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론도는 시뮬레이터 시트의 가상공간에 들어갈 때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또는 '아무것도 없는 꿈'을 꾼다.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그리 대단한 꿈은 아니다.
우주의 허무한 고독이나 냉기와는 다르다.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과도 다르다.
그저, 아무것도 없을 뿐이다. 자신이 그곳에 있지만, 있다고 해서 별다른 일도 없다. 재생이 끝난 동영상 파일을 혼자 끝없이 바라보는 듯한, 그런 꿈이다.
옛날엔 론도도 꿈을 꿨다.
인류 은하 동맹을 지키는 꿈. 머신 캘리버에 타 동지를 지키는 꿈. 고독을 견뎌내고, 누군가에게 손을 뻗는 꿈.
모든 꿈에는 각각 다른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론도는 그러한 꿈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는 희망을 꿈으로 꾸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론도는 꿈을 꾸지 않게 되버렸다.
딱히 희망을 잃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꿈을 꾸지 않게 되버렸을까.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날 론도는 깨달았다. 그리고 깨닫지 않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꿈이 론도의 내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면, 밖에서 왔을 수밖에 없다. 꿈을 꾸고있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꿈을 주입하던 것이다. 희망을 꿈꾸던 것이 아니었다. 희망을 주입받은 것이다.
단순한 가상현실이다. 마더 컴퓨터가 계산한 풍경과 심리를 시뮬레이터 시트의 힘으로 강요하고 있던 것이다.
론도가 깨닫게 된 이유는, 그 특이한 지능도 한몫 했지만, 체질 문제로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많이 시뮬레이터 시트를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론도는 시뮬레이터 시트의 꿈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나는 꿈을 꾼 시점에서 아이의 반응을 분석하고, 적성을 조사하는 것. 그리고 적성이 결정된 아이에게는 같은 꿈을 계속해서 보여줌으로써 그 경향을 강화하는 것.
론도의 추측은 완벽한 정답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론도가 꿈을 꾸지 않게 된 이유다.
첫 번째 이유는, 론도의 심리가 너무나도 특이해서 마더 컴퓨터가 상정하는 꿈에 해당사항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론도는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특이한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좀 더 단순하다. 론도에게 장래 적성이 표시되지 않는 이유는, 장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게 정답이겠지.
시험에서 솎아낼 예정인지, 아니면 론도의 수명이 곧 다할지. 어찌됐든 자신에게 미래는 없다. 론도는 그렇게 이해했다.
사실상 죽음 선고 앞에, 론도의 마음은 평온했다. 론도 스스로도 조금은 혼란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수명이 한정되어있고, 기침 한 번 할 때마다 수명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이제와서 마더 컴퓨터에게 들어봤자, 놀랄 일도 아니다.
이제 남은 일은 죽기 전까지 뭘 하며 지낼지다.
론도는 공구를 꺼내 히디어즈의 발톱을 깎기 시작한다. 겉면에 같은 간격으로 구멍을 만들고, 내부를 동굴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
시간이 다하기 전에, 이게 완성되면 좋겠는데.
-2-
──그것은 갑자기 찾아왔다.
레도가 눈을 뜨자, 시뮬레이터 시트 내부였다.
눈 앞이 완전한 암흑에 둘러싸여있고, 시트도 차갑다.
메뉴를 불러내자, 아무래도 절전모드인 듯했다. 송전이 끊겨서 배터리로 구동하고 있다.
긴급 상황에서의 수순으로는, 수동으로 시트 뚜껑을 열게끔 되어있다. 손을 더듬어 빨간 비상등의 불빛을 찾아 강제적으로 입구를 여는 레버를 당긴다. 기밀 상태가 해제되며, 푸슉하는 소리와 함께 외부 공기가 들어온다.
찬 공기에 몸을 떨면서 일어나자, 그곳은 교실이었다.
교실 안은 어두컴컴하고, 고작 비상등만 반짝일 뿐이다.
언제 교실로 온 걸까? 언제 시뮬레이터 시트로 들어간 걸까? 잠기운에 멍한 머리로 생각해보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터를 불러보지만 네트워크와 접속이 끊겨있다. 새 메세지가 한 통 있을 뿐이다. 네트워크가 끊기기 전에 도착한 메세지인가.
일단 메세지를 열어본다.
"최종 시험을 시작합니다"
레도는, 그 문자를 보고, 크게 숨을 집어삼켰다.
이 시대에 유년학교의 각 학생들은, 일부 교사나 카운셀러를 제외하고는 졸업생과의 교류가 완전히 차단되어있다.
따라서, 최종 시험의 실태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은 반장인 레도나 미리카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는 유년학교에 들어올 때와 같이, 시뮬레이터 상에서의 시험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그런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무책임한 소문은 무수히 존재한다.
너무나도 고도한 가상공간을 사용하므로, 시험 도중에 죽으면 진짜 죽게 된다든가, 애초에 가상공간이 아닌 현실에서의 살육을 강요받는다는 소문도 있다.
최종 시험따위 없다는 말도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결과만 전달받고, 그 시점에서의 성적으로 남은 생애 전부가 결정된다는 말이었다.
일단 마지막 소문만은 틀린 모양이라고, 레도는 생각한다.
레도는 주변 상황을 살펴봤다. 교실에는 비상등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귀를 기울이니, 익숙한 환풍기 소리와 스테이션 동력부로부터의 진동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에너지 공급이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옆자리에서 시뮬레이터 시트가 솟아오르더니, 미리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안녕"
"안녕…… 레도?!"
미리카는 졸려보이는 얼굴을 레도에게 향하더니, 갑자기 놀란듯이 시뮬레이터 시트의 뚜껑을 닫아버렸다.
어찌 된 일인지 생각하는 사이, 잠시 뒤 뚜껑이 열리고 미리카가 다시 얼굴을 내민다.
"왜 그래?"
"아니, 조금 놀라서 그래. 이거 역시……"
"응. 시험같아. 그것도 최종 시험이래"
레도가 커뮤니케이터를 보이자, 미리카도 끄덕인다.
"너한테도 왔어?"
"레도도?"
"응"
평소 버릇 탓에 메세지를 전송하고 맞춰보려 했지만, 네트워크각 끊겨서 하지 못했다.
"그럼, 긴장하고 가볼까"
"그래"
미리카가 내민 손을, 레도가 잡는다. 어두운 교실 안에서 맞닿은 작은 온기는, 레도를 조금 따듯하게 만들었다.
왠지 모르게, 미리카와 얼굴을 마주보고 웃는다.
그러자, 등 뒤에서 덜컹덜컹거리는 소리가 나서 레도는 손을 떼고 돌아봤다.
"론도인가……"
론도의 시뮬레이터 시트 뚜껑이 흔들린다.
"괜찮아?"
레도가 말을 걸며 뚜껑을 연다.
"고마워, 살았어"
론도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레도가 론도에게 손을 빌려주며 시트에서 내려오게 도와준다.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 이런 팔로는 시트 뚜껑을 열지도 못하리라.
"최종 시험이래"
론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콜록콜록거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피를 토하는 듯한 재채기에 레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침하며 론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손가락 끝은 교실 구석의 늘어서있는 컨테이너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리카, 도와줘"
"응"
둘이서 컨테이너를 연다. 세 번째 컨테이너에, 눈에 익은 산소 마스크와 약제 스프레이가 들어있었다.
시트에 손을 얹고 콜록이는 론도에게 건낸다.
