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오오오……
삐걱삐걱삐걱삐걱……
암흑 속에서, 둔탁하고 무거운 소리가 들려온다. 얼마 없는 빛 속에 어렴풋이 떠오른 것은, 고전적인 함정 중 하나로, 공중에 매달아두었다가 떨어트려 밑에 깔린 사람을 죽이게 장치한 천장이었다.
사슬로 매달려있던 나무틀 천장은 여기저기 날카로운 가시바늘이 튀어나와있어서, 지금 당장에라도 바닥에 닿을 기세다.
그리고──그 얼마 되지 않는 비좁은 틈새로부터 비통한 외침이 울려퍼진다.
"저거다! 저걸 올리면 멈출 거야!!"
필사의 형상으로 천장을 지탱하고 있는 이 자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리다. 턱으로 방의 위쪽을 가리키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이리가 가리키는 곳에, 자그마한 레버처럼 생긴 물건이 보인다. 그것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자는,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 팜이다. 그녀의 종족 특징인 커다란 귀를 쫑긋이 움직이며, 고양이처럼 땡그래진 눈동자를 이리에게 향하자, 바로 고함소리가 날아왔다.
"팜!! 뭘 멍하니 있어! 마법이야! 마법!!"
"에?! ……아……저기, 뭐였더라?"
마법 지팡이──로드를, 마치 만세를 부르는 모습으로 천장을 지탱하고 있는 팜은, 아직 자신이 해야할 일을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문자 그대로 두 손 다 들어버린 모습이다.
"제발 좀, 이런 때에! 거 있잖아, '내 힘'으로 시작하는 그거!"
삐걱삐걱삐걱……
그런 얼빠진 꽁트를 나누는 사이에도, 천장 함정은 무정하게도 두 사람을 짓뭉게려는 기세를 풍기고 있다.
"히익~~~!! 팜! 부탁이니 빨리 저 스위치를 떼어내줘~~!!"
"아…… 아아, 그렇구나!!"
드디어 이해한 팜은, 필사적으로 버티는 이리 옆에서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한다.
"어어…… 으음, ……내, 내 힘을 따르는 수많은 정령이여…… 내 사지, 내, 바람에 따라!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라!!"
팜의 부름에 반응하기 시작한 정령들이 암흑 속에 피어나는 반딧불이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방 위에 있는 스위치로 집중된다. 팜은 기뻐하며 이리를 부른다.
"해냈어!! 이리, 해냈다구!! ……어라?!"
하지만, 노력도 무색하게, 천장 함정은 무정하게도 더욱 기세를 올려가며 두 사람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삐걱삐걱삐걱……
"어째서~~~~~!!"
이리가 외친 단말마가 울려퍼지는 순간,
찰칵
겨우 천장 함정의 스위치가 올라갔다.
덜컹~~~~~~~~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드디어 천장 함정이 정지했다. 아무래도 팜의 주문이 약했던 탓에, 나타난 정령의 수가 모자랐던 것이 원인이었나보다. 정령들이 했을 고된 노력이 눈에 선하다.
"…………"
두 눈을 부릅 뜬 채로 굳어있던 이리의 코끗을, 천장 함정의 가시바늘이 간지럽힌다.
"머…… 멈췄다?!"
천박하게 가랑이를 벌리고 있던 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드륵…… 드르륵…… 쿵!
팜과 이리는 회랑의 벽 일부를 밀어내고 기어나온다. 천장 함정의 사이에 숨겨진 통로를 발견하고, 겨우 원래 있던 회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과거 문명의 유적 중 하나다. 그렇다, 그들은 용감한 모험자 'RUIN EXPPLORER'이다.
그렇다곤 하나, 지금 두 사람은 모두, 옷 여기저기가 뜯어지고, 먼지를 한껏 뒤집어써 몰골이 말이 아니다. 정말이지 용감한 모험자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헥, 헥……"
어깨를 들썩이며 헐떡이는 이리. 어릴 적부터 개구쟁이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듯이, 왼쪽 볼에는 커다란 십자모양 흉터가 새겨져있다. 그 위를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면서, 팜을 확 째려본다.
분노를 감지한 팜의 꼬리털이 곤두선다.
팜의 일족 '위건'은, 수인이라 불리우는 종족이다. 겉모습은 인간과 별 다를 바 없지만, 사막여우처럼 좌우로 길게 뻗어나온 커다란 귀, 고양이처럼 빛에 의해 옆으로 신축되는 홍채, 기다란 꼬리, 그리고 팜에게 있어서는 귀여움의 화룡정점이라 할 개의 이빨이 퇴화되지 않고 남아있다.
이리가 언짢아하는 모습을 눈치채고, 팜이 영업용 미소를 띄우며 다가간다.
"헤헤…… 간발의 차였지, 이리?"
하지만, 그 한 마디가 이리의 인내주머니를 묶고 있던 마지막 줄을 뚝 잘라버리고 말았다.
"정말!! 방금 그것까지 합치면 벌써 다섯 번은 죽었다고!! 게다가 방금 그건, 어젯밤에 알려준 마법이잖아!! 정령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네가 마법을 쓰지 못한다면, 있는 의미가 없잖아!!"
이때다 싶어서 마음껏 말하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아무리 느긋한 사람이라도 뚜껑이 열린다.
"뭐야, 이리!! 그렇게 잘난 듯이 말할 거라면, 나한테만 기대지 말고 스스로 마법을 쓰면 되잖아!"
"그런 말은 나보다 마법을 잘 쓰게 된 뒤에 말했으면 좋겠네!! 내가 없으면 주문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잖아?!"
"으……"
말로는 이리에게 이길 수 없어보인다. 게다가 이리는 계속해서 몰아붙인다.
"그리고, 내가 마법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잖아? 이때다 싶은 최후의 최후가 아니고서야 쓸 수 없다고!!"
"그, 그치만……"
반론의 여지가 없는 팜은, 문자 그대로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귀와 꼬리를 푹 내리고 있다. 아래서 올려다보며 시무룩해하는 팜에게, 이리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이다.
