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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9일 일요일

유적탐험대 팜&이리 1권 제2장 라샤와 미겔

1

 사막의 무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피부에 직접 금속제 악세서리를 달고 있으면 화상을 입기도 한다.

 지상의 전부를 태워버리는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태양광선 아래,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바다 위를 한 마리 말이 빼꼼 모습을 나타낸다.

 팜의 낭비 덕에 가격을 맞추지 못했는지, 팜과 이리, 그리고 두 사람 분의 짐을 단 한 마리의 말에게 짊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미안해……"

 라며 중얼거리는 팜의 눈은 공허했다. 더위에 완전히 패배하고 만 것이다.

 말 위의 두 사람은 모두 머리부터 발끝까지 망토를 푹 뒤집어쓰고 있다. 언뜻 보기엔 굳이 그런 더워보이는 모습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극도로 건조한 사막에 있어서는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것이 훨씬 쾌적해질 수 있는 수단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둘이 느끼는 더위는 흔해빠진 더위 수준이 아닌 모양이다. 팜도 이리도 조용히 버티는 것이 고작인지, 아까부터 거의 말도 하지 않는 상태다.

 게다가 마을의 길거리라면 몰라도, 이곳은 변함없이 이어지는 풍경이 끝없이 계속되는 사막이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휘감겨오는 모래길은, 평소의 몇배나 되는 시간이 걸린다. 설령 '만능의 힘'이 눈앞에 있다곤 해도, 무리하는 것은 금물이다. 가는 길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길까지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의 상태도 고려해, 그 날은 자그마한 오아시스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대지를 오렌지 빛으로 물들일 즈음. 이 때에는 한낮때의 무더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찬 기운이 몰아친다.

 이렇게 되면 모닥불의 도움이 매우 필요하다.

 한낮과는 다른 목적으로 망토를 몸에 감은 팜이, 모닥불에 양 손을 쬐며 몸을 싸매서 최대한 쬐끄만 상태로 만든다.

 "우~~~ 추워……"

 이리가 다음에 할 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입으로 말하고는 못배기는 팜이었다.

 "적어도 딱 하루만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침대에서……"

 "바보같은 말 하지 마! 둘이 한 방이었다곤 해도, 지금은 우유 한 잔도 사지 못하는 처지니까!!"

 예상했던 말이다.

 지금까지 여행 생활에 익숙해졌다곤 해도, 역시 노숙은 고달픈 법이다. 불길이 닿지 않는 등에서부터, 서서히 밤의 한기와 어둠이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말린 육포와 소금간을 친 올리브 등, 어제와 별 다를 바 없는 조촐한 저녁식사 후, 두 사람 모두 겨우 몸이 뎁혀졌는지, 말수가 조금씩 늘어난다. 어느샌가 화제는 '만능의 힘'을 손에 넣은 뒤에 대한 것으로 변해있었다.

 모닥불 옆에 깔아둔 잠자리에 몸을 눕히고 하늘을 바라보던 팜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그대로 비추는 것처럼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저기…… 이리?"

 "응?"

 베개 대신 양 손을 머리 뒤에 대고 눈을 감은 채, 이리가 대답한다.

 "이리는 '만능의 힘'을 뭐에다가 쓸 거야?"

 "으──음, 글쎄……. 일단은 역시 노사한테 걸린 저주를 풀어야겠지. 그리고 그 기세로 바보노사에게 복수하고…… 자, 그 뒤에는 어떢할까……. 으──음……그래, 세계정복이라도 해볼까?"

 달리 할 말도 있을 텐데, 어처구니 없는 말을 꺼내는 이리였다.

 "음~~~침해"

 질려버린 팜. 발끈한 이리가 눈을 뜨고 팜을 노려본다.

 "뭐야!! 그렇게 말하는 팜은 어떤데? 어차피 배 터지게 잔뜩 먹고 싶다~~, 라고……"

 팜이 고개를 훽 돌려 이리를 바라본다.

 "아니야!! 이리랑 다르게, 팜은 제─대로 생각해뒀다구"

 "뭔데? 말해보시지"

 "우흐흐……"

 기쁜듯이 다시 밤하늘로 눈을 돌리는 팜.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 비친 풍경은 다른 풍경인 것 같다.

 "팜은 있지, 마법을 잔뜩 배울 거야! 그래서 있지, 정령이나 동물이나 인간들과 더욱 더 사이 좋아져서, 모두 같이 즐겁게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 거야"

 "하…… 욕심 없는 녀석이네"

 어지간히 팜다운 꿈에, 무심코 얼굴이 풀려버리는 이리였다.

