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지구와의 전쟁을 휴전 조약 체결이라는 형태로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2198년 9월의 일이었다.
목련──정식 명칭은 목성권 가니메데, 칼리스토, 유로파 외 위성 소행성 국가간 반지구 공동 연합체라고 한다. 21세기에서 시작된 인류의 우주 진출 계획은, 일찍이 지상에서 이루어졌던 식민 정책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관계는, 그대로 차별의 기준이 되었으며, 억압받는 식민지 사람들은 독립을 향한 깃발을 내걸었다. 그러나 지구측의 내부 분열로 인해 조직은 붕괴하고, 마지막까지 저항한 독립파는 패주하고 만다. 지구권에 쫓기며 테라포밍도 불완전한 화성으로 이주하지만, 핵공격을 받아 또다시 패주──이후, 수많은 변천을 거쳐 그들은 목성권에 하나의 거대한 도시국가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지구권으로의 국력 확대 및 지구연합을 향한 보복을 목표로 해 첫 전투를 치른 것이 2195년 10월. 화성권에서 치뤄진 전투는, 일찍이 핵공격에 의해 방사능을 겨우 없애고 새로이 개척을 향한 희망으로 넘치던 식민지 '유토피아 알파'를 화성에서 완전하게 지워버렸다.
거의 1세기에 걸친 역사적 공백은, 지구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선배들이 저지른 어리석은 행위를 전부 잊게 만들었다. 지구의 위정자들은 예전의 학살을 단순한 동맹간의 불화로 치부했기에, 망령의 출현에 당황하며 필사적으로 이를 감추려 했다. 지구측에서도 전쟁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은, 보이지 않았던 역사의 진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해도 되리라.
목련측의 상황도 비슷했다. 선조의 적이라 정해놨던 상대는 귀신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자도 많았다. 최전선에서 싸우던 병사들의 동요는 컸고, 수뇌부는 적이 얼마나 비열한지를 필사적으로 선전하며 전의를 고무시켰다. 그러나 헛된 노력이었다. 평화를 울부짖는 젊은 군 장교들의 쿠데타에 의해 신정부가 탄생했고, 휴전으로 이어졌다. 지구연합은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목련을 더한 신체제 아래 새로운 평화의 길을 모색하겠노라 선언했다. 우주신세기의 도래를 알리는 것처럼 경기도 좋아졌으며, 길을 걷는 사람들은 꿈과 희망으로 넘쳤고, 집집마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
하지만 타카스기 사부로타는 화를 내고 있었다.
'난 속지 않는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을 뿐이잖아……'
그──타카스기 사부로타는 목련의 군인이었다. 소속은 목련 우인(優人)부대. '우수한 사람(優人)'이라는 이름답게, 목련군의 엘리트 부대이다.
목련은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군부가 정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측으로부터의 불평불만이 터져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지구에 대한 증오심을 이용한 민중심리 컨트롤이 행해지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인부대가 '국민의 아이돌'로서 존재했던 이유가 컸다.
그들은 문무를 겸비한 군인임과 동시에 윤리도덕의 구현체이기도 했다. 국가의 안전을 위해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매일같이 TV나 영화로 방영되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나눠주고, 절분에는 콩을 뿌렸다. 병든 아이들을 격려하고, 요통으로 고통받는 고집불통 가게 아저씨 대신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타코야키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의로운 열혈 행동이, 때로는 정치 체제를 위협하기도 한다. 최전선에서 일어난 평화운동의 급선봉은 바로 다름 아닌 우인부대 청년 장교들이었다.
그 리더격이었던 시라토리 츠쿠모의 사망 사건은, 군 수뇌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구의 스파이에 의한 모략', 이라고 다루어졌다. 하지만 진상은 반대였다. 평화 교섭을 바라던 그를 속인 것은, 목련의 실질적 리더인 쿠사카베 하루키 중장이었다. 시라토리의 죽음은 어처구니 없게도 전의를 고양시키는 데에 철저하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진상이 폭로되었을 때의 반동 또한 컸다.
"열혈은, 맹신과는 다르다"
"시라토리 대령의 유지를 잇자"
군부의 젊은 온건파를 중심으로 한 무장 봉기는 순식간에 목련의 주요 기관을 제압하며 쿠사카베를 비롯한 구 주력파를 추방시켰다. 봉기의 중심 인물인 아키야마 겐파치로는 재빠르게 휴전을 제안한다. 젊은 힘에 의해 다시 태어난 목련은 지구연합과 협력하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터였다.
'어째서 함장이 지구로 좌천된 거냐고. 결국 늙은이들이 잘난 체 하고 싶었을 뿐이잖아'
전후 처리에 쫓기던 목련에게 고개를 치켜들며 나타난 것은, 구 주력파에게 억눌려있던 구 온건파──늙은 정치가나 여러 관청의 차관들이었다. 그들은 지구연합의 일부에게 아첨해 신 지구연합 재편성을 방패로 군부의 힘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이에 호응한 것은 군부의 구 온건파──역시 노인들의 집단이었다. 우인부대의 면면들은 이런 배짱 정치에 뛰어난 녀석들을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사람이 좋았다. 그런 와중, 노인들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아키야마 겐파치로가 평화대사라는 명목으로 지구에 파견을 가게 되었다. 아무리 '보손 점프(소립자 이동)'이라는 새 항행 시스템을 이용한다 해도, 항로 정비가 되어있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의 지구와 목성 간 거리는 매우 멀었다. 겐파치로의 부재를 틈타, 그 틈에 노인들이 목련을 좌지우지하려는 방편이라고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아키야마는 태연하게 행동하며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지금은 괜찮아. 게다가 지구와의 직접 절충을 목련의회 늙은이들에게 맡길 수도 없으니까. 확실히 전후 처리는 문관이 솔선해서 주도해야지… 덕분에 지구의 여러 사람들과 만날 수도 있으니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야"
그렇게 말하고는 후다닥 지구로 가버렸다. 그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군축 결의가 목련의회에서 가결되었다. 주된 내용은 우인부대의 해산과 구성원들의 명예퇴직이었다.
"평화를 위해 최소한도의 군비만은 남기지. 그러나 강대한 힘은 필요 없네"
노인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젊은이는 재야로 돌아가, 새로이 민주 선거에 따른 선출을 통해 회의에 참가했으면 하네"
이 말에도 논지는 알겠다. 군부와 정치의 분리를 이룩하려거든 우인부대의 구성원이 솔선해 모범을 보이는 모습이 효과적이다.
'그건 그렇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사부타로였다.
그는 전시중에 아키야마와 함께 최전선에서 싸웠다. 승선했던 함대는 도약포 탑재 전함 '칸나즈키'. 함장은 아키야마였고, 사부로타는 부함장이었다. 전장은 그가 어린 시절에 자주 봤던 로봇 애니메이션처럼 멋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같은 인간끼리의 전쟁은 못해먹겠다고 느낌과 동시에, 사람의 존엄, 지혜와 용기라는 것을 돌이켜보게 됐다. 그에게 있어서 선구자는 상관인 아키야마와 쿠사카베 중장이었지만, 적군측에도 우수한 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기동전함 '나데시코'──'
그가 처음으로 만난 강자였으며, 존경할만한 호적수였다.
첫 전투에서는 '나데시코'의 기습에 의해 '칸나즈키'가 중파되고, 사부로타는 자신이 타는 인간형 전투기 '덴진'을 잃었다. 설욕하리라 다짐한 두 번째 전투에서 그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거짓말!"
"진짜야!"
"거짓말!"
"진짜라고!"
천하를 두고 싸우는 일전에서, '나데시코'의 승무원 둘이 최전선 한복판에서 치정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모함에서 날아온 적의 기동병기 속에서 이루어진 남녀의 대화가 어째선지 목련측의 통신회로에 섞여들어, 다툼의 전말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우유부단한 남자에게 화가 난 여자가 기동병기에서 뛰쳐나간 모양이였다.
당혹스러워진 사부로타는 뭐 저런 불성실한 사람이 다있나, 라고 생각했다.
투닥거리는 사이에 둘은 전장으로 뛰어들었다……라는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둘은 더욱 서로에게 화를 냈다. 남자는 '네가 날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잖아'라고 주장하는 데에 반해, 여자는 '거짓말'이라며 부정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화해의 키스를 했다……는 모양이다. 모양이다, 라는 건 목련측의 영상 회선은 지구의 회선과 규격이 달라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신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목련의 병사들은 음성의 분위기로 그 모습을 추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깨끗한 음성은 현장감 가득하게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전해주었다.
"거짓말!"
"진짜라니까!"
"거짓말!"
"……"
갑자기 끊긴 음성 모니터에서는, 옷이 스치는 소리와 여자의 흐릿하면서도 달콤한 숨소리만이 흘렀다. 대략 멍해진 사부로타였지만, 그 기분은 곧 유쾌함으로 바뀌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역시 정의다. 정말 유쾌하군"
훗날 아키야마 겐파치로의 수상록에도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사부로타가 당시에 품은 생각 역시 똑같았다.
'어째 싸울 마음이 사라지고 말았네……'
사부로타는 감동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런 바보짓을 하는 녀석들이 있다니. 더군다나 그런 바보가 탄 기동병기를 필사적으로 지키며 싸우는 '나데시코'의 다른 병사들──마치 둘이 결착내기를 지켜보기라도 하듯이, 적의 기동병기부대는 연대도 훌륭하게 해내 목련측의 무인전투기를 격파했다. 바보를 지키는 바보도 있구나, 지구에도…….
'나도 되볼까, 저 바보처럼'
이때, 사부로타는 전투를 포기했다. 다른 목련의 병사들도 그를 따랐다.
'그때부터 우리들 우인부대가 종전을 향한 생각을 싹틔우기 시작한 걸지도 몰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한 결과 쿠데타에 참가했다. 그리고 정전. 그 뒷일은 정치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똑같이 멋대로지만, 늙은이들의 멋대로는 '나데시코'의 그 두 사람과는 달라'
목련은 곧있을 지구 연합 가맹을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사부로타는 군을 나와 거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쿵저러쿵하는 사이 세월은 흘러 2199년 1월, 지구연합은 우주 신세기 선언을 발포. 목련은 정식으로 가맹국으로써 인정받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2월에 열린 연합 총회의.