론도가 목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마스크를 쓰자, 드디어 기침이 수그러든다. 잠시간 후욱 후욱하는 거친 소리를 내며 호흡했는데, 그 또한 수그러들고 있었다.
"고마워"
낮게 신음하는 목소리.
"뭘"
정신차리고 보니, 스톡과 돌이 히죽거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미 눈을 뜨고 모습을 지켜본 모양이다.
조금 뒤 라이디가 시뮬레이터 시트를 열고 얼굴을 내민다.
"다들, 최종 시험이야"
레도가 말을 건다.
"시험이라 해도 뭘 해야 하지?"
돌이 능글맞게 말한다.
"난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 누군가 들은 사람 없어?"
모두 침묵한다.
"일단 컨테이너를 체크하자"
미리카가 말하자 다들 일제히 컨테이너를 향한다.
컨테이너 안에는 다양한 물건이 들어있었다. 휴대형 라이트. 전투식량. 그리고 봉투에 담긴 수많은 기계 부품.
살펴보니 기계 부품은 전부 무기류였다. 에너지 투사형의 소형 화기. 근거리 전용 열검. 구식 화약총이 두 정.
"잠깐, 뭐하는 거야?"
무기류를 재빨리 차지하는 돌과 스톡에게, 미리카가 항의한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잖아, 보통"
돌이 히죽히죽이며 말한다.
"그럴 리 없잖아! 적성을 생각해서 분배하지 않으면……"
"헤에─, 그래서, 그건 누가 정하는데?"
스톡이 되묻는다.
"반장으로서의 명령이야"
"이거 시험이잖아? 시험을 어떻게 치를지 반장이 참견할 일인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야?"
"그건……"
미리카가 말문이 막히자, 레도는 점점 자신이 냉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녀석들은 단순히 시간을 벌려고 할 뿐이다. 하지만 목적이 뭐지?
"뭐가 목적이지?"
레도가 짧게 말한다.
"목적?"
"이런 언쟁을 해봤자 시간이 줄어들 뿐이잖아. 너는 뭘 하고 싶은 거야, 스톡?"
"너희들에게 무기 분배를 맡기면, 너희들이 전부 차지할 거 아냐. 선수를 쳤을 뿐이야"
"그러니까 적성에 맞게 분배한다고……"
미리카가 말하려 하자, 레도가 말을 자른다.
"무기는 모두 네 개야. 너하고 돌과 라이디가 두 개. 우리가 두 개. 선택권은 너희들에게 줄게. 그럼 어때?"
"잠깐, 레도!"
"이해가 빨라서 좋네. 역시 반장이야"
스톡이 히죽거리며 무기 팩 두 개를 건낸다. 화약총 두 정이다.
"이런 고물을……"
"미리카, 서둘러야 해"
레도가 짧게 말한다.
시험에는 제한 시간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펜을 잡지도 않은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미리카는 레도 옆에 앉는다.
"나도 도와도 될까?"
"물론이지, 론도"
셋이서 바닥에 앉아 화약총 조립을 시작한다.
"결국 무슨 시험이지"
돌이 중얼거린다.
"무기가 있으니까, 이걸로 다같이 싸우는 거 아닌가?"
스톡이 빈약해보이는 화약총을 바라보며 말한다.
"오 무서워라"
론도가 즐겁다는듯이 대답한다.
"그렇다면 빨리 조립하는 편이 좋겠네"
화약총 구조는 에너지총보다 단순하고 부품도 적다.
"이새끼가!"
돌이 움직이지만, 스톡이 막는다.
"저기, 죽인다고 해도 말이지"
지금껏 쭉 침묵하던 라이디가, 처음으로 말을 내뱉는다.
"여기…… 가상공간이지?"
무거운 침묵이 주변을 뒤덮는다.
"그게 말이지. 어째선지 정전 상태고. 네트워크도 끊겨있고. 평소랑 다르잖아"
그 가능성은, 레도도 생각했다.
"그럼, 너, 시험삼아 죽어봐"
스톡의 말에, 라이디가 숨을 삼킨다.
"룰이 없다는 말은, 룰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 아닐까?"
레도가 화약총을 조립하면서 말한다.
"그러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무슨 뜻이야, 레도?"
론도는 끄덕이고, 미리카는 되묻는다.
"즉, 평소 수업에서 배워온 것들을 복습하는 거야. 지금은 정전상태고 비상시지. 비상시에는 되도록 클래스 단위로 행동하고, 상위 지휘계통과 합류해야 해"
"혹시, 아니라면 어떡해?"
"그 때는……"
레도가 말을 마치기 전에, 교실 뒷편이 폭발했다.
무너진 벽 건너에서 나타난 것은, 껍질을 뒤집어쓴 점토 덩어리였다.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수염이 보였다. 수염이 달린 히디어즈인가. 그 선발 시험이 플래시백한다.
무기. 무기는 없다. 화약총은 아직 조립하던 도중이었다.
론도가 부품을 끌어안고 팩 안에 담는다. 미리카도 한 발 늦게 뒤따른다.
"도망쳐야 해!"
레도가 외친다.
"짐은?" "무기를" "식량도" "네가 들어" "누가" "서둘러!"
소리만 지를 뿐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못한다.
휘융 휘융 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히디어즈의 앞에 있던 시뮬레이터 시트가 토막나며 와르르 무너진다.
저 수염은 단분자촉각인가!
백병전에 특화된 히디어즈가 발달시킨 생체 무기. 입 부분에서 자라난 가느다란 실처럼 보이지만, 단 하나의 분자로 구성된, 이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칼날이다. 온갖 물건을 잘라낼 수 있다.
그 소리를 계기로, 레도 일행은 서로 뒤엉키며 교실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3-
달린다. 무작정 달린다. 론도가 거친 숨을 내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미리카!"
레도와 미리카는 양측에서 론도를 부축하며, 아무튼 달려나간다.
모퉁이를 몇번 돌자, 추격음이 멎었다. 그와 함께 레도 일행의 체력도 한계에 다달았다.
숨을 고르면서 레버를 당겨 셔터를 내린다.
단분자촉각의 앞에서는 그저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습격을 눈치챌 수 있는 정도는 되겠지.
셔터에서 떨어진 곳에 앉는다.
"뿔뿔이 흩어졌네"
스톡 일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 어떡해야 하지?"
미리카가 어려운 표정을 짓는다.
"왜 그래?"
"레도가 했던 말을 생각해봤어. 비상시 훈련이라 생각해보면…… 반장은, 모두를 유도해야할 의무가 있어"
"스톡 일행을 잡지 못하면 점수 패널티가 크려나"
"없는 편이 낫지만, 시험이니까"
미리카가 그렇게 말하며 론도를 째려봤다는 사실을, 레도는 눈치채지 못했다.
"조금 회복하면 움직이자. 론도는 괜찮아?"
론도가 작게 손을 흔들었지만, 얼굴빛이 좋지 않다.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는다.
"먼저 가"
레도는 첫 시험을 떠올린다. 그때의 그 미아였던 AI 소녀. 그녀를 데려갔던 건 옳은 행동이었다. 점수도 높았다.
"그럴 수는 없어. 그치, 미리카"
"……그러네. 오려거든 도움이 되줘야겠지"
론도가 뭔가 말하려다가, 재채기를 한다.
"무리하지 마"
론도가 고개를 흔들며, 커뮤니케이터를 보인다.
"통신, 모드……"
"아 그렇구나"
레도가 알아들었다는듯이 커뮤니케이터를 오프라인모드로 돌린다.