"애초에 말이야! 내가 화내는 이유는 그게 아니야!!"
"에?!"
"점검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함정에 다 걸려버리면, 목숨이 몇개나 있어도 모자란다고!!"
"윽!!"
'위험해!!'라며 둘이 지나온 회랑을 바라보는 팜. 무너져내린 벽, 높게 치솟아오른 창, 불타오르는 창고 등등, 모든 것은 팜이 걸려서 발동한 함정의 흔적이다.
팜은 와들와들 떨리는 시선으로 이리를 다시 바라본다.
"그치마안…… 저런 곳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리의 노성이 날아와 박힌다.
"아무도 모르게 설치되어 있으니까 함정인 거라고 말하잖아!!"
"히익~~~! 미, 미안해~~~~!"
지금의 팜에게는 말 한 마디가 백 배가 되어 되돌아오는 듯하다.
"으, 으왓!!"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꾹 움켜쥔 주먹을 휘두르려는 이리로부터, 미끄러지듯이 도망치는 팜.
딸깍……
바닥에 엎으로 네 발로 도망치던 팜의 오른손이, 바닥에 있던 새로운 함정의 스위치를 건드리고 말았다. 속이 철렁 가라앉는 팜. 정신을 차리고보니 주먹을 휘두르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이리.
"아…… 아아……"
비지땀을 흘리는 팜이 돌아본다.
"또…… 저질렀다?!"
"……"
말 할 기력도 잃어버린 이리의 머리 위에서,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 둔탁한 소리가 난다.
끼릭끼릭……
잔뜩 쫄아서 주변을 둘러보는 이리.
"이번엔 어디야?!"
그 순간,
구와~~~~~~~앙!!
두 사람이 서있던 바닥이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와, 와────!!"
"팜 이년아~~~~~~!!"
끼릭끼릭끼릭……
무너지는 돌바닥과 함께, 팜과 이리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모처럼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허무하게 울리는 이리의 고함소리만을 남긴 채, 용감한 모험자들은 나락으로 사라지고 말았따.
후드득───……
눈부신 태양빛 아래, 풍화되어서 언뜻 보이겐 산처럼 보이는 유적 탑의 일각에서, 모래가 흘러넘친다.
아래를 향해 눈을 돌리니, 모래산에 처박히듯 고꾸라져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팜과 이리였다.
한 곳을 지긋이 째려보며 입을 한 일자 모양으로 꾹 닫고있는 이리에게, 팜이 가슴을 졸이며 말을 건다.
"……저기, 이리? ……화났어?"
뭔가 말을 하려고 이리가 고개를 든 순간,
후드득───
대량의 모래가 이리의 얼굴을 직격했다.
"윽……"
생각도 못한 일격에 절규하는 이리"
"냐하하……"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는 팜이었다.
2
사막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하다고 알려져있다. 물이 적다, 라는 환경 뿐 아니라, 이 심각한 일교차가 수많은 생물들이 쓰러진 이유이기도 하다.
거리 감각을 잃게 만들듯, 대조물이 전혀 없는 모래 바다의 저편, 새빨간 태양이 잠들려 하고 있다.
"엣─취!! ……으으……"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모래 바다에, 이리의 재채기 소리가 진동한다.
유적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 고통도 없었던 여행 장비가, 지금 와서는 거대한 암석과도 같은 묵직함으로 이리의 몸을 깔아뭉게고 있다.
모래 위에 선을 긋듯이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며 나아간다. 평소에는 성깔있는 이리의 입에서도, 무심코 약한 소리가 새어나오는 모양이다.
"하아…… 정말이지. 오늘은 진짜 재수가 없네. 유적은 이미 파헤쳐진 뒤였고, 누구씨 덕분에 함정이란 함정에는 다 걸려버리고……"
로드를 문자 그대로 지팡이삼아 짚으며 걷는 이리의 뒤를 걷던 팜도, 과연 그 타고난 밝은 성격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어디에 있는 걸까, '만능의 힘'은……"
슬쩍 팜을 보고, 이리가 중얼거린다.
"이 상태로는, 평생 걸려도 찾지 못하겠다"
시무룩해하는 팜. 제자리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그 모습을 보자 이리도 미안하다고 생각했는지, 겨우 팜에게 미소를 보인다.
"뭐, 우울해해봤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지! 내일 또 힘내자! 응, 팜"
그러자 팜이 활짝 웃는다.
"그래!"
이 단순함이 팜의 장점이기도 하며, 단점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상대의 기쁨은 자신의 기쁨이며, 상대의 슬픔은 자신의 슬픔이기도 하다. 그런 팜의 타고난 선한 감수성이, 이리의 단 한 마디로 다시금 활력이 돌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팜은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있잖아 있잖아 이리! 오늘은 지치기도 했으니까, 가끔은 노숙따윈 그만두고, 마을에서 쉬자. 응? 응?! ……아, 그렇지!! 팜이 오랜만에 마법으로 와인을 만들어 줄게! 응, 괜찮지?!"
이렇게 되버리면, 이리조차 팜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이리 자신도 요 며칠동안 사막에서 하는 노숙에 질려버린 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노잣돈을 허투로 낭비할 수는 없었다.
"으~~~~~음"
곰곰이 생각하는 이리의 모습을 기대 반 불안 반으로 바라보는 팜.
"……"
힐끔힐끔 바라보는 팜을 슬쩍 곁눈질하고는, 이리가 히죽 웃는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할까!"
이 승부는 팜의 승리였다.
"와───, 신난다~~~!!"
팔짝팔짝 뛰며 기뻐하는 팜은, 그 기세를 타 아래 보이는 마을을 향해 내달린다.
"이리!! 마을은 이쪽이야~~!!"
기뻐하며 손을 흔드는 팜을 보며, 이리는 쓴웃음을 짓는다.
"이런 일은 빈틈 없다니까……"
질렸다면서도 웃는 얼굴로 팜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낭비는 안 된다~~~!"
"아라써~~~~!"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팜은 쏜살같이 마을을 향해 달려간다.
