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목록 (상단)

2018년 7월 3일 화요일

취성의 가르간티아 외전 ~소년과 거인~ 제5장 견학

-1-

 시뮬레이터 시트에 몸을 맡기고, 스톡은 꿈을 꾼다.

 어둑어둑한 어둠에, 토악질을 유발하는 냄새가 가득하다. 피의 냄새. 오줌 냄새. 내장의 냄새. 썩은 고기의 냄새.

 전장의 냄새다.

 어째서인지 스톡은 알 수 있었다.

 전장의 텅 빈 구멍 속에, 스톡은 몸을 숨기고 있다.

 "누군가──"

 목소리를 내려던 순간. 총탄이 스톡의 머리를 꿰뚫는다. 한 순간의 죽음이 슬로우 모션으로 펼쳐진다. 금속 파편에 닿은 두피가 찢겨나가고, 두개골이 뚫리고, 부드러운 뇌를 꿰뚫기까지의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다.

 자비로운 어둠 속에서 스톡이 쓰러진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어둠 속. 피와 내장과 똥오줌의 냄새. 전장의 구멍 속에.

 ──이번엔 죽지 않는다.

 그렇게 다짐하고 머리를 들지 않은 채, 전장의 대지를 엎으린 상태로 기어간다.

 인간이 총을 쏘고 있다. 사람의 모습이 아닌 괴물들이 날뛰고 있다.

 스톡은 가까이 있는 인간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다.

 "저──"

 다시금 총탄이 스톡의 머리를 관통한다.

 아군이라 생각했던 인간은, 익숙한 동작으로 스톡의 목을 찢고 피를 뺐다. 배를 나이프로 가르더니 내장을 쏟아낸다.

 살인자가 불을 피우기 시작할 즘에서, 스톡의 의식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세 번째, 전장의 어둠 속에 나타난다.

 ──잡아먹히는 건 사양이야.

 스톡은 스스로 다짐한다. 무기를 찾아보지만, 그런 물건은 없다.

 가까이 있는 인간을 뒤에서 기습하고, 목을 졸라 무기를 빼았으려 했지만, 간단히 제압당한다. 다시 목이 찢긴다.



 스톡은 몇번이나 죽고, 몇번이나 부활했다. 그럴 때마다 조금씩 학습한다.

 식량을 먹고있는 녀석을 뒤에서 기습해 죽인 뒤 무기를 빼앗는다. 무기를 가짐으로써 대등한 교섭이 가능해진다. 식량을 나눠받고, 동료를 만든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자신의 세력을 늘려간다.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다.

 스톡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자고 있을 때. 먹고 있을 때. 배설하고 있을 때. 어떤 강자에게도 약점은 있으며, 약점을 잡히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진정한 강함이란 약함을 지배하는 것이다. 타인의 약점을 쥐고, 자신의 약점을 지키는 것. 그것만이 진정 의미있는 강함이다.

 정신차리고 보니, 스톡은 인류를 거느리며 히디어즈에게 총공격을 개시하고 있다.

 용감한 영웅의 용맹함을 이용해, 마음껏 돌격하게 하고, 마음껏 죽게 한다.

 정이 두터운 자들의 정을 이용해, 마음껏 막게 하고, 마음껏 죽게 한다.

 겁쟁이들의 겁을 이용해, 마음껏 미치게 하고, 마음껏 죽이게 한다.

 그렇게 해서, 모든 병사들이 올바른 죽음을 얻을 수 있는 전장을 얻는다.

 마지막까지 남은 스톡이, 히디어즈 무리를 상대한다.

 약해지고 상처입은 무리를 보며, 스톡은 만족해한다. 여기부터는 다른 사람이 이어받겠지. 이를 반복해 인류는 언젠가 승리하겠지.

 그러한 확신을 하며, 스톡은 남은 탄약을 폭발시킨다. 잔해에 몸이 찢기며, 피를 토하며, 스톡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잠긴다.



 눈을 뜨자, 스톡은 머리를 흔든다.

 싫은 꿈이다. 냄새는 싫다. 그런 식으로 출세하는 건 좋지만, 마지막에 죽어버린다니 바보같다. 나는 절대로 살아남겠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한다. 그러려면, 약함을 지배해야 한다.

 레도와 미리카는 쓸만한 말이다. 하지만 멋대로 움직이는 말은 필요 없다.

 그녀석들의 약점을 찾아내, 움켜쥐어야만 한다.

