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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4일 화요일

JK 하루는 이세계에서 창녀가 되었다 외전 1화 언젠가 히어로처럼 널 구하고 싶었어

 《트럭 폭주 사고까지 6시간 45분》



 어젯밤 사투가 이어지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껄끄러운 아침. 구름이 낀 하늘은 어둠의 잔향을 뿌리듯 태양을 가리고 있다. 나로서는 마음에 드는 쌀쌀한 날씨. 고등학생이라는 주간 직업(생업)에 어울리는 표정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입 안에는, 아직 희미하게 피 냄새가 남아있지만.

 피는 쇠 맛이 난다.

 아니, 철이었나? 뭐 나는 어느쪽이든 먹어본 적 없으니 모르겠지만. 어째서 금속의 맛이냐고. 거짓말 같단 말이지. 그보다 피에 맛이 느껴진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상처도 없었고, 밤새 애니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었을 뿐이다. 졸려라.

 근처 식자재마트에서 산 싸구려 콜라를 마시면서 버스에 탄다.

 동시에, 재빨리 시선을 훑는다. 나랑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노인들 뿐이다. 수상한 녀석은 없다.

 혹시라도 버스 강탈을 일으킬 법한 남자가 버스 앞에 타고 있다면, 나는 우선 뒷좌석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회사원을 공범자로 특정하겠지. 하지만 그런 녀석은 없었다. 있을 리가 없지. 버스 출발.

 평범한 고등학생 놈들을 쑤셔담은 버스 안은, 시시껄렁한 잡음으로 가득찼다.

 특히 커플로 보이는 남녀의 대화 따위는 듣기 싫은 노이즈다. 내 안에서 소리를 완벽하게 없애버린다. 부러우니까.

 클럽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선후배 간의 대화도 굉장히 짜증난다. 그런 외계식품 같은 음료를 빨대로 쮸웁쮸웁 빨아대는 너희들보다, 1.5리터 짜리 페트병에 든 어디 메이커인지도 모를 콜라를 마시는 내가 훨씬 더 쩔거든.

 페트병을 겨드랑이에 끼우며, 출입구 근처 난간에 몸을 기대고 책을 펼친다. 책 커버 같은 쓸데없는 것은 히로인에게 실례가 되므로 나는 씌우지 않는다. 너는 좋아하는 아이의 얼굴을 가린 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나? 책 커버 너머로 끌어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끌어안고 싶으니까 빨리 배게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평소라면 애니화가 되던 때에 그녀의 목소리로 캐스팅된 성우의 앨범도 들으면서 읽었을 테지만, 어젯밤 라디오에서 내가 보낸 메일이 씹혔다는 사실에 열받아 헤드폰을 던졌더니 박살이 나버렸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빨리 나도 이세계로 가서, 히로인의 목소리를 생으로 듣고 싶다.



 "아─, 그거 알 것 같은데. 미나미 고등학교 축구부지. 나 친구인데, 아마도"



 A6용지의 세계에 몰두하던 사이에 다음 버스 정거장에 도착해, 여학생들이 잔뜩 올라탔다.

 난 바로 책 표지로 얼굴을 가린다. 딱히 이유는 없다만, 같은 반 여자애랑 교실 밖에서 마주치는 건 스트레스니까 스텔스를 유지하기로 했다.

 덕분에 들키지는 않았지만, 내 옆을 지나갈 때, 뭐라고 하나, 엄청, 그, 좋은 향기가 나서 쫄았다.

 뭐지 저 녀석. 변태냐고. 뭘 뿌리면 그런 과자 같은 체취가 날 수 있는 거냐.

 코야마 하루 녀석.

 "봐봐 카톡 왔잖아. 이거, 이 얼굴 맞지?"

 "맞아─. 하루, 어떻게 알게 됐어? 쩐다─"

 "남친이랑 아는 사이라서, 그냥저냥. 축구부니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 쯤이야, 그렇게 자랑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나는 교실에서도 고고한 존재고, 현실의 생명체에는 별로 흥미 없으니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코야마 하루인지 뭔지하는 저 그룹은 목소리가 커서 대부분의 프로필은 안다.

 지금 남자친구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두 번째라는 사실이라던가. 그리고 어째서인지 굉장히 먼 곳에서 버스 두 번 환승해 통학한다던가.

 코야마 하루라는 여자애는, 못생긴 녀석들 뿐인 우리 반에서 그나마 멀쩡한 얼굴이고, 언제나 우글우글 몰려다니는 녀석들의 중심에 있어서, 싫어도 눈에 띈다. 덕분에 머릿속 어딘가에 정보가 남아있을 뿐. 딱히 흥미는 없었다.

 난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 내심 한숨을 쉬며 이세계로 돌아갔다. 삽화로 그려진 이세계 히로인이, 공주기사 드레스를 입고 팬티를 드러내며 주인공과 팔짱을 끼고 있다.

 이런 차림이 어울릴 법한 여자, 현실 세계에는 그리 많지 않다.

 반에서 딱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다.



 《트럭 폭주 사고까지 6시간 32분》



 돼지 우리 같은 교실로 들어선다. 테러리스트는 없다.

 오늘도 평화롭다. 그런 재미없는 대사를, 언제까지 나한테 시킬 셈일까. 배움의 터라는 이름의 동물원 같으니.

 "우와 깜짝이야?!"