"……후후, 이거 당했구만"
무거운 짐을 고쳐메고 걷기 시작한 이리의 머리 위에는, 이미 밤의 장막이 내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다시 태양이 떠오르기 전까지, 별의 바다와 모래의 바다가 조용히 뒤섞이는 밤을 맞이하게 되리라.
'시계'라는 편리하며 융통성 없는 발명품이 생겨나기 훨씬 이전, 사람들은 태양과 함께 생활했다. 해가 뜨면 사람들은 일을 하고, 해가 지면 그 날의 노동을 끝낸다.
팜과 이리 두 사람이 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사람들이 하루의 피곤함을 치유하며 양기를 술잔에 채워 기울일 무렵이었다.
마을이라곤 해도 그리 큰 도시는 아니었다. 수원을 중심으로 서른 채 정도의 집이 직사광선을 피해 북측의 경사면을 타고 줄줄이 이어져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광대한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좋은 위치에 있는 모양이라, 해가 저문 뒤에도 여행객을 위한 가게나 시장이 늦게까지 열려있다.
이런 때에도 두 사람의 대조적인 성격이 나오는 모양이다. 팜은 순수하게 노점이나 드문 교역품에 눈을 빛내고 있다. 한편 이리는 골동품이나 발굴품 교섭을 하거나, 마을 사람들에게 정보를 모으는 등, 급한 성격 치고는 꽤 견실하다.
"와~~, 이쁘다! 저기저기 이리, 이거 사도 될까?!"
반짝반짝 빝나는 동방의 목걸이를 손에 들고 신나하는 팜을, 이리가 달랜다.
"그만둬! 어차피 금방 질릴 거잖아. 그런 물건에 눈 돌릴 틈이 있으면, 같이 정보 수집이나 하자고. 정말이지…… 그러니까 너랑 마을에서 묵는 건 싫다니까. 이 상태라면,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해가 떠버리겠어"
팜의 손에서 목걸이를 빼앗아 노점상에게 돌려주고, 이리는 그대로 팜의 팔을 끌며 시장을 빠져나간다.
"정말!! 이리는 항상 이렇다니까!"
마치 부모자식같다. 이리는 뾰로통해진 팜을 끌고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은 중요한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여행 동업자 중에는, 입이 무거운 사람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부탁하지도 않은 일까지 주절주절 떠드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담배와 싸구려 술, 그리고 거친 사내들의 체취가 뒤섞인 술집 안에서, 넘쳐나는 자기 자랑이나 허풍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이리같은, 갑옷을 입었다곤 하나, 언뜻 보기에는 이제 막 모험을 시작한 검사처럼 보이는 풋내기에게는 좀처럼 진짜 이야기는 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천부적인 재능인지, 단순한 뻔뻔함인지, 이리는 거친 사내들 틈에 녹아들어 교묘하게 중요한 정보를 뽑아내고 있었다.
"와하하하!! 또 또, 그런 말이나 하고, 정말! 사실은 어땠는데, 엉?"
"흥. 너같은 풋내기가 알아봤자, 수명이 줄어들 뿐이야"
"하하, 그건 그렇지. 들어봤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걸. 이봐, 당신을 재낄 걱정은 없다고. 안주거리로 들려주면 안 돼? 응?"
이런 식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리라도 이 때, 자신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자가 있다고는 눈치채지 못했다.
위건족은 후각도 보통 사람보다 발달한 종족이다. 냄새에 민감한 팜에게 있어서, 술집 안은 기절할 정도로 과격한 장소 중 하나다. 그렇기에 이리가 안에서 사내들과 떠드는 사이 팜의 역할은, 오로지 밖에 매어둔 말이나 낙타에게 길을 묻는 것이었다.
위건족의 귀는 장식으로 커진 것이 아니다. 그 커다란 귀로 동물이나 정령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푸르르릉……"
"그래, 그렇게나 험한 곳을 거쳐왔구나. 힘들었겠네……"
팜은 말의 코를 쓰다듬으며, 상냥하게 말을 건다.
"어라, 너 뒷발에 상처가 났잖아! 잠깐 기다려봐…… 만물을 아끼는 상냥한 정령이여, 그 자애로움으로 이 육체를 좀먹는 사령을 내쫓아라"
팜이 상처에 손을 대고 주문을 영창하자, 파앗 하며 손바닥에 빛이 모이더니,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득의양양하게 웃는 팜.
"헤헤~~ 나, 이런 거라면 잘 하거든!"
이 세계의 마법은, 기본적으로 정령의 힘을 빌려서 성립된다. 즉, 정령을 소환하는 '소환 마법'이다. 불러내는 자의 의식에 호응하기 때문에, 팜처럼 상냥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필연적으로 공격 마법보다는 회복계 마법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이 된다.
또한, 위건족의 전승에 '정령을 강제로 부리는 자는, 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정령들의 '의지'를 존중하는 위건족 특유의 마법 체계의 흐름을, 팜 역시 이어받고 있다.
"자─, 이제 괜찮아"
"푸르르릉"
"후후후…… 다행이네"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팜의 곁에, 드디어 이리가 돌아왔다.
"후~~~ 끝났다 끝났어. 주정뱅이 상대는 지친다…… 팜, 너는?"
"응. 동쪽 방향에 무언가가 있대. 정령의 이야기가 들려왔다고 했어"
"그런가…… 좋아! 다음은 동쪽이다"
기뻐하는 이리에게, 팜이 불안하다는 것처럼 물어본다.
"있잖아 이리. 설마, 지금 바로 출발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엥?!"
팜의 마음을 알아챈 이리는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오늘은 이제 끝이야! 오랜만에 분발해서 좋은 숙소에서 묵도록 할까. 어때? 팜"
싱글벙글하는 팜,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
3
'가빌의 숙소, 목욕 가능, 식사 제공'
고대 아스테카 문명의 그림 문자와 닮은 간판이, 화롯불에 비춰지고 있다.