네트워크가 끊겼을 뿐이지, 커뮤니케이터가 고장나지는 않았다. 모드를 바꾸자 커뮤니케이터끼리 무선통신이 가능하게 된다.
론도는 커뮤니케이터에 문장을 쳐낸다. 입으로 떠드는 것보다는 편하겠지.
론도 : 너희들은 꽤 곤란한 상황이야. 초반부터 막혔어. 이미 두 개 정도 커다란 실수를 했어.
커뮤니케이터에 문자가 나타난다. 레도와 미리카도 답장을 보낸다.
미리카 : 커다란 실수라니 뭔데?
레도 : 나도 궁금해.
론도 : 첫 번째 문제는 지휘계통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야. 덕분에 불의의 습격을 당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버렸지.
미리카 : 그러네.
미리카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레도 : 하지만 스톡이 순순히 말을 들었을까?
론도 : 무리겠지. 레도의 거래가 최적의 해답이었다고 생각해.
미리카 : 잠깐, 그럼 실수가 아니잖아.
레도 : 아니, 우리들의 실수야. 반장으로서 평소부터 장악해뒀어야 했어.
론도 : 그래. 평소의 성과를 나타내는 것이 시험이니까.
미리카 : 불만만 말하는 녀석은 편해서 좋겠네. 나머지 하나는?
론도 : 또 하나는, 처음 나타난 히디어즈지. 그건 쓰러트릴 수 있었어.
미리카 :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야 타임로스 없이 에너지총을 조립했다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론도 : 그것도 해답 중 하나겠지만, 다른 답이 하나 있어. 단분자촉각에 대해 뭔가 기억나지 않아?
론도의 말을 듣고 레도가 기억을 더듬는다.
레도 : 공격과 방어, 둘 다 사용할 수 있어. 확실히, 부착물에 약하댔지. 점성이 높은 물질…… 그렇구나, 식량 페이스트라면.
론도 : 그래.
미리카 : 그 상황에서 거기까지 떠올리는 건 무리야. 도망쳐도 좋잖아.
론도 : 물론 그 말도 맞아. 하지만 우리들은 도망칠 때 너무 당황했어. 누구 식량 가져온 사람 있어?
론도가 하는 말의 의미가 레도의 마음속에 깊이 사무친다.
히디어즈가 방금 녀석 한 마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무기 없이 그들과 맞서야 한다는 말이다.
론도 : 지휘계통을 확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뿔뿔이 흩어졌지. 그 혼란 속에 식량도 가져오지 못했어. 이게 너희들의 실수야.
커뮤니케이터에 표시되는 건 단순한 문자열이다. 하지만, 그 문자에는 론도의 평소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배어있었다.
"지금부터 되찾으면 돼"
커뮤니케이터에서 고개를 들고, 미리카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치, 레도. 힘내자?"
"응, 셋이서 협력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론도도 지혜를 빌려줘"
론도 : 응. 도움이 되도록 해볼게.
"어차피 나는 도움되지 않네요!"
"싸움은 그쯤 해둬. 일단은 스톡 일행과 합류하자"
노려보는 두 사람을 향해, 레도는 발길을 재촉했다.
-4-
미리카의 시선이 등을 찌르는 듯해서, 론도는 작게 한숨을 쉰다.
론도→미리카 : 휴전하지 않을래?
미리카에게만 메세지를 보낸다.
미리카→론도 : 어차피 너는 멋대로 하겠지만, 레도를 말려들게 하면 죽일 테니까.
론도→미리카 : 확실히 나는 시험이나 점수나 어찌되든 상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레도는 돕고 싶어. 그것만은 믿어줘.
미리카→론도 : 알았어.
한 마디의 답장과 함께, 미리카가 표정을 지운다.
곤란하게 됐다고 론도는 생각하지만, 이제와서 어쩔 수도 없다.
미리카는 론도가 싫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싫어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다. 비슷한 얼굴인데 어째서 이렇게 싫어하게 되버렸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싫을 지경이다.
문제는 이 시험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론도의 지혜가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현 상황에서는 론도의 말대로, 협력하는 편이 가장 좋다.
그렇지만, 레도가 론도의 의견을 채용할 때마다, 레도의 마음이 론도에게 다가가며, 오염되는 느낌이 든다. 그런 것은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아니, 진정하자.
론도의 기발한 해답은, 확실히 정답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점수가 되질 않는다. 지금까지 몇번이고 봐온 그대로다.
옳은 해답을 잘 아는 사람은 론도가 아니라 자신이다.
그 때가 오면, 레도도 자신을 골라주겠지. 미리카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5-
걷기 시작하고, 바로 미아가 되버렸다. 평소라면 커뮤니케이터로 맵을 불러내겠지만, 네트워크가 끊겨서 그러지도 못한다.
시험이 끝나면 오프라인 메모리에 맵을 넣어두자고 레도는 생각한다.
"잠깐"
걷는 도중에 론도가 속삭인다.
"뭐야?"
"발소리"
그 말을 듣고 레도가 귀를 기울인다. 들려오는 소리는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나 동력부의 진동음 뿐이다. 어렴풋이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쪽"
론도가 모퉁이 중 하나를 가리킨다.
"정말이야?"
"어디든 똑같다면, 저쪽도 좋겠지"
"그러네"
조금 걷다보니, 론도의 말이 맞았다고 증명되었다.
라이디가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 뒤에서 스톡과 돌도 따라온다.
"레, 레도……"
"무슨 일이야, 라이디?"
"너희들, 여기서 똑바로 온 거야?"
"거의 똑바로 왔어. 너희는 왜 돌아왔어? 히디어즈가 한 마리 더 있었어?"
"그래. 한 마리는 아니었지만. 우글우글거려"
스톡이 싫다는듯이 말한다.
"무기는 있어?"
"없어. 도망칠 때 부품을 떨어트려서……"
"시끄러워 좀 닥쳐"
라이디의 말을 돌이 자른다.
"스톡, 이걸로 어떤 시험인지 알았겠지. 과제는 살아남는 거야. 그러려면 협력해야 해"
"알고 있어"
"교실에서처럼, 언쟁할 때가 아니야. 누군가 리더를 맡아야 해"
"네가 하겠다고?"
"응. 내가 리더로서 모든 책임을 맡겠어"
레도가 말했다.
"미리카, 이 경우, 내 지시가 틀렸다면 나에게 패널티가 있겠지만, 지시에 따르는 건 페널티가 되지 않아. 그렇지?"
"그렇게 되겠지"
스톡 일행은 레도의 명령을 따르는 한, 나름대로 점수를 벌 수 있게 된다.
물론 리더로서 시험을 성공시킬 경우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되지만, 그건 이 시험을 통과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렇게 생각하면 스톡 일행에게 꽤나 유리한 조건이라고 레도는 생각한다.
"스톡, 넌 리더를 하고 싶어?"
스톡은, 피식 웃는다.
"머리통만 큰 놈이라 생각했는데, 꽤나 말이 통하게 됐군"
"카운셀러한테 배웠거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뭐?"
"시간이 아까워. 내가 리더가 되서 모든 책임을 질게. 너희들에게 발언권은 있지만, 결정권은 없어. 이거면 되겠지?"
"이의 없어"
스톡이 그리 말하자, 돌과 라이디도 뒤따라 끄덕인다.
"레도…… 혼자서 괜찮겠어? 나도 도와줄 수 있는데"
"응, 물론 도와주면 고맙지. 론도도 말이야"
그렇게 말하자, 론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6-
"그럼, 현재 상황 말인데……"
레도는 스톡 일행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정리한다.
