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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7일 수요일

JK 하루는 이세계에서 창녀가 되었다 12화 외쳐라

 북쪽을 향해 직진으로 나아가자, 깊은 숲에 도착했다.

 말은 날 위해 조용히 걸어주었다. 그 흔들거리는 등 위에서, 시크라소 씨의 노랫소리가 머릿속에서 떨어지질 않아서, 계속 울었다.

 비는 아직 내리고 있다. 그래서 눈물도 멈추지 않는다.

 마법으로 밝혀진 화톳불을 더듬어 터벅터벅 나아가자, '멈춰라'라며 군인이 불러세웠다.

 "어……? 너,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지?"

 예전의 복실이. 지금은 빡빡이가 되어버린 그가, 말을 타고 온 나를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바보취급을 하듯이 웃는다.

 "웃기네. 아직도 부족해? 여자 주제에 말 같은 것에 타고"

 그건 당신이 갖고 있던 스킬 '승마능력+80' 덕분이야.

 말을 잘 탄다고 자랑하며 날 안아주던, 머리칼이 아직 부드러웠던 그때, 나는 조금이지만 당신이 좋았어.

 "아?"

 말에서 내리고, 그가 허리에 차고있던 검을 뽑고는, 어처구니 없어하는 그의 가슴을 찌른다.

 푹 하는 이상한 감촉이 손에 남았지만, 그 불쾌한 느낌을 내 마음속에서 죽인다.

 스킬 '레벨 바인드' 해제.

 목을 조르는 아저씨가 갖고 있던 스킬로 제어하던, 진짜 내 전투 레벨과 스킬을 해금한다. 검은, 예전 복실이의 등까지 간단히 꿰뚫었다.

 "아아아아악!"

 등에서 뿜어지는 피가, 그의 목숨을 증발시킨다.

 검을 뽑아내자, 가슴에서도 피가 흐르며, 복실이는 물웅덩이에 얼굴이 처박힌 채 물에 잠긴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그 싫은 느낌도, 마음속에서 지운다.

 "왜 그러나……? 뭐지, 네놈은!"

 다른 군인들이 내 존재를 눈치챈다.

 검을 고쳐잡고 무게를 기억한다. 머릿속에서 어떤 동작이 가능한지 정리하고, 이미지한다.

 우선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본다. 이게 레벨 상급자의 전투법이라고, 치바가 말했다.

 칼을 들고 달려드는 남자의 검을 흘려넘기며, 겨드랑이 아래를 찢어준다.

 비명을 지르며 구르는 남자를 내려보면서, 스킬 '스테이터스 리스트'를 사용해 시야에 리스트를 띄운다.

 눈앞에 있는 군인들──나와 잔 적 있는 남자들의 스킬이나 레벨이 표시되며, 태그처럼 그들에게 달라붙는다.

 스킬 '검기'의 +10 정도까지는, 여기 남자들도 흔히 들고 다니는 스킬이다. 나는 '검기+150'을 지니고 있다. 군인들의 동작은 보기만 해도 흉내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만났던 모험자들을 떠올린다. 술을 마시면서 무용담이나 기술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고, 개중에는 일부러 포즈를 취해보던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그 이미지와, 실제로 검을 잡아본 느낌과, 군인들의 움직임을 학습했을 뿐인데 나는 자유자재로 싸울 수 있었다.

 철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비명. 비에 섞인 채 숲에 울려퍼지는 남자들의 노성.

 시크라소 씨의 노래도 들렸다.

 "뭐야 이 여자는……"

 피범벅이 되어서 서있는 나를 보는 남자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군인다운 표정이 된다.

 "덮쳐라!"

 차례차례로 군인들이 덮쳐온다. 하지만 그 누구의 검도 내게는 닿지 못한다.

 피가 달라붙어 무거워진 검을 쓰러진 남자의 것과 맞바꾼다. 그 검은 금방 손에 익숙해지며 내 무기가 된다. 찌르고, 빼앗고, 벤다. 어디에서 몇 명이 오더라도, 하는 일은 똑같았다.