 "흥! 이리가 너무 욕심쟁이인 거야──!!"

 "그려그려. 어차피 나는 심술궂고 치사한 사람이네요!"

 미소지은 채 다시 잠을 청하는 이리에게, 팜이 싱긋 웃으며,

 "뭐야, 삐졌어?"

 "팜!!"

 훽 째려보는 이리에게 도망가는 것처럼, 팜이 모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꺄하! 무셔~~~!!"

 "……참 내, 정말! 내일은 오늘 늦은 만큼 만회해야 하니까. 빨리 일어날 수 있게 제대로 자두라고!"

 "네───!"

 내일이 되면 만날 수 있는 궁극의 보물을 꿈꾸며, 둘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이리의 예고대로, 아직 어두운 틈에 준비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평소엔 아침잠이 많아 깨우는 데에 손이 많이 가는 팜이, 이날 만큼은 제대로 스스로 일어났다.

 "사막에 눈이 내리겠네"

 이리의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사태였다.

 재빠르게 식사를 마친 둘은, 말의 체력을 생각해 교대로 걸어가기로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융단이라도 뒤집어씌우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맹더위를 견디면서, 두 사람의 마음은 벌써부터 전설의 고성으로 날아가 있었다.

 고양감과 이른 아침의 출발 덕분인지, 땅끝까지 이어져있으리라 생각되던 사막의 바다가, 서서히 그 모습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모래산에 섞여 붉은 빛의 암괴가 많이 보이게 된 것이다. 붉은 빛은 암석 안에 포함되어있는 철분이 녹슬면서 생겨나는 색깔이다. 즉, 명백히 사막을 빠져나와 다른 지역으로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증거이다.

 조금씩 바위 그늘 사이에 들러붙어있는 잡초의 앞에, 한층 더 커다란 붉은 산이 보인다.

 "저거다!!"

 무심코 소리를 지르는 이리.

 후드를 벗어올리고 눈을 비비는 팜 앞에, 완전히 풍화되버리긴 했으나 누가 봐도 인공적인 건조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꺗호~~~~~!!"

 뛰어오르며 기뻐하는 팜.

 "해냈다!! 해냈어 이리!! 자, 빨리 가자!!"

 들뜨며 서두르는 팜에게 이리는,

 "서두르지 않아도 유적은 도망가거나 하진 않아. 뭐니뭐니해도 오백년 이상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우선 말을 그늘에 묶어둬야지. 이 녀석이 뻗어버리면, 돌아갈 때 보물더미들을 옮길 수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리도 들떴는지, 밧줄을 묶는 손이 계속 헛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짐을 내리는 데에도 조급해하지 않고 느긋하다.

 마침 타이밍 좋게 튀어나와있는 석판 아래에 말을 묶어두고, 두 사람은 드디어 대망의 성 안으로 향했다.

 "후후후……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만능의 힘'이란?!"

 "초조해하지 않아도 금방 직접 볼 수 있겠지!!"

 팜도 이리도 머릿속에는 '만능의 힘'으로 가득 차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두 사람 뒤를 여기까지 슬금슬금 쫓아온 세 사람의 그림자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2

 쿠궁…… 쿠구구구구구……

 몇백년동안의 침묵을 깬 지금, 다시금 의식의 찹 문이 열리려 하고 있다. 문이라고는 해도 높이가 7m정도나 되는 대문이다. 좌우 두 짝 중 한 짝을, 팜과 이리 둘이 달라붙어 혼신의 힘을 담아 밀어대고 있다.

 "으읏~~~~~~! 크그극……"

 질질질질…… 쿠웅……!!

 겨우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틈이 열리자, 두 사람은 몸을 미끄러지듯이 안으로 밀어넣는다.

 "후~~~!! 안으로 들어오는 데에도 고생이구만……"

 두 사람 앞에는, 바람이 드나드는 넓은 홀이 펼쳐져있었다. 오백년의 세월을 읊듯이, 커튼이나 태피스트리 종류는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허물어지듯이 떨어졌다. 또, 무너진 성벽 틈새로 들어온 모래가 홀 내부에 자그마한 산을 구성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빛에 비춰진 넓은 공간은,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몇몇 돌기둥이 없었더라면, 그냥 동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팜과 이리가 서있는 장소에서는, 좌우로 대칭된 오르막 계단이 이어져있었고, 정면에는 안쪽 공간으로 이어지는 직선 복도가 뻗어있었다.

 "팜, 도면 보여줘"

 팜이 가방에서 도면을 꺼내 이리에게 건낸다.