 그것이 자신의 목적이다.

-2-

 레도는 상쾌하게 눈을 뜬다.

 커뮤니케이터를 보자, 기상 시간 딱 5분 전이다. 5분이 지나자, 설정해둔 세 종류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레도가 설정한 알람은 음성 알람, 전격 알람, 홀로그램 알람이다. 특히 마지막 홀로그램 알람은 머신 캘리버의 발포 모션으로 시작해 히디어즈가 폭발하는 이펙트로 이어지는 역작이다. 하지만 일단은 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레도는 웃는다.

 ──오늘부터 실기 실습이다.

 진짜 머신 캘리버를 사용한 실기 실습이 시작된다.

-3-

 "안녕, 레도"

 "안녕!"

 미리카에게 하는 인사에 힘이 실린다.

 "기합이 바싹 들어있네"

 "응"

 진짜의, 실물 크기의, 타고 움직일 수 있는 머신 캘리버다. 기합을 넣지 않고서는 못배긴다.

 "머신 캘리버도 좋지만, 다른 실습도 잊으면 안 돼"

 "응"

 레도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실기 실습은 정확히는 직업 견학 실습으로 불리며, 인류 은하 동맹의 다양한 직업 체험이 목적이다. 머신 캘리버 관련 실습에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있지만, 그 외에도 할 일은 산더미같이 많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는다. 스톡 일행도 들어와 착석한다.

 인사를 마친 뒤 모두 조용히 앉는다.

 "안녕, 레도"

 마지막으로 론도가 옆자리에 나타난다. 홀로그램이다.

 레도는 론도의 얼굴을 바라본다. 나랑 닮았나?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응, 역시 닮았다.

 "왜?"

 론도가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아 안녕. 오늘은 홀로그램이네?"

 "진짜 몸으로 가고 싶지만, 체력이, 조금"

 "그렇구나"

 거의 귓속말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자, 교실은 완전한 침묵에 지배된다.

 무언가가 시작하려 한다는 기대감.

 무언가가 변하려고 한다는 갈망.

 무언가가 끝나려고 한다는 공포.

 그 공기를 레도가 빨아들이고, 내뱉는다.



 교사가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작은 한숨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4-

 마스크 너머로도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한 우유향에, 레도가 얼굴을 찌푸린다. 클래스 모두도 같은 모습이다.

 눈앞에는 거대하고 검푸른 진흙으로 가득찬 풀이 펼쳐져 있다. 수면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긴 봉으로 풀을 휘젓고 있다.

 "이게 식량탱크야"

 인솔역을 맡은 미리카가 태연스런 목소리로 말한다.

 "똥내나"

 돌이 낮게 중얼거리자, 레도는 토할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주에 있어서 자원은 항상 유한하며, 극한의 리사이클이 의무시되고 있다.

 그 궁극의 형태가, 바로 이 식량탱크다.

 모여진 폐기물을 미생물 분해하고, 아미노산에 분해해서, 식량으로 삼는다.

 레도 일행 앞에 있는 것은, 이미 분해가 진행된 것으로, 음식물쓰레기 냄새나 아까 돌이 말한 '똥내'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유와도 같은 향이 난다.

 "어─, 한 사람씩 교반 실습을 합니다. 지도원 분을 따라 잘 저어주세요"

 미리카가 프로그램을 읽어나간다.

 돌이 앞으로 나와 교반봉을 받아든다. 봉의 길이는 2m 정도이며 끝부분이 넓어진 형태다.

 다리를 건너며 교반봉을 풀 안에 집어넣는다.

 힘껏 휘저어보려고 하지만, 꽤나 무겁다. 게다가 다리가 흔들려서 자세를 잡기가 힘들다. 옆에서 느긋하게 젓고 있는 직원과 비교해보면 차이는 역력했다.

 미리카가 시간을 재고, 5분이 지나자 돌은 교대했다.

 "어차피 이딴 곳은 안 올 거야"

 돌은 분하다는 듯이 말한다. 확실히 식량 생산은 그다지 인기 없는 직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깔봐서는 안된다고 레도는 생각한다.

 이어서 스톡은 무난하게 끝마쳤고, 그 다음은 레도의 차례였다.

 "자"

 미리카가 건네주는 봉을 받고 다리를 건넌다.

 다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게 흔들려서, 자주 미끄러졌다.