 "누군가 했더니…… 젊은 쪽 창녀인가. 꽤 솜씨가 좋은 모양이군"

 "스바야 십대장님!"

 턱수염 달린 남자가, 젊은 군인을 밀치며 앞으로 나온다.

 로리콘이며 발 페티쉬가 있는 사람. 기분 나쁜 놈이다.

 "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내 검을 막아낼 수 있을까?"

 입술을 핥으며, 로리콘이 웃는다.

 비에 젖은 내 발만 주목한다.

 "나온다! 스바야 십대장님의 신속발도술!"

 주위에서 쏟아지는 스포일러를 받으며, 턱수염 아저씨가 검을 들고 달려온다.

 이 아저씨의 스킬은 '속도+80'이다.

 참고로 나는, '속도+140'에다가 '정밀도+100', 그리고 '동체시력-神-'과 '반사신경-光-'을 갖고 있다.

 아저씨의 검을 가볍게 피하고, 허벅지에 상처를 내준다.

 뒤돌아봄과 동시에 한 번 더 검을 휘두르려던 아저씨가, 자신의 움직임이 둔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스킬──'스킬 죽이기'.

 젊은 재능의 싹을 발견하는 수완가로 정평이 난 깡통차기 링 협회의 회장 넷티네이티브 님이 가지고 있던 레어 스킬이다.

 상대의 특기를 문답무용으로 끊어내버린다. 내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도 없게 되버린 아저씨를, 베어버린다.

 "……괴물이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군인들이 공포에 질렸다고 한 눈에 알 수 있다.

 "후방 부대, 집결해서 진을 짜라! 괴물이다. 이놈,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닌 건, 너희들이잖아.

 우리는 그저 성실하게 일했을 뿐이야.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들──



 ──내가 창관에서 일하게 되고나서, 처음 손님으로 찾아온 사람은 신이었다.

 "놀랐어? 나야, 나─"

 뭐하러 왔어, 망할 놈아.

 라고, 쥐어박아주려 생각했고, 실제로 때려줬지만, 신은 실실 웃기만 했다.

 "아니~, 계속 네가 신경쓰였거든. 그때는 어쩐지 기분이 나빠보여서 말을 걸 수 없었는데,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진짜, 카톡같은 거 이쪽 세계에서도 시작해볼까 생각했고"

 제대로 돈을 지불하고, 날 안으며 신은 말했다.

 "네게도, 스킬, 아앗, 줘야겠다고, 읏, 생각해서, 하아, 솔직히, 스킬은 가챠 같은 거니까,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너라면, 으읏, 너라면 나도 굉장한 스킬을 뽑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아, 이제, 아껴둔 SSR가챠, 열어서, 엄청, 좋은 스킬, 줄 테니까. 아아, 굉장해, 좋아. 아니, 지금 이건 네 몸의 감상이야. 굉장해, JK, 좋다구, 으읏"

 신 주제에 조루라니 어떻게 된 거냐고 생각했지만, 그는 나한테 정액과 함께 스킬을 줬다. 굉장히 특이한 녀석을.

 "나왔다. 노 아더 스킬──'창조 임신'이야. 네 몸으로 남자의 정액을 받아들이면, 상대의 경험치와 스킬을 그대로 네 것으로 할 수 있어. 이름과 능력이 맞지 않는다던가, 이름이 구리다는 부분이 태클 걸 만 하지만, 앞으로 이 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네게 이것보다 유용한 스킬은 없으리라고 생각해. 많은 남자랑 자도록 해. 그리고 모든 경험을 네 양식으로 삼으렴. 우리 희망의 어머니가 될 자여"

 그런 것보다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달라고 난 말했다.

 신은, '정들면 고향이야~'라고 웃어넘겼다.