 "으음, 보물창고는…… 똑바로 가서……"

 도면에 눈을 돌린 채로 무방비하게 걸어가는 이리. 팜도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간다.

 오백년이나 되는 긴 세월동안 인간의 방문이 끊어졌던 바닥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잔뜩 쌓인 먼지층이 소리없이 춤을 췄다. 일찍이 홀에 훌륭한 빛깔을 뽐냈을 레드 카펫도 지금은 잔뜩 더러워져서, 바닥에 내팽개쳐진 걸레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짤랑……

 팜의 발이 카펫 끝에 닿았을 때, 바닥 밑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헉 하며 발길을 멈추는 팜. 식은땀이 솟아다며, 큰 귀가 움찔거린다.

 "그 다음은…… 밑, 인가……"

 이리는 눈치채지 못했다. 굳은 듯이 움직이지 못하는 팜이 귀를 기울이자, 명백히 무언가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끼릭끼릭끼릭끼릭……

 쿠구구구구구……

 움찔움찔하며 위를 올려다보는 팜. 새까만 어둠 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명백히 위에서 뭔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쥐어짜듯이 목소리를 내 이리를 부른다.

 "이리!! 위, 위!!"

 이리는 팜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본다.

 "무슨 소리야 팜. 밑이겠지!"

 "아, 아니, 위!!"

 팜의 표정에 의아해하며 위를 올려본 그 순간,

 철컥!!

 슈욱────!!

 올려다본 이리의 눈앞에 날아든 것은, 비처럼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수의 창이었다!

 "으힉!!"

 눈을 부릅뜨는 이리, 그런 상황에서 당황해하며 굳어버린 팜의 목덜미를 붙잡고 달린다.

 휙! 콰콰콰콰쾅!!

 종이 한 장 차이로, 등 뒤의 바닥을 꿰뚫는 수많은 창.

 "멍하니 있지 말라고!!"

 짓뭉개진 개구리처럼 바닥에 납짝 엎드린 두 사람을,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함정이 덮친다.

 슉 슉 슉!!

 벽에 감추어져있던 대롱이 일제히 열리며, 준비된 화살을 쏘아댄다.

 "히익~~~~!!"

 팜을 붙잡은 채, 이리는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휙~~~~~~!!

 콰과과과광!!

 슉 슉 슉!!

 쾅 쾅 쾅!!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함정이 차례차례 두 사람을 덮친다. 솟아오르는 불꽃, 상하좌우에서 뿜어져나오는 창, 화살, 돌덩이를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착지한 이리의 발밑이 소리를 내며 무너진다.

 "거짓말?!"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손 쓸 도리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리를 뒤로하며, 이번엔 팜이 앞으로 나선다.

 척!!

 장대높이뛰기의 요령으로, 지팡이를 박으며 이리와 함께 구멍에서 뛰어오른다.

 철푸덕, 철푸덕!!

 튕겨나오듯이 안쪽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날아온다.

 눈을 부릅뜬 채 천장을 바라보며 뒤로 자빠져 쓰러지는 이리. 팜은 마지막 화살 무더기를 피하며, 돌기둥에 달라붙는다.

 "히잉~~~~!! 이제 싫어!!"

 팜이 거의 울상이 되어 소리지른다. 이리는 쓰러틴 포즈 그대로 도면을 향해 불만을 토로한다.

 "뭐야!! 함정이 있으면 어디에 있는지도 써놔야 할 거 아니냐고!!"

 "……쓰기를 까먹은 걸까?"

 "아니 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탈출해 한 숨돌리나 싶었던 그 순간,

 끼릭끼릭끼릭끼릭……

 두 사람에게 불길한 소리가 엄습한다.

 찔끔찔끔 위를 올려다보니, 천장에는 통로 주변에는 변변찮은 밧줄로 묶인 바위덩어리가 대롱대롱 메달려 있었다. 게다가, 톱니바퀴 형태의 칼날이 슬금슬금 그 밧줄을 잘라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와와와……"

 놀라서 말문이 막힌 팜과 이리였다.



 쿵 쿵 쿵 쿵 쿵……

 땅울림과 함께 굉음을 내며 바위덩어리가 차례차례 통로를 짓뭉갠다. 떨어지는 바위덩어리를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피해나가는 팜과 이리.

 "뭐냐고~~~~~?!"

 필사적인 둘은,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하는 지경이다. 잠깐이라도 멈춰서면, 좌우에서 습격해오는 함정 화살의 먹이가 되버리고 말 테니까 말이다.

 불행한 둘을 따라가듯이, 별안간 눈앞의 바닥이 무너져내리며 커다란 입을 연다.

