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 치여 이세계로 왔다니, 친구들한테 말하면 엄청 웃길 텐데. 하지만 이세계에서는 핸드폰도 못 쓴다.
처음에는 나도 거짓말이지, 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 거짓말 같은 우여&곡절 등등을 겪고, 지금에 와서는 어쩔 수 없으니 평범하게 생활하는 중이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도 있듯 이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져서 꽤 위험하다고나 할까, 생명은 위대하다고나 할까. 물론, 아무렇지도 않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창녀 같은 일에도 익숙해졌다. 되려 이 정도면 프로잖아 라는 자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신이 있고 마물이 있고 용자도 있다는 세계관도, 나름대로 이해되는 중이다.
하지만,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진 꿈속을 걷는 듯한 감각도, 머릿속 어딘가에 줄곧 남아있다.
아마 우리에게 준비된 치트인가 뭔가하는 생명줄이 너무 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현실감을 가장 많이 빼앗아간다. 게임이라는 감각이 너무 강하다.
꽤 가혹한 매일도, 편리한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 비겁한 수단이니 가급적 쓰지 말자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이 녀석에게 꽤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이곳에 섞여들지 못한다. 학교 축제를 기다리던 그날 이후로, 아직도 고등학생 기분으로 비일상을 즐기는 자신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그런 어느 날에 일어난 사건이다.
"청묘정에서 속옷이 없어졌다고? 그것도 널어놨던 것 전부?"
목소리가 너무 커요 라며 키요리가 새빨간 얼굴로 말한다. 루페쨩은 주변을 신경쓰는지 어깨를 움츠렸다.
씨름부 식당에서의 아침 모임. 갑작스런 사건의 예감에 무심코 흥분해버렸다. 주변 아저씨들이 혀를 찬다.
우리 제안으로 만들어진 테라스 자리의 존재도, 다른 손님들도 이용할 정도로 인지되고는 있다. 하지만 열시 아직 아저씨 비율이 100%에 가깝고, 여성 손님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씨름부 식당 카페화 계획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뭐, 그 문제는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고.
"실은 있지, 전부터 한두 장씩 없어진 적이 종종 있었어. 누가 장난치는 것이려니 해서,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한 말이야. 우리들, 짓궂은 장난 같은 거 자주 당하니까"
"……그런가요"
키요리는 놀란 표정이지만, 루페쨩의 말대로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창녀는 툭하면 얕보이기 일쑤다. 남자한테도 여자한테도.
물론, 분하고 열받는다. 그래도 그건 이쪽 세계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키요리도 고개를 숙인다. 누구나 신경쓰이는 것 한둘 쯤은 있다. 하나하나 다 챙기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너무 심하잖아. 그거 완전 도둑이라구. 관군 아저씨한테 말해보자"
"소용없어. 없어진 물건이 창녀의 속옷인걸. 상대도 해주지 않을 거야"
관군이란 예전 세계에서 말하는 경찰과 자위대 비슷한 개념이다. 서민의 팬티를 지켜줄 의무가 있을 터.
하지만, 창녀의 지위는 경우에 따라 팬티보다 낮아지기도 한다. 아니, 팬티보다 낮은 건 좀 심했나. 나도 창녀인데.
"하지만 이대로라면, 도둑맞은 사람이 곤란하겠네요"
키요리는, '교회 측에서 관군 아저씨한테 말해볼까요?'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교회 사람들이나 키요리에게도 폐를 끼치게 되니까, 마음만 받기로 했다.
"우리끼리 범인을 잡을 수밖에 없어"
"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돼"
"울며 삭히는 건 더욱 안 좋아. 중요한 물건을 도둑맞았는데 참으면 안 된다구. 여자든지 창녀든지, 안 되는 일은 안 된다고 말해야지"
"저도 동의해요!"
이번엔 키요리가 흥분한 투로 맞받았다. 그리고, 주변 아저씨들에게 '시끄러워'라는 말을 듣고 쭈구리가 되어버렸다.
"조, 조용히 하자, 둘 다. 속옷은 또 사면 되고, 뭣하면 내가 다른 사람 몫까지──"
"루페쨩, 그런 건 됐다니까. 나한테 맡겨줘. 위험한 일은 안 해도 잡을 방법은 있으니까. 이런 류의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법이라고 마작갤러리의 남을소중히가 몸소 증명해줬고"
"누구야 그거……"
"관군 아저씨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맛을 들인 범인은 다시 청묘정의 빨래 건조실을 노릴 거야. 거기에 함정을 깔아두는 거지. 일단, 으~음, 고전적인 수단이기는 하지만, 구덩이라도 파둘까"
범인은 곧바로 잡혔다.
스킬 '굴삭'을 지닌 내가 노가다 아저씨에 빙의해 전력으로 파낸 함정에, 대량의 속옷은 짊어진 치바가 묻혀있었던 것이다.