 그 뒤로 얼마간 신은 내가 있는 가게를 찾아왔다. 어쩌면 이 사람 진짜 나랑 하고 싶어서 이세계로 전이시켰다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자 전혀 얼굴을 비추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잊고 지냈다.

 스킬이라 해봤자, 내가 아무리 레벨을 올린다 하더라도 여자는 모험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에서 의미가 없어졌다. 유일한 수단이라는 회복 시스터의 스킬도 여자 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얻을 방법이 없었다.

 개중에는 엄청나게 도움되는 스킬도 있었는데, '아름다운 피부'나 '아름다운 엉덩이'가 정말 유능했고, 그 길드장네 도련님의 스킬이 '요리'였던 점이 가장 웃겼고 쓸모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전투계열 스킬이라 창녀 일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몬스터 사냥을 갈 수도 없고, 짜증나는 손님이 있어도 저항하다 상처라도 입히면 가게에 피해를 끼치게 되버리고.

 말괄량이 여자는 미움받는 세계에서, 이런 난폭한 치트 스킬은 쓸 일 없다고 생각했다.

 하면 할수록 강해진다니, 정액흡수권이냐는 느낌이었고.

 "거리를 벌려라! 혼자서 덤비지 마"

 그런데, 나는 강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해서, 누구도 나한테 이길 수 없으리라고 느껴졌다.

 "읏, 크, 학…!"

 사람을 베는 데에도 익숙해지고, 솜씨도 늘었다.

 기술이 레벨에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검이 가볍게 느껴지고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몸도 생각 이상으로 잘 움직여진다. 이미지와 현실의 동작이 깔끔하게 싱크로한다.

 "사, 사로잡았다!"

 검을 쳐서 떨어트린 단발의 군인이, 맨손으로 날 뒤에서 붙잡는다. '체술+50'의 자신있는 실력으로 옭아맨다.

 나는 그의 옆구리를 엄지로 찌르고, 발을 걸어 엎어친 뒤 목을 베었다.

 내 체술은 '+120'이니까. 잠자리 기술은 원래부터 잘했는데.

 "잘도, 잘도 동료들을!"

 젊은 군인이 외친다. 뭐가 동료냐 섹스 서클의 군인이.

 이쪽 세계에서는 원수를 갚는다거나 반격하는 정도는 무죄잖아?

 나도 시크라소 씨의 원수를 갚는 중이야. 죽고 싶지 않거든, 제대로 반격해서 죽여보라고.

 "파이어, 5연발, 받아라!"

 눈앞이 빨갛게 물들며, 불꽃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공기막에 충돌하고, 내 몸에 닿기 전에 이미 무효화된다.

 "토, 통하지 않아……?"

 스킬 '공격 마법 무효'──치바의 스킬이다.

 그 녀석의 '경험치 16배'도 '상태 이상 무효'도 전부 받아두었다. 어떤 마법 공격도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치트는 치사하다. 다들 몇 년 걸려서 쌓아올렸을지 모르는 경험치를, 나는 하룻밤만에 남자들에게 거두어들였다. 게다가 돈까지 받았으니 진짜 치트였다.

 더욱이 나에게는 레벨 캡이라는 제한도 없다. 씨름부가 가지고 있던 초 레어 스킬 '레벨 무제한'이, 나를 무한으로 레벨업 시켜준다.

 처음에는 무제한이라는 게 뭘 뜻하는지 몰랐지만, 치바가 레벨 91에서 성장이 멈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진짜 폭소할 뻔했지.

 전에 손님한테 들은 적 있는 짧은 주문을 읊는다.

 차가운 빛이, 손바닥에서 주르륵 흘러넘치며 퍼져간다.

 스킬──'빙마법' 발동.

 "뭐야, 설마… 이 녀석, 마법도 쓸 수 있었다니!"

 땅 아래 있는 수분을 얼려서, 군인의 발을 구속한다.

 스킬 '풍마법'도 발동. 코야마 커터가 그들을 덮친다.

 "뭉치지 마라, 산개해! 한 번에 당하겠어!"