"은수는 우주에 버리고 왔다──"
이 명문구로 시작된 아키야마 겐파치로의 연설은, 중력파 통신으로 지구 전국으로부터 목성권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중계되었고,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
"타카스기 중위는 있나?"
군 숙소를 나와 민간 거주구의 값싼 아파트로 이사한 사부로타를 방문한 사람은, 우인부대의 아라라기 대령이었다.
"대령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런 곳까지"
직속 상관은 아니었지만, 아키야마와 동기였던 아라라기는 틈만 나면 사부로타를 챙겨줬다.
예상치 못했던 방문에 뒹굴거리며 만화나 보던 사부로타는 당황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우인부대에 있던 시절의 짧게 자른 머리도 꽤 길어져서, 말총머리로 묶어둔 모습이 그야말로 '낭인'같았다.
"아니 뭐, 힘없이 늘어진 바보녀석 모습 좀 보려고"
아라라기는 대나무 껍질을 본뜬 다다미에 앉았다.
"몽월당에서 파는 붕어빵이야. 맛있다고"
3평 정도 크기의 방에는 책이나 신문, 다 마신 술의 빈 병으로 가득차 있었다. 다행히 목련은 우주를 떠도는 거대한 우주선 내에 도시를 구성하고 있었기에 공기 청정 설비는 완벽했기에 녹이나 버섯 걱정은 없다. 더러운 방, 이라 해도 그냥 물건이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을 뿐이다. 사부로타는 눈을 쓸듯 서둘러 그 물건들을 한구석에 몰아놓고, 아라라기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모처럼 받은 연금이 만화랑 술값이라니. 조금 더 좋은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목성권 외의 점프 선로 조사, 응모하려고 생각중인지라…… 외우주로 나가게 되면 돈같은 건 짐짝일 뿐이니까요"
"속세가 그렇게 싫으냐?"
"싫어요"
차를 준비하면서, 사부로타는 분명하게 말했다.
'고지식하게 늘어져있군. 이거라면 가능하겠어……'
이 남자의 올곧음은 어딜가나 변하지 않는다, 라고 아라라기는 기쁘게 생각했다.
"대령님, 뭔가 꾸미고 있죠"
찻잔을 늘어놓으면서 사부로타가 말한다.
"대령은 관둬. 나도 군은 그만뒀어"
"네?"
"너, 지구에 가볼 생각은 없냐?"
"지구……말인가요?"
갑작스런 제안에, 사부로타는 명백히 의심하는 눈치였다.
"연합의 우주군에게 호출되었거든. 아키야마의 소개를 통해서긴 하지만"
"저는 지구군 따위엔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사부로타는 난폭하게 붕어빵을 집어들더니 입에 쑤셔넣었다.
"그래. 군에는 안 들어가도 돼"
"네?"
아라라기는 한쪽 눈을 감으며 익살을 떨었다.
"아키야마의 사적인 부탁이야. 네가 지켜줬으면 하는 인물이 있어, 라고 말이야. 아무래도 너랑도 인연이 있는 사람인가보던데"
"지구에 아는 사람따윈 없는데요"
"'나데시코', 라는 전함의 승무웠이었고 하던데……"
"나데시코?!"
사부로타는 무심코 손에 쥐고 있던 붕어빵을 찌부러트리고 말았다.
***
2199년 6월, 지구 연합군의 엄청난 개혁이 이루어졌다. 육해공군의 폐지와 그에 따른 통합 평화 유지군의 발족이었다. 이는 앞선 대전쟁, 비상체제 하에 있어서 연합으로 우주군의 발언력 증대에 위기감을 느낀 반대세력의 움직임에 의한 것이며, 정치가들과 기업가들의 세력 전쟁의 결과이기도 했다. 연합 수뇌는 목련에 관한 전시 정보 조작을 우주군과 그 파트너 관계에 있는 네르갈 중공에 의한 것으로 만들어 여론의 추궁을 피하려는 속셈이었다. 우주군을 없애는 대신 통합군을 만들고, 네르갈을 몰락시키는 대신 다른 기업이 치고 올라온다. 사람의 의도와 손해득실이 일치한다면 행동은 신속하기 마련이다. 목련에서 행해지던 어리석은 행동이 지구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큰 실수였다고 세상 사람들이 깨달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던 걸까…….
'지구의 하늘이란 놈은, 정말이지 푸르르구나'
타카스기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우주에서 보는 '푸르름'과는 푸른 정도가 다르군. 태양빛이 부드러워……'
구름 한 점 없는 7월의 여름하늘이었다.
그는 목성에서 멀리 떨어진 지구──도쿄 임해부에 있는 우주항의 로비에 있었다. 보손 점프라는 신 우주 항해법을 구사하여 화성의 목련 거류지로부터 달 콜로니로 이동. 그곳에서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연락 셔틀로 환승해 대기권 돌입…… 그에게 있어서는 처음으로 맞이한 지구였다.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사부로타는 주변을 둘러다봤다.
'마중 정도는 해주지 참. 비밀 임무라고는 해도 말이야……'
일단은 아키야마가 있는 목련의 대사관으로 가면 된다, 라고 아라라기에게 듣긴 했다. 하지만 밀폐형인 콜로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부로타에게 있어서는 지구 땅에 닿았을 때부터가 놀람의 연속이었다.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시원하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네가 타카스기인가?"
갑자기 등 뒤에서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그곳에 거구의 사내가 서있었다.
"뭐야, 있으면 있다고 말 좀 하라고. 나는 여기 처음 온 사람이니까"
"인상착의가 약간 달라서 말이야. 본인인지 아닌지 조금 관찰했다"
거구의 사내는 기척을 지우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부로타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주의심이 깊구나, 지구의 군대는. 그래서, 어때, 진짜지?"
쓴웃음을 지으면서 사부로타는 다시금 거구의 사내를 바라봤다.
키는 2m를 약간 넘는 정도. 얼굴도 크고 각졌으며 몸도 탄탄해서 산을 연상케 한다. 그런 체구로 기척을 지우는 기술을 몸에 갖췄다니, 경이로울 뿐이다.
'이 녀석이랑 붙으면 이길 수 있을까?'
사부로타는 눈앞의 거구와 싸울 경우를 생각해봤다. 이런 때 사부로타의 표정은 너무나도 기쁜 것처럼 보인다. 거구의 사내는 눈앞에서 실실 웃는 장신의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곤란한 모양이었다.
"나는 목련 우인부대의 타카스기 사부로타 중위를 마중나가라고 들었다"
거구의 표정에는 수상하다는 기운이 역력했다.
"우인부대의 장교는 평상시에도 군복을 착용하는 의무가 있다고 들었다만……"
확실히 사부로타는 군복 차림이 아니었다. 그는 무려 'HAWAII'라고 적힌 티셔츠 위에, 푸른 바탕에 야자수 나무를 디자인한 알로하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게다가 칠부청바지에 해변샌들을 신고, 머리는 무려 금발…… 20세기 후반의 '서퍼'같은 패션 그 자체였다. 거구의 사내는 곤혹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부대는 작년에 해산했어. 나도 그때 퇴역했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거구의 사내는 조용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난 네르갈 중공의 고트 홀리라고 한다"
"타카스기 사부로타, 목련인이야"
사부로타는 싱긋 웃으며 고트의 손을 잡았다.
***
사부로타를 태운 고토의 차는 곧바로 목련 대사관으로 향했다.
"뭐냐 사부로타, 그 모습은?!"
맞이해준 아키야마 겐파치로도 과연 당황한 모습이다.
"백수 서퍼입니다"
사부로타가 또박또박 말한다.
"아라라기로부터 대충 이야기는 들었겠지?"
"일본의 카나가와…… 오이소라는 마을에서 VIP를 경호, 라는 말이었죠"
"뭐, 그렇긴 하지만……"
말문이 막힌 아키야마는 고트와 얼굴을 마주봤다.
"잠입한 뒤 임무는 그 지역에 녹아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이소는 쇼난, 쇼난이라면 서핑이라고 들었습니다"
결국 아키야마는 참지 못하고 뿜어버렸다.
"왜 그러시죠?"
"이 녀석, 토야마 긴시로구만"
대폭소를 하는 아키야마를 앞에 두고, 사부로타는 그저 묵묵하게,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아마 목련의 도서관에서 엄청 오래된 영상 자료라도 조사한 모양인데…… 지구는 유행 사이클이 어마무시하게 빠르다고"
"엑, 그럼, 이 차림새는……"
여기 오고나서 사부로타는 처음으로 동요했다. 아키야마의 웃음은 좀처럼 멎질 않는다.
"……어때 고트 씨, 재밌는 녀석이지? 이 녀석 진지함이 어째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버리는 얼빠진 녀석이지만…… 실력은 확실해. 사람 됨됨이도 좋고. 이 녀석이라면 그 아이의 경호로 딱일걸"
"확실히. 별 것 아닌 동작에도 격투 센스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뭐지?"
고트는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오이소에서는 현재 서핑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
그도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버리고 있었다.
***
"그나저나, 그거로구만. 시빌리언 컨트롤같은 말을 꺼내길래, 그건 그렇죠 라고 대답했다면 요즘 시대에선 지구로 좌천이야"
아키야마는 호탕하게 웃으며 찬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시절과 전혀 바뀌지 않았어……'
유쾌한 옛 상관을 보며 사부로타는 기뻐했다.
두 사람은 오랜만의 재회를 축하하며 중화 레스토랑에서 한 잔 마시고 있었다. 작은 가게지만 딱 좋은 분위기와 접객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무엇보다 요리가 맛있다. 빠에야와 시시 케밥 등, 중화 요리에 국한되지 않은 메뉴가 사부로타의 식욕을 크게 자극했다.
"오늘은 손님도 댁들 뿐인 모양이니, 대여나 다름없지. 댁들, 마음껏 먹고 마시라고"
호쾌한 여주인장이 마음을 써줬는지 가게 입구에 '준비중'이라는 팻말을 걸어줬다. 아무래도 겐파치로는 이 가게의 단골인 듯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이라고 하긴 하지만, 여기 주인장은 그 '나데시코'에 타있던 사람이라더군"
"네?!"