 "발 밑을 조심해라"

 교반봉을 휘젓자, 지도원이 옆에서 지시를 내린다. 레도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한계였다.

 봉을 풀 안에 넣자, 쑥 빨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용돌이가 있는 듯하여, 저으려 하지 않아도 멋대로 봉이 움직인다.

 봉의 흐름에 거스르려 하지 않을수록, 허리가 굽어지며 봉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

 지도원의 모습을 바라보니 발밑의 불안정함이 거짓말인 양 등을 꼿꼿하게 펴고 봉을 크게 젓고 있다.

 흉내를 내보려 등을 펴봤지만, 발밑이 흔들려 굴러떨어질 것만 같다.

 "조심해라"

 지도원이 레도의 어깨를 붙잡는다.

 "천천히 하면 돼, 천천히"

 레도는 끄덕이고는 천천히 젓는 데에 집중한다.

 조금씩 잘 저을 수 있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무렵에 미리카가 교대 신호를 보내왔다.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인사를 한 뒤 다리를 내려온다. 딱 5분 있었을 뿐인데 흔들리지 않는 지면으로 돌아오니 이상한 느낌이었다.

 지도원은 변함없이 좋은 자세로 휘젓고 있다. 레도는 어떤 직업이든 숙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라이디는 적당히 끝내고, 미리카의 차례가 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리카의 목소리는 다리 건너편까지 울려퍼졌다. 운동이 특기인 탓인지, 미리카의 자세는 레도가 본 것 중에 누구보다 깔끔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도원에게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전신을 사용해 휘젓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레도가 감탄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라이디가 레도 옆을 지나간다.

 뭘 하려고 그러지,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라이디가 다리를 걷어찬다.

 "야, 하지 마"

 레도가 말하자, 라이디가 돌아본다. 그의 울상이 된 얼굴을 보고, 레도는 사태를 파악했다.

 스톡과 돌이다. 두 사람이 라이디를 협박해 다리를 걷어차라고 시킨 것이다.

 다리가 흔들리자, 미리카가 자세를 무너뜨린다.

 "꺅"

 작은 비명이 새어나오고, 손에서 봉을 놓쳐 떨어트린다.

 다행히도 미리카가 떨어지기 전에 지도원이 손을 붙잡긴 했지만, 봉은 천천히 기울어지며 가라앉았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괜찮아"

 지도원이 익숙하다는 듯이 자신의 봉을 미리카의 봉에 걸친다.

 "위험하니까 저기 가있으렴"

 "네"

 미리카가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지도원이 미리카의 봉을 끌어올린다. 봉에서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방울이 다리에 떨어지자 푸쉬쉭 하며 거품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보고 레도는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러고보니 미리카도 회의 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온갖 유기물을 분해 처리하는 도중이기 때문에 독성이 있다고 했던가.

 "무슨 짓이야, 너희들"

 미리카가 돌아와 모두를 바라본다.

 라이디는 벌벌 떨고 있었다.

 "어이 라이디, 뭐하는 짓이야"

 돌은 그렇게 말하며 라이디의 등을 힘껏 때렸다.

 "그만해!"

 "야─ 진짜 큰일이었지. 야, 사과해"

 스톡은 그렇게 말하고는 라이디의 머리를 잡고 억지로 숙이게 만들었다.

 "미, 미안해"

 "이녀석도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말야, 용서해주지 않을래? 반장님?"

 미리카가 스톡을 노려본다.

 이 두 사람이 라이디에게 시킨 건 확실하지만, 증거가 없다.

 "앞으로는 조심해"

 그 말만 하고는 등을 돌렸다.

-5-

 "큰일이었지"

 다음 견학 장소로 걸어가면서 레도가 말을 건다.

 "정말, 귀찮다니까"

 미리카는 지친 모습이었다.

 "반장으로서 실습 평가를 낮춰버리면 어때?"

 "평가는 공평해야 해. 못 본 사실로 점수를 깎을 수는 없어. 그 셋이 뭐했는지, 레도는 보지 못했어?"

 "아니…… 눈치채지도 못했어"

 "그럼 어쩔 수 없네"

 "라이디는 어떡하지?"

 "수업 중 부주의, 정도려나. 고의적 살인미수라고 보고하면 아무래도 평가가 너무 심하게 깎이겠지"

 미리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레도도 눈치챘다.