 프로 군 마법사도, 내 마법에는 상대도 안 된다. 배운 적 없지만, 남친한테 빌렸던 드퀘의 마법처럼 간단히 응용할 수 있었다.

 왜냐면 스킬 '현자의 지혜'도 갖고 있었으니까.

 내가 깡통차기 링으로 바빴던 시기에, 적당히 먹고 버린 손님 중 누군가가 가지고 있었던 스킬이다.

 군인이 몇 명인가 덤벼들었지만, 나한테는 상처 하나 내지 못한다. 일방적으로 내게 당해 쓰러질 뿐이다.

 이 세계에서는 스킬이 중요하다고 치바가 말했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강한 힘도 중요하겠지.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설마, 하루쨩이 이렇게 강했다니. 놀랐어"

 비스크가 천천히 앞으로 나오며 웃는다.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넌 이걸로 우리 중대의 절반을 죽였어. 슬슬 마음도 풀리지 않았어? 서로 같은 고통을 맛봤으니까. 이제 대화로 해결해야하지 않을까?"

 검을 허리춤에 찬 채로, 대화를 하자며 그가 접근한다.

 나는 검을 잡으려는 손이 떨리는 것을 겨우 억누른다.

 "시크라소에게는 정말 미안한 짓을 했다고 생각해. 물론 하루쨩한테도. 하지만, 우리 입장도 이해해줬으면 해. 보는 바와 같이 죽음과 마주해야하는 위험한 일이야. 전선에 나가면 동료 밖에 믿을 게 없어. 부대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상관의 명령이 절대적인 세계에서, 나도 중간 계급의 대원으로서, 결속을 제일로 생각해야 해. 개인의 행복도, 때로는 부대를 위해 헌납해야만 하는 때가 있는 법이야. 그녀도 이해해줬어. 진짜야"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조금도 찔리는 것 하나 없다는 표정이다.

 이놈의 이런 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알겠다. 안겼으니까, 알아버리고 말았다.

 이 남자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고 있지 않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죄악감도 후회도 없다. 빈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 이 말은, 텅 빈 채 살아온 그에게 있어서는 진심인 것이다.

 "우리도 진심으로 시민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에 있는 거야. 하지만, 적은 무서운 괴물이고, 조직 속에도 언제나 긴장과 공포가 있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싸우는 거야. 그건 너희들 창녀도, 시크라소도 마찬가지일──"

 마지막까지 나불대기 전에, 내 검이 비스크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는 한 순간, 얼굴을 찡그렸지만, 금방 평소의 미소로 돌아와서는 '아쉽네'라고 말했다.

 스킬──'감정 죽이기'.

 비스크에게 괴롭다던가 슬프다던가, 인간다운 감정 따위 처음부터 없었다. 안 좋은 감정은 생기자마자 죽여버린다. 좋은 감정만 남겨두면 된다.

 굉장히 편리하고, 최악인 재능이다. 나도 이 스킬 만큼은 두 번 다시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너도, 이딴 스킬은 버린 다음에 죽어.

 "으읏…… 아악!"

 스킬 '스킬 죽이기'.

 나는 비스크로부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우고, 검을 뽑았다.

 "아악, 젠장, 아파…, 아, 아아악!"

 그는 물웅덩이에 고꾸라져서, 발버둥치고, 괴로워하며, 마지막에는 약해진 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시크……라소……"

 그의 손은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진흙탕 위에 떨어졌다.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던 시크라소 씨의 노래가, 그 순간 멈췄다.

 ──바보다.

 이런 세계, 정말 바보 같다.

 "진짜 싫어, 당신들 따위!"

 마법과 검이 교차하는 빗속을, 나는 베어넘기며 전진한다.

 고성을 지르며 날뛰었다. 화내지 않으면 가슴이 괴로워서, 기분이 나빠서 토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해했다. 기분 나쁜 정체를 알았다.

 나는 이미, 이쪽 세계의 인간이구나.