3단 정도의 돌계단 위쪽에 있는 입구를 지나자 바로 정면에 접수 카운터가 설치되어있으며, 그 오른쪽에는 홀을 겸한 식당이 보인다. 홀 옆의 계단은 2층의 객실로 이어져있는 듯하다. 거리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가장 고급 여관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외관과 서비스는 별개인 모양인지,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우락부락한 사내가 팔짱을 끼고 노골적으로 팜과 이리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다.
그런 주인의 태도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의 이리가, 짊어지고있던 가죽주머니의 내용물을 카운터 위에 늘어놓기 시작한다. 촛대나 식기, 그림이 그려진 접시 등, 방금 전의 유적에서 찾아낸 수확품으로 보인다.
"이걸로 하룻밤 재워줘"
차가운 눈빛을 두 사람에게서 테이블 위의 물건으로 옮긴 주인은 말없이 잠시간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흥! 고작 이걸론 어림도 없겠는데"
너무나도 무례한 태도에, 이리의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고작이라니 흘려듣지 못하겠네! 요 근처에 나뒹구는 기름칠한 모조품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배기 발굴물이라고. 수도로 가져가면 엄청난 값에 팔리는 물건이란 말이야!"
"그럼 수도까지 가져가던가"
이렇게까지 말해놓고 그냥 물러설 이리가 아니다. 팔을 걷어올리며,
"좋아! 이따위 후진 여관, 제발 묵어달라고 부탁해도 묵어줄까보냐!!"
당황한 팜이 중재에 들어간다.
"이, 이리!"
"너는 조용히 해! 애초에 사람을 겉모습으로 구분하려는 이녀석의 태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뭐라고?!"
"뭐 한 번 해볼래!!"
지금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것같은 두 사람 사이에, 한 남성이 끼어든다.
"자 자, 진정하세요, 다들"
"응?!"
남자를 째릿 노려보는 이리.
"뭐야, 너는?!"
코 아래와 턱에 수염을 기르고, 양 손에 커다란 보석이 달린 악취미적인 반지를 몇개나 끼운 남자는, 반지들이 서로 부딪혀 소리가 날 정도로 손을 비비며 웃는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헤헤헤…… 자기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행상인 갈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녀석은 파트너인 길입죠"
언뜻 보니, 갈프의 옆에는 눈초리가 사나운 한 마리의 개가 떡하니 앉아있다. 털의 길이로 보아하니 테리어 계열의 개인 듯하다.
"아하! 멍뭉이!!"
동물을 좋아하는 팜은, 길의 존재에 재빠르게 반응한다.
"후후. 안녕 길 씨! 우리 얘기하자"
그런 팜을, 길은 시큰둥하고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나 있지, 네가 하는 말 알아들을 수 있다구"
팜의 말에, 길은 히죽거리고는 이를 보이며 웃는다.
"아핫, 착해라 착해"
기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팜이 손을 뻗는 그 순간,
"으르렁~~~~~!!"
덥썩
"힉~~~!!"
까딱하면 길의 커다란 입에 손을 물릴 뻔했다. 잔뜩 굳어버리는 팜. 아무래도 길은 간단하게 구슬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닌 모양이다.
"으르렁~~!! 컹컹컹!!"
길은 자신보다 밑이라고 판단했는지, 까불며 팜에게 덤벼든다.
"히잉~~~~, 멍뭉이가 괴롭혀~~~"
결국 이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팜이었지만, 이리는 팜의 상대를 해줄 여유따윈 없었다. 치켜올린 주먹을 수습해야만 한다.
"그래서?! 행상인이 우리들에게 무슨 볼일이지?"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띄우는 갈프가 손을 비벼대는 채로 이리에게 슬쩍 다가오더니,
"하하하…… 아니, 언뜻 보기에 곤란한 것처럼 보이길래요. 괜찮다면 그 물건, 제게 팔아주실 수는 없나, 해서 말입죠"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에 이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 뭐라고? 비싸게 사주겠다 이 말이야?"
"숙박비 정도라면…… 예"
"흐응~~~. 잘 모르겠지만, 좋은 값을 쳐준다면야, 나도 좋지…… 단!"
여관 주인을 한껏 째려보고는,
"이따위 쓰레기 여관에 묵을 수는──"
"하지만 욕탕이 있는 여관은, 이 마을에서 여기 뿐인데요"
"뭣?!"
갈프는 이미 속내를 다 아는 모양이다.
"여기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겠죠. 여기선 우선, 저를 봐서라도 두 분 모두 참아주실 수 없을까요?"
욕탕의 매력에는 이길 수 없는 이리는, 말문이 막혀 웅얼거리면서도,
"뭐, 뭐어…… 댁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묵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서도……"
갈프가 빙그레 웃는다.
"정해졌군요"
그대로 주인을 보며 다시금 빙긋 웃는다.
"그럼, 그렇게 되었으니 잘 부탁합니다"
멍하니 있던 여관 주인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위쪽 방이다"
"으하하하하하!!"
신선한 짚더미를 잔뜩 채운 폭신폭신한 침대 위에서, 팜이 기쁘다는 듯이 떠들썩거린다.
"푹─신푹신해, 이리!!"
그런 순수한 팜을 보고는 무심코 미소를 지으며, 이리는 옆에 있는 욕실로 들어간다.
"침대에서 잘 수 있다니, 몇일만이지?"
말을 거는 것인지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대략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팜은 침대의 감촉을 즐기듯이 대자로 드러누웠다.
쏴아~~~!!
그런 팜의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욕실에서 온수를 맞는 이리의 입가도 자연스럽게 풀려있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온수가 나오는 우리들의 생활과는 다르게, 이 시대에서 욕조에 온수를 찰랑찰랑하게 부을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사치스러운 일이다. 두 사람이 행상인 갈프의 주선으로 들어온 방이, 최고급 방이라는 사실을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팜도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보고는 그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저기, 이리! 여기 있잖아, 꽤 비싼 방 아니야?"
"어어…… 그럴지도"
지금 이리의 흥미는, 이런 팜의 이야기보다도, 며칠만의 따듯한 욕조인가보다. 모든 옷을 벗어던진 이리의 나체는, 평소의 우락부락한 갑옷 차림으로는 상상도 못할만큼, 아름답고 풍만하다.