 "뭐야!!"

 기세 좋게 동시에 점프하는 두 사람.

 "헹! 아무것도 아니구만!!"

 어렵지 않게 뛰어넘었다, 라고 생각한 순간,

 덜컹……

 철컹철컹철컹!!

 "으악~~~~~~~!!"

 착지한 바닥 역시 함정의 연장선이었다.

 "속았다~~~~~!!"

 "히에엥~~~~~!!"

 비통한 외마디비명만을 남기고, 두 사람은 암흑에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달캉달캉달캉……

 바닥 함정에서 부서진 조각들이, 단속적으로 구멍의 벽을 통해 떨어진다.

 불쌍한 주인공 팜과 이리도 이걸로 1권 끝이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함정 저 아래쪽에 간신히 매달렸다.

 "……크…… 크윽…… 무, 무거워~~~!!"

 바위의 튀어나온 부분에 적절하게 검을 찔러넣어 두 손으로 버티는 모양새가 되버린 이리가 신음한다. 왜냐면, 이리의 양쪽 발을 팜이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팜도 그저 매달려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달려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을 뿐이다.

 "파, 팜!! 어디 붙잡을만한 곳 없어~~~?!"

 "그런 말 해도……"

 주변을 둘러봐도, 팜이 안착할만한 공간은 없다.

 "크…… 크윽…… 이제, 못버텨~~~!!"

 용쓰는 이리도, 과연 발이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뭔가 번뜩인 것처럼, 팜이 핫 하며 숨을 삼킨다.

 "!! ……그래!"

 그렇게 외친 팜은, 가방 속에서 예의 상인 갈프에게 받은 대나무통을 꺼내든다. 뚜껑에 손을 대고, 이리의 허락을 구하듯이 올려다보며 말한다.

 "괜찮을까?"

 얼굴을 씨뻘겋게 만들며 소리치는 이리.

 "뭐든 좋으니까 빨리 좀 해봐~~~!!"

 팜이 알았다며 뚜껑을 열자,

 퐁……

 하며 가벼운 소리가 났다.

 "?"

 그러나, 그 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네?"

 의문스럽게 생각한 팜이 통을 거꾸로 뒤집어 흔들자, 팔랑거리며 한 장의 종잇조각이 튀어나왔다. 손으로 잡고 종이로 눈을 돌리는 팜.

 "……!! 뭐, 뭐야 이게~~~~?!"

 무심결에 소리치는 팜에게, 이리가 시뻘개진 얼굴을 돌리며 말한다.

 "뭐, 뭔데? 왜 그래, 팜?!"

 말 없는 채 팜이 내미는 종잇조각에는, 이렇게 단 한 마디,

 '기도하세요'

 라고 쓰여있을 뿐이었다. 이리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씨뻘~~~!! 속았잖아!! 그 망할 아저씨한테!"

 구원을 바라듯이 이리를 올려다보는 팜.

 "어쩌지, 이리?"

 "어쩌긴, 당연하잖아! 여기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기어올라가는 거야!!"

 이리는 화나면 힘이 솟아나는 타입인 모양이다.

 "흥!!"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팜을 끼운 채로 암벽을 기어오르려 한다. 그러자,

 쿠────웅……

 멀리서 굉음이 울려퍼진다.

 "뭐지?!"

 헉 소리를 내며 위를 올려다보는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이번엔 격렬한 물줄기가 습격해온다.

 쏴아아─────!!

 둘은 눈 깜짝할 사이에 격류에 휘말려버렸다.

 "어째서~~~~~?!"

 이리의 허무한 외마디비명과 함께, 둘의 몸뚱이는 격렬한 물줄기와 함께 구멍 속 깊은 곳까지 흘려들어가고 말았다.



 똑…… 똑……

 격렬했던 물줄기도 사그라들고, 성의 가장 안쪽이라고 생각되는 어둑어둑한 통로의 표면을 쫄쫄쫄 흐르는 정도로 약해졌다. 물이 흐르는 경로를 나타내는 것처럼, 물방울이 구멍을 통해 떨어진다.

 그런 어두운 통로의 한 구석이 팟 하며 밝아지더니, 그 불빛이 돌벽에 두 개의 그림자를 나타낸다.

 "흐에~~~~…… 별 거지같은 꼴 다 봤네, 정말……"

 흠뻑 젖은 데다가 여기저기 긁힌 상처를 입은 이리가 내뱉는다.

 녹초가 되서 피곤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둘 다 무사한가보다.

