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비내리는 날에만 온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언제나 창가 테이블에서 홀로 술을 마신다. 여자를 앉히지도, 누군가와 2층으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가게를 둘러보거나 창밖을 바라볼 뿐이다.
"루페쨩, 저 사람 알아?"
올백 머리를 한 은빛 머리칼과, 대충 길러둔 수염이 멋진 아저씨다. 저 아저씨가 예전부터 자주 오셨는지 슬쩍슬쩍 물어보는 나에게, 루페쨩이 표정을 찡그린다.
"오긴 왔지. 왠지 무섭다니까. 애써 친절하게 대해줘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술 줘'라는 말 밖에 안 한다니까"
무서워서 별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다. 라고, 루페쨩이 불편하다는 듯이 말한다.
에─, 저렇게 미남인데. 진짜 이세계 최고 레벨인데.
"저 사람이랑 눈이 마주치면, 뭐랄까 매가 먹이를 노려보는 느낌이라 오싹오싹해"
나는 오히려, 야만적이고 꾀죄죄한 아저씨 천지인 점내에서, 저 사람만이 빛나는 듯이 보이는데. 매라기 보다는 닭떼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고 할까, 공주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정도다.
"한 잔 더 어떠신가요─?"
큰맘 먹고 말을 걸어보았다. 아저씨가 조용하게 고개를 들고 나를 본다.
날카로운 눈. 머릿속까지 찌르는 듯하다. 하지만 오싹오싹이라기보다는 쮸와앗 하는 느낌이다. 나 같으면 알몸으로 이런 눈빛에 보여지고 싶은데.
"됐다"
한 잔의 요금을 두고, 아저씨는 가게를 나가버렸다.
버거운걸. 여자가 목적이 아닌가보다.
하지만, 저 사람이 처음이었다.
여기 오는 손님 중에 자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그나저나─, 드디어 사버렸단 말이지. 내 집. 마이 홈. 내 성. 마이 캐쓰을. 근데 너무 넓기도 하고, 날 챙겨줄 여자가 없어서 불편하단 말이지─. 노예라도 사볼까─"
최근에는 나도 요리 실력이 늘어나서, 중화냄비로 볶음밥을 휙휙 뒤집는 기술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쪽에 왔을 때에는 달걀을 깨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가게 메뉴도 종종 맡아서 할 정도다.
나는 이쪽 세계에서 성장했다.
지난달 매출은 5위에 한없이 가까운 6위였고, 가격도 85루버로 올랐으니 이번달은 아마 5위, 어쩌면 4위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엉덩미도 상승해서 목조르는 아저씨도 '좋은걸'이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서비스 테크닉도 선배들한테 이것저것 전수받았고, 최근 고객 만족도 조사(고양이귀 사건 이후 가게 이미지 회복 차원에서 내가 제안했다)에서도 상위권이었고.
최근의 나는, 이 일을 적극적으로 해보려 필사적이다.
"있잖아, 하루. 내 말 듣고 있어?"
"자, 볶음밥 나왔습니다"
"쩐다, 이거 뭐야. 학식 맛이 나잖아!"
"울지 마, 기분나쁘게"
치바도 최근 점점 건방지게 되서는 집이네 노예네 개소리를 씨부려대고, 전혀 안 어울리는 금제 악세서리까지 주렁주렁 차고 다닌다. 태도가 건방진 오타쿠만큼 꼴사나운 것도 없다니까.
"나 치바네 메이드가 될 생각은 전혀 없는데"
"그럼, 계속 창녀를 하겠단 소리야? 그만두고 싶어하던 거 아니었어?"
"평생 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까지 이쪽 세계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뭐, 죽을 때까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남은 인생도 생각해야 하겠지만.
"아─, 그러고보니 들은 바가 있긴 한데. 가령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하루는 어떻게 할래?"
"어, 있어?"
"이쪽 세계에 전설이 남아있어. 뭐라더라, 어느 날 갑자기 검은 비와 함께 마왕이 나타나서, 인간에게 복수랍시고 전쟁을 시작했대. 그래서 곤란해진 인간이 신에게 빌어, 다른 세계로부터 용사를 부르기로 했다나봐. 뭐, 그게 나였지만. 그래서 마왕이라는 놈이 사라지면, 용사도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나 어쩐다나 하는 이야기"
"뭐야 그럼, 당연히 돌아가야지. 치바, 지금 당장 마왕을 무찌르고 와"
"아니 무리야. 최근엔 레벨도 올리지 않았고. 애초에 마왕을 쓰러트릴 생각도 없어. 원래 세계로 돌아가봤자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원래대로라면 우리들 수험생이잖아, 라고 치바가 망할 여드름 낯짝을 찌푸리며 말한다.
"나는 이미 이쪽에서 이노디에이터(치바가 이노베이터와 그라디에이터를 섞어서 만들어낸 신조어인가봐.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다니까)로서 이름을 날려서 안정된 생활도 가능해. 원래 세계라고 말해도, 막말로 애니 말고는 돌아갈 이유도 없고. 그렇다면, 여기서 애니 주인공을 하는 편이 훨씬 낫잖아. 하루도 돌아가서 어쩌려고?"