찰랑……
그 탄탄한 육체를 발끝부터 욕조에 미끄러지듯이 담그자,
"흐~~~~~~~~. ……살 것 같다……"
무심코 흘러나오는 이리의 진심이었다. 눈을 감고 침대의 감촉을 즐기던 팜과 같은 생각인가보다.
"아아, 기분 좋아! ……저기, 이리! 그 아저씨, 좋은 사람이네!!"
"응? ……으응……"
포근한 온수의 온기가 몸에 쌓인 피로를 상냥하게 감싸안으며, 오랜만에 경계심을 풀 수 있게 된 이리의 심신을 꿀같은 낙원으로 인도한다. 무게를 늘려가던 눈꺼풀을 차마 지탱하지 못하고, 어느샌가 온수의 이불 속에서 솔솔 잠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이리였다.
울창한 산 속 오두막집에는 살아가는 데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 외에, 아무런 물건도 없다. 하지만, 목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지하실에는 커다란 가마솥, 씨앗이나 약초, 약품류, 그리고 두터운 마법서가 벽에 빼곡히 쌓여있다.
그렇다, 이곳은 어린 시절, 이리가 너무나도 어른들의 손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말썽쟁이였기에 맡겨진, 늙은 마도사의 집인 것이다.
어른이라는 사실마저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장난꾸러기 소녀 이리가, 늙은 마도사의 곁으로 왔다고 갑자기 얌전해질 리가 없다. 취사, 세탁, 청소만 할 뿐이지 좀처럼 마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노사에게 열이 뻗친 이리는, 노사가 잠들어있는 틈에 슬쩍 마도서를 빼돌렸다.
호기심이 강한 어린이가 흔히 할 법한 귀여운 장난으로 끝났어야 할 일이, 이리의 경우에는 그렇지도 않았다. 고른 마법이 나빴기 때문이다.
두둥~~~~~~~~!
이리가 마지막 약품을 기세 좋게 병째로 큰 가마솥에 내던진 순간 생긴 일이었다.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숲속 동물들이 일제히 도망칠 정도의 땅울림이 일어났다.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어오르는 연기 저편에는, 반 이상이 날아가버린 노마도사의 집이었던 것이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박살나버린 지하실 틈새에서, 자랑스러워하던 긴 수염의 절반을 그을린 노사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끓어오르는 부들거림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으그그그그그극…… 이 망아지같은 년이!!"
동아줄로 꽁꽁 묶인 어린이의 왼쪽 뺨에는, 커다란 십자 모양의 상처가 생겨났다. 이 시절의 이리는, 언뜻 보기에는 남자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이 시절에 이미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만큼은 아무리 장난꾸러기라고 해도 노사의 성난 얼굴에는 덤비지 못했나보다. 식은땀을 흘리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만들어낸다.
"……하하…… 아주 조금, 심했으려나……?"
"뭐가 아주 조금이냐!! 오늘이야말로 결코 용서 안 할 게다!!"
아무래도 이런 일도 하루이틀이 아닌 모양이다.
"뭐야! 따지고보면 노사님이 마법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그런 거잖아!"
"당연하지! 정신 수양도 제대로 되지 않은 놈에게 마법을 가르쳐줄 리가 없지 않느냐!!"
"그런 게 어딨어! 그럼 뭣때문에 여기 왔는지 모르잖아!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보채는 이리를 보고, 노사는 어떤 일을 떠올렸다.
"호오…… 너, 그렇게나 마법이 좋으냐?"
"응!! 가르쳐 줄 거야?!"
눈동자를 반짝이며 들떠하는 이리에게, 싱긋 웃는 노사는, 말도 안 되는 말을 꺼냈다.
"그러냐. 그렇게 마법이 좋으냐…… 후후후. 그럼 네 몸에 마법을 걸어주마! ……저주라는 마법을 말이다!!"
노마도사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핫 하며 이리에게 손을 향했다. 그 손가락 끝이 강한 빛을 쏘기 시작한다.
당황해서 버둥거리는 이리. 하지만, 사로잡힌 불쌍한 쥐에게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없다.
"히익~~~~!! 싫어싫어! 그런 건 싫어~~~~!!"
하지만, 노사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시끄럽다!! 장난꾸러기 놈에게는 딱 어울리는 벌이니라!! 저주를 풀고 싶다면, 정진해야할 게다!"
"하, 하지마, 하지마~~~~~~!!"
파직파직파직!!
노사의 손가락에서 발사된 빛이 이리의 몸을 감싼다. 그러자, 순식간에 노사의 모습이 멀어져간다.
"뭐, 뭐야?"
"와──하하하하하!!"
노사의 웃음소리와 함께, 이리의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이내 컴컴해지고 말았다.
"에…… 엣취!!"
찰랑……
어깨를 드러내고 있던 탓에 한기를 느꼈는지, 이리는 성대한 재채기와 함께 눈을 떴다.
꿈 탓에 당시 감정을 떠올린 그녀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나 참. 하필이면 그런 꿈을 꾸다니……. 모처럼 숨 좀 돌리고 있었는데 완전 다 잡쳤네"
투덜투덜 말하면서, 이리는 욕조를 나왔다. 목욕타월로 몸을 감으면서 침실로 들어간다.
나란히 배치되어있던 두 침대의 한쪽에는, 떠들다 지친 팜이 쌕쌕거리며 잠자고 있다.
그런 팜을 흘겨보면서, 난폭하게 다른 한 침대에 걸터앉는다.
뿌리 깊은 분노는, 설령 꿈일지라도 그리 간단하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다.
"그 빌어처먹을 할배!! 반드시 '만능의 힘'을 손에 넣어 저주를 풀어줄 테니까! 그때까지 부디 오래오래 살라고. 곧장 복수해줄 테니까! 흐흐흐흐흐……"
기분 나쁜 미소를 띄우는 이리의 성격이 삐뚤어진 이유는,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모양이다.