사부로타가 무심결에 여주인장을 쳐다본다. 고트 홀리 정도는 아니지만 우람한 팔에 듬직한 어깨다. 호쾌한 그녀의 파일럿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말해두겠는데……"
사부로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낸 모양인지, 여주인이 볼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나는 요리반이었어. 요리사였지. ……그럼 이 사람도 군인인가?"
"내 부하였어요, 호메이 씨. 이 녀석이라구요, 이 녀석. 내 덴진을 가지고 출격한 것도 모자라, 당신네 배에 박살이 나버린 녀석"
"아, 너무해. 그건 공격의 창끝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변명하면서도, 사부로타는 전함 '나데시코'와의 일전을 떠올렸다.
보손 점프를 이용한 포탄의 순간이동병기, 도약포라는 이름을 지닌 사부로타 일행의 함선 '칸나즈키'는 '나데시코'를 잘 추격했다. 그러나 어느샌가 기뢰군 속으로 빨려들어가, 적 기동부대의 기습에 의해 도약포가 대파되었다. 그리고 승부는 무승부로 끝났다.
"그건 적이었지만 굉장했죠"
"맞아"
"그래서, 함장"
"함장은 됐어. 아키야마면 돼"
"제게 있어서는 함장이세요"
"그러냐…… 그래, 뭔데?"
"슬슬 제가 호위하는 상대에 대해 알려주시죠. 전 '나데시코'의 선원, 연합 규모의 VIP, 라고밖에 듣지 못했는데요……"
"음……"
아키야마는 술을 꿀꺽 삼켰다.
"여기 온 건 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 이 일은 하드하고 델리케이트한 내용이야. 완력만 세다고 맡길 문제가 아니야"
"달리 뭔가 필요한 것이라도 있나요?"
"한 소녀를 구해줬으면 좋겠어"
"소녀, 라구요?"
"그 아이에 대한 사항은 호메이 씨가 잘 알지"
사부로타는 여주인장을 봤다. 호메이, 라는 이름의 여주인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사부로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웃었다.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당신, 어째 닮았네"
"누구를요?"
"텐카와 아키토. 나데시코의 파일럿이야"
"VIP는 그 텐카와에게 길러졌다는 모양이야"
"모양이야, 라 하심은?"
"텐카와는 죽었어…… 미스마루 유리카와 함께"
뭔가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라고 생각하며 삿부로타는 잔에 따라져있던 술을 마셨다.
VIP의 이름은 호시노 루리라고 했다.
11살의 나이로 지구 연합 우주군 전함 '나데시코'의 오퍼레이터로서 승선했고, 함선의 기관 제어부터 정보 관리까지 전부 담당했다는 슈퍼 걸이다.
그 몸은 인공 수정과 유전자 조작의 산물이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영재 교육에 의해 그 능력을 개화했다. 이후 지구 굴지의 복합기업인 네르갈 중공의 밑에서 새로운 조타 시스템──원맨 오퍼레이션 시스템의 피험자로서 그 개발에 관여했다.
종래의 지구에서는 군사용 기동병기나 우주 개발용의 건설기계 등, 열악한 조건 하에서 제어해야하는 때를 위한 시스템으로 IFS가 준비되어 있었다.
IFS──이미지 피드백 시스템. 10의 마이너스 9승 미터 사이즈의 기계, 나노머신을 조종자의 체내에 주입함으로써 신경계를 강화하고, 보조뇌를 형성한다. 이에 의해 조종자의 사고와 머신 조작계 액세스 래그를 한없이 제로에 가깝게 한다, 라는 것이 이 시스템의 개요다. 조종자는 극히 간단한 이미지 훈련만으로, 어려운 기계 조작을 외울 필요 없이 자신이 생각한대로 머신 조작이 가능해졌다. 루리가 관여했던 프로젝트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거대한 우주전함을 혼자 조타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원맨 오퍼레이션 시스템──'나데시코'는, 그 시스템의 이른바 실험함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여자애를 실험체로 쓴다구요. 지구인은 비도덕적인 일을 하는군요"
"확실히 너무했지"
호메이도 동의했다.
"그 아이 처음에는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어…… 누굴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저주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어. 머리가 너무 좋아도 좀 그렇단 말이지"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생각했지만, 이 시스템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호시노 루리와 동등한 능력을 지닌 오퍼레이터가 없는 한, 이 시스템의 구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 컴퓨터로써 그녀의 능력은 규격 외였다.
"즉, 이 아이는 걸어다니는 '기밀사항'인 셈이군……"
사부로타는 호메이에게 받은 사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선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호시노 루리는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그 양측에는 싱글싱글 미소짓고있는 남녀가,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듯 다른 선원들이 서있다. 호메이에, 그 고트 홀리도 있었다.
"고트 형씨는 '나데시코'를 제공한 네르갈 중공의 파견 사원. 뭐, 감시역할이었다는 모양이던데,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여러모로 움직여준다나봐"
"어라, 이 여자애는……"
다시 사진으로 눈을 돌린 사부로타는, 고트 뒤에 숨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찍힌 소녀에게서 시선이 멈췄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소녀의 용모는 그가 잘 아는, 어느 소녀와 닮았다.
"어디서 본 듯 한데…… 기분 탓인가요?"
"아니…… 시라토리 유키나. 시라토리 츠쿠모의 동생이야"
"네?"
사부로타가 깜짝 놀란다. 그는 전시중 유키나가 오빠인 시라토리 츠쿠모의 전함에 몰래 승선해, 이후 그와 행동을 함께 했다는 모양이다, 라는 것 정도밖에 몰랐다. 목련의 신문도 당시 '오빠를 도우려는 갸륵한 여동생의 용기'라던가, '군도 특례로 인정하는 형제애'라는 등, 유키나의 무모한 용기를 칭송했다. 그러나, 그 후에 분명…….
"확실히, 시라토리 대령 살해당했을 때 함께 살해당했다고……"
"그 얘기는 하자면 길어. 지금 현재 호시노 루리와 시라토리 유키나는 하루카 미나토라는 전 나데시코 선원과 함께 살고 있어. 카나가와 지구 오이소에서, 지금은 교사를 하고 있다는 모양이더군"
"흐─음, 그러니 오이소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사부로타는 여전히 알로하 옷을 입고 있었다. 이러쿵저러쿵 말은 하지만 이 모습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역시, 서핑보드는 사야겠어'
서퍼로 분장해 오이소로 잠입하는 것 역시 포기하지 않은 듯 하다.
"호시노 루리를 잘 부탁할게"
호메이가 말했다.
"그 아이에게는 푸른 하늘이 필요해. 희망을 그려넣은, 우러러볼 수 있는 하늘이……"
***
카나가와 지구 오이소 시티──면적 1만 7천 평방 키로미터 정도의 마을은 옛날부터 별장지로 잘 알려져, 산과 바다가 있는 자연 모습은 옛날부터 변함이 없었다. 일본 최초의 해수욕장이 오픈된 해안가는, 여름이 되면 일광욕이나 헤엄치러 온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쳤지만, 당일치기만 하고 돌아가는 손님이 많아 마을 자체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1학기 종업식도 가까워진 7월, 이 땅의 학교에서는 한 남자의 화제로 들썩이고 있었다.
"금발의 남자가 물구나무 선 상태로 서핑을 하고 있었어──"
혹은,
"금발의 남자가 우쿨렐레를 치면서 자전거로 국도를 역주행했어──"
거기에다,
"금발의 남자가 쇼난다이라에서 엄청 오래된 애니송을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어──"
또 다른 곳에서는,
"금발의 남자가 매일아침 해안 청소를 하고 있던데──"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나 청소 시간, 틈만 나면 금발의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교직원의 귀에도 이 남자의 이야기가 들어갔다. 2학년 A반 담임으로 수학 담당인 하루카 미나토 역시, 이 소문이 신경쓰였다.
"유키나쨩, 들었어? 금발 남자에 대한 이야기"
"어, 당연하지. 반이나 동아리에서 다들 말하니까"
오이소 시티의 바닷가 근처에 미나토의 집이 있었다. 바다로 나가는 선박이 툇마루에서도 보일 정도인 방 3개짜리 단층집. 좁긴 하지만 잘 손질된 정원이 있고, 해바라기 세 송이가 어른의 키를 넘어설 정도로 높이 자라나 거대한 원형의 꽃을 피우고 있다. 미나토는 점심 식사를 거실 식탁에 늘어놓으며 유키나에게 물었다.
"뭔가, 그,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던가 있니? 치한이라든가, 금전 갈취라든가"
"글쎄……?"
유키나는 툇마루에서 육상 스파이크 손질을 하고 있었다. 칫솔로 꼼꼼하게 밑창을 닦아낸다. 수수한 작업이지만, 스파이크가 깔끔해질수록 타임이 단축될 것만 같은 느낌이라 유키나는 즐거웠다.
"굳이 말하자면 개그 떡밥같은 존재인걸. 애초에 난 흥미 없어서 잘 몰라. 하지만 진짜 있는 걸까, 그런 사람이?"
"글쎄다"
미나토는 유키나의 옆에 앉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둘 다 느긋하게 휴식 모드였다.
일찍이 미나토는 '나데시코'의 조타수였던 무렵, 목련의 청년 장교와 사랑에 빠졌다. 평화파 리더, 시라토리 츠쿠모가 바로 그 상대였다. 당시 '나데시코'는 평화의 교두보가 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 부름에 응한 사람 역시 츠쿠모였다. 은수를 뛰어넘은 사랑은 급속하게 불붙었지만, 그가 살해당함으로써 사랑의 막은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했다. 전후 여러 처리를 끝낸 뒤, 그녀는 남겨진 츠쿠모의 여동생 유키나를 받아들여, 이곳 카나가와 지구 오이소에서 교사를 하며 함께 살고 있었다.
'여기 오길 잘했어'
미나토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날씨가 좋다든가, 정이 넘쳐서 좋다든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유키나가 이곳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지금 미나토에게 있어서 유키나는 여동생이자 딸같은 존재였다.
"동아리, 재밌나보네"
"에헤헤, 뭐 그렇지"
전후, 일본 국적을 취득한 유키나는 오이소의 중학교 3학년으로서 전입했다. 처음에는 목련에서 온 여자애, 라는 이유로 마을의 화제가 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일본 육상계의 유망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전학 하자마자 체육 수업에서 그녀는 50m를 5초대로 끊어, 육상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활약은 눈부셔서, 지난날 지구대회에서도 100m를 11초만에 주파해, 중학생 최초로 일본 기록을 갱신했다.