스테이션 내에는 아무래도 무수히 많은 히디어즈가 침입한 모양이다. 이전 시험과 다르게, 히디어즈는 단분자촉각을 장비하고 있으므로, 셔터로 가두는 전략은 불가능하고, 피난 구역으로 도망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싸워서 쓰러트리거나, 탈출하거나 둘 중 하나다. 뭐가 됐든 목적지는 변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려면 중앙부의 무중력 구역이겠지. 머신 캘리버나 무기도 있을지 모르니까, 아무튼 중앙부로 가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는 중앙부로 가는 루트 구축이네"
중앙부로 가기 위한 통로는, 여러 방향에서 몇개나 존재한다. 현재 위치는 잘 모르겠지만, 원주 방향으로 이동하면 언젠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커뮤니케이터 외에는 화약총 뿐이다. 비상용 박스에 들어있는 도끼를 사람 수만큼 확보할 수 있었으나, 제대로 싸우기에는 살짝 부족하다.
론도 : 오토 맵핑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공유할게.
론도의 메세지가 모두에게 전해진다.
걸어온 루트를 남길 뿐인 간단한 맵이었지만, 적어도 방향감각을 잃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겠지.
레도 : 괜찮은걸. 적이 나온다면 내가 지시를 내리는 방향으로 전력질주. 내가 쓰러지면 미리카가 리더야.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메세지를 전송한다. 모두들 말없이 끄덕인다.
어두운 통로 속에서, 궁지에 몰린 소년들의 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은 이따금씩 중단되었다. 모퉁이 앞에서. 통로 속에서. 히디어즈의 모습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레도 일행은 숨을 멈추고, 천천히 통로를 빠져나가, 다른 길을 찾아나간다.
후퇴할 때마다, 레도는 론도에게 손을 빌려주려다가 깨달았다. 론도의 반응이 빠르다. 레도가 눈치채고 움직이려할 때면, 이미 론도가 통로를 빠져나가려고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돌 : 진행이 안 되네.
레도 : 좀 쉬자.
레도 일행은 가까운 방에 들어가 앉았다. 긴장이 풀려서 땀이 흘러내린다.
스톡 : 척후가 필요하겠어.
미리카 : 정찰이 되면 좋겠네.
둘이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얼굴을 마주보고 째려본다.
정찰인가.
확실히, 모두 함께 움직이기에는 너무나도 리스크가 높다. 몸이 가벼운 사람 한 명이 루트를 구축하는 편이 낫겠다.
문제는, 누가 할지다. 생존률이 낮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스톡 : 도움되지 않는 녀석부터겠군.
미리카 : 성적순이겠네.
또 동시에 말하는 두 사람.
스톡 : 야, 라이디, 네가 나설 차례같은데?
라이디 : 나?
키가 작은 소년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린다. 론도의 성적은 들쭉날쭉해서, 점수가 높을 때도 있었다. 현 시점에서는 라이디의 성적이 가장 낮다.
스톡 : 너, 이쯤에서 죽는 편이 좋을걸?
스톡 : 자력으로 점수를 딸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지도 않잖아? 척후라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점수는 받을 수 있다고.
잔혹하지만 합리적인 해답이다.
"싫어"
가느다란, 비명과도 같은 육성.
"죽고 싶지 않아"
"너, 적당히 해라"
돌이 위협하려는 것을, 스톡이 제지한다.
"리더, 결정해줘. 어떡할래?"
레도는 고민한다. 이 멤버 중에 척후에 걸맞는 사람은, 바꿔 말하자면 없어도 상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라이디다. 그리고 리더란 의견을 통일하기 위해, 반대 의견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라이디, 척후를 해주지 않을래?"
"싫어, 절대 싫어"
지금껏 대부분 제대로 된 의사표현도 반항도 하지 않던 라이디가, 강하게 고집을 부린다.
레도는 라이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통감한다.
"당연히 가상공간이잖아. 히디어즈가 진짜 이만큼이나 있으면 대사건이라구"
미리카가 질렸다는듯이 말하지만, 라이디는 납득하지 않는다.
"그럼 미리카가 가면 되잖아"
라이디의 표정에, 점점 여유가 사라진다. 강요하면 큰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갈 듯하다.
스톡이 얼굴을 찌푸린다. 모두가 이 상황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 진정하자. 라이디도 너희들도. 심호흡해봐"
침묵을 깬 사람은 론도였다.
"저기, 라이디……"
론도가 라이디에게 다가가, 살짝 귓속말을 한다.
라이디의 표정이 조금씩 진정된다.
마지막으로 한 번, 론도와 함께 심호흡을 하자, 라이디가 레도를 바라본다.
"내가 척후를 할게"
"알았어. 부탁할게"
레도→론도 : 아까 어떻게 한 거야?
통로 앞을 조심히 전진하는 라이디를 배웅하면서, 레도는 메세지를 날린다.
론도→레도 : 여기가 가상 세계라는 증거를 알고 있다고 말했지.
레도→론도 : 증거가 있어?
론도→레도 : 있을 리가 없잖아.
레도→론도 : 그럼 어떻게.
론도→레도 : 간단해. 여기 오고나서 한 번도 재채기가 나질 않아. 그러니 당연히 가상 세계라고 말했지.
론도는 살짝 미소짓고는, 재채기를 했다.
레도는, 그 등을 토닥인다.
레도→론도 : 거짓말을 했구나.
라이디가 가장 늦게 시트에서 나왔다. 론도가 재채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거기에 걸었다는 말인가.
론도→레도 : 내가 한 일이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레도는, 가슴 안에 커다란 덩어리가 느껴졌다. 삼켜내려해도 사라지지 않는 돌같은 덩어리가.
커뮤니케이터끼리 가능한 통신 범위는 50m 정도다. 맵 화면 안에서, 앞서 나아가는 라이디의 점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문득, 점이 흔들렸다. U턴해서 돌아오려다가, 다시 급정지한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이. 추격당하는 듯이.
"어이, 리더"
돌이 어깨를 잡고 흔든다.
"전원 이동"
라이디가 향한 곳과 다른 길로 향한다.
풍선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라이디에게 건네준 화약총의 소리일 것이다. 그 소리로, 보다 많은 히디어즈를 끌어들일 수 있다.
첫후는 실패하면 미끼가 된다. 알고 있던 사실이다. 라이디는 역할을 완수했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레도는 앞으로 나아간다.
희미하게 비명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7-
자신이 명령했다. 라이디가 죽었다. 자신이 명령했다. 라이디가 죽었다. 자신이 죽였다. 자신이 죽였다. 자신이 죽였다.
레도의 머리 속에서, 빙글빙글, 같은 말이 돌고 돈다. 그러면서도 몸은 기계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레도!"
미리카가 레도의 귓가에서 날카롭게 소리친다.
"미리카……"
"괜찮아. 시험이니까. 라이디는 죽지 않았어"
"라이디는…… 죽지 않았어"
이건 시험. 이건 시험이다. 시험에서 사람이 죽지는 않아. 하지만 현실이었다면?
현실에서 부대를 이끌 때에, 레도는 라이디를 죽일까? 죽이겠지.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레도"
미리카의 목소리가, 레도를 현실로 끌고온다.
"혼자서 짊어지려 하지 마. 내가 있으니까"
미리카의 손이 레도의 손을 포갠다. 땀이 가득한 손이, 미리카의 정열과, 그리고 공포를 느끼게 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다.