"으, 으우~~~~"
이리의 분노에 반응했는지, 팜이 덮고 있던 모포를 걷어내며 잠꼬대를 한다.
"……미안, 이리. 다음엔, 제대로 마법 쓸 테니까……"
그 말에 정신을 차리는 이리. 움켜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을 푼다. 어느샌가 분노의 형상도 누그러져서는, 입가에 미소까지 띄운다. 부끄러움을 잘 타는 이리는, 평소에는 좀처럼 말로 표현하질 않는다. 무심코 설교하는 투로 말해버리긴 하지만, 팜은 이리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파트너이자 친구였다.
"정말, 잠버릇 참 나쁘네! 감기걸리잖아"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상냥하게 모포를 덮어준다.
이리는 잠시 팜의 잠자는 얼굴을 바라보고나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부탁할게, 파트너"
램프의 불이, 그런 이리의 상냥한 표정을 붉게 비춘다. 여행을 거듭하는 팜과 이리에게 있어서, 아주 잠시간의 휴식이었다.
4
사막의 침공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듯이 늘어서있는 바위산 틈새에서, 눈부신 빛이 내리쬔다. 새로운 아침의 탄생을 고하는 새의 울음소리와 함께, 마을도 활기를 띈다.
신선한 식료품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시장이 북적거린다.
숙소의 홀에서도 조식 준비가 된 모양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계단을 내려온 두 사람 앞에, 요 며칠동안 구경도 못해본 신선하고 따듯한 요리가 산처럼 쌓여있다.
갓 짜낸 우유, 갓 구운 빵, 신선하고 생기가 도는 샐러드 등등. 특히 평소에는 소금과 삶은 계란만 먹으며 지내는 팜에게 있어서, 갓 낳은 날달걀은 정말이지 탐나는 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른바 뷔페식으로 큰 접시에 잔뜩 담아진 수많은 요리들로 시선을 돌리면서도, 팜은 일단 빵을 하나 집어들어서 입으로 옮겼다.
"잘먹겠습니다~~~~~……"
덥썩……
"으……?! 뭐, 뭐하는 거야 이리!!"
입에 넣기 직전에 옆에서 이리에게 빵을 빼앗긴 탓에, 팜이 화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바보냐! 며칠정도 보존할 수 있는 건 챙겨가야지!! 먹을 거라면 날것을 먹으라구. 어차피 얼마동안 또 먹지 못하게 될 테니까"
이리는 말을 하면서도 준비해두었던 가죽주머니에 식료를 쓸어담는다. 과연, 먹을 줄 아는 놈이다.
"그래도 내가 먹으려던 것까지 챙겨갈 건 없잖아!"
라며 뾰로통해하던 팜이, 갑자기 당황해하며 접시에 요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응?"
어째 묘한 기운을 감지한 이리가 슬금슬금 돌아보자, 다음 접시에 요리를 담아 나르던 여관 주인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이런……"
이리도 당황해 가죽주머니 끈을 동여메고, 눈에 보이는 음식을 긁어모아 서둘러 테이블로 향한다.
"휴우……"
식은땀을 흘리며 식탁에 앉는 이리를,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팜이 놀려댄다.
"헤헤, 꼴 좋다!"
"뭐야! 혼자만 착한 척 하지 말라고, 정말!!"
아침부터 바쁜 두 사람이다. 그곳에,
"안녕하세요. 어젯밤은 잘 주무셨습니까?"
요리를 입에 옮기려고 입을 크게 열던 둘이, 그대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젯밤의 그 상인 갈프가 여전히 손바닥을 비비며 미소를 띄우고 서있었다.
베이글 빵을 손에 든 채로, 팜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한다.
"응!! 엄청 좋은 방이었어! 아저씨 고마워!"
"아뇨아뇨, 인사하지 않으셔도. 도움이 되어서 영광일 따름입니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다, 그치 이리!"
기분 좋게 동의를 구하는 팜과는 대조적으로, 이리는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이다.
주륵……
헉 하는 소리와 함께 팜이 발밑을 내려다보자, 어느샌가 예의 그 눈초리 사나운 개, 길이 팜의 손을 지긋이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다.
손에 들고있는 빵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팜은, 어젯밤의 복수를 겸해 놀리듯이 길의 코끝에 빵을 들이민다.
"헤헤~~~~, 이거, 먹고 싶어?"
"멍!!"
즉각 반응하는 길.
덥썩!!
하지만, 팜은 길이 물기 직전에 빵을 들어올린다.
"무르구나! 이걸 원한다면 제대로 이야기부터 해야할걸!!"
"멍! 멍!!"
팜의 말을 무시하는 것인지, 빵에 정신이 쏠려있는 것인지, 길은 집요하게 점프를 반복한다.
"꺄하하하하!!"
팜에게 있어서 좋은 놀이상대가 생긴 듯하다.
그런 팜을 질렸다는 표정으로 보던 이리에게, 갈프가 말을 건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딘가 들르실 곳이라도 있는지요?"
"그런 걸 물어봐서 어디다 쓰려고?"
아무래도 이리는 갈프를 믿을 수 없는 모양이다.
"어디다 쓴다뇨, 딱히……. 그저, 저도 상인인지라, 여러 정보가 귀에 들어오거든요, 헤헷, 뭔가 도움이 될 수 없을까 해서요"
"……"
지긋이 갈프를 훑어보는 이리. 갈프는 웃음을 띄우고 있다.
"어째서 그렇게 우리들을 잘 대해주지?"
이리의 질문에, 갈프의 미소가 굳어진다.
"따, 딱히 다른 뜻은 없습니다요. 그저, 두 분같은 용감한 모험가를 보고 있자면, 무심코 응원하고 싶어지는 성격인지라……"
"흐──응. 그래"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이리였다.
팜은 길과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이야기를 듣고 있지도 않았다.
갈프는 이리에게 더욱 다가와, 주변을 주의깊게 둘러보더니, '어흠'하며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두 분은, 그…… 뭐랬더라? 역시 예의 '만능의 힘'을 찾고 계신가요?"