 매달리듯이 들고 있는 팜의 로드 끝이, 부드러운 빛을 띄운다. 팜이 마법으로 불러내서 모인 정령의 빛이, 횃불 대신 불을 비춰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쯤 되니 꼴보기 싫은 함정들도 바닥이 드러난 모양이다.

 두 사람이 까무러칠 정도로 기나긴 통로를 지나가는 사이, 여기서 팜의 로드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자.

 팜이 지닌 로드, 즉 마법 지팡이는, 위건족 특유의 물건이다. 단단한 떡갈나무의 영목으로 만들어진 로드의 끝에는, 딱 퀘스천마크같이 일부가 빠진 링이 고정되어있다. 그리고 그 링의 외관을 향해, 네 개의 가시모양 돌기가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무기처럼 보이지만, 그만큼의 살상력은 없다. 그보다도, 군데군데 박혀있는 보석류는, 마법 효과를 높이는 데에 집중한 것 처럼 보이는, 일종의 증폭기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낡은 상태를 고려하면, 팜의 선조 때부터 대대로 전해지는 물건이라 생각되지만, 아직 팜은 이 로드를 다룰 수 있는 영역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나보다. 적어도 지금은, 슬프게도 그저 지팡이의 기능밖에 살리지 못하는 중이다.


3

 갈프에게 받은 이 도면는 함정이 쓰여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상당히 대충대충 휘갈겨둔 물건이었다. 미로처럼 배치된 가싸 통로에 한참 애를 먹은 끝에, 겨우 꿈에 그리던 보물창고다운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팜도 이리도, 함정은 이제 질렸다. 던전 곳곳에 설치된 스위치를 주의 깊게 피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겨우 목적 장소까지 도착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있다!! 이거야, 이게 보물창고야"

 기쁜듯이 문에 손을 갖다대는 이리의 말에, 지금까지의 노력이 고스란히 베여있다.

 "응?"

 문을 열려다가, 이리는 중앙에 걸려있는 부조에서 눈이 멈췄다.

 "뭐야, 이거? 무슨 괴물의 얼굴인가……? 어라? 눈알이 스위치잖아"

 이리의 말대로, 그 부조는 긴 이빨을 지닌 괴물의 얼굴을 정면에서 본 모양이었으며, 그 중앙에는, 인간으로 치면 양쪽 눈과 볼의 위치에 세 개의 스위치 모양의 돌기가 달려있었다.

 "응? 어디어디?"

 이리의 등 뒤에서 지켜보던 팜이 그 부조를 보더니 헉 하며 놀란다.

 "아!! 나 이거 알아!"

 "뭐?!"

 드물게도 이리보다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이 기쁜지, 팜은 갑자기 득의양양해지며 말하기 시작한다.

 "이건 있지, 사두르그용이라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는 세 개의 눈을 가진 성용이야"

 "……헤에"

 "그래서 있지, 오른쪽 눈은…… 분명…… 선을 보고, 왼쪽이 악. 그리고 가운데 눈이 진실을 꿰뚫어 본다고 들었어"

 "흐──응. 팜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걸"

 "뭐야! 솔직하게 고맙다고 하지 그래?"

 "헤헤…… 아무튼, 그 세 가지 중 둘은 함정이겠지. 그렇다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는 이리. 그런 이리를 옆에 두고,

 "분명 이거야!"

 딸깍…

 팜이 멋대로 스위치를 누르고 말았다.

 "앗!! 바보야!!"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쿠웅!!

 굉음과 함께, 둘의 발밑이 둘로 갈라진다.

 "우와~~~~~악!!"

 팜이 당황해하며 부조에 달라붙는다.

 떨어지는 이리는 무심코 팜의 꼬리를 붙잡았다.

 "꺄악~~~~~~~!! 아파, 아파!!"

 큰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 팜.

 "참아!!"

 한쪽 손으로 매달려있는 이리의 아래 갈라진 구멍 속에는, 수많은 가시가 돋아나있다. 그대로 떨어지면 꼬챙이가 되버리겠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란떠는 팜을 향해 이리가 소리친다.

 "야! 빨리 버튼을 원래대로 되돌려!!"

 "헤엥~~~~~"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통을 참고 기어올라가는 팜이었다.



 "꼬리가 떨어지는 줄 알았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울쌍이 된 팜이 투덜댄다.

 "무슨 개소리야! 네가 생각없이 버튼을 눌러버린 탓이잖아!!"

 "그치마안……"

 "자업자득이지. 그래서? 뭐 눌렀어?!"

 시무룩해진 팜이 오른쪽 눈을 가리킨다.

