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지, 이게 진짜 꿈인지 아닌지, 아무래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잠들어 있던 것 치고는 의식이 뚜렷하게 각성해 있었지만, 일어나 있던 것 치고는 꽤나 몽롱하다.
이 무슨 애매한 상태일까.
평소의 나라면 그런 애매한 상태를 방치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나는 '평소의 나'와 꽤나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니까, 이건 꿈이겠지.
그렇지만, 무슨 꿈일까.
잠을 잘 때 꾸는, 단순한 환각일까? 미래로 이어지는 바람일까?
그런 생각까지 하고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웃기 위해 필요한 볼의 근육이나 입술이 아직 존재하는지도 자신 없는데, 웃고 있다는 의식만은 느껴진다는 게 신기하다.
웃고 있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닌, 스스로가 스스로를 비웃으려고 웃는다.
미래따위, 어디에도 없는데.
이제와서 꿈을 꾼다 한들, 어찌 되지도 않는데.
어찌 되지도 않는다.
애초에, 나는 평소 미래를 향한 전망따윈 갖고 있지 않았다.
장래의 꿈따위, 생각한 적도 없다.
나와 주변에 있는 생물체들이, 아무런 일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항상 그렇게 바라왔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건 꿈이라고 부를 만한 게 아니리라.
그리고, 잠 속에서 꾸는 꿈 중에 제대로 된 꿈은 없었다.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그렇게 바랐을 터인데, 지금 꾸는 꿈에는 행복의 ㅎ도 없다.
꿈이니까 한결같이 상냥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공상이면 좋을 텐데, 나에게는 그 상상력조차 결여된 것이다.
그럴 정도로, 나의 생은 '행복'이라는 두 글자와 동떨어진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나의 생은 행복했다고 가슴을 펴고 말할 만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비참하고 슬픔으로 점철된 불행한 인생은 결코 아니었다.
내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면, 우선 내가 행복했다고 느꼈던 기억을 뒤져보자.
……그렇게 생각했더니, 곧바로 친구와 함께 식사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맨 처음 떠올린 기억이 식사라니 꽤 볼품없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냄비를 둘러싼 기억, 선술집에 갔던 기억, 불고기를 먹었던 기억──곰곰이 그런 회상을 하고 있자니, 가장 선명한 기억이 남아있는 것은 카레라이스의 기억이었다.
딱히 카레라이스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저 마지막 식사가 그것이었을 뿐이다. 애초에 그 카레는 위액과 함께 토해버리고 말았지만.
혀에 되살아나는 쓴 위액 맛이 진저리치면서, 그 카레를 함께 먹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떠올린다. 그 누군가의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언젠가, 카레 만들어줬음 좋겠다
그렇게 말한 그녀에게, '다음에 만들어줄게'라고 대답했다.
'다음에'라니, 그 다음을 맞을 일은 없으리라고 그 시절의 나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을 텐데.
미안해, 라고 사과하는 나에게, 그녀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미래.
그 장면을 떠올려보려다가, 과연 내가 제대로 된 카레라이스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던 때가, 언제였지?
맞아, 그건────
"어이, 단장!"
그 호칭이 나의 별명이라는 사실을, 카타쿠라 유우키는 아주 잠깐이지만 잊고 있었다.
"뭘 멍하니 있어, 단장. 단장의 턴이라구"
책상 맞은편에서 아이카와 토라지가 팔짱을 낀 채 유우키를 노려본다. 잇몸을 드러내며 위협하듯 얼굴을 들이대며 눈알을 까뒤집고 있어서 기분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유우키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토라지가 질 나쁜 불량소년처럼 보인다는 사실과, 성격이 거칠고 난폭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다혈질에, 자주 웃고, 자주 화낸다. 그리고 그 감정이 오래가지 않아서, 그의 표정은 자주 변한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그의 감정표현은 '잇몸을 드러낸다'는 것이므로, 유우키는 토라지의 잇몸 색이나 치열을 외워버리고 말았을 정도다.
"아─…… 어째 시간이 꽤 걸렸네……"
유우키는 마시던 캔커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토라지의 자리로 다가갔다. 그의 책상 위는 언제나 정리정돈과는 인연이 없는 상태다. 지금도 만화나 잡지가 쌓여있는 사이에, 컴퓨터가 갑갑해보이는 상태로 낑겨있다. 키보드는 신문이나 CD, 게임기 밑에 파묻혔고, 마우스패드와 마우스를 둔 곳만 간신히 확보된 상태다.
"그야 이만큼이나 영토를 늘려버리면 해야되는 일이 많아져서 귀찮아지니까. 매번 있는 일이잖아. 이런 게임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아─ 유우 씨, 저 다음 턴에 유우 씨 영토 공격할 테니까 적당히 준비해두세요─"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읽으며 담배를 피고 있던 호무라 카스미가 유우키 쪽은 보지도 않고 말을 걸었다. 재떨이에는 짧아진 담배꽁초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올바른 흡연 방법따위 유우키는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카스미는 잘못된 흡연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꽁초를 남기기는 하니까, 제대로 됐다면 제대로 된 편이지만.
조용히 담배를 피우는 모습만 본다면 어엿한 성인 여성으로 보이는 카스미지만, 사실은 아직 10년도 살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미성년자로 취급해야 하지만, 담배를 피울 뿐 아니라 도박도 한다. 읽고 있는 신문은 스포츠 신문인데, 읽고 있는 곳은 경마쪽이다. 그런 취미생활은 어른이 되야지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녀의 입이 자아내는 언어에서는, 나이대에 걸맞는 유치함이 엿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카스미쨩, 항상 말하지만 그런 건 미리 선언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에─. 하지만 어디를 공격할지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딱히 상관 없잖아요?"
"어디든 됐으니까, 빨랑 하라고 단장. 난 아무거나 적당히 읽고 있을 테니까"
유우키는 캔커피에 입을 대면서 마우스를 잡았다. 셋이 플레이하는 게임은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한 명 당 한 나라를 담당해 내정이나 전쟁을 하면서 영토를 늘리는 게임인데, 종반으로 들어섬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 상태다.
"그 상태라면 앞으로 두세 턴 만에 더 귀찮고 재미없는 상황이 되서, 아마 토라 군이 '이제 때려치고 다른 거 하자'라고 말하리라고 나는 예상되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카스미가 담배를 피우는 곳에서 대각선 자리에 앉아있던 오오타 시네아키였다. 그 역시 처음엔 게임에 참가했지만 초반에 멸망하고 말아서, 그 이후로는 계속 테이블 위에 있는 캐슈넛과 땅콩을 깨작깨작 먹고 있을 뿐이다. 일단은 그가 지금 이 곳에 있는 면면들 중 가장 연장자다. 안경만으로는 도저히 감추지 못할 정도로 날카로운 눈초리의 소유자이지만, 말투는 온화함 그 자체다. 그가 거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아직 유우카는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오타가 아무나 사이 좋게 지내는가 하면 또 그렇지는 않으니, 참으로 난처하다. 실제로 토라지와 오오타의 상성은 꽤 나쁘다. 오오타가 토라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니, 조금은 자중했으면 좋겠다고 유우키는 언제나 생각한다. 나이를 너무 먹으면 유아퇴행한다고 듣긴 했지만, 그게 천 년 이상을 살아온 오오타에게도 해당되는 것일까.
"시끄러워. 그런 말은 앞으로 두세 턴 지나고 하라고"
토라지의 치열을 드러내는 방식이 살짝 바뀌었다. 오오타도 그 사실을 눈치챘을 텐데, 그의 말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때 말하면 의미가 없잖나……. 아니, 그렇지도 않은가? 내가 지금 말하는 거랑 나중에 말하는 거랑, 어떤 차이가 생겨날까? 나는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예상했지. 그리고 토라 군은 그 사실을 앞으로 두세 턴 지나고 말하라고 했고. 어째서 지금 말하면 안 되는 걸까?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고찰해봐도 좋겠지만, 이번엔 좀 더 쉬운 수단을 취해볼까 해. 그렇기에 토라 군에게 묻고 싶군. 어째서 자네는 나에게 앞으로 두세 턴 경과한 뒤에 말하라고 한 거지. 그 이유를 간결하고 짧게라도 좋으니 부디 들려준다면, 나는 굉장히 기쁘겠"
"아파앗─"
오오타가 돌연 입을 다물고, 카스미가 얼빠진 소리를 낸 것은, 토라지가 오오타를 향해 던졌을 터인 '현대용어의 기초지식'을 멋지게 피함으로써, 카스미의 이마에 직격했기 때문이다. 1키로 가까이 되는 무게를 지닌 그것은, 바닥이 아닌 테이블 위에 떨어지더니 재떨이에 쌓여있던 재를 흩뿌렸다.
"피하지 말라고, 새대가리! 불도마뱀한테 맞았잖아! 미안해 불도마뱀. 고통의 원인 중 절반은 새대가리한테 있지만!"
"그거 유감이군. 네가 던지지 않았다면 내가 피할 필요도 없었을 거고 카스미가 맞지도 않았을 텐데. ……하지만, 네가 나에게 던지고 싶어진 원인을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을지도 모르겠군. ……음, 근본부터 따져보면 이 게임의 두세 턴이 지난 미래를 내가 예상한 결과가 이거였으니, 철저하게 따지고 보자면 게임이 나쁘다는 말이 되는 거 아닐까? 아, 토라 군. 책은 던지는 게 아니라 읽는"
"시끄러워, 새대가리!"
다음에 던져진 '대사전'을, 오오타는 피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낚아챈다. 아직도 두 사람의 언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 처음부터 말리기를 포기했던 유우키는 게임을 저장하고 컴퓨터 전원을 껐다.
"유우 씨, 저쪽은 구경하기 불편하니까, 그쪽에 앉아도 돼?"
이마에 꽤 묵직한 물체가 직격했는데도, 당사자인 카스미는 아프다는 표정 하나 짓지 않은 채 담배와 재떨이를 끌어안고 유우키의 옆으로 다가왔다.
"카스미쨩, 괜찮아?"
"응,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보다 오오 씨랑 토리 군이 투닥대는 게 재밌으니까, 유우 씨도 같이 구경하자"
싱글싱글 웃으면서 의자에 앉더니,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는 토라지와 그것을 피하는 오오타를 바라보는 카스미는 정말로 즐거워보였다.
"……재밌다……고 하면, 확실히 재밌다고 말 못할 것도 없지만, 정리하기가 또 귀찮겠는걸……"
"둘한테 정리하라고 시키면 되잖아"
"그건 그렇지만……"
서걱,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서 유우키가 그곳을 바라보니, 토라지의 발이 벽에 박혀 금이 가버렸다.