정곡이다. 이리는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또 어떻게 들었는지, 이쪽을 보며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팜을 이리가 당황해서 제지하며,
"뭐, 뭔데? 그, 그 뭐시기 힘이라는 게?"
부자연스러운 이리의 반응에 맞춰주듯이, 갈프는 과장된 동작으로 놀란 듯이 말한다.
"아니?! 모르신다구요!! ……그건 아깝군요"
'만능의 힘'이란, 여행하는 모험가들의 공통된 꿈이다. 아무리 입이 가벼운 자라도, '만능의 힘'에 관해서는 조개마냥 입을 꾹 닫아버리는 것이 관례이다. 따라서 이리처럼 내빼는 반응이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반대로, 갈프같이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리가 당황하는 모습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갈프는 더욱 놀라자빠질 말을 하기 시작한다.
"좋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난 것도 무슨 인연이겠죠. 특별히 두 분에게만, 슬쩍 알려드립죠"
관심 없다는 척하던 이리였지만, 무심결에 갈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만다. 그런 이리의 눈앞에, 갈프는 한 권의 두루마리를 꺼내서 보여준다.
"?! ……뭐야 이건?!"
엉겹결에 얼빠진 소리를 내는 이리를,
"쉿~~~~~!!"
갈프가 입에 손가락을 대며 막는다.
"목소리가 큽니다요!"
갈프는 주의 깊게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두루마리를 펼친다.
"'만능의 힘'에 대해 기록한 그림 두루마리입니다"
이리는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곧바로 두루마리를 받아들여, 집어삼킬듯이 바라본다.
나무열매나 풀즙, 광물에서 추출한 원시적인 채료로 그려진 풍경은, 수백년 전에 멸망한 루다크 왕국의 영고성쇠를 비추고 있었다.
풍부한 수확에 기뻐하는 사람들의 그림에서 눈을 돌리자, 성대한 장례 풍경과 왕좌에서 슬픔에 겨워하는 왕의 모습이 보인다. 설명을 보충하듯 이리의 귓가에 갈프가 속삭인다.
"오백년 전…… 대 전쟁 전의, 왕국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모습입니다. 당시, 이 루다크를 대륙 제일의 왕국으로 만들어낸 오룩스라는 왕이 있었는데 말이죠……. 젊은 시절부터 용맹하며 성실했던 왕께서는 백성들에게도 칭송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런 유행병으로 사랑하던 아내 리히애나 왕비를 잃고 말았죠"
슬퍼하던 왕 앞으로는 어두운 그림이 계속된다. 빈곤, 증오, 분쟁과, 그림을 따라갈 때마다 루다크 왕국의 쇠퇴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갈프가 이어 말한다.
"의지할 곳을 잃은 오룩스 왕께서는, 기력을 잃고 빠르게 쇠약해졌다고 합니다. 덕분에 정치력도 약해지고, 이 시기를 경계로 나라는 점점 기울어갔죠. 오룩스 왕을 유일무이한 왕으로서 성장해온 왕국은, 오룩스 왕의 노력 없이는 재건되지도 못한 채, 밭은 황폐해지고, 타국으로부터의 침략에도 저항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흐~~~응…… 그래서?"
흥미 없다는 반응을 하는 이리였으나,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인 모양이다.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던 때에, 생각다 못한 현자 중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만능의 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왕께 털어놓았습니다.
오룩스 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만능의 힘'을 불러내어, 그 힘으로 다시 나라를 번영의 길로 이끌었다. 라는 전설이 있죠……"
그림 두루마리는 눈부신 빛을 받드는 왕의 모습과, 번영을 되찾은 왕국의 그림으로 끝났다. 드디어 시선을 갈프에게 옮긴 이리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물어본다.
"그래서? 이 그림 두루마리에 뭔가 숨겨진 사실이라도 있단 말이야?"
과연 안달이 난 것인지, 갈프는 이리의 손에서 그림 두루마리를 되돌려받으며,
"딱히 이 두루마리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진짜 이야기는 여기부터입니다"
"그럼 빨리 말해봐, 뜸들이지 말고"
"뭐, 들어보시죠"
이리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갈프는, 의미심장한 말투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만능의 힘'을 얻기 위해, 오룩스 왕은 인간의 마을과 떨어진 곳에 높은 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홀로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의식에 몰두했다더군요. 그 사이 외부와의 접촉은 일절 끊은 채로 말이죠……"
"꿀꺽……"
무심결에 마른침을 삼키는 이리.
갈프는 마치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듯이 가라앉은 눈초리로 음산하게 말을 잇는다.
"……그게 실수였던 것이겠죠. 오룩스 왕은 차츰 자기자신에게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더군요. 나라를 위해서라고는 하나, 당시로써는 금기였던 마법에 손을 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거겠죠. 그 고뇌를 터놓을 상대도 없었으니, 왕은 자신의 안에 잠들어있는 '악의'를 증오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샌가 '힘'을 불러내기 위한 의식도, 참회의 의식으로 변해버렸다는 모양입디다. 그리고 결국 낭떠러지에 몰린 왕은 '만능의 힘'과 함께 스스로를 봉인하기로 했답니다.
그 이후로, 왕의 모습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으갸아앗~~~!!"
진지하게 몰두해서 듣고 있던 이리는, 팜의 갑작스런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튀어오른다.
"뭐, 뭐야 팜!! 놀래키지 말라고!"
"그치마아안~~~!!"
굵은 눈물을 그렁그렁 떨어트리며 들어올린 팜의 오른손에는, 손목까지 물어버린 길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갈프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겨 방심한 모양이다.
길이 재주도 좋게 그 상태로 승리를 자랑하듯이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니시시시시"
"나 참, 정말!!"
투덜투덜 말하면서, 이리는 갈프를 향해 자세를 고친다.
"당신도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침 댓바람부터 괴담이나 들려줘봤자 재미도 뭣도 없다고!!"
꽤 초조한 모습의 이리였다. 그 성난 모습에 압도되어 쩔쩔매던 갈프가, 갑자기 입가에 웃음을 되찾으며 말한다.