주변을 둘러본다. 미리카의 눈에는 공포와 걱정이 보인다. 돌은 신경질적으로 발끝으로 땅바닥을 걷어차고 있다. 스톡조차도 능글맞은 얼굴에 피곤함이 드러나있다.
무서워서, 궁지에 몰려있는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다.
"고마워"
레도는, 미리카에게 감사를 담아 대답했다.
미리카는 고민한다. 레도는 너무 상냥하다. 자신의 명령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그는 감당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류 은하 동맹의 평가 기준으로 보자면 뛰어넘어야 할 결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레도의 상냥함이, 정말로 결함일까?
미리카는 이 때, 처음으로 인류 은하 동맹의 기준을 의심하기까지 이른다. 이 문제를 공들여 생각할 수만 있다면, 미리카도 무언가 결론에 도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혹한 시험 와중에 그럴 수는 없었다.
"레도가, 네 의지로 명령하지 않으면 돼"
자신의 고민과 모순은 모른 체하며, 미리카는, 그렇게 판단했다.
미리카→론도 : 다음은 네가 스스로 입후보해.
미리카는, 그런 메세지를 보낸다. 그래. 죽음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라이디의 미끼 작전으로 일시적으로 줄어든 히디어즈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길 끝에 있는 히디어즈를 두 번이나 따돌린 뒤, 일행은 다시 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스톡 : 다음 척후가 필요하겠군.
론도 : 내가 할게.
론도가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던 미리카까지 포함해, 이 비뚤어진 녀석이 순순히 명령을 따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도 : 론도, 죽지 마.
레도의 메세지에, 론도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걸어나갔다.
히디어즈에게도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에서 의미를 해독할 수 있는 자가 없었기에, 어느 종류의 작동음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 '목소리'는, 스테이션 내부에서는 동력부의 진동음에 섞여버려서,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청각이란 단순히 소리에 반응할 뿐인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무수한 음파 자극을 뇌내에서 분석하고, 소리의 종류나 위치, 방향을 간파하는 것이며, 훈련이나 학습을 통해 크게 성장하는 면이 있다.
론도의 경우, 좋은 감각을 타고났으며, 게다가 작곡을 함으로써 청각을 단련해왔다. 결과적으로, 그만이 히디어즈의 목소리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단독으로 히디어즈를 피하며 나아가는 것은, 론도에게 있어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귀로 히디어즈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우회한다'는 사실은, 대 히디어즈 전투나 피난 수단으로써 인정받지 못한다. 융통성이 없는 미리카는 그러한 수단 자체를 인정하려들지 않겠지. 그래서 말하지 않고, 그저 걷는다. 걸어가며 생각한다.
레도는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이 시험에서 레도는 그 사실을 통감하겠지. 미리카는 그걸 어떻게든 해보려 생각중인 모양이지만, 그런 사실은 딱히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저, 시험 결과, 리더와는 맞지 않았다고 판단될 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론도는, 전파가 닿는 아슬아슬한 범위에서, 레도 일행을 기다리며, 다음 수를 생각한다.
"쳇"
돌이 멀쩡한 론도를 보고는, 보란듯이 혀를 찼다.
레도 : 다음 척후는 누구로 하지?
돌 : 당연히 론도잖아.
레도 : 그건 너무 불공평해.
스톡 : 제비뽑기가 아니야. 성적이 낮은 순서대로잖아? 그럼 여전히 론도야.
론도 : 나도 그럴 셈이야.
레도 : 론도, 정말 괜찮겠어?
론도 : 나는 살아남기 위해 행동할 뿐이야.
그렇게 말한 론도는 다시 걸어간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히디어즈를 피하며 클래스메이트를 유도한다. 하지만, 히디어즈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네 번째 정찰 중, 론도는 자신이 지나온 루트에 히디어즈가 이동하는 모습을 감지했다. 루트를 피하기 위해 메세지를 보내려던 때, 재채기가 발작할 징조가 나타났다.
필사적으로 재채기를 억누르며,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스프레이를 뿌린다.
발작을 멈추고, 레도 일행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오토맵을 연다. 네 개의 점이 히디어즈가 있을 터인 위치로 천천히 향하고 있었다.
-8-
긴장이 풀려있었을 것이다.
론도의 정찰이 시작된 이후, 일행은 히디어즈와 거의 조우하지 않았다.
모퉁이에 도달한 때에는 일단 경계했지만, 점점 경계도 느슨해졌다.
그런 때에, 레도 일행과 히디어즈가 조우했다.
선두에 있던 돌을 레도가 밀쳐내는 것과, 히디어즈가 행동을 시작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새된 소리를 울리며 단분자촉각이 번뜩이자, 돌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튄다.
"아아아악!"
레도는 비명을 지르는 돌을 억누르며, 입을 막는다. 이 이상 히디어즈가 늘어나면 안된다.
──죽기 싫어.
레도의 마음에는, 그런 생각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이녀석, 쓸모 없네.
스톡은 내심 혀를 찼다. 이 상황이라면 돌을 방치하고 미끼로 남긴 뒤 전원이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리더가 멈춘 상태로 이동 신호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 멋대로 도망치면 명령 위반으로 간주된다.
미리카는, 하고 살펴보니, 레도를 도와 돌의 팔을 끈으로 묶고 지혈하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무능한 녀석들인지, 이 둘은. 여기서 다 같이 죽을 셈인가? 하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다. 리더가 어리석은 행동을 취했으니 스톡의 성적이 깎일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톡은 태도를 바꾸었다.
"스톡, 교대해줘"
레도의 말에, 스톡은 순순히 돌을 억누른다. 과연 이런 긴급 사태에서는 비꼬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레도는 딱히 전멸할 생각은 없었다. 론도에게 미스를 지적당한 이후, 히디어즈를 격퇴할 수단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눈 앞의 히디어즈를 쓰러트리지 않는 한, 론도가 있는 곳으로는 갈 수 없다.
레도는 비상용 도끼를 움켜쥐었다.
"잘리면 끝이야, 그런 건"
스톡이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스톡의 말대로, 단분자촉각은 방어에도 사용된다. 섣불리 접근하면 손잡이나 칼날 뿐 아니라 레도 자신의 몸까지 산산조각이 나리라.
레도가 보고있는 것은, 히디어즈의 입 부분이다.
어떠한 생물이라도, 포식하는 순간에는 움직임이 멎는다. 히디어즈가 입에 달린 촉수를 뻗어, 돌의 잘려진 팔을 주워올리고, 씹어먹으려는 순간. 단분자촉각은 칠칠맞게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을 레도의 도끼가 습격한다. 백열하는 날이 히디어즈의 안면에 박히고, 검은 연기를 내뿜는다.
모든것은 첫 시험의 재현이었다. 히디어즈가 반사적으로 도끼를 체내로 흡수하더니, 몸 안에서도 열이 뿜어져 나온다.
"앞으로 달려!"
레도가 날카롭게 외친다. 바로 스톡이 달리기 시작하고, 미리카와 레도는 돌에게 어깨를 빌려주며 뒤를 쫓는다.
통로 끝에는, 론도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전력으로 달리며 방 안으로 굴러들어간다.
"이 새끼!"
돌이 핏대를 올리며 론도의 멱살을 움켜쥐려다가,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며 주저앉는다.
"미안해"
드물게도 론도가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사죄한다.
미리카→레도, 스톡 : 돌을 억눌러줘.