 스톡 일당은 미리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진지하기에 증거도 없이 스톡을 몰아세우지는 않는다. 억울한 라이디에게 큰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감시하자. 알았지"

 "응. 나도 조심할게"

 "나도 봐줄게"

 론도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커뮤니케이터에서 나는 소리다.

 "있었어?"

 "응. 거기, 카메라는 있지만, 프로젝터는 없으니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해서 미안해"

 카메라를 통해 수업은 보고 있었지만, 홀로그램은 꺼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론도의 말에 미리카도 처음에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결국 '손은 많을 수록 좋겠지'라며 수긍했다.



 이어지는 의료 견학에서는 작업 기계에 휘말려 큰 부상을 입은 인간의 치료를 견학하고, 레도는 기분이 나빠졌다. 의사는 될 수 없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은 벨트 컨베이어 앞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공장 견학이었다. 이것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머신 캘리버 조종을 하는 실기실습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6-

 레도 일행이 사는 거주 구역은 가느다란 고리의 모양으로, 회전에 의해 중력이 만들어진다.

 인간이 생활하려면 중력이 있는 편이 여러모로 좋지만, 머신 캘리버같은 무거운 물건을 다루려면 무중력 상태가 훨씬 좋다.

 그렇기에 고리의 중심에는 꼬챙이로 꿰둔 것처럼 생긴 무중력 구역이 존재한다.

 무중력 구역으로 가는 통로는 거주 구역의 천장으로 뻗어있다. 레도 일행은 그 '위'로 뻗은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었다.

 사다리를 올라가면서 점점 중력이 적어지고, 자신들이 있는 곳이 '위'인지 '아래'인지 헷갈리게 된다.

 완전히 위아래의 파악이 되지 않게 되었을 즘, 레도 일행은 해치를 빠져나와 무중력 주역에 도착했다.

-7-

 항성 간 이동에는 다양한 장벽이 있다.

 우선 이동할 거대한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령 무한한 에너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동하는 것은 인간의 육체라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가속따위는, 항성 간의 거리에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1G나 2G로 조금씩 조금씩 가속해봤자 별들의 사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이론상으로는 인체 개조라는 수단이 있기는 하다. 강대한 G에 견뎌낼 수 있도록 하든가, 또는 긴 수명을 부여하든가 하면, 우주의 심연도 뛰어넘을 수 있다.

 하지만 레도는 그것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인류를 완성된 생물이라 가르치는 인류 은하 동맹에서 인체 개조란 커다란 금기이다.

 하여튼 인류 은하 동맹에서는 중력 제어에 따라 고가속을 이뤄내고 있다. 이것에 의해 수십, 수백G로 가속해도 내부의 인간은 쾌적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콜로니 내에서는 이 중력 제어 기술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옛날처럼 회전에 의한 원심력으로 유사 중력을 공급한다. 중력 제어 기술은 상용화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 생활에서는 중력이 있는 편이 편하지만, 없는 편이 편한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콜로니 중심부분은 회전하지 않는 무중력 모듈이 존재한다.

 그 사실은 레도도 알고 있다. 시뮬레이션으로 몇번이나 봐왔다. 하지만, 이렇게 머신 캘리버가 늘어선 정비 블록을 보니, 온몸에서 떨림이 멈추지를 않는다.

 몸을 전율하는 건 레도만이 아니다. 미리카도, 스톡도 돌도 라이디도, 각각 감동을 금치 못한다.

 그 정도로, 그 광경은 모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콜로니의 좁은 통로, 낮은 천장에 익숙해진 레도 일행에게 있어서, 정비 모듈의 압도적인 거대함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경외의 대상이었다.

 끝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공간 속에는 무수한 케이지가 삼차원적으로 배치되어있다.

 벌집과도 닮은 자그마한 방 하나하나에 인류 최강의 병기, 사람이라는 종족의 미와 이상을 그대로 구현한 갑옷 거인, 머신 캘리버가 잠들어 있다.

 메카닉들은 이 광대한 무중력 공간을 헤매지 않고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레도 일행은 그렇지 않았다.

 거미줄처럼 뻗어진 가느다란 가이드 로프를 따라, 레도 일행은 목적지인 작은 방을 향한다.

 중간에 라이디가 로프에서 떨어져(돌이 걷어차버렸다)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버렸기에, 레도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라이디를 데리러 갔다.

 정말이지, 시간 아까운 줄도 모르고!



 "여어"

 작은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론도였다. 커다란 산소 마스크를 달고 있어서 어째 기분 나쁘게 보인다.

