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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기동전함 나데시코 노벨 ~만남~ 서장

 푸른 달이었다.

 바닷바람이 기분 좋다. 파도 소리가 아름답게 밀려오고는 물러나고, 밀려오고는 물러난다.

 해변에는 남자가 두 명 서있었다.

 금발의 알로하 셔츠를 입은 남자──.

 그리고 마치 밤낚시를 하러 온 듯한 차림새의 남자.

 묘한 조합이다. 그들 외에 인기척은 전혀 없다.

 "좋은 밤이군.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이야"

 금발의 남자가 말했다. 나이는 20대 중반, 용모는 단정하고, 그러면서도 굳게 다문 입가에서 강한 의지가 느끼진다. 키는 190cm정도일까. 키만 큰 쭉정이같지만 약간의 근육이 있다는 사실은, 풀어헤친 가슴팍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만 두라구"

 남자는 두 팔을 늘어트리며 어깨끝에서 발끝까지 힘을 쭉 뺀다. 그리고 주저없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

 "둔갑 준비인가……"

 밤낚시 차림새의 남자가 말한다.

 "과연, 꽤 갉아먹었군"

 입꼬리를 올리며, 낚싯대를 펜싱처럼 쥔다. 이 사람은 30대 정도로 보이며, 키는 170cm 후반.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굵은 목. 굉장히 무도 방면으로 단련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봤자 어차피 표(表:겉)의 기술이지. 내 검에는 이기지 못해"

 낚싯대가 갈라지고, 그 안에서 이상하게 가늘고 긴 검이 나타났다. 도신은 2m 정도 되보인다. 번쩍 빛을 내뿜는 그 칼끝은, 남자가 휘두를 때마다 날카롭게 공기를 베어낸다. 그 역시 가벼운 발동작으로 모래사장을 휘저으며 걸음을 뗀다.

 "조작해뒀나…… 좋은 낚싯대였는데 아깝게스리"

 "너를 쓰러트린 뒤에 다시 장만하지"

 "수다스러운 자객이군"

 둘은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좁히고는 다시 벌린다. 서로가 서로를 꾀어내는 모습이 검호소설에서라면 긴박한 장면이었겠지만, 옆에서 보자면 술에 취한 사람들이 휘청휘청거리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광경일 뿐이었다. 실제로 금발의 남자는 입가에 미소까지 걸치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는 손가락 하나 못 댄다"

 "실실거리면서 의외로 열정적인걸"

 "6할의 의협심과 4할의 열정, 이라서 말이지"

 "반했나?"

 "그 아이는 착한 아이야"

 "흐응"

 두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그만두려면 지금 뿐이야"

 "가소롭군"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철썩, 울려퍼진다.

 남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파도소리가 다시 한 번 울린다.

 남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이 두 사람의 사이를 스쳐지나간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파도가 여섯 번을 넘어, 일곱 번 치려던 그 순간──.



 바람이 멈췄다.



 "우오옷"



 흐릿한 기합소리와 함께, 밤낚시 차림새 남자가 왼발을 빠르게 내딛었다. 살짝 백스윙한 뒤에 날카로운 퀵 모션. 힘을 실은 채찍마냥 크게 휘어진 장검이 금발의 남자를 비스듬히 습격한다. 특수합금이 함유된 칼끝은 정확하게 남자의 경동맥을 향해 들어갔다……그랬을 터였다.

 "우옷?!"

 금발의 남자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갑자기 터미니없는 충격이 복부에 전해진다.

 "크헉"

 검을 휘두르기가 무섭게, 밤낚시 남자는 뒷쪽으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파도는 여전히 온화하게 밀려온다.

 모래사장에 내동댕이쳐지고 한 순간 의식이 날아간 뒤에,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일그러진 밤하늘이었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남자는 자신이 대자로 뻗어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곧바로 일어나려 했지만 허리 아래가 말을 듣지 않는다. 평형감각을 잃은 몸이 지면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무거운 불쾌감이 남자를 덮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를 악물며 간신히 고개를 살짝 드는 일 뿐이었다.

 "호오, 과연 강하군"

 어딘가에서 금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놈, 무슨 짓을 했지……"

 격통과 함께 피냄새가 올라온다. 토혈, 그리고 경련. 마디마디 끊길 것같은 의식을, 밤낚시 남자는 어떻게든 붙잡으며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설마, 발을 내딘 순간 저기까지 도약했단 말인가……'

 금발의 남자는, 아까까지 밤낚시 남자가 있던 곳에 홀연히 서있었다.

 "단순한 급소 공격이야. 표의 기술이라도 완전 허투는 아니지?"

 남자가 천천히 다가온다.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 태도에서 빈틈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내 참격보다 빠르고…… 강하게……"

 밤낚시 남자가 다시금 피를 토했다. 피냄새가 바닷바람과 뒤섞인다.

 "진검승부였으니. ……적당히 봐주지 못했다. 미안하군"

 그렇게 말하고 슬쩍 바라본 금발의 남자는,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너희들이 입을 열 리 없지. 그러니 단칼에 끝장을 본 거야. 게다가 그 검, 맞으면 아플 것 같고"

 입에서 피를 꿀렁꿀렁 뿜으며 남자가 외쳤다.

 "뭐냐……"

 금발의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체 뭐냐…… 네놈……"

 피로 얼룩진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이미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저, 입모양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금발의 남자가 서서히 입을 연다.

 "타카스기…… 사부로타"

 "너…… 그렇다면……"

 눈을 부릅뜨며 밤낚시 남자는 숨을 거두었다.

***

 "늦잖아요"

 해변에서 방사림으로 빠져나가는 곳에 한 소녀가 서있었다.

 금빛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머리카락이 푸른색이었다.

 마치 설산이 달빛을 머금은 듯한 아름다움과, 가련함이 있었다.

 "마중나와준 거야?"

 금발의 남자가 다가가기 전에 소녀가 먼저 달려왔다.

 "당신이 해변가로 걸어갔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소녀는 남자의 얼굴을 살짝 망설이며 바라본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맑은 눈동자에는 어떤 의심도 없다.

 "아무 일도 아니야"

 남자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달이 무척 푸르러서 말이야. 잠깐 산책하고 오는 길이야"

 "뭐예요, 그게?"

 소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좋은 미소다,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유키나 씨, 화냈다구요"

 "하하, 그런가. 불꽃놀이 사오는 걸 깜빡했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간다.

 '이 아이를 지켜내야만 해. 반드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녀가 묻는다.

 "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나요?"

 "생각 좀 하느라. 유키나쨩에게 할 변명을 말야"

 "그거라면 말보다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사가는 편이……"

 "그렇군"

 금발의 남자는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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