"다음달 있을 전국대회, 메구쨩이랑 친구들도 응원하러 간다더라. 너한테 압박을 주겠다고 난리던걸"
"하하하. 그래서, 점심밥은 뭐야?"
"냉모밀. 루리루리는……"
"산책갔어. 슬슬 돌아올 시간인데"
"그래……"
미나토의 표정에 잠깐이지만 그늘이 졌다.
'아, 또다……'
유키나는 애써 밝은 투로 미나토에게 말했다.
"나, 잠깐 나가서 보고 올게"
"부탁해"
말하기가 무섭게 스파이크를 신고, 유키나는 기세 좋게 뛰쳐나갔다.
***
웬일인지 해안가에 사람이 적었다.
물가를 달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머리칼이, 금발이다.
알로하를, 입고 있다.
커다란 스트라이드로 상하운동 없는 독특한 주법이 독특했지만, 빨랐다.
'모래사장은 좋구나……'
전 목련 중위, 타카스기 사부로타였다.
그는 시내의 고서점 2층에서 하숙중이다. 가게 주인은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가끔 가게를 봐주기만 하면 방세는 필요 없다, 라고까지 말해주었다.
"고트 씨랑 아는 사이라면 도와드려야죠"
그는 예전에 네르갈 중공에서 고트와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했다는 모양이다. 샐러리맨에서 탈출해 취미였던 고서를 생업으로 삼았을 때에도 고트가 여러모로 도와줬다, 라고 주인은 그리운 듯이 말했다.
"그 사람 네르갈에선 뭘 하고 있나?"
생각해보니 사부로타는 고트가 네르갈의 어떤 부서 인간인지도 몰랐다. 그 체격으로 보나, '나데시코'에 승선했던 경험으로 보나, 이른바 보통 회사원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겠지만…….
"뭔가 그 사람, 위험한 사람같은걸"
거기까지 말하자, 주인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마 당신이랑 비슷할 걸요"
'그 가게 주인도 수상하단 말이지……'
사부로타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물가에서 물을 머금은 모래 위를 달리고 있다곤 해도, 허리 높이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경이로운 주법이다.
내려가지도 않고, 떠오르지도 않는다. 보통 인간의 주법은 쿡쿡쿡, 하며 앞으로 가는 힘이 단속적으로 짧은 지그재그를 그리며 나아간다고 하면, 사부로타의 주법은 그저 한결같이 쿠───, 하며 마치 활에서 쏘인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사부로타는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대략 한 시간은 달린다. 이를 아침저녁으로 총 두 번 실시한다.
잠시 느린 페이스로 달리다가 갑자기 대쉬. 그리고 다시 느린 페이스──이른바 인터벌 트레이닝, 이라는 것에 가깝지만, 사부로타의 스피드는 느리게 달린다 하더라도 보통 인간이 전력질주로 달려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다. 얼마나 가혹한 트레이닝인가 생각될 법도 하지만, 그는 그저 편안한 표정이다.
'일단, 정보는 이것저것 얻었어. 이제 어떻게 할까, 인데'
더군다나 다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차라리 확 접촉해버릴까……'
오이소로 온 이후, 사부로타는 무작정 거리를 돌아다녔다.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비밀리에 움직이는 것이 정보수집의 철칙이라 생각되지만, 아직 사부로타는 토지에 익숙하지 않았다. 토지는 커녕 지구 자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림자에 숨으려거든, 무엇보다 그 토지의 기후나 풍토, 문화나 관습에 이르기까지 모두 통달해야만 한다. 사부로타는 처음부터 그림자에 녹아들어 루리를 지킬 마음이 없었다. 아무리 숨더라도 목련인인 자신은 절대 붕 떠버리고 마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머리칼이니……'
처음엔 실수했다, 라고 생각했던 서퍼 스타일이었지만, 그는 그 실패를 오히려 이용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사람들 눈에 띄게끔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구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그 결과, 사부로타는 '이상한 금발의 남자'로서 입에 오르내렸다.
"형씨, 힘내슈~"
낚시를 하던 노인이 말을 건다.
"감사함다─"
사부로타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그 앞을 달려간다.
이제 그는, 마을의 인기인이었다.
어딜 가든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으며,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
'엉뚱한 행동을 하지만, 싹싹하고 친절한 서퍼 형씨'라는 것이 마을에서 사부로타를 평가한 말이었다. 고서점 주인의 '프로 서퍼이며 해외 원정을 목표로 조정중', 이라는 설명이 더욱이 플러스로 작용했다.
'서퍼라면 이해가 되네'
뭘 하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사부로타에게 있었다. 원래부터 우인부대 소속이었으므로 인간적으로는 양질이다. 지구에서 소박한 정의나 도덕관은 좋은 소리 못 듣지만, 금발에 서퍼에 게다가 재밌는 사람, 이라는 퍼스널리티가 그 단순함을 친근함으로 바꿔놓았다.
'옛 지혜는 그야말로 맞는 말이군!'
사부로타는 지구로 여행오기 전, 2세기 전에 제작된 시대극 '토야마의 킨상'을 봤다. 에도시대의 재판관이 '한량'인 척을 하며 상황 증거를 잡아 최종적으로 스스로가 증인이 되어 피고를 단죄하는 작품이다.
'나, 고사처럼 한량이 되리라──'
사부로타에게 있어서 한량이란 금발의 서퍼였다. 그의 착각으로 인한 작전은, 진짜 서퍼에게 있어서 민폐가 아닐 수 없었지만, 다행이도 22세기 현재 오이소 주변에 사는 프로 서퍼는 없었다. 따라서 '너는 가짜 서퍼다! 진짜 서퍼혼을 알려주마'라는 등의 말을 하며 도전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는 여러 정보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수집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슬슬……'
대낮이 되면 가게를 열어야만 한다. 그가 하숙하는 고서점은 오후 1시가 평소 개점시간이다. 오늘은 주인이 도쿄로 출장간 탓에, 사부로타가 가게를 지키기로 했다. 그는 달리는 속도를 서서히 줄여갔다. 그 순간, 달리는 발이 모래범벅으로 되며 속도가 떨어졌다. 100m 정도에 걸쳐 감속하고는 드디어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대로 방사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물가에서 모래사장 끝에 있는 방사림 앞까지는 꽤나 급격한 경사면이 이어진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올라가겠지만, 사부로타의 발걸음은 경쾌함 그 자체였다.
'과연 서핑하는 사람의 발걸음은 다르구나……'
방금 인사했던 낚시 노인도 의심없이 그의 발걸음을 지켜봤다.
방사림으로 올라오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본다. 하늘에는 커다란 적란운이 펼쳐져있고, 수평선 위에 어렴풋이 이즈오 섬이 자그마하게 보인다. 사부로타는 이 사가미 만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바다를 향해 왼쪽으로는 미우라 반도, 오른쪽으로는 하코네, 그리고 이즈오 섬이 이어진다. 모래사장과 국도 134호선 사이에는 '그린 벨트'라 불리우는 방사림을 겸한 녹지대가 이어진다. 같은 만 내에 있더라도 우주군의 도크가 있는 요코스카 시티와는 달리, 해수욕장으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
'어라?'
다시 걸어가려던 사부로타였으나, 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해안선에서부터 항만까지를 가로막는 방파제. 테트라포드에 착 달라붙은 사람 그림자──.
아무리 봐도 소녀였다.
세미롱 흑발에 하얀 티셔츠와 숏팬츠 차림.
'저 아이는…… 시라토리 유키나로군'
사부로타는 눈이 좋다. 맨눈으로 시력 5.0을 자랑한다. 유키나는 불쾌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테트라포드 사이에 뭔가가 끼인 모양이다.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며 착 달라붙은 상태다.
'그리고……'
방파제 위에는, 또 한 소녀가 있었다.
한없이 순백에 가까운 은빛 머리칼. 태양빛을 머금어 반짝반짝 빛난다.
'호시노 루리!'
사부로타는 방파제를 향해 다시 모래사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
"우와─, 귀엽다. 줏었어?"
"네. 누가 버린 물건 같아서, 테트라포드에 껴있었어요"
"까만 시바견, 이네"
"네, 네"
갑작스런 귀한 손님의 내방에 하루카네 집은 대소동이었다. 털색은 까만색. 종류는 미나토의 말대로 시바견인 것 같았다. 앞다리와 뒷다리 모두 버선을 신은 것처럼 하얗고, 코끝과 배도 똑같이 하얗다. 미나토는 척척 우유를 뎁히고, 따듯한 타올로 상냥하게 강아지를 닦아줬다. 살짝 더러웠던 털이 깨끗해지더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인지 강아지는 완전히 미나토에게 몸을 맡기고 말았다. 유키나는 미나토의 뒤에 달라붙어서는 금발의 남자가 얼마나 재빠른 손놀림으로 강이지를 구해줬는지 손짓발짓까지 동원해 설명했다. 한편 루리는 루리대로, 미나토의 옆구리에 달라붙어 강아지를 쓰다듬거나 간지럽히거나…… 결국 두 사람은 방해만 했을 뿐이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기뻤는지 미나토는 생글생글 웃을 뿐 화내지는 않았다.
소동이 일단락되고, 완전 까먹었던 냉모밀을 먹으면서 '금발의 남자'에 관한 떡밥이 이어졌다.
"헤에─, 그렇구나. 금발 군은 '좋은 녀석', ……"
기특한 사람이 다 있네, 라고 미나토는 생각했다.
"맞아맞아. 뭔가 있잖아, 닮았단 말이야 분위기가"
"누구를?"
"음─, 그래, 아키토 씨……"
여기까지 말하고 유키나는 무심코 루리를 바라봤다.
'아차차……'
루리는 묵묵히 냉모밀을 먹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낯빛이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았……겠지…… 아니면……무시, 하는 건가?'
"안 닮았어요"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루리가 말했다.
"아키토 씨는 저렇게 덩치가 크지 않아요"
'이런. 다 들렸잖아'
유키나는 진땀을 뺐다. 루리는 무표정이었지만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미나토 씨, 도와줘……'
미나토는 아까부터 말없이 먹기만 할 뿐이다. 유키나는 필사적으로 다음 할 말을 찾았다.