"고등학생을 다시 할 거야. 당연하잖아"
"그대로 돌아가리라는 전제로 생각하는 거잖아? 그치만, 우리는 트랙에 치였다고? 저쪽으로 돌아갔다가,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몸도 지식도 그대로 이쪽으로 왔잖아. 돌아갈 때도 당연히 똑같지 않겠어? 무서운 말 좀 하지 마"
"그래도 우리는 죽었다는 걸로 되어있어. 이미 우리가 없는 세상이 8개월이나 흘렀다고"
우리 장례식도 끝났고, 무덤도 생겼고, 모두 적당히 슬퍼하는 데에도 질려서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남친도 분명 동정도 받고 자지도 박고 다닐 테고, 친구들 카톡에서 내 이름도 사라졌을 테고, 책상 위에 꽃 같은 것도 없을 테고. 그리고 아마 부모님과 언니 정도만 아직 슬퍼해주고 있겠지.
내가 있는 곳이라고는, 액자의 한구석 밖에 없을 거야. 치바는 그것조차도 불안하지만.
그런 곳에 이제와서 돌아갈 바에야, 생활이 안정되고 있는 이곳에서 지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해하기는 싫지만.
"하루. 난 마왕을 쓰러트리진 않겠지만 이쪽 세계에서 최강의 남자가 될 거야"
치바는 치트 사용자고, 이 세계에서 살아갈 자신감도 있어서 최근에 굉장히 기가 세졌다.
오타쿠인 주제에, 음침한 캐릭터인 주제에, 만날 때마다 남자다워진다. 건방지게도, 나를 함락시키려 덤벼든다.
"내가 반드시 널 지킬게. 그러니까…… 같이 살지 않을래?"
한 박자 쉬고, 치바가 말했다.
"근데 너랑 키요리쨩이 손잡고 걷는 모습, 루페쨩이 봤대"
"아, 이런. 공략 루트가 교착되버렸네. 사랑의 폭탄 처리 조건이 와버렸어─"
"너, 진짜 최근에 왜 그래? 좀 건방져진 거 아냐? 아니, 딱히 네가 누구랑 사귀든 나랑은 관계없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여자, 나 진짜 좋아해"
"관계가 없다는 건, 너랑 내가 아무 관계 없다는 뜻이야. 이상한 식으로 받아들이지 마"
이 새끼, 진심으로 여자들 꼬셔서 하렘이 어쩌네 저쩌네 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거짓말이겠거니 했는데, 전에 루페쨩한테도 이것저것 장대한 계획을 늘어놓은 모양이다.
루페쨩, 잘도 이런 놈 상대를 해줬구나. 소개해준 사람은 나지만.
"됐으니까 한 번, 집으로 와줘. 하루의 방도 마련해 놨으니까"
치바가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이쪽 세상에서 붙은 자신감이 이상한 착각을 하게 만들고, 고집을 부리게 만드는 거다.
"나 나름대로 하렘의 장래도 생각했거든. 방을 보고, 혹시 마음에 든다면…… 일 그만 두고 우리 집으로 와줘"
그런데 잘났다는 듯이 선언하는 치바에게 조금 두근거렸다는 사실이 열받아서 얼굴이 뜨거워진다.
"내일, 투기장 앞에서 만나자. 나, 하루가 와주길 기다릴게"
너무 열받아서, 이놈 집을 보고 한 마디 쏴주겠다고 생각했다.
***
다음날, 투기장으로 향한다.
그 녀석의 집에 가는 것 뿐인데, 뭐,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어째서인지 새 속옷을 입었다.
아니, 그럴 리 없지만. 치바는 키요리랑 사귀는 듯하고.
하지만 치바는 지금껏 나한테 집착했단 말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여자로 삼고 싶다 생각하는 걸까.
매일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여자를, 굳이 어떻게 해보겠다는 느낌인데.
역시,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상대라 그런가. 그렇겠지. 그것 밖에 없어. 나도 치바랑 만나는 이유는 그것 뿐이고. 그 외에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겠고.
같이 산다던가…… 말도 안 되지.
툭 하고, 어깨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까까지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진다.
낭패라고 생각하며 비를 피할 곳을 찾는다. 여자 혼자서는 남존여비가 방해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갑작스런 소나기에 다들 허둥대는 통에, 비를 피할 만한 곳도 보이지 않는다.
그 중에 홀로, 처음부터 굳이 빗속을 선택한 것처럼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의 등이 보였다.
은발의 머리칼과, 머리 하나 만큼 높은 키.
그 사람이다.
어? 어, 어, 진짜로?
설마, 이렇게 가까이에 살고 있었나?
나는 무심결에 그를 쫓았다. 빗속에서, 들키지 않도록.
딱히 말을 걸어도 됐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가벼운 여자라 생각되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 뭐 창관에서 일하는 여자가 가볍지 않을 리 없달까 반대로 너무 무거운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대낮의 길거리에서 평범하게 말을 걸기도 그래서, 아무튼 나는 조용히 뒤를 쫓기로 했다.
하지만 광장으로 나온 순간 놓치고 말았다.
방금까지 내리던 비도 갑자기 그치고,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생각했더니, 그 사람이 사라진 상태였다.
비구름과 함께 하늘로 솟기라도 했나.
아─아. 뭐냐고, 모처럼 입고 온 새 팬티가 다 젖을 때까지 쫓았는데.
바보같아. 나 진짜 뭐하는 걸까. 신경쓰이는 남자는 놓쳐버리고, 음침한 캐릭터 집에 어슬렁어슬렁 놀러 간다니, 이게 나냐고 진짜.