 "정말이지!! 이 장치를 여는 사람은 팜이 아니라 오룩스 왕이잖아?!"

 "그럼, 이쪽인가?"

 "아~~~~!! 진짜, 만지지 마!!"



 "왕은 자신의 '악의'를 의심했다, 고 했잖아? 그렇다는 말은 '악의'를 꿰뚫어보는 자는 통과시키지 않을 거야! 즉, 정답은 이거다!"

 그렇게 말하며 이리는 왼쪽 눈의 스위치를 누른다.

 드르륵…… 콰아아아아앙!

 암흑에 빛이 내리쬐고, 보물창고 내부가 조금씩 밝아진다.

 이리의 추측대로, '악의'를 꿰뚫어보는 왼쪽 눈이 열쇠였던 것이다. 득의양양하게 콧대를 세우는 이리.

 "헤헤, 어떠냐!"

 "그래요 그래, 어차피 나는……"

 라며 풀이 죽은 팜은, 앞을 보고는 숨을 삼켰다.

 "이리! 저거!!"

 이리가 팜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다.

 내리쬐는 희미한 빛 아래 떠올라있는 것은, 커다란 두 개의 갑옷 전사들이 지키고 있는 여신의 석상이었다.

 그것이 눈에 들어온 순간, 샤아아~~~ 하는 기쁨이 치밀어올라, 이리는 전신이 마비되버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여태까지의 고통과 피로가 한 순간에 날아가버린다.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중얼거린다.

 "저게……"

 "'만능의 힘'……?"

 팜도, 너무 기쁜 나버지 맥이 빠진 듯이 선 채로 굳어버렸다.

 "이얏호~~~~!!"

 환성을 내지르며 뛰쳐나가는 이리.

 "아!! 이리 치사해!"

 당황해서 뒤쫓는 팜. 그러나, 입구를 한 발자국 들여놓는 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응?"

 그때까지 부드러운 빛을 띄던 로드의 불빛이, 훅 하고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어라? 이, 이리?!"

 그 사실을 알리려고 하는 팜이었으나, 석상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이리의 귀에 닿을 리가 만무했다.

 "아── 정말!!"

 뒤처지면 안 된다고, 팜도 초조해하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4

 팜과 이리가 뛰어들어온 보물창고는, 예를 들자면 투우장처럼 생긴 원형의 홀이었다.

 사두르그용의 부조가 그려진 문에서 아래를 향해 열 몇칸 정도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열 몇개의 원기둥으로 지탱된 펜스는 콜로세움 객석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중앙에는 돌로 만들어진 원반을 커다란 순서대로 쌓아올린 모양의 제단이 마련되어있으며, 그 정점에 두 체의 용맹한 갑옷 차림의 무사들에게 보호받는 석상이 세워져있다.

 천장은 마치 핀스포트라이트처럼 한 줄기 빛이 내리쬐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석상이 성스럽게 공중에 떠있다.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석상은, 비취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크기로 말하자면 소프트볼 정도일까.

 아름다운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여신이, 잘 닦아진 구체를 그 날개로 지키듯이 감싸고 있는 디자인이다.

 팜과 이리가 그 석상을 향해, 우직하게 제단을 기어오른다.

 "우히히히히!!"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제단 꼭대기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챙~~~~~!!

 두 사람이 뻗은 손을 토마호크와 철망치가 가로막는다.

 "뭐야?!"

 교차하는 두 자루의 무기로부터 반사적으로 몸을 빼는 팜과 이리. 뒤를 향해 점프한 둘은 제단에서 몇 계단 내려간 부분에 착지하고, 자세를 고치며 위를 올려본다.

 석상을 지키기 위해 배치된 최후의 함정──두 체의 갑옷 무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쳇! 그리 간단히 넘겨줄 수 없다는 말이냐!!"

 이리가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이 이상 다가가면, 2m정도 되는 두 갑옷 무사의 공격을 받아야만 한다.

 게다가, 그들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다. 석상을 노리는 외부인을 배제하기 위해 배치된 가드 로봇이다. 미인계나 감정에 호소한다고 통할 상대가 아니다. 왼쪽 무사는 양날의 거대한 도끼를, 그리고 오른쪽 무사는 강철로 된 거대한 철망치를 겨누고 있다.

 채─앵!!

 위협하듯이 다시 무기 소리를 내며, 텅 비어있을 터인 갑옷 안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린다.

 "그대, 어째서, 이 석상을 탐하는가?"

 "뭐, 뭐야?!"

 주춤하는 이리에게, 갑옷 무사가 다시 추궁한다.

 "대답하라!!"