"너였냐, 걸어다니는 성범죄자"
어이가 없다. 이런 결말, 사실 다소는 예상하긴 했지만, 진짜 이렇게 되어버리니 어이를 상실해버렸다.
옛날에는 답도 없었던 치바도, 요즘은 조금 여자를 알게 되고, 루페쨩에게 조교를 받아 조금은 괜찮게 변하는 거 아닐까 기대했는데.
주위의 기대를 전부 배신하는 그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잖아!
"자, 잠깐 기다려. 내 이야기도 들어줘"
"시끄러. 아무리 아는 사이라도 범죄는 범죄. 썩어빠진 성벽도 안타깝다면 안타깝지만, 범죄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그렇지, 남소?
"그러니까 아니라고, 내가 이걸 가지고 있는 이유는──"
치바가 아무래도 자기 변호를 시작할 모양이지만, 다 모여 함정을 바라보는 창녀들의 경멸여린 시선을 보더니, 포기한 듯 어깨를 떨군다.
"……성적 호기심을……억누를 수 없어서"
"네, 자백 잘 들었구요. 누가 관군 아저씨 좀 불러줘. 이세계답게 잔혹하고 가차없이 사형으로 부탁하자. 오크장도 좋고!"
"하루쨩, 진정 좀 해. 치바 군에게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루페쨩, 물러. 그렇게 오냐오냐 받아주면 받아주는 만큼 성벽만 이상해진다구. 성벽은 마음을 좀먹는 괴물이라니까. 손을 쓸 수 없게 됐으니, 지금 이렇게 팬티랑 같이 흙 속에 묻혀있는 거잖아. 인간이란 이 지경까지 오면 끝장이라구"
"분명 치바 군은, 내가 벗어둔 속옷을 펼쳐볼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안 된다고 말하니까 그만두었는걸. 말로 하면 알아들을 성벽이야"
"그거, 내 팬티에도 한 적 있어. 이 녀석 진짜 팬티 엄청 좋아하네. 계단 올라갈 때 절대 보고있었을 게 분명해"
"짧은 옷을 입고 있으면 허벅지 근처를 보기도 하지. 기대하고 있다고 다 티나. 뒤에서 훔쳐보는 것도 들킨 줄 모르고 계속 보고있고"
"어, 잠깐 기다려봐. 지금도 이 앵글, 다 보이는 위치 아니야? 이 녀석, 계속 흙 속에 들어가있고 싶다던가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이제 그만해! 다들 있는 앞에서 대화도 폭로대회도 거부하겠어. 사정은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빨리 여기서 꺼내줘!"
"뭘 잘했다는 듯이…… 난 대화를 나눌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거든!"
"하루쨩. 일단은, 응? 이야기를 들어보고 하자. 부탁할게"
루페쨩 진짜 엄마냐구.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나도 거역할 수 없다. 그래도 이 녀석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포박은 해주겠지만.
스킬 '긴박'을 시전한다. 목 조르는 플레이를 하던 아저씨의 쌍둥이 동생이 가지고 있던 스킬이다.
그 아저씨들처럼 성벽을 스킬로 승화해버리기 전에, 치바를 바로잡아줘야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귀갑묶이처럼 상반신을 묶은 채 헛간에 집어넣는다. 상자 단위로 산 술이나 오래된 비품을 보관해두는 습한 장소. 치바는 버둥대며 볼멘소리를 내뱉지만, 열쇠를 걸어잠구고 가둬버렸다. 일단 여기서 머리 좀 식혀.
도둑맞았던 속옷은 치바가 무슨 짓을 했을지 몰라서, 나랑 루페쨩이 세탁하고 돌려주겠다고 모두에게 말해두었다. 그런 뒤에 씨름부네 가게로 향했다.
소란을 피운 사죄의 의미로, 아가씨 모두에게 케이크라도 사다주자고 생각해서. 물론, 대금은 나중에 치바가 내게 하겠지만.
방에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는데, '혼자서는 힘들지'라며 루페쨩도 따라와줬다.
정말, 엄마냐구. 결국 루페쨩은 나마저도 응석을 부리게 만드는구나. 둘이서 케이크를 나눠들고 돌아가는 길에, 평소처럼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엔 진짜 열받는다니까. 어째서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만 하느냐구. 친척 중에 수치 덩어리가 있는 느낌이야. 사형이라던 말 반쯤은 진심이었다니까"
루페쨩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싱긋싱긋 웃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미소지으며 들어준다.
"그치만 상냥하구나, 하루쨩은"
"하아? 내 어디가?"
"수치 덩어리 친척, 이라는 부분이"
"어, 아, 그건 깊은 의미 없다니까. 그냥 동향이다보니까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 애초에 이야기도 별로 나눠본 적 없고. 친구도 아니었고"
이건 사실이다. 지금도 딱히 좋은 친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이 같았을 뿐이지, 걔도 나를 교실의 페이스트인지 뭔지 영문 모를 소리나 하고 앉았고. 서로 겹치는 친구도 없었고. 카톡도 등록 안 되어있고 같이 들어가있는 단톡도 없었다. 아마도.