갑자기 모두의 얼굴이 떠올라 보고 싶어졌다. 이쪽 세계 사람들이 아니라 고등학교의 친구들이. 언제나 교실에서 모두와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죽고 싶어졌다.
이세계, 최악이야. 비가 내려도 여자는 묵을 수 있는 곳도 없다는 게 실화냐고. 버거킹도 편의점도 디시인사이드도 없다니 정치인들은 뭐하는 거야. 대체 어딨냐고, 내가 있을 곳은.
"간다─!"
비가 그친 광장에서, 어린아이들이 뛰놀며 깡통차기를 시작한다. 바보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시끄럽네. 그래도 부럽다.
어린이는 어떤 세계에서도 반짝반짝 빛난다. 나도 빛나고 싶어. 어디에 있더라도 나는 나라도 말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싶어.
비를 맞은 정도로 침울해진 나는, 절대 나답지 않아.
"아─!"
젖은 스커트에서 빗물을 짜내고, '나도 껴줘─!'라며 남자애들 사이로 뛰어든다.
"어─, 뭐야 이 여자"
"방해하지 마─"
"상관없잖아, 자, 뛰어─!"
너덜너덜해진 빈 캔이, 비가 내리고 맑아진 하늘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
"하루, 오늘 왜 안 왔……"
"그래그래, 바쁘니까 좀 비켜줄래!"
맥주잔을 들고 점내를 달린다.
그래, 오늘 밤의 나는 바쁘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아깝다.
"하루쨩, 지명이야─"
"네이, 감사합니다!"
손을 탁 치고 단골손님을 환영하며 2층으로 데려간다.
밥집 주인이 주문을 요구하는 기세로 자지를 잡는다.
"이, 이봐. 오늘밤은 왜 그렇게 서둘러"
"시간이 좀 없어서요, 미안해요!"
"아니, 괜찮은데…… 오옷"
호바밧 폼으로 있는 힘껏 펠라한다. 소리도 잔뜩 내면서, 가버릴 것처럼 되었을 때 침대에 쓰러트리고 삽입.
"잠깐잠깐. 나 아직 아무것도──"
"아, 가슴 만질래요? 아니면 뒤치기 포즈가 좋아요? 뭐든 말만 하세요, 3초 안에─!"
"아니, 딱히 상관은 없는데, 꽤 서두르──읏, 이런, 간다, 으앗!"
좋아, 하나 끝.
석연치 않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손님을 배웅하고, 샤워를 한 뒤 아래로 내려간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식으로 계단 운동 5세트를 반복한다. 체력도 늘려야 하니까.
마담이 나의 그런 행동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아, 그렇지. 마담한테 부탁해야할 일이 있었다. 오늘밤은 22시에 퇴근 부탁해요!
씨름부가 오긴 했지만, '오늘은 수다타임을 해줄 여유가 없어'라며 단칼에 거절했더니, 풍선같던 거구가 홀쭉 쪼그라들었다. 몇명인가 손님을 해치운 뒤, 곧바로 방으로 돌아가 귀마개를 했다.
뭘 할 거냐고? 당연히 잠을 자야지.
아직 밤은 긴 데다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를 귀마개로 차단한다. 꿀잠을 잔 나는 태양과 함께 벌떡 일어나 어제 그 광장으로 향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모여있었다.
"늦었잖아, 하루─!"
"우리는 30분 전부터 와있었다구. 하루쨩도 가능하면 그 시간에 와줘"
"네!"
나는 어제──'깡통차기 링'과 만났다.
이쪽 세계의 깡통차기는 스포츠였다. 복잡한 룰이 있고 포지션이 있고, 그리고 매너가 있다. 그들은 처음엔 갑자기 끼어들어 킥을 한 나에게 엄청 화를 냈지만, 좋은 킥력을 가졌다며 나를 스카웃해주었다.
"알겠지, 우리는 앞으로 하루쟝을 퍼스트 키커로 삼아 싸울 거야. 단 작전에 따라 포지션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 사인을 반드시 확인해줘. 전달 라인도 꼭 확보할 것. 알았지?"
우리 사령탑, 포캐머즈가 모두를 보며 말한다.
지적인 얼굴의 쿨보이. 하지만, 마음만은 열정 스포츠 소년이다.
오펜스 때에는 서클에서 가장 먼 곳에 숨어 움직이며 지시를 내리고, 디펜스 때에는 저쪽 세계에서 부르는 '술래'가 되어 적을 찾는 역할의 서쳐라는 어려운 포지션을 맡고 있다.
"하루, 있는 힘껏 차. 하지만 창문을 깨면 최악의 경우 퇴장이니까. 방향을 제대로 생각해서 차"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퍼스트 키커였던 구네이스.
틱틱대는 양아치 타입이지만, 남자답고 믿음직스러운 아이다. 포지션을 빼앗는 형태가 되버린 나에게도 확실하게 어드바이스를 해준다.
지금은 보더라는 서클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숨어서 깡통을 노리거나, 미끼가 되는 등 전위 포지션을 맡았다.
"편하게 하자, 편하게. 하루는 일단 차는 것부터 배워가면 돼"
마이페이스에 무드메이커, 렐라마프.
언제나 싱글싱글 웃는 귀여운 아이지만 날쌔고 아이디어도 풍부해서, 어디서 달려올지 예측할 수 없는 세컨드 키커다.
디펜스 때에는 서쳐와 함께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가이드란 역할을 맡고 있다.
"응, 간다!"