 "론도, 왔구나"

 "응. 이걸 안 볼 수는 없지"

 론도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훈련용의 2인승 기체가 있었다.

 "몸상태는?"

 "체중이 가벼운 만큼, 무중력 구역이 훨씬 몸상태가 좋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레도는 론도의 손을 잡고, 제대로 악수를 한다. 맞잡은 손을 중심으로, 두 사람은 천천히 회전한다.

 "빨리 시작하자"

 스톡의 목소리에, 레도가 정신을 차린다.

 "그렇지, 하자!"

 신나서 정비를 하기 위해 달려든다.



 과제는 시간 내에 세 대의 머신 캘리버를 정비하고 똑바로 선 상태로 만들 것. 준비된 머신 캘리버에는 하나 이상의 고장이나 문제가 있는 설정이 짜여져 있으므로, 그것들을 체크해야만 한다.

 보상은 머신 캘리버를 사용한 짧은 시간동안의 우주 유영이다!

 "그럼, 미리카와 론도는 프로그램을. 스톡은 제너레이터. 돌이랑 라이디는 무기를 부탁해. 나는 감독과 체크를 할게"

 사전에 이야기를 하고 메일로 배포한 분담을 알린 뒤, 레도는 콕피트로 들어가려 한다.

 "어─ 왜 레도가 감독이지?"

 스톡이 들으라는 듯이 생트집을 잡는다.

 "미리 정한 일이잖아"

 "혼자만 편한 일 할 셈이야?"

 돌이 말한다.

 귀찮다. 정말 귀찮다. 이녀석들은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내 발을 붙잡고 있다.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난 제너레이터도 볼 수 있어"

 론도가 손을 든다.

 "그럼 내가 무기까지 체크하면 되겠네. 이걸로 둘 다 불만 없지?"

 미리카가 차갑게 말한다.

 "아─ 그래그래, 그런 식으로 한단 말이지"

 스톡이 어깨를 움츠린다.

 "그럼 곤란하니까, 제너레이터는 해줄게. 하지만 항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록해 달라고"

 "할 테니까 빨리 하기나 해"

 레도의 입에서, 평소와 달리 차가운 목소리가 나왔다.



 레도는 콕피트에 앉아 시뮬레이터 시트에 몸을 맡긴다. 자신이 앉아있는 기체를 대장기로, 남은 2체를 부하로 등록한다. 각 기체의 데이터를 불러온 뒤, 다른 인원들의 정비 상황을 체크한다.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한 대를 20분에 정비해야 한다.

 기동 수순을 밟으며, 조금이라도 위화감이 있는 부분을 체크하고 프로그램, 하드웨어의 화면을 조사한다.

 모두의 호흡이 맞아야만 가능한 작업이지만, 스톡과 돌도 제대로 수순을 밟고 있어서 일단은 안심이다.

 실패하면 전원의 성적이 낮아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저녀석들은 발목을 붙잡는 것일까.

 아니, 지금은 그럴 경우가 아니다.

 레도는 숨을 내뱉으며 잡념을 떨쳐낸다.

 첫 번째 기체는 좌표 계기의 상하부분이 반대로 설정되어 있었다. 발견하지 못했다면 위로 가려고 해도 아래로 돌진하게 됐으리라.

 두 번째 기체는 화기 관제에 뭔가 걸려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병기가 등록되어 있었으며, 이를 수정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세 번째 기체는…… 하드웨어 문제였다. 작동기의 동작 불량.

 "서둘러. 모두 같이 해야 해"

 레도가 지시를 내리고, 모두가 오른팔을 분해한다. 아니, 모두가 한다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레도도 콕피트에서 나와 분해를 돕는다.

 할 일은 단순한 부품 교환이지만, 무중력이라곤 해도 거대한 팔 한짝을 분해하고 내부 부품을 갈아끼우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간신히 시간 안에 교체가 끝나고, 레도는 콕피트로 돌아가 두들기듯이 기동 명령을 한다.

 컴퓨터에 의한 채점 작업이 이뤄진다. 세 기체를 체크하기 시작한다.

 메인 프로그램 스캔. 하드웨어 각 부분 체크. 화기 관제. 무수한 체크 항목이 레도의 눈 앞에 차례차례 떠오르며, 아직 체크되지 않은 하얀 부분이 점점 체크가 끝난 녹색빛으로 변해간다.