"봐, 금만 가고 끝난다니까, 토라 군도 제대로 조절하고 있고"
"……수리 업자 부르는 거, 싫은데에……"
유우키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아직 남아있는 캔커피의 내용물을 들이켰다.
"일단 우리들, 이래 뵈도 경찰 조직의 일원인데, 이런 상태로 괜찮을 리가 없지……"
"괜찮지 않아? 경찰이란 폐 빌딩에서 싸우면서 빌딩을 박살내거나, 총을 빵빵 쏴대거나, 경찰차로 차를 습격해 벽에 박아버리는 게 일상이잖아?"
"그건 드라마에서나 그렇고, 요즘 드라마는 그렇게까지 화려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 유우키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비디오테이프를 한쪽 손으로 낚아챈다.
"토라 군, 망가지기 쉬운 물건은 던지지 말아줘"
"오우, 미안해 단장! 튼튼한 것만 던질게!"
그렇게 말하면서 토라지가 들어올린 전화번호부를 보고, 유우키는 무심코
"이렇게 살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니, 엄청 세금루팡인 듯한 기분이 드네……"
라고, 중얼거렸다.
"아니, 유우키, 그 생각에는 나 나름대로 반론할 것이 있으니, 들어줘"
작은 목소리로 말했을 텐데, 귀가 좋은 오오타가 유우키를 바라본다. 그 타이밍에 오오타의 관자놀이에 전화번호부가 직격하더니, 그의 목이 너무나도 적절하지 못한 방향으로 휘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걸치고 있던 안경테가 휘지 않았다는 점이, 기묘하게 생각될 정도다.
"으으음, 아프잖나. 감각이 없다곤 하지만 뭘 말하려 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네. 아니, 잊어버릴 뻔 했을 뿐이고 진짜 잊어버린 건 아니니까, 그것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누가 걱정하냐, 임마!"
유우키는 그런 두 사람의 티키타카를 들으면서 다 마신 빈캔을 버리기 위해 쓰레기통을 쳐다봤다. 소동에 휘말린 쓰레기통은 이미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안에 들어있던 빈캔들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원래대로 돌려놔봤자 금방 다시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유우키는 즐겁다는 듯이 토라지와 오오타를 바라보는 카스미에게 등을 돌리고, 아직 피해가 미치지 않은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 놓인 소형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를 꺼내들고는 컵에 따르지도 않고 그대로 마셨다.
'이래도 되나……'
오른손에 캔맥주를 들고, 유우키는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긁적이다보니 길게 늘어지는 하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손가락에 얽힌다. 대충 손을 털어 바닥에 떨어트린다.
새하얀 모발이 바닥에 도달하기 전에, 유우키의 발밑에 목제 헹거가 미끄러지며 굴러오더니 그녀가 앉은 의자를 직격한다.
'어째……'
이 일상에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진짜로 익숙해져도 좋은가 망설이는 유우키였다.
시부야의 어느 4층 빌딩을 점유한 경시청 형사부 수사6과 분서. 그곳이 그들과 그녀들이 있는 장소의 정식 명칭이다. 나름대로 면적은 있는 주제에, 쓸데없이 물건이 쌓여서 넓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잡다한 방. 그 안에 있는 것은 카타쿠라 유우키를 필두로 뭔가 하는 것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생물체들이다.
그런 그들이 경찰관같은 직함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마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규 경찰관 훈련을 받은 사람은 딱 한 명 밖에 없다는, 굉장히 경찰 조직 치고는 말도 안 되는 환경이다.
말도 안 되는 경찰 조직인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 그것을 단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그들이, 인간이 아니니까.
그 뿐이다.
특이 유전자 보유 생물, 이라는 명칭으로 일본 법률상 기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괴물일 뿐이고 아야카시라는 인간 외 생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대륙에서 헤엄쳐서 온 칠흑의 모피를 지닌 호랑이.
불과 연기를 먹으며 사는, 화염으로 뒤덮힌 빨간 도마뱀.
고대 페르시아의 전승으로 내려오는 영조.
아이카와 토라지, 호무라 카스미, 오오타 시네아키의 원래 모습이다.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의 법에 따라 내각 공인 1급 지정 생물이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되는, 일본 정부로부터 존재를 정식으로 인정받은 아야카시들이다. 그들의 일은 주로 다른 아야카시가 일으킨 사건을 관공서에게 요청받아 재빨리 해결한다, 라는 것으로 되어 있다.
되어 있을 터인데──.
"……자, 다 끝났으면 빨리 정리해. 토라 군, 하는 김에 책상 위도 좀 더 정리해두고. 여러모로 위험하니까. 전부 다 정리할 때까지 밥 안 줄 테니까"
그들이 매일 하는 일을 말해보자면, 그저 이 방에 모여 놀고, 잡담하고, 식사를 하고, 수면을 취한다는, 잉여인간같은 생활이었다. 이 일상에 불만을 지닌 것은, 일단 자기밖에 없는 듯해서, 유우키는 여러모로 생각이 깊어질 뿐이다.
이 생활은, 즐겁다. 허물없는 친구들과 이렇게 빈둥빈둥 지내는 나날은 평온하고 평화롭다. 불만을 토로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놀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현 상황을, 아무래도 유우키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예이예이…… 어째, 아무래도 배가 고프다고 생각했더니,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훨씬 지났잖아. 나 참, 새대가리 탓에 귀찮게 되버렸다니까"
"오늘 점심을 먹지 않았던 것은, 토라 군이 냉장고 내용물을 손에 잡히는 대로 먹어치워버려서 그렇지만……"
"배가 고프니까 어쩔 수 없잖아. 고기와 쌀밖에 안 먹었다고. 그리고 내가 이렇게 배고픈 이유도, 역시 새대가리 탓이잖아"
그렇다고는 해도, 밥 3인분에 5키로나 되는 냉동고기를 먹어치우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유우키의 심경은 신경쓰지도 않은 채, 토라지는 어질러진 빈캔을 주워모으면서 이러쿵저러쿵 중얼거린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오오타가 신문을 정성스럽게 정리하는 중이다.
"뭐든 내 탓으로 돌리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나는 역시 그 게임이 원인이라고 생각해. 그 게임을 하지만 않았다면 나의 그 발언은 없었을 테고, 토라 군이 나에게 '현대용어의 기초지식'을 던질 일도 없었겠지"
"이 새대가리가……"
또 한바탕 하려던 토라지의 말을 막은 것은, 괜시레 큰 소리를 내며 열린 문소리였다. 수사6과 분서라는 직함을 지닌 이 빌딩에, 관계자 외에 들어오는 사람은 그리 없다. 난폭하게 열린 문으로 조용하게 들어온 사람은, 당연히 수사6과에 소속된 인물이었다.
"아, 야마 씨다"
카스미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도, 야마키 이와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2미터를 훨씬 넘는 키에, 몸의 온갖 부분이 굵직한 그가 들어온 탓에, 순식간에 방이 좁아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온몸을 말도 안 될 정도의 강모로 뒤덮은 야마키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이상하다. 그런 그가 흔한 슈퍼마켓 비닐봉투를 네 개나 늘어트리고 있는 모습은, 초현실적인 광경이다.
인간의 모습에서 꽤나 떨어진 야마키의 본래 모습은, 귀신곰이라 불리우는 거대한 곰같다. 산신으로서 살아온 그는, 인간을 내려다보는 언동을 취할 때가 많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음식의 일종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상냥하지만, 타인에게는 어디까지나 무관심하며, 적대자에게는 한없이 잔혹해진다. 그것이 야마키의 성질이었다.
"…………점심은, 아직이었나"
그리고 지금, 그는 가까운 사람들의 식사를 신경쓰고 있었다. 야마키 자신도 식욕이 왕성하지만, 그는 언제나 동료들이 배를 곪고 있는 게 아닌가 신경써준다. 야마키의 상냥함은 별로 요령도 안 좋고 잘 알아채기 힘들지만, 유우키에게는 고마운 이야기였다.
"네, 뭘 만들까 냉장고를 보고 생각할 생각…… 이었는데요, 지금은 뭐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네요"
여기 있는 면면들 중, 요리를 할 줄 아는 건 유우키와 야마키 뿐이다. 다른 세 사람은 요리를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할 마음이 없다, 할 필요가 없다 등의 이유를 댄다. 카스미는 뜨거운 거라면 뭐든지 먹지만, 토라지는 고기만, 오오타는 두부만 먹고 싶어하기에, 유우키로서는 메뉴때문에 자주 고민한다. 고기두부찌개같은 게 가장 무난한 메뉴지만, 매일 고기두부찌개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 야마 대장이 왔으니 마작 치자고, 마작. 그렇게 되었으니 단장 카레 만들어줘, 카레. 불도마뱀, 네 책상 위에 마작패 있지, 내와봐"
아직 정리도 끝나지 않았는데 작탁을 준비하려는 토라지를, 유우키가 제지한다.
"카레 만드는 건 좋은데 장 봐오지 않으면 재료가 모자라보이고, 전부 정리하기 전까지 밥 없다고 말했잖아…… 카스미쨩도, 마작 준비 하지 말고 재떨이 청소해"
"네─"
꽁초를 쓰레기봉투에 쓸어넣으면서도 마작패가 들어있는 상자를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는 카스미를 보고, 유우키는 앞으로 시작될 마작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유우키 외의 네 명은 마작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유우키는 하는 방법조차 잘 모르고 배울 생각도 없으니, 그들이 마작을 하는 동안에는 할 일이 없다…… 그럴 터였는데, 어째서인지 카레를 열심히 만들어야만 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토라지가 항상 말하는 '마작을 칠 때에는 반드시 카레를 먹어야만 한다'라는, 기묘한 공식 탓이다.
여기 있는 다섯 명 전원, 뭔가 특별한 카레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밥먹을 때 카레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는데, 마작을 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토라지의 이상한 규칙에 어째서인지 다들 따라서, 마작 칠 때만 되면 카레를 먹어야 한다고 정해진 실정이다.
유우키도 전혀 모르지만, 야채가 들어간 음식 중에 토라지가 전혀 싫어하지 않으며 먹을 수 있는 것은 카레라이스 정도 뿐이므로, 카레라는 메뉴에 이론은 없다. 하지만 카레 만들기는 유우키에게 있어서 꽤나 손이 가는 작업이었다.