그리고 나는, 퍼스트 키커라는 대포 역할을 맡았다.
오펜스에선 처음 깡통을 차고, 그 다음은 마지막까지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도록 한다. 때로는 보더나 세컨드 키커를 미끼로 삼아서라도 깡통을 차는 일에만 전념한다. 그야말로 킥의 스페셜리스트다.
전에 보더였던 아이가 이사를 가버려서 깡통차기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있던 팀 '사이좋은 홍철팀'이었지만, 내가 들어와서 다시 우승을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가 깡통차기 링의 팀에 들어가는 건 전대미문인 모양이지만, 룰 위반은 아니라는 듯하다. 과연 창녀라는 사실을 비밀로 한 것은 면목 없지만, 이렇게 반바지가 어울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지나 섹스같은 교육까지 해주게 될지도 모른다. 진짜 귀찮으니까 어쩔 수 없이 비밀로 하자.
아무튼 나, 깡통차기 대회에 나가게 되버렸다. 재밌겠어!
"나이스 킥!"
"바로 숨어. 하루쨩은 기본적으로 렐라마프랑 같은 반경에 숨을 것. 단, 구네이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위치로!"
"하루, 엉덩이 다 보이잖아. 숨은 거 맞냐!"
"포캐머즈가 사인을 보내잖아. 적이 깡통을 세트한 직후에는 반드시 보내니까, 못 볼 때는 가까이 있는 아군을 찾아!"
"하루, 엉덩이! 엉덩이 다 보인다니까!"
"하이딩 바꿔. 적은 렐라마프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이야! 렐라마프는 물러나고, 구네이스는 뒤를 쳐. 하루쨩은 그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직진. 실전에서는 제대로 서치선을 끊고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하루─! 엉덩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연습하고, 끝난 뒤에는 광장에서 물을 마시며 반성회. 근처 창고가 구네이스네 집 것이라, 아지트처럼 사용하고 있다.
구네이스는 내 도움 안 되는 엉덩이를 도려내겠다며 화내고 있지만.
"그럼 안 돼, 구네이스. 여자애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포캐머즈는 역시 어른이구나─. 구네이스는 '쳇'이라며 혀를 차고 있지만.
"하루가 들어와준 덕분에 우리도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됐는걸. 사이 좋게 지내자"
렐라마프가 싱글싱글 웃는다. 지키고 싶구나, 그 미소를.
"……나도 알아. 하루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 쯤은"
구네이스가 툴툴대며 툭 말한다.
뭘까, 이 편안한 공간. 남자애들이란 이렇게 따스했던가? 아니면, 창관같은 곳에 오는 남자가 쓰레기들 뿐이었나?
"이번 대회는 절대 질 수 없어"
포캐머즈가 연습에 쓰던 깡통을 꺼내든다.
우리들의 마이 캔. 전복 비스무리한 음식 그림이 그려진 캔이다.
"이건 렐라마프 집에서 만드는 아우베 조개의 깡통이야"
"어, 그래?"
"포캐머즈, 됐다니까. 우리 집 일은 됐어"
"아니, 나도 하루한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동료잖아"
깡통차기 링 팀의 대부분은 통조림 업자가 스폰서로 붙는다.
우승팀의 깡통이 향후 일 년 동안 깡통차기 링 공식 깡통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깡통차기 링의 팬이 많은 이 도시에서는 당연하게도 판매량이 수직상승한다.
사이좋은 홍철팀은 매년 1회전에서 졌다고 한다. 그래서 렐라마프네 집 통조림은, 아직 한 번도 공식 깡통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매상도 별로 높지 않아서, 이 이상 팀이 계속 부진된다면 시골로 돌아가야 한다고 부모가 말을 꺼낸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을 해야한다고, 포캐머즈가 힘을 실어 말했다.
"이제 동료들이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 반드시 렐라마프의 캔으로 우승하겠어"
"사이좋고 활기찬 우리들의 엠블럼이니까"
"쳇, 우리 집때문이라니, 꼴사납잖아…… 그래도, 나도 모두랑 계속 깡통차기 링을 하고 싶어. 물론 하루도 같이"
"얘들아……"
너무 좋잖아, 이거. 열정적이야. 이런 걸 원했다구.
"좋─아, 나도, 모두를 위해 절대 질 수 없지. 사이좋은 홍철팀은 영원하다! 오우─!"
"오우─!"
내 청춘은, 여기 있었던 거야.
대회 첫날.
우리 팀은 빠르게도 핀치를 맞이하고 있었다.
5전 3승의 시합에서 운 좋게 2승을 먼저 땄지만, 순식간에 2패를 쌓아 매치포인트로 돌입해버리고 말았다. 흐름은 완전히 상대팀에게 있었다.
구네이스가 발을 접질렀기 때문이다. 예비 선수가 없는 우리 팀에서 부상자가 나왔다고 보고하면 그는 퇴장하게 되고, 그 시점에서 우리 팀은 실격 처리가 된다.
엄청 아플 텐데, 구네이스는 그 사실을 숨기고 뛰어다니는 중이다. 나 역시 앓는 소리을 내고 있을 수는 없다. 이런 곳에서 질 수는 없으니까.
사이좋은 홍철팀의 오펜스. 방금 디펜스 턴이 끝난 시점에서, 상대 팀이 7점 리드하는 중이다.