 하얀 동물이, 갑자기 눈앞을 가로지르며 벽을 향해 뛰어오른다. 공이다. 아마 야구라고 하는 구기종목의.

 "오, 치바. 미안, 공 좀 던져줘"

 엑스트라 남자 녀석이 나를 향해 손을 벌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공을 주워서 던져줬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무겁잖아. 어깨에 안 좋을 것 같은걸.

 "땡큐"

 녀석은 곧바로 다른 엑스트라와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자 그럼, 나는 생각한다.

 우선 이 녀석 나한테 사과는 했나? 아, '미안'이라고 말하기는 했었지. 공을 주워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는? 그것도 말했지, 분명.

 그럼…… 화를 낼 이유는 없군. 목숨을 건졌구나, 녀석. 내가 화나면 진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하지만, 어째서일까. 부글부글한다. 어째 얕잡아보였다는 느낌이 든다.

 그보다 그건 사과라고 할 수 있나, 방금 그게? 좀 더 정중하게 할 수는 없냐고. 난 엄청 놀랐고, 바닥에 떨어진 공도 주워다 줬다고.

 "어, 왜 그래?"

 지긋이 노려봤더니, 녀석이 돌아보며 말한다. 놀래라. 나의 '념'을 감지해낼 정도의 적성은 있는 듯하군.

 나는 '아무것도 아냐'라며, 뻣뻣한 미소와 함께, 그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목숨까지 빼앗을 생각은 없었으니, '념'으로 충고만 남겨두기로 했다.

 편리한 능력이다. 불필요한 전투 없이 끝나니까.

 뭐, 이렇게 개성적인 덕분에, 난 반에서도 고고한 존재 취급을 받지만.

 "오, 왔네"

 가방을 내려두자, 옆자리 남자애가 친근하게 말을 건다.

 세키구치라고 하는, 이 반에서 나와 대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없는 남자 중 하나다. 즉, 위험한 녀석들로 가득한 이 학교에서도, 특히 위험한 녀석이다.

 "봤냐?"

 라고, 세키구치가 묻는다. '봤어'라고, 나도 짧게 대답한다.

 "헷헤헤~"

 그리고, 지고의 시간을 공유해온 동지의 웃음을 띄운다.

 어젯밤의 하늘던(심야 애니메이션 '하늘색 던전 ~세컨드 투어~')는 킹갓이었다. 그 씬은 일본 메디어 역사상 길이길이 화자되리라 생각한다. 아니 영원히. 구체적으로, 엄청 최고였다.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유후밍이 '만지고 싶으세요?'라면서 가슴 들이밀던 장면──"

 "구름의 골렘한테 용 공정단이 돌격하던 씬──"

 의견이 충돌했다. 가치관의 폭주 사고다.

 세키구치가, 안경을 드리블하듯 몇 번이나 고쳐쓰며 얼굴을 붉힌다.

 "너는 야한 것만 밝히는구나!"

 "아니아니, 아니야. 드립이지. 나도 당연히 그 장면이야. 용 공정단의 그거!"

 아니, 그게 그렇게 대단했나? 오히려 유후밍의 우유통이 흔들리는 장면이 진짜 신들린 작화였잖아.

 하지만 세키구치한테 변태라고 놀림받는 것도 싫으니, 이야기를 맞춰줘야지.

 "그래, 그 장면에서 단장의 대사가 쩔었다고! 그리고 부단장의, 눈치챘다는 그 느낌"

 세키구치는 자기가 더 신나서 뜨겁게 열변을 토한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거나, 유후밍을 생각하면서 적당히 흘려들었다.

 한 번 사고가 나버리면, 좋아하는 애니에 대한 이야기도 어째 불편해진다. 세키구치는 싫지 않지만, 남의 기분을 파악하는 센스가 부족하단 말이지. 정말로.

 교실 한가운데에서는, 코야마 하루 집단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중이다. 방금 전 야구 엑스트라가 그녀의 등에 공을 넣는 장난을 쳐서 얻어맞고 있었다.

 나는 세키구치와의 대화에 집중하며, 가능한 큰 소리로 떠들었다.



 《트럭 폭주 사고까지 4시간 7분》



 후아~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기지개를 편다.

 정말, 재미없는 수업이다. 현대 사회 따위 배워봤자, 사회에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아니, 어딘가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재미없다고. 정치라던가.

 심심하니까, 뭐, 코야마 하루 쪽을 쳐다본다.

 턱을 괴고 노트에 뭔가 적고 있다. 추측이지만 수업이랑은 관계없는 것. 선생님 얼굴이라던가, 시시껄렁한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까. 본 적은 없지만. 그런 재미없는 떡밥으로 재밌어하는 녀석들이다.

 교실이라는 세계는 좁다. 그 비좁음을 아는 녀석이 얼마나 될까.

 이곳을 세상 전부라고 착각하고, 지배자라도 된 양 행동하는 녀석들은 잔뜩 있지만, 자신의 왜소함은 모르겠지.

 코야마 하루도 그 중 하나다.

 라고, 다들 생각하겠지. 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나는 느꼈다.

 왜냐면, 때때로 엄청 차가운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숨쉬고 있다. 제 생명과 정신을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몰고간 적도 있다. 그런 경험자의 눈이다.

 나도 그랬기에 알 수 있다.