애초에 내 친구들은 치바 그룹을 '극혐 씹덕'이라면서 바보 취급했으니까. 가끔은 비웃기도 했고.
아니, 내가 가장 바보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그 떡밥의 웃음 포인트가 어디인지 몰랐는데, 맞추는 것도 귀찮다고 생각하며 웃곤 했다. 치바가 어떤 인간인지도 몰랐다. 흥미도 없었다.
하지만 함께 이쪽 세계로 와서, 같이 떠들거나 자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무튼 커뮤니케이션이 의미 불명인 데다가, 거리감이 엄청났다는 점이다.
쭈뼛쭈뼛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친근하게 굴고, 뜬금없이 몸을 만지는 것도 이상하다. 머리는 좋은지 모르겠지만, 별거 아닌 부분에서 묘하게 고집부리는 것 치고는, 남의 의견은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쉽게 상처받고 금방 화낸다. 내가 화내면 곧바로 쭈글어드는 것도 성가시다. 자기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말을 상대가 한다면 싫어한다. 그런 점이, 가끔은 진짜 기분 나쁘고, 열 받는다.
저런 놈이 친척일 리 없지. 그냥 수치 덩어리잖아.
하지만, 전에 루페쨩이 의외로 '치바한테 너무 차갑다'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에, 뭐, 일단은 신경쓰고 있었을 뿐. 오히려 너무 차갑게 대하는 정도가 아니면, 그 녀석한테 내 감정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재밌네. 하루쨩이 치바 군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데, 흥미 없다는 말이나 하고"
"아니 잘 모른다니까.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어찌저찌 알아버릴 뿐이지. 동향이라는 사실만으로"
그 녀석은 '오타쿠'고 '음침한 캐릭터'고 '극혐'이라고, 말하자면 그뿐이다. 그 세 가지 만으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쪽 세계는 핸드폰도 없고, 신문 같은 건 있어도 담담하게 사건만 적혀있고, 소문이나 대화로밖에 화제 공유를 하지 않는다. 얼굴을 아는 상대가 아니면 떠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타인을 '기분 나쁘다'라고 말하지 않고, '오타쿠' 같은 말도 없다. 그런 카테고리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동정 같아'로 시작해 '아─, 뭔지 알아'로 이어지는 정도다. 창녀라 할 수 있는 대화지만.
공통 카테고리가 적기에, '○○ 같다'로 간단히 상대를 분류하지 않는다. 편견이나 선입견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런 의식은 굉장히 희박한 느낌이다. 대화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다들 생각한다.
이 마을이 마왕과의 최전선이고, 사람의 왕래가 많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존여비는 이쪽이 단연컨대 심하다.
"둘이서 치바 군과 대화해보자. 하루쨩이 너무 혼낸다 싶으면 내가 멈출 수 있고. 그 대신, 내가 너무 받아준다 싶으면 하루쨩이 막아줘. 그래도 소리지르면서 화내는 건 안 돼. 우리가 제대로 대해주면, 치바 군도 이유를 분명히 말해줄 거라고 생각해"
"……응"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에 관해서는, 이쪽 사람이 훨씬 어른스럽다고 할까, 나도 치바를 깔 처지가 아니라고 느껴져서 초조해질 때도 있다.
그 점에서는 자신 있었는데, 애초에 도량의 크기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뱉어내기보다 집어삼키는 양으로 정해지는 세상인 셈이다. 나는 뱉어내는 쪽으로 승부를 해왔으니까.
핸드폰 정도는 있으면 좋겠는데. 치바도 어쩌면, 나랑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스트레스로 인해 범행에 치달은 것일지도 모르니까.
혹시 여기가 교실이었다면, 루페쨩 덕분에 치바랑 같이 들어가있는 단톡 정도는 있을수도. 그럼 그 녀석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 정도가 딱 좋았을 텐데.
우리는, 자면 친구가 될 수 없는 둘이었다. 처음 꼬셨던 때부터 실패였다.
라고, 조금 그리움과 후회를 느끼면서, 루페쨩과 좋은 분위기로 사죄의 케이크를 사고 돌아왔다.
그랬더니, 깜짝 놀랐다.
치바가 죽어있었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엥?!"
나는 자빠졌고, 루페쨩도 허리가 풀려버렸다.
원래부터 별로 정리도 안 하던 헛간이었지만, 치바가 굴러다니던 곳은 그 중앙. 너저분하게 상자랑 이것저것 물건이 굴러다니던 곳의 바로 코앞.
몸을 웅크린 치바는, 내가 묶어둔 상태 그대로, 발을 이쪽으로 향한 채, 엎어져있었다. 틈새로 비춰지는 바깥의 빛으로, 치바의 입에서 쏟아지는 피와 그의 새하얀 얼굴이 분명히 보였다.
"치, 치바 군!"