"그, 그러려나. ……아, 아무래도 좋지만 정말, 굉장했지, 그 사람!"
"……네, 그랬죠"
"그래서 있지…… 어, 어떻게 할 거야, 너?"
"뭐가요"
"그러니까, 그…… 그거 말야"
"그거?"
"그거는, 그거야. 왕왕……"
"왕?"
"개 말이야, 개!"
"하아……"
여기서 미나토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기르고 싶니? 루리루리"
루리는 대답하지 않는다. 모밀용 간장을 덜어놓은 그릇을 든 채로 고개를 숙이고만 있다.
"괜찮아, 딱히. 멍멍이 한 마리 정도는"
"……안 괜찮아요"
"그렇게 쭈뼜쭈뼜 대하는 게 더 안 괜찮아"
미나토가 조금 화난 어투로 말한다.
루리는 아직도 고개를 숙인 채다.
"너, 스스로 구하겠다고 말했잖아.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야지"
"……괜찮은가요?"
드디어 루리가 미나토를 봤다. 떨고 있는, 쓸쓸한 눈동자──.
"괜찮은가요 가 아니지. 루리루리, 너 자신은 어떻게 생각해? 기르고 싶니?"
"난 기를래!"
참지 못하고 유키나가 말했다.
"말을 꺼낸 건 너였을지 모르겠지만, 구해준 건 나라구. 내가 기르겠다고 결정했으니 불만 말하기 없기야, 루리!"
"그치만……"
"뭐? 불만 있어?"
"구해준 건 그 금발 분이예요"
"?! 돼, 됐잖아, 그런 세세한 일은!!"
"저도…… 기르고 싶어요"
당사자인 강아지는 진정했는지, 툇마루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
'일단 일보 전진이려나'
빨래를 돌리며 미나토는 생각했다.
'겨우 그 아이, 나를 보게끔 되었구나'
그 아이──호시노 루리. 루리루리…….
하루카 미나토는 '나데시코'에선 조타수를 했었다. 메인 오퍼레이터인 루리와는 자리도 옆자리였던 일도 있고 해서, 승선할 때에는 이것저것 돌봐주기도 했다. 그것은 미나토 자신의 인간미, 라는 것도 있었지만, 그녀는 루리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의 슬픈 경험과 닮은 무언가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미나토는 중학생 무렵, 양친이 이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지금까지 하나라 믿었던 것이 산산조각나버리는 공포, 괴로움…… 그 시절에는 힘이 되어줬던 오빠가 있었다.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루리는 혼자다. 유전자 조작의 천재 꼬마는, 오히려 의연하기까지 했다. '바보같다'라며 미움받을 말투까지 썼다. 그런 루리를, 냉혹한 여자애, 라며 치켜세우는 선원도 있었지만, 경원하는 선원도 있었다. 확실히 말해서 동성에게 받는 시선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미나토는 어디까지나 '그 아이는 평범한 아이'라고 말하며 감싸줬다.
"루리루리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좀 많았을 뿐이야. 자기 마음과 마주하는 것조차 이제부터 배워가야 해. 그 정도는 너그럽게 봐줘, 괜찮잖아!"
분명 '나데시코'에 탄 뒤의 루리는 크게 변했다. 쿨하고 사람을 깔보는 듯한 언동은 여전했지만, 선원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순해졌다. 옆자리에 앉는 미나토로서는 나날히 변해가는 루리를 보는 것이 기뻤다.
'사람은, 변해. 이렇게나 성장하는걸!'
미나토가 교사를 하는 이유도, 이 시절의 감개무량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데시코'에서 내린 뒤, 기댈 곳 없는 루리를 누가 맡을까 하는 문제가 떠올랐다. 이때 입후보자가 속출해, 마지막까지 이름을 올렸던 사람이 바로 미나토와 함장인 미스마루 유리카였다. 이래저래 협의한 결과 유리카가 맡기로 함으로써 소동의 막이 내려갔다. 하지만 유리카가 루리를 데리고 하필이면 연인 곁으로 굴러들어가 기묘한 동거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연인의 이름은 텐카와 아키토. '나데시코'의 요리사 겸 전투 파일럿이었던 남자다. 그는 도쿄에서 라멘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미나토가 당초 마지못해 하면서도 유리카가 루리를 데려가도록 허락한 것은, 유리카의 집이 명문 미스마루 가문이었기 때문이었으며, 그 경제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루리에게는 마땅히 학교에 갔으면 했고, 잘 살았으면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손바닥 뒤집듯 뒤집혀서 단칸방 생활이라니. 더군다나 친구랑 노는 것도 마음대로 못할 정도로 가게만 돕는 나날…… 그 사실을 들은 미나토는 맹렬히 화냈다.
'잠깐, 약속이 다르잖아'
동거 커플과 한 방 아래서…… 아무리 그래도 루리가 불쌍하다, 라고 생각한 미나토는 단신으로 아키토의 집에 쳐들어갔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키토 군을 두들겨 패서라도 루리루리를 데려오자!'
조심스레 그런 결의를 가슴에 새기고.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가 목격한 모습은, 즐거운 듯이 주방일을 돕는 루리의 모습이었다. 서툰 루리의 차르멜라 소리는, 묘하게 심금을 울렸다.
'뭐, 됐나'
방금 전까지 치밀어 올랐던 화도 가라앉고, 미나토는 라멘을 먹고 돌아갔다.
그 뒤, 아키토와 유리카는 결혼했다. 루리는 여전히 둘과 함께 산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엔 미나토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거면 괜찮아. 그 차르멜라를 부는 루리라면…….
'루리루리는 생각하고 있어. 자신이 '있을 장소'를'
'루리루리는 깨달으려고 해. 자신의 '마음'에'
그러니 스스로 한 발짝 내딛을 좋을 기회다, 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민간 셔틀 수수께끼의 폭발」
「우주항 이륙 직후의 비극」
아키토와 유리카는, 죽었다. 신혼여행을 가던 셔틀 사고로.
게다가 배웅하던 루리의 눈 앞에서.
내딛으려던 발걸음은 멈추고, 그리고 그대로 뒤로 되돌아갔다.
장례와 보도 대책 등을 어찌저찌 마치자, 미나토는 망설임없이 루리를 오이소로 데려왔다.
'이 아이는 처음으로 잃었어'
미나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잃었으니까, 무섭겠지'
실제로 오이소에 온 당시 루리는 떨고 있었다.
평소 말투나 태도는 평소대로의 쿨한 루리로 보였다.
하지만, 잠시 보이는 표정 속에는, 불안한 소녀의 그것이 있었다.
'무리도 아니지'
'나데시코'에서 생겨난 인연. 그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가 유리카였으며, 아키토였다. 배였던 '나데시코'는 없더라도, 그들의 집에 가면 '나데시코'의 그 시절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진다──그렇게 생각하고 방문하는 전 선원도 꽤 많았다. 마음은 편하지만, 졸업해야만 하는 학교와도 같은 곳. 일찍이 주방장이었던 호메이는 '나데시코'를 이렇게 평했다. 미나토도 그 말의 의미를 잘 알았다. 그렇기에, 루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나데시코'라는 학교를 졸업해줬으면 했다.
'결과적으로는 졸업하긴 했지만, 이건 노력해서가 아니야'
강제적인 졸업──.
이러쿵저러쿵 말해도 다른 선원들은 '어른'이다. 어른은 잃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계속해서 잃어가면서 어른이 되었다. 잃었기에 얻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루리는 그저 '어린애'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잃는다는 것은 종말을 의미한다.
'그 아이는 잃는 것을 겁내고 있어'
루리는 미나토가 말을 걸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한다.
'그 아이는, 두려워하고 있어. 상냥함을──'
상냥함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사람과 이어진다는 뜻이다.
인간은 의외로 본능적이다, 라고 미나토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까, 그 아이는 날 봤어'
분명 연약하고 두려워하는 눈빛이긴 했지만…….
'그 아이는 스스로의 의지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어. 개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위해'
미나토는 가슴이 따듯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건 커다란 한 걸음이예요!"
스포츠 아나운서같은 목소리를 내고는, 웃었다.
미나토에게 있어서도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강아지랑 금발 군에게 감사, 해야겠지'
미나토는 또다시, 웃었다.
***
다음날 아침, 유키나는 아침 일찍 루리와 강아지를 데리고 해안가로 산책하러 나갔다.
"기른다고 말한 이상 책임을 져야지!"
이른 아침 5시에 루리를 두들겨 깨우고는, 거기다 숙면중이던 강아지까지 억지로 깨웠다.
"유키나 씨, 이 애, 싫어하는걸요. 좀 더 재워주는 편이……"
"문답무용!"
루리와 강아지를 질질 끌듯 일으키고 유키나는 밖으로 나왔다.
유키나는 하얀 티에 하얀 운동화. 루리는 카키색 퀼로트에 푸른색 티셔츠. 강아지는 샴푸칠을 한 덕분인지 검은 털이 반들반들 윤기를 내며 빛난다.
7월이 되니 5시를 넘기면 해가 뜨기 시작하고, 주변이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기묘한 시간대가 형성된다. 유키나는 평소 아침 연습을 겸해 가볍게 거리를 달리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해안가는 '금발의 남자' 소문을 듣고난 뒤부터는 조심하기 위해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 일도 있고 해서 '문제 없음!'이라며 이번 산책 코스로 해안가를 골랐다.
"유키나 씨, 이 끈 괜찮을까요? 그, 목이……"
"올가미 매듭이니까 괜찮아! 숨이 막힐 정도로 조이지는 않았어"
"하아……"
개목걸이가 없었으니, 원예용 폴리프로필렌 테이프를 잘 맞춰 끈으로 만들고, 목에 묶어뒀다. 유키나의 말대로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강아지는 끈을 쥔 루리를 힘차게 당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난 학교 가야 하니까 네가 개목걸이 좀 사둬"
"네"
"그리고 동물 보건소에 전화해서 등록도 해둬야지. 뭐, 종업식날에 하면 되려나…… 그리고……"
'또 만나면 좋겠다, 그 사람이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유키나는 혼자 얼굴이 새빨갛게 되버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
"그리고, 뭔가요?"
"아, 아, 아무것도 아니야!"