 코야마 하루는 어쩌면──사실은, 우리랑 애니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 교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뜨뜻미지근한 기척이 내려온다. 그림자처럼.

 그 '징조'가 몸에 닿기 직전에, 난 바닥을 차고 천장까지 뛰어올랐다. 등 뒤의 칠판에 금이 가면서 박살남과 거의 동시였다.

 아주 미세한 벽과의 틈새에 발현한 것은, 칠흑의 장수도롱뇽과 닮은, 소형 자동차 정도 크기의 생물이었다.

 아니, 생물이라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다. 이 녀석은 이세계에서 보낸 스팸 메일. 인류 말살을 목적으로 하는 자립형 적대 정보 집합 군체 '웜'이, 생물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녀석 크기가 너무 크다. 필터가 작동하지 않나? '파이어 월'의 공무원 놈들은 뭘 하고 있는 거냐.

 산산조각이 난 교실과 책상. 방금 전까지 같은 반이었던 녀석들이 한 방에 몇 명이나 사라졌다. 천장을 박차고 놈의 등 뒤로 다가간 나는, 벨트에서 '어베스트 건(ver.재판하는 포효)'을 뽑아 조준했다. 동시에 핸드폰을 켜 어플 기동을 확인한다.

 내 파트너가 만들어준 이름 없는 어플이다. 이 어플이 어베스트 건의 반응으로부터 파이어 월의 데이터 베이스를 검색해, 웜의 정체를 파악하고 백신 프로그램을 정제해준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국제 지명 수배를 받는 유명한 미소녀 천재 크래커라고는 해도, 과연 세계 총합 방위 기구의 서버에서 어플 하나로 끌어올 수 있는 정보는, 1세대 전의 백업 카피본이 한계다. 이 웜이 최신종이라면 두 손 들어야 한다.

 웜이 두터운 목을 돌리며 나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안경이, 입 끝에 걸쳐져있다.

 거짓말이지──.

 내 옆에서, 언제나 애니 이야기만 하던 악우의 음흉한 웃음이 어른거린다.

 시야가 핏빛으로 물드는 감각. 하지만 이성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한다. 분노하지 마라. 또 도시 하나를 괴멸 상태로 만든다고. 그런 고통은──인생에서 세 번이나 저지를 필요도 없지.

 하지만 나쁜 소식이 계속된다. 데이터 베이스 조합 결과는 '검색 결과 없음', 즉 적은 신종(조커)이다.

 내심 혀를 차며 발포한다. 꾸준히 방아쇠를 당신다. 어베스트 건과 어플로 닥치는대로 검증하고, 이 녀석의 백신이 정제될 때까지 총알을 때려박을 수밖에 없다. 죽일 수 있을 때까지, 쏘고, 쏘고, 또 쏜다.

 다른 학생들도 겨우 사태를 파악했는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반응이 느리다고. 내가 막고 있는 사이에, 얼른 꼬리 말고 도망가란 말야.

 웜은 나를 타겟으로 정했는지, 창 같은 촉수를 입에서 몇 가닥이나 뽑아냈다. 처음 보는 공격 패턴. 난 바닥이나 책상을 박차 피하면서, 놈의 몸에 꾸준히 총알을 맞추며 데이터를 채취한다.

 어플에는 에러 로그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필터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완전 신종인가? 아니, 설마. 대규모 변이 창조에 필요한 정보는, 삼 년 전에 우리가 박살냈을 텐데.

 아니면, 완전히 박살내지 못하고 놓쳐버린 또 하나의 가능성, '아(亞)DAM'가──

 "사, 살려줘어어"

 꼴사나운 목소리가 도움을 청한다. 야구 엑스트라 녀석이, 허리가 빠졌는지 책상 밑을 기어가고 있었다.

 쳇, 뭐하는 거야.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쑤셔넣고, 등에서 다른 한 자루의 블래스트 건(ver.무음의 광란)을 뽑아든다. 둘 다 2세대나 지난 베레타 모델이지만, 개조해서 내게 맞도록 조정해두었다. 너무 요란하게 저지르면 파이어 월 놈들에게 들킬 우려도 있지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양손으로 발포하면서, 책상을 밟고 뛰어오른다. 뻗어오는 촉수를 회전해 피하고는, 야구 엑스트라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빨리 도망가, 엑스트라!"

 "고, 고마워 치바 군!"

 허둥대며 기어나가는 녀석의 방패가 되어주면서 연사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백신은 맞지 않았다. 배터리 잔량이 부족하다며 깜빡이기 시작했다.

 어이어이. 모처럼 크게 날뛰었는데, 내 쪽이 먼저 앓는 소리 나 내뱉는 괴짜 녀석처럼 된다니, 웃을 수 없는 엔딩이잖아.

 아니,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난 맨 처음 발로 차부순 천장 안에 숨겨두었던 예비 배터리를──



 은빛 칼날이, 웜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가른다.

 움직임이 멎은 검은 몸체가, 스르륵 반으로 갈라지며, 내용물인 정보체가 흘러넘친다.

 무너져내리는 몸체 위에 서있던 것은,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였다. 오른손으로는 일본도의 레플리카를 쥐고 있다. 불꽃과 오망성 본뜬 무늬는, '파이어 월' 정식 장비라는 증거다.