우리가 아무도 잡히지 않고 두 번 연속 킥을 성공하면, 8점을 따고 이긴다. 구네이스는 이미 보더의 역할은 커녕 달리는 것도 불가능한 정도다. 시합을 질질 끌수록 불리해진다.
'부탁해, 하루쨩. 구네이스를 가능한 멀리 숨겨두고 싶어. 롱 킥이나 상대 서쳐들을 교란시킬 수 있는 킥을 부탁해'
포캐머즈가 서클 안을 가리킨다.
필드는 '시가지 서쪽'이다. 언제나 연습하던 광장과 비슷했지만, 이곳 지리에 어두운 나는 롱 킥에 자신이 없다. 어딘가 창문을 깨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공격해야만 하는 국면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해.
나는 각오를 굳히고, 몸을 웅크렸다. 깡통을 찰 거리를 재는 척 하면서, 스커트를 입었는데도 웅크린다.
"뭣…?"
상대 팀이 갑작스런 팬티 노출에 동요한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깡통차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심판도 아무런 제재하지 않는다.
그 틈을 타, 머뭇거리며 빈틈투성이가 된 상대 팀의 머리 위를 뛰어넘는 킥으로, 갑자기 깡통을 날려준다.
"됐다! 이 틈에 구네이스는 이리로 와!"
"오우! 하루도 빨리 숨으라고. 넌 절대로 잡히면 안 돼!"
"내가 보더를 맡을게. 하루는 뒤로!"
팀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승기는 이미 여자가 잡았다.
"렐라마프가 퍼스트 키커! 내가 보더를 할게. 반드시 틈을 만들 테니까, 놓치지 말고 차줘!"
내가 미끼가 되서 기회를 만들겠어. 그런 지시를 내리고 서클 근처에서 티나게 숨는다.
엉덩이만 보이도록.
"지금이다!"
뛰쳐나간 렐라마프가, 귀여운 엉덩이에 동요한 상대 팀의 틈에 파고들어 킥을 성공시켰다.
구네이스는 더욱 멀리 피난. 나는 다시 한 번 보더로서 적을 꾀러 간다.
허벅지를 보여줬을 뿐인데 상대 팀은 귀엽게도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다.
"가라, 렐라마프!"
시원한 소리를 울리며 승리의 깡통이 춤춘다. 이 나이대 남자애들이란 재밌을 정도로 간단했다. 덕분에 우리는 1회전의 시소게임에서 화려하게 이길 수 있었다.
"이겼다─, 하루쨩…… 아"
언제나 쿨하던 포캐머즈가 웬일인지 흥겨워하며 끌어안더니, 내 부드러운 바디에 동요하며 떨어진다. 너도 쉽구만.
하지만 들떠서 달려온 구네이스가 포캐머즈와 함께 나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으으읏~!"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힌 포캐머즈가 점점 빨개지면서 괴로운 신음을 낸다. 그 모습을 보며 렐라마프가 깔깔 웃는다.
뭐냐구 정말. 이 녀석들 귀엽잖아!
"렐라마프도 와!"
"어, 잠깐, 나는 됐다니까, 하, 하루, 으읏~!"
셋을 한 번에 끌어안고, 햇님의 냄새가 나는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너희들, 정말 좋아한다구!
대회는 점점 진행되고, 준결승에 진출한 네 팀 중에 우리 팀도 남았다.
만년 1회전에서 지던 팀의 쾌거가 입소문에 올라, 갤러리도 점점 늘어났다. 개중에서 에이스인 나는 더 주목받았다. 거리를 걷다보면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도 생겨서, 살짝 스타가 된 기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부 내 팬티 노출로 이긴 거나 마찬가지라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남자 팬이 엄청 많았고, 그걸 목적으로 오는 관객도 나날이 늘어나는 듯했다.
여자 스포츠 선수가 드문 이 세계에서는, 뭐든 해보는 게 이득이다.
스커트를 더 짧게 해봤다. 팬티도 더 야한 걸로 샀다. 우승으로 향하는 길이 순조롭다고 생각하던 그때──, 사건이 터졌다.
『대회 룰 변경 안내』
제 14조, 스커트를 입고 출전하는 것을 금한다. 이 조항을 새로이 규칙에 더한다. 짚이는 구석이 있는 사람은 즉각 시정할 것. 깡통차기 링 협회.
"어, 잠깐. 이거, 내 이야기인가본데……"
"다른 사람은 없으니까. 팬티를 너무 많이 보여줬어"
"쳇, 모처럼의 필승 패턴이었는데"
절호조였던 사이좋은 홍철팀에게 먹구름이 드리운다. 하지만, 포캐머즈가 바로 팀원을 북돋는다.
"괜찮아. 다른 작전을 생각하면 되지"
"그래. 우리 아직 진 게 아닌걸"
"맞아, 해주겠어─!"
이런 때야말로, 긍적적으로 생각한다.
이 녀석들의 이런 점이 정말 좋다. 본받아야지.
그리고 괜찮다. 걱정은 필요없다. 나 또한 도쿄에서 나고 자란 JK니까.
준결승 당일.
서클 안에서 회의하는 척을 하며 상대 팀에게 등을 돌린 채 웅크린 내 웨이스트에서는, 핑크빛 팬티가 비춰지고 있었다.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고, 프리킥 포지션으로 정면을 향해 웅크린다.