"?"
강아지를 구해준 뒤, 두세 마디 정도, 말을 나눴을 뿐이었지만, 굉장히 그립고 따스한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왔는데 왜 그랬던 걸까?
'맞아맞아. 뭔가 있잖아, 닮았단 말이야 분위기가'
'누구를?'
'음─, 그래, 아키토 씨……'
확실히 아키토 씨는 아니다.
루리의 말대로다.
아키토 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상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금발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이상한 차림새, 이상한 금발이지만 묘하게 성실하고 고지식해 보였다.
뭔가 목련틱해.
오빠──.
최근 얼마간, 굳이 떠올리지 앟으려고 했던 오빠의 모습이 유키나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니야 아니야!'
유키나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떨쳐냈다.
'목련 사람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잖아. 게다가 금발에 알로하 복장이라니 말도 안 돼'
유키나는 걷는 페이스를 올렸다.
'좋아, 만나면 이야기를 들어보자!'
보폭을 넓히며, 발걸음이 빨라진다.
유키나는 멋쩍은 마음을 감추려는 듯이 점점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두고 가버렸네"
루리는 강아지에게 중얼거리듯 말을 걸었다.
유키나는 루리와 강아지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다.
말을 걸 틈도 없이 그녀의 모습이 작아져버렸다.
"우리들, 미움받은 걸까"
뒤에 남겨진 한 사람과 한 마리는 터벅터벅 물가를 향해 걸어갔다.
"네가 미움받을 일은 없으려나"
처음에 벌벌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강아지는 이제 루리를 완전 잘 따른다.
꼬리를 흔들며 이따금씩 돌아보는 눈동자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루리는 파도에 밀려온 나무기둥에 걸터앉았다.
'미움받는 건, 나……'
동쪽 하늘이 밝다.
구름 끝이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으며 빛난다.
"시노노메"
목소리를 내서 말해본다.
'동녘 동에 구름 운을 써서 '시노노메(東雲)'라고 읽어. 새벽녘이라는 뜻이지'
전에 유리카가 가르쳐준 말.
시노노메──.
어스름한 하늘에 맑고 붉은 빛이 차오른다.
갯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턱을 괴고, 루리는 바다를 바라본다.
"나는 슬퍼"
목소리를 내서 말해본다.
"나는 슬퍼"
다시 한 번 중얼거린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하지만 분명하게 아침이 밝아온다.
강아지는 물가에서 뛰놀고 있다.
어디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루리의 시선은 그저 눈앞을 바라볼 뿐이었다.
"꽤나 이른 시간인데"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조금 놀란 루리가 돌아본다.
옆에는 금발의 남자가 있었다.
***
사부로타는 평소대로 해안가를 향했다.
아침과 오후의 운동은 그의 일과였지만, 오늘은 어떤 예감이 들어서 왔다.
대낮의 푸르른 하늘을 마음에 들어하긴 했지만, 아침의 맑은 어둠 역시 그가 좋아하는 풍경이었다. 서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몰아내려는 것도 아닌 낮과 밤이 공존하는 시간대. 태양빛은 밤의 총명함을 돋보이게 만들고, 밤의 어둠은 태양빛의 따스함을 돋보이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공간이 동쪽 하늘에 떠오른다.
'상쾌함이란 이를 말하는 거지'
사부로타는 최근들어 생각했다.
사람의 습관도 아마 비슷한 것이리라.
사람은 빛이 될 수 없다.
어둠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될 수 없다.
어정쩡한 존재인 '사람'이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란 이 동트는 새벽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단순한 선악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의 길이리라고.
'그럼, 사람의 길이란 뭔데'
지구와의 전쟁 이후, 사부로타에게는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악인가, 라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생겼다. 적어도,
"저 녀석은 나쁜 녀석이다"
라는 마음과,
"나쁜 녀석이니까 죽여버리고 싶다"
라는 마음은 전혀 다른 것이고,
"나쁜 녀석이니까 죽인다"
라는 말은 단순한 억지에 지나지 않다, 라는 것이 그의 실감이었다.
'힘'을 휘두르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놈들끼리 '정의'와 '악'을 모방하며 날뛰는 녀석이 세상의 대부분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자신이 우인부대에서 지내온 나날이 굉장히 부끄럽게 여겨진다. 그렇기에 쿠데타가 끝난 뒤 사부로타는 일부러 '얼간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마음 역시 억지일까?'
사부로타는 결의했다.
그가 품은 예감은, 적중했다.
해변에는, 그 소녀가 있었다.
나무기둥에 앉은 뒷모습은 덧없이 보였고, 흡사 버려진 인형같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푸른 머리칼은, 그 작위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저건, 위험해……'
사부로타에게는, 지금 당장에라도 소녀가 바람에 섞여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다.
'호위 대상자와 쓸데없는 접촉은 삼가도록'
분명 그런 말을 고트 홀리가 하긴 했다. 하지만──.
'이건 쓸데없지 않아. 과정이야'
결국 사람이란 억지로 행동한다, 라고 사부로타는 홀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푸른 머리칼 소녀의 곁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꽤나 이른 시간인데"
소녀는 놀라며 돌아봤다.
***
"그냥 산책중이예요"
루리는 쌀쌀맞게 대답했다.
눈을 돌리고,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쌀쌀맞으면서도, 묘하게 옹고집이다.
"방해됐으려나?"
"딱히……"
사부로타를 보더니 강아지가 달려온다. 안아올리자마자 강아지가 사부로타의 얼굴을 마구 핥아댄다. 윤기나는 검은 털에서 샴푸 향기가 난다. 어제의 그 물에 빠진 생쥐같은 꼴은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하하, 꽤나 깨끗하게 되었구나. 그래, 이름은 생겼니?"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사부로타는 루리 옆에 살짝 떨어져서 앉았다.
"……아직이요"
"흐─응, 길러주지 않는대냐, 너?"
"……기를 거예요"
루리는 여전히 바다를 보는 채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강아지는 사부로타의 팔에 안겨 쓰다듬어지는 것이 기분 좋다는 듯 배를 깔고 앉았다.
"그럼 이름을 지어줘야지"
사부로타는 루리를 향해 앉으며 말했다.
동쪽 하늘은 밝은 빛으로 가득차, 어두웠던 해변가도 빛이 내리쬐기 시작한다.
루리는 곁눈질로 사부로타를 힐끗 봤다.
태평한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꾸며낸 것도 아닌, 궁상맞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미소.
'이 사람은 어째서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루리는 열심히 심각한 표정을 지으려 했다.
끌려다니다보면 무심코 미소짓고 말 것 같아서──.
그만큼, 사부로타는 멋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름은…… 보류중이예요"
루리는 고개를 숙이고, 눈앞의 모래사장을 지긋이 바라봤다.
어째서 이 사람을 이토록 피하려는 것인지, 루리는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다.
"아────, 치사해치사해치사해─────!!"
강아지가 고개를 빼꼼 들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루리! 너 혼자만 치사해치사해치사해───!!"
얼빠진 소리와 함께, 지가사키 방향에서 엄청난 기세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하얀 티에 하얀 운동화, 세미롱 흑발의 소녀──.
시라토리 유키나, 15세. 사부로타 정도는 아니지만, 쓸데없는 움직임이 없는 폼은 그야말로 일본 전국 단거리 역대 상위급의 주법이었다.
***
"쓸데없는 접촉은 피하라고 말했을 텐데……"
얼굴을 찌푸리며 고트 홀리가 캔커피를 마신다.
"뭐, 좁은 마을이니까, 계속 피하는 것도 작위적이지"
사부로타는 조수석 깊이 앉아, 역시 캔우롱차를 마시고 있다.
정오를 살짝 지난 시간, 고트가 운전하는 차는 하코네 산중을 향하는 중이다.
전기자동차가 대부분인 22세기라고는 하지만, 일본의 도로망은 20세기를 답습하고 있다. 토목 기술이나 교통 시스템 등, 진보 개량은 잔뜩 이루어졌지만, 경관 유지(라는 명목 하의 현상 유지)를 제일로 삼은 덕분에, 여전히 하코네 하치리로 가는 드라이버는 국도를 통해 꾸불꾸불 구부러진 고갯길을 오르락내리락 해야한다.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인데"
고트의 물음은 담담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집요하다.
'이럴 거면 힐문당하는 편이 더 낫겠다……'
교통 정체가 계속된 탓에 목적지는 커녕 하코네 입구도 아직 멀었다.
'대체 몇 분, 아니 몇 시간이나 타있어야 하지?'
사부로타는 오이소부터 쭉 이 상태로 대답을 강요받으며 몹시 진이 빠진 상태였다.
먼저 도착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부로타의 행동을 하나하나 질문하고, 이어서 오이소의 현상과 호시노 루리 주변의 상황 보고. 그리고 지난날 아침에 있었던 일을 다시금 질문하는 것을 보니 정말 공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정기 연락이라도 할까요, 라고 빈정대며 말했는데 통하지는 않고, 역으로 도청의 위험성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당했다.
"하루카 미나토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할 정도로 들락날락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고트는 험악한 표정을 더욱 험악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그 얘기로 시작하라고……'
이렇게 생각하긴 해도, 사부로타 역시 고집을 부리며 실실 웃는 태도를 유지한다.
"아, 알고 있었어?"
"후루카와한테 들었다"
"하하하"
사부로타는 공허하게 웃었다.
후루카와라는 사람은 고서점 주인으로, 사부로타가 하숙하는 집의 이름이기도 했다.
"국도를 자전거로 역주행하거나, 산에서 '게키강가' 노래를 부르는 건 딱히 신경쓰지 않아"
"아, 그것까지……"
"후루카와한테 들었다"
"예, 예"
'그 아저씨 얕보지 못하겠네, 역시'
아무래도 그 고서점 주인은 사부로타의 행동까지 하나하나 고트에게 보고하는 모양이다.
'그렇담 전부 알고있다는 말이잖아. 물어볼 것도 없이 나를 꾸짖기만 하면 끝날 것을……'
형식적이네 샐러리맨같네, 라고 사부로타는 질려하면서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차가 막히던 구간을 빠져나와, 하코네로 들어간다.
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흘러나오는 녹색 광선이 눈을 치유한다.