 "이, 이리, 어떡하지?"

 손에 든 로드를 질끈 쥐며, 팜이 이리를 바라본다. 이리는 갑옷 무사를 노려본 채로 중얼거린다.

 "암호 주문인가…… 귀찮은 장치를 남겨두었군 그래"

 이리가 곤란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들 세계로 따지자면, 디시인사이드에 로그인하기 위한 비밀번호와 같은 것이다.

 "아, 알겠어? 이리?"

 "알 리가 없잖아!!"

 분하다는 듯이 바라볼 수밖에 방법이 없다.

 "젠장~~! 여기까지 왔는데!!"

 "대답하지 않겠다면……"

 철컹철컹철컹철컹……

 대답을 하지 않는 둘을 적으로 판단했는지, 갑옷 무사들이 손에 든 무기를 휘두르려 한다.

 "큭…… 어쩔 수 없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겠어!!"

 팟!!

 "기다려라!!"

 적의가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듯, 이리는 검의 양쪽 끝을 잡고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외쳤다.

 "……거시기…… 나, 나는 루다크 국왕 오룩스! 나라의 부흥을 위해, 그 물건을 원하노라!!"

 어림짐작으로 그럴싸한 대사를 외치는 이리의 말을 듣고, 갑옷 무사가 무기를 휘두르려던 자세 그대로 정지한다.

 "아하! 정답인가?!"

 팜이 기쁜듯이 외치는 그 순간,

 부우웅……

 무정하게도 토마호크를 내리찍는 갑옷 무사.

 "그럴 리 없나~~~!!"

 "히익~~~~!!"

 휘이익~~~~~!!

 간발의 차로 둘은 점프를 해 제단에서 뛰어내렸다.

 "징벌!!"

 그런 둘을 완전히 적이라 판단한 두 체의 갑옷 무사는, 겉모습으로는 전혀 상상도 못할 만큼의 민첩함을 보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검을 뽑으며 자세를 잡는 이리가, 팜을 향해 소리친다.

 "팜, 마법이야!! 이 녀석들을 멈춰줘!"

 "좋았어!!"

 이리의 앞으로 나오며, 팜이 양손을 포갠다.

 "대기에 퍼져있는 정령이여! 바라건대 나의 앞길을 막는 자의 움직임을 봉하라!!"

 웬일인지 제대로 주문을 말했다. 이리가 빙그레 웃는다.

 "좋아, 팜! ……응?!"

 그러나, 어째서인지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두 갑옷 무사는 팜을 뛰어넘어 이리를 향해 덤벼든다.

 "으아악~~~~!! 어째서~~~~?!"

 콰앙~~~~!!

 쿠웅~~~~~~~!!

 쭈뼛쭈뼛 돌아보는 팜.

 "이, 이리…… 괜찮아?"

 이리는 가랑이를 벌려 토마호크를 피하고, 만세 포즈로 머리 위를 노리는 철망치를 막아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뻐끔뻐끔거린다.

 "제대로 말했는데~~~"

 팜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오~~~~호호호호호!!"

 그곳에 갑자기, 높은 톤의 여자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둘은 깜짝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본다.

 목소리의 주인은 두 남자를 이끌고, 팜과 이리가 들어온 부조가 새겨진 문에 기댄 상태였다.

 "멍청이들이네. 마법은 진작에 봉인되어있다구"

 여자가 둘을 놀리듯이 흔들어보이는 가죽주머니의 내용물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침묵의 향'이라 불리우는 그 가루는, 정령의 오감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다.

 "뭐냐, 너희들은?!"

 횃불에 비춰진 그 여자의 얼굴은,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하지만 약간 치켜 올라간 큰 눈과 입매를 보아하니 정숙한 성격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색 망토의 장식품을 보니, 팜과는 다른 계열이지만 마도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머, 무례하긴! 미모의 마도사 라샤를 모른다니, 너희들, 정보 수준이 원시인 수준이구나?"

 "엥?! 누가 미모의 마도사냐……. 콤비를 짜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도 처음 듣는 말인걸"

 "미겔!! 너는 닥치고 있어!!"

 어깨에 몸집만한 큼지막한 검을 짊어진 난폭하게 생긴 거구의 남자, 미겔의 손을 보고, 팜이 외친다.

 "아!! 어느새?!"

 이리는 반사적으로 제단을 바라본다. 자리에 있어야 할 석상이 없다. 둘이서 갑옷 무사의 공격을 받아내는 틈을 타, 홀라당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미겔은 장난치듯 석상을 위로 던지고 잡기를 반복한다.