루페쨩에게 받은 오래된 팬티의 옷자락을 마름질해서 만든 수제 핫팬츠의 틈새로, 아까 인상에 새겨둔 핑크빛 팬티가 보일락 말락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한다.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킨다. 상대 팀 남자아이들의 시선이 박히자, 나는 하얗고 탐스러운 허벅지를 더 벌렸다. 녀석들의 고개가 그에 맞춰 움직인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그때 구네이스가 달려나가 힘껏 깡통을 차올렸다. 팬티에 집중하던 남자들이 시원하게 쓰러진다.
"너희들 백 년은 이르다구!"
이세계, 너무 간단하잖아. JK의 팬티가 하루에 얼마나 시선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팬티를 보여주는 패턴은 토나올 정도로 잘 알고있다. 스커트를 입었으니 야하다, 라는 건 너무 틀딱의 발상이잖아.
"해냈구나, 하루!"
우리 팀은 오늘도 압승. 얼싸안고 기쁨을 나눈다.
결승이다. 드디어 우리들, 여기까지 올라왔어!
『창녀 하루에게. 네 정체가 밝혀지기 싫다면 협회 사무국으로 혼자서 오도록. 깡통차기 링 협회』
확실하게 회장의 직인까지 찍힌 협박장이 창관에 배송됐다.
어째 이 협회,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대회의 흥을 돋구는데 공헌해줬건만.
하지만, 창녀라는 사실이 들켰으니 갈 수 밖에 없다.
사무국에 가자 변태같은 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잘 왔구나. 내가 깡통차기 링 협회의 회장인 넷티네이티브다. 히히히히"
이건 또 엄청난 악역이 납셨는걸…… 상상을 초월하잖아.
"사이좋은 홍철팀의 하루. 창녀였다니 이건 놀랍구나. 어쩐지 변태같은 여자같더라니. 잘도 내 사랑스러운 깡통차기 링을 에로티시즘으로 더럽혔겠다"
"루, 룰 위반은 하지 않았는걸요"
"그래, 확실히 룰 위반은 안 했지. 하지만, 그 룰이란 결국 내 기분에 따라 달라지거든. 예를 들어, '과도한 피부 노출은 금한다'라고 한 구절만 추가하면, 너희 팀은 아무런 힘도 못쓰겠지?"
"그런! 비겁해!"
"아니, 꽤 진지하게 개정할까 생각중인데……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내가 하는 말에 복종해야겠지!"
"어, 뭐하려는 거야. 하지마!"
힘으로 책상 위에 밀려 쓰러진다.
뭐야 이 녀석, 잘도 이런 놈이 회장이 되었네. 깡통차기 링 협회, 돌아버린 거 아냐?
"이게 그 유명한 하루의 몸…… 깡통차기 링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악마의 몸인가. 오오, 과연 찰진 피부구나"
억지로 벗겨진 원피스 사이를 회장의 주름진 손이 활보한다.
목줄기를 핥아대서 소름이 쫙 돋았다.
"하, 하지 마세요. 당신, 깡통차기 링의 높으신 분이잖아요! 나도 선수니까, 이런 짓은 그만해요!"
"괜찮겠나, 그런 말을 해도. 팀원들은 네 정체를 알고 있나? 창녀라는 사실을 알고도 널 동료로 인정할까? 그렇담, 그 꼬마들도 같은 죄지. 팀 해산을 명령해야겠는걸. 그렇지? 히─히히힛"
모두의 얼굴이 차례차례 떠오른다. 이런 나를 동료라고 말해준, 깡통차기를 사랑하고 반짝반짝 눈부신 아이들.
역시 창녀 따위가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 아이들의 미래에 흠집을 낼 뿐이다.
"……부탁해요"
"아앙?"
"부탁이니까, 그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회장님이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이 대회가 끝나면 저는 팀에서 탈퇴할 테니까…… 결승전까지는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좋지, 앞으로도 내 말에 따른다면 말이야. 결승전에서도 훌륭하게 돋보이라고. 내 여자라고 속으로 자랑할 테니까. 히히히힛!"
미안해, 다들. 나는 이 대회가 마지막이 되버렸어. 하지만 너희는 앞으로도 깡통차기를 계속해줘.
내일은 최고의 결승전으로 만들자…….
"기다려 임마!"
그때 문이 쾅 열리며 구네이스가 목각을 들고 달려든다. 포캐머즈도 렐라마프도 있다.
"하루가 보여서 어디가나 싶어 왔더니"
"우리 동료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용서 못한다, 악당 두목아!"
과연 내 친구들. 멋진 타이밍에 등장해준 그들이, 깡통차기의 탑 자리에 있는 아저씨를 악당 두목이라 부르며 목각을 휘두른다.
"얌마!"
"우오오옷!"
회장은 추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참고로 때린 건 나다. 앞날이 창창한 친구들이 폭력 사태에 휘말리는 건 아무래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모두를 대표해 회장의 불알을 뻥 차줬다.
"네, 네년, 무슨 짓으으을…!"
"그, 그래, 하루. 너 너무 심하잖아"
"이런 거, 남자들은 보기만 해도 식은땀이 흐른단 말야……"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했던 소년들도, 목각을 내려놓고 움츠린다.
그런 말 해봤자, 난 여자인걸.
"회장님, 이만큼 당했으니 이제 우리 팀에 쓸데없는 짓은 하지마"
"우리는 당신이 우리 동료를 협박하고 난폭한 짓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언제라도 고발할 수 있어요"
"이 대회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있는 편이 좋을 거야"
비지땀과 눈물을 줄줄 흘리며, 회장은 히끅히끅 숨넘어가는 신음소리를 몇 번이나 흘린다.