메세지에 따라, 스톡이 돌을 억누르고, 레도가 입을 막는다.
미리카가 가열된 도끼를 움켜쥔다.
돌이 발버둥치지만 미리카는 눈 하나 깜빡 않으며, 달궈진 날로 돌의 상처를 지지며 지혈한다.
돌이 충분히 진정하기까지 기다린 뒤, 스톡과 레도가 손을 뗀다.
"개새끼가"
돌이 후벼파듯이 외친다.
론도 : 내 실수야. 재채기가 발작해서 루트 변경을 전하지 못했어.
레도 : 아니, 리더의 책임이야. 론도는 잘 해줬어.
미리카 : 히디어즈가 너무 늘어났어.
스톡 : 느긋하게 척후를 보내고 뒤따라갈 때가 아니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들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다.
미리카는 생각한다. 이 위기는, 반대로 기회일지도 모른다.
레도는 자신의 지휘로 누군가가 죽는다는 사실을 견뎌내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를 지키고 죽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리더가 스스로의 목숨을 던지는 행위는 감점 대상이지만, 감점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든다면…….
론도는 생각한다. 미리카는 레도의 마음을 구원하려 한다. 레도가 모두를 지키고 죽는다면, 레도는 이 이상 상처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될까?
-9-
미리카 : 정면돌파할 수밖에 없어. 다 같이 가서, 포위를 뚫어보자.
물론, 모두가 온전히 돌파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사로잡힌 사람을, 차례차례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스톡 : 그거 좋네.
가장 먼저 찬성한 사람은 스톡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발이 빠른 사람이 스톡이다.
모두가 돌파한다면 리더고 부하고 없으니까, 스톡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상냥한 레도는 모두를 지키려고 할 테니, 나쁘지 않은 거래다. 스톡은 그리 판단했다.
돌 역시 흐린 눈으로 끄덕인다. 한쪽 팔에는 도끼를 쥐고 있다. 어차피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히디어즈와 싸우며 길을 열겠다는 것이 돌의 판단이었다.
이제 론도만 찬성하면, 레도는 구원받는다. 이대로 입다물고 있어주기만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미리카는 론도를 노려봤다.
론도 : 다른 방법이 있어.
론도의 발언을 보며, 미리카는 자신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짐을 느꼈다.
론도가 일어서서 가리킨 곳은 환풍기였다. 자연풍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 스테이션의 인공 환경에서는, 환기는 필수이며, 점검을 위해 내부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졌다.
미리카 : 무슨 생각이야. 그런 곳으로 도망치면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잖아.
좁은 환풍기의 통로 속에 히디어즈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달려서 도망치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꼼짝없이 사로잡히게 된다.
거기서 론도가 설명한다. 자신의 청력과 히디어즈의 '목소리'에 대해서. 지금까지 정찰 솜씨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라고 다들 이해한다.
론도 : 환풍기 통로에는 히디어즈가 없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미리카 : 믿을 수 없어. 한 마리라도 있으면 전멸이라구.
론도 : 그 가능성은 있겠네.
론도는 냉정하게 메세지를 친다.
레도 : 하지만 다 함께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어.
미리카가, 분명하게 론도를 노려봤다.
미리카 : 레도, 부탁이야. 바보같은 말 하지 말아줘. 이건 시험이라구.
레도 : 시험이라도, 나는 최대한 피해를 줄이고 싶어.
미리카 : 그런 말이 아니라! 문제 해결법도 채점된단 말이야. 귀가 좋다는 것에 부하 전원의 목숨을 걸 셈이야? 그래선 0점이야!
스톡 : 나는 딱히 상관 없어.
미리카 : 너는 관계 없잖아.
레도의 작전이 어리석다고 판단되면 레도의 점수는 떨어지지만, 명령에 따른 스톡에게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니 속편한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레도 : 관계 없지 않아. 같은 클래스인걸.
미리카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머리에 피가 쏠려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다.
"레도, 부탁이야, 같이 싸우자"
레도의 손을 잡고, 속삭인다. 그 온기에,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래, 자신은, 줄곧 이 손을 찾고 있었다. 레도를 지키고 싶다. 레도의 곁에 있고 싶다. 이렇게나 레도를 생각하고 있다.
저기, 레도. 너는 상냥하고, 순수하고, 순진무구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험해. 그런 너를 구하고 싶어서, 나는 사람을 죽인 거야.
레도는 상냥하니까, 내가 하는 말을 들어줄 거지. 왜냐면 나는 레도를 지키고 싶어서, 레도를 생각해서 부탁하는 거니까. 계속 널 보고있었으니까.
론도가 아니라.
나를.
골라줘.
그래줄 거지?
레도는 망설인다.
미리카는 좋아한다.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미리카의 말은 정론이며, 그 마음에 대답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레도의 마음에 AI 카운셀러의 말이 떠오른다.
──규격이 맞지 않는 부품은 필요가 없어요.
──아무리 부품의 성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폐기할 수밖에 없겠죠.
론도는, 규격이 맞지 않는 것인가? 폐기해야 하나? 그건, 레도가 일찍이 마음속에서 지우고, 잊고 있던 의문이었다. 그 의문이, 지금, 이 순간, 시험의 가장 큰 위기에서 덮쳐왔다.
론도에게는 가치가 없을까? 규격이 맞지 않는 부품인 필요 없나?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론도의 청각은, 미리카의 말대로 계산 외의 능력이다. 규격에서 벗어난 능력이다. 하지만, 그 능력 덕분에 모두 도움을 받았다. 그게 바로 답 아닌가?
레도는, 마음을 다진다.
레도 : 환풍기를 통해 가자.
그 말에, 미리카가 얻어맞은 듯이 한 걸음 물러선다.
레도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론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잘만 하면, 론도가 재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론도는 죽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잘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성적이 내려갈 뿐이다. 자신은 딱히 죽지 않는다. 미리카나 돌, 스톡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론도를 구할 가능성이 있는 길을 고르자. 레도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미리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레도가, 미리카를 버리고, 론도를 위해 자기 목숨을 위험에 노출시켰다고 받아들여버린다. 그 사실은 미리카에게 있어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미리카가 믿고있던 모든것이 무너져간다. 레도의 상냥함을, 결함이 아니라고 믿었던 것. 그러기 위해 사람을 죽였던 것. 반장으로서 레도를 지키겠다고 결심한 것. 그 모두가 뒤집어지고, 남은 것은 그저 덩어리진 증오 뿐이었다.
론도 : 그럼 그렇게 하자.
스톡 : 빨리 가자고.
돌 : 누가 먼저 가서 좀 잡아당겨줘.
미리카는, 말이 없다. 손끝이 떨려서 메세지를 입력하지도 못한다.
"……어째서야"
억누르는 목소리가.
"어째서야!"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다들 경계한다.
"미리카……"
레도가 진정시키려고 말을 걸지만, 역효과였다.
"어째서……"
말소리가 점점 커지자, 미리카가 어금니를 물며 감정을 억누른다.
"……어째서, 론도 따위를"
말하면서도 미리카는 자신이 비참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말해도 레도는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자신은 론도에게 져서, 볼썽사납게 발버둥치는 거라고 생각되었다.
말은 사고를 규정한다.
'연애'라는 단어도, '질투'라는 단어도 모르는 미리카는, 자기 마음 속의 감정을 직시하지 못한 채, 그저 정체 모를 감정에게 휘둘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건 레도도 마찬가지였다. 미리카의 말이, 론도를 향한 질투라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한다. 어째서 론도를 구하려고 하는 건지,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론도를 구한다는 사실이 잘못되었을까? 그렇다면, 론도는 죽어야만 하는 걸까? 규격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만 할까? 그런 분노가 레도의 눈에 나타난다.