 "늬들같은 꼬맹이들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잖아? 우리들이 유용하게 써줄 테니, 고맙게 생각하라고"

 "지랄하지 마!!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해!!"

 열이 올라 소리지르는 이리는, 가능하다면 당장에라도 미겔로부터 석상을 되찾고 싶었으나, 쉴새없이 공격을 퍼붓는 갑옷 무사 덕분에 그럴 수도 없다.

 "니─히히히히.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거라구요, 두 분들"

 그때껏 미겔의 등 뒤에 있던 남자가, 슬쩍 얼굴을 내비친다.

 "아────!!"

 "너 이새끼, 짝퉁상인 아저씨!!"

 목소리의 주인은 틀림없이, 그 악덕 상인 갈프였다.

 "잘도 우리들을 속였겠다ㅏ!!"

 갑옷 무사의 공격을 피하면서, 팜과 이리는 라샤와 미겔에게 가려고 해보지만, 좀처럼 생각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두 사람을 바보취급하듯이, 갈프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속이다니 당치도 않습죠! 그저, 두 분에게는 여기까지 길 안내를 부탁했을 뿐입죠……"

 "니시시시시……"

 꼬리를 흔들면서 내려다보는 길도, 이빨을 드러낸 채 웃고 있다.

 "젠자아앙~~~~!!"

 이리는 너무나도 분한 나머지 입술을 깨물었다. 울분을 담아 갑옷 무사들에게 소리친다.

 "댁들의 상대는 우리가 아니잖아!! 이 멍청한 고철덩어리들아!!"

 끼기긱……

 이리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급히 공격을 멈추는 두 갑옷 무사. 그 모습을 보며 이리는 '됐다!!'라고 생각하며 라샤와 미겔을 가리키며 외친다.

 "잘 보라고!! 석상을 훔친 놈들은 저 녀석들이야!!"

 그 말을 들은 갑옷 무사가 이번엔 세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한다.

 "구오오오오!!"

 숨을 삼키는 미겔이 슬쩍 웃음짓는 채로,

 "어이쿠 이럼 안 되지. 라샤, 슬슬 튀자구"

 라샤는 싱긋 웃으며 팜과 이리를 향해 외친다.

 "그럼 둘 다,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자! 단, 살아서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면 말이야. 호─호호호호호!!"

 쿠구구구구……

 문이 닫힌다.

 "아!! 기, 기다려~~~~~!!"

 당황해서 달려가는 팜과 이리. 그러나, 갑옷 무사가 방해를 하는 탓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진짜, 방해하지 말라고!!"

 갑옷 무사를 밟으며 필사적으로 문을 향해 달려가지만,

 쿠웅~~~~~~……

 무정하게도 문이 닫히고 말았다.

 "진짜, 바보바보바보!!"

 울쌍이 된 팜이 문을 두들기며 소리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둘의 외침을 무시하며, 그대로 석상을 손에 넣은 라샤, 미겔, 갈프 삼인조.

 만족스럽게 석상을 바라보던 라샤가 말한다.

 "자아 그럼…… 석상도 손에 넣었겠다, 탑 위에 있는 의식의 방으로 가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능의 힘'을 불러내자고!!"

 닫힌 문에 새겨진 부조를 곁눈질하면서, 미겔이 대답한다.

 "그나저나 말이야, 라샤. 좀 심한 거 아니야? 저 둘, 그냥 저렇게 가둔 채로 놔두기에는……"

 "무르구나, 미겔. 알겠니? 세상엔 말이야, 승자와 패자밖에 없어!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의 천하라고. 패자에게 동정따위는 필요 없어!! 오─호호호호호!!"

 콧소리를 높이고 웃으며 척척 걸어가는 라샤를, 말없이 식은땀만 흘리며 지켜보는 미겔. 입을 삐죽거리며 갈프가 소곤거린다.

 "……평소에도 저렇습니까?"

 "……뭐, 그렇지……"

 "……힘들겠네요……"

 "……이해해 주는구나"

 팜과 이리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이 둘도 꽤 만담 콤비력이 좋아보인다.



 다시 어둠에 침식된 보물창고 안에 남겨진 팜은, 완전히 기가 죽어 있었다.

 "후에엥~~~, 이런 곳에서 미이라가 되버리는 거야?"

 "이 녀석들이 움직이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구만"

 갑옷 무사는 문이 닫히면 움직임이 멈추는 모양이다.

 "저기…… 앞으로 어떡하지, 이리?"

 "당연하잖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서 빠져나가야지. 그런 놈들에게 '만능의 힘'을 빼앗길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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