도로는 언덕길이 되고, 인가도 드물어진다. 풀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숲으로 풍경이 변한다.
가벼운 모터음을 내며 구불구불 구부러진 길을 차가 올라간다.
드디어 찾아온 온화한 시간. 하지만──.
"변명을 들어볼까"
잊을 즈음에, 고트가 다시 입을 연다.
'아아아. 또 이 패턴이냐'
사부로타는 화를 내는 것보다 오히려 그 나쁜 타이밍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이 타이밍이란 계산적이 아니라, 그저 서투르기 때문이었다. 굳건한 목련의 군인인 사부로타라도 이 공격은 당해내질 못했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닌 듯 하지만, 사교성은 별로인 모양이군'
'아아, 내가 잘못했어. 잘못한 건 없지만 잘못했어'
어떻게 좀 해줘, 라고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변명이고 자시고. 갑자기 폭탄녀가 막─ 뛰어와서 '치사해치사해'라면서 끌고갔을 뿐이라구요. 그, 미나토 씨의 집으로"
"폭탄?"
"또 한 명의 아이. 시라토리 유키나쨩"
***
사부로타의 말대로, 억지로 사부로타를 집에 초대한 사람은 유키나였다.
강아지 산책 첫날, 흥이 오른 유키나는 혼자 히라츠카를 넘어 옆동네인 지가사키까지 가버렸다. 루리와 강아지를 떠올린 것은, 그대로 그 옆동네인 츠지도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당황해서 되돌아온 유키나의 눈에 비친 모습은 사이좋게 대화하는(사실은 아니지만) 루리와 사부로타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 곁으로 달려온 뒤 흥이 오른 유키나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외쳤다.
"어제의 감사. 밥, 먹어. 같이!!"
이리하여 사부로타는 호시노 루리와 접촉한 그날 아침, 하루카네 식탁까지 끌려간 것이었다.
"믿을 수 없군"
고트의 표정은 더욱 험악하게 변해갔다.
"뭐, 목련의 아이는 외곬인 아이가 많으니까. 조금 골치아프지만 순수한 거지"
"시라토리 유키나가 네게 반했다, 라는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남은 우롱차를 홀짝 마시고 사부로타는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 목련인이 그리운 거겠지. 아니, '목련틱한'인가, 이 경우에는"
"정체를 밝혔나?"
"말 안 했어, 말은…… 하지만 어렴풋이 알지 않을까? 자기랑 같은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고. 게다가 그 아이도 참지 못했던 거겠지. 계속 얼굴을 마주하기가, 무뚝뚝한 여자애라면"
"무뚝뚝한 여자애?"
"경호 대상자 말이야, 호시노 루리쨩. 온종일 어두운 얼굴만 하고 있으니, 주변에서도 참지 못하지 않았을까? 뭐, 미나토 씨라는 선생님이 괜찮은 인간이니 내버려두는 것 같지만"
"흠. 미나토라……"
"?"
갑자기 한 순간, 험악했던 고트의 표정이 잠깐 온화해졌다고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차는 국도를 벗어나, 머리 위까지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사설 도로로 들어갔다.
그 앞에는 커다란 저택이 있었다.
거대한 대문은 지극히 사극에서 나오는 정승댁이나 수련장같은 으리으리함을 자랑한다.
'미스마루'──명패에는 명필의 필체로 그렇게 적혀있었다.
지구 연합 우주군 총사령관 미스마루 코이치로 장군──그 사람의 저택이었다.
***
사부로타와 고트는 방에서 미스마루 코이치로를 상대하고 있었다.
활짝 열어둔 툇마루 건너편에서, 시시오도시가 콩 소리를 내며 울었다.
단정하게 손질된 정원의 나무는 이파리를 바람에 나부끼며 시원한 소리를 연주한다.
예의바르게 정좌한 사부로타는 양손을 무릎에 대고 가볍게 인사했다.
"타카스기 사부로타, 목련인입니다"
약간 찌르는 듯한 말투의 사부로타.
"미스마루 코이치로다"
잘 울리는 낮은 목소리는 미스마루 코이치로였다.
'이 사람은…… 크군'
어렸을 무렵부터 첫인상은 올바르게, 라고 사부로타는 배워왔다. 전장터에서 한 순간의 판단 미스는 그 즉시 사망을 의미한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지만, 이는 자기자신을 향한 말이다. 사람을 잘못 평가한 자신을 향한 꾸짖음과도 같은 말이다. 그러니 사람은 자신을 갈고 닦으며, 보다 맑은 눈을 띄도록 정진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라고.
그런 사부로타가 품은 미스마루 코이치로의 첫인상은 '크다'였다.
'지구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군……'
조용히 앉는 미스마루 장군에게는 살기도 투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가 컸다.
무엇보다, 얼굴이 크다.
머리 양쪽으로 뻗어나간, 성깔 있어보이는 머리카락.
두꺼운 두피에 새카만 카이저 수염.
이렇게 말하니 엄청 옛날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외견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이해하고 마는 분위기였다.
'우리 함장도 그렇지만, 리더란 비슷한 분위기를 띄는구나'
주의주장, 입장이나 퍼스널리티는 다양하지만, 대인배같은 모양새는 만국 공통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가……"
미스마루 장군의 옆에 위치한 젊은이가 대답한다.
"아오이 준. 우주군 중령입니다"
자그마한 체구의 미소년. 머리 회전이 빨라보이는 외모. 이른바 엘리트 도련님 풍이긴 하지만, 꼴보기 싫은 느낌은 없다. 올곧게 자란 눈을 반짝이며 정좌해있다.
'뭔가, '착한 사람'같네, 이 사람'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자네가 호시노 루리의 보디가드, 인 모양이군"
"네"
"그녀는 어떤가, 건강하게 지내고 있나?"
"뭐 일단은…… 그제 아침식사를 함께 했으니까요"
"아침식사?"
"죄송합니다, 각하"
고트가 끼어든다.
"타카스기 중위는 지난날 호시노 루리와 접촉한 모양입니다"
"뭐라고?!"
아오이 중령이 얼빠진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상황 관찰 이외에 경호 대상자와의 접촉은 되도록 피하라는 명령이──"
"밥을 얻어먹었을 뿐이라구요"
짜증난다는 듯이 사부로타가 말했다.
"중위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 우연,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희 의도를 알지 못한 채 끝났다고는 합니다만……"
"중위는 관 두라구, 고트 씨"
차 안에서의 대화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부로타는 고트의 말투를 참아내는 데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난 군에서 나왔다고, 지금은 그냥 느긋하고 유쾌한 서퍼란 말이야"
"아키야마 대령을 통해 네가 움직이는 거다. 표면상으로는 퇴역 군인이지만, 넌 어엿한 특무 군인이다"
"댁도 민간인이지? 군인한테 알랑대는 말투는 그만두라고"
사부로타의 도발하는 말에도 고트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다.
"호시노 루리의 경호는 민간 위탁이라곤 하나 군의 임무다. 너와의 계약 사항도 당연히 군사 기밀이지만 임무를 우선한다. 계약서에도 기재되어있는 사항이다"
"그럼 뭐야? 오늘 여기에 날 데려온 이유는 총사령관님한테 혼내달라는 의도냐? 말 안 듣는 불량 보디가드때문에 곤란합니다 라고──"
"……네가 그러길 바란다면, 그렇게 하지"
고트는 평소의 고트였다.
"이 임무의 중요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네 자각을 일깨우는 것이 이번 동행의 최대 목적이다. 따라서──"
'융통성 없는 거한같으니'
쓸쓸한 눈동자, 바람에 날려 사라는 것같은 뒷모습, 가느다란 목소리…….
루리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사부로타의 얼빠진 헤실거림이, 쿠데타 이래의 '냉혈'로 바뀌었다.
"아──, 진짜 못해먹겠네, 못해먹겠다고 썅!!"
사부로타의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튀어나온다.
'이거 참, 사극의 한 장면같네'
내심 쓴웃음을 지었지만, 평소 헤실대는 만큼, 한 번 날카롭게 쏘아붙이기 시작하면 어째선지 멈추지 않는다. 기세 좋게 사부로타는 말을 이었다.
"중간 보고라고 하니까 일단 달라붙어봤다구요, 일단. 그러니까 당신, 미스마루 씨가 흑막이다, 라는 말이지"
"너, 각하에게 실례──"
일어서려는 아오이 중령을 미스마루가 손으로 막는다.
"확실히. 내가 이번 계획의 발안자네"
미스마루 장군은 사부로타를 똑바로 바라본다. 사부로타도 지지않고 응한다.
"나는 접촉…… 아니, 분명 말을 걸었어요, 그 아이한테. 하지만 얼빠진 녀석의 경호따위는 사양이라구요, 이 몸은. 그딴 얼빠진…… 인형같은 꼬맹이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라니…… 이건 경호가 아니라 관찰이라는 거죠, 관찰. 그러는 사이 내가 받는 명령은 그 아이의 유괴입니까? 관찰하다 적당한 시기를 봐서 보호…… 보호라는 명목이겠죠, 일단은. 나나 우리 함장을 이용해서 그 아이를 폐물이용하려는 속셈이지, 당신들은!"
"너──"
"그렇네. 우주군에서는, 어떤 프로젝트에 그녀가 참가하기를 원하고 있지"
"!!"
"각하, 그건──"
이번엔 고트가 끼어든다.
"고트 군, 자네는 어째서 그를 이곳으로 데려왔나? 그에게 그가 지금 수행하는 임무를 전부 설명하기 위해서겠지?"
"그건 그렇지만, 거기까지는……"
"폐물이용은 하지 않을 걸세. 그 프로젝트에는 완전한 상태의 그녀가 필요하거든. 몸도 마음도──"
"몸도 마음도?"
"컴퓨터 시스템의 이미지 피드백 시스템은 오퍼레이터에게 크나큰 스트레스를 주지. 호시노 루리에게는 완전한 상태로 실험에 참가해주길 바라네"
"당신은 도깨비냐!!"
사부로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러는 당신은 빨간 도깨비다'
아오이 준은 문득, 그런 태클을 걸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지만, 그런 농담으로 분위기를 깨버릴까 두려워 참았다.
"자네가 어찌 생각하든, 군은 물론 호시노 루리에게 있어서도 이 실험은 필요하다네"
"그녀에게 필요한 건 평온이야! 실험도 군도 아니라고!"