그 눈에, 미리카는 더욱 절망한다.
"……나는 가지 않겠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선언한다.
"환기 통로로 간다니 절대로 잘못됐어. 그러니 정면으로 돌파할래. 나 혼자서라도 가겠어"
그렇게 말하고는, 모두에게서 등을 돌린다.
고동이 심하게 빨라진다. 숨쉬기가 힘들다. 다리가 떨린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스스로도 알고 있는데 멈출 수가 없다.
그래도 미리카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레도가 생각을 바꿔주지 않을까? 함께 가자고 말해주지 않을까? 그런 자그마한 가능성을 바라며, 천천히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미리카"
레도의 목소리에 미리카는, 몸이 굳어버렸다. 마음 속에 기대감이 생겨난다.
"자유 행동을 허가한다"
그리고 미리카는 절망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미리카의 행동은 명령 위반이며, 큰 페널티를 얻게 된다. 레도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허가를 내려준 것이다. 최대한의 상냥함이라고, 이해는 된다. 이해는 되지만, 미리카는 분노와 비명을 집어삼킨다.
이 표정은, 이 마음은, 레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미리카 : 알겠어.
그 말만 입력하고, 등을 돌린 채 방을 나왔다.
-10-
좁은 환기 통로 안을 기어가면서, 레도는 몇번이나 오토맵을 바라본다. 미리카를 나타내는 점은 이미 권외로 빠져나가 볼 수 없다.
미리카는 아직 살아있을까? 살아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리겠지. 론도의 청각이라면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대체 어디가 잘못되었던 걸까? 어째서, 미리카는 그렇게 화를 낸 걸까? 어째서 자신은, 미리카에게 어째서 화내는지를 묻지 못했을까? 어떡해야 했었을까. 어떡해야. 어떡해야. 어떡해야.
같은 말만 머릿속에 멤도는 탓에,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그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응어리만 쌓여간다.
론도는 커뮤니케이터를 체크한다.
미리카→론도 : 배신자.
미리카가 나가기 전에 남긴 한 마디가 무겁다. 미리카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론도 역시 레도를 생각하고 있다.
미리카의 작전이라면, 확실히 레도의 마음을 지킬 수 있다. 레도는 발이 빠른 스톡을 생존시키기 위해 스스로 방패가 되어, 미리카와 함께 죽겠지. 그 행동은 높은 점수로 평가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나도 이상적이다. 마치 처음부터 짜여진 것처럼 보일 정도다.
론도는, 레도가 꿨다는 꿈을 떠올린다. 꿈이라는 이름의 세뇌.
레도의 꿈은 누군가를 지키는 것이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꾸는 꿈을 통해, 그렇게 각인된 것이다. 그리고 지키면서 죽는다.
이 시험에서 레도는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과,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도는 이상적인 병사가 된다.
이상적인. 써먹고 버리는. 병사가.
론도는 그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레도는 살았으면 한다. 약싹빠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론도는 시험에 개입했다.
작전 채용은 리더의 책임이라곤 하지만, 작전을 제안한 론도도 성적이 낮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예상은 된다. 그건 이미 각오했다.
환풍기에 히디어즈가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론도의 귀에 히디어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출구까지 히디어즈가 없을지는 모른다.
아니면 여기서 히디어즈가 나와서, 전부 죽는다면, 레도의 마음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생기지 않을까? 론도는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바람도 허무하게, 환기 통로는 종점을 향하고 있었다.
레도 : 스톡, 아래로 내려가서 주위를 둘러봐줘.
레도는 심호흡한다. 무심코 이름을, 미리카라고 쓸 뻔했다. 미리카는 이제 없는데.
스톡 : 사람 험하게 다루는군.
투덜대면서도 스톡은 통로 뚜껑을 연다.
론도는 체력이 없고, 돌은 외팔이다. 리더인 레도를 빼면, 내려갈 사람은 스톡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리를 내지 않으며 방으로 내려간다.
스톡 : 적은 없어. 내려와도 좋아.
레도도 내려오고, 둘이서 돌과 론도를 받아낸다.
론도 : 오토맵 계산이 맞다면, 중앙부까지 얼마 안 남았어.
레도는 모두의 얼굴을 바라본다. 뻔뻔스러운 표정의 스톡. 고통에 이를 깨무는 돌. 어딘가 덧없어보이는 론도.
레도 : 이제 곧이야. 여기까지 왔으니까, 모두 살아서 클리어하자. 알겠지?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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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후는 보내지 않고, 앞서 나아가는 론도를 따라 모두 같이 전진한다. 통로 끝에 표식이 보이자, 레도 일행은 소리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중앙부 무중력 블록으로 향하는 통로가, 1000m 앞에 있다고 알리는 표식이었다.
골까지, 앞으로 1000m다.
레도 : 방심하지 말자.
스톡 :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스톡도, 어딘가 들뜬 것처럼 보인다. 돌까지 조금은 발걸음이 가벼워진 모양이다.
환기 통로를 지남으로써, 히디어즈의 밀집 지대는 빠져나온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적의 모습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 곧, 통로에 도달하려는 그때.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노인의, 잔뜩 잠긴 여러개의 비명소리였다.
레도의 발이 멈춘다. 선발 시험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죽었던 때의 기억이.
"어이, 레도, 왜 그래"
발을 멈춘 레도의 어깨를 스톡이 붙잡는다.
"저런 거, 뻔히 보이는 함정이잖아. 빨리 가자고"
"……"
레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스톡은 초조해진다. 리더의 지시에 따르면 큰 감점은 없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스톡도 살아서 골 지점까지 가고 싶겠지.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구하면 보너스야. 정찰 정도는……"
"그만두는 편이 좋아"
론도에게 그런 말을 듣고, 레도는 놀란다.
돌이 벽을 짚고 땀을 홍수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모두 살아서 클리어하고 싶잖아? 돌은 이제 한계야"
레도의 사고가 공회전한다. 못 본 체하면, 노인들이 죽는다. 구하려고 하면 돌이 죽는다. 무슨 선택을 해도 사람이 죽는다. 물론 운이 좋으면 양쪽 다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운이 나쁘면 양쪽 다 죽을지도 모른다.
"뭘 망설이는 거야"
스톡이 안절부절 못한다.
사람을 버리는 것이 무섭다. 죽음은 무섭지 않다. 하지만, 아군을 죽게 만드는 것도 무섭다. 공포에 쫓기면서, 레도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마음속에서 미리카가 외친다.
──함정이었다면, 함정이라는 표식이 있어.
함정이라는 표식은 있다. 이건, 그 선발시험의 반복이다. 같은 행동을 취하면, 그때와 같이 죽게 되겠지.
그래도, 레도는 노인을 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과거 시험 때도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
돌을 좋아했던 적은 없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인상은 최악이었고, 그 뒤로도 여전했다. 격투 수업에서 당했던 일도 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명령으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레도는 보고 싶지 않았다.
"구출이라면 내가 할게"
론도가 가벼운 말투로 말한다.
"히디어즈를 돌파해 저곳까지 가야 한다면, 나 혼자 가는 편이 훨씬 나아"
그 말을 듣자, 레도의 마음이 정해졌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어쩌려고"
"구출은 포기야. 이대로 가자"
그렇게 말한 순간, 레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감촉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봤던, 강철의 방패. 인류를 지키며 싸우는 머신 캘리버. 그들에게 받았던, 소중한 이상을 땅에 떨어트렸음을 통감한다.