복잡하게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건더기도 일반적으로 카레에 들어가는 재료밖에 안 넣고, 가루도 시판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상하리 만큼 많은 양을 만들어야만 한다. 6과에는 업무용의 거대한 냄비와, 다섯 바가지나 되는 쌀을 담을 수 있는 밥솥이 존재한다. 자그마한 어린아이까지 여유롭게 삶을 수 있을 만큼 큰 냄비에 카레를 가득 만들기란, 그저 볶고 삶는 것만으로도 중노동이다. 그리고 대량의 카레에 걸맞는 대량의 밥을 준비해야만 한다. 밥은 밥솥이 해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큰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야마키 씨……"
"양파랑 당근이랑 감자는 사왔는데, 아마 부족하겠지. 쌀이랑 고기는 안 사왔어. 얼마나 있는지 보고 와"
들고 온 비닐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하면서, 야마키가 말한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야마키지만, 요리 떡밥이면 말수가 많아진다.
"네"
이제부터 만들 카레의 양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그래도 유우키는 이 일상이 좋았다.
이 기분좋은 나날을, '괜찮을까'라고 의문스럽게 생각하긴 하지만, 손에서 놓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다 부족해. 특히 쌀이랑 고기가"
참고로, 카레 루도 모자란다. 그렇게 덧붙이는 유우키를 향해, 빗자루로 바닥을 쓸던 토라지가 손을 멈추고 실망한 표정으로 신음한다.
"젠장, 야채 부족은 대환영이지만, 중요한 쌀과 고기가 없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단장"
남아있던 녀석을 토라지 군이 먹어치웠잖아…… 라고 지적하는 것도 귀찮으니, 유우키는 하던 말을 잇기로 했다.
"오늘은 면류 비축분이 있으니 그걸 다 먹고나서, 내일 쌀을 사러 갈 예정이었거든. 뭐 쌀은 앞으로 한 끼 분량, 고기는 다진 고기 200그람 정도 있긴 한데, 이걸론 부족하잖아. 다들 먹을 양을 작정하고 줄이면 어떻게든 될 지도 모르겠지만"
"싫어! 애초에 다진 고기가 들어간 카레따위 카레가 아니잖아!"
발을 구르며 성을 내는 토라지에게, 오오타가 벽에 난 구멍을 박스로 메우며 반론한다.
"그 말에는, 난 반론하고 싶군. 지난번 카레는 키마카레였는데, 너는 불평하면서도 다섯 그릇이나 먹었지 않은가. 어째서 그렇게 다진 고기를 싫어하지?"
'그거, 키마카레였구나……'
5키로나 되는 다진 돼지고기와 어중간한 야채가 대량으로 있었으니, 그것들을 전부 집어넣고 카레를 만들었는데, 그게 키마카레였던 모양이다. 그저 단순히 다진 고기가 들어갔을 뿐이지, 키마카레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유우키였다. 카레 루도 살짝 애매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매운맛과 순한맛을 적당히 집어넣고, 도중에 루까지 모자라져서 레토르트 카레까지 집어넣은, 아무튼 적당적당하게 만든 카레였다.
토라지가 척 보고 '야채밖에 안 들었잖아……'라고, 당장에라도 죽을 듯한 목소리를 낸 것만 빼면, 호평이었던 느낌이 든다. 애초에 야마키와 카스미는 유우키가 만드는 카레에 별로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오오타가 '이건 맛있군. 이런 카레를 또 만들어 준다면 나는 기쁘겠네'라고, 과하게 칭찬해준 기억도 난다.
"그런 가느다란 고기, 씹는 맛이 안 난다고"
"그런가. 난 지난번 카레가 굉장히 좋았는데 말이지"
"……완두랑 대두가 들어갔으니 좋았던 거겠지"
청소를 돕지도 않고 바닥에 드러누우며 야마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셔츠 틈새로 배를 벅벅 긁으며 신문을 읽는 그였지만, 일단 청소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방 한 구석에서 엎어져있다. 바다표범이나 바다사자같다, 라고 생각한 유우키였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그래, 대두는 좋았지. 카레와 대두가 그렇게 어울릴 줄은 몰랐어. 오늘 카레에도 대두를 넣어 준다면, 나는 정말 기쁘겠지만, 어떨까. 캐슈넛이나 땅콩이라도, 나는 전혀 상관 없는데 말이지"
"대두는 여유분이 없고, 캐슈넛도 땅콩도 넣을 예정은 없어요"
두부를 넣어달라는 리퀘스트를 받는 것보다는 낫지만, 과연 카레에 땅콩을 넣을 만큼의 도전정신은 없다. 문득 카레 위에 연두부가 통으로 올라가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흰색과 노란색의 색대비에 손사레를 쳤다.
"아무튼! 다진 고기 들어간 카레따위 난 인정 못해. 오늘은 평범한 고기 덩어리가 들어간 카레로 해줘. 아, 다진 고기라도 햄버그라면 좋아한다구. 그건 덩어리니까, 고기를 먹는다는 느낌이 든다구"
"햄버그 카레라니, 귀찮으니까 싫어……. 그런 의미에서 돈까스 카레도 싫지만"
둘 중 하나면 몰라도, 둘 다 만드는 건 역시 사양하고 싶다. 야마키가 도와준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마작을 칠 때의 그는 한 국이 끝나는 사이에 잠깐 부엌에 와줄 뿐 금방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말해봤을 뿐이니까, 신경쓰지 마. 나는 고기 덩어리가 들어가고 야채가 안 들어간 카레라면, 불만 없어"
"고기도 들어가지만, 야채도 들어갈 거야"
"그래서, 그 고기가 없단 말이지. 사러 갈래, 유우 씨?"
재떨이를 깨끗하게 청소한 카스미가 빠르게도 새 담배꽁초로 재떨이를 더럽히며 물어본다. 평소 식사를 할 필요가 없는 카스미에게 있어서 차갑지만 않으면 쌀이든 야채든 고기든 뭐든 상관 없으니, 식사 이야기가 나오면 보통 조용히 담배만 피운다.
사실은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필요도 카스미에게는 없지만, '인간계의 상식은 되도록 지켜줘'라는 유우키의 부탁이나, '우리들은 다 먹는데 너만 안 먹는 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적당히 입 안에 넣어둬. 그래도 고기는 나한테 넘겨'라는 토라지의 요망에 따라, 일단 먹는다는 행위는 하는 중이다.
"고기 뿐이 아니지만. 쌀은 5키로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겠지만, 어차피 살 거면 10키로는 사는 편이 더 싸겠지"
유우키와 카스미는 그렇다 쳐도, 다른 셋이 먹는 양은 보통이 아니다. 마른 체구라 소식가로 보이는 오오타만 해도, 정신차리고 보면 밥솥 한 통 분량의 밥을 먹어치우니 방심할 수 없다. 토라지나 야마키는 그 이상이다. 특히 야마키가 배불러하는 모습을 본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그 야마키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유우키를 향해 걸어와 말없이 종이 몇장을 건넨다. 근처 슈퍼마켓 전단지를 가져와준 모양이다.
"아, 고마워요"
"……가장 싼 고기는 닭가슴살 100그람에 38엔이군. 이쪽 가게에서는 감자랑 양파가 한 팩에 298엔인데, 얼마나 들었는지가 문제겠어"
"나는 소나 돼지가 좋은데. 닭은 새 맛이 나잖아. 쪼잔하게 굴지 말고, 좀 더 고기다운 고기로 하자고"
"닭이 새 이외의 맛이 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이상하다고 생각되는데. 딱히 나는 고기에 얽메이지 않으니까 아무거나 해줘. 아무튼 장을 대량으로 봐야할 테니, 내가 차를 내올 필요가 있겠군"
6과가 소유하는 차는, 경찰차량으로써의 기능을 아무것도 탑재하지 않은, 매우 평범한 일반차량이다. 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은 오오타밖에 없고, 오로지 쇼핑 전용 차량 신세다. 중량만 따지면 100키로 되는 물건도 유우키 혼자서 들고 올 수 있지만, 쌀가마에 고기나 야채까지 더해진다면 두 팔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주 가끔 평범한 이동수단으로 사용되지만, 약 1명이 체격때문에 탈 수 없으므로, 그리 많지는 않다.
"쳇, 청소 땡땡이칠 구실이잖아…… 그럼, 빨랑 사 오라고. 마작 준비는 나한테 맡겨"
토라지가 다시 빗자루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야마키가 큰 몸뚱이를 움츠리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재료가 갖춰지면 바로 조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려는 것이겠지. 카스미는 어떠냐면, 담배를 피우면서긴 하지만 테이블 위에 어질러져있던 땅콩껍질을 모아 꽁초와 함께 재떨이에 쓸어담고 있다.
전혀 협조성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곳에서는 단결하는 점이 유우키로서는 왠지모르게 기뻐지고 만다.
"그럼 유우키. 슬슬 장 보기 여행을 출발해보지 않겠나"
차키를 손에 든 오오타의 목소리가 꽤 들뜬 탓에, 유우키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겉옷과 모자를 챙겼다.
"양은 많지만 그냥 쇼핑이니까, 여행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건 없다구요"
확실히, 여행이라고 할 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냥 쇼핑으로 끝나지 않게 되버린 것 역시, 또한 사실이었다.
차라는 물건은 편리하지만,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차 특유의 냄새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술로 마음을 달래고 싶어지지만, 아쉽게도 이 차 안에 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멀리 나갈 때에는 휴대용 병에 알콜을 담아서 가지고 다니지만, 아무래도 가까운 곳으로 장을 보러 갈 뿐인데 상비하지는 않는다.
"금연차량이라는 말은 자주 듣지만, 금주차량이라는 개념은 존재할까? 뭐 대중교통은 술이나 담배 뿐만 아니라 음식 자체가 좋지 않은 행위인데 말이지. 아, 신칸센이나 비행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려나"
유우키의 상태를 눈치챈 것인지, 옆에서 운전하던 오오타가 앞을 바라보면서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를 꺼냈다. 차에 타고 있는 동안에는 그의 긴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야 하기에, 토라지같은 경우에는 진심으로 차에 동승하기를 꺼려했다.