"기다려 루페쨩, 다가가지 마"
치바에게 달려가려던 루페쨩의 어깨를 붙잡는다.
과학 수사의 기본, 현장 보존의 법칙. 그렇지, 남을소중히, 이수사장님.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밟지 않도록 신중히 다가가, 목덜미에 손을 댄다. 맥박은 없음. 등에 귀를 기울인다. 고동…… 들리지 않는다.
헛기침을 하고, 가능한 냉정하게, 루페쨩을 자극하지 않도록 전한다.
"임종했습니다"
"거짓마아아아알!"
무너지는 그녀를 끌어안는다. 작은 등에서 전해지는 떨림이, 이게 현실이라는 사실을 내게 전해준다.
평소 이세계의 살짝 비일상적인 사건을, 마음속 어딘가에서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직히, 오늘도 평소대로 치바를 혼내주려고, 그 정도 이벤트 레벨 수준으로 묶기도 하고 감금도 했다. 하지만 설마 죽을 줄이야. 피를 토할 줄이야.
이 녀석의 부모님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어떻게 죽었냐는 점이다.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설마 이렇게나 어이없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세계에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 절망에 빠져 속옷 도둑질을 하다 체포돼서 죽다니. 그 녀석이 항상 말하던 '이세계 전생물'이란, 다들 이런 결말일까. 한 번 읽어보고 싶다.
"하지만, 이건 살인 사건이야. 치바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어"
틀림없이 자살은 아니다. 나라면 부끄러워 죽고 싶은 상황이겠지만, 치바에게 있어서는 일상이니까. 절대 스스로 죽으려는 타입도 아니었고.
치바를 죽인 인물은 반드시 존재한다.
"응…… 우선 치바 군을 움직이지 못하게 꽁꽁 묶은 사람은 하루쨩이지"
"맞아"
"이 헛간에 가둔 것도 하루쨩이고"
"응"
"열쇠도 하루쨩이 갖고 있네?"
"잠깐 기다려봐. 난 아니야. 알리바이도 있는걸. 계속 루페쨩이랑 같이 있었잖아!"
"죽었으면 한다고 몇 번이고 말했지……"
"말하긴 했지만. 그건 몇 번이나 말했지만. 진짜 아니라니까 좀 냉정해져봐. 있지, 냉정해지라니까!"
범인이 나?
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나라는 화자는 신용할 수 있잖아. 진짜로.
"우선 정보 정리를 하자. 그리고 쿨하게 추리하자고. 반드시 범인은 우리 손으로 사로잡겠어"
"으, 응. 하지만 그런 일은, 관군 아저씨한테 맡기는 편이……"
"그래선 안 돼. 왜냐면 이런 사건은 수사도 안 할걸. 이곳은 창관이고, 피해자는 속옷 도둑이잖아. 우리 중 누군가를 범인으로 만들어서 끝낼 게 뻔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겠지, 분명. 우리가 범인을 찾아내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해"
치바의 한도 나를 향한 의심도 청산하겠어.
이건, 야상의 청묘점 살인사건이니까!
범행 현장은, 창관의 헛간.
가게 뒤에 있는 빨래 건조실의 옆이라, 통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가게 옆으로 우회하던가, 주방 옆에 있는 뒷문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장소다.
발견 당시에는 문에 열쇠가 잠겨있었다. 여벌 열쇠는 없다. 헛간은 벽도 문도 전부 목제다. 문을 비틀어 연 흔적은 없고, 벽은 창문도 안 달린 밀실.
열쇠를 지닌 건 나 혼자. 그래도 끈질기게 말하겠는데, 내가 장을 보러 나간 사이에…… 치바는 피를 토하며 죽어버렸다. 외상은 없었다는 점에서 독살이라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범행 시간은, 나랑 루페쨩이 씨름부의 가게로 가서, 사죄의 케이크를 사고 돌아오는 동안. 한 시간도 안 된다 생각하지만, 삼십 분 이상은 걸렸으니까, 시간적으로는 누구나 범행이 가능하다.
단, 속옷 도둑인 치바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가게 아가씨들 뿐.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의심스러운 사람은 그녀들밖에 없다. 무엇보다 속옷을 도둑맞았으니까. 이건 어엿한 범행 동기지, 코난 군.
치바──너,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일단, 가게에 있는 아가씨들에게 물어보자. 단, 아직 치바가 죽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말고. 소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야기를 들어두고 싶으니까"
"으, 응……"
나와 루페쨩은, 케이크를 돌리며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모두에게 물어봤다.
아가씨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이름을 가린 채 증언을 들어보자면.