"……뭐, 그렇지. 그게 좋다고 생각해"
"당연하지. 빨리 가자"
스톡과 레도가 돌의 어깨를 부축하고,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돌은 처음에는 아프다던가, 좀 더 천천히 가자고 불평했지만, 곧 기절했다. 힘이 빠져 무거워진 돌의 몸을, 둘이서 힘들게 옮긴다.
그 탓인지 눈치채는 게 늦었다. 론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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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도→레도 : 명령을 위반해서 미안해. 나는 그 노인들을 구하러 갈게. 딱히 죽고 싶은 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야.
알고 있겠지만, 나는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 여기서 보너스를 벌어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
왜 말하지 않았냐고? 말했으면, 레도는 같이 가자고 말할 거잖아.
하지만, 그러면 곤란해.
그룹 전원이 노인을 구한다면 문제 행동으로 인식될 테고, 가령 성공한다 해도 내 점수가 깎이고 말아.
그러니까 나는 혼자서 멋대로 가기로 했어.
골 직전 타이밍이라면 명령 위반으로 이탈해도, 별로 그룹에 민폐를 끼쳤다고 볼 수도 없으니까. 단독으로 성공한 경우에는 보너스 점수도 크고.
아 함정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어. 네가 유년학교 선발 시험에서 나왔던 함정이지. 하지만 레도 전용 함정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대비책도 있지.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골 지점에서 기다려줘.
-13-
"젠장"
메일을 읽은 레도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이, 레도!"
스톡이 낮은 목소리로 레도를 멈춘다. 주변에 히디어즈가 보이지 않는다곤 하지만, 큰 소리를 내면 위험하다.
"미안해. 가자"
깨닫고 보니, 레도 옆에는 스톡과 돌밖에 없었다. 웃긴 일이다. 클래스에서 가장 의지하던 둘에게 배신당하고, 적이라고 생각했던 둘과 이렇게 협력하고 있다니.
입밖으로 나올 것같은 나약한 말을 집어삼키니, 자연스럽게 말이 없어진다.
마지막 1000m를, 셋이서 말없이 돌파한다.
이윽고 중앙부로 향하는 통로까지 도착한다. 천장 해치를 열고, 통로로 들어간다. 스톡이 먼저 올라가고, 레도가 돌을 들쳐올린다.
셋이서 통로에 들어간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14-
레도는 꿈을 꾼다.
우주라는 허공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와, 그들을 잡아먹으려는 히디어즈.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 머신 캘리버.
목숨을 바치며 인류를 지키는 머신 캘리버의 모습에, 어째서인지, 평소와 같은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머신 캘리버가 싫어지지는 않았다. 자신이 그것을 탈 수 있다는 확신도 있다. 하지만, 그 광경에서 열정과 눈물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영원히.
-15-
꿈에서 깨자, 레도는 시뮬레이터 시트 안에 있었다. 뚜껑을 열었더니, 교실이다.
시험이 시작하던 때와 똑같은 장소, 똑같은 풍경. 하지만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커뮤니케이터 역시 온라인 모드이며 네트워크도 살아있다.
신규 메세지가 한 건.
'시험 종료'라고 쓰여있을 뿐이었다.
레도는 온몸으로 숨을 들이키며 푹 엎어진다.
커뮤니케이터로 자신의 성적을 불러오지만, 아직 뜨지 않은 모양이다.
'전 과정을 종료하고, 성적이 확정되었습니다. 현재, 적성 해석중입니다'라고만 표시될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론도는. 론도는 어떻게 되었지?
레도는 론도의 성적을 불러내지만, 같은 메세지가 나타날 뿐이다.
레도의 옆에서 시트가 열린다. 아직 졸린 모습의 미리카와 레도는,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거북한 분위기 속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미리카였다.
"그, 아까전에는, 미안. 왠지, 이상한 말을 해서"
"아니, 나야말로, 미안했어"
겉도는 말. 그저 사교치레.
"그 뒤로, 어떻게 됐어?"
질문을 받은 레도는 설명했다. 환기 통로를 무사히 빠져나온 일. 마지막의 함정. 론도가 멋대로 구출하러 갔던 일.
"그렇구나……"
미리카가 중얼거린다.
"그래도 이제, 끝났네"
"그러게"
그 때, 미리카를 향해 품고있던 격렬한 감정이, 누그러졌다. 전부 끝났다는 피로만이 남는다.
차례차례 시트가 열린다. 라이디가 얼굴을 내민다.
그러고보니 라이디나 미리카는 먼저 리타이어했을 텐데, 이렇게 함께 눈을 뜨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생각한다. 무언가로 조정을 한 것일까?
"안녕, 레도"
론도가 말을 건다.
"안녕, 론도. 그, 잘 됐어?"
"물론이지. 나에게는 이 귀가 있으니까"
론도의 쾌활한 목소리.
"그렇구나……"
레도가 고개를 끄덕인다.
론도와도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너무 지쳤다. 한없이 졸리다. 가상공간에서 꿈을 꾼 거나 다름없는데 피곤하다니 바보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너무 피곤하다.
"그럼, 또 보자"
"응, 또 봐"
레도는 그렇게 말하고 교실을 나왔다.
-16-
레도와 헤어진 론도는 개인실로 돌아간다.
시험에서 눈을 뜨지 못할 가능성도 예상했지만, 일단 무사히 끝난 듯하다. 내일 있을 졸업까지는 유예를 받았다는 말이겠지.
이 유예를 자애라고 생각해야 할지, 잔혹이라고 생각해야 할지는 미묘한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기뻐하자.
침대에 드러눕는 사이에, 눈물이 얼굴을 적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손가락이 떨린다.
공포.
이미 예전에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보다.
거울을 보니, 안 그래도 허약한 얼굴이, 한층 더 야윈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는 레도에게 걱정을 끼치게 된다.
론도는 히디어즈의 손톱을 잡는다. 오늘밤 안에, 완성시킬 생각이었는데, 손가락이 떨린다.
"실수였어.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예정이 비틀어졌어"
그것은 인류 은하 동맹에서는 사라진 기술. 특정 조작에 의해 공기 진동을 제어하고, 일정 주파수를 가진 음파를 발신하는 수동 기구.
즉, 악기였다.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휘파람을 불지 못하는 레도가, 자신의 음악을 재밌다고 말해주었다. 자신과 빼닮은 얼굴의 그녀석이.
론도가 사라진 뒤에, 이 피리를 부는 모습을 상상하자, 조금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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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도가 자고 일어나자, 시험 결과에 따른 적성 해석이 커뮤니케이터에 전송되어 있었다.
레도가 지망한 직업을 고려한 상태에서, 몇가지 선택지가 제시되었다. 정비원, 기계 연구자 등도 있었지만, 망설임 없이, 머신 캘리버 파일럿을 선택한다.
망설임은 없었지만, 감동도 없었다.
계속, 이 순간을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강철 거인을 동경했을 텐데. 파일럿이 꿈이었는데.
아마도, 꿈에서 깼기 때문이리라.
머신 캘리버 파일럿으로서, 레도는, 부하를 효율적으로 죽이거나, 구해야 할 상대를 취사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 현실을 레도는 알고 말았다.
그저 순수하기만 했을 뿐이었던 소년은, 그곳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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