"선생님, 이야기하는 건 좋지만 운전에 집중해주세요"
"알고 있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조용히 있는 편이 더 운전에 집중하기 힘들어. 공통된 언어를 지닌 존재가 내 바로 옆에 있는데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꽤나 어려운 일이야. 아무리 나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이렇게 떠들지는 않아. ……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혼잣말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
"네, 네, 그렇죠. 선생님이 계속 입 다물고 있는 모습,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걸요. ……어라, 어째 붐비네요"
6과의 한 뒷골목에서 나와 왕래가 많은 큰길에 도착했지만, 차창 너머로 보이는 다른 차들의 속도가 어째 더디다. 이 행렬에 끼어드는 것만으로도, 잠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오오타가 흰색 차선 앞에서 차를 멈추자, 유우키는 창문을 열고 앞뒤 확인을 한 뒤 얼굴을 내밀었다. 아무리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시부야라고는 해도, 지금은 평일 대낮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 앞에는 굼벵이 기어가듯 느릿느릿한 정체가 계속되는 중이다.
"오늘 시부야에서 뭔가 있었나요? 아니면 공사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GPS도 네비게이션도 탑재되지 않은 이 차 안에서는, 외부 정보를 얻을 수단이 그리 없다. 적어도 라디오로 교통정보라도 들어볼까. 그렇게 생각한 유우키가 스위치에 손을 뻗으려던 순간, 오오타가 묘한 신음소리를 냈다.
"……유우키, 좀 눈부시겠지만 저 빌딩 위를 봐봐"
오오타가 안경을 차창에 닿을 만큼 가까이 대고 바라보는 방향을, 유우키 역시 올려본다. 모자의 챙만으로는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차단하지 못해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눈부심을 견뎌낸다. 겨우 익숙해졌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리만치 시야가 꺼멓고 희미한 느낌이 든다. 눈을 깜박이며 시야가 제대로 돌아오기를 시험해보지만, 빌딩 위에 있는 그 검은 무언가는 흐릿한 윤곽이지만 유우키에게는 정말 실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아지랑이같은 게 보이는 느낌이 드는데, 이거 기분 탓인가요?"
"아니, 기분 탓이 아니야. 나한테도 보이거든. 둘이 동시에 환상을 보고 있다는 것은, 좀 생각하기 힘들지 않을까? 나도 너도, 시력은 나쁜 편이 아니고. 저 검은 것은 연기인지 그림자인지 아지랑이인지 안개인지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저 옥상에 존재해…… 아"
아지랑이가 움직였다. 가느다랗고 긴 뱀같은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빌딩 옥상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중력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뱀처럼 빌딩의 벽면에 달라붙어, 천천히 밑으로 내려간다. 그것이 향하는 앞에는 차가 막히든 말든 상관없이 그저 왕래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검은 아지랑이와, 인간.
순식간에 차에서 뛰쳐나가려던 유우키는, 자신이 안전벨트를 메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벨트를 풀기 위해 버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유우키, 너는 무엇을 하려는 거지"
그 행위를, 오오타의 조용한 목소리가 막았다. 그의 시선은 변함없이 검은 아지랑이를 향하고 있어서, 유우키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직접 꿰뚫린 듯한 기분이 든다.
"무엇이라니…… 저 검은 것이 뭔가 하려 든다면, 곤란하잖아요"
아지랑이가 내려가는 속도는 느려서, 설령 대로변 맞은편이라 해도 유우키의 다리라면 문제없이 지면에 도달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
"그건 저 검은 아지랑이가 지상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뭔가 위해를 가할 거라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
"……아니요, 말씀대로예요"
눈의 착각도 환각도 아닌 저 검은 무언가는, 아야카시──외관상으로는 2종 지정 생물이라 불리우는 생물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래봤자 1종과 2종의 차이따위는 사소한 것밖에 없다. 사람의 말을 구사하며 사람다운 모습을 지닌 아야카시를 1종, 그 외는 2종으로, 매우 단순하게 분류한다. 사람이 아닌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사람의 말을 하는 아야카시는 얼마든지 있는데.
하지만 1종이나 2종이나, 아야카시가 일으킨 사건을 해결한다는 명목상 결성된 조직이 바로 유우키가 속한 수사6과다. 애초에 아야카시가 사건을 일으키는 일은 별로 없고, 있더라도 인간으로만 구성된 긴급포획부대, 약칭 EAT가 움직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단 경찰 조직에 속해있지만, 아직 사건이 일어나진 않았어. 어딘가에서 요청이 오지도 않았고. 평소부터 네가 말하던 거잖아? 요청도 없는데 움직이지 말라고. 저 검은 아지랑이가 무엇을 할까? 뭔가 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건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았어"
오오타의 그 질문에, 유우키는 '심술궂기는'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는 딱히 유우키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막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생각해라'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제일 좋겠지만요. 그냥 잠깐 가까이 가서, 저게 사람을 무차별 습격하려는 위험한 생물체인지, 그냥 단순히 이쪽에 밀려온 건지 확인해볼 뿐이예요"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여는 유우키의 등에, 오오타가 다시 말을 건다.
"저것이 설령 사람을 포식하는 등의 아야카시라도, 내 감각으로는 저게 '위험한 생물'과 똑같이 분류되진 않겠는걸. 너는 사람에게도 아야카시에게도 중립의 입장을 취하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역시, 인간의 방향으로 치우쳐 있구나. 나의 시점에서 봤을 때 그렇게 느낄 뿐이고, 인간의 시선으로 보자면 너의 방향성은 우리들과 같은 방향으로 치우쳐 있을까.
오오타의 말에 악의는 없다. 그저 사실이다.
카타쿠라 유우키는, 1종 지정 생물로서 인정되었다. 법률상으로는, 오오타를 시작으로 수사6과의 아야카시들과 같은 생물체다.
그러나, 그녀는 아야카시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그리고 아야카시이기도 하며, 인간이기도 한 생물체.
이중 잡종이라 불리우는, 희귀한 생물체.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야카시가 될 수 없다. 인간도 될 수 없다. 어느 쪽도 될 수 없는, 그저 반푼이 이중 잡종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며, 그리고.
그저 반푼이 이중 잡종으로서, 죽게 되겠지.
그렇다면 반푼이답게, 적어도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어느 쪽도 존중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아야카시인 그들과 지내고 있노라면 때때로 싫어질 정도로 자신이 인간의 사고방식을 취한다고 자각하게 된다.
인간에게 둘러싸여 살던 시절에는, 자신이 인간 외의 생물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통감하고 있었는데.
"……일단, 경찰관이니까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죠"
일단이라고는 해도 오오타 역시 경찰관이라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는 그것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군. 혹시 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주세요'라고 말할 만한 경찰관이었다면, 나는 너와 이런 관계를 쌓지도 않았겠지"
어떤 관계를, 자신과 오오타가 쌓고 있던 것일까. 그 부분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검은 아지랑이가 슬슬 지면에 도달하려는 모습이 보여서, 유우키는 말없이 차에서 나오며 문을 닫았다.
"……그럼, 우리들의 카레라이스는 과연 무사히 완성될 것인가, 심히 불안하군"
아직 아무런 재료도 싣지 않은 뒷좌석을 돌아본 뒤, 오오타는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유우키가 횡단보도를 통하지 않고 차의 행렬 사이로 건너가는 것을 배웅하고, 새삼스럽게 중얼거린다.
"곤란하군,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물어보지 않았군. 지갑을 가져오지도 않았으니 먼저 재료를 살 수도 없는데. 차를 방치한 채 유우키를 쫓을 수도 없고, 6과에 돌아가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나를 고민하게 만들다니, 과연 유우키로군"
음, 음 하며 혼자 멋대로 수긍하는 오오타의 등뒤에서, 경적소리가 울려퍼졌다.
멀리서 경적소리가 들린 기분이 든다. 차를 가로지르며 도로를 건너는 나에 대한 항의의 소리일까. 그렇게 빠져나온 유우키를 주위 인간들이 돌아보기는 하지만, 딱히 주의를 주거나 하지는 않고 그대로 가던 길을 간다.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인도로 도달한 유우키는, 검은 아지랑이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것은 멀리서 봤을 때는 확실한 물체로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욱 흐릿한 존재로 보였다. 강력하게 '그곳에 있다'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놓치고 말 정도다.
지면에 달라붙은 검은 아지랑이에게는, 나름대로의 두께가 있다, 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두께는 10센티도 되지 않았고, 주위 인간은 자기들 발치에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도 못한다. 드라이아이스를 물에 녹이면 발생하는 하얀 연기를 한없이 까맣게 만든 듯한 존재. 그 아지랑이가 희미하게 일렁이는 모습을 보고, 유우키는 약간 망설였다.
'……그런 말을 하고 뛰쳐나오긴 했는데, 어떡하지……'
인도 끄트머리에서 검은 아지랑이를 관찰해봤지만, 저건 말이 통할까? 정말로 그저 검을 뿐인 그것에는, 감각기에 속하는 것이 무엇 하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콘크리트 지면에서 웅크리고 경련하는 그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같다.
일단 다가가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한 걸음 내딛은 유우키였지만, 등뒤에서 자전거를 탄 청년이 그녀를 추월하더니, 검은 아지랑이를 치고 말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다니. 유우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치여서 두 갈래로 나뉜 검은 아지랑이가 갑자기 움직이더니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에 달라붙었다. 뱀처럼 생긴 그것은, 개미 집단이 먹잇감을 먹어치우듯 자전거를 뒤덮더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우와아아아……!"
그리 빠르게 달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예상도 못한 타이밍에 멈춰버린 자전거 때문에 청년은 기세 좋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지만, 그 누구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넘어진 청년도 반사적으로 낙법을 취하지 못하고, 지면에 눈앞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아아아아……어?"
그러나 그 청년의 비명은, 도중에 맥이 빠지며 끊기게 되었다.
그가 지면에 떨어지기 직전, 유우키는 그의 목덜미를 잡을 수 있는 위치로 달려나갔다. 멈춰서는 기세를 이용해 그의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고 충격이 없도록 지면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그 동작을 취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초가 될까말까한,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유우키는 곧바로 시선을 그가 타던 자전거로 돌렸다.
그냥 검기만 할 뿐이었던 아지랑이는, 지금도 역시 검은 아지랑이였다. 검은 타이어에 그저 조용히 엉겨있을 뿐이었다.
무슨 의지를 갖고 있는 건지, 아닌지.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그 아지랑이를 향해 유우키가 세 걸음 내딛고, 자전거 앞바퀴에 감겨있던 그 아지랑이를 살짝 만져봤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아프지도 않다. 검은 아지랑이는 유우키의 손에서 도망가려듯, 잽싸게 자전거에서 떨어져 지면으로 미끄러진다. 앞바퀴와 뒷바퀴에 나뉘어있던 검은 아지랑이 둘은 하나로 합쳐지더니 멀어져간다. 바로 쫓아가려던 유우키였으나, 자기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이 아지랑이도 타이어도 아닌, 자전거 바퀴의 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순간 머뭇거리게 되었다.