 짧은 스커트를 펄럭이며 착지하고는, 그녀──코야마 하루가, 최신형 에버스트 건을 뽑아들더니 등 뒤 바닥에 타르처럼 퍼져가는 정보체의 잔해를 쏜다.

 아니, 잔해가 아니었다. 모자이크 상태로 파문을 넓혀가더니, 활동 반응을 나타내면서 소멸했다.

 그쪽이 본체였냐. 즉 적은 최신종인 '트로이'다. 내가 본체라고 생각하고 공격하던 것은, 단순한 물리 공격 정보체 뿐인 외장이었다는 말인가. 그래그래, 정보가 부족해서 미안하게 됐네요. 어쩔 수 없잖아 무소속인걸.

 클리닝된 현세의 정보. 즉 집어삼켜진 세키구치 등 학생들의 육체도 무사히 복원되었다. 이제 그냥 내버려둬도 눈을 뜨겠지. 나도 그냥 죽게 놔둘 정도로 못된 놈은 아니고.

 코야마 하루가, 총을 내린 내 눈앞에, 레플리카 일본도의 칼끝을 들이민다.

 "자─, 그럼. 당신, 일단은 화이트 해커인가보네? 하지만 사용하는 장비도 어플도 전부 위법이야. 미안하지만, 그런 쪽 단속도 우리 일이거든"

 설마, 고등학생 무소속 해커가 같은 반에 있었을 줄이야. 라면서, 코야마 하루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나도 '전문가'가 같은 반에 있다고는 생각도 못해봤다. 게다가 여고생으로 위장이라니 악취미잖아.

 "같이 와줘. 본부에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으니까"

 "이야기 하자는 분위기가 아닌데"

 "그건 당신 태도에 따라 달라지겠지"

 그럼, 이야기는 글렀는걸.

 이세계로부터의 정보 침략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중, 완벽한 정보 통제야말로 '가장 안전한 대책'이라고 씨부리는 세상에서, 어째서 나 같은 무소속 해커가 필요한가. 공무원이나 하는 놈들은 모르겠지.

 뭐, 나도 그런 설정은 아직 생각해두지 않았으니까, 잘 모르지만.

 "미안하지만, 난 그만 가볼게. 선생님한테는 조퇴라고 말 좀 해줘"

 "하아? 당신, 무슨 헛소리를──"

 어플 기동. 몰래 준비해둔 소형 웜을 풀어준다. 발생 장소는, 반 전원이 참가중인 SNS 그룹에 올린 스탬프. 내가 주는 작별 선물이다.

 "어?"

 코야마 하루는, 핸드폰을 스커트 주머니에 넣어둔 모양이다. 아쉽게 됐네.

 그 녀석은, 화학 섬유를 엄청 좋아하거든.

 "자, 잠깐, 뭐야 이거?!

 새빨간 팬티를 다 드러내고 만 코야마 하루에게, '미안'이라고 가볍게 사과한 뒤 창문으로 뛰어내린다.

 바로 아래에 지프차 한 대가 재빨리 굴러온다. 파트너인 미소녀 크래커 '침략 미러'가, 고스로리 복장에 고글이라는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는 패션으로 핸들을 잡고 있다.

 "기다려!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치바 세이지. 두고보라고~"

 이런이런. 나름 즐거웠던 고등학생 생활(놀이)도, 여기까지인가───



 라는 시점에서, 수업종이 울렸다.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는 교실. 망상을 중단한 나는 책상 위에 엎어져, 일단 지금까지의 스토리의 고증을 시작한다.

 흠. 팬티 색깔은 하얀색이 좋았으려나. 그 녀석, 저렇게 보여도 처녀고.



 《트럭 폭주 사고까지 2시간 12분》



 "세키구치랑 치바가 오늘의 장보기 담당이네. 나도 같이 갈 테니 부탁할게"

 야구 엑스트라가 갑자기 말을 걸어온 탓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뭐, 괜찮기야 하지만.

 학교 축제인가 뭔가 하는, 학교 지방 전통의 축제가 곧 열린다는 모양이다. 나로서는 전혀 흥미 없지만, 일단은 장보기와 대도구 담당이라는 직함으로 임명되었다.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있었다. 뭐라고 하나, 다들 뭐라도 해야지 라는 그런 분위기로. 학교의 그런 시스템 구닥다리라니까. 나 같은 고고한 사람을 위한 장소도 준비해달라고. 집단 행동 같은 건 싫단 말이야.

 "그리고 여자 쪽은 하마자와랑, 아이리랑 모카, 방과후 부탁 좀 할게"

 어, 여자도 와?

 하마자와는 세키구치랑 같은 중학교 출신으로 전에 한 번 같이 카드 이야기를 한 적 있는 여자애다. 나머지 둘은 잘 모르고. 남녀 세 명씩이라 그건가.

 뭐야, 그게. 방과후에 남녀 같이 쇼핑이라니 제정신인가? 고등학생이냐.

 학교 축제라고 너무 들떴다고, 너희들. 어째서 내가 여자 따위랑 거리를 걸으며 산 짐을 들어주고 그래야 하냐고.

 어차피 중간에 누군가가 게임 센터 들렀다 가자고 말하겠지. 저 야구 엑스트라 자식이 말할 것 같잖아.

 뭐냐고, 그게. 어째서 내가 같은 반 여자애 앞에서 카드 게임을 해보여야 하냐고. 랭커라는 사실 들키잖아. 그런 자랑 같은 짓은 하기 싫다고 말했는데.