아가씨A "2층 복도를 청소했어요. 신경쓰이던 점? 딱히 없네요"
아가씨B "난 오늘 당번 아니라서 방에서 쉬고 있었지"
아가씨C "케이크? 필요 없어. 이상한 점? 네가 또 시끄럽게 굴었지"
아가씨D "아가씨A가 청소를 대충 해서, 내가 끝난 뒤에 또 했어"
아가씨E "1층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아가씨C가 복도에서 어슬렁대고 있었어요"
아가씨F "주방에서 오늘 준비를 하고 있었어. 아가씨B가 물 마시러 왔던 것 같은데"
아가씨G~L "노래 연습을 했어. 아무도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고"
아가씨M "방에 있었는데, 아가씨A랑 D가 좀 다투더라"
전─혀, 모르겠잖아~.
아무튼 이로써 알아낸 사실은, 내가 아가씨C한테 엄청 미움받고 있다는 점 정도다. 왜때문이냐구.
그럼 일단 노래 연습하던 아가씨들은 전부 용의 선상에서 내려가겠지. 그럼 반 정도 줄어들고. 아가씨A랑 D도 제외해야겠고. 그리고──
"그런데, 잠긴 문은 아무도 못 열지?"
"그렇긴 하지. 그래도 그 부분은 나도 좀 생각해야할 점이 있어서"
다시 한 번 현장에 가보려는 루페쨩에게 말한다. 아까는 허둥대느라 잘 관찰하지 못했지만,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헛간은 술과 고기 냄새가 난다. 짐승 냄새 같은, 으스스하고 기분 나쁜 분위기다. 되도록 치바 쪽은 보지 않도록 하며, 루페쨩에게 해설한다.
"혹시 범인이 이 문으로 들어와 무언가 먹였다면, 치바는 이렇게 등을 이쪽으로 향한 채 쓰러지지 않았을 거야"
뭐, 살해당할 위기를 느끼고 안쪽으로 도망치려다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치바도 레벨90 정도 되는 모험자다. 혹시나 범인이 이곳 아가씨였다면, 아무리 양손이 묶였다고는 해도, 등을 돌려 도망칠 방법 한둘 쯤은 있었을 터. 뭐,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애초에 치바를 죽일 수 있는 아가씨는 나 말고 없겠지만.
독을 억지로 먹였든지, 속여서 먹였든지, 몸의 방향에 조금 위화감이 든다. 치바는 문 반대측을 바라보며 쓰러진 상태다.
"게다가, 여긴 틈새가 너무 많아. 조명도 창문도 안 달렸는데 외부 빛이 들어와 안쪽이 잘 보이잖아. 너무 낡았다구"
즉 치바도 마음만 먹으면 벽을 뚫고 도망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뭐,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어졌다. 바보라 알아채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마지막까지 바보라니까.
"봐, 이거"
"뭐야 이거…… 발자국?"
범인은 치바가 토한 피를 밟았다. 신발 밑창 일부만일지도 모르겠지만, 작은 발이다. 아마도 여자애. 그 자국은 헛간 안쪽에 쌓여있는 상자나 의자를 몇개 밟고──안쪽 벽 앞에서 끊겼다.
난 그 벽을 밀어보고는, 헐겁다고 생각해 위로 들어봤다.
"어?!"
생각대로 벽의 일부가 벗겨졌다. 여자애라면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생겼다. 시험삼아 내가 들어가보자, 간단히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루페쨩도 나와봐"
"으, 응. 좀 무섭지만……"
위치가 높아서 좀 위험하지만, 그 출구로는 루페쨩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태양과 벌레의 날개짓 소리. 바깥 공기는 맑다.
헛간으로 들어오는데, 열쇠 따위는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다.
단, 루페쨩조차 몰랐던 비밀의 출입구라는 점에서, 범인은 꽤 베테랑인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난 창관을 노려봤다. 역시 치바를 죽인 녀석은 이 안에 있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건 해서는 안 될 일이야.
"루페쨩. 다음은 치바의 시체를 조사해보자. 살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어"
"어, 으, 으응……"
솔직히 나도 보고 싶지 않다. 그래도 이대로라면 치바의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범인은 반드시 사로잡아 보이겠어.
"가자. 괜찮아, 범인은 반드시 내가 찾아낼 테니까"
다시 헛간으로 향하며, 떠는 루페쨩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다시, 죽을 만큼 깜짝 놀라고 말았다.
치바의 시체가 사라졌다.
"어어어어어어어?!"
나와 루페쨩은 또 깜짝 놀라 고꾸라졌다.
싫다 진짜, 뭐냐구 이거. 치바, 벌써 괴이 현상이 되어버렸잖아. 진짜 민폐라니까. 죽었으면 좀 진정하고 얌전히 있으라고, 너무 산만하잖아!
"누군가가…… 시체를 훔쳤다, 던가?"
그렇지만, 우리가 헛간의 비밀 출입구를 발견하고, 일단 밖으로 나가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짊어지고 도망칠 수 있나?
그저 멍하게, 아무도 없는 헛간에서 허리가 풀려버렸다. 이윽고 루페쨩이, 탁 하며 손을 내리친다.
"혹시 치바 군은 죽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래!"
루페쨩이 기쁜 듯이 말하길래, 무심코 나도 안심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어떨까. 그럼 그 피는 뭔데. 심장도 멈춰있었잖아.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뜬금없이 좀비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이곳은 이세계, 창녀의 집.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구!