당연하듯 머리에 떠오른 의문.
'……타이어는, 어디로 갔지?'
검은 아지랑이가 자전거에 달라붙기 전에는 분명 있었을 타이어가, 지금은 흔적도 없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것이, 그 검은 아지랑이에 감싸진 뒤에 사라졌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이어보자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결론이 나오겠지만, 유우키는 간단하게 그 두 가지를 연결시켰다.
'그 검은 것이, 타이어를…… 먹었어?'
아무리 아야카시 중에 보통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는 경우가 많다고는 해도, 타이어를 먹는다니 과연 믿기 어렵다. 하지만 진짜 그 검은 아지랑이가 타이어를 먹어치운다면,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뒤를 쫓으려던 유우키였지만, 그녀가 아주 잠깐 머뭇거린 사이에 검은 아지랑이는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지랑이를 찾기 전에, 일단 청년이 무사한지 확인한다. 조금 멍한 상태지만, 외상은 없어보인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리는 편이 좋아요"
듣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 말을 남기고, 유우키는 자전거에서 손을 뗀 뒤 달리기 시작했다. 스탠드를 받친 뒤 손을 뗐어야 했다고 생각한 것은, 등뒤에서 자전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백주대낮의 시부야에서, 자전거를 타던 청년이 갑자기 땅에 떨어지고, 그 자전거는 타이어가 없어졌다. 시간으로 따지면 10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기묘한 사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자전거의 주인인 청년도, 주변 사람들도 전혀 몰랐다. 모든 것은 그들이 인식하기 전에 일어나고, 인식하려던 찰나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름대로 이해하는 카타쿠라 유우키에게 있어서, 사태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게 카레 재료를 아─무것도 사오지 않고 돌아온 이유냐고"
나름대로 정리가 끝난 수사6과. 그 바닥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쏘아대는 사람은 토라지였다. 야마키는 조금 떨어진 마작 테이블 앞에 앉아, 그 위에 흩뿌려진 패를 물티슈로 꼼꼼하게 닦고 있다. 카스미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진을 치고, 무슨 게임을 하며 놀고 있는 것 같다.
"그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곤란하겠구나 해서……. 차가 막혔던 원인도, 갑자기 타이어가 사라져서 그랬다던가, 그 검은 아지랑이가 원인인 것 같았어"
"응, 나도 나름대로 주목하고 있었지만, 그 기묘한 생물은 타이어를 먹는다고 할까, 분해하려는 것처럼 보였네. 철이나 돌을 먹는 아야카시를 나는 알고 있지만, 타이어를 먹는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라기보다는 처음 봤지. 고무나무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초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 고무가 아니라 합성수지였나, 타이어는. ……그렇다면, 석유인가"
"헤─, 고무는 나무였구나. 몰랐어─"
카스미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이 말했지만, 시선은 모니터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야기는 듣고 있지만, 흥미는 전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패를 닦던 손을 멈추지 않고, 야마키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취사를 뒤로하고, 이제부터 어쩌고 싶은데"
얼굴은 이쪽을 향하고 있지만,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뒤덮힌 야마키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보이지 않아도 아플 정도로 유우키를 꿰뚫었다.
"……그 검은 것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고 싶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런 것이 나왔다는 전례는 없었으니까, 어딘가에 조용하게 살고 있었을 듯하고……"
"에─ 싫다아─"
"켁, 귀찮아라"
거부 의사를 표현한 사람은 카스미와 토라지, 불편하다는 듯이 크게 코를 킁킁거리는 사람은 야마키, 말없이 유우키를 바라보는 사람은 오오타.
아무도 유우키의 말에 찬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야카시지만, 딱히 인간을 혐오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사람의 세상 속에서 살며, 사람이 정한 법률을 나름대로 준수하고, 사람에게 부여받은 직업에 종사하며, 사람에게 양식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려는 자세따위는 전무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과 동료이며, 그 외에는 어찌되든 상관없어한다. 자기네들이 모르는 장소에서 타이어가 먹힘으로써 대참사가 일어날 가능성과, 지금부터 먹을 카레라이스. 이 둘을 비교한다면, 카레라이스 편이 압도적으로 큰 사건이라는 말이다.
경찰법 제2조에는, 개인의 생명이나 신체 및 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 진압 및 수색, 피의자 체포, 교통 단속, 그 외 공공의 안전과 질서 유지에 이바지함을, 그 책무로 한다는 사실이 기재되어있다. 그래도 경찰관으로서의 자각이 전혀 없는 그들은, 그 책무를 다하려고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이 움직이려 하면 해당 경찰청 자체가 허가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이 사건에 얽히는 일은 그다지 없다. 아주 가끔 얽히게 되는 케이스는 대개 이 중 유일하게 경찰관 훈련을 받고, 사람의 배에서 태어나, 사람으로서 살았으며, 지금은 이렇게 아야카시의 동료들과 함께 하는 이중 잡종, 카타쿠라 유우키가 발단이 된다.
아야카시 동료들과 유우키의 사고방식에는, 크지는 않지만 깊고 깊은 차이가 있다. 폭을 좁히기는 가능해도, 메울 수는 없는 깊은 도랑같은 차이. 그래도 그들이 잘 지내는 것은, 유우키가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아야카시들도 유우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그녀들의 관계가 양호하다고는 해도, 그것이 그대로 아야카시와 사람의 관계로는 결코 이어지지는 않는다.
"유우키, 우리들에게는 경찰관으로서의 의무가 있어. 네 눈앞에서 아야카시인 생물이 개인의 재산인 자전거 타이어를 포식하고, 그럼으로써 개인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었지. 자전거 타이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의해, 사상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정체도 일어났고. 그렇지만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은, 그 검은 아지랑이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경찰청에 2종 지정 생물이 시부야에 출현했다고 전하는 게 아닐까?"
오오타의 말은, 정론이다. 유우키가 전화를 한 통 걸기만 하면, 사태는 금방 그녀의 손을 떠나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진다. 할 필요는 없어지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검은 아지랑이가 타이어를 먹었다'.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를, 일반인이 받아들이려거든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유우키가 사태의 이상함을 열심히 말해봤자 적당히 흘려듣고는, '따로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라는 대답을 듣겠지만, 따로 명령이 오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으리라.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하기 전에, 어느 정도 피해가 나올지도 모른다.
"……애초에, 타이어를 먹는 희귀한 녀석을, 내가 모를 리가 없어. 내가 모른다는 말은, 상당히 공을 들여 사람에게서도 아야카시에게서도 숨어 살았을 거야. 오늘 네가 본 것도, 슬쩍 나와봤을 뿐이겠지. 가만히 놔둬도 금방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갈 거야"
야마키가 식사 외에 이렇게 떠드는 것도 드물다. 카레 요리가 시작되지 않아서 굉장히 배가 고픈지, 다시 크게 킁킁거린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하잖아요"
사람에게도, 그 검은 아지랑이에게도.
"딱히 난 곤란하지 않은데. 나한테 있어서는 카레를 먹지 못한다는 게 더 곤란하다고. 단장은 지나치게 성실해. 우리들의 일은 여기서 멍하니 지내는 거잖아. 그럼 그렇게 하면 돼. 멍하니 지내자고"
토라지는 청소해둔 바닥을 손바닥으로 몇 번 쓸어보고는, 그대로 털퍼덕 드러누우며 유우키를 올려본다. 크게 하품한 뒤, 덧붙이듯 재채기를 한 번 하더니 코를 훌쩍였다.
"재미없는 일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구─. 인간이란 재밌는 일도 하지만, 전혀 재미없는 일도 하니까, 별로 움직이고 싶지 않네─"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카스미가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럼…… 다들 의욕이 없는 모양인데, 어떡할래, 유우키"
소파에 앉아있던 오오타가, 즐겁다는 듯이 유우키를 바라본다. 오오타는 비교적 인간에 대해 호의적인 아야카시지만, 그래도 유우키가 뭔가 정당한 이유를 읊지 않는 한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여기 있는 네 명의 아야카시를 움직이게 만들, 그럴싸한 구실. 그게 무엇인지, 유우키는 안다. 그저, 그것을 처음부터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가 그 말을 입에 담으면, 그들은 반드시 힘을 빌려준다.
설령 그것이, 목숨의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라고 해도.
유우키는 사람이며, 아야카시이기도 하다. 멀리 떨어진 누군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위기를 찾아내서까지 도와주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눈과 손이 닿는 거리에 있다면 돕고 싶다고 생각한다. 경찰관으로서의 의무 이전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인간이 자신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도.
그리고 아야카시인 친구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소중한 존재다.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강한 생물이지만, 그래도 위험한 일은 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이 조건이 양립하지 않을 때, 어떡해야 좋을까.
"선생님, 야마키 씨, 토라 군, 카스미쨩"
네 명의 이름을 순서대로 부르면서, 그 한 사람 한 사람과 시선을 마주한다.
"음"
"오우"
"그려"
"네─"
넷 다 각각 대답을 하며 유우키를 본다. 네 명의 시선을 받으면서 유우키가 한 일. 그것은.
"부탁해요. 검은 아지랑이를 원래 있던 장소로 돌려보내는 데에 협력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숙인다는,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네 명의 대답은.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지, 응"
"…………흥. 가능하면 저녁밥이라고 부르는 시간이 되기 전에 정리했음 좋겠군. 배고파 죽겠어"
"진짜 그렇다니까……. 카레는 큼직큼직한 고기 덩어리가 잔뜩 넣어서 만들어달라고"
"카레는 둘째 치고, 마작을 위해 빨리 끝내자─"
흔쾌히 승낙하는 동료들을 보며, 유우키는 그들의 존재에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인간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을 지녔을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유우키가 '이렇게 하고 싶다'고 말해도 그들은 들은 체 만 체 한다. 하지만 '부탁'이나 '간청'이라는 말로 바꾸면 흔쾌히 승낙해준다. 아야카시라는 생물은,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습성이라도 지닌 것일까? 동료의식이 강하다, 라는 사실만큼은 유우키도 잘 알고는 있지만.
자기가 대량의 카레라이스를 귀찮게 생각하면서도 만들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아야카시의 습성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이 '동료'라고 생각해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뻐진다. 이렇게 사건에 대처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의 힘이 있는 덕분이다. 혼자였다면 상부에 떠맡긴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리라.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13분. 장 보기나 조리 시간을 생각해보자면, 이미 저녁밥을 먹는 시간에는 맞출 수 없을 듯 하다. 애초에 내일 아침밥을 먹기 전까지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호하다. 그런 검은 아지랑이를 아무 단서도 없이, 이 넓은 시부야에서 발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그렇지만, 유우키는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가능하다고 느꼈다. 나와 동료들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 따위, 있을 리 없으니까.