사부로타가 일어섰다.
"어딜 가나?"
"때려칠래요! 난 댁들의 개가 되고 싶진 않아"
"타카스기, 계약 위반이다"
"고소든 뭐든 맘대로 해…… 단, 그 아이는 내가 지킨다! 댁들한테서도, 다른 누군가한테서도!"
"지켜서 어쩔 셈이지?"
미스마루 장군은 조용히 사부로타를 바라봤다.
"그딴 거 몰라!!"
사부로타는 단호하게 말했다.
시간이, 멈췄다.
사부로타와 미스마루는 서로의 눈을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는다.
고트는 조용히 사부로타를 바라본다.
아오이 중령은 생각도 못했던 해프닝 탓에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울린다.
파랑새의 지저귐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사부로타도, 미스마루 장군도, 고트도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
시시오도시가 콩, 하고 소리를 낸다.
정적 속에, 응축된 답답한 침묵의 덩어리가 그곳에 있었다.
평소라면 거북해서 나가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공간──.
아오이 준은 속으로 기도했다.
'누가, 어떻게 좀 해줘……'
기도가, 닿았다.
침묵을 깬 것은 웃음소리였다.
"그, 그 목소리는……"
"사심이 없는 정의, 그야말로 이걸 말하는 거지. 다시 일어섰구나, 타카스기 사부로타"
'살았다──'
저린 발도 그렇고, 지금이 기회라 여겨 일어선 아오이는 장지문을 훽 열었다.
"!!"
사부로타는 깜짝 놀라 숨을 집어삼켰다.
옆방은 불상을 모셔놓은 방이었다.
열린 장지문 너머에는, 붙박이로 설치된 거대한 불단이 보였다.
흰 국화가 잔뜩 장식된 그 앞에는, 한 사내가 정좌를 하고 있었다.
사부로타 일행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지라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부로타는 알아챘다.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
검고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
호리호리한 몸이지만, 넓은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얀 군복을 입고 있었다.
하얀 군복, 우인의 증거──.
"츠키오미 겐이치로…… 중령님"
사부로타의 말을 들은 사내는 천천히 몸을 틀었다.
긴 머리칼이 찰랑거리며 흘러내린다.
갸름한 얼굴의, 날카롭게 째진 눈을 한 사내였다.
"오랜만이구나, 타카스기 중위"
"아, 네……"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버린 사부로타였다.
"아차, 중위는 그만뒀다고 했지. 뭐, 앉아봐,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니"
"어, 네에……"
기세 좋게 서있었던 사부로타였지만, 츠키오미의 등장에 그럴 경우가 아니게 되버렸다.
왜냐하면, 눈 앞에 있는 그, 츠키오미 겐이치로는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지난 대전을 종국으로 이끈 큰 원인은, 목성 연합의 군부 평화파에 의한 쿠데타였다.
지도자는,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아키야마 겐파치로.
그리고, 츠키오미 겐이치로.
정치적인 지도는 겐파치로가, 실제 적투 지휘는 츠키오미가 각각 맡았다. 두 사람은 모두 시라토리 츠쿠모의 친구였다. 화성에서 '나데시코'와의 전투는, 사부로타까지 쿠데타의 결의를 다지게 만들었다. 그 시라토리 츠쿠모 모살의 진실이 백일하에 밝혀지면서 여론이 그들을 지지한 것도 사실이다. 츠키오미가 이끄는 실행부대는, 쿠사카베 중장이 있는 사령부를 급습. 작전은 성공했지만, 이때 도망친 쿠사카베 중장과 이를 쫓던 츠키오미가 행방불명이 되고, 훗날 목련 신정부는 두 사람의 사망을 발표했다.
그 츠키오미 겐이치로가, 지구에 있다──.
사부로타는 선향을 올리면서도 뒤에 있는 츠키오미가 신경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봐, 제대로 마음을 담아야지. 불상님께 실례잖아"
츠키오미가 조용히 혼낸다.
눈앞의 불단에는 두 개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텐카와 아키토──.
미스마루 유리카──.
둘은 호시노 루리를 거두어 여동생으로서, 딸로서 키울 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죽었다. 신혼여행을 가던 그날, 여행을 떠나던 셔틀의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난 셔틀을 직접 목격한 루리는, 그 쇼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사부로타는 선향을 바치고 손바닥을 모아 합장했다.
"고맙네"
열린 장지문 뒤에서 미스마루가 말했다.
"부부가 된 시간은 짧았지만, 텐카와 군도 유리카도 다 내 귀여운 자식들이었어……"
'그랬지──'
텐카와 아키토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었다. 조문할 위패도 없었기에, 미스마루 장군이 자기 가문의 묘에 함께 묻어 애도햇다는 이야기는 전에 고트로부터 들었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루리 군도 이 저택에서 살았었지. ……아키야마 군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있네. 자네같은 젊은이를 그 아이 곁에 둘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돌아선 사부로타는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
"방금전의 무례는, 모쪼록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그것과 루리의 이야기는 별개다, 라고 사부로타는 생각했다.
"어째서 호시노 루리를 군인으로 만들려는 겁니까?"
"자네가 화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미스마루는 고인의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상냥한 아버지의 표정이었다.
"혹시나, 유리카가 죽는다면, 내 손이 닿는 곳에 두고 싶었다…… 그런 제멋대로인 마음을지도 모르지. 나는 너무나도 귀여워했던 딸을 군에 넣은 사람이니까"
"그 아이는 각하의 따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 말대로야. 하지만, 실제로 그 아이가 필요하네"
"군이, 말입니까?"
"'나데시코'가, 필요하네"
"나데시코?"
고트도 아오이도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본다.
"밖으로, 나갈까"
갑자기 츠키오미가 말했다.
이동중에는 모두 침묵했다.
사부로타는 정면을 바라본 채 조수석에 앉아있다.
츠키오미도 뒷좌석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고트는 말없이 핸들을 쥔다.
그리고 아오이 준도…… 그는 미스마루 장군을 보좌하기 위해, 라는 명목으로 따라오긴 했지만, 계속되는 거북한 공간에 어쩔줄 모르는 것 같았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이 근처가 좋겠군"
아무래도 츠키오미는 이 근처 지리를 잘 아는 듯해서, 차를 멈추더니 홀로 내려 호다닥 걸어갔다. 사부로타도 그를 따라 나선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불안해하는 아오이가 고트에게 묻는다. 둘은 아직 차 안에 타있었다.
"타카스기가 루리를…… 호시노 루리를 정말 지킬 수 있을까, 그걸 확인하는 거다"
"네? ……하지만, 아까 스스로 지킨다고 했잖아요"
"텐카와의 셔틀 사고는, 사고가 아니었다"
"네?"
"둘의 유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라고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네?"
"어설프게 위장하려하니 들키는 거다. 성형을 거친 다른 사람이야. 멍청하게 깜빡한 건지, DNA 검사를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 무, 무슨 말인가요 고트 씨?"
"텐카와와 미스마루 유리카를 노린 녀석들이, 이번엔 루리를 노리고 있다……"
갑작스런 고트의 말에 혼란만 가중되는 아오이 준이었다.
'죽은 유리카 씨가 가짜? 셔틀 사고는 사고가 아니라고?'
"나도 츠키오미도 둘의 발자취를 쫓고 있다. 타카스기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나도 알고 싶다"
고트는 차에서 내려 걷기 싲가했다. 아오이도 당황하며 그 뒤를 따랐다.
7월도 중순이 되고, 날씨도 현저히 여름다워졌다. 하지만 하코네는 산속에 있었기에 시원하다. 그 대신 태양빛이 내리쬐듯 따갑고, 맞으면 뜨거웠다. 바람이 불면 시원하고, 멈추면 다시 더위가 느껴진다──그런 오후의 날씨였다.
"사람을 지키려거든, 자기 몸을 던져선 안 돼"
츠키오미가 조용하게 말했다.
사부로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주봤다.
두 사람은 수풀이 울창한 초원에 서있었다.
"본인이 죽으면 지켜야 할 사람도 죽어. 몸을 버려서 개죽음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돼. 몸을 버린다는 말은──"
츠키오미는 양손과 팔에 힘을 빼고 축 늘어뜨리더니,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중령님?!'
사부로타가 당황하며 간격을 벌리듯 뒤로 물러선다.
"멈추세요, 츠키오미 중령님! 뭘……"
츠키오미가 사부로타의 시야에서 휙 사라졌다.
'!!'
순식간에 사부로타의 앞으로 도약했다. 미끄러지듯 내뻗는 날카로운 츠키오미의 발차기가 대기를 가른다. 도약은 방어도 공격도 제대로 못하게 만들었다. 사부로타는 빠르고 멀리 떨어짐으로써 츠키오미와의 간격을 벌리고, 그대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츠키오미가 즉각 그 뒤를 쫓는다.
"핫!"
갑자기 웅크리더니, 사부로타가 왼쪽으로 도약했다. 도약함과 동시에 몸을 펼친다. 그 뒤에서 달리던 츠키오미의 왼쪽 옆구리가 보인다. 사부로타는 뛰며 뒤를 쫓듯이, 상단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츠키오미의 후두부에 사부로타의 오른발이 빨려들어간다──.
'?!'
오른발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츠키오미는 전방으로 도약하더니 사부로타로부터 간격을 벌렸다.
"네가 호시노 루리를 정말 지키고 싶다면 죽어선 안 돼"
츠키오미는 사부로타와 마주보더니, 다시 양팔을 늘어트린다.
사부로타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츠키오미가 어째서 여기 있는가?
츠키오미가 어째서 자신과 싸우는가?
그 밖에 이런저런 생각을 단숨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딴생각을 하다가는, 당한다──'
방금 전의 낮은 자세에서 나온 발차기는 진심이었다.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나와 싸울 생각이야'
사부로타는 눈앞의 말총머리 사내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는 츠키오미는 양손을 가볍게 올리더니 얼굴 앞에서 겨누었다.
'?!'
그건 사부로타가 잘 아는 목련류의 준비 동작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너에게 가르쳐줄게. 네가 소녀를 지키기 위한 기술을"
바람은 기세를 더해가며, 잎사귀가 나부끼는 소리를 바닷가의 파도소리처럼 울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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