"일단 치바 혹은 치바였던 것을 찾아보자. 그리 멀리는 가지 못했을 거야"
발자국으로 보이는 것도 없었다. 복도로 나가봤지만,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귀갑 묶기를 당한 좀비가 돌아다닌다면 소동도 그런 소동이 없을 터인데, 그런 낌새도 없다.
그렇다면, 치바는 청묘정 안에 있나?
우리는 다시 한 번 창관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아까 봤을 때랑 별로 다른 점도 없었다. 청소나 준비로 조금 달라진 물건은 있었다. 쓰레기통은 깔끔하게 비어있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에서는 손님에게 낼 요리 준비가 착착 진행중이었고, 아까 모두에게 나눠준 케이크 접시도 사람 수만큼 쌓여있다.
그것 말고는 새로 늘어난 물건도 사람도 없다. 사라진 사람도 없다. 치바의 모습도, 없다.
아까처럼, 모두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다녀봤다.
아가씨A "통로에 쓰레기를 내놓으러 갔다왔어요. 속옷 도둑은 보지 못했구요"
아가씨B "아무것도 못 봤는데…… 아가씨C가 허둥대긴 했지"
아가씨C "시끄럽네. 내가 뭘 했든 네가 알 바 아니잖아"
아가씨D "그 뒤로 계속 청소했어요. 아가씨A, 진짜 멍청해서 싫다니까"
아가씨E "아가씨F랑 점내 준비를 했어요. 노래하는 아이들은 계속 연습하고 있었죠"
아가씨F "점내 준비. 노래하는 애들도 있긴 했는데 이상한 사람은 안 왔어"
아가씨G~L "(생략)"
아가씨M "아가씨A, 가게 앞 벤치에서 농땡이치더라"
아가씨C, 뭐냐구.
그런 말투는 좀 아니잖아? 이쪽은 사람이 죽었다구?
완전 틀렸어. 이 녀석 너무 열받아서 다른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잖아.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데.
아니 그보다, 전혀 모르겠거든!
가게 테이블에서 난 머리를 감싸맸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질려서, 머리를 팡팡 두드린다.
치바가 살해당하고, 치바 혹은 치바였던 것까지 사라져버렸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니. 친구다운 일, 마지막까지 해주지 못했다. 그 녀석도 한이 남았을 텐데.
뭐냐구.
치트 따위, 하나도 도움 안 되잖아. 내가 원하던 것은 항상 여기에 없는걸.
예를 들면 스킬 '탐정'이 있었다면. 스킬 '파트너'라던가 스킬 '몸은 작아졌지만 두뇌는 그대로'가 있다면, 범인을 찾아내 흠씬 두들겨줄 수 있는데.
대체 뭐냐고. '굴삭'이네 '긴박'이네 하는 스킬들. 이런 스킬 전혀 바라지 않았거든. 일이니까 상대를 고를 수도 없었고.
처음으로 내가 자고 싶다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내 몸에서, 야릇한 오오라가 뿜어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잘 수밖에 없겠네. 조금 반칙 같지만, 이제부터는 닥치는대로 할 수밖에.
쓸 수 있는 스킬이 걸릴 때까지 할 수밖에 없다. 웰컴 투 언더그라운드 인 어나더 월드. 전직 도쿄 JK 코야마 하루 18살. 지금부터 이세계 남자를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겠습니다!
"하루쨩, 잠깐 와봐"
"응?"
불타오르려던 때에, 루페쨩이 주방에서 손짓한다.
뭔가 싶었는데, 아가씨들에게 나눠준 케이크의 빈 접시였다. 아니 그보다, 아까도 봤고 접시 수까지 세어봤는데.
"이게 뭐 어쨌는데?"
"저기, 별 관계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케이크는 하나 남았어야 하잖아"
"그랬나?"
나는 사람 수만큼 사왔는데.
다 같이 하나씩이라면서, 루페쨩도 같이 나눠줬잖아.
"……있지, 혹시나 하는 말인데"
루페쨩은, 어째서인지 조금 말하기 껄끄럽다는 듯이, 스커트 끝자락을 잡으며 우물쭈물한다.
"치바 군이 있는 곳, 알아낸 것 같아"
범인은 다시 현장에 돌아온다.
일단 탐정 역할을 맡았을 터인 나도, 몇 번이고 어슬렁댄 이 장소에, 다시 한 번 루페쨩에게 끌려왔다.
야상의 청묘점 헛간.
그곳에 오늘의 범인이자 피해자이자 살아있는 시체가, 바닥에 털퍼덕 앉아, 손에 달라붙은 케이크를 핥아먹고 있었다.
"아, 일났네"
우리한테 들키자, 허둥대며 케이크를 뒤로 숨긴다.
