정도로 차가운 철 파이프를 지팡이삼아, 레도는 한결같이 위로 올라갈 뿐이었다.
이미 길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길을 뒤덮은 모래자갈은 밟을 때마다 무너져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방해한다.
그렇지만 피로는 최저한으로 끝내고 있다. 언젠가 에이미가 가르쳐준대로, 천으로 발목을 감싸 고정해둔 덕분이다. 선단을 이리저리 달리는 메신저로서의 지혜가, 레도를 불필요한 상처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다.
고마워.
마음 속으로 그렇게 읊조릴 때, 얼어붙는 감각마저 희미한 볼에, 아플 정도로 차가운 감각이 스쳐지나갔다. 무심코 발을 멈추고 바라본 손가락 끝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자세히 보니, 볼을 스쳐지나가는 바람 속에 순백색 조각이 차례차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의 윗쪽은 정말 추워서, 비가 얼어 가루가 되서 날아다닌대.
──눈이라고 한다더라.
──따듯하게 하고 가, 알았지.
레도를 배웅해줄 때, 에이미가 그렇게 가르쳐줬다. 걱정해주는 목소리가 아련한 등불처럼 가슴을 지핀다. 그 따스함을 의지하며, 레도는 시야를 뒤덮는 흐린 구름을 향해 무심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샌가, 주위는 그림물감을 진하게 발라놓은 것처럼 한쪽 면이 잿빛으로 닫혀있었다.
구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듯하면서도, 나아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순간, 레도는 오른쪽 풍경에 위화감을 느꼈다.
잿빛 속에 한층 더 눈에 띄는 검고 거대한──너무나도 거대한 그림자가, 환영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크게 목을 돌리며, 시선으로 그림자의 외견을 훑어보니, 그림자는 산꼭대기에서부터 눈 앞의 경사면까지 덮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적절한 표현이 아니겠지. 원근감이 미쳤나 싶을 정도의 스케일이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보통은 존재가 불가능한 크기이다.
인공물──이게 제 3투기장인가?
그 때, 눈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이 갑자기 강해졌다.
커다란 소리로 대기를 울리며, 잿빛이 급속히 사라진다.
시야가 맑아진다.
레도는, 황량한 경사면이 여기서 끝났음을 깨달았다.
──이곳이 정점이다.
머나먼 봉우리에, 드디어 도착했다.
몸이 날아갈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부는 한편, 눈은 모습을 감추며 사라졌다. 눈구름 자체가 날아가버린 것이 분명하다.
열심히 눈을 굴린다.
가까운 거리에서 먼 거리로.
산맥 저편에 광대한 풍경이 나타난다.
발밑은, 걸어온 길과 똑같이 황량하고 급준한 경사면이다.
시선을 조금씩 위로 올린다.
이윽고 눈 밑의 대지가 농밀한 암록색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빽빽하고 무성한 침엽수림이다.
밀림은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펼쳐져간다──그런데, 그 한가운데를 뚫어버리듯이, 폭 수km는 되보이는 새하얀 '길'이 내달리고 있다.
뇌리에 육지의 지도를 떠올린다.
눈앞의 광경을 지도와 겹쳐보자, '길'은 시간의 기둥이 상공에 그리는 주회 궤도와 일치했다. 여기부터 거리로 치자면 약 40km. 쏘아내려지는 방대한 에너지가 그 어떤 생존도 허락하지 않는, 죽음의 영역.
그리고.
레도의 뇌가 굳이 인식하기를 거부하고 있었을까.
마지막에, 순백의 '길' 위에 존재하는 기묘한 물체가, 의식 끝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터무니없이 방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중앙부가 약간 부풀어오른 평평한 타원형. 그것이 '길'을 얕은 각도에서 찌르고 있었다.
이건 분명, 기둥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리라.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처음일 터였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알고 있다.
어째서. 어디서 봤지.
수면 계발 영상.
이민용 콜로니 우주선. 거주구. 낙원의 반짝임. 아름다운 이상향.
인류──은하동맹.
"아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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