 "진짜 싫어…… 진짜 싫다고!"

 분명, 그 방과후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아침까지 카톡으로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어. 언니랑 드라이기 쟁탈전을 하느라 지각할 일도 없어. 아빠랑 엄마한테 혼나는 일도 없어. 남자친구의 축구도 응원해줄 수도 없어.

 피를 뒤집어쓰고 날뛴다. 땀으로 범벅이 되서 남자와 잔다.

 코야마 하루는, 그냥 하루가 되서,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히, 히이이이익"

 숲 가장 깊은 곳, 전선 곁에 세워진 텐트 안에 백대장이 숨어있었다.

 텐트에 불을 질러줬더니, 허리가 빠져서 튀어나왔다. 이런 어린 계집애가 노려본 정도로 비명을 지르면서.

 그렇지. 당신의 정체, 안겨봤으니까 나 안다고. 다 보인다고.

 레벨15짜리 쪼렙. 그게 진짜 당신이야.

 "그, 그만둬. 누구 없느냐. 나, 나를 지켜라! 히익!"

 나는 양손에 마법의 알을 띄운다.

 오른손에는 파란색. 왼손에는 빨간색.

 치바에게 원한을 품었던 푸른 수염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스킬 '빙설계 소환 정령 시빌라 유니코'와, 고양이를 좋아하던 대장간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스킬 '화염계 소환 환수 가네그 드라고'. 그리고 변태 음유시인 오빠의 스킬 '듀얼 스펠'로 동시에 영창한다.

 마법의 알은 달과 태양을 늘어놓은 것처럼 눈부시게 팽창한다. '공격 마법 무효'인 내 주변을 얼리고, 불태우면서, 조금씩 조금씩 백대장에게 다가간다.

 허리가 빠져버린 그의 머리 위에서, 마법이 알의 껍질을 뚫고 나온다.

 "그, 그만, 싫어어어!"

 "──남자잖아?"

 날개를 편 두 마법 생물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숲이 진동한다. 나무들이 녹아내리듯 사라지며 하늘을 넓힌다.

 "섹시한 신음 질러대지 말라고!"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청색과 적색의 빛이 부딪히며, 새하얗게 퍼져간다. 빛은 나까지 집어삼키더니, 이전 세계의 광경을 차례차례 띄우고는 흘러가버렸다.

 빛이 사라지자, 백대장은 사라졌고, 어두운 숲에는 나 홀로 서있었다.

 숨을 토해내자 괴로워서 숨이 막혔다. 온몸이 아프고, 지팡이 대신으로 삼고 있던 검도 무겁다.

 하지만, 비는 그치지 않고 쏟아진다.

 숲은 호흡하듯이 술렁거리고, 암흑 속에 기분 나쁜 기척이 꿈틀댄다.

 이곳은 몬스터가 나타나는 전선이고, 경비를 하던 부대는 전멸했다. 배를 주린 짐승의 호흡이, 비린내를 풍긴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똑바로 나를 노려보는, 굉장히 차가운 눈이 어둠 저편에 있다. 그 시선 앞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물의 기척이 있다.

 해방 직전의 우리.

 다들, 나를 원하며 콧김을 내뿜는다.

 ……좋아. 이리 와. 너희도 이대로는 잠들지 못하겠지?

 안아줄게. 창녀인 내가 아침까지 상대해줄게.

 단, 절대 천국으로는 보내주지 않을 거야.

 오늘 밤, 편히 잠들 수 있는 건──시크라소 씨 뿐이야.

 숲 깊숙한 곳에서 떠돌던 기척이, 크게 부풀어오르더니 사라진다. 계속 꽂혀있던 차가운 시선도, 순식간에 부드러워진다.

 비도 갑자기 멎었다.

 갑자기 커다란 울음소리가 지면을 뒤흔들고는, 마물 무리가 풀려난다.

 왼손에는 번개. 오른손에는 피칠갑된 검을 쥐고, 나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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