낡은 헛간의 틈새에서 비춰지는 저녁노을이, 특유의 붉은 머리를 비추고 있었다. 궁상맞은 얼굴이 과연 살아있는 시체 같다고 순간적으로 생각했지만, 그러고보니 원래부터 그랬구나 싶어서,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서서히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군마가 숨을 내쉰다.
관동의 기적을 봤다.
"이…… 바보야─!"
목을 졸라버리려고, 달려들었다. 너무 화가 나서 귓가에 대고 소리쳐줬다.
"바보, 바보야! 너 같은 거 죽어버리라고. 죽어버리라고, 생각했어! 으읏~~"
열이 뻗치고 분해서,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음이 놓여서, 어째서인지 몰라도 눈물이 난다.
이 녀석 진짜 바보라니까. 현세에 미안할 정도로. 이런 놈이 이쪽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향 사람이라니 부끄러워서 미치겠다. 나의 수치. 실시간 흑역사. 그런데.
"……왜 이래, 이 녀석"
라면서, 어이없는 말이나 지껄이고.
"안심해서 그래"
루페쨩까지, 어째 이상한 착각을 한 듯하고.
정말, 진짜 열받는다니까.
──그래서.
"해명해"
다시 귀갑묶기로 묶어버린 치바를 헛간 밖으로 굴리고, 심문을 재개한다.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화가 솟구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어째서 이런 놈을 위해 이래저래 놀라고 뛰어다녀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렙바(스킬 '레벨 바인드'의 줄임말이야) 해제해버려?
진짜 해치워버릴까, 이 녀석?
"아─…… 그게─"
치바가 시선을 여기저기로 굴린다.
창관 쪽을 보고, 나를 보고, 그리고 루페쨩을 보고 입술을 깨문다.
"그래, 나는, 성적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서 너희들의 속옷을 훔쳤어. 팬티가 너무 좋으니까. 사랑하니까. 난 변태일지도 몰라!"
"안다고. 그 다음 이야기를 묻는 거야. 그 죽은 척은 뭐였어? 진짜 죽은 거 아냐?"
"어, 그건 잠깐 훅 갔을 뿐이랄까……"
"훅 가버려?"
치바는 눈을 꿈뻑이더니, 입술을 핥으며 대답한다.
"아, 어─, 아니 죽은 척은 그거야. 마물의 숲에서 위험한 수행으로 몸에 익힌 내 새로운 스킬이지. 거기, 곰도 나오니까"
"어, 곰이 나와? 싫다, 숲 최강의 생물이잖아"
마물은 그렇다 쳐도 곰은 위험하다. 다음에 또 갈 일이 생기면 허리춤에 방울을 달아줘야지.
"그치만 하루, 관군을 부르네 사형을 시키네 그런 말을 했으니까, 큰일이다 싶어서. 먼저 죽은 걸로 해두자고 생각했지, 그 뿐이야!"
"하아…… 너무 막무가내잖아? 이러니까 치바는!"
루페쨩이, '진정해 진정해'라며 나를 달랜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다행이잖아? 죽었다거나 살해당했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이제 안 해도 되고"
물러. 몸이 푸딩으로 되있는 거냐구, 루페쨩은. 먹어버리고 싶은걸.
이런 답도 없는 녀석까지 걱정한다면, 몸이 버티지 못한다니까. 어떡하면 그렇게 상냥하게 태어날 수 있는 거야?
정말, 어떡하면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속옷도 돌려받았고, 치바 군도 무사하니까, 다행이야"
루페쨩이 등을 토닥여줘서, 조금 진정됐다. 그래. 이거면 됐지. 어째, 이해가 안 되는 느낌도 살짝 있지만.
"응, 그래도 잠깐만. 아직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았잖아? 그 숨겨진 출입구로 들락날락한 사람은 누구야?"
치바의 피를 밟아 남은 발자국.
아직 등장하지 않은 제삼자의 존재가 남아있잖아.
"어, 출입구? 아니, 그, 그건……"
명백히 동요하기 시작하는 치바. 내 탐정으로서의 감(추리력이 아니다)이 경고음을 울린다.
역시 뭔가 있어. 이 사건에는 아직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 어떡할까, 역시 렙바 써버릴까? 폭력으로 임의청취 해버릴까?
"아, 그건, 미안, 나였어!"
루페쨩이, 손을 뻗으며 갑작스런 고백을 한다. 의외의 전개에, 나와 치바가 동시에 '엥?'하는 소리를 낸다.
"저기, 그, 실은 전부터 그 출입구를 알고 있어서, 미안해. 이따금씩, 그, 일을 팽개치고 와서 쉬었거든. 진짜 미안해. 그래서, 있지, 치바 군이 어떻게 됐는지 마음에 걸려서 장보고 온 다음에, 아니, 미안해, 장보러 가기 전에, 잠깐 살펴봤어"
그랬더니, 그가 쓰러져있어서……라고, 거기까지 말한 뒤 루페쨩은 침묵한다.