 "에~"

 방금 지명된 여자가, 반쯤 웃으며 '힘들어'라는 말을 꺼낸다.

 "멤버진 뭐야. 실화냐?"

 "의미를 모르겠네. 뭘 어떡하면 그렇게 되는데?"

 "아니, 장보기는 순서대로 돌리자고 정했잖아. 그냥 그뿐이라고"

 "그러니까, 왜 우리가 이번 차례냐고. 웃기네"

 여자들이, 우리쪽을 보며 싫다는 듯이 웃는다. 우리쪽이라고 해야하나, 세키구치 쪽이라고 해야하나. 가차없구만, 내 친구한테.

 나야말로, 너희 같은 족속과 같이 걸어다니기 싫다 이거야. 거울 좀 보고 오지 그래.

 "아, 잠깐. 나도 갈래!"

 분위기 곱창난 순간, 어째선지 갑자기 코야마 하루가 손을 들고 말했다.

 다들 벙 찐 표정이다.

 "왜? 하루는 무대 출연자니까, 잡일은 면제인데"

 "아니, 나 미스콘에도 나가니까. 까먹고 있었는데, 모처럼이니까 풍성풍성 가발이랑 딱 달라붙는 옷도 입어보고 싶어서. 경비 대주라"

 "무슨 헛소리야. 그래도 뭐 하루니까 괜찮겠지"

 "분명 잘 먹힐 거야, 그거~. 우리도 같이 고를 테니까 가자"

 아니, 전혀 안 먹히지. 씨알도 안 먹히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기보다, 미스콘 같은 외관만 평가하는 이벤트에, 굳이 컨셉 따위를 넣을 필요가 있냐고.

 그런 점은 살짝 열받는다. 콘테스트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여유감이, 오히려 화를 돋군다. 나야 딱히 별 상관은 없지만, 조금은 필사적으로 되어보라고. 골라준 우리도 생각해달라고.

 모두에게 주목받아서 사실은 기쁘면서. 카스트 꼭대기층답게 행동하면 될 텐데. 나는 그런 시시한 것에 관심 없지만.

 아니 그보다, 기왕에 산다면 수영복이지. 미스콘이니 수영복 심사도 당연히 있을 텐데. 나는 잘 모르지만. 그리고 그거잖아. 학생회장이나 교장 같은 권력을 지닌 에로 캐릭의 책략으로 살짝 에로한 해프닝이 일어나거나 해야지. 나는 잘 모르지만.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들의 대표기도 하니, 나도 보러 갈 테지만. 간다고, 미스콘.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하필이면 내가 당번일 때에 함께 사러 간다니, 대체 무슨 속셈이지, 코야마 하루?

 설마하니, 내 행동을 감시하려는 건 아니겠지?

 만약을 위해, 나도 경계하도록 할까. 어쩌면 수영복을 고르는 이벤트가 발생한다던가, 그런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흥미조차 없지만.

 "예산 별로 없으니까 싼 걸로 사. 아프로 가발 같은 거"

 "에─. 뭐, 상관없겠지. 나 아프로 살래"

 수영복 사라고…….



 《트럭 폭주 사고까지 20분》



 드디어 방과후인데, 어째서 반 놈들과 어울려야 하는지, 정말이지.

 뭐, 부탁받았으니 어쩔 수 없지. 후다닥 가서, 후다닥 끝내자고. 나는 바쁘니까. 뭐 일단, 같은 반 녀석들과 밥 먹고 들어간다고 엄마한테 카톡은 해놨지만. 빨리 하자고, 갈 거면.

 "있지, 카톡에 이상한 거 왔는데, 이거 뭐 같아?"

 "뭔데 그래 하루? 아 웃겨라. 그거 카톡겜 광고잖아. 상대해주지 말라니깐"

 "상대는 안 하지만, 요전부터 계속 이런걸"

 "차단하지 그래?"

 "했어. 그런데 금방 다른 계정으로 온다니까. 어떡하면 좋을까?"

 아니 그런데, 언제까지 교실에서 노닥거릴 생각이냐고. 나는 계속 가방메고 있는데,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냐. 하마자와나 세키구치도, 아까부터 말이 없잖아. 쟤들, 긴장했다니까. 불쌍하기도 하지. 빨리 말 걸어주라고.

 수업종이 울린 뒤에도, 저 녀석들 놀기만 하는 거 보니 일은 완전 까먹은 모양이다.

 학교 축제는 코앞이라고. 반 전원이서 성공스럽게 끝마쳐야 할 일이잖아. 나를 불러세운 것도 너희들이잖아.

 "칫"

 나는 혀를 차며 창틀에 기댔다. 아무도 듣지 못한 듯해서 한 번 더. 칫.

 "아, 잠깐. 이런 거는 쟤가 잘 알잖아"

 야구 엑스트라가 갑자기 돌아보길래, 나는 깜짝 놀라 목에 뭔가 걸린 척을 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내가 아니라 세키구치가 목적인듯, 뻘쭘하게 서있는 그의 주변을 여자애들이 둘러싼다.

 나는 경계 레벨을 높이면서, 뒤에 있는 칠판을 보는 척 한다.

 "세키구치, 이거 알아? 하루 폰으로 이상한 톡이 자꾸 온다는데. 어떡해야 해?"