 모든 항목이 녹색으로 변하자, 무중력 속에서 부유 자세를 취하고 있던 머신 캘리버에 불이 들어온다. 구형 특유의 고주음과 함께, 등을 꼿꼿히 편다.

 "해냈다아아!"

 레도 일행은 입을 맞춰 환성을 질렀다.



 시뮬레이터 시트 안에서, 레도는 꿈을 꾼다. 항상 꾸던 꿈. 어둡고 차가운 우주 속에서, 머신 캘리버가 손을 뻗는 꿈이다.

 허공 속에서 가슴이 아플 만큼 머신 캘리버를 원하고, 그러다 눈을 떠보니, 자신이 머신 캘리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팔에, 가슴에, 빛의 줄기가 흐르고 있다.

 자신은 지금, 진짜 파일럿 수트를 입고 진짜 콕피트에 앉아 있다.

 심장이 격하게 뛴다. 몸이 뜨겁다. 진심으로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헉, 하고 작게 숨을 토해낸다.

 부르르 몸이 떨린다.

 "레도, 들려?"

 미리카의 목소리다.

 "아, 응, 들려"

 후훗 하는 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온 듯한 느낌이 든다.

 "레도, 엄청 흥분했겠네?"

 "꿈이 이루어졌다는 느낌이야. 당연히 하고 있지. 미리카는 안 그래?"

 "두근두근거리기는 하지만, 레도만큼은 아닌가봐"

 "어떻게 알아?"

 "심박 모니터 때문이지"

 "아, 아아"

 레도의 얼굴이 빨개진다.

 시뮬레이터 시트를 통해, 미리카도 레도도 생체 정보를 모니터할 수 있다. 그런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자신은 분명 흥분하고 있는 모양이다.

 깊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다.

 조종을 준비하며 정보를 불러온다. 각 부분에 이상이 없는가 체크한다. 원래대로라면 처음부터 해야하는 일이다.

 "여기는 레도. 각 부분 체크 종료. 이상 없음"

 "여기는 미리카. 이상 없음"

 "지금부터 발진을 준비한다"

 구속구를 풀고, 작은 방의 천장을 연다.

 "여기는 관제부, 발진 허가를 확인"

 "훈련기, RA-274, 발진 개시. 5, 4, 3, 2……"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구속구가 풀리며, 작은 방의 천장이 열린다.

 조종은 관제실에 의한 오토 파일럿이므로, 이제 레도 일행이 할 일은 없다. 하지만 레도는 다음 수순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조종하는 상상을 한다.

 제너레이터는 저레벨로 구동한다. 스러스터를 사용하지 않고, 발을 구부려 지면을 박찬다. 몸이 구부러지지 않도록, 가볍게 비틀며 똑바로 천장을 향해 상승한다. 제너레이터는 그대로. 천장에 손을 댄 채 움직임을 멈춘다.

 조정 모듈레이터의 천장부는 에어록이 걸려있다.

 스톡과 돌의 기체와, 론도와 라이디의 기체도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발밑에서 셔터가 닫히며, 큰 소리를 내며 공기가 배출된다.

 기압이 충분히 내려가자 천장이 열리고…… 열린 천장 너머에는 진짜 우주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제너레이터가 준 전투 속도로 이행한다. 머신 캘리버가 푸른 빛을 두르고 날아오른다.

 강한 G가 레도를 뒤흔들고, 미리카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처음 경험하지만, 실제 기체는 이렇게나 G가 강한가? 아니, 다르다. 예정대로는 1G 가속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현재 G는 3G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상승중이다!

 레도는 프로그램을 불러내 확인한다. 제너레이터의 출력 설정이 잘못되었 있었다!

 "미리카, 파일럿을 수동으로!"

 "해, 해볼게……"

 관제실의 오토 파일럿은 학생이 해제할 수 없도록 되어있지만, 지금은 그런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다.

 "컨트롤 장악!"

 레도는 호흡을 멈추고 긴급 상황에서의 수순을 떠올린다. 금방이라도 제너레이터를 떨어트리고 싶은 유혹이 솟구치지만, 그런 짓을 해버리면 재기동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이곳이 전장이라면 적의 표적이 되서 바로 전사할 것이다.

 수순에 따르면 우선은 근처 중력원을 체크하고 보정하면서 항로를 설정해야 한다. 가속도를 줄이면서 기체를 U턴하도록 설정한다.

 "체크를!"

 "알았어!"