가게 앞에서 데모를 하다가 돌연 해산해버린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갈 길을 잃은 회화를 양손에 품은 채,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태세로 굳어버렸다.
그러다 눈만 잽싸게 움직여 치바를 바라본다. 그 바통을 받아낸 치바는, 물리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고정시킨 채, 똑같이 눈만으로 나를 본다.
어, 나?
둘의 스루패스가 모였기에, 어째서인지 내가 생각해보기로 했다.
"살짝 어두워서, 그냥 자는 줄로만 알았다던가……?"
"그래 그거야!"
루페쨩과 치바가 화음을 맞춘다. 기세를 탄 나는 계속 추리한다.
"하지만 나중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가 용의자로 지목되는 게 무서워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던가……?"
"진짜 그렇다니까, 하루쨩!"
"천재잖아, 하루!"
싫다, 이거 완전 추측으로 대충 때려맞추는 중인데. 진짜 정답이라니, 거짓말 같아!
아니 진짜로 이런 거였다니 거짓말 냄새가 난다던가, 진짜 해결편은 나중에 나만 빼고 공개하지 않을까 살짝 생각해봤지만, 입을 모아 천재네 명탐정이네 치켜세워주니까 부끄러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잖아.
나, 사실은 이세계 제일가는 탐정이었나보다. 나중에 승부를 겨뤄보자구, 홈즈☆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하루쨩"
물론 화는 안 났다고 루페쨩에게 말한다.
한때는 날 범인으로 몰아가려던 일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미소로 화답한다.
"그나저나 말야, 애초에 하루가 너무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고작 팬티로 말이야"
아직 묶여있는 상태의 치바는, 벌써 사건이 다 끝났다는 양, 병신처럼 실실 쪼갠다.
내 관자놀이가, 파르르 떨린다.
"이렇게 돌려주러 왔는데, 사형이네 뭐네 호들갑이나 떨고 말야. 정말이지, 덕분에 다들 바보라고 생각했을 거 아냐. 반성하라구. 아, 그리고 이제 이거 좀 풀어줘"
누구 탓에 이런 소동이 일어났는데, 라던가, 네가 써먹은 속옷 따위 반품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라던가, 평소라면 말해줬을 불평도 턱 막힐 정도로 상대를 빡치게 만드는 치바 토크.
덕분에 떠올랐다. 살인 사건이네 뭐네 딱히 상관없었다.
개짜증나는 속옷 도둑을 얼마나 두들겨 패고 싶은지, 그런 말을 했잖아.
"레벨 바인드 해제"
전투 레벨 해방. 스킬 '검술+150', '체술+120', '속도+140', '정신+100', '동체시력·신', '주변시야·우주', '반사속도·광' 오픈. '상태이상 무효', '공격마법 무효', '즉사 무효' 오픈. '염마법', '빙마법', '풍마법', '토마법', '뇌마법', '소환마법' 오픈하고 모든 마법 항목에 '현자의 지혜' 보정. '듀얼 스펠' 오픈. '스킬 죽이기' 오픈. '무장개념 구현화'와 '혼백 완전 파괴 설법'을 스탠바이.
스킬 '스테이터스 리스트'──오픈.
치바와의 레벨차를 확인.
코웃음이 나온다.
"……달리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해라, 치바"
"하루쨩, 진정하자. 치바 군도 반성하고 있잖아? 그치?"
우리 둘 사이로 몸을 던지며 루페쨩이 필사적으로 막는다.
그랬지. 그녀의 앞에서 이런 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진정하자. 빡돌면 안 돼. 난 이세계에서 평화주의자로 살아가겠다 정했는걸. 평범한 여자애가 되겠다고. 폭력 따위 결사 반대.
"어이어이, 뭐냐고. 또 열받았냐, 이 시대에 뒤떨어진 폭력계 히로인은. 네 폭력 따위 치트 주인공인 내 앞에선 귀여운 정도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고? 됐으니까 빨리 풀어주기나 해. 그것보다, 잘도 이런 식으로 묶을 수 있게 됐구나. 변태냐고"
치트는 편리해서 최고라던가, 비일상을 즐겨서 미안하다던가, 카페에서 유유자적하게 생각하곤 했지만 그건 착각이다.
오늘 사용한 스킬은, 결국 이 세 개였다.
'굴삭'
'긴박'
'촛농'
JK에게 무슨 짓을 시키는 거냐고, 이세계.
역주) 남을소중히 사건 : 마작갤러리가 이수마장에서 정모한 날에 이수마장에서 마작패를 훔친 뒤, 훔친 패를 다시 이수마장에 판매하려다가 딱 걸린 사건. 원문은 일본 형사 드라마의 등장인물 이름이었음.
역주) 남을소중히 사건 : 마작갤러리가 이수마장에서 정모한 날에 이수마장에서 마작패를 훔친 뒤, 훔친 패를 다시 이수마장에 판매하려다가 딱 걸린 사건. 원문은 일본 형사 드라마의 등장인물 이름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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