 뭐냐고, 우리들 IT 전문가에게 상담이냐.

 그런 거, 차단빔을 발사하기만 하면 되잖아. 물론 애드가드 카드 강화도 해야 하고. 상대를 제거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엄격한 세상이라고, IT는.

 "어, 카톡이로 오는 거랬지? 아이디 검색 해제하는 법은 알아?"

 "그게 뭔데?"

 "해본 적 없다면, 초기 설정 그대로겠네. 카카오계정 페이지 열어봐도 괜찮아?"

 "괜찮아, 열어도. 어떻게 하면 돼?"

 "수신 설정을 바꾸는 편이 좋아. 카카오 채널 추가해둔 거 있어?"

 "어, 딱히 없는데. 채널은 별로 안 써서"

 "일단 채널에서 카톡이 오지 않도록 할 테니까. 그리고 주소 링크가 첨부된 톡도. 스팸 대부분은 이걸로 해결할 수 있어"

 "헤에─"

 코야마 하루는, 그러올린 머리칼을 귀로 쓸어넘기며 듣는다. 창가에 걸친 다리를 보여주듯이 꼬거나 하면서, 음란한 녀석이라니까.

 아마 좋은 냄새도 나겠지. 세키구치는 아랫입술을 물고 작업하더니, '이걸로 대충 괜찮아질 거야'라며 폰을 건네준다. 긴장했는지 안경을 몇 번이나 고쳐쓰면서.

 "고마워─"

 라고, 손을 뻗으려는 코야마 하루의 옆에서, 야구부 엑스트라가 폰을 낚아챈다.

 "땡큐, 세키구치"

 폰을 자기 바지로 닦은 다음 그녀에게 넘긴다. '이거 때문에 하루의 카톡 아이디 들킨 거 아냐?', '애초에 이상한 톡도 세키구치 짓이지 않을까?'라는 둥, 다른 여자들이 떠들어댄다.

 세키구치는, '그런 짓 안 한다니까'라며 실실 웃으며 고개를 떨군다.

 마음속으로 엄청 크게 혀를 차준다.

 세키구치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나의 IT 제자라고. 내가 키웠다니까.

 하지만 그 기술은 이딴 놈들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련하고 순진한 민중들을 위한 것이지. 아─, 얼른 이세계에서 지식으로 무쌍찍고 싶다. 이 놈들을 완전히 허접 취급하며 눈을 뜨게 해주고 싶다.

 우리와 놈들이 느끼는 기분의 고저차로 벌써 시공을 비틀어버리려는 찰나, 탁 하며, 코야마 하루가 세키구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마워, 세키구치. 덕분에 살았어~"

 순간, 다들 얼어붙었다.

 그녀의 얼굴 지근거리에 있던 세키구치만이,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마냥 귀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잠깐, 하루 가깝잖아"

 "오히려 괴롭히는 거라고. 우리까지 깜짝 놀랐네"

 "어, 그래?"

 금방 세키구치를 풀어주고, 다시 우리를 무시하며 지들끼리 꺅꺅거린다. 얼이 빠진 듯 멍하게 있던 세키구치가, 갑자기 안경을 고쳐쓰는 머신이 되어버렸다.

 아니, 대체 뭐냐고.

 그런 행동은 그거다. 어장 관리다. 미스콘을 위해 세키구치를 농락하고 싶었을 뿐이지. 임시방편이라고, 반 대표 녀석.

 그보다 카톡 설정을 만져주는 정도야 누구나 할 수 있고 기본이잖아. 어쩌다 내가 창틀에서 사색에 잠겨있었기에 세키구치가 지면되었을 뿐이라고. 나한테 부탁했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어. 완전 여유라고. 도와줬다던가 그런 게 아니라. 코야마 하루를 구해준 게 아니라고.

 착각하지 마라, 세키구치. 너는 그런 놈이 아니잖아. 여자 따위 믿지 마. 놈들은 얼굴 뿐이야. 마음 속으로는 우리를 찐따 취급한다고. 필요할 때만 치켜세워주고, 기대하게 만들고는 배신하지. 결국은 적이란 말이다.

 세키구치가, 코야마 하루가 닿았던 자기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리려 한다.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된 나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아, 하, 하응!"

 의외로 큰 데다가, 에로망가의 신음 소리처럼 나와버렸다.

 싸해진 교실. 야구 엑스크라가 '그러고보니 물건 사러 가야지'라며 떠올린다.

 그래.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고.



 《트럭 폭주 사고까지 5분》



 "그런데 말야, 카톡 게임 광고 중에 웃긴 거 많지 않아?"

 "그치. 이거 봐, '방탄소년단 육성 게임 BTS월드'래"

 "잘됐네, 하루 좋아하잖아"

 "본인이었다면 어떡해야하나 생각했지"

 "아니, 아니지. 그냥 게임이잖아"

 옹기종기 마트로 가는 중. 학교를 나온 순간부터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앞을 걸어가는 야구 엑스트라와 여자들. 그 뒤에 졸졸 따라가는 우리들. 하마자와는, 선두 그룹의 끝자락에 거리를 두며 따라가고 있다.

 미묘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이 포지션. 뭐, 횡렬로 늘어서서 걷는 건 매너 위반이니까. 위치에 의미 따위 없고.