경시청 형사부 수사6과.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며, 사람과는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닌 자들이 모인 이곳에, 지금은 다섯 명의 생물체가 있다.
고대부터 영조라 칭송받으며, 사람들의 전설 속에 그 이름을 남긴 시무르그.
산신으로서 경외받으며 사람들이 제사를 올려온, 거구의 귀신곰.
대륙에서 바다를 넘어온, 칠흑의 호랑이.
화염을 본질로 하는, 태어날 때부터 쉬지않고 타오르는 작열의 도마뱀.
그리고, 오니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이중 잡종.
그들이 향하는 곳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자그마한 사건. 이제부터 시작되려는 커다란 사건.
카레라이스를 먹으며 마작을 친다는, 목표라기에는 너무나도 시시한 목표를 위해, 네 명의 아야카시와 한 명의 이중 잡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이어를 먹는 검은 아지랑이. 시부야에 있다는 단서밖에 없는 그것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단순명료하게, 발품을 판다. 오오타와 카스미는 사람의 가죽을 벗으면 하늘을 날 수 있고, 야마키와 토라지도 사족보행이 되기에, 이동력으로 따지면 자동차나 전철로 이동하는 것보다 빠르다.
그러나 사람의 가죽을 벗는다는 것은, 동시에 인간의 옷을 벗는 일이기도 하다. 거기서 오오타가 하늘에서, 야마키와 토라지가 지상에서, 이 잡듯이 샅샅이 시부야의 거리를 산책하기로 했다. 유우키와 카스미는 지상에서 그들이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고 차로 이동하며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차에 탄 유우키와 카스미도 일단 길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는 있지만, 유우키에게는 해두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순경부장, 화급한 용건인가?]
조수석에 앉은 유우키가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한 사람은, 경시청 긴급포획부대의 대장인 아카가와 다이스케이다.
"아, 화급하다고 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좀 묻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유우키와 아카가와는, 지금은 이렇게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관계지만, 2년 전에는 험악이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카가와가 일방적으로 유우키에게 편견을 가졌던 것이었지만, 현재로써는 모두 풀린 상태다.
딱히 유우키가 그에게 뭔가 하지는 않았고, 아카가와 쪽이 변한 것인다. 그가 변한 진짜 원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유우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저, 아카가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사건이 있었다, 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우키는 묻지 않았고, 아카가와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두 사람은 업무상의 관계를 잘 유지하게 되었다.
"최근, 2종에 얽힌 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 없었나요?"
[……그건 즉, 지금 네가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니까, 이쪽에 뭔가 정보가 없는지 묻는 식으로 들리는데]
"아, 역시 그렇게 들리나요?"
유우키가 대답했을 때, 차가 갓길에 접촉했는지 묘한 미동이 전해졌다. 철저히 안전운전을 하는 카스미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
[검증중, 미나토구, 시부야구. ……이 주변부터 살펴봐주면 좋겠는걸]
"감사합니다, 그럼 이 전화는 없었던 일로 해주세요"
[그렇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줬으면 좋겠어, 네 쪽에서]
유우키는 전화를 끊고,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카가와와 유우키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규칙으로는 긴급포획부대와 수사6과가 직접 연락을 취하는 것을 허가하고 있지 않다. 그런 규칙을 무시하면서까지 정보 교환이 가능할 정도로, 두 사람의 사이는 깊지 않았다.
"이런 방식,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저기─, 아저씨랑 무슨 얘기 했어?"
핸들을 잡은 카스미가 안절부절 못하며 전방과 길가를 보면서 유우키에게 말을 건다.
"들키지 않도록 잘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 라는 말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 아니겠어?"
아카가와와의 짧은 대화로 알 수 있는 사실. 미나토구와 시부야구 근처에서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그게 2종이 벌인 짓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
아직 본격적인 사건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흐─응, 아저씨도 옛날에 비하면 둥글둥글해졌네─"
"그건 그렇다 치고, 카스미쨩은 운전에 집중해줘…… 만에 하나라도 순경 아저씨한테 붙잡히면 곤란해지니까……"
담배를 피우며 핸들을 잡은 카스미의 손놀림은, 아주 익숙했다. 하지만 카스미에게는 드라이버로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호무라 카스미는, 운전 면허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괜찮아─! 면허라면 있는걸. 위조지만"
6과에 오기 전까지 카스미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위조된 면허를 갖고 있다.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물어보면, '아빠한테 받았다'라는 대답밖에 하지 않는다.
"……위조는 당연히 안 되지"
나름대로 정교하게 만들어졌지만, 어차피 위조다. 조사해보면 금방 위조라는 사실을 들키고 말겠지.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면 불이 되버리니까, 핸드폰도 가지고 다니지 못하고 연락도 취하지 못하는걸. 순경 아저씨한테 들키지 않도록, 몰래몰래 가자구 유우 씨"
웃으며 액셀을 밟은 카스미의 행동에, 유우키는 일말 정도가 아닌 불안을 느꼈다. 카스미가 어떻게 운전을 배웠나 하면, '어깨너머로'와 '레이싱 게임'이었기에,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뭘까……"
소주가 든 휴대용 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신 유우키였지만, '이 병 언뜻 보기에 알콜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려나'라고 생각하면서, 곰곰이 바라본다. 장시간 외출용으로 사용하는 이 병과는, 나름대로 인연이 길었다.
유우키의 모습은 10대 중반으로, 길게 자란 하얀 머리카락을 빼면 결코 20세를 넘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는 이미 술을 마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이게 원인으로 붙들리게 된다면 난처해진다.
"유우 씨, 뭘 그렇게 꼼질꼼질거려?"
조수석에 틀어박혀 홀짝홀짝 술을 마시는 유우키의 모습을 보고, 카스미가 물어본다.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주변을 경계하면서 운전해줘. 검은 아지랑이라고 할까 연기라고 할까, 그림자라고 할까…… 검은 유령? 아무튼 그런 느낌이야"
"검은 연기…… 그다지 맛있는 연기는 아닌 듯한걸"
맛있는 연기는 어떤 맛일까. 생각해보긴 했지만, 어떤 맛이든지 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우 씨, 운전 면허 따면 좋을 텐데. 제대로 합법적으로 딸 수 있고, 유우 씨라면 조금만 공부하면 금방이잖아─"
"아니, 이런 복잡한 물건은 조금……"
"컴퓨터가 훨씬 더 복잡한데"
마우스와 키보드의 숫자 패드밖에 건드리지 않으니까, 라고 대답하려던 유우키의 핸드폰이 울린다. 아직 수색을 시작하고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진전이 있었던 것일까.
"여보세요……"
착신 이력도 보지 않고 전화를 받으니, 수화기 저편에서 '부오오오오'하며 귀를 울리는 굉음이 울리고, 유우키는 무심코 귀에서 핸드폰을 멀리 떼놓았다. 그 소리가 야마키의 난폭한 콧김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전화기를 귀에 갖다댄다.
"여보세요?"
[오우, 단장! 위를 봐, 새대가리가 나는 방향을 보라고! 나랑 대장도 쫓고 있는데, 너무 무리하지는 마! 닿으면 꽤 아픈 모양이야]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던 토라지의 전화는 금방 끊겼다. 유우키는 바로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목을 내밀어 하늘을 바라본다. 주행중인 차에서 머리를 내밀면 안 된다는 사실따위,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 구름이 많고,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하늘 속. 톡 하고 검은 점같은 것이 빙글거리며 원을 그리고 있다. 상당히 높은 하늘을 나는 듯이 보이는 그것을 향해, 유우키는
"선생님!"
하고, 닿을 리 없는데 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소리친다.
들릴 리 없는 그 유우키에게 대답하듯, 오오타의 모습을 한 시무르그가 살짝 고도를 낮추고는 방향을 정하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카스미쨩, 일단 여기서 직진! 서둘렀으면 좋겠지만 제한속도는 지켜줘! 담배는 적당히 피고!"
"네─!"
기운차게 대답하고는, 카스미가 핸들을 오른손에, 담배갑을 왼손에 들면서 액셀을 밟는다. 담배갑을 털어 세 개피를 동시에 물고는, 검지손가락으로 담배 끝을 살짝 매만진다.
불을 붙인다기보다, 오히려 태울 듯한 기세로 점화된 담배에서 성질부리듯 발생한 연기를, 카스미가 기세 좋게 전부 들이킨다.
"자─, 힘내자─!"
독특한 냄새에 눈썹을 찌푸린 유우키는 휴대용 병을 손에 들었지만, 결국 마시지 않았다.
시간은, 그보다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대장은 큰 덩치 치고 몸이 가볍단 말이지. 뭐 튀어오르고 착지할 때마다 흔들리는 점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 점에서, 나는 발볼록살 덕분에 전혀 소리가 나지 않지만. 자랑하듯 윤기나는 검은 발볼록살을 보여주는 토라지에게, 야마키는 코를 킁킁거리며 자기 손을 봤다. 거칠고 뻣뻣해 금까지 간 굉장히 딱딱해보이는 발볼록살.
"……흔들리는 건 발볼록살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겁기 때문이야"
"그야 대장은 100관 정도 되는 개돼지니까. 진짜 100관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실제로는 몇 키로야?"
"내 알 바냐"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은, 어느 빌딩의 옥상이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현대 도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형의 장소였다. 여기가 동물원의 우리 안이었다면 이상하지 않은 풍경일지도 모르지만, 그들 둘은 우리 안에 가둬질 생물이 아니었다.
거대한 곰과, 검은 호랑이. 지극히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지금의 야마키와 토라지의 모습은 그와 같았다. 그러나 그냥 평범한 곰과 호랑이는, 시부야 빌딩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대화하지도 않고, 목에 핸드폰을 걸고 다니지도 않는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배경으로, 두 마리의 짐승이 콘크리트 정글 위를 배회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악하게 함과 동시에 이형의 미를 느끼게끔 한다. 그러나 주위에 인간의 모습은 없고, 그들이 바라보는 아래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런 호랑이와 곰을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어때, 대장? 검은 아지랑이같은 게 보여?"