 레도가 세운 항로를 미리카가 체크하고, 승인한다.

 "항법 장치에 새 항로를 대입. 오토 파일럿 작동"

 몸을 찌르는 듯하던 가속도가 천천히 줄어든다. 온몸의 피가 소리를 지르며 흘러간다. 완전히 마비되어버린 손가락 끝을, 레도는 천천히 주무르며 풀어준다.

 데이터를 체크. 현재 위치는 예정 위치와 거의 일치했다. 순조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안심, 이려나"

 "그러네……"

 미리카는 완전 녹초가 되버린 모양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스톡이야"

 레도가 냉정하게 대답한다. 제너레이터의 고장이다. 당연히 제너레이터를 담당한 스톡일 것이다.

 "걔는 또……"

 "아니, 내 실수기도 해"

 "왜 레도의 실수야?"

 "마지막 기체 정비를 할 때, 나도 콕피트를 나와서 도왔지. 그 틈에 조작했다고 생각해"

 콕피트에 남아서 기체 모니터링을 계속했더라면, 스톡의 함정은 간파할 수 있었을 텐데.

 "본래 감독은 콕피트에서 나오면 안 돼.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어. 하나 배웠네"

 레도가 스톡을 책망하면, 스톡은 시치미를 떼며 언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느냐고 되물을 것이다. 혹시 콕피트에서 내린 사이라고 말하면, 역으로 감독 불이행으로 자신이 책망받게 되리라는 말이다.

 "레도, 사람이 너무 좋아. 이런 일까지 당했는데 화도 안 나?"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스톡의 생각대로 움직였을 경우, 최대 5G의 가속을 맛보게 됐을지도 모른다. 파일럿 수트와 시뮬레이터 시트의 내G성능으로 보자면, 멍과 전신 근육통 정도로 끝나지,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 정도는 사전에 계산해둔 듯하다.

 "그건 그렇고 미리카 굉장하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만에 컨트롤할 수 있었던 거야?"

 "……론도의 장난 때문이야"

 짜증난다는 듯한 목소리다.

 "프로그램을 체크할 때, 멋대로 만져대서 백도어를 만들어뒀나봐"

 "나중에 론도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네"

 "으읏. 그래……"

 원래라면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지만, 론도 덕분에 살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톡에게는 고마운걸"

 "왜?"

 "이런 일이라도 없었으면, 내가 스스로 조종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레도는 이동 방향을 바꾸지 않은 채, 머신 캘리버의 수족을 움직여 한 바퀴 빙글 돌아보였다.

 "정말 머신 캘리버를 좋아하는구나"

 미리카가 질렸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제한 없이 자유 비행이 가능하다구! 내가 생각해낼 걸 그랬어"

 "정말, 레도!"

 "아니, 농담이야. 하지만 감사하고 싶다는 마음은, 진짜야"

 메인 카메라가 은하수 은하 방향을 향한다. 말도 안 될 만큼 무수한 별들이 하얗게 반짝이며 시야를 가로지른다.

 "우와아……"

 "어때?"

 "응, 조금이라면, 용서해줘도 좋겠네"

 미리카의 미소가 보고 싶어져서, 레도는 모니터에 미리카의 콕피트를 호출한다.

 "잠깐, 하지 마!"

 순식간에 미리카가 영상을 끊는다.

 "땀흘려서 얼굴이 엉망이란 말이야……"

 "전투중에는 그런 말도 못하지 않을까?"

 2인승 기체의 대장석에 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미리카의 얼굴을 비출 수도 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레도는 심술쟁이야"

 "파일럿 임무는 가혹한 법이야"

 가볍게 농담을 하며, 레도는 우주를 나아가는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8-

 귀환한 뒤에는 질릴 정도로 질문 공세를 받았다. 한 걸음만 잘못 디뎠다면 엄청난 사고로 이어졌을 테니 당연한 처사였다. 훈련용이라 일반 기체와 비교하면 성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머신 캘리버의 출력이 폭주하면 수많은 인간을 죽일 수도 있다.

 레도는 미리카와 입을 맞춰 한결같이 모르는 체했다. 제너레이터의 출력 설정? 잘 모르겠습니다. 오토 파일럿을 멈추고 수동 조종을? 해봤더니 할 수 있었습니다.

 아, 원래는 불가능한 설정이었나요?

 긴급시의 대응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의 일환이라 생각했는데, 혹시 아니었나요?