 나와 세키구치 사이에서도 회화는 없었다. 학교에서는 곧잘 떠들지만, 같이 귀가한다거나 방과 후에도 카톡을 하는 등, 아직 그렇게까지 사이가 좋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이거, '링크를 클릭하면 이세계로 전이할 건데 질문 있어?'래"

 "이세계에서 어떻게 톡을 보내냐구"

 "거기도 있잖아? 인터넷이나 핸드폰 정도는"

 "뭐야 그게 편하겠네. 편의점도 있을 법해"

 "그야 이세계물 많으니까. '이세계에서 용사 모집합니다'라던가, '지금이라면 이세계 스킬 가챠 SSR 치트 해금중!' 같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뒤에 따라오는 애들은 걸리겠다"

 시시껄렁한 소리나 하고 자빠졌다. 그런 톡은 종종 오긴 하지만, 가끔밖에 안 열어본다고. 눌러보는 것도 아주 가끔밖에 안 해.

 듣고 있자니 기분 나쁘니까, 평소처럼 애니 얘기나 해볼까.

 하지만 세키구치는, 아까부터 살짝 멍한 상태다. 앞에 있는 여자 집단, 이라기보다 한 여자만 의식하는 것이 확연하다.

 세키구치 씨, 너무 쉬운 거 아닙니까?

 좀 봐달라고. 아직 아까 그 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거냐?

 100% 함정이잖아. 진심이 아니라고. 그딴 짓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한테나 하고다니는 리얼충이란 말이다.

 무리무리. 우리들과는 인종이 다르다고.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저러는 거다. 놀리는 게 틀림없다.

 지금까지도 뼈저리게 당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내 콜라 페트병을 가볍게 가지고 놀고 있고. 저 녀석들, 남을 깔보며 비웃고 싶을 뿐이다.

 최악이라고. 믿을 수 없어.



 《트럭 폭주 사고까지 2분》



 혹시 세상이 잿빛으로 보였다면, 망설이지 말고 다음 세계로 점프다.

 어릴 적에 읽었던 라노벨의 대사였다고 생각한다. 제목도 저자도 잊었다. 어떤 장면이었고 누가 말했는지도.

 하지만 나는, 그게 여러 이야기를 체험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혼자서는 전부 체험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차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라. 다음으로 다음으로. 가능한 많은 컨텐츠를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러니 여기가 틀렸다면 어딘가 다음 세계로. 교등학교가 무리라면 대학교라도 괜찮다. 뭣하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측에 서도 좋다. 아니 나는 그렇게 될 거다.

 절망을, 동급생 따위에게 맛볼 정도로 시시한 일은 없다. 그만큼의 벽차도 우리에게는 없는데.

 지금, 옆에 있는 세키구치에게는 세상이 장미빛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뭐, 잿빛까지는 아니지만 한없이 잿빛 가까운 색으로 보인다. 시시껄렁한 쇼핑은 후다닥 끝내고, 내 방에서 좋아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이상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시선 따위 받고 싶지 않다.

 "있지, 쇼핑 끝나면 어디서 좀 쉬지 않을래?"

 야구 엑스트라가, 여자애들한테 제안한다.

 세키구치가 착각해서 고개를 든다.

 아니라고. 어차피 우리는 부르지 않는다니까. 사촌 차에 셋밖에 못 탄다나 뭐라나 말하는 놈이라고.



 《트럭 폭주 사고까지 1분》



 "아, 남친이다~"

 그때 코야마 하루의 폰에서 카톡 알람음이 울리고, 화면을 본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야구 엑스트라는 말문이 막히고, 세키구치는 어깨가 축 늘어진다.

 너희들, 착각하지 말라고. 코야마 하루에게는 남자친구가 있고, 그 사실을 딱히 숨기거나 하지 않는다. 미남이라면서 자랑까지 한다.

 지금도, 엄청 기쁜 듯한 표정이잖아.

 "미안해, 먼저 가"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대며, 손으로 내쫓듯 휙휙 손사레를 친다. 여자들은 하루를 살짝 놀리고, 야구 엑스트라는 거북하다는 듯하게 행동한다.

 나는, 남자친구와 통화하는 여자를 쳐다보는 건 실례라고 생각해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 내가 배려를 해줘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코야마 하루는, 길 한복판에서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연습중 아니었어?"

 시시하다.

 나와 세키구치는 코야마 하루 옆을, 슬금슬금, 눈에 띄지 않도록 지나쳤다.

 그 순간,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껴있던 하늘이, 아주 조금 맑아진 틈새로부터 햇살이 그녀를 비추었다.



 《트럭 폭주 사고까지 30초》



 "아니, 완전 괜찮다니까─. 지금 있지, 반 친구들이랑 쇼핑가는 중이야. 아하하, 맞아. 아프로로 정했어!"

 아침과 같은 향기가 났다.

 귓가로 흘러들어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엄청 간지러웠다.

 세상이 무슨 색인지, 누가 무슨 색인지, 그런 떨떠름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다. 옆에 여자가 있고 웃어준다면 좋지 않을까 라고, 남고생이 할 법한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무표정을 유지하며, 코야마 하루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다는 표정으로, 숨을 내쉰다. 마치 수영장에서 막 나온 듯한 심장.

 이러니까 리얼충 놈들이란. 왜 그렇게 상쾌하게 웃냐고. 마치, 내가 괜히 삐뚤어진 것 같잖아. 고식한 벨소리나 걸어놓고.