"……안 보여"
"얼른 찾아내서 어떻게든 해버리고 밥 먹어야지. 내일까지 못끝내고 끌고가면, 제대로 밥먹을 시간도 갖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야마키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없는 채 펜스를 뛰어넘더니, 그대로 떨어졌다. 이곳은 20층짜리 빌딩 건물의 옥상이다. 보통 평범하게 떨어지면, 물론 그냥 끝나지는 않는다.
"뭐야, 대장. 뭔가 발견했냐고…… 영차"
그의 행동을 보고도 토라지는 당황하지 않고, 야마키가 떨어진 방향을 향해 도약한다. 가느다란 펜스 위를 재주 좋게 뛰어넘어서 아래를 내려보니, 야마키가 벽을 달리며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떨어진다기보다, 달려 내려간다고 하는 편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야마키의 거구에 차인 빌딩이, 묵직한 비명을 울리며 진동한다.
일단 아래쪽을 확인해봤는데, 빌딩과 빌딩 사이에 있는 것은 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좁은 통로였다. 사람은 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야마키의 거구가 끼일 것 같이 좁은 통로였지만, 뭐 괜찮겠지. 토라지도 역시 천천히 빌딩의 벽을 달리며 내려간다. 야마키와는 다르게, 매우 조용하게, 그리고 빠르게 달려 내려간다.
구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착지한 야마키와, 그에 이어 조용히 내려온 토라지.
두 사람이 본 것은, 버려져서 너덜너덜해진 오토바이에 달라붙은, 검은 아지랑이였다. 앞바퀴는 이미 휠만 남아 밖으로 드러난 상태였고, 뒷바퀴를 뒤덮고 있던 검은 아지랑이가 슬금슬금 이동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역시나 그곳에 있어야 하는 타이어가 없어진 뒤였다.
"헤─. 진짜 타이어를 먹네. 그런 맛없어 보이는 걸 잘도 먹는구나"
토라지가 감탄했다는 듯이 말한다. 그런 두 사람의 관찰자가 있다는 사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 아지랑이는 다른 한 대의 오토바이로 옮겨간다.
"찾아내긴 했는데, 어떻게 한담. 이봐─, 늬들 내가 하는 말 알아듣냐? 여기는 인간이 많으니까, 너무 어슬렁대지 않는 편이 좋다고. 귀찮아지니까"
짐승 모습을 한 토라지의 입에서 나온 말에, 검은 아지랑이는 반응도 하지 않는다.
"듣지를 않네. 일단 단장한테 연락해서…… 어, 대장 뭐하는 거야"
"귀찮아, 짓눌러 죽여야겠어"
뒷발로 느긋하게 목덜미를 긁던 토라지였으나, 야마키가 전진하며 검은 아지랑이를 붙들려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언성을 높인다. 이런 잘 알지도 못하는 생물을 붙잡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야마키답지 않다…… 라고 토라지가 생각하던 때, 야마키의 단단한 발볼록살이 검은 아지랑이에 닿았다.
"우옷!"
그 순간, 검정색이었던 아지랑이가 하얀색으로 변했다. 아니, 변색되는 정도가 아니다. 말 그대로 발광하며, 토라지와 야마키의 눈을 꿰뚫은 것이다. 토라지의 눈은 다소 빛에 견딜 수 있지만, 과연 이 정도의 빛에는 눈을 감게 만든다.
"……으아, 대장 괜찮아?"
"눈이 아파"
"눈보다 손바닥이 아파보이는데"
달려온 토라지가 본 것은, 크게 갈라진 야마키의 딱딱하게 굳은 발볼록살이었다. 너무 굳어버린 탓인지, 갈라졌을 뿐이지 피는 나지 않는다.
"조금 아플 뿐이야. ……사람이라면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대장이 아플 정도라니, 인간이었음 벌써 죽었지…… 아차, 방금 그 뭔지 모를 빛때문에 몇 명인가 사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져. 대장, 물러갈까, 이제"
야마키는 말없이 지면에 다리를 세우더니, 예의로라도 가볍다고 할 수 없는 도약으로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토라지는 그를 간단히 따라잡고는 벽을 오르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통로 입구에서 누군가가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보였지만, 두 사람을 본 것 같지는 않다.
"잠깐 단장한테 알려볼까…… 어, 여기가 어디지?"
주변을 둘러보던 토라지가, 자기 등뒤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뒤돌아봤다. 바로 눈앞까지 달려온 오오타가 보인다.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토라지의 머리 위를 뛰어넘은 오오타는, 스쳐지나가는 순간에 빠른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유우키에게 전화해서, 위를 봐라, 나를 쫓으라고 전해줘!"
그 말만 하고, 오오타는 고도를 높이더니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더니 사라졌다.
"켁, 깜짝 놀라게 하기는"
그렇게 욕설을 하고, 토라지는 바로 목에 걸린 핸드폰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짐승의 손은 이런 섬세한 작업이 어렵지만 어쩔 수 없다.
겨우겨우 유우키와 전화가 연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등뒤에서 야마키가 엄청난 기세로 코를 킁킁거려서, 깜짝 놀라게 만들어버린 모양이다.
"오우, 단장! 위를 봐, 새대가리가 나는 방향을 보라고! 나랑 대장도 쫓고 있는데, 너무 무리하지는 마! 닿으면 꽤 아픈 모양이야"
그것만 말하고 전화를 끊은 뒤, 토라지가 야마키를 돌아본다. 자기 상처에 콧김을 대며 무슨 일인지 확인하는 듯하다.
"뭐해 대장, 빨리 가자고!"
"……엉"
야마키는 자기 털에 상처를 문지르고는, 다치지 않았다는 듯이 지면에 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두 짐승은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계속 위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목이 아프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우키는 하늘 위의 오오타와 전방, 그리고 좌우의 길을 꾸준히 확인하면서, 카스미에게 지시를 내린다. 창밖으로 몸의 거의 절반을 내밀고 있는 유우키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신경쓸 여유도 없었다.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잘 붙잡으면서, 오오타가 날아가는 방향을 쫓는 데에 필사적이었다. 나부끼는 머리칼이 약간 방해된다고 생각했지만, 자를걸 하며 후회할 틈도 없다.
"다음 코너, 우회전같아!"
"네이─!"
이미 꽤 오랫동안 주행한 듯한 느낌이 든다. 쫓기 시작했을 무렵에 해가 지기 시작했던 하늘은, 슬슬 태양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완전한 밤의 장막이 드리우고 말 것이다. 그런 하늘을 나는 검은 새는, 하늘의 색에 녹아들어서 식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도로를 밝히는 가로등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부야에서 꽤 떨어졌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거 귀가길이 힘들겠는걸……'
유우키가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오오타의 모습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이쪽을 향해 급강하를 개시한 것이다.
무언가가 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사람의 모습은 전혀 없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렇게나 없는 것을 보아하니 꽤나 벽지인 모양이다. ……그래, 분명 벽지라고 하면 벽지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에 보인 것, 그것은──
"카스미! 속도를 줄여라!"
오오타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미 눈앞에까지 다가오고 있는 것, 그것은 도쿄만이었다. 울타리가 쳐져있긴 하지만, 현재 속도를 생각해보면 감속하기가 꽤나 어려웠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바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카스미가 비명을 지르면서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리고 전방을 응시하던 유우키는 봤다. 차가 향하는 앞에 있는, 검은 아지랑이의 모습을.
"카스미쨩, 꺾어! 아니면 멈추던가!"
"차는 갑자기 멈출 수 없고, 꺾이지도 않는다구요 유우 씨!"
혼란스러워하는 주제에 매우 올바른 말을 하는 카스미에게 순간 감탄한 유우키였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유우키가 해야만 하는 일은, 차에서 뛰어내리기, 차를 멈추기, 차의 진행방향을 바꾸기다. 선택지는 셋이지만, 뛰어내리기를 제외한 두 가지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유우키가 고른 수단, 그것은.
근력증폭.
가느다란 왼팔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근력을 비약적으로 증폭시키는 이 기술을 사용한 유우키가 한 일은, 우선 조수석 문을 떼어내는 것이었다. 차의 수리비에 대한 생각은 일단 제쳐두고, 오른손으로 좌석을 강하게 붙잡고는 쫙 펼친 왼손바닥을 지면에 처박고, 다섯 개의 손가락을 아스팔트에 파묻으며 힘들 싣는다.
피부와 아스팔트가 일으키는 마찰열이 코를 찌른다. 이게 야마키였다면, 손가락을 지면에 쑤셔박는 것도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유우키의 힘으로는, 자동차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핸들 오른쪽으로!"
"옛써─!"
지면을 박차며 꺾는 기세를 올리려던 유우키였으나, 그 손바닥 앞에는, 검은 아지랑이들이 있었다.
"아……!"
그저 우연이었다. 유우키가 박차려던 것은, 아지랑이가 아니라 지면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을 아지랑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유우키는 바로 깨달았다.
오른쪽 손바닥이, 섬광과 함께 순식간에 갈갈이 찢겨나갔다.
"윽……"
고통과 눈부심이, 유우키의 집중력을 흐트린다. 채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충분히 치명적이었다.
차는 어떻게든 커브했지만, 꺾는 기세 탓에 유우키는 떨어져나간 문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잠잠해진 왼손의 아픔보다, 떨어질 때 꺾인 등보다, 검은 아지랑이들보다, 유우키가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은 핸들을 잡은 카스미의 안위였다.
"카스미쨩, 빨리 내려!"
지면을 구르면서 그렇게 외친 유우키의 귀에 들려온 것은, 격렬한 물소리였다.
"카스미쨩!"
큰 소리로 외치며, 양쪽 발과 무사한 오른손으로 지면을 딛고 일어나, 재빠르게 자세를 바로잡는다. 지면에 대자로 엎어져있던 유우키가 일어서려던 그 발밑에.
검은 아지랑이들이 있었다.
유우키가 반사적으로 취한 행동은, 신경융합. 신경 중추를 활성화해, 천천히 꿈틀대는 검은 아지랑이들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바라본다.
뭉쳐있던 아지랑이들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작게 작게 분리된다. 그 분리된 틈이 폭발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한다.
왼손이 호소하는 고통이 신경융합을 억지로 중단시키려 하지만, 신경융합이 끝나기 전에 유우키는 검은 아지랑이들로부터 거리를 벌였다. 그 벌어진 거리를,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섬광이 달린다. 지면을 바라보자, 아스팔트가 갈라쳐 역한 냄새를 풍긴다.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면, 유우키의 몸이 갈래갈래 찢겨나갔으리라.