"아, 아니요, 그 전설의 성이, 이 마을로부터 동쪽으로 이틀 정도 되는 곳에 있다는지라……"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고개가 뻗어나가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이리가 소리친다.
"……그, 그게 뭐 어쨌다고?!"
애태울 만큼 애태워놓고 슬쩍 빠지는 것이 상인의 기술이다. 이리의 모습을 보고 알아챘는지, 갈프는 손바닥을 뒤집듯이 시치미를 뗀다.
"아뇨. 우연히 그 성의 내부를 상세히 기록한 도면을 손에 넣어서 말이죠……"
"성의 도면이라고?!"
한 층 더 목소리를 높이고 마는 이리.
"예에, 뭐어……"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이리였지만, 꾹 참고,
"그, 그런 이야기, 우리들한테 해서 뭘 어쩌려고?"
"하하하. 보시는 대로, 저같이 힘이 없는 자에게는 그림의 떡같은 물건인지라, 유용히 써주실 분이 있다면 양도하려 했습니다만……. 그렇군요. 흥미가 없으시다면……"
하고,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그 소맷자락을 꽉 붙잡는 이리의 입가가, 몹시 분한지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큭…… 어, 얼마 정도면 팔아줄래?"
내심 싱글벙글한 갈프였지만 시치미를 떼며,
"하아. 아무래도 제 전재산의 절반을 내걸고 구한지라……"
힐끗 이리의 반응을 살펴보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가격을 매겨버리는 갈프. 과연 상인이다.
물건이 물건인 만큼, 평소 이리의 당찬 모습도 쏙 들어간 모양이다. 말없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고는, 거꾸로 잡고 탈탈 털어본다.
짤랑짤랑짤랑……
테이블 위에 가죽주머니에서 쏟아진 금화나 보석, 연초잎을 굳힌 타바코 코인 등도 보인다.
"이거면 어때?!"
전재산을 탈탈 털었다는 태도의 이리에 비해, 갈프는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지갑을 들고있는 손을 지긋이 바라본다.
"윽……"
말없는 긴장 끝에, '어쩔 수 없지'라는 느낌으로 이리가 손에 힘을 풀자, 대여섯 개의 금화가 더 떨어진다.
"와하하하하!!"
싱글벙글하는 갈프와는 대조적으로 맥이 풀려버린 이리.
"하아~~~~!! 비싼 쇼핑이 되버렸구만……"
5
짐을 정리하고 숙소를 나오는 팜과 이리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길에게 손목을 있는 힘껏 물렸다고는 하나, 오래간만의 숙소와 배가 빵빵해질 정도의 조식, 거기에 '만능의 힘'과 곧 마주할 수 있다면, 팜의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
한편, 기세에 밀려서 진짜로 전재산을 탈탈 털어버린 이리의 심경은 복잡할 뿐이다.
지도를 어깨에 맨 가방에 소중하게 넣은 팜이 순수한 미소를 이리에게 보내며 말한다.
"다행이네 이리. 이걸로 '만능의 힘'을 얻을 수 있어!"
마른 웃음만 띄우는 이리.
"그래…… 하지만, 덕분에 완전 개털이야……"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쉬고 만다.
"후후…… 하지만 그 아저씨, 정말 좋은 사람이었네. 봐봐! 곤란할 때에 쓰라면서 이런 도구까지 줬다구"
그렇게 말하는 팜의 손에는, 가느다란 대나무를 쪼갠 듯한 50cm정도의 통이 쥐어져있었다. 팜은 그 손을 귓가에 대더니, 두세 번 흔들어 소리를 확인한다.
"뭐가 들어있는 걸까? ……마법의 가루라도 들어있나?"
마법을 쓸 수 없는 여행자들의 호신용으로, 마법사들이 주문을 봉인한 분말을 처방하기도 한다. 물건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지만, 우리 세계에서 말하는 수류탄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뭐든 상관 없지만…… 빨리 '만능의 힘'을 손에 넣지 않으면, 앞으로 이삼일 안에 식량이 바닥날 거야"
기합을 넣듯이 자기 양 볼을 두들기고, 이리는 스스로에게 말하듯 말한다.
"약한 소리는 해선 안 돼!! 아무튼 모든 일은 보물을 손에 넣고나서야!"
기운을 되찾은 이리는 눈을 부릅 뜨며 팜을 노려보고 말한다.
"좋아 팜! 지갑 내놔봐!!"
갑작스런 이리의 말에, 팜은 갸우뚱한다.
"에?! 어, 어째서!"
"아까 봤잖아? 내 지갑, 완전 텅텅 비었다고! 이제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
"뭐…… 뭐에 쓰려고?"
"말을 사야지! 어떻게 사막을 건너갈 생각이야?!"
"하지만……"
지갑을 건네주기를 망설이는 팜.
그러나 그 찰나에, 가차없이 이리의 손이 뻗어나온다.
"빨랑 내놔! '힘'을 얻기만 하면, 뭐든 마음대로 될 거잖아!"
"……알았어"
작게 중얼거리며, 팜은 마지못해 지갑을 넘긴다. 이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갑을 낚아챈다. 하지만, 지갑 안을 보고나서 벙 쪄버린다.
"뭐야 이거?! 딸랑 요것 뿐이야?!"
놀라움과 분노로 팜을 노려보는 이리.
"헤헤……. 좀 부족하려나……"
"너, 대체 어느새!! 그만큼이나 낭비하지 말라고 말했잖아?!"
"히익~~~~!! 미안해~~~~!!"
달리며 도망가는 팜을 이리가 뒤쫓는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시장 거리를 벗어난다.
그런 둘을 그늘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는 자가 있다. 갈프였다. 둘에게 보여준 미소와는 마치 전혀 다른 얍삽한 미소를 띄우며,
"저 둘, 제대로 걸렸군…… 헤헤헤. 전부 계획대로야"
라고 말하며 돌아본다. 그런 갈프의 등 뒤에는, 수상한 두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그런 갈프의 꿍꿍이를 전혀 모르는 팜과 이리는, '만능의 힘'을 목표로 사막 동쪽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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