 세키구치가 또 착각하면 어떡하냐고. 남자친구가 있는 주제에, 온 세상에 귀여움을 흩뿌리고 다닌다니까. 진짜.

 아니, 난 코야마 하루 따위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정말로. 진짜라니까. 망할.

 뭐냐고, 진짜…….



 《 사 고 개 시 》



 "아, 뭐야 저 트럭은?"

 야구 엑스트라가 도로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교차로를 크게 돌며, 트럭이 불안정하게 커브를 꺾는다.

 그대로 비틀비틀거리는 트럭이 차선을 넘나드는 탓에, 맞은편 차량은 급브레이크를 밟아버렸다. 운전수가 만취했는지 돌아버렸는지,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얘들아, 물러나있자"

 야구 엑스트라가 좋은 말을 해줬다. 우리도 얼른 차로에서 떨어지자고.

 나였으면 트럭 쯤이야 한 손으로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지금 시험해볼 필요는 없지.

 "어라, 하루는?"

 야구 엑스트라가 말한다.

 그 녀석이라면, 분명 통화중이었지.



 《이세계 전송까지 5초》



 "───코야마!"

 세키구치의 큰 목소리에 다들 깜짝놀랐다.

 코야마 하루도 고개를 들었지만, 왜 불렸는지는 모르는 표정이다.

 트럭이 차선을 비스듬하게 타고 내려오며 타이어 소리를 울린다.

 갑자기 누군가가 밀쳐낸 탓에, 나는 발을 헛딛고 말았다.



 《이세계 전송까지 4초》



 밀친 것은 야구 엑스트라였다. 나는 중심을 잃고, 뛰쳐나가는 엑스트라가, 컷인해오는 세키구치와 부딪치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화려한 풋워크를 보여준 세키구치도, 다음 순간 무언가를 밟고 넘어졌다. 야구 엑스트라도 발이 엉킨 채 그 위를 구른다.

 검은 액체를 분출하며 찌그러진 그것은, 내가 떨어트린 콜라였다.



 《이세계 전송까지 3초》



 트럭 타이어가 끼이익 소리를 울리며,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뒤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른다. 그게 스위치가 된 것처럼, 허둥대던 내 발이 속도를 올렸다.

 야구 엑스트라를 밟고, 나는 뛰고 있었다.



 《이세계 전송까지 2초》



 "코야마아아아!"

 처음으로 입에 올린 그녀의 이름을 외쳤더니,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바보 처럼 굳어있는 코야마 하루를 향해, 전력으로 내달린다.

 뭐야 이게. 내가 왜 달리고 있지? 이제 어떡하면 되는데?

 확실한 사실은 단 하나.

 나는 지금, 전세계 남자를 제치고 코야마 하루를 향하는 중이다.

 발을 멈추면, 분명 손해보는 기분을 맛보겠지.

 내가 히어로가 된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밖에 없으니까.



 《이세계 전송까지 1초》



 아니, 이 순간밖에 없다는 건 역시 아니지.

 그러고보니, 어릴 적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름철 할머니댁에 갔을 때, 거기서 일상계 시골 만화 같은 여자애랑 친구가 되고, 강에서 빠질 뻔했던 그녀를 내가 끌어올려줬다.

 엄청 고마워했고,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해줬다. 그럼 감사받아줄게라며 상대해줬는데, 어째 갑자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냉대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은인에게 태도가 무례하다고 말했을 뿐인데, 결국 계속 건방지게 굴었고, 그러다보니 놀아주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나도 애니나 라노벨 쪽으로 흥미를 넓히고, 할머니댁에도 가지 않게 되었는데,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건강히 지내고 있으려나. 나는 잊고 있었지만, 그 아이는 내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았겠지.

 그나저나, 왜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오르는 건데. 시간도, 어째서 이렇게나 천천히 흘러가는 거냐고.

 완전히 죽기 직전의 주마등이잖아. 기적의 생환 후에 말하는 그거잖아.

 하지만, 더 이상 멈출 수 없다. 코야마 하루는 바로 눈앞에 있다. 트럭은 미끄러지며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니 아슬아슬하게 살 수 있다. 이렇게 갑자기 죽을 리가 없다.

 내 도파민이 그렇게 속삭인다. 오늘의 히어로는 누구냐. 나다. 남자친구도 엑스트라도 세키구치도 아니라, 치바 세이지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는 다르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바보 취급하지 마. 네가 다시 보게 만들어주겠어. 그래. 나는 그걸 위해 달리는 중이다. 내가 나의 세계를 바꾸겠어.

 다시 한 번, 코야마 하루의 이름을 부른다. 불렀나 안 불렀나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외쳤다. 슬로우모션. 그런데 감각만큼은 날카로워진 느낌이다. 뒤에서 여자들이 소리치는 것도 허둥대는 것도 느껴진다. 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영화처럼, 애니메이션 첫 화처럼, 운명이 변하는 순간을 붙잡는 것처럼. 지금, 바로 네 옆에.

 그리고, 한 손에 핸드폰을 든 채 멍하니 트럭을 바라보던 코야마 하루가, 이제서야 달려오는 나를 보고서는──'얘 누구더라?'라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은 잿빛이고, 쇠 맛이 났다.



 《JK 하루는 이세계에서 창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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