불알을 걷어차인 정도로 꼴사납네. 웃긴다니까~.
"……이제 가자. 이 이상은 좀, 불쌍하니까"
"하루쨩 도가 지나쳤어. 반성하자구"
"이제 두 번 다시 이런 짓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우리 남자들한테"
그 뒤로도 남자애들이 득달같이 쓴소리를 했다.
어째서 피해자인 내가 혼나야 하는 거냐구. 이러니까 남존여비 세계는 싫다니까.
──결승전 아침이 밝았다.
더 이상 우리들의 깡통차기를 방해하는 녀석도 룰 변경도 없다. 필드에는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에는 깡통차기에 얼마나 인생을 갈아넣었는지 시험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있다.
우리들의 퍼스트 게임 프리킥.
직전 디펜스 턴에는 갑자기 7점이나 따였다. 적은 꽤나 강자였다. 결승 상대로 걸맞을 만큼.
이번엔 우리 실력을 보여줄 차례다.
서클 안에는 포캐머즈, 구네이스, 렐라마프 셋 뿐. 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어제 가게의 모두에게 협력을 부탁해뒀다. 필드 옆에 모여있던 '야상의 청묘정' 악기대가 연주를 시작한다.
내게 있어서는 완전 후진 80년대 디스코 사운드. 하지만 이 세계에 있어서는 참신함의 극을 내달리는 리듬이 흘러퍼진다.
인트로를 듬뿍 듣게 하고, 드디어 내 모습이 나타나자 술렁이던 장내의 분위기가 변한다.
급조한 것이지만 늦지 않았다. 굽이 낮은 신발밖에 없던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 있어서, 8센치나 되는 하이힐은 기대 이상의 충격을 줬다.
핫팬츠는 준결승 때보다 손을 봐서 더 짧게, 티셔츠도 지그재그 모양으로 잘라서 브라가 보일락 말락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민소매 셔츠를 걸쳐 입었다. 깡통이 기다리는 서클을 똑바로 바라본다. 장내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 머리칼을 휘날리며 유연하게 걸어간다.
그리고 서클 중앙에서, 나는 셔츠를 벗어던지고 포즈를 취했다. 시크라소 씨의 파워풀한 보컬도 분위기를 업시켜서, 장내는 점점 흥이 올랐다.
팀원들이 스텝을 밟는다. 나는 섹시하게 상대 팀을 도발하며, 관객 남자들도 부채질해준다. 괴로운 표정을 짓는 회장에게 손으로 키스를 날려준다.
느릿느릿하게, 깡통 앞에서 몸을 웅크리며 허벅지를 어필한다.
렐라마프네 전복 비스무리한 그림이 그려진 깡통에 고간이 가리게 만들며 허리를 흔든다. 이미 장내 남자들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넘어지기도 한다.
천천히 일어나며, 깡통을 차올린다.
바지 앞섬을 추스리며 웅크리는 상대 팀의 머리 위를, 깡통이 깔끔한 호를 그리며 날아간다.
결승은──상대방의 전의 상실로 인한 기권으로, 우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흥에 겨워 법석을 떨며 광장의 물로 몇 번이나 건배를 했다.
구네이스는 분수에 뛰어들어 모르는 아저씨한테 혼났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우리는 배를 끌어안고 웃었고,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끌어안았다.
렐라마프는 깡통을 치켜들고, 해냈다고 몇 번이나 외쳤다. 포캐머즈는 슬쩍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우리는 기뻐하고, '내년에도 우승하자!'라며 떠들썩했다. 내일도 연습하자며 평소처럼 약속을 하고, 그리고 사흘 뒤.
나는 모두에게, 팀 탈퇴를 고했다.
"……기다려봐.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무리야. 룰인걸"
"회장한테 항의하자. 우리는 회장의 약점을 잡고 있잖아!"
나는 포캐머즈의 제안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증거도 없는 데다가 누가 들어도 회장 편을 들어줄 게 뻔하다. 왜냐면, 나는 창녀니까.
『대회는 남성만 출진 가능하다』
룰 북에 새로이 추가된 한 문장은, 남존여비 세계에서는 당연한, 즉 이쪽 세계에서는 상식적인 규정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명시하는 것을 까먹었을 뿐이다. 스포츠 팀에 여자가 들어간다니, 이쪽 세계에서는 역시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창녀라는 사실도, 이제는 온 마을에 다 퍼졌다. 결승전의 소동으로 소문이 퍼져, 관계자한테도 알려졌으니 무슨 말을 해봤자 소용없다.
"나는……싫어. 하루는 우리 소중한 동료야. 사이좋고 활기차지 않으면, 사이좋은 홍철팀은 끝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루쨩도 포함해서 사이좋은 홍철팀이야. 앞으로도 이 팀은 변하지 않아"
"응. 이제 대회는 나가지 않아도 돼. 우리가 거절할 거야. 계속 우리랑 같이 깡통차기 하자. 응, 하루?"
눈물을 참는 게 힘들다. 이 녀석들 정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별에서 찾아온 왕자님들 아닐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상냥함에 기대면 안 되겠지. 그보다, 다들 진지해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우리가 했던 거 거의 깡통차기라 부르기 힘들지. 슬슬 성실하게 하자구.