그러나 그 공격은 아지랑이들이 몸을 던져가며 일으킨 일격이었는지, 검은 아지랑이들은 그 이상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유우키가 처음 봤을 때보다 부피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 작은 아지랑이를 바라보며, 유우키는
"……안녕"
이라고 말했다.
말이 통하는지, 아닌지. 본능으로 움직인다고밖에 보이지 않는 이 아야카시에게 말을 건다는 행위는, 전혀 쓸모없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나는, 일본 내각 총리대신 공인 1종 지정 생물, 공인 번호 010018, 경시청 형사부 수사6과 소속……"
검은 아지랑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꿈틀댈 뿐이다.
이 말이 닿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유우키가 자기 이름을 대려고 할 때.
"물─물─물물물─! 아파아아아아아앗!"
커다란 물기둥을 만들며, 바다에서 빨간색이 튀어나왔다. 슈욱슈욱하며 주위 물을 증발시키면서 지면으로 떨어지더니, 뒹굴뒹굴 구른다.
새빨간 파충류가 그곳에 있었다. 하반신에 희미하게 불꽃이 이는 그 모습은, 꼬리를 자른 도마뱀처럼 보였다.
이것이 호무라 카스미의 본래 모습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몸을 감싸는 화염이 평소의 절반도 안 되는 이 상태라면, 진짜 그녀의 모습과는 살짝 떨어지긴 하지만.
"카스미쨩, 몸은……"
"괜찮지 않아! 전혀 괜찮지 않다구 유우 씨!"
뒹굴거리던 카스미는, 몸을 화염으로 뒤덮으려고 시도하면서도 실패하며 울먹인다.
"아빠한테 받은 꼬리가, 그 차 속에 있다구우우우우우! 이것도 저것도 오오 씨랑 야마 씨랑 토리 군 때문이야아아아아! 아, 그리고 거기 검은 거"
……아무래도 몸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어째서 오오타와 야마키와 토라지 때문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유우키였다.
"꼬리 잃어버렸어어어! 그리고 아파아아아아!"
다시 구르기 시작한 카스미였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 몸부림치는 카스미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유우키는 다시 검은 아지랑이를 직시한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망친 걸까…… 라고 생각한 유우키였지만, 아스팔트에 달라붙은 검은 흔적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다치지 않은 오른손으로 그 흔적을 만져봤다. 다른 지면은 차가운데, 그곳만 굉장히 뜨거워서, 유우키는 피부를 살짝 데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 열도 빠르게 식더니, 이윽고 검은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자 그럼, 그 검은 아지랑이는 대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버렸으려나?"
땅 위를 비틀비틀 걸으면서 다가오는 오오타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웃겼지만, 유우키는 웃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아니면 어디로도 가지 않았으려나?"
가지 않았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론! 론! 론론! 로─온!"
토라지의 노성이 부엌까지 들린다. 꽤나 흥분한 모양이다. 공복이 그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아도 아니까, 패를 좀 더 상냥하게 다뤄줬으면 좋겠군"
무슨 주문같은 말이 아까부터 오가고 있지만, 흥미는 전혀 가지 않았기에 유우키는 거품을 뜨는 데에 전념한다. 토라지의 리퀘스트대로 쇠고기를 꽤 크게 썰어서 넣었기에, 거기에서 나오는 거품이 장난 아니다. 거품을 뜨는 구멍뚫린 국자같은 편리한 도구가 없기 때문에, 평범한 국자로 꾸준히 거품을 건져낸다. 이제 거품이 충분히 제거되었다고 생각할 때, 다시 토라지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단장─! 배고파─! 이제 못참겠다고 젠장─! 밥도 지어주마 요 녀석─! 우오오! 뭔가 도울 거 없어, 오오?!"
"이제 카레 루만 넣고 끓이면 되니까, 도울만한 일은 없어. 조금만 더 얌전히 기다려줘"
시판의 카레 루를 그대로 집어넣고, 약불로 조금씩 저으며 섞는다. 건더기가 너무 많아서, 아무리 저어도 잘 섞이지 않는다. 유우키의 상처는 사람이라면 꽤나 중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아닌 몸으로는 그저 손바닥 피부가 살짝 벗겨지고, 조금 찢어졌을 뿐이었다. 그래도 야채나 고기를 써는 일은 야마키가 전부 맡아서 해줬으므로, 카레를 만드는 과정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앞으로 30분 정도 끓일 예정이었지만, 토라지의 상태에 따라서는 10분 정도 빨라질 수도 있어보인다. 야마키도 아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배가 고플 것이다. 이따금 앓는 소리 비슷한 소리를 배에서 울리며, '배고프다……'라고 중얼거리는 중이다.
냄비를 보면서, 유우키는 오늘 있었던 일을 되돌아본다. 그 검은 아지랑이의 정체는 결국 모르는 채로 끝났다. 도망쳤을까, 아니면 그대로──죽어버렸을까.
죽일 생각따위, 전혀 없었는데. 그저, 사람의 세계에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으니까, 원래 살던 장소로 돌아가줬으면 했다. 그러기에는, 나의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실체가 없으면 붙잡을 수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그것만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젓지 않아도, 타서 늘러붙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어느샌가, 오오타가 부엌까지 와있었다. 마작은 잠시 쉬는 시간인 모양이다. 찬장에서 다섯 개의 그릇과 숟가락을 준비한다. 다섯 접시 중, 특별히 큰 접시는 야마키와 토라지 전용이다. 밥은 벌써 얹혀놨고, 지금은 뜸을 들이는 단계에 들어섰다.
"밥이 부족할 때의 준비는, 벌써 되어있나"
평소라면 이런 걱정은 야마키가 하는데, 오늘은 어지간히 지쳤는지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괜찮아요, 벌써 다 준비해 놨어요. 지금 올려둔 밥까지 다 먹어버린다면, 내일 아침 분까지 돌리죠"
"준비가 철저해서 좋구나. ……다들, 지쳤는지 솜씨가 미묘하게 평소랑 달라서, 꽤 재밌는 마작을 칠 수 있었어. 카레를 먹으면 또 솜씨가 어떻게 달라질지, 정말 기대되는군. ……그나저나, 요리가 잘 됐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감자 하나만 시식하게 해주지 않겠나. 내가 콩이 아닌 음식을 먹고 싶어하다니, 엄청 드문 일이라고? 어때"
"어때, 라고 말해도 안 되요. 선생님만 드시면 몰라도 토라 군이나 야마키 씨까지 오면, 시식만 하다가 다 먹어치울 테니까 참으세요"
"그거 아쉽군"
침착하게 보이지만, 오오타도 배가 고픈 것이리라. 공복을 호소하지 않는 사람은 카스미 뿐이었지만, 그래도 담배를 피우는 속도가 평소보다 빠르다. 화상을 입긴 했지만, 벌써 회복의 조짐이 보인다. 금방 낫겠지.
"……선생님, 그 검은"
"그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꽤 길어질 거다"
유우키의 말을 자르며, 오오타는 냉장고를 열었다. 카레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연두부를 꺼내고는,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묘한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는 유우키의 옆에 서서 카레가 끓는 냄비를 바라본다.
"그들의 세계라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세계에서 길을 잃어버린다면, 그러지 못하게 되버리지. 돌아갈 수 없어, 돌아가지 않아, 돌아가고 싶지 않아, 돌아가려고 하지 않아. 그런 것이 있으면, 반드시 알력이 생기지. 우리는 그 알력이 커지기 전에 대처했다……는 느낌이 드는군. 그 뿐일 이야기야. 우리는 일단, 경찰관이니까, 인간의 편에 서야 하기도 하고"
오오타는 카레의 냄새를 크게 한 번 들이키고는, 냄비에서 떨어졌다.
"이 이야기는 내일 다시…… 아니, 내일은 카스미의 꼬리를 찾으러 가야지. 나중에 하면 되겠지, 긴 이야기를 나누는 건. 너와 나, 그리고 다른 모두와 함께, 길고 긴 이야기를 말이야"
길다.
길고 긴 이야기.
언제나 했던 것 같으면서, 하지 않았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
그건, 그런 이야기.
이건, 그런 이야기.
……아, 그렇구나. 이건 꿈이었지.
엄청 옛날이라고 할 만큼 옛날 일은 아닌데, 3년이 넘도록 떠올리지 않았던 이야기. 슬픔도 고통도 쓸쓸함도 없는, 그저 동료들과 느긋하게 살았던 나날들.
저것은, 행복이었다.
내 삶 중에, 행복은 틀림없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제는 과거형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 속에 잠긴 이야기.
이제 그 나날이 찾아오는 일은 두 번 다시 없다.
행복도, 아픔도, 아무것도 없는 장소로 향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고 바랐다.
바라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좀 더 다른 행복한 꿈을 꿔도 좋지 않을까.
다른 행복.
……그 동료들과의 일상에, 등장인물을 아주 조금 더하면 된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어머니와, 두 번밖에 만난 적 없는 귀신 아버지를 더해보려 해봤으나, 아무리 해봐도 잘 되지 않는다.
서로 상처입히는 것밖에 하지 못한 채 죽은 뒤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동생과, 죽기 직전에 만나 몇 마디밖에 나누지 못한 동생을 더해보려 하니,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신세를 졌던 우라키나 이이다를 더해봤더니, 야마키와 오오타까지 가세해 마작을 시작할 것같은 느낌이 든다.
아카가와를 떠올렸더니 상처가 걱정되었지만, 사지가 멀쩡한 상태로 상상하면, 문제 없겠지.
두 번 조우했던 흡혈귀 프레드. 그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라 근처에서 고분이라도 보고 있을 것 같다.
안도는 어떨까? 그녀의 옆에 토라지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해봤더니, 호랑이 모습으로 돌아간 토라지에게 안도가 올라탄 구도로 되버렸다.
우츠로기는, 그저 조용히 드러누울 것 같다.
……그렇게 떠올리고 있자니, 두 인물이 공상 속에 나타났다.
마지막에 만났던 인간. 한 명은 이미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에게 있어서 그는 인간이다.
작은 여자아이와, 체격 좋은 청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나에게로 다가온다.
여자아이는 땅을 보면서, 마지못해 해준다는 느낌으로 청년의 손을 잡고 있다.
청년은, 상쾌한 미소를 나에게 보이며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보폭을 맞춰 천천히 걸어온다.
마지막으로 만나고 그다지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었다.
인사를 하자.
하지만, 지금 시간에는 아침인사를 해야할지, 점심인사를 해야할지, 밤인사를 해야할지.
그런 아무래도 좋은 일이, 신경쓰인다.
그리고, 내가 고른 인사는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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