 여러 어른들에게 불려다니며 똑같은 말을 몇번이나 들었다. 성적 평가가 걱정이었지만, 지금 신경써봤자 소용 없는 일이다.

 그보다도 샤워다!



 우주 바깥에서의 임무에는 파일럿 수트를 입은 채 몇일은 커녕 몇달, 혹은 몇년이나 지낼 수도 있다. 당연히 파일럿 수트에도 조종자를 청결 및 쾌적하게 유지해주는 기능이 달려있다.

 하지만 그것은 파일럿 수트가 생명 유지 모드일 경우의 이야기이며, 기능을 정지한 상태로는 별 효용이 없다.

 레도 일행의 경우, 시험 종료와 함께 파일럿 수트의 기능을 강제로 종료당했으며, 그런 상태에서 질문 공세를 받았으니 땀에 절은 상태가 되버렸다.

 두 사람은 샤워실로 향했다.

-9-

 심문이 길어진 탓에, 다른 클래스는 현재 수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샤워룸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소에는 시끌벅적한 샤워룸인데, 오늘은 미리카와 단 둘밖에 없다.

 레도는 생각도 못했던 상황에 당황했다. 옆에 나란히 선 미리카의 피부가, 어째선지 눈부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굉장했지"

 "그러게"

 샤워룸에서 이야기해보는 건 처음이다.

 "사람이 없으니 기분 좋네"

 "응"

 고동이 빠르다. 머신 캘리버에 탔을 때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른 흥분감. 이 감정이 뭔지 파악하느라, 레도는 짧게짧게 대답했다.

 "별, 엄청 이뻤지. 안 그래?"

 빠르게 말하는 미리카의 말에, 겨우 레도도 깨닫는다. 두근두근거리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그걸 아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아름다웠지. 또 보고 싶어"

 "파일럿이 될 거잖아? 레도라면 볼 수 있어"

 미리카의 피부에 온수가 닿자 튕겨나오며, 흘러내린다. 살짝 발갛게 물든 피부를, 시야 끝으로 힐끗 보고, 레도는 죄악감을 느꼈다. 머리에 물을 끼얹는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흐응─. 레도는 근육이 꽤 있구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낀 레도는, 온수 물을 강하게 틀었다.

 "파일럿이 되려면 몸도 단련해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하셨으니까"

 냉정하게 말할 생각이었는데, 정작 말은 너무 빠르게 나갔다.

 "난 어때?"

 미리카의 말에, 레도가 숨을 삼킨다.

 인류 은하 동맹의 유년학교에서는 성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샤워도 남녀가 같이 한다. 그러니 건전한 이성의 알몸에 성욕을 느낀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될 텐데, 지금 레도는 분명 흥분하고 있으며, 그 사실에 죄악감까지 느끼고 있다.

 순수한 미리카의 태도가 본래의 올바른 태도다.

 숨을 고르고, 미리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양손으로 머리를 씻고 있었기에 앞으로 내밀어진 가슴이 부드럽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호리호리한 겨드랑이가 잘록한 허리로 이어진다. 아이처럼 동글동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른처럼 단단하지도 않은, 절묘한 커브를 그리는 곡선.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옆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같아서, 보호본능을 느끼게 한다.

 "……아름답다고 생각해"

 겨우 그 말만 할 수 있었다.

 "그, 그래?"

 미리카도 얼굴을 돌린다.

 "응……"

 그 이후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둘은 샤워를 끝마쳤다.

 샤워룸을 나와 옷을 다 갈아입었을 때, 미리카가 아무 말 없이 내밀은 손을, 레도도 말 없이 잡았다.

 부드러운 손을 잡자, 희미하게 비누향이 났다.

-10-

 인류 은하 동맹의 사회에서, 남녀의 성별에 따른 역할 고정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된다.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무직은 성별 관계가 없고, 파일럿을 중심으로 하는 육체 노동 역시 여성의 내구력이 유용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각각의 적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유년학교에서는 철저하게 성별의 차이를 배제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에 따라 학생들의 성욕은 약물 투여와 암시에 의해 컨트롤된다.

 하지만 이는 직접적인 육욕만이며, 성적인 일에 대한 호기심이나 연애 감정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사춘기의 강한 성욕을 너무 제어해버리면, 나중에 가족을 형성할 때 장애가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 출산의 기술이 발전하면 언젠가는 성별을 구분짓지 않거나 성욕을 배제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