"바─보. 나도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고. 나도 일이 바쁘니까"
이건 정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아침연습 때문에 손님들을 너무 홀대해서,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도 최하위까지 추락해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냐고, 이런 쓸데없는 앙케이트를 시작한 녀석은.
"애들 상대는 이제 끝. 너희 꼬맹이들은 꼬맹이끼리 새로운 친구를 찾아서 놀렴. 나는 질렸으니까, 돌아갈게!"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편다. 이제 남자 세계의 방해는 그만두겠어. 이 아이들도, 슬슬 진짜 깡통차기를 하고 싶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졸업!
"……하루, 연기 너무 서툴잖아"
"우리가 그런 말에 속을 것 같아?"
"사실은 그만두기 싫으면서. 누가 꼬맹이냐, 하루!"
시끄럽네.
알았으니까 지금은 이쪽 보지 말라구. 울고 싶지 않단 말이야.
"잘 지내, 너희들. 어른이 되면 가게에 놀러와. 내가 좋은 거 가르쳐줄게"
돌아보지 않고 바이바이하며 손을 흔든다. 진짜 좋아했다구, 너희들.
"──진짜로?"
포캐머즈의 말에, 엉겁결에 멈춰서 돌아보고 말았다. 다들 진지한 표정이라, 무심결에 두근거렸다.
"약속이야, 하루"
"어른이 되면, 우리한테 좋은 거 가르쳐줘"
"우리들, 하루로 정해놨으니까"
볼을 빨갛게 물들이고, 콧물을 흘리며, 남자애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촉촉하게 적셨다.
"……그래, 약속이야!"
나는 흐물흐물해질 것 같은 표정을 어떻게든 숨기고,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바─보. 정말이지 남자들은 바보라니까.
너희들같은 건, 어른이 되면 셋 다 진짜 좋은 남자가 되서──나같은 거에 신경쓸 틈도 없을걸.
***
"히~히히히, 어떠냐, 이 악마년. 내게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나!"
"아아─, 용서해주세요─"
나같은 거에 집착하는 남자는, 이런 놈들 밖에 없다니까.
깡통차기 회장, 불알도 무사히 살아난 모양이라, 집요하게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과연 가게까지 찾아와 돈까지 낸 이상, 얌전히 범해질 수 밖에 없지.
깡통차기 링 협회의 회장 직인을 엉덩이에 찍으며 문지른다. '내 것이다아!'라며 기쁜 듯이 외치는 아저씨에게, '뭐든 따를게요~!'라고 엉덩이를 흔들며 대답한다.
"하아, 하아, 이 질조임, 이 엉덩이, 깡통차기는 역시 멋지구나, 선수를 아름답게 만들엇"
"저어, 그럼 여자의 출진도 허락하는……"
"건방진 말 마랏. 여자 주제에, 깡통차기를 입에 담는 게 아니다앗"
쬐끄만 자지를 내 보지에서 휘저으면서, 회장이 만족스러운 듯이 웃는다.
뭐, 그러시겠죠.
어딜 가든지 나는 나지만, 세계도 세계다. 결국 여기로 돌아올 수 밖에 없지.
"간닷, 오옷, 악마년아앗. 하앗, 그 변태같은 엉덩이에, 싸주마, 네 엉덩이는, 내 것이다아아!"
깡통차기 협회의 회장님인 것 치고, 힘없는 정액이 내 보지 속으로 날아들어온다.
"아─앙, 회장님의 것, 굉장햇! 나, 이제 이 자지에 거역하지 못하겠어어!"
"히히힛.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발 더──"
"아, 연장은 85루버야"
뭐, 고객도 늘었고, 클럽활동 같아서 재밌었고, 애들도 귀여웠고.
재밌었어!
***
"──나, 키요리랑 사귀기로 했으니까"
카운터 위에 팔꿈치를 괴며, 모자 챙같은 헤어스타일의 남자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한다.
"……?"
"치바라구!"
"아─, 치바! 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
"매일 가게 왔고, 매일 투기장 앞에서 기다렸다고!"
전세계 공통 변변찮은 남자 대표, 치바.
최근 얼마간 만나지 않은 사이에 태클거는 성량까지 커진 모양이고, 변함없이 활기차네.
"하루가 그렇게 항상 여기저기 내빼니까 키요리 루트가 엄청 진행되고 말았다고"
"그런 거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사귀기로 했구나? 잘됐잖아, 키요리쨩 귀엽지?"
"귀엽긴 하지만, 처녀였다고. 그런 건 별 상관없지만, 역시 문제가 있단 말야"
"뭔데?"
"목석이야"
모가지에 목석덩어리를 얹은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던가, 네가 하는 섹스는 목석 정도가 아니라던가, 이것저것 태클을 걸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말문이 막힌다.
틀렸어, 내 태클력이 떨어지고 말았잖아. 평화로운 환경에서 너무 응석부린 탓이다.
"역시, 하루가 아니면 안 돼"
치바가 내 손을 멋대로 잡는다. 드디어 제대로 된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게 되서 그런가, 이놈이 꽤나 기어오르신다.
"하루가 우리 메이드가 되서 키요리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지 않을래? 적어도 펠라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하게끔──"
"커피 마실래?"
"앗 뜨거! 내 머리는 컵이 아니고, 캡도 아니야!"
"미안해, 군마"
"치바야!"
진짜, 변변찮은 남자밖에 없다니까─.
뜬금 깡통차기 뭐냐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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